East & West (이스트 엔드 웨스트) 1부. 이스트East(동쪽, 동방東方, 동부東部 동부지방.) Prologue. 탈출감행脫出敢行. 자유다! 라지만 지금은 뛰어야 한다. 자유를 만끽하면서 이 시원한 바깥공기를 맛보는 기분 은 완벽하게 살아나 탈출했을때로 미루어 두어야겠지. 뛰고, 또 뛰었다. 숲은 너무나도 어두웠다. 흡사 아치형태와 같았다. 주욱 이어지고 있는 나무들. 그것에서 뻗 어 나오고 있어 공중에서 얽힌 나뭇가지들은 아치형처럼 보이는 착각을 일으켰다. 나뭇가지들이 새카맣게 물들어 있어서인지, 마치 어둠으로 된 고리를 통과하는듯한 색다름 이 전해져 왔다. 이것 만큼은 어딘지 모르게 신비스러워서, 색다른 세계로 통할지도 모른다는 착각마저 일으 키는 듯 했다. 바닥 역시 암흑에 젖어있어서 너무나 조심스레 뛰어야 했다. 내 발에 여러겹으로 묶인 천들 과 솜 약간은 신발을 신고 뛰는 것이 아닌 느낌. 너무나도 이질적인 느낌을 나에게 선사했다. 나는 얼굴에 와 닿는 어슴푸레한 새벽바람이 내 체온을 앗아가는 것을 느끼면서 이런저런 욕설을 퍼부었다. 이러면 오래 뛸수 없는데……. 아무리 지금이 4월이라 하더라도 새벽바람은 대단히 차갑다. 더군다나 벌써 대충 10km정도는 뛴것같은데……. 쳇, 이런 몽환적인 상상들을 하게 된것도 아마 체력의 딸림과 거친 숨. 그리고 뇌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산소와 내 헛생각, 그리고 이 기괴한 풍경과 신비스러움. 그리고 주변에서 울려오는 동물들의 약한 울음소리들, 그리고 내 좋은 귀에 포착되는 여러 우석거림들 때문이겠지. "……헉헉." 숨이 거칠게 터져나왔다. 내가 아무리 조직에서 1급 암살자로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이런식 으로 뛰면서 지치지 않을수는 없었다. 나는 암살자지 철인경기 선수는 아니지 않은가. 이럴 일이 있을줄은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말이다……. 지금 나는 내가 갖혀있던곳을 포위하고 있는 빌어먹을 조직의 놈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런 꼴사나운 신발 비슷한 것―신발조차 없는곳에 갇혀있어서, 간간히 미친녀석처럼 발광하며 솜이불이나 모포들을 찢어 몇 개씩 솜과 모포들을 갈무리해 둔 것을 끈으로 묶은 것이다. 잡혀들어 오기 전 내가 쓰던 운동화의 끈을 챙겨뒀기에 망정이지……. 없었으면 더 고생할 뻔 했다.―을 다리에 착용한채 뛰고 있었다. 일단 내가 1급 암살자라지만 신발을 신고 뛰면 소리가 최소 5에서 10데시벨 정도는 나게 되어있다. 너무 작은 소리라고? 웃기지도 않는다. 망할, 조직에서는 3데시벨의 소리까지 잡아내는 괴물들도 있다. 일단 내가 이것을 신고 최대한 기척을 죽이자 내가 느끼기에도 내가 내던 평소 소리보다 확 줄어든 상태였다. 물론 이것도 단단하게 묶어둬야 끌리지 않지만. 먼지도 나지 않게 뛰느라 너무 힘들었다. 더군다나 물같은것들을 만나면 이리저리 피해가며, 숲이나 돌이 많은곳 같은 경우 피해야 했다. 게다가 그들이 상상도 못할 루트로 뛰느라 죽을맛이었다. 내가 시속 50km. 인간의 한계조차 넘어서 뛰고 있다고는 하지만―불가능하다고? 그 무지막지한 훈련을 받아보라, 열에 아홉은 죽어나가는 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뛸수 있고, 또한 1시간 정도는 이렇게 뛰고도 속력이 줄어들지 않을수 있다지만 벌써 2시간째 뛰고 있었다. 흔적 없애기, 반대방향에 흔적 남기기, 소리 최대한 죽이기, 헛생각 하기 등등. 이런 짓들을 하다 보니 점점 정신도 피곤해져왔고, 근육은 거의 젖산포화상태 직전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멈출수 없었다. 적어도 20km이상 떨어져야 10분이라도 쉴수 있다. 거기서 1시쯤에 빠져나오자 마자 30분 걸려서 간신히 소리없이 빠져나올수 있었고, 2시간쯤을 더 달린 듯 싶으니 지금은 아마 새벽에 가까웠을 것이다. 내가 체력 한계점을 느낀 것이 꽤 되었고……. 아, 지금 시간감각이 엉망이니 아닐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신경쓸것도 많으니까. 다시 욕지기가 솟구쳤다. 젠장할. 언제까지 이런짓을 해야하는지. 그냥 죽어버릴까…… 라기에는 너무나도 지금까지 들인 공이 아쉬웠다. 내 나이 열 일곱. 아직 죽을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물론 나이답지 않은 직업과 나이답지 않은 말투와, 나이답지 않은 잔혹함이란게 손속에 배어있다지만, 나는 아직 젊다. 뭐, 세상에 이런 소설같은 일, 그러니까 10대의 암살자가 폐기당했다가 도망가는 이런 활극과 같은 일이 있냐고 질문한다면 나는 당장에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여기있지 않은가. 순간 꽤 큰 바위가 보였고, 나는 생각을 중단, 그것을 밟고 넘는 대신 살짝 뛰어넘으며 다시 쏘아져 나갔다. 지금까지의 가속력과 점프력이 더해져서 공중이 훌쩍 보였다가 가라앉았다. 나는 욕지기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아, 조직말인가? 이 망할 조직은 자신이 그 조직에 속한지도 모르는 인원이 10만 정도. 그리고 속한줄 알고 있는 평 인원이 5만, 그 중에서 어떤 회사 평사원도 있으며 대륙을 주름잡는 거부도 있다. 그리고 상급 인원이 1만, 이중에 2급까지의 암살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나처럼 특수하게 키워진 암살자들, 1급에서 특급까지의 암살자들이 1000명. 그리고 그 위로 12명의 각 구역 책임자들이 존재하며, 그 12명중 한명은 내가 얼굴을 알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조직의 보스Boss. 그러니까 헤드는 본명은 고사하고 코드네임조차 모른다. 아마 구역 책임자들은 알겠지만. 나는 열네살때부터 조직에 납치되어 교육받기 시작했다. 어리다고? 글쎄, 열 세 살때 12개 방면에서 대학박사 수준의 지식을 마스터했던 나로써는 그 당시만 하더라도 꽤 높은 정신수준을 가졌던걸로 기억된다. 아, 거짓말 치지 말라고? 거짓말이 아니다. 지금 당장 뭐라도 물어보면 대답해줄 수 있다. 윽. ……애가 어떻게 만들어지냐고? 설명해줄 시간 없어! 그리고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상황도 아니야! 그런 건 성교육 받을 때 배워! "큭." 순간 다리가 풀려버렸다. 나는 숨을 거칠게 토해내면서 주행을 멈추었다. 도저히 참을수 없었다. 갈증과 두통이 밀려와서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다. 나는 휘청이면서, 욱씬거리기 까지 하는 다리를 최대한 부여잡고 끌 듯 걸으면서. 물론 최대한 기척과 자죽을 남기지 않고 숲속으로 들어가 한 꽤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걸터 앉아버렸다. 이젠 흔적이고 뭐고 될대로 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있다. 나는 최대한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소매사이에 감추어둔 나이프Knife를 꺼냈다. 티타늄Titanium과 니켈과 강철 합금合金으로 만들어진 이 나이프는 너무나도 예리했다. 지금 반사될 빛도 없는 어둠속이었지만 그래도 조심할건 조심해야 했다. 달빛이라도 비추면 알아볼지도 모르니까. 이것의 예리함은 주인이 다칠수 있을정도여서 꽤 조심스레 다루어야 하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이미 익숙해 져 있는 무기였으니까. 뭐, 지나치게 조심스럽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막 사라져가고 있긴 하지만, 게다가 약하기까지 하지만 달빛의 끝자락이 남아있어서 조심스러워졌는지도 모른다. 체력 한계점이었지만 정신은 너무나도 맑고 또렷했다. 정말 죽을것처럼 피곤했지만 최대한 참아내며 나이프를 꺼내서 지금 할수 있는 최선의 상태로 소리없이 움직이며 꽤 덮수룩한 수풀들을 찾았다. 어둠속에서도 사물을 완벽하게, 색은 알수 없긴 하지만 사물은 식별할수 있도록 훈련받은 내 눈. 뭐 익숙해 지지 않았더라도 상관 없었겠지만 내 눈은 이미 어둠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 있어서 주변의 수풀들을 베는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가지를 잡고 최대한 소리없이 수풀들을 베어서 내 몸 근처에 이리저리 덮어 쌓아 내 몸을 감추었다. 4월이라서 아직 마른풀이 조금 남아있었지만 녹색풀들을 역시 사용해서 감추었다. 파뒤집자 흙의 냄새와 풀의 냄새가 생겨나서 깜짝 놀랐지만 어쩔수 없었다. 곧 주저앉고 기대어 눈을 감았다. 몸의 감각이 돌아오며 팔이 끊어질 듯 아파왔으나 참아내며, 별 내색 없이 능숙한 동작으로 나이프를 다시 소리없이 소매속으로 감추었다. 이것만큼은 수색때도 뺏기지 않았다. 후후……. 같은 암살자들이 아니라 멍청한 수색담당관에게 수색을 맡긴게 조직의 실수였을 것이다. 일단 내가 탈출을 꿈꿀수 있었던것도 이것 덕분이니까. 이것을 써서 그곳에서 제공되는 수저라던가, 혹은 방 안의 침대라던가, 하는것들을 조사해서 경금속 중에서 1급 폭발물로 분류되는 알루미늄Aluminum, 물론 산화 알루미늄이 아니라 순수 알루미늄의 가루를 긁어모았고―모르는 이들이 많겠지만, 경금속은 폭발물이 될 수 있다!―, 비누와 빗물, 소금, 그리고 내가 숨긴 분해용 화학약품 약간을 이용해 위험물인 나트륨Natrium(소듐Sodium)을 얻어냈고, 그것을 다시 천으로 감고 나뭇가루들로 밀폐시켜서 최대한 폭발력을 얻어내 그놈의 철창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 갇혀있던 1년간 거의 매일같이 발광發狂하는 척 하면서 천들을 한껏 긁어모았다. 솜들도 꽤 긁어모았고. 재료들이 모이고 나자 일단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세 개의 철창을 끊었고, 천을 묶어서 만든 긴 것을 내 힘을 약간 써서 걸고 저쪽 나무에 묶은다음― 천을 물들이느라 힘들었다. 그놈 의 철가루를 미친 듯이 긁어모으고 산화시킨 그 철가루들이 아니었다면……. 염색약도 가지 고 다녔어야 했다.― 철가루에 다치지 않도록 손을 천으로 감아 감싸고 그놈의 천을 타고 내려와 그걸 제거한후,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나는 마침내 이렇게 이곳에 앉아있는 것이다. 너무 무모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쓸만하지 않은가? 지금까지 익혀왔던 지식들 이 쓸모있게 사용되어 너무나 기뻤다. 이놈의 물리학은 몰라도 화학은 확실히 잘 쓰였고, 더군다나 이놈의 암살자때의 능력이 틈 틈히 갇혀있을때도 한 훈련덕분에 유지되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하지만 상상이 계속되어서인지 머리가 아파왔다. 자면, 안되는데…… 으윽. 정신과 잠이라는 녀석이 자꾸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소용돌이치는 싸움터에서, 마침 내 잠이라는 녀석이 승리를 쟁취하고 말았다. 정신은 또렷한데 …… 어떻게 이렇게…… 역시…… 눈꺼풀 이기는…… 사람은…… 없어……. 어둠이 눈을 자꾸 덮어온다……. 이러면 정말…… 안되는데…… 이러면…… 그 꿈을…… 꾸 는데…… 001. 인독人毒? 새카만 어둠 가운데 나는 걷고 있었다. 뒤쪽에서는 새하얀 빛줄기들이 쫓아온다. 그냥 빛줄 기로 보였지만 나는 겁에 질린채 그것들을 피해다녔다. 그리고 그것들이 다가왔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 알수 있었다. 날카로운 단검들. 새카만 어둠들이 쫓아오며 빛을 휘두른다. 질주하고 또 질주했다. 그러나 빛들은 더 빨랐다. 금새 빛들이 내 등을 할퀴었고,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계속 뛰었다. 그렇게 뛰고…… 뛰고……. 그때, 영상이 바뀌었다. 내가 지금까지 쫓기던 이의 입장에서 관찰자게 되어 보게 된것이다. 앞쪽에서 빛가닥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그 자리에서 체념해버렸다. 왜인지 모르지만 싸우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없는 두려움에 질려 뛰고 도망가고 날뛰 는 것이다. 나는 비웃었다. 나는 관찰자인 듯 싶었지만 우왕좌왕 하는 저 녀석이 나라는 것을 알수는 있었다. 내가 비웃자 공간에 금이갔다. 소리없이 금이 갔고, 곧 산산히 부서져 내리는 파편 가운데 기억 하나가 다가온다. 그때와 같다……. 그 훈련의 마지막 과정인, 독중에서는 가장 독하고 잔혹하고 무섭다는. 인 독人毒. 그것만큼이나 잔혹한 것. 인독이란…… 수십의 아이들을 한 넓은 방에 가두고, 음식을 조금만 내려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미쳐간다…… 조금의 음식. 밀폐된 공간. 그리고 어둠과 공포. 울부짖음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서열이 정해진다. 그것은 조금이다. 그때부터 음식과 물이 딱 끊겨버린다. 그리고 간혹 조금씩 던져진다. 점점 양이 줄어드는 가운데 미친 듯이 싸우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인간중에서 아이들이 잔혹성을 집약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던가……. 그래서 아이들의 인독은 한층 심하다. 물어뜯고, 죽이고, 마침내는 강간까지 나오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인육까지 먹어가며, 한때는 친했던 아이들의 피를 마시고, 고기를 씹으며 야 수가 된 마지막 아이. 그 아이는 마침내 죽는다. 몸을 꼬챙이로 꽂고 뒤틀어서 그 담즙을 짜내어 버리는 것이다. 하체부터 찢어 발기며 뒤틀 고 짜내면 고통과 분노의 인독으로 인해 그 담즙은 치명적인 독이 된다. 하지만 이 아이를 이런식으로 죽이는것보다 이 인독으로 타고난 '괴물怪物'을 암살자나 살 해자로 길들여 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도 그러했다……. 우리들 100명은 그중에 10대에서 30대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9살짜리 꼬마도 있었다. 나는 냉담했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지금까지 받은 훈련들을 잊었단 말인가? 어둠과 동화하는 자들이 그렇단 말인가? 교육받는 1천명중 100명씩 나누어 가둔 것……. 그리고 나는 마침내 나 혼자 살아남았다. 다 른 아홉들은 모두 순수한 인독으로 잔혹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되어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싸움 와중에도 냉막했다. 인육, 피 ……. 입에 대지를 않았다. 사람의 고기에는 중독성이 있다는 것을 나는 어느정도 알고 있었으니까. 중독성이라기 보다 는…… 정신의 파괴로 인한 집착이 되는 것……. 강간과 살육. 그리고 인육과 피. 나는 나에게 덤비는 녀석들만 뺏기지 않은 나이프로 모조리 목을 따버렸으며, 음식조차 입에 대지 않았다. 오로지 물 약간만 얻어내며 생활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실패작이라 불렀고, 아홉 인독들로 나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나는 이겼다. 아홉 인독들중 셋이 죽었으며. 둘은 식물인간이 되었고, 남은 넷은 팔다리가 부러져 전투불능이 되었다. 그들은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으나, 나는 무시했다. 우습지 않은가……. 나에게 금제조 차 걸지 않은채 대결을 시키다니. 보통, 이 인독들은 1급 암살자에서 멈춘다. 트라우마……. 그리고 피와 인육. 잔혹성에 냉정 함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특급 암살자들은 모두 이런 훈련따위는 받지 않았다. 암살자들의 모습은 모두 다 평 범하게 보이며, 냉정하게 보이지 않고. 부드러움만이 느껴진다. 하지만 내부에는 살기와 냉정함으로 가득차 있으며…… 전투력 없어 보이는 몸과 달리, 지 독한 괴력을 낸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에 빠져들면서 내 눈앞의 광경들. 내가 나이프를 쥔채 하나 하나 죽 여나가는 모습을 즐겁게 구경했다. 어차피 지난일 아닌가? 새카만 어둠이 느릿하게 물러갔다. 일그러져 나가는 주위의 공간을 잡아내기 위해 최대한 눈에 힘을 집중했다. 점점 정신이 또렷해져 왔다. 비몽사몽 상태에서 잠을 이겨내려던 나는 꿈을 깨었다. 망할, 샌드맨Sandman인지 우리나라 판 도깨비인지 알수 없지만 하여튼 나를 재워버리다니…… 나는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 그러다가 타는듯한 갈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귀를 기 울였다. 곧 약한 물소리가 근처에서 울려왔고, 조심스레 그곳으로 다가갔다. 위장용 수풀들은 다 제거해버린지 오래였다. 어쨌든 발각은 되지 않은 모양이다. 조금은 안도하면서 힘없는 걸음으로 탁 트인 개울가에 도달했다. 그다지 넓은 개울은 아니었으나 차갑고 맑은 느낌이 주변을 휘감고 있었다. 자갈 밭이 존재했으나 나는 주변만을 훑어보면서 천천히 접근했고, 곧 품속에서 숨겨놓았던 은조 각을 꺼내 물속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은은 변화되지 않았고, 나는 물을 한모금 마셨다. 아무리 내가 독에 대한 많은 저항성을 부여받았다 하더라도 조직에서 숨긴 특수독이 있을지 도 모르고, 루트를 계산해 이런곳에 처넣었을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내가 지금 정한 루트대로 제대로 가고있는지 알수 없었다. 어슴푸레한 새벽공기, 약간 밝아져서 주변 사물을 식견할 수는 있었다. 몸이 약간 아려왔고 조금 떨렸지만 피로는 거의 다 날아간 상태였다. 근육이 조금 당겼으나 그것은 무시했다. 갈증을 충분히 채운 나는 다시 근처에 기척이 있는 지 느껴보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수풀속에 숨어들었다. "……" 꽤 오래간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깨진 것은 새하얀 빛줄기가 나를 향해 쏘아져 들어왔고, 그것을 내가 빠르게 꺼낸 나이프로 쳐냈기 때문에 터져나온 금속음 때문이었다. 카카캉― 나는 정신없이 몸을 일으켰다. 힘은 없었고, 먹은게 없어서 더욱 그랬지만 물을 마셔서인지 그나마 움직일수는 있었다. 팔에 힘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으나 움직여야 했다. 쉬이익― 세 개의 반짝이는 물체 셋이 내 시야에 포착되었다. 대충 예상되는 속력. 아마도 160km/h는 쉽사리 넘어설 것이다. 피하기가 힘겨웠지만 세 개의 선중 두 개를 피해냈고, 하나는 쳐내렸다. 젠장. 누가 이 루트를 생각해서 찾아왔을까? 역시 냄새 때문인가? 아니면 흔적 때문에? 나를 찾아낼 녀석은 흔치 않은데…… 내가 아무리 1급 암살자고, 특급 몇도 나설것이라고는 생각되었지만 이렇게 빠를줄이야. 기 껏 해야 정오쯤에나 한명 만날줄 알았는데, 예상이 어긋났나…… 나는 특급 암살자로 불려도 손색없을 녀석이었다. 힘을 숨긴 것 뿐이다. 고로 나를 추적하려 면 특급 암살자중에서 한명일 것이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제거한다." "죽어줄 것 같아?"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으나 이렇게 대답해주며 다시 쏘아져 들어오는 두가닥의 새하 얀 빛살 두 개를 휘둘러 튕겨냈다. 녀석은 던지고 나서 나에게 파고들려고 했던지 당황하는 듯 했다. 하긴, 자신의 이런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튕겨내니 1급 암살자로는 생각되지 않겠지. 후후 후……. 옷은 그냥 이 계절에 입는 옷, 그리고 그냥 약간 건장한 몸. 눈빛 만큼은 살기가 뿜어져 나 오고 있었지만 평상시에는 온화한 빛만을 뿌렸을 것이다. 머리 전체를 천으로 감싸 가리고 있었지만 눈구멍을 뚫어놨다. 이런 것에서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나는 나이프를 꽉 쥐면서 자세를 잡았다. 어 차피, 말은 필요 없었다. 이 녀석에게 말해봤자 사실을 유도해낼수도 없을뿐더러, 아까 제거한다는 말도 꽤 목소리가 흐릿하고 쥐어짠 듯 해서 아마 목소리를 어느정도 제거당한 녀석인 듯 싶었다. 두말없이 대지를 박차고 뛰어들었다. 키는 녀석이 더 컸다. 대충 175cm정도. 방심하지는 않 았다. 하지만 녀석은 의외로 강했다. 다시 한가닥 빛살이 쏘아져 들어왔으나 그냥 피해내면서 파고드려고 했다. 그런데 빛살 한 가닥이 호선을 그리며 쏘아져 들어오는게 아닌가. 내가 제대로 식별하지 못할만큼의 쾌검快劍. "큭!" 카칵―!! 젠장. 이게 사람 힘이냐? 나보다 1.5배 정도는 센 힘과 위력이었다. 그러나 녀석은 약간 놀 라는 듯 했다. 부동심不動心도 연마했을텐데 그게 깨질 모양인 모양이군. 하긴, 특급이 1급을 상대로 일격에 보내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수치다. "……." "……." 서로를 노려보았다. 잠시 정적, 그리고 이번에 스타트를 끊은 것은 녀석이었다. 빛살이 일곱 개로 늘어나더니 쏘아져온다. 그리고 녀석의 몸 역시 일곱 개로 흐릿하게 흩어졌다. 이건 말도안돼!! 이녀석!! '약'을 썼군! 나는 짧은시간에 재빨리 머릿속으로 생각을 규정했다. 이놈, 'gsu-87번' 약을 썼다. 부작용 은 5년 생명 감퇴. 근육 2시간 마비. 신경 1시간 둔화. 시야가 몇분 흐릿해지는 정도. 그나마 양심적인 도핑용 약이었지만 나로써는 경악할만한 짓 이었다. 이런 미친!! "……!!" 녀석의 약한 숨소리와 함께 검이 멎었다. 큭큭. 좋아. 아주 좋아!! 약효가 끝날때까지만 붙들어둬 주지! 녀석의 검은 멎어있었다. 그리고 차가운 빛만이 흐릿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약효가 다 하기 를 기다렸다. 약효는 5분. 이 주위에 특급 암살자가 있다면 미친짓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일을 해야했다. 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간단하다. 염동력念動力, 사이코키네시스Psychokinesis다. 나에겐 이런 능력도 있는 것이다. 황당하다고? 하지만 진짜 있는걸 나보고 어쩌라고? 조직에도 숨긴 이 능력. 아마 꽤 놀라고 있을 것이다. 대충 5t정도의 공기압력이 녀석의 주 변에서 가해질 것이다. 물론 꾹 눌러 죽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붙들어두는 정도였다. 하지만 솜털하나 움직일수 없을 것이다. 곧 녀석이 컥컥대기 시작했다. 숨이 막히겠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초를 300초 세자마자 나는 염동력을 풀었다. 그리고 곧 녀석이 쓰러져내렸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약효의 부작용. 마비증상이 오는 것이다. 나는 느긋하게 녀석이 던졌던 단검중 세 개를 회수했고, 그것을 품에 챙겨넣었다. 천천히 다가가서 단검으로 목을 그어버리려 했지만 혹시 연극일지도 모르기에 챙긴 단검 하 나를 집어 던져 녀석의 심장에 꽂아버렸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살에 무언가 꽂히는 소리. 그리고 녀석의 동작이 멎었다. 시체따위 상관 없었다. 일단 그 시체에서 신발을 벗겨 챙긴 뒤 다시 뛰었다. 손에 천을 감은 채 아직도 풀지 않은 상황이라 지문따위 묻을수가 없었다. 사실, 지문을 겁내는건 짭새들 때문이다. 조직에서 수작을 좀 부리면, 돈좀 쓰면 충분하지만 이런식으로 지문이 묻으면 경찰들이 제대로 움직여 버리기 때문에 위험했다. 아? 가족이 위험하냐고? 아니다. 내 가족들은 죽은지 오래다. 내가 납치되던 날 모조리 7백 도 고열의 불꽃속에서 재로 화해버렸지. 큭큭큭…… 메탄 가스를 살포한후 불을 붙여버린 녀석들…… 증거고 뭐고 남지도 않았다. 경찰들은 원한관계로 생각하고 그런식으로 움직였고, 전기 누설이니 뭐니 허튼소리만 해대 며 그 사건은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한바탕 싸움과 함께 죽여버린 녀석을 뒤로한채, 나는 다시 방향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002. 우연偶然은 이러하여 무섭다.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길을 발견한 것이다. 철망이 있었고, 감시구조도 있었으나 사각으로 파고들어서 제거해버렸고,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망. 3m높이의 그것을 한 번 도약으로 넘어버린 다음 다시 뛰었다. 그리고 나서 10분이나 뛰었을까,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마침내 숲이 끝나고 길이 탁 트였다. 고속도로였다. 이상하군, 감각으로는 기껏해야 20km정도였는데……. 뭐, 잘못 생각했을수도 있으니. 그놈의 특급 녀석을 죽여버리고 나서 꽤 오래 뛰었고, 대충 10km정도를 더 뛴 듯 해서, 밤중에 뛴 거리와 합치면 20km를 좀 넘는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30km는 뛴 것 같 았다. 산길도 지나고 이리저리 일도 많아서 시간이 많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감금됐던 곳은 아무래도…… 조직에서 듣던 '분타'인 것 같았다. 은밀한 장소인데다가 인공위성도 찍을수 없도록 자장이 펼쳐져 있는 장소, 대충 반경 10km내역은 그들의 장소며, 또한 더 은밀하다. 나를 죽이지 않고 가둔게 우스웠 지만 이젠 죽이려 들 것이다. 어쨌든 20km를 더 빠져나오자 고속도로를 발견한 것이다. 쌩쌩거리며 차들이 무섭게 달리 고 있었다. 각기 각색의 차들을 감상하며 기쁨을 느끼던 나는, 드디어 제대로된 인간들을 본다는 생각에 꽤 즐거웠다. 내 복장은 그냥 평상복이었다. 하지만 숲을 빠져나오느라 꽤 더러워져 있었지만 대충 털어 버리자 조금은 나아졌다. 몸에서 수풀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곧 코가 마비되어버린다. 어쨌든 간신히 화물차의 조수석에 타서 편승해 도시에 도착했다. 그 아저씨가 꽤 인상이 좋은 사람이어서 조금 긴장됐지만―이젠 좋은 인상만 보면 의심이 된다.― 그 아저씨는 덕담도 해주는 것이었다. 도착한 장소는, 공교롭게도…… 내가 태어났고,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중학교 1학년까 지 다니다가 납치된 도시였다. 바로 광주였던 것이다. 우스웠다. 이런 우연이라니…… 쉴곳도 없고, 갈곳도 없었다. 아마 가족과 친척 모두 제거되었을 것이다. 가족들은 폭발로 다 재가되어버렸고, 친척들은 아마 쥐도새도 모르게 행방불명 되어갔을 것이다. "……." 욕지기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쳇, 그래. 나도 타인보다 내가 운이 조금 나빴을 뿐이라는거. 잘 안다……. 그런데 이 망할 신 영감탱이는, 나를 왜 이따위로 만드는가? 나는 신을 믿는다. 물리학자나 다름없는 이로써 어쩔수 없는 것이다…… 라기 보다는 내 분 노와 증오를 받아줄 대상, 화풀이 대상. 즉, 갈굴 놈이 필요해서 믿는 것이다. 휴우…… 그나저나, 일단 변장부터 해야겠는데. 돈이 없다……. 일단 내 통장의 경우 이놈의 조직에서 제거를 했거나 사용했을시 그 조회를 검사해서 나를 추적할 것이다. 이럴 경우…… 가장 효과적이고 간단한 방법은……! 퍽―!! 내가 가볍게 뻗은 주먹. 쏘아져 나간 주먹이 한 녀석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내 주먹 을 맞은, 얼굴에 칼자국이 난 녀석이 쓰러져버렸다. 자아, 이 묘사라면 내가 가장 효과적이고 간단한 방법이랍시고 한 일이 뭔지 알겠지? 바로 내가 우연히 접한 슬레이어즈라는 만화에서 나온, 산적, 아니…… 도적 털기다. 사실 이게 효과적일수는 없을 것이다. 나처럼 무력을 가지지 못한 이라면, 그리고 직장이 없 는 이라면 아마도 아르바이트라는 방법을 선택했겠지? 나는 웃었다. 그리고 나서 힘차게 쓰러진 녀석의 갈비뼈 하나를 밟아 깨버렸다. 눈을 까뒤집고 부들부들 떨며 기절해버린 녀석의 품을 뒤져 지갑을 꺼냈다. 오, 지갑이 두 개네? 이녀석 날치기도 하는 모양이다. 일단 뒤지기 전에 손에 감았던 천을 다른걸로 바꾸어서 흙먼지가 묻는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카만 지갑 하나와 낡은 가죽지갑 하나…… 이녀석의 지갑이 아닌 새카만 지갑에는 어떤 머리 벗겨진 50대의 사진이 있어서 그것에서 돈을 꺼내 갈색 가죽지갑에 돈을 모두 처넣었다. 대충 금액은 두 지갑 합쳐서 30만원쯤 되는 듯 했다. 카드는 쓸수 없으니 때려 치고…… 현금만 30만원이었다. 지갑이 빡빡해졌지만 어쩔수 없지. 새카만 지갑을 던져버렸다. 새카만 지갑이 기절한 녀석의 몸 위로 떨어졌다. 이런 골목으로 들어와서 깡패사냥을 시작한지 1시간쯤 지났다. 후후…… 벌써 2백만원째다. 지갑은 다섯 개. 현금이어서 좀 위험할지도 모른다. 쓰기 위해 서 5만원 정도는 호주머니에 처넣었다. 방금 칼자국 녀석이 마지막이다. 이정도쯤 있으면 하루 보내는건 쉽겠지. 뭐, 적당히 몸 푸는것도 됐고…… 돈 딸리면 돌아다니면서 이짓좀 해야겠다. 일단 앞일은 막 막했다. 조직에 복수하는거? 미친. 무슨수로 한단 말인가? 특기를 살려서 암살? 이건 역시 바보짓이다. 특급 암살자가 수두룩 깔린 동네에서 암살을 한다고? 골목에서 나왔다. 그리고 나서 시내를 해메이기 시작했다. 큭큭. 고작 1년 지났는데 꽤나 많 이 변해버렸군. 혼잡스러울 정도였다. 일요일인 듯 했다. 오전 시간에 중학생들이 보이니까 말이다. 아직 11시인데. 잘도 돌아다니는군. 2001년 4월 8일…… 이라. 4월인것만 알고 있었는데. 후. "……." 길어진 머리카락이 거슬렸다. 어깨쯤 까지 길어진 머리카락. 잘라버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 지만 어쩐지 자르기가 싫어졌다. 뭐, 염색도 필요없고. 역시 지금 상태에서 딱 좋은건 안경인가? 모습이 달라지게 보일지도 모르니까…… 옷도 좀 사고…… 먼저 옷이라도 사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당한 상점에 들러 옷을 구입했다. 최근 또래들 이 입는듯한 간편하고 심플한 옷이었다. 그냥 위는 회색계통에 바지는 조금 밝은색을 입었다. 그 암살자 녀석의 신발은 꽤 커서 짜 증이 일고 있었기에 운동화도 적당한 것으로 하나 구입을 했다. 그러고 나자 일단 몸을 좀 씻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럽거든. 그래서 기억을 되찾 아서 꽤 비싼 목욕탕. 그러니까, 식당도 있고, 미용실이나 뭐 그런 잡다한것도 갖춘 사우나를 찾았고, 곧 기억에서 그 장소를 찾아내 도착 한 나는 내부에 들어섰다. 돈을 지불하고 입구에 들어섰다. 그리고 나서 키를 얻은다음 옷들을 처 넣고는 잠갔다. 그리 고 열쇠를 팔에 건다음 욕탕에 들어섰다. 먼저 적당히 몸을 씻어내렸다. 그리고 나서 수증기가 가득찬 이 넓은 장소를 훑어보고 탕을 발견했다. 그리고 탕에 몸을 담그려는데…… "으악!!" 하는 소리가 들려서 사람들을 보니 나를 바라보면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고개를 돌리지를 않나.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들지를 않나. 하지만 곧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피식 웃어댔고, 곧 놀라서 도망간 놈들도 간신히 제정신을 차렸다. 왜 이러는지는 몰랐지만 하여튼 몸을 먼저 씻어야 겠다는 생각외엔 없었다. 따뜻한 탕에 몸 을 담그자 피로가 풀려나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대충 20분 정도가 지나자 몸을 일으켰다. 몸이 물속에 오래 있어서인지 감각이 이상했다. 그리고 때(!)를 밀고, 머리를 다시 한 번 감은 후에 비누거품이 머리에서 씻겨나가는 감각을 기분좋게 체험하고, 이태리 타월로 거품을 내서 몸을 다시 한 번 비누와 물로 씻은 다음, 몸을 천으로 닦으면서 바깥으로 걸어나왔다. 기분이 좋아서인지 몇 년간 거의 짓지 않던 미소가 흘러나왔다. 몸을 말리고 적당히 옷을 챙겨입자 이젠 배가 참을수 없이 고파왔다. 계속 고팠었지만 이제야 제대로 느낀것이다. "……후우." 식당에 올라서자 내 몸에 시선들이 가득 와 닿았으나 나는 그것들을 씹어버리면서 자리에 앉았다. 꽤 비싼 식당이었다. 그냥 패스트 푸드 점에나 갈걸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돈도 있는 것. 기분 좋게 이 레스토랑 에서 식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정식을 골라서 주문하자 웨이터가 곧 주문을 받고 갔다. 스테이크는 미디엄으로 해 주라고 말한 뒤였기에 나는 느긋하게 물이라도 마시기로 했다. 아직 조금 덜 마른 머리카락이 약간 걸려서 짜증이 일어났다. 물을 한모금 마셨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자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4층의 레스 토랑이고, 꽤 높은 건물이라 창 바깥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광주의 거리…… 스모그들도 여전했고, 저 폭파시키고 싶을 정도의 빽빽한 거리도 여전했다. 바뀐것도 있지만, 여전하다 이건가? 킥킥킥. 음식은 금방 나왔다. 크림 수프였다. 후추 약간과 소금 조금을 뿌려서 적당히 저은후 먹기 시작했다. 이놈의 암살자 수업은 무엇이 그렇게 배울게 많은지, 상류 사회의 예절 또한 완벽히 익혀야 했다. 왜 익혀야 하는지 궁금했으나 나는 영국의 파 티에서 한 멍청이 정치가 목을 딸 때 그 예절을 써먹으며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뭐, 수프를 다 긁어 먹은 뒤, 수프 접시를 안타깝게 내려다 보다가 마늘빵과 샐러드가 나오 자 그것 역시 긁어 먹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나고 잠시 자리에 앉아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나를 바라보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내 또래로 보 였고, 꽤 좋은 옷을 입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 한 녀석이었지만 그냥 넘어가려 했었다. 그런데……. "혹시……." "……?" 내가 뭐냐는 듯한 시선을 던지자 녀석은 잠시 허둥대더니 질문했다. "혹시 조대부중나오지 않았……." 뭐, 나오지는 않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녀석의 얼굴이 밝아졌다. 설마……? 이녀석은……. "혹시, 1학년 4반이었어?" ……!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이녀석, 같은 1학년 4반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꽤 친했던 녀석이었 다. 드디어 기억이 났다. 이녀석 이름이 준형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의 여드름이 보이는 이마, 그리고 눈썹 아래로 내려오지 않은 머리카락, 단정한 머리였 다. 그리고 조금 잘생긴 외모. 역시나 중학교때와 대단히 빼어 닮아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 하며 질문했다. "혹시 준형이 아니야?" 녀석의 얼굴이 더 밝아졌다. 003 기억하고 있다는데 조금 기분이 좋아졌으리라. 우연이었다. 이녀석을 만난 것은…… 하지만, 난 이녀석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르는데……. 뭐, 이녀석도 어지간히 눈썰미가 좋았다. 나를 알아보다니. 그것도 기껏 해야 2개월 간 생활 했을 뿐인데. 어라? 그러고보니 이녀석, 사투리를 쓰지 않잖아? 뭐, 그럴수도 있긴 하지만. 마음속 한 구 석에서는 의심이 솟구쳐 올랐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발검拔劍의 동작을 위한 도약점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반갑다. 그런데, 그때 전학가서 놀랐어." 아아, 역시 전학처리인가. 그리고 아마도 내가 예상컨대 부모님들이 죽고 친척집에 맡겨진 걸로 되었고, 그 후에 실종된걸로 처리되었을 것이다. 아마 그 이후에 이들이 소식을 알기란 불가능했겠지. "어디로 전학갔어? 지금은 어디 고등학교 다니고?" 긴장됐다. 아, 하지만 이녀석. 틀림없이 학동 근처 산다고 들었다. 그럼 거기서 떨어지지 않 을 만한 곳을 내뱉으면 되겠지. "광덕. 너는?" "나? 석산." 윽! 몰랐던 곳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녀석은 내 옆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혼자 왔냐?" "아아…… 친척분들은 잠깐 내려가셨어." 능숙하게 거짓말을 구사했다. 이녀석은 방금 온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를 끌고 가족들이 있는듯한 자리로 나를 끌고갔다. 윽…… 이러면 안되는데. 곧 나는 질질 끌려서 녀석의 가족 셋이 모여있는 자리로 잡혀갔다.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정중하게 녀석의 부모에게 해야했으며, 속으로는 욕지기를 이 리저리 퍼붓고 있었다. 50대 초반 인듯한 그의 아버지는 정장 차림에 꽤 말쑥한 모습이었다. 머리가 조금 벗겨졌으 나 꽤 미남형이었었던 듯 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역시 그러했다. 40대 후반인듯한 그녀는 역시 전형적인 부잣집 안주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동생인듯한 녀석은 중학교 2학년쯤 되어보였다. 평범한 범생 스타일로 보였다. 두꺼운 안경, 약간의 불안감이 깃든 얼굴. 그리고 조금 피곤한듯한 모습. ……이 가족들이 사실 이런 레스토랑에 먹으러 올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뭔가 약속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만나도 이런곳일까? 문득 불안감이 몸을 엄습했다. 뭔가 끈적한 것이 다가오는듯한 이 느낌은 너무나도 섬뜩했다. 순간 레스토랑 입구쪽에서 문이 열렸다. 그리고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누군 가가 걸어들어왔다. 숨이 막혔다. 그리고 레스토랑 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숨막힐듯한 검은 향기……. 음침하고 짙은 살기殺氣였다. 그러나 너무나도 잘 갈무리 되어있 었다. 시내, 점심시간이어서 사람은 많았으나 자리 역시 꽤 많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는 느긋한 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 밝은 시내의 레스토랑에 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다가오는, 아름다운 모습의 괴수怪獸는……! 빛살속에 존재하는 악마. 악마는 어둠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내의 이렇게 평범한 곳에 저 악마는 손쉽게 걸어들어 오고 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한 악마. 여장을 해서 가슴이 튀어나왔고, 다 리에 털 한점 없다. 비싸보이는 스커트를 입은채 새카만, 작은 가방을 든채 다가오는…… 또각― 또각― 하이힐이 딱딱한 바닥에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그리고 나는 반사적으로 발검을 위해 다리 를 옮겨 딛었다. 숨이 점점 턱턱 막혀왔다. 제기랄……! 불안감! 이거였어! 이 내부의 사람들은 '그녀'의 모습을 한 '그'를 바라보며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니까. 허리 반까지 내려온 삼단같은 흑발. 밝은 표정, 그리고 깨끗함까지 일렁이는 맑은 흑색 눈동자. 키는 170cm정도. 그리고 입가에 맺힌 약한 미소. 전형적인 직장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굳어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저 자는 괴물이다. 어떻게…… 저렇게 숨막힐듯한, 끈적이는 살기와 광기가 얽힌 존재가 저토록 밝고 아름다운 껍데기를 뒤집어쓴채 접근할수 있단 말인가. 이 레스토랑 레부의 사람들은 사신死神이 낫을 든채 걸어오는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입가에 싸늘한 미소, 타인들이 보기엔 부드러운 미소를 띄워올렸다. 점점 나는 불안감에 잡혀갔다. 제기랄! 이 준형이란 놈의 부모들이 '조직'에 관여된, 자신이 가입된줄 조차 모르는 그런 녀석들인건가? 저 악마는…… 확실히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그'가 입모양으로 짤막하게 중얼거리자 몸을 굳혀야했다. 누구 도 보지 못했으나 나는 의미를 알아차렸다. '이곳 사람들을 죽이는데는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자중해.' 큭큭……! 암살자 주제에 이런 협박을 하는거냐? 나는 웃었다. 하지만 불안함은 어쩔수 없었다. 내 불안감을 읽었는지 그는 더욱 희게 웃고 있었다. 무슨 소리냐고? 아아, 여장남자잖아!! "……!!" 순간 녀석이 손모양을 잠깐 보였다가 다시 다가와 탁자 앞에 섰다. 그리고 나는 갈등했다. 지금 움직이면 쥐도새도 모르게 베고 도망갈수 있다. 그런데…… 어쩌면…… 나보다 더 대단한 녀석일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순간 준형의 아버지라는 작자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아차! 혹시…… 이자도 암살 자? 아니면, 조직원중에서 하급쪽인가? 표식을 알아들었어? 분명히 그 손모양은 '같은 조직원이다.'라는 소리잖아! 잠시 준형의 아버지가 뭐라고 말하는 듯 했고, 곧 준형과 그의 동생인 준영,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는 그들을 데리고 옆자리로 옮겨갔다. 아무래도 저 여자도 그런 것 같은데? 그리고 매혹적인 미소를 떠올린 '놈'은 말했다. "준비는 되셨나요?" 그러자 땀을 훔치면서 준형의 아버지는 말했다. 너무 작은 목소리로. 아니, 이제부터 '쓰레 기'라 불러야겠군. 제기랄 것. "무, 물론이오. 하지만…… 대체 왜 필요한거요?" 그는 쓰레기가 말하는 것을 손짓으로 차단했다. 그리고 곱게 흘겼다. 나는 놈의 옆에 앉은 상황이라 긴장으로 인해 손이 미끌거렸다. "……." "발설하시면 안되지요. 그렇지 않으면……." 놈은 손을 살짝 움직여 쓰레기에게 보였다. 뜻은 척살刺殺……. 살인멸구殺人滅口. 그리고 쓰레기의 안색이 굳어졌다. "흥. 너무 긴장하지 마. 내가 아무리 특급이고, 이런 가까운 곳이라도 같은 특급의 능력자를 이렇게 없앨수는 없으니, 그것도 대비중인 녀석을." 입모양 뿐이었다. 하지만 곧 쓰레기는 놀라버렸다. 내가 특급이라니 놀란 모양이군. 큭큭. 나는 입을 열었다. 물론 입모양만으로. "난 일급이지. 특급은 아니다. ……포이즌Poison." 녀석의 안색이 살찍 굳어졌다. 그리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흥. 일급이 특급을 죽일수 있나. 네가 실력을 숨긴 것 뿐이겠지. 그리고, 나를 어떻게 알았 지?" 나는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긴장은 가셨다. 정말 포이즌이었군. 그럼 내가 쉽게 죽일수 있 다. 독을 전문으로 다루는 이놈은 변장의 천재였다. 전투능력도 물론 특급에 속했지만 일급 셋만 있으면 제거가 가능한 녀석이었다. 독이 위험 하지만. 큭큭. "독을 쓰려고 하지 마라. 그리고 안 것은 변장때문이지. 한국지부에 네가 있다는 소리를 듣 고 꽤 놀랐었지만…… 정말 한국은 좁군." "흥……." 마침내 코웃음이나마 소리를 낸 놈은 싸늘하게 나를 노려보았다. 드디어 껍질을 깼군. 준형이 멀리서 나를 의아한 듯 바라봤지만 나는 이미 놈에게 집중중이었기에 그것에 반응해 줄수는 없었다. 그리고 새하얀 가루가 살짝 뿜어졌다. 그러나 이미 나는 그것을 나이프를 휘둘러 뿜어져 나 온 바람으로 몰아내버렸다. 큭큭. 나이프를 휘둘러 생긴 바람만으로 어떻게 제거할수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할말이 하 나밖에 없다. 나는 방금 1년씩이나 되는 생명을 소모해서 나이프를 휘둘렀다. 선천기先天氣 폭발爆發. 이 것은 조직에서 배우는 기법중 하나다. 아까운 내 목숨. 쉬릭― 서걱― 이번엔 평상처럼 휘두른 나이프에 놈의 가방이 두동강 나버렸다. 독이 있을지도 몰랐지만 무시하고 이번엔 나이프를 찔러넣었다. 독 살포 제거 후 여기까지 정확히 2초. 너무나도 빠른 움직임에 레스토랑 안의 사람들이 멍 해졌다. 살포된 독은 쓰레기에게 맞아서 그 쓰레기는 이미 쓰러진채 질식사 해버린 듯 했다. 큭, 극 농축 니코틴하고 발암물질인 타르 농축제…… 그리고 몇 개 더 섞은 것 같군. 이 생각이 끝나고 나이프가 머리카락 조금을 잘라내며 스쳐지나갔으나 나는 몸을 뒤틀며 나 이프를 그어내렸다. 은빛의 호선이 그어져 내리며 놈의 어깨를 스쳐지나갔다. 살갗과 옷을 베는 느낌과 함께 나이프를 휘두르며 발생한 풍압風壓덕분에 피가 쫙 터져나왔 다. 선천기를 쓰고 있지는 않았지만 내가 선천기를 조절해 쓸수 있는것도 사실은 기를 수련했기 때문이니까. 지금도 보통 특급 암살자를 능가하는 속도였다. 내 속력을 보며 녀석의 표정은 굳어진지 오래였다. 큭. 제거하려고 마음을 굳힌 모양이군. 내 조소를 보자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곧 다시 뭔가 세 개를 던졌다. 구슬이었다. 아무래도 안쪽에 독극물이 든 듯…… 이런건 레스토랑 안쪽의 사람들이 뒈지던 말던 알아서 피해버려야지. 곧 몸을 숙이며 파고들 듯 움직였고, 곧 세 개의 구슬이 뒤로 날아가며 퍽 하고 터졌다. 그 리고 그와 동시에 뒤쪽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크아아아악!!" 킥킥. 고통을 유발하는 물건이었나 보군. 그럼 실격이야. 독을 다루면서 단 한 번에 고통없 이 보내줘야 진정한 독 예술가 아니겠어? 녀석은 인상을 찡그리며 소맷자락에서 뭔가를 꺼내들었고, 곧 촹 하는 소리가 두 번 들리며 내 나이프가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그리고 녀석의 오른손의 물건이 단검이란 것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왼손에 쥔 비수匕首가 호선을 그리며 나를 베려했다. 그러나 나는 왼손으로 품속에서 꺼낸 단검으로 그것을 쉽사리 막아냈다. 창창―!! 이어서 우리 둘은 서로의 눈을 1초간 매섭게 노려보았다. 나는 비웃음을 흘렸고, 발끈 하며 녀석은 쌍검을 휘둘러왔다. 곧 나도 몸을 움직이며 쌍검을 휘둘러갔다. 차차차차차차차차창―!! 불꽃의 폭포가 생겨났다. 나는 몸을 때때로 회전시켜가며 원검까지 써가며 여유롭게 검을 퍼부었으나 놈은 당황하며 하나같이 막느라 급급했을 뿐이다. 나는 여유있게 조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조금씩 속력을 늘려갔다. 튀는 불똥은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금속음이 0.1초에 한 번은 들려오게 되었고. 1 초에 10번씩 창창거리는 소리가 연속으로 터져나온다. 녀석은 팔이 아픈 듯 점점 힘이 줄어들었다. 나는 그리고 힘과 속력을 더 실어나갔다. 서걱―!! 내가 휘두른 왼손의 단검이 녀석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고, 가볍게 피가 뿜어졌다. 곧바로 그 는 오른손을 휘둘러 내 빈틈을 찔러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의 옆면을 왼발로 걷어차 튕겨내면서 몸을 회전시켜 오른손의 나이프로 포 이즌의 머릿통을 찔러버리려 했다. 그때였다. 새하얀 빛살이 한가닥 내 어깨를 베려고 한 것은. 나는 조소를 띄며 왼손의 단검 으로 그것을 튕겨낸후 뒤로 돌아가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그놈의 준형의 어머니라는 계집이 한자루 하늘거리는, 은색 검신의 연검軟劍을 오른 손에 쥔채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준형 형제의 눈길에는 경악이 담겨있었다. 짜증이 문득 일어났다. 포이즌은 뒤로 물 러난후 미안하다는 시선을 그 쓰레기 계집에게 던졌다. "젠장. 죽어버려랏!!" 나는 고함을 치며 사이코키네시스Psychokinesis(염동력念動力)를 개방했다. 004. 죽음이 다가온다…… 내가 염동력을 개방하자 체력이 쭉쭉 빠져나가는듯한 느낌과 더불어 거대한 바람이 내 뒤에 서 일어나 쏘아져 나갔다. 웅후한 압력. 그리고 텁텁한 공기의 느낌이 역압力壓의 공기였다. 내 사이코키네시스Psychokinesis에 의해서 생겨난 압축 공기 덩어리의 망치는 그대로 재수 없는 두 쓰레기들을 직격했다. 염력念力을 일으키면서 최대한 정신을 쥐어짜며 일그러지는 정신파와 씨름하기 시작하자 감 정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퍼퍼퍼펑―!! 이렇게 쏘아 보낸 공기압력의 덩어리는 내가 예상했을 때 대충 무게만 2∼30t. 헤비급 복서 의 점타격력이 1t을 상회한다고 알려져 있는 것. 그러므로 2, 30명의 헤비급 복서들이 한점에 정확하게 동시에 타격을 가할수 있다고 가정할 때, 그리고 순수하게 그 타격력打擊力이 옮아간다고 가정할 때 생겨나는 타격력이었다. 어쨌든 공기압력의 덩어리는 순식간에 내 앞쪽의 탁자와 나무들, 그리고 바닥마저 깨 부수 듯 스쳐 지나가며 두 암살자들을 압박하는 듯 했고, 그대로 부딪혔다. 우드드득― 빠드드득― 뼈와 살이 말려드는 소리, 그리고 나는 웃었다. 공기압력에 의해 뼈와 살이 말려들어가며 옷 까지 함께 뭉쳐지면서 피가 요란하게 뒤쪽으로 터져나갔다. 공기압력은 그대로 한쪽 벽에 부딪혔다. 쿠콰르르르―!! 곧 피떡을 휘감고 바깥으로 사라진 공기압력들. 범위 내에 있던 민간인들도 다 죽어버렸지 만 상관없었다. 도망쳐야했다. 나는 다시 조소를 흘리면서 나이프를 창 하는 소리가 나게 일부러 소매 안쪽으로 거두고 단 검을 품속에 숨긴다음, 멍해져 있는 두 형제를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이 둘도 이제 부모를 잃었군. 내 손에 잃은거나 마찬가지지만. 하지만 준영이라는 녀석은 눈 가에 서늘한 빛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일어섰다. 이어 세찬 바람이 녀석의 소매에서 뻗어나와 내 목을 찔러왔다. 역시, 이 녀석도였는가? 그럼 준형만 바보같이 저런 재수없는 가족들을 두고 있었던거군. 범 생 스타일로 보였지만 예기銳氣를 품고 있었던 녀석. 그냥 싸이코틱 한 놈이라 생각하고 넘기려 했지만 그건 살기까지 섞여있어서 그냥 넘어가지 않을수 있었다. 어쨌든 대충 직경 3m정도의 뚫려진 벽이 보인다. 철근이 끊어져 나간 모습과 콘트리트 조 각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은 참으로 인상깊었다. 나는 그리고 쏘아져 나가며 준영이라는 놈의 손에서 튕겨나온 검날을 피해내면서 놈의 배를 그대로 밀어 쳤다. 힘껏 다리를 찍어 내려 대지에 찍으며. 진각이었다. 그리고 경經이 실린 내 오른손의 바닥은 놈의 배에 직격해버렸고, 순식간에 녀석은 바깥으로 쏘아져 나갔다. "커억…… 으아아아아!!" 철근을 잡긴 했으나 아마 죽을 것이다. 누군가 돕지 않는다면. 나는 뒷걸음을 딛고 나서 몸 을 회전시켰고,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그제서야 비명들이 뒤늦게 터져나오고 있었다. 참을수 없는 조소가 입에 걸렸다. 염력을 급박하게 모두 개방해서인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역시 염력을 제대로 훈련하 지 않아서 그런가? 쓰면 체력도 같이 빠져나가고, 처음 쓸수 있었을 때보다 조금 위력도 감퇴해 있었다. 뭐, 이제 살아남는게 우선이니 이 염력도 실컷 훈련해야겠군. 그렇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저렇게 '실전'을 나에게 선사할 녀석들이 그득한데. 2급에서 1급까지 열 셋. 그리고 특급 둘. 총 열 다섯명이 근처에서 보였다. 2급에서 1급까지 의 열 셋중 열명은 잠복중이었고, 다섯명만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나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져버렸다. 이정도면 힘들겠는데…… 게다가 염력까지 퍼부어버려서 머리도 지끈지끈 아픈 상태다. 제기랄! 살아남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제거한다." 역시나, 한결과 같은 톤으로 다섯명이 말했고, 곧 다섯명이 다섯갈래의 길로 쏘아져 들어오 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얼굴과 몸을 가린채…… 는 아니었지만 주변에, 이 거리에서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아마 칼을 빼든후 다 튀었겠지. 조금 있으면 경찰도 오겠군. 조금만 버티면 혼잡할 때 튈수 있겠는데. 촹― 티타늄Titanium 제 나이프Knife를 꺼냈다. 그리고 나서 다섯녀석들이 쏘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염력을 실어 노점상의 목각들을 차올렸다. 아무래도 뭐 깎는 것 같은데…… 도망갔구 만. 훗. 그리고 내가 다섯 개의 목각들을 차올리자 그것들은 염력의 파동에 실려서 거의 200km/h 정도의 속력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그러나 세 특급들은 피해버렸고, 일급으로 보이는 두녀석들만이 대가리에 그것을 맞아 대충 20t정도의 역압에 의해 머리가 터져나갔다. 피와 회색 뇌질이 흘러내려 바닥에 널렸으나 잔혹함을 느낄새도 없었다. 이번에는 나무를 깎기 위해 놓은듯한 단검 하나를 차올렸다. 그리고 나뭇조각 여러개를 더 차올렸다. 10여개의 나뭇조각 하나 하나에는 30t정도의 역압 이 걸려있었으며, 시속 300km/h를 능가하는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스피드 건으로 실험해봤을 때, 내가 물건 하나에 모든 염력을 집중해서 쏘아보내면 그 속력 은 400km/h까지의 속도를 낼수 있었다. 물론 나뭇조각이라 힘들겠지만. 퍼퍼퍼퍽― 이번에는 제대로 먹혔다. 단검 하나를 피해내려던 녀석의 몸에 나뭇조각들이 그대로 직격하 며 저승으로 보내버렸던 것이다. 살과 뼈가 뭉그러지며 마침내 널브러진 한 녀석과 한발을 목에 맞아 목이 부러져 죽은 특급 하나. 그리고 남은 특급 녀석 하나는 이미 내 앞 4m정도에 당도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슬아슬 하게 내 가슴 앞을 베고 지나가는 새하얀 빛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지독히도 빠른 쾌검快劍이었다. 은빛이 흘러나가는 것을 봄과 동시에 나는 왼손에 염력을 집중, 근처에 바람의 톱니바퀴를 만든다음 녀석의 목을 찔러버렸다. 까드드드드득― 맹렬히 회전하는 바람의 톱니바퀴가 녀석의 목뼈를 이러한 소리를 내며 갈아버렸고, 피가 터져나오는 것을 피해내며 나는 뒤로 물러났다. 제길. 아직 열명 남았는데…… 완전히 지쳐버렸다. 방금만 하더라도 기적에 가까운 염력 발현이었 다. 염파동念波動을 발휘할때마다 머리가 더 아파오며 체력 대부분이 빠져나가버린다. 고통스러 웠다. "헉헉……." 숨이 거칠게 토해졌다. 간신히 숨을 진정시키고 매섭게 열방향을 쏘아보자 그제서야 녀석들 이 걸어나왔다. 한결같이 지극히 무표정했으며 한결같이 손에 예리한 검들을 쥐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핥았다. 약간의 두려움과 흥분. 그리고 아까의 속도감. 그리고 피맛, 약간과 호승심好勝心 때문에 몸 은 주체할수 없는 긴장상태였다.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을 진정시키면서 품에서 단검을 꺼내어 왼손에 쥐었다. "……." 침묵이 흘렀다. 너무나도 묵직하고 차가운 침묵이…… 오는게 아니었는데. 하필이면 그곳에 포이즌이 올줄 알았겠냐. 사실 나를 쫓아오기도 한것이겠지만, 만난건 의외였을 것이다. 나도 어지간히 재수없는 놈이군. 그리고 침묵이 깨졌다. 나는 몸이 조금이나마 진정되자 다리를 굴렀고, 그와 동시에 이미 20m정도 벌어진 거리를 10m로 줄여놓고 있었다. 여기까지 1초……! 그리고 여섯 녀석이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반응을 보이지 않은 놈중 하 나를 향해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거리는 이제 0m다! 슈가각― 오른손과 왼손을 동시에 휘둘러 은빛 호선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은빛 호선이 두 2급 암살 자들의 목에 닿았고, 순식간에 피가 터져나오며 살과 뼈를 베어버리는 감각이 손에 안겨졌다. 그리고 나는 흐릿 하게 웃으면서 다시 움직였다. 여기까지 3초……. 그리고 다시 쌍수를 휘둘러 2급의 두놈의 목을 썰어버렸다. 여기까지 4초다. 이어서 이미 지척에 도달한 세자루 비도飛刀를 동시에 세자루 모두 튕겨내며 뒤쪽으로 날아 온 비도 한자루 역시 때려 튕겨내며 뛰어올라 아랫쪽을 휭 하니 가르는 단검의 주인의 머릿 통을 내려찍기로 밟아버렸다. 물론 10t정도의 가벼운 염파동을 더해서. 그리고 머리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깨져나가며 피와 뇌수가 콸콸 쏟아졌다. 그리고 착지한 나는 다섯의 상대들을 오만하게 훑어보았다. 부동심이던 녀석들이 굳어있었다. 이미 특급을 능가하는 힘을 보인 내가 두렵겠지……. 짝짝짝― "……?!" 난데없는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채 몸을 튕겨서 약간 떨어 진 장소로 멀어졌다. 그리고 박수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가져갔다. "……!!" 이, 이럴수가……. 어떻게…… 어떻게…… 금발, 그리고 청색의 눈동자. 조직에서 아시아 1지부를 책임진. 12명, 원탁의 마스터중 하나 인 녀석이 나를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30대 초반의 모습. 그리고 키는 180cm정도 되어보였으며 몸은 아주 탄탄했고, 정장을 입고 있었다. 새카만 정 장에서 음울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착각이 일어났다. 이 자는 본적이 있다……. 그 실력은 미지수지만 내가 염파동을 쓰지 않는한 확실히 죽일수 없으리란 것. 알고 있다. "역시 코드-네임Code-name. 블러디 블러드Bloody Blood 답군." 그 이름을 듣고……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닥쳐!!!" 눈을 치켜뜨고 쏘아보자 녀석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할수 있는 실력이 되는지 궁금하군. 후후후. 뭐, 네가 실력을 숨겼던 것 은 유감이고, 따라서 피해가 커졌지만 내가 나선이상 피해도 이것으로 끝이지." 녀석은 그냥 단순히 잘생긴 미남자로 보일 뿐이다. 그러나 나의 눈에는 녀석의 내면에서 꿈 틀대는 승부욕勝負慾과 예기. 그리고 살기를 보았다. 눈빛은 얼음보다도 더 차가웠다. 몸에서 식은땀이 바작바작 났다. 몸이 외치고 있었다. 도망치라고……! 하지만 동시에 세포 하나 하나가 폭발적으로 즐거워 하고 있었다. 젠장. 역시 나는 정신병자였나. 블러디 블러드…… 피로 더럽혀진 피…… 말이 안될지도 몰랐으나 1급 암살자의 마스터격이 라고 불렸던 나로써는 이 이름이 붙은 것이 당연했다. 그만큼 많은 인독의 수련과 피의 격투 속에서도 제정신인, 아니…… 이미 미쳤을지도 모르 는 나에겐 너무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인정할수 없었다. 이미 버려진 나다! 그런데 그 이름으로 부르려 하는가! 이글거리고 있을 내 눈에 꽤 흥미가 난 모양이다. 그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떠올린채 말 했다. "그 투기어린 눈! 맘에 드는군. 그렇지만 나에게 그런 눈을 한 대가는 크다. 죽인 후에 빼서 가져주지." 흥…… 마음대로 해라. 죽은 뒤에는 어차피 고기덩어리니까. 005. 몸은 너무나도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더군다나 머리가 아프다. 시야까지 일렁 인다. 간신히 다잡았으나 다시 흐려진다. 몸을 진정시키려는 찰나…… 녀석은 검을 꺼내든 것 같았다. 그리고 은색의 빛이 흐릿하게 뿜어졌다. ……시야가 흐려졌다. 눈살을 찌푸린채 녀석의 동 작, 숨소리 하나 하나에 집중을 했다. 그리고 녀석의 숨이 요동치는 순간 나는 움직이기로 했다. 그러나 몸이 반응하지를 않았다. 나는 굳어졌다. 뇌의 명령을 몸이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십가지 상념이 스쳐갔다. 움직여야해…… 그렇지만 몸이 따를수 없다…… 하지만 죽을수 없어…… 상대는 움직여…… 너는 멈추어 있어…… 죽을지도 몰라…… 하지만 멈추고 최소의 움직임으로 피한다음 공격하면 돼…… 아니야…… 적은 빨라…… 너만큼 빨라…… 너 이상일지도 몰라…… 서둘러…… 서둘러서…… 이런 생각을 빨리 차단했다. 어지럽고 고통스러웠다. 언제 움직인지도 모를 만큼의 속도로 검은 나를 덮쳐왔다. 검 끝에 일렁이는 검세劍勢는 너무나도 차갑고 섬뜩했다. 그리고 나는 정신없이 그것을 피했다. 얼떨결이었다…… 피하고, 피하고, 피하고…… 다시 상념이 머리를 휘저었다. 피해…… 막아선 안돼…… 막아야 해…… 피해서는 공격할수 없어…… 아니야…… 피해야 해…… 상대의 움직임이 변할때까지 기다려…… 그 전에 먼저 지쳐 죽을거야…… 상념을 억눌렀다. 얼마나 더 피했을까. 오기가 솟았다. 그리고 나는 왼손에 쥔 단검으로 롱 소드의 검면을 그대로 내리 찍었다. 카카카캉― 순간 참을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녀석이 휘두른 롱 소드Long Sword…… 대체 어디서 나 왔는지 모를 정도로 큰 그것은 내 단검을 쉽사리 동강내 버렸다. 검면을 내리쳤으나 곧 아래로 내렸다가 오히려 아래에서 검을 올려쳐 단검을 쳐 버린 것이 다. 절망스러웠지만 아직 티타늄 나이프는 무사했고, 품속에 단검 하나가 더 있었다. 하지만, 그 만큼 위험했다. 무기가 부숴지면 나는 죽을수 밖에 없다. 염파동에도 이젠 락이 걸린거나 마찬가지니까. 머리가 그만큼 아프고, 시야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죽을수 없다. 입술을 꽉 깨물며 단검을 품속에서 꺼내 던졌다. 핑 하는 소리를 내며 날아간 그것을 아슬 아슬하게 피해낸 녀석은 살짝 웃었다. 그러나 꽤 긴장감 어린 미소라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후후…… 우습겠지. 아시아 1지부의 책임자 정도 수준의 능력이라면 특급 암살자 다섯이 덤 벼도 제거할수 없다. 그런데 내가 맞먹게 싸우고 있으니 우습겠지. 자신이 지금 전력을 다하고 있지 않더라 하더라도. 나는 내 혼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녀석은 실력의 7할 정도만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 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것도 힘겨웠다. 탄탄한 체격의 근육이 비틀렸다가 풀리며 터져나오는, 롱 소드의 끝에서 터져나오는 날카로 운 파괴력은 내가 막아내기는 힘겨운 것이었다. 그냥 지금 그를 능가하는 속도로 간신히 피할 뿐이었다. 그나마 몸에도 약간 상처가 나 있 었다. 그에 비해 녀석의 몸은 깨끗했다. 지금 나는 염동력을 쓰지 않은채 싸우고 있었다. 녀석은 내가 염동력을 쓰지 않자 놀란 듯 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은 너무나도 아파왔다. "큭!!" 녀석이 휘두른 은색의 선이 쉽사리 나의 퇴로를 가로막았다. 간신히 피해나가며 빈틈을 노 렸으나 녀석의 몸은 철벽과도 같이 움직였다. 제기랄. 어쩔수 없이 은색의 선이 휘둘러지는 것을 티타늄 나이프로 엇갈려 막아냈다. 콰쾅캉――!! 불이 번쩍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도 불이 번쩍했다. 젠장! 이게 무기 부딪히는 소리냐! 나는 후들거리는 오른손에 들린 나이프를 왼손으로 바꾸 었다. 그리고 그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그는 만족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자! 사이코키네시스를 써라!" 쳇, 능숙한 한국어라는 점이 화가날 뿐이다. 나는 비릿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쓰면 화낼 것 같군." "물론, 너무 실망스럽군.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만족스럽다." 하긴…… 오랜만에 적수를 만났겠지. 하지만 별로 쓰고싶은 생각은 없는데……. "죽어버려랏!" 원하는대로 써주마. 염력이라는 것을!! 내가 눈을 치켜뜨면서 기합을 넣으며 나이프를 휘두르자 나이프에 맺혔던 거대한 공기압력 이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충격파가 녀석의 앞쪽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리고 녀석은 만족한듯 1m를 조금 넘는 길이의 은빛을 나에게 겨눈채…… 웃었다. 그리고 나는…… 허무함이 무엇인지 알수 있었다. 은색의 너무나도 아름답고 화려한 빛은…… 호선을 그리며…… 그에 비해 추한…… 회색의 바람을 찢어 가르듯 베어버리며…… 쏘아져 들어왔다. 녀석의 몸은 검과는 달리 육질이므로 이리저리 상처가 났으나 만족한 미소만이 녀석의 입가 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살기殺氣.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한채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몸은 거칠게 반응했다. 약간의 기수련을 통해 제어하듯 써와서 지금까지 5년 정도의 생명을 낭비했던 마지막 선천 기先天氣…… 그것이 요동치며 살아나고 싶다고 발광했다. 그리고 내 몸은 움직였다. 나이프를 정면으로 겨누자 곧 내 몸에서 뜨거운 액체와도 같은 기운이 나이프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나이프의 은색의 매끄러운 날에 백색의 기운이 퍼져나왔다. 백색의 기류氣流는 너무나도 화려했다. 그리고 바람을 가르며 쏘아져 들어오는 은빛의 선과 백색의 기류는 격돌했다. 쿠르르르릉― 은빛의 선은 이제 꿈틀거리고 있었다. 백색으로 빛나고 있는. 백열하는 강물을 헤치려는 물 고기 처럼…… 퍼덕퍼덕 거린다. 화려하게 뿜어져 나온 백색의 빛은 내 눈을 적셔들었다. 그리고 몸에 감각이 없어졌다. 나는 멍하게 나이프를 찔렀다. 그리고 무언가 둔탁한 것에 부딪히는 느낌과 함께 그것도 끊어져 나가고, 금방 나의 백색으 로 물든 나이프는, 너무나도 얇은 막을 통과해. 쿵쿵 거리는 생명력 사이로 파고들어, 그것을 쉽사리 찔렀다. 쿠르르르르― 그리고 내 몸속에 담겨있던 뜨거운 기류들이 마침내 나이프로 썰물이 빠져나가듯 빨려 나갔 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모두 폭발했다. 은색의 나이프…… 회오리가 몸 근처에서 일어나며, 모든 사물을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나이프에서 번져나온 회색의 물감들은 도화지 위의 모든 것들을 적시고, 찢고, 섞여들었다. 아아…… 몸이 너무나도 무거우면서 허무하고 속이 텅 빈듯한 이 감각. 주마등走馬燈과 같이 수백여장의 그림들이 흘러내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하였 다. 이미 침침해질대로 침침해진 눈과 잃어버린 몸의 감각……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하하하…… 내 나이 열 일곱. 죽는건가? 죽음에 대해 딱히 두려운 감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 만…… 막연한 공포는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없앤다. 나의 친우인 죽음이여…… 휴식을 선사 해달라…… 죽음이란건…… 이렇게 힘겨우면서도 즐거운 것이었나…… 그런데…… 언젠가 한 번 있었던 것 같은 일이다……. 006. 깨어나다. 그는 이렇게 있었다. 오랫동안…… 거의 한달동안 깨어나지 못한채 저 약수藥水속에 담가져 있었다. 놀랍게도 그 약수는 그 이름만큼이나 대단한 약효를 가진 흑옥단속고黑玉丹快膏인 듯 싶었 다. 새카만 액체의 탕 속에 담가진채 저렇게 한달동안 통속에 존재했다. 미약한 빛만이 존재하는 방…… 그리고 그는 눈을 떴다. 흐릿하게 떠진 눈은 금새 감겼다. 그리고 다시 잠에 빠져든 듯 싶었다. 저 약수는 보통의 것 이 아니었다. 이 대륙에서 제 일의 명의라는 신수사의神手邪醫라는, 사파쪽의 성향을 띈, 괴팍하기 짝이 없는 의자醫者가 제조한 것이었다. 그의 침술과 약재, 그리고 독술은 가히 신기神技에 가까운 기술들 뿐이었다. 그리고 이 흑옥 단속고도 보통은 아니었다. 천년산삼千年山蔘과 만년삼황萬年蔘皇, 그리고 만년빙정萬年氷晶까지 들어가 있었고, 더군다나 약재와 영약이라는 영약들이 모두 중화제까지 섞여서 들어차 있었다. 만약 저 흑옥단속고 한모금만 마신다 하더라도 거의 1갑자에 달하는 공력을 지닐수 있는 양 이었다. 통은 좁았다. 그래서 양은 얼마 되지 않겠지만 사내의 몸을 목까지 감싸는건 쉬운일이었다. 그리고 모공을 통해 영약靈藥의 영험함과 약재의 약효가 그의 몸속에 빨려들면서, 한올밖에 남지 않은 선천진기先天眞氣를 일전보다 더욱 왕성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한달의 시간이 더 흘렀다. 선천진기마저 모두 채운 영기는 그것도 모자라 모조리 그의 몸속에 빨려들어가 있었다. 이미 흑옥단속고는 투명한 물이 되어있었다. 사내의 몸속에 빨려들어간 영약의 기운은 몸속 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리고 사내는 눈을 떴다. '……이게, 어떻게 된것이지?' 자신이 투명하고 미지근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 다. 하지만 몸은 굳은채 풀리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 조차 할수 없었다.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얼굴 근육만이 유일하게 움직일수 있는 부위였지만 얼굴 근 육도 당겨왔다. 그렇게 오랜 시간 몸을 움직이려고 꿈틀대고 나서야 간신히 손가락 하나가 까딱 하기 시작 했고,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심호흡을 몇번 해서 숨을 가다듬은 그는 다시 최대한 힘을 주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몸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는 잠시 멍해진채 생각에 잠겼다. '나는…… 틀림없이 죽음을 맞았었는데……' 그랬었다…… 그때 선천진기가 모조리 폭발하면서 생겨난 백색白色의 기류氣流는…… 티타 늄Titanium 나이프Knife에서 일어났고, 그것은 곧 상대의 몸을 갈기갈기 찢고, 자신의 힘마저 모두 앗아갔다. 그리고 새카만 어둠과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며 눈을 감았었 는데…… '어째서 이런 물속에 있는거지?' 그러고보니 이 물의 향기는 꽤나 썼다. 쓰고 케케묵은 약재같은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다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선천진기가 폭주해서 모두 소모되었으니 내 육신도 함께 사그라들어 죽었을텐데. 어째서 이렇게 살아있을수 있고, 전보다 훨씬 충만한 선천기가 생겨있을까?' 의문을 가졌으나 알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약물이 모두 영기를 그의 몸에 전달하고 이런 향기만 일어나는 물이 되었음을 모르고 있었다. 몸을 꿈틀댔다. 그리고 간신히 몸을 풀어냈고, 곧 통에서 기어나올수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두달 이상 이렇게 통속에 있었으나 배고픔도 없었고, 기력이 충만해서 마치 충분히 자고 일어난듯한 몸 상태여서 그는 의아해했다. 하지만 곧 좋은게 좋은거다. 라고 생각하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우둑― 우두둑― 알몸의 소년이 몸을 푸는 꼴은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었으나 몸이 탄력있게 움직일 때마다 뼈에서 우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곧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심호흡을 하면서 몸을 툭툭 쳤다. 뽀얀 피부. 이전은 조금 더 황인종黃人種으로서의 피부색이 났으나 지금은 완전히 뽀얗고 새하얀 피부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그 통에 기대어 앉아버렸다. 길어진 머리카락은 날개뼈 쯤에 다다라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증명하는 머리카락이었다. 그 는 머리카락 만큼은 기름기가 넘치고 있자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때 바깥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흠…… 역시 예상보다 좀더 일찍 일어나는군. 역시 탁월한 무골武骨이야! 껄껄걸……" 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한국어는 아니군……. 중국어잖아? 하지만 뭔가 다른데…… 아! 이런! 중국어의 옛 발음이 섞여있잖아……?!' 10개 국어를 마스터한 그였다. 중국어도 한자어, 간자도 역시 마스터 했으나 이 언어는 옛 발음이 섞여있었다. 뜻은 대충 '예상보다 일찍 일어났다. 탁월한 무골이다.' 그리고 나서 웃음소리. 어쩐지 간사함이 섞인듯한 목소리였지만 틀림없는 중년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드드드등― 그러고 보니, 이곳은 석실이었다. 모두 대리석재로 된 듯 했고, 창만이 하나 덩그러니 달려 있었다. 그리고 돌이 돌을 긁는 소리와 함께 더 환한 빛이 뿜어져 들어오며 새카만 인영이 그림자를 방 안에 드리웠다. 새카만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그의 발 밑에 닿았다. 머리를 감는 느낌은 시원했다. 샤워기가 없어서 그렇지. 느낌은 좋았다. 어쨌든 그 창포菖蒲 와 뭔가를 이용해 만든듯한 비누(?) 비슷한 걸로 머리를 감자 시원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물로 열심히 기름기들을 녹여내고 있는 거품들을 기름들과 함께 씻어내리고 머리카 락을 옆으로 모아 내린다음 수건인듯한 천으로 물기를 최대한 제거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약간 멀게 들렸다. 그리고 몸도 씻었다. 역시 차가운 물의 감각은 몸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옆에는 절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의 감각으로 20여 미터 씩이나 되는 높이의 폭포가 떨어 져 내려 물을 때렸고, 은은하고 포근한, 하지만 차가운 물가루들이 주변을 떠돌며 무지개를 곳곳에 걸고 있었다. 높은 절벽, 그리고 호수 아래의 웅덩이, 웅덩이에서 갈라져 나온 강이라고 하기에는 작고 개 울이라 하기에는 약간 큰 그런 물줄기가 이곳, 분지盆地를 휘감으며 뻗어나가고 있었다. 수정빛을 품은 시린 물은 너무나도 차갑고 깨끗했 다. 이 웅덩이에는 은빛을 반짝이는 물고기들도 있어, 그로 하여금 입맛이 돌게 만들었다. '회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딱 좋을텐데.' ……역시나 한국인인 그였다. 어쨌든간에, 그는 몸의 물기 역시 닦아내고, 옆에 놓인 품이 넓고 헐렁이는, 마치 신선의 옷과 같은 느낌의 부드러운 재질. 아마 비단인듯한 옷을 입었다. 몸에 걸치자 약간 컸지만 그래도 입을만 했다. 이곳의 이름은 백화곡百花谷이었다. 대충 그의 거리감각으로 반경 4, 5km정도의 구역이었으 며, 출입구는 비밀스러운 동굴을 통과해야 했다. 그리고 겨울에도 근처에 있는 화산火山의 기운으로 인해 꽃이 만발한 곳이었다. 색색의 꽃들과 날아 다니는 벌들. 그리고 따스한 햇살…… 천국이 아닌가 싶었다. 더군다나 꽃들 사이로 간간히 덜 여물은 영약靈藥들도 은근히 보였고, 독초毒草들도 그만큼 사방에 널려있었으며, 그에 대한 해약도 모두 이곳 계곡 안에 있었다. 천국天國일까……. 그는 잠시 풍경을 멍하니 감상하다가…… 물가루가 약간 와닿자 제정신을 차렸다. 폭포소리 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충분한 소음이 되었다. "하하……" 우스웠다. 자신은 죽을줄 알았는데, 이런곳에 와있다니……. 혹시, 자신은 정말 죽어서 천국 에 와있는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천국에 갈리 없잖은가? 인독人毒이나 다름없고, 그 무수한 사람들의 피로 몸을 적셨다. 문득 오른쪽 소맷자락이 무겁게 느껴졌다. 코 끝을 스치는 혈향血香은 과거의 음울함을 떠 올리게 만들었다. 오른손을 튕기듯 부드럽게 움직여 손목을 누르며 튕기자 촹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티타늄제 나이프가 오른손에 쥐어져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손놀림, 부드럽게 손을 뿌린 것처럼 보였으나 어느새 너무나도 날카로운 병기兵器가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손목을 튕기자 병기는 다시 숨겨졌다. 그는 웃었다. 허무함이 깃든 미소는 처연함을 그려냈다. "……." 꽤 오랜시간 책을 뒤졌다……. 이 백화곡에 있는 저 신수사의는 어지간한 독서광讀書狂이었 다. 케케묵은 고서古書에서 새 책도 꽤 보였다. 독해讀解는 힘들었지만 신수사의에게 며칠 배우고 나자 금방 이 시대의 어법과 독해. 그리 고 발음 같은것들도 모두 알게 되었고, 금방 신수사의가 보유한 서적 2천여 권을 모두 읽고, 이젠 줄줄이 욀수 있게까지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신수사의는 질린 표정이었다. 자신이 천재天才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기재奇 才정도로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구해준 이 친구는 정말 엄청났다. 한달 내에 저 많은 서적을 다 외워버리는 천재성에 기가 막혔던 것이다. 어쨌든, 이 신수사의는 기분이 나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매우 좋았다. 혹시나…… 이 젊은 친구가 자신의 의술을 배워보려고 하지 않을까? 그 예감은 적중했다. 이 새로 들어온 식구(?)는 의술에 관한 책, 혈도들을 모두 외워버리고 나서 자신에게 찾아와 의술을 가르쳐달라고, 건방져서 마음에 들지 않긴 했지만, 의술을 가르쳐 달라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신수사의는 의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침술, 자신의 경험. 그리고 병 들과 자신의 의서醫書와 약재 다루는법과 약초 구별법들……. 세월은 금새 흘러갔다. 하지만 신수사의는 그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었다. 서고인듯한 한 개의 건물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고, 또 이 석조의 건물 내부의 어떤 안쪽은 기관으로 폐쇄시켜 놓았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 만…… 햇살이 뿜어져 나와 대지를 적시고 있던 어느날, 진법陳法에 대해서 여러 가지 책들을 읽고 여러 가지로 실험해서 거의 모두 익힌 그는 해시계를 보고 수업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 고 신수사의의 약재실로 갔다. 2, 3분 정도 걸으면서 쾌적하게 지어진 석조 건물과 화단의 꽃과 약초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나서 마침내 약재실의 정문을 열고 들어 섰다. 이 신수사의는 무술도 꽤나 익힌 듯 했는데, 대충 30년 정도의 공력功力을 지닌 듯 했지만 공부는 그다지 깊지 않았다. 약재의 퀴퀴한 냄새가 확 퍼져왔지만 금방 코가 마비되어버렸다. 그리고 곧 뭔가를 정리하 는듯한, 별볼일 없게 생긴, 조금 간사한 모습의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그를 바라보며 손짓을 했다. 금빛의 화살을 뿜어내던 햇살이 백열하다가 마침내 주황빛으로 물들고, 마침내 산 너머로 사라진다. 어둑어둑함이 주변에 적적하게 깔려있는 밤이었다. 오늘도 역시 수업이 끝나고 거처로 돌아오고 나서 생각에 잠겨들었다. '신수사의, 많이 가르치지 않는군. 이랬다간 두달정도 더 있어야 저 인간이 가르칠게 바닥이 나겠는데……' 이곳에 온지도 다섯달이 넘게 지나고 있었다. 그간 틈틈히 알아본 바로는 동방대륙東方大陸 인 이곳은 완전히 통일된 국가체계 이며, 서방대륙西方大陸과는 많은 문화차이가 있었다. 대충 이곳의 문화는 자신의 세계. '중국'의 당이나 송나라 때 인 듯 싶었지만, 이들이 말하는 색목인. 그러니까 서방대륙인들도 꽤 보이는 곳이었다. 많은 교류가 있지 않으나 그래도 점점 교류 의 폭은 넓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의 국가명은 '류流'였다. 흐를 류…… 어쩐지 이상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역시나, 이곳은 놀랍게도 무협武俠의 세상이었다. 완전히 무협지와 판박이였다. 물론 국가 배경이라던지, 하는 많은 것들이 달랐지만. 이것을 알게되고 좀 멍해졌었다. 하지만 이곳이 무협이건 현실이건간에 놀라운 일은 또 존재하였다. 서방대륙에는…… 마법 魔法까지 있다고 하지 않던가! 거기다가 드래곤Dragon은 기본이고 몬스터Monster들까지! '판타지다…….'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웃음이 흘러나왔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것이다. 이름을 그대 로 쓸수는 없게 되었다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하지만 아직 이름 짓는것보다는 할 일이 많지 않은가. 그는 웃었다. 그리고 촛불을 바라보다 가 책 몇 개를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다. 얼마간이나 책을 읽었을까, 몇권을 다 읽고 다음 책으로 손을 뻗치려는데 조금씩 졸리기 시 작했다. 주황빛으로 물든 책의 표지와 종이를 넘기려다가 덮은 그는 잠시 침대 위로 올라가 가부좌 跏趺坐를 틀고, 오심五心을 하늘로 향하고 숨을 내어 쉬기 시작했다. 억지로 숨의 양을 조절하여 고르게 쉬는 기식. 이것은 억지로 숨을 맞추는 것. 폐를 상해 금 방 죽게 된다. 이것 때문에 단전호흡을 가르치는 녀석들을 초빙해서 배워댔던 돈 많은 한국의 사장님들은 폐에 엄청난 무리가 가서 죽어버리지 않았던가? 기식에 비해 조식은 자연스러움과 자연의 숨결을 중시하여, 오히려 진전이 빠른 것이었다. 곧 금방 머릿속에서 생각이 말끔히 지워졌다. 명상효과도 있어서 밤마다 이 호흡법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때, 그 자신도 모르게 그의 몸속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몸 바깥에서도 역 시…… 007. 천형天刑의 사슬을 진 아이. 숨…… 들숨…… 날숨…… 길고…… 짧고…… 들쑥날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돈속에 조화가 일고 있었다. 몸속에 가득 쌓여있던 영 기靈氣가 대자연의 호흡과 일치되며 점점 일주천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몸은 기의 덩어리가 되었다. 몸속의 산근과 혈 곳곳에 쌓여있던 영기가 호흡이 빠져나가고 들어감에 따라 점점 세맥世 脈. 경락들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뭉쳐진 그것들은 빠르게 단전으로 스며들었다. 진전은 느린 단전호흡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효과는 여실히 드러났다. 영기가 느릿하게 흡수되어 들어가 단전에 뭉쳤다. 얼마 되지 않는 초 소량의 기력이었고, 이 때 그는 따스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 초소량의 공력은 단전에 미약하게 쌓였다. 이런식으로 쌓여나간 공력들만 현재 5년 공력이었다. 고작 몇 달 수련한 것 뿐이었지만 영 기는 확실하게 공력화 되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대량大量의 영기였기 때문에, 이런 진척이 느린 단전 호흡으로도, 기경팔맥조차 제대로 단련하지 않는 이 수련으로도 단전에 미약하나마 공력은 쌓이고 있었다. 조금씩 끌어들이면서, 제어할수 있는 만큼만 끌어 들이면서도…… 수련은 확실히 되어간다. 하지만, 이것 외에도 더 확실한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대자연의 흐름이 그의 몸 주위에서 요동치며 회전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후에 그의 목숨을 구해 주게 된다. 침묵이 흘러갔다. 그리고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흘러간다. 마침내 켜 놓았던 초가 완전히 녹아 버렸을 즈음, 그가 눈을 떴다. 시간은 그의 시간개념으로는 오전 4시쯤이나 되어 있었다. 정신은 기이하리만큼 맑았다. 공력이 혈맥과 세맥을 돌며 일주천하지는 않았으나 정신을 씻어내린 듯 매우 또렷했으며, 몸 역시 깊게 자고 일어난 듯 날아갈 것 같은 상태였다. 어느 날이었을까, 그는 석실에서 신수사의와 그날의 공부를 끝내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다가 문득 신수사의의 서고書庫에서 볼 책이 있었음을 기억해 내고는 서고로 걸음을 옮 겼다. 몇분 정도 돌로 된 바닥을 짓밟으며 걷자, 꽤 커다란 돌문이 모습을 드러냈고, 곧 옆의 어떤 기관장치를 내리고 올리고 당기고 누르고 한다음, 석문의 홈에 손을 집어넣고 힘을 주어 옆으로 힘을 가했다. 그그그그그긍―― 육중한, 돌 긁는 소리가 일어나며 묵직한 손맛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쪽의 텁텁한 책냄새가 그대로 자신의 후각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는 책 냄새를 깊게 들이마신 뒤에 천천히, 소리없는 걸음으로 서고의 내부로 들어섰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기척은 없었는데…… 난데없이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틀림없이 신수사의라면 지금 자신의 방에 있을텐데…… 잠시 몸을 멈추어 있던 그는 혹시나 침입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관없다는 듯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물론, 암살자일때의 버릇대로 몸을 약간 긴장시켜서 힘을 발휘할수 있도록 했으며, 나이프Knife역시 꺼내자 마자 휘둘러 상대의 목을 1초 내로 따버릴수 있도록 걸쇠를 조금 느슨하게 했다. "……누구?" 안쪽에서 얇고 작은 목소리가 퍼져나와 그의 귓가로 흘러들었다. 이 목소리를 듣고 약간 더 몸을 긴장시켰다. 아주 가느다란 목소리였지만, 많은 경험상으로 이 목소리의 주인의 성별이 남자임은 알수 있었다. 게다가 톤Tone의 차이 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안쪽의 새카만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낡은 책을 뒤적이고 있었 던지, 곧 책을 덮으며 표정을 정리하며 그를 바라본다. 예상대로, 작고 가느다란 목소리의 주인공은 작은 아이였다. 많이 보아줘도 열살. 그 아이는 몸에 맞지만 품이 넓고 소매가 헐렁한, 예의 그 도포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신수사의가 입는 옷도 이것이고, 자신이 걸치고 있는 옷도 이것이었다. 작은 키. 열살 정도의 키보다 조금 작은 듯한 신장이었지만 그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조 직에는 이만큼 어린 꼬마들중에서도 1급 암살자가 존재했으니까. 아이는 창백했다. 그리고 굉장히 가느다랬다. 이 나이대의 아이들은 젖살조차 채 빠지지 않 은 모습이어야 했으나 매우 가느다랗게 보였으며, 얼굴은 희었고, 피부 역시 맑고 깨끗했다. 빨려들어갈듯한 흑색 눈동자를 지닌 꼬마 아이의 기운氣運은 어 쩐지 대단히 흔들리고 불안정 했으며, 더군다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약간의 슬픔과 차가움이 더해져 있었다. "……!" 읽을수 있었다. 저 아이와 자신은 동류同類였다. 본능적으로 저 아이의 영민함을 알수 있었 으며, 본능적으로 소질을 읽어냈다. 신수사의에게 배운대로라면 천형육음절맥天刑六陰絶脈…… 이었다. 불치병이며, 태어날때부 터 몸의 육혈이 절맥되어 있다. 급속도로 양기가 소실되어 나가며, 생명력 역시 그러하다. 그리고 혈우병血友病의 기질도 조 금 보이며, 치유하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그의 지식으로 증상을 비교해 보았을 때. 백혈병白血病도 찾아온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병에 걸려 태어난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탁월한 무골武骨이며 엄청난 오성을 타고 나며, 그 천재성 역시 가공스럽다. 그러나…… 영약靈藥과 양기의 보충. 그리고 혈액을 섭취하게 만드는 방법과…… 채음보양 採陰補陽이라는…… 그러니까…… 음 속성의 영약은 너무 강렬하므로…… 여성과의 ……로 음기를 얻어 양기를 보충하는 방법이 있다. ……어쨌든 그런 병이다. "……." 소년도 잠시 침묵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어린 아이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규정지어두어야 할 것 같다. 역시나 그 천형절맥의 유형대로,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아이는. 타고난 미공자였다. 어쨌든, 지금 그가 알고 있는 이 천형의 사슬을 깨어버리는 방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 니었다. 다만 편법으로 생을 연장시키는 방법이, 영약의 사용. 대단한 양강의 무를 익힌 이가 계속 양기를 보출해 주는 방법. 그리고 혈액을 섭취시키는 것. 채음보양. 이렇게 네가지 였고, 하나 더 알고 있는 방법은 그…… 세수벌모, 환골탈태 시켜버리는 방법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는…… 특수한 단약丹藥이 필요했는데……. 그 단약이 있더라도 워낙 극독물極毒物의 성분을 조화시켜 신효를 얻어내는 것이고, 또한 그 약을 먹이고 약효를 퍼뜨리는 이가 반각 이내로 몸 전체에 약효를 퍼뜨릴 있을 정 도로 강한 내공. 적어도 250년 이상의 내공을 지닌 이여야 했다. 더군다나 그 재료들이 엄청난 것들임에야……. 사실, 이 백화곡에는 그 재료들이 충분히 존 재했다. 그렇지만 그 250년 공력이란게 거의 화경化境이나, 적어도 현경玄境에 이르른 이들만이 간 신히 가질수 있는 양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신수사의가 왜 자신에게 이렇게 의술을 가르치고 영약을 투입했는지, 조금은 어렴풋 하게 짐작이 갔다. "……이름이 뭐지?" 그는 소년에게 질문했다. 소년은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운雲." "멍청이 노인네가 의술을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지?" 소년은 건방지기 짝이 없는 말투였다. 하지만 그는 웃을 뿐이었다. 자신도 이랬었다. 물론, 정 반대로 철저한 존대어를 쓰긴 했을 뿐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하지만 속에는 절대적인 우월감優越感과 경멸이란 것을 깔고 있었으며, 더군다나 이 녀석은 불치의 병에 걸려있어 자포자기로 더욱 그런 경향이 심한 것 같았다. "글쎄. 제자는 아니지. 물론 배우고 싶어서 배우는 것이지만." "흥. 우습군. 그 노인네는 수백의 멍청이들이 대가리를 땅에 처박고 절을 수십, 수백번 해도 제자를 결코 받지 않던 거친 인간이고, 마음에 드는 인간이나 사파들만 치료하던 노인네인데. 그새 성격이 바뀐 모양이지?" 코웃음을 치며 빈정거리듯 줄줄 내뱉는 꼬마를 바라보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온화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래도, 이녀석은 자신에 비해 행복한 편이었다. 물론…… 불치병에 걸린 것이 행복하다 할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인독은 아니지 않은 가? 운의 새카만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자 그녀석은 기분나쁜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가만 히 있었다. 역시 이 녀석도 본능적으로 동류임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내심 속으로는 화가 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과는 달리 오래 더 살수 있으며, 줄줄 외다 시피 한, 정파와 사파의 온갖 상승 무예들 대부분을 익히지 못하는 자신과는 달리 저 무골을 활용할수 있는 '정상적'인 몸을 지닌 자였다. 게다가 겉모습과는 달리 어이없을 정도로 단련된 육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몸의 발달된 근육 부위를 보자 금방 알수 있었다. 살수였으리라……. 운의 머리를 쓰다듬던 그는 웃으면서 운이 쥐고 있던 책을 뺏어들었다. 마침 자신이 읽으려 던 책이었던 것이다. 운의 앞에서 이제 완전히 긴장을 풀어버린채 책을 읽고있던 그는 운의 퉁명스러운 말에 웃 어버릴뻔 했다. "흥. 살수라는 사람이 그렇게 긴장을 풀어도 되는거야?" 어쩐지 심통어린 말에 그는 약간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빈정거리듯 말했다. "아아……. 지금으로써는, 후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너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1초내로 목을 베어버릴수 있으니까." "쳇. 그런데…… 별 무술을 익힌 것 같지는 않은데?" "노인네가 무공비급을 주지 않으니 어쩔수 없지. 더군다나 배울 생각도 없고. 후후……." "왜 배우지 않지?" 운이 호기심을 드러내며 질문하자 그는 다시 웃은다음 운의 머리를 누르듯 쓰다듬으면서 말 했다. "지금 실력으로도…… 신화경神化境의 고수라 하더라도 무방비라면 제거해버릴수 있다." 그의 흑색 눈동자가 차갑게 반짝였다. 자신감이 어려있는 말에 운은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돼. 무슨수로?" 그는 바로 염동력念動力을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호신강기護身剛氣조차 발동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면 뇌를 폭발시켜 버리면 그만이었다. 심장 활동을 정지시켜 버리거나…… 하지만 그는 설명하지 않으며 빙글빙글 웃을 뿐이었다. 008. 무공비급 탈취작전(?). 운의 목을 뒤덮은 머리카락을 보고 있던 그는 보기만 확실히 하면 복사하듯 외워져 버리는 책을 완전히 읽고는 운을 끌어 당겨 안았다. 그리고 나서 서고를 나서려 했다. 그때 석문이 돌 긁는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허둥대는 신수사의가 뛰쳐들어왔다. 무언가 굉장히 놀란 듯, 거칠게 숨을 쉬고 있었으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했다. 그러다가 굉장히 다급한 어조로 그를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안심한듯한 표정을 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운을 보면서. "휴우……. 여기 있었구나!! 이 말썽쟁이야!! 그새 빠져나가서 또 책을 읽고 있다니!!" 땍땍거리는 듯 하는 신수사의를 바라보던 그는 운을 내려다 보았다. 운은 그 소리를 듣고 한껏 그 단아한 미간을 찡그리더니 곧 쨍쨍거리며(…) 응수했다. "닥쳐!! 이 노인네야!! 만날 쓸데없이 써 빠진 약이나 먹여 대는 주제에!! 더군다나 몸도 조 금 괜찮아서 책이나 보러 나왔더니!! 그 생 난리를 피우면서 돌아다니다가! 또 잔소리야!! 이 영감쟁이야!!" ……잠시 그는 패닉상태에 빠졌다가 다시 신수사의를 바라봤다. 그 간사해 보이는 50대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져 가고 있었으며, 시뻘겋게 붉어지고 핏대가 서는 것이, 울화를 참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시 빽빽거리기 시작한다. "이…… 이!! 건방진 녀석! 네놈은 애비도 없냐! 엉?! 내가 네녀석에게 들인 영약이 자그마 치 얼만큼인줄 알아!! 적어도 작은 문파 네 다섯 개는 사고도 남을 만큼이다!! 이 배은망덕한 후레 자식아!! 그런데, 뭐?! 생 난리에 잔소리?! 이 죽일놈아!" ……신수사의나, 운이나. 꽤나 익숙한 듯. 말은 험악하기 그지 없었으나, 어쩐지 정감어린듯 한 말을 그렇게 수십줄씩(?!) 3각째 주고받고 있었다. 그는 느긋한 자세로 말싸움을 관람, 아니, 청취하면서 그 운의 쨍쨍거림과 신수사의의 땍땍 거림과 그 어휘, 그리고 교묘한 욕과 화려한 어투를 들으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이 덜된 놈!!" "썩을 노인네!!" ……둘다 그놈이 그놈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그였다. 시작된 말싸움은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이제 듣는것도 슬슬 짜증이 나고 있어서인지 그는 조금 싸늘함을 목소리에 담았다. "시끄럽군요." 운의 말빨은 어린애 답지 않았고, 신수사의는 도저히 나이가 쌓인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 을 만큼 입이 험했고, 참을성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냉기가 품어진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삽시간에 둘의 입이 닫혔다. "자, 자네도 있었는가?" 침묵이 잠시간 이어졌다. 뚝― 그의 내부에서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건 그만의 소리였다. 이어서 그리고 기 합아닌 기합. 그리고 고함 아닌 고함이 터져나왔다. "꺼져버렷!!!" 쿠르르릉― 염력의 발현. 그리고 석실 내부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려오고, 한 노인네의 처참한 비명이 들 려온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 그때는…… 정말 아찔했다. 고함과 함께 엄청난 공기의 망치가 몸을 두드렸었다. 뭔가 심상 찮음을 감지하고 호신강기를 극도로 끌어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자신은 지금 서고 내에서 시체가 되어있었을 것이었다. 그의 이마에 핏대가 빠작 하고 돋은다음 알아들을수 없는 언어로 고함이(너무 열받은 나머 지, 이성을 잃은 나머지 한국어를 쓴 것.) 터져 나오고 나서 엄청난 타격이 호신강기에 전해졌다. 호신강기가 파괴되기 일보 직전까지 갔고, 경락에 타격이 꽤 왔지만 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도 풀파워가 아니었음에야…… 그나마 남았던 한가닥 이성이 염력의 위력을 5분의 1 정도로 제한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너 무나 놀라운 타격력이 생겨났던 것이다. 염력이 더 강해졌다는 것, 그냥 많이 써 대서 그렇게 된줄 알고 있었지만……. 어찌하였든, 서고의 벽, 대리석에는 움푹 하고 구멍이 파여버렸다. 하지만 책들은 말짱했다. 그만큼 위력을 제한하고, 한점에 집중했기에 일어난 결과였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신수사의에게 무공비급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기 시작한 것이…… 운에 게 가르쳐 달라 할수 있었으나 그는 운이 무공비급을 외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오의까지 환히 꿰고 있다는 것도. 난데없는 협박은 바로 신수사의의 호신강기 때문이었다. 그 화려한 공기압력을 받고도 멀쩡 한 노인네가 놀라웠던 것이다. 호리호리하고 힘없어 보이는 노인이 그정도의 압력을 막아낼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때부터 제대로된 무예의 위력을 실감했고, 그때부터 이런식으로 노인을 들들 볶고 있었다. 그러나 신수사의는 냉담하게 거절했다.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것으로 보였던 그가 그 정도의 괴력을 내면서―신수사의는 그의 염력을 공력을 사용한 것으로 착각한 것 ……― 왜 갑자기 무공을 익히려고 무공비급을 내놓으라고 발악하는지 알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르쳐야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녀석에게 투입한 영약이 내심 아까웠던 차였 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가르쳤다간 이 타고난 무골의 괴물은 어쩌면 신화경에 오를지도 모 르는 녀석이었다. 환골탈태도 하지 않은 듯 했지만 자신보다는 고수로 알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신수사의의 거절에 의해…… 그는…… 이, 무공비급 탈취작전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냥 계획도 아니고 단순히 무공비급을 훔쳐내는 것 뿐이었고, 신수사의와 충돌하면 염동력으로 기절시켜 버릴 것이다. "……." 밤에, 소리없고 기척없이 움직였다. 암살자로서 당연한 일이었고, 거의 5데시벨 안쪽 내역의 음향만이, 너무나도 미세하게 퍼져나갔다. 어둠에 동화된 그는 침묵으로 빠져든, 물소리만이 은은하게 퍼져나오는 이 백화곡의 길을 따라 석조 건물 내부의 무공비급이 숨겨진 장소로 스며들고 있었다. 기관장치 몇 개를 너무나도 쉽게 스며들어 피해내고, 진법들 역시 1각 내로 돌파해버린 그 는, 쉽고 쉽게 스며들어 석문을 마주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그긍 하는 소리가 들리면 어찌 될지도 모르는데…… 자신의 키보다 30cm정도 는 더 큰 석문, 두사람이 가뿐하게 지날 수 있는 너비…… 그만큼 무거운 돌문…… 한참을 끙끙거리는데, 문득 뭔가 머릿속에서 떠오르려 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은 석문 안쪽을 너무나도 쉽게 '들여다 보고'있었다. 그리고 어이없어 했다. 안 쪽은 낡은 책들이 널려있었다, 양피지에서 시작해서 대나무, 그리고 석판도 있었다. 어이가 없어진다……. 문득 그의 지식속에서 단어 몇 개들이 떠올라 조합되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이거…… 투시透視의 능력인가……?' 투시능력…… 염동력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신에게 투시의 능력도 있었던가. 하 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각쯤 더 지나자 곧 투시의 능력도 자유자재로 다룰수 있게 되었다. 원근遠近조절, 명암明暗조절 등등. 그리고 눈을 감고도 주변의 사물 모두를, 사방팔방십육방(?!) 모든 장면을 다 읽고, 깨끗하게 볼수 있었다. 그리고 안쪽을 열심히 바라보던 그는 어이가 없어짐을 느꼈다. 확인을 위해 눈을 뜨자 마자 어이 없게도 투시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안쪽의 광경이 보였고, 자신이 그곳에 서 있었던 것이다. '테…… 텔레포트Teleport?!' 어이가 없어졌다……. 난데 없이 투시능력이 생겨나고 다시 이어서 안쪽의 광경을 들여다 보면서 가고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떠올린 것 뿐인데. 체력이 빠져나가고, 머리가 조금 울리는 느낌이 들면서, 정신력이 소모되는 듯 하더니 자신은 이 안쪽에 서 있 었던 것이다. 하지만 좋은게 좋은거. 라는 생각을 하면서 곧 빠르게 안쪽에 들어섰다. 글씨를 보는것도, 투시능력으로 명암조절(…)을 해서 최대한 밝게 해두면 확연히 볼수 있었다. 어이가 없는 것은, 몸에서 발산하는 적외선을 이용해 적외선 스캔도 가능해져버렸으며, 심지 어는 일루미네이트Illuminate의 능력도 생긴 것이다. 화급히 빛을 감추긴 했지만. 빛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자 마자 정신력이 쭈욱 빠져나가면 서 자신의 앞에 빛무리가 환하게 터져나오려 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몸으로 다급히 가리긴 했으나…… 조금은 새어나갔으리라. 하지만 바깥에서 반응이 없자 식은땀을 훔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투시능력은 보 통의 투시능력과는 달리 혹시나 그 심안心眼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이가 없어진 그는 벙찐 상태로 있다가, 처음의 생각. '좋은게 좋은거'라는 입장을 고수하 며 무공비급들을 찾아 분류하며 줄줄이 외워나갔다. 조금 어이가 없었다. 무협지와 지명, 문파명도 똑같다니…… 무당의 복마검법과 홍광무紅光 武부터 화산파의 자하신공에 매화검梅花劍 이십사수二十四手, 그리고 더군다나 마공이란 마공도 엄청나게 많았다. 자전마공부터 소수마공, 혈수마공까 지……. 군데군데 훼손된것들도 있었다. 너무나 많은 무공 비급의 산. 하지만 마침내 그는 삼식경이 지나자 마침내 모조리 분류, 외 울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방을 떠올리고, 텔레포트 능력을 발휘했다. 그가 외운 무공의 종류는 너무나 많았다. 대체 신수사의가 이것들을 어떻게 입수했는지 의 심스러울 정도로……. 정리를 시작했다. 3류 무공에서 특급으로 구분되어도 괜찮을 정도로 심오한 무공. 하지만 그 는 워낙 많은 구결들을 외워놓은지라, 만류귀종萬流歸終의 법칙을 깨달을수 있었으며, 심법들을 찾고 찾다가 마침내 하나의 심법 을 찾아낼수 있었다. 그 무공 심법의 이름은…… 지고한 신공이라고도 불리웠으며, 수많은 피와 죽음을 불렀던, 그리고 많은 무인들이 읽고 보았으나 결국 고개를 흔들며 물러났던, 지고한 신공이자 너무나 어렵고 난해한. 하지만 신화경의 인물이 모아서 합쳤다는 지고한 무예의 지침서. 그것의 이름은 바로…… 북명신공北冥神功. 009. 유柔인가 유流인가? 그는 고심중이었다. '망할. 대체 어떻게 되먹은거야?' 지금 한권의 무공비급을 붙든채, 아니, 실제로 붙들지는 않았지만 눈을 감고 기억을 떠올리 자 한 장의 종이 위에 글이 빽빽하게 떠오른다. 복사하듯 외워버려서 가능해진 이 이미지. 어쨌든간에 그는 그것을 보면서 이를 갈고, 욕설 을 내뱉고, 발광을 해 대며 고심중이었다. ……잠시 침묵. "크아아아악!!" 차마 분을 참지 못하고 가부좌를 틀고 있다가 몸을 튕기며 정권을 후려쳤다. 진각을 밟은데 다가 30년 공력을 실은 엄청난 권격拳擊이었기에, 세찬 폭포의 물살에 닿았다지만 전혀 밀림 없이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권격에 실어진 거대한 에너지가 그대로 폭포에 전달되었고, 그의 주먹이 닿은 부분 부터 바깥으로 물들이 파악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쿠앙―!! 그리고 퍼져나간 물들은 사방을 향해 비산飛散했다. 시린 햇살을 튕겨내며 터져나가는 물방울들,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그의 이마에 돋아났던 핏줄 한가닥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씩씩거리며 몸을 뒤로 튕겼다. 그리고 다시 폭포가 제 모습을 찾자……. 이번에는 아까보다 두배 이상 빠른 속도로 쏘아져들어가 미친 듯이 권각拳脚을 폭포에 뿌리 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보다 두배 이상 더 많은 에너지를 머금은 그의 권각에 폭포는 유린당했다. 이젠 웅덩이에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을만큼 무서운 속도로 빠르게 권각을 쳐내며 물방울 하 나 하나를 제거하는 그. 이젠 점점 분이 풀리며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들어서 물방울들을 쳐내기에 전념할 뿐이었다. 권각은 무수한 잔영殘影을 남기며 물방울들을 산산히 깨어 부쉈다. 몸은 흥건하게 젖어버린지 오래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힘이 다 할 정도가 되어 서야 웅덩이에서 빠져 나왔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웅덩이에서 빠져 나올 때 쓴 신법身法이 수상비水上飛였다는 점이다. 물의 표면의 약하기 짝이 없는 표면장력을 반발력으로 삼아 물 위를 날아가듯 밟으며 쏘아 져 나가는 이 신법. 그리고 보법은 빙상보氷上步로써 살얼음판을 딛고 뛰는 그러한 보법이었다. 그런 신법과 보 법을 섞여 세차례 펼쳐내자 그는 이미 대지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뚝뚝― 물이 그의 옷에서 방울방울 떨어져 내린다. 그는 발광을 몇차례 해 나가면서 북명신공北冥神功의 잘못된 부분을 보완해 나가고 있었다. 그가 쓰는 것은 북명신공의 심법 부분 뿐이었지만, 다른 부분의 무예 역시 심오하기 짝이 없어 그의 입맛(?)이 동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힘들었다. 수재중의 수재인 그도 며칠째 골머리를 썩이고, 명상과 무예의 검토,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보아도 도저히 알수 없었다. 틀림없이 사용하면 되지 않는데 겉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없다니……. '에라, 모르겠다. 운공運功이나 하고 자야겠군.' 신수사의의 수업도 끝났고, 시간은 저녁. 운과 토론해 보았지만 운 역시 골머리를 썩일뿐, 답을 내놓지는 못하였다. 하긴, 내노라 하는 무림의 고수들도 어떻게 하지 못한 부분인 것을, 초짜인 그와 아직 한 번 도 무예를 펼쳐보지 못한 운이 어떻게 알겠는가? 무예를 익히기 시작한지 두달이 넘었다. 그리고 조금씩 지루해 지기 시작한것도 사실이었다. 몸속의 영기靈氣를 조금씩 흡수해 나가고 있었지만, 그리고 북명신공의 심법心法과 자신이 쓰고 있던 단전호흡丹田呼吸을 병행해 나가며 단전호 흡으로는 영기를 단전으로 끌어 모으고, 북명신공의 미완성 심법으로는 적당히 음양陰陽의 기氣를 조화시켜 태극太極의 힘으로 탄생 시키며 기경팔맥으로 순환, 일주천을 시키며 빠르게 공력을 불려나갔다. 그리고 고작 두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벌써 1갑자甲子(60년)의 공력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신수사의에게서 훔쳐낸 무공비급들을 상당수 극성까지 익힐수 있었으며, 그중 마공 종류의 무예들도 부작용 없이 다 소화해 낼수 있었다. 다만 지금 매달리는 것이 바로 북명신공이라 더 진척이 없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그가 극성 까지 익힌 무공들을 들어보자면…… 소수마공素手魔功, 혈수마공血手魔功, 매화검梅花劍, 칠매검七梅劍, 묵룡혼원공墨龍魂元功, 복마검법, 유운검법流雲劍法, 청룡검법靑龍劍法, 태극만상공太極萬想功, 오행대천공五行大天功, 천룡천승검법天龍千昇劍法, 뇌전검법雷電劍法, 수라만마권修羅萬魔拳, 응혈장법凝血掌法, 한빙장寒氷掌, 흑미륵마공黑彌勒魔功, 금강지金剛指, 일지선一指線, 반야장般若掌, 유마권柔魔拳, 마영지魔影指, 청월검법靑月劍法, 탄지신통彈指 神通, 회풍무류검回風舞流劍…… 이 외에도 수십가지가 더 있었지만, 아직 그는 초식에 구애 받지 않는 단계인 현경이 아니 었으므로, 제대로 양 속성의 무예를 펼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내공이 자연의 기운과 영 기가 섞여 정화된 순수한 태극의 공력이었으므로 가능한 일이었다. "휴우……" 한숨을 내쉰 그는, 천천히 침대 위에 앉았다. 그리고 오심五心을 천정으로 향하며, 하복부 호흡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몸속에 쌓인 영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영기의 흐름은 그의 기경팔맥을 따라 순환하며 순수한 태극의 기운으로 변했고, 그의 몸 주 위에서 뿜어지는 청광靑光은 틀림없는 북명신공의 그것이었다. 대자연의 거대한 기류가 그의 몸 주위를 따라 돌기도 하고, 그의 몸으로 빨려들어와 점차 일주천의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몸 주위로 빙글빙글 도는 영기의 끈이 점차 두터워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으로 서서히 빨려들어오는 기운들은 너무나 강맹하여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그러했다. 그러나 의아롭게도 그 강맹한 기운들은 몸속에 빨려들어가자마자 산산히 흩어지며 영기와 융합, 더욱더 체내에 쌓인 기운을 증대시키면서도 단전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었다. 이 일들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대자연의 흐름은 잦아들기 시작하였 고, 그의 눈이 뜨여졌을 때…… 그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어낼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 하나가 더 생겨났다. "흐름[流]인가…… 부드러움[柔]인가……." "……" 촹―! 그가 오른손 손목을 튕기자 순식간에 은빛 광택을 뿜어내는 나이프 한자루가 손에 잡혔다. 그리고 그는 눈을 살짝 감고 다리를 옮겨서 그 날카로운 나이프의 끝을 대자연의 흐름에 정 반대되게 맞추었다. 몸이 미약하게 떨려온다. 그리고 그는 몸을 붙잡고 있던 끈을 놓았다. 그리고 나이프가 대자 연의 물결에 휩쓸렸다. 날카로운 그 날이 흐름에 맞추어, 유려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그의 몸 역시 그러하였다. 대자연의 흐름이 그의 몸을 나지막하게 휘감아 돌며 흩어지려고 하면, 그의 발의 축이 바뀌 며 동시에 한차례 멋들어진 춤이라도 추는 듯, 몸이 흐름을 따라 움직인다. 흐름이 흐름이었지만, 한도의 유柔와 강强을 동시에 머금고 있 어서 아찔할 정도로 예기를 품고 있다. 매끄러운 은빛의 원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여섯…… 열둘…… 서른여섯…… 도저히 셀수도 없었고, 그 흐름이 너무나도 복잡해져 있어서 도저히 무엇이 무엇인지 알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가 유려하게 왼손목을 위에서 아래로 꺾어 내리면 주변의 기운이 요동을 치며 쏟 아져 내려 바닥에 부딪히는 듯 하지만 그와 동시에 미풍으로 변하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다시 용솟음 친다. 그리고 오른손의 검이 다시 흐름을 따라 움직이면 은빛의 원이 하나 다시 그려진다. 마치, 한차례의 화려한 춤과 같은 동작들. 그러나 이 동작을 보는 이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바로 신수사의였다. '신화경神化境……! 벌써 신화경이란 말인가? 아니다…… 신화경이라 하더라도 이정도의 거 대한 기운은……!' 바람이 맹렬하게 소용돌이 치며 그의 길어진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옷 자락 역시 휘말고 펄 럭인다. 그리고, 문득 춤이 멎었다. "이게 아니야……." 나이프를 다시 소매 안쪽으로 거둔 그는 입술을 꽉 깨물면서 중얼거릴 뿐이었다. 다시 한달이 지났다. 그 사이에 영기를 꽤나 흡수하고, 대자연의 흐름 역시 몸속으로 거두어 들인 그는, 벌써 3갑자라는 대단한 공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의 환골탈태換骨奪胎. 화경化境에 이른 것이었다. 강기신공剛氣神功과 의형강기意形剛氣. 그리고 흐름의 검을 조금 더 익힌 것…… 그에겐 이 것 뿐이었지만 타인들에게는 가공할 일이었다. 화경, 제대로 된 무예를 익힌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이가 벌써 화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무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알려지지도 않을 일이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놀 라운 일이었다. 180년의 공력, 아직 그는 모자라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영기의 반절 정도만 흡수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엄청난 것이었다. 다만, 영기를 반절 흡수한 것은 약효를 흡수한 것이었지. 그의 체내에 쌓여가는 자연의 기운 은 채 5분의 1도 흡수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영기의 끈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것이 후에 그의 생명을 구해주지만, 그로써는 다만 귀찮은 것일 뿐이었다. 그의 주변에 돌고있는 영기의 끈만 흡수한다 하더라도 거의 100년의 공력을 얻을만큼 강렬 한 기운이었지만 흡수하지 못할 여과된 기운, 별 쓸데조차 없는 것이었다. "후우……" 다시 한숨이 토해져 나왔다. 길다란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흑색의 눈동자에 비치는 강렬 한 정기精氣. 그리고 핏빛의 입술과 창백하도록 맑은 피부. 삼단과 같은 흑발은 어느새 허리까지 길어져 있었다. 그리고 처연하게 걸린 쓴 미소. 그것은 조화롭게 맞물려 화룡점정畵龍點睛, 미남美男이란 것 을 탄생시키고 있었다. 미남을 넘어 성별을 헷갈리게 만들 정도라서 문제였지만, 큰 키가 있어 그것은 문제되지 않았다. 뭐, 지금 무예에 빠져들고 있다지만, 그의 초능력또한 더욱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전과 비교 해 10배 이상 차이나는 능력…… 사이코키네시스Psychokinesis. 염동력念動力의 순간발현 능력만 1천 t에 달하는 엄청난 압력을 뿜어낼수 있으며, 텔레포트 Teleport 능력과 일루미네이트Illuminate 능력, 파이로키네시스Pyrokinesis와 투시능력, 그리 고 레비테이션 능력까지. 이것만 하더라도 가공할 것이었으며, 거기에 화경의 능력이 더해져, 그는 지금 능력만으로도 현경玄境의 고수와 싸워 이길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북명신공과 흐름의 검, 그리고 자연의 검. 이 세 개의 과제 외에도 또 하나의 과제가 있었 다. 피어오르는 검기劍氣가 아닌 그때…… 자신이 죽어가며 썼던 백색의 기류.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다. '설마, 그 백색의 기류는 선천기先天氣만으로 이루어지는 기술은 아니겠지?' 라는 생각도 해 보았으나 대답은 아니다. 였다. 오히려 검기에 가까운 그것, 대체 어떻게 기 를 운용하면 청색의 검기를 넘어선 기운이 나타나는가…… 였다.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아직도 까마득하게 많았다. 010. 극살極殺과 극활極活. 그리고 어검술御劍術. 시리디 시린 은빛이 시야를 메워왔다. 창 하는 소리와 함께 빠져나온 나이프Knife는 소름끼 치도록 무서운 예기銳氣를 뿜어낸다. 그 매끄럽고,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검신, 혹은 도신을 쓰다듬던 그는 입가에 약간 쓴 미소 를 걸었다. 그리고 나서 단전에서 한줄기 잠력을 끌어올린 그는 검신에 공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곧 이 어 은빛의 검은 청색靑色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검신에 맺힌 흐물거리는듯한 빛, 하지만 곧 기운을 더욱 응축하자 마치 분수처럼 아래에서 위쪽으로 귀결歸結되는 듯한 모양새로 출렁이기 시작했다. 완전 고형화固形化된 검강劍剛이나 수강手剛과는 달랐다. 단지 검기劍氣가 거세게 치솟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다지 크지 않은 나이프였는지라 거세게 보이긴 해도 화려하지는 않았다. 의외였다. 정말로, 이렇게 쉬울줄은 몰랐었다……. 검에 주입된 기를 중앙에 뭉쳤다가 검의 날 부분으로 확 퍼뜨리며 북명신공北冥神功을 운용 해 정화淨化하자 순식간에 청색의 검기는 백색白色의 검기로 화했다. 청색의 검기……. 이것은 유형화는 아니었지만 보통의 정강제 검으로도 이것을 활용하면 거 석을 토막내는 것은 매우 쉬웠다. 다만 1갑자의 공력이 있어야만이 쓸수 있는 것이 바로 검기였다. 검풍劍風과는 또 달랐다. 검풍은 단지 일정 공력을 검에 주입해 휘두르면 쏘아져 나오는 날 카로운 바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검기를 쓴 상태에서 사용된 검풍은 검기를 능가하는 파괴력을 지녔다. 그리고 심검心劍의 초입인, 검에 검기를 더욱더 크게 덧씌우는 방법. 단검을 쥐고 참수斬首용으로나 가끔 사용하는 거대한 대검大劍이나 태도太刀정도로 검기를 덧씌우거나 검기의 길이를 위쪽으로 늘리는 것, 이것이 심검의 초입이다. 심검은 다만 어떤 무기도 없이 공중에 강기剛氣의 검을 만드는 것이고, 이것에서 무형검無 形劍으로 나아가게 되긴 하지만……. 그리고 강기신공剛氣神功. 적어도 2갑자 이상의 공력을 요하며, 그 위력은 검기가 완전 고형 화 된것이라고 말할수도 있으나 질적으로 틀리다. 순수한 파괴력의 정점인 이 강기는 검으로도, 손으로도 뿜어낼수 있으며, 이 다음 단계는 폭 뢰강기爆雷剛氣가 존재한다. 폭뢰강기, 이것은 또한 가공할 강기신공이다. 최소 300년, 즉 5갑자의 공력이 필요한 이 엄 청난 강기는, 보통의 검강따위 보다 몇배는 고형화 되어 있으며, 핏빛의 기운을 뿜어낸다. 주변으로 강기의 회오리가 몰아칠 정도의 힘이며, 사용자의 의지와 운용에 따라 폭발할수도 있는데. 그 위력은 현경의 고수도 질릴 만큼 대단하다. 이 폭뢰강기는 무림 사상 단 한 번 나타났으며, 그래서 알려진 경지였다. 그리고 어검술御劍 術, 검에 기를 불어넣고 가두는 기술로, 내공의 제한은 없다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닷빛의 이글거리는 광택이 검에서 뿜어져 나오며, 검의 숨겨진 힘을 모두 끌어내 쓰는 것으로, 보검일수록 더욱 좋다. 정강제 검으로 펼친 어검술이라도 최고 등급의 보검이 아니라면 이 가 나가버리거나 토막나버린다. 그리고 어기동검술御氣動劍術과 어검술을 합친, 이기어검술以氣御劍術이 존재하는데. 허공섭물의 기법을 합친것에 불과하지만 어검술을 사용한채 검을 몸에서 떼어내 기의 운용 만으로 적을 공격하는 것이므로, 가공할 위력을 드러낸다. 말이 샜지만, 청색의 검기가 검으로 거석을 가를수 있는 검술이고, 백색의 검기는 그보다 더 하다. 백색의 검기로는 청색의 검기를 일격이면 잘라내어 버릴수 있다. 그리고 백색의 검기 다음이 흑색의 검기다. 이 흑색의 검기는 기를 무식하게 잔뜩 압축시키 는 것으로써, 힘이 소모되지만 그만큼 위력은 보장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사용법은 은색의 검기다. 이 은색의 검기는 검 내부에서 기를 빠르게 순환시키는 것으로, 은색 빛이 화려하게 뿜어져 나온다. 그 위력은 흑색 검기보다 더욱 강하다. 그리고 그 다음, 압축과 순환을 동시에 하는 기술로써, 금색의 검기이다. 화려하기 짝이없는 황금빛이 요란하게 뿜어져 나오는데, 그 위력은 거의 강기에 맞먹을 정도이다. 강기보다는 모자라지만 검기로써는 최고의 검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검술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탄지공彈指功계열의 기술은 2갑자 이상의 내공이 뒷받 침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금강지라던가, 일지선이라던가 하는 것들 전부가 말이다. 그래서 검술 계열보다 권각을 쓰는 이들이 내공은 더욱더 강하다. 일반적으로는 말이다. 혈도를 짚는 기술도 1갑자의 내공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다. 보통 간단한 기술로 생각 되지만 꽤나 많은 공력이 소요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혈도술 마저도 펼치지 못하는 이들이 무림에는 아주 많다. 하지만, 공력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1갑자의 내공을 지닌 무인이 그 반도 안되는 공력 을 지닌 이에게 죽어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후자의 인물이 깨달음이 빨랐다는 경우지, 실제로 공력으로 이겼다는 이야기는 아니 다. 가령, 3갑자의 내공을 지닌 화경의 고수와 1갑자의 내공을 쓰는 현경의 고수가 맞붙는다면 누가 이기겠는가? 당연히 현경의 고수가 이기게 되어있다. 그만큼, 공력은 중요하면서도 중요치 않은 것이다. 깨달음과 공력, 이 둘을 둘 다 중요시 해 야하는 것이지 한가지만 중요시 하고 치우쳐서는 올바른 발전을 이루어 낼수 없는 것이다. 이 설명을 하는 사이, 그는 더욱 기를 검에 밀어넣어 흑묵광黑墨光을 뿜어내며 이글거리는 검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흑묵광은 은색의 기운으로 바뀌어있었다. 사방을 적시는 은백색의 빛. 그것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무림, 이곳에서는 이런 검기는 존재치 않는다. 은색의 검기까지가 한계였으며, 흑색의 검기 는 존재치도 않는다. 무공의 특수성으로 색이 변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이 간단하지만 어렵고 특이한 검기는 웨 스트West. 즉, 서방대륙에서 사용하는 검기의 표본이었던 것이다. 그 사이 그는 운용을 끝내고 은색의 기운을 황홀한 금색으로 바꾸어놓고 있었다. 미친 듯이 분출되며 솟아오르는 금색의 검기는, 마치 대지의 틈을 찢고 솟구쳐 오른 마그마의 색이 금색으로만 바뀐 듯 했다. 화려하게 솟구쳐 오르고 있는 검기, 어둑한 방의 어둠을 먹고 금색의 날을 갈아대는 검기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고민을 끝낸지 한달. 그 사이 북명신공 또한 고쳐낼수 있었으며, 강기신공과 의형강기 역시 완벽하게 익혀낸 뒤였다. 그리고 금색의 검기 또한 만들어 내어, 조금은 만족할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고 할수 있었다. 그때 생겨난 백색의 기류氣流. 그것은 그의 생명生命인 진원지기眞元之氣. 선천기가 깨끗했 기 때문이다. 바로 정화된 기운으로만이 백색의 검기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그가 생명을 바쳐 나타난 검기는 바로 백색의 검기였던 것이다. 물가루가 여전히 흩날리는 백화곡百花谷의 폭포瀑布 주변, 아늑하게 뿜어지는 햇살에 의해 물가루들은 무지개를 이곳저곳에 걸었다. 그리고 미약한 바람과 더불어 알싸한 꽃향기들이 그의 코를 간질였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피워올리면서, 그는 손을 휘저어 물가루들을 조금 흐트러 뜨렸다. 폭포 아래의 웅덩이 바로 옆쪽의 바위에 걸터 앉은 그는 잠깐의 사색을 끝마치며 절경을 바 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만발滿發한 꽃들을 바라보며, 틈틈히 나비들도 바라보면서, 그는 웃고 있었다. 겨울에도 꽃이 피고 나비와 벌이 날아 다니는 이곳. 낙원樂園이 아닐까 싶은 이곳…… 하지 만, 그는 이 낙원에서도 여전히 옛 기억에 의해 괴롭힘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애써 떨치며, 무예에 매진하는 것, 그가 할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이것이 었다……. 벌써 250년의 공력이란 것을 얻어낸 그, 영기는 아직 꽤나 남아있었으며, 더욱이 몸에 차곡 차곡 쌓이는 대자연의 기운의 잔해들. 마치 이전의 영기와 같았다. 더욱더 강력한 이 기운은, 영기와 착각될 정도였다. 그리고 정체 불명의, 이유를 알수 없는, 그의 주변에서 빙그르르 돌고있는 영기와 대자연력 의 융합체인 그 끈. 그것은 벌써 대충 느껴지는 기운으로 200년 이상의 강력한 공력이 될 수 있을만큼 강력한 기였다. 기의 고리, 이것을 얻고 실체화 시킬수 있다면 더욱 좋을텐데 …… 하고 아쉬워 하는 그였지만 어쩔수 없는 것은 어쩔수 없는 것이다. "어검술御劍術이라……." 지금 매달리는 기술은 어검술이었다. 도저히 알수 없는 것…… 이것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시 꼼꼼히 검토해 보면 이것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되지도 않았다. 가끔 기혈이 역류할뻔도 했었다. 대체 어떻게 하는것인지…… 북명신공에 의하면 기를 불어 넣고 '가둔다'는 것, 그리고 검의 의지를 살려낸다는 것이었다. 신검합일身劍合一과 어기충검술御氣充劍術도 통과한 자신인데, 어째서 어검술만큼은 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역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지만, 찜찜한 것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인독人毒의 시험을 거치고도 제정신일지도 모르는 자라는 것. 어검이라는 것이 베고, 또 베어내며 검의 의지를 살려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어검술에 매달리는 자신, 이유는 '흐름의 검'을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다. 완성된 듯 하지만 도저히 미완성일 수밖에 없는 검술.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왜 되지 않는 것인지…… 대체 왜 유柔인지 유流인지 구별을 할수 없는것인지, 더군다나 이제는 강强이나 정淨, 혹은 동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뒤죽박죽이었 다. 하지만 그럴수록 조금씩이나마 진척이 된다는게 어이가 없을지경이었다. 하긴, 대자연이란 것을 인간의 작은 머리로 이해해보려는 것이 미친 발상일 수밖에 없는 것 을…….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매달리는 것은, 극살과 극활이었다. 극살…… 자신은 전직 살수이자 인독으로써 확실하 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극활…… 극살이 극활이고 곧 궁극적이면 하나로 만난 다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도저히 그와 동시에 이해 되지 않았다. 어검, 베고 또 베면서 그 가운데 검의 의지를 살리는 것, 하지만 극살에는 길이 없을지도 몰 랐다. 자신은 암살자로써 상대를 죽이고 빠져나오며 은밀하게 처리하는것에만 신경썼지, 무인으로 써 검을 다루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 이가 난데없이 무의 검을 익히려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기도 했다. 극활…… 자신은 절대로 갈수 없는 길이기도 했다. 성격도 성격이었지만, 결코 자신은 갈수 없다. 이미 극살이나 다름없는 살법의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떻게 극활의 길을 다시 되돌아가 걷는단 말인가……. 점점 어지러워진다. 명상에 잠기고, 수면을 취해도 보고, 미친 듯이 흐름을 따라 검을 베어 보기도 하지만…… 결코 어검은 그 안에 존재치 않았다. 그래서 검강을 찾았다. 혹시 검강을 쏟기 전에 이글거리듯 나타나는 뇌전의 흐름, 그것이 어 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기를 운용하며 미약하게 생겨나는 것이니까……. 하지만 파고들수록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리저리 짜맞추어 보기 시작했다.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무공들, 그것까지 보아도 도저히 알수 없었다. 그런데, 문득…… 하나의 생각의 끈이 떠올랐다. 그것을 잡고 발버둥 치던 그는……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검 끝에서 피어오르는 숨결을 보 고, 그것과 숨결을 일치하여…… 검에 이글거리는 바닷빛을 담아낼수 있었다. 그리고 기쁨…… 참을수 없는 즐거움 가운데, 그는 두 번째의 환골탈태 준비를 하였다. 011. 환골탈태換骨奪胎와 심검心劍. 석양이 녹아내린다. 황혼의 광채는 너무나도 화려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쓸쓸함과 죽음을 느끼게 만들었고, 어이없게도 한기까지 느끼게 만들었다. 하늘이 가장 다채로운 빛을 띄는 시간, 저 너머에서는 밤의 여신의 옷자락이 남빛을 띈채 화려하게 반짝이는 별빛과 달빛들에 은은히 물들어가고, 햇빛의 빛살들이 흘러내려 주황빛으로 사라지는 이 시간…… 주황빛은 홍광과 남빛의 경계 사이에 위치해 있었다. 핏빛보다도 진하지만 묘하게 다른 홍 광과 남빛이 섞여 만들어진 가운데의 주황빛, 그리고 천공을 울리는 황광과 구름을 투과해 뻗어나오는 기운들은 아름다움과 더불어 자연 의 장엄함까지 느끼게 만들었다. 무림에서도 손꼽히는 명관으로 유명한 이 수룡곡水龍谷. 이곳의 주변은 계곡이 마치 용이 분지를 휘감고 있는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고, 그 계곡의 바닥에 한기를 머금은 청정수가 흐르고 있어 수룡곡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휘감아도는 수룡의 안쪽, 들어가기 힘든 천험의 요지에 악산의 줄기가 보이고, 그 안쪽에 분지가 위치하였다. 그리고 은밀한 굴로 들어가 안쪽으로 들어서면, 지금은 늦 가을임에도 봄과 여름의 꽃들이 만발한…… 너무나도 멋진 이 장소, 은은한 풀벌레 소리가 뻗어나오는 이 장소는 풀의 향기와 알싸한 꽃향기, 그리고 약간의 따스함으로 시원한 시골의 어느 한 풍경으로 생각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땅 거미가 대지를 완연히 덮어내렸다. 분지는 넓었다. 이 꽃들이 만발한, 귀한 영약에서 독초까지 없는게 거의 없다 시피한 이 축 복받은 장소는 백화곡百花谷…… 바로 신수사의神手邪醫가 숨어지내는 곳이었다. 그리고 백화곡의 수풀과 조금의 숲을 지나 잔디가 깔린 분지를 가로질러 가면, 꽤 넓직하게 만들어진 석조의 건물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어느 방을 바라보자. 창에서 약간의 빛이 비쳐나오는, 강맹한 기운이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는 곳. 그리고 그 기운 은 열류熱流를 머금고 있었다. 방의 내부를 들여다 보면, 너무나도 놀라운 광경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특히 무림인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 이었다. 바로 환골탈태換骨奪胎, 반로환동反老還童이라는 기가 막힌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이기체공술以氣體空術이라도 펼친 듯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자세로 공중에 떠올라 열류 를 몸에 휘감은채, 알몸으로 눈을 감고 화려한 백열광을 뿜어내고 있는 자. 바로 두 번째의 환골탈태를 진행하고 있는…… 피로 더럽혀진 피라는 우스운 이름을 이름 대신 써 왔던 사내였다. 이 곳에 와서 이름조차 제대로 짓지 못하고 있는 그였다. 이전에 쓰고 있던 이름을 쓰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신수사의도, 운도 이해해 주었지만……. 어쨌든 그는 그렇게 바닥에서 조금 떠올라 환골탈태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의 피부가 주욱 주욱 금이 가면서 찢어진다. 그리고 다시 빛살이 틈틈히 몸에서 뻗쳐나온다. 그리고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거죽. 그는 주변의 기 회오리에 재가루가 소멸해버리는것도 알 지 못한채, 무아의 지경에 빠져들어 쉴새없이 몸의 변화에 대응하고 있었다. 뜨거운 열류가 기경팔맥, 임독양맥, 생사현관, 그리고 세맥들과 몸 구석구석을 훑어내려갈때 마다 오히려 상쾌함만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파란만장한 환골탈태는 일경이 더 지나서야 끝났다. 바닥에 그 자세 그대로 착지한 그는 눈을 떴다. 그의 흑요색의 눈동자는 교교한 빛을 내어 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에 서려있던 강대 한 기의 기척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러나 깊디 깊어 칙칙한 빛만이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일뿐……. 바로 반박귀진의 경지였다. 현묘玄妙한 경지라는 현경. 그는 이것에 올라선 것이었다. 몸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는 눈을 감은채 북명신공을 한차례 운용하여 대자연의 기류를 자신의 몸쪽으로 틀었고, 곧 거대한 기의 파도가 쏟아져 들어오며 그의 몸에 빨려들어왔다. 맹렬하게 기를 빨아들이던 그는 시간이 꽤 흘러서야 몸에서 청광靑光을 뿜어내는 것을 멈추 고는, 몸을 일으켜 개켜놓았던 옷으로 갈아입었다. 잠시간의 침묵. 그는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했다. 그리고 그의 전혀 남자답지 않은 새빨간 입술이 열렸다. "이제 심검心劍을 얻어야 하는건가?" 콰르르르르―― 물가루들이 흩어지며 그의 몸 주변을 감싸안았다. 한없이 포근한 햇tkf이 백열하듯 그 빛을 넘실거리며 물가루들에 빛의 파편을 던져 무지개라는 것을 사방에 걸어놓았다. 그리고 그 아래의 웅덩이에 물이 부딪히는 소리가 은은하게 그의 귀를 울렸다. 가부좌를 튼 그는 명상에 잠겨있었다. 새소리가 그의 귓가를 자극하고, 물소리와 더불어 차 가운 물의 향기香氣,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느껴지는 꽃의 화려하지만 약하고, 소리로 표현 하자면 조용하기 짝이없는 향이 코를 자극한다. 하지만 이미 무아에 빠져들어 명경의 호수로 정신을 던져놓은 그는 그것들을 느끼지도 못하 고 있었다. 벌써 3경이라는 시간동안의 명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은채 생각을 정리만 하고 있었다. 딱히 명상이라는 것이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고승들이 하는 명상은 마음의 거울을 찾고자 함과 동시에 자기 수양의 기틀이다. 무림인의 그것은 조금 더 달랐다. 무예武藝를 위한 생각의 정리. 그것이었다. 하지만 원래 소시민(?)이었던…… 아니, 평상시에 는 소시민으로 위장하고 있었던 그의 명상은 어느것에도 속하지 않았다. 지금은 무를 위하고 있다지만 오히려 고승들이 하는 명상에 가까울 정도였고, 그와 동시에 온갖 상념에 차라리 몸을 내던진채 그 실마리만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어두운 혼란, 어둠을 품은 빛과 그 빛을 품은 어둠 가운데서 복잡하게 떠도는 상념들. 그는 그것들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흘러내리듯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은 익숙해진지 오래였다. 빛살, 어둠, 차가움, 따스함…… 이상한 상념가운데 몸을 던지던 그는 문득 명상에서 깨어났 다. 외부의 자극에 의해 다시 몸이 감각을 되찾자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눈에서 광채를 반짝였다. "심검……." 의외였다……. 심검이란 것이 사실은 이런 것이었을 줄은, 심검이란 것을 찾아내 벽을 부수 어버리자 그와 동시에 생각난 것들. 바로 자신의 다음 길인 무형검無形劍과 자연검自然劍, 그리고 자연의 지배였다. 그 흐름의 검이란 것은 바로 이러했던 것이다. 그의 입가에 만족어린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그는 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대충 4성 정 도의 공력이 끌어올려지자 그는 오른손을 뻗었고, 그의 장심掌心에서 이글거리는 기류가 끓어오르며 서서히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유형화되었다. 이글거리는 푸른 강기로 구성된 검이자 막대로 보이는 그것, 화려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내력 소모는 너무 많았다. 오히려 어검술御劍術이 더 낫다 생각될 정도니까…… 하지만 이 심검이 자신의 도약점일 뿐 이라고 생각되자 참을수 없이 즐거워졌다. 신화경神化境. 인간이 '무예로써' 오를수 있는 한계의 경지라는 이 경지에 한발 더 접근했다 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즐거워졌던 것이다. 일렁이는 달빛이 주변을 메워나가는 백화곡의 밤…… 그리고 신수사의의 방. 그가 심검을 만들어낼 당시, 신수사의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건물 내에서였지만 이미 그는 자신의 시선을 눈치 채고 있었으리라…… 입맛이 썼다. 어느 새 자신도 모르게 무공비급을 쓱싹(…)해서 벌써 현경의 경지에 이르러 심검을 사용하고 있 다니…… 가공스러운 검강과 어검술, 그리고 거기에 심검이 더해졌다. 이 짧은 기간에 저정도의 초고수가 되어 있는 그…… 안법眼法 수련부터 황당하게 하더니 …… 폭포를 내리쳐 튀어나오는 물방울의 수를 정확하게 세는것부터 시작해서 5장 밖에서 나무의 솔잎을 정확하게 세어내는 것까지. 우스울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머리도 가공스러울 정도로 좋아서 이미 자신의 의학의 8할은 익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휴우…… 구한 것, 잘못일까…… 아니면……" 그의 쓸쓸한 목소리는 달무리의 은은한 빛과 함께 찻잔 속의 찻물에 약간의 흔들림을 선사 했다. 은은함과 동시에 창백한 달그림자와 함께 던져진 그의 말소리는 어둠 가운데서도 잘 들렸 다. 012. 운을 치료하다…… 운이 갑자기 변했다. 평소에는 그에게 답싹답싹 잘도 안기던 귀여운 꼬마 녀석이었는데…… ―비록 결코 평범하 지는 못할 지라도.― 갑자기 변했다. 그때가 언제부터였던가? 그가 막 화경에 접어들었을 때, 운이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 보고나 서…… 그때부터 점점 운이 그를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자신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데…… 아직 이 천형의 사슬이란 것에 묶여서 무술을 익혀보지도 못하고 있다니…… 생각해 보라. 자신도 결코 떨어질 것 없는데 해도 해도 되지 않는다면, 아예 할 조건조차 갖추어지지 않 는다면…… 정말 마음이 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질투와 분노까지 동반한다. 운은 그리고 그의 눈에 서 씻은 듯이 정기精氣가 사라진 이후, 그 차가움과 어쩐지 거부하는 듯한 기색은 더욱더 심해졌다. 그의 빨려들 듯 깊지만 너무 깊어 칙칙해 보이기 까지 하는, 정기 한올 찾아볼수 없는 눈동 자를 보고 그렇게 된 것이었다. 바로 현경玄境이라는 지고무상至高無上한 경지에 이르른, 반박귀진이라는 경지를, 그의 눈속 에서 운이 읽어낼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평범한 이들이거나 화경 이하 수준의 무인이라면 결코 알아챌수 없는 것이었지만 운은 보통의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보통의 안목을 가진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날이었다. 그가 운의 몸을 치유하고, 그의 몸을 완벽하게 고쳐낼수 있는 방법을 검 토하기 시작한 것이. 그도 운이 가련했던 것이다……. 결코 자신에 뒤지지 않는 천재적인 재능과 기회들을 지녔음에도 결코 무예를 익힐수 없는 상태인 그가 그렇게 조금씩 감정에 의해 자신을 갉아먹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첫번째로…… 임독양맥과 생사현관生死玄關부터 관통시켜 버려서 환골탈태 시키는 것…… 하지만 나의 공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 하지. 아무리 내가 가진 300년의 공력이라 할지라도…… 더군다나…… 그 아이의 혈도도 신수사의 가 꽤 복구한 부분이 많다지만 세맥까지 어떻게 할수는 없는게 아닌가. 역시 현실성이 없군. 두 번째로…… 신수사의를 훨씬 초월하는 의자가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현실성 이 없지, 현대 의학이라도 불가능한 불치의 병이거늘. 세 번째로…… 탁월한 무골을 하나 구해서 소혼대법으로 영혼을 바꾸어버리는 것, 하지 만…… 뇌에 기억되는 기억들과 그 오성이 사라진다. 훗, 그렇지만 내가 녀석에게 몸을 줄수도 없는 일이니까……. 일단 이정도인가…….' 생각을 접었다. 하지만 잠시 기억을 검토해보자, 네 번째의…… 가장 현실성 있고 간단한 방 법이 기억났다. 신수사의가 자신을 살려낸 이유일지도 모를 그것…… 바로 천황금단天皇金丹인 것이다. 그 리고 그는 몸을 급하게 일으켰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곧 경공을 약하게 발휘하여 방에서 빠져나오고 나서 대자연의 흐름을 조금 조작하며 몸을 실어 보통의 신법보다 더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가 백화곡 내부를 뒤지 기 시작했다. 일단 약창고, 신수사의는 없었다. 그 썰렁한 내부를 바라보던 그는 약초의 향기에 인상을 찡 그리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나가 그의 방부터 시작해 석실들을 모조리 뒤져보았지만 도저히 신수사의를 찾을수가 없었다. 그는 약간의 짜증이 일어남을 느꼈지만, 곧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백화곡 전체를 훑어보았지만 신수사의는 보이지 않았다. 어이가 없 었다. 대체 어딜 갔단말인가? 그때였다, 그의 기척 감지 범위에 운이 아닌 다른 이가 포착된것이. "이보게! 거기서 뭐하는가?" 그리고 그는 벙찐 표정을 지어보였다. 신수사의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찻물을 우려낸다음 찻잔에 노오란 기가 도는 찻물을 담아서 그것을 감아 쥐었다. 그리고 그 향기를 음미하며 느긋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그 역시 신수사의가 내어준 차를 마셨다. 맛으로 미루어 보아 자스민 차 같은 느낌이 났다. 하지만 조금 더 맛이 진했으며, 어딘가 향이 미묘하게 달랐다. 그리고 색도 어쩐지 틀렸다. 그 향을 코로 빨아들이자 진하고 푸근한 향이 후신경을 자극해 뇌에 전달했다. 그리고 그는 찻물을 입으로 빨아들여 그 따스한 액체를 뱃속에 밀어넣었다. "좋은 차군요." "흠흠. 고맙군." 잠시간의 텁텁하고 무거운 침묵…… 차를 조용히 마시는 소리만이 울려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차가 모두 비워지자 그는 입을 조금 더 다물고 있다가 신수사의에게 말을 던 졌고, 그 말은 방안에 가라앉아 있던 침묵이란 것을 휘저어 녹이며 산산히 깨어 부쉈다. "운의 일은……" "……그래. 그 아이는 천형육음절맥天刑六陰絶脈이지. 방법을 생각해 보았는가? 요즘 둘이 서먹해 보이던데." 신수사의는 역시 연륜이란게 있는 모양이었다. 운과 함께 있을때는 가볍기 짝이 없고 농담 도 가끔 던지는, 어쩐지 간사해보이는 웃음도 띄우는 그런 노인으로 보였으나, 그의 심기는 역시나 깊었다. 그는 고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새카만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그리고 나서 입을 열었다. 역 시나 고운 미성美聲…….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방법들은 신수사의께서도 다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지……." "제 경지를 알고 계시지요?" "……그렇네." 신수사의는 비어버린 찻잔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아온 침묵은 더욱더 무거웠 다. 일다경(차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시간) 정도가 흘렀다. 이번에 침묵을 깬 것은 그가 아니라 신수사의였다. "그래…… 자네도 알고 있었겠지. 내가 왜 자네를 살렸는가. 나는 이미 늙은 몸이고, 무골도 아닌지라 이 30년 공력도 버겁다네……. 산삼 한뿌리를 먹은 몸임에도 30년 공력으로밖에 소화하지 못했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했네……. 그분의 아들인 운 공자님의 몸도 치유시키지 못해서 정말 죄스러웠다네……." "……." "자네를 살린 것은 그뿐이 아니네. 운 공자님께 어쩌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다가갈수 있는 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렇게 영약을 소모해 가며 자네를 되살린 걸쎄……." 의식적으로 묻지 않았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그때 상황을 질문하지 않았었다. 그 런데 지금 신수사의는 그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것이다. "자네는…… 내가 발견했을때는 반 송장이었다네. 도저히 사람의 몸 상태라고는 생각되지도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선천진기를 소모한채 그렇게 간신히 누워있었다네. 피범벅이 된 몸. 그리고…… 너무나도 가느다란 숨결…… 하지만 자네의 몸은 너무나도 훌 륭한 무골이었네. 운 공자님 이상이었지. 정상인이 천형육음절맥인 운 공자님보다 더 대단한 용골을 가졌다는 것…… 충격이었네. 하 지만 기회다. 라고 생각하고는 그렇게 영약들을 투입해 자네를 살려놓은 것일쎄." "……그랬겠지요." "자네의 공력은 무려 300년을 능가하는 양의 공력이네. 무림 역사상 한명밖에 없었던 신화 경神化境을 이룩할지도 모르네. 특히, 그 인간으로써는 뿜어낼수 없는 강맹한 기력을 제어해 나가던 자네의 검술은……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하네." "……." "부탁하네…… 운 공자님을 살려주게. 그 300년의 공력으로도 생사현관의 타통은, 특히 운 공자님의 타통은 힘들다는 것을 아네. 그래서 나도 도울것일쎄. 제발 도와주게. 그분의 마지막 꿈을 이루어 주고 싶네. 보지는 못 하시겠지만…… 운 공자님 만은 살려드리고 싶네." "……." 그는 일어 섰다. 곧 신수사의의 노안에 절망이 서렸다. 그러나 그의 말이 이어지자 그의 표 정은 펴졌다. "……단약의 재료는 무엇입니까? 약재 창고에 있나요?" 013. 준비는 꽤나 오래걸렸다. 아침 나절부터 시작된 일들은 꽤 힘들었다. 저번에 신수사의가 보 이지 않았던 것은 백화곡 바깥에 나가서 무언가를 구해왔기 때문이었다. 금단의 재료중 운모雲母는 20여년 된, 그것도 수정굴에서 발견된 것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갖 극독極毒에 가까운 재료들이 신수사의에 의해서 자리를 찾았다. 신수사의는 대 체 어디서 구했는지는 알수 없는, 금을 녹이는 왕수까지 구해왔다. 재료들을 나열해 보자면 정말 끝도 없었다. 준비도 너무나도 오래 걸렸으며, 그 도구들도 굉장했다. 만년한철萬年寒鐵로 된 길다란 봉, 아마도 솥의 내용물을 젓기 위한 것 같았는데…… 무게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차피 신수사의나 그나 공력을 쓸수 있었으므로, 무게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역시 만년한철로 된 솥, 어이가 없었다. 구하기 힘든 만년한철이 이곳에는 널려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병기兵器가 아닌 한낱 약을 만들기 위한 도구일 뿐인 것이다. 무림인들이 보면 침을 질질 흘릴 만큼의 많은 만년한철. 그러나 그것은 지금 약을 만들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신수사의와 그는 잔뜩 굳은 표정이었다. 단 1초도 머뭇거려서는 안되는 천황금단의 제 조…… 게다가 금속재와 암석재질의 약재들은 모두 다가 극독에 가깝거나 극독이었고, 또한 그것들이 융합되어 한순간 신효를 내는 것은 식기 전이었다. 그것을 운에게 복용시키 고 거의 5갑자의 내공을 지닌 이가 그것을 몸속에서 한순간에 녹여내 신효를 몸안에 퍼뜨려 삽시간에 벌모세수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임독양맥이나 생사현관은 건드리지도 않는 환골탈태였기에 세맥이나 막힌 혈맥만 복 구하고 몸의 노폐물들만 제거할 것이었다. 재료들은 가공할만한 것들 뿐이었다. 금, 백금, 은…… 이것들은 그렇다고 쳐도 운모에서부 터 시작해 금속광물이란 금속 광물중 극독이라는 것들은 대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더군다나 까다롭기 짝이없어 캐어낸지 20년 지난 광물이어야 한다던가, 어디서 발견되어야 한다던가 하는 것까지 따져서 된 것들. 구하기 어려울 것이었으나, 그들의 앞에는 이 재료들이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중 운모를 솥에 부어넣었다. 산성물질들과 왕수를 부어넣자 순식간에 용해되 어버린 그것들, 지독한 독향이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신수사의와 그는 입에 해독제를 물고 있어서 별 영향은 받지 못했다. 다만 숨막힐듯한 독기에 인상이 찡그려질 뿐이었다. 그리고 솥을 녹여버릴듯한 뜨거운 불길 에 의해 내부의 물질이 용해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사투가 시작됐다. 하루가 지났다. 24시간이 흐른 것이다. 물론 그의 시간개념으로. 순서대로 하나 하나를 넣어 가며 솥조차 녹여버릴 정도의 불길로 물질들을 녹여 용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질들은 신비롭게 조화되며 금빛을 뿌려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재료인 광물이 들어가 삽시간에 녹아버리고 나서, 번갈아 가며 두명은 뜨거워진 만년한철의 쇠막대를 쥐지 못하여서 장갑을 여러개 태워먹으 며 간신히 그것을 저어 나가고 있었다. 이곳 석고의 지하실…… 이젠 이글거리는 열기는 석벽을 뜨겁게 달구어버릴 정도가 되었으 며, 그들은 그렇게 그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용해물질을 저어나가며 몇시간을 그렇게 솥 앞에서 보내었다. 그리고 솥의 물질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신수사의는 땀으로 절고 식사 한번 하지 못해 초췌해진 얼굴로, 그보다는 조금 덜한 그와 함께 눈에 이채를 띄워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물질들이 점점 더 줄어들자 급히 신수사의와 그는 막대를 내팽개 치며 뒤 로 급히 물러났다. 그리고 난데없는 폭발음이 터져나왔고, 솥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들은 급하게 모래를 사용해 풀무 안쪽의 불을 덮어버렸고, 공기를 불어넣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운은 바깥으로 빠져나가 물을 떠와 불 길에 뿌려댔다. 그리고 그런 노력 후에 불길이 잦아들었고, 곧 백열하고 있는 솥 안쪽에 보이는 금광金光이 드러났다. 자욱한 수증기와 자욱한 독향. 그러나 그들은 눈을 빛내며 그것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곧 신수사의가 벽에 다가가 손을 몇번 움키고 기관조작을 하자 안쪽의 자욱한 열기와 수증 기, 독향들이 바깥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신수사의는 물을 더 떠와 솥 겉부분에 들이 부어 솥을 급히 식혀내렸다. 그리고 솥이 적당히 식어 만져서 약간의 뜨거움만 느낄 정도가 되자 안쪽의 열기를 품은 금 색의 단약을 내려다 보았다. 조립질로 된듯한 단약은 아직 채 식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열기는 아직도 그들을 덥게 만들 고 있었다. 조립질의 금속재 단약. 그리고 금빛의 입자들이 틈틈히 박혀든 모습. 광채가 흘러나오는 듯한 그 단약의 신비로움 에 신수사의와 그는 잠시 할말을 잊었다. 그리고 단약을 챙겨든 신수사의는 아직도 뜨거워서 도저히 쥘수 없을 정도의 그 단약을 쥔 채 급하게 그와 서둘러 바깥으로 빠져 나왔다. 공력을 거의 쓰지 않은 그와는 달리 신수사의는 기진맥진 하였으나 바깥에서 대기중일 운에 게 급하게 뛰어갔다. 금색의 단약은 열기가 식으면 곧 분자구조가 풀어지며 신효를 잃은채 다시 독으로 변할게 틀림없었기에 1초가 아까웠다. 그리고 급하게 뛰어올라가 운을 발견한 그들은 서둘러 운의 앞에 도달했다. "……뭐야? 다 만들어진거야?" 졸린듯한 운을 바라보던 그는 신수사의에게서 단약을 낚아채어 다짜고짜 운의 입속에 그것 을 밀어넣고 이마를 톡 치며 공력을 밀어넣어 그의 뱃속으로 넣어버렸고, 운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꽤 귀여워 보여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약간 미소를 지 었지만 다시 표정을 굳히고 운을 사정없이 제압해서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게 만들었다. 그 사이에 운이 항의했지만 그는 그것을 무시했다. 그리고 운의 등에 장심을 붙인 그는 곧 단전에 가득한 기운을 서서히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점점 그의 몸에서 아지랑이와도 같은 뜨거운 공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열류가 운의 뱃속에 들어간 금단을 감쌌다. 그리고 금단이 확 풀어지며 그 신효가 운의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은채 운의 막힌 혈도 부분을 이리저리 피해나가면서도 빠르게 그 약효를 몸에 가득 퍼뜨렸고, 운은 자신의 몸에 퍼져나가는 뜨거운 열류에 신음을 지를뻔 했다. 하지만 묘하게 즐거운 느낌. 그리고 몸이 거푸 날치는 파도에 흔들리는 것처럼…… 부력 속 에 몸을 담근 것처럼…… 운은 그렇게 무아지경에 빠져들어갔고…… 그 역시 그러하였다. 014. 흐름의 검으로 향하다. 따스한 기운이 단전丹田에서부터 끌어올라와 혈도를 타고 흘러내려 그의 장심으로 부터 뻗 어나왔다. 그리고 운의 등에서부터 스며든 그의 방대한 공력은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렵거나 하 지도 않게 금단을 녹여 운의 몸 속에 가득 퍼뜨리고 완연히 운의 몸을 벌모세수 시키고 있 었다. 그의 몸속에 스며들어있던, 점점 쌓여오던 독기毒氣와 음한지기陰寒之氣가 열류에 의해 깨 끗하게 녹아들어버렸고, 노폐물등은 기공氣孔을 통해 흘러나와 피부를 적셨다. 고약한 악취가 흘렀지만 이미 무아에 빠져든 둘은 그것을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맥世脈과 막혀있던 혈도들이 다시 재생성되며 완벽한 하나의 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리고 그가 마침내 기를 거두고 손을 떼었을 때. 상당한 피곤함이 그의 몸을 침범하려 하고 있었다. 그는 식은땀을 이마에서 훔쳐낸다음 신 수사의에게 운을 지켜달라고 말한 다음, 곧 운의 옆쪽에서 운기행공運氣行功했다. 그런 그의 대담함에 신수사의는 혀를 찼다. 자신을 완전히 믿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전직 살수라는 인물이 이렇게 조심 성이 없다는 것은 우스울 정도였다. 하지만 신수사의는 운의 앞에 주저앉은채 운을 걱정스런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뿐이다. 파란만장한 환골탈태의 종료. 사실 환골탈태가 아니라 그저 금단의 효능으로 환골탈태와 비 슷한 효과를 얻어낸 것 뿐이었지만 운에게는 마치 환골탈태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들 었다. 그리고 운이 깨어날 무렵 그도 눈을 뜬채 운기행공을 마쳤다. 신수사의는 피곤함에 지쳐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다가 간신히 씻고 방에 틀어 박혔다. 배 도 고팠지만 자는게 먼저였다. 그는 꾸질꾸질한 상태가 된 운을 데리고 함께 폭포쪽으로 가서 옷을 훌러덩 벗어 제끼고는 씻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둘은 몸을 씻는 것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추스릴수 있었다. 운도 몰랐지만 몸의 진력이 꽤 소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방으로 돌 아가 방에 처 박혀버렸다. 운이나 그나 상태를 점검하거나 주변을 정리할 여력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짹― 짹짹― 어슴푸레한 새벽의 공기가 아침의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물드는 시각, 아침이었다. 그리고 현경에 오르고나서 오랜만에 하루종일을(?) 자본 그는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세면을 끝마친 후, 아침의 운공을 하고 있었다. 그 무렵 신수사의는 식사하고 있었고, 운은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중이었다. 그는 운공마저 끝마치고 바깥으로 나서 운의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다가가자 공기를 스치는 파열음이 들려왔다. 보였다. 이전보다 키가 자신의 길이 단위로 5cm는 더 커버린 소년이 힘찬 동작으로 권각拳 脚으로 박투술을 시험하는 것이…… 매끄러운 돌려차기, 그리고 정권 지르기와 몸의 근육이 뒤틀렸다 풀리며 터져나오는 탄력성 있는 공격들이. 소년의 입가에는 즐거움이 떠올라 있었다. 드디어 자신도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힘을 얻게 된 것이었다. 공력은 한올도 존재하지 않았으나 몸 자체도 골격이 최상의 위치에 존재했고, 근력 또한 제 법이었다. 게다가 더 좋은 것은 이전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올랐는데 지금은 이렇게 험하게 팔 다리로 박투술을 펼치는데도 전혀 숨이 가쁘지 않다는 점이었다. 금빛의 태양광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와 운의 흑묵빛 머리카락에 부딪혀 튕겨져 나왔다. 금 빛으로 일렁이는 공기속에서 움직이는 맑은 빛. 흑색의 빨려들듯한 맑은 눈동자와 어깨 쯤까지 길러내린 흑묵빛의 머리카락. 그리고 맑고 깨끗한 피부와 미공자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만큼의 외모. 팔다리는 가느다랗게 보였으나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호리호리한 소년. 그러나 그 나이에 맞지 않는 키와 동작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또한 입가에 걸린 미소는 매우 상쾌했고, 만족스러운 듯 했다. 그것을 바라보던 그는 조용한 미소를 띄워올렸다. 그리고 그날부터 시작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여 둘이 함께 수련하기 시작한 것이. 운 은 꽤 부러운 듯 했으나 자신도 따라붙을 자신이 있다는 듯, 빠르게 수련했다. 몸에 잠재된 진력을 끌어모아 단전에 흡수하고, 틈틈히 신수사의가 가져다준 약효가 몸에 남아있어서인지 그 영기를 흡수하여 10년 공력을 이미 얻어낸지 오래였다. 역시나 운은 타고난 무골이었다. 그리고 대단한 오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하루가 다르 가 일취월장하는 운. 그는 조금 감탄하고 있었다. 하긴, 이미 탐구와 연구를 통해 지겹도록 무예의 이론을 완벽하게 익혀왔을 터였다. 거기다가 북명신공의 심법이 더해지고 익힌 무예들이 몸에 익고 실전 연습까지 시작되자 정 말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것이었다. "휴우…… 그래도 느린걸." "글쎄다…… 과연 무림인들이 이 소리를 들으면 뭐라고 할까……." 그의 말에도 운은 다만 웃을 뿐이었다. 운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그는 진척이 없었다. 신화경…… 역시나 넘기 힘든 벽 이라 이건가……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하고많은 무림인들이 화경이나 현경에서 머물다 세상을 뜨지 않았던가…… "……." 길은 어디있는가? 어떻게 찾아야 올바른 무예의 극으로 승화할수 있나? 답은 하나밖에 존재치 않았다. 바로…… 그가 지금은 반쯤 포기한 '흐름의 검예'. 바로 그것 이었다. 이미 벽에 완전히 막혀버렸다. 신화경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도저히 들어갈수 없었다. 단지 무예만으로는 안된단 말인 가……. 대자연의 흐름에 답이 있다. 너무나 막막하다. 대체 아직 1할도 읽고 다루지 못하는 대자연의 흐름이란 것을 무슨수로 알아내 답을 찾는단 말인가. 그 흐름을 미약하게 통제하여 흐름을 바꾸거나 그 기류를 따라 검을 휘두르고 춤을 추듯 움 직이는건 할수 있었다. 약간의 흐름 통제와 흐름의 동화. 이것이 현재 진척의 한계였다. 명상도 소용 없었고, 무예 탐구도 소용없었다.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은 실전되었다고 알려지는, 국가의 멸망과 동시에 실전되었다고 알려지는 고려―국가명이 같아서 어이가 없었다. 하지 만 멸망당했다는 것에 약간 화가 치미는 것은 왜일까.―의 어떠한 무예였다. 이것도 9할이 소실된 것이었지만 나머지 1할의 띄엄띄엄한 글로도 조금의 진척이나마 얻어낼수 있었다. 신수사의가 얻고싶어 얻은게 아니라 다만 북명신공의 마지막장에 너덜너덜하게 붙어있는 양 피지일 뿐이었고, 종이 질도 달라 북명신공은 아니었다. 한숨을 내어쉬며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운은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 할 뿐이었다. 운에게도 조금 질문해보았으나 운은 자연 의 흐름에 몸을 싣는다, 는 것부터 부정해버렸다. 알리고 싶지 않아 적당히 질문했던 것인데 그것부터 부정해 버리는 운은 확실히 너무나 오 랜 연구로 인해 조금 편견이 생긴 듯 싶었다. 그런 운을 조금은 이해해 보고 싶었지만 확실히 운도 현경이 한계일거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무형검無形劍에도 진척이 없었다. 자연의 기류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데 무형검을 어찌 해낸단 말인가? 심검心劍을 날려서 적을 공격하는 기술도 성공시켰다. 그러나 어차피 강기를 어검술과 같이 유지시키는 수준밖에 되지 않아 오히려 기피하고 있는 기술이었다. 더군다나 답은 보이지 않는 흐름이었다. 그는 어렵다.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실 어느새 무의 흐름을 짚어내는 것까지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를 보면서, 조금은 전율하는 운이었다. 2주일이 흘렀다. 마침내 몸속에 깃든 영기의 대부분을 흡수해냈다. 그리고 특이한 호흡법으 로 인해 쌓여가던 대자연의 기운이 이제는 영기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몸 주위를 도는 강렬한 영기의 끈마저도 흡수할수만 있다면 5갑자의 공력이 될 만큼 강렬한 영기의 고리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공력 또한 진일보 하였다. 그 300년의 공력은 350년이라는 공력이 되어있었으며, 공 력이 점차 늘어가면서도 어이없게 한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놀라웠다. 운의 성취 역시 대단했다. 벌써 1갑자의 공력을 손에 넣었으며, 검기를 충천하게 뿜어내며 즐거워 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전과 달리 성격이 차츰 밝아져 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라면 꽤 여자들이 들러붙겠다며 신수사의는 반 농담조로 말했다. 하지만 완연한 농담은 아니었다. 운은 확실히 미공자였으며, 10여세의 나이이긴 했으나 13세 정도로 보였다. 벌모세수의 영향이긴 했지만. 더군다나 그 나이로는 생각되지 않을 정신수준과 무예는 혼담이 꽤 쌓일 조건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성취의 즐거움을 느끼는 운과 달리, 오늘도 그는 변함없이 명상과 운공, 그리고 흐름의 검을 하루종일 시전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힘이 없는듯한 한없이 부드러운, 하지만 그와 동시에 기의 회오리를 베어낼때는 극강한 기세가 깃든 은빛의 나이프. 그의 공력은 전혀 소모되지 않는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으나 그가 지금 뿜어내는 기세는 무림에서 단 한명밖에는, 그 외에는 누구도 이루지 못했다고 알려진 천년공력을 상회하고 있는 강렬한 것이었다. 그 만큼 강렬한 기운이지만 그와 동시에 유와 강을 포함하는 상승의 무공. 부드러운 미풍이 흘러내리며 그의 머리카락을 살짝 움직인다. 그리고 그의 춤추는 듯, 산보 하는듯한 가벼운 발놀림이 대지를 울리면 이미 3여장 솟구쳐 있다. 그리고 움직인다. 원이 중심이 되나 직선의 공격도 있다. 춤추듯 손놀림이 뻗어내려가면 기의 회오리가 일어나며 그의 주변으로 일렁였다. 그러나 난 류속에서도 흐름을 찾아내어 움직이는 빛의 호선, 은빛의 원이 수십개 그려지며 하나로 합일되었다가 수백개로 늘어나고…… 빛의 잔상이 뿜어져 나온다. 빛의 고리, 햇빛을 받아 산란한 빛을 쏟아내며 주변을 휩쓰는 기의 폭풍, 그리고 그것을 쉽사리 베어내리며 지나가는 은빛의 호선. 믿어지지 않았다. 무공이 이렇게 아름다운 동작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검무劍舞 계열의 어떤 무예도 이처럼 아름답지 못했다. 그 화려한 움직임에 넋이 나간 운은 도저히 방어고 뭐고 생각지도 못할만큼 멍해져 있었다. 초식도 없는 움직임. 그러나 자신은 감히 꿈도 꿀수 없는 높디 높은 경지였다. 오늘도 어느정도 진전을 보인 자신, 그러나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사람은 진척을 보이지 않 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으로도 자신이 현경이 된다 하더라도 일격을 버텨낼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바로는 '흐름의 무예'. 정말 가공할 무공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015. 악몽惡夢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햇빛이 흘러들어와 낡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차의 향기와 약재의 향기, 그리고 너무나 도 약한 혈향血香. 이것이 현재 이 방안의 향기였다. 신수사의는 고통을 참아내는 듯 미간이 한가득 일그러져 있었으며, 그의 왼손은 그의 가슴 부위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 조금씩, 조금씩 힘이 더 들어감에 따라 옷이 찢어질 듯 했다. 그리고 그는 입에 서 피를 한모금 왈칵 토해냈다. 각혈이었다. 그는 입에 쓴 미소를 떠올렸다. 평소의 약간 간사한 웃음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고통에 젖어 몸부림치는 한명의 노인의 모습밖에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다시한번 각혈을 해 냈다. 그가 바닥에 두었던 물통에 피가 벌써 반은 차서 출렁이고 있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은다음, 품속에서 엄지 손톱 두배 만한 크기로 보이는 주황빛의 단약을 두알 꺼내 입속에 밀어넣고 씹어 삼켰다. 청량하고 알싸한 향기와 함께 단맛이 입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목에 맺힌 핏덩어리를 풀어버리며 뱃속으로 시원하기 파고들었다. '후우…… 이런 영약을 운 공자님께 드리지 못하고 내가 먹어야 하다니…… 하지만…… 어 쩔수 없는 일이지…… 운 공자님이 적어도 화경化境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 생생조화단生生 造化丹은 내가 복용하는 수밖에. 하지만 이미 천기를 거스르고 10년이나 연장한 몸…… 앞 으로 몇 달을 더 버틸수 있을까?' 그는 자문했지만 대답은 뻔했다. 앞으로 두달이 한계다……. 지금 남은 생생조화단은 모두 서른알. 일주일에 한 번, 두알씩 복용하고 있었다. 한알에 20년에서 30년의 공력을 증진시켜 주는 천하의 영약을 말이다. 하지만 공력은 늘지 않고 다만 꺼져가는 그의 선천진기를 버텨주고 썩어가는 육체를 붙드는 것 뿐이었다. 만약에 서른알을 모두 복용한다 하더라도 세달이 한계였다. '하하…… 그 청년, 보좌로써는 너무 대단한 능력을 지녔지만 그래도 부탁은 들어 주겠 지…… 그리고 나의 의술도 모두 익혀낸 기재다. 어쩌면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류헌 가주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셨 지…… 천류세가의 마지막 후계자인 류운 공자님…… 이제 그 친구로 인해 고수로 변하시겠 지…… 그리고 천류세가의 복수를……' 하지만 생각을 이어나가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아니되었다. 복수는 복수를 부르게 된다. 하지만 어느정도의 보복은 해야한다. 살육전에 참여한 전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단 한곳에는 복수해야 했다. 은밀하고 철저하 게…… 천류세가를 이용하고 버린 무림맹, 특히 그 맹주의 가문에는 확실히 해야했다. 천류세가……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위세를 맹렬하게 떨치던 무가. 그 비전절기들은 너무나 도 대단한 것이었고, 숨겨진 세력만 하더라도 거의 무림맹에 맞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류세가는 무림맹을 가볍게 보고 이용하려다가 오히려 역이용 당해 마교와 충돌, 그 절반의 세력을 뿌리뽑혔다. 그러나 한 번도 털리지 않았던 마교의 본단이 털리는 우스운 사태가 나타나면서 마교는 심 각해졌다. 그리고 천류세가는 일어설수 없게 되었다. 운영하던 모든 곳들이 제거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곳, 백화곡에 마교의 비전들이 옮겨졌 고, 금은보화들도 대부분 옮겨졌다. 아주 은밀하게…… 속이는 것은 백화곡 자체가 어차피 이전부터 신수사의의 은신처로 알려 져 있어 그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일어설수 없게 된 천류세가는 마지막 힘을 다해 무림맹을 공격, 그 많은 무공서적들 역시 탈취했다. 그리고 온갖 유파들을 침격, 무공비급만큼은 확실하게 탈취, 후일을 기약할수 있도록 하였다. 소림사마저도 털렸으니, 볼 일은 다 본 것이었다. 그리고 신수사의는 어린 운을 데리고 탈출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몸을 고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리고 좌절중인 그에게 바로 타고난 무골을 지닌…… 그 청년이 찾아오게 되었고, 그는 기 꺼이 그에게 많은 영약을 투입하였다. 그리고 그에 의해 운은 천형의 사슬을 벗어났다.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운을, 화경이 된 운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이 백화곡의 모든 약재들을 태우고, 백화곡 자체를 폐쇄하는 것만 남았다. 이미 대부분의 영 약들은 단약으로 만들어 챙겨놓은 뒤였다. 그리고 또한 독단들도 굉장히 많이 남겨놓았고,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그 청년의 몫이었다. 마지막 부탁은…… 그가 천류세가를 일으켜 세우는데 공신이 되어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 다. 들어줄지, 들어주지 않을지는 알수 없었지만……. 신수사의는 청소를 끝내고 향을 피워 혈향을 제거한다음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깊디 깊은 잠으로 빠져들어갔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타들어간 목재들이 무너지는 소리, 이것은 천류세가의 마지막 대들보가 깨져나가는 소리였다. 그리고 고함과 비명이 멎어들어가고 있는 것이 바로 이때였다. 그리고 무림맹주와 천류세가 의 가주의 마지막 결투의 끝과 동시에 무림맹은 썰물 빠지듯이 물러갔고, 천류세가는 사라졌다. 천류세가의 가주는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신인 신수사의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기 위해 숨을 붙들고 있는 것이었다. 신수사의는 가주의 몸을 붙든채 충절어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천류세가는 정파도, 사파도 아니었다. 그러나 신수사의가 후에 사파들만을 치료한 것은 정파들에게 피맺힌 원한이 있어서였다. 피에 젖은 몸으로 늘어진 그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황빛 불꽃과 상승기류에 의해 말려올라가는 재가루들은 종말이 무엇인지 알리고 있었다. "부…… 탁하네…… 노사……. 자네라면…… 할수 있을…… 쿨럭!" 말을 마치지 못하고 입에서 선홍색의 피를 토해내는 그는 이미 내장이 가닥가닥 끊어진지 오래였다. 그의 일격을 받은 무림맹주도 타격을 받았으나 몇주 요양하면 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는 못미치는 화경의 고수 하나를 미리 베고 마지막에 무림맹주와 결투를 벌여서 이렇게 쉽게 당한것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최소 양패구상이었으리라. "가주……." 차마 말을 하지 못하는 신수사의를 보고 있던 그는 고개를 꺾으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 다. "운…… 을…… 부탁하네……." "……." 그는 자신에게 있어 영웅이었다. 그러나 그 영웅은 이리도 쉽게 죽고 있었다. 운이라는 가주 의 아들도 그럴지 모른다……. 부러진 천류세가의 신물, 천인검天刃劍을 아직도 쥐고 있는 가주의 손을 검에서 떼어내고 편안한 자세로 눕힌 그는 아직 완전히 감기지 않은 가주의 눈을 쓸어 감겨준다음…… 서둘 러서 천류세가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그는 천류세가의 사정이 궁금하여 잠시 절에 맡겼던 운을 데리고서, 백화곡으로 걸 음을 옮겼다. "……." 숨을 헉헉거리며 신수사의는 그렇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역시나 발작이 있는 날은 항상 이렇게 그의 최후를 본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게 아닌가. 천류세가의 보물들은 이미 전부 대륙전장에서 전표로 바꾸어 챙겨놓은지 오래였다. 그리고…… 천류세가에서 남긴 마지막 병기兵器인 청천검靑天劍은 지금 병기고에 존재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무공비급들은 운과 그가 익히고 난 뒤 모두 태워버렸다. 어차피 외워놓은 그들이라 조금 아깝다는 표정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신수사의가 왜 태워버 렸는지는 알지 못했다. 신수사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련한 가주의 환영이 그의 망막에 맺히는 듯 했다. 016. 몸을 씻고 있었다. 약간 덥혀놓은 물속에서 땀과 먼지들을 씻어내리며 운은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물기에 젖어 반짝이는 흑묵발, 그리고 티없이 맑은 피부와 새하얗고 보들보들하게 보이는 살결…… 언뜻 보면 가늘어서 여 자아이를 연상케 하였으나 눈빛에서 그 기운을 찾아내면 절대로 여자아이를 연상할 수는 없 을 것이다. 물방울이 맺힌 몸을 수건으로 닦아내리면서 그는 옷을 챙겨 입었고, 곧 잠자리에 들기 전 상쾌하게 운기를 한 다음 창으로 다가갔다. 사실, 2경 정도만 자주어도 충분했으나 그는 잠을 꽤 즐기는 사람이었고, 더군다나 성장기였 다. 잠은 필수이다. 물론 이것도 보통 의원들은 알지 못하지만 신수사의의 경우 지독하게도 조사까지 해 나가며 잠을 잘 자는 아이들과 잠을 잘 자지 않는 아이들의 키까지 비교해내 얻어낸 결과였다. 은은한 달빛이 스며들어오는 바깥, 서둘러서 창문을 닫아 걸쇠를 걸고 푹신한 침대에 누우 면서 즐거운 미소를 떠올렸다. 밤바람은 알싸한 꽃향기와 모깃불, 그리고 은은한 물소리가 곁들여지면서 매우 낭만적으로 변해있었으나 그는 그것따위는 별 관심이 없었다. 지금 필요한건 잠이었다. 곧 침대에 누운채 이불을 몸에 감은 그는…… 눈을 스르르 감으면서 깊은 잠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리고 정적이 찾아왔다. 풀벌레 우는 소리와 물소리, 모깃불의 연기가 서서히 가늘어질 즈 음…… 운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놓쳤어……." 몸을 통제하고 책을 읽어 제대로된 사고를 얻게 된 나이는 고작 다섯 살때였다. 신수사의는 언제나 자신에게 책을 읽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라 강요했다. 의술은 그래서인지 일부러 배우지 않았지만, 신수사의는 이상하게도 의술은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신수사의는 시커멓고 쓴 약들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했으나 신수사의는 힘으로 제압해 억지로 먹이고 소화될때까지 몸을 봉 쇄해놓고는 했다. 토해내려고도 했으나 신수사의가 내공으로 완벽하게 넘겨버리는 바에야……. 그리고 그때부터 무술을 익힐 생각을 했다. 신수사의는 순순히 무공비급들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운은 좌절했다. 자신의 몸이 무예를 익힐수 없는 몸, 천형육음절맥이란 것을 안 이후로…… 그리고 운은 그때부터 신수사의의 의술을 배웠다. 하 지만 약간의 침법과 간단한 약재들을 다루고 쓰는법. 그리고 해독술, 혈도술, 혈점 외에는 배우지 않았다. 그리고 3년이 더 흘렀다. 자신의 몸은 거추장스러웠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오르고…… 고 통스러운 것이다. 짜증을 부리기 시작한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리고 신수사의와 말다툼을 시작한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리고 꿈을 꾸기 시작한것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운은 어둠속에서 헤메고 있었다. 그리고 뜨거운 열류가 주변을 휘감는다. 언제부터인지, 포 근함은 끝나고 열류와 살기, 그리고 두려움만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는 그리움과 더불어 화까지 느껴졌다. 자신을 보지도 않고 가버린 부모에 대한 분노일지도…… 운은 웃었다. 비웃었다. 조소를 던 졌다. 그 알 수 없는 감정을 식히고, 부수고, 제거하면서. 그는 비웃었다. 자신이 인간인 것을. 겨우 이런 일에 넘어지는 허약한 감정을 가진 인간인 것을. 그리고…… 어리고 허약하고 무공도 익히지 못하는 몸인 것을. 한껏 비웃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오히려 그것을 원하던 때가 찾아온다. 그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그는 잡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마치 네 살바기 아이가 나비를 발견하고 쫓아 손으로 움키려는 듯, 서투르게 뛰며 그것을 잡으려 손을 휘젓고 뿌린다. 그러나 잡지 못한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것과 자신과의 술래잡기는 그렇게 계속되었다. 현실에서도 멍한 표정을 짓기에 이르자 운은 그것을 포기하리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꿈에서는 여전히 그것을 움키려든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 내뱉는다. 또 놓쳤다고……. 이 반복은 지겹다. 너무나도 지겹다. 참을수 없을 정도로 지겹고, 증오스럽고, 모멸스럽다. 이 꿈이 끝나는 것은 언제일까……. 궁 금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토록 어지러운 감정의 소용돌이에 몸이 찢겨나가거나 한다면 자신은 이미 죽어버렸으리 라…… 사실, 그랬다면 더욱 좋았을지도 모른다. 죽음은 별로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목표없 고, 이렇게 허망함과 허무함을 느끼며 몸부림 치는 자신을 이 허무의 파편속에서 뼈저리도 록 자각하지 않을수만 있다면…… 죽음은 차라리 축복일 것이다. 감정의 혼돈, 소용돌이……. 그것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약하게 올라오는 기억의 편린들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공간에 맑은 한줄기 금이 갔다. 그리고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몸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울림이 들려왔다. 약한 울림이 공간을 때리는 것이다. 우우웅― 미약한 울림이었다. 하지만 약한 울림으로 시작된 그것은 점점 커져갔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희미해지면서 공 간에 간 금을 더욱더 깊고 크게 만들었다. 감정의 소용돌이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퍼져나와 빛이 된 외침은. 자신을 악몽에서 끌어냈다. 너무나도 손쉽고 간단하게……. "운……" 누구? "운……." 누구야? "운……! 일어나……!" 어둠이 걷혔다. 눈부신 햇살 가운데 새카만 그림자가 자신의 앞에 보였다. 갑자기 긴장이 풀 렸다. 바로 그였다. 그는 입가에 약한 미소를 띄운채 자신의 몸에 손을 대고 흔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 잘 잤어요?" "그래. 운, 피곤했어? 꽤 깊이 잠든 것 같은데." 그는 입가에 자애로운 미소를 걸었다. 운에게서 천형의 사슬을 제거하고 나서 나타난 변화 였다. 그는 미소란 것을 드디어 진심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언제나 흐릿한 미소 정도였었는데…… 자조적인 미소정도였는데. 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자, 일어나야지." "……." 운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는 빙긋 웃고 나서 운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운이 세면을 끝마치기를 기다린 다음. 입을 열었다. "오늘도 다시 시작 해야지?" 그의 말에…… 운은 환하게 웃었다. 아침의 공기는 맑고 차가웠다. 그리고 무공수련은 그에 게 간밤의 꿈을 잊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한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삼켜버렸다. 오늘도…… 이렇게 시작하는거다. 017. 요즘……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무예였다. 운 역시 그러하다. 나는 그 아이에 게 있어 무엇이 없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부모의 사랑이겠지. 나도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그것…… 오히려 쓸데없는 것이라며 조소를 던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그 관심…… 기댈수 있는 이, 얼마나 필요한가…… 확실히 느낀다. 기댈대 없어 무너져 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정신을 추스르며…… 그것을 얼마나 바라왔던가, 인독人毒의 꿈 따위는 악몽 취급도 하지 않는다. 가장 두려운 꿈…… 그것은 내가 조직에 납치 되기 전. 블러디 블러드라는 이름을 받기 전 의 그 기억들. 무수한 편린들 속에서 다가오는 부모님과 동생의 기억. 그뿐이다. 부모님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기억한다. 아버지는 회사원이었고, 어머니는 가정주부. 그리고 여동생은 밝고 쾌활했다. 오직 나만이 그들에게서 겉돌며 비웃음을 날렸을 뿐이다. 내 천재성이란 것에 대해서 부모들은 걱정했다. 하긴, 그 나이에는 결코 볼수 없는 지식과 감정의 덩어리를 품은채, 오만하게 세상을 굽어보 며 나 자신만을 불려나가고 있었으니……. 아슬아슬했다. 내가 생각해봐도 미치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였다. 식은땀이 바작바작 난다. 차라리 인독들 100마리―명, 이라 하지 않는 것은, 이미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기 때문이다.―와 싸우는 것이 속 편하다. 싸우다 죽으면 그뿐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멍청함이 나를 다시 잠식해오지 않을까 하며 두 려움에 떨면서 나를 제어해 나가는 것, 나와 싸워나가는 것은 그런 싸움보다 몇십, 몇백배는 괴로운 것이다. 나의 정신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물론, 부동심이란걸 얻게 된 후에는 조금 덜해졌고, 비록 운이라는 소년을 만나고, 그 아이 와 이곳. 이 세계의 분위기와 평화로움으로 인해 약간의 미소와 감정을 되찾았다고는 하지만 나는 여 전히 인독이다. 부정할수 없는 것.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 짐승이나 다름없는 존재라는 것. 그것은 나 로 하여금 죽음의 편안함을 바라마지 않게 만든다. 어둠속에서 생각에 잠겨 얼마나 오한에 떨어야만 했던가. 이것을 극복하지 못함으로 인해 얻어지는 고통을 끊어내지 못하여 더욱 몸부림 치던 그 기 억이 왜 이리 생생하여 나에게 이런 괴로움을 가져다 주는건가. 물론, 나는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재수가 아주 좋을지도 모른다. 왜냐…… 그 수많은 고통과 죽음의 시련,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이 견디기가 더 힘들 었지만, 나는 그것을 견뎌낼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대단한 행운이 아닐수 없다. 아니면 나쁜것일까? 유한의 생명을 가진,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인 주제에 죽음, 오히려 소멸인 그것을 바란다는 것이 건방진 것이라는 것,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참을수 없는 것은, 신이 나에게 부여한 이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차라리 내가 로봇과 같은 인공지능이었다면, 0과 1로 단순하게 세상을 디지털화 하여 바라 볼수 있었다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으리라. 인간은 2진법도, 10진법도, 16진법도 아니라…… 무한대의 진법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숫자로는 절대 나타낼수 없는 '추상적인'개념 과 무한대적인, 4차원적 상상의 세계를 가진다. 하지만 그건 축복임과 동시에 저주다. 적어도 나에게는……. 꿈을 꿀때마다, 특히, 인독과 가족의 꿈을 동시에 꿀때마다, 나는 확실히 실패작이라는걸 알 았다. 차라리 완벽한 인독이라면 좋을텐데. 차라리 가족이 남아있었더라면, 나는 정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것을 더욱 완벽히 차단할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이제야 운이라는 아이에게서 따스한 정이란걸 느꼈다. 나와 동류여서 인지, 하지만 그 아이는…… 나와는 달랐다. 그 해맑은 미소는…… 나로써는 불가능한 것. 신수사의가 악몽을 꾸며 괴로워하며, 흘려낸 한방울의 눈물조차도 나는 불가능하다. 그 눈물과 미소에 투여하는 감정의 반도 제대로 생성해 내지 못하고, 드러내지도 못하는 것 이다. 쓸쓸함, 오직 고독감만이 나에게 남은 감정이 아닐까…… 하지만 운에게 어느정도 미소를 지어주는 것은 가능해진 것 같다. 그 아이를 깨우고나서, 내 미소인듯한 표정에 그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반응해 주는 것을 보면……. 그러나, 이 운이라는 아이는…… 내면의 슬픔을 감추는 법을 익히지는 못한 것 같다. 역시나 그 환한 미소 가운데에는, 미약한 슬픔이 녹아있다. 그리고 그 깊은 눈동자, 그곳에 정갈한 빛으로 감춘 내부에도, 미약한 슬픔이 일렁인다. 아직 어린아이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에 온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현묘한 경지를 터득해냈고, 흐름의 검 또한 익혀나간다. 그러나 아직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나다. 차라리 운의 성장이 가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런식으로…… 말을 돌려보고 싶으나, 한 번 꺼내진 내 정신적 내면을 닫기에는, 아직 쌓인 게 많은 모양이다. 그러나 더 할말도 없었다. 나는 인독이자 인독이 아닌 자. 인독을 벗어나고 싶으나 벗어날 수 없는 자. 그리고 불안한 정신의 멍청한 자가 얻기에는 너무나도 강한 힘을 얻어내어버린 자.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에게 족쇄를 채울수 있었던, 새옹지마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된 자. 힘을 얻음으로 생긴 제어장치로 힘 대신 나를 묶 으려 하는 어리석은 자……. 정의를 할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 하나가 아니니까…… 내면에는 수많은 나의 의지와 기억과 공포와 감정이 깃들어 있으니까. 그 그림자는 하나가 아니니까. 마음의 거울에 비친 나는 하나가 아니니까.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어둠속에 깃든 나는, 오늘도…… 빛을 품고싶어한다. 그리고 내가 햇살과 달빛을 바라보며 이런 상념을 가지는 이유도 그것이다. 나는 암살자, 어둠속에서 태어나 어둠속에서 깃든, 그러나 외모로는 빛속에서도 확실히 살아 가며 들키지 않을 위장을 가져야 하는 자, 그 껍질 속에는 빛을 두려워하는 감정을 가둔 자. 어둠의 눈을 가지고, 어둠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존재…… 절대 사람일수 없는 인독의 자락. 나는 햇빛을 보며 생각한다. 저 환한 빛의 조금이라도 내 내면에 심어서 그 빛으로 내 어둠을 태워버리면 좋을텐데…… 정말로 그럴수 있었으면 좋을텐데. 나는 달빛을 보며 생각한다. 저 은은한 빛의 조금이라도 내 내면에 심어서 그 빛으로 내 어둠을 밝혀 그것을 포용할수 있었으면, 정말로 그럴수 있었으면 좋을텐데. 그리고 나는 별빛을 보며 생각한다. 내 마음이 저렇게 빛나고 있었으면. 저렇게 빛날 수 있 었으면……. "……." 오늘도 역시 은은한 달빛은 방안을 적셔들며 어둠을 살라든다. 그러나 포용하려드는 그 빛 은 누구나 볼수 있는 빛이었다. 그리고 그 빛이 내 가슴을 파고들어 약간의 감동을 주었다. 오늘따라 창백하고 뽀얀 달빛은…… 내 심정을 알기라도 하는 듯, 어느때보다 환하고 아름 다우며 은은했다. 그런 달빛을 보며, 나는 깊디 깊은 잠의 소용돌이로 스며들어갔고, 내 의식은 검은빛으로 물 들며 나를 놓아주었다. 018. 습격襲擊과 하나의 죽음. 타탁― 화르르륵―― 백화곡百花谷 내부는 불길에 휩쌓여 있었다. 석조 건물들은 시커멓게 그을린지 오래였고, 백화곡 자체를 태우고 있는 불길은 꽃과 약재들 사이로 숨겨졌던 기름과 맞닿아 더더욱 뜨 거운 열기와 새카만 연기를 뿜어내어 내부의 사람들에게 질식사의 위험도 선사해 주었다. 그리고 두 개의 인영이 그 어둠 가운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달려드는 수십의 흑의인 들……. 뜨거운 상승기류가 생성된 백화곡, 밤중에 일어나고 있는 이 사태는, 어떻게 된것인지 …… 불길은 분지 바깥으로 나가지는 못하고 있었으나 행동을 제약하는데는 아주 멋진 효과 를 가져다 주었다. 불꽃을 배경으로 하여 날뛰는 그림자 둘. 그 그림자 둘의 손에는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 꽤 커 보이는 인영의 손에는 짧은듯한 날카로운 한자루의 단검이, 그리고 다른, 13세 정도의 소년으로 보이는 인영의 손에는 길다란, 청광을 한가득 뿜어내며 빛나고 있는 검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공통적인 것은, 두자루 무기에서는 기의 회오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며, 검이 휘 둘러 질때마다 가공스러운, 푸르르고 날카로운 검강劍剛이 사방을 찢어낼 듯 던져져 나온다는 것이었다. 인영 하나가 토막났다. 그들에게 달려들던 한 인영이 소년이 휘두르는 패검에 의해 그대로 토막났다. 소년은 생살을 베는 느낌과 더불어 둔탁한 느낌, 뼈를 자르는 느낌에 몸서리를 쳤지만 다시 몸 주위로 검로를 만들어 내며 흑의인들을 토막내어갔다. 흑의인들은 전형적인 암살자였다. 하나하나가 동귀어진의 수를 품고 있었으며, 틈만 나면 독 과 암기를 사용하려 들었다. 그러나 암기나 독을 써도 그 둘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 독하다는 시독屍毒계열의 극 독들을 써보아도 내색도 하지 않았으며, 암기들은 호신강기의 반탄력에 부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어려보이는 소년까지 검강劍剛을 초식없이 자유자재로 뽑아내 자신들을 베어오는 것 이다. 이번 암살령에 동원된 이들은 총 50명. 무림에서 손꼽히는 암살 조직중의 하나인 마월회魔月會의 흑령대 100명중에서 50명이 동원 된 것이었다. 이들 하나 하나가 1갑자 반을 상회하는 공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또한 꽤나 뛰어난 검수로 서의 능력도 존재했다. 그러나 신수사의가 발동시켜 놓은 기관진식에 걸려 허우적 대는 동안, 다섯명이 죽어나갔다. 그리고 수풀들을 지나오는 동안 신수사의가 난데없이 화약을 터뜨려 버렸고, 더군다나 뿌려 놓지는 않은, 그저 풀들 사이에 매달아 놓거나 내려놓은 기름주머니들 한가 득이 그대로 터져나가며 모든 풀들을 태워버렸다. 그리고 그 가운데 화약의 폭발로 다시 다섯명이 죽었다. 그만한 검수로써는 어이가 없는 죽음이었다. 그리고 지금 남은 사십명들, 이 사십명들 마저 가공스러운 검강과 검풍, 검기에 토막나고 있 었으며, 검을 막았다고 생각되었으면 이미 자신들은 저승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작 반각이 흘렀을 뿐인데 출동한 흑령대의 반이 몰살당했다. "크악!" 그가 움직였다. 이제껏 운이 더 많은 공격을 할수 있도록 배려만 하고 있었던 그가, 그가 움 직인 것이었다. 문득 저쪽 석조 건물의, 유일하게 안전한 곳에서 신수사의의 고통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그는 이맛살을 찡그렸다. 이런…… 낭패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그리고 참을수 없는 분노와 폭발. 그는 신법을 펼쳤다. 그리고 회풍무류검回風舞流劍의 검의劍意를 펼치기 시작하자 단 두초식 만으로 흑의인들 넷 이 죽어나갔다. 허공에서 몸을 핑그르르 돌리며 검을 베어낸 것이다. 그을린 도포자락이 화려하게 펄럭였다. 밤 중에도 확실하게 그 모습은 각인되었다. 흐름을 따라 유려하게 움직인 은빛의 호선 수십개, 그리고 운의 검풍劍風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강력한 바람의 검날이 뻗어나와 흑의인들의 사지를 가르고 지나갔던 것이다. 죽지 않은 흑의인들도 팔 하나가 잘리거나 몸을 살짝 베였다. 다시 한 번 몸을 허공에서 튕기듯 역회전하며 단검을 베어내리자 이번에는 검강이 터져나왔 다. 삽시간에 뻗어나온 검강의 줄기는 수십, 수백가닥으로 뻗어나가며 일제히 빗발과도 같이 지면에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비록 타들어가는 소리와 더불어 상승기류와 열기 때문에 조용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나 흑의인들의 모습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삽시간에 내리꽂히며 자신들을 관통한 검강의 줄기들…… 흑의인들은 몸에 적어도 20개 이상의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고, 거기서는 이제 피가 분수처 럼 터져나와 불길에 휘말렸다. 그리고 피가 타는, 단백질이 타들어가는 노린내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운이나 그는 그것들을 무시했다. 그리고 그들은 공력을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두명의 몸이 금광金光에 휩쌓였다. 그리고 금빛 의 기류는 빠르게 그들의 몸을 휘감으며 위로 하늘거리며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뛰었다. 금황령보金皇靈步! 둘 모두 동시에 오행대천공五行大天功을 운용하여 오행중 무극토無極土이자 중앙인 금황을 운용하여 운선보雲仙步를 펼쳐낸 것이다. 그리고 바람과도 같은 속도로 쏘아져 나간 그들은 서둘러 석조건물 내로 들어섰다. 그리고 보인 것은…… 피범벅이 된 신수사의였다. 그는 간신히 몸을 벽에 기댄채 신음을 흘 리고 있었다. 가슴을 가로지르는 길다란 자상. 상처에서 피가 쿨럭쿨럭 쏟아져 내려 이미 살아나기는 글러보였다. 그리고 운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신수사의에게 도검刀劍을 겨누고 있는 흑의인, 그리고 운이 쏘아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운이 쥔 청천검靑天劍에서 아지랑이와도 같이 푸르른 검기劍氣가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흑의인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도검에 방금 운이 생성한 검기의 수준과 비슷한 검기를 만들어내면서 찔러들어오는 푸르른 검을 튕겨냈다. 그러나 운은 튕겨냄과 동시에 그 방향으로 오히려 검을 날리며 몸을 회전해 반대방향에서 그대로 검을 짓치며 퉁겨냈고, 검기가 한층 강렬해 지며 흑의인의 검을 때렸다. 흑의인은 미처 검을 회수하기도 전에, 즉. 힘을 향하던 방향을 바로 잡기도 전에 운의 검이 오히려 그 방향으로 자신의 검을 후려 쳐버리자 자신도 모르게 검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검이 자신이 힘을 가하는 방향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운이 그에게 배운 것으로, 그가 암살자일 때 써먹었던 수법중 하나였다. 비록 암살자로써 행동하고 있었을 때 오로지 단 세 번만 써먹었던 수법이긴 하지만. 그리고 운의 검이 빠르게 그의 목을 가르려고 했다. 그러나 운은 문득 검을 거두고 뒤로 물 러났다. 그리고 사악한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맛보게 해주지." 몸을 날렸다. 그리고 흑의인이 반응하려고 하자 그대로 검으로 손목을 베어내려버렸다. 왼손 의 손목이 절단되어 바닥에 떨구어졌다. "끄아아악―!!" 그리고 매끄럽게 잘린 절단면에서 피가 세차게 뻗어나왔다. 흑의인은 고통에 차 비명을 질 렀으나 그가 제정신으로 돌아와 오른손으로 운을 공격하려고 하던 찰나, 운의 검은 이번에는 푸르른 호선을 그리며 매끄럽게 잘려나간 왼손목 위쪽의, 팔꿈치 부분 안쪽부터 팔꿈치 부분 바깥까지 시원스레 썰어버렸다. 서걱―! 다시 아까보다 몇배는 강렬한 고통이 그를 덮쳤다. 그리고 피가 더 거세게 솟아나오며 팔뚝 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운의 눈에는 살기殺氣와 광기狂氣, 그리고 참을수 없는 분노와 피에 대한 갈망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눈썹을 찌푸렸다. 이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수사의가 오늘 아침에 건 네주었던 비도飛刀중 한자루를 꺼내어 공력을 실어 집어 던졌다. 쉬이익― 그리고 비도는 파공음을 내며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쏘아져 나가 운이 쥐고 있던 청천검의 검면을 때렸다. 따앙―! 그리고 운은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는 자신의 앞을 움켜오는 응조수를 무 시하며 뒤로 몸을 튕겼다. 그리고 그를 쏘아보며 얼어붙을 듯한 냉기를 뿜어냈다. "왜 말리는 거야!!!" "기다려. 그정도 대가로는 안돼."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천천히 자신의 2성 공력을 느긋하게 개방하며 걸어갔다. 그리고 흑의인은 번개를 얻어맞은 것처럼 굳어버렸다. 그는 사신이었다. 사신의 낫이 목을 조여오는듯한 기분, 가벼운 한걸음이었다. 그러나 달랐 다. 그의 몸 주위에서 이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기의 회오리는 지금 그가 얼마나 고수인지 반증하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암살자인 자신이 이런 공포에 떨어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리 고 다시 한걸음, 피를 말리는듯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의 왼손이 느긋하게 들어올려져 살짝 뿌려졌다. 그리고 오른손에서 화끈한 통증이 전해졌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오른손을 바라보자, 엄지 손가락이 뽑혀나가 있었고, 적어도 여섯걸음 이상의 거리에 위치해 있던 그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살짝 쥐고 있는 것 을 본 그의 눈이 경악, 불신, 공포로 물들었다. "약했나?" 그의 싸늘한 말과 더불어 이번에는 그의 오른손이 튕구어졌다. 그와 동시에 네군데서 전해 져 들어오는 화끈한 통증 …… 피를 너무나 많이 흘려 제정신이 아니었으나 그가 어느새 격공점혈을 했는지 잘려나간 왼팔쪽에서 피가 쏟아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제서야 몸이 아예 움직이지도 조차 못하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물이 콸콸콸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아직 그는 멀었다는 듯, 입가에 잔인하지만 고혹적인 미소를 걸면서 뽑혀나간 손가락 다섯 개를 바닥에 뿌려버리면서 다시 아름답게 웃었다. 그리고 양손을 한꺼번에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한걸음…… 그가 손을 움직임과 동시에 한걸음 움직이자 의식이 공포로 물들었 다. 하지만 혀를 깨물수도 없었다. 그리고 하반신에서 끔찍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혈까지 짚여버려서 비명조차 지를수 없다. 그 래서 더욱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양 다리가 산채로 뽑혀나가있었다. 그러나 피는 몇방울 흘러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눈이 다 시 부릅떠졌다. 자신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라서 기의 족쇄에 잡힌 듯 걸어진 것이다. 그는 하얗게 웃었다. 다시 한걸음……. 또다시 한걸음……. 그리고 다시 양팔이 튕겨졌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날카로운 기운이 뻗어나와 그의 양팔의 남은 부분을 모조리 해체하고 뽑아버렸다. 이젠 사지가 없어진, 그러나 아직도 죽지 않고 있는 그의 눈은 고통과 공포로 아득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한걸음을 딛어 다가왔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서서, 왼손의 검지와 중지 를 합쳐서 죽 뻗은다음, 거기서부터 백색으로 일렁이는 기의 칼날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은 푸르른 강기로 물들었다. '메스도 있으니…… 수술을 해야지?' 입가에 광기어린 미소가 흘렀다. 그러나 정신은 차갑게 가라앉은지 오래였다.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그의 왼손은 한점 거리낌도 없이 매끄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흑의인의 뱃가죽은 그 대로 갈라져버렸다. 그리고 흑의인의 붉게 충혈된, 핏발선 눈이 튀어나올 듯 떠지면서 눈에서도 피가 흘려내렸다. 뱃가죽의 표면만을 갈랐는지, 내부만이 드러나 보일뿐 장기는 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다시 하얗게 웃었다. 이미 운마저도 그런 그의 잔인한 행동에는 질린 뒤였다. "자아…… 인체 해부를 해야지? 이런이런, 다리 근육도 해부해 봤어야 했는데…… 쿡쿡 쿡……." 그리고 그의 오른손이 뱃가죽을 헤집고 틀어박혔다. 다시한번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며 꿈틀 대지도 못하며, 속으로만 처절한 고통의 비명을 질러대는 흑의인. 이를 꽉 깨물어 서라도 고통을 이겨내고 싶었으나 근육은 모두 마비되어 있었다. 머릿속은 고통에 의해 이미 탈색된지 오래였다. 그는 웃었다. 그리고 나서 뱃속을 헤집으며 그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감상하다가 느긋하게 쓸개를 틀어 쥐고 뽑아냈다. 푸른 강기에 의해 손에 피가 묻지는 않았지만, 그는 즐겁다는 듯 웃으며 손에 쥐어진 쓸개 를 흑의인의 눈앞에 들이댔다. "킥킥킥…… 네 담이다. 그 다음은 무엇을 뽑아줄까?" 그는 한참 킥킥거리고 웃다가 담을 내 팽겨치고는 그대로 손을 다시 뱃가죽 속으로 쑤셔박 았다. 그러다가 문득 히죽 하고 웃으며 척추를 틀어 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부수며 안쪽의 젤라틴 질, 척수를 틀어 쥐었다. 공포와 고통의 반복으로 인해 이미 흑의인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반쯤은 죽은 상태 였다. 그러다가 그가 척수를 쭈욱 하고 잡아당겨 뽑아내 버리자, 그 상황에서 절명하면서도 고통에 몸부림 쳐야 했다. "큭큭, 이런, 보지 못하고 죽었군." 우윳빛인 듯, 하지만 피에 절어 핏빛으로 보이는 젤라틴 질의 끈을 바라보던 그는 그것을 내 던져 짓밟았다. 사람의 장기와 몸의 기관들이 이리저리 널린, 피칠이 된 방안은 처참해 보였다. 그는 히죽 웃으며 왼손에 형성한 기의 검을 길게 늘인다 음 그대로 떨어져 내린 흑의인의 목을 베어냈다. 그리고 머리를 쥐어올린 그는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던져올린 뒤…… 오른손을 휘둘러 그것을 깨어부수었다. 순식간에 깨어져 나 간 머리, 얼굴 가죽이고, 약간의 근육이고, 지방이고 하는 부분들은 모조리 피에 절어 바닥에 떨어져 내렸고, 순식간에 구겨지듯 찢어 져버린 회색의 뇌질과 투명한 주황빛 뇌수만이 흘러내려 바닥을 적시고 있을 뿐이었다. 구겨진 뇌질의 파편과 골편들, 그리고 빠져나온, 핏발이 가득 서 시신경에 대롱대롱 매달린 두 개의 눈알…… 그는 다시 키득키득 웃었다. 옷과 모습은 피에 의해 완전히 절어버린지 오래였다. 그는 다시한번 광기어린 웃음을 킥킥 거리다가 문득 웃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입가에 쓴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신수사의에게로 향했다. 어차피 신수사의는 죽은 목숨이나 다 름 없었다. 그 사이 운은 신수사의에게 정신을 돌려 그와 대화중이었다. "이…… 이거…… 엉망이군요…… 운 공자……" "하, 할아범……?" 갑자기 변해버린 말투. 운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수사의는 웃었다. 그리고 띄엄띄 엄 운의 가문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은 하얗게 굳어있었다. 신수사의는 다시 띄엄띄엄, 말을 흐리며 간신히 입을 떼었 다. "천…… 청검은…… 이제…… 천류세가의…… 신물…… 가문의 재건…… 하지 않으…… 셔 도 좋습니다……." 신수사의는 말을 끊었다. 운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침통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느릿느릿 그의 유언이 이어졌다. 먼저 운의 옆에 서서 죽어가는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던 그에게 말했다. "자네는…… 운 공자님의…… 보좌…… 할수…… 있겠나?"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는,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나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신수사의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그는 숨이 막히는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다가, 운의 손을 붙들고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자…… 무림맹주는…… 반…… 드시…… 짐…… 은…… 지하에…… 뜻을…… 이 루……." 말을 잇지 못하며, 신수사의는 고개를 꺾었다. 그리고 운의 표정이 멍해졌다. 하지만 1각정 도가 흘러도,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그리고 차갑게 굳은 표정의 운은 일어섰다. "당신 소원은 이루어 질겁니다. 노사……. 행복한 꿈 꾸기를 빌겠습니다." 그리고 운은…… 몸을 돌렸다. 청천검을 검집에 밀어넣었다. 검막이와 검집의 금속 테가 부 딪히면서 맑은 음향이 퍼져나갔고, 청천검의 검신에 서려있던, 예기와 보기, 그리고 서늘한 빛이 검집으로 감추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지하로 내려가 신수사의가 챙겨준 짐들을 집어 들었다. 어느것이 들었는지는 확인할 새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날로 백화곡을 빠져나왔다. ……불길에 휩쌓인 백화곡의 화광火光을 애써 무시하며. 그리고 그들은 백화곡의 비밀통로 를 이용, 수룡곡水龍谷에서 나가기 위하여 그 입구이자 출구로 들어섰다. 뜨거운 불길에 의해 그 생명이 사그라드는 꽃들과 나무들이 쓰러져 내린다. 그리고 이 파괴 의 현장을 빠져나오는 이들은…… 무림에 커다란 준동을 일으키게 된다. 황제국, 류流…… 건안 19년. ……4월 초순의 일이었다. 019. 무림출도武林出道. 아침의 시각이 다가왔다. 어슴푸레한 공기와 차가운 기류들, 그러나 저 너머의 백화곡은 아직도 불타고 있었다. 신수사의가 남긴 짐은 이러했다. 옷가지, 약재들, 엄청난 금액의 금표, 그리고 상당량의 금전 과 은전들, 천류세가의 무공비급과 심득서, 마지막으로 생생조화단生生造化丹 열 여섯알이었다. 그것들을 일단 갖고 있게 된 그들은 약간 굳은 표정이었다. 먼저 백화곡의 입구를 바라보고 있던 그들은 서로를 멀뚱멀뚱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그가 한숨을 내어쉬며 양손에 공력을 집중했다. 그리고 이글거리는 강기의 회오리가 그의 양 손에서 퍼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양손의 장심에서부터 퍼져나오기 시작한 강기의 기류는 공기중으로 흩어지며 강력한 잠력潛 力이 되어 동굴의 입구 안쪽으로 퍼져들어갔고, 그 웅혼한 위력을 잠재한 뿌연 기류는 동굴의 입구 바깥쪽까지 퍼져나왔다. "폭결爆訣!" 그의 짤막한 기합. 그리고…… 굉음轟音이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미세하게 뿌려진 잠력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더욱이 밀폐된 동굴 안쪽에서 충돌하며 그 충격파는 동굴벽에 부딪히며 더더욱 증폭하기 시 작하였고, 결국 이 잠력폭뢰결潛力爆雷訣의 위력은 두배 이상으로 증가되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손쉽게…… 동굴은 무너져 내렸다. 쿠르르르르릉――!! 콰콰콰쾅――!! 은은한 뇌음으로 시작된 진동과 폭발은 이제 그들이 서 있는, 동굴 입구로부터 10여장 떨어 진 이곳마저 진동으로 울리기 시작하였고, 근처 숲까지 뒤흔들었다. 그리고 새들이 요란하게 짹짹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상당한 불만이 어린 새소리가 퍼져나가고, 그들은 입을 다문채, 폭음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가…… 미련어린 눈길로 백화곡의 막혀버린 입구를 바라보았다. 입구 근처의 절벽에 금이 주욱주욱 가더니 순식간에 돌덩어리들이 쏟아져 내렸고, 그것은 입구를 막아내린 것이었다. 그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미련을 털어내며, 몸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수룡계곡의 입구로. "운, 괜찮겠어?" 그의 걱정이 담긴 목소리, 운은 자조어린, 쓴웃음을 짓고 나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둘은 걷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 이라기 보다는 습기어린 바람이 수룡 계곡 내부를 울리고 있었다. 그의 길 이 개념으로는 거의 1천 m에 육박하는 높이의 절벽絶壁, 천인단애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토질은 갈색에 회색질이 섞여있었고, 철 또한 포함되어 있었으나 습기때문인지 철광석이 붉 게 변색되어 붉은색, 갈색, 회색질이 섞여 묘한 느낌은 던져주는 절벽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걷고 있는 곳은 이 서너장 폭의 길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물이 거센 소리 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는데, 그 기세는 너무나 대단했다. 오래전부터 바닥을 침식시켜왔다는 것을 증명하듯, 계곡 안쪽으로 흐르는 물은 침식에 침식 을 거듭해 그들의 옆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그리며 꽤 깊이 내려가, 그쪽에서 흐르고 있었다. 물은 토질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리 맑지 않았다. 탁류濁流가 거세게 흘러가며 포말을 일으키고,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그것을 보며 운은 현기 증을 느꼈다. 다시 습기어린 바람이 그들을 스쳐갔다. 그리고 피로 범벅이 된 옷을 벗어 던지고 어느새 갈아입었는지, 피 한방울 묻지 않은 도포의 자락이 그 바람에 몸을 맡기고 계곡의 상승기류를 따라 멋지게 펄럭였다. "……." 침묵, 운과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와 운은 생각을 정리중이었다. 너무나 복잡한 심사, 그리고 신수사의의 부탁 때문에 기분이 묘한 운과 역시 신수사의의 마지막 부탁…… 운을 보좌해 달라는 그 부탁을 되씹어 보며, 자신이 왜 수락했는지에 대해서도 되씹어 보면서…… 그와 운은 그렇게 사색에 잠겨있었다. 괜히 답답한 심사를 달래기 위해 한층 걸음을 재촉하는 그들이었다. 그 무렵…… 백화곡에서 번져나오는 연기를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실패인가? 신수사의가 그렇게 고수일 리가 없는데……." 백의白衣를 걸친 사내, 꽤 건장한 몸을 가진, 허리에는 무림인들이 주로 쓰는 얇은 패검을 걸친 이가 절벽 위에 서서 그것을 관찰중이었다. 백화곡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거센 상승기류를 타고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비록 얼굴을 천으로 감싸 가리긴 하였으나, 맑은 빛을 품은 눈동자와 비져나온 흑발, 그리고 얼굴선은 꽤 미남형이라는 것을 알수 있게 하였고, 그가 뿜는 분위기도 가라앉고 맑은 것이어서 정파의 인물임을 바로 알수 있었다. 용오름하듯 솟구쳐 오른 시커먼 연기는 곧 공기중으로 흩어져 나갔다. 그것의 여운을 관찰 하려는 듯, 시선을 그곳에 붙든채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는, 뒤쪽에서 대기중인, 꽤나 정기精氣를 뿜어내 정파의 인물들임을 알수 있는, 꽤 대단한 실력 의 무림인들 삼십 여명을 돌아보며 말했다. "수룡계곡의 입구에서 대기한다. 신수사의는 그렇다 쳐도. 그 꼬마는 반드시 제거한다. 무림 사가武林邪家…… 천류세가의 핏줄이다. 입구에서 매복한다. 흔적을 남기지 말고 흩어져서 움직이도록." "존명尊命!" ……그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한결과 같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빠른 속도로 경신법을 전개하여 수룡계곡의 두 개의 입구로 향했다. 다만, 그 두 개의 입구가 한자리에 모여있다는 점에서는…… 별로 할말이 없다. 그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와 같이 역시 백포와 천으로 몸과 얼굴을 가린 그들이 사라지자. 그도 역시 신법을 전개하여 쏘아져 나갔다. "……." "운." "방금…… 그 기척 느꼈어요?" "아, 서른 몇 개정도였는데…… 대충 서른 일곱명이었지. 마지막 녀석은 잠시 대기하다가 움 직였군." 운은 감탄했다. 자신은 그처럼 정확하게 느끼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는 잠시 쓴웃음을 짓다 가 말했다. "아무래도, 벌써부터 너를 노리는 녀석들인 것 같군."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느긋하게 지형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차피, 여긴 좁으니 다수로 상대해올 그들은 아마…… 입구에서 기다릴 것이다. 뭐, 나갈 때 까지는 느긋하게 관찰하며 가는게 오히려 그들의 긴장을 극대화 시키고, 더 지 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운 역시 그 좋은 머리를 굴려서 그런 생각을 도출해 냈는지, 역시 느긋하게 움직였다. 그러 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났다는 듯, 그에게 질문했다. "저기, 이름을 지금까지 쓰지 않았잖아요? 이제 무림에 나갈건데……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그렇군." "성이 뭐에요?" "……잊었어."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회피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딴청을 피웠다. 자신 의 본명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그 이름을 떠올리면…… 잊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싶은…… 가족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의도를 알았는지, 운은 훗 하고 웃으면서 생각해 보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어갔다. 그때, 그가 입을 열었다. "이름 따위야……. 나가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겠지." 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맨 처음 무림에서 하는 행동…… 바 로, 살인殺人 일지 활인活人 일지에 따라 명성과 악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인 대상, 혹은 살려낸 대상의 이름에 따라…… 다시 말없이 걷기 시작한 그들. 반경쯤 되는 시간을 걸었을까. 곧 앞쪽에 수룡계곡의 입구가 나타났다. 이리저리 꺾어지고 나뉘어 지기도 하는 길을, 이미 지도를 보아놓은 그들, 그리고 두 번 정도 훑어보고 모두 다 외워버린 그들이었기에, 별 어려움 없이 수룡계곡의 입구 두갈래중 한갈래로 나올수 있었다. 그때였다…… 이러한 소리가 들려온 것이. 콰쾅―! 바로…… 가공된 기…… 즉, 검기, 혹은 강기가 부딪히는 소리였다. 그들이 최대한 몸을 숨기며 부영행浮影行의 신법과 백운보魄雲步의 신법身法으로 빠르게 바 닥에서 떠올라 마치 귀신과도 같이 뿌연 빛으로 흩어져 입구쪽으로 흘러가자 곧 그들의 시 야에 상황이 잡혔다. ……그건 좀 묘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36명이 번갈아 가며 연수합격을 펼치는 진법 陳法…… 운과 그가 책으로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진법을 펼치며 이리저리 검을 뿌려대며 움직이는 36명의 백의인들 안쪽으로 한 노인과 손자로 보이는 소년 하나가 공격받고 있었던 것이다. 좀 묘한 것이, 저쪽 입구에서 나온 듯 한 그들은, 상황만 본다면…… 딱 신수사의와 운의 역 할을 할수 있는 이들이었다. 다만 좀 놀라운 것은, 저 노인이 양손을 휘둘러서 무시무시한 강기剛氣를 뿌려대며 그들의 머리를 부숴놓으려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만, 저쪽의 백의인들은…… '신수사의가 이런 고수였다니!' 라고 마음속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은 꽤 창백한 인상이었는데. 이런 일을 꽤 많이 당한 듯, 아주 담담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이 만약 저 소년만 보호하지 않는 상황이었다면 이미 절반은 노인의 매서운 수강手剛에 토막나거나 머릿통을 맞고 그 즉시 저승에 날아가서 염라대왕을 알현(?)하고 있었을 것이 다. 노인은 초식을 무시하며 기본기만으로 강기를 펼쳐내고 있었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화경化境, 혹은 극마極魔의 고수였다. 강렬한 살기를 뿜어내며 양손으로 핏빛 강기를 토해내고 있는 노인. 그 당당한 풍채와 휘날 리는 백발은 꽤 멋진 장면이었다. 다만…… 운과 그가 조금 찝찝한 것은 자신들 대신 그들이 당하고 있다는 점이었지만…… 그들은 잠시 몸을 감추고 있다가, 노인이 위험해 지면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노인이 문득 대갈일성하더니 쌍수를 한 번 쳐내렸다. 그리고 용오름 하는 강기의 회오리가 그의 양손에서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운 의 눈이 이채로 물들었다. "파마천멸장破魔天滅掌!" 파마천멸장…… 정파의 무예중 하나인 이 장법은, 그 독랄함과 강력함이 이루 말할데 없을 정도의 장법이었다. 그 초식은 매우 단순하고 간단하였다. 그러나 기의 운용은 말로 할수 없을 만큼 심오하고 막대했다. 그 위력은 엄청났다. 극성까지 연마했을 경우 그 장법에서 쏘아져 나오는 강기의 위력 하나 하나가 화경의 고수가 받아내기에도 힘들정도의 위력이라는 점에서 그 무서운 위력은 충분 히 입증되었다. 하지만 그 난해함도 엄청났다. 오죽하면 극성까지 연마한 사람이 무림에 오직 둘 뿐이었겠 는가. 그것도 그나마 한명은 마교의 17대 교주 파천마破天魔였고―마교가 그 비보를 얻어냈고, 지 금도 소유중이다.―, 또 한명은 맨 처음 그 장법을 시전했다고 알려지는, 무림오천중의 하나인 광협狂俠 문열이었다. 대체 어느 문파의 절기인지,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알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 노인 의 손에서 파마천멸장이 펼쳐진 것이었다. 바로 노인이 마교의 인물이란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본디 파마천멸장은 마공이 아니다. 위력도 막대하나 마교에서 익히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익힌다고 해도…… 너무 난해한 것이다. 그런데 저 노인은 거의 극성까지 파마천멸장을 익힌 것 같았다. 방금 펼쳐진 수법은 파마천멸장, 종식終式. 파천파지破天破地의 수법으로, 단 한 번의 쌍장 으로 강력한 강기의 회오리를 일으켜 넓은 범위를 휩쌓아 버리는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 범위 내에 들어선 자라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노인의 쌍수에서 펼쳐져 나온 파천파지의 핏빛 강기 회오리는 삽시간에 십여명의 백의인들 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러나 진법의 위력과 각기 36명이 동시에 펼쳐낸 각기 진신절학에 의해 강기 회오리의 위 력도 꽤 약해진 채 그들에게 도달했고, 더구나 호신강기에 부딪히면서 고작 십여명만 죽일수 있었을 뿐이다. 보기에는 3분의 1만이 죽었을 뿐이었지만, 남은 이들의 대부분은 심각한 내상을 입은 뒤였 고, 울컥 하고 피를 토해내며 품속에서 단약을 꺼내 삼켰다. 내상약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자리에 앉아 운기조식에 들어섰다. 그리고 멀쩡한듯한 여섯명의 무림인들을 보며 노인이 움찔 하는게 보였다. 그리고 지휘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백의인이 마침내 움직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노인의 공력 소모를 알고 있던 운과 그는 일단 눈에 띄는 신법을 발휘 하였다. 오행대천공五行大天功, 중의 금황과 화왕의 금행화열보金行火熱步를 펼친 것이다. 곧 강렬한 적색과 금색의 기류가 섞여서 그들의 몸에서 피어올랐다. 전보다 한층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간 그들, 그제서야 남은 이들도 그들의 접근을 알아챈 듯 했다. 움직이기 시작한 백의인은 노인을 쏘아보며 질문했다. "신수사의…… 어떻게 파마천멸장을 익혔지? 설마 마교와도 관련이 있는건가?" 노인은 끓어오른 기혈을 다스리면서 그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나서 씹어뱉듯 말했다. "이 놈아! 누가 신수사의라는 것이냐! 본좌도 오늘 그 빌어먹을 놈을 찾으러 왔다가 백화곡 이 타는 것을 보고 헛걸음을 하고 있거늘! 감히 이 아이를 상하게 하려 들어 한수 보여준 것 뿐이다!" 그 말을 듣고 백의인은 아득해 오는 정신을 간신히 추스렸다. 그리고 그의 수하들도 아찔해 오는 정신을 간신히 추스렸다. '그럼 오해로…… 백황대白荒隊의 3할을 잃었단 말인가?' 그때 그와 남은 그의 수하들, 그리고 노인은 다른 계곡 입구를 바라보았다. 금빛과 붉은빛이 섞인 기류를 몸에 휘감은 두 신형이 쏘아져 오고 있었다. 020. 철마鐵魔 무정武定. ……쏘아져 온 두 신형은 모두가 멍해진 사이 그대로 회전해 그 힘을 사방으로 흩으면서 제 자리에 섰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한명의 청년과 한명의 소년이었다. 둘다 날개뼈 아래까지 기른 머리카락을 다듬지도 않은채 흩어놓은 머리 모양새를 하고 있었 다. 그리고 소년의 눈에는 강렬한 정기가 떠올라 있었으며, 잘 갈무리된 날카로움이 배어나오고 있다. 흑색의, 심연과도 같은 눈동자는 깊디 깊었다. 맑은 살결과 새하얀 피부, 호리호리한 몸매…… 미남美男이라는 조건을 모두 갖춘 소년이었 다. 그리고 그런 소년을 보면서 이곳에 있는 모두는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청년은 전혀 무술을 배운 모습이 아니었다. 태양혈이 튀어나오거나 한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눈동자에 어떠한 기운 한점 없었다. 그러나 티없이 맑은 눈동자와 지나치게 깊은, 칙칙하게 까지 느껴지는 흑색의 눈동자와 무 림오미를 능가하리 만치 아름다운 외모와 가녀린 얼굴선, 그리고 가느다랗게 느껴지는 팔다리는 그가 학자형이라는 것을 반증하고는 있었으나, 문제 는 아까의 그 신법과 눈동자였다. 초절한 신법은 그들로써도 상당히 힘든 경지의 빠르기였다. 그리고 풍겨온 기운이란 결코 만만한게 아니었다. 그리고 청년의 눈동자…… 바로 반박귀진, 이곳의 고수들은 본능적으로 저 청년이 추정되는 나이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무서운 실력을 지녔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는 긴장하고 있었다. 저 성장기의 모습을 보이는 소년은 벌써 화경이라는 경지 에 올라있었고, 그의 보호자 처럼 보이는 저 청년은 얼마나 높은 경지일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소년이 오히려 앞에 서고 청년이 뒤에서 그를 보좌하듯 서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뒤의 청년이 더 눈에 잘 들어왔다. 그리고 아까의 신법으로 미루어보아도 청년이 더 낫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수 있었다. 자칫 소년의 허리에 걸린 검을 놓칠뻔 했지만 그것 역시 예리한 병기 임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서 운기조식에 들었던 인물들이 하나하나 깨어나기 시작하자, 그들은 꿈에서 깨어나듯 방비 자세를 잡았다. 묘한 삼각형의 대칭구조, 그와 운. 그리고 노인과 손자로 짐작되는 소년. 그리고 잔뜩 긴장 하고 있는 백황대의 인물들과 그 우두머리…… 잠시 그들은 침묵을 가졌다. 그리고 운이 입을 열었다. 백의인들을 향해서. "그대들은 무림맹武林盟 파사조직破邪組織중 하나인 백황대百荒隊요?" 소년의 맑은 목소리가 그들을 일깨웠다. 그것을 알고 있는 소년을 살기어린 눈으로 훑어본 백의인의 우두머리는 씹어뱉듯 운에게 질문했다. "네놈은…… 어찌 알고 있는 것이냐?" "흥…… 그대는 백황대주, 뇌무검룡雷霧劍龍 초영빈이로군." 자신의 정체까지 단숨에 알아채버린 소년을 보며 그는 속으로 경악해 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무림의 칠룡중 하나인 뇌무검룡 초영빈은 그 영리하기로 소문난 머리를 굴린 후에야 소년의 정체를 알아챘다. "네, 네놈은…… 설마!" "설마가 사람잡지. 천류세가의 현 가주. 유운이다." 당당한 운을 보며 소리없이 미약한 미소를 띄우고 있던 그는 옆에서 느긋하게 대답했다. "본인은 가주의 심복인 영影이오." 그 말을 듣고, 모두들은 그게 가명임을 알아 챘다. 성조차 말하지 않고 다만 그림자라고 했 다는 것은 어쩐지 암호화 된 이름인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름을 말하지 않으려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던 것이다. 뇌무검룡은 코웃음을 치려고 했다. 그러나 운의 눈동자에 가득 서린 날카로운, 그러면서도 강렬한 정기를 보았을 때. 번개를 맞은 듯 몸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럴수가……" 자신도 이르지 못한 화경에…… 추정 나이 12세의 저 천류세가의 가주라고 스스로를 밝히는 유운이라는 소년은 올라있었다. 게다가 천형육음절맥으로 알려진 자라 별 걱정하지 않았는데…… 그 자신을 능가하는 수준 에다가 현경으로 짐작되는 청년을 끌고 자신들의 앞에 당도해 있으니…… 뇌무검룡은 입술을 짓씹었다. '무림에 혈풍이 불겠구나!' 그리고 노인도 조금 놀라고 있었다. '허허, 그 신수사의 영감이 천형육음절맥을 치유했단 말인가? 그런데…… 대체 백문놈은 어 디에 있는 것이지? 이녀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가 필요한데……' 노인은 즉시 끼어들어 유운이라고, 대담하게 천류세가의 가주라고 밝힌―그 대담성도 마음 에 들었다. 물론 천류세가가 마교의 본단을 털어간 일이 있었으나 그는 별로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 다.― 소년에게 질문했다. "백 노사…… 녀석은 지금 살아 있는가? 백화곡에 불길이 오르던데." 운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백 노사라…… 운은 신수사의와 아는 사람인 것으로 짐작되자 약 간 눈에 부드러움을 담고 대답했다. 하지만 입가에 쓴 미소가 생겨나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이미 악적들에게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노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마기와 살기가 폭발하기 시 작했다. 그리고 쩌렁쩌렁 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뭐라고―!!! 대체 어떤 자가 그를 죽였단 말인가!" 마기를 풀풀 날리는 노인은 아직도 진기가 충천한 듯 거의 아수라의 형상을 이루었다. 눈이 붉어지며 마기가 휘몰아 오르면서 그의 옷자락을 펄럭였다. 흙먼지가 마기의 기류에 따라 흩어진다. 영은 그를 보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형장, 침착하십시오. 이미 노형장께서 복수를 시작하셨으니." "……무슨소리냐?" "이미 백황대 삼분의 일을 때려죽이지 않으셨소? 배후는 무림맹이겠지만." 영의 차분하고 싸늘한 목소리에 정신이 든 듯, 목표를 백황대로 바꾼 노인은 그대로 날아오 르려…… 했으나 운의 질문에 멈추어야 했다. "형장께서는 영명이 어찌 되십니까?" "……무정武定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백황대에 침묵이 찾아왔다. 철마鐵魔, 무정! 거의 탈마에 이르른 극마의 고수라는 철마, 무정…… 마교의 전대 교주인 철마는 강철과 같은 모습과 그 잔혹한 손속으로 수많은 정파인들을 살상했으며, 그 무예는 무림맹주도 감히 넘볼수 없었다 한다. 나이는 200세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한마디로…… 이 무정이라는 노인은 현재 태상교주라는 말이다. "철마셨군요." 잠시 무정은 노안을 들어 운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잠시 바라보던 무정은 감탄을 터뜨렸 다. 속내로 감추어지긴 하였으나 놀란 것은 놀란 것이었다. 이 젊은 친구는 거의 자신의 힘에 육박했다. 아직 좀 모자라긴 하였으나, 아무리 적어도 5천 초식 이내로 제압할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문득 영이라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저 영이라는 청년 또한 만만치 않았다. 몸에서 풍 겨나오는 약간의 냉기와 담담함, 그리고 이지적인 분위기는 그가 천재天才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부류의 천재와는 무언가 달랐다. 마음 안쪽에 빛을 가둔듯한 느낌…… 하지만 그 빛도 이상할 정도로 어둡게 느껴지는 그 무언가가……. '암살자暗殺者 출신인가? 정말 감탄스럽군, 내 생애의 10분의 1쯤도 살지 않았으리라 생각 되는데…… 분위기도 그런데…… 나보다 더 대단한 고수군. 벌써 현경玄境이란 말인가……!' 잠시 그가 영에 대해 감탄하는 사이, 철마라는 이름에 굳어있던 백황대들은 저들이 저런 분 위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하자 점점 불리해짐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룡의 입이 열렸다. 전음을 사용한 것이다. 「퇴각한다.」 범위를 최소로 한 전음이었기에 아마 철마나 저 천류세가의 잔챙이―라기엔 너무 놀랍지만. 현경과 화경이니까.―들은 듣지 못했으리라. 이렇게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는 사이…… 백황대들이 공력을 끌어올려 막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영의 몸에서 거대한 기류가 뿜어져 올라왔다. 그리고 백황대와 검룡은 번개맞은 듯 몸을 굳히며 움직이지 못했다. "가주…… 척살령刺殺令을." 스산한 목소리에 철마와 운, 그리고 철마가 데리고 있던 소년이 몸을 떨었다. 화경의 고수가 몸을 떨 정도의 살기. 그리고 운은 떨떠름하게,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떠올랐다. 영이 가볍게 발을 땅에 내리찍어 도약하자 거의 5여장을 쉽사리 도약하고 있었고, 그와 동 시에 도포 자락 안에 숨겨져 있던 새하얀 손이 튀어나오며 휘저어졌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금강폭열공金剛爆熱功. 제 일초. ……신룡현세神龍現世." 양 손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어떤 초식도 아닌듯한 평범한 움직임. 그러나 결과는 결코 평범 하지 않았다. 금빛의 강기剛氣가 그를 중심으로 하여금 넓게 퍼져나왔다. 의형강기意形剛氣와 강기신공剛氣神功이 함께 펼쳐지면서 금색의 회오리가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금강폭열공……. 이것은 그가 무형검無形劍을 익히려다가 우연히 생각나 창안한 무공으로 몇 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모두가 강기신공, 강기발출의 무예로써, 상상하기도 힘들만큼의 파괴력을 내지만 화경의 고 수도 결코 극성까지 연마할수 없는 난해한 무예이기도 했다. 그러나…… 위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금빛의 서광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그의 양손이 그린 원에서 64가닥의 기운이 뻗어나왔 다. 그리고 그것은 길다란 신룡의 형태로 변화했다. 극도의 의형강기, 선명하기 그지 없는 64마리 신룡들은 각기 방위를 점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다가 한 점, 파황대의 중앙에서 원을 그린 사방으로 빗발이 내리 꽂히듯, 비스듬히 내리 꽂혀갔다. 1장을 차지하는 길이의 신룡은 금빛의 화려한 불꽃을 몸에 휘감은채 쏘아져 나가며 포효하 는 듯 입을 벌렸고, 순식간의 금색의 강기의 용들은 삽시간에 남은 백황대의 몸을 파고들었다. 공격 찰나 간신 히 그의 기세를 벗어난 뇌무검룡 초영빈은 간신히 강기의 빗발을 피했다. 그리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수하들을 갈기갈기 찢고 그 육편과 골편을 사방으로 비산하게 만든 강기의 용들은 이제 방 향을 선회해 자신의 64개 방위를 점하며 쏘아져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공포에 질려 검을 휘두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이, 이럴수가……!' 금빛의 황홀한 용 하나가 자신의 어깨를 쉽사리 물어 뜯고 지나갔다. 어깨는 매끄러운 절단면으로 잘렸으나 용이 자신의 팔을 물어뜯고 지나가는 감촉은 대체 뭐 란 말인가…… 절단된 왼팔. 그제서야 제정신을 차린 그는 패검을 뽑아들고 모든 공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금빛의 용들은 위력이 전혀 감퇴하지 않은채 자신의 몸 주위로 빙글빙글 돌았고, 강 기의 소용돌이로 변했다. 그 화려함과 무서움, 그리고 장대함에 이미 철마와 운, 그리고 소년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구경중이었다. "크아아아아!!" 발악처럼 고함치며, 검룡은 필생의 공력을 담아 강기의 용들을 향해 부딪혀 나갔다. 부질없 는 짓이란 것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신을 끌어온 자존심이 포기라는 것을 허락치 않았다. 파지지지직―!!! 그의 공력이 모두 검에 실려들어가며, 가문의 상승검법중 최고의 검술인 전광뇌격검電光雷 擊劍의 최종초식, 뇌살강염雷殺剛焰이 펼쳐졌다. 몸을 튕기며, 왼쪽 어깨의 통증을 잊으려고 모든 기합을 넣어가며, 하늘빛의 뇌전을 휘감고 퍼득거리는 패검을 사방으로 부딪혀 갔다. 그러나 허무하리만치…… 너무나도 쉽게…… 전광과도 같은 기세로 사방을 때린 푸른빛의 검강은 너무 쉽게 강기의 용에 먹혀버렸다. 그 리고 사신의 낫이 자신을 덮치기 직전, 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강폭열공, 제 이초…… 신룡회류神龍回流. 강기풍剛氣風." 전광검을 너무나도 쉽게 잠재운 강기의 용들은 회전의 속도를 늘려갔다. 마치 금빛의 고리 십수개가 그려지는듯한 환상적인 장면 가운데,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냈던 어떤 시체보다 더 처참한 시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금빛의 고리…… 원형 공동과 비슷한 공간이 강기의 고리들 안쪽에 만들어졌고, 그 안쪽에 는 공포스러운 기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어검술을 사용할 때, 이글거리는 바닷빛의 주위에 생겨나게 되는 강력하기 짝이 없는 강기 의 회오리…… 그것보다 몇배는 강한듯한 금빛의 기류가 흘러들어와 안쪽을 찢어발기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현경의 고수들이 쓰는 강기신공과도 비교조차 되지 않는 강력한 기운이었다. 틀이 잡히기 시작하는 흐름의 검예와 이제 발견한 무형검의 실마리, 그리고 강기신공을 첨 가한 것 만으로도 그 위력은 일전의 현경에서 쓰는 강기신공보다 몇배는 강력했다. 한점, 한점, 살이 떨어져 나가며, 떨어져 나간 부위에서 핏방울이 가득 쏟아져 나와 기의 회 오리에 휘말려 점점이 분해된다. 그리고 떨어져 나간 살점들도 강기의 회오리, 그 화려하기 짝이없는 금빛의 불꽃과 그 폭풍 에 휘말려 가루가 되어버렸다. 금빛의 회오리에 휘말려 몸이 분해당하며 막대한 고통을 느끼던 검룡은…… 불신과 경악에 찬 눈초리로…… 그렇게 생명을 꺼트렸다. 멍해진채 그의 예술에 가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금강폭열공의 일초와 이초를 구경하던 철마 와 운, 그리고 소년은 퍼뜩 제정신을 차리며 경이에 찬 눈으로 영을 바라보았다. 손의 가벼운 움직임과 진기의 운용만으로 회류강回流剛의 묘용을 펼치는 영은…… 그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신에 가까운 무예를 손에 넣은 이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릴 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직 멀었군.' ……만약 이 말을 들었을 경우. 운과 철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를 일이다. 만약 무림인들이었다면 한달 내내 그를 씹어대기에 충분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보며 스스로에 대해 되씹어 보고 있는 그의 주위로 부연 흙먼지가 사 방을 덮어나가고 있었다. 021. 거세어질 혈풍. 그는 바람이다. 문득 자신의 길을 따라 스쳐가는 가운데, 햇빛을 가르고, 물의 향기와 숲의 푸르름, 그리고 대지의 포근함을 느끼며 그렇게 자신의 길을 스쳐지나 가는 가운데. 미약한 흙먼지가 저 멀리서 일어나는것이 보였다. 그리고 광폭한 기운도. 문득 호기심을 느낀 그는 자신이 낼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공중 을 한바퀴 선회하여 흙먼지 사이로 뛰어들었다. 흙먼지를 할퀴어 흩어내었다. 그리고 청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19세 정도나 되었을까? 앳된 모습이었다. 머리카락은 삼단과 같았다. 깊은 흑색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금빛의 화살을 모두 되튕겨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붉디 붉은 입술이 아담하게 얼굴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새하얀 얼굴은 창백하게 까 지 느껴질 정도였다. 약간 날카롭지만 부드럽게 변할수 있는 눈매와 깊은 눈동자. 그리고 부드러움이 묻어나오는, 입가에 걸린 미소. 그 모습은 전체적으로 이지적이었고, 얼핏 보면 학자인것처럼 느껴지게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문득 바람은 멍하게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제정신을 차리고는 스쳐지나가며 가벼운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리고 문득 그의 입이 열렸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바람은 아늑한 햇살이 따갑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부는군……" 바람이 한바탕 스쳐지나가고 난 뒤에, 침묵이 무겁게 깔렸다. 노인은 조금 조심스러움이 깃 든 얼굴로 청년을 살폈다. 청년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 깊고 맑은 하늘빛을 잠시 회상어린 얼굴로 바라보다가. 시선을 땅으로 돌렸다. 문득 운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입을 꾹 다문채 그의 새하얀 손을 응시하다가 시 선을 그의 얼굴로 돌렸다. 그리고 나서 전음을 사용했다. 어기전성의 수법이었다. 「방금 제거한 이는 뇌무검룡雷霧劍龍 초영빈으로…… 무림의 칠룡중 서열 2위로 알려져 있 지. 무림맹에서 비밀리에 기르는 파사조직중 하나인 백황대의 대주로 정해져 있지. 백황대가 천류세가를 공격할 때 선두에 섰던 조직인데…… 운이 좋았어. 확실히, 나오자 마 자 바로 제거할수 있을줄은…… 하지만…… 뭔가 이상해. 부대주가 있을텐데.」 "아마…… 무림맹에 알리기 위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떠나갔겠지. 귀식대법을 써서 나도 기 척을 알아볼수 없었는데…… 저쪽 위에서 빠져나간 것 같더군. 그리고 뇌무검룡이던가…… 방금 내 공격에 죽어나간 녀석이 어기전성으로 뭔가 지시를 내 리는 것 같던데." 전음이 아닌 육성으로 대답한 그는 느긋하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문득 철마 무정 에게 시선을 돌린다음 말을 던졌다. "백 사부를 찾는 것이었다면…… 의학에 관계된 일일 것인데. 소공자께서 병에 걸리신겁니 까?" 무정의 안색이 잠시 멍해졌다. 그러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그에게 '치료 할수 있는 가?'라는 의미가 담긴 눈빛을 쏘아붙였다. 그는 조용한 미소를 머금더니 말했다. 이미 허공을 격하여 소년의 몸 상태를 이미 다 꿰고 있었다. "천살지기를 타고 났으나 그것이 백회에 모여서 천살도, 천명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가 되어 서 기혈이 들끓는 것. 하루 4각동안 음기가 몸에 차오르고 양기가 빠져나가며 경락을 손상시키며 생명을 감축하는 병입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무정은 믿을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아무리 허공을 격해 살필수 있다 해도 의학지식이 없다면 이런식으로는…… 그러다가 무정 은 뭔가를 문득 깨닫고 그에게 질문했다. "혹시…… 백노사의 진전을 이어받았나?" 그리고 그의 얼굴이 미미하게 끄덕여지자 무정의 안색이 환해졌다. 세 개의 인영이 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한 개의 인영은 등에 무언가를 업은듯한 모습이었 다. 세 인영은 나는 듯 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들의 신형이 바람을 갈라버리며 움직였다. 이 세 인영은 각기 영, 운, 무정으로 현재 무정의 손자인…… 그러니까 마교의 소교주인 '무 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마을을 찾고 있었다. 라기 보다는 안정된 장소였지만 말이다. 무정은 이 무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백회혈을 자신의 기운으로 공격도 해보았다. 그러나 무진이 오히려 고통속에서 몸부림만을 쳤을 뿐. 천살지기가 스며들어 굳어진 그 단 단한 막은 뚫릴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그가 진력을 꽤 소모해 몇 달이나 뼈빠지게 운공을 해댔을뿐. 하지만 무진의 세맥과 온갖 혈도는 백회를 제외하면 타통된 상태였다. 임독양맥과 생사현관을 제외한 혈도는 거의 뚫린 상태였다. 하지만 영의 설명을 들으며 그 행동을 후회해야했다. 몸속에 조금이나마 천살지기가 스며들 어서 그 기운이 백회로 정렬된 상태였을때는 오히려 한꺼번에 모든 혈도를 뚫으며 백회를 관통시키면 그 무서운 압력으로 인해 경락이 정상으로 회복되며 그것으로 임독양맥까지 뚫 을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다른 혈도를 뚫어놓으면서 백회에 더욱더 많은 경락의 힘이 스며들기 시작했 고, 이젠 선천기마저 백회로 이동하게 되어, 만약 백회에 조금이라도 타격이 가게 되면 생명이 깎여나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기회는 있었다. 그가 이 방법으로 백회를 풀어 자신이 만들어낸 '북명천지조 화심법北冥天地造化心法'을 전수해서 이기인타유기혈공異氣引他流氣穴功을 사용하여 백회에 쌓인 기운을 모조리 전환시켜 단전으로 유도해 일주천하면 오히려 천살지기와 경락의 손상 부위에 실려있는 뜨거운 기운이 순수한 음양의 공력으로 화해 단숨에 2갑자의 공력을 쌓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어느정도의 영기靈氣가 몸에 쌓여서 그것마저 흡수하면 3갑자의 공력도 가능하 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가 지금 '북명천지조화심법'을 쓰고 있고, 운 역시 그것을 쓰는데도 그의 몸 주위에 생기는 강력한 영기의 고리는 자신에게만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의 현재 공력은 자그마치 500년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 쌓인 영기는 거의 400년 에 달하는 것이었으며, 그와 동시에 그의 몸 주위에 회전하는 영기는 몸에 쌓인 영기와 맞먹는 무서운 것이었다. 이것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무림 역사상 두 번째인 1천년 공력이라는 것이 될 것 이다. 그런데 문제점은, 몸 바깥에 쌓인 영기는 도무지 연결이 된건지 되지 않은건지 알수 없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손에 닿아도 반탄하거나 하는 것이 없어 도무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경락이 연결된 것도, 그렇다고 장심을 대고 흡수하려고 해도, 흐름으로 느껴보아도 도리가 없는것이었다. 그나마 발전된 것이 고리의 흐름 방향을 급속하게 바꾸어 주변의 대자연력을 파동치게 만든 다는 것 정도였다. 뭐 어쨌든 간에 지금 그들은 치료를 위해 난리를 피우는 중이었다. 한참을 달려서야 간신히 작은 마을을 발견할수 있었고, 곧 작은 여관에 들러 돈을 쥐어주고 조용한 방을 얻을수 있었다. 손자를 타인에게 맡긴다는 것이 조금 못미더운 듯 무정은 잠시 미적거렸으나 어쩔수 없이 영에게 손자를 안겨주었다. 영은 소년의 몸을 살짝 끌어안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마른 몸이었다. 무진은 무표정에 무반응이었다. 지금까지 쉴새없이 겪어온 고통에 이미 외부와 내부의 감정 격동에는 무감정해져버렸기 때문이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영은 그 아이를 가부좌의 자세로 앉히고, 자신은 달인좌達人坐로 앉았다. 자신은 외부의 사기를 몰아내는 자세로 아이의 천살지기를 모두 빨아들여 그것의 사기를 모 두 제거하고 순수한 기운으로 만들어 그것을 자신의 10년 정도의 영기와 섞어 들여보낸다. 그리고 그 영기의 덩어리를 사용해서 아이의 몸을 치유함과 동시에 임독양맥의 타통을 시도 한후, 되지 않으면 자신의 영기를 회수한다. 장심을 아이의 등에 붙이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옆에서 운이 조금씩 몸을 긴장시켜나 갔다. 그런 운을 보며 무정은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 '수하를 지키려는 수뇌의 행동은 아니로군…… 하지만 역시 극친하다고 밖에……' 그때, 그는 생각지도 못한 고비를 맞고 있었다. '이런…… 경락이 생각보다 많이 손상되어있군.' 게다가 뒤틀린 부분도 너무나 많았다. 이렇게 되면 '그 수법'도 쓸 수밖에 없는데…… 일단 임독양맥 타통은 포기해야했다. 자신의 공력으로 백회혈에 뭉친 천살지기를 간신히 풀어내었다. 한참동안이나 기운을 쏟아 내서야 가능해졌다. 그리고 그 천살지기를 모조리 흠입했다. 그리고 머릿속에 살심과 따끔거리는 기운이 솟구쳤으나 그것을 냉담히 무시하였다. 무시한다 하더라도 힘들수밖에는 없었으나, 그는 '인독'이나 다름 없는 자였다. 그따위것을 얼마든지 억누르며 동화시켜버릴수 있었다. 더군다나 달인좌의 사기를 쫓는 자세가 천살지기의 악기를 몰아내며 그것을 소멸시켜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뜨거운 기운들을 한껏 끌어자신의 장심에 모은 그는 그것을 단숨에 백회혈에 부딪혀 나갔고, 백회혈은 단숨에 뚫려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는 일주천을 시작했다. 자신의 자그마한 영기 덩어리가 중심이 되어 자그마치 120년의 공력을 끌고 빠르게 경락을 복구해 나가며 그 속도를 점차 늘렸다. 그리고 점점 경락이 회복되어 나감과 동시에 영기의 덩어리를 빼낸다음 마교의 '그 수법'을 시전했다. 이미 무아에 빠져든 무진이었기에 고통에 움직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득 생각속에 서는 고통에 찬 신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자비했다. 순식간에 그것을 끝마쳐버린 것이다. 손에 공력을 집중해서 몸의 근육과 근골, 그리고 혈맥을 환골탈태 한것과 비슷하게 바꾸어 버린 것이었다. 상상도 못할 고통이 가해지나 그는 정확한 시간으로 이것을 시전해 임독양맥의 타통을 실시 하려 든 것이다. 다시 영기의 덩어리를 주입해 단전에 쌓여있는 2갑자의 공력을 다시 유도해내며 빠르게 일 주천을 시키던 그는, 그 무서운 기세로 단 일격에 임독양맥을 타통시켜버렸다. 쾅 하는 폭발이 몸에서 일어나며 그는 급히 영기의 덩어리를 회수했고, 숨을 쉬며 경락을 안정시켰다. 그와 동시에 무진의 입에서 핏덩어리가 토해져나왔다. "휴우……!" 무정의 안색이 환해졌다. 성공한 것이다. 저 반응은 임독양맥의 타통이다. 임독양맥을 타통 했으니 성취는 더빨라질 것이고, 화경에 들 환골탈태換骨奪胎도 3년은 앞당겨진 것이다. 무 학의 이해도 더 빨라질 것이니까…… "성공입니다. 그럼…… 저는 먼저 쉬겠습니다." 이마에 흥건한 땀을 닦아내면서 그는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그런 그를 무정은 한껏 고마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이로써 막 일어나는 천류세가와 마교는 든든한 인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무림에 일어날 한차례 혈풍血風이 더 거세어졌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마교는 이것으로 천류세가에 빚을 졌으니까. 022. 뇌검자雷劍者를 베다. 무림맹은 격동했다. 파황대의 부대주가 간신히 살아나와 전한 정보…… 비록 이 정보가 무 림맹의 최고 수뇌들만 아는 정보라 해도, 그들을 겁에 질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천류세가의 부활! 그것도 화경과 현경의 고수를 보유한채 등장한 천류세가…… 마교와도 인 맥이 이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것! 이 정보가 만약 무림에 퍼진다면 순식간에 혼란이 찾 아오리라. 천류세가 하나만도 벅차거늘 마교까지 합세하게 된다면…… 그것은 정파의 드러난 세력만으 로 막아내기에는 너무나 큰 무리가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무림맹주는 급히 각 파의 장문들에게 '소집령'을 내렸고, 그들은 부리나케 무림맹으 로 모여들었다. 무림맹의 어느 한 장소. 매우 훌륭하게 지어진 누각樓閣이 보였다. 그 크기는 매우 화려했으며, 돈냥이나 꽤 들여 지 은 듯 했다. 붉게 칠해진 기둥과 화려한 치장, 그리고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손님 대접용이라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누각위로 올라서는 층층대를 올라가다 보면 누각의 이름을 알수 있다. 웅장하고 호쾌한 필치로 쓰여진 글귀가 보여지는 것이다. '무아각無我閣'. 그리고 곧 그윽한 주향酒香이 코를 자극한다. 무아각의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은 숫자의 인 영들이 잠복하거나, 혹은 모습을 드러낸채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무아각 내부에 모여든 인물들이 어떤 인물들인지 암시하는 것들이었다. 남빛 도포에 매화가 수놓아진 옷부터 시작해서 도가 계통의 옷들. 그리고 불가의 스님들이 입는 회색의 장삼들을 입은 인원들이 쌓이고 쌓여있었다. 강렬한 정기가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정파의 어중이떠중이 들이 아니라 적전제자 임을 알수 있었다. 무아각 내부. "허어…… 큰일이구료! 맹주의 말이 사실이오?" "그렇소이다. 화산장문!" 남빛의 도포. 그리고 새겨진 매화는 단 한 개! 그러나 금실로 수놓아져 있었으며, 그것은 매 우 정성들여 만들어졌음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옷만 볼것이 아니라, 그 인물을 보면 또 놀라게 된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눈동자 에 강렬한 정기精氣를 담고 있는 중년. 무기는 풀어놓아서 보이지 않았으나 손의 모양을 보면 오로지 검劍만을 수련해온 이라는 것 을 눈치챌수 있었다. 바로 이 사람이 화산파의 장문. 이한룡이었다. 현재 124세의 나이로써, 화경의 고수였다. 현 재 무림맹주와 거의 비슷한 실력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는 이한룡은, 그 절기로 매화검梅花劍 이십사수二十四手를 꼽는다. 신법과 검법의 적절한 조화와 탁월한 검술, 그리고 사파들에게 보여지는 매서운 손속. 그리고 잘생긴 외모로 일전에는 옥매독룡玉梅毒龍이라는 명호를 지녔다. 무림오천의 일인이 었다. "백황대가 단 몇수에 괴멸되었다니…… 더군다나…… 철마. 그 악마와 인맥이 닿아있다 니…… 어느새 그 사가邪家가 세력을 되찾고 있었단 말이오? 그렇게 대비하고 있었거늘." 무당파의 장문. 무림오천武林五天중 일인一人으로, 역시 화경의 고수였다. 30대 후반으로 보 이기는 하였으나 깊은 내공으로 인해 화산파의 장문과 동갑내기였다. 어렸을적부터 이한룡과 무림을 함께 돌아다녔다고도 하는데…… "그런데…… 대체 어찌하실 참이오. 맹주? 현경玄境…… 현경의 고수에, 고작 12세의 가주는 벌써 화경이라고 하지 않소? 그 수하가 현경이라는게 조금 우습긴 하지만…… 백황대와 칠 룡중 하나인 뇌무검룡을 가볍게 없애버린 자요." 역시 무림오천의 일인인 천검문天劍問의 문주. 뇌검자雷劍者가 그렇게 질문했다. 현재 이 자 리에서 가장 고령인 그이기에 그 발언권도 강했으며, 맹주보다도 더욱 고수였다.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으로 보였으나 그 나이는 벌써 150세였다. "그건…… 현재로써는…… 이곳에 모인 우리들이 전부 간다 하더라도 제거할수 없소이다. 그것은 어쩔수 없는것이오." "아미타불! 소승이 생각컨데……" 역시 무림오천의 일인. 중간에 불호를 외치며 끼어든(?) 소림의 방장. 공허 대사는 고개를 살짝 조아리며 말을 꺼내었다. "그 시주가 현경이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소림의 백팔나한진으로는 제압이 가능하리라고 생 각되는데……" "하지만…… 그의 말로는 백황대를 단 한 번의 초식으로 제거해버렸다고 하오. 아무리 손상 되었다지만 백무귀류진을 펼치는 백황대를 그렇게 제거한다는 것은……" "아미타불…… 백팔나한진과 백무귀류진의 차이점을 아시지 않소?" "……! 그렇군!" 문득 뇌검자가 깨달았다는 듯 무릎을 팍 치며 소리쳤다. 무림맹주는 의아함을 담은 시선으 로 그를 바라보았다. "백무귀류진은 맹주가 만들었지 않소? 그것은 방위를 점해 차륜적으로 공격을 가하며 각각 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마교의 마령검진과 비슷한 것인데…… 물론 다르긴 하지 만…… 이 백팔나한진은 공수전환이 자유롭고 주로 제압을 목적으로 하는 것임과 동시에 '사기'와 '마기'를 제하고 변화무쌍함과 동시에 각각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것이 아니라 '하나 로 합쳐' 마치 하나의 고수와 같은 능력을 보이는 것이지!" 그제서야 무림맹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뭔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고작 '그'하나를 제압하는 것일 뿐이지 않소? 더군다나 그 백팔나한들을 모 두 불러모을수도 없지 않소이까! 더군다나…… 그 유운이라는 녀석이 얼마나 되는 힘을 지 녔는지도 알수 없고. 철마 무정 또한 함께 있으니…… 그것은 기각이오." "그럼 또 하나의 방법이 있소이다!" 문득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꾸질꾸질한 향기를 풀풀 날리고 있던 볼품없게 생긴 거지가 내 뱉었다. 그들은 그 냄새가 결코 반갑지 않았으나 그는 개방의 방주인 '취불개'였으니까…… 그리고 그의 발언력도 컸다. 이 역시 무림오천이었다. "그건 뇌검자 어른이 나서면 되는것이지! 내가 보니 그 사이에 현경에 오르신 것 같은 데…… 낄낄낄……" 취불개의 말 끝에 달린 웃음은 제쳐두고…… 뇌검자의 안색이 싹 변했다. 그리고 좌중의 모 든 시선이 뇌검자에게 향했다. 그리고 뇌검자는 인상을 찡그렸다. '저 노걸개의 눈이 보통이 아니구나!' "그게 사실이오. 뇌검자 어른?" 맹주의 질문에 뇌검자는 벌레씹은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나 말을 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나보다 더 강한 현경의 고수요. 내가 간다 해도 어쩔수 없을거요." "하지만 이걸로 희망이 생겼군! 최불개 어르신과 본인이 철마와 유운이라는 가주를 맡고, 공 허 대사와 뇌검자 어른, 그리고 청성파 장문이 그자를 맡으면 될게요!" 화산파의 이한룡이 손뼉을 치며 그렇게 말하자 청성파 장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 을 열었다. "과연…… 그렇다면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소! 취불개 어르신은 철마와 거의 동수를 이루시 는 분이시고, 유운이라는 가주야 아직 어리니 화경이라 해도 한계가 있을거요!" 공허 대사는 합공이라는 사실에 조금 찝찝한 표정이었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합장할 수밖에 없었다. 천류세가가 이전에 가져다주었던 혈풍보다 차라리 자신이 살계를 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어디서 싸우는 것이 좋겠소? 그 행방은 아마 수룡계곡에서 나왔으니 그 근처의 마을에 들 렸고, 아마도 예상컨데 '탄령하'근처를 지나는 평원으로 갈 것일텐데……!" "그럼 간자들을 심어두었다가 소식이 오면 가도록 합시다." "다른 인원은?" "청성파의 적전 다섯과 화산파의 적전 다섯. 그리고 청황대靑荒隊 전원. 청황대주…… 청성 의 천풍검룡天風劍龍 천연홍 정도면 충분할 것이오!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그들이 공격하면 버티지 못할것이니……" "하지만…… 우리 신분으로 합공이라는 것이 조금 찝찝하구료." "어쩔수 없지 않소! 상대는 현경이오! 그리고 그 극악한 천류세가의 악마들! 우리로써는 망 설일 이유가 없소! 내일 당장 짐을 꾸리고 떠납시다!" "맹주는 떠나지 말고 무림맹을 지키며 준비를 해주시오!" 운과 영, 그리고 철마 무정. 그리고 그의 손자인 무진은 마을에서 막 벗어나고 있었다. 육포와 건량 약간, 그리고 수통을 챙겨든채 말이다. 무정은 그 사이에 죽엽청도 소량 챙겨놓 았지만. 무정은 철마라는 명칭 뿐만이 아니라…… 주마酒魔라는 우습지도 않은 별칭도 갖고 있을 정 도였다. 술로만 싸운다면 무림제패도 가능하다는 농담도 있을정도로 그는 주광이었다. 그리고 술을 즐겼다. 가장 즐겨 마시는 술이 바로 천일취千日醉였다. 설마 아무리 독하다 하더라도 술의 취기가 천일이 갈까마는. 무려 70도를 넘나드는 극악한 알콜농도를 보유하고 있는 술이라 ―본래 이름인 국일주菊溢酒라는 이름마저도 무색하게 만 들정도의 농도.― 웬만한 주광이 아니면 손대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철마 어르신께서는 이 천일취를 독째로 들이키는 것이다. 참으로 괴물이 아니라 할수 없었다. 안정된 보폭으로 걷는 그들은 그렇게 평야를 주욱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문득 먼 거리를 둘러보려는 듯 저 너머를 바라보던 영은 푸른 하늘빛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중얼거렸다. "앞으로 3일 거리에 탄령하가 있고…… 그쪽으로 가야만 신수사의가 알려준 장소로 갈수 있 게 되는것이군……" 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린 영은 손을 휘저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허공으로 목 소리를 띄워올렸다. "……불길한 바람이 부는군." "음……" 운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찾아들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여전히 티없이 맑았으며, 바람은 부드럽고 상쾌했다. 태양빛만이 미약한 위화감을 공중에 던지고 있을 뿐이었다. 혈풍의 시작은 이렇게 느긋한 오후의 햇살속에서 태어난다. 이렇듯이…… 인과의 굴레바퀴는 도대체 어디로 굴러가다가 쓰러져 뱅글뱅글 돌다가 다시 일어날지도 모르듯…… 너무나도 불안정하며, 동시에 변화무쌍함을 자랑했다. 무림을 질타할 천류세가의 검명劍鳴소리가 아찔하게 들려오는 듯 했다. 그리고…… 백도 무 림이 무너지는 소리이기도 했다. 023. 탄령하歎靈河! 물살이 너무나도 거칠고 거센 탁류인지라. 마치 수천, 수만의 영혼들이 탄식하고 절규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붙여진 이름. 그리고 그 거센 물살은 오랜 세월의 편린을 담고 있었으며, 수많은 이들이 빠져 죽은 듯, 불 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이 근처는 신기하게도 새 한 마리 날아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더욱더 음침함을 가중 시키고 있었다. 뭐, 사실은 물에 중금속 성분이 포함되어서 그런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지형상 셀레늄이 많이 포함되어 ―셀레늄은 반도체를 만들 때 쓰는 것으로써, 보통 순수한 셀레늄은 인체에 독성이 없으나, 어떠한 물질과 섞이거나 물에 섞였거나 할 경우, 치명적인 독이 되어 인체에 쌓여간다. 생물농축生物濃縮되는 것.― 이 물은 매우 위험한 독성을 띠고 있었으며, 그래서 물고기도 없었다. 그리고 탄령하 근처로 많은 인원이 집결하고 있었다. 곧 청의를 걸친 서른 여섯의 인원이 빠르게 모여들었고, 그 선두에 청의에 용을 수놓은 이가 허리에 패검을 건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이 열리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청황대. 산개하여 들판을 포위한다. 반쯤 귀식대법을 운용해서 기척을 감춘다. 화산과 청성 의 적전 제자들이 도울것이니 어떤것도 접근치 못하게, 그리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도록. 위험하면 곧장 신호탄을 터뜨려라!" "존명!" "산개散開!" 그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서른 여섯의 청황대들은 무서운 속도로 사방을 향해 쏘아져 나가 곧 적재적소에 위치해 잠복하기 시작하였고, 그는 곧 자신의 옆쪽에 서 있던 열명의 인원들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열명의 인원들은 곧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가 어디론가 움직였다. 그리고 그 역시 자신의 신형을 숨겼다. "음……!" 영이 짤막한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운과 무정에게 전음을 날렸다. 무진은 이미 영이 짤막 한 신음을 흘리자 마자 무정이 혈도를 짚었다. 그도 이미 느꼈던 것이다. 「포위당했군요. 전투준비합시다. 일단은 준비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변의 기척들이 완연히 그 모습을 드러내며 자신들의 앞에 나타났다. 시간은 막 해가 기울어지고 3각이 지난정도. 그래서인지 햇빛은 무서우리 만큼 강렬했다. 그리고 새카만 인영들이 햇살에 모습을 드러내 자 철마는 신음을 눌러 삼켰다. 다섯의 인원들은 강렬한 기운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일단 넷은 자신이 아는 인물들이었다. 먼저 하나는 화산장문. 이한룡! 화경化境의 고수였으며, 그의 매화검 이십사수는 자신도 함 부로 대할수 없는 그것이었다. 그 중년의 모습을 한채 약간 긴장하고 있는 그는 허리에 걸린 화산파의 자전검紫電劍의 손 잡이에 손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개방의 방주. 취불개. 공손학! 역시 화경의 고수며 타구봉법과 여러 권각 술을 기반으로 삼으며, 저 취불개는 철마 자신과 동급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여전히 긴장한점 없는 모습으로 건들거리며 자신을 흘겨보고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청성파의 문주. 청정검선淸淨劍仙 백현! 겉보기에는 인자한 중년의 그것 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화경의 고수였으며…… 승풍검법과 청성파의 비전절기는 얕볼것이 못되었 다. 그리고 네 번째는 소림의 공허대사! 역시 화경의 고수였으며 소림의 72절기―많이 소실 되 었으나―를 상당히 익힌 중이었기에 상대하기가 만만찮았다. 그리고 다섯 번째…… 뇌검자였지만 그와는 일면식이 없었기에 알수 없었다. 그러나 '현경' 의 반박귀진이 눈동자에 얼핏 보이자 철마는 한껏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뇌검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침착해 보였으나 그의 세포 하나 하나는 지금 영을 바라 보며 폭발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투기가 뇌검자에게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며 백현이 나섰다. "그대들이 천류세가의 인물들이오? 그리고 철마 어르신 께서는 왜 이곳에 납시었는지 모르 겠소." 뒷말은 '철마는 봐줄테니 가라!'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철마는 매섭게 그를 노려봄으로써 그 말을 씹어버렸고, 영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나서 운에게 귓말로 뭔가를 속삭였고, 운은 이맛살을 구겼다. 그의 말은…… "아무래도 작정하고 온 것 같으니…… '빠져나가기는' 힘들 것 같다." "흐음……" 운은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대답했다. "본인은 천류세가의 가주. 유운이오. 혹시 어르신께서는…… 청정검선, 백현 어른이시오?" 백현은 감탄했다. 자신을 알아본건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은근히 뿜어낸 기세를 단박에 억 누르며 말하는 아이라니…… 비록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자신보다는 좀더 상수였다. 아마 이한룡보다도 조금은 상수일것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빈도가 백현일쎄."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문득 흐름이 끊겼다. 그리고 불길한 파장이 퍼져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의 진원지는…… 바로 영이었다. "무림오천이 이 자리에 넷이라니…… 우습군." 영의 입에서 난데없이 터져나온 말에 그들은 영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순간적으로 영의 몸 에서 강렬한 기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곧 채 5초도 되지 않아 모든 공력을 끌어올린 영의 몸 주변에 대단한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 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어차피 싸움을 바라고 온 것. 천류세가의 이들을 모두 제거하려는 생각이겠지. 그리고 몇은 철마 어르신과 가주를 묶으려고 하는것이겠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그들의 심중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그가 기력을 끌 어올리자 마자 긴장하고 있던 이한룡은 자신도 모르게 이미 검을 뽑아든 상태였다. 자전검이 뽑혀올라오자 은은한 홍자색 광채가 흘러나오다가 그의 공력이 일어나자 홍자색의 광채는 점점더 진하게 변했다. 그리고 불호를 가볍게 외치며 공허 대사는 쥐고있던 홍옥죽장紅玉竹杖을 들어올렸다. 그리 고 홍옥죽장의 끝에 미약한 기류가 흘러나왔다. 달마삼검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뇌검자의 검도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뇌검 자의 푸르스름한 기를 머금은 뇌인雷刃은 바닷빛의 청광을 머금고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취불개의 등에서 빠져나온 청색의 죽장에 순간 강기가 서리기 시작했고, 그 끝에서 강기의 회오리가 일어났다. 타구봉법을 쓰려는 것이다. 그리고 청정검선 백현이 검강을 검 끝에서 미약하게 피워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긴장은 부수어졌다. "금강폭열공金剛爆熱功…… 제 삼초. 신룡일섬神龍一閃! 격멸擊滅!" 끼아아아아아앙―! 그의 몸 주변에서 마침내 기력의 폭풍이 어떠한 형세를 띄기 시작했다. 제 일초인 신룡현세와 비슷하게 그의 주변에서 꿈틀대는, 너무나도 확실한 모양새의, 금빛의 광채를 뿜어내는 길다란 용 64마리가 형성되며 날카로운 비명을 터뜨렸다. 마치 생명체와 같은 강기신공! 제 일초와 제 이초의 신룡회류. 강기풍의 수법보다 한층 더 강렬한 위력을 띄고 있을것이 틀림없는 공격. 과연 어떠할까 기대가 되었다. 그의 입에서 초식명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강기의 용들은 그 금빛의 빛살을 흐트러트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쉬이이이이익―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금빛의 용들은 태양빛마저 눌러버렸다. 그것은 일대 장관이었다. 그리 고 눈 깜짝할 사이에…… 찰나지간 용들이 회오리치며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바로 5인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쏟아져 내리는 강기의 비들은 한곳으로 모여들다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한가닥의 백색 섬광이 내리꽂히려 했다. 그와 동시에 뇌검자가 움직였다. 멍하니 그 강기무를 바라보던 4인들이 움직인것도 그때였 다. 순식간에 각자의 무기가 움직이며 한곳에 거대한 강기의 덩어리를 만들어냈고, 쏟아져 내린 백색의 길다란 창과 강기의 덩어리는 격돌했다. 쿠콰콰콰콰콰콰――!!! 순식간에 사방으로 물밀 듯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그리고 흙덩어리들이 용오름치는 강대한 기폭풍에 휩쓸려 나가며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5인들은 입가에 피를 몇가닥 흘렸다. 내상을 꽤 입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백색의 창은 점점 가늘어져 갔으며, 그 모양새는 사그라들었다. 의외인 듯 영의 표정 이 살짝 변했다. 그래도 막아낼줄은 몰랐던 것이다. 전력은 아니었지만…… 그때 뇌검자가 급히 이한룡과 취불개에게 전음을 날렸고, 그 전음을 들은 이한룡과 취불개 는 빠른 속도로 그 자리에서 빠져나와 유운과 철마에게로 덮쳐들었다. 그리고 운과 무정은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은 순식간에 푸르스름한 기운을 머금은 청천검을 뽑아듬과 동시에 검강劍剛을 뿜어내며 이한룡과 격돌했고, 떨어져 내리는 죽봉을 바라보던 철마는 파마천멸장의 파천파지를 곧바로 극성으로 펼쳐내며 공격을 해 나갔다. 순식간에 하늘을 쪼갤 듯 뿜어져 올라오는 푸른빛의 검강과 매화를 그려내는 검강, 그리고 핏빛의 강기 회오리와 푸르스름한 강기의 덩어리가 맞물렸다. 그와 동시에 아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당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며 땅을 움푹움푹 패게 만들었고, 바위들은 설사 거석이라 할지라도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이 싸움이 끝난다면…… 아마 지형도를 새로 그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때 뇌검자는 전광뇌격검電光雷擊劍을 펼쳐 어검술과 검강을 융합한 어검강御劍剛으로 영 이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금빛의 신룡들을 하나하나 쳐내리고 있었다. 일단 영은 신룡현세로 간단하게 그를 시험해볼 참이었던 것이다. 거의 4분의 3의 강기를 그 혼자서 제거했고, 남은 강기의 신룡들은 간신히 허공대사와 백현이 제거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금강폭열공을 펼쳐내기 전에…… 백현이 뿜어낸 승풍검강이 쏟아져들어왔 고, 허공대사의 양손에서 터져나온 관음불면장觀音佛面掌의 은은한 수강手剛이 부딪혀왔다. 그와 동시에 어검강을 휘감은 뇌인이 그의 시야로 빨려들어왔다. 촹―!!! 순식간에 그의 오른손 손목이 튕겨짐과 동시에 은빛의 짧은 원이 그려지며 그의 손에 쥐어 졌다. 그와 동시에 호선을 그린 검극에서 은은한 기운이 뻗쳐나왔다. 처음에 약한 붉은빛으로 시작한 그것은 무서운 기류를 품고 폭주하듯 사방으로 스파크를 터 뜨리며 둥근 장막을 형성했다. 그리고 어검강과 승풍검강, 그리고 관음불면장의 강기는 쉽사리 튕겨져 나갔으며, 그들은 공 세를 간신히 제어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원을 그렸던 단검이 다시 매섭게 뿌려졌다. 그리고…… 핏빛의 회오리가 그들 을 덮쳤다. 바로 폭뢰강기爆雷剛氣였다. 최근 강기의 끝에서 다시 발견한 길을 악착같이 따라붙어 보인 최강급의 강기剛氣. 그 핏빛의 혈무는 터져나오며 쉽사리 어검강과 관음불면장, 그리고 승풍검강을 잠식하며 그 들을 휩쌓았다. 그러나 최고의 신법을 펼쳐낸 그들은 뒤로 물러나며 진기를 무리하게 운용해서라도 최대한 의 강기를 쏟아냈고, 그래서 그들은 약간 비껴간, 불완전한 폭뢰강기를 방어해낼수는 있었다. 그러나 곧 피를 한 모금 토해내며 뒷걸음질 쳐야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영이 움직였다.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흐릿해진 영의 신형은 찰나지간 뇌검자에게 포착되었고, 곧 그의 어 검강을 휘감은 뇌인검의 범위에 들어섰다. 그러나 뇌인검은 허공을 갈랐을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영의 왼손에 쥐어진…… 푸른색으로 된 강기의 검이 백현의 검 중앙에 꽂혀있 는 모습이 드러났으며, 그와 동시에 어느새 오른손의 검을 거둔채 손가락으로 소림의 실전된 금강지金剛指를 펼쳐 허공대사의 홍옥죽장을 두동강 내버린 장면이 드러났다. "그, 금강지……!" 소림에서조차 실전된…… 소림 72절기중에서도 지법의 으뜸이라는 금강지가 무림사가의 인 물에게서 펼쳐지다니…… 경악하는 허공대사를 무시하며 그의 왼발이 빠르게 허공을 차올리며 회전력을 머금으며 오 른발에게 공격기회를 주었다, 심검은 이미 거두어진지 오래였다. 그리고 오른발이 사방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강기를 실은 퇴법이었는지라 그 위력은 허공 대사와 백현을 기절시키며 날려보내기에 충분한 위력이었다. 퍼퍼퍼펑―!!!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날아가는 두 인영을 무시하며 곧 영은 오른손에 다시 단검을 쥐며 그 단검에 금빛의 검기를 형성했다. 아지랑이처럼 생겨난 검기는 순식간에 그 빛이 더욱 강렬해지며 검극 위로 패검 하나를 붙 여놓은 만큼 쑤욱 하고 자라올라와 맹렬하게 타오르며 그 빛을 사방에 흩뿌렸다. "……그 기술은?" 뇌검자가 경탄을 하며 그에게 질문하자. 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해주었다. "금광검金光劍!" "과연…… 강기를 능가하는 검기라…… 그런 식의 고명한 운용은 생각해 보지도 못했는 데……" 씁쓸한 미소를 짓는 뇌검자. 자신정도 수준의 검객이 상대방에게 힘이 아닌 기술로 밀린다 는 것은 크나큰 치욕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보다 최소 몇배는 강했다. "오산이었군…… 혹시 자네는 신화경에 들었나?" "아직 현경이오." "허허…… 적어도 나같은 고수 여섯은 있어야 평수를 이루겠군! 특히 자네가 선보인 폭뢰강 기의 수! 정말 감탄했네." 나이와 신분, 그리고 그 세력을 넘어선 감탄과 순수한 부러움을 머금은 그의 부드러운 목소 리는 전투 상황에는 맞지 않았다. 영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래도 100세를 넘겨서 현경에 든 것을 보아 형장께서는 신화경으로써의 확실한 길을 밟고 있는 것이오. 본인은 도저히 길을 알수가 없다오." "허허허……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자네의 마지막 수를 보여주게! 이것을 보고 간다면 나 도 한이 없겠군!" 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024. 운과 격돌하고 있던 이한룡은 손이 저릿저릿 함을 느끼며 간신히 뒤로 물러섰다. 수차례 검강을 부딪히고 검을 나누었으나 도대체 어떻게 저런 아이가 자신을 누를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시 굳어있던 그들이 다시 움직이며 각기 검의를 풀어내 나가고 있을 즈음, 갑자기 그들은 몸을 뒤로 튕기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격돌하던 취불개와 철마 역시 그러했다. 그리고 다시 그들은 격돌하기 시작하였다. 각자의 절기를 펼치며…… "!!!" 이런 대단한 기운이라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잠시 입을 벌린채 자신으로써는 감히 바랄 수도 없는 그 강대한 힘의 회오리를 느끼며 그 흐름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던…… 청황대주. 천풍검룡天風劍龍 천연홍은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바작바작 흘리면서 무의식적 으로 자신의 애검인 풍아風牙의 손잡이를 틀어쥐었다. 그리고 그 반응은 다른 청황대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숨어있던 화산과 청성의 적전제자들 역시 자신들의 병기 손잡이를 틀어쥔채 이를 갈며 그 기운을 잡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늘은 대지 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격동 가운데서도 조용하기 그지없이. 틈틈히 새하얀 구 름을 피워올리거나 흘려내며…… 따스한 햇살을 여과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이들이 느끼고 있는 거대한 기류는…… 흐름의 검이었다. 조용한 자세. 그리고 가벼운 자세일 뿐이었다. 발검拔劍의 자세와 비슷하긴 했으나 그 예기 銳氣나 살기殺氣, 그리고 투기 한점 찾아볼수 없었다. 그러나 이 자세에 담긴, 한없는 깊이에 뇌검자는 순간 멍해졌다. 깊은 무학의 세계를 보고있는듯한 그것에 뇌검자의 심장은 거칠게 뛰고 있었고. 처음 검강을 사용하며 뛸듯이 기뻐하며 가슴을 뛰던 그때…… 그때보다 더욱더 큰 감정의 격동이 그를 때리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순수했다. 자신이 모르는 무학의 세계를 보는 그런 순수함…… 이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그 는 생각했다. "가겠습니다. 대자연大自然 유검流劍. 천신무天神舞." 대자연의 흐름의 검. 이것을 약간 체계화 하여 정립한 기술중 하나였다. 천신의 춤…… 그가 몸에 담긴 기운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하자 옷자락이 펄럭이며 솟구쳐올랐고, 그의 머리카락 역시 솟구쳐 올랐다. 메마른 토질…… 마른 흙이 그의 몸 주변에서 떠오르는 세찬 기세를 타고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이 기세는 살기도, 투기도, 예기도, 강렬함도 품지 않은, 따스하고 포근한 그것이었 다. 그리고 그의 왼손이 가볍게 움직였다. 마치 춤추듯 부드러운 동작…… 승무僧舞보다도 더 부드러운 동작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오른발도 가볍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 가벼운 움직임 속에 포함된 끝없는 무학의 오의! 그리고 그의 몸 주변에 분포하던 대자연의 기류가, 안정된 기류가 그의 몸에 맞추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대자연의 흐름을 '지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전에 흐름에 맞추어 움직이던 기 초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오른발이 튕겨졌다. 그리고 몇 치 정도 떠오른 그의 몸이 떠오른채 느릿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자연의 웅장한 기운이 그의 몸 주위에서 투로를 수십가닥 만들어 터져나오기 시작 했다. 들끓면서 준동하는 대자연의 힘! 그대로 그의 오른손이 가볍게 뻗어짐과 동시에 거대한 기폭풍이 터져올라왔다가 사그라들었 다. 그리고 느릿한 춤사위는 지속되었다. 한없이 부드럽게 말려올라가는 손…… 그리고 다시 부드럽게 떨어져 내리는 손……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대자연의 기류…… 한없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발걸음…… 발걸음과 동시에 움직이는 몸…… 다시 움직여 나가는 기류…… 부드러움 가운데 강렬함이 숨어있다. 그리고 흐름 가운데 역행이 존재한다. 흐름의 무예. 양손이 새가 날개를 펄럭이듯 가볍게 움직이자 두 개의 기류가 뻗어올라가서 서로 충돌하며 흐름을 방해했다. 그러나 생겨난 난류는 그의 춤사위를 가속화 시킬 뿐이었다. "……"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나 주변을 휘감고 폭발적으로 터져오르는 기의 폭풍과…… 뇌검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세가 부딪히며 울려나오는 검명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뇌검자의 몸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검세劍勢가 한자루의 예리한 빛살과 같이 변해감과 동 시에 간헐적으로 치솟던 기의 폭풍이 일순간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뇌검자가 움직였다. 신형이 순간적으로 수십개로 늘어남과 동시에 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뒤로 거두어져 그의 몸에 가려져 있던 뇌인검에서 하늘마저 갈라버릴듯한, 어검강이 충천했다. "전광뇌격검電光雷擊劍. 궁극오의……!" 그리고 뇌인검이 그의 그림자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파파파파팟!!! 이글거리는 뇌력雷力이 검에 휘감긴채 움직인다. 그리고 뇌력의 그림자는 수천개로 늘어났 다. 그와 동시에 뇌검자의 눈빛에 희열이 담겨졌다. "유결전뢰진염파流結電雷眞焰波!!!" 쩌렁쩌렁한 외침이 뇌검자의 입에서 터져나옴과 동시에…… 뇌력의 흐름이 순간 끊겼다. 그 와 동시에 영의 입에서 짤막한,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가 들판을 울렸다. "유검. 천신무. 종검…… 무류축제霧流祝祭. 절絶. 대對. 무無. 검劍. 결訣." 파악― 어느새 그의 오른소맷 자락에서 뻗어나온 매끄러운 은색의 불꽃은…… 너무나도 간단히 뇌 검자의 육신과 뇌인검을 함께 가르고 지나갔다. 소리 한점 없이. 그리고 혈화가 허공중으로 뿜어졌다. 그리고…… 무림의 일대 종사. 무림오천중 일인으로 세상에 그 이름을 떨쳤던 뇌검자는…… 무너졌다. 그러나 그의 입에는 기쁨어린 미소가 서려있었다. 영은 검을 거두면서 씁쓸함이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잘가시오. 당신은…… 진정한 무인이었소!" 뇌검자의 피가 땅바닥을 슬금슬금 기어가는 가운데…… 무덤덤한 영의 목소리가 전장을 울 릴 뿐이었다. 퍼퍼펑―!!! "큭!" 이한룡은 운의 청천검에 휘감긴 강기를 간신히 막아내며…… 신음을 누르며 뒤로 튕겨졌다. 그와 동시에 취걸개 역시 철마의 파마천멸장중 일통혈뢰결을 간신히 방어해 내며 뒤로 물러 났다. 그리고 그들은 잠시, 영과 뇌검자의 대치 장소를 바라보았다. 영의 몸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순수한 자연의 기류가 주변의 자연의 힘과 동조해 공명하면 서 그의 은빛의 검에 매섭게 기운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단검은 뻗어나오지 않았으나 그 예기와 동시에 포함된 부드러움은 모두를 무력감속으 로 묻어버릴 정도로 깊고 맑았으며, 동시에 차가웠다. 그리고 뇌검자가 움직임과 동시에 수천개의 낙뢰가 터져나와 한줄기로 모아져 영을 향해 쇄 도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허무하게 낙뢰는 무너졌다. 그 낙뢰의 위력은 모든 이가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나 대자연의 회오리에 튕겨져 나가며 무너졌고, 그와 동시에 대자연의 기 회오리는 어검강에 찢어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영이 일부러 그 부분의 기 회오리를 약화 시킨것이었을 따름이었다. 그것을 베어낸 뇌검자는 화색을 띄었으나…… 순간 안개의 흐름과 같은 무형임과 동시에 유형이라고 말하기에도 어중간한 기운을 한가득 품은 은색의 선이 그대로 뿜어져 나와 선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 은색의 선은 뇌인검마저 베고 뇌검자의 육신마저 관통하고 지나갔고…… 곧 뇌검 자의 육신은 바닥에 눕혀졌다. 아찔하게 터져나온 혈화血花에 모든 이들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청황대와 더불어 적전제자 열명이 움직인것도 그때쯤이었고…… 이한룡과 취걸개가 전력을 다해 일격을 가한후 기절한 두 화경의 고수를 데리고 탈출하기 시작한것도 그쯤이었 다. 그리고 청황대 마저 물러나고 나서…… 시체 몇몇이 널린 벌판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왜 놓아준거지?" 운이 잠깐 침묵하다가 질문하자, 그는 입꼬리를 살짝 말아올리며 대답했다. "아아…… 진정한 무인이 한명 죽었으니…… 그것에 대한 추모의 의미였을뿐. 별 다른 의미 는 없었지." "……음." 약간 쓸쓸해 보이는 그를 철마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바라보았다. "허허…… 자네와 다니면 도대체가 끝없는 무학의 길을 계속 보게 되는군. 그나저나…… 함 께 다니면 그만큼 위험도도 대단한 것 같네. 하지만 이런 광경을 보게 되었으니 그 대가라고 생각하면 되나? 허허허!" 그렇게 말하며 몸을 추스르는 철마를 바라보던 영의 눈가에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가 사 라졌다. 그런 영을 무진은 무감동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무진의 눈동자 안쪽에는 힘의 갈망이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림맹 내부. "뇌검자 어르신이 패배하시다니…… 거기다가……" "막지 못했구려…… 무림에 혈풍이 불겠소이다!" "이번에는…… 너무 서둘렀소, 칠황대를 모두 썼어야 했는데…… 청황대는 절반이 소실되었 고, 백황대는 전멸이니…… 게다가 칠룡중 일인이 죽음을 맞고…… 뇌검자 어르신께서 돌아가셨고…… 너무 피해가 막심하오. ……아무래도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그가 아무리 현경이고, 설마 신화경의 고수라 하 더라도 무너뜨릴수 있을게요. 그런데 화산 장문과 공허 대사께서는 몸 상태가 어떻다고 하오?" "내상이 그다지 심하지 않아서 삼일 정도 요양하면 될것이라고 하오. 그가 손속에 사정을 둔 모양이오. 하지만 뇌검자 어르신에게는 경의를 표한것이라 할수 있겠지……" "그…… 마지막에 뇌검자 어르신에게 가한 무공은 대체 무슨 것일지……" "도저히 알수 없었소. 대자연의 기류마저 움직이게 만드는 강력한 무공이라는 것은 알수 있 었으나…… 어쨌든…… 그 위력은 너무 대단하여 현경의 고수가 적어도 여섯 이상 모이지 않으면 그를 없애기는 힘들 것 같소!" "이건 공론 외엔 되지 않소. 해결책을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일단…… 어쩔수 없이 뇌검자 어르신의 죽음을 발표한다음…… 무림사가의 재출현을 알릴 수밖에! 혼란은 어쩔수 없지만 단결이 필요하오!" 뇌검자의 죽음…… 이와 동시에 천류세가…… 무림사가가 부활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뇌검자가 천류 세가의 심복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도 퍼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무림은 공포로 젖어들었다. 그러나 백도 무림들은 급히 단결했으며, 흑도 무림 들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마교만큼은 방비 없이 숨어있을 뿐이었다. 이것을 눈치 채지 못한 무 림이 후에 어떻게 될는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025. 천류세가 일어나다. 은은한 금음琴音이 밤바람을 흐리며 퍼져나오고 있었다. 그 금음의 발생지는 백마성의 천앙 표국의 깊숙한 곳에 위치하는 방이었다. 금음은…… 차마 말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감상적이고, 아름다우며, 그와 동시에 부드럽고 사람의 의표를 찌르는데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란 음악을 들으면 어느정도는 다음 소절을 몇 개 알수 있는법이다. 그러나 이 음악은 도저히 다음소절과 다음 대막을 짐작할수 없었고, 그 감정이나 뜻도 불투명하기 짝이 없었다. 연주하는 이의 심사를 반증하듯…… 알싸한 모기향은 의외로 꽤 독기를 품고 있는 것이나 그래도 시골정취를 느끼게는 해주었 다. 그리고 창가에 비치는 약한 달빛과 더불어 주황빛을 머금고 타오르는 호롱불빛 사이로 덤벼 드는 나방과 모기도 어느정도 보아줄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루함만큼은 도저히 참을수 없군……' 모기향의 가닥이 점점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시각은 12시 정각을 넘긴지 벌써 3시간이 넘게 흘러있었다. 깊은 흑안黑眼에 미약한 슬픔이 일렁이다 지워졌다. 그리고 그 흑안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대체 무림맹은 무슨 생각을 가진걸까. 혼란이 클텐데 본가의 부활을 알려버리다니…… 우습군." 벌써 무림맹이 본가의 세력을 알린지 일주일이나 흘렀다. 그 사이 가주인 운은 매우 훌륭하 게 신수사의가 남겨놓고 육성한 세력을 흡수했다. 이 세력은 무림맹을 능가하는 수준에 '불과'했으나 발전은 보이고 있었다. 표국으로 위장하고 있었으나 이곳의 고수들은 모두 하나같이 천류세가의 검술을 배우고 있 었고, 천류세가의 무예들 역시 함께 익혀나가고 있었다. 이미 분류도 끝난 참이었다. 그리고 운은 직접 그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천류세가의 검술중 천영팔명검天影八鳴劍은 모두들 다 익혀낸 참이었다. 천류세가의 천광대 天光隊와 여러 대대의 편성도 끝나있었다. 영과 운이 조언을 던지고 직접 가르치기 까지 하면서 눈부신 발전을 보이는 2천여 명의 검 수들과 무인들을 바라보면 천류세가의 부활도 머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하물며…… 그 2천 여명의 무인들이 모두 하나같이 검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검수들임에 야…… 더군다나 그중 4분의 1은 벌써 화경의 벽에 부딪힌 상태였다. 그리고 남은 이들도 한달이면 그정도의 성취를 보일수 있을 터였다. 이런 엄청난 세력을 가진 방파가 얼마나 있을것인가! 신수사의가 대체 얼마나 노력하며 돈을 들였는지 도저히 알수 없었다. 다만 그 2천여명중 100여명은 이전에 천류세가에서 활동하던 이들이었고, 지금 그 4분의 1의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이들 가운데 들어있었다. 그들은 충성심으로 뭉쳐있었기에 별 경계는 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은 몰랐다. 아마 지금의 천류세가라면 거의 마교의 드러난 힘에 육박할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는 이것 보다 조금 더 큰 세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운들은 끊임없이 세력을 유입하며 들어와서 일해줄수 있는 인물들을 물색중이었다. 최근 돌아다니면서 작은 무림방파들을 몇 개 흡수하려고 노력중이었고. 살수조직 두 개는 이미 흡수한 뒤였다. 그들은 '2천 여명'에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세력으로 영입되었고, 그들은 영이 가르쳤다. 살 수만 5백 여명이었지만, 그 살수들 역시 검만으로는 놀라운 성취를 보이고 있었다. 그 5백여명중 절반이 화경의 벽 에 부딪혔으니까. 이 5백여명은 각기 100여명씩으로 분류하여 처소를 나누고 있었다.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며 피곤해지는건 운과 영이었다. 표국 임무도 늘려가면서 점차 실전 경험도 쌓게 만드는 것이다. 조금 더 위험한 것은 전투인원이 아닌 이들이었는데, 전부 5천명으로 무술을 배웠는지 엄밀 히 검사하고 신원을 확인한후 불러들였다. 돈은 넉넉하게 주었지만 지금 천류세가의 긴장과 예기의 소용돌이에 꽤 걱정스런 눈치였다. 일개 표국인줄 알았는데 너무나 엄청났던 것이다. 금음이 멎었다. 그의 생각이 끊긴 것이다. 탄주彈奏하던 그의 새하얀 손이 다시 소맷자락으 로 감추어졌다. 길다랗고 새하얀 손가락과 혈관이 비칠 듯 한 그 아름다운…… 마치 백옥으로 빚은듯한 손 은 어떤 사람도 감탄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무위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의심할 것이다. '이게 현경의 고수의 손인가?'하 고…… 무술을 익히면 익힐수록 손이 곱게 바뀌는 것은 사실이나 …… 너무 정도가 심했던 것이다. 그리고 역시 현경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무위를 지닌 그 의 얼굴은 너무나 이지적이었다. 차라리 학자라고 하면 믿어줄 것을…… 금을 갈무리 하여 집어 넣은 그는 호롱불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걱정없이 움직이는 바람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후후…… 하지만 의리라는 것이 있다. 신수사의…… 그대의 부탁은 반드시 들어줄 것이니 걱정은 마시오." 그리고 호롱불이 사라졌다. 그가 가볍게 내공을 사용해 호롱불 주변의 공기를 차단했고, 그 기의 막 내부의 공기를 모두 산화시킨 호롱불의 불꽃이 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부시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안에 완연한 침묵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그의 규칙적 인 숨소리가 퍼져나왔다. 그러나 은은한 청광靑光이 방을 물들이자 그가 잠을 자고 있지 않음이 확인되었다. 운공 하 고 있는것이었다. 가부좌를 튼채 왼손과 오른손의 심을 하늘로 향한채 숨을 쉬며 대자연의 숨결과 자신의 숨 결을 일치시킨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청광은 점점 약해졌다. 그러나 그 깊은 광채는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다. 바로 북명천지조화심법北冥天地造化心法…… 그것이 운용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아에 빠 져든 그의 정신은 신화경의 벽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그는 될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그 벽을 거역하지 않고 다만 내공의 증가에만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의 몸 주위를 빠르게 회전하던 영기의 끈이 갑자기 회전을 멈추며 바깥의 대자연의 기류 가 그의 몸에 흡수되는 것을 차단했다. 그리고 그 끈이 일정 양을 흡수하고 다시 돌기 시작하자 대자연의 강대한 기운은 다시 그의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의 몸 속에서 바로 흡수되는 것은 아니었다. 혈도를 따라 그의 몸에 스며든 영기 와 융합해 빠져나가지 못하게 된 그것은 곧 일정양의 영기를 채웠고, 그 일정양의 영기를 음과 양의 기운으로 느낀 그는 곧 단전으로 그 기운을 끌어들였다. 보통의 내공심법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 방식. 그러나 그 효용은 탁월하기 그지 없었다. 이곳 에 와서 일주일간 한 운공과 명상, 그리고 무예의 검토는 그에게 조금의 발전을 더 가져다 주었다. 내공은 이미 9갑자(540년)의 탁월한 것이었고, 그의 몸 곳곳에 쌓여있는 영기靈氣와 몸 바깥에서 도는 영기의 고리는 500년에 육박하는 것 이었다. 점점 쌓여가는 공력은 그로 하여금 기쁨과 두려움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이 '폭주'할 경우 대지를 뒤흔들고 도시 하나 정도는 문제없이 날려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금의 깊은 공력으로도 펼치지 못하는 무공이 있었다. 바로 그것은 그가 창안해 냈지만 활용할수 없는 금강폭열공金剛爆熱功의 12초 이후의 초식 이었다. 금강폭열공. 제 일초. 신룡현세神龍現世! 64마리의 강기의 용을 전방위로 발휘하여 64개 방 위를 점占하거나 다수를 공격할 때 쓰는 초식중 하나로, 비록 일초였지만 그 위력은 단 일수로 백황대를 파멸시킨 것이었다. 금강폭열공. 제 이초. 신룡회류神龍回流. 강기풍剛氣風! 역시 64마리의 금색의 강기를 휘감 은 용을 발휘하여 수십개의 금색 고리를 엇갈리게 하며 그 회전력을 극대화 시켜 반구 내부의 사물을 강기의 바람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강력한 기술이었다. 범위가 넓어질수록 위력이 줄어드나 이것은 화경의 고수도 빠져나오기 힘든 공격술이었다. 그 위력은 신룡현세의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금강폭열공. 제 삼초. 신룡일섬神龍一閃. 격멸擊滅! 64마리의 강기의 용을 만들어내 그것이 64방위를 점하게 만든다음 승천昇天하게 만들었다가 떨어져 내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가게 만든다. 그리고 그 용이 만든 백색의 천락강天落剛의 창槍은 신룡현세 의 공격력의 두배 이상이다. 금강폭열공. 제 사초. 신룡박투神龍搏鬪. 충격파衝擊波! 64마리의 강기의 용이 허공중에서 서로 부딪히며 파생하는 충격파를 제어해 주변을 휩쓰는 신기! 그 위력은 신룡일섬. 격멸이 범위가 확대된 정도이다. 금강폭열공. 제 오초. 신룡합神龍合. 뇌제염雷帝焰! 이번부터 그 초식은 달라지게 된다. 무려 128마리의 강기의 용을 강기신공으로 발휘하며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룡들이 한군데로 몰려들어 일격을 가하는데…… 그 위력은 금강폭열공의 제 삼 초 위력의 4배 이상이다. 푸르른 뇌력의 강기를 휘감은 거대한 용의 환영이 생겨난다. 금강폭열공. 제 육초. 신룡합神龍合. 태제금황太帝金皇! 역시 128마리의 용을 사용하여 한군 데를 점 하여 공격하게 만든다. 일대 장관을 형성하며 쏘아져 들어간 강기의 용들은 한점에서 만났다가 충돌하며 다시 나뉘 어 뒤쪽으로 터져나가는데. 그때 부딪히며 발생한 거대한 에너지를 제어해 강기의 덩어리를 만들어 그것을 폭주시킨다. 그때 이전과는 다른, 눈이 실명될 정도로 강렬한 금빛의 폭풍이 발생한다. 그 위력은 신룡합. 뇌제염의 범위과 확대된 정도의 위력을 가진다. 금강폭열공. 제 칠초. 신룡합神龍合. 대회류강기풍大回流剛氣風! 이것은 신룡회류. 강기풍을 확대시킨것이라 말할수 있다. 제 오초. 신룡합. 뇌제염의 위력 2배의 위력을 가지면서도 그 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역시 128마리의 강기의 용이 생성된다. 금강폭열공. 제 팔초. 신룡천격神龍天擊. 격공파擊空破. 128마리의 강기의 용을 한군데로 집 약했다가 그대로 공중으로 강기의 기둥을 회오리치듯 생성해 공중에 뜬 상대를 공격하는 방법이다. 다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신룡이 묶였다가 풀려나가는 순간 강대한 강기의 줄기가 솟구쳐 올라가고, 그 강기의 줄기를 휘감고 신룡이 솟구친다. 제 칠초의 위력이 한곳으로 집약된 무공이다. 금강폭열공. 제 구초. 신룡폭주神龍暴走. 공멸법共滅法! 이번부터 다시 강기의 용이 증가한 다. 무려 256마리의 강기의 용이 시전자의 몸에서 전방위로 뻗어나오는데, 일정 초식의 운용 없이 신룡들이 서로 박투하며 그대로 폭주해버린다. 꽤 위험한 공격법이 나. 제 팔초의 위력의 4배 이상의 위력을 가진다. 그리고 범위는 끔찍할 정도로 넓다. 금강폭열공. 제 십초. 금룡뇌격金龍雷擊. 공명뢰共鳴雷! 거대한 강기의 폭풍을 따라 256마리 의 강기의 용이 허공으로 뿜어져 올라가 그대로 한 개의 금색 번개를 만들며 서로 공명하며 떨어져 내린다. 그 위력은 제 구초의 위 력이 한곳으로 집약된 정도이다. 금강폭열공. 제 십일초. 신룡합일神龍合一. 자연력격발自然力激發! 256마리의 용을 모두 한 군데로 모아 거대한 금색의 용을 만든다. 말 그대로 신룡! 이전의 용들과는 다른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이것의 위력은 자연력의 기혈점을 뿌리채 뽑아버릴 정도의 위력으로, 그것과 충돌. 거대한 산 하나를 뿌리채 뽑아버릴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뿜어낸다. 제 십초. 금룡뇌격. 공 명뢰의 위력의 4배 이상이다. 금강폭열공. 제 십이초. 천지격노天地激怒. 신룡우神龍雨! 256마리의 용이 하늘로 끌어올려 지며 서로 공명한다. 그럼과 동시에 그 공명으로 발생한 거대한 기폭풍이 자연의 힘과 그대 로 격돌한다. 그리고 천지가 폭주하는 가운데 빗발처럼 강기의 용이 내려꽂힌다. 제 십일초. 신룡합일의 위력의 두배이면서도 그 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금강폭열공. 제 십삼초. 천지쟁명天地爭命. 극파極破! 현재 영마저 쓸수 없는 무공이다. 그러 나 이론으로는 완벽하며. 굉장한 위력을 가진다. 강기의 용의 숫자가 또다시 늘어나는데. 512마리의 강기의 용이 생성된다. 용들이 서로 뒤섞 이며 자연의 기운과 공명한다. 그와 동시에 생겨난 거대한 기운을 대지로 심어버리면, 대지의 기혈점과 충돌하여 마그마 층까지 건드려 신생섬 하나는 만들 수 있는 무서운 기술이다. 금강폭열공. 제 십사초. 천지폭멸天地爆滅. 자연력폭주自然力暴走! 512마리의 강기의 용이 대지를 가르며 근방 범위 지정된 대지의 기혈점을 모두 스치고 지나간다. 그 위력은 오히려 십삼초보다 모자라지만 이론상으로 범위는 더 넓게 지정할수도 있다. 하 늘과 땅이 폭주하며 하늘의 기혈점도 건드려진다. 금강폭열공. 제 십오초. 용왕강림龍王降臨. 대자연진노大自然震怒! 512마리의 강기의 용이 하나로 합일화 되어 땅을 파뒤집으며 하늘을 찢는다. 진도 8이상의 굉진이 발생할 정도이며, 하늘과 땅의 기혈점을 '폭주'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 멸'시켜버리며 그 위력은 커다란 섬 하나를 그대로 소멸시켜 버릴 정도로 강하다. 거대한 용왕은 그대로 지룡地龍이 되어 땅과 하늘을 울린다. 금강폭열공. 종결. 용신노갈龍神怒喝. 천염강림天焰降臨. 천지차반복天地差反復 도래到來! 이 것의 위력은 예상된바 없다. 이론상으로는 1024마리의 강기의 용이 나타나 하나로 섞여 합일됨과 동시에 그 거대한 금색의 용이 포효하는 충격파 만으로도 하늘의 종 말 때 나타난다는 하늘불이 도래하며 하늘과 땅이 반복하듯 거대한 힘이 나타나 작은 대륙을 초토화시켜버릴 정도의 위력을 낸다고 한다. 금강폭열공. 오의. 건곤태극乾坤太極. 신룡무神龍舞. 종결초식에 도입되는 다만 심득일 뿐이 다. 이것은 무심검이라고 짐작되는 심득을 본따 만든 것이다. 무심검의 극에 이르면 그 위력은 대륙을 쪼개어 버릴 정도라고 하는데…… 이 건곤태극. 신 룡무는 신룡의 춤으로써, 금빛의 강기를 몸에 휘감고 검무, 혹은 권각으로 춤을 추며 그 회오리로 상대를 확실히 죽음으로 몰아가는 기법이다. 뜻에 따 라 신룡을 발출해 낼수도 있으며, 궁극에 이르면 열 여섯초식을 반복하며 무한대로 사용하는것도 가능한 궁극오의다. 이것을 사용하면 신화경에서나 가능한 대자연의 기운을 의지만으로 폭주시키는것도 가능하 다. 물론 몸속의 공력을 약간 이용해야 하지만…… 자연력 폭주는 자연력을 갉아먹는 것이라 신 화경의 고수는 오히려 이것을 거의 쓰지 않는다. 오히려 몸에 지닌 신위 하나로도 자신을 범접할 자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쓸수는 있지만 그가 가능한 초식은 열 두 번째 까지였다. 문득 일주천을 끝낸 그가 눈을 떴다. 눈빛은 더 깊어져 있었다. 그리고 한숨이 그의 입에서 토해져나왔다. "금강폭열공. 제 십이초 이후의 무공은 대체……" 그가 사용할수 있는 금강폭열공의 신위까지는 제 십이초의 그것이었다. 제 십삼초는 자신이 만들었지만 이론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 되지 않는것인지…… '역시 공력이 부족한것인가? 10갑자를 능가해도 쓸수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 십 삼초부터의 초식은 인간으로써는 도저히 발현하기 힘든 것이다. 제 일초 하나만 하더라도 웬만한 강호의 검술을 능가하고 있는데 너무 과욕하는 것은 아닐는지…… '무예의 끝은…… 어디일까?' 별빛이 그의 망막에 비쳐들며 그 깊은 흑안에 투영되고 있었다. 이 별빛은 맑기 그지없었지 만, 그리고 하늘과 공기는 본래 세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으나 아련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했다. 문득 자신이 있는 이곳이 본래 세계와 닮았다는 생각을했다. 그곳은 고향이다. 이곳은…… 또 다른 고향이다. 두번째의…… '또 다른 고향이 생각나는군…… 윤동주의 시였던가?' 문득 시가 떠오른 그는 호롱불을 켜고, 금을 잡은다음 곡을 타기 시작했다. '또 다른 고향' 의 시에 음을 붙인것에 불과했지만…… 만족스러웠다. 고향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宇宙로 통通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風化 作用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魂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조용한 노래와 부드러운 가락의 음이 방안을 메우며 바깥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몽환적으 로 물결치는 가락의 파동은 바깥으로 흘러나가 조용히 하늘로 스며들었다. 026. "점검!" 차차창――! 그의 기합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2인 1조로 서로 검을 연습해 다듬고 있던 이들에게서 소름 끼치는 금속음이 한가득 터져나왔다. 푸른색 금속음이 허공을 울리고 난다음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바꿔서 점검!" 차차창―! 2인 1조의 사람들중 대부분이 다 완벽하게 해내고 있자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열어 다시 하라는 말을 내뱉었고, 곧 금속음이 요란하게 터져나왔다. 영은 그것을 냉담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백번 연습하고 바꿔서 다시 백번을 하라는 말을 한 다음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명상에 빠지는 버릇이 발동된 것이다. 점검술…… 상대의 검을 제껴버리는 검격술劍擊術이었다. 그가 아는 점검술은 모두 네가지. 이것중 세가지를 가르치게 된 것이다. 첫 번째는 이화접목異花接木의 수법이었다. 상대의 검류에 자신의 검류를 섞었다가 옆쪽으 로 방향을 바꾸어 상대의 자세를 흐트러뜨린다음 일격을 가하는 수법. 그리고 두 번째는 상대의 검을 피해내며 그대로 상대의 검이 향하는 방향으로 검을 쳐서 상 대가 힘을 제어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법이었다. 세 번째는 상대의 검로劍路를 먼저 찾아내 그곳을 미리 점하고 일격을 가해 목숨을 앗아버 리는 방법이었다. 네 번째는 항상 안정된 자세로, 어느 상태에서도 검술을 익힐수 있고, 상대의 검술의 검로와 위력을 완전히 읽고 그 허초와 실초를 완벽하게 묶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허초를 실초로, 실초를 허초로 바꾸어 상대에게서 혼란함을 유도하는. 적어도 현경은 되어야 쓸수 있는 기법이었다. 앞의 세가지만을 가르쳤을 뿐이지만, 이들은 영이 가르친 것 만으로도 조금 더 검에 진보를 보일수 있었다. 그가 가르친 이화접목은 이전의 이화접목보다 훨씬 깨끗하고 부드러운 동작을 요구했지만 그 위력은 더 빼어났다. 그리고 두 번째의 기술 역시 훌륭하기 짝이 없었으나 꽤 위험한 것이었다. 그러나 필살의 검[必殺劍]으로는 어울리는 기술이었다. 세 번째는 상대의 검술을 완전히 알고 있어야 하며, 모른다 하더라도 그 안법이 상상을 초 월할 정도로 대단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이들을 안법 수련 시킬 때 자신이 직접 감독하며 꽤 오랜기간을 시켰으며, 집 중력 훈련과 실전 연습도 하게 만들었다. 뭐, 그 실전 연습이라는게 '못 피하면 베인다.'라는 훈련법이었지만. 적당히 강도를 늘려나가 며 죽지 않을 만큼만, 그리고 검을 쥐는데 전혀 지장 없을 만큼만 열심히 베어줬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가르치는 살수들은 예기銳氣나 살기殺氣 한점만 느끼면 바로 신법이 극성으로 뿜어져 나와 그것을 회피해 버리는 수준에 올라섰다. '좀 심했나? 앗! 이런…… 잡생각에 빠졌군.' 그때 운은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소리없이 매섭게 호선을 그린 목검의 끝이 정확하게 사람의 머리와 맞물렸다. 마치 검극은 매가 사냥감을 노리듯, 정확하고 매섭게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타격음(?)이 검련장을 매섭게 갈랐다. 딱―! 이어 운의 가는. 그러나 힘을 담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집중!" 어린 가주였지만 실력은 엄청났다. 어느새 한눈 팔고 있는 녀석을 찾아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나타나 머리통을 목검으로 내리치는 것이다. 이 목검을 지금까지 운이 훈련시키는 검수들의 머리에서 수많은 피들을 흡수한 혈검(?)이었 다. 그 목검만 보이면 검수들은 치를 떨었다. 그 목검에 새겨져 있는 글귀는 가관이었다. 「훈련전용訓練全用 교육목검敎育木劍.」 ……훈교검(줄임)이 신출귀몰하며 춤을 출때마다 검수들은 진검을 가지고 덤비면서도 피떡 이 되곤 했다. 역시 이번에도 집중력 훈련을 하던중 살수들의 훈련을 보며 놀라고 있는 녀석의 머리통을 내리친 목검은 피를 흡수해 번들거렸다. 본래 그냥 단목이었으나 피를 머금으며 검붉은 빛으로 화해 보기만 해도 으스스했다. 오늘 만 해도 박터진(?) 검수는 백명 단위를 넘고 있었다. 무려 오백명의 검수들을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살피는지. 하나같이 모두 어이가 없을 정 도였다. 그러면서도 운은 저쪽에서 살수를 훈련시키는 것들과 살수들이 익히는 기술들을 눈여겨 봐 두는 것이었다. '역시…… 영은 달라. 저런 기술들은 어디서 배운걸까? 어디 출신일까? 대단한 재능을 지녔 지만 처음에 보았을때는 그렇게 강하진 않았는데……' 궁금증에 의해 상념으로 빠져들어가던 운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검련장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검을 들었다.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움직여 한치의 망설임없이…… 그리고 매서운 손속으로 검수 한명의 머리를 내리쳤다. 호선을 그리며 내리쳐진 목검의 검신이 그대로 그 검수의 머리와 강도 비교를 했고, 강도 비교의 순간에 음속으로 명쾌한 타격음이 검련장에 메아리쳤다. 따악―! "집중!" 지금 검수들에겐 운의 청천검靑天劍이나 영이 사용하는 은영비銀影比―영이 사용하는 나이 프를 본 이들이 이런 이름으로 부른다.―보다 훈교검이 더 무서웠다. ……아아. 교육의 힘은 위대하여라. 맞은데 또 맞은 검수들의 마음속에 퍼져나가는 애처로운 비명. 그러나 그것은 바깥으로 터 져나오지는 않았다. 이유라면…… 신음내지르면 훈련이 덜됐다고 더 맞으니까. "덜된놈!"이라는 질책과 함께. "으윽……" 오늘도 운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자 마자 검수들은 검을 거두지조자 못한채 그것을 떨어뜨 리며―검수가 검을 놓는다. 벼락맞을 짓이었지만, 그들은 지금 죽을 것 같은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그정도로 정신충격이 컸다.― 땅에 널브러 졌다. 그리고 곧 하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그들을 부축해 각자의 방에 처박았다. 금창약좀 발라 주고 약재 약간 먹인 것 뿐이었지만 그들은 불만도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현재 검의 수준이 약간(?)의 폭력성이 가미된 교육(?)을 받고 단기간에 훨씬 더 증진되었다는 것 하나때문이었다. 오늘도 피로 물든(?) 훈교검. ……과연 그것이 무방비로 방치되었을 경우 어떻게 될지 흥미롭기 그지 없었다. 아마 검수 들의 각기 최고의 절기를 맞고 가루가 나버릴 것이다. 자신들의 피를 듬뿍 흡수한 마검이자 사검. 훈교검은 단순한 목검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마검 외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뭐, 그래도 지금까지 내 공격을 한 번도 받지 않은 녀석들은 딱 여덟명……" 영은 훗 하고 웃으면서 운에게서 혈향이 감도는 훈교검을 받아다가 최대한 깨끗하게 닦아서 벽에 걸었다. 그리고 나서 운을 바라보았다. "그 여덟명은 팔검위八劍衛가 되는건가?" "그래. 제법인 녀석들이지. 오성도 쓸만한 수준이고……" 그 검수들의 얼굴과 능력사항 정도는 모두 외우고 있는 운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남은 생 생조화단生生造化丹을 먹일 작정이었다. 영의 짐작으로는 운이 그들 팔인에게 단약을 두알씩 먹여서 1갑자 정도의 내공을 더해줄 생 각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 영약 하나 먹지 않았던 이들이라 내공은 정순했다. 그리고 생생조화단은 순수한 영기의 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신묘한 영약이었기에 복용시켜도 별 상관은 없을 것이었 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두알씩 줄 것은 아냐. 한알씩 주고 남은 것은 보관해두어야지. 영이 보관해 줄거지?" "음." 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사시…… 그것이 영약의 투입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비 무환이라 했으니, 대비해서 남줄것인가? 그리고 생생조화단 한알만 무려 반 갑자의 내공을 얻게 해주는 신효를 가진 약이었다. 그 팔검위들로 채택된 이들은 모두 다 현재 2갑자에 조금 못미치는 정도의 공력을 갖고 있 었으므로 한알 정도만 투입해도 충분할 것이도. 어쩌면 그 여덟명에게 심득을 조금 띄워준다면 순식간에 화경의 고수가 될지도 몰랐다. 만약 그럴 시에는…… 천류세가의 무림제패는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교에 극마의 고수는 다섯이다. 그리고 무림맹에 있던 현경의 고수. 뇌검자는 영에게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드러난 화경의 고수는 다섯이다. 광협 문열은 제한다. 그는 무림오천의 일인이었지만 정과 사의 중간을 택한 인물이었으니 까…… 그도 발전했다면 현경. 아니라면 화경일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묘한 것이. 화경도 극마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 중간일 뿐…… 그리고 무림맹의 드러난 화경의 고수와 마교의 고수 다섯이 모두 손을 잡고 그들이 합공한 다 하더라도 무리가 없다. 그 화경의 고수 열 명을 영 혼자서 제거할수도 있기에…… 그리고 운이라는 절정의 화경고 수와 여덟명의 팔검위라면…… 거의 마교의 숨겨진 세력과 드러난 세력의 융합조차 모두 제거할수 있다. 이렇게 거세어져 가는 혈풍의 조짐속에서…… 천류세가는 검을 들려 하고 있었다. 복수의 검을…… 은은한 검명 소리가 귓가에 일렁이는 듯 했다. 운이 마신 찻잔을 영이 챙겨 가면서 씁쓸한 미소를 띄워올렸다. '여기서도 살인귀殺人鬼나 다름없는 것이 되는건가?' 027. ……군집체群集體 조종능력操縱能力. 비가 온 듯 했다. 개인 날씨…… 그리고 떠오른 태양에서 황홀한 금빛이 퍼져나와 생명들에 게 따스함과 생명의 깨어남을 던져주었다. 어둠과 잠이라는 것을 몰아낸 금빛은 여김없이 천앙표국이라는 간판을 단 곳의 깊숙한 곳에 도 닿았다. "……" 퐁― 퐁― 물방울이 수면에 떨어져 내려 흩어지며 공기를 머금고 물로 스며들었다가 그 공기가 빠져나 오며 묘한. 그러나 어쩐지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물방울 소리가 터져나왔다. "……" 손이 움직였다. 언제 움직였는지도 모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 손은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 는 물방울이 중력과 관성력을 받아 힘의 평형을 이루어…… 공기의 가속도를 받을 때 보이는…… 아래쪽이 살짝 패인 모양도 아닌 순수한 물덩어리의 모양으로 변했을때의 물방울을 잡아 챘다. 손에 물이 와닿는 감각은 없었다. 숨막힐 정도로 뿜어져 나오는, 얼음의 투명함…… 그런 푸 르스름한 기운을 머금고 깊고 투명한 빛으로 변한 오른손에서 스며나오는 음한지기陰寒之氣 에 의해 얼음이 되어버린 구슬이 손에 잡히는 감각만 왔을뿐. 잡힌 얼음 구슬은 손 위에서 굴러다녔다. 그리고 점차 투명한 손이 은은한 마기를 내뿜다가 완전히 보통의 손 모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손 마저도 차갑고 맑은 살결을 지녀서인지, 방금 펼쳐진 소수마공素手魔功을 운 용하는 때와 심한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 얼음구슬을 바라보던 차가운 눈빛은 곧 조용함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나 손 을 휘둘러 구슬을 던져버렸고, 얼음 구슬은 파공음을 내며 쏘아져 나갔다. 쐐애애액― 파팍―! 그리고 그것은 벽에 박혔다. 얼음이라지만 돌벽보다는 단단하지 않다. 그러나 얼음은 멀쩡하 게 벽에 박혀있었다. 그 순간 창에 쳐둔 가리개 사이로 금빛의 햇살이 스며들어와 반쯤 무중력 상태에서 얼어붙 어 균일하게 언 얼음구슬 내부로 잠겨들었다. 그리고 눈부신 광채가 얼음구슬에서 일어났다. 그것을 바라보던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서 왼손가락을 그것에 정확히 겨냥했다. 요즘 수련하고 있는 심안心眼은 거의 완벽하게 익힌 상태였다. 심안. 그리고 원근법이 결합된 심안은 엄청난 것이었다. 비록 자신의 투시 능력과 비해보면 아직은 모자랐으나 성취는 있었다. 그의 눈꺼풀이 치워지며 깊디 깊은 흑안에서 날카로운 광채가 피어올랐다. "……임무?" "그래. 원래 이곳은 표국역할을 하고 있었어. 이번은 수송임무인데. 이상하게 비련산에 들어 가서 나오지를 못한다더군…… 무엇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 근처 마을에서 밤마다 산중에서 포효소리가 들려온다고 했지." "흥미롭군." 영의 대답. 그럴줄 알았다는 듯 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다음 말했다. "최근 꽤 답답했지? 지루하기도 했겠고. 오랜만에 나갔다 와. ……좀 불길하긴 하지만 그래 도 괜찮겠지? 영이니까." "아아…… 별 상관은 없어. 설마 나도 이길수 없는 존재라면 '별로 쓰고 싶지 않은' 능력을 쓰면 되니까." "……별로 쓰고 싶지 않은 능력?" 운이 궁금하다고 얼굴에 써붙이고 그에게 질문하자 그는 훗 하고 웃은다음 운의 귀여운 모 습을 바라보다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뭔데?" 운의 질문에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그건 비밀이야." "가르쳐 줘. 가주에게도 비밀이야?" "……내 밑천이야." "……"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영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여전히 티없이 맑았으나 '그 능력'을 떠 올려서 약간 찹찹해진 심사에 의해 하늘은 우중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빼어물고는 허리에 매여진 청천검靑天劍의 손잡이를 가볍게 쥐 었다. 따각따각― 마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와 말발굽이 대지에 부딪히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오랜만에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서 지우고 조금 즐거운듯한 미소를 피워올린 그는 청천검의 손잡이를 쥔 손을 풀었다. 그리고 조용한 노래를 흥얼거렸다. 워낙 할 일이 없으니까…… 바람속에 피어오르는 꿈을 따라. 끝없는 여정을 가네. 밟아가는 오색 구름이. 햇살의 투명함에 회귀하고. 은은하게 실려오는 물소리에. 푸르른 꿈이 부서져 내리고. 그것과 함께 떠오른. 붉은 달에 투영하네. 투영된 그림자 속에서. 빛을 찾는 나의 손. 어둠을 훑어내리면. 그 사이에서 빛이 솟아오르네. 비추는 빛은 세상으로. 가리는 어둠은 하늘로. 남빛으로 물드는 하늘가운데. 여행자의 발길은 잦아든다. 지루한 여행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로써는 꽤 즐거운 여행이었다. 잠깐동안 노래를 불렀 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의 분산된 감각에 뭔가가 걸려들었고, 그는 눈빛에 살기를 담으면서 집중해 주변의 기척과 소리를 살폈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약한 살기가 몸을 자극했던 것이다. "전투준비!" 그의 외침에 천앙표국의 이름을 걸고 따라온 20여명의 천류세가의 검수들과 10여명의 살수 들이 몸을 긴장시켰다. "무슨 일입니까?" "꽤 재미있게 됐군. 지금 목표로 생각하는 비련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습격이야. 특 히 이번 물건이 좀 위험한거라 그런지…… 여로를 계산한 모양이군." 운의 말로는 그 '괴수'와 더불어 사람이 몇 더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그곳에 들러서 길로만 가는데 괴수 소리가 날 이유는 없다. 그리고 괴이지에 실릴 정도의 괴수는 특별한 터전을 잡으며, 늪지나 그런 곳으로 일부러 들 지 않는다면 습격받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괴수를 조련시켜서 누군가가 사욕을 채운다는 것인데…… "오는겁니까?" 검수 한명이 그에게 그렇게 질문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갈했다. "하늘이다!" 그리고 쇄도해오는 흑의인들과 혈의인들을 향해 그는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어느새 뽑혀올 라와 청광을 뿜으며, 그 예기로 한명의 몸을 베고 지나가 피를 머금은 청천검이 시린 햇살을 튕겨내며 번쩍였다. "회풍무류검回風舞流劍?" 흑의인들의 우두머리가 놀란 목소리로 영의 검술을 바라보았다. 회풍무류검. 화산파의 검술 중 하나였다. 게다가 지금 자신의 상대. 영은 회풍무류검의 오의를 체득한 듯 했다. 이정도로 검을 이해한 이들은 적전제자밖에 없 었고, 설마 화산파가 개입한게 아닌가 의심했다. 전력을 다해 검기를 뿜어내 상대를 공격했지만, 상대는 너무나도 우스울 정도로 쉽게, 검기에 자신의 검류를 실어 자신에게 되튕겨 보내거나 헛점을 보이고 있는 자신의 부하의 몸을 향해 튕겨냈다. '어디서 이런 무서운 자가……!' 그 사이 청천검이 튕겨졌다. 매끄러운 동작으로 펼쳐진 회풍무류검의 풍천참. 순식간에 빛의 원이 그려지며 흑의인의 검이 두동강났다. 금속이 부딪히는 어떤 소리도 없었다. 그저 청천검의 검신이 바닷빛으로 이글거리며 쉽사리 정강제 검을 가르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어, 어검술御劍術……?!" 장내는 경악했다. 상인 무리들은 뒤쪽에 있고, 그가 몸으로 가렸기에 볼수 없었으나 흑의인 들은 볼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상인의 우두머리로는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의 눈에 이채가 서렸 다. 푸학―! "전투중에 한눈 파는건…… 상대에게 나 죽여달라고 외치는것에 지나지 않아." g그새 바닷빛의 선이 흑의인의 몸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더운 김이 퍼져나왔다. 피와 내장 이 흘러내리며 두동강난 사체가 떨어져 내린 것이다. 그 눈동자에는 불신과 경악이 깃들어있었다. 그리고 재차 무서운 속도로 몸을 튕겨 허공중 에서 탄신彈身하여 쏘아져 내린 그의 청천검이 춤을 추었다. 이글거리는 강기의 회오리를 머금은 바닷빛 검이 사방을 향해 질주한지 채 반각의 반도 되 지 않았을 즈음. 이들을 습격한 50명의 무인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바닥에 널어졌다. 그것도 모두 두토막이 났거나 머리가 수직으로 쪼개졌거나, 혹은 심장에 구멍이 난 채로. 하나같이 즉사였고, 잔혹한 손속이었다. 어느새 바닷빛이 사그라든 검을 검집으로 갈무리한 영은 늘어진 시체들을 보며 역겹다는 표 정을 짓고 있는 상인 무리들을 바라보다가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시체들을 치우도록." "존명!" 그리고 수하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리고 다른 표사들도 서둘러 움직였다. 명령받지는 않았 으나 그의 신위와 냉기와 위엄이 서린 목소리에 감히 저항할수 없었던 탓이었다. 상인의 우두머리는 그때 영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달이 떴다. 창백한 빛을 뿜어내는 신월新月이 날카로운 한자루 도刀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그 빛은 은은하게 어둠에 적셔진 숲을 파고들었다. 타닥타닥― 이리저리 사람들이 모여서 모닥불을 피운채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불침번은 몇몇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모두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영은 아직 잠들지 않은 상인의 우두머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날름거리는 불꽃을 가라앉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영은 우두머리가 한 제의에 인상을 찡그렸 다. 보통 일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다. 특히 이번 '짐'이 어떤것인지는. 황제에게 가져가는 진상품. 바로 그것이었다. 말이 진상품이 었지…… 황제가 관심을 보인 것은 두 개의 용이 얽혀있는 한 개의 팔찌였다. 그 팔찌가 다만 금과 은, 그리고 백금과 더불어 금강석으로 제작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무서 운 병기라는 점이 문제였지만. 박혀있는 금강석을 누르면 칼날이 튀어나온다. 그 칼날은 현철로 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팔지…… 이름하여 건곤권을 던지는 것이다. 그 순간의 포착과 칼날이 없는 부분을 잡거나 손목에 그 부분을 끼우는 것이 어려워서 그렇 지. 만약 다룰수 있게 되고, 공력을 주입해 사용할수 있게 되면 그 위력은 무림의 어떤 신병이기라도 확연히 능가할 수 준의 무기였다. "당신의 실력은 고작 표국의 표사로써 낼수 있는 무공이 아니오. 어검술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소이다. 이번에 황제 폐하께 찾아가 당신을 추천할 생각이오." "거절합니다." "뭐, 당신은 무인이니 돈이나 지위로는 붙들 수 없을거란 것, 알고 있었지." "……? 알면서도 시도한단 겁니까?" "물론 조건이 조금 다르지. 황궁의 서고에 보관된 모든 무예서적들을 관람할수 있도록 해주 겠소. 그리고……" "역시 거절합니다. 많은 무예를 비교해 지금보다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려고 하는 시도는 그만둔지 오래입니다." "……그거 아쉽군. 현경이라 해도 도움은 될 것 같은데……" 그는 아쉽다는 표정이었을 뿐이고, 속내에 다른 계략은 없는 듯 했다. 최근 텔레파시의 응용인 생각을 훔쳐 읽어내는 초능력또한 얻어 그의 생각을 살폈지만 다만 아쉽다는 뜻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추천함으로 황제의 신뢰를 받을 생각일 뿐이었다. 기억도 뒤져보았지만 다만 단순한 생각일 뿐이었다. '……현경의 고수. 반드시 편입할 것이고 꽤 노력을 들일텐데…… 역시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거나 황궁에서 뭔가 현경의 고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할수 있는 것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의문은 깊어갈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 하나 알수 없는 정보를 유추해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그만 두고 자신들의 무리로 돌아갔다. 028. 비련산을 넘어 낙양에 도착하면 천류세가의 인물들은 다시 귀환하게 된다. 표행이라지만 그 들이 계산한 것은 비련산을 통과하여 낙양까지만 가면 되는 것 뿐이었으니까. "……" 그간 별 일은 없었다. 뭐, 굳이 몇가지 들자면…… 꽤 큰 규모의 산채의 도적들이 나타나서 일행들을 습격하려다가 영을 보고 탐욕스러운 표정 으로 계집은 손대지 마라라는 말을 꺼내서 그 자리에서 산채로 해체되어 고통스럽게 저승의 강을 건넜다는 것. 그리고 영의 신경을 거스른 주정뱅이들이 1각동안 분근착골 당하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 렀다는 것. 마지막으로 가끔 가다가 그의 청천검에 눈독들여 접근했던 인간들이 눈이 뽑혀버렸다는 것 정도 외에는 아. 무. 것. 도. 없었다. 굳이 추가하자면 그의 잔인한 손속을 본 수하들과 상인들, 그리고 표사들이 그만 보면 괜시 레 긴장해서 실수한다는 것 정도? 오늘도 느긋하게(?) 가끔 폭력을 쓰고, 가끔 드잡이질 하고, 가끔 손을 조금 쓰고, 술 조금 마시고, 약간 이야기 하고, 명상에 잠기고, 운공을 끝내자 하루의 낮과 밤이 영영 가버렸다. 그는 약간 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즐겁긴 하였지만 차라리 천앙표국 건물 내부에서 무공수련 하는게 더 나았을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반복되지 지루하기 짝이없었던 것이다. 최근은 무공의 한계를 느끼고 운공만 뼈빠지게 하고 가끔 흐름의 검예를 익히는 것. 그리고 사이킥Psychic에 대해 훈련하는 것 정도밖에 없었다. 염동력念動力 수준은 그것만으로도 화경의 고수를 핍박할수 있는 수준이었다. 텔레포트 능 력 역시 상당히 강해져 웬만해서는 지치지도 않게 되었고, 레비테이션 능력 역시 꽤나 대단해져서 공중에서 신법과 가미해 이것을 사용할 경우 지상에 서보다 더 빨랐다. 그리고 파이로키네시스트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내 사용할 경우…… 거의 섭씨 2천도를 능가 하는 불꽃을 사용할수 있었다. 투시 능력이나 일루미네이트 능력 정도는 이야기 할것도 없었다. 그리고 최근 매달리는 것 이 바로 텔레파시와 그것을 응용한 두가지 수법인데…… 응용의 수법중 첫 번째는 생각을 읽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지금 그가 '밑천'중에서 가장 유용하지만 쓰고 싶지 않고 잔악하며 그와 동시에 처참한 능 력이라고 하겠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말이다. "……과연 이 능력을 가진 내가. 폭주한다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까?" 그 생각이 들때마다. 섬뜩함이 몸을 엄습했다. 모르긴 몰라도…… 10갑자의 내공을 가진, 그리고 그 능력없이도 현경의 고수 정도는 문제 없이 제거할수 있는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그와 동시에 흐름을 지배하고 동화하는 능력을 지닌 자가 폭주한다면…… 제국 류의 절반은 초토화 될것이다. "……흠. 청하객잔이라." 붉은 기둥, 그리고 화려하게 장식한 주루. 그것을 바라보던 상인의 우두머리가 고개를 끄덕 이며 말했다. "저기서 투숙한다! 부족하면 옆 객잔들을 이용한다. 기상은 성문이 막 열릴 때. 그리고 정비 가 끝나면 모여서 출발한다!" 그의 지휘가 떨어지고 난 뒤에 모두들 청하루로 들어섰다. 커다란 객잔이었지만 너무나 고 급이라거나 하는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방은 꽤 많이 남아있었기에 표사들과 천류세가의 사람들, 그리고 상인의 절반이 묶 을수 있었고, 짐들은 천류세가의 사람들이 지키도록 했다. 뭐, 건곤권을 빼면 다른 짐들이야 비싼것들이긴 하지만 잡다한 것으로, 위장용에 불과했기에 별 상관 없었지만. "무엇을 드릴까요?" 그래도 하급은 아닌지, 깔끔한 어투를 사용하는 여급이 주문을 받기 시작했고, 영은 잠시 생 각하다가 말했다. "알아서들 시키고. 본인은 적당한 안주거리와 백일취를 주게." 백일취라는 말에 눈이 동그래진 여급이었으나 결국 그의 차가운 눈빛에 굴복되어 백일취와 적당한 안주거리들을 가져다 주었다. 식사는 별로 입맛이 없었기에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안주를 집어먹으며 진한 국화향이 뿜어져 나오는, 국화향보다 강한 주향을 뿜어내고 있는 것을 가볍게 들이켜 그 향을 음미하던 그는 안주를 집어 다시 입에 가져갔다. 차 두잔 비울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백일취 한병은 이미 동나버렸다. 그는 입맛을 쩝쩝 다셨으나 별로 아쉬울게 없어서 얼굴을 거의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옆 으로 흘린다음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사라졌을 뿐이었으나 객잔 내부는 굉장히 조용해졌다. 그는 잠시 의 아함을 느꼈으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영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짹― 짹― 이슬이 맺혀있는 잎이 기울어지며 물방울을 떨구었다. 그리고 아침을 맞아 금빛의 햇살과 더불어 새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대략 2각 정도밖에 잠들지 않았으나 피로는 모조리 날아간지 오래였다. 그가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세면을 끝내고, 적당히 식사를 하고 나자 상인들은 대부분 모 여있었다. 그리고 정비를 끝내고 짐이 무사함을 확인하고 나자 곧 성문이 열리는 시각이 다가왔고, 모 두들 성문을 통과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비련산은 앞으로 3일 거리였다. 다시 마차 굴러가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 그리고 지루한 걷기. 이것의 반복이었고,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도 여느때와는 달리 너무나 단조롭게 느껴졌다. 공기는 맑았으나 익숙해져 있었기에 딱히 감흥이 없었다. '지루하군…… 차라리 싸움이나 있었으면 좋을것을.' "적들은…… 도착만 기다리게 된건가? 나야 별 상관은 없지만. 후후후……" 그가 띄워올린 목소리를 가녀린 미풍이 쓸어올려 하늘로 전달했다. 시간은 쉴새없이 흘러가고, 일행들도 길을 따라 쉴새없이 흘러갔다. 최근 그가 심심해서 시 도해 보려고 하는 것은 검명劍鳴으로 사람을 죽이는. 탄음상인彈音傷人의 음공이었다. 금으로는 할수 있지만 검명. 검이 우는 탄검음으로 살殺이 라는 구결을 펼칠수는 없었던 것이다. 신경만 쓰고 제대로 훈련했으면 가능했겠지만, 음공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힘들군……" 검을 수십차례 튕겼으나 도대체 어떻게 하는건지…… 잠깐 동안의 지체가 약한 공격이라면 가능했으나 도저히 해답을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역시 음공은 활活부터 시작하는건가? 뭐, 생명의 연주나 죽음의 연주나 일맥상통하는 것이 없지는 않으니…… 활기活氣를 실은 음공音功부터 해야하나……" 고민에 고민을 하는 영. 역시나 방법은 검토밖에 없었다. 현경에 오른 자신이 지금까지 부딪 힌 큰 벽이라고는 신화경의 벽 밖에는 없었지만, 무공을 개조하고 익히면서 그리고 창안하며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 벽을 뚫는 끈기 외에는 더 길이 없을 것 같았다. "젠장할……" 욕이 입에서 흘러나올 정도로…… 음률에는 제법 조예가 있으나, 음공에 그것을 적용시키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그것도 난이도가 가장 어렵다는 일음살一音殺을 처음부터 해내려고 하고 있었으니…… 너무나 무모하기 짝이없는 시도였다. 비련산…… 이곳은 매우 음침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산세부터가 음기가 고이고 빠져나가 지 못하는 지형이었고, 토질에 의해 동도지라는 말이 있는, 퇴마의 효용이 있는 복숭아 나무 역시 하나 자라지 못 하고 있었다. 게다가 양기가 쫓겨나가는 성세여서인지, 음기는 더욱 성했다. 어쩐지 숨이 턱턱막히는 듯한 느낌에 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고운 아미가 일그러지는 것은 머리카락에 가려져서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심하군……" "어쩐지 불길한 곳인데요……" 한 검수가 그렇게 말했다. 그건 미신이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사실 그도 그런 느낌 이 들어서 그냥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귀곡성이 울려나올듯한 계곡부터 시작해서, 거칠고 악로만 타고나온 산세. 더군다나 더 짜증나는 것은 근처 지형 때문에 습기가 몰린다는 점이었다. 보통 산과 다를바 없이 녹색 잎사귀를 뽐내는 나무들. 그러나 음기 때문인지 그 광경이 조금 음침하게 보였다. 햇살한점 비치지 못하도록 하는 짙 은 구름들 때문에 그것은 더욱더 가중되었다. "갑시다. 가장 쉬운 능선을 따라 가는수밖에. 산맥 형세로 가로막고 있어 돌아갈수도 없 고…… 가려면 훨씬 돌아가야 하지만 그랬다가는 기한이 늦을것이니……" 어쩔수 없다는 듯 말을 흐리는 상인의 우두머리를 바라보던 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먼 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마차가 그 뒤를 따랐다. 지나가는데는 힘들겠지만 언덕길 쪽으로 움직이면 못갈 길도 아니었다. "이런곳에서 하루를 지체하기는 정말 싫은데……" "휴우……" 숨이 턱턱막히게 만드는 자욱한 음기와 어쩐지 무겁고 가라앉은 침묵과 분위기. 영은 투덜 댔다. "새소리 하나 없군. 기척 하나없이 조용한 숲이라니…… 바람도 없고……" 그 점을 말하자 상인들은 꽤 불안해 했다. 영은 하지만 마음속으로 조금은 즐거워 하고 있 었다. '어쩌면 초자연 현상을 볼지도…… 아니면 특이한 생물이나…… 아아, 그런걸 죽여야 한다 니. 가지고 돌아가면 생물학계의……' 잡생각으로 빠져들었던 영은 앞쪽에서 살기가 은은히 뿜어져 올라와 하늘을 찌르는 것을 느 끼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산길을 따라 걷고 언덕을 두 개 넘어서 대충 시각은 오후쯤인 듯 했다. 그리고 살기가 퍼져 나오는 것이다. 음기가 한층 가중되었고, 근처가 늪 지형이라 꽤 불안했다. "?!" 순간 그의 귓가에 보통 사람의 귀에는 포착될수 없는 영역의 피리소리가 들려왔다. '개피리 비슷한건가?' 잠시 의아함을 머금었던 그는, 지축이 흔들리는 굉음과 다가드는 거대한 기척에 식은땀을 흘려야했다. "……이거. 불안한데?" 쿵― 쿵― 순식간에 전투태세를 갖춘 그들 앞에. 인간이 아닌 괴이한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너 무나도 컸다. 그의 길이 단위로 재어보면 키 10m에 다리와 팔만 하더라도 웬만한 아름드리 나무의 두께 를 능가했다. 그리고 몸통은 꽤 넓었다. 그 이유는…… 목이 일곱 개니까. 칠두지룡七頭之龍! 얼굴은 용의 생김새, 그리고 희번득거리는 흑색의 비늘을 가진 용. 그러나 머리가 일곱 개여 서 악룡이라는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그냥 영은 '도마뱀'으로 인식했지만, 그 괴이한 모습에 자신들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던 이들 은 급히 무기를 뽑아 전투준비를 했다. 이글거리는 파충류의 눈. 그리고 그 안에 비치는 파멸의 갈망과 살기는 영으로 하여금 청천 검을 뽑게 만들었다. 그 용들 머리 일곱 개. 그리고 그 미간에 달린 보랏빛 보석이 자꾸 신경쓰였지만 그저 그러려니, 하며 전투태세를 갖추는 영이었다. 이런 말도안돼는 생물이라니! "말도안돼……!" 방심이 화근이었다. 처음부터 금강폭열공. 제 십이초로 나섰어야 했는데…… 장난삼아 일초 부터 사용해 공격하려 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제 일초의 신룡현세를 가볍게 튕겨내버리는게 아닌가. 그것도 비늘의 강 도로…… 그래서 혹시나 하여 제 육초. 금강폭열공. 제 육초. 신룡합神龍合. 태제금황太帝金皇을 펼쳤 다. 순식간에 128마리의 강기의 용들이 생성되었고 그것은 일대 장관을 형성하며 쏘아져 들어갔 다. 금빛의 회오리가 햇빛을 덮으며 대지를 찢었다. 그리고 파공음이 터져나오며 공기가 사방으로 밀려나갔다. 쿠웅― 강기의 용들은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나가 일렁이며 한점으로 모여들었고, 곧 굉음이 터져 나왔다. 충돌하며 다시 나뉘어 뒤쪽으로 터져나가며 그때 부딪히며 발생한 거대한 에너지를 제어해 강기의 덩어리를 만들어 그것을 폭주시키기 위해 진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그때 이전의 금강폭열공의 초식과는 확연히 다른, 눈이 실명될 정도로 강렬한 금빛의 폭풍 이 발생했다. 그것은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무사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금빛의 강기폭풍이 한군데로 집약되어 섬뜩한 금색의 검을 만들어내 그대로 용의 몸 체를 찌르려 하는 순간, 갑자기 녀석들의 이마에 박혀있던 보랏빛의 보석이 핏빛으로 물들며 강한 선홍광을 내뿜더 니 녀석들의 입이 벌어지고, 그 안에 핏빛의 강렬하기 짝이없는 불꽃이 맺히는게 아닌가! 그와 동시에 강기의 폭풍과 그 핏빛의 불꽃이 격돌했다. 그리고 그는 허무함을 맛보았다. 8 성의 힘을 쓴 금강폭열공 제 육초가 스러진 것이다.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고, 그것을 막기 위해 호신강기護身剛氣의 강도를 높이던 영 은 문득 강렬한 파장이 앞쪽에서 퍼져나오는 것을 느끼며 심안을 발휘하여 앞쪽을 보았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핏빛의 전류電流. 이번에는 불꽃이 아니라 붉은 빛의 스파크가 녀석들의 입에 어린 것이다. 그는 곧 그것이 점점 기세를 더해가는 것을 깨닫고, 그것이 완성 되기 전, 신법까지 전개해 나가면서 청천검을 붙들고 그것을 베어가기 시작했다.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어검강御劍剛을 쓴 청천검으로 내리쳐봤자 찰과상밖에 몸체라니. 일 곱 개의 머리는 종횡무진하며 그를 압박하기도 하고, 사각에서 그 숨결을 응축해 그를 위협했다. 몸이 둔해서인지 육탄전은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길다란 꼬리도 가끔 찔러왔지만 꼬리 부 분은 약한지 그대로 두동강 났고, 녀석은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지르며 그 적광을 뿜어내 그를 공격해왔다. 극성으로 공력을 운용하며 그는 이빨을 갈았다. 그리고 나서 검에 공력을 한가득 주입하여 금강폭열공의 제 십일초를 펼치기로 했다. 금강폭열공金剛爆熱功. 제 십일초. 신룡합일神龍合一. 자연력격발自然力激發! 청천검이 그 강대한 기운을 버티지 못할 정도였으나, 그는 이를 갈며 검을 무서운 속도로 휘둘렀다. 그리고 그의 검신이 공명하며 공포스러운 금빛의 회오리를 생성해냈고, 그와 동시에 금빛의 회오리가 허공에 수를 놓으며 거대한 끈을 생성했다. 그리고…… 금색의 용…… 금광룡 256마리가 금빛의 기류에서 태어났다가 다시 그 기운속으 로 빨려들어가 하나의 거대한 용이 되었다. 그리고 자연의 기류는 뒤틀렸다. 산 전체가 진동하며 그 자연력의 역행을 주관했다. 그리고 금빛이 가시자 나타난 것은 거대한 용이었다. 그것의 크기는 지금 앞에 있는 칠두지 룡의 두배 이상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며 호승심이 이는지(…) 칠두지룡은 포효했다. 쿠아아아――! 캬아아아――! 그와 동시에 신룡의 강기가 마찰하며 마치 용이 포효하는듯한 굉음이 발생했다. 그리고 용 이 움직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땅을 파고들었다. 그와 저 칠두지룡이 격돌하면서 생긴 충격파에 대비해 모든 이들은 물러난지 오래였고, 뒤 로 훨씬 가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충격파는 상상을 초월했다. 숲 하나가 날아가버렸으며, 땅이 쩍쩍 갈라지고 운석 이라도 떨어진 듯 푹푹패여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시 굉음이 일어났다. 기혈점을 모두 격발시며 금색의 용은 그것에서 얻어진 강대한 기운을 모두 흡수하며 그 금 광을 더욱 폭사하며…… 땅을 갈아엎어 버리며 솟구쳐 올라 그대로 칠두지룡을 물어뜯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이번에는 칠두지룡의 머리에 박혀있던, 선홍광을 내뿜던 보석이 이제는 다섯가지 빛의 광채 를 선연히 내뿜기 시작하였고, 그와 동시에 그 빛무리를 입에 가득 문 칠두지룡들이 한군데로 머리를 모았다. 그와 동시에 모여든 오색 빛무리는 거대한 하나의 기운으로 바뀌었다. 파파파파팟―!! 타오르는 오색의 불꽃! 그리고 그 불꽃은 뻗어나가 쇄도해 오는 신룡과 격돌했다. 쿠콰콰콰콰콰쾅――!!! 쐐애애애애액――!!! 음속을 훨씬 능가하는, 초음속의 충격파가 주변을 찢어내렸다. 그리고 흙먼지가 요란하게 터 져올라갔다. 청천검을 거둔 그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욕설을 터뜨렸다. "제길……! 이래도 죽지 않다니!"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등장한 것은…… 몸에 꽤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멀쩡하게 보이는 칠 두지룡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쏘아보는 것이었다. 029. 경악스러웠다. 현경의 고수가 진신절학을 거의 다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타격 밖에 줄수 없었다. 정말로 별것도 아니라는 듯, 비웃음섞인듯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칠두지룡. 그 시선 때문에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더 참을수 없었다. 하지만 곧 그것을 진정시키며 날카로운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크윽…… 내공도 별로 남지 않았는데…… 폭뢰강기爆雷剛氣는 쓸수없고…… 어쩔수 없이 흐름의 검인가?' 결단을 내린 영은 청천검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은영비를 꺼내었다. 시린 검날이 용에게 겨 누어졌다. 비등술飛騰術을 운용해 공중에 떠 있는 것 조차 내공의 낭비나 다름없는 상태인지라, 어쩔 수 없이 레비테이션 능력으로 대체했다. 레비테이션 능력을 발휘해 허공에 뜬 상태의 그가 기를 가볍게 끌어올리며 주변의 기혈점에 서 터져나온, 그래서 더 강한 밀도를 가지게 된 기류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흐름의 검! 그 위력은 예측할수 없다. 그리고 일단 펼쳐지면 끝도없다. 그리고 위력이 내공에 비례한다. 지금 거의 6할의 공력을 소모해버린 그였기에 폭뢰강기를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흐름의 검을 펼치는 것이다. "대자연大自然. 유검流劍." 흐름의 검. 그것을 정비하며 만든 투신의 춤. 그리고 그것들은 총 여섯 개의 장으로 나누고 있었다. 제 일장. 천신무天神舞! 그 흐름을 예측할수 없다. 그 흐름을 통제하여 흘려보내며, 조금의 영역을 지배할 뿐이지만 그 위력은 현경의 고수 쯤은 단 일격에 베어 없앨 만큼 강력하다. 그리고 펼쳐지면 끝도없다. 천신문에는 두 개의 검결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는 절대무검결絶對無劍訣로 일전에 펼친 바가 있다. 무심검無心劍을 기반에 둔 검결이다. 그리고 두 번째의 것이 유천류참결柔天流斬訣로써, 무검을 단지 흉내낸 것에 불과하지만 무 형, 무음, 무성의 강력한 검강, 혹은 기의 검을 만들어내 그가 공력을 자유롭게 통제할수 있는 범위까지라면 어느새 베어버 리고 있는 검술이다. 단지 무검의 경우라면 기의 범위에 아랑곳 없이 사물을 모조리 참해 버릴수 있는 검술이지 만…… 제 이장. 파천무破天舞! 이것의 흐름은 단순한 파괴력을 증대시키는 것일 뿐이다. 천신무와 같이 검 없이도 펼칠수 있다는 점에서는 아주 유용하다 할수 있다. 검 없이도 세밀한 파괴가 가능하다. 이름과 모순되면서도 그와 동시에 그 이름을 충족한다고도 할수 있다. 손짓, 발짓으로 보이는 그저 부드러운 손놀림만으로도 자연력을 공명시켜 그것을 증폭. 제어 하여 날카롭게도, 둔중하게도, 부드럽게도, 강하게도 만들어 상대를 공격할수 있는 기법이다. 흐름의 검이 극대화 되면 그저 공격 기법으로만 쓸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력을 아예 제어 하여 구름을 불러올수도 있겠지만…… 검결을 포함하지 않는다. 제 삼장. 풍천무風天舞! 풍천무. 이것은 바람의 흐름을 그 기초로 삼는다. 유동하는 대자연의 기운속에서 가장 쉽사 리 찾을수 있고 가장 만들기 쉬운 것이 바람이다. 그리고 그것의 흐름에 대자연의 흔들림을 심어 적을 타격할수 있고, 그 바람을 광풍狂風으 로도. 폭풍으로도 만들 수 있다. 나선형의 소용돌이형태의 기폭풍을 만들어낼수도 있다. 풍신검결을 포함한다. 이것으로 폭풍을 일으킬수 있을 정도이며, 대지를 뒤흔드는 위력을 가 진다. 용권풍마저도 일으킬수 있다. 제 사장. 뇌운무雷雲舞! 마치 적란운積亂雲과도 같은 대자연의 기운을 잠력화 하여 자신의 몸을 통해 그것을 격동시 켜 거대한 폭발의 구름을 만들어내 사물을 분해해 버릴 정도로 강력한 충격파를 만드는 기 법이다. 이것을 신화경에 올라 극성으로 펼쳤을 시에는 아마도 음속의 10배 이상의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 것으로 짐작된다. 검결을 포함치 않는다. 제 오장. 오행무五行舞! 조화와 흐름이 완벽하게 일치된 것이다. 오행과 그 흐름을 따라 오행대천공五行大天功과 함 께 운용할수 있다. 부드러움 가운데 강함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나오는 위력은 알수 없다. 오행으로 나타나는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기도 하지만 역행도 할수 있다. 대자연력을 뒤흔드 는 장이다. 오행검결을 포함한다. 오행에서 파생되어 나온 무예를 모두 무력화 시켜버릴수 있고, 역행또한 가능케 한다. 제 육장. 무형무無形舞! 아직 미완성인 장이다. 이전 다섯 개의 장에 포함된 궁극의 오의를 모두 그러모아 융합해 만든 것이긴 하지만 그 불완전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사물에 '분해'와 '소멸'이라는 것을 부여할수 있으며…… 형태가 없다. 어떤 흐름조차 없으나 그 가운데서 케이아스Chaos(혼돈混沌)를 볼수 있다. 그러나 그 혼돈속에서마저 조화와 흐름을 읽을수 있다는 점에서 궁극의 유검이라고 할수 있 겠다. 검결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때 뇌검자에게 펼쳤던 것은 제 일초였다. 그것도 고작 3성 공력을 끌어올려 펼쳤을 뿐이 며, 그 위력을 제한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펼치려는 것은 무형무였다. 그가 그만큼 저 괴생물체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제 육장. 무형무." 우우우우우――!!!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나서…… 대자연이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울부짖으며 사방을 향해 폭주하는 대자연의 힘. 그 거대한 기운을 간신히 통제하면서 그는 칠두지룡을 매섭게 쏘아봐 주었다. 그리고 칠두지룡은 이번 것은 정말 제대로 된 것이라 느꼈는지 눈빛에 그 살기와 예기를 되 살려냈다. 그리고 칠두지룡의 머리들. 그 미간에 박혀있던 보랏빛 보석에서 이번에는 흑색의 기류가 뿜어져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칠두지룡의 몸에서마저 흑색의 기류가 끓어오르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응축되어 하 나의 거대한 기운으로 변했다. '이…… 이건 말도 안돼…… 무형무와 비슷한 위력이라니……' 이젠 그 거대한 용도 꽤 지친 듯 보였다. 그리고 힘을 한계까지 끌어 올려서인지…… 그 용 의 등에서 뭔가 새카만 것이 쏟아져 나오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현상이 생겨났다. "날개?" 그렇다…… 날개였다. 새카만 흑묵빛의 날개! 길이 30m. 그리고 길다랗고 넓은 날개가 퍼져 나온 것이다. 그리고 칠두지룡의 고개가 움직이며 흑색의 덩어리는 이제 그대로 개방되려 했다. 그리고 그는 붉게 물들어 공명음을 퍼뜨리는 자신의 은영비를 칠두지룡의 심장으로 짐작되 는 부분을 향해 겨누었다. "……가랏!" 그의 눈빛이 뜨거운 살기를 머금고 불타오른 순간…… 그의 몸 주위에서 꿈틀거리는 거대 한, 폭주하는 기의 그림자는 검은색의 불꽃과 그다지 좋지 않은 조우를 가졌다. 일대 장관이었다. 새카만 불꽃…… 그것은 하늘을 가릴 정도로 크고 강대했으며, 영으로 하여금 긴장이라는 것을 하게 만들만큼 강력했다. 그리고 그 불꽃이 대지를 휘감으며 터져나왔을 때…… 영의 등 뒤에서 군신과도 같이 버티 고 있던 대자연의 숨결이 대지를 쪼개며 터져나갔다. 우우우우우우――!!! 쿠오오오오오――!!! 울부짖는 대자연. 굉음을 토해내는 불꽃. 그것이 서로 얽히며 백색의 광채를 토해내기 시작했을 때. 주변의 공기가 밀려나가기 시작 했다. 그만큼 거대한 힘의 덩어리가 서로 격돌하며 공기가 따라갈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터져나간 것이다. 그러니까 소닉 배리어Sonic Barrier를 꿰어버리면서 터져나갔다는 이야기였다. 음속충격파가 생길 정도의 거대한 기운의 격돌이었다. 어쨌든 그 거대한 기운의 진동이 음속의 10배 이상의 충격파를 만들어내자…… 공기가 유형화 되며 그 거대한 역압의 힘을 머금은채 사방으로 밀려나가 바람의 칼날이 되 어 주변을 찢어 발기며 쏘아져 올라갔다. 쿠콰콰콰콰콰…… 그 충격파는 구름에 까지 닿았다. 뻗어올라간 거대한 용권풍과 열기는 불꽃의 회오리까지 일구어내며 구름을 증발시켜버린 것이다. 그무렵, 천류세가의 인물들과 상단의 무리들은 그곳까지 도달한 충격파를 막아내기 위해 안 간힘을 쓰며 공통된 뜻이 담긴 비명과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이건 말도 안돼――!!!" 그 커다란 고함도. 충격파의 위용에 휩쓸려 사라졌다. "큭……!" 영은 간신히 은영비를 갈무리했다. 죽지 않은게 천행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그는 실 혼인 처럼 보일 정도였다. 현경에 올라서 처음 입어본 상처가 몸에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신화경의 벽을 뚫어내고 있는 자였다. 그도 모르는 사이 몸속에 미약하게 남아있던 기운이 단전에서 흘러나와 각기 혈맥에 비상신 호를 전달하기 시작했고, 이어 그의 상처는 너무나 빠르게 아물어갔다. 흉터 하나 없이…… 공력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기혈점을 폭주시킨데다가 주변의 기운을 대부분 공격에 퍼부어버렸고, 아찔한 충격파 와 거대한 기운에 의해 이 근방의 기는 9할 이상이 날아가버렸던 것이다. "젠장…… 말도 안돼……" 가라앉기 시작한 먼지구름 사이로 칠두지룡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몸에 나타난 상처는 아까보다 더 많았으나 희번득 거리는 눈으로 영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좀 자존심이 상하지만…… 이때는 도망가는것이 최선이다! 일행들에게서 좀 멀어진 곳으로 가야겠군! 마지막 수를 쓰려면…… 이 근처는 대부분 생명들이 소멸해버렸으니……' 그리고 그의 육신은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도약해 어느 한 방향으로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 다. 그리고 그것을 칠두지룡이 분노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와 동시에 그 날개를 퍼득거리 며 가볍게 날아올랐다. 그 몸무게로는 생각되지도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그를 쫓기 시작한 칠두지룡의 눈에 놓 치지 않겠다는 집착어린 광기가 번뜩였다. 그리고 영은 꽤 고생하고 있었다. 공력의 9할이 소모되어버렸기에 공력을 꽤 아껴야 했다. 그래도 지금 자신이 할 일은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쫓아오는 용을 일부러 돌아보지 않으면서, 그는 늪지의 썩은 향이 나는 곳을 향해 최대한의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근처에서 칠두지룡과 그의 싸움을 보며 히히덕 거리고 있던, 칠두지룡의 제어용 피리를 갖 고 있던 이들은 이미 죽어버린지 오래였다. 충격파에 휩쓸려서…… '큭…… 도망가는건 정말 오랜만이군!' 얼마나 오래 달렸는지…… 간신히 수풀을 찾아내어 늪의 썩은내를 찾기 시작했다. 이런 쪽 에 '자신이 찾는 것'이 많기 때문이었다. 영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그나저나, 나도 많이 멀었군. 저런 괴물에게 내 본래 능력을 써야 하다니…… 쳇……' 그의 자존심은 깨어져버렸다. 그는 입맛을 다시면서 공기를 잘 읽어나가며 흐름을 따라 늪 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늪이라는 것이 보이자 마자 등을 돌려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 조용히. 놀랍지만 조용히 착지하며 공격태세를 갖추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일단…… 염동력을 발휘해야겠지.' 그리고 그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멎었다. 이질감을 느끼며 그와 동 시에 불안감을 느낀 칠두지룡은 그 길다란 목을 홰홰 저으며 주변을 관찰했다. 그러나 이미 공격은 시작되었다. 퍼엉―!!! 거대한 압력을 머금은 공기의 덩어리 일곱 개가 녀석들의 뒷덜미를 강타했다. 일곱 개로 분산했지만 하나 하나가 200t정도의 무게를 머금고 있어서 녀석들의 비늘들은 깨 져 나갔다. 그러나 머리를 깨는건 좀 힘들었나보다. 그 길다란 고개가 확 휘어지며 아찔하다는 듯 눈가에 눈물까지 맺힌 칠두지룡의 머리를 바 라보던 그는 다시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자아. 마지막 일격이다. 그전에 고통을 좀 줘야겠군!" 품속에서 비도를 끄집어 냈다. 은영비나 청천검이 아니라 신수사의가 남겨준 그 유엽비도 였던 것이다. 그것 두자루를 꺼낸 그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음과 동시에 녀석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그 유 엽비도를 텔레포트 시켰다. 그대로 사라진 유엽비도. 그와 동시에 녀석의 몸이 멎었다. 그리고 무서운 고통이 칠두지룡 의 전신을 강타했다. 꾸아아아아악―!!! "큭…… 신경집약점 두군데다가 유엽비도를 박아놨으니 꽤 아프겠지?" 그는 그리고 나서 저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자비로운 마음(?)을 베풀어 주기로 했다. 마지 막 일격을 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결단을 내린 그는 최대한의 정신력을 끌어내었다. 그리고 나서 그 용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보내며 속삭이듯 말했다. "지옥으로 떨어져라. 도마뱀." 그리고 그가 능력을 개방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주변에 침묵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이곳 에 존재하던 모든 미생물과 자그마한 곤충. 그리고 분해자들이 그가 보낸 정신파장에 의해 칠두지룡의 다리 아래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칠두지룡의 몸속에 기생하는 기생충과 세균들이 그 활동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아마 지금 저 용의 몸 기관은 모두 마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몸속의 세균들은 무서운 속도로 안쪽에서 파먹기를 시작했을 것이고…… 그와 동시에 날벌레, 땅벌레 가리지 않고 칠두지룡의 몸에 꺼멓게 달라붙은 녀석들도 행동 을 개시했다. 비늘이 찢어진 부분이나 틈속, 그리고 상처로 파고들어 미친 듯이 자신들의 무기를 사용…… 살점을 찢어내며 세포 하나하 나 마저도 분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분해자들과 미생물들도 움직였다. 염동력 외에 전에 조직에서 갖고 있었던 기술중 하나…… 사체조차 남지 않게, 꺼멓게 썩어 들어가며 그대로 먹이가 되어버리게 만드는…… 군집체群集體 조종능력操縱能力……. 무서운 속도로 풍화하듯 사라지기 시작한 칠두지룡. 그 거대한 힘도 작은 것들에게는 효용이 없는지…… 1분도 지나지 않았건만 거의 몸 절반이 먹혀들어가서 이미 땅에 눕혀진 몸. 그리고 다시 2분 정도가 지나자 뼈조차 남지 않은채…… 죽어 가던 도중 '독'으로 그 적들을 인식하며 발악하려 했지만 이미 신경부분은 모두 먹혀 버린지 오래였다. 시커멓게 썩어들어 분해된 가루만이 땅에 눅눅하게 늘어붙어있을 뿐이었다. 쥔 손을 내린 그는 지친 정신을 쉬게 하기 전에. 남은 공력을 끌어올려 극양강기를 사용해 벌레들과 미생물들이 잔뜩 한곳에 집중되어 있는 장소를 향해 일격을 가했다. 왼손 끝에서 피어오른, 뜨거운 기류를 품은 불꽃이 대지에 작열한 순간…… 군집체 들은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번져나간 불꽃은 거의 모든 미생물과 벌레들을 태워가기 시작했다. 노란빛으로 날름거리는 불꽃과 더불어 매캐한 노린내가 사방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눈쌀을 찌푸리며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향해 손길을 뻗치는 것을 보던 그는…… 어질어질한 정신을 부여잡고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큭…… 또 해버렸군.' 어쩌면 그는…… 무예보다는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무림을 제패할수 있지 않을까 싶다. 030. ……대체 그건 뭐였지? 구우우우우우―― 섬뜩하기 짝이없는 열류가 문득 하늘을 뒤흔들었다. 이곳은 처참했다. 모든 것이 찢겨 나가 고 타들어감으로 인해 잿가루가 곱게 바닥에 깔려있었다. 마치 운석 하나라도 떨어진듯한 멋진 광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름이 돋게 만듬과 동시에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직경만 1리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구덩이. 그 위에 초신성 하나라도 생성된듯한 장관이었 다. 움푹 파인 곳이었기에 그곳에서 열류가 발생하여 하늘을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거대한 분지, 그 주변마저 충격파가 발생해서 모든 사물이 다 날아가버린 듯 말끔하게 짝이 없는 주변의 땅을 살피면서 경악성을 토해내는 이들이 있었다. "대체…… 이것이 사람으로써 할수 있는 일인가? 아무리 그 엄청난 괴물과 현경의 고수가 격돌했다지만 너무 처참하군……" 그들은 무인이었기에 어느정도 알수 있었다. 이 근처에 존재하는 대자연의 기운들이 대부분 소거되었음을…… 그리고 처참할 정도로 파여진 구덩이와 파뒤집어진 기혈점, 그리고 불안정한 기반의 상태는 공포감마저 들게 했다. 물론 기혈점을 짚어내거나 할수 없었지만 단층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이곳의 상태 에 그들은 침음을 삼켰다. "너무 엄청나……" 씹어뱉듯이 그 말을 던진 검수 한명이 뒤덮은 재의 가루들과 주변의 흔적을 살폈다. 황량한 바람만이 처참한 파괴의 현장을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대체 이런 흔적을 남길만한 엄청난 무공은 대체……? 신화경의 고수도 해내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것이었는데…… 격돌하며 생겨난 충격파는…… 너무 거대했다. 보고할 가치가 있겠군…… 대체 어떤 무공인지,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는 알지 못하겠지 만…… 이렇게 처참하다니……' 그리고 멀리서 새카만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그 그림자는 비틀거리면서도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고, 점점 커져가면서 모습이 드러났다. 상당히 너덜너덜 해진 옷을 걸친채 힘겹게 다가오는 영의 모습이었다. "크윽…… 제길." 욕지기를 뱉어내면서 그는 살기를 미약하게 뿜어냈다. 너덜너덜해진 옷을 버린다음 옷가지 를 제대로 챙겨입고, 몸도 씻고, 오랜만에 식사도 제대로 한 상태였으나, 그 패배감이 가시질 않았다. '내가 한낱 괴물에게 전력을 발휘해서 지다니…… 나에게 그 능력이 없었으면 꼼짝없이 죽 었을게 아닌가……' 인상을 찡그린채 한없는 불쾌감에 빠져 그렇게 자신을 자책하던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숨 을 토해냈다. 그리고 상념에 잠겨들었다. 이 힘…… 평생동안 전력을 다할 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현경의 고수나 다른 이들도 아닌 그런 괴물에게 전력을 발휘하고도 깨지다니…… 거 의 신화경을 절반정도 달성한 자신이었지만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과 2는 두배다. 그리고 100과 200도 두배지만 그것은 단순한 두배 차가 아니게 되는 것이 다. 무예도 그것과 같았다. 두배라고는 해도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만약 지금 자신이 전력을 다해 폭뢰강기를 사용한다면 도시 하나는 무리없이 날릴수 있다. 그다음 뼈빠지게 운공을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신화경에 들면 그것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단전이 더욱 확대되면서 예상으로는 거의 2천년 공력을 담을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지금의 상황으로는 1천 2백년 정도의 공력을 몸에 보유하면 포화상태가 될 것이라 짐작되었 다. 그의 눈빛이 일순간 차갑게 빛났다. 극성으로 진기를 운용해 무공을 펼치던 것을 검토하며 실마리를 한가닥 찾아낸 것이다. '이것…… 운이 좋은것일까?' 정중동이 동중정. 극동이 극정…… 원으로 시작해 원으로 끝난다. 오의는 단순함에서 복잡함 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함에서 단순함으로 끝난다. 자신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 '복잡함'도 우주로 바라보면 단순한 숫자 1로 표기될 뿐인지 도 모른다. 세상이 2진법이라면 우스울 것이다. 있다의 1. 없다의 0. 파괴하건 창조하건 무조건 1. 그리 고 없으면 무조건 0. 반복. 있음과 없음 뿐…… 발악해도 1. 노력해도 0이라면……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가. 0.1도. 심지어는 0.001도 없다. 1이후의 것도 절대 없다. 단순함의 극! 그러나 그것이 10진법 으로 늘어나도 역시 단순하다. 그런데 고작 추상개념으로 바뀐, 무한진법이라고 해서 세지 못할 이유가 어디있단 말인가. 무한은 무한과 비교된다. 인간은 무한하다. 그리고 추상개념도 무한하다. 무한이 무한과 동 급이라지만 통제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생각을 정리한 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언젠가는 된다. 조급해 할 것 없다. 자 신에게는 환골탈태換骨奪胎로 인한 오랜 세월이 주어져 있지 않은가! 표행이 끝났다. 상인으로 위장한 녀석들을 목적지까지 안내 한후, 비련산을 우회해서―지겨 우니까.― 다른 길로 움직여 지루한 여정을 끝냈다. 그리고 그들은 꽤 상한채 천앙표국의 정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곧 자신들의 방에 몸을 누이며 얼마나 행복해 했던가…… 무시무시한 사건을 하나 만나면서 심신이 지쳐버린 것이다. 그리고 영은 쉴새도 없이 바로 운에게로 가서 보고를 하기 위해 그가 검련장에서 검을 가르 치는 것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운이 마침내 들어가려고 입구 쪽으로 다가왔다가 영이 돌아와 있는 것 을 보고 화색을 띈채 그에게 다가와 환하게 웃으면서 질문한다. "무사히 돌아왔네. 위험하지는 않았고?" "……끔찍하게 위험했지. 내가 죽을뻔 했으니." 그의 말에 그 눈을 커다랗게 뜬 운은 곧 그를 끌고 밀실로 향했다. 대체 얼마나 되길래 현 경의 고수를 이미 초월한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이렇게 피봤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것인지 ……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운의 얼굴에는 경악이라는 글자가 생겨나는 듯 심란 했다. "그 칠두지룡이 그렇게 대단했어?" 믿고싶지 않았지만 영의 눈은 진지했다. 더군다나 농담이란걸 할줄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운은 용에 대한 관심을 접었으나 건곤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빛냈다. "건곤권이라…… 뺏어왔으면 좋았을텐데. 쳇, 하지만 황궁은 건드려선 안되니까…… 그나저 나…… 그 용과 그것을 깨운 조직이라…… 전멸했겠지만…… 그 용은 뭐 같았어?" "전설속에나 나오는 악룡같더군. 정말…… 보통 괴물이 아니었어…… 내 공력을 전부 다 사 용한 내 필살기를 막아내고도 멀쩡했으니……" 다시 그 엄청난 전투를 떠올리면 다시 몸이 바짝 긴장된다. 영은 식은땀을 훔쳐내면서 운을 바라보았다. 운은 그가 긴장하는 것을 처음 보는지라 잠시 눈에 이채를 띄고 바라보다가 쓴웃음을 입가 에 걸었다. 그리고 그에게 들었던 사실들을 기억속에서 가다듬으며 그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입 술을 이로 살짝 눌러 짖씹으며 투덜거렸다. "우리가 그걸 입수했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과욕을 부리고 있는걸까?"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 어둠속에서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나도 뻔했다. "아니…… 나는 나를 시험하는 것일뿐! 이것은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인간으로써 당연한 도 전이다!" 어둠속에서 조차 그 어둠을 눌러버리고 새카맣게 빛나는 눈동자. 흑안은 마치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 아름다웠다. 그리고 화려했다. 깊고 깊은 흑색 가운데서 날카로운 한가닥 예기가 뿜어져 나왔다. 스르릉― 그리고 문득 어둠속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푸른빛을 한가득 머금은 청천검. 그리고 어둠속에 서 새하얀 종이가 검신에서 뿜어지는 미약한 푸른 빛 위에 올려졌다. 검날 위에 정확하게 올려진 종이…… 그러나 그 예리한 청천검은 종이를 자르지 못했다. 심지어는 종이가 늘어지지도 않았다. 내 공의 조화로운 통제로 종이에 공력을 불어넣었다. 라고 말할지도 몰랐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 종이는 아무리 그래도 그 공력 보유량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순간 소름끼치도록 깊고 차가운 살기殺氣가 검신을 타고 흘렀다. 그 순간 깨끗하게 두동강 난 종이가 바닥에 흘러내려 놓여졌다. 의형살인意形殺人! 그것의 기초였다. 그 예리한 검신을 완전히 복종시킨 것이었다. 잘리지 않았다. 그러나 살기를 내뿜자 검이 스스로 그 날을 곤두세워 사물을 벤 것이다. 자신이 베려고 하기 전에는 베이지 않는다. 활活과 살殺의 극의! 그것의 조화를 드디어 이루어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살검과 활검을 동시에 얻어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로서 신화경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들자 그의 입가에 조용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다시 청천검이 갈무리되었다. 검집의 테를 긁는 소리와 더불어 검신이 검집속에 감추어지자 서기와 예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목이 가볍게 튕겨짐과 동시에 가벼운 금속음과 더불어 은영비가 그의 오 른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은색의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한폭의 산수화山水畵를 그리듯 거 침없이 미끄러지며 어둠이라는 새카만 화폭에 은색의 선으로 그림을 그려나가는 그였다. 부드러운 손놀림. 검을 붓 삼아 움직여 나가는 손놀림…… 순식간에 어둠속에 산수화가 한폭 그려졌다. 그리고 점점 그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나 유와 강의 구결은 어느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이제 거의 은색의 선이 이어져서 계속 산수화가 유지되는듯한 빛무리가 허공중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림이 지워졌다. 그리고 다시 은빛이 허공을 할퀴었다. 그리고 그의 심안이 어둠을 뚫고 걸어놓았던 얇은 화선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무덤덤한 눈길로 바라보던 그는 은색의 검을 휘둘렀다. 파파파팟― 그와 동시에 은색의 호선에서 튀어나간 무형, 무음, 무성의 공력으로 이루어진 작은 실은 화 선지와 검을 연결했다. 투명한 실들은 그대로 연결된채 멎어있었다. 수만가닥으로 뻗어나간 가느다란 실들…… 기의 사. 그러나 그 위력이 어느정도일지는 짐작 이 갔다. 한점으로 집중된 극살의 사검絲劍! 그리고 그가 기의 실을 거두자 화선지에 박힌 글씨가 드 러났다. 관통하고 지나치지 않았다. 그저 '연결'만을 해서인지 벽에는 전혀 손상이 없었다. 그리고 화선지가 '흔들리지' 조차 않 았다. 새겨진 글귀는 이러했다. 승昇! 정교하게 뚫려 있었다. 심지어는 글씨의 붓놀림마저 표현되었다 생각될 정도로 세밀했다. 그 놀라운 일을 행한 그의 입가에는 만족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유검과 특이한 사검술의 결합. 어느정도의 위력일지…… 내심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로써 그는 한층 조화로운 내공 통제의 수단을 갖게 되었고, 동시에 일음살을 완벽하게 익혀낼수 조차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검술은 수십가지의 효 용을 가지게 될 터였다. 얼마나 강해질지…… 자못 흥미롭다. 031. 무림의 정세는 혼돈으로 향하고…… 그 사이 두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운이 현경의 벽에 부딪힌 것과 영의 성장이 완전히 멈추어 버린 것. 그와 더불어 천류세가가 작은 무림방파 일곱 개를 완전히 흡수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일곱 개의 문파의 인물들을 하나 하나 각기 대대에 집어넣고 훈련을 실시시킨 것. 그리고 운이 만든 팔검위중 셋이 화경에 접어들었다는 것과 더불어 천류세가가 드디어 검을 뽑고 무림맹에 선전 포고를 한 것 등이었다. 천앙 표국이 본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무림맹은 통탄해 버렸다. 그리고 현재 천류세가는 자신만만하게도 그 세력을 스스로 발표했고, 무림은 긴장했다. 화경 에는 못미치나 그에 접어들고 있는 고수 5천! 그리고 화경의 고수 넷! 현경의 고수 하나! 그와 더불어 살수 조직과 정보 조직의 흡수로 대단한 세력을 자랑하게 되었으며…… 그것으로 인해 무림인들은 혈풍의 조짐을 보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모든 사람들과 황궁에서는 천류세가의 부활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무림의 현 상황에서 가장 우수한 세력으로 뽑히는 것이 세외의 혈천궁, 그리고 내부의 마교와 무림맹, 천류세가였다. 일개 세가로써 무림맹과 마교의 연합으로도 감당키 힘든 거대한 힘을 지닌 조직…… 황궁으 로써는 의외였으나 그것으로 무림이 약화되면 황궁은 오히려 더 편해지므로 천류세가를 응원하는 형편이었다. 가주 유운과 더불어 그 심복이라는 은영천검銀影天劍. 영. 그 영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중이었으나 그것이 본명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보조직은 그의 이 름을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유추되는 나이는 채 서른도 되지 않은 청년. ―무림맹에서 나온 정보이니 설득력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경이라는 뇌검자를 베어버린 절대 고수. 뇌검자가 죽음으로써 한자리가 빈 무림오천의 일인으로 들어가게 된 그는 이제 역시 현경이 라는 광협 문열과 더불어 무림오천에서 일, 이위를 다투고 있었으며, 무림사가의 인물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백도, 흑도 가리지 않고 사위감 일위(…)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칠룡중 일인을 베어버려서 칠룡의 일인이 비어버렸기에 운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어이가 없었다. 천앙표국―간판을 떼고 천류세가라는 간판을 달았다.― 건물로 쇄도하는 편지들은 정말 장 난이 아니었다. 운의 명호는 그 사이에 생겼는데. 천운검룡天雲劍龍이라는 명호로써 운은 지금 자신의 명호 조차 알지 못했다. 우스운 일이었지만, 무림 초출한, 제법 실력있는 이들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의사는 반영되지도 않게 은밀하게 소 문이 부풀려지거나 명호가 정해지기 마련이었고, 운도 그 상황이었다. 심지어 날아든 결혼 제안 편지에 쓰여진 '천운검룡'이라는 단어를 보고 잠결에 피식피식 웃 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암…… 팔검위중 한명에 천운검룡이라는 명호를 가진 녀석이 있나? 그 사이에 칠룡에 들 었네……" ……이랬다고 하니. 그 정도가 어떨지 미루어 짐작이 가지 않는가? 어쨌든, 일어선 천류세가는 지금껏 표국을 하며 모은 보화나, 그것과 남겨놓았던 재물들과 무력을 토대로 주루와 표국들을 빠르게 접수해 나갔고, 그 사이에 무림맹과 거의 비슷한 사업 범위를 가지게 되었다. 고작 한달이었다. 문파가 성장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한달이었으나 영과 운의 합작으로 인해 수입이 전보다 열배로 늘어나 버린 것이다. 그것도 지금까지의 준비와 더불어 인재들과 돈, 그리고 세력이 뒷받침 되었긴 하지만 그 두 사람이 없었다면 이정도까지는 해내지 못했을 터였다. 천류세가가 접수한 업소 간판이 붙은 곳에는 정파인들은 얼씬도 하지 못했다. 왜냐 하면, 큰 업소에는 팔검위가 하나하나 배치되어 있었으며, 없어도 화경의 벽에 부딪혔다는 고수들 열여명이 항상 대기중이었기 때문이다. 천류세가가 일어섬으로 인해 발생한 여파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백도 무림과 흑도 무림 모 두가 공포에 젖어든 것이다. 그러나 결코 마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교와 은밀한 계약을 맺은 것처럼 보이는 혈천궁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실은. 혈천궁은 마교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마교는 천령강시부터 시작해서 실혼인 들까지 다양하게 만들어내 악마대천나진을 필두로 혈천궁을 몰아붙이고 있었고, 혈천궁은 온갖 사술과 더불어 혈천인, 몽마인들을 끌어내 마교와 격돌중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혈천궁이 패퇴중이었지만 후의 일은 알수 없었다. 마교는 어부지리를 취하려는 듯 한 기세였고, 세외의 혈천궁부터 정리하려는 꿍꿍이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마교의 태상교주인 철마가 소교주 무진을 완쾌시켜 데리고 왔고, 더군다나 천류세가에서 치료했다는 것 때문에 마교와 천류세가는 어느정도 도움을 주고받고 있었다. 더군다나 천류세가가 무림맹과 백도들, 그리고 내부의 흑도들을 견제하는 사이 마교는 혈천 궁을 꿀꺽 하라는 의견까지 내놓았던 것이다. 천류세가로써는 복수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무림맹주는 나날이 속이 타들 어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숨겨진 문파들이 하나 하나 그 위세를 떨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태음문은 천류세가의 우방을 자처하며 일어섰다. 그것은 신수사의가 태음문의 실전 절기와 더불어 꽤 상당량의 보화를 건네었기 때문으로, 이미 관계가 맺어져 있었다. 더군다나 전진의 문파마저도 천류세가를 붙들고 일어섰다. 전진의 무예들 상당부분을 천류 세가에서 돌려주어 만들어낸 것으로, 간판만 전진이었지 사실은 천류세가의 분타나 다름 없었다. 무림맹에서는 그것도 모르고 역 시 속을 태우고 있었다. 백도와 흑도가 다시한번 연합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은밀하게 무림을 스치는 가운데. 사 파의 연합이라는 사사천맹이 일어났다. 그리고 천류세가와 자그마한 충돌을 갖게 된다. 결과는 처참했다. 사사천맹의 비밀조직 파천대. 전멸! 사사천림의 육인장로들중 4인이 사망! 그리고 부맹주 무 공 전폐! 더불어 드러난 세력 3할 파멸! 그러나 천류세가는 거의 피해가 없었다. 그것은 현경의 고수인 영이 전면에 나서서 금강폭 열공金剛爆熱功이라는 신기를 펼쳐 대부분을 쓸어버렸기 때문이며, 팔검위중 화경에 오른 삼인이 역시 전면에 나서 검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격돌은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맺어졌으며, 사사천맹의 일부분 세력을 천류세가가 흡수하면서 더욱 커짐으로 무림에 불안감이 더욱 조 성되었다. 과연 누가 천류세가를 막을 것인가? 어떻게? 천류세가가 떨치는 위맹한 기세는 복수라는 단어와 더불어 무림맹을 더욱 핍박하고 있었다. 쿵―!!! 무림맹. 장천각. 내부 밀실. 누군가가 분노를 터뜨리며 내리친 손길에 탁자가 두토막나버렸다. 그리고 씩씩거리던 그는 이까지 갈아대다가 주변에서 이해한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간신히 이성을 되찾은채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좌중에 사과했다. 보통 저런 행위라면 가벼운 질책이 날아왔겠지만 자신들도 그러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준 것이다. "미안하오이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수가 없어서…… 사사천맹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고 천류 세가에는 거의 피해가 없을줄은…… 그래도 최소한 어느정도는 해줄줄 알았는데…… 아무래 도 사사천맹은 겉껍데기 였던 모양이오. 아니면 천류세가를 가볍게 봤던가……" "너무 상심치 마시오. 맹주! 우리 역시 전면에 나서면 그래도 팔검위라는 이들이 없을때는 어떻게든 독주를 막을수 있을것이외다!" "하지만 이 분은 어쩔수 없소. 도대체 어디서 그런 괴물같은 것들이 나타나서, 어떻게 그 큰 세력을 숨긴채 이렇게…… 이건 정말……" 울분을 참지 못하며 말을 흐리는 맹주를 바라보던 모든 이들의 눈에 그와 같은 격분이 떠올 랐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의견을 내놓으며 이리저리 대화를 끌어냈으나 도저히 신통치 않았다. 그리고 문득 좌중에서 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황궁을 이용합시다!" "황궁을? 하지만 황궁에는 고수가……" "아니오! 황궁도 화경의 고수 둘을 보유하고 있소, 더군다나 더 엄청난 세력도 숨기고 있는 것으로 보이오. 본파가 최근에 입수한 바로는 무서운 병기를 하나 만들었다고 알고 있소! 그것을 이용하면 될것이오! 그리고 황궁은 정보에 약하니 누명을 좀 뒤집어 씌우고 천류세가가 아닌것처럼 위장하면 어 느정도는 서로 상충하게 할수 있을것이외다. 황궁에서 천류세가를 어느정도 바라보고 있는 입장이나 너무 커지면 위협도 느낄테니 손을 쓸 것이오! 그리고 뇌물을 좀 사용하면…… 적어도 태음문과 전진을 자처하는 곳 정도는 없앨수 있을 것이외다! 그것은 천류세가의 세력 2할에 해당할 것이오! 그것만 없어져도 조금 나아질 거라 생각하는 데……" 그 말이 떨어지자 마자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 방법도 있었던 것이다.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이 제시되자 모두의 얼굴에 불신이 생겼으나, 성공한다면 그것도 좋을 것. 손해 볼것도 없을 것이었다. 두 번째 방법 역시 낙찰되었다. 이로써 독주하는 천류세가에 시련이 던져졌다. 그러나…… 천류세가의 본 세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허나, 천류세가 역시 몰랐다. 백도와 흑도가 숨겨진 세력마저 모두 드러낸채 합공함으로 인 해 얼마나 큰 혈풍이 찾아올 것인지도. 그리고…… 비록 복수는 이루나 천류세가가 어둠으로 묻히게 된다는 것도. 외전外傳. 바람의 장章. ひかりを たどって いつか ひらくんだ あたらしい とびらを 빛을 더듬어서. 언젠가 열거야. 새로운 문을…… 문득 바람결에 실려온 노래가 내 귓가를 자극했다. 꽤 좋은 음이었으며, 나의 마음 한구석을 찌르는 데가 있는 가사였다. 지금은 꽤 늦은 시각이다. 어두컴컴한 하늘을 네온의 화려한 빛살들이 갈랐다. 그리고 하늘 과 구름마저 이 네온의 빛무리에 물들어 내가 감상할 어둠 한조각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환한 거리여서 내가 은신할 곳이 마땅찮았지만, 사람의 홍수인 이곳인지라 오히려 더 쉬웠다. 기척 수백개가 이리저리 떠돌고 있음에야…… 지금 나는 목표물을 찾아 시내를 방황중이다. 뭐, 나의 '목표물'이라고 해도 '암살대상'밖에 더 되겠는가? 정말 목표물을 찾는중이 아니라, 은신중인 목표물의 정보를 알아내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불쾌한 홍등가 따위도 걷고 있는 것이고…… 역시 일본…… 성문화는 상당히 개방적이고, 옷차림들도 상당히 개성적인 것들이 많았다. 물론 시선을 던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후, 지금 암살 대상을 쫓고 있다고 해도 별로 기분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미 이런것에는 무덤덤해진지 오래였으니까. 다만, 내 옆에서 알짱대는 빌어먹을 계집만 없었더라도 조금 더 나았을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봐요. 디드∼" 젠장할. "디드∼?" ……빌어먹을. "디드으∼" 어조가 좀더 심상찮아진 것을 보니 이제 대답 안하면 주먹 날아올지도 모른다. 아니, 조금 더 심하면 발길질이거나…… 내가 잠깐 생각하느라 미처 대답하지 못하자 곧 무서운 바람소리가 나를 덮쳐왔다. 바웅―! 나는 그저 가볍게 고개를 숙여서 그녀의 날카로운 발차기를 피해냈을 뿐이었다. 뭐, 그녀나 나나 전력을 다한것도 아닌 가벼운 장난질이겠지만. 뭐, 지금 그녀는 장난질이 아닌 것 같다. 꽤 화난 것 같으니…… 하지만, 그녀의 잘못이 더 크다. 왜 나같은 재미없는 녀석에게 들러붙어서 혼자서 쨍알거리 다가 개무시 당해놓고 나에게 화를 낸단 말인가? "함부로 이름 부르지 마십시오. 레나Rena." "아, 미안해요. 하지만 그렇게 무시하는건 너무 하지 않아요? 쳇, 역시 전설의 아이스 블러 드Ice Blood." 그 코드네임Code-Name이자 별명을 함부로 남발하는 그녀를 향해 경고의 의미로 가볍게 눈 을 흘기면서 오른손목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자 그녀의 안색이 굳어졌다. 더 입을 나불거리면 죽이겠다는 뜻이니까. 훗, 그래도 블러디 블러드Bloody Blood라는 이름을 꺼내지 않은게 다행일까? 그리고 그녀의 입이 다물어지자 한층 편하게 주변을 관람하며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훗, 지금 목표라고 해봤자 야쿠자 두목일 뿐인데. 조금 거물이긴 해도 내 나이프Knife를 피 할 상대는 아닌 것이다. 내 옆에서 알짱대는 계집은 같은 1급의 암살자이다. 조금 부잡스럽긴 해도 그 실력은 나도 인정한다. 그렇긴 해도 나에게 이길수는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삐져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진 그 녀를 무시하면서 내가 찾던 곳을 찾았다. 나는 일어로 뭐라고 갈겨져 있는 나무 간판을 바라보았다. 눈이 조금 따가웠다. 그간 골목 사이로 들어와서 한결 네온 사인의 빛무리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그게 그거였다. 그리고 나는 잠시 그 앞에 서있었다. "여기에요. 디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미행부터 처리하죠." 그 말과 동시에 주변의 기척들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뜬채 주변을 둘 러보더니 간신히 기척을 파악했다. 하긴, 레나가 1급이라고는 해도…… 이번 우리가 상대할 자들은 인간이 아니니까. 특히 그 망할 계집도 우릴 미행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사람들은 색기어렸다고 하겠지만 나로써는 이 렇게 정의를 내리고 싶다. '지랄맞을 웃음'. "호호호홋! 과연 디드!" 그리고 기척 십여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레나는 입술을 깨물며 품속에 서 대형 전투 나이프 한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왼손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말아올리면서 살기를 가득 내뿜었다. 그와 동시에 드러 난 것들이 움찔거렸다. 드러난 모습은 결코 위생적이지 못했다. 팔이 날아간 녀석, 그 상처 부위가 문드러진 녀석, 눈이 없는 녀석, 그런 것들이 보였지만, 모두 다 몸집이 작고 왼쪽과 오른쪽의 손톱이 30cm정도로 길었다. 그리고 입가에 침을 질 질 흘리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자 자비를 베풀 마음이 사라졌다. "빨리 나와. 히카루[光]. 그 재수없는 그늘속에 숨어서 음침하게 웃지 말고." "어머, 이런 매력적인 여자를 그렇게 대접하면 안되죠∼" 뉘앙스 자체는 꽤 붙임성 있는 어투. 그러나 그 눈빛은 날카로웠다. 붉게 물들인 머리카락, 그리고 새하얀 피부와 몸을 감싼 옷은 꽤 노출이 심했지만 그와 동시에 아닌 부분은 매우 길었다. 이번에는 중국풍인가? 미인축에 끼긴 했지만, 나로서야 여자남자 가리지 않고 적으로 간주되면 베어버리니까. "그래도 좀비Zombie들은 기척 자체가 없는데…… 놀랍네요!" 망할, 그래. 좀비다. 시체는 아니지만 마약으로 마치 부두교의 좀비와도 같은 것들을 만들어 내 이지를 상실하게 만들고 그 능력은 보통사람의 5배를 상회한다. 특이하게 기척이 없어서 귀찮지만, 나의 청력으로 숨소리를 눈치채지 못할것도 없었다. 아주 약하긴 하지만. "뭐, 당신이라 해도 이정도 숫자는 어쩔수 없겠죠. 정보 관리가 잘못된 모양이던데요? 그러 니까 우리같은 사람도 당신이 이곳으로 올것을 알수 있었지요. 저희가 당신이 그자를 베지 못하도록 이곳을 지키고 있던 거니까." "정보원을 죽였나?" "뭐, 우리도 쓸만한 녀석이라 손대진 않았지요." "잘됐군." 히카루가 들고 있는 권총이 나에게 겨누어졌다. 내 말에 뭔가 묘한 뉘앙스를 발견한 듯 했 다. 후후…… 뭐, 이 질긴 악연을 끝내주는게 좋겠지? 내가 한걸음 딛자 그녀가 당황했다. "잠깐. 이 좀비들이 보이지 않아요?" "보여." "흥. 배짱 좋군요. 뭐, 그리고 저야 당신이 좀비들을 상대할 때 이것으로 당신을 쏘아주면 충분 하니까." "큭. 여기에 나 혼자있나?" 그와 동시에 히카루는 급히 몸을 숙였다. 그래서, 아쉽게도 그녀의 머리카락 몇 개만 은색의 호선에 잘려나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급히 권총을 겨누려…… 했으나 레나의 왼손은 가볍게 리벌버의 총신을 잡았 다. 리벌버의 최대단점은. 바로 저 탄 쑤셔박는 부분을 잡아놓으면 발사가 안된다는 점이지. 큭 큭큭…… 그리고 나는 행동을 개시했다. 먼저 가볍게 뛰어서 명령을 받지 못해 반응 불가인 한 좀비 녀석의 머리통에 나 나이프를 쑤셔박는다. 돌격하면서 오른손목의 나이프를 챙겨 찔러넣었다. 둔탁한 손맛과 함께 두개골이 함몰하는 느낌과 더불어 질척한 뇌질을 찌르는 느낌이 왔다. 그리고 느긋하게 그것을 빼어 사방으로 검날을 날리자 순식간에 은색의 잔영殘影이 뿜어져 나가 세 마리의 좀비를 베어버렸다. 하나는 내장이 뽑혀 죽었고, 하나는 목이 베어져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기쁘게도 나 에게 심장 박동을 느낄수 있게 해주었다. 뭐, 보통 사람들보다 박동 횟수가 느려서 기분나빴지만. 시커멓게 죽은 피가 터져나오기 전에 모두 피해냈다. 그리고 나이프를 휘두르자 은빛 날을 타고 검은 피가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풀썩― 풀썩― 그제서야 쓰러져서 피를 콸콸 흘리는 네 마리의 좀비 시체. 그리고 내 검격을 보면서 히카 루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레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좀 흥분해서 보통보다 좀더 실력을 드러냈나? 나는 그리고 다시 뛰어들었다. 빛이 있는 곳에서의 싸움은 별로 즐기지 않았으나, 뭐, 지금 이야 아쉬운 대로다. 나나 레나나 권총을 한 개씩 보유하고는 있으나, 별로 쓸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총성이 퍼져나가는건 결코 신변상 좋지 않으니까 말이다. 다시 뛰어들며 이번에는 반응하기 시작하는 좀비 녀석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리고 매 섭게 살기를 뿜어내자 본능적으로 녀석들은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은 나에게 좋은 기회였다. 남은 좀비는 여덟이다. 가볍게 왼발을 굴러 쏘아져 나감과 동시에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은색의 호선이 매끄 럽게 한 좀비 녀석의 목을 베어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오른발을 축으로 부드럽게 선회한다음 다시 튕겨져 나이프를 아래서 위로 쳐올렸다. 어둠속에서 빛무리를 반사해내며 튕겨올라간 나이프는 좀비 녀석의 얼굴을 수직으로 훑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혈무血霧가 터져나왔다. 잠시 후, 열둘의 좀비를 모두 베어버린 다음 나는 나이프를 좀비 녀석중 그나마 옷이 깨끗 한 녀석의 옷의 가장 깨끗한 부위에 나이프를 닦아냈다. 나는 이 나이프가 꽤 맘에 들어서인지 깨끗한게 좋았다. 물론, 비반사 처리 해야될때도 있지 만. 그러고도 나이프가 별로 깨끗해 지지 않아서 레나가 목에 나이프를 겨누고 있는 히카루에게 다갔다. 그리고 그 다음 그녀의 옷에 나이프를 닦아냈다. 그녀의 인상이 확 구겨졌지만 나는 나이프를 다 닦고 나서 다시 챙겨 넣었다. 그리고 입가 에 내가 지을수 있는 가장 차가운 미소를 지어준다음 그녀의 볼을 툭툭 두드렸다. "다음에는 조심하라고." 분통터진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였지만 나는 그녀의 귓가에 몇마디 말을 해주었고, 곧 그녀 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는 그리고 나서 레나에게 눈짓했다. 그리고 레나의 전투 나이프의 손잡이 부분이 히카루 의 목덜미를 찍어내렸고, 곧 히카루는 쓰러졌다. 그리고 그녀를 질질 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내가 익히 아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맨 먼저 이 말을 했다. "이 계집 일어나면 말해줘. '다시 쫓아오면 확실히 죽여버린다'고. 아, 그리고 홍등가에 넘기 거나 하면 안돼. 알았지?" 나는 가볍게 몸을 돌렸다. 피에 젖은 방, 그러나 나나 레나나 옷에 핏자국 하나 없었다. 그 리고 레나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나는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으로 그렇게 방에서 빠져나왔 다. 나이프를 휘둘러 핏방울들을 벽에 뿌리고 갈무리했다. 방에 남아있는 목표물의 사체는 뭐, 경찰이 알아서 할 것이다. 지문 하나 남기지 않았으니 증거도 없다. 물론, 증거는 시체의 상흔. 그러나 나이프 정도를 썼다는것만 알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는 방범 카메라도 없고,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혹시나 모르기에 얼굴도 가리고 약간 키를 크게 만드는 신발을 신어서 들킬 가능성도 없었다. 이번도 꽤 쉬웠다. 그냥 나는 이번에 별일도 없이 '살인멸구'라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고전적 인 방법을 선택했다. 뛰쳐들어가서 목격자도 모조리 베어버린 것이다. 나로서는 이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으며, 시간 단축에 딱 좋은 방법이었다. 이런 나를 무식하다는 말로 매도하며 혀를 차는 레나였지만. 나는 이 말로 그녀의 입을 다 물게 만들었다. "임무 완료까지 앞으로 하루. 다른 방법 있습니까?" 뭐, 이 말이면 충분했다. 임무를 끝 마친 다음 가볍게 무전 신호기로 보고를 때린다음 느긋 한 걸음으로 피비린내 나는 건물에서 어둠에 몸을 숨긴채 움직였다. 레나와 나는 어둠에 녹아들어서 건물에서 순식간에 빠져나왔다. 그리고 차가운 바람이 나를 맞았다. 나와 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가린 천을 풀어내 바람에 던져넣었다. 바람은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휘감고 날아올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바람이 우 리를 감쌌다. 은근히 차가운 바람이 내 몸을 휘감고 돌며 적시자 나는 입가에 쓴미소를 지으면서 옷깃을 여몄다. 핏자국이라고는 보이지도 않는 옷. 조금 피냄새가 배어서 그렇지 핏자국은 없었다. 오랜만의 임무여서 그런지 조금 손이 무뎌졌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문득 몽환적인 생각에 빠져들어 그렇게 새벽공기 속에서 우리는 물의 향기를 맡았다. 어느 새 공원까지 걸어나온 것이다. 인공호 인 듯 보였지만 그럭저럭 자연 경관은 괜찮았다. 그리고 문득 제정신이 들었다. 여명黎明이 내 눈속으로 스며들어 나를 일깨운 것이다. 회색빛 새벽마저 물러가고, 곧 따사 로운 금빛의 화살이 대지를 찔렀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노래하고 있었다. 미약하고 조용하게. "ひかりを たどって いつか ひらくんだ あたらしい とびらを 빛을 더듬어서. 언젠가 열거야. 새로운 문을……" 나는 이 노래에 나의 작은 희망을 심고, 이것을 바람속으로 흩뿌렸다. 바람은 하늘로 이 소 리를 머금고 올라갔다. 만약, 정말 신이 있다면…… 이 노래를 들을수 있을지도. 훗, 부질없는 상상인가? 그렇게 나는 다시 어둠으로 걸음을 옮긴다. 빛은 너무 밝았다. ------ [ 1권 end ] ------ 032. 첫 시련試鍊. 조각난 구름 사이로 흘러내리는 금빛의 화살은 대지에 박혔다. 마치 금으로 된 화살같은 햇살이 대지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환한 광휘를 뿜어내 대지를 감아도는 그 따스한 빛무리가 부서져 내리듯 천류 세가의 어느 한 곳으로 흘러내렸다. "……훗." 이 사내. 정리조차 하지 않은 흑색의 길다란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청년. 그 외모는 청년이라고 부르기에 주저 될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그렇다고 그의 성별이 여자인 것은 아니었다. 현기玄氣가 뿜어져 나오는듯한 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깊어서 탁하게 보이는 그러한 눈동자였지만, 그 눈동자에는 현기가 존재했다. 단지, 보통 사람이라면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잘 갈무리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새하얗고 창백한 얼굴은 전체적으로 선이 가느다랗고, 앞머리로 상당부분을 가리고 있었지 만, 그의 새하얀 손이 머리카락을 훑어내자 그 외모가 햇빛 아래 드러났고, 주변을 떠돌던 바람들은 그의 모습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그를 휘감아돌았다. 창백하게 보였지만 살결이 맑고 투명하며, 새하얗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가느다 랗고 새하얀, 고운 손은 검이라고는 잡아보지도 않은 것처럼 느껴졌으나, 그는 현경이라는, 무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최고의 경지에 이르른 사람이었다. 전체적으로 바라본다면 새하얗고 맑은 살결, 나긋나긋한 몸매, 학자형 타입의, 아름답기 그 지 없는 얼굴. 이것이 그를 구성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여성으로 볼수가 없는 것이, 키는 여성의 평균 키 를 훌쩍 넘고 있었기 때문이다.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갈무리하여 흩날리지 못하도록 한 그는 씁쓸한 미소를 띄워올렸다. 그 리고 나서 자신이 들고있던 종이의 내용을 한참동안 곱씹었다. "……우습군. 정말, 대체 무슨 속셈인 것일까?" 종이의 내용은 그의 부동심과 청정심이 깨어져 버릴만큼 황당했다. 물론 그냥 단순한 중매 편지일 뿐이었으나, 그로써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이, 바로 무림맹에서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적대 처지인 주제에 천류세가의 가주와 그 심복에게 동시에 편지를 보내는건 대체 무슨 심 보란 말인가? "훗. 재미있게 돌아가겠는걸? 마침 심심했는데 잘되었군." 종이에 상당량의 공력을 불어넣자 그 공력을 이기지 못한 종이는 곧 파열되어 그렇게 불타 버렸다. 삼매진화의 수법이었다. 곧 재가루가 그를 휘감아 돌던 바람에 의해 하늘로 휘말려 올라갔다. 그는 잠시동안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다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떠올린다음. 뭔가 기대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운은 어떨까?" 편지가 왔다. 지금까지 온 많은 편지들은, 특히 중매 편지는 대부분 불살라 버렸으나 이번 것은 보통것이 아니었기에 운과 영에게 직접 던져졌다. 그리고 그것을 읽었던 영은 속에서 조소함과 동시에 의아함을 느꼈다. 자신에게 온 편지의 내용은…… 이리저리 글을 빙빙 돌리고 치장하여 화려한 문구로 쓰긴 했지만, 내용 자체는 중매편지였다. 그냥 사파쪽에서 편지가 왔다면 별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편지가 온 것은 바로…… 무림맹인 것이었다. "……" 게다가 무림에 소문이 퍼져나갔다. 무림맹에서 사봉四鳳중 한명이자 천하오미중 네번째라는. 화산파의 제자인 옥매화랑玉梅花娘 화영영을 무림사가인, 한마디로 무림맹의 공적이라 할수 있는 천류세가…… 그것도 가주의 심복인 영에게 중매를 섰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선 집중인가?" 해답은 이것밖에는 없는 것 같다. 이어준다면, 무림사가와 무림맹의 '타협'이자 '합작'으로 세상에 비추어질수도 있다. 그런데 천류세가의 목적은 '복수'다. 그것도 절대적으로 이루어 져야만 할…… 그런데도 무림맹은 이렇게 보낸 것이다. 거절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 하지만 여파라는 것이 있다. 이것으로 무림의 시선이 이곳에 몰리게 될것이고, 이쪽에서도 잠시 무림맹에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영. 어떻게 할거야? 조언을 구하고 싶은데." 운이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채 자신에게 떨어진 중매편지. 천하오미중 제 일미一美라 는 냉심빙화冷心氷花 옥유화와의 중매 편지를 찢어버리면서 그에게 물었다. "게다가 이상한건 '화해'라는 조건으로는 딱 맞게 나에게 '떨어진건' 맹주의 딸이잖아. 물론 맹주의 무공이 아니라 구음진경을 익혀서 거의 남남이긴 하지만." "훗…… 운은 결혼 문제도 있지 않나? 안주인이 필요하니까." "농담하지마. 꼭 정파라서 안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무림맹은 절대 안돼. 특히 맹주의 딸이 야. 게다가 난 복수가 목……" "신수사의가 한 말을 잊었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잖아? 게다가 차기 맹주나 다름없게 되는거지. 어때?" 빙글거리면서 장난처럼 말하는 영. 운은 피식 웃고나서 그를 바라보다가, 곧 뭔가를 눈치채 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생각이라도 있는거야?" "짐작했겠지만. 시선 집중인 것 같아. 아무래도 우리 분타쪽을 공격하려는 것 같은데?" "피해가 만만찮을텐데? 특히 '전진'과 '태음문'의 경우는…… 우리 세력의 2할 정도라지만 말이야. 태음문은 가능성이 크고, 전진은 더욱더 그렇지. 뭐, 지금은 약하다지만 검수劍手들이 꽤 많이 나가있잖아?" "아무래도…… 우리가 직접 움직여야 될 것 같아. 팔검위도 필요해." "설마, 그렇게 씩이나……" "아니야. 심상치 않아. 더군다나…… 무림맹에서 뭔가 꾸미고 있어. 어쩌면……" "응? 왜그래?" "이건 최악의 짐작이긴 하지만…… 아니. 뭐, 최악이니까, 결과를 보면 나타나겠지. 나는 태 음문으로 가겠어. 지금은 전진의 세력이 더 크니까. 너는 팔검위중 여섯을 이끌고 전진으로 가줘. 나는 남은 둘을 데리고 태음문으로 가겠어." "그쪽에서 일검위와 이검위를 데리고 가. 만약 대 전투라면 위험하잖아?" "아아…… 그렇지는 않을거야. 뭐, 삼검위와 사검위만 데려가지." "……뭐, 영이니까. 잘하겠지." 운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잠시 영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할까? 지금 세력은 충분히 키웠어, 지금만으로도 복수는 충분히 할수 있지. 영 이라면 다 생각해 두었을 것 같은데."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소규모 방파들의 '제거'와 백도 무림의 군소방파를 제거해야 하는거야. 특히, 개방을 조심해야지. 그곳은 수가 정말 장난이 아니니까. 더군다나 나라고 해도 개방의 10만은 자신 없어. 거기다 가 개방에는 화경의 고수가 둘. 무림맹에서는 한명으로 알고있지만…… 취불개 말고도 또 한명이 있지. 마교에서 알려준 거 니까 정확할거야." "흐음…… 의외로 만만찮네. 휴우, 팔검위들. 왜 이렇게 진척이 느릴까? 세명만 화경에 오르 고 그들도 완전히 성장을 멈췄어. 우리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아마, 그들은 사년쯤 더 지나야 조금씩 진척을 보일거야. 아마 십년쯤 더 지나야 남은 다섯 도 화경에 오르겠지. 우리가 성심성의껏 교육시키고 방법을 알려줘도, 어차피 남의 심득이야. 자신의 것으로 소화 해 익히려면 아주 오랜 세월이 필요하지." "……영." "응?" 대화가 잠시 멎었다. 운이 대화를 끊고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금강폭열공金剛爆熱攻을 가르쳐줄수 있어?" "……배우고 싶은거야?" "그래. 내가 알기로 지금의 내가 금강폭열공에서 사용할수 있는 초식은 앞의 네 개. 그리고 영의 것보다 위력이 한참 떨어지겠지. 오의를 이해할수 없으니까. 그렇지만 내가 아는 어떤 무공보다 금강폭열공은 강력해." "내공 소모가 끔찍할 정도로 많다는 것을 빼면." 영의 말에 운은 고개를 잘래잘래 젓고 나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긴 하지만, 일격 필살로는 가장 좋은 무술이야. 적어도 일초라도 가르쳐 줄수 없어?" "후훗…… 구결을 적어줄테니까. 나중에." "그럼, 계속 우리의 행로를 말해봐." "일단, 그렇게 제압이 끝나고, 개방을 어느정도 약화시키면 아마 마교가 혈천교를 완전히 없 앨수 있을거야. 그쯤 되면 혈천교의 잔류 세력은 무림으로 침투하게 되겠지. 그것들을 흡수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혈천교도 나름대로 우리에게 원한을 갖고 있어. 우리의 검대가 마교에게 도움을 준 탓이지…… 아마 숨어있다가 무림맹에 빌붙지 않을까 하 는데. 거기서 위험 요소가 하나 발생하지. 뭐, 그 다음에는 무림맹의 '숨겨진 세력'이 위험해. 백황대는 몰살이고, 청황대는 반몰살 당 했고, 적황대나 천황대, 그리고 흑황대는 모르겠지만…… 이 이외에 숨겨진 세력이 있다면 정말로 위험한 일이야. 특히, 사라진걸로 알려진 천산검파 같은 경우……" "만약 그들이 드러난다면 최악이겠군……" 천산검파. 300년 전 까지는 무림에 가끔식 천산검파의 고수가 나타나곤 했었다. 그리고 그 고수들은 하나같이 화경의 고수들이었다. 그것도 대제자조차 아니었던 것이다. 그 신비의 문파는 어딘가에 숨어있다고들 하는데. 그 위치를 어느 누구도 몰랐다. 그러나 도가 계통의 문파인 만큼…… 백도 무림이 위험에 빠지면 모두 나타날 것이다. 천산 검파는 검파라고 부르기도 못한 것이. 총 인원이 스무명 뿐이었다. 그 구조조차 천류세가와 무림맹, 그리고 마교 정도만이 알수 있었다. 천류세가는 마교에서 알려주었기에 알수 있었지만 말이다. 먼저 다섯의 장로가 존재하는데. 그들은 화경에 못미치거나 아마 화경일 것이라고 유추되었다. 그리고 문주와 부문주, 이들은 화경이나 현경일 것으로 유추된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모두 제자들인데. 화경의 벽에 부딪혔거나 혹은 화경이 있을 정도의 문파였다. 그들은 대대로 같은 무공심법, 같은 오의들을 익혀온다. 그러나 가끔 출도한 이들이 얻어온 심득과 경험이 그대로 전수되었으며, 서로간에 무술을 숨기는 일이 없었으며, 심득을 얻으면 바로 가르쳐 주고 익히곤 했다. 말하자면 자유로운 고수들의 동아리와 같은 곳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도사들이었기에 살계 를 여는 것은 어디까지나 백도 무림이 위험에 빠졌을 때였다. 만약, 그들이 모두 나타난다면 천류세가라 하더라도 상당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 이었다. 영이 나선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평수를 이루는 정도일 것이다. 특히, 그 제자들이 펼치는 천선무령대검진天仙武靈大劍陳의 경우 검수들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하나로 합일. 그것을 증폭시키는 것이었으므로 그 구성원들이 화경에 못미친다 하더라도 현경을 내다보는 화경의 고수 하나를 몰아붙일수 있었다. 열 두명이 구성하는 검진으로써, 간단함에도 심오함과 날카로움, 그리고 허허로움과 빠름, 그리고 유와 강을 간직한 진이었다. 예봉 자체가 없는 진법이었기에 그것은 더 강해졌다. 약점을 꼽으라면 한명이 무너질 경우 그 위력이 떨어져 내리는 것 정도? 하지만 이 검진의 경우 구성원들의 절반이 화경의 검수들일 경우에는 현경의 고수도 함부로 상대하지 못할 수준의 강력한 검진이었던 것이다. 무림 사상 최고라고 평가받은 오대 진중에서 제 1위를 차지하는 진이 천선무령대검진인 것 이니까…… 어쨌든 간에, 그들이 드러나 천류세가의 그 검을 겨눈다면 영이라 할지라도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쓰고 싶지 않은 사이킥 능력을 써야 할지도 몰랐다. 영은 잠시 불길한 생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 다음은 무림 요직 암살이지. 그날을 위해 암살자들을 키우는 것이니까. 그리고 나같은 경우도 움직이면 되겠지. 훗, 실력이 녹슬었는데 괜찮을까?" 그 말에 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영을 바라보았다. 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다음 그의 볼을 쓰다듬다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일단 '천류세가 파괴'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들부터 제거하는거지, 말단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천천히…… 물론 관계없는 녀석들도 무차별적으로 몇몇 죽여서 일주일 정도는 알 아채는 것을 지연시켜야지. 아마 여기까지 진행 시키면서 견제와 여러 가지 술수를 부려가면 4년 정도가 흘러있을거야. 눈코뜰새 없이 바쁘겠지. 일단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해. 알고 있지? 지금은 우리가 그곳으로 가서 '막아야' 하는거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 만. 아, 팔검위를 다 데려가면 안되겠구나. 이곳을 비울수도 없는데…… 일단 사업차 나가있는 고수들 절반을 불러들이고, 팔검위중 오, 육, 칠, 팔 검위를 이곳에 남기고, 남은 넷을 둘씩 데려가도록 하지, 나는 삼검위와 사검위를 데려갈테니, 너는 일검위와 이검 위를 데려가. 그리고 천광대天光隊의 검수들을 5백 정도 데려가는게 좋겠지. 나도 5백 쯤만 데려갈테니. 척후를 위해서 살수들 쉰명씩도 데려가는게 좋겠어." "그게 좋겠지?" "뭐, 일단은." 다시 대화가 끊어졌다. 그리고 영은 자신이 하던 말이 어디까지 이어졌는가 5초 정도 생각 하다가 말을 해 나갔다. "아, 그렇지. 그럼 계속 할까? 어느정도 무림맹을 위축시킨 다음 우리가 할 일은 선전포고 지. 천류세가와 무림맹의 실질적인 줄다리기가 시작되는거야. 아마 이렇게 세력을 약화 시킨다 해도 제압이 힘들테니 내가 좀 피곤해지겠군. 뭐, 대충 2, 3년 정도는 또 여기서 줄다리기가 계속되겠지. 그리고 그 이후에는 천산검파나 은둔한 기인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많아져. 그리고 이 시점에서 마지막 결전이 일어나는 거지, 그리고 우리가 이긴다면 우리는 무림을 적당히 마교와 나눠먹던가, 다시 피터지는 싸움을 하겠지. 마교가 유리할거야." "으음……" "만약, 무림맹이 우리 생각보다 더 강하다면. 양패구상이 끝일거야." "그리고…… 마교의 세상이 되는건가?" "그럴거야……" "우리는 어떻게 되는걸까……?" 운이 쓴 미소를 입가에 건채 그런 말을 꺼내버리자 영은 잠시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쓸쓸 함이 담겨있는 운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훗 하고 웃어버렸다. 불쌍한 아이. 원하지도 않는, 신수사의가 남겨준, 아니…… 그의 가문이 남겨준 복수라는 것으로 목표를 삼은채 숨가쁘게 살아가는 아이. 영은 조용한 미소를 입가에 띄워올린다음 운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운의 머리카락을 쓰다 듬어 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괜찮을거야……" 누구를 향한 다짐인지는, 그도 알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말을 이었다. "그때는 이곳을 떠나면 돼……" 영의 입에서 불확실한 전망을 가진 말이 떠나가서 불길하게 메아리 치고 있을 무렵, 황국 류의 황궁에서는 불길한 암운이 일어나고 있었다. "……폐하! 천류세가의 힘이 너무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짐도 알고 있다. 그들이 양패구상 하게 된다면 좋겠지만, 어느 한쪽이 이기는것도 별 로 좋을수 없지. 아무리 황궁과 무림이 불가침이라지만 천류세가를 약화시키는 편이 좋겠군." "……무림맹에서 돕겠다는 말도 들어왔습니다." "흥. 잇속을 챙겨보자는 뜻이겠지! 그래, 어디를 치면 좋겠다고 하던가? 그들이 우리들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하겠지만, 우리도 그러게 맹물은 아니야. 아직도 우리가 무림의 정세에 약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게…… 전진과 태음문을 자처하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청년 황제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걸었다. 군왕의 기도가 그의 몸에서 흘러나왔고, 그의 앞 에 포복하고 있던 중년은 더더욱 자신의 군주에게 고개를 숙였다. 금색의 용이 은색의 도포를 휘감고 올라가는 모습. 곤룡포坤龍袍였다. 맑은 피부에 확실한 미남형의 얼굴.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과 더불어 그 안에 신하를 향한 포용 또한 지니고 있는, 제국 류에서 역대 어떤 황제들보다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황제. 문락제. 그의 차가운 눈빛은 한없는 위엄을 담고 있어서 보는 사람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어쨌든, 진천뢰震天雷를 준비하게." "하오나……" "다시 말하지 않겠네. 그리고 금황위金皇衛 전원을 반으로 나누게." "……예!" "그리고, 그대와 차림이 각기 금황위 절반을 맡아서 그곳을 치도록 하게. 장비를 충분히 갖 추고…… 그곳을 '반역도'라고 적당히 뒤집어 씌워서 공격토록 하게." "존명." "그럼 시작하도록 하게." "만세, 만세, 만만세! 모든 광영이 제국 류에 비추길!" 불길하게 피어오른 기운은 천류세가의 정해진 앞날을 향해 굴러가는 인과의 굴레바퀴에 한 층 박차를 가했을 뿐,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033. 해조차 뜨지 않은 백마성의 천류세가의 건물. 꽤 확장을 시켜서 이전보다 세배는 넓어져 있 었다. 그 덕분에 주변 건물들을 꽤 많이 사들였지만…… 그 조용하지만 안쪽에서는 그 경비가 철저한 커다란 건물의 문이 열리고 곧 많은 인원들이 줄지어 성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백마성이라고는 해도 이미 천류세가의 성이나 다름 없었다. "……" 그들은 이렇게 차가운 새벽바람이 움직이지 시작할 즈음에, 천류세가에서 일찍 빠져나왔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 밤보다 조금씩 바람이 스쳐가는, 그나마 조금 더 시야가 확보되는 새벽 에 나온 것이다. 시간은 새벽, 흐릿하게, 사람을 몽환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만듬과 동시에 그 차가움으로 제정신을 들게 만드는 회색빛의 공기가 바람에 의해 떠밀려 가면서 그들의 콧속 으로 습기를 전달했다. "……" 오로지 침묵만이 그들을 감쌌다. 미리 전서응傳書鷹을 날려보냈고, 그들이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전진과 태음문이 있는 곳에 도달하면 되는것이었다. 「운.」 어기전성御氣傳聲의 묘용을 응용한 영의 말이 운의 귓가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운 역시 어 기전성을 운용해 그의 말에 답했다. 그 사이 그들은 빠르게 백마성을 빠져나와 길을 잡았다. 「무슨?」 「그럼 이제 갈라져야겠지. 나는 태음문으로 가겠다. 전진으로 가서 그곳을 보호해. 마교에 서도 확신하고 있어, '황궁'이 움직였다.」 「……뭐라고?」 「아무래도…… 황궁과 무림맹이 합작한 모양이군. 제길. 올가미를 씌운 모양인데. 황궁도 그렇게 속을만큼 멍청하지는 않으니까…… 아마 역이용해 우리를 무림맹과 비슷하게 맞추어 줄 모양이지.」 「흠…… 좋아, 최대한 피해없이 멋지게 격파해주면 되는거지?」 「그럼 이제 갈라지자고.」 천명을 넘어가는 커다란 무리는 곧 절반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각자의 경신법을 일정 수준 으로 발휘해 열을 맞추어 흩어졌다. 두갈래로 쪼개진 무리들은 태음문과 전진을 향해 각기 그 속도를 높여갔다. 질주하는 그들이 회색빛 땅과 회색빛 공기를 갈랐다. 이렇게 소리없이 질주하는 이들의 움 직임은 햇빛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조심스러워 졌고, 그만큼 길을 따라가지 않고 움직였다. 그들이 나타남에 따라 근처 산채의 도적들의 매복조들은 매우 기겁해야했다. 육백 여명에 육박하는 심상찮은 무리들이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포착된 것이다. 그리고 상대들 역시 자신들을 눈치챈 듯 했다. 그리고 그들은 뛰어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의 움직임이 산채에 알려지면 무림맹의 귀에 들어갈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들의 천 류세가의 검술을 쓸수는 없었다. 그래서 산적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모조리 목을 따버리는 그들의 검격은 초식의 모습은 없었다. 다만 일검으로 베어버릴 뿐이었다. 이들 천광대의 검수들과 살수들의 실력은 그만큼 강했던 것이다. 영이 가장 선두에 서 있었 다. 다른 이들이 꽤 지쳐가고 있을 즈음 영은 멈추었다. "이 근처의 매복조들은 숫자가 많군…… 기척 숨기는건 형편 없지만……" 너무 싱겁다는 표정으로, 말의 내용과는 완전히 대치되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영이었다.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 중얼거린 영은 가볍게 기의 실. 강기사검술剛氣絲劍術을 운용하 여 손끝에서 수십가닥의 실을 뿜어냈다. 강기사검술. 자유사운自由絲運의 장章. 무형참륙無形斬戮 제 일식一式. 관살법貫殺法. 투명한 강기의 실이 순식간에 숲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나뭇잎 몇 개가 꿰이긴 했으나 소리 도 없었다. 그리고 투명한 실들이 정확하게 숨어있던 자들의 심장 박동 한가운데로 스며들 어가자 기척들의 움직임이 멈춤과 동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영이 왼손을 그어 올리자 순식간에 실이 마치 매여있다가 튕겨진 듯, 탕 하는 소리 가 나면 어울릴 듯이 위로 확 하고 튕겨져올랐고, 보이지는 않았지만 강기의 실은 산적들의 심장의 중앙에 박혀있다가 위쪽으로 어깨까지 갈라버리며 튕겨져 올랐고, 순식간에 그쪽에 서는 피가 난무했다. 곧 향기마저 붉게 느껴지는 비릿한 혈향血香이 근처를 지배하기 시작하자 영에게 감탄의 시 선이 던져졌다. 그들도 무림인인지라 방금 영이 뿜어낸 강기의 실의 위력과 속도, 그리고 자 신들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실력을 보았던 것이다. 강기의 실을 회수한 영은 곧 다시 그들에게 신호를 보냈고, 그들은 다시 대지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거나 물을 마시고, 잠깐 쉬면서 운공을 교대로 하는 방식으로 쉴새없이 달려간 것이다. 그 무렵 운 역시 앞장서서 천영팔명검天影八鳴劍의 여덟 개 초식을 응용하여 뿜어내며 검강 을 날려 산채가 있는 장소를 초토화 시켜가면서 까지 움직여 나갔다. 물론, 죽은 자는커녕 찰과상조차 입은 사람이 없었다. 천영팔명검. 하늘에 그림자를 남기는, 여덟 개의 초식으로 구성되어있으며, 따가운 검의 공명음을 남기며 쏘아져 들어가는 검술. 여덟 개의 초식이 있으며, 각기 모두 강력하기 짝이 없으며, 극성으 로 익히면 검에서 완전한 검강이 뻗어나온다. 그리고 천류세가의 천운뢰명보天雲雷鳴步와 더불어 펼쳐지면 섬전閃電과도 같은 속도로 움 직이며 상대를 유린할수 있다. 적어도 2갑자의 공력은 있어야 극성으로 수련할수 있으며, 천 운뢰명보까지 함께 사용해 상대를 치려면 2갑자 반의 공력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위력은 타 분파의 어떤 무공보다 단연 우세하는 것이다. 그것도 천류세가에서 제 자들에게 세 번째로 익히게 만드는 상급 정도의 검술임에야…… 천류세가의 최고급 검술은 가주만 익힐수 있는 것으로 광염천린검光焰天躪劍이라 불리운다. 그리고 그 위력이란 것이 내공 소모와 위력을 동시에 생각해 만든 것인 만큼 정묘하기 짝이 없으며 패도적인 위력 또 한 함께 가질수 있다. 검에서 빛과 같은 검강劍剛이나 검기劍氣가 나타난다 해서 그렇게 불 리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운이 쓰는 것은 천영팔명검의 검술 약간과 광염천린검의 검술 일부를 떼어서 병합해 쓰는 것이었다. 청천검이 푸른 잔광을 남기며 사방을 벨 때마다 강기가 뿜어져 나가 사물을 잘라냈다. 뭐, 이렇게 강기를 뿜어낸다고는 해도 얼마 적들이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하지만 이 간간히 처리해야할 녀석들은 운에게 지루함을 주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부하들은 거의 몇시간을 달려 죽을맛이었지만 운은 한결같은 몸놀림으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휴식 명령이 떨어졌고, 그들은 곧 대화를 통해 교대 순서를 정하고 운 공하여 피로를 날리고 공력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육포와 물 을 꺼내 요기를 끝마친 그들은, 식량을 꽤 많이 가져와서 두둑한 짐을 진채 소화를 적당히 한후, 음식물을 뭉쳐서 위의 위쪽에 놓고 조금씩 소화시키며 그렇게 움직였다. 갈길은 아직 많이 남았던 것이다. "흠……" 불침번을 세우고, 모닥불을 지폈다. 사실 모닥불을 지피지 않는게 좋았으나, 지금은 깊은 산 이고, 주변 정찰도 끝낸 상황이라 안심하고 모닥불을 지필수 있었다. 20여명당 한 개의 모닥 불을 지폈는지라 꽤 넓은 공터의 나무들이 상당히 베어져 나갔다. 뭐, 나무를 베는건 간단했다. 검을 뽑아서 기를 주입한다음, 푸른 검기가 도는 검을 휘둘러 나무를 뭉텅뭉텅 썰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영의 명령에 따라 세심하게 최소량을 베어냈을 뿐이지만 그래도 나무들이 꽤 많이 잘려나갔다는 것을 금방 알수 있을 정도로 이들의 숫자는 많았다. '오광검五光劍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이렇게 불침번들만 시간을 보내며 틈틈히 모닥불에게 먹이를 던져주며 그 새로 만든(?) 애 완동물을 지켜보는 가운데, 영은 깨어나서 나무 등걸에 몸을 기댄채,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 게 생각에 잠겨있었다. 하늘에 박혀있는 별들도 시린 빛을 뿜고, 창백한 신월新月 또한 한층 그의 마음속에 차가움 을 선사했다. 우주에서 뿌려져 지구로 스며들고 있는 그 빛들을 바라보던 그는 피식 웃어버 렸다. '가까이서 직접 보면 아주 형편없는 것들 뿐이겠지. 이곳에서 보면 저렇게도 아름다울 수밖 에 없는데……' 어둠의 옷자락, 여신인가, 남신인가, 그런걸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마치 흑색, 깊디 깊은, 염 료로써는 절대로 나올수 없는 짙고 맑은 흑색으로 만들어진 밤의 하늘, 그리고 보이는 별과 달은 자신이 있던 곳, 서울이고, 광주고 할 것 없이 오염으로 인해 보기가 힘들었던 이 하늘 을 보며 그는 보기 드문 감정의 울림을 보이고 있었다. "……" 별이 맑은 시선을 들어 그의 가슴 가운데에 던지자, 그의 마음에는 차가운 빛이 서려들었다. 그리고 문득 그는 무아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어둠의 화폭을 감상하던 그는 생각에 점점 빨 려들어갔고, 그 흐름에 아예 몸을 맡겨버린채 정신없이 생각속을 떠돌았다. 그때 그의 몸 주위를 원형으로 회전하고 있던 영기靈氣의 고리의 회전이 느려졌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빨라질때마다 점점 그것은 느려져 갔다. 그가 상념을 주체할수 없을 지경이 되 었을 때 영기가 그 회전을 멈추었고, 그는 퍼뜩 제정신이 들었다. 그러자 영기가 다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갸웃 했다. 그리고 무심無心으로 잠겨들었다. 그러자 영기의 고리는 점 점 그 속력을 빨리했다. 그리고 미약한 기의 바람이 일어날 정도로 빨라지게 되었고, 그는 비상정비비상정悲想感非悲想情의 지경으로 돌입해버렸다. 그리고 영기의 고리가 그 회전을 빨리해 주변에 강한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그는 그제 서야 회전을 멈추었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무심과 다상념, 청정심을 유지해 보면서 자유 롭게 영기의 흐름을 반대쪽으로도, 본래 돌던 방향으로도, 그리고 정지의 형태로도 바꾸어보 았다. 그는 그렇게 영기의 고리를 수차례 회전시키며 바꾸어 보았다. '뭔가 이것이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영의 뇌리에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부정해버렸다. 이것은 단지 속도의 제어 정도일 뿐이었다. 그리고 주변의 기가 바람을 일으키는 정도…… 그리고 강하게 한다 해도 아마 그냥 조금 풍속이 빠른 바람 정도 외에는 일으킬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박했다. 지금은 그가 자체적으로 신화경의 경지에는 오를수 없었다. 하지만, 이 영기의 고리로 인해 그는 목숨을 구하고, 또 다른 경지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천류세가의 일행들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나뉘어져 각기의 목적지로 향하고 있을 무렵, 황 궁의 금황위들과 그 지휘자 둘 역시 갈라져 전진과 태음문의 방향으로 향했다. 우두머리들 은 기마騎馬를 타고 있었지만, 금황위들은 기마를 타고 있지는 않았다. 이들은 마을이나 도시를 지나면서 상당한 민폐를 끼쳤지만 그 우두머리들은 황제가 건네준 돈으로 그들의 손해를 배상함으로써 최대한 배려했고, 되도록 큰 곳에서는 분산해서 쉬도록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통보를 하고 들어감으로써 황제의 명을 충실히 따랐 다. 백성들을 놀라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금황위들은 상당히 불안했다. 임무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무림인들은 그만큼 강 하기에 긴장 되는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지휘자 두명은 둘 모두 화경化境에 이르 른 고수였기에, 금황위들은 한결 부담을 덜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금황위들 뒤쪽으로 마차 열대가 끌려가고 있었는데, 이 나누어진 두 무리들 모두 마차 열대씩을 끌고 있었다. 무언가 중요한 짐인 듯, 매우 조심스럽게 호위 하며 주위를 특 히 경계하고, 마차 주변에 불씨를 가져가지 않았다. 금황위들의 현재 지휘자들을 바라보면, 둘다 강렬한 정기를 눈에 담은채 무인의 날카로움을 사방에 뿌리고 있었다. 한명은 중년으로 보였으나 탄탄한 체격에 허리에 건 검이 매우 잘 어울렸다. 황궁의 신장神將이라고 불릴만한 품격이 있었으며, 미남형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다음 사람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무인이었다. 허리에는 패검을 한자루 차고 있었으며, 역시 화경의 고수로써 단단한 체격을 지니고 있었고, 특이하게도 경갑주를 걸치고 있었다. 먼저 설명한 화경의 고수인 금황위의 대주, 강억은 현재 황제가 친히 하사한 신검神劍과 악 적을 물리치라는 뜻으로 준 건곤권을 갖고 있었으며, 다른 한명인 차림은 풍열風熱이라는 검을 쓰고 있었다. 강억의 특기는 복마삼로검伏魔三路劍으로 백색의 강기剛氣를 뿜어내며, 그것으로 강시나 마 공을 익힌 자들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그러한 마를 제압하는 검술이었다.두 번째 로 설명한 금황위의 부대주인 차림의 검술은 황궁의 검술중 하나인 파황혼원검을 익히고 있 었다. 극성까지 익혔으며, 그것을 토대로 검강을 자유자재로 펼쳐내는 고수였다. 그리고 그 파황혼원검을 전력을 다해 펼쳐내면 은색과 붉은색의 강기가 동시에 뿜어져 나오는데, 보통 의 강기보다 두배 이상 더 강한 위력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화경의 고수로써 꽤 큰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으며, 그만큼 실력이 받쳐주었기에 황궁에서도 상당히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적수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황궁에서만 생활하고 가끔 임무를 맡아 움직였을 뿐이었으니까, 그만큼 제대 로된 무림인들과 만난다는건 그들에게 있어서 드문 일이었다. 비록 화경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긴 했지만 그들은 고수였다. 그렇지만 그런 그들이 지금 은 긴장하고 있었다. 서로의 생각은 달랐다. 먼저 차림의 생각은 이러했다. '아마 현경玄境의 고수라는 그 은영천검銀影天劍. 영이 움직인다고 하면 태음문으로 올 것 이다. 그러면…… 나는 그자를 상대해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다시없는 행운일지도 모른 다…… 아니, 진천뢰를 쓰면 설마 현경의 고수라도 별수 있으랴!' 이렇게 차림이 망상이라면 망상일수 있는 생각에 빠져서 입가에 긴장이 어린, 그러나 차가 운 미소를 떠올리고 있을 때, 강억은 입술을 짖씹고 있었다. 그리고 전력을 가늠해 보았다. '천류세가의 가주. 유운이나 은영천검이나 나보다 훨씬 강한 고수다. 비록 인정하기는 싫지 만 어쩔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정보를 포착했더라도 설마 고수나 보내고 말겠지…… 팔검위의 한명이라면 나로써도 어떻게 해볼수 있을터이 니…… 온다고 하더라도 진천뢰라는 것이 있으니……' 그러나 이 강억의 생각은 그들을 발견한 운의 기습전으로 인해 뿌리뽑혔다. 034.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운과 영은 앞으로 얼마 안있으면 그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고, 곧 전투를 하게 될것이었다. 운과 그 수하들은 들판을 가로지르며 전진파가 있는 곳을 향해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 고 잠시 멈춘 그들은 전진파의 근처에서 살수들 쉰명중 가장 날렵하고 은신술이 뛰어난, 그 리고 경공술과 검술이 뛰어난 스무명을 뽑아서, 열로 나눈다음 열명은 전진 근처를, 남은 이 들은 길목을 감시하라고 일렀다. 곧 수하들에게 휴식과 긴장상태를 유지하라고 일러준다음, 검에 비반사 처리를 하라고 말했 다. 이른 아침의 시각이라 빛은 존재했으므로, 그리고 최대한 그늘속에 몸을 숨기고 기척을 죽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길목 뒤쪽에 남은 살수들을 모두 배치하여 후방 퇴로를 차단토록 했다. 반 시진이 지나자 곧 척후로 보냈던 암살자들이 돌아왔고, 보고를 실시했다. 그리고 길목을 감시하던 암살자들이 5백의 '적'들을 발견했다고 말했고, 운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청천검靑天劍을 뽑아듬과 동시에 치켜올렸다. "소리없이 흩어져서 매복한다! 그리고 아까 일러두었던 대로 작전을 개시한다." "존명!" 그리 크지 않은 소리로 대답한 그들이 무서운 속도로 사방의 바위 틈, 나무 그늘, 나무 위, 수풀 안쪽 등의 은신처로 숨어들었고, 곧 기척이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운은 느긋한 걸음으 로 길목의 앞에 서서 청천검을 짚은채 날카로운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살기 는 주변이들의 기척을 충분히 감추어줬다. 그리고 운은 공력을 조금씩 개방했다. 강억은 흠칫 하고 몸을 떨었다. "……살기로군." "……대주. 적입니까?" "기껏해야 한명인 것 같은데…… 이상하군." "……어떻게 할까요?" "보통 만만한 상대는 아니야. 하지만 계속 가도록 하지." "……존명." 다시 그들은 속도를 높여 움직였고, 곧 앞쪽에 자그마한 그림자 하나가 보이는 것을 깨달았 다. 그리고 그 강렬한 살기와 더불어 기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소년이 시야에 강억의 눈 에 모두 들어왔을 때, 금빛의 햇살이 소년의 뒤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림자가 한층 더 길어짐과 동시에 소년의 모습이 검어졌다. 그러나 그 소년의 얼굴 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눈에 서린 강렬한 정기를 보았을 때 강억의 표정은 굳어졌다. 소년은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살기를 강렬하게 뿜어내며. "나, 천류세가의 가주. 유운. 그대들의 목숨을 거두겠다!" '단 한명…… 그러나 무언가가 없지 않은 이상 이렇게는 하지 못할것인데…… 설마 매복인 가? 하지만 기척은……' 강억은 대치상태에서 생각을 정리하다가 퍼뜩 무언가를 깨달았고, 곧 눈을 부릅뜨며 경악성 을 내질렀다. "설마?!" "이제야 알았군. 일제 공격!" 운이 비웃음과 동시에 손을 들었다 내리며 외쳤다. 그리고 하늘을 가르며 암기 오백여개가 쏟아져내렸다. 모두 공력을 집중시켜 한명씩 한명씩 던진 것이었기에 기습당한 그들이 막아 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결국 단 한 번의 암기 세례로 100여명은 순식간에 저승으 로 가버렸다. 비오듯 쏟아지는 암기들, 그리고 순식간에 사체들 100여구가 바닥에 즐비하게 늘어졌고, 피 가 그 시체판을 슬금슬금 기어갔다. "일검위와 이검위는 측면을 압박해라!" 팔검위중 두명이 순식간에 그 신형을 흐림과 동시에 우왕좌왕 하는 적들의 측면으로 파고듬 과 동시에 무서운 강기剛氣를 은백색 섬광과 함께 뿜어냈고, 단 일격으로, 수평으로 검을 그 어 신월의 검강을 발출했을 뿐이건만, 무방비로 30여명이 스러졌다. 허리를 중점으로 상반신과 하반신이 나누어진채…… 다시 두명의 검수들은 공격을 위해 공 력을 끌어올리며 쏘아져나갔다. 풀썩― 풀썩― 그제서야 풀썩거리며 쓰러진 시체들의 단면에서 내장이 흘러나오면서 동시에 피가 바닥을 흘러 적셨다. 더운 김을 가볍게 뿜는 내장들을 무시하며 두명의 검위는 재차 검술을 펼쳤다. 천영팔명검天影八鳴劍과 천운뢰명보天雲雷鳴步를 극성으로 펼쳐 마치 미리 짜고 같은 초식 을 펼치는 듯, 푸르른 뇌력을 머금은 기회오리를 몸에 감은채 미친 듯이 사방으로 검강을 뽑아내 도륙하는 그들의 모습은 악귀와도 같았다. 저쪽은 화경의 고수 둘. 승산이 없었다. "진천뢰를……" 강억은 말을 마치려 했으나 소식을 전해오는 수하는 절망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뒤쪽에서 30여명들의 초고수들이 순식간에 호위하던 이들을 해치우고 마차를 빼앗았다고 합니다!" 망보였다. 강억은 인상을 찡그리며 당황해 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을 질책했다. "이, 이런……" '아아, 자만으로 수하들을 잃는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금황위의 6할의 목숨이 사그라 들어버렸다. 천류세가의 검들은 그만 큼 매서웠던 것이다. 매서운 손속, 강력한 내공, 그리고 뛰어난 검수들. 그러나 천류세가 쪽 의 피해도 꽤 컸다. 그 사이 50여명이 발악같은 공격에 죽어나가버린 것이다. 운은 의외로 피해가 크자 눈살을 찌푸렸다. 팔검위중 일검위와 이검위는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며 검강을 사용해 적재 적소에 공격해서 피해를 줄여주고 있었으나, 그리고 전력또한 아니었으나 집단전에서 혼자 날뛸수는 없어 이 것이 한계였다. 그리고, 힘을 아껴두려 했던 강억은 하는 수없이 마침내 검을 뽑아들었고, 동시에 공력을 한 가득 끌어올렸다. 그는 백색의 강기 회오리를 한차례 뿜어 네명의 천광대 검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검을 고쳐잡으며 주변을 매섭게 쏘아보았고, 곧 눈에서 살기를 뿜어냄과 동시에 이번에는 완벽하게 유형화된 검강을 수차례 발출하기 시작했고, 곧 그의 백색 검강이 구멍 이 뚫려 숨진 천광대 검수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보다 못해 운은 움직였다. 순식간에 시린 빛을 뿌리며 찔러쏘아져 들어간 청천검에는 이미 금색의 강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협적인 기운을 백색의 강기막으로 막아낸 강억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물러났다. 펑―― 이러한 충돌음과 더불어 강렬한 충격파가 주변을 휘감았다가 사라졌고, 운과 강억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운이 살기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강억은 곧 자세를 잡고 진지하게 맞수했다. 대화는 필요없었다. 둘다 무인으로써의 승부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은 곧 청천검을 내렸다. 강 억은 의아했지만 자세를 유지했다. '검을 내리는건 별로 좋은 자세가 아닌데…… 산악과 같은 무거움이 실리는 대검 종류의 검 술에서 올려칠 때 저렇게 한다는…… 설마!' 우우웅――! 운의 청천검이 올려쳐졌다. 하늘을 베는 검격. 그와 동시에 금빛의 호선이 그려졌다. 황홀한 빛을 뿌린 금색의 호선과 더불어 터져나온 금색 강기의 회오리, 비록 영의 금강폭열공, 제 일초의 신룡현세일 뿐이었지만 그것은 엄청났다. 영이 만든 것 만큼 정교한 강기의 용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금황위들로 하여금 공포를 더욱 가중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물러나던 강억은 퍼뜩 제정신을 차리고 백색 강기회오리가 일렁이 는 검 끝을 금색의 용을 향해 겨누었다. 금색의 용. 신룡들은 총 64마리. 순식간에 64방위를 점해 자신을 향해 휘몰아 오는 금강폭열공의 강기룡. "카아아앗!" 자신도 모르게 괴성을 터뜨리며 복마삼로검, 삼로검중 최절초, 복마멸사검법을 펼쳤다. 순식 간에 128개 방위를 베고 찌른 그는 필생의 공력을 다해 만든 백색의 강기가 쏘아져 나가는 것을 보고 결과에 집중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강기의 용들은 포효함과 동시에 입을 벌려 그 날카로운 기운으로 순식간에 백색의 강기들을 제거해버렸다. 기껏해야 소멸한 용들은 열 세 마리에 지나지 않 았다. 남은 용들은 그대로 강억을 향해 쇄도해 들어왔고, 그는 눈을 감고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곧 퍼뜩 무엇인가가 생각났고, 곧 선천진기를 모두 순식간에 건곤권과 검에 불어넣고 쏘아 보냈다. 감히 황제의 명령인 것을,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것이다. 그리고 백색의 검이 쏘아져나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는 죽음에 빠져들었다. 백색의 광채를 휘감고 튕겨져 나간 검은 강기의 용들에 휘말려 가루가 나버렸다. 그러나 강 기의 용 셋이 동시에 꿰뚫려 소멸했다. 그리고 백색을 휘감은 건곤권이 날카로운 날에서 백 색 빛가루를 뿜어냈다. 하지만 운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청천검에 어기충검御氣充劍 하여 그것을 내리쳤고, 곧 그것은 방향을 틀었으나 다시 선회하여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게 아닌가? 운은 인상을 찡그렸다. 통제하던 금색의 강기용들을 다시 회수한 그는 그 용들을 그대로 건 곤권을 향해 날려보냈다. 그리고 충돌이 일어났다. 1할밖에 남지 않은 금황위들, 도망가던 이들도 모두 죽음을 맞았고, 이젠 그들의 위에서 거 대한 기운 둘이 충돌하는 것이다. 쿠콰콰콰콰―! 우연찮게도 충돌점 밑에 있던 금황위들은 충격파에 휘말려 공격, 혹은 방어를 실패했고, 순 식간에 모두 저승으로 떠나게 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그리고 백색의 기류는 사라진 건곤권 이 그대로 금색의 기류를 뚫고 자신을 향해 회전하며 날아오자 운은 질려버렸다. 하지만 다시 청천검을 휘둘러 그것을 내리쳐, 물리적인 힘을 잃게 만든다음 날을 집어넣어 갈무리했다. 창 하는 금속음과 더불어 떨어진 건곤권의 중앙에 박혀있는 보석을 누르자 날 카로운 날들이 갈무리 되어 사라졌다. '흠. 결국 얻게 되었나?' 운은 미소를 짓다가 잠시 쓴 미소를 지었다. '강억, 이 자의 충성심은 정말 컸군. 아까운 사람이었어. 이런 사람이 하필 황궁의 개가 되 어버리다니……' 그리고 나서 자신들의 수하들을 바라보았다. 꽤 다친 이들도 있었으나 대충 치료를 끝냈으 며, 죽은 이들은 그래도 전멸한 상대에 비하면 적어서 150여명 정도였다. 그러나 꽤 큰 피해 였기에 그는 한숨을 내어 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득 부하가 마차 10대에 대해서 알려왔고, 곧 그것을 살피기 위해 운은 빠르게 마 차로 다가갔다. 마차 주변의 시체는 상당히 많았고, 흘러나온 피들이 이젠 굳어져서 비릿한 냄새도 많이 약화되어 있었다. 섬뜩한 혈향을 바람이 몰아가는 것을 느끼면서 운은 흑색의 마차 내부로 들어섰다. 꽤 넓은 마차 안에는 상자 네 개만이 달랑 들어있었다. 단단하게 봉합되어 있었고, 쇠 못으 로 박아놓고 황제의 인장까지 찍어놓았다. 운은 인상을 찡그리고 나서 황제의 인장에 가벼 운 장풍을 날려 제거해버리고 나서 집게 손가락과 엄지를 들어 공력을 집중했다. 건곤지乾坤指. 우우웅―― 공명음과 더불어 건곤지가 시전되었고, 회색빛과 푸른빛이 섞여 뿜어지는 두 손가락을 단단 한, 흑색 칠이 된 단목 상자의 못이 박힌 부분 옆쪽에 쑤셔 넣었다. 콰지지지직―― 그리고 못 대가리를 붙잡아 쉽사리 그것들을 뽑아내고 그 상자의 뚜껑을 열어들었다. 끼익 하는 소리와 더불어 상자가 열렸고, 내용물이 운의 시야에 드러났다. 운은 입술을 깨물며 살기를 뿜어냈다. "이런…… 이것은 진천뢰…… 아예 우릴 죽일 작정이었군! 젠장할! 영이 위험하다!" いつも かぜが ふいて ふりだし ひとりに なる 언제나 바람이 불면 다시 혼자가 되지…… オレの あたまの なか なㄴに もさびしくない 내 머릿속에 던져진 상념, 하나도 외롭지 않아…… 035. 상자 안에 든 것은 새카만 구슬들 수십개였다. 전부 다 하나같이 주먹만 했으며, 안쪽에는 폭발성의 작약芍藥들이 가득 들어있을 터였다. 작열탄이었다. 그리고 곧 천광대들이 시체를 수색해서 그것이 들어갈 만한, 용수철이 장착된 통을 가져왔다. 아무래도 이것들은 조금의 충격만 받아도 터지기 쉬운 듯, 전부 다 지푸라기들과 솜을 채우 고, 서로 밀착하지 못하도록 숨겨놓은 것이다. 운은 진천뢰 하나를 들어올렸다. 햇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진천뢰는 불길함을 띄고 있었다. "젠장……" "……흠. 저 마차들은 뭐지?" 영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혹시나 '그것'일지도. 황궁에서 자신을 포섭하 는데 그리 힘 쓰지 않은 이유가 아닐까? 그렇다면 조심해야 하는데…… '결국 내가 선두에 서야 되는군. 검위 두녀석들과 함께……' 은영비銀影比를 꺼냈다. 오른손목을 탄력있게 튕기자 소매 안자락에서 감추어져있던, 역시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덮개에 감추어져 있던 날카로운 병기가 드러났다. 10대 기병에 들어갔 던 천인검이 부수어진 다음 한 자리가 비어있던 기병에 들어가게 된 은영비. 청천검 또한 10대 기병에 들어가는 무기였지만, 그건 보존되었을 따름이었다. 사실, 은영비의 강도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모스 경도로 따졌을 때 8.5정도일 것이다. 티타늄만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서 그렇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단단하고 날카 로웠다. 그러나 10대 기병에 견주기는 어림도 없었으나, 오히려 주인의 명성 때문에 10대 기 병에 든 것이라 할수 있었다. 특히, 이 은영비를 이용한 검술은 무림인들로써는 처음 보는 생소한 것들이었고, 더군다나 암살자의 그것과 빼닮으면서도 무학의 오의를 담은 검술인지라 공격당하면 곧바로 죽음으로 직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과 운은 몰랐지만, 황궁의 무리들에는 무림인들도 10명 정도가 끼어있었다. 운이야 속전속결로 처리해버렸으므로 무림인들을 제거할수 있었던 것이다. 신원확인을 할 필요도 없이 운은 두동강 나거나 내장이 흘러내리거나, 하여튼 완전히 죽지 않을 상처를 입은 듯 한 시체들은 모조리 두토막을 내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려 확인사살을 실시하기 까지 했기에 그런 것을 알수 없었다. 다만 몸속에 존재하는 물건들만 몇 개 뺐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무기나 가진 것들을 모조리 터는 사악한 짓(?)을 실시하기까지 했지만, 얼굴은 살펴보지도 않았다. "기습이 좋을까. 정면 대결이 좋을까?" 영은 고민했다. 이 지형은 기습하기에는 좋지 않다. 가릴만한 것들도 없거니와 경공으로 돌 격한다 하더라도…… 그때 퍼뜩 떠오르는게 있었다. "그렇군……" 이 작전이라면 피해를 어느정도는 줄여볼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작전이 생각나자 마자 곧 멀 리서 관찰하던 이들을 모두 불러들였고, 길목 정면에서 대기하기 위해 움직여 길목에서 그 강렬한 기운들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천류세가는 사파가 아니다. 마교조차 아니다. 정, 사, 마. 어느곳에도 들지 않지만 굳이 무공 으로 비교하자면 정파쪽에 가깝다 할수 있었지만, 영약과 더불어 마교와도 어느정도 선이 닿아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무공은 공명정대함과 독랄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마 기를 풍기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다른 파에서도 인정하는 바였 기에, 그 품격도 대단히 뛰어났다. 그래서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한결같이 정갈한 기운들이었다. 그러나 그 강 렬한 기세는 저쪽에서 다가오는 이들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차림은 씁쓸한 미소를 짓다가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전원에게 검을 뽑으라는 말 을 했다. 아마, 예상으로는 이 지형이 기습하기 힘들것이므로 긴장하게 할 것임이 틀림 없었 다. 그리고 다가오는 자신들과 달리 '안정된' 자세와 '안정된' 진세로 암기부터 퍼붓고 볼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진천뢰를 발사할수 있는 50명을 데려와 각기 세 개씩의 진천뢰를 쥐어준다음 통에 넣고 겨냥하여 쏠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을 선두에 세운다음 진천뢰를 사용 하게 되면 급히 몸을 뒤로 숨기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나서 선두에서 자신들과 거의 비슷한 숫자의 무림인들이 진세를 잡은채 기력을 끌어 올리고 있자 자신들도 공력을 끌어올리며 근육을 긴장시켰다. 그와 동시에 차림의 손이 올 려졌다가…… 내려갔다. 핑핑핑핑―― 쐐애애액――! 무려 50개의 주먹만한 흑색 구슬이 허공중으로 선을 그렸다. 흑색의 선이 점점 길어지며 그 들을 향해 닿을 즈음, 문득 저쪽에서 청색의 기류가 피어올랐고, 그것은 마치 안개와도 같이 허공중으로 퍼져나가다가 소용돌이 치며 그대로 흑색 구슬들을 막아냈다. 쿠쾅쾅――!! 콰콰쾅――!! 곧 붉은 불기운이 허공중에서 일어났고, 그와 함께 생성된 충격파는 대지를 울렸다. 그러나 그것은 단 1초만에 순수한 에너지로 화해 사라졌다. 그리고 상당한 충격이 가해진 듯, 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혹시나 해서 4성의 힘을 썼더니…… 작열탄이잖아!" 혼자말로 중얼거린 영은 곧 적들을 매섭게 쏘아본다음 입을 열고, 커다랗게 소리쳤다. 음파 를 공력으로 진동, 증폭시켜서 대단히 큰 소리였지만, 가득 일어나 흙먼지에 차단되어서 저 쪽에서는 흐릿한 소리로 들렸다. "저것의 위력은 강하다! 내가 막아내지 못한 것들이 날아올 경우, 검기상인劍氣傷人에 능한 자들은 그것을 저격하여 파괴토록 하라! 그리고 팔검위 둘은 검기나 검강을 사용하여 적어 도 최소 20장 바깥에서 없애라! 그리고 충격파가 강하니 호신강기를 최대한 전개하고! 유柔 의 구결을 사용한 태극권太極拳 계통의 무술로 저것이 터지지 않도록 받아내도록! 적들은 내가 상대한다!" 그 허황된 명령에는 천류세가의 사람들도 당황할 정도였다. 그러나 곧 그가 은영비를 느릿 하게 휘두르자 곧 거대한 기폭풍이 터져올라가 흙먼지를 휩쓸며 다시 파공음과 함께 쏘아져 들어오는 흑색 줄기들을 다시 한 번 격파하자 입을 다물었다. 쿠콰콰콰쾅―!!! 이번에는 방어가 아니라 기력의 발출이었기에 몸에 타격이 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아무리 그다지 강하지 않게 사용 했다지만 유검, 천신의 춤을 막아내버리는 진천뢰들에는 진저리가 쳐졌다. 이번에는 뭔가 깨달은 듯 쏘아져 들어오는 진천뢰의 범위는 넓었다. 그러나 영은 은영비를 휘둘러 다시한번 5성 공력을 사용, 천신무를 일으켜 그것들을 날려버릴 뿐이었다. 이제 700 년 공력을 능가하고 있는 그의 5성 공력이라면 300년을 넘는 가공할 공력이었지만 그것으로 사용한 천신무로도 진천뢰의 충격파를 차단할 수준이었던 것이다. '대체, 주먹만한 구슬에 얼마나 장약을 쑤셔 박았기에 저런 파괴력이 나오는거야! 이건 말도 안돼! RDX도 아닌데……!' 그렇게 자책해보며 다시한번 천신무를 일으켰다. 아무리 유검술이 공력을 그다지 소모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해도 이런식이라면 공력이 금방 소모된다. 살펴본 바로는 10대의 마차가 있었고, 그 안에 진천뢰가 있을 것이었다. 순간의 영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7성에 달하는 천신무를 뿜어내 그대로 날아오는 진천뢰들을 제거함과 동시에 그 기폭풍을 제어하며 적들을 향해 날려보냈다. 그다 지 강하지 않은 천신무였으나, 그들은 방어하며 상당한 타격을 입은 듯, 백여명이 입에서 피 를 뿜었으며, 십여명이 경락이 폭주해 죽어버렸다. 잠시 피해때문인지 진천뢰들은 날아오지 않았다. 실상은 진천뢰들을 꺼내오느라 그런것에 불과했지만. 영은 인상을 찡그렸다. "산개散開!" 적들이 흩어지려고 하자 차림은 분통을 터뜨렸다. "젠장! 어떻게 진천뢰를 저렇게 막아낼수 있는거지?" 차림은 계산 착오다! 라고 생각했지만 저정도의 엄청난 무공을 연속으로 사용할 수는 없으 리라 생각하면서 돌격명을 내리기 전 다시 진천뢰를 사용하라는 지시를 한 번 내리고, 튕겨 져 나간 흑색의 구슬들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돌격을 명령했다. 자신도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기의 소용돌이가 그대로 진천뢰들을 박살내어 버렸다. 흑색과 적색이 버무러진 폭운이 터져나오며 매캐한 화약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그러나 그들은 쏘 아져 나가며 그대로 검기들을 발출하거나 암기를 쏘아보냈다. 그리고 쏘아져 나온 흑색 선들은 다시 영의 천신무에 휘말려 사라졌다. 영은 눈살을 찌푸렸 다. '무형무無形舞를 써버릴까?' 벌써 꽤 많은 공력이 날아가 버렸다. 거의 절반에 달하는 공력을 소모해버렸긴 하지만, 무형 무라면 단 한 번의 춤으로도 저들을 전멸시킬수 있을 위력이 나올 것이다. 은영비를 틀어쥐 는 영이었지만, 지금은 진천뢰를 막는게 급했다. 진천뢰는 다시 자신들의 후방부를 노리고 날아오지 않는가? 바로 격돌중인 곳이 아니라 뒤 쪽에 떨어뜨려 그 충격파로 자신들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하아앗!" 처음 터뜨려 보는 기합이었다. 은영비를 휘두름과 동시에 그의 몸 주변에서 아직도 천신무 의 여파로 요동치던 강대한 기운들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그대로 기폭풍을 터뜨렸다. 이번에 는 천신무가 아닌 파천무破天舞였다. 콰르르르르――!!! 천신무보다 강한 강의 구결과 유의 구결, 오히려 태극에 가까운 파천무가 실행되자 뿜어져 나간 기폭풍, 장대한 대자연의 기폭풍에 주변에서 광풍이 일어났고, 무림인들은 그 충격파만 도 견디기 힘든 듯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기폭풍은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강대한 바람 을 휘몰로 뿜어져 올라가 그대로 진천뢰들을 막아냈다. 쿠르르릉――! 다시 한 번 굉음, 그리고 섬광, 열기. 영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두 개의 진천뢰를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시간차를 두고 쏜 듯 했다. 그리고 미처 천신무를 펼 치기도 전에 그들의 뒤쪽으로 떨어져 내린 두 개의 구슬은 폭발했다. 미처 검수들도 검기를 발출할 틈이 없었다. 격전중이었으므로…… 그리고 순식간에 그들의 등 뒤에서 터져나온 충격파로 인해 30여명의 검수들은 피떡이 되어버렸고, 20여명은 화상과 부상을 입게 되고 말았다. 영은 입술을 짓씹었다. 게다가 적들도 만만찮아서 벌써 20여명이 죽어나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진천뢰를 방어 하는 사이 팔검위 둘이 차림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겨우 둘이 맞붙어서 평수를 이루고 있는 듯 보였다. 팔검위중 화경에 오른 이들은, 화경에 오른지 그다지 많은 시일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같 은 화경의 고수라 해도 실력 차가 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둘은 협공으로 차림을 간신 히 상대하고 있었다. 차림도 힘겨웠다. 비록 자신이 더 강하지만 상대는 둘이었다. 은적색의 강기를 일으켜 푸르 른 검강을 막아내고, 쏘아져 들어온, 초식으로 만들어진 검강을 막아내면 꽤 큰 충격이 몸에 생겨났다. 차림의 검술. 파황혼원검, 종검이 펼쳐짐과 동시에 은적색의 강기가 대지를 질주했다. 차림 의 은색의 검날이 바닥에 밀어 넣어짐과 동시에 바닥을 타고 은색으로 신비롭게 반짝임과 동시에 은은한 붉은기가 스며들어있는 강기의 기류가 그대로 뿜어져 나간 것이다. 파황혼원검, 궁극오의. 뇌강대지참雷剛大地斬! 은색과 적색의 전류와도 같은 기운이 서로 나뉘어졌다. 마치 적색으로 물든 하늘, 석양으로 물들어 버린듯한 안개와도 같은 강기 가운데로 퍼져나가는 은색의 차가운 기운. 붉은 기운 들이 터져나가며 푸르른 강기를 차단했고, 그 가운데로 날카로운 은색의 검강이 터져 나가 모든 것을 갈라버리는 것이다. 단 2초만에 32번의 베기를 통해 공포스러울 정도로 강력한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끓어오르 는 기력을 간신히 제어하며 차림은 피를 토해냈다. 비록 팔검위들만을 공격하기 위해 펼친 초식이 아니라, 사방을 향해 강기를 날려보낸 것이었기에 그도 무리한 진기 운용으로 피를 토한 것이다. 만약 팔검위들이 이것을 막아내면…… 순식간에 주변에서 싸우던 이들이 강기회오리에 휘말려, 적, 아군 가리지 않고 섞여서 바닥 에 널브러졌다. 생명들이 사멸하는 유기물 덩어리로 변해버리면서 피의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화려하게 사방을 적셨다. 피의 안개가 가라앉고 차림의 안색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 무렵 다시 위쪽에서 진천뢰와 파천무의 격돌이 이어졌다. 바로 차림의 안색이 절망으로 물든 이유는 팔검위 두명이 멀쩡 한 기색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을 합쳐 검강을 사용해 막아낸 듯 보였다. 그런데 문득 팔검위 두명이 휘청거렸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피화살이 뿜어져 나왔고, 검이 두동강나 떨어져 내렸다. "……!" 차림의 안색이 밝아졌다. 성공한 것이다. 방금의 뇌강대지참만으로도 100여명이 죽어나가버 렸기에, 그것도 자신들의 수하와 적들을 합친 숫자가 죽어나갔기에 내심 짜증과 더불어 약 간의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이것으로도 실패하면 승기를 잡는건 어렵기 때문인데…… 곧 피를 토해낸 팔검위중 사검위 가 쓰러져서 그대로 토막나버렸고, 곧 피로 젖은 그 조각들을 바라보던 차림은 숨결을 안정, 내상을 조금 다스리며 검극을 늘어뜨린다음 올려쳤다. 검강을 쓸수 없을 정도로 공력을 소모했기에 검풍劍風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팔검위의 발걸음이 약간 빨라졌다 싶자 어느새 자신의 검풍은 잘려나가 있었다. 천영팔명검, 지독한 쾌검과 정묘함을 동시에 얻은 가공할 검술이 펼쳐진 것이다. 더군다나 천운뢰명보까지 함께 펼쳐지자 지금도 차림과 거의 맞수를 할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지금은 거의 비슷한 상태. 그의 검이 두동강 나 있긴 했지만 그정도의 고수라면 아무거나 집어들어도 별일 없었다. 삼검위는 허공섭물로 근처의 정강 검을 집어들고 곧 천영팔명검의 검식과 구결을 읊조리며 천운뢰명보를 펼쳤다. 십여개로 갈라진 그의 몸이 곧 흐려짐과 동시에 바로 은색의 호선 세 개가 차림의 검과 격 돌했다. 차차창―! 맞물린 검, 그리고 곧바로 그들은 공력 대결로 들어갔다. 차림이 먼저 내공 싸움으로 들어가 려 든 것이다. 자신의 공력이 좀더 깊으리라고 생각하고 공격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맞아 떨어졌다. 그가 화경이고, 생생조화단이라는 영약을 먹었다지만 차림 역시 황궁의 사람이었고, 영약 맛 볼 기회는 꽤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화경에서 10년을 머무르며 수련했기에 자연 상대 보다 더 공력이 깊었다. 쿠쿠쿠쿠쿠――!!!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며 두 거물의 공력 대결에 따라 그대로 기의 요동이 일어나며 돌조각 과 모래조각들이 솟구쳐 올라갔다. 그 무렵, 영은 여전히 파천무를 일으켜 진천뢰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의 은영비가 번뜩일 때마다 일어나는 기폭풍에 상대들도 질린지 오래였다. 아무리 용수철 구조라 해도 그 탄력 을 일으키려면 자신들의 공력도 꽤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상당히 지쳐있었는데 상대는 지 치는 기색도 별로 없이 저 엄청난 무공을 펼쳐 진천뢰를 모조리 날려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상대가 신이 아닌 이상 한계는 있으리라 생각하고 여전히 진천뢰를 날려보내고는 있 었지만 점점 불길해 지는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영의 상태도 결코 좋다고는 볼수 없었다. 공력 소모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현재 남 은 공력은 기껏해야 3할 정도. 그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무형무를 써야하나? 큭, 처음부터 풍천무風天舞를 썼어야 했는데…… 이런.' 자신이 피한다면 아마 모두 전멸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은영비를 가볍게 세운다음 그것들이 날아오는 찰나! 목령기木靈氣를 일으켰다. 오행五行에서 목과 풍風은 일치하는 법이었고, 그 와 동시에 그는 풍천무를 펼쳤다. 매끄럽게 은색의 원이 그려짐과 동시에 뿜어져 나온 기류는 이전과는 달리 한없이 안온하고 포근했다. 그리고 주변을 지나가던 모든 바람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어 진천뢰들을 하나같이 부드러운 바람으로 감쌌다. 그리고 진천뢰들은 갑자기 멈추어짐과 동시에 관성덕분에 안쪽의 장약과 금속판이 충돌했 고, 순식간에 폭발이 일어난 가볍게 일으킨 풍천무를 소멸시키며 그 충격파를 터뜨렸다. 그 러나 주변의 산들바람들까지 모조리 끌어와서 나선형의 회오리를 일으키자 그 충격파는 회 오리에 휘말려 사라졌다. 아까보다 공력 소모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큭, 하지만 이 목령기를 조금이라도 잘못 운용했다가 용권풍이라도 일으켜 버리면 나로써 는 재미없는 일이지……' 그리고 영은 다시한번 은영비를 마치 지휘봉처럼 휘둘러 풍천무를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주 변을 떠도는 바람들은 그의 몸을 휘감음과 동시에 강렬한 기운을 생성해냈다. '정히 안되면…… 풍천무를 극성으로 일으켜서 천지굉멸풍天地轟滅風을 사용하면 된다.' 이렇게 다짐해보는 영이었지만, 전투의 끝은 점점 불투명해졌다. 036. 차림은 공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정말 필생의 공력을 모두 끌어올린 것이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상대의 공력을 마구 몰아쳤다. 만약 살아나간다면 여섯달은 아프다는 핑계로 집에 누워있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차림이었다. 그렇게 전력을 다해 공력을 뿜어내고, 통제해 나갔다. 상대는 그야말로 얼굴이 붉어져서 피 를 토해내려는 듯 보였다. 차림은 더욱더 공력을 뿜어올렸다. 만약 이런식으로 나가면 자신도 꽤 내상을 입고 1각은 더 있어야 판가름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차림에게는 행운이지만 상대에게는 불행이 찾아왔다. 일진광풍이 일어나 상대의 등을 후려친 것이다. 차림에게는 바람이 별로 오지 않아서 정신집중에는 별 흐트러 짐이 없었다. 그리고 차림은 눈을 빛내며 공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려 5년 정도의 선천진기까지 섞어나가 며 그대로 몰아부쳤고, 그대로 굉음이 울려나왔다. 까드드드득―― 퍼퍼펑―! 자신의 검이 그대로 상대의 정강 검을 베어버리며 소름끼치는 금속음과 불똥이 터져나왔고, 그와 동시에 공력이 폭발하는 소리와 더불어 상대는 뒤로 3여장은 튕겨져 나가 바닥에 굴렀 다. 차림은 피를 토해냈다. 꽤 큰 내상이었지만 두달 정도 휴식하고 한두달 운기를 하면 괜 찮을 듯 싶었다. 상대는 차림보다 상태가 나빴다. 핏줄이 여기저기 터져나와 피가 흥건했고, 내장이 크게 상 해 일어난다 해도 과연 무공을 할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단전도 상당히 상해있었던 것이 다. 그리고 손아귀가 찢어져 있었으며, 눈, 코, 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곧 그의 몸에서 생명이 떠나갔다. 차림은 그것을 바라보다가 그에게 다가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오. 시체를 훼손함을 용서해 주시오.' 오랜만의 호적수였기에 차림의 마음은 더더욱 진지했다. 그리고 그는 검을 내리 쳐서 사체 의 목을 베어냈다. 뼈와 살이 잘리는 느낌이 가시고 그 머리채를 잡아 들어올린 다음, 사자 후를 운용하여 크게 소리쳤다. "보아라!!" 그리고 싸움을 하던 이들이 차림의 손아귀에 쥐어진 것을 보고 크게 놀라는 것이 보였고, 황궁의 무리들은 곧 금방 초식을 펼쳐내 10여명을 더 도륙해버렸다. 찰나의 흐트러짐으로 일어난 결과였다. 그리고 진천뢰들이 멎었다. 지금까지 도합 500여 발은 날려보낸 것이다. 거의 여섯 대 마차 분의 진천뢰를 모두 소모한 것이다. 차림이 그렇게 피가 흘러내리는 목을 치켜들자 이번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격돌 또한 잠시 멈추어있었다. 영은 이를 갈았다. '저놈이……!' 부드득 하는 소리가 영의 입에서 터져나옴과 동시에 눈에 핏발이 섰다. 아직 효용가치가 있 는 녀석이 죽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방심으로 인해 생긴 결과였다. 영은 살기를 거의 극한까 지 뿜어냈다. 그와 동시에 침묵의 성향이 바뀌었다. 바로 공포라는 감정으로 인해 찾아온 침묵으로 바뀐 것이다. 차림마저 검을 쥔 손에 힘이 빠져나갈 정도의 살기였다. 차림은 본능적으로 알수 있었다. 바 로 저자가 은영천검인 것이다. 지금 자신의 행동이 대단히 중요한 시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갈등은 찰나였다. 그의 몸이 움직이자마자 장내에 소리가 돌아왔다. 차림은 왼손에 쥐어 들고있던 삼검위의 머리를 내팽겨 치고 나서 그대로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크아아아――!" 괴성과 함께 영의 몸을 베어나가는 차림의 모습이 모두의 시야에 다가들자, 공포심이 깨어 졌다. 곧 다시 무인들은 격돌하기 시작했다. 도검이 춤을 추고, 혈향이 난무하는 싸움은 점 차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차림의 휘둘러진 검이 은적색의 검기를 토해냈다. 검강을 쓸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의 공격도 대단히 무리해 사용한 검술이었다. 영은 비웃음을 날렸다. 그리고 왼손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풍천무가 실현되어 거대한 기 폭풍이 검기를 산산조각 내며 차림의 몸을 두드렸다. 퍼퍼펑―! 영의 생각으로는 얄팍하기 짝이없는 호신강기가 깨어져 나감과 동시에 피떡이 된 차림이 뒤 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영의 오른발이 부드럽게 춤사위라도 추는 듯 허공을 밟으며 회전 했다. 대자연大自然, 유검流劍. 천신무天神舞. 권각박투拳脚搏鬪. 은영비는 이미 거두어졌다. 양 손이 부드럽게 춤을 추듯 원을 그리자 거대한 기의 덩어리가 뿜어져 나가 뒤로 날아가는 차림을 덮쳤다. 퍼퍼퍼퍽――!! 그리고 기폭풍은…… 너무나도 손쉽게, 화경이라는 차림을 산산조각 내어버렸다. 팔다리와 몸통이 토막토막 나고, 몸의 체액과 피가 터져나와 사방을 적셨다. 그리고 금황위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천운팔명검 이 펼쳐지며 검기가 쏘아져 나오며 심리적으로 밀리기 시작한 금황위들 수십명을 순식간에 토막내어버렸다. 진천뢰가 날아오기도 전에 영은 쌍수를 휘둘렀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 사신의 미소가 맺 힘과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떤 것이 펼쳐졌다. 사이코키네시스Psychokinesis. 바로 염동력念動力이 사용된 것이다. 그의 정신력이 소모 되 자 무려 수백근의 질량을 지닌 역압 에너지 덩어리가 진천뢰를 사용하던 오십여명이 밀집된 장소를 중심으로 그대로 펼쳐졌고, 그 엄청난 역압 에너지는 너무나도 손쉽게 그들을 바닥 에 판박이 해버렸다. 뿌드득―― 우드득―― 비명조차 지를새 없이 머리가 짜개진다. 두 개골이 박살남과 동시에 뇌수와 뇌질이 튕겨나오고, 곧 그것마저 얄팍하게 눌려버린다. 그리고 이번에는 심장, 심장이 요동치다가 뇌가 죽자 조금 느려졌다. 그리고 그것마저 종잇 장처럼 변해버리며 피를 사장으로 뿜어냈다. 점차, 상반신에서 하반신으로 빠르게 짓눌려 바닥에 박혀버린 것이다. 그리고 1천분의 1 정 도로 얄팍하게 짓눌려 종잇장이 되어버린 시체들과 짓눌려 터진 진천뢰들 덕분에 그 근처는 모조리 박살나 버렸다. 휘몰아치는 충격파 덕분에 마차에 존재하던 진천뢰들이 연쇄폭발하며, 마차라는 밀폐된 장 소에서 터진 덕분에 그 위력이 더욱 증대되었고, 곧 도망가기 시작한 금황위들을 덮쳤다. 그 리고 자신들을 향해 쇄도해 오는 그 충격파는 영의 가벼운 정신 집중에 사그라들었다. 염력 으로 역장力場을 펼친 것이다. "후우……" 영의 살기가 사그라들었다. 천류세가에 돌아온 영은 분통을 터뜨렸다. 자신은 팔검위 둘과 절반의 수하를 잃어버린 것 이다. 다행히 운이나 자신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수하들이 너무 많이 죽었다. 운도 수하들을 꽤 잃었다. 다만 조금 위안되는 것은 진천뢰 마차 열대 분량과 더불어 그 발 사용 통―현재 복제중이다.―, 그리고 건곤권 정도를 회수하고 약간의 재물을 얻어낸 것이었 고, 그와 동시에 황궁을 눌러버렸다는 것이었다. 황제는 아마 분통을 터뜨릴 것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무모한 공격을 해오지는 못할 것이다. 상대는 반도 안되는 피해로 자신들을 한명조차 남기지 않고 확실히 전멸시켜 버렸 으니까 말이다. 이것으로 인해 무림맹과 황궁의 긴장은 한층 더 당겨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혈천교와 마교 역시 격돌을 잠시 멈추었고, 천류세가와 마교는 잠시간 의 정보교환과 동시에 어떠한 만남을 가진다. 이 이야기는 무림맹에 당연히 전해졌으나, 어 디에서 만날지, 언제 만날지 알수 없었다. 무림맹과 혈천교가 비밀리에 만남을 가진다는 이야기도 천류세가와 마교에 전해졌으나, 그 들 역시 달리 손을 쓸 방법을 찾지 못하였다. 늦은 여름이었다. 그러나 특이 기단이 잠시 성세함으로 인해 날씨가 상당히 습윤하면서도 약간 차갑게 변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더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녹음은 여전히 무성했 으나 한풀 꺾이고 있었고, 햇빛은 그 시린 빛을 줄일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듯 했다. 천소객잔. 꽤 큰 주루이고, 무역로의 길목에 위치해 많은 부를 얻어 현재도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그 리고 이런 곳에는 무림인들이 꽤 많으며, 그래서 조심해야 할 장소이기도 했다. 천소객잔의 점소이. 만도는 오늘도 입구 앞에서 노련하게 손님들을 자리에 안내하기도 하고 말재주를 부려 무림인들에게 돈을 좀 더 받거나 하는 식으로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었 다. 그가 알기로 자신이 아는 무림인들은 네 부류였다. 먼저 명문정파의 녀석들. 이 한 부류는 두 개로 나뉘는데, 경험있는 녀석들과 초짜였다. 후자가 더 상대하기도 쉬웠 고, 아부만 좀 더 하면 돈도 울궈내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좀더 신경써서 음식을 내오거나 자리를 주면 시비붙을 일은 없는 족속이었다. 소위 우아한(?) 족속들이라고 자처 하는 이들이었으니까. 두 번째는 마교나 사파의 사람들. 이들은 거의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비위를 잘만 맞추어주면 별 어려움은 없었고, 분 위기만 잘 파악하여 입을 싸게 놀리지 않으면 별로 상관없이 돈도 제대로 지불해 주는 녀석 들이었다. 세 번째는 돈을 뜯으러 오는 잡배들. 이 천소객잔은 어느 방파도 운영하지 않는 곳인지라 돕는 무림인들도 없었다. 그러나 적당 히 축적된 돈을 쥐어보내 주고, 나중에 강한 무림인들을 고용해서 보복해주면 별 어려움은 없는 부류였다. 거의다 3류였으니까. 그리고 네 번째…… 가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부류였다. 바로 도저히 무엇인지 알수 없는 자들. 그냥 보통 사람이면 좋을텐데…… 하여튼 이 경우에 는 미지수가 많았다. 바로 저기 방금 들어온 네명의 사내들중 한명이 그러했다. 명문정파로 보기에는 너무나 착 가라앉은 분위기와 피냄새를 풍기고, 그렇다고 사파쪽으로 보기에는 눈빛이 너무나 맑고 깊 었다. 그리고 이지적인 분위기와 가느다란 손, 그리고 새하얀 피부와 남색을 즐기는 변태들 이라면 손을 뻗쳐보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모습이었다. 만도도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으니까. 먼저 제대로 정리도 하지 않은 흑단의 머리카락, 짙고 깊은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늘어져서 찰랑거리고 있다. 빛을 반사하여 그 모습은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새하얗고 맑은 피 부. 도저히 남성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 피부는 혈관이라도 비칠정도였다. 그리고 이어서 붉디 붉은 입술, 선혈보다도 짙은 붉은색의 입술이 아담하게 자리잡은 미인이었다. 다만 남자라는게 아쉽다는 점이다. 키도 꽤 컸고, 몸이 매우 잘 짜여있어서 보통 학자 종류 의 인간은 아닌 듯 했다. 그리고 감히 마주볼수 없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청의인 두 명이 보이자 그것은 더욱 굳어졌다. 마치 주종관계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옆에 있는 소년은 더 이해하기 힘들었다. 입 가에 걸린 미소는 호감도, 적의도, 비웃음도 아닌 모호한 것이었고, 더군다나 눈빛은 차갑고 이글거리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었다. 특히 허리에 찬 패검이 보통의 것은 아니었고, 그것도 소년의 손에 딱 맞게 길이 들어있었다. 그 옆에 앉은 미인 만큼이나 아름다운 소년이었지만, 그 눈빛을 보는순간 그 순수한 감탄은 사라져버리고 만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들 넷을 바라보는 무림인들의 눈초리는 심상찮았다. 먼저 저 소년의 경우 눈빛의 강렬한 정기, 숨기려고 해도 알수 있을정도의 정기는 적어도 화경의 벽에 부딪 혔거나 화경일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저 앞에 앉은 두명은 몸이 탄탄하고, 고개를 숙여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검 강 정도는 어느정도 이해하는 고수라고 할수 있을 수준이었던 것이다. 단지, 무림인들이 보 기에 가장 수상한 이는 저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무림인인지, 단순한 문사인지…… 그러나, 그 고민은 흑의인 넷과 인자해 보이는 모습의, 그러나 가라앉은 눈빛을 감추려 들지 않는 노인이 걸어들어오자 모두 지워지고 말았다. いつの ひにか きっと この だいすきな ばしょに 어떤 날이라도, 너무나 좋아하는 이 장소에서…… みんなの えがおあふれさせたい 모두의 미소를 넘치게 하고싶어…… 037. 무림오천武林五天. 광협狂俠, 문열. 무림인들의 눈이 잠시 뭔가 잘못 본 것처럼 흐려졌다. 그리고 그들은 눈의 촛점을 맞추기 위해 상당히 고생했다. 분명히, 자신들이 알기로 저 노인네는 '그'다. 한참동안의 침묵이 어둡게 가라앉아 객잔을 잠재웠다. 그리고 그 깊게 가라앉은 침묵에 누 군가가 거친 파문을 던졌다. 작고 조용한, 끝이 흐려진 목소리였으나 모두는 그것을 듣고 순 식간에 반응했다. "철마……" "철마다!" 순식간에 객잔 내부는 긴장으로 젖어들었다. 그리고 살기殺氣가 자욱하게 뿜어져 나왔다. 참 고로, 철마鐵魔. 무정武定은…… 극마의 고수다. 화경에 이르지 못하면 한수조차 받아낼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혈기 때문인지, 많은 정파인들이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살기까지 뿜어내는 자들이 존재했다. 그런 그들을 노인은 싸늘한 시선으로 마주대했다. 뭐, 그렇다고 해도 그 정파인들은 감히 자신들의 무기를 뽑지 못하고 있었기에 철마는 그것들을 어느정도 봐줄 용의가 있었다. 백색과 회색이 섞여있는 머리카락, 그리고 회색의 장포를 입고 있었으며, 단단한 체격은 보 통 노인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게 했다. 그리고 노인이라고는 해도 머리카락과 수염 때문이었지, 자세히 뜯어보면 그 외모 자체는 50대 초반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왼손을 붙들고 있는 소공자는 일전의 마교의 소교주. 무진이었다. 어린 몸이었 으나 꽤 잘 짜여져 있었다. 그것이 영이 일전에 근골을 개조해버렸기에 그러했지만, 공력이 상당량 쌓여가고 있었으므로, 무진의 눈동자에는 깊고 맑은 기운이 가득했다. 마교의 심법이 아니라 그가 알려준 북명천지조화심법北冥天地造化心法을 수련하고 있기 때 문이었다. 미약한 청광靑光이 무진의 눈동자에 서려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그것은 상당한 수련을 거친 정파인들에게서나 나타나는 것이었으므로, 무진또한 철마와 함께 주의깊게 뜯 어보던 사람들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철마라면 극마의 고수이자 마교의 태상교주였다. 그런 이가 정기를 뿜어내는 소년과 함께 있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저 작고 어린 소년이 자신들을 능가하는 정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은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것인가? 철마는 잠시 객잔 내부를 훑어보다가 영을 발견했고, 그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영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천광대원 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저쪽에 가서 앉아있도록." 싸늘한 명령어. 그리고 그 와중에도 몇몇 이들은 그 옥음에 감탄하고 있었다. 다만 영의 눈 을 들여다보면 그 감정도 싹 사라져 버리지만. 그 눈은 '강자의 눈'이었기 때문이다. 싸늘하고 차가운, 가라앉았으면서도 깊고 맑은 그것. 그리고 감추어진 포악성…… "오랜만입니다. 철마 어르신." 철마가 다가오자 영은 일어서서 가볍게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고, 곧 그의 입에서 정중한 인 사가 흘러나왔다. 철마는 인사를 어찌 받아야 될지 잠시 고민되었다. 무공 서열로 치자면 철 마는 영의 한참 아래지만 나이나 무림의 서열로 따지자면 훨씬 위였던 것이다. "허허……" 곤란해하는 철마를 바라보던 영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리고 철마에게 가볍게 전음을 날려 앉으라는 말을 건네었고, 철마는 어쩔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구경하 던 이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철마가 저런 이들에게 무슨 볼일이 있어서……?' "그래, 최근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먼저 철마는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영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면서 말했다. "나쁘지는 않습니다. 최근 큰 피해를 입은 것을 빼면." "그런가……" 「어기전성御氣傳聲으로 대화하세. 틈틈히 말을 집어넣는 것을 잊지 말고.」 철마가 말을 하면서 동시에 어기전성을 사용해 운과 영에게 말을 날리자 영은 빙그레 웃으 면서 어기전성을 사용했다. 과연 무림의 일대 종사다운 내공 운용을 보이는 철마에게 내심 감탄했던 것이다. "그게 다 그자들이 올가미를 씌운 탓이지요." 「무림맹에서 황궁에 올가미를 씌웠고, 황궁과 협작 해서 습격한 모양입니다. 그 덕분에 금 황위 1천을 섬멸殲滅했지요. 몇몇 정파녀석들이 섞여있더군요. 꽤 하는 녀석들이었습니다. 적전제자들을 보낸 모양이더군요.」 역시 영의 절묘한 운용에 감탄하며 철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허허. 그런가……" 「자리를 옮기지 않겠나?」 철마가 그렇게 어기전성과 말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과 영이 역시 철마와 같이 하는 것을 바 라보는 운의 눈동자에 감탄이 서렸다. 확실히 자신은 미숙한 점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통감 케 하는 이들이 둘이나 있었다. 영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 "식사 주문하시겠습니까? 식사하고 이야기 나누도록 하지요." 「그 전에 처리할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영이 그렇게 말하고 나서 객잔의 입구로 시선을 던졌고, 그리고 철마와 운 역시 그곳을 향 해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많은 무림인들이 입구를 바라보았다. 빛이 비쳐들어오는 창가로 새카만 그림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드러난 순간 몇몇 무림인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챘다. 그러나 점소이 만도는 그가 누군지도 모르고 다가갔다.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누추한 차림이었다. 상당히 더럽혀진 흑발을 풀어헤치고 있었고, 허리에는 낡은듯한 한자루 검을 차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얼굴로 인해 얼굴은 볼수 없었다. 그러나 단 단한 체격과 더불어 꽤나 큰 키. 그리고 감추어지긴 했지만 무림인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 에게는 노골적이기 짝이 없는 압도적인 기세는 무림인들로 하여금 긴장이란 것을 하게 만들 었다. 남루한 옷 때문에 만도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도 모른채. 그 는 가볍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카락 사이로 감추어진 광기狂氣와 살기殺氣가 은은하게 배인 눈. 만도는 생각했다. '무림의 밥벌레들인 건 확실한데. 어쩐지 위험해 보이는 것 같단 말야?' "저, 죄송합니다. 손님. 자리가 없는데요……" "큭. 없으면 만들어라." 텁텁한 목소리, 스산한 살기가 배여들어있었으나 무림인들이 아니면 알아채기 힘들만큼 감 추어져 있는 살기였다. "혹시…… 돈은 있으신지요?" 노골적으로 묻는 만도, 상대는 잠시 기분이 상한 듯 그를 노려보았고, 만도는 번개맞은 듯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 사내의 오른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은색의 선이 뿜어졌 다. 문열은 오늘따라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숨어지내다가 무림인들과 충돌해서 우연 히 사용한 파마천멸장 때문에 꽤 고생한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얻으려던 물건을 어떤 녀석이 먼저 훔쳐버렸던 것이다. 자신이 그래도 190년전 맨 처음 파마천멸장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냈었다. 사실 파마천멸장 은 세상에 몇번 나오긴 했으나 그것을 본 존재들은 모조리 죽어버렸기에 그래도 자신이 펼 친게 첫 시전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였다. 허리에 걸린 낡은 패검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무림인들을 제외한 행인들 은 자신의 행색을 보며 노골적으로 인상을 찡그렸고, 그때마다 문열은 광기에 휩쓸려 주변 사물을 모조리 베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참아야 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정파의 기공을 익혔다. 그러나 파마천멸장이란 것은 너무나 매력적인 무 공이었고, 자신은 어느날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익히고 있었다. 다만 조금만 수련하면 극성 이 될 수 있었는데, 자신과 시비를 가리려던 화산파의 적전제자를 단격에 때려눕히며 광기 에 정신이 돌아버렸고, 순식간에 20여명의 화산제자들을 저승으로 보내버림과 동시에 그에 게는 화산파의 공적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광협이라는 명호가 붙었다. 자신의 절기는 사실 검劍이다. 이것도 현경玄境에 오르고 나서 딱히 절기라고 할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로써는 검을 맨 처음 수련과제로 택했다. 그리고 그것을 미친 듯이 휘둘러 오다 가 10년전 현경에 올랐고, 또 미친 듯이 수련을 시작하여 마침내 생사경의 벽을 바라볼수 있는 경지에는 이르렀다고 자신할수 있었다. 뭐, 요즘 소문에 의하면 벌써 현경의 고수가 셋이나 출현했다고 했고, 하나는 죽었다고 한 다. 무림오천중 하나라는 뇌검천명雷劍天鳴. 뇌검자雷劍者. 이름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고, 문열은 모르는 사람쪽에 속했다. 뇌검자에게 찾아가서 비무첩이라도 던져주고 싶었었는데, 은영천검銀影天劍이라는 새로운 고수가 나타나 먼저 제거해 버린게 아쉬웠다. 그리고 자신은 은영천검이 이 근방에서 움직임을 보였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이렇게 돌아다 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꽤 상당한 정기가 몰려있는 장소를 향해 걸음을 떼었고, 꽤 큰 객잔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소객잔…… 그리고 그는 문을 열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꽂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무시했다. 그런데 늙은데다가 재수없게 생긴 점소이가 다가와 노골적으로 돈 있냐 없냐를 묻는게 아닌가? 그와 동시에 괘씸함을 느낀 문열은 오른손을 검손잡이에 스쳤다. 그와 동시에 그의 오른손 바닥에서 물리에너지가 그대로 검 손잡이와 강렬하게 마찰함과 동시에 검을 부드럽게 뽑히 게 했다. 듣도 모도 못한 발검술拔劍術. 거기다가 검 손잡이를 쥐어 빼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스쳐 그 위력으로 뽑는 발검. 카라라라랑―― 순식간에 검집의 테를 긁으며 빠져나온 검이 매섭게 허공을 그었다. 낡은 패검이었지만 은 색의 검신은 맑고 깨끗했다. 그와 동시에 검에서 기염氣焰이 뿜어졌다. 그와 동시에 피안개 가 터져나왔다. 은색의 호선이 그려지면서 그것이 사람의 육신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뼈마저 베어버린 검 은 피를 머금고 튀어올라왔다. 그리고 혈무血霧가 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뜨거운 피를 문열은 그대로 맞았다. 찝찝하긴 했지만 그의 반쯤 미쳐버린 정신이 그 찝찝함을 감당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괜히 광협이라 불리겠는가? 그는 일부러 이런 효과를 노렸다. 그저 대각선으로 갈라버렸다면 시체가 널브러져서 피를 그냥 주르륵 흘렸겠지만, 그는 일부러 공기와 함께 건방진 점소이를 베어버린 것이었다. 자신의 정강제 검은 왼쪽 골반 아래에서 오른쪽 어깨 쇄골鎖骨까지 쾌속하게 그대로 그어 올려버렸고, 뼈나 내장에 전혀 걸리지 않고 가볍게 베어버렸다. 날은 전혀 상하지 않았다. 피를 머금은 것 빼면 깨끗했다. 뽑혀나왔던 패검이 휙 하고 원을 그리며 그 검날을 문열에게로 향했으나 그 원은 그대로 멈 추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검은 다시 검집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는 손도 대지 않았다. 바로 신기神技에 다다른 어기동검술御氣動劍術이었다. 만약 이기어검이었다면 푸르르게 이 글거리는 바닷빛의 기운이 검에 맺혔을 것이고, 어기충검술이었다면 검신의 가운데를 중심 으로 하여 물이 밀려나듯 반투명한 푸르른 기운이 일렁였을 테지만. 방금의 그것은 단지 어 기동검술일 뿐이었다. 그리고 객잔 내부의 여성들은 인상을 찡그리거나 시선을 돌리며 구역질이 올라오는 듯 숨을 가다듬었으며, 무림인들마저도 인상을 찡그렸다. 흘러나온 내장과 피가 바닥을 적시는 가운 데 무림인이 아닌 이들은 몸을 사렸다. 영은 눈살을 가볍게 찡그렸다. '역시, 광협인가?' 운 역시 그의 잔혹한 손속에, 별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기분이 조금 나빠옴을 느꼈다. 천광 대원들은 그 검술에 눈에 이채를 띠고 감탄하며 바라볼 뿐이었지만 말이다. 무진의 눈에 순 간 광채가 서렸다 사라졌지만 그것을 본 사람은 영 뿐이었다. ひろい あおぞらに りょうてを ひろげ…… 넓고 푸른 하늘을 양손으로 감싸…… せかいじゅを すった…… 온 세상을 깊이 들이마실거야…… 038. 좌중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문열의 시선이 문득 철마에게 가서 멎었다. 그리고 문열 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그의 왼손이 들어올려졌고, 곧 문열이 공력功力을 끌 어올림과 더불어 불그스름한 안개와도 같은, 무형無形임과 동시에 유형有形인 기운이 뿜어 져 나왔고, 곧 그것이 한데 뭉쳐서 반투명한, 단단하고 날카로운 강기剛氣를 형성했다. 그것을 바라보던 철마는 그를 마주 노려보고 나서 역시 문열과 같이 왼손을 들어올려 공력 을 끌어올렸고, 역시 문열과 같은 그 안개와도 같은 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강기의 형세 를 갖추었다. 파마천멸장破魔天滅掌! 그 무공이 운용된 것이다. 두명의 경락을 거쳐 장심으로 흘러나온 핏빛의 강기는 곧 음울함에서 환한, 선명한 붉은색 을 뿜어내기 시작하였고, 곧 무림인들이 아닌 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대피했고, 무림인들은 몸을 뒤로 물렸고, 한가락 하는 자들은 몸에 호신강기護身剛氣를 형성했다. 충격파 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할것이 틀림 없었기에…… "네놈의 이름은 뭐지?" 겉 보기로는 철마가 훨씬 나이들어 보였으나, 실제로는 광협狂俠, 문열이 더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철마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본인은 무정이오." "큭. 철마인가? 잘되었군, 최근 몸이 근질근질 했었는데……"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철마는 긴장으로 근육을 활성화 시켰고, 문열의 왼손이 원을 그렸 다. 둥근 원을 그리고 지나가는 강기는 원을 형성했고, 그 원이 생성됨과 동시에 문열은 장 을 뻗었다. 그리고 핏빛의 강기가 뇌전雷電과도 같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뻗어나갔고, 무림인들은 침 을 삼켰다. 그리고 철마의 왼손은 뇌전과 부딪혔다. 강기와 강기의 격돌. 그것은 한바탕 굉 음과 더불어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콰르르릉――! 일어난 충격파는 객잔 내를 뒤집어 버리며, 건물마저 진동시켰고, 곧 천장에서 미미한 먼지 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철마는 경락의 가벼운 손상을 숨을 쉬어 사라지게 만들며 터져나올 뻔한 피를 억눌렀다. 그리고 감탄할수 밖에 없었다. 문열은 또한 놀라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이 3성의 힘을 끌어올려 사용한 파마천멸장이었는 데…… 철마는 8성의 힘으로 그것을 막아낸 것이다. 만약 극성이었다면 충격없이 되받아 쳤 겠지만 말이다. "그럼 시작해 볼까?" 그리고 문열의 몸이 움직였다. 순식간에 허공신보虛空身步를 밟아나가며 보이지도 않는 속 도로 몸을 뽑아올린 그의 쌍수가 뿜어졌다. 그리고 붉은 강기가 철마의 양 손에서 뿜어져 강력한 강막剛幕을 형성했고, 반투명한 강기의 막에 짙은 강기의 덩어리가 부딪히면서 다시 한번 굉음이 터져나왔다. 허공신보. 소림의 비전 보법이었다. 문열이 어떻게 이것을 사용하고 있을까? 그것은 아주 우 연한 일에서 파생되었다. 그는 우연히 길을 가다가 만난, 술을 마시고 머리카락을 기른다는, 소림에서도 괴짜로 소문난 공공空空 대사와 한 번의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공공대사는 남루한 거지차림이라 어찌 보면 개방의 인물로도 오해가 될 정도였지만,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정기와 깨달음의 증거라던지, 가볍지 않은 몸놀림은 소림에서도 감히 그에게 뭐라고 할수 없게 만드는 것중 하나였다. 뭐, 공공 대사는 전혀 중답지 않게 무공에 집착하는데다가 강하기만 하다면 애나 어른이나 가리지 않고 덤벼서 한수 맞대지 않으면 배기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 당시에 공공 대사는 화경의 고수였다. 다만 거의 현경에 도달한데다가 지금 현경의 벽을 뚫고 있어서 그가 두명 이라면 문열과도 동수를 이룰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공공 대사는 광협을 바로 알아보고는 덤벼들어 소림의 관음불면장에서 시작해 금강 지, 달마삼검까지 자유자재로 펼치면서 격돌했고, 광협은 싸우면서 내심 감탄했다. 그런데 공공 대사는 거기서 한가지 제의를 하는데. 자신이 펼친 최고의 공격을 광협이 6성의 힘만 쓰고 받아낸다면 어떤 요구라도 들어주겠다 는 것이었다. 여기서 광협은 내심 욕심이 일었다. 자신이 유일하게 부족한 것이 바로 보법이 었다. 신법이야 무서울 정도로 빨랐지만 정묘함이란건 존재치 않았다. 그가 원한건 오직 쾌 快의 신법이었기에…… 그리고 한계에 부딪히자 보법 하나를 얻어보길 바랬고, 그래서 그 제의를 승낙했다. 그리고 공공 대사는 모든 공력을 끌어올려 파마멸혼장과 반야장을 왼손과 오른손으로 각기 뿜어냈고, 문열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그것을 파마천멸장과 어검술御劍術로 받아냈다. 그리 고 나서 그에게 배운 것이 허공신보였다. 마치 구름이 허공을 유유히 누비는듯한, 텅 빈 듯 하면서도 빠르고 부드러운 신법이었다. 공 수전환과 급회피에 아주 효용이 좋은 그러한 신법이었다. 이형환위의 구결 역시 포함하여, 최대 12개의 신형을 형성할수도 있었다. 그 정묘함과 화려함은 화경에 이르지 않은 고수라 면 눈도 못따라갈 정도의 것이었고, 무림의 2류 무사 정도라면 신법만으로도 질리게 할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이 허공신보을 펼치자 순식간에 문열의 신형은 열 두 개로 늘어났고, 그 열 두 개의 신형은 동시에 쌍장을 쳐냈다. 그리고 섬전과도 같은 날카로운 강기가 스물 네가닥 뿜어져 나갔다. 철마는 그것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허공신보! 소림의 것이잖은가? 으음…… 저중 두 개만 실초인데…… 대체 나조차도 알수 없을 정도라니!' 철마의 몸을 24개 방위로 휩쌓고 쳐들어오는 강기의 가닥들은 철마로 하여금 어느쪽으로 몸 을 날려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점점 강기는 무서운 속도로 그 범위를 좁혀왔다. 그때 혼란스러워 하는 철마의 귓가로 파고드는 음파가 존재했다. 「왼쪽! 앞으로 뛰면서 오른쪽으로 허리를 뒤틀며 파마천멸장의 파황섬破荒閃을!」 어기전성으로 전달된 영의 목소리였다. 그것을 듣자마자 철마는 모든 힘을 다해 공력을 끌어올리며 앞으로 뛰었고, 별 생각없이 오 른쪽으로 허리를 뒤틀며 파황섬을 뻗었다. 이전과는 다른, 금빛이 1할 정도 섞인 붉은 강기 가 그의 양손에서 토해져 나가 한줄기의 대하와 같은 기세로 무언가를 때렸다. 쿠콰콰콰콰……!! '아니? 어째서 정면으로 뛴다음 왼쪽도 아닌 오른쪽으로 장을 쳤는데……' 철마는 잠시 멍해졌다. 그러나 곧 광협이 입에서 피를 가늘게 흘리며 물러서자 살기를 뿌리 며 이번에는 파마천멸장의 파황풍破荒風을 펼쳤다. 그리고 강기가 일어나며 그 회오리가 매 섭게 토해져 나갔고, 문열은 반쯤 무방비에서 맞은 경락을 간신히 회복시키면서 손을 움직 였다. 이미 파마천멸장이 아닌, 이글거리는 바닷빛의 기운이 일어나 철마가 뿜어낸 강기의 회오리 를 베어버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발검拔劍. 직검단천直劍斷天으로 검을 휘두른 것이다. 차아아아악――!! 거대하게 밀려오는, 해일과도 같았던 강기의 회오리이자 파도를 그대로 베어버리는 검은 일 대 장관을 형성하며 이글거리는 기운 주변으로 역시 같은 강기의 회오리를 만들어내 철마의 그것을 밀어내며 손쉽게 그가 뿜어낸 기운을 뿌리마저 베어버렸다. "……어검술御劍術!" 짤막하게 경탄하는 철마를 노려보며 광협은 입술을 깨물었다. "큭…… 제법이군. 나로 하여금 싸우는 도중에 검을 뽑게 만든 자는 이제까지 공공이라는 땡중 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제약이 걸렸거늘. 놀라워, 어떻게 안거지?" 여기서 철마는 거짓말을 구사했다. "그저 느낌이었을 뿐…… 아니었다면 본인은 이미 그대의 매서운 장력에 맞아서 죽었을 거 요." 그런 철마의 말에 광협은 큭 하는 광소를 터뜨린다음 음산한 살기와 광기를 가득 뿜어냈다. 현경이 아니라 극마나 탈마와 같은 모습이었다. 눈에는 핏빛의 광기와 살기가 섞여 뿜어져 나왔고, 그 안광을 받은 철마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큭…… 이제부터 제대로 상대해주지." 그의 말에 철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쌍수에 은은한 수강을 일으키면서 왼손을 지심地心으로, 오른손을 천심天心으로 솟구쳤다. 하지만 장심만이 향했을 뿐, 빈틈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철마의 안광眼光은 중심中心. 천지심天地心이자 인심人心으로 문열을 노렸다. 그러자 문열은 제법이라는 듯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큭, 완전히 틀에 박혔군."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결코 칭찬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철마를 바라보다가 이 상한 기수식을 취했다. 이글거리는 검은 철마를, 왼손의 은은한 수강은 명치 앞에, 그리고 안광은 하늘로, 왼쪽 다 리를 가볍게 끌어올려 안쪽으로, 오른쪽 다리는 약간 허술하게. 이 미친듯한 자세를 바라보 던 철마는 감히 움직이려는 시도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광협은 움직였다. 오른쪽 다리가 허술하게 움직이다가 문득 땅을 박찼고, 왼쪽 다리가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퉁겨지며 각술脚術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신월新月 형태의 강기가 그의 다리에서부터 흘러 나와 푸르른 초승달을 그렸다. 그리고 철마의 왼손과 오른손의 위치가 뒤바뀌며 붉은 강기가 울어젖혔다. 그리고 나선형의 강기가 형성됨과 동시에 초승달을 짜부라뜨렸다. 구우우웅― 그리고 괴이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나 문열은 조금도 거리낌 없이 그대로 쏘아져 들어 가며 검과 왼손을 동시에 움직였다. 검은 그대로 찌른다. 그런데 왼손이 난데없이 검 손잡이 의 뒤축을 후려치는게 아닌가? 그리고 문열은 검을 놓았다. 그와 동시에 어검술이 펼쳐친채 정강제 검은 그대로 쏘아져 들 어가 붉은 소용돌이의 중앙을 꿰뚫었다. 그리고 철마는 자신도 모르게 그 소용돌이를 뒤틀 었다. 밀려오는 압력이 너무나 거세었던 것이다. 역시 그의 의도대로 검은 강기의 소용돌이와 함께 그 기세를 잃고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철마는 매섭게 베어오는, 보지도 않고 팔을 휘두르는 문열의 수도手刀에 어쩔수 없이 위로 솟구쳤고, 그와 동시에 그의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문열의 입에 걸려있는 소름끼치는 미소. 비웃음과 비슷한 성향의 그것을 보며 몸에 오한이 돋음을 느꼈다. '죽었구나!' 그리고 검은 튕겨져 나가다가 문열의 손에 잡혔는지, 자신의 목과의 거리를 맹렬히 줄여오 고 있었다. 그리고 철마의 눈이 감겼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들려오는 소리는 기와 기가 충돌 하는 소리였다. 퍼퍼펑―!! 그리고 철마는 눈을 뜸과 동시에 자신의 앞에 강기의 막을 형성한후 그것을 후려 치며 얻어 진 반동으로 뒤로 몸을 튕기면서 사태를 관찰했다. 어검술 두 개가 맞물려 있었다. 영은 이미 둘이 충돌해 생긴 틈으로 파고들어 은영비銀影匕에 어검술을 운용運用하여 광협 의 검을 막아낸 것이다. 충격파가 생겨나 주변을 휩쓰는 가운데 영과 문열은 살기어린 눈으 로 서로를 마주대했다. 맞물린 두자루 검이 파르르 떨렸다. 그와 동시에 두명은 몸을 뒤로 물려 검을 떼어냈다. 사 그라 드는 어검술의 광택. 그리고 문열은 그에게 질문했다. "넌 누구지?" "본인의 이름은 밝힐수 없습니다. 다만, 천류세가의 인물이자 가주의 심복이라고는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큭. 은영천검銀影天劍인가?" "본인이 지은 명호는 아니오. 문 선배." 곧 문열은 즐겁다는 듯 입가에 희열어린 광소를 빼어물면서 그를 희번득 거리는 눈으로 주 시했다. 그리고 검극을 들어올려 그를 향해 겨냥하면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나설건가? 큭큭큭…… 아주 잘됐어. 최근 상대를 찾지 못해서 별로 즐겁지 못했지. 그 러고보니, 아까 저 철마녀석이 내 일격을 피하고 나를 공격한건 네 농간인가?" 영은 싸늘한 미소를 입가에 만들어냈고, 곧 은영비를 그에게 겨누면서 말했다. "그게 별 상관 있습니까?" 영의 어투는 존대어였다. 일단 그는 선배였으니까. 그러나 그 어투에는 전혀 상대를 존중해 주는 듯한 느낌은 존재하지 않았고, 싸늘함과 가라앉은 감정. 그리고 날카로움과 더불어 살 기까지 숨겨져 있었다. "아주 맘에 들어…… 크큭……" 문열은 검을 늘어뜨린채 왼손으로 이마를 짚고 광소를 흘렸고, 그것을 보던 운은 눈살을 찌 푸렸다. '제정신인가? 무방비잖아?' 곧 문열은 광소를 지우면서, 검을 다시 영을 향해 겨누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광기는 한점도 존재치 않는, 긴장감 서린, 그러나 살기와 즐거움이 뒤섞인 미소를 입가에 만들어 냈 다. 그리고 웃었다. "후후후…… 오랜만에 긴장해보는데?" 어투마저 확연히 바뀌어 있었다. 그는 곧 무림인의, 자신만큼이나, 혹은 자신보다 강한 상대 를 만났을 때 느끼는 호승심을 오랜만에 느끼면서, 맨 처음 검을 잡았을 때 느낀 희열을 떠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영도 입가에 걸린 차가운 미소를 지우면서, 희열어린 미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둘의 날카로운 눈빛은 서로를 탐색했다. 맨 처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문열이었다. たち あがれよ ときを きざめよ 일어서서 시간을 마음에 새겨야지…… みらいは その てで ひきよせろ 먼 미래는 그 손으로 끌어당기는 거야…… 039. 문열의 신형이 침묵을 갈랐다. 가라앉았던 침묵 사이로 흐르는 한줄기 섬전閃電. 그리고 두 개의 바닷빛의 불꽃이 마주친 순간, 폭발음과 더불어 객잔 내를 휩쓰는 강력한 기폭풍이 생겨났다. 쿠르르르르…… 낮게 약동하는 두자루의 검, 한자루는 길고 한자루는 짧았으나 그 힘은 비등했다. 그러나 영 은 전혀 타격받지 않은 모습인데 비해 문열은 이를 꽉 깨물면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두 현 경의 고수가 격돌하여 생긴 충격파 만으로도 운과 철마, 그리고 철마의 보호 아래 있는 무 진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호신강기에 와닿는 힘으로 경락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으며, 이미 기절해 널브러져 있는 범인凡人들은 몇몇 무림인들이 합심하여 바깥으로 끌어 냈다. 그리고 이미 대피한 객잔의 주인은 안절부절 못하며 애절함이 담긴 시선으로 객잔을 바라보 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굉음이 들려오며 객잔이 진동을 할 때마다 그의 안색은 점점 헬 쓱해져갔다. 안쪽의 상황은 점점 격렬해 지고 있었다. 뇌력을 머금은 것처럼 보이는 검이 요동을 쳤다. 오른손의 검이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며 서로의 절학을 드러내고 있을 때, 그들의 왼손은 소 름끼칠 정도로 푸른 강기를 휘감은채 부딪히고 있었다. 영의 오른손목이 확 꺾어지며 순간 위로 솟구치던 검세가 아래를 휩쓸며 문열을 압박해 갈 때 문열의 왼손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순간 흐려지는 듯 했다. 그리고 꿈틀거리는 강기의 용 이 피어올라 영의 오른쪽 공세를 차단함과 동시에 폭발했다. 콰르르르릉……! 다시 굉음이 퍼져나왔다. 그러나 영과 문열 모두 그것을 무시했다. 문열은 남은 오른손으로 일격에 영을 양단해 버릴듯한 기세로 검을 떨쳐냈다. 그와 동시에 어느새 영의 왼손에 휘감 긴 청색의 강기는 어검술이 시전되고 있는 문열의 검면을 후려쳐 그 궤도를 바꾸면서 오행 대천공五行大天功. 금황탄신金皇彈身의 수법을 펼쳐 몸에 금색의 기류를 휘감은채 뒤로 튕 겨져 나가며 그 신법에 실린 금황령의 기운을 오른손의 검에 실어 휘둘렀다. 순간 어검술의 깊고 맑은 바닷빛의 불꽃은 금빛이 섞여들며 환한 빛을 내뿜었고, 곧 주변의 사물들이 중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열 역시 바짝 긴장하며 모든 힘을 끌어올려 검에 실었다. 왼손의 강기마저 거두면서. 인정하기 분했지만 은영천검은 자신보다 훨씬 고수였던 것이다. 쿠구구구구……! 나무조각부터 시작해서 온갖 기물들이 그들의 주변에서 회오리 치는 강기에 의해 산산히 분 해되 가루가 되면서 중력을 이탈, 주변으로 느릿하게 떠올라 허공중에 멈추었다. 그리고 둘 의 몸에서 뻗어나오는 강렬한 기운이 섞여들며 뜨거운 열양의 구를 형성해 주변의 인물들이 개입하는 것을 차단했다. 용호상박龍虎相搏! 이 말 외에는 어떤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둘은 살기殺氣도, 예기銳氣도 뿜어내지 않고 있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과 부드러운 몸놀림 은 도저히 이 위력을 파생시킨다고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였다. 뜨거운 기류를 바라보는 철 마와 운, 무진. 그리고 무림인들은 경악하고 있었다. "저 둘은 사람이기를 거부하는군……!" 철마의 입에서 신음과도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과 상대할때는 아마 4성에서 5성 정도의 힘만 쓴 것 같았다. 12성 공력을 모두 뿜어내자 상상도 못할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 다. 특히 영은 순식간에 저정도의 힘을 뿜어냈는데. 아마, 지금도 3성에서 4성 정도의 힘만 끌어내고 있는 듯, 여유롭게 짝이 없는 표정이었다. '지금 형성되고 있는 저 기폭풍은 평형이 깨어지면 어느 한쪽에 몰려들 것이다. 그럼 살아 남을 가능성이 없어지는데……' 금색의 불꽃과 바닷빛의 불꽃이 반반 섞여서 휘몰아 치고 있는 영의 은영비의 끝에서 갑자 기 검날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웬만한 패검 길이보다 손가락 두마디 만큼 길어졌 고, 너비도 두마디는 더 넓었다. "그, 금황의 어검강御劍剛…… 그것도 심검心劍 형태의……" 그것을 보며 철마는 눈을 부릅뜨며 경악성을 내뱉었고, 철마의 이 말에 실린 감정은 이곳에 있는 모든 무림인들의 감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객잔의 기둥이 불안하게 삐꺽거렸다. 그리고 철마는 무진과 운에게 눈짓을 했고, 곧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무림인들 역시 최대한 빠르게 몸을 놀려 바깥으로 빠져 나왔고, 곧 객잔이 무너지는 것을 볼수 있었다. 그리고 충돌이 일어났다. '……큭. 어검강. 그것도 심검의……' 그것을 바라보며 문열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강기를 어검술에 섞어 어검강 을 만들었지만 심검 형태의 어검강을 만드는건 자신 없었다. 심검을 실현할 수는 있으나 심 형어검강心形御劍剛을 펼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문열은 곧 자신의 기세를 갈무리, 바깥으로 뿜어내는 기세를 모두 안쪽으로 갈무리 했다. 그리고 그것을 경락 내로 흘려보내다가 검으로 보냈다.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짓이 었다. 그 거대한 기세를 모두 인간의 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자신의 기와 기세는 차이가 있다. 기 만을 회수한다면 모를까, 이미 자연력과 뒤섞인 기세를 모두 끌어들인 것이다. 말하자면, 공격 전의 기운이 아니라 뻗어오는 공격 에너지를 모두 흡수했다고 할수 있는 짓이었다. 문열은 맹렬히 밀려오는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 나 고통은 역시 만만 찮았다. 일단 경락의 타격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에 영의 무형지기와 열류가 그대로 그의 몸에 와 닿아 충격을 파생시키자 경락의 압력이 더욱더 거세어졌다. 외부의 타격은 그가 펼친 호신강기에 의해 적당량 차단되었으나, 그의 호신강기와 열류와 무형지기는 부딪히면서 강렬하게 방전했다. 그것으로 인해 더욱더 충격은 가세되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그의 기세가 모두 공력으로 화해 검에 실리며 경락은 이전보다 세배 이 상의 압력을 받으며 뒤틀리려고 했고, 그는 그것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만큼 부담은 더 가중 되고 있는 것이었다. 검의 기세가 이전보다 다섯배 정도는 강해지자 영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워올리더니 지금 그가 뿜어내는 만큼의 기세를 심형어검강에 그대로 실었다. 그와 동시에 문열이 사용하고 있는 어검강에 필적…… 아니,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강렬한 기운이 은영비를 타고 넘실거리며 문열을 압박했다. '이런…… 저 은영천검이라는 자는…… 지금도 전력이 아니지 않은가!' 영은 만족한듯한 미소를 피워올리면서 그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리고 문열은 더 이상 지 체할수 없다고 느끼자 마자 사력을 다해 신법을 운용, 하늘을 갈라버릴듯한 기세로 공기를 밀어내며 검을 베어냈다. 바닷빛과 은은한 푸른색이 5할씩 섞여든, 이제는 태양광과 같은 무서운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검이 빛무리 사이로 뿜어졌다. 그리고 그 기세는 무언가와 부딪혔고, 곧 그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뒤로 튕겨졌다. 쿠르르르르――!!! 그가 사용한 검술과 영의 검술이 부딪힘으로 인해 강력한 파장이 형성되었고, 그 파장은 주 변의 자연력이 뭉친 기혈점氣穴點을 격발시켰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기폭풍이 객잔을 뚫고 날아올랐다. 섞여든 강력한 기세는 은색으로 화하며 그 환한 광채를 터뜨렸고, 햇빛이 비침에도 불구하 고 햇빛을 억누르며 은색의 기운은 거대한 기둥을 형성했다. 불규칙한 표면의 은색 기둥은 그대로 하늘을 꿰뚫었다. 끔찍한 충격파가 거리를 휩쓸며 집들을 수십채 가루로 만들어버렸고, 사상자 역시 상당히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무림인들은 간신히 신법과 호신강기에 모든 힘을 실으며 사력을 다해 그 주변에서 벗어났다. 생겨난 충격파는 공기의 장벽. 소닉 배리어를 밀어내며 강력하기 짝이 없는 음속충격파를 형성했고, 그것은 무림인들의 호신강기라 하더라도, 그것을 베어버리며 그 호신강기의 주인 마저 염라대왕과 알현시킬수 있을 수준이었기에, 그들은 급히 장애물 사이로 숨으면서 동시 에 호신강기를 극도로 일으켰다. 뿜어져 나온 공기의 검날은 사방을 질주하며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고 베어버렸다. 콰콰콰콰콰――!!! "크아……!" 비명조차 완성시키지 못하며 검날에 두동강 나버리는 사람들, 그 공기의 압력이 시체에서 피를 뽑아내고, 내장을 뽑아내며 사방을 질주했고, 거리는 순식간에 초열지옥超熱地獄을 넘 어 무간지옥無間地獄, 곧 아비지옥阿鼻地獄의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참상을 그대로 재현했다. 지옥이 세상에 강림한 듯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공기의 압력이 지나감과 더불어서 거대한 흙먼지가 뭉게뭉게 솟구쳐 사방을 뒤덮었 다. 그리고 피의 안개 역시 흙먼지에 뒤섞이며 흙먼지를 붉게 물들였고, 그것은 한편으로 괴 기함을 연출했다. 무진과 철마, 운은 피냄새와 흙먼지가 뒤섞여 구역질 날 정도였으나 곧 공력을 끌어올려 그 것에서 형성된 기류로 흙먼지를 멀리 밀어냈고, 흙먼지들은 쉽사리 밀려나가면서 그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다. 입에서 피를 흘리고는 있는 문열이 보였다. 그러나 외상은 없었다. 내상이 꽤 크긴 했지만 기혈을 가다듬으며 숨을 고르게 하자 천천히 기의 들끓음이 가라앉았고, 운기요상술을 암암 리에 운용하자 곧 그 내상도 호전되어갔다. 영은 멀쩡하게 서서 은영비에 여전히 심형어검강을 여전히 일으키고 있었다. 모두는 그들을 향해 공포어린 시선을 던졌으나 영과 문열은 다시 담담히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면서 자세 를 잡았다. '내가 이렇게 밀리다니…… 어이가 없군.' 문열은 생각하면서 영을 매섭게 노려보았으나 영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것을 받아 냈다. あさもやに むかい ほうりなげた 아침의 아지랑이를 향해 던져버린…… ことばに なんか ならない こころの さけびを 말로는 다 할수 없는 마음의 외침을…… 040. 서약誓約. 그리고 문득 문열은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검에 맺힌 기운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하하……!! 하하하핫!!" 영이 갑자기 흘러나온 쾌소快笑에 무표정의 가면을 깨버리고 벙찐 표정을 지어버렸다. 그것 은 살아남은 이들도 그러했다. 뭐, 영이야 갑자기 대전상대가 돌아버리면 재미 없어지니까 속으로 염려하면서 벙찐 표정을 수습했지만…… 다만, 살아남은 이들중 몇몇은 저 미친놈이 드디어 발작했구나. 하는 감정과 더불어서 저 살 인마―왜 그만 매도되는걸까? 영과 격돌함으로써 생겨난 충격파로 인해 사람들이 몰살당하 지 않았던가? 역시 인간은 잘생기고 봐야되고, 강하고 봐야된다.―에 대한 공포가 뒤섞이면 서 표정 두 개가 겹쳐버렸고, 저렇게 표정 제어의 실패 결과로 벙찐 표정이 나타난것이었다. 다만 철마와 운들은 그것이 아니었지만. 곧 상당히 지저분해진 차림의 천광대원 둘이 느릿느릿 운에게 다가왔고, 운은 그들을 보면 서 안쓰러움을 담은 시선을 던졌다. "쉬도록." 운은 명령조로 말한다음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렸고, 다시 영과 문열의 대치상태가 이루어 지고 있는 장소에 그 시선은 가 닿았다. 문열의 웃음이 뚝 멎었다. 그리고 그는 말없이 검을 들어올려 영의 하단을 자르는, 하단세下斷勢를 만들어 냈다. 단순 한 자세. 그러나…… 담긴 위력은 거대한 산의 뿌리마저도 베어버릴 듯 강렬하기 짝이 없었 다. 영은 미소를 머금으면서 은영비를 겨누어 어떤 자세를 만들어 냈다. 오른발은 살짝 굽힌채 앞으로, 왼발은 세워서 뒤로, 왼손은 자신의 뒤쪽을 받치는듯한, 하지 만 '숨겨진 검날'의 형세로, 은영비는 모든 것을 꿰어버릴듯한 예기 속으로 감추면서도 앞으 로 내 놓는다. 이것은 어느 누가 보아도 돌격세가 아닌 돌격해 오는 것을 차단하는 모양새였다. 창병이 기 병의 돌진력을 이용해 상처를 입히는것과 비슷한 자세였던 것이다. "후…… 가랏!!" 숨을 가라듬던 문열이 한줄기 낙뢰가 지면에 부딪혔을 때 나는 굉음과 같은, 그런 기세가 실린 목소리로 주변을 쩌렁쩌렁 울렸고. 곧 그의 검이 좌상방左上方에서 우하방右下方으로 내리그어지며 은색 호선을 형성했고, 곧 은색의 호선의 날 부분에서 수십가닥의 검강劍剛가 닥들이 영을 향해 쇄도했다. 순간 타오르는 은영비, 그리고 영의 오른발이 곧게 펴치고 왼발이 살짝 굽혀짐과 더불어 그 대로 영의 오른손이 무서운 속도로 휘둘러졌다. 곧 수십개의 은색 곡선들이 그의 주변을 휩 쌓음과 동시에 일어난, 차가운 기류는 쏘아져 들어온 검강을 잠식했다. '대자연, 유검流劍…… 천신무天神舞.' 수십번의 베기. 그리고 일어난 수십가닥 기폭풍. 기폭풍의 길은 검강을 그대로 차단했고, 검 강은 그것을 뚫고 들어가려 노력하다가 그 기폭풍의 압력덕분에 그대로 폭발했고, 압축되었 던 기가 풀어지면서 작은 폭발 수십개가 영의 주변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흙먼지가 영의 주 변만을 감쌌다. 문열은 이렇게 하여 좁은 범위의 흙먼지 내에서 그가 뛰쳐나오길 기다렸다가 공격을 가하려 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은 뛰쳐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문열은 재차 수십가닥의 검 강을 뽑아내 다시 영을 공격했다. 쉬쉬쉬쉭――!! 푸르른 검강의 창과 같은 날카로운 기운이 영의 몸을 향해 쇄도했다. 그런데 문득 영의 주 변에 강력한 공기압력이 생겨났다가 위로 솟구쳐 오르며 강하게 회전하게 시작했다. 영이 가볍게 기력을 운용, 지나가는 바람들을 모두 붙잡아 모아 만든…… 대자연. 유검流劍. 풍천무風天舞의…… 나선대폭풍螺旋大暴風의 수법이었다. 천룡환령풍天龍 幻靈風도 존재했지만, 이 나선대폭풍은 사물을 절단할수 있으나 천룡환령풍은 그렇지 않다 는 점이 달랐다. 쉬가가가각―! 무서운 속도로 공기가 소용돌이 치며 날카로운 바람의 검날이 나선형으로 얽혀 영의 몸 주 변에서 일어나 곧 하늘에 닿았고, 쏟아져 들어오던 검강마저 그 강력한 풍압에 휩쓸려 폭발 해버렸다. 강력한 바람의 폭풍. 그 검날 수만개가 숨겨진듯한 용권풍은 주변의 무림인들로 하여금 천 근추, 혹은 만근추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다. 영에 의해 생선된 용권풍은 주변의 공기마저 날카롭게 만들 정도였으므로, 살아남아있는 이들은 생에 강한 욕망을 불태우며(?) 호신강기에 더 많은 공력을 투입했다. 문열마저 당황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이런……" 당황하여 뭐라 말도 하지 못하는 문열.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용권풍의 기세는 점점 잦아들 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권풍과 그 용권풍이 휩쓸어 올라간 나무나 집, 혹은 사람의 잔해(!) 들, 그리고 흙먼지들이 완전히 곱게 갈려서 뿌려져 내리기 시작했고, 그것 때문에 무림인들 은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휘둘러 그것들을 몰아냈다. 용권풍이 사그라 들자 멀쩡한 영의 모습이 드러냈다. 은영비는 한층 강한 광채를 뿜어내는 듯 보였고, 그것에 문열은 심장이 찔린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고수로군……' 그렇게, 이곳에 모인 모든 무림인들이 경탄하고 있었다. 사막에서나 보이는, 그것도 사막에서 보이는 용권풍을 훨씬 능가하는 강력한 바람을 무공을 통해 만들어 내다니…… 과연 현경의, 아니…… 거의 신화경에 이르른…… '무림에서 가장 강한 사람일지도 모르겠군……!' 문열은 눈을 빛냈다. 이런 상대와 싸우다 죽는다면 더 바랄바가 없었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생의 욕구가 일렁이고 있었고, 문열은 그것을 애써 무시하면서 영을 직시했다. 그 런 그를 바라보는 영의 입에 걸린 미소는 묘했다. "단 한 번의 검의 교환으로 끝낼까요?" 영이 그렇게 묻자. 문열은 이제 끄는것도 부질없다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자신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기에…… 그래서 자신은 생에 미련이 없도록, 자신이 펼칠수 있는 가장 강하면서도 정묘한 초식을 펼 치기를 원했다. 은색의 검에 실린 기운이 달라졌다. 은색의 빛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하면서, 그것은 마치 무형지기와도 같은 기세로 영을 향해 엄습했다. "……흠." 이번은 정말 보통의 것이 아니라 여겼는지, 영은 은영비를 겨눈다음. 대자연 유검의 풍천무 중의 위형무무해僞形霧舞解를 펼치기로 마음먹었고, 곧 그의 주변에 있는 기운들이 요동치 면서 바람을 끌어와 그의 주변에 부연, 강기의 안개를 형성했다. 꿈틀거리는 강기의 안개와 같은 그것은 일렁이면서, 춤을 추는 듯, 솟구쳐 오르다가 가라앉 는 듯, 회전하다가 역회전 하는 듯, 불규칙한 기류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그래서 위형무무해. 난류亂流라고도 불리웠다. 문열의 입에 희열이 걸렸다. "……" '저것을 내가 뚫는다면…… 여한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뚫지 못한다고 억울할게 무엇인가! 신화경에 거의 다다라 버린 고수와 싸우다가 가는 것을!' 척 보기에도 저 강기막은 심상치 않았다.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듯한 그것은, 움직인다면 빠를 것 같았다. 안개 같아서 서서히 좁혀오는 공격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저것은 '강기'였으니까…… 푸르른 안개의 안쪽에서 울림을 담은 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작합시다!" 그리고 문열은 사력을 다해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일렁이기 시작한 기류. 문열의 몸에서 모든 공력이 뿜어져 올라와 주변의 기력마저 요동치게 만들었고, 검은 견디 지 못할 정도의 기운이 스며들자 파르르 떨리면서 검명劍鳴을 한가득 토해냈다. 우웅웅―― 음산하게까지 느껴지는 검명. 그것을 들으며 문열은 검을 겨누었다. 곧 그의 몸에서 은색의 기류가 한가득 피어올랐다. 자신이 창안한 검술…… 허공신보와 동시에 운용하면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검술이었 다. 목木. 은천검림銀天劍林. 오행의 기운중 목의 기운만을 끌어내어 풍의 속성과 함께하는 목의 기운을 함께 검에 실어 은색의 검강을 만들어내 적을 검강의 숲에 가두어 버리면서 분 해하는 기술이었다. 허초는 없는, 모두가 실초인 검술! 124개의 검강의 나무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그는 단 하나 의 나무만을 만들 생각이었다. 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정― 검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그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수 없다 생각했는지, 허공신보와 신검 합일身劍合一의 수로 검과 함께하여 은색의 섬전閃電과도 같은 모습으로 쏘아져 나갔다. 은 색의 번개! 콰르르릉―!! 은은한 뇌음마저 뿜어낸 은색의 뇌전은 그대로 강기의 안개와 부딪혔다. 차자자자작― 뇌전과 뇌전이 맞물리는, 기괴한 소리가 주변을 울림과 더불어 일다경이 흘렀다. 뇌전은 여 전히 그 기세를 잃지 않았고, 강기의 안개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조금씩 잘려나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시 일다경이 흐름과 더불어 그 강렬한 뇌전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며 펑 하는 충격음과 더 불어 피를 토해내며 문열의 신형이 뒤로 튕겨져 나갔고, 그와 동시에 검은 허공중으로 올라 가 핑그르르 돌더니 난데없이 검신의 중앙부터 줄금이 가지 뻗치듯 검날로 향하더니 펑 하 는 소리와 함께 박살나 버렸다. "큭…… 왜 나를 죽이지 않은거지?" "죽기에는 아까운 경지에 오른 사람이니까. 무엇보다…… 선배는 이 싸움에서 얻은 심득이 있을겁니다. 그것을 실현 시켜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림인이 되어서 신화경이라는 경지를 꿈꾸지 않고 죽어 무엇하겠다는 겁니까?" "……! 그렇군. 큭. 하지만 네녀석은 조건을 붙일 것 같군." "그렇습니다." "……조건이 무어냐?" 문열은 오만하게 눈을 치켜떴고, 그런 그가 마음에 든다는 듯 영은 빙그레 웃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흔들다가 조건을 제시했다. "우리 편이 되어달라는건 아닙니다. 다만 한가지……" "한가지?" 날카롭게 반문하는 문열에게 조용한 미소를 지은 영은 그 조건을 말했다. "저희 천류세가가 전에 무너졌을 때. 한몫 했던 인물의 암살입니다. 바로…… 귀혼백리 임청 을 제거해 주십시오." 귀혼백리 임청. 그 능력은 화경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파의 인물이었으나 사악 독랄하기 그지 없었고, 그 간 계를 책략하는 능력은 상당했다. 천류세가를 함정에 몰아넣은 인물중 하나로, 현재 50세였으 나 영약을 꽤 많이 주워먹어서인지, 그다지 늙어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 자는 어디있는가?" "음…… 아마도…… 무창에 있을겁니다." 영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광협, 문열의 서약. 어느 누구도 임청의 죽음을 막을수 없을것이며, 세 달 내로 자신이 임청 을 베지 못한다면 스스로 검을 꺾겠다는 맹세였다. 그 맹세로부터 천류세가의 복수의 시작은 한층 더 가까워졌다. なんのために 生まれ來たか 무엇을 위해서 태어났을까…… なんのために この世に己はあるか 무엇을 위해서 이 세상에 나는 있을까…… 041. ……영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 하는 것. 밝은 빛이 비쳐들어오는 방. 그러나 그 안쪽에서 그 빛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의 마음은 어 둡기 그지없었다. 그의 앞날에는 밝은 서광 대신 시커먼 먹구름만이 여유로이 헤엄치며 그를 농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그는 여성보다도 더 날카로운 목소리로―평소에는 그렇지 않지만.― 고함을 치 며 분노를 표출해 냈다. "……무림맹. 대체 무슨 속셈인거야!!" 분노를 터뜨리며 그는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 뻗어나간 주먹은 벽에 그대로 박혀들었고, 쿵 하는 소리와 더불어 돌 벽에는 금이 가버렸다. "빌어먹을! 중매라니! 그것은 시선 집중용 아니었나?!" 평소에는 신에게 욕이라도 퍼부으면서 그럭저럭 잘 살아왔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앞날이 불분명 한데다가 기이할 정도로 여성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이유가 있지만― 그로써는, 지 금 당장 신을 찾고 싶어지는 그였다. 다만, 믿을테니 구해주라! 는 타협(?)도 아닌, 무지막지하게 쥐어패고 검을 내리쳐 그 신이 라는 작자의 목을 몸통에서 분리해 내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어 올라서 그것을 그대로 실행 시키고 싶었기에 신을 찾고 싶어진 것이었지만…… "크아아아악!!" 다시한번 분노를 담은 울림이 방안을 휘감았다. 그리고 그 탓에 그가 주화입마라도 한 것으 로 지레짐작한 천류세가의 천광대원이나 암살대, 그리고 시비들이 몰려들어왔지만…… 그의 고함에 물러갈수 밖에 없었다. 뭐, 오래간만의 발작이라 할수 있었다. "어휴……" 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맨 첫줄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운 역시 영보다 딱 히 나은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나이와 여섯 살이나(?) 많은(!) 여자 를 무림맹에서 이어주려고 발악하고 있는 탓이었다. 운과 영이 받은 서신은 겉보기에는 매우 화려했다. 그 문장 역시…… 뭐, 대충 이리저리 둘 러대면서 빙빙 말을 돌렸지만, 그것이 이 불행한 두명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무림맹에서 사봉四鳳중 한명이자 천하오미중 네번째라는. 화산파의 제자인 옥매화랑玉梅花 娘 화영영과 영의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는 것이었고, 그것은 어이없는 일이었다. 일 전에 영이 뇌검자를 벨 때 이한룡과 운이 격렬하게 싸운 것을 보았으며, 그때 이한룡은 운 에게 적의도 없었지만 호감도 없었다. 뭐, 그냥 천류세가가 보통 세가였다면 그저 일도 아니지만, 지금 천류세가는 무림맹의 공적 이라고도 불리우는, 무림사가武林邪家로 지칭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천류세가의 가주. 그런 자의 심복에게, 아무리 딸이 아니라지만 화영영을 넘긴(?) 다는 것은 문제가 있 는 일이었고, 암중에 흉계가 있음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운에게 소개된(?) 천하오미중 제 일미一美라는 냉심빙화冷心氷花 옥유화는 무림맹 주의 딸이었다. 이것은 명백한 화해의 뜻이거나…… 아니면 흉계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무림 맹주의 머리가 돌아버렸던지. "큭. 난 아직 무림맹…… 특히 맹주는 용서할 생각이 없는데 말이야. 물론, 백 노사의 부탁 때문에 하는 짓이지만. 무림맹……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뭐, 내가 예상컨데…… 간자, 그러니까 첩자로 밀어넣으려던가, 아니면 천류세가를 이용해 먹으려는 거던가. 혹은…… 천류세가를 능가하는 무서운 적이 나타났다는 것 외에는 없겠지. 훗……" 영의 입에서 그럴듯한 말이 흘러나오자 운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 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당, 소림으로 시작해서 화산파까지…… 쟁쟁한 문파들이 있는데…… 마교라고 해도 무림맹과 막상막하, 더군다나 천산검파나 숨겨진 고수들, 그리고 은거하고 있는 고수들이 나타나면 마교를 능가하게 될텐데…… 단합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 렇다고 해도 밀리는게 아닌 것을……" "음…… 그건 그렇지." 영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둘은 머리를 굴려가면서 이리저리 해답을 내어보았지만, 확실한 정보가 없으니…… 두명이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도저히 답 을 이끌어 낼수는 없었다. 서신에 적힌 내용중, 마지막 줄에는 아까 영이 발광하게 만든 이유가 씌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운으로 하여금 골치를 썩게 만들었다. '무림맹의 무아각無我閣에 초대한다.'는 뜻을 담은, 약간 치장된 글귀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강렬한 두통을 유발했으며, 평소보다 머리카락이 좀 더 많이 빠지는 결과 역시 유발했다. 그리고…… '만나서 상의하자는 뜻'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했다. '죽일놈의 무림맹주!' "음…… 그때도 보았지만, 영이라는 자의 외모는 무림오미라는, 맹주의 딸에 견줄 정도인 것 같았소이다." "……그자. 정말 남성이 확실하오?" 한 장의 그림. 대체 누가 그렸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최고급의 비단 화폭 위에는 먹으로 그림이 한 장 그 려져 있었다. 그것은 전신을 오밀조밀하게 그려놓은 것으로써, 얼굴과 체형을 살펴보기에 알 맞은 것이었다. 누가 과연 이 그림의 대상인지 알수 없었으나,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림으로도 담기가 힘 들 정도인 듯 싶었다. 비록 먹물로 그려진 그림이었지만, 그림은 살아움직일 듯 했고, 생동감과 전신화로써의 효용 은 모두 유지되고 있었다. 길다란 흑발, 전혀 정리하지 않은 흑발이었다. 외모 자체는 매우 학자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보통의 서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외모였다. 그러나 어떤 무림인들보다 잘 짜 여있는 몸. 용골龍骨…… 혹은 선골仙骨이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흘러나오게 만드는 몸이었 다. 전체적으로 가느다랗기는 했으나 잘 짜여진 몸이라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옆 에 걸려진 그림에는 방금 보았던 사내만큼이나 잘 짜여진 몸의, 키는 그 사내의 가슴께에 미치는 소년이 그려져 있었다. 역시 아름다운 외모의 소년이 그려져 있었고, 그 옆 그림만큼이나 좋은 솜씨로 그려져 있어 마치 그림에서 소년이 걸어나올 듯 했다. "……음." 그리고 좌중의 한 인물이 침음을 흘렸다. 둘 다 비단화폭에 그려진 그림이었고, 전신화였다. 그리고 화폭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는 정 보가 상세히 적혀있었다. 깨알같은 글씨였으나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화경이거나 화경의 끝에 이르른 이들이었기에 못 볼것도 없었다. 먼저 설명한 이의 그림 귀퉁이에 적힌 정보는 이러했다. 이름 : 영影. 그러나 가명일 것으로 추측된다. 명호 : 무림오천의 일인. 명호는 은영천검銀影天劍. 나이 : 많아야 20대 초반으로 추정. 외모 : 전체적으로 가느다랗지만 잘 짜여진 체격, 외모 자체는 학자와 같은 모습이나 각별히 주의해서 살펴야 함. 여성으로 일견 착각되기에 쉬우므로, 여장을 했을 경우 세밀히 살펴야 알아 볼수 있을것임. 무공수위 : 현경 이상으로 추측됨. 최근 광협狂俠, 문열과 격전을 벌일 때. 금황金皇, 심형어 검강心形御劍剛을 시전한 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음. 내공수위 : 600년 이상으로 추측된다. 독문무공 :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체로 내공소모가 적으면서도 강력한 무공을 구사하는 것 으로 알려져 있으나, 필요할때는 공력 소모가 많은 강기류 공격을 주무기로 한다고 한다. 금 색의 강기로 이루어진 용을 강기신공으로 만들어내 사용하기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정보의 제공자는 그와 대면해서 살아남은 백황대의 부대주가 제공했음. 사용병기 : 검劍. 무림의 십대기병의 말석을 차지하는 은영비銀影匕. 천류세가의 가주가 현 재 사용하는 무기인 청천검靑天劍을 사용하는것도 보였음. 연성한 무공 : 천류세가가 일전에 약탈하거나 얻어낸 모든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으로 짐작 됨. 아마도 정, 사, 마의 상승 무예 7할은 쓸수 있을것으로 짐작되니 신분의 위장을 주의하 는 것이 좋음. 추가기록 : 현경의 뇌검자雷劍者 살해. 화경의 소림 장문 격퇴. 화경의 백현도장 격퇴. 이 세 비무는 삼대 일로 이루어졌음. 뇌검자를 능가하는 광협, 문열을 무릎꿇림. 그것을 다 훑어본 이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와 부딪혀본 사람들은 흔들리지 않 았으나, 처음 이 정보를 접한 사람들의 입에서는 신음과 더불어 이러한 단어가 흘러나왔고, 그것은 침묵이 가라앉은 방에 퍼져나갔다. "엄청난 고수로군." 잠시 소란스러워졌던 방은 다시 침체된 분위기로 돌아갔고, 그들은 곧 그 옆의 전신 초상화 의 귀퉁이에 적힌 정보를 빠르게 읽어내려갔고, 일전에 엄청난 인물의 정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놀라고 있었다. 이름 : 유운劉雲. 명호 : 천운검룡天雲劍龍. 칠룡의 일인. 나이 : 많아야 10대 중반으로 추정됨. 외모 : 가녀린 체격에 나이 치고는 조금 큰 키. 그리고 아름다운 미공자로 보인다. 역시 잘 짜여진 체격이다. 무공수위 : 화경. 화산문주 이한룡과의 비무시, 우세에서 검을 교환했다고 한다. 내공수위 : 3갑자 이상으로 계산되고 있다. 독문무공 : 알려져 있지 않으나. 주로 강기류 공격을 사용하면서도, 신법과 검술을 결합한 공격을 주로 펼친다. 사용병기 : 검. 청천검을 주로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 무림맹에서 복구해서 보존중 인 천인검天刃劍과 비등한 수준의 무기로 짐작된다. 연성한 무공 : 역대 천류세가의 가주들이 썼던 무공이나 천류세가의 무공. 그리고 은영천검 이 익힌 무공과 같은 것들을 익혔으리라고 짐작된다. 추가기록 : 화경의 고수. 화산파 문주 이한룡과의 비무에서 우세를 점함. "……" 침묵이 흘렀다. "……그곳에서는 화경의 고수 둘을 더 보유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소?" "……으음." "놀랄 일이군. 일개 세가에서 가진 힘이 무림맹과 비등할 정도라니…… 거기다가 화경의 고 수 셋과 현경의 고수 하나……" "무림맹이라도 준비 없이는 멸망 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을거요." "으음…… 세력 자체는 그렇다고 쳐도…… 현경의 고수라니……" "이번 계획이 실패한다면…… 그래도…… 정파의 인물들을…… 소실한다는 점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실패하면 아마도. 우리는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만 할거요. 천류세가는 게다가 마교와도 관 련이 있고…… 혈천교가 다행히 마교와 싸우고 있기에 다행이오." "……우리가 혈천교. 그 쓰레기들의 힘도 빌려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안들지만…… 어쩔수 가 없구려." "참! 천산검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영이라는 자를 제거하는데는 충분할 것 같소. 그자가 신화경의 고수라면 모를까…… 아직 현경이라면, 가능성은 있소이다." "자. 이제 걱정은 그만 하도록 합시다. 백팔나한진, 그리고 무림맹의 파사조직들과…… 혈천 교의 세력, 천산검파. 무림맹의 모든 세력들이 더해진다면…… 천류세가라도 어쩔수 없지 않 겠소? 혈천교의 '드러난 세력'만이 마교와 비등하다는 것…… 물론 마교도 숨긴 세력이 있 겠 지만…… 이건 정말 놀랄일이더구려." "……술잔을 듭시다! 더 이상 불안해 하면서 대화를 나누어 봤자……" "그런데, 그 아이들은 저 둘과의 중매에 어떤 반응이오?" "……하하하. 본인의 여식이야 평소처럼 별 반응이 없지만…… 화영영은 요즘 기분이 아주 나빠보이더구려." 맹주의 말에 이한룡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지만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영이라는 인물이 무림사가의 인물만 아니라면, 당대 최고의 사위감이라는 말로 도 모자람이 있을테니…… 어떻게든 될 것 같소." 좌중의 모든 인물들의 마음속에는 시름이 쌓여가고 있었다. なにかが いま かわりはじめていると 무언가가 지금 변하기 시작하며…… ほそく さしこんだ かがやき 가늘게 빛이 새어들어와…… 042. 올해로 오십세인. 무림맹 내부에서 하인으로 일하고 있는 진수는 최근 갑자기 빠르게 돌아 가고 있는 내부의 사정에 당황하고 있는 참이었다. 무슨 귀빈이라도 오는양 바삐 필요한 것 들을 구입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잡 상인들도 많이 출입하기 시작하였으며, 경계가 갑자기 강화되어 버려서 당황하고 있는 것이다. 문지기들에게 은근히 뇌물 좀 찔러주면 바깥에 나갔다 오는것도 별로 어렵지 않았었는데, 뇌물을 꽤 많이 찔러주려고 해도 뇌물 자체를 거부하려고 드니…… 그러면서 은근히 말해 주는 것이, 꽤 중요한 손님이 온단다. 무슨 무림사가에 있는 무림오천인가 하는 사람이, 그것도 사파 진영의 사람이 온다고 하던 가…… 그도 무림사가에 대해서는 조금 들은 바가 있었다. 그가 알기로는 무림사가인 천류세가라는 곳은 일전에 무림맹과 마교, 이 두곳에 한꺼번에 싸움을 걸어 개쪽난 곳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당시만 해도 꽤 많은 정파인들의 시신이 실려들어 왔고, 그가 가장 무서워 하 던, 은근히 하인들만 보면 걷어 차고 돌아다니던 성질 더러운 화경의 고수…… 이름은 기억 도 안나지만…… 하여튼 그자가 두동강난 시신으로 실려왔었다. 그래도 검강까지 자유자재로 펼치던 인물이었는데, 그런 인물이 처참하게 두동강 나서 실려 오다니…… 눈을 부릅뜬채 죽어 더더욱 처참하게 보였었다. "은영천검? 나이가 스무살이 좀 넘는다고?" 그런데도 현경의 고수라고 했다. 진수는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현재 할 일, 물뜨기를 위해 같이 일하는 하인녀석들을 끌고 냇 가로 향했다. "……" 영은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뭐, 아무거나 입고 가도 상관 없었으나, 그래도 지금 할 일 때문에라도 화려한 복장은 필요 했던 것이다. 일단은 '그곳'에 갔을때, 그냥 손님으로 생각되어야 하기도 했지만, 그는 그럴 생각은 없었다. 이유는 오직 하나, 무림맹 때문이었다. 무주에서 일을 끝마친다음 곧바로 경공과 텔레포트를 동시에 사용해서 최단시간 내에 무림맹에 도착해야 했다. 앞으로 삼일 내로.무림맹과 무주간 의 거리는 도보로 이주일 거리였기에, 그는 텔레포트와 경공을 함께 사용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소매가 넓은 백색의 옷, 백의를 입은 그는 그 백의만큼이나 깨끗하고 맑은 손 등의 피부를 보여주면서 주변의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터뜨리게 했다.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해 서 묶어 뒤로 늘어뜨리고, 허리에 그럭저럭 비싸게 주고 구입한 보검을 차고, 당연하게도 오 른쪽 소매에는 은영비銀影匕를 감춘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확실한 미공자였으며, 어떻게 보기에는 돈 깨나 있어보이는 햇병아리였다. 다만 이지적인 분위기와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 그리고 잘 짜여진 몸과 큰 키 덕분에 암 흑가에 종사하는(?) 이들의 목표로는 적당치 않다는 판단을 받고 이런 거리를 무사히 활보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무사할 위인이었지만. 운과 천류세가의 천광대원 오십여명과 암살대들 이십여명, 그리고 시종들 백여명들은 지금 무주가 아닌 방향의 길을 잡아 무림맹으로 가고 있었다. 그만이 지금 이탈해서 할 일도 할 겸, 이동하고 있는것에 불과했지만. 무주의 영안에는 현재 육십세에 달한, 그 당시 천류세가에게 미끼를 던져 세력을 깎아먹었 던 폐물이 하나 있었고, 그를 제거하기 위해 그만이 잠시 떨어져 나온 것이었다. 다만 지금 그가 할 일은…… 그녀석이 보호 받고 있는 호아장에 쳐들어가서 모조리 목을 따버리고 증언자들마저 제거하 는 일이었다. 좀 찝찝하긴 하지만 직접 목을 따버리는게 가장 안전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만약 멀리서 금강폭열공金剛爆熱功의 사초식 이후의 무공을 쓴다면 간단하긴 하 겠지만, 시선이 집중되는데다가 그 주변에 충격파가 생겨나서 사람들이 상당히 죽을 것이므로, 귀찮 은 일도 생긴다. 다만 자신은 그냥 무림초출한 얼간이로 보여서, 하지만 실력은 굉장한 얼간이로 보여서 호 아장의 장주와 일대일로 비무를 한판 뜨고 그 자리에서 우연을 가장해 죽인다음 곧바로 강기를 일으켜 주변의 사람들을 싸그리 쓸어버리고, 자신의 뒤를 열심히 쫓아오는, 그러나 흔적조차 없는 암살대 오십명들이 도망가는 녀석들을 붙잡아 모조리 은밀한 골목으 로 들어가서 하나같이 다 실종처리(?) 해버리면 완벽하다. 그것도 귀찮으면 그냥 쳐들어 가서 다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 무식하다고 말할는지도 모르지만 그가 이곳에 있음이 드러나서는 안된다. 그래서 운의 옆에 풍채가 그럴듯한 '가짜 은영천검'을 세워놓지 않았던가, 물론 팔검위 였지만. 팔검위들은 두명이 죽어버린 후, 각기 천광대에서 가장 뛰어난 녀석들 둘을 뽑아 집어넣고, '팔검위 만. 의.' 혹독한 수련―별거 아니다. 운과 영이 번갈아 가면서 처절하게 박살을 내고 생생조화단을 한개씩 입에 처넣은다음 곧바 로 운공시키고 다시 죽도록 밟고, 운공시키고, 금창약 발라주고, 다시 죽도록 밟는 것에 불과(?)하다.―에 의해 다른 팔검위와 거의 비슷한 수준에 올라버렸 고, 그들은 교육의 힘(?)을 다시한번 실감했다. 훈교검이 또 피로물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천류세가의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현경도, 화경의 고수도 아닌 춤을 추는 훈교검이 었다. 증상이 심한 사람들은 꿈속에 피묻은 훈교검이 나타나 자신의 심장에 틀어박혀 피를 모조리 빨아가는 수준의 악몽도 꾸었다고 하니…… 얼마나 운과 영의 수련이 혹독한지는 짐작할 수 있으리라. 영의 문제는 암살대들은 쉬엄쉬 엄하는데 비해 즉시 천광대들을 맡으면 악마로 돌변한다는 것이었다. 암살대들은 같은 부류여서 인지 쉬엄쉬엄하는데 비해 천광대원들만 맡으면 곧바로 훈교검이 운의 검무 이상으로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말보다 폭력! 그것이 운과 영의 수련 방침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탁월한 폭력식 인성교육'이라고들 하는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천광대들이 안 다면 미치고 환장해 팔딱 뛰면서 자신들 심장을 꺼내 짓씹고 찢어버릴 일이었다. "흐음……" 거리를 걸어,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킬수 있도록 해서 웬만한 무림인들도 암살대들의 기척 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있던. 은근한 정기精氣를 뿜어내고 있는 영은 호아장의 간판을 바라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피워올 렸다. "오늘로 호아장은 끝이군." 그리고 그의 손이 호아장의 문을 '두드렸다'. 콰아앙―! 그의 가녀린 손이 단 일격에 문을 후려 치자 마자 문에 금이 쩌억쩌억 가며 문을 고정시키 고 있던 철 구조물들이 문에서 분리되어버렸고, 곧 그가 후려친 물리력을 무게로써 버티지 못한 문은 산산조각 나며 뒤로 휘익 하고 날아가 버렸다. '어라? 아주 약하네?' ……그의 손에 은은한 수강手剛이 뒤덮여 있는 것은 모른척 해주도록 하자. 음파마저 차단하는 강기막마저 펼쳐서 인지, 문 부서지는 소리는 안쪽에만 퍼진 모양이었다. 그는 문턱을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갔고, 곧 그의 방문을 호아장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열렬히(?) 환영해주었다. "……큭큭." 영의 왼손이 가볍게 휘둘러졌다. 너무나도 가볍게, 파리라도 쫓아내는 듯. 그러나 파생된 결과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손이 그려낸 호선, 그리고 그 호선의 끝에서 뿜 어져 나간 차가운 기운은 그에게 검을 들고 대항하던 호아장의 무림인들의 몸을 그대로 냉동시켜버렸고, 차갑게 얼어붙은 그들의 몸에는 허연 서 리가 덕지덕지 매달려 있었다. 차마 그것을 털어주지 못하고는 그냥 지나칠수 없는 듯, 착한 성품의 영은 가볍게 진각을 밟으며 손을 튕겼다. 소림의 백보신권. 진각에서 얻어지는 힘을 발경이 아닌 탄경으로 발출, 기의 덩어리를 상대의 몸에 격중시키 는, 촌경과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발경은 진각으로 얻어지는 힘을 권으로 뻗어내 상대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반면, 촌경의 경 우는 닿은 힘을 순간적으로 상대의 몸에 전달하여 발경보다 지연 시간이 길지 않았고, 그만큼 강하기도 했으며, 발경과 달리 힘의 방향이 자유로웠다. 그의 손에서 튕겨져 나간 덩어리는 보통의 백보신권에서 발출된 무형의 권풍이 아니었다. 강기신공마저 함께 운용되자 새하얀 빛의 덩어리가 뿜어져 나가다가 정확하게 스무개로 나뉘었고, 얼어붙은 스물의 호아장 사람들의 명치를 그대로 후려쳤다. 검을 내리 베려는듯한 사람, 검을 뽑으려는 듯한 사람…… 가리지 않고 모조리 그대로 박살 나 버렸다. 백색의 덩어리들은 그대로 얼어붙은 이들의 몸을 후려쳤고, 곧 얼어붙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손쉽게 깨어져 나간 그들의 몸은 안쪽의, 얼음덕분에 신선한 내부의 붉은 고기를 외부로 드러냈고, 그것은 너무나 신선해서인지 더운 김마저 뿜어냈다. "쉽군." "으으. 어찌 소림의 인물이…… 저 악마를 죽여라!!" 그의 백보신권을 보고 소림의 속가 제자 쯤으로 착각 해버린 듯, 그런 고함이 터져나왔다. 호아장의 부장주라는 청년 무사. 그런 그를 오만한 시선으로 훑어본 영은 입가에 자애로운, 사신死神의 자애로움을 담았다. '세상 풍파에 지친 너희들에게, 영. 원. 한. 죽음의 기회를 선사하마.' 영의 입에서 음산한 살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흘러 나올때마다, 사신의 낫에 몸을 스친 듯, 그들은 몸을 떨었다. "너희들은 아느냐?" "저, 저자를 죽여!" 발악하는 호아장의 부장주, 그러나 다른 이들은 목숨이 소중한지 몸을 사렸다. 그때마다 그 는 발광했지만 부장주 역시 그를 두려워 하고 있었다. 다만 부장주 뒤에 있는, 네명의 사람들은 영의 빈틈을 노리려는 듯, 신중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 스산한 살기가 퍼져나감과 더불어, 그의 말에서 단어 하나 하나가 떨어져 나갈때마다 음습 한 살기가 한층 더 강해졌고, 그럴때마다 단어들은 유형화 되어 그들의 몸을 강타하는 듯, 고통마저 느끼게 했다. "돈? 명예? 기회? 삶?" 돈은 아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는 이와, 농민으로 태어나는 이가 있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도 그렇지 않 았던가? 명예? 과연 그럴것인가? 시골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명예를 추구해 무엇할 것이며, 그런 꿈도 꿀 것인가? 명예는 배운자들의 것이다. 기회? 정말로 그런 것인가? 과연 배울 기회도, 성공할 기회도, 균등하게 주어질까? 과연 그러한 것 인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삶? 태어나자 마자 죽거나, 어미의 배에서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 유산되는 이들은 대체 무엇 이란 말인가? "알려줄까?" 그것은 말이야,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수 있어. "그것은……" 바로……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그리고 영의 쌍수에서 수백여개의 흑색 강기가 일렁이기 시작하고, 하늘로 뻗어 올라갔다. 한줄기 흑색 번개는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가 나뉘어졌다. "허억, 묵뢰신공墨雷神功! 마교의 인물이다!" 마교의 묵뢰신공. 천류세가가 당시 마교의 천마각을 털 때 얻은 것중 하나로, 교주가 익히는 무공중의 하나였 다. 그 위력은 강인하기 짝이 없으며, 극성까지 수련했을때에는 흑색의 강기가 번개처럼 뻗어나가 강력한 열양강기로 화해 사물을 직격 하면, 바위라 하더라도 삼초 내로 재로 만들어 버리는 강인한 위력을 자랑했다. 그가 묵뢰신공을 운용하자 지금까지 뿜어져 나오던 정기는 지워지고, 마기만이 은근히 뻗쳐 나왔고, 그가 일부러 극마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아수라阿修羅 강림降臨의 모습을 드러냈다. 눈자위와 눈동자가 모두 붉게 물들며, 피부는 흑적색으로 달아오른다, 그리고 입가에 걸린 미소는 악마의 그것이었고, 머리카락을 묶고있던 끈이 부숴져 버리면서 그의 머리카락이 몸에서 일어나는 핏빛의 기류 에 시달려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와 동시에 수백가닥으로 나뉘어진 흑색 번개는 대지로 내리 꽂혔다. 그리고 수백명의 영혼이 호아장에서 명계로 떠나갔다. "음…… 무주에서 호아장이 사라졌다고? 대체 무슨일인가?" 앞으로 일주일 후면 천류세가의 망할 녀석들도 도착하는데…… 무슨 일인지 느지렁거리면서 오기에 무슨 일을 꾸미나 했지만 그런 꿍꿍이는 없는 듯 해서 안심했다. 그런데 호아장이 멸문이라니…… "새카맣게 타버린 시체들이 널려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흔적으로 보면 묵뢰신공 같 습니다." "으음…… 묵뢰신공…… 마교의 준동인가…… 혈천교를 상대하기에 바쁠텐데…… 마교의 교 주만이 익힐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왜 하필 호아장인가?" "교주의 가족에게는 예외입니다. 그리고, 왜 호아장인지는, 알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보고를 하는 심복을 바라보던 무림맹주는 쓴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한숨을 토해냈 다. "대체……" 그때 머릿속에 한줄기 번개처럼 떠오른 생각…… 만약 마교가 아니라 천류세가라면……? 묵 뢰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한것처럼 보인다는 말에, 운과 영을 떠올렸지만, 그리고 팔검위중 남은 화경의 고수 둘을 떠올렸지만 보고에 의하면 모두들 다 그 일행에 섞여있다고 했다. 은영천검이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수상했지만. 그임이 확인 되었다고 한다. 실은, 은영비銀影匕를 흉내낸 무기를 갖고 있는것에 불과했지만, 은영비는 너무 잘 알려진 물건임과 동시에 그 모습을 알리지 않은 무기이기도 해서, 무림맹에서도 속을 수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확인은 해야겠지. "혹시 얼어붙은 시체는 없다던가?" 만약 얼어붙은 시체도 있다면…… 화경의 고수 이상임이 틀림 없으니…… 천류세가나 마교 로 확실하게 범위가 좁혀드는 셈이었다. "없었다고 합니다. 모두 묵뢰신공에 다 타버려서…… 있었다고 해도 확인할 방도는 없습니 다."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혹시, 천류세가나 마교의 추적을 받는 인물은 있다던가?" "그건 모릅니다. 모두 다 시체가 타버렸기 때문에, 확인할 바도 없고…… 게다가 호아장은 무림맹과 교분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무림맹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으음…… 골치 아프군. 일단 그것은 나중에 해결토록 하세! 지금은 천류세가의 인물들을 받 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힘드네. 일단 미인계…… 그리고……" 중얼대기 시작한 맹주를 바라보던 그의 심복은 고개를 숙이면서 물러났고, 맹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실패한다면, 피해는 감수해야겠지!' みらいで ふいてた かぜが いま 미래에서 불었던 바람이 지금…… みみもとに ついた 귓가에 닿았다…… 043. 천류세가의 인물들이 무림맹의 무아각에 든다! 이 소식은 비밀이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삽시간에 전 무림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중매 때문이라는, 너무나도 어이없는 이유임이 알려지자 모든 무림인들은 허 탈해야만 했다. 자신들은 무슨 비무라든지…… 암계라던지…… 그런걸 기대했는데, 물론 암계야 있겠지 만…… 그렇다고 해도 '중매'의 이유라면 허탈해지기 마련이다. 덕분에 관점이 바뀌었다. 어쩌면 무림맹과 천류세가가 화해를 할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천류세가가 무림사가에서 탈피, 무림맹에 들지도 모른다는…… 마교에서야 입다물고, 이미 영들의 말을 들었기에 별 동요가 없었으나 무림은 그것이 아니 었다. 웬만히 정보력이 뛰어난 조직이라면 무림맹과 천류세가의 물밑작업이라던지, 아니면 비밀리 에 이루어 지고 있는 정보전이라던가…… 아니면 서로에게 올가미를 건다던지 하는 암투를 어느정도 짚어낼수 있었으나, 두 조직은 만만치 않았다. 보낸 정보원, 그것도 특급들이 잠깐만 한눈팔면 싸늘한 시체로 변해 널려있지를 않나, 아니 면 가끔가다가 자신들이 숨어있는데 검강 다발이 날아들지를 않나…… 뭐, 이런식으로 백도나 흑도나, 천류세가와 무림맹의 암투 가운데서 저절로 대립진영이 형 성, 자기들끼리만 피터지고 있었다. 떡줄사람 모르고 김칫국만 마시는 격이랄까…… '중매편지'가 날아오기 일주일 전이었다. 천류세가의 천광대원들은 요즘따라 천류세가의 내부에서 풍겨오기 시작한, 그윽한(?) 비료향 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 있었다. 대체, 가주의 직속인 은영천검은 대체 무슨생각을 하는건지…… 난데없이 비료를 수레로 실 어오라고 하지를 않나, 유황, 숯가루 등등 괴이한 것들만 골라서 모으라고 하지를 않나…… 지금까지 모은것만도 천근에 다다를 정도였다. 그리고 밤이면 밤마다 풍겨오는 악취. 뭔가 끓이는지 지독한 냄새와 더불어 열기까지 피어 오르고 있었고, 날이면 날마다 양이 늘어나 그득히 쌓이게 된 새카만 흑색가루가 뭐가 그리 중한지, 습기는 절대 불가! 불씨도 절대 불가! 접근 불가에 천광대의 정예만 불러다가 감시를 하게 시켰고, 접근시에는 천광대원들도 즉결 해버린다는 협박을 탕탕 쳐놓고 작업에 몰두해 있는 것이었다. 대체 뭘 만드는건지…… 뭐, 영이야 비료에서 '질산'…… 질소를 얻어낼 생각이었고―어떤 화약이던간에 질소는 필수 요건이다.―, 최근에는 근처 산들을 돌아다니며 질 좋은 초석을 찾기 시작하고, 구들에서 먼지 긁어모아 끓여대는 등, 화약의 대량생산을 위해 불철주야로 미친 듯이 돌아 다니고 있었다. 그 덕에 고생이 가중되는건 수하들이었다. 질산을 생산하는 작업이라 나무 절구를 이용해야만 했기에 더 짜증났다.(금속재 막대를 사 용하면 반응해 버린다.) 그 새카만 가루를 어떻게 배합한 영은 문득 한줌에 불길을 붙였는데,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거센불길이 일어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만족한 미소를 머금었다고 알려졌다. 사실, 화약은 불붙인다고 무조건 터지는건 아니다. 그 예민한 1급 폭발물들도 가끔 사압현상 으로 터지지 않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칼로리가 지나치게 부족해서 확 타버리기에 일순간 거센 불길이 일어나는 정도랄까…… 어쨌든간에 거의 천근에 다다르는 엄청난 양의 흑색 화약을 생산해낸 영은, 그것을 창고에 쑤셔박았고, 곧 여러 가지 작업과 더불어 세밀한 금속재들을 비밀리에 생산하기 시작했다. 딴에는 진천뢰의 복제였지만, 자신이 생산할 것은 진천뢰를 따위라고 말할수 있을 물건이었 기에…… 그는 요즘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특히, '니트로그리세린'을 생산하기 위해 조잡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폭발사고까지 맞아가면 서―호신강기 덕분에 충격은 없었다.― 그렇게 흑색 화약과 니트로를 복합, 규조토까지 간신히 구해가며 '다. 이. 나. 마. 이. 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뇌관이었지만, 구시대 화약정보를 두뇌에서 간신히 찾아내어 구식의 뇌관과 도화선 을 간신히 제작해 냄으로써―탄소선 만들기는 정말 고통의 연속이었다.― 거의 200kg에 달하는 다이나마이트를 제작할수 있었으며, 그로써 그는 도시 하나는 초토화 시킬 폭약을 얻게 되고야 말았다. 남은 흑색 화약과 니트로들. 아주 극소량이긴 했지만 니트로는 모조리 앰플채로 소량씩 폭 파시켜 제거했고―산중에 들어가서 제거했기에 힘들었다.― 흑색 화약들은 가죽주머니―기름을 먹인 밀폐형.―에 처넣고 도화선을 쑤셔박은 뒤, 화기에 주의하라는 말을 하고 특수 기동대원으로 지정된 천광대원들에게 하나하나 지급했 다. 혹시 단거리에서 불붙이고 던질때에는 극도로 호신강기를 만들어 내라는 정감어린(?) 충고 도 잊지 않았다. 양날의 검이긴 했지만 진천뢰가 있다면, 황궁이 무림맹을 지원할 생각이라면 그로써도 이런 구식의 무기라도 만들어 내야만 했다. ……다이나마이트가 구식이라는 말이 붙어야 할지 의문이었지만. 뭐, 지금 영이 가장 불안한 것은, 과연 고수들의 호신강기를 폭발물들의 폭압이 뚫을수 있을 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컨데 화경의 고수쯤 되는 자들이라면 진천뢰 두발을 한꺼번에 먹여야 호신강기 를 넘어 시전자에게 조금의 타격이라도 입힐수 있을 정도였고, 자신의 공정 과정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은, 사제라고 불리기에도 민망한 다이나마이트가 과 연 얼마만큼의 위력을 낼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조선시대에 썼다고 알려진 화약무기들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답은 '불가능'이었다. 세상에, 서양, 즉…… 아스타르 대륙에서는 화포도 신나게 쓰고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화총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니…… 무술이 얼마나 큰 폐단인지…… 여기서 깨달았다. 하기사 검기상인劍氣傷人 급의 고수들이 라면야 작렬탄도 없는 이곳에서는 포탄이라도 잘라버릴수 있을 터였고, 자신만 하더라도 풍천무로 빗발치던(?) 진천뢰를 모조리 말아먹었지 않은가? 대자연, 유검이 특이한, 자연력 제어와 동시에 자연력의 지배의 무예, 상상도 못할 정도로 심오하고 어려운, 하지만 동시에 강력한 무술이라고는 하지만. 진천뢰 자체가 폭발할 때 일어나는 위력이 무서운 것이지, 공중폭파 당하거나 차단되면 그 다지 효용은 크지 않다. 화경의 고수이거나 그 직전의 고수가 일으킨 무형무음, 극유의 권풍, 혹은 검풍이라면 넓게 일으킬 경우 셋만 있어도 진천뢰 정도는 모두 공중폭파 시키기 어렵지 않은 것이다. 다만, 그때는 혼전상태였기에 막을 사람이 자신 외에는 없어서 고생만 죽어라고 한 것이었 지만 말이다. 게다가 사이킥 파워를 평소에 워낙 쓰지 않다 보니 그것을 의식하고 있지도 않았고, 또한 무술에 완전히 빠져서 그런지, 그걸 사용할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대자연유검결의 보완성을 깨닫고는 초식을 추가했지만 말이다. 가령, 천신무의 절대무검결에 검세劍勢이자 검무劍舞 형식의 초식 셋을 추가한 것이라던지 말이 다. 제 일초가 극마무락세極魔霧落勢. 제 이초가 천신무락세天神霧落勢. 제 삼초가 신마무극세神魔霧極勢. 이렇게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초, 이초의 위력은 비등하나 세 번째 것은 차원이 달랐 다. 뭐, 여기에 금강폭열공의 오의가 더해지면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겠지만…… 오늘도 이런저런 일과 함께, 영은 환골탈태를 두 번씩이나 한 육신임에도 불구하고 허리가 아파옴을 느끼며, 그날의 폭발물 생산을 마감했다. "끄응…… 수류탄手榴彈…… T.N.T(트리·니트로·톨루엔)…… 클레이모어……" 만들고 싶은건 끝도 없었다. "화포火砲…… 작렬탄…… 안되면 화승총이라도……" 그런데 기술력이 딸리는걸 어쩌란 말인가! 아스타르 대륙에서는 머스켓 총도 개발중이라는 데! 어떻게 이리 동방대륙은 취약하단 말인가! "크윽…… 아스타르가 월등하군……" 영은 신음을 흘렸다. 그런데 왜 그런걸 신경쓰고 있는가? 혹시 동방대륙에 자신의 제국을 만들어서 아스타르 대 륙과 한판 붙어보려고? 물론 아니겠지만, 그는 자존심 상함을 어쩔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정도 해낸게 기적이 었다. 한두번 읽어보고 넘어간걸 어떻게 완벽하게 해낼수 있단 말인가. 그나마 머리를 좀 써서 만들어낸게 불균형질 다이나마이트, 흑색화약, 진천뢰 복제품 정도였 다. 그 외에 도화선과 초, 구, 형. 뇌관 정도일까? 뇌관이 아니라 폭관이었지만…… 다이나마이 트의 폭발을 유도하는데는 충분했다. 다이나마이트. 폭발성이 강한 액체인 니트로 그리세린―애칭(?)은 나이트로.―을 흑색화약과 섞어서 규조 토에 스며들게 만든다. 물론, 이것도 구식 제법이었지만 그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칼로 자를수도 있고, 불이 붙어도 폭발하지 않는다. 다만 뇌관을 사용해야만 폭발하는 것이다. 뭐, 다이나마이트를 만든 노벨이 평화를 사랑한다는 말을 남겨 영을 뒤집어 지게 만들었으 나 그건 이전 일이다. 어쨌든, 노벨상에 수학상이 없는 이유― 거짓일지도 모르지만― 역시 노벨만큼이나 황당하기 그지 없었는데, 그건 노벨의 아내가 수 학자와 바람나서 도망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노벨상에 진짜 수학상 없나? '윽! 잡생각!' 자신이 잡생각에 빠져들었음을 질책하며 영은 다시 한숨을 토해냈다. 점점 힘들어지는 데…… 그리고 영이 마침내 참다 못해 화약 생산 중지를 선언하고, 천광대원들과 천류세가의 사람들이 모두 화약냄새 때문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휴식에 취하면 서도 환호를 내질렀을 무렵이자 화약냄새가 많이 가셨을 무렵, 편지가 도착했다. いきている いみは かんじる ものだ 살아있다는 의미는, 느끼는 것이야. どこかに ある ものじゃなくて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044. 무서운 속도로 들판을 가로질러 온 영은 도시가 보이자 느긋하게 걸었다. '약속장소'가 바로 저 도시인 것이다. 바로 거사를 치른 후, 신법身法을 극성으로 전개, 강기막剛氣幕까지 사용해 공기의 저항, 즉, 소닉 배리어의 벽마저 관통하여 최대한 빨리 무림맹으로 가는 관문도시중의 하나에 도착한 것이다. 이곳에서 운들과 만나기로 했으며, 운들의 도착 예정은 이틀 후였다. 이틀의 여유, 어떻게 쓸까, 하고 고심하고 있던 차에 하나의 일이 그에게 발생했다. 뭐, 그로써는 약간의 귀찮음을 동반함과 동시에 무림맹주의 '심증'…… 불완전, 터무니없이 허황되고 불완전 하기는 비웃음이 나올 정도의 심증을 확고하게 하는 계기를 마 련하게 되는 것에 불과했다. 솔직히, 그 사건이 일어난 곳과 이 관문도시와의 거리는 꽤나 되었고, 웬만한 고수의 신법이 라고 하더라도 '하루 반'만에 도착할 거리는 결코 아니었다. 그렇지만 영은 보통 고수가 아니지 않은가?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영은 인간이고, 먹는 것을 꽤 즐기는 인물이므로 세끼 비싸게 챙겨먹 고, 틈틈히 쉬고, 소모된 공력 보충하는 일로 시간을 잡아먹었기에 하루 반 걸린 것이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반나절이면 도착했으리라. 게다가 길이 아닌 산을 거쳤기에 더욱 그러했다. 물론 시선을 피하기 위해 산을 거쳤지만 말이다. 만약 비등술과 대자연, 유검, 풍천무를 응용해 공중을 날았더라면 훨씬 빨리 도착했을 것이 지만, 그는 길과 산을 오가면서 달렸기에 음속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늦을수 밖에 없었고, 그는 인간이기에―아직 까지는― 강기막에 와 닿는 음속충격파에 대비할 공력과 신법에 소 모되는 공력도 상당했기에, 그것도 보충할겸, 운기 조식도 해 가면서 왔기에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어쨌든, 이틀의 여유 기간 소모를 위해 머리를 싸매고(?) 뭔가를 잔뜩 중얼거리고 있을 즈 음, 영이 보기에는 애송이, 무림인들이 보기에는 기재의 범주에 들어가는 녀석들이―라고는 하지만 여성들도 끼어있는 데……― 합석을 청했다. 그가 정말로 반로환동의 고수여서, 일흔, 혹은 백세를 넘겼다면 코웃음을 쳤던지, 아니라면 나이를 숨기고 영계(…) 라도 꼬셔 보기 위해 그저 합석에 동의 했겠지만, 오직 그가 합석에 동의한 이유는 오로지 '정보획득'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를 보며 눈을 반짝거리는 여성들을 무시하는 것이고……―여성은 넷이었는데, 그중 둘은 그런 반응은 아니었다.― 이런 반응을 보면 뭐라고 해야하나…… 그렇다고 해도 이곳은 교통이 그다지 원활한 곳은 아니었고, 마차고 뭐고 있다고 해도 워낙 험한 세상이라 한 번 만난 사람을 다음번에 다시 만날 기회 가 있다고 할수 없는 일인지라, 웬만한 기재가 나오면 앞다투어 약혼이고 어쩌고 해버리면서 몸 조심하도록 발을 묶어버린 다.―거의 소용 없지만.― 그의 나이는 17세, 혹은 18세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 자신들 앞에 있는, 어려보이는, 그러나 20에서 40대의 연령 층인, 주안술 발휘 팀(?)의 나이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실제 나이가 10대 후반 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신연령까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뭐, 성장기 때부터 주안술을 쓰기 시작하는 부류도 있는 바, 그때부터는 나이가 상당히 어려 보이게 되며 성장이 더디게 된다―라지만 키는 큰다.―. 하지만 10대 후반이라고 말할 노릇도 못되지 않은가. 영이야 별로 주목 받고 싶지도 않고, 귀찮음직 해서 24세라고 내뱉어 버렸다. 이쯤 되면 저 열명의 정파놈들(……영은 정도, 사도, 마도 아니다.)의 연령대에서 중간 쯤 되 므로, 위로는 예의를 갖추고, 아래로는 약간의 연륜(?)을 보여주어야 하는 나이였고, 영으로써는 분장하고 나이를 속여본 일도―암살자의 일로.― 꽤나 많았기에 별로 불안감도 없었다. 그들은 영이 워낙 철면鐵面, 아니 빙면氷面 인데다가 말투와 분위기는 읽어내기가 힘들긴 하지만 오히려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듯한 느낌을 주었고, 스스로를 은폐하려는 듯, 말을 돌려 대자 그의 신상을 알아내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뭐, 겉을 보면 해끄무레한 미공자에 불과했지만 그의 분위기나 가라앉은 눈빛은 사람을 주 눅들게 만들기에 충분한 기도를 담고 있었고, 무엇보다 도대체 무술을 익혔는지 아닌지 알수 없지만 저 잘 짜인 체격은 마치 환골 탈태라 도 한 듯 보일 정도였다. 무술을 익혔는데 익히지 않게 보인다면 적어도 화경의 벽에 도전하는 인물 정도는 되어야 했고, 영이 확실히 그 쯤 되어보이니…… 게다가 지나치게 맑고 깨끗한, 혈관까지 비쳐 보일 정도의 피부는 확실히 공력을 수련 한 것처럼 보였으니…… 그렇다고 해도 좀 심했지만 말이다. 뭐, 영은 무슨 무공, 그것도 마교에서도 잘 익히지 않는 극음의 마공이나 정파의 무예 중에 서도 매도당할 만큼의 위력을 보이는 음한공이라도 익힌 양 지극히 차가운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극음의 마공의 여파인 탈색된 머리카락이나 마기, 그리고 정파의 무공의 정기 섞인 냉기조차 찾아볼수 없어 더 애매모호 했다. 그리고 몸에 은근한 살기가 배어들어 있어 보통 적전제자 따위로는 생각도 안될 만큼의 경 험을 쌓아 왔음을 느끼게 했기에 더욱 의문스러운 인물이었다. 이름을 적당히 둘러대기는 했으나 영과 비슷한 이름이라 '이 이름은 가명이오!'라는 것을 선전하고 있었기에, 그들(혹은 그녀들)은 그의 신상 정보 캐내기의 시도 조차 확실히 포기해야만 했다. 영은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눈치 챘음을 생각해 보면 이 열명은 꽤 억울한 상 황인 것이다. 하나같이 문파의 정복이 아니라 그저 백의, 청의 등을 걸친 것으로 보아 모두 '암행' 비슷한 것임을 '아주 철저히'드러내고 있었고, 무엇보다 눈에 서린 정기와 그들의 내공을 모두 읽어낸 영은 반쯤은 짜증을, 반즘은 비웃음 을 섞은 시선으로―잘 감추긴 했지만― 그들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천운검룡天雲劍龍, 운과 은영천검銀影天劍인 영을 맞이…… 혹은 감시 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영은 몰랐지만 이중 네명의 여성은 하나같이 칠룡사봉중 사봉에 속해 있었으며, 저 여섯 남 자놈들 중 둘이 칠룡에 속했다. 그리고 남은 네 남자놈들 역시 적전제자 급의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그런만큼 티가 나는것도 어쩔수 없었다. 영이 이 네명의 여성들중 두명이 운과 자신에게 중매로 소개된 여자라는 것을 알면 어떤 반 응을 보일지…… 심히 기대가 된다. "소협은 무슨일로 이곳에 들르셨소?" 마침내 한명이 정보 캐내기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 듯, 유도심문을 시도했다. 이러한 질문으 로 선방을 꺼낸 것이다. 그리고 영은 속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서두로 쓰기로 했다. "은영천검이 이곳을 지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혹시라도 볼수 있을지 싶어서 말입니다. 그 리고 제 기대만큼의 고수인지 알고 싶어서 말입니다." 수양이 깊은듯한 이들은 동요가 없었으나 나머지들은 흠칫 하는 것이 그의 감각에 폭착되었 고, 그는 그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깐 머뭇거리는듯한 느낌. 그리고 한명이 대답했다. "……그럼 소협은 그자에게 비무라도 청할 작정이시오? '기대한 만큼'이라니……" "그건 아니지만, 그가 과연 떠도는 풍문대로…… '무예의 끝'을 보았는지 알아보고 싶을 뿐, 별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나 자신과 어떻게 비무를 할수있나? 그리고 무예의 끝…… 그것은 나조차도, 그 초입조차 발견하지 못한것이지.' 약간 자조어린 생각을 맺었다. 영이 이렇게 대답하여 입을 막아버리자 그는 꽤 고민하는 듯,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말이 없던 좌중은 찻물만 홀짝이고 있다가 영이 말을 꺼내자 차 마시는 것을 중지했다. "식사 시간이군요. 다들 요기는 하셨는지?" 영의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그들은 시간을 깨달았고, 곧 식사를 주문했다. 점소이를 불러 적 당한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잠시 기다리자 금방 음식이 나왔고, 그들은 식사를 들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무심검이나 시도해 봐야겠군……' 식사를 제일 먼저 끝내버린 영은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점소이에게 다가가 식사비를 먼저 모두 지불해 버리고는, 방안으로 들어섰고, 곧 명상으로 들어섰다. 단단하게 잠긴 방 안쪽에 은은한 바람이 흐르기 시작했다. この て のばしても 이 손을 펼쳐봐도…… ただ かぜを だくだけ 단지 바람을 안을 뿐…… 045. 어두운 밤의 거리. 야시장이 열려 활발함과 더불어 쾌활함을 드러내고 있는 시장가에 질질 끌려가는―실제로 끌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힘없이 걸어가는 것과 붙잡힌, 빠져나갈길 없이 붙잡힌 것은 끌려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불행한 남자가 존재했다. 그는 바로 영이었다. 영은 그렇게 저주받을 여성이라는 존재들에게, 질질 끌려가면서 마음속으로 분노와 절망을 반반씩 섞어서 절규했다. 그의 절규가 얼마나 처참했는지, 운명을 주관하는 신은 자신도 모르게 영을 이런 상황으로 끌고 간 것에 대해 마음아픔을 느 꼈다. 하지만 어쩌랴? 영의 운명 탓인 것을! 그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그의 귓가로 여성의 목소리가 빨려들었다. 그 목소리는 맑고 고왔 으며, 기분좋은 듯 매우 즐거움을 담고 있어, 현재 영과는 상반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소협! 이번에는 저기로 한 번 가봐요!" '신이여……!' 다시한번 절규한 영은 두 여성들의 손길…… 아니, 정신적이고 약속에 의한 '보이지 않는 손'―'……그거 경제학 이론 아니었나?'― 에 의해 질질 끌려가면서 신을 불러 젖혔다. 하필이면 바로 오늘이 '야시장'이 열리는 날이 란 말인가!? 그렇게도 무심검을 찾아 그 실마리를 붙잡았건만! '저 망할 계집들이 난리 피우는 바람에 실패했잖아!! 주화입마에 걸릴뻔 했다고!' 이를 속으로 나마 열심히 갈아 붙이며 살기까지 풍기는 그였지만, 그것은 자신을 보이지 않 는 족쇄로 질질 끌고가고 있는 여성들…… 야시장의 거리는 질주(?), 아니, 누비는 이 여성들에게는 여파를 미치지 못했다. '크윽. 그 자식들……! 어째서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나 했더니, 역시나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그는 절규했다. ……질질 끌려가면서. 여색을 밝히지 않는, 오히려 과거의 가슴아픈 추억(?)으로 인해 여성기피증까지 생겨난 그로 서는, 평생 총각으로 보낼 가능성이 너무나도 커서 감당못할 지경인 그로써는 …… 이따위 짜증나는, 사람을 고생시키면서 까르륵 거리는 계집들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 도 짜증과 혐오의 대상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객잔의, 자신이 얻은 방에서 명상을 하며, 무심검無心劍…… 즉, 무검無劍이자 오광검五光劍 을 향해 비상정悲想感, 비비상정非悲想情으로 들어선, 맑고 공허한 정신으로 화化해 보기도 하고, 상념의…… 혼돈스러운 우주속에 자신을 던져서 그 난류에 자신을 맡겨 보기도 하고, 생각나는 방식대로 '검을 잊으'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심검心劍…… 마음안에 검을 형성화한 그로써는 검을 잊기가 하늘의 별따기……, 아니, 조금 참신하게, 영이 여성을 보고 정상적인 남녀의 호감을 갖는것보다도 몇배는, 아니…… 몇십배는 어려웠다. 무심검…… 검을 잊는다는, 벨수 없는 것이 존재치 않는다는, 심검을 뛰어넘은 비검지검非劍之劍의 기 예. 뜻으로, 즉…… 의지로 사물을 베어버린다는, 오광검이라는 별칭을 지닌 신화경의 검예…… 하늘을 베고, 땅을 가르고, 그 어떤 것도…… 혼백마저 잘라내어 소멸로, 허무로 인도해 버 린다고 하는 궁극의 비검검예非劍劍藝. 그만큼 끔찍하기 짝이없는, 가공할 난이도를 지녀서 그로써도 골치아픈 그것을 이루기 위해 불철주야不撤晝夜로 명상과 운기조식, 그리고 검술의 고찰을 행하고 있었으나 진전은 반의 반보도 없었다. 오히려 혼란스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 '다시…… 유검, 무형무無形舞를 완성시키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나…… 하지만 그것은 무심검보다 더 힘겹고 진척도 없는데…… 아니면 금강폭열공金剛爆熱功을 수련해야 하나…… 도대체가 길을 잡을수 없군……' 새로운 우주로 몸을 던지고 싶어, 다시 명상과 상념속으로 빠져들어가 자신도 모르게 무아 에 빠져들어버린 영. 고민과 고민, 그것마저 깨끗하게 잊어버린채…… 부동심不動心이 아닌 청정심淸淨心으로 빠져들어가기 시작하여 자신도 모르게 북명천지조화 심법北冥天地造化心法의 구결을 읊으며 그것을 운용하기 시작한 영…… 그리고 대자연의 기도가 그의 몸에서 풍겨오기 시작했다. 곧 그의 몸을 회전하던 영기의 고 리가 공포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회전하며 점점 그 형체를 흐트러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렵…… 벌컥―! 누군지는 모르나 영이 문단속을 하지 않은 것을 깜빡 잊고 운기조식에 들어선것도 모른채, 그냥 벌컥 연게 틀림 없었다. 그탓에 영은 마침 보이기 시작한 무심검의 실마리를 그대로 놓쳐버렸고, 주화입마에 들뻔한 사태를 간신히 추스리며 경락을 안정시켰고, 그것이 너무나 신속해 그의 분노를 받아 오체분시당하더라도 할말이 없을 침입자는 그것을 눈치채지도 못한채 웃으면서 영의 옆으로 다가왔다. "소협! 운기조식 중이었나봐요? 죄송해요!" 빌어먹을 계집…… 사봉중의 한명인…… 남해화南海花. 현아가 입가에 아름다운―영에게는 주둥아리를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미소를 걸어 영에게 흩뿌렸고, 영은 속으로 피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딱딱한 표정으로, 은 근한 노기를 그녀에게 날려보내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뭘 괜찮아! 저 빌어먹을 계집! 정파와의 싸움때 반드시 내가 직접 목을 베어 죽 일테다! 크아아아악!' 여건만 허락된다면 저년의 몸을 자근자근 자르고 다져서 양념으로 버무린다음 돼지먹이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영은 노기와 그 상상을 억누르면서 딱딱한 표정을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하며, 되도 록 살기를 억제했다. 만약 정신수양을 별로 쌓지 않았더라면 마음속으로 참을 인忍자를 수십개 그려내고도 참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그는 찬사를 보내주고 싶을만큼 잘 참아냈다. 솔직히 누가 참겠는가? 아무리 사봉의 여인이라도 무림인이었다면 그 절세의 심득이 아까워 서라도 검을 뽑고 검강을 사정없이 뿌려버렸을 것이다. "저기, 소협! 오늘 야시장이 연다는데, 함께 가시겠어요?" 얼굴에 묘한 홍조를―영으로써는 짜증만 나는― 만들어내며 그녀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고, 영은 그 역겨운(?)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빨리 벗어나고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시작인지도 모르고…… 그리고 맹주의 딸인 옥유화와 불안감에 젖은 화영영은 방안에 틀어박혀 생각을 정리하고 있 던 차라 야시장에 나갈수 없었고, 그 덕에 여섯의 남자들은 그녀들의 성미를 알고 있는 터라, 그리고 몇번 질질 끌려다녀봤던 터라 올타꾸나 하고 그녀들을 영에게 떠념겨 버리면서 안쓰러운 시선을 던졌고…… 영은 의문을 떠올리지도 못하고 그녀들에게 질질 끌려, 말 그대로 질질 끌려 야시장을 나돌 아다니게 된 터였다. 이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의 관계에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怨讐같은 여자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며 시달림을 당하는 영이 용케 폭주하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영은 이따위 계집들에게 끌려다녀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통탄하며…… 그렇게 야시장이 닫 을 때까지 끌려다니며 그녀들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이렇게 영의 고생길의 서막이 올랐다. ……역시나, 그가 가장 증오하고 싫어하고, 공포스러워 하는, 가공할 존재는, 여자였다. 그런데, 운은 어떻게 된걸까? "응?" 운은 경계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파의 녀석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실력을 가늠하 며 시간을 보내다가 영이 생각났고, 곧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푸르른 하늘위로 형형색색의―빛을 받는 면마다 색이 다르니까.― 모습을 보이는 구름과, 그 구름을 투과하여 쏟아져 내리는 금빛의 햇살, 그리고 멀리 보이는 성문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소설처럼 하늘에 누구 모습이 비치진 않네." "예?" 마차를 몰고있던 이가 그렇게 반문하자 운은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라고 말한다음 다시 마차 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중얼댔다. "뭐, 영이니까…… 잘 하고 있겠지?" 046. 혈천교와 마교의 전투양상. 피가 뿌려지고 살점이 굴러 다니는 곳, 세외 무림의 한곳이었다. 완벽한 세외라고 할수는 없 는 곳이었지만…… "역천악마진逆天惡魔陳……" 지옥이다…… "지옥이 세상에 강림했다……" 지금 이곳은 지옥이 사역되었다고 생각될만큼 끔찍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눈에 핏발이 서 검에 붉은 검기를 일으키며 그것을 휘둘러 사람의 요혈과 베이면 무조건 죽 는 부위를 참륙해가는 자들, 이미 죽은 시체에 검을 찔러넣고 광소를 터뜨리다가 그와 동시에 머리가 수직으로 쪼개져 죽는 자들, 장력을 발출했다가 뒤에서 습격당해 머리통이 부숴져 그 골편을 사방으로 비산시키는 자 들…… 개중에는 시체의 심장을 뽑아들어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으며 광기어린 눈으로 사방을 쏘아 보는 자도 있었다. 역천악마진…… 천天의 순리順理를 거부하는 악마의 힘을 한데 끌어모아 넓은 곳에 덮어 마인魔人들을 날뛰 게 만드는, 마교에서도 제일 먼저 금지령을 내린 진법. 그 마교에서조차 두려움에 질려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역천악마진이었다. 그런 역천악마진이 마교의 힘의 반이라는 혈천교에게 사용되고 있었다. 그들은 미쳐있었으 나, 같은 마기를 뿜어내는 자들과 상잔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피가 역천악마진에 의하여 더더욱 마기를 품고 날뛰었으며, 그럴때마다 그 피의 소 유주들은 미친 듯이 날뛰며 사방으로 검기를 날려댔다. 공력 소모가 없다는 듯 날뛰는 마인들, 저 안에서는 마공을 익히지 않은 자들은 그 힘과 기 세가 줄어들고, 마공을 익힌 자들은 오히려 그 힘이 증가하는 진이었다. 그리고 진 자체에서 발산하는 마기가 마공을 익힌 자들의 공력이 더 쉽게 회복되도록 도와 주며, 끊임없는 피에의 갈망과 광기를 불러일으킨다. 눈에 공포를 실어 중얼대던 혈의인은 끝에 칼날과 더불어 사람의 두개골이 박혀있는, 피에 젖어있는 혈장血杖을 치켜든다음 주위를 향해 외쳤다. "혈령환술대! 당장 마령진을 형성해 역천악마진을 몰아낸다!" "예!" 곧 그와 같은 혈의인들 열두명이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어 기괴한 문양의 방위로 섰고, 그것 만으로도 강렬한 사기와 요기가 발생해 미약하게나마 역천악마진을 몰아냈다. 그리고 곧 그들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역천으로 향하는 어둠의 조각을 불러내어 사멸로 향하는 법을 실행하노니……" 주변의 혈의인들은 하나같이 알아들을수 없는 언어를 중얼대어 강렬한 요기로 형성된 혈무 血霧 일으켜 역천악마진의 위세를 서서히 제압하기 시작했고, 전장에 넓게 퍼져있던 역천악마진의 장場을 밀어내었다. 그 탓에 그들의 주변에 있던 마인들은 혈천교의 술법사들이 사용하는 악독한 사술에 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곧 혈의인들의 지팡이 끝에서 뻗어나온 지독한 흑적색 독이 뿜어져 나와 한차례 마교인들을 휩쓸었고, 그들은 그 자리에서 녹아내려 대지로 스며들며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악!" "크악……!" 그 무렵 혈령환술대의 대주의 입에서 주문의 끝을 알리는 말이 흘러나왔다. "어둠속에서 피어오르는 피의 광기를 여기 한데 불러 지옥의 업화로 우자들의 영혼을 정화 하여 피의 법을 떨친다! 천멸혈뇌파天滅血雷波!!!" 파츠츠츳―! 곧 그의 혈의가 미친 듯이 펄럭이기 시작했고, 그의 다리를 기점으로 시작된, 피 냄새가 나 는듯한 불쾌한 폭풍이 일렁이며 그의 주변에 요동쳤고, 곧 그의 몸 근처로 핏빛의 전류가 일렁이며 한군데로 모여 거대한 하나의 구를 형성시켰다. 그것은 그 기운만으로도 폭주하는 마인들과 주변의 자연력을 거칠게 밀어내기 시작했으며, 아스타르 대륙에서 사용한다는 마법도, 무림인들이 사용하는 기도 아닌 기괴한 기운의 장벽을 형성하며 지진을 일으켰다. 쿠구구구……! "캬핫!" 점점 거대해 지기 시작한, 흑색이 섞여든 흑적색의 뇌염구는 마침내 집채만하게 변하였고, 그것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든 듯, 혈령환술대의 대주는 기괴한 기합소리와 더불어 지팡이를 치켜들었다가 마인들이 밀집한 지 역으로 그 끝을 뻗었다. 쿠오오오오…… 곧 기괴한 파공음과 더불어 주변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하였고, 이 근처의 모든 이들은 몸을 엄습하는 사기와 요기에 몸이 짜릿짜릿 해짐을 느꼈고, 그것을 견디지 못한 이들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토해냈다. 거의 무경에 이르른 능력자나 혈천교인들을 제외한 모든 마인들은 그것을 밀어내기 위해 혼 신의 힘을 다했고, 그리 강하지 않은 마인들은 고통에 몸부림 쳐야만 했다. 쏘아져 나간 뇌염구,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마인들의 밀집한 지역에 쏘아져 들어가 격돌했 고, 미처 몸을 날리지 못한 마인들은 뇌염구에 잠식당하며 타들어갔다. 그리고 뇌염구가 바닥에 격돌했을 때…… 대지는 울부짖었다. 그 거대한 요기의 덩어리가, 그 핏빛의 기분나쁜 기운이 대지에 닿았을 때…… 거의 300여 명의 마인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으로 거대한 초신성이 형성되었고, 굉음과 더불어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라 사방을 삼켰다. 쿠오오오오오――!! 뜨거운 바람은 상승기류上昇氣流를 만들어냈고, 그 상승기류는 강력한 요기의 회오리와 더 불어 주변을 덮쳤다. 그 열기를 직격으로 맞은 이들은 살이 타들어가며 그 자리에서 재가 되어버렸고, 그렇지 않 다 하더라도 상당한 화상을 입었다. 적과 아군이 밀집한 지역의 중앙에 저런 기술을 날려버린 그의 무모함과 잔악함도 놀라웠지 만, 그가 사역한 천멸혈뇌파의 위력은 더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방금의 일격이 한계인 듯, 대주는 무릎을 꿇으며 혼탁한 피를 토해냈다. "큭…… 천멸혈뇌파에 삼켜질뻔 했군……" 그는 입술을 깨물면서 얼굴을 덮고있던 혈의를 걷어올렸다. 놀랍게도 드러난 얼굴은 20대 초반의 준수한 미공자의 그것이었다. 머리카락이 흑색이긴 하였으나 붉은 요기가 섞여있어 오한이 돋게 만들었고, 눈동자에 찬 번들거리는 광기,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맑고 차가운 신념은 그를 보통 사파의 인물로 생각할수 없게 만들었 다. "대주!" "괜찮다! 흑염산멸파를 이용해 적들이나 저지해라!" 그는 손을 휘저으며 그들에게 공격하라는 명을 내렸고, 곧 그들도 주변의 혈천교의 고수들 이 각기 사공을 이용해 마인들을 저지하고, 전투주술대들이 요사한 술법과 간접 공격술, 그리고 혈장을 휘둘러 마인들을 공격 하는 사 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목소리로…… 저 마인들을 없애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모든 힘을 다해 진언을 염했다. 그런데 여섯명만이 그가 사용하라고 명령한 흑염산멸파를 사용했으며, 여섯명은 진법을 이 용해 다른 주술을 펼치고 있었다. "지옥의 불꽃의 한 자락에서 파생한 나락의 힘을 이 자리에 한데 그러모은다. 파멸의 힘으 로 화한 지옥의 불꽃이여! 파괴의 노래를 부르라. 흑염산멸파黑焰散滅波!" 사이한 진언이었으나 주문의 형식은 룬Rune이냐, 아니냐 일뿐, 아스타르 대륙의 마법과 유 사한 면이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짧은 주문이 끝나자 그들은 혈장을 위로 들어올렸고, 그들의 몸에서 피어오 른 뜨겁고 사이한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다가 한점을 향해 뭉쳤고, 새카만 불꽃을 만들어냈다. 혼탁하게 회오리치는 불꽃의 구, 그것의 크기는 아까 보였던 핏빛의 뇌염구의 오분의 일 정 도였으나 그들이 전장을 향해 혈장을 향하자 수백개로 갈라져 흑색 불꽃의 비가 되었고, 곧 전장에 빽빽히 내리꽂혔다. 콰콰콰콰콰……!! "크악!" "끄악!" 미처 방어하지 못했거나 호신강기마저 파괴된 마인들은 흑염우의 제물이 되어 삼켜졌고, 해 골만 남던지, 아니면 재만 남아 바람속으로 사라져갔다. 흑색의 폭염이 그치고 나자 곧 기운을 끌어모으던 남은 여섯명의 혈의인들이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주문을 읊었다. "역천의 대지위로 사자死者들을 불러내어 대지 위로 발을 디딜 기회를 선사한다. 망자들이 여! 일어나 생을 향한 강한 적의를 불태워라! 역성시립逆星屍立!" 주문을 끝마치자 마자 한결같은 목소리로 혈장을 들어올린 그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곧 그들이 치켜올린 혈장에서 흑색의 빛줄기가 뿜어져 올라갔고, 그것은 역상성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흑색의 역상성에서 강렬하기 짝이없는 요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대지에서 뿜어져 나온 강렬한 죽음의 냄새와 결합했다. ……그리고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너무나도 잔악한 일이…… 아스타르 대륙의 마법중 금지마법에 속하는…… 너무나 잔악해서 금지마법에 속하는 에니메 이트 데드Animate Dead 마법과 비슷한, 역성시립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시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なにか のため いみおも たせた せつな 무엇을 위한 의미도 기대할 수 없는 순간…… たち とまり ほうむる かなしみ のかけら 멈춰서서 묻어버린 슬픔의 조각…… 047. 이 광경을 딱히 묘사하자면, 이 말밖에 없을 것 같다. 이곳은…… 시체들이 일어서 학살을 자행하고, 그들을 바라보며 옛 동료를 생각하면서도 살기 위해 그 사체를 '부수어야'하는 이곳은…… 오로지, 이 말로만 표현되었다. 이곳은, ……산지옥이다. "으아…… 으아아!" 마인들마저 질려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함께 싸우던 전우가, 그리고 죽였다고 생각했던 적들 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눈알이 흘러나온 사체, 몸에 구멍이 숭숭뚫린, 그 통상에서 피를 주르륵 흘리면서도 다가드 는 사체, 그리고 심장이 관통당한 시체…… 다리가 없어 몸을 질질 끌면서도 마침내 한 마인의 다리를 붙잡고 올려다 보는 시체…… "으아……!" 다리를 잡힌 마인이 자신도 모르게 기를 가득 끌어올려서 흑색의 기운을 품은 장으로 사체 의 머리통을 후려쳤고, 곧 펑 하는 소리가 들리며 장력을 머금은 손바닥은 여지없이 사체의 머리통을 깨어 부쉈다. 퍼억― 손에 진득한 뇌수가, 미지근한 뇌수가 묻어나오는 느낌과…… 질척한 뇌질이 적셔드는 느낌 은 최악이었다. "꾸르르륵……" "가르츠츠츠……" "그웨에에에……" "퀴에에에엑……!" '그것'들의 비명소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감정이 실린 절규, 비록 말소리는 아 니나 뜻은 충분히 전달되는 소리는…… 어떻게 보면……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너무나도 슬펐다. '죽여다오.' '나를 안식으로…….' '나에게 어둠을…….' '왜 죽여주지 않는거냐!' 그런 영혼의 절규를 들은 마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며 공력을 마구 퍼부어 시체 들을 노렸으나 일어난 시체들의 특징과 누워있는 시체들의 상황을 간파하고 머리를 정확하 게 부수기 시작한 마인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특히 단전이 파괴되지 않은 마인들의 사체나 성대가 남은 혈의인들의 사체들 덕분에 마인들 의 피해가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다 쉰듯한, 거칠고, 아까의 비명이 반쯤인 주문소리들은 마인들도 공포에 질리게 할 정도로 끔찍했다. 지옥의 가장 바닥이라는…… 아비규환阿鼻叫喚의…… 무간지옥無間地獄과 같은 참상이, 전 장을 화폭으로…… 그렇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시체들 사이로 뛰어들어 검을 휘두르고, 장을 날렸으나, 시체가 같은 장법, 같은 검법으로 마주쳐올 때 그들은 미칠것만 같았다. 그나마 혈의인들의 시체를 벨때는 차라리 나았지만, 마교의 전우들을 상대할때는 죽을맛이 었다. 그들도 전우애가 있다. 그리고 마인이라고 해도 사람이다. 같은 친구가, 같은 밥을 먹었던 이들이…… 사체가 되어 영혼의 절규를 터뜨리는 것을 보며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사체의 머리를 최대한 노려 부수었다. 그리고 그들도 시체들과 어울려 한바탕 검무를 추며, 그렇게 스러졌다. 붉은 검기도, 흑색 검기도, 그 어떤것도…… 그 검무를 위한 음악으로, 시체들의 비가悲歌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 비가마저도 마침내 멎었을 때, 시체들을 유지하던 여섯의 혈의인들은 쓰러져 내려 기절했다. 마교의 교주는 분통을 터뜨렸다. 극마인 그가 마기를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뿜어내며 소리 를 질러대자 수하들은 공포에 질렸다. "그깟 혈천교에 우리들이 밀린단 말인가!" 그의 분노에 찬 음성에 수하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그 사실이 그를 더욱 분노케 하는 듯 했 다. 이놈의 수하들은, 도대체가 필요할 때 말이 없다. "역천악마진을 펼치고도 이 지겨운 공방전을 끝내지 못한단 말인가!!" 그의 분노는 쉽사리 풀어질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 마교가 혈천교에 밀리는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교의 세력…… 아무리 드러 난 세력이라지만 8할이 밀리고 있는 것이었다. 한 번 드러나면, 가장 최하위의 대대도 무림을 뒤집는다는 파천오대도 모두 출동시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공방전은 지속되었다. 특히 전투의 막바지에 등장한, 시체를 일으키는 사 술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역천악마진의 장마저 밀어내는 강렬한 사기를 발산하는 사체들 때문에 마인들은 더욱더 위 세를 잃고 공격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사상자들은 더욱더 컸다. 게다가 파천오대중 2할의 목숨이 날아가버렸고, 그나마 남은 8할중 절반이 한삼일은 쉬어야 본래의 전투력을 발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지만 적들의 피해도 심각하다는 말을 듣자 어느정도는 그 기분나쁨을 물리칠수 있었지 만, 그렇다고 해도 고작(?) 사술 집단에 마교의 정예가 밀린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수치 였다. 하지만 혈천교 쪽에서도 비슷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면 어떨까…… 뭐, 초반에 유리했던 마교였지만 점점 승리가 불투명해졌다. 그리고 피해도 만만찮았다. 그러나 결코 멈출수야 없었다. 아직 그처럼 심한 피해는 아니었고, 적들이 자신보다 두배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었고, 무림맹과 천류세가의 대립으로 인한 세외무림에의 무관심은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것은 바 로 어부지리를 노리는 이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눈에 거슬렸던 혈천교를 없앨 좋은 기회고, 화근도 미리 잘라놓는 것으로 일석이조 였다. 천류세가가 무림을 삼키게 하면서 자신들은 세외무림을 평정하고, 마지막으로 그들과 자신들의 대결이 될 것이다. 천류세가의 인물, 은영천검이 교주의 아들을 치료해 주었기에 한 20년은 별 싸움 없을테지 만 말이다. "크으……" 교주는 불쾌한 듯 신음을 흘렸고, 그럴수록 수하들은 긴장해야 했다. 이렇듯, 마교와 혈천교의 대치가 이루어지는…… 혈향과 독향, 그리고 사체의 조각이 난무하 는 세외무림의 들판에서, 다시 아침이 찾아왔다. 긴장과 살기가 버무려져 범벅이 된 들판의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흐음…… 엉망이군. 그런 사술도 있단 말이지? 기록해 두도록." 운은 명령조로 수하에게 말했다. 전서응이 암호문으로 가득한 종이를 그에게 전달한 것이다. 물론 그나마 표지에 '아버님께……'라는 투의 글이 씌여있었고, 암호문도 얼핏 보면 비애에 가득찬 소식을 전달하는 글귀였다. 그래서, 털려도 별 상관 없었다. 전서응 셋이 한꺼번에 도착하여 무사히 암호문을 그에게 건 네자 곧 천광대원 한명이 그것을 해석하여 운에게 건네었고, 운은 그것을 훑어보며 그렇게 중얼대듯 말한 것이다. "혈천교…… 의외라고 하지 않을수 없군, 아무리 마교의 전력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을 상 대로 이렇게 비등한 싸움을 펼칠수 있다니…… 굉장해! 비록 지연시간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런 사술로 그 마교를 상대하고 있다니…… 큭, 혈천 교도 한가락 하는군. 다음에 만나면 무조건 나나 영이 나서야겠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운은 서류를 넘겨 이리저리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삼매진화를 운용해 종이를 말끔히 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손을 휘젓자 무형의 바람이 일어나 잿가루들을 객잔의 창문 밖으로 날려보냈다. '흐음…… 출발해야겠군.' 아침이 밝았다. 그리고 천류세가의 가주. 천운검룡, 유운을 태운 마차와 천광대와 암살대들 은 빠른속도로 영과의 접선장소를 향해 치달았다. 운이야 알수 없었지만…… 그 무렵, 영은 두명의 여성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면서…… 너무나 도 고통스럽게 시달림 당하며 저 멀리에서 달려오고 있을…… 운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괴로워 하고 있었다고 하던가? '운! 빨리 좀 와―!' "소협! 어디 문파 출신이세요?" 여전히 여성들은 끈질겼다. しんじて たものは すべて 믿고 있던 것은 모두…… かげを うつした しんきろう 그림자를 비치게 했던 신기루…… 048. 스트레스Stress 생물농축증生物濃縮症. 영은 의문을 품었다. ……스트레스도 생물농축될까? 정말 된다면, 정신과건, 외과건, 내과건…… 의사라면 누구나 자신을 '스트레스 생물농축증' 으로 결정짓고, 진료표에 글귀를 덧붙일 것이다. '한적하고 조용한 장소를 요양소로 추천함' 따위의 글을…… 어쨌든, 만약 정말 스트레스 생물농축증이라는 병이 있었다면, 정말 중금속처럼 생물농축된 다면 나는 뇌세포의 파열로 죽었을거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씁쓸한 미소를 띄워올렸다. 모 소설의, 여성들에게 휘둘리던 누구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기로 살 방도를 찾았다지만, 자신은 그럴수도 없잖은가! '그래…… 그 소설 이름이 신X였던 것 같은데……' 똑똑― "소협! 들어가도 돼요?" 오늘도 영은 신을 찾는다. '신이여!' 왜냐고? 보이기만 하면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기 위해서다. 영은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 놈의 신에게…… '내 마음속에서라면 너는 백번도 더죽었어!' 영은 도저히 적응이 되지않는, 여성들의 피습(?)을 견뎌내기 위해 심호흡을 한다음 입을 열 고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그나마 남해화 현아는 저번에 영이 주화입마에 들뻔한 이후 문을 두드리는건 꼭 하고 있었 고, 이름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어쨌거나 귀찮기 짝이없는 일이었지만, 그에게 있어서 여성은 남성의 반대. 그리고 귀찮은 존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으므로, 남해화 현아와 그에게 대쉬하는(?) 삼재화, 남궁린만 불쌍해질 뿐이었다. 현아와 남궁린은 누가 본처가 될것인지 상의까지 했다던가…… '운…… 제, 제발…… 빨리 와줘……' 끼익―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녀의 화사한 자태가 드러났다. 수컷이라는…… 그리고 변태가 아니라는 전제가 붙은 수컷이라면 누구나 반응할듯한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섰으나, 영은, 보통 수컷도 아니었고, 변태도 아니었다. 고로, 그녀의 미모 따위에는 한점 동요도 없었다. 하지만 외모로 그를 동요하게 하려면 적어 도 보고 눈이 썩을 정도의 추물이거나, 초신의 미모에서도 하아안 ― 참을 더 올라간 등급의 미모여야 했기에 잔뜩 꽃단장을 하고 나온 그녀로써는 헛짓으로 체력만 뺐다고 할수 있었다. 동요, 후자의 동요의 경우라도 동요일뿐, 아마도 금방 씹어버릴게 틀림 없었다. 그는 기억하 고 싶은것만 기억하므로…… 기억하기 싫은 일도 기억이야 하지만 아예 묻어두어서 직접 끄집어 내지 않는 이상은 그런 일이 있었다. 만 어렴풋이 기억해 놓는 것이다. ……참 편리한 기능(?)이 아닐수 없었다. "그래, 무슨일 이십니까?" 속이야 어쨌든 겉이야 정중하게, 그리고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약간 쓴 미소를 입가에 만들 어내며 말했다. "저어, 오늘 시간 있으세요?" "……" 있다고 대답하면 하루종일 괴로울것이고, 할 일이 있다고 대답할 경우…… 으윽. 아마 눈물 을 흩뿌리며, 엽기적인 대사를 발할지도 모르고, 속상해서 완전히 저기압 모드로 돌입할 확률이 컸다. 전자도 싫었지만, 후자는 위험성이 컸다. 특히 그놈의 여섯 남자놈들이 수군거릴게 틀림없는 데…… 그나저나, 그 여섯놈들은 의외로 재미있는 놈들이라 걸레가 되어 들어온 영을, 겉모습은 멀쩡한 영을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눈동자에 담긴 피곤을 읽었는지, 술을 한잔 권하며 위로의 말까지 건넸다. ……역시 남자들 끼리는 통하는게 있는건가. 특히 그들같은 기재들이나 환골탈태와 심법, 그리고 영약의 영향으로 인해 외모만 극악하게 바뀐 영 같은 경우는…… 그 여섯녀석들 같은 경우도 따끈따끈한 연서들과 중매서들이 사정없이 날아오고, 영같은 경우 일일이 읽었다면 한 일주일은 식사도 못하고 거기 처박혀 있어야 했을 정도였 기에…… 그랬기에 더욱 공감대가 형성 된것일지도 모르겠다. '인기많은 남자는 괴로워. 라는 글귀가 생각나는군…… 어디서 읽었더라? 흐음, 읽은게 아니 라 괴짜놈들에게서 들은 것 같은데…… 누구였지?' ……이 강력한 포커페이스의 빙면자氷面者, 영…… 과거 아이스 블러드Ice Blood라는 별칭 마저 얻은 얼음의 검마저 기억하기 싫어 스스로 봉인, 소멸시킨듯한 그 인물은 대체 누구인가……? 여자라는 생물과 더불어 영의 천적이 아닐까 생각된다. 만약 그자가 여자라면 금상첨화錦上添花(?)겠지만 말이다. "소협? 무슨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너무 무리한 요구였나요?" 금새 시무룩해 하는 표정을 짓는 그녀는 20대 초반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기에, 비록 스 물아홉의 나이였건만, 그녀는 20대 초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청초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모습, 그리고 가녀린 몸매와 더불어 약간 작은 키, 그리고 새빨간 입술…… 왜 여기까지 넘어온걸까? 어쨌든, 사람으로 하여금 저렇게 손을 올려 얼굴을 살짝 가리면서 몸을 돌리는 모습은 상당히 동정심을 유발하게 만들었으나, 영에게는 '단 한점'의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이 여자가 갑자기 약을 먹었나…… 아니면 돌아버렸나?' 라는 생각만 품게 했을 뿐이다. 하늘은 왜 이런 녀석에게 여성들에게 인기있을만한 외모를 준건지…… 심히 통탄할 만할 일이었다. 결국에 그에게 치명적인 대식중 하나인, '육탄공격(?)'까지 펼쳐서야 허락을 받아내고야만, 무림오천이라는 은영천검마저 갖고 노는 현아의 무공수위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후훗……" 그의 팔꿈치를 살짝 붙잡아, 노골적인 애정표현을 하면서 달라붙는 현아나, 역시 그에게 달 라붙어 있는, 하지만 아주 약간 뒤에서 걷고 있는 남궁린이나…… 그에게는 정말 끔찍한 악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길을 걸어가는 세 미인들은 상당히 시선을 집중시켰다. 특히 영. 그를 바라보며 멍해진 여성 들은 수두룩 했고, 심지어는 남자들 몇마저―……위험한 놈들이다.― 입을 헤 벌리고 있을 정도였다. 그에 비하면 모자랐지만 두 여성도 시선 집중시키는데는 한몫 했다. 그래서, 영은, 지금…… 동하는 살심을 억누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했다. 마음같아서는 대자연 유검의 무형무나 심형어검강을 만들어 사방으로 난사하거나 어검술을 운용한 은영비로 생물이라고 지정된 존재들을 모조리 갈기갈기 베어버리고 그 피를 뒤집어 쓰고 싶을 정도였다. 어제의 야시장 후유증이 남아있는 영으로써는, 두 여성들이 다시 자신을 끌고가기(?) 시작하 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다시 그녀들의 외침. "소협! 저기로 가요!" 소협소리가 귀에 앉을 지경이었다. 귀까지 웅웅 울려올 정도다. 그는 소리없이 마음속에서만 미친 듯이 사방을 향해 강기를 난사했다. 그 상상만으로도 압 도적인 무형지기가 풍겨나와 그의 사람을 짓누르는듯한 기도와 섞여서 퍼져나갔다. 그것은 점점 가세되어갔다. ……그런데 이 여자들은 감각이 없는건가? 이것도 못느끼는 듯 여전히 까르르 웃으면서 돌 아다닌다. 그녀들이 들르는 상점 주인마다 바짝 얼고, 그들의 주변에서 사람들이 최대한 물러난지 오래인데…… '그런가……' 역시나…… 영에게는 끔찍한 일이었지만…… 사랑의 힘은 위대했다. '누가…… 나좀 구해줘……' 잠시 멈추어 서 있던 영은, 다시 그녀들에게 휘둘려 질질 끌려갔다. 그리고 영은 어제와 같 은 대사를 발했다. 마음속으로…… '운―! 빨리 좀 와! 크아아악!' 그의 마음속 절규는 공허하게, 소리로도 그 형태를 바꾸지 못하며 흩어져갔다. 그런 그를 운 명의 신은 안쓰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みんなの えがお かがやく とき それが おれの 모두의 미소가 빛나는 날 그것이 반드시…… きっと この だいすきな ばしょで かなった ほんとの ゆめサ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장소에서 이루었던 진실의 꿈이야…… 049. 스트레스 생물농축증. 이 새로 생긴 신종 증후군에 걸려 날이면 날마다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영. 그리고 그런 영을 구하기(?)위해 달려오는, 비록 사실은 몰랐을 지라도,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운은 요즘 시간마다 귀가 가려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영…… 혹시, 나쁜 일이라도 당한거 아냐?" 잠시 심각한 표정이 되었던 운은 피식 웃어버렸다. "에이…… 설마! 영이 그럴 리가 없지!" ……이렇도록, 운은 영은 신경조차 쓰지 않은채, 자신의 업무에만 몰두하여 그렇게 시간을 날려먹으며, 마침내 영이 대기중인 객잔이 존재하는, 무림맹으로 가는 관문도시에 도착했다. 비록 한시진은 더 가야했지만. 운은 미소를 지은다 음, 은영천검의 행세를 하고 있는 팔검위 녀석에게 말했다. "이젠 그 행세 안해도 될거야." "예." '뭐, 이젠 영과 만나는건가? 다시 합류로군…… 일은 제대로 처리 했을까?' 이렇게 중얼거리던 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에 찬 생각을 머릿속에 그려냈다. '성공했겠지. 영이니까.' 그만큼 신뢰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영. 그러나, 그런 영이 지금 여자들의 마수(?)에 걸려 헤어 나지 못한채 자신만 찾고 있다는 것을 알면 대체 그 신뢰감어린 표정이 어떻게 될지, 참 기 대가 된다. "……" 영은 마침내 자포자기 해서 '시도해 볼게 있다'는 투의 말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곧바로 명 상에 들어서 그 여성들의 손길을 간신히 차단했다. 그리고 명상에 든채 그 신화경의 실마리를 찾기위하여 이리저리 머릿속에서 발광해대며 그 렇게 명상속으로 잠겨들고, 그때의 경험을 되살려 보기도 했으나, 도저히 그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하아…… 정말, 그때가 아쉽군……" 마침내 명상에서 깨어난다음 영은 그때, 신화경의 실마리와 무형검의 실마리를 발견했을때 가 아쉬운지, 그렇게 후회하다가 이를 부드득 갈고 눈에 살기를 떠올렸다. 그 살기는 마치 거센 불길처럼 이글거렸다. "이게 다 그 계집들 때문이잖아……" 그렇게 분노를 표출하던 그는 쓴웃음을 짓고 고개를 저었다. "뭐, 언젠가는 되겠지. 오늘은 운이 도착하는 날이고…… 앞으로 한시진이면 오겠군……" 운이 그렇게 새벽바람을 가르며(?) 영을 향해 열심히 달려오고 있는 와중에, 그는 그렇게 시 간까지 짚어내면서 씁쓸한 미소를 만들어낸 다음, 짐에서 책을 한권 꺼내 이리저리 뒤적이기 시작했다. 거의 반시진이나 흘렀을 무렵, 그는 시간을 낭비하기 위해 펼친 세권째의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고, 마침 문이 두드려지자 이맛살을 찡그렸다. "……무슨일입니까?" "저에요. 소협. 일찍 와서 의아하시겠지만, 소협은 은영천검을 보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나 가서 대기해야죠!" '아…… 뿔싸……!' 영은 자신의 실수를 질책했지만, 이미 떠나간 시위요, 엎질러진 물이요, 떠나간 임이라(?). 이미 때는 늦어버린 것이다. 그는, 굴곡과 비통이 어린, 그러나 잘 감추어져서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눈치채지 못할 목소 리로 말하면서 간신히 치솟아 오르는 짜증을 억눌렀다. "……들어오십시오. 소저." '이러다가…… 나 머리카락 다 빠지는거 아닐까?' 영은 다만 이것이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앞으로 정체를 들켜서 파급될 효과는 전혀 생각지 않고, 지금 자신의 앞날만 걱정하는 영은, 과연 이녀석이 천재 맞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는 표정에 미약한 찌푸림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문이 삐걱 하고 열리자 곧 표정을 무표정 으로 수습했고, 곧 현아가 들어오자 속으로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땅이 꺼져버리라고…… "……" 앞으로 얼마 안남은 듯 했다. 벌써 멀리의 사람들이 꽤 큰 집단이 관문을 향해 다가온다는 소식을 전했고, 시간상으로도 이쯤이었다. 영은 그렇게 그 초인적인 시력에 약간의 공력을 더해서 아주 먼 원거리를 훑어보면서, 흙먼 지가 미약하게 일어나는 것이 시야에 포착되자 마자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드디어 해방이다. 라는 뜻이 어려있는 그런 미소…… 였다. "……음. 흙먼지로군……" 영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억누르며 짤막하게 중얼거리자 곧 그 소리에 옆의 사람들이 놀 란 얼굴로 그에게 시선을 던졌으나 곧 다시 그가 말한 흙먼지를 보기 위해 시선을 던졌고, 간신히 잠시 후에야 미약한 먼지 그림자를 발견할수 있었다. 그리고 더 한참이 지나서야 영이 본 수준의 흙먼지를 바라볼수 있었고, 그래서 영이 상당한 고수임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외견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지라도…… 그는 놀라운 안력眼力을 지닌 고수였던 것이 다. "……" 강렬한 정기精氣가 느껴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긴장했다. 아무리 무림사가라지만 이전에는 정파에 속했고, 무엇보다 강한 축에 속하는 세가였다. 그래서 이 정기는 살을 찌를 정도로 짜릿짜릿 했다. 상당 시간이 흐르자 곧 성문을 통과한 마차와 대단한 인원들이 줄줄이 지나가는 가운데, 영은 아직도 달라붙은 이 계집들을 완전히 떼어내어 버리기 위해 그대로 회풍무류回風舞流 의 신법을 운용하여 그대로 허공중에 솟구쳐 올랐고, 그의 도포자락이 매섭게 펄럭임과 동시에 그가 탄신을 응용, 마차 위로 그대로 착지했다. 암살대와 천광대들은 움찔 했으나 그가 누군지 알아보고는 움찔 하며 긴장한 몸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그리고 마차에서도 바깥에서 반응이 없자. 곧 누구인지 알아챘는지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멍해져 있는 가운데 영은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건 다음 그대로 머리를 풀어헤쳤 고, 다음은 마차 문을 가볍게 공중을 격해 열고는 내부로 들어섰다. 그가 들어섰음에도 안쪽이 잠잠하자 모두는 잠시 어이없어했다. '설마. 천류세가의 인물……?' 그와 동행하던 이들이 잠시 그렇게 굳어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천천히 움직이는 마차 에서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나자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마차에서 흘러나왔다. 앳된 소년의 것이었으나, 그 웃음소리에도 강렬한 정기와 기세가 서려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무의식중에 몸을 움찔거리게 했다. '가주의…… 웃음인가?' "킥킥킥…… 그, 그랬단 말야?" 운은 영에게서 그 기구한(?) 사연을 모두 들은 다음, 줄곧 이런 상태였다. 눈물까지 줄줄줄 흘리며 웃음을 억누르는 운을 황당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팔검위. 그리 고 영은 벌레씹은 얼굴로 운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평소에도 창백했지만 그는 최근 더 창백해진 안색이어서 그의 마음고생을 짐작한 운은 더더 욱더 웃음을 억누르려 노력해야했다. "젠장……" 그러다가 영은 눈을 반짝였다. 그의 웃음을 그치게 만들 수단이 생각나서이다. "거기에 무림오미중 제 일미…… 맹주의 딸이 있더군. 너한테 소개된 여자. 그것도…… 연. 상. 의……" "컥!" 운은 간신히 숨을 가다듬고는 그를 바라보다가 불안어린 눈으로 질문했다. "……진짜야?" "물론. 아, 나한테 소개된 계집도 있더군. 둘다 불안감에 떨고 있던 것 같던데? 큭, 운. 잘해 보라고." "……그러는 영은?" "나? 나야 어지간히 시달렸으니. 그리고 나에게 중요한건 검이지, 여자따위는 안중에도 없 어." 영의 말에 운은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나 역시." "어쩔거야?" 둘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면서 동시에 말했다. "뒤집어 엎는거지!" ふしぎな ほどに いきよせた ちからが 이상할 정도로 나를 이끄는 힘이…… みちびいた ひろがる せかいへ 인도하고 있어. 펼쳐지는 세계로…… 050. 살인귀殺人鬼 밟아주기 참륙혈귀斬戮血鬼, 이 관문도시에서는 이렇게 불리는 살인귀가 존재했다. 귀신과 같은 솜씨와 더불어 피를 즐기는, 그러면서도 무림인들은 피해다니고 약한 일반민들만 귀신같이 골라서 죽이며 도시를 누비는 자였다. 웬만한 무림인이 자신을 잡기 위해서 오면 피해있거나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다가 그가 떠날 즈음이면 다시 일반인들을 찾으면서 검을 휘두르고 생명을 앗아갔다. 그가 평범한 살인마였다면, 그냥 잡히지 않는 살인귀였다면 별로 주목받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주목받은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인간을 죽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무차별 살인도 흔한 무림에서 주목받게 된 이유…… 그것은 오직, 인간을 많이 가지고 놀아봤기 때문이다. 그의 살인 현장에는 항상 피와 장기가 널려있었으며, 그가 잡힌 것은 시체의 심장 맛을 궁금해 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씹고 있다가 고수한테 두들겨 맞고 잡혀간 것이다. 자그마치 황금 오십냥이라는 거금이 걸려있는 그는 죽여도 황금 십냥이지만 생포하면 황금 오십냥이었기에, 그 검기상인의 고수는 그를 잡아다가 관청에 넘겼다. 그는 특수한 능력이 있었다. 뭐, 특수하다기 보다는 '인간을 많이 가지고 놀아봤기에' 얻어진 후천적인 능력에 불과했기에, 그는 고수를 구별할줄 알았고, 불안과 그 이후의 사태에 대해서도 잘 대처할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뛰어난 것은 생존능력이랄까…… 짐승과 같은 감각, 그리고 1갑의 내공. 잔인한 손속과 수천번의 싸움으로 길러진 경험…… 그리고 생존능력과 더불어 강한 통찰력이 그를 지금까지 살려온 요인이었다. 최근에 지하감옥에 잡혀있다가 간수 하나의 목을 그어버리고검 한자루와 단검을 얻어 바깥으로 빠져나올수 있었고, 오랜만의 살인에 의해 발동된 피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는 다시 사냥감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여자들 몇이었는데, 무기도 없었고, 그의 감각에 의하면 무술도 익히지 않았다. 그는 색을 밝히지 않는다. 오로지 피를 원할뿐…… 그러나 여자들이 베는맛이 더 좋은것도 사실이고, 더 베기가 쉬운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먼저 은신한다음, 머리를 좀 감고, 몸을 좀 씻은다음, 간수가 갖고 있던 돈으로 그럴듯한 돈을 사 서 입은다음. 그럭저럭 꾸며서 평범한 무림인으로 위장했다. 그다음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그 여자들 주변에 잠복한다음 그 여자들이 시간이 어둑해 져 돌아갈 즈음, 한 여자를골목길에서 그대로 혈도를 점해 더 깊은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 아혈이 봉쇄되어 말을하지 못하는 여성이 공포에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그는 오랜만에 즐겁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맺은 다음 말했다. "큭…… 내가 원하는건 날 좀 즐겁게 해주면 되는거야." "……!" 혀를 깨물려는 듯 입을 움직여보는 듯 했다. 뜻을 오해한 듯… … 뭐, 자신의 뜻을 알아도 자살하리라 생각되지만. "오해한모양이군. 넌 피를 좀 보여주고 서서히 고통에 젖어 죽어가면 되는거라고. 킥킥킥……" 광기로 번들거리는 눈을 본 탓일까. 20대 초반의 평범한 아낙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는 반짝이는 비수를 들어 히죽히죽 웃으면서 먼저 그녀의 옷을 찢어내기 시작했다. 몸을 부르르 떨며 반항해 보려는 그녀였지만 곧 옷이 전부다 찢겨버렸고, 살인귀로 추정되는 변태녀석은 몸에 그 옷을 둘둘감았다. 피 튀는건 막아보고 싶었던 모양인지…… 그래도 한 번 잡혀서꽤 조심스러워졌다. 빠르고 신속하게…… 그가 결심하면서 검날을 그대로 여성의 발부터 껍질채 벗기기 시작했고, 피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 눈에 핏발이 선채…… 처참하고 강렬한 고통속에서…… 그녀는 죽어가기 시작했다. 희번득 거리는 미소와 더불어 검날이 나신을 누빌때마다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신경을 최대한 자극하면서도 신경조직이 상하지 않도록 검날을 놀려 시체를 발라(?)내는 그의 솜씨는 푸줏간에 취직하면 상당히 사랑받을듯한 솜씨였다. 정말로 벗겨내어(?) 버리겠다는 듯, 그의 검날은 점점 빨라졌으며, 그의 눈에 번들거리는 광기도 점차 강렬해졌다. 그리고 그가 골목길에서 나왔을때는, 몸에 혈향만이 조금 밴 채였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평범하고 말쑥하고 그럭저럭 정기가 감돌아 이런짓을 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도 않는 모습 이었기에 의심조차 없었다. 다음날 아침, 감옥의 시체와 발라진(?) 시체가 발견되고 나서 관문도시가 발칵 뒤집어졌고 그 가족들의 분위기가 초상집 분위기로 화해버렸고, 도시 자체의 분위기도 상당히 살벌 해졌지만, 도저히 살인귀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어수선한 무렵 영 일행들은 객잔에 짐을 푼 것이다. 살인귀로써는 불행한 일이었다. 솔직히 관문 내의 포졸과 병사들이 더 분주해진 탓도 있었기에, 쾌락(?)을 맛보기가 쉽지 않았기에…… 무엇보다, 그들이 삼일 후에 출발 예정이 아니라 다음날 바로 움직일 예정이었다면…… 그랬었다면…… 정말 그랬었다면 그가 지금까지 자신이 타인에게 저질렀던 가장 컸던 고통 보다 몇배나 더 큰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는 일은 없었으리라, ……그리고 현경의 고수를 사냥감으로 지목했다가 피떡나는 일도 없었으리라…… '……음? 왠지 어수선한데?' 아침 명상에 잠겨있던 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명상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감각의 범위를 극도로 넓혔고, 곧 사방의 소리가 그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많은 기척들이 느껴졌다. "……살인이라도 난건가? 하지만 뭐, 별로 주목받을 일도 없을텐데. 여기는 범법한다고 해도 무림 내 에서는 흔한 일이니 ……" 중얼대던 영은 귓가에 파고드는 소리에 그럼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웩― 이것좀 봐! 살을 다 발라놨어!" "으윽― 이걸 다 어떻게 치우지? 세상에! 내장을 토막쳐놓다니…… 다 걸어놨잖아! 우욱…… 껍질도 다 벗겨놨어…… 돼지 살 분류하듯……" "묘, 묘사 하지 말라고…… 젠장! 설마 예전의 그놈이 다시나온건가?" "그럼 큰일이잖나!" "어서 알리세!" '역시 잔인성 탓인가……' 그리고 그는 공력을 거두었다. 그 다음 생각에 빠져보다가 문득 떠오른 일 때문에 입가에 쓴 미소를 만들어냈다. 자신이 은영천검인 것을 알자 떨어져 나가는 두 여자는 그렇다고 쳐도 화영영은…… '젠장!' 그렇게 그가 은영천검임이 밝혀진 이후, 두 여자가 떨어져 나간 이후 화영영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젠장할, 하고 욕설을 내뱉어 보는 그였지만, 어쩌겠는가? 힘이 없는데…… 당하고 살아야지…… '……휴우.' 한숨을 내어 쉬면서, 영은 그렇게 오래도록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식사를 위해 바깥으로 나온 그의 근처로 화영영의 기척이 느껴졌고, 그는 등줄기 위로 싸늘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가는 감각을 맛보았다. '일전에 많이 맛보기는 했지만,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 이런 오한을 느낀적은 없었는데…… 그만큼…… 내가 질려있다는 것인가? 이 내가?' 영은 그녀의, 이전 두명보다 집요한 집착에 입가에 허무함을품은 미소를 만들어냈다. '인생무상이로고……' ……이상한데서 그런 깨달음을 찾지 말란 말이다! 그때였다. 운이 자신의 팔을 붙잡은것은. "잠깐, 나좀 보자고……" 헬쓱하게 질린, 나이는 다르지만 헬쓱하게 질린 영과 운은 서로 마주쳤고, 운은 그에게 달려들어 팔을 붙잡고 말했다. 그 간절함에 영은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만들어냈고, 운은 움찔했다. "쉽지 않지?" "말좀 해주지 그랬어…… 이렇게 심하다니……" 울상이 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영은 같은 비애감을 느끼면서 한숨을 푸욱 내쉬었고, 운 역시 땅이 꺼져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둘은 결의에 찬, 살기마저 담긴 눈으로 결연 하게 다짐했다. '무림맹따위 엎어버리겠어!!!' ------ [ 자축 & 설정 ] ------ 출현 - 갓 슬레이어God Slayer의 캐릭터들과 East의 캐릭터들과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2부 West 캐릭터들. +Space Ruler 캐릭터 셋. "왜 안오는거야?" 무의 공간. 그는 씁쓸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왜 불렀는데, 워프 게이트Warp Gate까지 친절하게 만들어놨는데 안 온단 말인가. 이렇게 늦어도 되는 건가…… 무의 공간이었지만 내부는 결코 무로 가득 찼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로지 백색의 공간, 음영조차 존재치 않아서 이곳에 한달쯤 있으면 미쳐 버릴듯한 순백의 공간이었다. 정말 만약 절대적인 무로 가득찬 곳이었다면, 아마도 절대영도로 순식간에 자신은 소멸해 버릴 것이다. "……이것들을, 잘라버려?(그랬다간 넌 죽는다.)" 그 극단적인, 칼맞을 생각까지 하고 있던 찰나 그의 옆에서 워프 게이트 두 개가 동시에 열렸고, 그는 천천히 걸어 워프 게이트의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걸어나온 인물들을 보며 그의 인상이 굳어졌다. "영과…… 류브인가……" '어, 어떤짓을 할지 모르는 녀석들인데…… 제어용 캐릭터(?)도 없고, 게다가…… 왜 류브는 하필 후반부의 모습인거야?' 가녀리고 창백한 인상의, 키가 상당히 비슷한 두명이 워프게이트에서 걸어나오자 그 시커먼 구는 닫혔고, 백색의 공간속에 드러난 새카만 점은 다시 지워졌다. 그리고 냉기를 풍기는 두 미 청년이 걸어나오자 그의 인상은 더더욱 굳어졌다. "네가…… 작가인가?" 영은 눈에 살기를 담으면서 '은영비銀影匕'를 끄집어냈고, 금속의 소성이 울렸다. 둘다 극도의 미남이었고, 싸늘한 인상이 그래서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둘에게서 뿜어 나오는 기세는 고룡의 드래곤 피어Dragon Fear에 근접하는 수준이었기에, 그는 식은땀의 결정을 매달면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갓 슬레이어에 현재 주연으로 나오고 있는 류브는, 그 선연한 금발과 더불어 얼음장과 같은 녹색의 눈동자를 들어 그를 쏘아본다음, 등뒤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푸드덕― 푸드덕― 백색으로 환하게 빛나는 날개 열 두장. 에테르 윙Ether Wing이었다. 상당량의 신성력을 끌어올리면 만들어지는, 시대를 풍미하는 성직자들마저도 한쌍이 한계라는 에테르 윙. 천사들의 날개와 같은 그 에테르 윙이 자그마치 여섯쌍 씩이나 인간의 몸에서 발현된 것이다. "……" 그의 식은땀의 양은 점점더 늘어났고, 자신도 모르게 몸을 더뒤로 급하게 물렸다. 그리고 류브의 왼손에서 환한 빛을 뿜는 은색의 검날이 형성되어 그의 손에 쥐어져 물질화 되자 신음을 삼켰다. "고, 고신검古神劍…… 아스트리프Asterif……" 본래 아스트리아Asteria(星彩石, 寶石)에서 파생된 이름이라고 하는데…… 보석처럼 아름답다는 뜻으로 만든 단어였다. 작가가 직접…… 그런데 그 아름다운 검은 지금 작가의 숨통을 노리고 있었다. 은백색 검날에서 은색의 신성력이 피어올라 그 검신을 휘감기 시작하며 환한 광채를 내뿜고, 영의 은영비에서 강렬한 심형어검강心形御劍剛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그는 마침내 등을 돌려 돌격했다. "으아아악! 왜 이러는거야!" "……몰라서 묻나?" 류브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음 휘둘러진 은색의 검날이 그의 머리카락을 몇올 베고 지나갔다. 그 자리에서 앞으로 구른 다음 그는 더 비쾌한 속도로 뛰었다. "사라져라. 악의 근원(-_-;;;)!!!" 류브는 눈에서 살기를 번뜩였고, 역시 그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 속도로 무섭게 지면을 가르며 쏘아져 들어오는 영에 의해 그는 죽음의 위기를 맞았다. "신룡현세神龍現世!(오…… 오랜만이군.)" "……타키온 슬래쉬." 영이 고함치며 은영비를 긋자, 그 은영비의 검날에서 소용돌이 치는 금색의 강기 회오리가 형성되었고, 곧 거기서 그 잘 빠진(?) 자태를 드러내며 자그마치 64마리의 금빛 강기룡이 포효하며 쏘아져 들어갔다. 그리고 류브가 음차원의 입자라는 타키온을 신력으로 끄집어 내어 그대로 가속화 시켜 검에 밀어넣은다음 휘두르자, 그대로 공간을 접어버리며 날카로운 기운이 작가의 등위로 스쳐지나갔다. 마치…… 개구리처럼 철푸덕 엎드려서 그 검날의 궤도를 피해내자 류브의 인상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대로 강기룡이 쓰러진 그의 등 뒤로 쇄도해들어갔다. "아토마이즈 매터Atomize Matter!" 기겁하며 소리치자 마자 강기룡이 확 풀어지며 흩어졌고, 그의 얼굴에 순간 반짝임이 어렸다. 물질을 원자화시켜 흩어버리는 9서클급 마법. 아토마이즈 매터. 기가 입자로 확 풀어지며 고형화된 강기가 사라지자 가벼운 미풍만이 그의 위로 흘러갔고, 그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맞다. 나 작가였지?' ……이건 바보라고 밖에는, 할수 없다. "역시 만만치 않군요. 하는짓이 바보같지만." "합공밖에 없나?" "다른 작품의 사람이지만, 잘 맞을 것 같군요." 두명은 공통된 적을 두고 손을 마주쳤고, 그대로 양로로 갈라져서 뛰려는 순간…… "자, 잠깐! 내가 왜 공격당하는지 이유나 알자!" 그리고 두명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황당함은 노기怒氣로 전환되었고, 곧 그 둘은 분기탱천하여 소리쳤다. "그거 알고하는 소리지?!" "정말 모른단 말입니까?!" "……몰라." 그 말에 두명의 얼굴이 허탈함으로 물들었고, 곧 공간을 울리는 힘들을 거두었다. 그리고 두명은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류브는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당신이 우리에게 한 만행이 생각나지 않는다니…… 그럼 열거해준다음……" 류브는 입가에 살기어린 미소를 만들어냈다. "죽여드리지요." "……뒷부분의 서비스는 제해줘." 빠직! 이마에 돋은 핏줄을 간신히 억누르며 류브는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먼저, 이분에게는……" 중략. "그리고 저에게는……" 역시 중략.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납득하지 못한다는 표정…… "그게 뭐 어때서? 극비이긴 하지만 영이 당할 일들 나중에 다 보상한댔잖아! 그리고 류브! 한 번 죽는게 뭐 대수라고? 신에게 갈구면서 수십번을 죽어나갔으면서!" 빠직. "바로 그것입니다. 그럼, ……죽어주십시오. 에테르 드레인 Ether Drain." 우웅― 류브가 다시 열두장의 날개를 형성하며 그것을 퍼덕이자 주변의 에테르들이 웅웅거렸다. 그리고 놈을 중심으로 하여 에테르가 서서히 밀려나가기 시작했고, 그는 곧 기겁했다. 그 역시 입을 씨부리며 외쳤다. "얼어죽는건 싫어! 에테르 드레인!" 곧 류브가 에테르를 몰아내 절대영도絶對零度를 만들어 작가를 말 그대로 소멸시켜버리려고 하자 그는 곧 같은 기술로 주변의 에테르를 다시 꽉 뭉쳤다. 이미 온도가 상당히 내려가서 인지 그의 눈썹에는 서리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리고 영은 사악하게 웃었다. "좋은 공격…… 그럼 내 차례인가?" 어느새 심형어검강이 다시 이글거리며 떠오른, 2m길이의 거검이 맺혀있는 은영비를 들어서 겨냥한 그는 외쳤다. "죽어랏! 심형이기어검강心形以氣御劍剛!" 그리고 그의 손에서 벗어난 2m길이로 강렬한 청광을 불태우는 검이 그대로 쏘아져 나갔고, 그대로 회전하며 그의 몸을 싹 하고 베어내려버렸다. 그 속도는 마치 섬전과도 같았기에 피할 겨를조차 없었다. "……컥!" 곧 깊이 베인 몸을 가누며 주저앉은 그는 신음을 흘리다가 멀쩡한 안색으로 일어났지만 고통으로 인해 상당히 힘들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시 은영비를 쥔 영은 잠시 이해가 안된 다는듯한 표정이 되었다. "……?!" 상황이 파악되어버린 영은 경악을 눈에 담아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크악!!! 아프잖아!!!" 그 말에 류브는 입가에 쓴 미소를 만들어내며 힘을 거둔 후 말했다. "아무래도 고통은 몰라도 소멸은 힘들 것 같군요. 그럼, 계속 고통만이라도 주어 보지요. 배상은 받아야 하니까……" 그 말에 헬쓱해진 그를…… 구원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뭐, 그들도 몇방 공격하긴 하지만 말이다. 공간의 문이 열리면서 일단의 사람 수십명이 우루루 몰려나왔고, 그의 얼굴이 화색 으로 변했지만, 좌중에서 뻗어나온 신룡현세神龍現世와 핏빛의 홍염. 헬 파이어Hell Fire한방과 일단의 마법들, 그리고 은색과 금빛 검기 수십가닥은 그로 하여금 식은땀을 뒤통수에 매달게 하기에 충분했다. "……으아아아아아!!!" 그가 사정없이 강기와 마법들에 난도질 당하며 고통에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공간은 잠잠해졌고, 그는 무너져 가는 신형을 간신히 복구했다. '오늘 각오는 했지만 너무 찢어지는데……?' "내 차례인가?" '이…… 목소리는…… 공간의 마술사. 유현인데.' "초 특대형…… 스페이스 펄스 웨이브Space Pulse Wave. 사라져라!" 간신히 몸을 복구한다음 고개를 쳐들자, 상당한 미남형의 소년이 양손을 쳐들었다가 그어버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의 주변의 공간이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조여졌다가 당겨졌고, 작가의 안색은 헬쓱하게 질렸다. 공간의 조임이 풀리자 마자 해일처럼 공간의 흔들림이 점점 증폭됨과 동시에 모든사물을 분해해버리는 공간력의 파도가 뿜어져들어왔고……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으아아아아아!! 이건 장난이 아니잖아∼!!" ……당해도 싸다. "헤에…… 마지막 기술은 정말 대단했어요! 작가가 설정한 건가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버리고 싶은 힘이지만……" 유현이 그렇게 말하자 웨스트에서 튀어나올 캐릭터중 한명인 샤드는 눈을 반짝였다. 그의 깊고 맑은 은색 7할. 3할 수정빛인 눈동자와 머리색, 그리고 영을 한참을 능가하는 아름다움은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남자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외모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유현은 문득 불신섞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도 영과 같은 여성기피증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한건가요?" "제 힘은 공간을 제어하는 힘입니다. 공간을 당겼다가 그 충격파를 증폭시키며 뿜어내는 기술이지요, 이번에는 정면에만 뿜어내서 놈만을 공격했지만…… 본래 전방위 공격입니다." 샤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두명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와중, 피떡에 가까운 형상이 될뻔했다가 마지막에 간신히 그 해일과 같은 공격을 같은 기술로 맞받아 살아난 그는 몸이 풀린채 흐느적거리고 있었고, 모두들 그를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영이 나섰다. "자…… 다들 나눠주는 명찰(…) 달고, 이스트의 사람들은 오른쪽에, 웨스트의 사람들은 중앙에. 갓 슬레이어의 사람들은 왼쪽에, 스페이스 룰러의 사람들은 정면에……" 명찰을 나눠주며 친절하게 설명하는 영, 오랜만에 그의 입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져 있었기에 여성들은 눈을 반짝였고, 그 탓에 영은 늘어져있는 작가를 향해 다시 신룡현세 를 폭사하는 일까지 행했다. "자자, 그럼 작가녀석을 깨운 다음. 축전과 더불어 어느 정도의 설정을……" "우우!! 우우~우!!!" "……재미 보장합니다.(실은…… 재미없지만.)" 그 말에 비우호적인 소리를 발하던 좌중은 침묵했다. 그는 작가를 질질 끌어서 어느새 준비된 강단으로 향한 다음 던져버리고 나서 류브에게 손짓했다. "이 재수없는 녀석 치료해줘. 싫겠지만……" 류브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찡그린다음 다가가기도 싫은, 인간말종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에테르 윙을 만들어내서 치유의 힘을 담은 구를 작가를 향해 집어 던졌고, 그 치유의 빛을 쐰 놈은 급속도로 상태가 호전되어가면서 곧 발딱 일어났다. "……그X벨님의 소설, '단X잡는 치매 기사X'의 X이러스가 생각나는군." "……" 영의 말에 심히 공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작가가 비정상이다 보니 그들 역시 그러했던 것이다. 통탄스러운 일이라 아니할수 없었다. 영은 갑자기 허공을 향해 삿대질 을 해대며 소리쳤다. "당신이 아바타 따위 보내지 말고 직접 나타나란 말이야!!!" ……미안. "알면 됐어!" "……누구와 말한거에요?" "아, 서술자." "대단한 능력이네요. 주연급이라 가능한 건가요?" "……." 샤드의 말에 고개를 젓던 영은 곧 일어난 작가가 품속에서 용케 멀쩡한 서류들을 끄집어낸 다음 후진 학교에서나 볼수 있을 듯한 낡은 화상기를 가동시키자 인상을 노골적으로 찌푸렸다. "옛날 생각나게 만드는군…… 죽일놈." 뒤의 빈 허공에 너무나도 거대한. 10m너비에 4m의 폭을 자랑하는 거대한 빛의 막이 형성되었고, 커다란 글씨가 또렷하게 박혀있어 멀리서 봐도 별로 인식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듯 했다. "……그냥 화상기는 아니었군." 중얼거리는 유현. 그리고 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해 볼까?" 재수없는 목소리가 마이크에 의해 들려오자 모두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입가에 허허로운 미소, 캐릭터들의 배반에 의한 허탈한 미소를 만들어내고 나서 심검을 응용하여 만든 기의 막대기를 길게 늘여서 윗부분부터 차근차근 짚기 시작했다. "먼저, 이스트…… 에 대한 설정이다." "에…… 그럼 국가명부터 설명하지. '제국 류'다." "……이상한 이름이군. 국가명이 하필이면 '흐름'이냐?" 중간에 끼어든 영. 그러자 그는 싸늘하게 영을 노려보다가 말을 이었다. 즉, 말을 씹어버린 것이다. "크기는 웨스트…… 즉, 아스타르 대륙과 비슷하며, 전체적인 기후는 따스한 편이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존재하며. 100년을 주기로 아온대 기후가 가끔 생겨난다. 두 대륙 모두 크기가 상당이 거대하다고는 하지만 이 행성 자체가 그다지 크지 않아서…… 북반구, 남반구를 모두 뒤덮고 있지." "……흐음." "습곡 산맥 따위는 존재치 않으며, 아스타르 대륙은 사막지형도 나타나는데 비해 동대륙은 전혀 그 렇지 않다. 기껏해야 30%가 산맥이며, 나머지는 모두 평야지대라고 할수 있지. 기껏해야 고원이 한계고, 사막은 단 하나도 존재치 않지. 세외무림이라 일컬어지는 곳에도 없는 것이다." "……엉터리군." "한번만 더 끼어들면 팬클럽을 만들어준다." 그 말에 영은 입을 다물면서 헬쓱해지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는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맺으며 말을 이었다. "남자들로 구성된." 결정타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영은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며 피를 토해냈고, 그는 싱글거리면서 다시 설정에 관한 말을 진행했다. "지구의 '중국'의 고대 무림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지만 엄청나게 차이나기도 하지. 특히 문화따위, 화폐나 견제세력 따위는 너무나도 닮았지만 차이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 무림으로 넘어갈까?" 그는 화면을 바꾼 다음 이리저리 그 기의 길다란 막대를 사용하여 짚어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먼저 무림맹. 표면적으로는 여러개의 파와 군소방파를 얻고 있으며, 무림의 각종 사업체의 3할을 차지하고 있는 조직이다. 하지만 완벽한 결합체는 아니라서 그 점이 단점이라고나 할까…… 잠적중인 천산검파까지 결합되면 마교를 누르는것도 어렵지 않지. 설정은 일단 이것만 알아두도록. 작가도 다는 모르니까." "그, 그런……" 그 무책임성 폭탄발언에 좌중이 웅성거렸으나 그는 좌중을 훑어본다음 단어 하나를 꺼내어 침묵하게 했다. "조용히 하지 않으면 작중에서 '엑스트라'로 바꾸어 버리겠다. 흠, 그럼…… 마교의 경우는 조금더 상세하다 할 수 있겠군. 파천 오대…… 다섯 개의 대대만으로도 무림맹의 드러난 세력 7할에 맞먹는 수준이지. 그리고 각종 고수들을 더하면 무림맹의 숨겨진 세력까지 더한 7할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그들의 숨겨진 세력까지 더한다면 무림맹 따위는 단숨에 짓눌러 버릴 수 있지만 천산검파가 더해지면 오히려 한수 더 처지게 된다. 현재 무림의 각종 사업체 점유율은 4할이다." 그리고 그는 좌중을 오만하게 훑어보다가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천류세가의 경우 가장 밀린다고도 할수 있지만, 영이 존재함으로써 비등하다고 할수 있지. 세가임에도 불구하고 화경의 고수 다섯. 현경의 고수 하나에 화약무기, 그리고 무경의 고수들 수천을 보유한 강력한…… 가장 강력하다고도 할수 있는 세력이다. 무림의 사업체 점유율은 3할. 이 정도로 거대해졌다고 말할수 있지. 집약되어 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뭐, 우리야 '점령'이 아니라 '파괴'가 목적이니까." 운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럼 무술에 대한 것은 작중에 대부분 나타나 있을테니 그만두도록 하고……" 빨리 넘어가니 좋다는 표정의 사람들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스타르 대륙에 대한 설정이다." 그는 화상기의 버튼을 눌러 다시 화면을 바꾸었고, 곧 하나의 대륙의 모양이 그려진 화면이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굽어진 듯한 모양새였지만 방사형이라는 말이 더 정확했다. "아스타르 대륙. 이 대륙은 전체적으로 푸르른 녹지綠地다. 그러나 사막과 고원, 그리고 불모지와 음침한 골짜기와 산도 많고, 이상하게 어떤 생명조차 존재하지 않는 기괴한 장소도 존재한다. 물론 마법이나 드래곤의 여파가 크지. 대자연의 기氣와는 확연히 다른 마나Mana라는 것을 사용해 그것으로 법칙을 깨트려 인간으로써는 행할수 없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마법魔法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오로지 무예武藝나 마법과 비슷한 주술계통의 기술들만이 존재하는 동방대륙과는 달리 그 마법이 모든 것을 좌우할 정도다. 이 마법의 단계는 이러하다. 1서클, 사람이나 동물에 어느정도 타격을 주거나 실생활에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준의 마법레벨. 2서클, 사람이나 동물을 죽일수 있을 정도의 타격을 주거나 실생활에 어느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수준의 마법레벨. 3서클, 중상급까지의 몬스터를 죽이거나 타격을 입힐 정도의 마법레벨. 실생활에 도움 되는 마법은 거의 존재치 않는다. 여기에 이르른 마법사를 수련마법사Mage라고 칭한다. 4서클, 3서클보다 효용이 조금 더 좋은 마법이며, 이 레벨에 이르른 마법사의 경우 상급까지의 몬스터를 제거할 수 있다. 5서클, 작은 마을 한 개 정도는 제거해 버릴 정도의 위력을 지닌다. 이정도의 실력을 지닌 마법사들을 마법사Magician라고 칭한다. 이 단계부터 법칙을 깨트리는 수준이 확연히 달라진다. 자연력 소환도 가능한 계열의 레벨이다. 6서클, 이 레벨부터 '흑마법사'로 나아갈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 6서클의 마법이라면 어느정도 크기의 도시 하나를 없애버릴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할수 있다. 이 레벨에서는 '현자'라고 불리워진다. 7서클, 이 레벨부터는 인간의 한계를 능가하는 수준의 마법이다. 제국의 수도 크기의 도시를 없애는것도 별로 어렵지 않다. 이 레벨의 마법사를 '대현자'라고 칭한다. 8서클, 인간의 한계점이라 불리우는 레벨로. 이것을 넘은 인간의 마법사는 오직 두명 뿐이었다. 작은 소국 하나를 파탄내어버릴수 있는 수준의 마법이 존재한다. 기상, 기후를 바꾸는 것도 가능한 레벨이다. -엘프Elf 한계점. 9서클, 인간으로써는 도저히 도달할수 없다고 알려진 레벨로. 역사상으로는 오직 두명만이 도달했다고 한다. 대륙의 반 정도를 파괴하는것도 별로 어렵지않다. 그 예를 들어보자면 '미티어Meteor'계열의 마법이 존재한다. -이 단계를 뛰어넘는 인간들은 바로 '신'의 레벨로 접어든다. 신경神境에 들어서게 됨. 10서클, 드래곤과 신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레벨에서는 창조라는 마법도 가능해지지만 (드래곤과 신들에게는 그들만의 언령言靈, 드래곤들 에게는 용언龍言, 그리고 신들에게는 신언神言)이 존재한다. -상급 레벨의 신들이 사용. 차원이동마법 존재. 11서클, 용왕龍王급이나 고위신급의 신들이 사용하며, 그 위력은 차원을 격파한다. 차원결계 유지의 거대한 에너지를 이것에서 얻어낼수도 있다. -그러나, 자체력으로도 가능함. 12서클, 용신龍神급이 사용할수 있는 마법 레벨. 차원 창조 가능. 위력 측정 불가. 13서클, 천신天神이나 천신급 용신. 그리고 주신主神급 레벨이 사용하는 마법. 초차원 창조 가능. 위력 측정 불가. 이 이후도 있다고 짐작된다. 이 이후의 마법은 알수 없다. 10서클부터는 마법이라고 칭할수 없으며. 그 이후로는 신술神術이라고 칭한다. 대륙에는 현재 8서클의 마법사가 최고 수준이며, 현재 타 종족들과도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 이 아스타르 대륙은 3국가 체제이며,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 일단 대제국 라마르칸트. 사막과 초원, 평야와 산지가 적절하게 분포되어있으나 농지가 많다. 마법과 검이 균등하게 발달된 국가이다. 인구수가 가장 많으며, 현재 3국가중 최고의 문명을 구가한다. 드래곤이 많은 국가이다. 현재 소드 마스터Sword Master 다섯을 보유중이다. 해양업 또한 매우 발달되어 있다. 아스타르 대륙 동반부에 넓게 포진한다. 이어서 루한 왕국. 주로 초목이 차지하며 산지가 많지않다. 마법이 매우 발달된 국가이며, 검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다. 소드 마스터를 둘 보유하고 있다. 기마전에서는 최고의 수준을 달리고 있으나 그 말을 탈 기사들이 많지 않다. 해양업은 거의 발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명수준은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다. 마법으로 인한 발전이 큰 수위를 차지하기에. 엘프들이 많이 거주중이다. 아스타르 대륙 중앙부에 위치한다. '신의 왕국'이라고도 불리우며, 대륙 중앙에 위치해 있다는 '신의 호수'가 존재한다. 그러나 신의 호수를 본 이들은 단 한명도 존재치 않는다. 이어서 티베튼 왕국. 연합체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막과 산 지형이 7할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모두 초목지대이다. 드워프들이 매우 많이 살고 있으며, 그만큼 기계문명이 발달해 있다. 건설업으로는 라마르칸트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소드마스터 넷을 보유하고 있다. 군대 수준으로는 루한 왕국보다는 강하다. 질 좋은 금속들이 대량 생산된다. 마나 메탈Mana Metal들은 대부분 루한 왕국으로 넘어간다. 검술이 매우 발달해 있다. 아스타르 대륙 서반부에 위치한다. 이 아스타르 대륙은 동방대륙과 최근에서야 어느정도의 교류를 가지고 있으며, 동방대륙의 특산물들을 최근 많이 얻어가고 있다. '비단'같은 것들과 향료종류의 품목들을 사가고 있으며, 파는 것들은 마법물품 계통이나, 이것들은 수가 매우 적어 기껏해야 류 제국 고위층에서만 구입할수 있을 뿐이다. 이상 …… 아스타르 대륙에 대한 전체적인 설정이다. 2부에서 이 설정과 '완벽하게 같다 시피 한' 부분이 나오는 것은…… 이해해 주기를……(퍽!) 아, 다음은 갓 슬레이어에 대해서 설명해야겠지만…… 이것은 갓 슬레이어를 '읽으면' 알수 있으니…… 놓아두고. 공간의 마술사 역시 '올라가면' 알수 있는 내용이니 저리 치워두지……(-_-;;) 그럼, 나에 게 하고 싶은말 있으면 해보도록." "그런데, 왜 설정과 내용 모두 판타지가 더 긴거냐?" "……난 판타지가 좋아. 다음은?" "……"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 끝나자 마자 섬뜩한 표정으로 운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고, 작가의 아바타는 눈에 띄게 긴장했다. "……무슨말을 하고 싶냐?" "신룡현세神龍現世!" 순식간에, 영보다는 약할지라도, 충분히 수백은 날려먹기에 부족함이 없는 금색 강기룡이 64마리 발출되어 단상으로 쇄도해갔고, 녀석은 손을 휘둘러 충격파를 만들어내 그것을 모두 튕겨냈다. 금색의 꽃불이 허공을 요란하게 수놓자 운에게 그는 질문했다. "또 왜그래?!" "1부…… 1부 후반부에서 나를 죽인다고 들었다." "……! 그, 그건 극비인데…… 어떻게……" "……진짜였군. 죽엇!" 창―! 매끄럽게 발검한 운은 그대로 땅에 다리를 찍어눌러 반탄력으로 매섭게 쏘아져 들어오며 허리에 걸린 청천검을 휘둘러 사선으로 검강을 만들어내 작가의 몸을 왼쪽 쇄골에서 오른쪽 허리 아래로 그어버리겠다는 듯 강력하게 검을 휘둘러왔다. 그것을 보며 사색이 된 그는 서둘러서 마법을 발했다. "시공정지時空停止!" 우우웅― 그의 손짓에 따라 운의 아래쪽에서 금색의 마법진이 복잡하게 겹쳐지더니 위쪽으로 푸른빛의 장막을 만들어냈고, 그것에 갇힌 운은 그대로 움찔 하고 굳어버렸다. "사, 살았다……" "맞아도 안죽잖아! 51화에서 쓸 기술이지만. 여기서 사용해주지! 음양조화결陰陽造化訣! 제 일초 음양분陰陽分!" 은영비가 소매에서 금속음과 함께 흘러나왔고, 그것은 그대로 휘둘러졌다. 그리고 은영비의 끝에서 흘러나온 무음무형의 잠력潛力. 그 힘은 그대로 작가의 주변에 둘러졌고, 그와 동시에 주변의 '공기'의 '원자핵(+)'과 '전자(-)'를 분리分離하여 전리기체電離氣體, 제 4 상태. 플라즈마Plasma의 구간을 손쉽게 만들어냈고, 2할 정도 남은 잠력은 그것을 유지하며 맹렬히 끌어올랐다. 그 전리기체의 구형공간이 녀석을 덮어버리려는 찰나, 놈의 입에서 단어가 흘러나왔다. "음양조화결 제 삼초. 음양합陰陽合!" 곧 분리된 '원자핵'과 '전자'가 원래의 구성으로 돌아가 전리를 띄지 않도록 안정되기 시작하며 눈에 띄게 발생했던 열기가 차츰차츰 사그라들었다. "썩을놈……!" 영이 아쉽다는 듯 이를 갈며 놈을 향해 한바탕 욕설을 내뱉는 사이 운은 시공정지에서 벗어나자마자 작가의 몸에 금색의 용 64마리를 그대로 꽂아 넣어버렸고, 곧 피떡으로 갈기갈기 찢어지는 놈의 입에서 처참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으악! 먹혀죽는건 싫어―!" 그것을 보던 류브가 입가에 소름끼치는, 매혹적이면서 위험한 미소를 만들어낸다음 등 뒤로 열 두장의 날개를 만들어 아스트리프를 쥔채 날아오르려는 찰나…… 샤드가 날개를 붙잡았다. 그 덕에 무게중심이 급작스럽게 이동하며 볼썽사납게 그대로 머리를 바닥에 처박아 버렸고,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으으윽……" "아, 미안해요. 날개좀 만져보려다가." "……" 모두의 뒤통수에 식은땀이 매달렸고, 샤드는 생글거리면서 류브의 이마에 늘어나려는 핏대를 소멸시켜버렸다. 그때 '영'이 샤드의 뒤쪽에서 걸어나왔다. 복장 자체가 앞에서 난리피우는 영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고 있었다. ……2부의 영이었다. 그것도…… 중반부를 넘어선…… "디드?" "……나도 한방 먹여줘야지. 속이 안풀리는군…… 풍검風劍!" 디드가 왼손을 뻗고 나서, 그 손바닥을 찢어지고 있는 작가녀석을 향한 다음 한자어를 내 뱉자 그의 앞에서 무형의 힘이 파동치더니 날카로운 바람의 검날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쉬가각, 하고 대지를 긁으며 정확하게 강기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작가의 몸통에 꽂혔다. "꾸엑……!!!" "빙창氷槍!" 휘르르르르― 움직이기 시작한 냉기, 그리고 그것은 순식간에 팔뚝만한 얼음의 창 수십개를 만들어냈고, 그는 입가 에 서늘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빙설격氷雪擊 - 무舞." 그리고 요동치기 시작한 다이아몬드 더스트. 마치 다이아몬드의 파편과도 같은 기운이 소용돌이치면서 그 빙창을 휘감았고, 얼음의 창은 그대로 블리저드에 실려 무서운 속도로 흩어져 가는 강기속에서 신형을 보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놈의 몸에 그대로 내리 꽂혔다. 푸욱― 푸푹― "으악!!! 디드!!! 네 녀석까지!!!" 몸을 파고들어오는 서늘한 감각과 고통 때문에 비명조차 제대로 못지를 지경이 되어가자 점점 안색이 굳어진다. '소멸…… 될지도……' "나선대폭풍螺線大暴風 - 보석분寶石粉 - 휘형무輝形舞.(……초룡전기 카르세아린. 가스터의 쥬어리 토네이도 참고……-_-;;)" "……" 갈색의 폭풍이 형형색색의 보석가루 같은 것들을 내부로 휘감고 뻗쳐오는…… 그 장관. 용권풍…… 바람의 검날이 하나하나 머금어져 있는 강렬한 바람의 폭풍이 닥쳐오는 것을 보며…… 그는 굳어버렸다. 가가가가각―― "미완성이라지만 신언神言을 남발하다니……" 신언…… 드래곤에게 용언이라는 개념이 있다면, 신이 강력한 힘을 지닌 사제에게 주는 것이 신성언령이다. 그리고 신이 직접 사용하는 것이 신언이다. 신언과 용언은 거의 차이나지 않으나 신성언령은 신의 허락과 더불어 움직여야 하고, 그 범위가 한정되어있다. 그러나 신언과 용언은 '힘'만 있으면 남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미지와 더불어 그에 맞는 언어를 사용해 주기만 하면, 어떤 언어라도 가능한 신언과 용언의 술법인 것이다. 창조도 가능한 이 술법이 2부의 영. 선경仙境에 들어 갓 에이전트God Agent라는 명칭을 얻은 디드에게는 가능했던 것이다. 미완성일 지라도…… 거의 흩어져버렸던 몸을 간신히 그러모아 회복하고, 다시 강기나 마법에 피떡나는 일을 반복하고 세시간이 흘러서야 모든 이들의 분풀이가 끝났다. 그가 느낀 고통과 이들이 느낀 고통이 과연 같은 수준에 오르려면 얼마나 더 마법과 검술을 얻어맞아야 한단 말인가? "……끄응. 이만 마치고, 나중에 하지. 이러다 골병들겠군…… 아! 캐릭터 투표가 끝난다면…… 발표때 또 볼지도 모르겠군." 그 말이 떨어지자 마자 모두의 손아귀에 자신이 할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의 힘이 맺혀 이글거리기 시작했고, 이 순백의 공간마저 어그러뜨리기에 충분한 힘의 에너지는…… 그대로 그를 향해 쏟아져 들어왔다. 콰르르르르르…… "대…… 대체 왜!!!" "여기서 죽고 나중에 나오지 마!" 간단한 답변이었다. --- [ ……이건 축전이 아니라 설정에 가까운 듯 -_-;;; 그리고…… 작가 난도질……-_-;; ] --- 051. 요 며칠간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부쩍 늘어난 병사들이 훨씬 더 치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덕에 사냥(?)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이 시체의 부위를 잘라서 정육점에서 고기 부위 걸어놓듯 널어놓고, 이어 '인간 의 몸에는 이런부위도 있다' 고 친절하게 강습을 몇차례 하긴 했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 그는 거리를 돌아다 니며 이리저리 정보를 수집해 보았고, 곧 알아낸 것이 자신도 들은적 있는 '천류세가'의 인물들이 도시에서 지금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짜증나는군.' 너무나도 피가 보고싶었다. 근 삼일을 참지 않았던가. 내장의 그 부드럽고 뜨듯한 감촉…… 그리고 살을 베는 그 손맛. 그리고 혈향과 그 선연한(?) 붉은 빛을 뽐내는 피…… 눈에 핏발이 선채 이런 단어들을 열거하던 그는 참지 못해 예리하게 갈아놓은 단검과 챙겨 두었던 검을 찬채 몇몇 사체를 살피다가 얻은 금전이 든 주머니를 품에 넣고, 옷을 잘 갈무 리 하고 동경銅鏡을 보며 표정을 관리 한 후, 객잔에서 나섰다. 그리고 문득 거리를 지나가는 가운데 무림인으로 보이는, 상당한 정기를 뿜어내고, 제법 숙 련된듯한 계집 두명이서 각기 한 남자들…… 그러니까 14에서 15세 정도로 보이는, 웬만한 미녀 뺨치는 외모를 지닌 그들은, 실제 끌려가고 있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는 끌려가는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잡혀가고 있었다. 그 소년의 눈을 들여다 보던 참륙혈귀는 소름이 끼침을 느꼈다. 눈동자에 담긴 끝없는 기운 과 정기…… 자신같은 자들은 수백명이 달려들어도 이길수 없는 강력한 고수…… '이…… 럴수가.' 저건 포기다. 이렇게 생각하던 그는 역시 정신적으로는 끌려가고 있는듯한, 나풀거리는 옷을 한, 서생 타입의…… 품이 넉넉한 옷이라 여자인지 남자인지 파악이 안되는 녀석을 바라봤다. 곧 직감상 '남자다'라는 것을 알수 있었으나, 도대체 이놈은 무공을 익혔는지 아닌지 파악이 되질 않았다. 태양혈도 튀어나오지 않았지, 그렇다고 눈동자에 기운이 담긴것도 아니지만 너 무 깊고 맑았다. 게다가 몸에 밴, 뿜어져 나오지 않은 살기殺氣는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상징하는데, 몸 매가 너무 가느다란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그 외모는 그를 끌고가는, 그리고 소년을 끌고가 는 여성 둘을 능가할 정도로 아름다웠기에 더욱 의심이 갔다. 하지만 키는 훤칠하고, 몸매도 상당히 잘 짜여 있어 찍어도(?) 괜찮은지 더욱더 헷갈리게 만 들었다. "……" '생긴걸 보면 별로 힘없게 생겼고, 팔의 경맥도 가느다란걸 보니 장법을 주로 쓰는 녀석도 아니고…… 심지어는 무공 자체를 익혔는지 의심이 가니……' 그리고 그는 결정을 내렸다.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일단은 '찍었다.' ……이렇게 참륙혈귀의 불행은 시작되고 있었다. 만약 그가 자신이 찍은 존재가 신화경을 내다보는 현경의 고수이고, 천류세가에서 가주의 심복…… 아니, 거의 의형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코 영을 먹잇감으로 선택하는 일은 없었으리라. 그리고…… 영이 그의 직감에서 위험인물로 분류되었었더라면…… 그가 고통속에서 죽어가 며 꽥꽥거리는 불미스러운 사태도 없었으리라…… 그의 일생 일대의 실수였다. 영은 짜증이 이는 것을 느꼈다. 아까부터 누군가가 너무나도 잘 감추어진 살기를 은은히 풍 기면서 자신을 주시하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이놈은 자신의 적수가 아니었지만, 어쩐지 음 험하고 재수없는 피냄새를 풍겼다. 그래서 순간 그는 오행대천공五行大天功 개정판改訂版(?)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장章의 목둔 법木屯法을 운용, 그 자리에서 바람으로 화해 흩어졌고, 그와 동시에 암향무유暗香霧柔의 유 유행流幽行을 운용하여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벗어났다. 그의 손을 붙들고 있던 화영영이 난데없이 허전함이 손에서 느껴지자 주위를 둘러보다가 낭 군님(?)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놀라버렸다. "앗! 어디 간거지?" '……영! 치사해! 혼자 도망가다니……!' 남겨진 운만 불쌍할 뿐이었다. 바람으로 변해 공중에 스며든 그는 대자연大自然 유검流劍의 풍천무風天舞를 펼쳤다. 곧 그의 기 운용에 따라 대자연의 웅혼한 기력이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마치 안개나 바람의 형태와 같이 허공으로 스며들었던 그는 그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 고, 거기에 어기풍룡륜御氣風龍輪의 신법을 응용하여 공중에서 바람의 용이 돌 듯 빙글빙글 돌다가 가속을 더해 안개와 같이…… 소리도, 기척 한점도 없이 사람들 사이를 누볐다. 그리고 알맞은 위치와 그 녀석의 포착 범위를 탐사하고 나서 그녀석의 탐사 범위에 들어가 면서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지 않는 골목길로 들어가는 즈음에 모습을 드러냈고, 곧 히 죽 웃었다. 자신을 발견한 녀석은 의아해 하는 듯 하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을 쫓아왔다. 그리고 영 이 골목에 들어서 깊숙한 곳으로 향하자 주저하는 듯 하면서도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영은 몸을 돌려 이제는 흥분감에 몸을 떠는 듯한 녀석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암살자냐?" "……" 그는 다만 희열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단검을 꺼내 그것을 혀로 핥을 뿐이었고, 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만…… 피 좋아하는 녀석이었을 뿐이군. 하지만, 넌 상대를 잘못 잡았어. 금강폭열공金剛 爆熱功 제 일초. 신룡현세神龍現世 - 농주籠珠 - 박縛." 그는 왼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왼손에서 뻗어나온 기류는 금빛으로 물들며 일정 공간을 헤 엄치며 돌아다니다가 64마리의, 일전보다 가늘고 약한 금색의 강기룡을 형성했고, 그것들은 소리없이 뿜어져 나가 공간을 삼켰다. 그리고 금색의 용들은 당황하여 검기를 검에 맺어 용의 몸통을 후려 치다가 검이 동강나자 헬쓱하게 질린 녀석의 몸을 그대로 휘감았다. 그리고 조이기 시작했다. 용이 여의주를 놀리 듯, 녀석의 발악을 막으며 부드럽게 운행하던 용이 말 그대로 녀석을 결박해 버리자 참륙혈 귀는 신음을 흘렸다. 한 마리의 강기룡이 잠력으로 화해 그의 혈맥에 스며들자 그는 눈을 커다랗게 떴고, 곧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아!!!" 어떻게 된것이냐 하면, 금색의 용은 잠력으로 화해 기경팔맥을 모조리 파괴하고 단전마저 파괴한후 녀석의 몸에 존재하는, 선천진기를 제외한 모든 기운을 소거해 버린 것이다. 그 덕 분에 상상도 못할 고통에 녀석이 비명을 질러대긴 했지만, 영은 단음강막斷音剛幕으로 그것 을 차단하며 느긋하게 미소지은다음, 은영비를 꺼냈다. 그리고 그의 말에 참륙혈귀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네 취미가 사람들에게 어떤 즐거움을 선사해 주는지 알려주지……" 그리고 영은 천천히 걸어 참륙혈귀에게로 향했고, 영의 은영비銀影匕에는 이글거리며 심형 어검강心形御劍剛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제서야 상대가 상상조차 못할 정도의…… 현경의 고수임을 알아챈 참륙혈귀는 공포에 몸을 떨었으나……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골목 안…… 영이 단음강막과 더불어 가벼운 기문진을 펼쳐두어 어떤 기운도 빠져나가지 않 도록 한 이곳에서는 피와 장기가 범벅되어버린 지저분한 바닥에 뼈까지 드러낸채, 아직도 숨통이 끊기지 않은 참륙혈귀가 공중에 가볍게 떠 있었다. 영의 강기사검술剛氣絲劍術. 자유사운自由絲運의 장章. 무형참륙無形斬戮 제 일식一式. 관살 법貫殺法에 몸을 꿰인채 허공에 걸려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관살법과 더불어 자유사운의 장. 박형신위縛刑身僞 제 일식. 유허포박游虛捕縛까지 함께 사용하고 있어 결코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강기의 실이 영의 왼손 손가락에서 수백가닥 뻗어나와 있었지만, 그것은 햇빛이 비추어도 전혀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영은 입가에 소름끼치는 미소를 만들어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지. 깨끗하게 처리해 주겠다." 갈무리 해 넣었던 은영비를 창 하는 금속음과 동시에 꺼낸 영은 짤막하고 조용하게 구결인 듯한 말을 읊조린후 외쳤다. "음양조화결陰陽造化訣. 제 일초 음양분陰陽分!" 그의 외침과 더불어 거센 기력이 사방에 바람을 불게 만들었다. 은영비의 끝에서 흘러나온 무형無形, 무음無音, 무색無色, 무취無臭(?)의 잠력潛力. 그 힘은 그대로 참륙혈귀의 주변에 둘러졌고, 그와 동시에 영이 잠력을 운용하기 시작하자 주변의 '공기'의 '원자핵原子核(+)' 과 '전자電子(-)'가 결합되어 있다가 분리分離하여 전리기체電離氣體, 제 4 상태. 플라즈마 Plasma의 구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8할의 잠력이 그 뜨거운 전리기체의 구간을 형성함과 동시에 2할 정도 남은 잠력은 그것을 유지하며 맹렬히 끌어올렸다. 그 전리기체의 구형공간이 녀석을 덮어버리고 나서 피 직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서 잠시 후 영이 다시 구결을 읊조리다가 검을 긋자 사그라 들기 시작했다. 거센 열기는 강막을 사용하고 있는 영도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기에 주변의 건물 벽은 서서 히 녹아내리려고 했고, 바닥에 널려진 피와 장기는 시커멓게 타버렸다. 그리고 영이 초식명 을 내뱉었다. "음양조화결. 제 삼초 음양합陰陽合……" 상당량의 공력이 빠져나가면서 다시 원자핵과 전자가 순수상태로 돌아가며 전리기체로써의 열기를 사그라 트렸고, 영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초식을 운용했다. 숨막힐듯한 열기를 가라 앉히기 위하여. "음양조화결. 제 육초 극음현빙결極陰玄氷訣……" 곧 영의 은영비가 그어지고 나서, 은빛의 얼음파편이 섞여있는, 새하얀 은백색의 폭풍이 주 변을 휩쓸었다. 그리고 골목 내부는 하얗게 얼어붙어 서리가 드문드문 매달려 있었고, 얼어 붙지 않은 곳은 영의 주변 뿐이었다. 그는 하얗게 얼어붙은 바닥을 주시하다가 쓴웃음을 짓고는 몸을 돌려 진기가 빠져나가 허탈 해진 몸을 추스리면서 대자연의 기력을 빨아들이면서 중얼댔다. '이것…… 웬만하면 안쓰는게 좋겠군…… 효율이 너무 떨어져…… 하지만, 솔직히 공력으로 플라즈마를 만들고 소멸시키고 블리자드Blizzard를 능가하는 냉기 폭풍을 만들어 내는게 적 은 공력으로 할수 있는 일이 아니지…… 내가 신화경에 이르르거나 유검결을 이 음양조화결 에 섞을수 있으면 공력소모가 반 이하로 줄어들텐데……' 그는 생각을 맺으면서 골목을 빠져나왔다. '……고찰해 봐야겠군.' 하얗게 얼어붙은 빙벽으로부터 스며나오는 냉기를, 바람은 허공으로 휘말아 올라갔다. ……여담인데, 골목길 옆의 집의 주인들은 난데없이 스며나오는 냉기에 기겁을 하며 절에 찾아가 공양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어떤 무림인이 우연히 그 냉기를 포착하고 들어갔다가 깨달음을 얻어 천빙탈백신공天氷脫魄神功이라는 초 극음의 검법과 장법을 창안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후에 화경에 들어 무림오천의 빙령천자氷靈天者라는 명호를 얻 는다. ……그리고 그의 제자가 후에 마교가 일통한 무림을 발칵 뒤집게 된다나? やみよに むなしく かきけされ 어두운 밤의 공허함을 완전히 지워…… くやしさと げんじつと こころの すみまで むめつくせ 분함과 현실을 마음의 구석까지 모두 묻어 버리는 거야…… 052. 무림맹武林盟으로…… 다각다각― 말이 마차를 끌면서 발굽과 땅을 부딪혀 이러한 소리를 냈다. 영은 마차의 천장에 앉아서 느긋하게 은영비銀影匕를 닦으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터키석의 그 소박하면서도 깊고 맑은 하늘빛과 동일한 청천靑天…… 금빛의 햇살이 그의 은 영비에 부딪히면서 은백색의 빛무리를 사방으로 흐트러뜨렸다. 느긋하게 말 발굽 소리를 감상하면서, 하늘에서 피어오르는 구름들의 춤을 감상하며 간혹 들려오는 새소리를 음악삼아…… 그렇게 입가에 미약한 미소를 만들어내며, 그는…… 그 지 겨운 화영영에게서 잠깐이나마 벗어난 이 현실을…… 만끽했다. ……그정도로 시달렸던 것이다. 다행히도 도시에서 벗어나며 그들은 말을 타고 선두를 잡았고, 영과 운이야 그 많은 인원들 로 여성들의 접근을 차단(?)하면서 수하들을 통솔해 무림맹으로의 길을 잡았다. 오랜만에(?) 시달리지 않는 조용한 날을 보내게 된 영과 운은 안정적인 정신상태를 되찾게 되었다. 문득 마차의 창문이 열리면서 운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음 씨익 웃고 나서 가볍게 빠져나와 그대로 허공중의 먼지를 밟아 솟구쳐 올라 허공중에서 몸을 틀어 부드러운 동작으로 영의 옆자리에 안착했다. 동작, 기의 운용, 움직이는 방향, 적절한 시간 분배, 힘의 소모도…… 흠잡을데 없는 가공스 러운…… 운룡번신雲龍飜身의 흘러가는 듯 자유로운 신법이었다. "실력이 늘었네……" 영이 중얼거리자 운은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냈다. 영은 헛된 칭찬은 결코 하지 않는 성격이 었기에…… 그 어느 누가 미사여구까지 덧붙여 해준 칭찬따위 보다 더욱더 가치 있는 것이었다. "정말 늘었어?" "……아아." 영은 느긋하게 왼손을 들어 휘둘렀고, 손가락의 끝에서 강기사검술剛氣絲劍術. 자유사운自由 絲運의 장章. 박형신위縛刑身僞 제 일식. 유허포박游虛捕縛이 펼쳐져 나와 투명한 강기의 실 이 두가닥 뻗어나가 나무의 한 가지를 두군데 묶었고, 그가 실을 당기자 실이 확 좁혀지며 쉽사리 나뭇가지를 잘라내면서 잘려나간, 사람 손보다 두배 정도의 크기를 가진 나무토막이 허공중에 던져졌다. 그리고 영이 이번에는 오른손을 젓자 그것은 기의 바람에 휘말려 영의 오른손에 안착했다. "방금 그건 허공섭물虛空攝物은 아니었는데…… 뭘 어떻게 한거야?" 영은 피식 웃고나서 운에게 기술명을 발했다. "강기사검술剛氣絲劍術. 사운기류통제絲運氣流統制의 장章. 제 일식. 측인풍側引風." "……아." 그제서야 운은 영의 오른손에서 뻗어나간 가느다란 강기의 실들이 바람마저 묶어서 바람을 몰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점점…… 자연력 통제가 원활해 지는군…… 어쩌면…… 얼마 안있어서 무형무無形舞를 완 성시킬수 있을지도……' 영은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 생각은 허튼 것이라는 것을…… 대자연 유검 의 여러 장章들 중 오직 무형무의 난이도만이 끔찍할 정도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신화경에 서야 제대로 펼칠수 있을 거라는 것을…… 그는 절실히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기의 고리가 그는 해답이라는 확신을 굳혔다. 이 고리를 파괴해 보려고 진기를 증 무처럼 뿜어내 영기의 고리를 감쌌다가 우연히, 우연히 알게된 숨겨진 혈도에 거센 압력이 가해져 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어디인지는 알수 없었고, 체내에 없을 지도 모른다는 황당한 생각마저 들 정도로 어렴풋이 만 느껴지는 혈점, 어쩌면…… 자연과 자신을 연결하는 혈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영기의 고리가 자신을 묶는 속박이라는 것도 알아챈 후, 그는 이 고리를 파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화입마에 걸릴 뻔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거의 1천년 공력을 달성한 현경의 고수가 폭주를 하게 된다면, 무림의 절반은 초토화 시키고도 남을 것이다. 아 니…… 제국 류의 절반이 날아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뭐, 어차피 지금 내가 할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행하는 수밖에. 어렴풋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 길…… 이렇게 안타까울줄은 몰랐는데……' 영은 쥐어진 나무 토막을 은영비로 깎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한꺼번에 형태를 구상하고 뭉텅뭉텅 깎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얇고 세밀하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하고 있었다. 습 기어린 줄기 부분이었지만 그는 내공을 불어넣어 안쪽의 '관'과 습기를 모조리 날려버려 알 맞게 건조된 목재를 만들어냈기에, 깎을때는 그저 톱밥만 은은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휘말려 날아갈 뿐이었다. "저기…… 대협은…… 천류세가의 무술을 익히지 않으신 듯 한데……" "익히긴 익혔습니다만…… 주류가 되는 무술은 아닙니다." 그 말에 우물쭈물 물어보던, 도대체가 칠룡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심약한 인물인 빙룡검수 氷龍劍手 한열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집요하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럼…… 어떤 무술을?" "……쓰는 무공의 7할은 직접 만든 것입니다." 그 말에 감탄하던 한열은 존경을 눈에 담아 반짝반짝 빛내며(…) 영을 주시했고, 영은 속이 거북해 짐을 느꼈다. 한열은 무표정하게 있는다면 정말 너무나도 차갑게 보이는 모습이었다. 빙공 계열의 무술을 익혔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피부에 한광이 서린 눈동자를 지녔으 니…… 하지만 그의 성격은 어이없게도, 무림인답지 않게 심약했다. ……다만, 전투중에는 피를 뒤집어 쓰고 날뛰어서 도대체가 평소의 모습을 연상하지 못하게 하여 연빙전화軟氷戰火라는 별명도 갖고 있었다. 평소에는 흐물흐물한 얼음(…)을 연상케 하 지만 전투시에는 그야말로 차가운 불꽃이 되어 버리는 것, 그것이 한열이었다. 신기하게도 그의 문파는 빙령문이라고 하는 특수 문파로써, 정, 사, 마…… 어느쪽에도 들지 않는, 하지만 성향은 정 계열인 문파였다. 그런 그가 무림맹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칠룡으로써 포섭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영이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갑갑함과 동시에 기대를 느끼고 있는 것은, 그의 내부에 잠자고 있는…… 진흙속의 진주와 같은 재능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영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가르침을 바라는 것이겠지…… 이 속알머리 없는 청년이 상당히 마음에 든 영이었기에, 조용한 미소를 만들어내며 그에게 전음을 보냈고, 그는 화색을 띄었다. 「……새벽에 제가 부르겠습니다.」 음양조화결陰陽造化訣. 제 육초 극음현빙결極陰玄氷訣의 특성과 더불어 그에 맞는…… 예기 와 차가움, 그리고 공방 전환이 자유롭고 화려하면서도 빠르고 쾌와 만을 모두 중시하는, 얼 핏 보면 정계 계열의 무공으로 보이는 검술을 결합하여 ― 천운팔명검과 회풍무류검, 흐름 을 따라 가는 검무劍舞를 섞어 만들었다. ― 하나의 무공을 창시했고, 곧 그럴 듯 하게 이름 을 붙였다. ……급조된 것이기는 하지만. 결빙난화검법結氷亂花劍法이라는 이름을…… 이로써 후에 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공 ― 금강폭열공金剛爆熱功, 파마천멸장破魔天滅掌, 광염천린검光焰天躪劍, 결빙난화검법, 천빙탈백신공天氷脫魄神功, 낙매검落梅劍, 묵뢰신공墨雷神功, 북명신공北冥神功, 복마검법伏 魔劍法, 태극만상공太極萬想功…… 이렇게 열 개다. 개중 금강폭열공과 파마천멸장, 결빙난 화검법, 청빈탈백신공, 북명신공 순위로 앞의 5위를 차지한다. ― 중의 하나는 단 일각만에 만들어지고야 말았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미래의 무림인들이 알게 된다면, 통탄하고도 통탄할 일이었다. 현경의 고수가 심심함의 제거와 더불어 제자하나 키워보고 싶어 행한 변덕속에서 자신의 무 공과 몇 개의 검술을 더해 짜맞추어 하나 전수해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다들 뒤집 어 지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한탄하며 미친 듯이 자해를 하려 들었을 것이다. 후에 이 결빙난화검법은 천빙탈백신공과 더불어 빙공의 최고위에 달한 무술로 뽑히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결빙난화검법을 익힌 화경의 고수와 화산파 비전의 칠매검과 낙매검을 동 시에 익힌 화경의 고수가 맞붙어 반시진 만에 화산파의 검술이 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무당의 복마검법이 왜 10위 안에 들어섰고, 오히려 무당의 최고의 검술이라고 불리는 태극 혜검太極彗劍이 뽑히지 않았을까? 그것은 태극혜검의 난이도와 더불어 태극혜검의 특성중 하나인 건곤乾坤의 양력을 모조리 한꺼번에 격발시킬수 있는 인물이야만이 극성을 성취 할 수 있다는 조건 때문에 오히려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고, 극의를 터득하면 낙매검에 견준다는 이 복마검법이 뽑힌 것이다. 어쨌든 후일 영이 동방 대륙을 떠난 후의 일이니…… 053. 사박― 빙상보법氷上步法. 결빙난화검법結氷亂花劍法. 그것이 달빛 가운데서 사물을 가르고 있었다. 대지 위를 스쳐 지나가는 듯 하는 가벼운 발걸음 이었으나, 살얼음 위에서 달리듯 신중하기 그지 없었으나…… 그 속도는……너무나도 빨랐다. 그리고…… 그것이 디디는 지지점은 탄탄하기 그지 없어, 정말 살얼음 위에서 달릴수 있도록 고 안된 보법步法이자 신법身法인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름다웠다. 조화롭게 맞물리며 대기중에펼쳐진 빙상보와 결빙난화검…… 그것들은 정말 짜 맞추어진 듯 정확했다. 신비로이 퍼져나가는 얼음의 가루, 은색과 투명한 청색, 창백한 달빛의 백황白黃빛을 머금고 휘몰아치는 음기의 구간, 강렬한 음기를 품은 검기劍氣가 매섭게 허공중을 가르고 지나가며 사방에 화려한, 공중에서 얼어붙은 얼음의 꽃을 만들어냈다. 푸르스름한 냉기를 머금고 허공을 긋는 은백색의 검, 그리고 이글거린다고 생각될 정도로, 열기라고 생각될 정도로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는 냉기, 하얗게 서린 기운이 사방을 잠식하고, 푸르스름한 냉기가 모든 것들을 휘감고 지나갈 때, 모든 사물은 얼어붙어 얼음 그 자체가 되어간다. 찌르고, 베고, 내리치고, 올려치고…… 흠잡을데 없이 매끄럽게 연결된 검에서 냉기가 피어올라 세차게 강력한 음기를 품은 검풍劍風을 만들어내 사방을 휩쓸어 버리자 나뭇잎들은 얼어붙어서 다시한번 세차게 검기의 회오리와 검풍이 동시에 휘몰면 산산히 흩어지며 얼음의 가루가 되어 바람에 휩쓸려 다이아몬드 더스트Diamond Dust… … 그리고 북빙해의 블리자드Blizzard를 능가하는 빙설의 폭풍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냉기의 구역에서 움직이는 자가 있었다. 어두운 그림자 하나…… 그 신비로운…… 냉기서린 빛무리 내에서도, 그 혼백마저 얼려버릴듯한 냉기 속에서도 멀쩡하게 움직이며 검을 휘몰아 치는…… 짤막한 은색의 선을 가볍게 뒤틀어 공중에서 매끄러운 은색 그림자의 춤을 만들어내며 그 냉기를 쉽사리 몰아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마치 마교의 소수마공素手魔功과 같은, 투명하고 새하얀 은백색의 기운을 품은채 새파랗게 빛나는 검이 그의 움직임의 궤도를 끊고자 매섭게 접근하며 얼음 꽃을 만들어내며 부드럽게 몰아치면, 은색의 검은 그보다 훨씬 부드럽게 그 속도를 줄여 은색의 호선을 만들어내며 공중에 한줄기 은영화銀影畵를 그려냈다. 어둠 속이었지만, 그 짧은 검은 스스로 빛을 발하듯 번뜩였다. 자세히 보니 은색의 아지랑이가 검에서 피어오르며 냉기의 아지랑이를 몰아내며 스스로 타오르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그 빛은 밝았지만 은은하여 저렇게 강한 음공을 몰아낼수 있는지, 의심스럽기 까지 했다. 저것은…… 은광검銀光劍. 바로 영의 검술에서도 아스타르 대륙에서 오히려 검사의 등급을 나눌 때 쓰는, 상급의 소드 익스퍼트 Sword Expert가 사용하는 검기劍氣였다. 검에 어기충검御氣充劍하면서 그 기의 밀도를 점차 늘리면서 그것을 공포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순환시키면서 검기를 뿜어내는 검술이었던 것이다. 상대의 빙상보법에서 풍겨오는 냉기와 영이 직접 창안한 결빙난화검법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어린 검기는 결코 가벼운 수준의 검술이 아니었다. 천류세가의 천광대에서도 상급에 드는 인물들 만이 저정도 위력을 가진 공격을 펼칠수 있었으며, 양강의 무예도 아닌 음한의 빙공이었으므로 그 위력은 상대적으로 더욱 증폭된다. 왜냐…… 생물은 얼리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생명 보존이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였으나 그런 경우는 특이한 경우였다. "빙류난화氷流亂花!" 지금까지 다만 검결만 짚어 나가며 검술을 운용하여 다만 끊어지지 않는, 결빙난화검법을 펼쳐 나가다가 결빙난화검법, 오의……빙류살氷流殺을 끊어버리면서 그대로 12초로 이루어진 결빙난화 검법의 제 구초를 펼치자 순식간에 퍼져나가며 일렁이던 냉기가 검에 모여들며 힘차게 뿌려졌다. 푸르스름한 냉기가 검에서 토해져 나가자 마자 거센 검풍에 얼음의 꽃 모양을 한 검기가 검풍에 실려 빠르게 회전하며 자그마치 36개의 궤도로 휩쓸어왔다. 검기가 회전하며 만들어내는 차가운 검기의 회오리와 극설풍이라고 불러도 오히려 부족할 정도의 차가움을 머금고 있었던 검풍이 더해지면서 그 냉기는 주위의 습기를 얼려 날려 버리고도 남을 정도가 되었고, 그 폭풍만으로도 사물을 그대로 얼음 가루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냉기가 되었다. 웬만히 수준차가 나지 않고서야 전력을 다한, 아홉번째의 초식은 펼치지 않았으리라, 이것의 위력은 열번째, 열한번째, 열 두 번째의 초식들보다는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냉기만으로도 웬만한 열양공은 물리치고도 남을 수준이었고, 그 살상률은 9할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뭐, 길게 늘이긴 하였으나, 단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방비에서 맞으면 절대로 죽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호신강기나 검술을 펼쳤더라도 그 냉기가 그대로 타고 들어와 전신 세맥에 파고들기 때문에, 마주쳐도 웬만히 강하지 않은 이상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검술이었다. 거기다가 그 기술뿐만 아니라 검술만 하더라도 무림의 웬만한 검술중에서 돋보일수 있는 수준인 데다가, 그 수준이란 것이 '흐름'이 더해진 것임에야…… 그 깊이가, 얼마나 깊을지는 보통 무림인들로써는 짐작조차 할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익히기도 난해하다. 하지만 펼쳐지면 일단 끝도없는 냉기와 검기가 휘몰아쳐 사물을 베어버린다. 그래서 후일 무림에서 지금 이 결빙난화검을 풀어내어 상대를 압박하고 있는 사내를 만나면…… 자신이 화경 이상이 아닌 바에야 피하는게 낫다는 말이 떠돌 정도가 되었다. 이 검술만으로도 놀라운 성취를 보이기 시작해, 단연 칠룡에서 1위를 차지 하게 되는 사내. 그리고 영이 가르친 결빙난화검법으로 인해 성격마저 바뀌어 버리게 되는 불운한(?) 사내. 바로 빙룡검수氷龍劍手 한열이었다. 연빙전화라는 특이한 별명도 갖고있었으나, 그가 무림을 떠돌면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지 채 한달이 안되어 그 별명은 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렸으며, 오히려 빙룡검수라는 명호마저 대체하여 '빙열빙룡氷熱氷龍'이라는 명호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건 앞으로 몇 달 후의 일이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어쨌든 냉기의 흐름은 너무나도 쉽사리 깨어져 버렸다. 그와 격투중인듯한 사내는 검에 맺어진 은색의 기류를 그대로 금빛으로 전환하면서 그 길이를 대폭 늘림과 동시에 사방으로 검을 그어버렸고, 순식간에 빙화氷花들은 수십조각이 나면서 흩어져 버렸다. 그 끔찍할 정도의 냉기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천빙화엽天氷花葉!" 이번에는 가볍게 대지를 찍어내려 얻어진 반탄력으로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허공으로 뻗어나가 냉기의 회오리를 바닥으로부터 만들어낸 한열은 빠르게 검을 몸 주위로 회전시키다가 그 회전력을 순식간에 풀어내며 초식명을 외쳤고, 순식간에 냉기의 회오리는 무수한, 은백색 냉기를 품은 꽃잎들을 만들어냈다. 쏴아아아아― 그대로 꽃이 떨어져 내리듯 쏟아져 내린 냉기의 꽃잎들, 그리고 그 방위는 정말로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수백장의 검기의 꽃잎들이, 그것도 냉기를 품은 꽃잎들이 분분히 휘날리는데다가 이 초식은 기의 흐름마저 섞고 있었기 때문에, 방향전환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결빙난화검법, 제 십 일초. 천빙화엽이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너무나 쉽게 파해되었다. 지금 상대가 결빙난화검법의 창시자이자 현경의 고수인 은영천검銀影天劍이긴 하였지만, 그는 파해법을 쓴 것은 아니었다. 결빙난화검이 그 냉기로 인해 파해하더라도 피해를 입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실제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은색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태양광太陽光. 누르스름한 열기를 머금고 타오르는 검. 그리고 그것이 환한 주홍빛을 머금었을 무렵, 검과 신형은 함께 쏘아져 나가 얼음의 꽃잎이 휘몰아쳐 오는 파도 중앙을 가르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익― 냉기와 열기가 부딪혀 중화되면서 얼음의 꽃잎들은 녹아버리거나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바다를 가르는 것과 같은 장관…… 태양빛의 검은 그대로 얼음의 파도를 가르고 있었다. 빙엽의 냉일冷溢…… 그것은 막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햇살과 같은 서기를 품은 은영비銀影匕는 간단하게 그 파도를 베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검날이 그 열기마저 헤치고 빠져나와 너무나도 쉽사리 한열의 목에서 멎은 순간, 한열은 멍한 표정이 되어있었다. "져…… 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영은 소리없이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한열이 볼 사이도 없이 이미 소매속에 감추어져 있는 덮게 속으로 검날을 밀어넣었다. 그리고 영이 검을 거두고 나서야 한열도 허둥지둥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영은 미약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삼일간 많이 늘었군요." 그 말은 더없는 칭찬이었고, 한열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영은 손을 저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무리없이 펼치는 수준에는 도달한 것 같은데…… 정진해 나가면 검에 담겨진 '비밀'을 깨달아서…… 어쩌면…… 제가 완성하지 못한 것도 완성할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럼, 저는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담겨진 비밀? 이 검법에서 더 강력한 무언가가 숨어있다고? 더이상 완벽한 검술은 없다고 생각될 정도인데…… 이상하다.' 그의 쓸쓸함이 섞인 말에, 한열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의문이 섞인 표정을 만들어냈으나, 그는 그 자리에서 이미 바람처럼 사라져 모두들이 잠든 장소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렇게 한참동안 굳어있던 그는, 쓴웃음을 만들어내며 어둠을 헤치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영은 자리에 돌아가 누우면서 중얼댔다. '무형무無形舞는…… 어쩌면…… 꿈일지도 모르지……' 최근 이러한 생각이 드는 그였다. 054. 다각다각― 안개가 짙게 뿌려져 사방을 잠식하여 침묵속으로 잠겨든, 푸르른 아침이었다. 푸르르다기 보 다는, 어쩐지 모르게 음습하고 차가움이 서린 것이, 꼭 굳이 표현하자면 하늘색 얼음의 파편 이 허공중에 노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신비로이 햇빛을 머금고 있으나, 아침의 금빛 햇살마저 차단해 버리는 짙은 안개가 갈라지며 수백의 인영이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이 일행들 사이에서 새카만 음영으로 자리잡은 마차와 말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들 일행 에서 말발굽 소리와, 마차 바퀴가 대지를 누르며 지나가는 소리가 퍼져나온 듯 싶었다. 푸르릉― 말이 콧김을 뿜어내는 소리도 안개를 투과하여 축축하게 젖어 들려왔다. 그리고 무수한 인 기척과 걸음소리가 그에 섞여들면서 복잡하게 대지를 질타했다. 아침 안개속에서는 새들마저도 둥지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자칫 시야를 잃어버리면 길 잃기도 쉽거니와, 무엇보다 잘못하여 낮게 날아 먹이를 잡다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나무 나 바위에 부딪힐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마침내 안개속에서 드러난 거대한 성벽을 발견하고 다가들 때, 저쪽에서도 그들을 발견했는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멈추시오―!" 무림맹 본부가 존재하는 백월성이다. 그래서 그만큼 치안이 문제시 되어서 인지―황궁 측에 서 보자면, 정파나, 사파나, 마교나…… 무장 위험 집단일 뿐이다. 그것도 끔찍할 정도의 무 력을 보유한. 고로, 그들에게는 그놈이 그놈이었던 것이다. 다만, 정파 놈들은 그나마 영웅심 리에 빠져 백성들을 돕느니, 어쩌니 하면서 가끔 돈도 뿌리고, 황궁도 돕고 하는 녀석들인지 라 그나마 다루기 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군기가 바짝 살아 있는 곳이고, 워낙 긴장상태 라 경비병마저도 상당한 공력을 실어서 그 음파를 널리 퍼뜨려 그들에게 외쳐 경고를 날리 고 있었다. "이런 규모의 집단은 통행증이 없을 시에는 신원보증을 할수 있는 인물이나……" 막 말을 뱉어내 상투적으로 통과시 필요한 것을 알리려던 성문 경비는, 열명의 사람이 빠르 게 말을 타고 거의 모습을 드러내는 수백의 사람들 사이에서 달려나와 서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명문정파의 인물임이 확실한 복장이나 허리에 걸린, 살상용으로 충분한 검 때문이라 기 보다는, 일찍이 보아왔던, 잘 알려져 있는 그들의 얼굴과 더불어 뿜어져 나오는 정기를 감지하여 인식했기 때문에 경고를 멈추었다고 할수 있었다. "아니…… 당신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들에 이런식으로 질문을 날리자, 그들중 한명이 앞으로 걸어나와서 경비에 게 말했다. "연락이 되었을거요! 이 분들은 무림맹에서 초대되어 백마성의 천류세가에서 오신 분들이니, 통과를 허락해 주시오." 천류세가! 그 이름을 듣자 마자 소름이 몸에 타고올랐다. 이 경비병은 무림에서 물 좀 먹은 녀석이었던 지라, 무림사가의 이름은 잘 알고 있었다. 너 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 중에서는 과장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는 직접 보았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무림맹 자체 세력중…… 맹주가 상당한 내상을 입고 거친 검자국이 몸에 대각선으로 가로질 러 나고, 다른 화경의 고수는 거의 피떡이 되어버렸고, 몇 개의 대대가 지리멸렬했던 것은 기억난다. 이 무서운 이름을 듣자 자신도 모르게 오한이 돋으면서 몸이 파르르 떨렸으나, 이들이 신원 보증을 하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겠지, 아니면 정말로 무림사가가, 그 곳이 정도 무 림과 결합하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칠룡중 일인이 나서 단도직입적으로 경비에게 말하자, 경비는 그 분위기에 휩쓸려, 오한이 돋은 몸을 추스르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 버린 것이다. 그리고 곧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던 그는 푸른색 신호가 마음속에서 반짝임과 동시에 안쪽으로 암호를 섞어서 전음 으로 통과와 몇가지 사항을 전달했고, 곧 초소 내부에서 빠르게 깨알과 같은 크기의 글씨로, 암호형식으로 글을 작성하여 황궁으로 향하는 전서응傳書鷹을 날릴 준비를 했다. 무려 세 마리였으므로, 중간에 어떻게 된다 하더라도 한 마리는 도달할 것이었다. 전서응이 잡힌다 하더라도 어차피 암호이므로,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천류세가의 인물들이 마차를 중앙에 둔채, 무림맹에서 파견된 열명의 남녀들과 더불 어 넓고 육중한 성벽을 통과, 백월성 내부로 들어섬과 동시에 전서응이 날아올랐다. "전서응인가 보군." "어쩔거야?" 마차의 내부였다. 실용적인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결코 화려하지도 않지만 소박하지도 않은 형태의 마차 내 부에서는 두명의 인물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명은 가느다란 체구지만 매우 훌륭한, 선골仙骨이라고 불려도 될 만큼 잘 짜여져 있는 몸 을 지닌, 자신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인물의 성별이 어떨까, 하고 적어도 다섯 번은 고 민하게 만드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전혀 손질이 되지 않아 풀려진 채 늘어진 흑발은, 빛이 잘 새어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마차 내부에서도 옅은 빛을 뿜어내는 듯, 화려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오히려 묘한 매력을 자아내고 있었기에, 어색해 보이지는 않았다. 창백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맑고 깨끗한 피부, 그리고 새까맣고 긴 속눈썹과 너무 깊고 맑아 서 칙칙하게 느껴질 정도의 흑안黑眼…… 그것 내부에는 날카로운 기광氣光이 편린저럼 배 어들어 있어, 이 인물의 눈만을 자세히 들여다 보아도, 무림인들에게는 긴장을, 민간인들에 게는 위압감을 던져주었다. 피를 바른듯한 붉은 입술에, 외모 자체는 아직 20세에도 이르지 않은 듯한 아름다운 소년이 었으나, 그 분위기는 연륜을 지닌, 그러한 분위기였다. 실제 나이가 18세 정도임을 생각해 볼 때, 그 분위기는…… 잘 은폐되기는 하였으나, 그의 무위武威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느낌 과 뒤섞여 군왕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 앞에 앉아있는 소년도 보통의 소년은 아니었다. 실제 나이가 13세 정도였으나, 그 외모는 15세 소년의 그것이었다. 라고는 하지만 가느다란 몸매와 더불어서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묘하게 어긋나서 먼저 경계감을 품게 만들었다. 위화감이랄까…… 피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오는 13세 소년. 결코 평범한 삶을 살지는 않았으 리라. 역시 앞의 인물처럼 흐트러져 있는 머리카락과 더불어 아름답기 짝이 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어, 만약 이 아이가 여성을 하나 찍어 그날 얻으려 든다면, 단 하루면 어떤 규수라도 넘어 오지 않을수 없을 듯했다. 거기다가 색기까지 은은하게 눈동자에 스며들어있었기에, 그런 느 낌은 더욱 가중되어 그를 단순한 미공자로 보이지는 않게 했다. 눈동자에 강렬하게 배여있는 정기가 그 색기라는 느낌이 드는 묘한 것을 닦아내고 있어 아 동兒童 지향志向 변태성욕자變態性慾者들의 목표가 되지 않도록 하고 있을 뿐이긴 하였으 나, 그 정기가 단순한 소년이 아닌, 어떤 무림인으로써의 강렬한 존재를 드러내게 했다. "……전서응이라. 뭐, 황궁에 우리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모양이군. 저지를 해볼 까……" 무림오천武林五天의 일인一人이자 무림오천중에서 최고수라고 알려져 있는 은영천검銀影天 劍이 입을 열어 중얼대자, 칠룡사봉의 일인이자 천류세가의 가주인 천운검룡天雲劍龍 유운 劉雲역시 입을 열어 답했다. "며칠 정도는 저지할수 있겠지?" "그 며칠이 무림맹을 뒤집어 버리기에는 결코 부족한 시간은 아니거든. 거기다가 알려진다 해도 적어도 3일은 있어야 본대 세력이 올것이고…… 대충 5일 정도는 여유가 생기고, 거기 서 3일 정도를 더 더하면…… 뭐, 그쯤이 딱일거야." "그런데, 어떻게 전서응을 잡을거지?" 운이 의아한 듯 질문하자, 영은 입꼬리를 장난스럽게 말아올리면서 대답했다. "……뭐, 이렇게." 대답과 동시에 뻗어올려진 왼손의 집게 손가락 끝에서, 날카로운 실 여섯가닥이 뿜어져 올 라갔다. 강기사검술剛氣絲劍術. 회선사법回線絲法 결박結縛의 장章과 더불어 강기사검술剛氣絲劍術. 자유사운自由絲運의 장章. 무형참륙無形斬戮 제 일식一式. 관살법貫殺法이 동시에 펼쳐진 것 이다. 강기사검술. 자유사운自由絲運의 장. 박형신위縛刑身僞 제 일식一式의 유허포박游虛捕縛과는 또 다른 것이다. 유허포박이 보통 빠르게 움직이는 고수나 상대를 묶어 허공에 결박하는데 쓰는 데 비하면, 회선사법 결박의 장은 초식이 없이 자유자재로 물건을 묶고 끌어오는 것이 었다. 순식간에 뿜어져 나간 여섯가닥의 실은 그의 투시능력透視能力과 함께 펼쳐져 전서응 세 마 리를 향해 뻗어나갔다. 그들이 지나간 뒤에 날개를 퍼덕이며 솟구쳐 올랐지만, 이제 그 목숨 을 내 놓아야 할 것이었다. 상당한 거리였지만, 강기사검술은 어차피 '시야가 미치는 곳'이 곧 공격범위였으므로, 별로 상관 없었다. 강기를 얇은 실로 뿜어내는 것이므로, 그의 공력상으로도 별로 문제가 없었다. 아마 투시능력만 제대로 활용하면, 고수 암살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강기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더불어, 화경쯤 되거나 초식으로라도 검강을 만들어 낼수 있는 자, 혹은 금색의 검기를 만들어낼수 있는 인물쯤 된다면야 실을 잘라내면 되므로, 피격당할 것은 못되었다. 거기다가 거리가 멀어질수록 자유롭게 운용해 적을 공격하는 것이 힘들어지므로, 암살용은 못되었다. 사물을 묶을수도 있고, 절삭할수도 있는 강기사검술이었으나, 어느 정도 고수들에 게는 통하지 않는 단점이 있었던 것이다. 잘라내면 어차피 그만이었기에…… 그 숫자가 수백가닥이라 하더라도 강기 회오리 한 번만 일으키면 모조리 끊어져 나가 버릴 것이었고, 그정도 숫자의 실을 뽑아내 사용하면, 웬만큼 단거리가 아닐시에는 공력 소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거기에다가 그 '웬만큼 단거리'에서는 차라리 은영비를 뽑아 검강 을 날리던지, 어검술을 사용하면 그만이었기에, 이것은 정말 다용도는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 강기사검술마저 '대자연 유검'의 구결과 동시에 사용하면 그 효율이 무지막지 하게 증폭되므로, 영은 최근 이 강기사검술을 즐겨 사용하고 있었다. 쉬가가가각― 보이지 않는, 강기의 투명한 실이 마차 천장에 미세한 여섯 개의 구멍을 뚫으며 쏘아진 살 과같이 하늘을 꿰뚫었고, 회선사법으로 운용된 실은 편지가 묶여진 전서응의 다리를 채로 묶어 그대로 절삭식으로 운용되어 그대로 잘라내어 버림과 동시에 다시 그 편지를 묶어 끌 고왔고, 관살법으로 운용된 실은 이미 전서응이 다리가 잘린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이미 뒤 통수를 뚫고 미간으로 튀어나와 뇌를 휘저어놓았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추락하는 전서응을 무시하면서, 영은 느긋하게 강기사검술의 관살법 을 해제하면서, 묶인 편지를 허공에 띄우게 한다음, 그대로 강기사검술에 양강의 기운을 전 달해 삼매진화로 순식간에 그것을 태워버렸다. 재가루는 바람에 휩쓸려 갔고, 다시 그는 풀려져 나온 강기의 실에 보내던 기를 차단하여 그것을 제거했다. "제거 종료." 영이 입을 열자마자 운은 미소를 띄우면서 말했다. "잘했어." 마차 내부에서의 이런 작업은 천류세가의 인물들이 은근히 힘을 미약하게 드러내서 뿜어져 나온 기류로 차단되어버렸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그들의 걸음이 이어졌 다. 개문된 시간이기는 하였으나…… 사람이 별로 지나다니지 않아 아무런 장애도 없이 그들은 걸어갔다. 거리를 밟아가면서 생겨나는, 마차 굴러가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와, 거의 없다시피 한 인기 척은 안개의 수분으로 인해 더 크게 들려야 정상일 것이나―비오는 날에 대화하면 더 소리 가 크게 들림을 생각해 보라.― 기이하게도 그 짙은 농무濃霧 속으로 녹아들어가 잘 들리지 않게 되는 듯한, 그러한 착각을 일으켰다. 그것은 아마, 이 짙은 안개가 사람의 시각을 통해 스며들어 몽환적인 느낌을 가중시켜, 사람 으로 하여금 '조용하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다 와가는군." 열명의 남녀중 선두의 한 인물이 중얽더렸다. 이들 중 두 여성은 떠날 때 상당한 중압감을 받고 있었으나, 이번에 그 중압감이 해소되어 상당히 밝은 기색이었다. 그런데, 다른 두 여성들은 뭐가 불만인지, 여행이 끝날 때 즈음에는 내내 찡그리고 있었다. 여행이라고 할것도 없는 짧은 나날이었지만, 꽤 즐겁게 보냈었는데…… 하기사, 자신들이 '낚아(?)'보려고 했던 인물이 무림사가의 고수였음에야…… 거기다가 그 것도 넘어 낚으려면(?) 이미 정해진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그 주인과 그 다지 좋지 않은 관계임에야…… 라고는 하지만 그 낚이다. 라는 말의 대상물인 은영천검은 이렇게 상품이 되어버린 것에 상 당한 불만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 일로 무림맹을 엎어버리려는 생각이 한층 가중되어 버렸 다는 것을 검토해 볼 때,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김칫국만 들이마시고 있는 여성들만 불 쌍할 따름이었다. 이것은 영 뿐만 아니라 운도 비슷한 생각이었기에 달라붙어있는 두 여성들이 불쌍하다는 것 은 확고한 사실이었다. ……무림맹은 컸다. 그도 그럴것이, 백월성의 1/5을 차지하는 넓이 임에야…… 수용인원만 삼만을 넘길수 있는 크기였고, 실제로 1만 5천명 정도(비 전투원 포함)가 거주중이었다. 하지만, 기타 누각 따위 역시 존재하고, 그 배치와 설치된 진법들이 차지하는 공간까지 생각 해 볼 때, 실제 거주구역은 그리 넓지 않았다. 특히, 무림인들이 자는데 그다지 넓은 공간을 필요치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더 줄어든다. 그래서 비워져 있는 공간은 상당했다. 하지만 지금 비워져 있던 곳이 어제 부로 청소가 확 실하게 끝났고, 그 비워진 무림맹의 방들은, 상당수의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과연, 이번 손님들이 '영입'될 인물들일지, '제거' 될 인물들일지는 알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055. 단순單純한 비무比武 무림맹 내부로 들어선 천류세가의 인물들은, 모두 각기 숙소를 배정받았으며, 현재 운과 운의 약간 뒤에 서서 천천히 운을 따라가는 영 만이 인도를 받아 현재 무림맹의 '어른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 운은 그저 무턱대고 걸어가고 있는데 비해, 영은, 비록 감추어 지긴 하였으나, 날카로운 눈길로 사방을 경계하면서…… 아니, 길을 외우면서 걸어갔다. 나중에 한 번 은신하여 이 주변을 모조리 뒤져볼 생각이었다. 뭐, 진법쯤이야 기의 흐름을 읽고 '자연스럽게' 돌파가 가능한 그였기에, 염려같은건 하지도 않았다. 「영.」 문득 운이 어기전성御氣傳聲의 수법을 사용하여 영에게 전음을 날려오자, 역시 영도 어기전성을 사용하여 그에게 전음을 날려보냈다. 「무슨 일 있어?」 「아, 별거 아니야. 이대로 가면 누구 누구를 만나게 되는거지?」 「아마, 탄령하 쯤에서 싸웠던 이들, 죽은 뇌검자를 제외한 이들은 다 보게 되겠지. 몇몇 더 있을 가능성도 크고.」 「……음.」 영의 대답에, 운은 침음만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정면을 여전히 응시하며 계속 걸어가고 있는 것이, 비록 영에 미치지는 못할지라도 운 역시 확실히 오묘한 내공의 운용에는 통달 한 듯 싶었다. 어기전성을 사용하면서 그들은 잠깐 더 대화를 나누었고, 곧 스쳐 지나가는 복도나, 가끔 가다가 옆쪽으로 보이는, 아름답게 치장된 정원 따위나 비어버린 누각 따위에는 별로 관심조차 보이지 않은채, 오히려 주변에서 느껴지는, 뭉쳐진 살기와 배치되어진 진법들의 파악에만 주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건물 내부의 복도에서 빠져나와 포석이 깔려진, 주변에는 꽃이 피어있는 정원과 비슷한 길을 지나, 상당한 정기가 지배하고 있는 장소를 발견했고, 역시나 그들의 예상대로 이곳이 바로 '무아각無我閣'이었다. '무아각인가……' 영은 마음속으로 읊조리면서, 몸을 가볍게 긴장상태로 만들면서, 그러나 테는 나지 않게 걸어 무아각으로 오르는 층계를 밟아갔다. 운 역시 몸을 조금 긴장시켜 빠르게 움직일수 있도록 하면서, 겉보기로는 느긋하게 층계를 밟아 올랐다. "자, 잠깐…… 무아각에서는 병기를 소지할수 없습니다." 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가 소림사인줄 아는가 본데……' 영이 기분이 상한 듯, 미약한 살기를 은연중에 드러내기 시작하자 그들을 인도해 왔던 하급 무사는 몸을 살짝 떨었다. 영은, 마음속으로는 조소를 던지면서, 약간의 겉멋이 가미된 말로 그를 눌러버렸다. "내 병기는 나와 생사를 같이한다. 병기를 소지할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무아각 자체를 없애 버리려고 할거라는 생각은 못해봤나?" "……" 그는 침묵하다가, 고개를 가볍게 숙여 보이고는 먼저 무아각으로 올라가서 몇마디 말을 나누고 오는 듯 했고, 곧 천천히 걸어와서 영에게 고개를 숙여보이면서 말했다. "대협께서는 어차피 병기 없이도 이곳 사람들의 목숨을 일수에 취할 수 있을 것이니 들여도 상관없다고 하셨습니다. 무아각에 드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그는 물러나 버렸고, 영은 입가에 쓴 미소를 매달았다. 운은 조소를 흘리면서 영에게 전음을 날렸다. 「병기는 나와 생사를 같이 해? 영이 그런 말도 할줄 아네. 훈련 할 당시에는 항상 '몸이 곧 검이 될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은 마음이, 그 다음은 정신이, 마지막으로는 영혼이 검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영은 가볍게 운을 흘겨보더니 위로 올라갔고, 운은 웃음을 참으면서도 그의 앞쪽으로 먼저 걸어올라 무아각의 각루로 올라 섰다. 그윽한 주향酒香이 풍겨오자 영과 운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가볍게 구겼다. 둘은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별로, 라기 보다는 거의 혐오의 대상이랄까…… 그들은 여색 다음으로 싫어하는 것이 술이었다. 특이하게도 비슷한 취향을 가진 둘이었지만, 다른 부분에서의 취향은 판이하게 틀렸다. 가령, 운이 적당히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면 ―물론 지나치게 화려한 것은 거부하지만.― 영의 경우는 소박하거나 화려한것이나 별로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뭐, 이 부분에서도 공통점. '귀찮은'것은 싫어했다. 가령, 옷이 사람을 입는 다던가 할 정도의 경우는 둘 모두 짜증을 부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차이나는 것이라고 하면 음식 취향이랄까…… 운이 약간 육식쪽으로 기울었다고 하면, 영은 고기나 야채나, 기름기만 많지 않으면 적당히 넘어갔다. ……이곳은 영이 살던 곳의 '중국'과 너무나 비슷한 곳이라 음식쪽에 기름기가 철철 넘쳐 흘러 영은 기름기가 많으면 상을 물려버렸다. 까다롭다고 말할는지도 모르지만…… 이곳의 기름기는 도가 지나쳤다. 세상에, 죽엽청 정도의 독한 술 없이는 맛조차 제대로 못 느낄 정도의 음식이라니…… 영이 아무리 다국을 노닐면서 돌아다녔다고는 해도, 중국에 가서는 반드시 외국인 식당에 가거나 한국인 식당으로 다녔다. 특히 샹차이[香菜]라는 것이 들어가면, 한국인들의 입맛과는 정말로 거리가 먼 음식이 되어버리기 때문에―그 향기는 진하다 못해 한국인들에게는 후각 버릴 정도라고 한다.―, 중국의 식당에 가서도 웬만히 잘 알고 있는, 먹어도 나쁘지 않은 음식이 아니면 결코 시험삼아 시켜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뭐, 안주 정도라면 기름기 넘치는 것을 내어놓지는 않았을 터이니, 술 대신 안주라면 집어먹어도 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들이 무아각 내부에 들어섬과 동시에, 약간의 대화에 의한 음파가 돌아다니던 무아각 내부가 조용해졌다. "……" 곧 그들은, 일전에 보았던 전신초상화와 거의 비슷하지만, 초상화로써 느꼈던 기분과는 비교도 안되는 강렬한 기운이 엄습하자 몸을 움찔 떨었다. 그들이 비록, 현경의 고수라 할지라도 무기가 없는 한 우리 모두를 상대 할수 없다, 고 하는 의도를 '병기 소기 허가'로써 드러내긴 했으나, 이들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무기를 떼어놓고 오게 할것을…… 하고 후회까지 하고 있었으니까…… 기운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영이라도 그 눈빛과 기도 자체가 사람과 틀려 쟁쟁한 화경의 무인들마저도 모두 침묵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운의 눈동자에 서린 강렬한 정기는, 그들 자신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었기에, 더욱더 몸이 바짝 긴장되는 그들이었다. "험험, 자, 어서오시오. 먼길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소. 무림맹을 집처럼 편안하게 보시게나." 맹주가 헛기침을 하면서 말하자, 운은 눈동자에 이채와 약간의 탐탁찮음을, 영은 탐색하는 듯한 빛을 띄었으나, 그 둘다 너무나도 잘 은폐되어 있어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맹주마저도 눈치채지 못했다. 뭐, 편히 앉으라고 했겠다. 하고, 생각없이 두명은 지정된 자리에 각각 앉았고, 그들이 앉음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운과 영에게 꽂혀버렸다. "……자자, 천류세가와 무림맹의 대계를 위하여 한잔 드십시다." 분위기가 어쩐지 썰렁하자, 맹주는 먼저 이렇게 말하면서 대화를 유도해 나가려 했다. 뭐, 맹주로써는 은근히 천류세가를 만만하게 보다가 그들이 들어오자 마자 퍼뜩 깨어버렸다. 저 어린 가주도 자신과 거의 동등한 등급의 고수였고, 저 심복으로 보이는 은영천검이라는 자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인물이었다. 맑고 깊은 눈동자는 반박귀진이라는, 그로써는 세 번째로 보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었고, 그 가공할 안광에는…… 그 기광에, 솔직히 말하면 자신마저 주눅들어버렸다. 맹주가 처음 본 현경의 고수는 뇌검자였다. 뇌검자가 정기를 은근히 드러내어 화경이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그는 현경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현경이라고 해도 신경만 쓰면 자신의 등급이 낮아 보기에 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본 자가 천산검파의 검주였다. 뇌검자를 능가하는 무인이었기에, 그는 맨 처음 그의 앞에 섰을 때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어 버렸었다. 이미 200세를 넘은 천산검주는 다만 웃었을 뿐이지만…… 마지막, 세 번째로 본 자가 바로 이 은영천검이라는 어린 고수였다. 예상나이는…… 조사된 바는 믿기지 않아서, 그가 짐작하는 바로는 20대 중반정도로 생각되었다. ―실제 나이가 17에서 18세 정도임을 알게 되면 경악하기보다는 기겁해 버릴 것이다. 어쩌면 심장의 전원이나가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이 보았을 때, 위의 두명보다 월등히 강해 보이는 고수였다. "……" 무아각 내부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그들이 규정지었던 무림사가, 그 기억이 되살아나 자신들의 양심을 베고있었기 때문이다. 가주는 전혀 분노의 기색 따위는 드러내지 않았다. '잊어'버렸다는 듯…… 그 덕분에 맹주도 양심이 쑤셔오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유혹이었다. 마교에서도 '연합'이라는 말을 먼저 꺼낼 정도로 천류세가는 위협이었으니까……. 056. "……" 어색하게 끝나버린 연회, 잡다한 이야기로 끝나버렸지만, 그래도 은근슬쩍 맹주가 정세에 대한 이야기와 혼사에 관한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 상황에서 영과 운은 절묘하게 그것을 끊어버렸다. 이야기의 맥 끊기로는, 침묵만으로도 손쉽게 대가가 될 수 있는 영과, 절묘한 말솜씨와 급박한 화제 전환이 특기인 운은, 그 오묘한(?) 연수합격(?)술을 펼쳐나가 대화의 맥을 끊어버리는데 주력했다. 대화의 맥을 이으려고 노력하는 맹주와 각 파의 대표자들…… 그리고 그것을 손쉽게 잘라내어 버리면서 그들을 농락하는 영과 운, 정말 참으로 한동안 대화가 빙빙 돌며 우습지도 않은 상황을 연출했다. "참 재미있었어. 우리 장난에 그대로 놀아나 버리는게…… 영. 어때?" "아, 하지만 맹주는 확실히 능구렁이더군. 실력을 반은 숨겨놓고 있어. 말투나 하는 짓을 보면 헛점을 드러내면서도 뒤로는 칼을 갈고 있는 부류의 인간이더군. 쯧쯧…… 정파라고 자처하는, 그것도 정파라는 무림의 '의로운 깡패'의 수뇌나 다름 없는 인간이 그렇다니…… 무림도 망해 가는건가……" 영이 중얼거리자, 운은 피식 웃어버렸다. 자신도 그러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또 의심되는건 없었어?" "아…… 은근슬쩍 '대계'라는 단어를 집어 넣는데. '천년'이라는 말을 빼냄으로써 자신의 무지하지 않음을 은근히 증명하고, 그 대계라는 단어로 '천류세가와 무림맹'을 수식해서 은근슬쩍 '이어 보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척'했지. 거기다가 우리 두명이 병기를 지니고 무아각에 들도록 허용해 준 것은…… 은근한 자신감의 표출이라고 밖에는…… 하지만, 우리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겠지." 영이 그렇게 말하면서 몇 개의 설명을 더 집어 넣으려고 하자, 운은 손을 흔들면서 입을 열어 그것을 저지했다. "아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더 이상 말할건 없지. 그런데, 여기서 맹주 다음으로 조심해야 할 사람은 누군 것 같아? 무아각에 들어서 우리에게 '보여도 될' 사람 '바깥의 존재'들 중에서……" 운이 '보여도 될'이라는 단어와 '바깥의 존재'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그에게 질문하자, 영은 쓴 미소를 만들어내면서 운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글쎄…… 맹주 다음으로 조심할건, 천산검주야. 빌어먹을, 그 인간이 있는 것 같아. 정보망에서 그들을 포착했을때는 설마 하고 넘겼는데…… 아니, 설마 하고 넘기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어쨌든 무림맹 내부에 내가 '현경'이라고 규정 지을수 있는 자가 하나 있고, 화경의 고수는 상상도 못할만큼 많으니…… 이것으로 미루어보면 천산검파가 맹내에 존재하는 것 같아. 맹주…… 그 인간,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정말 어이가 없다니까……" 그의 말에 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느끼지 못하였으나, 화경의 인물들 정도라면 얼마든지 포착할수 있었다. 맹내에 무아각에서 본 이들 외에도 상당히 강렬한 기운이 몇군데 퍼져 있어서 상당히 불안했었는데, 사실이 된 셈이었다. "음…… 천산검파가 무림맹에 몸을 숨기고 있는건가…… 정찰은 할거야?" 운이 침음을 흘리면서 중얼거리다가 영에게 묻자, 그는 천천히 대답했다. "나라도 들킬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아니…… 천산검주는 나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검을 뽑고 달려나와 비무라도 청하기를 원하겠지만. 아마 그는 억누를거야. 딱히 그 기운이 느껴지는 부근으로만 가지 않아서 그를 자극하지만 않는 다면야 그다지 상관없을테니…… 뭐, 그정도만 조심하면 괜찮겠지." 영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머리카락을 묶어 옷 속으로 밀어 넣은다음, 가볍게 몸 주변에 회전하는 바람을 만들어내어 기력을 차단했다. 이 영기의 끈이 자신을 속박하기는 하였으나, 잘만 사용하면 기운 은폐용으로는 제격이었다. 사이코키네시스Psychokinesis를 잠깐 이용하여 냄새가 흘러나가는 것도 차단하고, 기척도 차단해 버리면서, 레비테이션 능력을 잘 활용하여 신법과 섞으면, 염탐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지금 갈거야?" "아아." 대답하자마자 얼굴에 가볍게 흑색의 천을 맴과 동시에, 영의 신형은 방 안에서 그대로 흩어졌고, 어떠한 기척도 느낄수 없게 되어버렸다. 운이 가 버렸나, 하고 중얼대던 참에 귓가에 전음이 흘 러들어왔다. 「다녀올게.」 그리고 창문이 열렸고, 곧 열린 창문은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 운은 창문이 열리는 것을 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곧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의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보았는지는 알수 없었으나, 어차피 스스로 그저 해 본 것이었으므로, 보았건, 보지 못했건, 별로 상관은 없는 일이었다. 운의 시야가 방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은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곧 가벼운 바람이 일어나면서 정교한 기력이 흘러들어가 가볍게 문을 닫았다. 은은한 달빛이 창에 발라진 창호지를 투과하며 방 바닥에 스며들었다. 은은한 달빛, 오늘따라 창백하고 맑은 달빛이 창호지를 투과하여 방안의 분위기를 운치 있게 만들었으나, 운은 그런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무덤덤한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곧 침대에 발라당 드러누우면서 중얼댔다. "쳇, 실패만 해봐라……" ……그의 인간을 초월한 실력에 대한 약간의 질투도 섞여있는, 그러나 걱정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목소리였다. 오행대천공五行大天功의 목둔법木遁法, 그리고 대자연 유검의 풍천무를 적당히 섞고, 기운 자체를 은폐해 버리며 소리없이, 흑익黑翼의 새가 되어 무림맹 위를 가로지르던 영은, 문제의 기운들 을 피해나가면서, 느긋하게 전체적으로 무림맹의 모습을 살폈다. '넓긴 하지만…… 진법의 배치, 고수의 배치, 그리고 건물 자체가 진법과 비슷하게 만들어져서 길을 잃을 가능성이 크군…… 화려한 건물이 많은 것은 착각을 유도하기 위해서고, 비슷비슷하게 지어서 그 용도를 헷갈리게 해 놓았군…… 진법만 가동되는 이런 시간이면 죽음의 땅인걸? 휴우…… 조금 더 고도를 높여서 날아겠군…… 이러다가 잘못하면 비도飛刀라도 맞겠어……' 중얼거리면서, 영은 무림맹 자체를 훑듯 살피면서, 그 지도를 꼼꼼히 머릿속에 새겨넣었다. 그리고 진법의 이름과, 배치, 파해법등을 되새겨 한데 묶으면서 그 지도의 세부사항에 첨가했다. 무인들의 배치…… 각루와 여러 가지 조형물들의 배치…… 맹주의 숙소 정도. 이미 낮에 격공하여 맹주의 기질을 읽어 놓았으므로, 그의 기가 어디 있는지 정도는 쉽게 알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맹주의 숙소는 조금 특별나게 해 놓았지만, 그런 건물이 7개가 넘었던 것이다. '쳇! 번갈아가면서 자는 모양이군. 무작위로…… 역시 머리가 꽤 좋군.' 그렇게 그가 하늘을 비행하면서 투덜대고 있던 사이, 무림맹의 어느 한곳…… 영이 의식적으로 회피하는 장소에서는 누군가가 흥분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대단한 고수군……" 암향속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흑단黑檀으로 만들어진, 길다랗고 단단한 목검을 쓰다듬는 손길이 있었다. 가느다란 손이었으나, 자세히 보면…… '검을 잡기에 좋은' 손임을 알수 있다. 경맥이 그다지 두텁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얇지도 않은…… 거기에 얼핏보면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달려있어 매우 부드럽게도 느껴지는 손이었다. 그러나…… 이 손은…… 현재 무림에서 단 두명 뿐인 현경의 고수의 몸에서 뻗어나온, 열 살 때부터 검을 쥐어온 손인 것이다. 열살 이전에는…… 오로지 검을 익히기 위한 훈련만을 진행 시켜온…… "……" 자신도 모르게 흥분되어진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그 증거였다. 지금까지 무너져 본적이 없던 평정심이 너무나도 손쉽게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자신보다 고수인 그 자의 앞에 서서, 필생의 공력을 다해…… 자신이 가장 자신있어 하는 검술을 펼쳐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이건…… 승부욕도, 살의도 아닌…… 순수한…… 순수하기 짝이 없는 갈망이었다. 이 기분은…… 어렸을 때, 검을 쥐도록 허락받은지 1년만에 검기를 발출해 10장 밖의 사물을 베고, 당시의 자신의 스승…… 14대 천산검주에게 처음으로 칭찬받았을때의 감정과 비슷했다. 정말 터무니 없지만……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나이만 하더라도 대략 200의 햇수가 차이나는 어린 자, 하지만 자신보다 강한 자…… 그 자에게 '쓸만하다'는 말이라도 듣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실제로 정면승부한다면 적어도 세명의 자신이 삼재진이라도 펼치면서 덤벼야 평수를 이룰 것이며, 죽이려면 자신과 같은 등급의 고수 다섯명은 필요했다. 바깥에서 느껴지는…… 확실히 감각에 포착되지는 않았으나 본능적으로 느껴져 자신을 흥분에 떨게 하는 존재…… 그 존재는 자신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자신과 같은 흥분이 몸에서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일까…… '아니…… 그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으니까…… 사적인 비무는 쓸데없다는 말이겠지…… 나중에…… 한 번 검을 섞어보았으면 좋겠군……' 그의 입에는 쓸쓸함과 갈망이 섞인 쓴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그리고 천천히 그 미소에 약간의 호승심이 섞이기 시작하자 흑단의 목검, 자신이 묵학墨鶴이라고 이름 붙인 검에서 강렬한 투기鬪氣가 뿜어져 올라왔다. 그러나 그것은 가볍게 그의 주변에서 일어날뿐, 바깥으로 퍼져 나가지는 않았기에, 그것을 느낀 이는 아무도없었다. '맹주가 계획한…… 내일의 '비무'나 몰래 보아 두어야겠군…… 후후후……' 곧 투기마저 사그라 들고 나서, 흑색의 기운이 흐르는 목검의 잘 다듬어진 날 부위에서 강렬한 청광靑光이 피어올라 타오르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검 위로 몇치 정도 솟아 나온 순간,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자문이 흘러나왔다. "심형어검강心形御劍剛…… 그는 심형어검강을…… 뛰어 넘었을까? 과연…… 그럴까? 그 아이는…… 과연……" 057. 마교魔敎의 승리勝利. '……얼마 안남았어. 조금만…… 조금만 더!' 커다란 갈망이 눈동자에 떠올라 있었다. 그 갈망은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고 있는 마기魔氣 와는 부조화 스럽게도, 순수한 갈망이었다. 정말 어느 누가 보아도 도와주고 싶을 만큼 순수 한 갈망이었다. 휘리리릭― 문득 바람이 대지를 할퀴고 지나가다가 그의 도포 자락을 가볍게 휩쓸었고, 그의 눈동자에 이채가 일어났다. '신호'를 받은 것이다. 자신들이 기다리던 녀석들이 대접을 받기 위한 모 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좋아!' 그의 새카만 눈은 얼마 안 있어 실행될 계획과 그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비록 피가 튀고 살기와 광기로 범벅이 되어버린 장면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 비친 순수한 갈망 과 뒤섞여 어딘가 모르게 화려하고 멋지게 보였다. 그는 손을 들어 가볍게 아래쪽으로 흔들 었고, 그와 동시에 그의 뒤쪽에 부복하고 있던, 역시 강렬하기 짝이없는 마기를 몸에 휘감은 이들이 그대로 일어서며 가공스러운 경신법을 운용하여 다가와 밧줄을 잡고 그대로 풀어내 렸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밧줄을 풀자, 나무 지지대를 대지에 뿌리내리게 하고 있던 어떤 장애물 도 없어져 버렸고, 나무 지지대는 그것이 받치고 있는 것들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며 휩쓸 려 내려가거나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부수어져버렸다. 쿠르르르르르― 통나무들과 바위들이 굴러내려가면서 지독한 흙먼지를 피워올렸고, 그것들은 쏟아져 내려가 면서 미친 듯이 대지를 울렸다. 그 탓에 아래에서는 당황하기 시작하였지만, 그들은 한수 하 는 무림인들이 주류였기에, 그것들을 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곧 다시 절벽의 위에서는 공격할 참이었다. "기름! 기름 주머니를!" 그의 목소리에는 반짝임과 희열이 스며있었다. 너무나도 쾌활한, 하지만 스산한 살기가 스며 있는 목소리에 다른 이들도 눈동자에 그와 같은 희열과 살기를 번뜩이며 그대로 허리에 차 고 있던 기름 주머니를 풀었고, 순식간에 아래쪽을 향해 기름을 퍼부어버렸다. 요란하게 퍼부어져 내린 기름들이 가라앉기 시작한 흙먼지 사이로 쇄도해 들면서 퍼져 흙먼 지 때문에 시야가 차단당하여 피하지도 못한채 그대로 굳어있던 무림인들의 몸에 뒤집어 씌 워졌고, 그들은 독물이 아닌가 하여 급하게 운공조식 하였으나, 독물이 아님이 확인되고, 기 름의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안도하였으나, 곧 다시 기름이라는 것을 상기하고는, 경악하여 그 대오가 더욱더 흐트러졌다. 기름이 모두 퍼부어 지고 나서, 선두에 서 있던 절벽 위의, 가장 강력한 마기를 풍기고 있는 자는 검을 그대로 뽑아들었다. 차라라랑―! 그를 필두로 모든 이들이 각자의 병기를 그 집에서 끄집어 내어 강렬한 햇살아래 드러내었 고, 햇빛은 그 다채로운 빛의 금속성 살인도구에 맞아 산산히 깨어져 나가며 사방으로 비산 했다. "교에 영광있으라! 화염시火焰矢!" 피잇― 피이잇― 그의 입에서 화염시라는 단어가 튀어 나오자 마자 수백의 인영이 대기하고 있던 절벽의 위 쪽에서 순식간에 달구어진 강철 화살이 그대로 하늘로 뿜어져 올라 그대로 기름을 뒤집어 쓰고 사상자를 낸채 당황하고 있는 이들의 머리 위로 내리 꽂혔다. 그리고 거센 불길이 계곡 아래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거센 기염이 기름에 의해 더욱더 촉진되면서, 그 불길은 사람을 태우기 시작하였다. 물론 저 아래 있는 이들은 혈천교의 고수들과 사술사들이므로, 그리 대단한 피해를 주거나 하지는 못할 것이다. 실제로 사술사들은 진언眞言을 염해 사이한 기운을 피워올리면서 냉기어린 사 술을 지팡이 끝에서 발출해 내어 불길을 사그라 뜨렸으며, 몇몇은 자연력을 소환하여 물길 로 불길을 잡아나갔다. 그리고 내리 꽂히는 화살들을 혈천교의 고수들이 막아내기 시작하고 점차 대열이 안정될 무 렵, 제 이차의 공격이 퍼부어졌다. "……죽여라!" 채 그들의 대오가 안정되기 전, 양쪽 절벽에서, 그다지 가파르지 않아 혈천교의 인물들이 ' 설마 저렇게 낮은 절벽에서……'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거짓 정보로 교란하게 만들어 들어 서게 만들었던 그 절벽의 위에서 무수한 인영이 명령을 받들고, 오직 살상을 위하여 떨어져 내렸다. "원수를 갚자!" "저 개자식들을 죽여!!" 온갖 소리가 그들의 입에서 터져나왔고, 이미 성격 급한 이들은 검이나 육장에 기를 맺어 순식간에 기를 뿜어내 아래로 쏘아내면서 경신술에 힘을 더해 대지를 채 밟지도 않고 7, 8 장을 도약해 그대로 자신들의 힘을 상대들을 향해 퍼부었다. 가파른 절벽이라 더해진 속력, 그리고 안정되지 않은 대오로 쳐들어가는 것, 그리고 복수의 기회…… 그 것에 의해 마교의 고수들은 한층 더 강렬한 기세로 적들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순식간에 거의 5분의 1의 혈천교인들이 죽어나감과 동시에 그들은 간신히 대오 수습을 하여 반격을 시작하였으나, 이미 기울어진 전세였다. 혈천교의 교주와 대주는 젊었다. 그들은 전략도 활용할줄 알았고, 영리하였다. 그러하여 그 들이 현재 담당하고 있는 백여명의 부대들은 피해를 입지 않고, 함정에 걸려들지도 않았으 나, 현재 곳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수십개의 부대들은 지리멸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혈천교의 부대중에서 가장 큰 부대였고, 그래서 500여명쯤 되는 혈천교인들이 부대원들이었 다. 그렇지만, 지금 그들은 고작 자신들의 반수도 안되는 200여명의 마교인들에게 죽어나가 고 있었다. 첫 번째의 바위와 통나무 굴리기따위에는 거의 피해가 없었다. 피하면 그만이었기에…… 그 렇지만 그다지 몸놀림이 빠르지 못한 사술사들 몇몇은 죽었고, 그 위세때문에라도 상당한 혼란이 찾아왔다. 그 탓에 뿌려진 두 번째의 기름과 화염시에 의해 수십여명이 목숨을 잃었 고, 혼란이 더욱 가중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음 그들이 불길을 잡고 대오를 안정시키려고 버둥거리는 바람에 더 대오가 흐트러 졌고, 그 찰나간에 뛰어들어 온갖 공격을 퍼부어대자 순식간에 백여명이 죽어나가 버린 것 이었다. 그 탓에 그들은 지금 실력 차이로도 밀리고 있었는데다가 이제는 사기 때문에 수적 차이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마교인들은 지금 아주 효과적인 살법만을 전개하여, 눈에 핏발이 맺힌채 보유한 마공중 가장 강력한 것들만 난사하고 있었다. 수적 차이에 현재 산개 하여 적을 죽이고 있는 탓에, 그들은 사방으로 검을 날리고 장을 몰아쳐도 같은 편을 공격 할 가능성은 없었는데다가, 무엇보다 그들은 마기로 같은 편들을 식별할수 있었기에, 사이한 기운만을 뿜어내는 자들만 난도질 해 가면 되었다. 채 반각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이미 백여명만 남게 된 혈의인, 혈 천교의 인물들은 모두 계곡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였으나, 이미 계곡 바깥에서 내공을 실은 활 세례와 암기 세례를 한차례 더 받게 된 직후에는 거의 탈진 상태가 되어, 마교인들 의 오기 어린 추적에 의해 단 한명도 살아나가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대지는…… 피와 시체의 조각을 삼켰다. "음……" 전서응이 날라온 편지를 받은 가녀린 손이 봉투 자르는 칼을 들어 봉합된 편지의 봉투를 잘 라내었고, 그 내용물을 꺼내어 본 새하얀 손은, 손 자신의 주인의 눈이 편지의 내용을 읽을 수 있도록 그것을 펼쳤고, 곧 주인의 눈은 가볍게 떨렸다. 하지만 그것은 내용이 자신에게 손해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기다리던 소식이었 기 때문이다. "……혈천교도 끝났군." 가녀린 목소리가 그 입에서 흘러나와 방안에 퍼졌고, 곧 가녀리지만 이 목소리보다는 덜한 목소리가 그 말의 파장이 끝나고 나서 다시 밀려왔다. "……성공한 모양이군. 결과는 어떻다고 해?" "혈천교의 교주와 대주, 그리고 이백여명은 탈출한 모양인데…… 도망가다가 백여명 쯤 척 살당하긴 했지만, 몸을 숨기는건 성공한 모양이야." "……음. 혈천교는 와해 되었군. 그럼 우리가 이제 마교에 성의를 보일 차례지?" "준비는 끝났어." "아아. 계기는 맹주가 직접 마련해 주었으니까. 정말 너무나 고마운 일이지." "……음." "자…… 우리는 무림맹을 일단 '뒤집어' 주는거지?" "그리고…… 선전포고……"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가 중얼거리자. 곧 가벼운 웃음소리와 더불어 자신에 찬 목소리가 들 려왔다. "성공할거야. 그리 걱정 하지마." "……다음에는 혈풍이 무림을 덮치겠지. 우리는…… 잘 하고 있는것일까?" "다…… 잘 될거야." 미래의 불확실한 정말이 담겨진 목소리가, 어둠이 지배하고 있는 방 안에서 조용히 울렸다. 물론 자신들이 있는 이곳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엿들을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을 가능성도 꽤나 되었기에, 이 조용한 소리의 대화가 바깥으로 나갈 경우, 그들이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대화하는 '구간'과 그 이외의 구간은 차단된 상태였다. 얄팍한 막이 그들을 가볍게 둘러싸고 있었다. 단음강막斷音剛幕…… 단음강막이었다. 3갑자 이상의 공력이 필요하고, 조화로운 내공의 통제가 필요한. 그 기마저 느껴지지 않는다는 특 수한 막. 비록 물리적인 공격의 방어에는 거의 소용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 음파를 완벽하게 차단한다는 기술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빛마저 투과하지만, 소리와 기척은 절대로 투과시 키지 않는, 그러한 기술이 그들의 대화가 바깥에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영…… 일이 끝나면. 우린…… 무엇을 해야 하지?" 기어들어가는 듯한 질문에…… 이번에는 그 역시 잠시 말이 없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어 느 정도의 답을 내어놓았다. "우리는……" 그 다음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외전外傳. 바람의 장章] ひかりを たどって いつか ひらくんだ あたらしい とびらを 빛을 더듬어서. 언젠가 열거야. 새로운 문을…… 문득 바람결에 실려온 노래가 내 귓가를 자극했다. 꽤 좋은 음이었으며, 나의 마음 한구석을 찌르는 데가 있는 가사였다. 지금은 꽤 늦은 시각이다. 어두컴컴한 하늘을 네온의 화려한 빛살들이 갈랐다. 그리고 하늘과 구 름마저 이 네온의 빛무리에 물들어 내가 감상할 어둠 한조각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환한 거리여 서 내가 은신할 곳이 마땅찮았지만, 사람의 홍수인 이곳인지라 오히려 더 쉬웠다. 기척 수백개가 이리저리 떠돌고 있음에야…… 지금 나는 목표물을 찾아 시내를 방황중이다. 뭐, 나의 '목표물'이라고 해도 '암살대상'밖에 더 되 겠는가? 정말 목표물을 찾는중이 아니라, 은신중인 목표물의 정보를 알아내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불쾌한 홍등가 따위도 걷고 있는 것이고…… 역시 일본…… 성문화는 상당히 개방적이고, 옷차림들도 상당히 개성적인 것들이 많았다. 물론 시선을 던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후, 지금 암살 대상을 쫓고 있다고 해도 별로 기분나쁘거 나 하지는 않았다. 이미 이런것에는 무덤덤해진지 오래였으니까. 다만, 내 옆에서 알짱대는 빌어먹을 계집만 없었더라도 조금 더 나았을 것이라고 나는굳게 믿는다. "봐요. 디드∼" 젠장할. "디드∼?" ……빌어먹을. "디드으∼" 어조가 좀더 심상찮아진 것을 보니 이제 대답 안하면 주먹 날아올지도 모른다. 아니, 조금 더 심하면 발길질이거나…… 내가 잠깐 생각하느라 미처 대답하지 못하자 곧 무서운 바람소리가 나를 덮쳐왔다. 바웅―! 나는 그저 가볍게 고개를 숙여서 그녀의 날카로운 발차기를 피해냈을 뿐이었다. 뭐, 그녀나 나나 전력을 다한것도 아닌 가벼운 장난질이겠지만. 지금 그녀는 장난질이 아닌 것 같다. 꽤 화난 것 같으니…… 하지만, 그녀의 잘못이 더 크다. 왜 나같은 재미없는 녀석에게 들러붙어서 혼자서 쨍알거리다가 개무시 당해놓고 나에게 화를 낸단 말인가? "함부로 이름 부르지 마십시오. 레나Rena." "아, 미안해요. 하지만 그렇게 무시하는건 너무 하지 않아요? 쳇, 역시 전설의 아이스 블러드Ice Blood." 그 코드네임Code-Name이자 별명을 함부로 남발하는 그녀를 향해 경고의 의미로 가볍게 눈을 흘기면서 오른손목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자 그녀의 안색이 굳어졌다. 더 입을 나불거리면 죽이겠다는 뜻이니까. 훗, 그래도 블러디 블러드Bloody Blood라는 이름을 꺼내지 않은게 다행일까? 그리고 그녀의 입이 다물어지자 한층 편하게 주변을 관람하며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훗, 지금 목표라고 해봤자 야쿠자 두목일 뿐인데. 조금 거물이긴 해도 내 나이프Knife를 피할 상대는 아 닌 것이다. 내 옆에서 알짱대는 계집은 같은 1급의 암살자이다. 조금 부잡스럽긴 해도 그 실력은 나도 인정한다. 그렇긴 해도 나에게 이길수는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삐져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정리해주었다. 그리고 눈이 휘둥그레진 그녀를 무시하면서 내 가 찾던 곳을 찾았다. 나는 일어로 뭐라고 갈겨져 있는 나무 간판을 바라보았다. 눈이 조금 따가웠다. 그간 골목 사이로 들어와서 한결 네온사인의 빛무리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그게 그거였다. 그리고 나는 잠시 그 앞에 서있었다. "여기에요. 디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미행부터 처리하죠." 그 말과 동시에 주변의 기척들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뜬채 주변을 둘러보더니 간신히기척을 파악했다. 하긴, 레나가 1급이라고는 해도…… 이번 우리가 상대할 자들은 인간이 아니니까. 특히 그 망할 계집도 우릴 미행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사람들은 색기어렸다고 하겠지만 나로써는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싶다. '지랄맞을 웃음'. "호호호홋! 과연 디드!" 그리고 기척 십여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레나는 입술을 깨물며 품속에서 대형 전투 나이프 한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왼손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말아올리면서 살기를 가득 내뿜었다. 그와 동시에 드러난 것들이 움찔거렸다. 드러난 모습은 결코 위생적이지 못했다. 팔이 날아간 녀석, 그 상처 부위가 문드러진 녀석, 눈이 없는 녀석, 그런 것들이 보였지만, 모두 다 몸집이 작고 왼쪽과 오른쪽의 손톱이 30cm정도로 길었다. 그리고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자 자비를 베풀 마음이 사라졌다. "빨리 나와. 히카루[光]. 그 재수없는 그늘속에 숨어서 음침하게 웃지 말고." "어머, 이런 매력적인 여자를 그렇게 대접하면 안되죠∼" 뉘앙스 자체는 꽤 붙임성 있는 어투. 그러나 그 눈빛은 날카로웠다. 붉게 물들인 머리카락, 그리고 새하얀 피부와 몸을 감싼 옷은 꽤 노출이 심했지만 그와 동시에 아닌 부분은 매우 길었다. 이번에는 중국풍인가? 미인축에 끼긴 했지만, 나로서야 여자남자 가리지 않고 적으로 간주되면 베어버리니까. "그래도 좀비Zombie들은 기척 자체가 없는데…… 놀랍네요!" 망할, 그래. 좀비다. 시체는 아니지만 마약으로 마치 부두교의 좀비와도 같은 것들을 만들어내 이지를 상실하게 만들고 그 능력은 보통사람의 5배를 상회한다. 특이하게 기척이 없어서 귀찮지만, 나의 청력으로 숨소리를 눈치채지 못할것도 없었다. 아주 약하긴 하지만. "뭐, 당신이라 해도 이정도 숫자는 어쩔수 없겠죠. 정보 관리가 잘못된 모양이던데요? 그러니까 우리같은 사람들도 당신이 이곳에 올 것을 알수 있었지요. 저희가 당신이 그자를 베지 못하도록 이곳을 지키고 있던 거니까." "정보원을 죽였나?" "뭐, 우리도 쓸만한 녀석이라 손대진 않았지요." "잘됐군." 히카루가 들고 있는 권총이 나에게 겨누어졌다. 내 말에 뭔가 묘한 뉘앙스를 발견한 듯 했다. 후후…… 뭐, 이 질긴 악연을 끝내주는게 좋겠지? 내가 한걸음 딛자 그녀가 당황했다. "잠깐. 이 좀비들이 보이지 않아요?" "보여." "흥. 배짱 좋군요. 뭐, 그리고 저야 당신이 좀비들을 상대할 때 이것으로 당신을 쏘아주면 충분 하니까." "큭. 여기에 나 혼자있나?" 그와 동시에 히카루는 급히 몸을 숙였다. 그래서, 아쉽게도 그녀의 머리카락 몇 개만 은색의 호선에 잘려 나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급히 권총을 겨누려…… 했으나 레나의 왼손은 가볍게 리벌버의 총신을 잡았다. 리벌버의 최대단점은. 바로 저 탄 쑤셔박는 부분을 잡아놓으면 발사가 안된다는 점이지. 큭큭큭…… 그리고 나는 행동을 개시했다. 먼저 가볍게 뛰어서 명령을 받지 못해 반응 불가인 한 좀비 녀석의 머리통에 나 나이프를 쑤셔박는다. 돌격하면서 오른손목의 나이프를 챙겨 찔러넣었다. 둔탁한 손맛과 함께 두개골이 함몰하는 느낌과 더불어 질척한 뇌질을 찌르는 느낌이 왔다. 그리고 느긋하게 그것을 빼어 사방으로 검날을 날리자 순식간에 은색의 잔영殘影이 뿜어져 나가 세 마리의 좀비를 베어버렸다. 하나는 내장이 뽑혀 죽었고, 하나는 목이 베어져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기쁘게도 나에게 심장 박동을 느낄수 있게 해주었다. 뭐, 보통 사람들보다 박동 횟수가 느려서 기분나빴지만. 시커멓게 죽은 피가 터져나오기 전에 모두 피해냈다. 그리고 나이프를 휘두르자 은빛 날을 타고 검은 피가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풀썩― 풀썩― 그제서야 쓰러져서 피를 콸콸 흘리는 네 마리의 좀비시체. 그리고 내 검격을 보면서 히카루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레나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좀 흥분해서 보통보다 좀더 실력을 드러냈나? 나는 그리고 다시 뛰어들었다. 빛이 있는 곳에서의 싸움은 별로 즐기지 않았으나, 뭐, 지금이야 아쉬운 대로다. 나나 레나나 권총을 한 개씩 보유하고는 있으나, 별로 쓸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총 성이 퍼져나가는건 결코 신변상 좋지 않으니까 말이다. 다시 뛰어들며 이번에는 반응하기 시작하는 좀비 녀석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리고 매섭게 살기를 뿜어내자 본능적으로 녀석들은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은 나에게 좋은 기회였다. 남은 좀비는 여덟 이다. 가볍게 왼발을 굴러 쏘아져 나감과 동시에 오른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은색의 호선이 매끄럽게 한 좀비 녀석의 목을 베어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오른발을 축으로 부드럽게 선회한다음 다시 튕겨져 나이프를 아래서 위로 쳐올렸다. 어둠속에서 빛무리를 반사해내며 튕겨올라간 나이프는 좀비 녀석의 얼굴을 수직으로 훑고 지나갔다. 그 와 동시에 혈무血霧가 터져나왔다. 잠시 후, 열둘의 좀비를 모두 베어버린 다음 나는 나이프를 좀비 녀석중 그나마 옷이 깨끗한 녀석의 옷 의 가장 깨끗한 부위에 나이프를 닦아냈다. 나는 이 나이프가 꽤 맘에 들어서인지 깨끗한게 좋았다. 물론, 비반사 처리 해야될때도 있지만. 그러고도 나이프가 별로 깨끗해 지지 않아서 레나가 목에 나이프를 겨누고 있는 히카루에게 다갔다. 그 리고 그 다음 그녀의 옷에 나이프를 닦아냈다. 그녀의 인상이 확 구겨졌지만 나는 나이프를 다 닦고 나서 다시 챙겨 넣었다. 그리고 입가에 내가 지을 수있는 가장 차가운 미소를 지어준 다음 그녀의 볼을 툭툭 두드렸다. "다음에는 조심하라고." 분통터진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였지만 나는 그녀의 귓가에 몇마디 말을 해주었고, 곧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는 그리고 나서 레나에게 눈짓했다. 그리고 레나의 전투 나이프의 손잡이 부분이 히카루의 목덜미를 찍어내렸고, 곧 히카루는 쓰러졌다. 그리고 그녀를 질질 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내가 익히 아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맨 먼저 이 말을 했다. "이 계집 일어나면 말해줘. '다시 쫓아오면 확실히 죽여버린다'고. 아, 그리고 홍등가에 넘기거나 하면 안돼. 알았지?" 나는 가볍게 몸을 돌렸다. 피에 젖은 방, 그러나 나나 레나나 옷에 핏자국 하나 없었다. 그리고 레나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나는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으로 그렇게 방에서 빠져나왔다. 나이프를 휘둘러 핏방울들을 벽에 뿌리고 갈무리했다. 방에 남아있는 목표물의 사체는 뭐, 경찰이 알아서 할 것이다. 지문 하나 남기지 않았으니 증거도 없다. 물론, 증거는 시체의 상흔. 그러나 나이프 정도를 썼다는것만 알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는 방범 카메라도 없고,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혹시나 모르기에 얼굴도 가리고 약간 키를 크게 만드는 신발을 신어서 들킬 가능성도 없었다. 이번도 꽤 쉬웠다. 그냥 나는 이번에 별일도 없이 '살인멸구'라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고전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뛰쳐들어가서 목격자도 모조리 베어버린 것이다. 나로서는 이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으며, 시간 단축에 딱 좋은 방법이었다. 이런 나를 무식하다는 말로 매도하며 혀를 차는 레나였지만. 나는 이 말로 그녀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임무 완료까지 앞으로 하루. 다른 방법 있습니까?" 뭐, 이 말이면 충분했다. 임무를 끝 마친 다음 가볍게 무전 신호기로 보고를 때린다음 느긋한 걸음으로 피비린내 나는 건물에서 어둠에 몸을 숨긴채 움직였다. 레나와 나는 어둠에 녹아들어서 건물에서 순식간에 빠져나왔다. 그리고 차가운 바람이 나를 맞았다. 나와 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가린 천을 풀어내 바람에 던져넣었다. 바람은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휘감고 날아올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바람이 우리를 감쌌다. 은근히 차가운 바람이 내 몸을 휘감고 돌며 적시자 나는 입가에 쓴미소를 지으면서 옷깃을 여몄다. 핏자국이라고는 보이지도 않는 옷. 조금 피냄새가 배어서 그렇지 핏자국은 없었다. 오랜만의 임무여서 그런지 조금 손이 무뎌졌지만 그럭저럭 괜찮았다. 문득 몽환적인 생각에 빠져들어 그렇게 새벽공기 속에서 우리는 물의 향기를 맡았다. 어느새 공원까지 걸어나온 것이다. 인공호 인 듯 보였지만 그럭저럭 자연 경관은 괜찮았다. 그리고 문득 제정신이 들었다. 여명黎明이 내 눈속으로 스며들어 나를 일깨운 것이다. 회색빛 새벽마저 물러가고, 곧 따사로운 금빛의 화살이 대지를 찔렀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노래하고 있었다. 미약하고 조용하게. "ひかりを たどって いつか ひらくんだ あたらしい とびらを 빛을 더듬어서. 언젠가 열거야. 새로운 문을……" 나는 이 노래에 나의 작은 희망을 심고, 이것을 바람속으로 흩뿌렸다. 바람은 하늘로 이 소리를 머금고 올라갔다. 만약, 정말 신이 있다면…… 이 노래를 들을수 있을지도. 훗, 부질없는 상상인가? 그렇게 나는 다시 어둠으로 걸음을 옮긴다. 빛은 너무 밝았다. 058. 어두운 방안. 빛은 창호지를 뚫고 새어들어오고 있었으나, 방은 확실히 어두웠다. 그리고 그 어두운 방의 분위기와 시각적인 착각을 유도하는 것은, 그 생김은 비록 아름다우나 분위기 와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아있고, 그 가운데 섬뜩한 예기를 풍기고 있는 두 소년 탓이었다. 나이상으로 치면 한명은 소년이었으나, 외모는 19세에서 20세가 조금 덜 되어보이는 모양새 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너무나 헌양하고 날카로운 탓에, 그 분위기가 흐려져서 이십대 중초반으로 그 외모를 변질시키게 했다. 오로지 형형하게 빛나는 안광 만으로도 그는 그렇게, 가라앉은…… 깊은 연륜까지 있다고 생각되게 만들만큼 그는 강했다. "……비무라." 영은 느긋한 손놀림으로, 그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은영비의, 흠 하나 존재치 않는 말끔한 은색 검신劍身을 매만졌다. 은색 검신 위로 새하얀 손가락이 스쳐 지나가고, 그 맑은 검신이 그의 얼굴을 비추면서, 태양이 던지는 백열하는 화살을 맞아 그것을 부수어 사방으로 튕겨 냈다. "……시작되는군. 혈풍血風의 서조序兆는……" 그의 입에서 떠오른 가벼운 음파. 그것이 운의 귓속으로 스며들자 마자 운은 곧 고개를 가 볍게 끄덕였다. "……우리가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백 노사의 부탁 아니었나?" "그는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한 것 같은데……" 운의 말에, 영은 고개를 주억이면서 백 노사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대륙 제 일의 명의. 신수사의神手邪醫…… 그는 비록 죽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머릿속에 생생히 살아남아 있었 다. 지금도 그의 간사한 듯 하지만 깊은 미소…… 그리고 그의 임종때의 영상은, 확연히 남 아있었다. 불타던 계곡의 열기 마저도 생생하게 피부에 각인되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와 그때의 기 억은 아직 그들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복수는…… 해야지." 운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오자. 영은 고개를 끄덕거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 다. 그 탓에, 그렇지 않아도 조용했던 방의 분위기는 정말로 싸늘하게 가라앉아 버렸고, 영과 운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바깥이 조금 소란스러워지자, 각자의 애병을 정리했다. 영은 가볍게 오른손의 손목 스냅을 이용해 소매 안쪽으로 감추어진, 은영비의 덮게로 검신 을 밀어넣었고, 곧 창 하는 소리와 찰칵 하는 소리가 소매 속에서 가볍게 울려나왔다. 그리고 운은 계속 닦고 있던, 빨려들 듯 탄력있는 은청색의 검신을 지닌 청천검을 검집에 밀어넣어 허리에 찼다. 그리고 둘의 신형은 앉아있던 자세에서 선 자세로 바뀌었고, 곧 문쪽으로 걸어나가면서, 그들은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 있지?" 영의 질문에, 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입가에 조용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영이 가르쳐준 검술들. 아직 잘 기억하고 있어. 무엇보다…… 영이 가르친건 검술만이 아니 라 검궤劍軌도 있으니까." 운의 자신감 서린 목소리에, 영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역시 자신감이 어려있는 목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문을 열고 먼저 바깥으로 나갔다. "현경玄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지……" "……" 그들이 마침내 건물 내에서 빠져나와 연무장 근처로 향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자, 이미 거의 수백에 가까운 인원들이 연무장 주변에 몰려있었다. 거기다가 하인들이나 경비무사들도 몰래 빠져나와 연무장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천천히 걸어나오는 영과 운을 바라보면서 감탄을 흘렸다. 그 초신超神의 아름다움도 그 감탄의 이유에 들어가겠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은 하인들을 제외하자면 상당한 고수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검기상인劍氣傷人을 장난으로 아는 이들도 많았기에, 영의 차갑게 가라앉은, 그러 나 압도적인 기도, 그리고 운에게서 풍겨나오는, 찌릿거릴 정도의 정기를 눈치챌수 있어서 그들에 대한 감탄과 놀라움도 이 조용한 웅성거림 의 이유에 들어갔다. "……" 정기가 영기처럼 시각화 되어 피어오른다고 착각될 만큼 강렬한 정기를 풍기는, 무림맹의 예의 '어른'들이 한 곳에 모여있었다. 그들은 약간 긴장한 기색으로 영과 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들은 누가 먼저 누구와 비무를 할 것인가에 대해 결정하고 있는 듯 했다. 무림맹에서 이번에 제의한 비무. 약간의 흑막이 깔려있기도 한 것이, 영과 운의 실력을 파악 해 보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 기척을 감춘채 저 위에 삐죽 솟아있는 누각에서 연무장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천산검주가 은영천검의 약점을 확실하게 파악해 주면 그걸로 만족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주류로 사용하는 무공을 분석해 보기 위한 일도 있었다. 천류세가 쪽에서도 그들의 힘을 극도로 끌어내어 보면서 그 실력을 가늠해 파악할 참이었지 만, 그들이 제대로 실력발휘를 할 이유도 없었다. 뭐, 그렇지만 영은 '생사의 고비를 넘길 정도의 살벌함'을 연출해 주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 정도는 끌어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극도로 몰아붙이면서 합의 종료도 뜻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면, 초식 이름 도 제대로 외칠 시간이 없게끔 만들어버린다면야…… 비기 한둘은 얼핏이라도 보일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사악함이 섞여있는 검기劍氣와 검강劍剛, 검로劍路의 그물에 걸리고도, 저들이 얼마나 버틸수 있을지가 정말로 흥미롭기 짝이 없는 과제였다. 연무장은 상당히 돈을 들여서 다듬은듯한 포석으로 깔려져 있었는데, 먼지 한톨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될 정도로 청소가 잘 되어있었다. 너비는 가로가 7, 8장. 그리고 세로가 7, 8장으로써 거의 완벽한 정사각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는데, 진짜 고수들의 싸움에서는 조금 좁다고 할수 있었으나, 솔직히 생사를 다투지 않는, 명분은 확실히 '친선도모(?)를 위한 비무'였기에 그리 좁은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무림맹 측에서는 한탄중이었다. 조금이라도 '개인용' 연무장…… 지금은 비무대인 이 장소를 조금이라도 더 넓게 만들걸, 하고 한탄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천산검주는 지금 각루에서 시력을 극도로 돋워 영의 신위神威를 자세히 바라보고 그 것을 파악해 내려고 하고 있었고, 그것은 군중들도 다를바가 아니었다. 그들은 현경玄境의 무위武威를 자세히 보고 그것을 확실히 기억속으로 각인해 넣고 싶었기 에, 거의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눈에 불을 켜고 영과 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영과 운은 전음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것이 단순한 전음이 아닌 어기전성御氣傳 聲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 「우리 둘중, 누가 먼저 나갈까?」 운이 그렇게 묻자, 영은 가볍게 손가락을 들어 운을 가리켰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 히 초반부터 그가 나갈 이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운은 영에 비해 한참은 떨어지는 고수였지만, 그래도 그는 화경化境이라는 경지였 다. 아무리 현경이 아닌 화경이라 해도, 보통 무림인들로써는 꿈도 꾸기 힘든 경지였다. 검강劍 剛, 혹은 수강手剛을 자유자재로 초식없이 운용하고, 파괴력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강기剛氣로 사물을 부수고 찢어 발기는 경지. 확실히 꿈의 경 지는 꿈의 경지였다. 운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검투였기에…… 저쪽에서도 맨 처음 나갈 사람이 결정되었는지, 곧 가볍게 손을 흔들었고, 올라온 사람은 공교롭게도, 저번에 운에게 걸려 반쯤 피떡날뻔 했던, 화산파의 장문인, 이한룡이었다. 그는 자전검紫電 劍을 허리에 찬채, 예의 화산파의 장문인이 입는, 청색의 천에 만개한 매화꽃이 소매에 수놓아진 도포를 입은채 걸어나왔다. 그리고 운은 잠시 표정을 의아함으로 바꾸었으면서도, 곧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올라와 가볍 게 검을 들었다. 그리고 두명은 대화 한마디 없이 가볍게 포권지례를 취하고, 가벼운 인사를 더한다음, 곧바로 출수해버렸다. 어차피 동수의 고수…… 몇초식을 양보하느니 어쩌니 하는 헛짓은 서로 이미 그만두기로 한 지 오래였다. 자전검이 홍색의 검기를 머금고 가볍게 타오르기 시작하자 운의 청천검도 검신에서 빠져나와 푸르른 하늘을 그대로 비추면서 청백색의 검기를 머금었고, 색이 대조되는 두 검기가 멋지게 타오르며 원을 그림과 동시에 이미 허공에서 격돌하여 거 센 충격파를 형성하자 비무를 관람하던 이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몸이 흐릿 해지는가 싶더니 거의 비무대의 양쪽 끝에서 가볍게 자세를 취하며 서 있던 두명 은 이미 비무대의 중앙의 3여장 위에서 검을 마주대하고 있지 않는가. 첫수부터 상상을 초월했다. 부딪힌 검기가 펑 하는 소리를 내며 튕겨져 나감과 동시에 이미 운은 허공에서 터져나온 충 격파의 방향을 바꾸어 위로 비상飛上하면서 가볍게 허공중의 바람 한자락을 밟으며 검무劍舞를 펼치기 시작했다. "광염천린검. 오의…… 비천비낙류飛天飛落流!" 광염천린검光焰天躪劍. 마치 백색의 불꽃과 같은 강기를 머금은채 하늘을 유린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하여 광염천린검이라는 이름을 얻은, 천류세가의 가주들만이 익혀오던 검술의 오의를 그대로 풀어내면서, 그는 검무를 추기 시작 했던 것이다. 이한룡은 그가 초식명을 외치면서 소리치자 역시 오의의 검결을 짚어내면서 소리쳤다. "칠매검법. 제 칠절. 유매검. 매화만개!" 이한룡 역시 전력을 다하지 않네 어쩌네 하는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무아無我에 빠져들 어 검무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칠매검七梅劍의 마지막 검무劍舞. 유매검流梅劍 최종무 매화만개梅花滿開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노을과 같지만, 오히려 백매화와 같은, 강기의 꽃이 허공중에 그려지기 시작했고, 그것은 백 색으로 타오르며 거세게 운의 부드럽지만 빠르고 강한 검무와 부딪혔다. 그리고 운의 검강과 이한룡의 검강이 서로를 거세게 밀어내면서, 아까 검기가 충돌한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거센 충격파를 뿜어내었다. 그러나 그 둘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검을 섞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검무고 뭐고 없 는, 순수한 검궤와 검로의 대결이었다. 강기를 휘감고 거세게 타오르는 검 두자루가 허공중에서 매섭게 마주치지 시작했다. 059. 격돌하기 시작한 두명의 검무를 바라보면서, 천산검주는 느긋하게 술잔에 독하기 짝이없는 국일주를 채워넣고 단 한 번의 입질(?)로 술잔을 비워버렸다. 취기醉氣 따위는 단 한올도 올라오지 않아. 그는 다만 조금 맛이 특이한 음료수를 맛보는 느낌이었을 뿐이었다. 그 탓에 그는 약간의 짜증이 생겨났고, 이번에는 아예 병째로 벌컥거리기 시작했다. 병의 주둥이가 그의 입에서 떨어져 나오고 나 서, 그는 그래도 반응이 없자, 이제는 아예 체념한 얼굴로 두 화경의 고수를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펼쳐진 운의 검무는, 외유내강外柔內剛. 겉보기에는 부드럽기 짝이없으나 서릿발같 은 검기劍技와 검강劍剛은 주변의 공기마저 진공상태로 진공검眞空劍마저 만들어내고 있었으며, 겉보기에 현혹되기만 하면 바로 강렬하기 짝이없는 일섬이 날아와 심장을 꿰어버릴 듯 빠르다. 만검을 위장한 쾌검이었다. 정말로 부드럽게 스쳐지나가면서 그 자리에 강기화가 피어오르 지만, 순간적으로 무수한 검영을 일으키기도 하고, 사방군데를 베어버리는 환영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지독한 쾌검이었다. 부드러우나 제압에 충분한 강력한 힘이 깃든 검이 요동치면, 역시나 운에 비해 조금 떨어지 는 무인인 이한룡은 약간 힘겹게 검을 뒤틀며 매화만개의 춤을 펼쳐내면서 도포자락을 펄력여 그 강렬한 공세를 막아낸다. 순간 운의 몸이 지독한 속도로 회전하면서, 광염천린검이 아닌 다른 검결을 짚어냈고, 순간 적으로 검이 찔러져 요동치면서 금빛의 서기瑞氣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천산검주는 경악하며 일어서 탁자를 거의 뒤엎다 시피 해버렸고, 안주와 술이 이리저리 뒤섞이며 탁자위를 굴러다니는것도 아랑곳 없이, 그는 입을 쩌억 벌렸다. 화경의 무공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주변의 대자연력이 요동치면서 그에게 힘을 빌려준단 말 인가? 자신조차 할수 없는 기술인 것을! 그러나 그는 몰랐다. 금강폭열공金剛爆熱功, 제 일초. 신룡현세神龍現世에…… 아니, 금강폭 열공의 모든 초식에 흐름의 검이 섞여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요동치는 검극이 순식간에 검명을 울어대며 주변의 대자연력을 빠르게 움직였고, 운 그 자 신의 공력과 더불어 발현된 그것은 64마리의 금색의 강기룡으로 변했다. 금색의 강기룡. 그 늘씬한 자태는 정말 신룡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비록 영이 사용했 을 때처럼 확실한 형태를 이루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현경의 깨달음이 실려있는 무공이었기에 이한룡은 당황하면서 검을 뒤틀었다. 순간 자전검 에서 백색의 폭류가 뿜어져 나와 위압적으로 꿈틀거리면서 쇄도하는 금색의 강기룡을 휘감았고, 순간 그 폭류가 강기룡들을 저지하자마자 그는 곧바로 다시 유매검을 짚어나갔다. 자체적 기력으로 비등술을 이용하고 있는 이한룡과 운이었기에, 이 격돌 후에는 아마도 다 시 비무대 위로 돌아가 검결을 짚어내기 시작할 것이었다. 거의 이것은 경천동지에 경세의, 화경끼리의 한도의 힘을 펼쳐내는 대결이었기에, 모두는 식 은땀이 맺힌 손을 쥐면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두명. 천산검주와 영은, 그것을 무덤덤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천산검주는 아까의 경 악과는 달리 차분하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영은 약간의 걱정이 깃든 마음으로…… 그리고 무림맹의 수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놀람뿐 이었다. 이한룡이 칠매검을 펼칠때부터 경악해버렸다. 그러나 그것을 눌러버리면서 이제는 검명까지 일으키는 금색의 강기룡을 뽑아내는 운을 보면서 더욱더 경악해버렸다. 이제는 거의 생사결에 다다를 정도로 험악해져가고 있었기에, 그들은 비무를 어떻게 중지할 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두명은 전혀 걱정하지 않고 그 검결을 짚어내면서 무아에 빠져 검을 휘둘 러 베고, 찌르고, 부딪히면서 그 반동을 이용해 다시 베면서, 무수한 검기의 그림자와 강기의 길을 만들어내 상대를 압박해나갔다. 이젠 초식명 외치는것도 없다. 아예 동귀어진에 하나 하나가 요혈을 찔러들어가는 검기였고, 검강이었다. 오로지 폭주하고 있는 강기화와 강기폭풍이 어지럽게 그들의 주변을 잠식하면서 거센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그들의 주변에 흐르기 시작한 열류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을 무렵, 둘다 간신히 제정신을 차리면서 그 기세를 흩어버리면서 뒤로 물러났고, 가볍게 내상을 다 스렸다. 둘의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약간의 내상으로 인한바였으나, 둘다 공기를 빨아들이 며 숨을 조절하자 폭주하던 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그리고 두명은 비등술을 이용해 비무대로 내려섰고, 곧 모두들 한숨을 토해내었다. 관람하던 이들은 아찔함과 경악을 간신히 지우면서 다시 눈을 부릅뜨면서 둘의 검격을 바라 보았으나, 이젠 검기도, 검강도 일으키지 않고, 두명은 단지 검로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 해도 정말 현란했다. 자전검이 부드러운 원을 그리면서 매섭게 검영의 줄기를 수십차례 쏟아내면, 그 빗발치는 검영을 부드럽게 그린 원으로 빨아들여 옆으로 빗나가게 해 버리면서 가벼운 각술을 펼쳐 그를 물러나게 만들고 세차게 청천검을 찌르는 운. 그리고 그것을 검면 으로 받아내면서 빠르게 검무를 뿜어내고, 운 역시 그것을 받아넘기면서 무수한 검영을 일으켜서 이한룡의 몸을 난자질해나갔다. 차차차차차차차창―!!! 본디 검이 여러번 부딪힐수록 하수라고 한다. 그러나 이 둘은 이미 화경이라는 단계임에도 이렇게 검을 교환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도의 깊이를 담아낸 검술을 펼쳐 무수한 불꽃의 폭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 하수들의 단순한 검격 교환과는 달랐다. 운의 쾌검 과 유검이 섞여나가면서 펼쳐지고, 이한룡의 일격필살의 검과 검화를 만들어내는 화려한 검형이 섞여 펼쳐져 허공중에서 마주 치면 마주칠수록 점차 불꽃의 폭포도 어떤 형상을 이루어내기 시작했고, 창창거리는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지만, 두명의 검세는 더더욱 빨라졌다. 지독한 쾌검, 두명은 아예 이제 검을 부딪히지 않고 검을 나누고 있었다. 지독한 비무였다. 운의 검이 가볍게 질러들어가면 이한룡의 각술이 뿜어지고, 그 찰나 각술을 피해내면서 은색의 신월을 만들어내 그의 몸을 베어가면 이미 이한룡의 검 은 운의 검영 옆으로 비껴나가면서 동귀어진 하려든다. 이런식으로 전혀 검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두명은 한계의 신법과 보법만을 무섭게 밟아나가 면서, 아예 보이지도 않게 검을 마주쳐갔다. 검기상인의 고수라 해도 이정도의 쾌속의 검법은 읽어내지를 못했다. 이제 아예 두명의 그 림자 마저도 보이지 않았고, 두명의 속도는 점차 빨라져 거센 햇살속으로 녹아들어가면서 이제 아예 휙휙거리는 바람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다만 가끔 일어나는 진공검의 여파가 주변에 펑펑 하는 소리를 만들어내어 모두들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하게 했을 뿐, 이제는 숫제 비무가 아니라 아예 신법으로 술래잡기를 하는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빠르게 빗겨나가는 두 그림자 사이로 비치는 검영과 검빛은 햇빛마저 산산히 깨뜨리며 지독한 한기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 문득 공중에서 검이 마주쳤다. 카아아앙―!!! 웅웅웅― 두 검은 검들의 주인이 검을 농락함으로 인해 만나지 못하다가 마침내 만났고, 두자루의 검 은 거세게 조우했다가 반갑다는 듯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웅웅거리며 떨었다. 그저 정강검이었다면 이가 나갔거나 두동강이 났거나, 혹은 깨어져 버렸을 것이나, 두자루의 검은 이도 나가지 않았고, 무엇보다 부러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두명은 검을 거두고, 기혈을 안정시키면서 동시에 포권지례를 취했다. 그리고 비무대 에서 내려섰다. "우와아아아아!!!" 모두는 경악과 감탄이 섬긴 함성을 내질렀다. 두 화경의 고수는 마치 그저 가볍고 부드러운 춤이라도 추고 나온 듯, 약간의 기혈의 흐트러짐 외에는,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만 들어냈다. 그러나 이한룡은 약간 속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나를…… 봐줬군.' 속으로 낭패하는 이한룡. 그리고 운은 다만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만 만들어냈을 뿐이었다. 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얼굴은 살짝 밝아졌다.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 천광대원들이 포진하고, 이한룡의 주위에도 화산의 제자들이 포진하 자 그들은 곧바로 소모된 기를 보충하기 위한 운기조식에 들어섰다. 그리고 영은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060. 영이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올라섬과 동시에 다시 분위기는 조용하고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천산검주와 대기중인 무림맹의 수뇌들과 그를 관찰중인 이들의 눈으로 보내지는 공력이 더욱 많아졌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영은 그것을 느끼면서 입꼬리를 가볍게 말아올렸다. 은근히 시선이 집중되자 몸의 기도가 차분하게, 얼떨결에 가라앉아 버리자 자신은 확실히 무대체질(?)은 아니란 것은 알았다. 그는 무림맹 측을 바라보았고, 곧 그쪽에서도 천천히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흔히 무협지에 나오는 것인데, 꼭 무슨 천하제일의 무인을 가린다. 하는 대회에서는 항상 꼭 재수없게 절묘한 신법 어쩌고를 발휘하면서 비무대 위로 뛰쳐나오는데, 그런 절정의 신법…… 특히 주로 나오는 허공답보 따위를 발휘하면 공력이 소모된다. 그러면 다음에 이어질 비무에서 지장이 있으리란건 생각도 하지 않는단 말인가? 허공답보는 애들 장난이 아니다. 스스로 얕은 강기막剛氣幕을 펼쳐서 그것을 밟고 몸을 운신하는 기법도 공력이 장난아니게 소모되는데, 허공답보는 뭐란말인가? 아무런 반탄도 없이 공기층만을 밟고 움직이는게 바로 허공답보다. 거기다가 허공에 흐르는 먼지나 가벼운 기류를 밟고 간다고 해도, 그것은 찰나의 시간을 잘 포착해야 한다. 허공답보보다 좀더 공력이 덜 소모된다지만, 그것도 공력 소모는 엄청났다. 그런데 흔히 무협지라는 장르의 소설, 특히 그런 장면을 강조하는 무협지에서는 허공에서 멋지게 공중제비를 십여바퀴 휙휙 돌고 허공을 팍팍 차서 변화무쌍하게 수십방위로 몸을 뒤틀어 멋지게 비무대 위로 내리꽂히(?)는데, 그럴수록 공력 소모가 크다는 것을 모른 단 말인가? 거기다가 그런 엄청난 절세의 신법을 지닌 인물들이 널리고 널렸단 말인가? 화경쯤이나 되야 그걸 써볼 엄두라도 내는데 말이다. 세간에서 말하는 환골탈태도 하지 못한 인간들이 멋지게, 너무나도 편안한 얼굴로 그런 말도 안되는 공력을 퍼붓고도 멀쩡하게 싸워 이긴다는 것……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장면인 것이다. 그런 연유로, 방금 나온 이나 미리 나와있던 영이나. 신법을 펼쳐 자신을 과시하기까지 하면서 대결을 위해 써야할 힘을 멋내는데 사용하는 무식한 짓은 하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 나온 이를 바라보면서, 영은 입꼬리를 한층 더 높게 말아올렸고, 그 자신감과 약간의 장난기가 섞여있는 미소를 본 상대는 가볍게 합장을 했을 뿐이었다. 정말 간소한 승복을 입은채, 인자한 표정으로, 소림사의 고승 답게, 아니…… 소림사의 인물답게 주안술 따위는 익히지도, 쓰지도 않은, 노회한 얼굴을 보이면서 미소하는 공허대사가 비무대 위로 올라 선 것이다. 그는 선장을 오른손에 쥔채, 천천히 걸어 비무대 끝에 서서 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영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먼저 낭패할 사람이 소림사의 공허라……' 공허대사. 저번 탄령하에서 영을 공격했던 이였다. 그리고 영이 천류세가가, 소림사에서 강탈하지는 않았지만 주워 얻은, 금강지金剛指를 익혀 펼치자, 그것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내지는 금강지가 어떤것인지라도 견식해 보기 위하여 자청하여 먼저 나온 것이었다. 영은 공허대사의 그런 내심을 전부 알수는 없었지만, 약간이라도 짐작할수 있었다. 저번 탄령하에서 자신이 펼친 금강지에 상당히 놀랐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소림에 지금 금강지는 실전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소림 72절기중 세가지 무공. 그것 세 개 모두 실전된 것이었기에, 그는 음흉하게, 물론 속으로 웃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일단 공허대사를 가지고 놀긴 해야겠지만, 그건 시간 끄는데 써야 할 것이고, 금강지도 감질나게 찔끔찔끔 보여주면서 밀어붙여 스스로 참을수 없게 하여 소림의 72절기를 펼치게 하기로 했다. 자신의 생각보다 조금 더 살벌하게 진행시키면서, 금강지, 일지선, 번뇌수를 잠깐잠깐 엿보이면 충분할거라고 생각했다. 그정도면 아마 시간을 질질 끌수도 있을것이고, 자신을 주시하는 천산검주에게 물먹이기도 쉬울 것이다. 영의 음흉한 속내와 달리, 공허대사는 조금 긴장하다가 가볍게 합장하였고, 곧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오. 시주. 빈승이 시주보다 공력이 얕고 실력이 일천하여 선수를 취하도록 하겠으니……" ……공허대사의 말을 가볍게 고개를 끄덕임으로 끊어버린 영은, 곧 오른손을 뒤로, 왼손을 앞으로 하고, 너무나도 부드럽고 안정된, 비무에서 하급 무사들도 흔히 취하는 자세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깊이와 부드러움, 그리고 숙련도는 상상을 초월하리 만큼 달라서, 공허 대사는 먼저 선장에 기를 불어넣으면서 그것으로 비무대의 바닥을 찍었다. 그와 동시에 비무대의 바닥을 타고 잠력 한가닥이 질주했고, 그와 동시에 영은 그 자세를 그대로 유지하며 경력을 불어넣어 잠력을 차단했다. 비무대의 한 중앙에서 부딪힌 잠력. 분위기는 그대로인 듯 보였으나, 그야말로 완전히 가라앉은 침묵으로 변해버려서, 모두들 어떠한 기세 대결을 하고 있음을 눈치 챘다. 실제로 잠력이 좌충우돌하여 비무대의 석질 내부에서 격돌함과 동시에 그 넓은 비무대 중앙에서 양 끝으로 금이 쩡 하고 줄달음쳤고,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그 금이 폭이 넓어지다가 쾅하는 굉음이 터져나오면서 비무대의 중앙이 푹 파이자 공허대사는 입에서 피를 가볍게 흘리면서 급히 몸에 가해진 충격을 해소하며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리고 공허대사는 신음을 흘렸다. '빈승의 힘으로는 저 시주의 가벼운 힘도 견딜수가 없구나! 그나마 저 시주가 손속에 약간의 여유를 두지 않았다면 바로 핏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공허대사는 그제야 선장을 들고 빠르게 신법을 발휘하여 몸을 날려 선장으로 부드럽지만 강을 중시한 외형 초식을 그대로 펼쳐내면서 그것에 금색의 강기를 실었다. 그와 동시에, 영의 금강폭열공과는 또 다른 질의 금색 강기가 피어오르면서 본졸불의 자애로운 미소를 그려냈고, 오른손의 선장과 왼손의 장이 동시에 짓쳐 들어가면서 금색의 강기가 관음불면장의 절초를 뿌리면서 달마18수의 외형을 섞어 짓쳐나갔다. 무수한 장영이 금색 강기를 머금고 뿜어졌다. 그 어지럽지만 강하고 단순한 기세에 영은 가볍게 감탄을 흘리면서 왼손을 단 한수로 그어버렸다. 도포자락이 휘말려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은색의 섬광閃光이그의 수광手光에서 빛을 발했다. 그것은, 강기가 아니라…… 검기였다. 운용 방식이 특이하긴 하였으나, 그것은 다만 세맥과 대맥을 전체적으로 이용하여 펼치는 동방형의 무공이 아니라. 저 멀리서 아스타르대륙이라 불리우는 곳에서 사용하는 기 운용 방식이었다. 실제로 영은 다만 손끝으로 기력을 뿜어올려 빠르게 순환, 회전시켜서 검의 형태를 만들어 뿜어낸것일 뿐이었다. 다만 그것이 워낙 빠르고 절묘하여 손을 튕겨내 강기를 뿜어낸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는 검기의 발출이었다. 금빛을 머금고 은은히 타오르면서 매섭게 사방을 뒤덮어 오는 장영의 물결을 담담하게 가르며 날아오르는 한줄기 은색의 빛으로 번쩍일 뿐인 비응飛鷹. 영은 그래서 이것을 분광검기分光劍氣의 은광검銀光劍의 장, 섬전비응광閃電飛鷹光이라고 이름 붙였다. 은색의 섬전과도 같은 비응의 광채. 그리고 피익 하고 공기를 베어버리는 비응과 공기가 마찰하면서 길다란, 정말로 비응이 험난한 산세 사이를 가르며 토해내는 웅장하나 날카로운 포효성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장영의 물결은 너무나도 쉽게 갈라졌다. 지독하게 빠른 사물이 지나가면 공기가 갈라지면서 진공의 구간이 생겨난다. 이것은 봄날에 일어나는 돌개바람이 사물을 순간적으로 절삭해 버리는것과 같은 현상을 일으키면서, 검기임에도 불구하고 강기를 잘라버리는 위세를 선보였다. 비록 지나치게 빨리 사그라들어 공허대사에게 까지 피해를 입히지는 못하였으나, 곧 부드러운 원을 그리면서 회전한 영의 몸이 자세를 완연히 바꾸어 오른손을 거칠게 밀어내자 거세한 바람이 대지를 울리며 공허대사를 덮쳤다. 설명은 길었으나, 오히려 이번 비무 전의 이한룡과 운이 겨룰 때 사용한 신법보다 몇배는 빠른 속도였다. 그 탓에 다만 거세고 육중하나 빠른 장임에도 불구하고, 진공폭풍이 일어나면서 공허대사를 덮쳤다. 그것이 너무 빠른 탓에 호신강기만으로 그 진공의 검날을 버텨낸 공 허대사는 상당한 내상을 입으면서 물러났다. 외상은 없었으나 내상은 있었다. 승복에 이리저리 그어진 검날의 흔적은 상당히 섬뜩했다. 공허대사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비록 그가 고승이긴 하였으나, 눈앞에서 덮쳐오는 진공의 검날을 머금은 폭풍을 바로 견식하게 된다면, 어느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그때 운은 운기조식에서 깨어나 그들의 비무를 볼 사이도 없이 빠르게 수하들에게 어떤 지시를 내렸고, 곧 수하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바깥에서 대기중인 어떤 한 세력에게 운의 말을 전달했다. 지금 영이 시선을 붙들어 두고 있는 때가 아주 좋은 기회였기에…… 영의 시야에 운이 하는 행동이 들어오고 나서, 곧바로 영은 조금 시간을 미적미적 거리면서 다종다양한 무공들을 응용해 간단하게 펼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만들어낸 무공을 펼치는 것을 자제하면서 은영비까지 뽑아든채 공허대사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고, 공허대사는 낭패하면서도 간신히 버텨나갔다. 그런데 영은 단순히 가지고 노는게 아니라 상당히 살기넘치고, 당하는 사람은 비록 죽지 않더라도 상당히 살벌하게 당하는, 섬뜩하고 빠르고 강한 무공들을 선보이고 있었던 탓에, 공허대사는 되도록 쓰지 않으려 했던 72절기의 불광보조 따위의 몇 개 무공을 써버려 상당히 초조해 있었다. 더군다나 영은 미적미적 자신이 아는 72절기들을 깐죽거리며 펼쳐댔기에, 공허대사는 더더욱 초초해하면서 선장을 휘두르고 육장을 쳐냈다. 그리고 천산검주는 영을 향해 무지무지하게 욕을 퍼부으며 절규하고 있었다. 도대체가 처음에 보인 독특하고 신묘한 것들은 이제 간데없고 잡종 무공만 펼치고 시간만 질질 끌고 있다니! 게다가 자신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은근슬쩍 비웃음섞인 미소를 짓는게, 아무래도 자신을 농락하려 하는 듯 했다. 그래서 그는 상당히 노기가 치밀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동까지 해 가면서 비무를 재치있게(?) 진행해 나가는 영의 능력으로 인해. 그는 분노와 약간의 실망으로 그 감각의 범위가 흐트러지고 영에게 집중되어버렸고, 그렇기 때문에 무림맹의 바깥에서 전투 준비중인 한 집단의 기세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것이 강렬하기 짝이 없는 정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림맹을 왈칵 뒤집어엎는데 일조했다. 그리고 그 피해를 더욱 크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예상외로 은영천검과 가볍게 검을 섞을수 있게 되어 그나마 그것이 위안이 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것은 천류세가가 무림맹에게 선포한, 비공식적인 '선전포고' 였다. 061. 휘리릭― 불길한 바람이 무림맹 위를 스쳐가는 가운데, 몇몇 사내들이 평범하고 간단한 복장을 입은채 서로 술잔을 나누면서 웃고 있었다. 그들은 몸에서 강렬한 정기를 피우고 있었지만, 그것을 어느 정도 제어하여 그렇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않도록 했다. 의아한 점은, 다들 하나같이 절세의 미남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잘생겼다는 점이었다. 특이점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기질이 거의 다 비슷했다. 그리고 그 여섯명씩 짝지어진 인원들은 모두 매우 날렵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지만, 병기는 모두 하나같이 달랐다. 약간 휘어지면서도 짧은 소도거나, 양날을 가졌음에도 휘어진 검이라던지, 아니면 지나치게 휘어진 병기라던지…… 다들 그런 기이한 병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래도 주목받을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기질과 무기를 가진, 다채로운 인원들은, 모두 하나같이 무림맹 근처의 객잔에서 두 덩어리씩 포진하고 있었으며, 역시 이들과 비슷한 기도를 지닌 이들이 무림맹 근처에서 아주 멀쩡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대기중 이었다. 그리고 문득 그들에게 몇몇의 사람들이 다가와 몇마디를 건네면서, 전혀 수상쩍지 않은 몇마디를 건네면서 떠나갔고, 그들은 곧 객잔에서 나와 흩어져서 무언가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구한 물건을 얼굴에 두르고, 옷을 벗어 안쪽의 흑의로 대체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도 빠르고 신속하게, 신법과 은형술을 전개하여 무림맹으로 쏘아져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소리와 기척도 없이 스며들어 잠복중인 암살자들이나 특수 훈련을 받은 무림인들을 소리없이 제거하기 시작했고, 곧 무림맹 내부에서는 미약한 혈향血香이 감돌기 시작했다. 무림맹의 인원중 절반이 한 곳에 몰려있었던 탓에, 무림맹은 '실력자들에게'는 아주 개방적인 형태의 수비를 취했고, 그 탓에 전혀 방비조차 할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림맹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었 다. 거의 대부분의 잠복무사들이 죽음을 당했고, 순식간에 무림맹 위를 날아 스며든 흑익黑翼의 살조殺鳥들은 매서운 날개를 지닌채, 수많은 생명들을 앗아가며, 그렇게 적재적소에 스스로를 배치했다. 그들의 허리에는 상당히 큰 가죽주머니가 세개 걸려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지금으로써는 상당히 획기적인 발명품인, 흑색화약黑色火藥과 기름을 섞어놓은 것이었다. 가죽주머니는 염소 내장으로 만든 것이라 기름이 샐 염려는 없었다. 흑색화약, 그것은 현재 류 제국에서 극비사항으로 취급되는 것이었지만, 영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천류세가의 사람들은 그래서 영의 정체가 잠시 의심이 되었으나, 영은 오히려 더 발전된 화약들을 만들어내어 그 의심을 풀었다. 그들이 풍문으로 듣기로는, 서방 대륙에서는 저만큼 신묘한 화약기술이 많이 발달되었다고 들었기에, 영이 서방의 사람에게라도 배웠겠지, 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흑색화약. 영이 일단 천연비료에서 '질산칼륨'을 골라냈다. 그것을 걸러내는 것은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는 해냈다. 그리고 목탄가루를 찾았다. 그것은 탄소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서 유황. 비쌌긴 했지만 그는 거기에서 황을 얻었다. 서양식으로 하자면 질산칼륨 75퍼센트, 목탄 15퍼센트. 마지막으로 황 10퍼센트. 15대 3대 2의 공식은, 수세기에 걸친 실전과 영이 살았던 세계에서 인류가 해낸 수많은 일들에서 이미 충분히 증명되어있었다. 물론 제분製粉 장치가 필요했지만, 그것은 수작업으로 충분했다. 정교한 제분장치 따위는 갖고 있지 않았으나, 그들은 '무림제패'라는 목적에 대한 어떤 작업도 감수할 열의를 지닌 부하들을 데리고 있었고, 무엇보다 만년한철로 된, 그리 정교하지도 않지만 수작업으로도 충분한 제분장치를, 한 대장장이를 닦달하여 만들어낼 수 있었기에, 충분한 조건 역시 갖추고 있었다. 그 제분장치를 고안해낸 것은 역시 영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주머니에는 흑색화약과, 영의 세계에서 니트로그리세린이라고 불리는 것, 그리고 간신히 구한 규조토硅藻土, 그리고 뇌관雷管이 아닌 격발용激發用 폭관爆管을 이용해 만든, 초소형 다이너마이트 묶음이 들어있었다. 도화선導火線을 만드는데 얼마나 고생했던가, 그리고 그것은 기준보다 조금 짧게 해도 별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그걸 사용하는 이들은 검기상인을 껌으로 아는 무림인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 번째 주머니에는 진천뢰 다섯 개가 자리하고 있었다. 탈취한 것들과 부지런히 복제한 것들이었고, 이번 작전에 아주 유용히 쓰일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림맹의 중요 건물들의 기둥에, 두 번째 주머니에서 꺼낸 것들을 묶어놓고 신형을 은폐한채, 화섭자를 꺼내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새카만 옷을 입은 흑의인, 노을이 장중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시간이 되어버렸는지라, 그림자도 상당히 길고 짙어졌고, 그 탓에 밝다 해도 숨을 장소는 많았다. 그는 가볍게 몸을 튕기면서, 무림맹의 건축에 사용된 진법의 파해법을 속으로 웅얼거리면서 가볍게 화령구궁잠살진 花靈九窮潛殺陳의 생문으로 빠져나옴과 동시에 면밀히 주위를 살피다가 번개처럼 빠르게 어느 구석을 향해 스며들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어둡게 설계된 그 구석으로 쏘아져 들어온 그는, 왼쪽을 향해 매섭고도 빠른 공격을 가했다. 치잇― 그의 왼손이 부드럽게 허리에 걸린, 매끄러운 소도의 손잡이를 스쳐지나감과 동시에 소리없이 칼집에서 날카로운, 그러나 비반사非反射 처리處理는 된 기형의 소도가 뿜어져 나와 날카롭게 허공중을 그었다. 그는 다만 손잡이를 왼손으로 스친 것 뿐이었으나, 도는 뽑혀져 나와 매섭게 허공을 갈라 무언가를 베어냈다. 싸악― 그리고 허공에서, 어둠에 물든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그 갑작스러운 액체의 출현에도 흑의인은 당황하지 않고 그것을 잘 피해낸 다음, 소도를 휘둘러 검에 묻은 무언가를 털어냈다. 사실 흑의인의 실력이라면, 그리고 그가 검을 쥐었다면 벤 자리에서 뿜어지는 피도 아주 극소량으로 조절할수 있었고, 무엇보다 피도 묻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소도를 잡은것은 이번이 세 번째에 불과했다. 교육을 받을때는 항상 검으로 받았고, 무엇보다 이것은 다만 '무리 없이 쓰는'정도로 교육받았기에, 그리 익숙치 않은 병기였다. 물론 이 소도도 예리한 무기였다. 만년한철이 1할, 그리고 나머지는 정강을 차지하는 병기였기에…… 그는 그렇게 한 무림인의 목숨을 너무나도 쉽게 취하고, 천천히 걸어가서 그가 있던 자리로 스며든 다음 허리에 걸린 두 번째 주머니에서 길다랗지만 그리 길다랗게 보이지는 않는 막대하나를 꺼내 묶었다. 그리고 나서 돌아다니며 주변의 기둥에 모두 그것을 묶었고, 시간과 보폭을 계산하는 듯 몇번 그쪽을 걸어다녔다. 그리고 나서 화섭자를 꺼내 손에 쥐고는, 신호가 터져오길 기다렸다. 아마도 신호는…… 세 번째 상대를 금광검을 사용하여 밀어붙이던 영은 문득 시간이 되었음을 느끼고, 점점 해마저 가라앉아 빛이 많이 약해져 있자 천천히 은영비銀影匕를 들어올려 강렬한 심형어검강心形御劍剛을 뽑아냈다. 검극에서 흐르던 기묘한 기운이 천천히 솟구쳐 올라 무형의 기운을 형성하였고, 곧 푸르스름한 불꽃이 강剛의 형태로 완연히 형상화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영은 던져 올렸다. 그 길이가 점점 늘어난 심형어검강은 그저 쥐고 휘두른다 해도 삼여장 정도의 거리는 문제없이 베어버릴 정도가 되었고, 곧 그것은 허공에서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그 회전이 빨라지면서 거의 십여장 가까이 상승했고, 그것은 점차적으로 더 떠오르며 눈부실 정도로 빠르게 회전했다. 휙휙휙휙―!!! 거센 강기폭풍이 일어나 땅 아래를 덮쳤다. 그러나 영은 아랑곳없이 그 다듬지도 않은 길다란 머리를 흩날리면서 양손을 그어 회전시켰고, 그와 동시에 허공에 떠서 회전하고 있던, 심형이기어검강의 묘용을 품고 있는 은영비는 휘감은 강렬한 기운을 그대로 폭주시키면서 타올랐다. 은영비의 검신이 매섭게 회전하면서 사방에, 마치 푸른 꽃불과도 같은 기운을 마구 흩뿌렸고, 그것은 비무장 쪽을 주시하고 있던 흑의인들에게 신호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던 흑의인들은 빠르게 신법을 전개하며 기둥들에 묶인 막대들에서 나온 새카만 실에 화섭자를 사용해 불을 당겼고, 곧 그 실은 파팟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거세게 타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전력을 다하여 신법과 호신강기를 전개하여 뛰고 또 뛰어 비무장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대한 굉음이 무림맹 전역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쿠르릉―!!! 콰콰콰쾅―!!! 지독한 폭발음과 더불어 폭염이 무림맹 전역을 울렸다. 그러나 그 폭발로 인해 뻗어나온 붉은 폭염은 모두 물리적 에너지로 화하여 불꽃을 사그라뜨렸다. 그러나 무림맹 곳곳에서 솟구쳐 오른 장대한, 새카맣기 짝이없는 구름은 져가는 석양빛을 받아 묘한 모습으로 섞여나가 회오리쳤다. 그 폭발이 가라앉고, 무림맹의 모든 주요 건물이 처참하게 주저앉기 시작했다. 주요기둥들이 모두 깨어져 나가버린 탓에, 그것들은 자욱한 먼지를 뿜어내며, 대지를 울리는 굉음을 퍼뜨리면서 그렇게 흙먼지를 폭염으로 인해 생겨난 새카만 구름과 뒤섞으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모든 무림인들은 당황하기 시작하였고, 그 사이를 틈타 영과 운, 그리고 천광대들은 그 굉음을 신호로 빠르게 흩어졌고, 곧 적재 적소에서 날아들어온 천류세가의 암살대들과 뒤섞여 흑의 복면을 챙겨쓰고, 지금까지 이 계획을 위해 익혀온 각 정파들의 무공과 보법을 전력을 다 해 뿜어내며 정파인들을 습격해 나갔다.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 ……그들이 행동을 개시함과 동시에 처참한 비명이 무림맹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후에 무림의 사가史家들이 말하는 '피의 날'…… 그것을 묘사하는 글귀에서 흔히 튀어나오는 말이. 바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地獄.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가장 아래층의 무간지옥無間地獄…… 그것이 가장 흔히 쓰이는 묘사가 된, 피로 피를 씻는 날이었다. [외전外傳. 성광星光의 장章] 나는 왜 몰랐을까…… 정말로, 왜 몰랐을까? 이런 내 운명을…… 틀림없이 이렇게 될 것이었는데, 왜 이렇게 될줄 몰랐을까…… 아니, 왜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른척 하고 달려들었을까…… 쿡. 나, 아이스 블러드Ice Blood이자 블러디 블러드Bloody Blood라는 같잖은 이름을 지닌 일급의 암살자暗殺者가 말이다. 이 바닥의 생리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대체 왜 나는 이런 터무니없이 멍청하고 바보같은 짓을 했던가…… 나는 정말 나인가? 왜 어설픈 감정 하나에 휩쓸려서 이렇게 되었지? 왜? 어째서? 나만? 젠장. 계속 이런식으로 생각해 나가다 보면, 내가 왜 태어났는가 까지 나올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왜 나는 이렇게 욕하고, 신음을 토해내고 있던가 말이다. 나는 아직 어리다. 그러나 일급의 암살자다. 고작 2년만에 일급의 자리를 거머쥔 암살자란 말이다. 그런데…… 그정도 암살자가 되었으면 가져야할 냉정한 판단력마저 잊고 나는 대체 무슨짓을 한거지? 쏴아아아아아―! 타타타타탓…… 찰팍― 찰팍― 거세게 다리를 뿜어내면서 포장된 땅을 밟아 달리자 거세게 내 발바닥과 땅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온다. 그리고 그것은 장대비가 대지를 때리는 수준에는 비할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비가 대 지를 때려 생겨난 운무雲霧와 가로등조차 도움이 안되는 어둠 저편으로 미약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쫓기는 것이다. 내가 다리를 뻗을때마다 고인 물웅덩이는 물을 찰팍거리며 사방으로 튕겨냈다. 제기랄. 이제 기척 숨기고 흔적 남기고 어쩌고도 없다. 이렇게 지독하게 쏟아지는 여름의 소나기속에서 내가 뭘 바란단 말인가! 아무리 일급의 암살자인 나라도 이런 거추장스러운, 비에 맞아 착 달라붙는 옷을 입은채 기척없이 달릴 자신은 없다. 게다가 이 정도의 장대비 속에서라면 나도 짜증을 부릴 수밖에 없다. 내 다리가 쉴새없이 역동적으로 대지를 밟아 당겼다. 그리고 시야를 방해할 정도로 쏟아지는 한여름의 장대비는 나의 전신을 적시면서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내 다리가 뿜어지면서 물방울이 사방으로 날리고, 내가 몸을 뒤틀며 거칠게 골목 사이로 파고들고, 대지를 내리찍어 도약하여 벽을 넘기도 할 때마다…… 지독한 비의 노래는 내 몸에 닿으며 산개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하늘은 쉴새없이 장대비를 뿌린다. 도망가기도 어렵지만, 나를 쫓는 빌어먹을 놈들도 추격이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 봐야,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쉼없이 정면에서 뿜어져 들어오는 장대비. 거센 폭풍과 같은 바람덕분에 나는 달리는 것도 최대한 기울인 자세에서 달려야했다. 지독한 바람이 다시 한번 뿜어짐과 동시에 그 바람에 박살난 장대비의 가닥들은 물가루가 되어 거칠게 내 전신과 얼굴을 때려온다. 젠장. 빗방울에 맞아도 아플수가 있다니…… 쿠르릉― 콰쾅―! 또 번개가 시커먼 구름 사이에서 터져 오른 듯. 새하얀 백광이 터졌다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나는 더욱 속도를 붙였다. 지독한 장대비와 폭풍속에서, 내 머리카락은 마구 흔들려 내 눈을 찔러댔다. 정말 따끔따끔 거리는 얼굴에 머리카락마저 내 얼굴을 찍어대자 정말 쓰릴 정도였다. 비참하고 어둡다. 이런 빌어먹을 밤의 거리를, 그것도 장대비가 대지를 두들겨패고 천둥 번개가 난무하는 한 밤중의 시간에 질주극을 벌이다니…… 나로써도 한심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레나Rena. 그 빌어먹을 계집의 심장에 언젠가는 내 검을 밀어 넣고 말것이다. 그 빌어먹을 계집 탓이다. 이게 전부 다……! 비록 상부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그녀 역시 나를 '제거'하는 이 일에 참여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아무리 그런 겉모습을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부 죽음에의 유혹을 머금고 있다. 그녀는 암살자다. 타고난 암살자…… 암살자란 말이다. 그런 여자가 감정이 있어서 사람을 좋아한다? 가능하다 할지라도 결코 좋은꼴 못보겠지. 큭큭큭…… 그 망할계집이 나에게 이런 수단으로 죽음을 주려 한다면. 나도 어쩔수 없이 그 빌어먹을 계집에게 검을 들이대야겠지…… 내가 이렇게 쫓기는, 질주극의 서막은, 바로 어제 열렸다. 그리고 그 사건의 서막은 얼마 전으로 돌아간다. ……그때만 해도 하늘은 맑았다. 정말 시리도록…… "디드. 휴가네요? 좋겠어요." "고작 일주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대꾸해 주자 레나는 헤 하고 웃었다. 도대체가 암살자로써도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지만, 저 웃음을 볼때마다 소름이 끼치는건 어쩔수 없는 일이다.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는 위화감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지독한 암살자의 수업을 받고서도 저런 미소와 웃음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낼수 있다는 사실…… 그녀는…… 정말 타고난 암살자다. "우웅…… 나도 휴가였으면 좋을텐데." 팔을 뻗어 내목을 휘감고 매달리는 금발의 소녀. 만약 내가 밝히는 놈이었다면 진작에 넘어갔겠지만, 이 여자도 장난이고, 나는 이따위 거짓된 유혹에 넘어갈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차가운 눈으로 내 목에 매달린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무겁습니다. 놓아주십시오. 레나." "……칫." 정말 익숙한 한국어다. 언제 익혔지? ……내가 알바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오는 한국이었다. 그녀는 임무차, 나는 휴가 차…… 물론 급한 일이 걸리면 이 휴가도 중도에 끝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약간 시끄러운 듯 하면서도 지나치게 조용한 공항이었다. 나는 짐을 끌고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사람이 지나치게 북적거리는 거리는 난 정말 싫다. 내가 암살자여서 이기도 하겠지만, 그따위 이유라기 보다는 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은 성격상 싫어한다. 시끄러운걸 싫어해서 이기도 하겠지만……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시린 햇살이 내 시각을 강타했다. 그리고 나는 약간의 아찔함마저 느꼈다. 지독히도 푸른 하늘, 서울의 하늘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였다. 지나치게 짙푸르고 화려한 하늘이었다. 구름은 새하얗게 피어오르면서 거친 포말을 일으켜 푸른 하늘 속에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새하얀 대리석빛의 거대한 구름이 3차원적인 그늘을 스스로 만들어내면서 일렁이고, 금빛 서기를 머금은 햇살과 조화되어 아름다움을 조화스럽게 연출해 냈고, 그 보석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자연의 멋은 나의 시각과 감정을자극하여, 나도 모르게 잔잔한 감정의 파장을 일으키게 했다. 시린 햇빛, 푸르스름하게까지 느껴지도록 백열하는 시린 햇살. 그 백열하는 빛살이 뿜어져 들어오면서 나의 전신을 적셨고, 나는 따스함과 더불어 더위까지 느꼈다. 역시 서울인가…… 막 시베리아에서 이곳까지 온지라, 어쩐지 너무도 덥게 느껴졌다. 시베리아의 온도에 적응한 상태에서 한여름인 이곳에 왔으니 말이다. ……하하하. 정말 오랜만인 '조국'이다. 비록 나에게 좋은 일을 한 번도 해주지 못했을 지라도 말이다. 해준게 무엇인가? 큭…… 나를 범죄조직 하나 막아내지 못하여 쉽사리 납치되게 만들어 인독으로 만들어 준 일 말인가? 그런거라면, 이 나라…… 철저하게 파괴해 버리겠다. 큭큭……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서, 결코 공기는 아름답지 못하지만, 하여튼 저 아름다운 하늘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건 실례일 것이다. 지나치게 푸르고 높은 하늘은 마치 가을의 천공을 연상케 했다. 한바탕 소나기가 휩쓸고 지나가 하늘을 닦아내었는지, 시린 햇살은 여과조차 없이 서울 전체를 휘감아 돌고 있었다. 문득 시선이 집중된다. ……왜? 아아…… 레나로군. 그녀는 이 칙칙한 직업과는 달리 정말 선명한 금발을 지니고 있고, 무엇보다 나도 인정한 '미녀'다. 일단은 말이다. 거기다가 내 또래의 소녀고…… 하지만, 이 여자의 진면목을 알게 된다면 어느 누가 접근할까? 큭…… 아마 다가오기만 해도 살려달라고 벌벌 떨겠지. 레나는, 빛의 사신死神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서운 여자니까 말이다. 마치 빛의 양지에서 생활하는 듯한 선명한 아름다움과 성격을 지녔지만, 일단 암살을 시작하면 그 분위기 그대로 웃으면서 목표물의 목에 검을 찔러 넣어 주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여자가 레나다. 언제는 신경 건드린 목표물을 웃으면서 난도질했었지? 그 탓에 나는 주로 이 여자와 파트너가 되면서도 암살할 때 내가 거의 모든 몫을 처리해버렸다. 적어도 지독하게 순진한 악기와 광기를 발휘하면서 검으로 생명을 앗는 모습은 결코 보고 싶지 않았다. 지독하게 비위에 거슬리거든. 차라리 피에 젖어 광소를 터뜨리면서 심장을 후비는 놈과 일하는게 낫다. 물론 그것도 비위에 거슬리지만, 나로써야 레나쪽이 더 끔찍하다고 생각한다. 남은 어쩔지 모르지만, 어쩌면 특이한 취향을 가져서 변태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들이라면 레나에게 푹 빠져버릴지도 모르지. 아, 실제로 조직 내에서도 그런 녀석들이 좀 있었나? 하기사, 아무리 암살자라고 해도. 내 나이 이하의 훈련받는 녀석들 중에는 아직 순진한 녀석들이 있었다. 그런 녀석들을 내가 배려 해 주는 것도. 어쩌면 어려서부터 잃어버린 나의 '순선함'에 대한 조의일 지도 모른다. 나야 암살자의 훈련을 받기 전에서부터 행복이라던가 순선함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쓸데없는 것이라고 규정짓고 살던 놈이었으니까. 뭐, 지금에서는 그 평범함에서 얻어지는 행복함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환경 탓인가…… 어쨌든, 레나가 칫하고 불만어린 소리를 내면서 내 목에 휘감은 자신의 팔을 풀자, 나는 그제서야 한숨을 토해냈다. 이 여자가 아무리 가녀리게 보여도 암살자는 암살자다. 젠장. 팔힘한 번 무식하군. 내가 더 강하다고는 하지만 일단 목을 콱 조이고―비록 기술을 쓰지 않고 매달린 것이지만― 있으면 힘을 제대로 쓸수 없다. 어쨌든 뇌로 향하는 산소와 영양분이 흐르는 혈류가 장대한 지장을 받아 뇌가 제대로된 사고를 할수 없으니까. "……디드." "?" 내가 가벼운 의문을 떠올린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레나는 그야말로 해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여자, 그러고 보니 저번에 야쿠자 처리할때는 그나마 조금 긴장감이란게 있었는데, 요즘 들어 정말 심해졌다. 그때만 해도 햇살 미소(?)는 감추고 행동했는데…… 그러니까,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이 여자는 임무때에는 상당히 성의껏 움직였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 여자가 아무리 가볍게 굴어도, 전에는 표정이라도 굳힐줄 알았고, 그나마 행동 제어라도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요즘 유독 그렇다. 무슨 일이라도 떨쳐버리는듯한……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가 햇살미소(?)를 떠올리면서 나에게 다가오자 위험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려고 했으나, 그녀가 좀더 빨랐다. 그녀는 빠르게 나에게 접근해 오다가 얼굴을 들어 더욱 빨리 접근했고, 나는 그것을 피하려고 했다. 그리고 내 입술에 뭔가 부드러운게 닿는 것을 느낀 나는,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어서, 아마도 창백하게 질렸을 나는, 그 부드러운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자 굳어버렸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레, 레나……" "꺄하하하. 역시, 아무리 디드라고 해도 어쩔수 없어. 그럼 바이바이∼ 나 일하러 갈게요! 일주일 뒤에 또 보자구요." ……나, 무슨일을 당한거지? 나는 잠시 생각에 빠져들어보았다. 입술에 닿은 부드러운 것, 본능적으로 텅 빈 머리속, 그리고 시야가 흐려지기 전에 얼핏 보였던 누군가의 감은 눈, 상당히 예쁘장한 얼굴에 금발이었는데…… 설마!? 나는 경악성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급히 숙였다. 많은 사람들이 얼굴이 살짝 붉어지거나 부럽다는 듯한 시선, 그리고 약간의 질책 섞인, '공공장소에서 뻔뻔스럽게'라는 듯한…… 역시…… 결론은…… 나는 나도 모르게 왼손을 들어 입술을 매만졌다. 젠장…… 첫키스…… 빼앗겼어…… 그것도…… 여자에게…… 그것도 여자 중에서…… 레나에게…… 나는 속으로 발광하다가 간신히 그것을 진정시켰다. 휴우…… 그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어차피 장난인걸. ……남자에게, 그것도 변태라고 불리는 부류에게 빼앗기는 것보다는 몇배 낫다. 늦은 시각이다. 어두운 밤의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있는 곳은 현재 상당히 고급의 호텔 최상층의 방으로, 돈 쥐어주니 들어올수 있었다. 하기사, 내가 지금까지 암살자로써 번 돈이 얼마일 것인가. 스위스 은행에 더럽게 많이 퍼넣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금 카드를 가볍게 긁자 그걸로 끝이었다. 오히려 갑자기 태도가 정중해졌고, 곧 나는 내 의사도 아니거늘 이방에 끌려올 수밖에 없었다. 하하…… 이런 우중충한 기분이 드는, 비록 날씨가 좋다 하더라도 우중충한 기분이 드는 날이면 아무리 술을 싫어하는 나라도 한잔 걸치고 싶지. 젠장, 입술을 뺏기다니…… 그런데, 왜 이런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거지? ……이상하다. 이게 무슨 기분일까? 불안감 같기도 하고, 뭔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한데…… 이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잠이 안온다. 빌어먹게도 멋진 서울의 야경이 눈앞에 존재했지만, 그것을 관찰하고 묘사하여 머릿속에서 어떤 감정을 끌어내는 짓도 하고싶지 않다. 어차피 '감정'이라는 것은 뇌내 화학물질에 의한 것이니까 말이다. 신경 쓸 필요 없다. ……당연히 신경 쓸 필요 없단 말이다. 크아아아아악!!! 그런데 왜 자꾸 이 빌어먹을 기분이 성질을 돋구냔 말이야!!! 나는 욕설을 토해내면서 벽을 쥐어박았다. 손이 아프지도 않았고, 벽이 파손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기분이 더러웠다. 젠장, 수면제라도 먹어 버릴까보다. ……그렇다고 해도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약에 평생면역을 지니게 된 나의 몸은, 아마 치사량의 십여배쯤 되는 수면제를 주입해야 겨우 잠들 것이다. 정말…… 짜증나. 그리고 '음약'이라는 재수없고 짜증나고 특수한 종류의 약에도 지독한 저항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 것 같은데…… 어디보자, 기존의 남성놈들이 먹고 바로 환장해서 여자를 덮칠 정도의 약에서 대충 10여배쯤 되야 텐트 칠 정도라고 한 것 같고…… 그리고 20여배쯤 되야 비로소 여자를 덮친다고 한 것 같은데…… 젠장할. 그런데 어째서 고작 가벼운 키스 한방에 기분이 이렇게 되냔 말이다. 어떤 녀석이 레나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즉시 칼을 꺼내 녀석의 미간에 쑤셔넣어 버릴 것이다. 그 지랄맞을 악의 덩어리. 지나치게 순선해서 악의 덩어리가 되어버린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어떤 미친놈이? 그녀가 장난이라도 치려고 어떤 약이라도 사용했다…… 고 해도 나의 몸은 체외의 약물에 대한 끔찍한 저항력을 지니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럼 이 뒤숭숭한 기분은 다만 기분 나쁘다. 라는 종류의 것일뿐이다. 라고 결정지으면서, 나는 부드러운, 거의 다섯명이 누워서 자도 '이거 널널하다'라고 생각될 정도로 넓은 침대의 한 가운데로 몸을 던져 푹 파묻으면서 눈을 감고,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신기할 정도로 갑자기 잠이 찾아온 것이다.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호텔에서 날라져 온 음식을 적당히 긁어 먹어 치웠다. 맛이야 당연히 괜찮았지만, 나로써야 음식의 맛을 따지는 종류의 인간은 아니었기에, 이건 지나친 호사라고 밖에 할수 없었다. 젠장. 와인과 녹용을 먹여 기른, 거기다가 음악도 들려주고 마사지까지 해준 소의 고기 스테이크라니…… 살아서 호사하고 죽어서 비싼값에 팔린다라…… 큭. 정말 우습기 짝이 없구만. 그런다고 소가 좋아할 것 같냐? 어쨌든 맛은 괜찮으니 잘 먹어 주겠다. 이런다고 해도 소가 즐거워할리는 없지만, 이 소스가 잘 저며져 알맞게 구워진 고기점이 살아있을적의 주인. 소 녀석은 어차피 이렇게 조리되어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갈 운명이었을테니, 그렇게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혹시 모르지, 언젠가 환생이란걸 하다가 인간이 되어서 자신을 먹었던 인간이 다시 태어나 된 동물의 고기를 입에 처넣게 될지. 나이프를 들어 살점을 슥 가르고, 바이트 사이즈의 그것을 입에 넣고 씹어주자 따스함과 더불어 고기의 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마지막 한 조각까지 모조리 먹어 치우고, 아침부터 풀 코스의 화려한 식사를 하게 된 나는, 역시 카드의 효용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면서, 곧바로 체크아웃 했다. 또 들려주라는 말을 들으면서. "……" 걷고 걸었다. 일주일의 휴가라…… 고는 하지만 별로 할 일도 없다.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나온걸까? 휴우…… 그냥 근처 공원이나 둘러보자. 하고 내 행방을 결정한 나는, 공원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서울 지리를 내가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문득 작은 공원 하나가 눈에 띈 것이다. 상당히 풀 냄새가 강한 그곳으로 들어서자 약한 물 냄새 역시 내 코를 자극했다. 작은 인공호수와 잘 조성된 공원…… 여기서 잠깐 쉬어가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간은 아홉시쯤. 일요일이다. 그래서 이런 아침의 공원에도 몇몇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가벼운 복장으로 공원을 운동삼아 걷고 있는 것도 볼 수있었다. 그런데 상당히 신비스러운 어떤 기운이 주변을 감아돌고 있었다. 그 기운을 느끼던 나는 문득 누군가가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고, 나는 약간 몸을 긴장시키며 그쪽으로 시야를 돌렸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상당히 귀여운데다가 조금만 더 크면 여자들깨나 울리게 생긴, 중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소년이었다. 그는 입가에 생글거리는 미소를 만들어낸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에게 손짓한다. ……저녀석. 나 부른거 맞지? 아, 그러고보니…… 이 이상한 분위기, 저 녀석에게서 느껴진다. ……좀 특이한 아이다. 마치 자연에 녹아들어있는 듯한…… 나는 될대로 되라는 걸음으로 천천히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옆에 허락도 구하지 않고 털썩 앉았다. 그 아이는 벤치에 내가 앉자 씩 웃으면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형. 재미있는 운명을 가졌군요?" ……밑도 끝도없이 무슨 소리야? "헤에. 오늘…… 내로 조금 괴로울 것 같고. 또 가까운 시일 내로 자유를 잃겠어요. 대충 1년여의 시간이 지나면 어디론가 떠날것 같은데…… 우웅…… 어디지?" 중얼중얼거린다. 어차피 믿고 싶지도 않지만. "음…… 가까운 시일 내로 자유를 잃는다고 제가 말했죠? 아마 제가 생각하기로 한 5일쯤 후일 것 같네요." 그 말에 나는 굳었다. 5일? 5일쯤 후에? 5일 후의 그 바로 다음날이면 휴가 끝나는 날인데…… 이 녀석, 어쩌면 진짜일지도……? "유영劉英! 너 왜 여기있어?" 누군가 문득 소리친다. 나는 잠시 그 가녀린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쪽에서 뛰어오는, 내 또래의 소년. 어쩐지 분위기가 내 옆에 앉아있는 꼬맹이만큼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빠르고 날렵하게 뛰어온다. 그 동작은 암살자 들의 그것은 아니었으나. 상당히 기초가 잘 닦여있는 듯 했다. 가볍게 뛰어온 그는 내 옆에 앉아있는 녀석에게 눈을 부라렸다. 상당히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가진, 그리고 어쩐지 가냘프게 느껴지는 소년이었다. 상당히 잘 생기긴 했는데…… 어쩐지 뭔가 빠진 것 같은. "헤헤. 형…… 나 재미있는 운명을 가진 사람을 만났어." 내 옆의 녀석이 중얼대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또 신안神眼으로 사람을 보았구나. 그런거 자주 하면 안된다니까?" 방금, 신안…… 이라고 했나? 그런데…… 그게 뭐지? 내가 그들의 대화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보자, 그는 곧 나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 녀석은 이상한 말을 자주 하거든요." ……뭔가 숨기려 드는 것 같은데? 그러고보니, 같은 또래임에도 이녀석은 깍듯이 존대어를 쓴다. 하기사, 나도 그랬던가? 이녀석도…… 나와같은 종류의 오만함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귀찮음'을 싫어하는, 배타적인 성향의 인물임은 확실하군. "아니, 아닙니다. 그래도…… 가까운 시일내에라……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뒷부분은 모르겠지만……" "헤헤. 역시 나는 정확하다니까. 그런데요. 형……" "유영…… 조용히 해." 그가 가볍게 말을 끊자 마자 동생으로 보이는, 이름이 유영 인듯한, 어쩐지 유령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름을 지닌 귀여운 스타일의 소년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문득 갑자기 귓가에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무래도 조금 어두운 계열의 직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피냄새가 납니다.」 그말을 듣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녀석…… 대체 누구지? 내가 경계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가볍게 눈웃음을 띄었다. 그러고보니, 이녀석…… 입조차 열지 않았는데? "제 이름은…… 유현劉玄입니다. 그쪽은?" 별로 꺼내고 싶지 않은 본명인데…… 큭. 어쩔수 없으려나?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면서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나서 입을 열어 나의 본명…… 그것을 그에게 밝혔다. "……현청玄淸." "상당히 원혼이 많이 꼬여있군요. 뭐, 당신 수준이라면야 그런 영혼들 얼마 안있어 모두 소멸하겠지만…… 정신력이 단순한 ……라고 보기에는 너무 강해요. 당신은 누구지요?" 이번에는 그쪽에서 상당히 경계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부분은 아무래도 옆에 동생이 있으니 함부로 암살자라는 단어를 끄집어내고 싶지는 않았겠지. 그런데, 내가 마치 인간이 아니라는 듯한 어휘로 말하지 말라고. 원혼이 꼬여있다라…… 나는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을 꽤 많이 봤다. 그래서 내가 짐작한 그의 능력을 질문했다.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반어를 쓰고 있었다. "영안靈眼을 지녔나?" 나는 이쪽에 상당히 개방적인, 아니 백 퍼센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다수는 믿는 사고를 지녔다. 실제로 영법으로 영혼을 보여준 사람들도 있고, 무엇보다 나도 어느 정도의 영감은 지녔다고 해야 옳겠지. "너희 둘…… 상당히 재미있는 능력을 지닌 것 같은데?" 그러자 유현, 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당신도. 억제하고는 있지만, 많은 능력을 지니고 있군요." ……내가 가진 능력은 하나일텐데 말이다. 이쪽 계열이라면. 사이코키네시스Psycokinesis하나 말이다. "나는 염력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어. 그런데 왜 여러개를 지녔다고 말하는거지?" 나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입을 열었다. "역시 깨닫지 못하고 계시는군요. 하기야, 그런 능력을 모두 깨닫는다는건 상당히 힘들지만…… 저는 영안 외에도 심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능력이 조합되면 염파 정도는 느낄수 있어요." "……그런가? 흐음…… 네 동생은 조금 알겠는데. 너는 전혀 모르겠군. 대체 뭐하는 능력이지?" 정말 이상한 분위기다. 저 유영이라는 동생은 어쩐지 자연에 동화된, 부드럽고 아늑하면서도 어딘가 가라앉은 분위기를 지닌 아이라면, 이 유현이라는 소년은 정말 지나치게 특이하다. 뭔가 텅 빈 듯 하면서도 허무한 느낌이랄까…… "뭐, 아는 사람을 없게 해야할 능력이지만. 당신은 알려줘도 괜찮을것 같군요. 공간을 사용하는 능력입니다. 아, 그리고 제 동생은 원소조종 능력을 지녔지요. 그런데…… 무슨 일로 이곳에 오신거죠? 당신같은 직업이라면 한국이 아니라 외국에서 활동하는게 좀더 수입이 많을텐데." 그의 질문에. 나는 가볍게, 정말 오랜만에 웃음을 띄우면서 대답해 주었다. "글쎄…… 본래 수입따위엔 신경쓰지 않고 살아. ……일단 휴가이긴 하지. 뜬금없는 말이겠지만, 알려주고 싶은게 있는데 말이야. 혹시 조직같은데 들어가 있나? 내가 속한 곳에는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불행한 과거를 겪으신 모양이군요." "아아. 너는 역시 이 나라의 대가리들이 만들어낸 조직과 조금 연관이 있나?" "그냥 부탁하는 일 해주는 정도?" 역시 그랬군…… 뭐, 그정도라면 별로 상관 없겠지만. "되도록 이름을 알리지 마. 내가 속한 조직은…… 정말 최악이니까…… 혹시, 인독人毒에 대해서 알고 있나?" 그러자 그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리고 나서 불신의 시선을 나에게 던지면서 입을 열었다. "설마, 그 조직에서 당신을 인독으로…… 만들었나요?" "그래. 내가 제정신을 유지한게 이상하겠지? 하지만 나는 좀 특이한 성격이라서 말이야. 세간에서는 흔히 천재天才 어쩌고 하는 단어가 들어가는 성격이었지. 뒷부분의 재자를 재앙 재자 로 바꿔서 부르기도 하지만 말이야. 너도 조심하는게 좋아. 특히 네 동생이 엘리멘탈 드레인의 힘을 지녔다면, 더 조심하는게 좋아. 너는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입꼬리를 말아올리 면서 그에게 입 모양만으로 질문했다. '너, 이 근처에서 너희 둘을 노리고 있는 열 두명의 암살자들을 알고 있나?' '며칠 전부터 집요하게 따라다니더군요. 청씨 덕분에 영이가 공격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 '같은 조직 사람이니까. 빌어먹겠군…… 어떻게 해볼수도 없는데. 다 죽여버리면 되겠지만, 아마 감시자가 멀리에 있을거야.' 실제로, 나의 감각 범위 내에는 이들을 습격할 채비를 마치고 있는 녀석들이 존재했다. 젠장. 이 마음에 드는 녀석들을 구하기 위해 방해도 할수 없고…… 그렇다고 방관하기도 조금 그렇다. 아마 내가 생각하기로 이 유현 녀석이 가진 힘이라면 모두 다 죽일수 있겠지만, 혹시나 하독이라도 했다고 한다면 이 녀석의 능력으로도 조금 일이 커질 것이다. 무엇보다…… 아까부터 사람들이 전혀 돌아다니고 있지 않으니, 아무래도 제대로 작정하고 공원을 포위한 모양인데…… 골치가 아프다. ……진짜 골 아프네. 결국 그 자리에서 이동하기로 했다. 일단 내가 붙어있으면 저녁때까지는 괜찮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돌아다니며, 놀이공원에서 고급 음식점에 경찰서 근처까지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그런데 이녀석들은 도대체가 떨어지지를 않고 집요하게 쫓아오는게 아닌가. 아무래도 이 두 아이의 능력을 노리고 하는 짓 같은데…… 나는 잠시 유현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내가 떨어져 나가있다가 돌아오겠다. 혹시라도 공격하면 내가 즉시 돌아올거다. 그런데, 너, 공간을 사용하는 능력이라고 했지? 그럼 혹시 텔레포트Teleport라는 능력 쓸수 있나?" "세명 한꺼번에는 자신 없는데요……" 그가 그렇게 대답하자, 나는 골치를 썩었다. 나도 아마 이후에 추궁이 있을터이고, 혹시나 불받은 저것들이 날 그어버리려고 대들면…… 나로써는 재수없는 일이다. 게다가 저 열 두명이라면 모두 하나같이 다 일급에 특급인데. 모두 대들면 나는 염력을 사용하지 않게 되면 죽을 것이다. 젠장, 여덟명이 특급에, 네명이 일급이라…… 조직에도 숨기고 있는 내 사이코키네시스를 만약 보게된다면, 나는 정말 골치 아프다. 젠장, 어찌해야 된다? 시간도 점점 어둑해져 가고, 점점 별들은 드러나고 있는데…… 이걸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일단 나는 그들에게서 멀어져 나와 열 두명의 암살자의 거리감각 바깥으로 빠져나가 극도로 내 기척을 죽였다. 그리고 나서 시야에 두명을 확보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걷고 있었다. 그리고 으슥한, 이런 곳에서 흔히 나타나는 넓찍한 공터 내로 들어갔고, 곧 열 두개의 기척이 없어졌다고 생각될 즈음 곧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볼수 있었다. 유현 녀석의 엄청난 힘을…… 정말 안도와도 되겠다고 생각될 정도의 힘을…… 그녀석이 가볍게 왼손을 저음과 동시에 그 주변의 공간이 이상하게 왜곡되었다. 그리고 그 공간의 범위 내에는 일급 암살자 한명이 무기 없이 쇄도해 들다가 걸려들었고, 그렇게 산채로 일그러져 팍하고 터져버렸다. 그 노란 가로등빛 사이로 뿜어져 나온 혈무, 그러나 그 혈무와 시체 조각도 난데없이 사르르 하고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사그라들었고, 그 가루마저도 사라졌다. 그리고 유현의 몸을 노리는, 그로써는 피하기 어려운 빠른 검은 그의 손바닥에 막혔다고 생각됨과 동시에 쩍 하고 갈라져 부수어졌다. 그리고 유현이 그것을 집어들고 던지자, 그것은 허공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그런데 그것은 어느 한 암살자의 심장앞부분에서 나타났다. 심장에…… 틀어박힌 형상으로…… ……맙소사. 공간의 힘이란게 저런 거였나? 그리고 유영의 보조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유영의 손이 가볍게 허공에서 무언가를 지휘하듯 움직임과 동시에 그의 입이 달싹였고, 곧 날카로운 바람이 일어나서 한 암살자의 팔다리를 싹 하고 베어버렸다. 정확하게 근맥을 절단한 것이다. 말도 안돼…… 원소 조종능력이라더니, 바람을 움직인단 말이야? 저…… 꼬마가 저정도의 힘을 낼수 있다고?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암살자들은 오직 두명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한 암살자가 허공에 무언가를 살포하는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런데 아직 역시나 실전 부족인지, 유현은 전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듯 신음을 흘리며 그 자리에 고꾸라졌고, 유영 역시 그러했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움직여 빠르게 쏘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생포고 뭐고 없이 죽여버리겠다는 듯 검을 휘둘러 들어가는 특급 녀석이 나를 눈치채기도 전에 숨기던 실력을 모두 발휘하여 목에, 소매에서 어느새 꺼낸 나이프를 꽂아 넣었다. 뼈를 뚫고 들어가고, 혈관이 끊어져 나가는 감각이 나이프를 통해 그대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쉴새없이 나이프를 옆으로 그어버리면서 유영을 향해 날아가는 나이프를 쳐내렸다. 그리고…… 어쩐지 익숙한 검식…… 그것에 나는 굳었다. "레…… 레나?" "디드…… 어째서…… 방해하는 거지요?" ……그녀였다. 역시나, 이 임무였던가? 이 여자가 이 임무를 맡고 있었던가? 그랬단 말인가? 혼란스러웠다. 정말로…… 어찌해야 될지…… 나를 제대로 알아볼 사람이 나타난 이상. 나는 이제 저들을 공격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지금…… 조직의 일을 방해하는 건가요? 설마 몰랐나요? 그럴 리가 없었을텐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하지? 어떻게? 나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그녀가 단검을 든 채로 유영에게 다가가서 그의 심장에 칼을 꽂아넣으려고 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순간 퍼뜩 제정신이 들었다. 그 작은 몸에 검이 침투하려든다…… 나도 모르게 대지를 밟아 당겼다. 그리고 왼발을 차올려 나이프의 검면을 후려쳐버렸다. 그리고 오른손을 휘둘러 수중의 단검으로 레나의 목을 노렸다가 흠칫 하면서 물러났다. 그리고 늘어진 두 형제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디드……!" 분노에 찬 음성. 그 탓에 잠깐 더 흐트러졌다. 내가 일말의 감정으로 이 둘을 보호한건가? 내가? 어째서지? "당신…… 정말 죽고 싶어요?!" 그녀가 발악처럼 외치자. 나는 퍼뜩 혼란에서 깨어났다. 젠장할……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결과는 간단하다. 젠장, 장대비. 사그라 들지를 않는군. 나는 그녀와 검을 나누었다. 그녀는 내가 아니라 유현과 유영을 노렸지만, 나는 번번이 그것을 차단했고, 그러다가 마침내 그녀가 나에게 검을 날려왔다. 나는 버릇대로 그것을 피하면서 나도 모르게 오른손을 휘둘러 그녀의 몸 앞에서 그어버렸다. 그런데 그녀는 민첩하게 그것을 피해냈다. 그러나 나의 검은 그녀의 옷자락을 베어냈고, 곧 거기서 떨어진 종이쪼가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것을 집어들었고, 그녀는 기겁하면서 갑자기 검을 더 빠르게 날려와 나를 공격하려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빠르게 제압하여 밀어 쳤고, 그 종이의 내용을 본 순간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조직이 나를 제거하려 든다는 뜻이 명백히 담긴 명령서였기 때문이다. 유현과 유영의 납치는 부가적인 것에 불과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의아스러운 것은…… 그 종이에 이 빌어먹을 조직의 대가리의 직접 명령서라고 쓰여져 있었다는 것이다. 젠장, 그자…… 대체 왜 나를 갑자기 죽이려 든 것일까? 고작 일급 암살자인 나를? 내 능력을 그가 모두 알았다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대체 왜? 어떻게? 그가 나와 만난적이 있었던가? 내 주변 사람이란 말인가? 말도 안된다. 종이에는 쓰여져 있었다. '그가 접근하는 사람'을 죽이는 척 하고,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흐트러짐을 보이게 만들라고…… 그리고 그 방법은…… 기가 막혔다. 조직에서 특수 개발한, 뇌내에서 감정을 주관하는 화학물질을 촉진시키는 약을 쓰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내가 먹었던 스테이크에 뿌려졌겠지. 그리고 그 탓에 나는 감정의 흐트러짐을 얻고, 유현과 유영이 쓰러지는 것을 스타트로 곧바로 참견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이 끝나고 나서 시행되었을 일이기도 했고…… 이유는 몰랐다. 그렇지만…… 조직은 나를 제거하려 든다. 그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점점 비가 멎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 때문에 더더욱 속력을 올려 골목의 어둠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따돌렸다고 생각되자 곧 어둠속에서 벽에 등을 기대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어차피 더러워질대로 더러워진 상태였으므로, 골목 바닥에 주저앉는다고 더 더러워 지지는 않겠지…… 비가 완전히 멎었다. 그러나 주변을 메운 습기는 여전했다. 시간은 새벽 3시쯤 되었을 것이다. 젠장, 흐린 날도 아니었는데 바로 비가 퍼붓다니…… 내가 레나와 대치하던 도중 그 종이를 보고 경악했을때, 유현이 마침내 깨어났다. 그리고 그는 내가 '도망가라'고 입모양으로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영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나에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었으나 내가 고개를 저어버리자 곧 입술을 깨물면서 사라져갔다.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말이다. 텔레포트를 사용한 것이다. 약 기운이 모두 풀리지 않아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으나,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그것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사라지자 마자 특급 암살자 삼십여명의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도망가는 것이다. 사실상, 내 능력은 특급 암살자를 능가한다. 거기에 초능력이 더해지면 충분했다. 그러나 나의 '공격력'이 특급 암살자를 능가한다는 것이지. 아무래도 특급에서도 좀더 특별한 레벨의 녀석들과 만난다면 아마 힘으로 밀리던지, 속도로 밀리던지, 특수한 기술에서 밀리던지 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간에…… 비가 천천히 멎고, 갑자기 달빛이 골목 사이로 비쳐들자, 나는 퍼뜩 깨어났다. 달빛이 상당히 기운 것으로 보아, 거의 새벽 4시에 가까운 시간일 것이다. 나는 푸르스름하게 밝아진 어둠 속을 헤치고 나와 더욱 안정되고 가라앉은 몸놀림으로 도심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본 나의 시야에…… 별빛이 나타났다. 온갖 빛을 품고, 그 가느다란 빛을 달빛 사이로 나에게 뿌려 그 존재를 알리는 빛이, 나의 가라앉은 마음속을 천천히 메워갔다. 그리고 나는 가볍게 눈을 감고…… 한숨을 토해냈다. 이제부터 어떻게 될것인지는, 빌어먹을 신만이 알겠지. ------ [ 2권 end ] ------ 062. 뒤집힌 무림맹武林盟. 무림맹에서 불길이 오르기 시작한 뒤로, 무림맹 근처의 정보문파들에서는 정말 문주들이 점잖게 취미생활을 하다가 판을 왈칵 뒤집고 있었다. 무림맹과 천류세가가 만나고 나서 이런 일이 있을 가능성도 생각은 해두었지만, 정말 처절할 정도로 빠르고 기습적으로 굉음과 화염은 무림맹을 뒤덮었다. 그 지독한 굉음은 무림맹이 존재하는 성 바깥의 숲에서 노닐던 맹수들마저 문득 의문성(?)을 발하면서 성에서 물씬거리며 올라오는 시커먼 연기를 보고, 그 연기가 또아리를 트는 것을 보아야만 할 정도였다. 그리고 일순적으로 터져나온 폭음보다는 당연히 못하기는 하지만 문득문득 간헐적으로 폭발음이 들려오질 않나, 거기다가 폭발음이 들려올때마다 다시 매캐한 연기가 솟구쳐 올라오지를 않나…… 동물들은 난데없이 터져나오는 그 굉음에 인간들이 혹시나 저 천둥을(……그들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갖고 자신들을 사냥하러 오지는 않을까 두려워졌다. 어쨌든지 간에 그 벽력뇌성霹靂雷聲은 정말 격렬했으며, 너무나도 거대하여 무림맹 근처에서는 그 소리가 귀를 쩡 하고 울릴 정도였다. 무림맹의 근처 지반이 뒤흔들렸다고 생각될 정도로 강렬한 폭발. 그것은 저런 화약무기에 대해서는 무지한 촌부들이 '천신이 노하셨다.'고 하면서 바닥에 무릎을 찍어누르고 손을 맞잡고 벌벌 떨며 비는 결과가 나타날 정도로 강렬했다. 거기다가 연쇄적으로 계속 진천뢰震天雷라고 불리는 폭발물의 뇌성이 터져 나오자 영민한 자들은, 특히 무림인들은 무림맹 쪽으로 다급하게 움직였고, 그 행동의 물결은 정파나 사파나 가릴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관에서도 무림맹 쪽을 질려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관에서 혹시나 저것들이 모반을 꾸미려고 폭발물을 모아놓았다가 실수로 터뜨렸나, 하고 서둘러 출동 준비를 하였으며, 금의위들 마저도 꾸물꾸물 몰려들어 빠르게 제태를 정비하고 나서 그 책임자는 선두에 서서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대충 '황제 폐하의 안전을 위협하고 제국의 선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저 악적의 무리들이 하늘이 도우사 스스로 괴멸하게 되었으니. 병사들이여! 나서서 모두 적들을 무찌르자!' 류의 진부하기 짝이없는 말이었는데, 아마도 그 책임자 역시 엑스트라로써 얼마 못가고 뒈질 듯 보였다. 자고로, 무협이니 판타지니 하는 장르 외에도…… 본격적인 문학 소설 중에서도 작중인물…… 주동인물 반동인물 안가리고 진부한 대사나 주절거리는 성격으로 설정된 인물들은 비록 작가라는 신이 직접 설정했다 할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호평이 좋다 하더라도 칼맞아 죽든가, 작가의 농간 어린 붓 끄트머리가 춤을 추면 금방 사라져서 갈기갈기 찢기우고 화장조차 받지 못한채 음지바른(?) 곳에 묻히게 마련이다. 그 증거로 온갖 역사에서 영웅이라 하는 것들이 악의 주구(?)들을 향해 검극을 겨누고 외치는 대 장편 서사시(?) 따위에서 영웅들은 끝이 좋지 않잖은가? 영웅호색英雄好色한다고 하지만, 꼭 느끼하게 말빨 깔고 멀쩡한 면상으로 황당한 대사나 주절부리는 인간들이 영웅틱(?)하다고 하고, 실제로 고대 서사 영웅전에서 주색잡기 잘하는 놈들이지만, 그런 놈들이 결코 끝이 좋지 않다. 대체적 예로 수십의 인물들이 있긴 하지만, 지금 그것을 주절거리고 있다가는 당연히 이 소설의 주동인물들의 행태를 놓치게 되고, 줄만 잡아먹게 되면서, 독자 제위 분들의 분노와 내공이 함께 실린 장돌투掌突投(?) 무한연사에 맞아 죽을 것이니. 서둘러서 저 시커먼 연기 속으로 뛰어들도록 하겠다. 쾌도난마快刀亂麻! 아비규환阿鼻叫喚! 혈우육편血雨肉片! 챙―! 창―! 창칼의 빛이 난무하고, 온갖 절정의 신법이 펼쳐지면서 자욱한 연기속을 푸르른 검기가 꿰뚫으며 비죽 튀어나온다. 아비규환, 무간지옥의 참상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붉은 장삼을 입은 한 무림인이 문득 왼 다리를 가볍게 들고 빠르게 검을 내지르며 왼 다리를 거칠게 바닥에 내리 찍었다. 육합의 일. 단전에서 영약으로 인해 아주 튼실하게(?) 채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부실하기 짝이없는 내공이, 그러나 2갑자甲子에 달하는 공력이 혈을 따라 검극에 실리면서 뿜어져 나가고, 문득 검이 요동치며 붉은 기운을 머금으며 타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검극이 무수하게 갈라지며 적색赤色 매화梅花. 적매가 만개滿開하는 형상을 그려내며 사방을 질주했다. 강기剛氣. 비록 진실된 검강劍剛은 아니었으나, 검기劍氣의 응축凝縮형태로써 충분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붉은 강기가 은빛 검신에 실려 순식간에 붉은 강기화를 사방에 꽃피웠다. 자그마치 기백개에 다다르는 붉은 강기화가 피어오르면서 양분이 필요하다는 듯, 그를 둘러싸고 검기를 날려대던 인물들을 삼켰다. 그리고 뿜어져 나온 것은 혈우. 피의 비였다. 강기화는 붉은색 위로 피를 다시 뒤집어 쓰며 그것을 사방으로 튕겨냈다. 춤추듯 움직이는 장삼은 알고보면 남색이었다. 그 붉게 물든 옷을 입은 이가 문득 기의 흐름을 타고 허공중으로 매섭게 뿜어져 올라가 튕겨져 올라온 무언가를 왼손으로 잡아채고 이제는 아예 쌍검으로 매화를 그려내기 시작했고, 그럴때마다 강기화가 한층 더 생동감 있게 피워지면서 붉은 묵으로 만들어진 꽃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우수검右手劍이 장기인 듯, 왼손에 쥐여진 특색없는 검에서 피어오르는 검기와 강기의 꽃은 그다지 생동감 있지 않았으나, 그 예리함과 날카로움은 충분히 살아있어 살검이라 불릴만 하고, 오른손은 비록 악독하나 그 예기와 절묘함, 그리고 깊이가 쌓여있으니 활검의 진로를 틀만하다. 살검, 활검을 모두 빗겨든 이가 빠르게 춤을추니, 혈우와 육편이 사방으로 휘날리게 되었다. 직선적인 듯 딱딱하게, 그러나 착실하고 무자비하게, 허초하나 없이 너무나 솔직하게 뿌려진, 붉은 강기를 머금고 화려하게 뿜어지는 검날이 한 흑의인의 몸을 베고 지나가는 순간, 검에 실린 경력이 요동치면서 검명을 토해내고, 검명의 폭주에 맞은 흑의인의 몸은 순식간에 터져 나가며 피와 장기, 육편을 사방에 흩날린다. 사내의 얼굴은 착찹하기만 했다. 피를 뒤집어 써 가면서 싸운지 얼마인가. 정인군자도 검을 들고, 흉신악살도 검을 들고 한바탕 검무를 추며 어울리는 이곳이 바로 무림맹 본지부의 상황이었다. "살과 활이 순식간에 뒤바뀐다. 살을 쥔 서생이 뒤로 물러나 떠받들고, 활의 무대가 찾아온다. 활이라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으나. 가능성은 없지 않음이니. 부드럽게 흘러가듯 뿌려지는 활, 지금까지는 살, 활이 합일되어 있었으나, 나뉘어 짐과 동시에 활은 격하되었을 뿐이다." 문득 그것을 바라보면서 흥얼거리는 한 중이 무림맹의 본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중의 옷은 이상하게도 깨끗했다. 그러나 피나 육편이 묻지 않았다는 것이지, 결코 위생적이라고는 말할수 없을 듯 했다. 그의 형색은 남루 그 자체였다. 거기다가 승복僧服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었다. 거기에 허리춤에는 호리병 하나가 매달려 있고, 지팡이 하나를 짚으면서 천천히 걷고 있는데, 본디는 새하얀 수염일 것을, 새카맣게 때가 타 회색으로 보이는 길다란 수염을 늘어뜨리며 걷고 있었다. 머리카락? 다만 길렀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수 있겠지만, 정말 지독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주변의 대기에는 혈향이 가득 메우고 있어 지나가기만 해도 옷이 피로 물들어 버릴 것 같거늘, 이 중의 주변에는 공기 자체가 다른 듯 했다. 이 중의 주변만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결코 냄새 따위 때문에 고요하다거나 하는게 아니었다. 중으로 보이는 이는 자연의 기도를 풍기면서 느긋하게 참상의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에게 덤벼드는 이는 있었으나, 가볍게 내지른 중의 일장에 맞아 일합도 겨루지 못하고 날아가 나무등걸에 퍽 하고 찍으며 내상으로 인해 그 자리에서 운기행공을 하기 시작하였으나, 중간에 칼 맞아 죽는 것이 태반이었다. 중은 아주 느긋하게 입을 열며 흥얼거렸다. 저 청년으로 보이는, 피로 물든 적삼을 휘날리며 춤을 추는 고수를 바라보면서…… "활이 부드럽게 보이나 표독스러운 꽃을 만들어내고, 실보다 허요. 살이 아니되도록 제압하며 물러나면, 뒤질세라 살이 튀어나와 붉게 노하며 사방을 질주하여 명을 재촉하니. 한바탕 살활이 엇갈리는 치열한 춤판이로구나!" 중얼거리듯 노래하면서 중은 마침내 허허로운 미소를 떠올리다가 등에 감춘 지팡이를 휘둘러, 한 버르장머리 없는 정파인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그는 검을 놓치면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힘도 빠져가는지 강에서 약으로 가로, 약에서 미약한 바람도 불어내지 못하고, 단지 바람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도록 뒤바뀌어가고, 마침내 쓰러져 갈수밖에! 실상은 화려한 춤판! 그러나 죽을힘도 소모하니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지며 단말마도 지르지 못하는구나! 아아, 정과 사여. 생을 마감하였으니, 어찌 안타깝다고 하지 않을수 있으료?" 그의 흥얼거림과 더불어, 내노라 하는 강호의 세대주들도 처참하게 죽음을 맞아가고…… 그렇게 그가 멈추어선 한쪽의 검무도 끝을 맞았다. 그는 흥얼거리면서 천천이 걸어가며 지팡이를 휘둘러 버르장머리 없이 도검을 휘둘러대는 녀석들의 싸대기를 휘갈기면서 느긋하게 걸어, 자신이 느끼기에 가장 강한 힘들이 운집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와 신비로이 던져졌다. "끌끌끌…… 생도 사도, 구제도 신경쓰지 않고 바람처럼 노니니. 이게 바로 도라 할 수밖에 없으니…… 바르고 그름도 없고, 빠르고 느림도 없고, 서로 빼어남도 없이 오로지 세상을 지탱하는 한가닥 얇은 나뭇가지일 뿐인걸! 그리 세상을 혼자 지탱하고 싶은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가! 죽음과 삶이 엇갈리는 것은 한순간이니…… 목들이나 소중케 하게나! 허허허허…… 무림에 혈풍이 부는구나! 이런 혈풍속에 오히려 꽃이 피는법 이니. 껄껄껄……" 사라져가는 중의 옷자락에는 피 한방울, 살점 한조각 묻어있지 않았다. 흘러가듯 걸어가던 중은 문득 어기충소하여 허공을 딛으며 빠르게 회전하며 쏘아져 나가 그 강대한 기운들이 충돌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한 인물이 그 절정의 경공을 보며 신음했다. "괴, 괴승怪僧…… 이로다." 그 신음에 화답한 것은 그 노인의 길다란 장소였다. 진기가 실린 커다란 웃음은 사자후와 같이 그들의 귀를 때렸고, 순식간에 검을 나누던 이들은 신음을 흘리며 그 강렬한 파동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을 한결같이 나뒹굴었다. 그리고 문득 한 인물이 깨달은 듯 소리 높여 그의 정체를 일깨웠다. "시, 신승神僧. 공공空空 대사!" 공공 대사. 파계승, 공공대사였다. 일전에 광협, 문열과 싸워 내기에서 진 후, 보법이자 신법인 간단하지만 심오한 경신술을 휙 던져주고는 떠난 괴승이었다. 그 행색은 남루하나 모습은 점잖기 그지없었다. 파계승이라는 말이 떠돌아도, 소림에서는 결코 파계승이라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를 잘 대접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술을 마시고 고기를 씹어도 별 말을 하지 않았기에, 세간에서는 놀라운 일로 떠들었다. 공공 대사는 화경의 고수였다. 그것도 거의 현경에 다다른 화경의 고수로, 육장을 사용 했으므로, 얼마 안있으면 '심心' 구결의 권. 심격권心擊拳을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진각없이 날리는, 심형어검강에 맞먹는 탄경이라고 할수있을 것이었으나, 무형검 전에 이를수 있는 심즉살心卽殺, 마음이 이르는 대로 죽음이 닿는다는 무학의 극의極意에 묘합하는 권법이었다. 권사가 현경에 이르면 사용할수 있는 권황의 심격권은 본 바가 없었으나, 문열과의 내기 이후 공공 대사는 그것의 실마리를 잡고, 어설프나마 심격권을 사용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역시 얼마 안있어 현경에 오를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살계를 연 승으로 유명하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무차별 살상하는 광승도 아니었다. 그는 필요하면 살계를 열지만, 오히려 활법을 행하는 이였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어쩌면 오히려 승에서 벗어나 보살행을 하는 진정한 승려일지도 몰랐다. 아마도, 이 일 이후에 그가 현경에 든다고 한다면 두려워할 이는 악인이요, 반가워 할 이는 선인일 것이다. 그가 유명한 이유는, 악과 선만 가려지면 정파인, 사파인, 고위직, 하위직 가리지 않고 가차없이 개과천선시키기 위해 두들겨 패거나 그 정도가 심할 경우 일수에 풍도豊都(지옥地獄)로 안내해 버리기로 유명했다. 그가 현경에 오른다면, 보살행의 기간은 더 늘어날 것이나, 그는 허허 웃으며 받아들일 것이다. ……죽지만 않게 된다면 말이다. 그가 쏘아져 들어간 곳에서, 거대한 힘이 충돌하는 것을 의미하듯, 강렬한 굉음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도 굉음이 터져 나오거나 폭음이 울려나왔으나, 저 강대한 힘들이 부딪히는 곳에서보다는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저 군데군데서 울리는 폭음들이 화약무기로 만들어진 진천뢰임에도 불구하고, 저곳에 모여있는 이들은 무림의 거두들이었다. 일격 일격이 진천뢰 따위는 문제없이 눌러버릴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고, 진천뢰 정도야 호신강기로 막아버릴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영이 새로이 대륙에 등장시킨 폭발물. 벽력단霹靂短―짧은 막대기 형태를 하였다 하여 이름지어졌다.―은 천류세가가 사용한 이후 대륙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으며, 폭발물의 대가이면서 무림의 고수가 된 은영천검의 별호가 이후 하나 추가되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폭천뢰신爆天雷神 은영천검銀影天劍. 063. 결빙난화검법結氷亂花劍法, 오의. 빙류살氷流殺. 매섭게 뿜어져 나간, 푸른 냉기를 머금은 검날이 순식간에 기의 난류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은빛 검이 그것에 실려 무섭도록 빠르게 푸른 검영劍影을 만들어냈다.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장포가 가볍게, 흐드러지듯 펄럭임과 동시에 매서운 검영이 사방으로 짓쳐들고, 그 검영에 맞은 즉시 즉사. 그야말로 살무殺舞였다. 살인적인 냉기가 배어든 검날이 가볍게 스치고 지나간 다음, 상처 부위는 그야말로 찰나지간에 얼어붙어 섬뜩한 고통을 선사했다. 열양공보다 빙음의 공부가 더 무서운 이유는, 그것을 맞는 것이 생물이기 때문이다. 열양의 무공도 무섭고 위력이 강인强靭 한 것은 사실이고, 무엇보다 살상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음유의 힘은 더욱더 무섭다. 이유? 생물…… 을 구성하는 세포細胞라는 것은 어중간히 얼리나 매섭게 얼리나 일단 얼면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생체 활동이 중단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냉동된다면야, 그리고 빨리 녹이면 죽지 않을수 있지만, 지금 저 검영에 깃든 푸르른 냉기는 지독하리만큼 시렸고, 한 대만 맞아도 곧바로 얼어버릴 만큼 끔찍했다. 그래서 흑의인들은 그 은빛이 스민 검무를 피하는데 주력했다. 그런데 또 거기에 문제점이 있는 것이, 일단 피한다고 쳐도 그 뒤를 따르는 냉기에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거기다가 경력이 실린 검이 매섭게 춤을추고 한바탕 냉기의 꽃이 그려지면 그 주변의 기온도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져 무림인들도 버티기 힘들정도로 강한 냉기를 발산해내고, 점차적으로 주변의 분자운동들이 활발함을 잃으면서 그의 점차 빨라지는 검날에 목숨을 잃는 무림인들은 오히려 더 증가했다. 문제점은, 그의 동료들도 냉기에 악영향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같은 동료들은 그 냉기의 범위 바깥에서 그가 위험해지면 도우려고 포위만 막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의 무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칠룡의 일원이었고, 칠룡중에서도 그렇게 확고하게 지위가 확립되어지지는 않은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빛은 평소와는 다르게, 섬뜩한 냉기를 품었으면서도 푸르스름한 빛을 뿜으며 매섭게 타오르고 있었고, 얼음장보다도 차가운 냉기와 살기가 뒤섞여 주위를 뒤덮으면 어느새 검날은 서넛 이상의 목숨을, 차갑지만 그의 냉기보다 차가울까 의심이 가는 어두운 명부로 쫓아내고 있었다. 가볍게 왼발이 땅을 딛었나 싶게 어느새 다시 떠오른 그의 몸이 회전하면서 춤추듯 검을 뿌려낸다. 장삼의 그림자가 흔들리면서 주변을 가득 메우고, 거기서도 냉기가 거칠게 터져 나오면 그 냉기의 그림자 사이로 푸르른 빛을 머금은 은빛 검선劍線이 토해져나와 사물을 얼어붙게 만든다. 그의 검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차가운 검풍이 몰아치고, 어느새 낮아진 기온속에 상대편들은 옷자락마저 얼어붙어있고, 얼어붙은 옷자락이 검풍에 터져나가는 순간 파편이 흩날리고, 그 파편은 지나치게 세세하고 잘잘하게 조각나 흩날리는 순간 불쑥 은빛 검영이 흔들리면서 무수한 은청색 검기의 꽃이 그려지면서 생명들이 이미 혈관 내부에서 얼어붙은 피의 조각들을 흩날린다. 간혹 냉기를 중후한 내공으로 밀어내면서 뜨거움을 아직 간직하고 있는 피를 뿜어내기도 하였으나, 그 뿜어내진 피는 은색의 검이 허공을 베면서 다시 쩍 하고 얼어붙어 버렸다. 그의 검기는 확실히 끔찍하도록 강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냉기가 소름끼치도록 강력하여 점차적으로 사람의 진을 빼고, 단 일격의 후검이 목숨을 앗아간다는 점이 달랐다. 완벽한 살상용의 무공. 그것이 얼어붙은, 어지러운 꽃을 그려낸다는 결빙난화검의 기본적인 토대였다. "……" 침묵을 지킨채, 자신에게 결빙난화검을 전수한 이가 알려준 심법과 술법으로 냉기를 거의 완벽하게 차단하였으나, 공력의 소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결빙난화검을 전수한 이는 확실히 공력의 수련 외에도 육신의 수련을 더욱더 강조했다. 그 탓에 공력의 소모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흔들림없이 검을 뻗어내어 목숨을 앗고 있었다. 그래도 그 한계를 알려 주는 것이, 처음보다 검의 속도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는 것으로 그나마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안도를 하게 했다. 저 잔혹하고 냉혹한 검술. 그리고 흘러나오는 냉기는 사람에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빼앗아 버리고 그 숨통마저 끊어버리는데 확실한 효용을 보여주는 검술은, 같은 편들도 처음 느끼는 것이었다. 사실, 열양공이 아닌 빙음공이 저렇게 검이 닿지 않는 광범위한 범위 내에 여파를 미치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다. 공력 소모도 상당하겠으나, 거의 3갑자에 다다르고 있는 공력을 가지고 있는 그로써는, 거의 반시진동안 냉기어린 검기를 퍼부어대고 있어도 탈진의 지경은 아니었다. 본래 그의 공력은 이토록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자신이 익힌 심법에 더해질수 있도록 만들어낸 심법을 익힘과 동시에 대자연의 기운 일부를 빨아들여 음에 치우쳤던 자신의 공력을 완벽한 음양조화의 태극으로 변화시킬수 있었고, 그 공력이 또 정제되면서 더욱 강력한 빙검을 펼쳐낼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화경에 이르지 못한 자신이라도 살상력은 그리 심하게 떨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이것이 생물에게는 탁월한 효용을 미칠수 있지만, 화경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서는 다만 강력한 빙공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검술에 흐름의 묘용이 섞여 강력하기 짝이없다고는 하지만, 역시 그래도 화경에는 못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오의를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아마 화경에 오를수 있을것이라고는 했지만, 이것을 익힌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숙련도도 상당히 떨어졌다. 그러나 타인이 보기에는 그의 움직임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잘 절제되어있고, 화경의 고수 이하의 인물이 보기에는 확실히 강력한 검술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 숙련도가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이 검술은 어디까지나 현경의 고수가 깨달은 것의 일부가 들어간, 소름끼치도록 강한 검로를 포함한 검술인 것이다. 그때 문득 커다란 장소성과 같은 사자후가 자신의 귓가를 때림과 동시에 그는 최대한 몸을 추스르며 대지에 땅을 디딘다음, 빙그르르 돌면서 부드러우나 빠르고 매서운 검격을 날리는 일을 중지하고 내공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기혈의 뒤흔듬을 막아야했다. 그리고 그것은 장내의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는 최대한 기혈의 들끓음을 가라앉히면서 '그'가 알려준 방법대로 가볍게 호흡을 조절했다. 공력이 부족한 이들은 바닥에 뒹굴다가 운기조식에 들어섰고, 간신히 몸을 추스른 이들도 무기를 들고 휘두를 힘도 없었고, 공력을 조절하여 다시 공격에 들어갈 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니었다. 가볍게 검을 쥐어 흔들면서 검기를 천천히 뽑아올리자 푸르스름한 냉기가 퍼져나오기 시작했고, 그것은 본 듯, 상대편의 누군가가 갑작스레 검강劍剛 한가닥을 뿜어내 자신을 공략(?)해왔다. 그는 간신히 몸을 뒤틀어 그것을 피해내었고, 곧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흑의인 하나를 볼수 있었다. 그는 단순한 형태의 패검을 쥐어틀며 검극에서 반자 가량 치솟은 푸르스름한 검강을 만들어내었고, 그것을 본 그는 헬쓱하게 질렸다. 흑의인은 고개를 흔들면서 손짓했다. '운기조식 이나 하고 가만히 있으라, 그렇게 않으면 손을 쓸수 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아서 말이다. 자존심이 상했으나 그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허공을 올려보자 한참 저쪽, 거대한 굉음이 퍼져나오고 있는 곳으로 회색 그림자가 무섭게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행태를 눈에 담은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신승, 공공 대사!' '공공 대사…… 좀 늦었군.' 영은 중얼거렸다. 난데없이 사자후를 터뜨린다음 장내에 안착하여 아직도 치고박는 놈들의 대가리를 한 대씩 지팡이로 쓰다듬어(?) 주면서 걸어오는 이, 지독하게 남루하고, 머리를 기른채 승복을 입고, 거기에 한술 더 떠 허리에 호리병을 찬 노인네를 보면서 그는 빠르게 그의 정체를 파악해 냈고, 곧 오른손에 쥐고 있던 은영비銀影匕를 느긋하게 갈무리했다. 오른손 안쪽 소매에 그것을 밀어넣으면서 창 하는 소리가 나도록 한 그는, 얼어붙어있던 장내의 분위기를 깨웠다.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약간의 음공을 이용하여 퍼뜩 정신이 들도록 만들었다. 전력을 다해 음공을 사용했다면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물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널부러 졌지만, 모든 힘을 다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타난 공공 대사를 눈살을 찌푸리며 방해꾼 취급을 하고 있던 천산검주는 신경질 적으로 검을 검집에 쑤셔박았다. 그리고 그것을 본 노인은 씨익 웃더니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코를 씰룩거리며 혈향을 맡다가 노골적으로 인상을 구겼다. 허리춤에서 호리병을 꺼낸다음 그것을 들어 휙 뿌리며 내공을 가볍게 운용하자 독한 천일취의 싸한 국화향을 머금은 독주가 순식간에 증무처럼 쫘악 뿜어짐과 동시에 지독한 주향이 혈향을 몰아내면서 장내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다만 술 냄새가 피 냄새를 몰아낸 것 뿐이었지만, 장내의 무림인들은 일순지간 흥분이 싸악 가셔버림을 느끼며 병기를 늘어뜨렸다. 그리고 노인은 천천히 영과 천산검주들 쪽으로 다가왔다. 아직까지도 주변의 기력이 요동을 치고 있는 가운데로 걸어온 노인, 공공 대사는 안색이 일순 변 하더니 둘다 젊은 모양을 하고 있는 영과 천산검주를 번갈아서 바라보더니 문득 박장대소 拍掌大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것에 수양도 깨버리며 무표정이었던 영과 약간 구겨졌던 천산검주의 얼굴은 황당함으로 물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터져나온 말에 아예 무게중심을 디뎠던 다리에 힘이 풀리던지, 휘청해 버렸다. "껄껄껄…… 이 빈승은 신경쓰지 말고 하던일 계속 하게나." 그러나 지독한 공력이 실린 목소리에 휘청하던 그들이 다리는 원래대로 힘을 되찾았고, 장내를 울린 목소리에 화경 미만인 고수들은 모두 입에서 피를 토해내며 바닥을 나뒹굴다가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화경의 고수들과 현경의 고수들은 표정을 굳혔다. 화경의 고수들은 간신히 이 지독한 공력의 파동을 몰아냈고, 현경의 고수들도 감탄할 만큼 깊고 강력한 힘이 실려있었던 것이다. 서로를 바라본 화경의 고수들은 그 강력한 내공에 흥분이 사라져버렸고, 현경의 고수들, 영과 천산검주는 문득 저 노인네가 무슨꿍꿍이 인가하고, 날카로운 눈길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공공 대사는 다시 박장 대소 하면서 입을 열었다. "허허허…… 아까는 싸움에 취했으면서 고작 조금 시끄럽게 등장한 구경꾼이 생겼다고 싸우지 않을 생각인가? 그러면 빈승이 섭하네. 분위기까지 개선하려고 비싼 술을 내던졌는데…… 그러면 안되지 않나?" 아쉬움까지 스며든 목소리에 더더욱 굳어진 표정을 보여주는 현경의 고수들. 무슨 개수작인지 설명하지 않으면 당장 연로사상 때려치고 개패듯 패버리겠다는 듯한 영의 분위기와, 당장 설명하지 않으면 심장을 파버리겠다는 표정의 천산검주를 본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허허. 무서운 사람들일쎄. 싸움 구경은 그냥 해본소리고, 무림인들의 피해를 좀 줄이기 위해서 온거네. 자네들이 싸우는 것은 피차 이유가 있을 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여기서 노인네 고막 터질정도로 울린 소리에 관에서 의심을 품고 벌써 금병을 출병했다는 것일쎄. 허허. 그새 또 표정이 굳어졌구만! 알았으면 빨리 인면수심 정파놈들이고 폭발물로 사람을 학살하는 똑똑한 유가놈들이고 흩어져서 집으로 돌아갓!" 이제는 눈을 부라리는 그의 모습. 그제서야 천산검주와 영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듣고는 곧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쉽다는 표정의 천산검주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영은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하늘을 찌르는, 유리 깨지는듯한 맑은 미성으로 무림맹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굉음을 토해냈다. "전워어언―――!!! 처얼수우우―!!" 지독한 굉음, 음공을 운용하지는 않았으나,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리 만치 거대한 굉음이었다. ……하지만 여성의 목소리를 훨씬 넘는 옥타브의 날카로움이 더해졌다는 것은 무시하는게 좋을 것 같다. 그는 은영비를 꺼내들더니 갑자기 허공으로 어기충소하여, 오행대천공, 화와 수를 동시에 운용하여 순수한 수증발무水蒸拔舞를 한가득 장내에 뿜어낸 다음 미리 정해놓은 바대로, 오색을 머금은 강기의 꽃을 허공중에 꽃불처럼 뿜어냈다. 갑자기 하늘 위에 매서운 빛을 토해내는, 조명탄 수준의 강기꽃불이 뿜어지면서 영은 미리 만들어놓은 조명탄照明彈과 진천뢰의 중앙에 5초 시한부의 화령기火靈氣를 심어놓고 허공에 던져올린채 무섭도록 빠르게 풍천무를 일으키고 강기막을 형성, 거의 음속으로 무림맹의 상공에 도달하고, 퇴로를 확보하게 위해 기를 응축한다음 흑의인들이 몰려있는 장소에서 길을 트기 위해 금강폭열공을 운용해 거의 수백마리에 다다르는 강기룡을 뿜어내어 그것을 빗발처럼 뿜어내 무림맹의 안쪽에서 외벽까지 직방으로 길을 내버렸고, 순식간에 완성된, 조금 표면이 좋지 않은 고속도로를 타고 흑의인들은 무서운 속도로, 썰물빠지는 기세보다 몇배는 낫게 싸악 빠져버렸다. 빗발치듯 쏟아진 금빛 강기에 시선을 빼앗긴 고수들을 피해 달아난 흑의인들의 속도는 실로 가공하여, 그야말로 뭐 빠지게 튀어나가는 꼴이었다. 닭 쫓다 지붕보는 개 꼴이 된 무림맹 인들의 표정은, 놀러나갔다가 집털린 이들의 꼴과 비슷했다. 피해는 천류세가보다 무림맹이 두배더 컸다. 하물며 홈 그라운드(?)가 완벽하게 개박살 나버린 것을! 064. 공평한 죽음 공평한 탄생 마주볼수 없는 두 얼굴은 엇갈린 왜곡의 증거가 되어…… 영은 입꼬리를 말아올리면서 부드러운 가락의 노래를 입에서 흘려냈다. 그리고 그는 시린 햇살을 맞으면서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흔들린, 길다랗고 새까만 눈썹에 맞아 산산히 깨어지는 햇살의 파편은 주위를 어지럽게 흐트러트리면서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깊고 맑은 흑색의 눈동자로 빨려들어가는 햇빛, 그는 구름이 걷히면서 밀려들어온 거센 햇빛의 파도에 눈을 감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휘파람의 가벼운 한 곡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벼운 가락, 흔들리는 햇살의 노래 사이로 흐드러지듯 퍼져나가는 가락은 변화를 포함하면서도 아주 단순하게 느껴졌다. 피리소리와 같이 진한 느낌을 주면서도 곳곳에서 꺾어지듯 흔들려, 창하는 것 같이 깊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여닫는 창문을 서서히 닫아 잠그면서 햇빛의 향기를 차단했다. 그리고 천천히 침상 위로 몸을 던졌다. 스프링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푸욱하고 들어가버린 탓에, 그는 말 그대로 묻혀버렸고, 한숨을 토해냈다. 갑자기 자신이 살던 곳의 탄력있는, 침대의 스프링이 자신의 몸을 밀어내면서 흔들리는 그 미약한 즐거움을 다시 한번이라도 느껴보았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느다란 웃음이 그의 입에 피어났다. 한없이 천진하고 가녀린 웃음. 그 웃음이 피어올랐다가, 너무나도 천천히 사그라들면서, 그는 조용히 잠들었다. 그리고 반각쯤 지났을까? 난데없이 빠르게 탕탕탕 하는, 신발 창과 복도를 구성하는 물질의 강도 비교를 하는 소리가 연쇄적으로 터져나와 공기를 진동시켜 그의 고막에 전달하여 그를 퍼뜩 깨게 했다. 그는 깨어나서 불쾌감을 느끼면서 천천히 일어나 가볍게 몸을 튕겨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문이 부서질 듯 젖혀지면서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나서 뛰어들어온 이는, 운이었다. 정리조차 하지 않은 흑발을 휘날리면서 뛰어온 그는 영이 어디 있는가를 휙휙 훑어보다가 입이 헤 벌어졌다. 약간의 짜증스러움이 깃든 표정을 짓고 있는 영, 잠에서 아직 덜 깨어 상당히 귀여운 스타일을 하고 있는데다가 머리카락을, 이제는 거의 허리에 다다르는 머리카락을 침상위로 늘어뜨린, 묘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그를 보고 잠시 넋이 나간 것이다. 운은 퍼뜩 제정신을 차리면서 다급히 입을 열어 급보를 알렸다. "혈천교가 무림맹과 협작했어!" 그리고 그 말에 영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 충격적인 거짓말과 비슷한 말을 이해하려고 하다가 곧 눈을 부릅뜨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운을 덥석 끌어안고 침상으로 질질 끌고간 다음 덥썩 끌어안고 잠에 다시 빠져버렸고, 운은 당황해버렸다. "왜, 왜그래!?" 영은 잠들면서 대답했다. "충격적인 소리를 들었을때는 자야돼……" "……" 사막의 바람은 거칠고, 습기따위는 찾아볼래야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있기는 하지만, 타 지역에 비하여 지나치게 건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 사막의 바람은 지금 짜증날 정도로 고운 모래의 입자를 한가득 머금고 붉은 혈의 위에 가벼운, 갈색의 얇은 옷을 두겹세겹 껴 입어놓은 이들 향해 몰아닥치고 있었다. 바람은 성질날 지경이었다. 자신이 모래입자까지 뿌리면서 전력을 다해 몰아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혈의인들은 몸에 돌덩어리라도 달았는지 다만 모래위에 엄청나게 깊은 발자국을 남기면서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천근추의 신법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연의 힘으로 고작 인간을 날려보낼수 없다는 것은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괜히 짜증스레 다시 바람은 꿈틀거리면서 그들의 위에 물 대신 모래를 뿌려대었으나 그들은 묵묵히 걸을 뿐이었다. 낙타 따위의 탈것도 없는지, 짐을 모두 짊어진채, 바리바리 싸서 그들은 걷고 있는 것이다. 곧 바람의 위세는 사그라들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천근추를 서서히 풀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바람이 모래입자들을 이용하여 회오리치던 시간에는 보이지 않았던, 아니, 아예 차단이 되다 시피 했던 끔찍하리만큼 강렬한 햇발의 위세가 그들을 덮쳤다. 그들은 곧 아스타르 대륙에서는 후드Hood라고 불리우는 것을 푹 눌러 쓰면서 그 햇발을 차단했다. 하지만 쉼 없이 걸을 뿐, 가끔 휴대를 위하여 양념으로 미리 조리를 해놓은 육포를 뜯어 입에서 씹고, 물을 아주 아껴마시면서 계속 그 걸음을 재촉하였을 뿐이었다. 피곤한 기색 따위는 전혀 존재치 않아서 이들이 벌써 하루 종일 걷고 있음을 아는 이들이 보았다면 경악해버렸으리라. 실제로 이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는 몇몇 무림인들은 지독하게 고생하면서도 가끔 몰래 전서응을 날려가면서 이들의 행태를 조사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천류세가에서 나온 이들이었다. 그들은 이들을 관찰하면서,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기척을 숨기고 있었다. 문득 혈의인중 맨 앞에서 두번째에 선 이가 가볍게 후드를 흐드러트리면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창백한 피부, 피를 바른 듯 붉은 입술, 새카만 흑발에 준수한 생김새, 그는 잠시동안 햇빛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토해냈다. 붉은 요기를 머금은, 소름끼치는 흑발이 햇빛을 튕겨내며 가볍게 흔들렸다. 눈동자에 가득차 있던 광기와 차가운 신념이 가라앉아 있어서, 다만 깊음을 드러냈다. "교주…… 어디로 갑니까?" 일단의 혈의인들. 마교의 추적대에 당하여 이제는 일백에 조금 모자라는 인원으로 세외에서 벗어나고 있는 그들은 혈천교의 잔당(?)들이었다. 잔당이라고 말하기에는, 혈천교의 대주나 교주도 남아있어 조금 그말이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세력의 거의 대부분을 잃은 지금, 그들은 그리 강한 세력이 아니었다. 여기서 혈천교의 검수들은 단 한토막도 남지 않았고, 무엇보다 모두 다 주술대들이고, 신법이나 어느정도의 무술들만―이라고 해도 공력은 1갑자를 좀 넘은 수준이거나 2갑자쯤 되는 인물들뿐이었다.― 익힌 특수한 진언 사용자들이었다. 그러나 진언이 일단 이 인원들에게서 모두 발휘된다면 그 위력은 끔찍하도록 강력하여, 거짓 없이 산을 날려버릴 정도였으니, 꼭 약하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그 위력의 7할을 모두 대가리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수뇌만 죽는다면 그야말로 오합지졸에 쓸데없이 기이한 기술들만 익힌 바보들일 뿐이었다. "으음……" 대주의 질문에, 교주는 씁쓸한 미소를 만들어내며 가볍게 후드를 벗어 내렸다. 역시 아까 묘사한 대주의 외모와 흡사하지만 판이하게 다른, 굵은 선을 지닌 미청년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쩐지 사이한 아름다움이 존재하여 그를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붉은 기가 섞인, 피가 아닌 요기가 섞여들어 붉은 기가 나는 흑색 머리카락과 깊은 눈동자는 결코 보통 사파의 무인 따위가 아니었다. "복수는 해야겠지. 그러나…… 마교는 우리 힘으로 어찌 할수 없는 집단이 되었다. 그들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지만 우리는 그보다 몇배는 큰 타격을 입은 상태다. 그들도 최소 5년 내로 움직일수는 없을 것이지. 그렇다고 고스란히 그 세력이 보존된것이나 다름없는 천류세가를 어찌 할수 도 없다." 그의, 비관적인 말에 대주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다시 그를 바라보면서 질문했다. "……그럼 어찌해야 된단 말입니까?" "……무림맹으로 간다! 잠시 그들과 손을 잡을수 밖에. 그러나…… 동등한 조건에서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실력 행사를 해야겠지." 그의 입가에 걸린, 차가운 미소가 빛을 발한 순간. 대주는 안심했다. 그가 저런 미소를 지을때면 항상 어떤 위험이나 어려움이라도 풀리지 않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천류세가에 존재하는 은영천검이라는 검객은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는 신화경에 거의 도달하다 시피 한 현경의 고수였기에…… 어쨌든지간에, 다시 두명은 후드를 푹 눌러쓰고 나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런식으로, 혈천교의 후예들은 무림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 잔당일 지라도. 065. "혈천교라……" 영은 입꼬리를 천천히 말아올렸다. 그리고 나서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얇은 책자의 내용 물은, 먹으로 쓰여진, 깨알같은 글씨들이었다. 그리고 그 글씨들은 무림의 모든 세력에 대한 것들을 알리고 있었다. 흔히 구파 일방이라고들 하지만, 우스운 것은 예의 구파니 뭐니 하는 문파중 상당수가 천류세가와의 싸움에서 괴멸했다는 점이다. 멸문단맥滅問斷脈의 화를 피하 기는 하였으나, 세상에 그 위세를 드러낼 정도는 아닌 것이 바로 정파였다. 그러나 과거의 천류세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사파들이 연합하여 알아서 천류세가를 필두로 하여 정파와 한판 붙었기에, 그 정파나 사파의 피해는 경악스러운 것이었다. 특히 마교는 더 했다. 천류세가에 의해 한 번도 침범당한적 없던 마교 본타가 뒤집혔을 정도의 대전이었고, 그야말로 당시의 무림은 '시산혈해屍山血海'였다. 그러나 정파와 마교의 연합으로 인해 천류 세가가 무너지고, 사파들이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음으로 인해 거대한 피해를 입었던 정 도세력도 당시의 무림을 제어하는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12년. 천류세가는 너무나 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파들은 자고로 아 주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내공수련과 각기 파의 무공들을 수련해 왔으므로, 그 복구가 아주 늦었다. 그러나 천류세가는 달랐다. 이미 죽었긴 하지만, 신수사의神手邪醫 백문의 손에 의 해, 그리고 백화곡에 쌓여있던, 내공증진에 특효인 영약들에 의해 확실하게, 아끼지 않고 베 풀어 가난한 아이들중에서 어느정도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그 영걸스러운 신수로 근골을 뜯어 고치는일, 신수사의 비전의 약탕을 이용해서 몸들을 건강하게 만들고, 천천히 자신의 스승이 기록한 의서에 따라 근골을 효과적으로 '빚어'내는 수법을 시행했고, 마침내 그 말도 안되는 숫자의 초고수들을 양산해 낸 것이다. 놀랄 일이었다. 만약 무림에서 신수사의가 해낸 일을 본다면. 12년만에 그 많은 수의 절정 고수들을 양산해낸 일을 모두 알게 된다면, 혀를 빼물고 졸도해 버릴 것이다. 그 엄청난 약 재들을 얻어낸 것도 놀랍기 짝이없다. 그러나 그 일을 충성심과 오기 하나로 해내버린 신수 사의의 업적은 정사마 가리지 않고 놀랄 일이었다. 가난한 아이들을 구제하고, 고아 중에서 '가능성'을 따져 끌어오고, 풍족하게 먹고 교육시 켜 주었다. 거기에다가 멸시당하고 괜히 지나가던 성질 더러운 예의 '부르주아' 계급들을 응 징 할수 있는 '힘'까지 주었다. 당연한 충성이 마음속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천류세가 는 백문 노사의 두뇌에 의해 12년만에 일어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유능한 술책에 의해 사 업 책을 얻어 자금을 충당할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 후에 천류세가를 책임진 이 두명이 젊지만 파워 엘리트 오브 파워 엘리트Power Elite of Power Elite(?) 급의 초천재 두명이었으므 로, 천류세가의 성장은 더욱더 빨랐다. 어쨌거나 그런 세력속에서 영이 직접 교육한 암살자들이 놀랍도록 빠르게 정보를 수집하 고, 현대의 기술 몇가지―첨단 장비는 없지만, 일본의 인자들이 사용하는 수법과 몇가지 추 가된 수법들.―를 이용해 수집한 정보는 그 개방이 수집한 정보만큼의 양에 질은 그 두배 이상. 이만큼 대단한 정보통을 가진 이들은 얼마 없을 것이다. 적어도 중원의 세력에는 말이 다. 어쨌든 그런식으로 수집한 정보들의 총화가 지금 영이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덮어버린 비 책이었다. 그 표지에는 아무런 장식이나 화려한 필체로 쓰여진, 눈에 확 띄는 것 따위는 아 무것도 없었다. 다만 얇은 묵필로 '중원도, 비秘 제 일호'라고 짤막하게 쓰여있을 뿐이었 다. 그리고 영은 고개를 가볍게 저어서 그 삼단같은 머리카락을 흔들더니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 이면서 끈을 품속에서 꺼내어 천천히 머리를 묶었다. 가볍게 올려묶은 머리카락이 스며들어 온 햇빛을 튕겨내면서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금빛이 사방으로 비산해 나가면서 방 안을 말끔하게 뒤덮었다. 짙고 짙은 흑묵의 모발은 햇빛을 그대로 반사해 내기라도 한 듯, 햇빛을 반사하는 와중에는 흑색의 빛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너울거리는 금빛의 파도 속에서 영은 짤막하게 읊조렸다. "재미있군. 지금쯤…… 혈천교의 잔당들은 얼마 안있어 무림맹에 도착하겠군. 큭, 뒤집힌 무림맹의 상황을 보면서 상당히 어이없어 하겠지만…… 우리, 천류세가의 현재 힘이 어떤 것인지는 확실히 인식할수 있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천천히 밝은 방 안에서 울려 퍼지다가 사그라들었고, 곧 그는 몸을 일으켰 다. 그가 상념속으로 빠져들어가면서, 방안을 헤엄치고 돌아다니던 먼지들이 문득 허공중에 서 그 몸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의 몸 주위로 천천히 부는 바람. 실내에서는 절대 있을수 없는 바람. 느릿한 기류 가 아닌 실제의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지그시 눈을 감고 상념에 빠져든 그의 몸 주위를 흘 러다녔다. 그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심상心象은 한 인물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그 인물이 누 구인지는, 이 세계의 인물들은 아무도 알수 없을 것이다. 선연한, 밝고 아름다운 레몬빛의 머리카락을 지닌, 직업에 맞지 않는 화사한 웃음을 지닌 소녀의 모습이 그의 뇌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입가에는 자신도 모르 게 띄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 훈훈한 미소는 이 세계에 와서 얻은, 영 자신이 본래 살던 세계에서는 결코 지어보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이 세계에 와서 얻어낸 '무武'외에 다른 어떤 것들과도 바꿀수 없을만큼 가치있는 것이었다. ……본인은 결코 인정하지 않겠지만. "……" 혈의 위에 거친 천으로 만들어진, 짙고 너풀거리는 옷을 걸친 혈천교의 인물들은 성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을 제지하려던 관의 인물들은 현재 성 내가 꽤 뒤숭숭하니 어쩌니 하 는 이유를 대면서 미적거렸고, 그 탓에 혈천교의 인물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강렬한 살기를 받고 어쩔수 없이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그들이 혈천교의 잔당들의 행로가 끝난 직후 전서 응을 날렸으나, 그 전서응은 혈천교 인물들의 가벼운 술법에 피떡이 나서 사라졌다. 그들은 알까? 이런 일이 천류세가의 행보에도 있었다는 것 말이다. "……정말 뒤숭숭하군. 대주. 무슨 일인 것 같나?" "글쎄요…… 꽤 거물인 무림인 둘이 싸웠던가. 아니면 단체가 충돌한게 아닐까요. 이정도로 소란스럽다면야……" 대주의 대답에 그는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모조리 되쏘아주어 제거하면서 가벼운 생 각속으로 빠져들면서 천천히 읊조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두 단체…… 이정도로 소란스럽고, 무림인들마저 당황하고 있다면, 아무래도 천류세가와 무림맹이겠지. 두 단체가 얼마 전에 부딪힌 것 같다. 무림맹 본전에서 직접 격돌한 것 같군. 이야기를 듣자하니, 신승…… 공공 대사도 출현했다고 하네." 그는 가벼운 진언을 읊조려서 주변의 음파를 증폭시키며 말했고, 대주 역시 고개를 끄덕였 다. 그도 그 진언을 사용해서 들은 것이다. 진언眞言. 그들이 사용 하는 것은 오히려 진언이라기 보다는, 도사들이 사용하는 진언이라고 하기보 다는 오히려 서방대륙, 아스타르 대륙의 마법에 가까웠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위력은 현저 히 떨어진다. 오히려 마법이라기 보다 흑마술에 가까웠다. 그러나 전혀 달랐다. 서방 대륙의 마법사들이 마나를 이용하고, 마법어를 이용하여 마나를 정제하여 마법을 구사한다면. 이들 은 오히려 대자연에 떠도는 기를 흡수하여 사용하는 진법과 비슷하게, 기를 정제하여 술법 을 구사했다. 하나같이 아스타르 대륙의 흑마술과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었지만, 실지로 악마를 소환하 는게 아니라, 마공을 익히면 마기가 새어 나오고, 사공을 익히면 사기가 새어 나오듯이, 그 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사이한 기운은 오히려 명 계열의 암술, 영법 진언을 사용함으로 인 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효용은 암흑마법이라고도 불리는 흑마술의 효용과 비슷하였으나, 그 쓰임새는 본디의 마법과 흑마술의 혼합형태와 가까웠다. 그 형체가 없지만 등급은 구분이 되는, 조금 특이한 진언법들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서방 대륙의 성직자, 그것도 최고위 성직자들도 간신히 신의 허가를 통해 사용하는 언령마법과 비슷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성 직자의 신법과 비슷하게 연계로 사용하는 수법도 있었고, '대법'이라 하여 몇 명이 함께 모 여서 사용하는 비법도 있었다. 일전에 사용한 역성시립逆星屍立의 수법 역시 대법에 속했다. 그리고 그 많은 시체를 일으 켰으므로 상당한 힘이 소모되어 쓰러지기는 했으나, 대법이면서 소법인, 혼자서도 사용이 가 능한 것이 역성의 시립이었다. 상성이 아닌 역상성을 이용하여 강한 사기를 퍼뜨려 그것으 로 시신을 조종하는, 아스타르 대륙의 언데드Undead 개념이라기 보다 오히려 강시의 개념 에 가까웠다. 그것도 활강시말이다. "……무림맹이 왜 이렇게 뒤숭숭한지는, 가서 보면 알게 되겠지. 먼저 객잔에 들러서 피로 를 풀고 가는게 좋겠군." "예." 대주는 일부러 교주라는 호칭을 삭제하면서, 커다란 객잔을 찾았고, 곧 그들은 그 객잔에 들어서서 방을 잡을수 있었다. 사기邪氣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그들이 중원에 나와서 정체를 감출 때 사용하는, 청옥靑玉 목걸이. 아스타르 대륙에서는 블루 아뮬렛Blue Amulet이라고 불리는 호부를 이용해 그들의 퍼져나가는 사기를 차단했다. 사기와 마기를 중화하여 없애는 것이 이 블루 아뮬렛으로, 출처는 역시 아스타르 대륙이었다. 이런 것을 보고 유추한다면, 이들 혈천교의 인물들은 아스타르 대륙과 상당히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블루 아뮬렛 하나 만으로도 그들과 아스타르 대륙은 뭔 가 이어진 끈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어쨌든지 간에 하루는 금방 지나가버렸다. 어둠이 가라앉은 도시위로 차가운 침묵이 흐르 면서, 어둠에서 일하는 자들이 밤거리를 돌아다녔다. 저기 달빛을 받으며 열심히 지붕의 기 와를 딛어 가면서 휙휙 날아가는 암살자 한명은 아무래도 뒤가 급한것인지, 엉덩이를 움켜 쥐고 전력을 다해 뛰고 있었다. 아, 아무래도 아닌 모양이다. 그 뒤로 암기를 몇방 날리면서 살기를 풀풀 날리는, 청강검을 꼬나쥔 고수 한명이 있는 모양이니. 두명이 소리를 치면서 칼질을 해댄다면야 이 도시 사람 들의 숙면이 상당히 방해될 것이고, 또한 열심히 졸면서 꿈나라의 초입에 있다가 대장의 주 먹에 얻어터진 초소의 경비병이 부은 얼굴로 출동해야 할 것이므로, 이렇게 열심히 날아 다 니는 것까지는 봐주자. 칼질을 하게 되면 일단 그 소동을 묘사하는 누군가의 손가락이 빠져 버릴 것이므로, 필히 축출당하겠지만. 좀도둑 한명이 가난한 집에 잠입하여 있는 것 없는 것 모조리 털어가려다가 밤거리를 헤매 던 정의 협사 손에 기합당하고, 얻어 터지고, 고문당하고 있는, 그럼에도 의외로 조용한 도 시의 밤은 마침내 지났다. 어둡게 가라앉은 침묵 사이로, 금빛 서기 한가닥이 뿜어져 나와 어둠을 살라먹었다. 그리고 그 햇빛의 화려한 금색 서기에 움켜뜯긴 불쌍한 어둠들은 비명을 지르며 열심히 회전하고 있는 행성의 저 너머로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아침이 찾아왔다. 무림인들은 운기조식, 민간인들은 잠깨어 그날 하루의 생활 준비를 하기 바쁜 시각. 화려한 햇빛을 가리려는 듯 음침한 복장을 하고, 비록 호부를 사용해 그 사악한 기운을 중화시켰다 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음험하기 짝이없는 일단의 무리들이, 얼마전 찾아온 천류세가의 인물 들에 의해서 쪽도 못쓰고 개떡난 무림맹의 본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조금 긴장되는 몸을 움츠렸다. 강렬한 정기가 하늘을 찌르는 저 무림맹의 본단에 어떤 괴물이라도 있는지, 한곳에 십수가 닥의 정기가 몰려있어서 하늘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모 가수의 노래마냥 '비라도 내리게, 하늘을 찔러봐'라는 그 구절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정기가 문득 거두어졌다. 그들이 호 부를 사용하고 있다지만, 아무래도 확실하게 그 사기를 느낀 듯 싶었다. 어쨌든 혈천교의 인물들은 무림맹의 정문에 도달했다. 그리고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 무림 맹의 벽은 완연히 박살나 그 벽 고유의 행위를 충실히 행할수 없었으며, 여러명의 인물들이 달려들어 전력을 다해 수리하고 있었다. 저중에 농땡이를 피우며 코를 파서 그 사냥에서 얻 어낸 불결한 물건을 튕기고 있는 인물들이 꽤 됨을 미루어 보면 아마 벽이 제 역할을 다하 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일이 흘러야 할 듯 싶었다. 뭐, 무림인들이야 경공술로 훨훨 날아다 니니 저놈의 벽 놔둬도 괜찮겠지만…… 그래도 볼품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혈천교의 인물들은 한바탕 거센 풍파가 휘몰아치고 지나간 무림맹의 본단에 다시한 번 강렬한 폭풍을, 일전의 폭풍보다는 좀더 그 힘과 위력이 덜하겠지만, 하여튼 강렬한 폭풍 을 던져놓게 될 것이다. 그 끝이 비록 그들의 화합이라지만…… ……그리고 그 끝이 결코 좋지 않은 화합이라지만. 066. 그때, 막 천류세가의 인물들이 무림맹을 완벽完璧하게 '뒤집어'버리고, 마치 아스타르 대륙 에서 흔히 펍(혹은 여관)에서 주문하는 팬 케이크 뒤집어 버리듯, 혹은 동방의 파전 뒤집듯 쉽고 가볍게 뒤집고 뭉개버린 직후, 박살나버린, 처참하게도 박살나버린 여러 가지 효용 ― 기본적으로 건물이 가지는 쓸모 이외에, 침입자들에게 혼란을 유발하는 등의, 혹은 살상용으 로 쓰이는 진법 발동용. 그리고 그 외에 눈요기도 있다. ― 을 자랑하던, 아름답게 지어진. 한마디로 돈 꽤나 처발랐을 듯한 건물들의 잔해와 뿌려진 피와 시체의 다양한, 마치 시체 전시하는듯한 다양한 사인死因으로 죽어나간 시체의 잔해들 모습 위로, 매캐한 화연火煙과 비릿한 혈향血香이 뒤엉켜 흘러 다니는 가운데. 그들은 들이 닥쳤다. 아,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혈천교의 남은 잔당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때 박살나버린 무림맹의 본타에서 다섯가지 화학 반응중, 가장 격렬한 다섯 번째의 '폭발[Explosion]'로 인해 무럭무럭 피어오른 매캐한 화연의 춤과 터져나온 지독한 굉음 탓에 제국의 황제를 향한 멋들어진, 충성어린 동작으로 경례를 올려 붙이고 열심히 나팔을 불어가며 도시의 바닥을 말로, 혹은 다리로 밟아당기며 출동한, 과잉 충성심+부정부패+무식과 값만 놀라운 무기를 빗겨차고 열심히 달려온 관부의 병사들을 말한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과연 그들이 정말로 내어 건 표어. '황제폐하께 불충하고 감히 도시 내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순선한 백성들을 불안에 떨게한 악적들을 제압制壓하거나 혹은 사 살하여 도시 내에 일어난 문제를 진압한다.'가 그들의 머릿속에서 정말로 사고 작용을 하는 데 진실한 효용을 발휘하고 있었을까? 아마 9할 9푼은 아니리라. 보나마나 건수(?)를 찾기 위해, ―가령, 사실을 크게 부풀려서 뇌물을 뜯어내는 일.― 그것도 아니라면 심심해서 용맹하게(?) 출동한 것일 것이다. 실제로 금화 일천냥 상당의 금액을 무림맹에서 뜯어내 그 교섭(?)을 성공리에 마친 경비대대장은 먼저(비밀리에) 3할을 챙기고, 금화 칠천냥에서 적당히 이번에는 공식적으로 3, 4할을 뜯고 나 머지를 차근차근 배분했다. 선심 쓰듯이 말이다. 뭐, 머리 좀 돌아가는 이들은 일반병이라고 해도. 아니면 농군이라 하더라도 눈치채지 못했 을 리가 없다. 당연한 관례(아. 부정부패와 횡령은 차원을 막론하고 존재한단 말인가?)니 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휘권을 가진 대장, 그것도 처벌권까지 지니고 있는 이상. 그 처벌 권과 지휘권을 준 놈의 멱싸대기를 갈겨버리고 싶은 ―황제다.― 놈이라 할지라도. 돌았다고 개겼가는 목이 날아간다. 비밀리에 말이다. 아마도 석고에 싸여 바다 깊은곳에 수장되거나 강 물 깊은 곳에 던져지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술자리에서 가끔 비싸디 비싼 술안주 대신에 진한 욕설이라는 양념을 깃들여 대장놈을 열심히 씹어댈 지언정, 반항하다 목숨까지 날려먹어 버리는 멍청한 일을 할 이는 없을 것이다. 뭐, 가필드처럼 목숨이 7개 정도 된다면 모를까? ……이야기가 빗나갔는데,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하겠다. 혈천교의 인물들은 천류세가가 다시 일어나 득세하기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무림의 실질적 이었던 그 무림맹의 총단이 처참하게 박살나 있는 것을 보게 되고는 멍해졌다. 솔직히 습격 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그리고 오면서 풍문 몇가지와 이곳에 들러서 들은 정보 들로 인해 그 피해가 심하긴 하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이정도로 깨작나있을줄은…… 정말로 몰랐었다. 그리고 바쁘게 아작난 무림맹의 본타의 벽과 건물들을 심한건 허물고, 적당한 것 은 뜯어내고 고치고 하면서 복구중인 인물들을 보면서, 천류세가와 마교의 연합이라는 무시 무시한 세력을 정말 자신들의 복수를 통해 멸할수 있을지 하는 불안감이 넘실넘실 피어올라 마음을 잠식했다. 그러나 그들은 애써 불안감을 억누르면서 무림맹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당당하기 짝이없는 모습. 혈천교의 이물들이, 정말로 보보에 당당함을 실어 빳빳하게 까지 보이는 걸음걸이로 망가 지기 전에는 상당한 위세를 뿜어내 ― 실상은 돈을 처바르다시피한 '돈의 위세'가 7할을 차 지한다. ― 서민, 특히 돈없고 돈과 비례하는 힘 ― 실질적 무력 뿐만이 아니라, 돈을 이용 해 살수 있는 무사들이나 인맥, 특히 뇌물이 즉효인 이 제국 상층부와의 인맥 등 ― 이 없 는 소시민…… 이라기 보다 제국의 백성 ― 왜냐 하면, 시민이라는 것은 현대 서구적인, 이 른바 민주주의 지향의 국가에서 평등과 선거권을 지니고 있는, 비록 부르주아니 프롤레타리 아니 하는 재력으로 나뉘어 있는 계층이라도, 비록 부정부패로 선거마저 비리로 뜯어고쳐 버리는 나라라 할지라도 어쨌든 시민이란 그런 존재니까. ― 들을 압박하고 있었을 무림맹 으로 들어 섰다. 역시나 무림맹은 생명을 가진 생물처럼, 자신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 이질적인 기운을 풍기 는 그들을 독소로 인지하고 방어태세로 들어섰다. 가뜩이나 최근에 끔찍한 독소가 침투해 혼쭐이 났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 그들의 몸에서 풍겨나오 는 사기를 제어조차 하지 않고, 그나마 금줄이라고 할수 있을 블루 아뮬렛Blue Amulet까지 떼어버리고 무림맹에 다짜고짜 들어서 버렸으니…… 너무나도 당연하게, 개떼와도 같이 냄새(?), 아니, 사이한 기운을 읽고 달려든 날파리들 은, 모두 하나같이 협동의식을 발휘하여 달려들었다가, 가벼운 진언술, '포박'에 걸려 마혈 을 짚여버린 듯 옴짝달싹 하지 못하였고, 술사들이 아닌 혈천교의 무사들은 곧바로 비쾌하게 날아들어 하나같은 동작으로, 몸이 경직되어버린 녀석들의 목덜미를, 수도로…… 아주 경쾌하 게 끊어치듯 때려 기절시켰다. 수도에 기가 아닌 자체적인 산근에서 얻어진, 탄력이 더해진 힘만이 실렸음은 물론이다. 어쨌든간에, 아무리 정도무림과 불구대천지원수에 빙탄불상용이나 다름없는 그들이라 할지 라도, 천류세가와 마교라는 최강이자 최악일수도 있는 페어에 복수한다는 숭고한(?) 목적이 있었기에, 살인내면서 괜히 아군(?)이 될 이들의 얄팍하긴 하나, 전력을 깎을 필요는 없지 않는가 말이다. 그것은 차치하고. 혈천교 인물들의 이같은 연수합격連手合擊은 기가 막힐 정도로, 정교한 톱니바퀴 맞물려 돌아가듯 어떤 장애도 없이, 물흐르듯 말끔하게 먹혀들어갔다. 하는 행동을 보아하니, 역시 그들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익숙한 전법인 듯 싶었다. 그런데 저번에 마교와 싸울 때 이 전법을 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야 너무나도 간단하고 간단해서 하품나오는 이유였다. 그때 마교의 진법에 의해 그들의 진언술은 그 힘 을 대법이나 큰 규모의 진언술이 아닌 이상 포박술따위는 제대로 힘을 발휘할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여기서 포박술이라는 것이 공기나 기의 끈 따위로 잡아묶는 것이 아니라 뇌하수체 에 신호를 보내어서 경직시켜 버리는 수법인 이상, 광기에 젖어버린 마교의 인물들이 포박 따위에 걸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기의 망을 씌우는 진언술따위도 공력이 어쨌든 상당한 경지의 마교인들은 모조리 패도적인 마공을 퍼부어서 끊어내어 버릴 터였다. 그런 이유로 혈천교의 인물들은 술사 둘, 무인 셋으로 한 조를 짜곤 했으나, 저번의 난전에 서는 그런 것 따질 것 없이 미쳐버린 마교인들의 폭주暴走에 휩쓸려서 그 공격전술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광기狂氣에 젖은 적은 무섭기는 무서우나 일단 광기에 휘말리 지만 않으면 침착하게 상대하여 꺾을수 있다. 광기에 함께 젖어들어가면 역시 미친놈이고, 그 광기에 질려버리면 졌다고 할수 있다. 그때의 혈천교는 마교의 광기에 질려버렸다. 그래서 졌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림맹의 행정담당이자 참모격인 그는 이번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수습을 간신히 마치고 는, 정말 무공조차 변변히 익히지 못한, 어디까지나 계약관계로 무림맹에 묶여있던 그는 모 든 능력을 발휘하여 간신히 그 무림맹 파괴 대사건 이후의 수습을 위해, 뭐 빠지게 뛰어다 니다가 바로 오늘에야 여가 시간을 갖게 되었고, 그 즉시 한잠 자고, 씻고 차를 마시며 시간 을 보내고 있었다. 마음만 같아서야 당장 술병을 꿰어차고 기생집에라도 가서 기녀 한명 꾀어다가 뜨거운 하 룻밤(?)을 지새우고 싶었지만, 몸이 피로를 이기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좀 몸을 쉬어주고 나면 그 놀라운 일(?)을 할 생각이었다. 오랫동안 여자를 품지 못해서인지 몸 전체가 근질 거렸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지금 몸 보신(?)도 해야 되고, 상당히 쉬어주어야 정상적인 밤일(?)이 가능할 것 같았고, 쉬어주지 않으면 기녀에게 오히려 힘도 못쓴다고 욕만 얻어들 을 것이었기에 이렇도록 뜨거운 차를 한잔 마시면서 쉬고 있었다. '그래, 힘든 일이 있은 후 뜨거운 물로 몸을 씻고 차를 마시면서 쉬는 것. 이것이 바로 인 생의 묘미가 아니겠나!' 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찻잔을 들어올려 향을 음미하여, 약간 쌉싸름하면서도 그 향이 은은 해 정신을 맑게 만들어주는, 약한 보랏빛이 도는 자향차紫香茶의 훈훈한 열기와 향기를 만 끽하면서 목구멍 너머로 한모금 차를 넘겼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 온갖 폭발물을 이용하여, 너무나도 효과적으로, 다시 말해 치사하고도 화려한 방법으로 무 림맹을 아작(?) 내버린 '그놈들'을 떠올렸다. 사람만 죽였으면 그나마 조금 덜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빌어먹을 놈들은 듣도 보도 못한 종류와 위력의, 지금의 제국 과학 기술로는 생 각조차 할수 없는 위력의 폭발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는 무림맹의 구석구석 이곳저곳, 특히 진법이나 현혹을 위하여 지은, 화려하면서도 닮은 꼴들의 건물들만을 파괴하여 그의 골머리를 더욱 썩혔다. 하여튼 그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예의 천류세가의 인물들은 그것을 마구 뿌리고 설치 하고 불을 당겨 대 폭발을 일으켜 그 무시무시한 액수의 금전을 들여서 만들고 설계한 무림 맹 내의 주요 건물들과 진법의 중추들을 확실하고 간단하게 파괴하고, 무식하다는 소리를 백번 들어도 부족할 만큼 단순하지만, 그래서 훨씬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전술을 통해 공격 을 가했다. 치사하다고 한다면 치사하고, 현재 예의 '두뇌'들이 본다면 입에서 저절로 대단하 다는 말이 흘러나올, 역사서에 쓰여질 만큼 대단한 전법이었다. 무림인들. 물론 그들은 강하다. 특히 명문정파에서 체계적으로 교육받고있는 이들이라면야 어중간하게 심법과 무술을 익힌, 그래도 틀이 잡힌 관부의 인물들보다도 훨씬 뛰어나다. 그 리고 천류세가의 인물들은 어이없을 정도로 강했다. 그 많은 인원이 웬만한 명문의 적전제 자를 눈아래로 둘 만큼 대단했던 것이다. 검기상인을 기본으로 치는 문파라니…… 거기에다 가 현경의 고수 한명마저 보유하고 있는, 사상 초유의 문파였다. 물론 천산검파를 집어 넣으면 더더욱 놀라운 일이지만. 거의 화경에 이르른 인물들과, 화경 의 인물들 역시 상당히 많고, 더군다나 현경의 벽에 부딪힌 자들도 있고, 더욱이 그 은영천 검보다 떨어지긴 떨어져도 지나치게 떨어지지는 않는 현경의 고수마저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그 치사하고도 효율적인, 소름끼치는 전법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은영천검은 천류세가의 가주가 아니다. 그리고 이번 계책을 짜낸 것은 아마도 그와 가주일 것이다. 무엇보다 천류세가에는 참모라고 불릴만한 인물이 은영천검 외에는 존재하 지 않았다. 잠시 그때를 회상하던 그는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는 바람에 입가에 가져갔던 찻잔을 이 로 콱! 하고 깨물어 버리는 불행한 사건을 당했다. 지독하게 치아에 퍼진 신경계와 잇몸의 신경계 전체에 찾아온 짜릿한 고통을 억누르기 위해 쭈그려 앉아 끙끙거리던 그는 차라리 차를 마신 뒤에 들어와 차라리 찻물을 분무기처럼 뿜어내어 망신 당하는 것이 차라리 낫겠 다는 생각을 하고, 잠시 지금 뛰쳐들어온 인물에게 그의 기억체계에 존재하는 모든 육두문 자에 대한 기억을, 과거에 들었던 희미한 기억까지 모조리 끌어모아 대충 수십차례 퍼부어 준 다음에야 그는 자신의 이에 고통을 선사한. 직접은 아니지만 하여튼 간접적으로 선사한 버릇없는 인물을 눈에 독기를 품고 쏘아볼수 있었다. 이 일련의 행동은 설명이 꽤 길어졌으나 고작 찰나간에 이루어졌기에, 신속하고 빠른 전환 으로 보일수 있었다. 아직도 저릿한 치아와 잇몸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그는 혹시 이빨 깨지지 않았을까, 하고 걱정하며 혀를 이용해 잠깐의 탐색을 하여 치아를 구성하는 물질이 결합을 잃고 떨어져 나가지는 않았음을 깨닫자 약간의 위엄서린 눈으로 방금 뛰쳐들어온 무 례한 자를 향해 신경을 집중했다. 상당히 분노와 독기가 섞인 그의 눈초리에 찔끔한 침범자는 잠시 쫄아있다가 곧 자신이 하 려 했던 일을 떠올리고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침입자입니다!" 아주 간단한 요약에 그는 경악하며 소리높여 반문했다. "뭐라고오오오―!?" 067. 창! 차창!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이리저리 뒤엉키고, 기가 실린 검끼리 충돌하는 타격음이 은은하 게 퍼져나오는 전장, 한쪽의 혈의를 입은 이들은 소극적으로 수비를 하면서 상처입히지 않 고 상처입지 않도록 침착하게 방어를 해나가고 있었으나, 반대쪽의 청의를 입은 종류의 인 물들은 상당히 험악하게 도검刀劍을 휘두르고 있었다. "……혈뢰血雷!"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혈천교의 무사들이 각기 독문병기를 꺼내들고 뛰쳐나가 수 비적인 태세로 무림맹에 주둔중이었던 이들의 매서운 공격을 방어해내고 있을 때, 문득 혈 의 도포를 걸치고 핏빛으로 물든 나무 지팡이를 현재 자신들과 대치중인 이들을 향해 뻗고 나서 나지막한 진언眞言에 사력邪力을 싣고 주술사 한명이 공격을 가한 것이다. 그러나 무림맹에서의 살인殺人을 막기 위하여 이번 사령혈뢰邪靈血雷 - 무력화無力化의 진언은 평소보다 조금 낮은 출력이었다. 그리고 목제의 핏빛 지팡이의 끄트머리에서 사이한 영기가 피어올라 꿈틀거리면서 삽시간에 핏빛의 뇌류를 머금고 타올랐다. 그리고 그 핏빛의 번개는 파지직 거리며 방전放電하다가 무섭게 사방을 향해 퍼져나갔고, 혈천교의 무사들은 가볍게 진언을 외워 사령혈뢰술이 자신들의 몸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다만 자신의 몸을 잠깐동안 매개물로 전환시켰다. 파지직―! 그리고 혈뢰는 방금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뇌음을 남기면서 빠르게 장내를 질주했다. 그리고 그 무력화용 혈뢰에 직격당한 무림인들은 그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따끔, 하 는 감각. 그리고 몸에 뜨거움이 섞여드는, 몸 속에 불꽃이 주입된것만 같은, 비록 그 강도가 강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와 같은 감각에 몸에 힘이 아예 빠져나가버리는 것을 느끼고는 당황하여 몸에 힘을 주었지만, 곧 의식을 잃으며 쓰러져 바닥에 뒹굴면서 흙먼지로 가득한 장내의 바닥을 청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쓰러지며 파생된 물리력이 바닥에 충돌하며 쿵, 쿵 하는 다채로운 소리가 울려퍼지며 청소라기 보다는 주변의 대기에 흙먼지를 섞으면서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약 간의 호흡 조절이 필요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방금 묘사는 다만 약간의 해학성 을 담기 위한 장난질이었다는 말이다. "으음…… 더 몰려오겠군." 혈천교의 현 교주는 중얼거리면서 가볍게 지팡이를 손바닥 위에서 가볍게 힘을 실어 회전 시키다가 바닥에 파악 하고 꽂았고, 방금의 위력은 약하지만 반경 10여장 내를 뒤덮었던 무 력화 사령혈뢰술로 인해 소진된 술력이 대지의 기운을 통해 유입되어 몸에 흡수되었다. 지 금 혈의인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지니고 있는 저 혈목장血木杖은 그 제조방법도 비교적 간단 하고 효용도 좋은 물건이었다. 일단 술법으로 인해 소진된 사령력이 대지의 기운을 통해 평소보다 서너배 이상 빠르게 보 충되도록 하는 효용이 있었고, 사용자가 의식하고 진언을 가미해 주변의 기운을 흡입하면 기를 약간 다른, 사령심법으로 인해 변화된 사령력으로 평소에 놔두어 회복되는 속도보다 10배 정도 빠르게 흡수하여 전투중에도 무리없이 술법을 남발하도록 한다. 그리고 저 혈목 장을 지니고 있으면 술력의 소모가 평소보다 2할 정도 덜 소모되고, 그 강도가 잘 제련된 만년황한철에 버금가기 때문에 사령력을 불어넣고 긴급하게 방어술을 펼칠수 있다. 그리고 저 혈목장이 일단 만들어지게 되면 좋은 것이, 진언을 염할 때 그 시간이 절반으로 단축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약간 시간이 걸리는, 범위와 위력 조절로 인해 더 시간이 걸렸을 저 혈뢰술은 오히려 그저 쓰는 것보다 약간 빠른 속도로 마무리지어 방출될수 있었다. 혈목장을 만드는 방법은 그리 심하게 어렵지 않다. 21마리의, 어떤 동물이든 상관없는 21마 리 동물의 피를 받아낸다. 삼칠일과 관계 있는 것인데…… 어쨌든 21마리의 피를 받아내어 한 사발에 모으고, 응고되지 않도록 약재를 뿌려둔다. 그리고 그것을 잘 깎아 다듬은 나무에 조금씩 뿌리면서 고래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진언을 염한다. 그리고 피를 도합 49일동안 뿌 려두면 피를 흡수한 혈목장은 핏빛 광택을 띄는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 21마리의 동물을 잡고 피를 뽑고 나서 진언을 사용하여 그 영혼을 묶어두는 것이다. 그 리고 혈목장에 영혼의 힘을 묶은다음 하나하나 진언으로 천천히 죽여 그 강렬한 음념과 사 념을 혈목장에 깃들게 한다. 그리고 그 혈목장을 달빛과 햇빛이 가장 강한 시간에 3일동안 쬐게 하면 완성되는 것이다. 술사의 정성이 있어야 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상당히 까다로운 물건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 시간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 '동물의 피'가 '인간의 피'라면 그 기한은 길어져봐야 일주일로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일곱명의 피면 족하다. 그래서 그 들은 총 20개의 혈목장을 만드는데 140명 정도의 인명을 희생시켰다. ……라고는 하지만 인 구가 넘쳐나는 제국이었고, 시골 농무지렁이들을 잡아다 한 일이었기에 소문도 없었다. 그리 고 마을마다 짐승이 한것처럼 꾸며놓았기에 이 사건이 크게 대두되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의 피로 만들어진 인혈제 혈목장은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전에 설 명한바 있다. 인독이 가장 강렬하다고. 그리고 영혼을 멸하며 만들어낸 음념과 사기는 지독 하리만큼 강렬하여, 오히려 동물의 피로 만든것보다 더욱더 강한 축에 드는 혈목장이 제조 된 것이었다. 그리고 급조되긴 했지만 그래서 더욱 강력한 핏빛의 나무 지팡이는 이렇게 실전에서 유용 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물론 상징적인 의미의 빛이 아니라 핏빛의 뇌류를 머금고 타오르 는가 하면, 요기와 사기가 동시에 흐르는 빛을 내뿜기도 하며, 요기가 스며든 광탄光彈을 날 려 상대방의 호신강기護身剛氣를 파괴하고 단순히 기절로만 몰고갈 정도의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지팡이 위에서 떠오른 마광탄이 수백가닥으로 갈라져 날아가는 광경은 일순 장관이 었으며, 그것이 십수개 이하였다면야 막아낼수 있었던 실력자들마저 일단 서른개를 넘어가 자 꼼짝없이 얻어맞고 뻗는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도 그렇게 멍청한 조직은 아니었다. 이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중상자 는 없었고, 모두 한 삼일 정도 몸조리를 하면 금방 평소처럼 행동할수 있게 될 정도였고, 하 나같이 기절했을 뿐인 경상자들이었다. 물론 민간인들로서는 꽤나 중상에 속하도록 뼈가 아 작난 이들도 있었으나, 아무리 미약한 내공의 공부를 쌓은 무사라 할지라도 뼈를 붙이고 운 공조식 하여 내공을 보충하고, 운기요상運氣療傷하면서 조심조심 몸을 치료하면 아무리 늦 어도 삼일이면 뼈가 말끔히 붙었다. 운공조식하면 자동적으로 몸의 재생력이 증가한다. 그리고 확실히 임맥과 독맥, 임독양맥을 뚫어서 '대주천'이 가능하게 된다면 단 한 번의 일 대주천만으로도 몸의 회복이 끝난다. 그 리고 현경의 고수쯤 된다면야 임독양맥의 대주천이 아니라 생사현관까지 회전시키면서 몸의 모든 세맥의 뿌리에까지 고루고루 기의 파동을 전달하여 몸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다. 확실 히 무림인들은 민간인들로써는 지겨운, 영이 살던 곳에서는 다만 지겨운 벌레이고 간혹 지 저분한, 즉, 오염된 피를 나르는 무섭기도 한 벌레이지만, 이곳에서는 공포의 대명사다. 일단 불치병이라도 옮겨 버린다면…… 특히 여름에 페스트, 흑사병黑死病이라도 돌 때 쥐 의 피를 빤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빨면서 주둥이에 묻은 페스트 균이라도 옮겨버리면…… 그 야말로 공포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뭐, 무림인들의 운공조식이라는 것이 기 파동으로 몸을 정화하는 묘용까지 품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별로 무림인들은 감염될 소지가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말 나온 김에 대주천에 대해 설명하겠다. 인간의 힘으로 전신의 모든 세맥을 하나 하나 뚫고 진기를 움직여 완전한 유통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깨달음이 필요 하고 임독양맥의 타동이 필요하다. 일단 깨달음 없이 내공의 경지만으로 화경에 오르는 것 이 가능하다. 임독양맥을 타동하게 되고 대주천을 가능케 하면 진기가 스스로 움직여 화경 의 길을 여는 것이다. 일단 환골탈태하여 전신 세맥이 다 뚫린 몸이라면 검강의 시전이 자 유롭고, 그야말로 경세의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공력이 높은 이들을 동원하여 커다란 문파에서 장문의 자식들을 태어날 때 벌모 세수하여 몸안의 혈도를 타동하기 쉽게 부드럽게 풀리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영약을 아낌없이 투자하여 내공만으로도 임독양맥의 타동을 쉽도록 하게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일이던가. 아무리 벌모세수 시켜 놓았어 봐야 적어도 나이 50은 되야 임독양맥을 뚫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그것도 기재중에서 더욱 놀라운 기재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렇게 뚫 어서 실제로 환골탈태를 이루면 후에 깨달음을 얻는 것이 10배는 빠르겠지만, 오히려 깨달 음으로 환골탈태한것만 못하다. 깨달음을 얻게 되면 대자연의 기 자체가 '보다 높은 힘'을 얻게 해주고, 그 인간 자체를 신 의 길로 이끄는 묘용이 있는지라, 내공이 깊지 않아도 깨달음을 얻으면 스스로 진기를 융합 하고 움직여 삼화취정, 오기조원의 경지에 이르게 만드는 것이다. 깨달음, 그것이 중요한 것 이지, 현재 끊임없이 모순적으로 반복되기만 하고 있는 벌모세수와 영약의 사용은 진행되는 것이다. 차라리 심득 한 구절이 더욱 도움이 되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 환골탈태는 오히려 깨달음으로 얻어진 것만 못한 것이다. 일단 자기힘만으로 된게 아니니까. 이야기가 샜는데, 어쨌든 이런식으로 무림맹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고 나서 무림맹에 현재 자신의 문파마저도 신경쓰지 않고 천류세가와 마교에 의해 밥줄……(?) 아니, 자신들 문파의 맥이 절단되어 버리는 것에 대해서만 진지하게 토론하면서 힘을 모으고 지휘 체계를 확립하면서 심각함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이 정보가 전달되었고, 곧 그들은 잠시의 대화를 마친 다음 맹주가 직접 나가 그들과 대면하기로 했다. 그 결정이 내려지고 나서 고작 반의 반각 후 혈천교의 인물들은 부러 강렬한 정기를 몸에 서 물씬물씬 풍겨서, 민간인들에게는 마기魔氣 만큼이나 고통과 따끔거림을 주는 이를 바로 만나게 되었다. 사실, 마기니 정기니 해도 본질은 같다. 마교의 심법은 역행한다. 그리고 그 역행에서 역천 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그것은 한 차원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면서 나타날 때 생명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비록 그 농도와 힘이 인간이 뿜어내기에는 지나치게 약하지만 어쨌 든 기 공부를 하지 않은 이들, 그것도 꽤 깊게 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기운인 것이 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정기 역시 결코 다르지 않다. 순리를 따르는 심법으로 기를 수련 했다고는 하지만 덩어리 진, 정제되어버린 기는 더 이상 함께 호흡할수 있는 기가 아니다. 행성의 생명이 시작될 때 대기를 뒤덮기 시작한 산소만큼이나 몇몇 생명에게는 독소가 되어 버리듯, 정말 독소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물론 역천의 힘에서 새어나오는 마기가 훨씬 독하기는 하지만, 정기 역시 농도가 진해지면 결코 유익한 기운이 아니다. 마기와 정기는 서로 상극이기에, 서로가 부딪히면 자신도 모르 게 반목한다. 정파와 마교의 인물들이 만나서 성격이나 행동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이해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아니, 오히려 드물다고 해야겠지. 그래서 만나기만 하면 갑자기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미약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시비가 붙기 시작하면 그것 은 거센 살의의 파도가 되어버린다. ……다시 현실의 상황을 면밀히 살피자. 면담은 간단했다. 혈천교의 교주와 무림맹의 맹주는 서로를 탐색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서로의 힘을 가늠했다. 혈천교의 교주는 문득 혈목장을 치켜들어 혈뢰광血雷光을 머금은 뇌 력의 소용돌이를 만들었고, 은은한 뇌명음이 울려퍼지면서 자기폭풍이 천천히 일어났다. 자 기폭풍이라는 것은 정도가 심해지면 생명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물건으로써, 가령 태 양에서 플레어가 터져버리면 기계, 특히 민감한 것들은 그야말로 마비가 되어버린다. 특히 전파를 이용한 통신기기들은. 어쨌든 그런 자기폭풍 자체가 밀집되면서 더욱 혈뢰의 기운과 마주치며 더욱 강렬한 기운 을 뿜어내자 맹주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곧 그는 교주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이 검을 허리춤에서 느긋하게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느긋한, 결코 쾌검을 위한 것이 아닌 자연세自 然勢 발검술拔劍術을 본 교주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굳어졌다. 맹주는 화경이기는 했으나 검 술은 정말 경악할 수준이었던 것이다. 이 두명은 둘다 강자였고, 둘 모두 결코 꿀릴 것 없이 수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 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명은 주主라는 호칭이 붙을 만큼 머리도 좋고, 실력도 좋고, 사 람도 다룰줄 알았다. 묘한 동질감이 두명에게서 공명하고 있는 사이, 문득 맹주의 검에서 은은한, 너무나도 은은 하고 부드러워서 자칫 살상력이 없을거라고 생각하기 쉬울만큼의 최면효과마저도 가진 검기 劍氣가 반투명하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더 옅어지며 은은한 잔광만을 발하고 있 었다. 맹주의 검은 어딘가 모르게 특이했다. 바람의 향기가 나는 검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 맹주가 쥔 검의 검신에 음각된 이름을 보면,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깜짝 놀랄 것이다. 천인검天刃劍― 바로, 천류세가의 신물이었다. 부러진 천인검을 맹주가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천인검을 이은 듯 싶었다. 당시 천 류세가의 가주와 검을 나눈 끝에 그 목숨을 빼앗고 나서, 비록 동강나 버리기는 하였으나 저 바람의 풍명음이 느껴지는 듯한, 그리고 자연세가 그대로 담겨져 있는듯한, 은색이지만 동시에 푸른빛이 도는 풍아검은 맹주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렸던 것이다. 동강나 버렸 던 이유야 그 두명이 검이 버티지 못할만큼의 혼신의 공력을 실어 상대를 공격했던 것이다. 그리고 맹주는 꽤 깊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검의 자태에 마음을 빼앗기고 많은 금을 들여서 유명한 장인을 불러들여 검을 전처럼 완벽하게 복구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푸른빛이 섞인 은색의 검에서 물을 지나치게 많이 섞은 투명수채화 물감같은, 하지만 음영과 빛이 뚜렷한 은색의 영기가 피어올라 마침내 검기의 형상을 갖추자 핏빛의 혈뢰와 은색의 검기가 부딪혔다. 갑작스럽게, 느릿하게 보이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의 검 격이 날아들면서, 은색의 기운이 퍼져나갔고, 그것은 마치 은월銀月의 창백한 광망, 광휘의 파도처럼 은은하게 휘몰아치면서 어둠을 삼켜 사르듯, 부딪혔다. 무림맹주의 독문무공, 천하월영검天下月影劍. 휘輝의 장章. 월천月天이었다. 월천의 초식은 안쪽에 힘을 갈무리 하였으나 실상 부딪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다가 전 신이 가루가 나 버릴 정도로 강력한 힘을 너무나도 잘 갈무리한, 허허하지만 동시에 강한 검술이었다. 실제로 1할 정도의 힘을 투입하고 혈목장으로 그 힘을 더욱 증폭시킨 혈뢰광검 의 술이라 할지라도 저렇게 은은하게 덮어오는, 은색 달무리빛의 기운은 쉽사리 혈뢰광검을 무력화 시키면서 파도처럼 밀려갔다. 놀라운 검술. 태양처럼 빛나면서 사물을 압도하고, 그러면서도 그림자 없이 사각을 보이지 않는 놀라운 영의 무위와는 달리. 어둠을 꼼짝달싹 못하게 감추면서 자신도 모르게 은은하 게 살라버리는 듯한, 달과 완벽하게 같은 느낌의 검술이었다. 3대째 이어졌을 무렵 까지는 달을 검으로 꿰면서 날아올라 달을 갈라버리고, 자신을 달속에 가두어 상대를 유린하다는 극의의 검이라는 뜻에서 관월검貫月劍이라고도 불렸다는 검술. 달에서 파생된 그림자는 달빛과 섞여 그나마도 은은하고 부드럽다. 그림자는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어둠이지만 그림자는 빛만큼 빠르다. 모든 어둠이 그러하다. 빛은 어둠을 사른다 고는 하지만, 동시에 어둠을 만든다. 어둠은 빛과 함께 할수 없지만 동시에 함께 한다. 우주 는 명계冥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짙고 어둡지만 틀림없이 항성은 타들어가면서 지독한 빛 을 뿜어낸다. 무엇이 빛인지 어둠인지 알수 없을 만큼 아름다우면서 강력한 검술. 그것이 맹주가 익힌 천하월영검이었다. 그리고 현재 맹주는 극성까지 연마하기는 하였으나 오의마저 완벽하게 깨닫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경의 경지에 든 무인들 사이에서도 극 의에 다다랐다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충돌이 끝나고 나서 혈뢰는 어느새 다시 맹주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춤추듯, 핏빛 의 뇌류를 머금은 채찍이 팔방을 찢어버리는 듯, 지팡이의 끝에서부터 뻗어나온 뇌류의 채 찍은 빠르면서도 잔인하고 일타필도의 묘용마저 갖고 있는, 채찍의 그림자를 무수히 만들어 내어 상대를 공격하는 기존 무림의 편술과는 또 다른, 오히려 무기의 혈뢰의 힘을 이용하여 만든듯한 채찍의 공격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그리고 맹주의 검은 다시 움직였다. 천하월영검. 참斬의 장章. 참월斬月. 이전과는 다르게 마치 대나무를 가볍게 휘었다가 튕겨버린 듯 매섭게 뿜어져 나가는 검은 부드러운 원융의 회전을 머금고 있어 부드럽게 검무를 추며 뿜어낸 듯 하였으나 그 속도는 비쾌. 그 자체였다. 은색의 검기, 검강도 아닌 검기가 저 강력한 혈뢰의 채찍을 수직으로 갈 라 말 그대로 분절시켜 버렸고, 곧 무림맹주와 혈천교주는 서로 웃음을 나누면서 힘을 거두 었다. 그리고 두명은 손을 맞잡았다. 힘을 나누면서 두명은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모두 나누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빠짐없이 천류세가와 마교로 넘어갔다. ……역사에서 증명하듯, 어쩌면 검과 폭력으로 정의된 모든 것들은. 축복이자 저주라고 할 수 있는 검과 마찬가지로 역시 축복이자 저주인 말과 글보다 훨씬 소통이 빠르고 직접적이 며 오해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싸움이 오해해서 파생되기도 하지만. 068. 유입流入. 역사상 탄생한, 무림에서 탄생한 어떤 현경의 고수보다도 상수에 들고, 너무나도 젊은 축에 속한다는 은영천검의 검술강의. 그것은 천광대들에게는 계속 되어왔다. 어느 정도의 구타를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 유입될 인물들에게도 가해질(?) 것이다. 벌써 천류세가가 무림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지 1년 만에 손상된 인원들을 보충하기 위하여 영의 교육에 의해 그 안목이 뛰어난 암살, 정보 수집 등의 능력과 검의 훈련 역시 함께 받은 정보부(?)에서 그 선별을 맡고 제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단 삼백에 달하는, 근골과 오성이 뛰어나 보이는 아이들을 은밀하게 납치해 왔다. 삼백. 적은 숫자로 보이지만, 일단 그들이 검기상인劍氣傷人이 평균 기준인(정말 터무니 없이 높 다.), 그래서 끔찍할만큼의 수련과 공포에 가까운 훈련, 그리고 정말 까마득해 보이는, 너무 도 까다로운 점수를 얻어야 입단이 가능한 천류세가의 알려진 대대. 검기상인이 일단 능숙 해지고 칠팔장을 우습게 경공으로 도약하는, 서방대륙에서는 소드 익스퍼트Sword Expert 최상급에 달하는 천광대天光隊에 입대(?)가 가능하게 된다면…… 그것은 천류세가의 힘이 한층 더 보강된다는 점이고, 손실된 인원들이 다시 보충된다는 뜻 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사실은 그 막 들어온 애송이(?)들의 훈련을 위해 한층 더욱 그 사악 독랄이라는 칭호가 붙기에 모자람이 없는 지독한 훈련과 그 악몽의 훈교검이 한층 쾌속하고 강력하게 휘둘러 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어쨌든 천광대원들이 검기상인이 기준이라고는 하지만 수준차가 심각하다. 최하는 경 공이 부족하고 검에 대한 기교 역시 부족하고, 검기상인만 간신히 해낼수 있는 수준일 경우 였고, 최대로 강한 천광대원이라면야 앞으로 십여 년이면 충분히 화경에 오를 정도로 강했 고, 그만큼 트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천류세가는 20년이면 1류고수. 정말 작심하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 저승의 문턱까지 왔다갔다 하게 하는 아슬아슬한, 영과 운의 합작훈련이 이어진다면야 10년이면 1류고수를 빵틀에서 찍어내듯 만들어 낼수 있는 괴수조직(?)이었다. 일단 공개적으로 제자를 받아들이 지 않은 이유는, 천류세가가 지독한 대문파이기도 한 이유였지만, 첩자가 들어와 버리게 된 다면 그야말로 골치아픈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럼 하인들은? 이라는 말이 나올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걱정없다. 신화경의 고수가 아닌 바에야 영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영의 사이킥 파워와 결합되어 무의 극한에서 생겨난 감과 의지의 확대가 섞이고, 심안이 겹쳐진다면야 설마 신화경의 고수라도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지 않으면 정보 빼내기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일단 이번에 천류세가로 유입된 아이들은 대부분이 가난한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실제 로 천류세가에서는 일단 '먹을 것'이라는 본능적이고도 간단한 것을 제공하여 환심부터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단 영이 가식적이지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가볍게 시찰하자(…) 얼라들은 넋이 나가버렸다. ……미인계라면 미인계이겠지만, 영은 그 후로 기분이 상당히 나 빠져서 줄줄이 피어오르는 분노의 오오라에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에 질리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과 정보부(?)의 면밀한 조사에 의해서 아이들은 이 광대한 대륙덩어리에서 고작 삼백명만이 조심스럽게 뽑혔다. 고아이거나, 부모님이 예의 무림인들이나 기타 등등 직업을 가진 놈들에게 칼맞아 죽어 복수심에 불타고 있는 아이들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대부분 낮은 계층의 아이들이었다. 먼저 돈이라는 개념에 의해 대부분의 고아들과 낮은 계층의 아이들은 훌러덩 넘어왔다. 음 식은 사전 포석일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힘이라는 것이 주어질 것임에야 모든 아이들이 동 조할 수밖에 없었다. 평균 10세 정도의 아이들이었으나 대부분 그 오성과 정신 수준이 상당 한 아이들을 뽑아왔기에 그렇게 술렁이고 시끄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일단 이 나 이의 아이들은 상당히 치기가 있었고, 특히 무림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 영은 그 무림에 대한 환상부터 깨어버렸다. 첫날 강의부터 체력훈련이 아니라 무림에 대해서 알려준 것이다. 예의 무림인들의 생활에 대해 개념을 처음부터 끝까지, 노골 적으로 낟낟이 훑어 알려주었고, 천류세가의 인물들마저 상당히 기분이 상할 정도로 그것은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이었다. 예의 무림의 더러운 약속들, 당연히 승인되는 피 의 약속들과 그 첫 출발부터 내뱉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수긍하는 눈치였다. 쓴맛씬맛 다본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고생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을만큼 아이들은 그게 어쨌든지간에 일단 실제적인 무력과 권력 이라는 수단에는 넘어오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영이 의미심장하게 덧붙인, '복수'라는 달 콤한 열매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는 다시한번 가슴속에 가두어진 차갑게 가라앉았지만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그 불길에 다시한번 그 열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수련은 시작되었다. 그들은 좌공부터 배웠다. 영이 처음부터 일단 좌공을 가르친 것이다. 일단 공력이 조금씩 쌓이게 된다면 그 후부터 무에 대한 개념을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줄 생각이었다. 자신이 아 는 극한의 무까지, 물론 그 위력과 효과, 그리고 어떻게 해야 얻어나갈수 있는지 대략의 개 요까지만 알려줄 생각이었고, 그나마 그것도 매우 꼽고 꼽아 '언젠가'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환상을 심어 지독하게 강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영은 그 좌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자연의 힘과 자신을 융화하여 의지를 자연에 합치시킨 다음 천류세가 주변의, 약동하며 흐르는 대자연의 기운이 묶인 영혈의 짙은 기부터 모조리 끌어와 거의 대륙의 반에 달하는 거대한 기운을 천천히 이곳으로 몰아왔다. 물론 잉여(?)된 기들을. 고여서 오히려 독이 될만큼 강한 기운들을 천천히 불러오면서 그 아이들의 주변에 조금씩 중첩시켰고, 곧 아이들은 평상시 익히는 좌공의 효과보다 몇십배는 빠르게 기를 느 끼고 부드러운 기의 흐름을 단전에 쌓아갔다. 웬만한 영약을 퍼먹어서 몸의 곳곳에 기운이 쌓이는 것보다도 빠르게 영이 불러들인 기들 은 지독한, 한 번에 유입하면 그 자리에서 폭사해 몸이 육편이 되고 분자단위로 저 멀리 날 아가 버릴 만큼 강렬하여 미약하게나마 기를 느낄수 있는 무림인들이라면 경악에 경악을 거 듭하며 대자연과 융화된 거대한 기운의 지휘봉마냥 되는듯한, 무형의 영기의 창이 찌를 듯 솟아오르는 천류세가를 바라보았다. 영마저도 기진맥진할 정도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 기운들은 다른 무림인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차곡차곡, 고작 한달의 좌공으로 십년공력이 쌓일만큼 빠르게 아이들의 몸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그리고 공력이 꽤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천광대원들을 강제로 끌어 다가 아이들 틈바구니로 던져놓고 그 기운들을 빨아들여서 공력을 보충하게 하기도 하면서 운은 지루하게 영의 주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쨌든 영이 생각한것보다 훨씬 빨리 아이들은 단전에 묵직하게 쌓인 기운들을 통제해 나 갔고, 삼백명의 아이들이 빨아들이기 시작한 대자연의 잉여 기운은 점점 동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삼개월이 흘러갔다. 그 사이 무림맹의 분위기는 무림맹과 천류세가의 가벼운 (?) 충돌로 인해 급속냉각된 상태였다. 그래서 영은 이런식으로 일단 세력부터 보충하고 보 자는 마음에서 이런 일을 시작했고, 피곤하기는 했으나 해야 할 일이었다. 삼개월, 삼개월간 아이들은 좌공만으로 삼십년 공력이라는 웃기지도 않을 만큼의 강대한 힘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곧 영은 자신이 만들어낸, 북명천지조화심법의 옛 버전(?)인, 북명 신공의 보완판만을 가르쳤고, 곧 아이들은 혈도를 천천히 뚫어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지옥같은 훈교검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쩌면 영과 운은 이 순서만을 가장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이들은 지옥같은 훈련속에서 점차 날카로운 검으로 자신을 가다듬어갔다. 어느날 마교에서 전서응이 날아들어왔다. 허공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갈빛 날개를 펼쳐들고 오만한 눈초리로 날아오던 비응의 강렬 한 눈빛은 천천히 순종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지독하게 강렬하지만 포근하고 자연과 동화되 어 버린듯한, 묘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강자는 하늘의 왕이라는 이 비응마저도 굴복시켜 버 린 것이다. 푸드득― 곧 비응은 보호대조차 없는, 들어올려진 가녀린 팔에 착지했다. 그러나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팔은 미동조차 없었고, 그 날카로운 발톱은 옷자락도 뚫지 못했다. 곧 비응을 팔에 묶어둔 누군가는 부드럽고 맑은 미소를 입가에 피워올린다음 비응의 오만하게 치켜든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리고 비응은 가볍게 날개를 치다가 그의 어깨로 자리를 옮겨 서 부리를 그의 머리에 부벼댔다. 곧 훗 하고 웃은 그는 비응의 다리에 묶인 작은 통을 열어서 마개를 딴다음 돌돌말린 작은 종이를 끄집어내 깨알보다는 조금 큰 글씨, 그나마도 암호문으로 작성된 그 글씨를 한 번 보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두뇌로 그것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곧 그의 입에 씁쓸한 미 소가 입에 피어올랐다. 자조적이면서도 흥미가 깃든 그런 미소였다. ……그리고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리고 그의 붉은 입술이 열리면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일견 가느다란 목소리 였지만, 상당한 자신감이 포함되기도 한. 그런 목소리였고, 어쩐지 냉소적인 느낌이 깃든 목 소리는 허공에서 소리를 조합해내어 이런 뜻이 담긴 말이 되어 주변을 울렸다. 물론 그 소 리는 지나치게 작아서 무림인들도 감지하기 힘든 공기의 떨림을 주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물론 혼잣말이었다. "……고전적이지만, 이보다 확실한 전법도 별로 없지." 그렇게 말한 그는 곧 입가에 푸근한 미소를 띄워올리며 공력을 운용해 그 얄팍한 종이에 그것을 불어넣었고, 종이는 순식간에 불타올라 너무도 가느다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삼매진 화의 공부였다. 그것도 깔끔하기 그지없어 찰나지간에 종이는 그 형체를 찾아볼수 없었다. "월영月影아." 곧 비응은 그가 자신에게 붙여준 이름이 들려오자 고개를 갸웃 하면서 날개를 천천히 흔들 었다. 그는 곧 입을 열었다. "……조금 더 수고해 주어야 겠구나." 비응은 주둥이를 가볍게 벌렸다가 닫으면서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그는 웃으면서 비응의 몸을 손으로 가볍게 잡아서 몸 앞에 가져온다음 가볍게 끌어안으면서 날개를 쓸어주었다. 비응은 여전히 순종적으로 그의 몸에 부리를 가져가 부벼댈 뿐이었다. 곧 그는 방안으로 들어가 빠르게 붓을 들어 무언가 암호문을 통해 그것을 작성하고 묘한 문양을 그린다음 곧 그것을 돌돌 말아 아까 마개를 땄던 작은 통에 그것을 밀어넣고 다른 마개를 끼워 돌려 단단히 닫은 다음 가볍게 그 위에 깨알같이 직인 비슷한 것을 그려넣고는 비응, 월영의 다리에 찬 끈에 그것을 돌돌 말아 단단히 묶고 이중으로 감아 숨긴다음 곧 월 영의 날개를 툭툭 쳐주다가 천천히 바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손을 들어 비응을 뛰어보냈다. 충분한 탄력을 얻은 비응은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면서 쏜살과도 같이 날아갔다. 그리고 문 득 아래에서 핏기가 주르르 흐르는, 소라는 포유류의 생물의 부드러운 살코기 부위의 덩어 리가 쏘아져 올라와 정확하게 비응의 앞에 도달했고, 익숙한 듯 비응은 그것을 덥썩 물어 잘근잘근 씹어 꼴깍 하고 삼켜버렸다. 밑의 인물이 쏘아보낸 모양이었다. 그리고 비응은 태 양을 지고 날아갔다. 푸른 하늘 위로 빙빙 도는 갈빛의 원은 다시 선이 되어 저 먼 세외로 날았다. 069. 응락전鷹落殿. 마교 본단의 응락전. 비록 이곳이 마교의 본단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나. 그것을 어느 누가 보더라도 '아, 이곳 이 마교구나'하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흔히 멍청한 정파의 바보들이 생각하는 음침하고 사악한 분위기 물씬 풍기는 그런 장소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곳 응락전은 말 그대로 비응 떨어지는 곳. 즉, 전서응이 서신을 다리에 매고 날아와 안착하는 장소이다. 그리고 통에 쓰 여진, 특별한 방법으로만 그려야 하는 특수한 인의 모습으로 그 중요도를 판단하고, 마교 내 의 '받을 이'에게 보내진다. 그리고 그것을 분류 하는 것은 어느 누가 서신 내용을 후에 빼돌려 버리면 위험해 질수 있 다. 특히 그 서신의 내용이 마교의 존망을 좌우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이 응락전의 담당자가 만약 서신 내용을 은밀하게 바꿔치기 할 경우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대사건이 일어 날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애꿎은(?) 무림에 혈풍이 불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그 담당자는 정말로 마교에 충성하는 인물 외에는 어느 누구도 맡지 못한다. 특히 이곳의 담당자는 어렸을 때부터 세뇌교육을 받아 '교주'라는 직책이라면 바뀌어도 충성하게 주입식 교육을 받는다. 다른 차원 모 나라의 끔찍하기 짝이 없는 주입식 교육의 효용은 다른 차원에 칼의 법칙이 날뛰는 곳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어쨌든 그 누군가. 은영천검이라는 별호를 가진 누군가의 손에서 날아오른 비응은 며칠동 안 푸르른 무림의 창공을 가로질러 마침내 마교의 본타가 있는 장소의 응락전으로 제지 없 이 날아들었다. 밑에서 마기를 풀풀 날려올리는 인물들이 면밀히 살핀다고는 하지만 저 드높은 창공에 스 며들어 날고 있는, 비록 갈빛의 날개를 푸드덕 거려서 청각에도 시각에도 모두 감지된다고 는 하지만, 어차피 비응에는 관심조차 없는 것이다. 물론 시덥잖게 심심하다 못해 돌아버려 서 감히 응락전으로 가는 전서응을 향해 내공실은 암기를 날려버리는 놈도 있었지만, 그런 놈은 바로 마교의 지하에 존재하는 지옥전으로 잡혀가서 한달동안 죽지도 살지도 못하며 폐 인이 되어 버린다. 마교의 지옥전주는 고문계(?)에서 대부로 불리는 인물로써, 그 절묘하고 고명한 고문 실력 은 한 사람을 일주일 내내 신경계통의 감각에는 손상 없이 지속적으로 적응조차 되지 않는, 마치 불도적질 하다가 들켜서 간을 매일같이 뜯어먹히게 된 프로메테우스가 받은 형벌보다 더욱더 강도높고 짜릿한 느낌을 계속 줄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평상시에 졸면서 하 는 정도의 고문이라면 대체 얼마나 끔찍하고 놀라운 고문 실력을 갖고 있다는 것인가. 정말 신비의 인물(?)로써, 마교 내에서도 교주나 최상층부 외에는 얼굴조차 알지 못하며, 그 내력 은 교주만이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지옥전주의 후계…… 역시 피도 눈물도 없이 사람을 멀뚱멀뚱 바라보면서 메저키스 트, 일명 피가학성 도착증 변태라고 분류되는 종이라면 즐겁다 못해 폭주하는 느낌에 그대 로 뻐드러질 정도의 고통을 줄수 있도록 아주 잘(?) 키워지고 있었다. 과연 정말로 체계적 이고 내용도 정상인이 바라본다면, 특히 학자 지망의 인물들이 바라본다면 감탄사를 낼만큼 좋은 교육을 받고 있을까? 어쨌든 비응은 창공에서 빠르게 대각선으로 응락전을 향해 내리꽂히다가 문득 퍼득 하고 날개를 한 번 쳐서 공기를 때려 솟구쳐 올랐다가 천천히 속도를 늦추면서 하강했다. 그리고 곧 비응은 지친 날개를 쉬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이곳 마당 위에 세워진 수많은, 새가 앉기 에 딱 좋은, 우리는 없지만 하여튼 땅바닥에서 솟아져 나와 옆으로 가볍게 갈라져 홰의 형 태를 하고 있는 기둥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수의 비응들이 형형색색의 깃털과 날렵한 몸체를 뽐내면서 깃 손질을 하던가, 아니면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 홰에서 뻗쳐 나온 작은 쇠 그릇에 담긴 고기를 쪼아 삼켜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임무를 훌륭하게 마친 비응 역시 그곳에 안착하여 일단 식사부터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비응에게 마치 비응이 반응 할 사이도 없이 놀랍고도 섬전과도 같이 날아온 간편한 복장의 인물들은 빠르게 양손을 뿜 어내 비응이 가진 신경 반사속도의 몇배나 되는 빠르기로 쾌속하게 통을 떼어내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독한 신법이었다. 그리고 이 지독한 신법은 응락전의 전주가 여기서 일하는 이들을 죽살 나게 패면서 훈련시키고, 훈련을 시키면서 천류세가에 존재하는 훈교검보다 더 한층 깊은 세월의 흐름을 빨아들이며, 그리고 그와 동시에 피를 빨아들이며 성장한(?) 극極 훈교검을 어깨에 턱 걸쳐메고 강조한 '빠르고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한다.'라는, 현대인들이 들었다면 '오, 이 시대에도 쾌속한 정보가 중요한 것인가!'하고 감탄성을 발할지도 모르는 말 덕분에 빨라진 신법이었다. 이곳 응락전의 인물들은 그래서 신법 하나만큼은 거의 화경 이전의, 화경도 아니고 그렇다 고 아직 화경 이전도 아닌 인물들이 펼치는 신법에 근접할 정도로 빨랐다. 아니, 그보다 좀 더 뛰어나면 뛰어났지, 모자라지는 않았다. 그 무력이 신법 훈련에 죽어라고 매달리면서 조 금 줄어들기는 하였으나, 신법과 더불어 응락전주가 두 번째로 강조한, '정보를 탈취당하지 않기 위한 훈련을 게을리 하면 안된다.'라는 말에 의해 그 무력 역시 거의 유지되다 시피 하 고 있고, 오히려 조금 더 느는감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마교 내에서 흐르는 풍문이자 상당히 높은 가능성을 지닌 말은 '마교 내 최강고수 들의 모임은 혹시 응락전의 인물들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교주마저도 그 소리를 듣고 '으음!'하고 신음을 흘렸을뿐, 별로 반응이 없어서 오히려 더욱 소문이 신빙성을 지니게 되 고 만 것이다. 여기서 잠깐. 비응들은 어떻게 마기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응락 전의 인물들은 이 정보를 분류하는 일과 정보의 수집을 위한 수단으로 마기를 차단하기 위 하여, 호부를 차고 있었다. 마교 내에서도 그 제조 방법이 극비 사항이고, 또한 기껏해야 일 천여개 만들어져 몇몇 집단에만 배포되어 있었다. 혈천교의 사기 차단용 아이템, 블루 아뮬 렛과도 비슷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가느다란 은실과 작은 푸른색 수정조각으로 단 순하게 만들어져 이곳 인물들의 팔목에 장식되어 있었다. 저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상당히 소녀틱한(?) 아이템들을 팔목에 차고 있자니, 혹시나 몇몇 모르는 이들은 가끔 저들이 중원에 나갔을 때 간혹 '저것은 혹시…… 나이어린 소저들과 비 밀리에 돈을 주고 사귄다는 원조교제시 얻은 정표?'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주변의 일에 무감각한 인물들이었으므로, 그 즉시 은근슬쩍 빠져 나오거나 조금 다혈질인 경우 악마같은 전주에게 단련된 무공을 가볍게 선보여 그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지는 자들을 떡을 만들어놓고는 했다. 그래서 무림에서 그 호부를 차고 있는 이들을 간혹 보게 되면 감히 그들의 얇은 신경 건드 리는 언사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스슷― 0.1데시벨이라 주저없이 말할수 있을 만한 소리를 내면서, 그러면서도 그 속도는 인간이 육 신을 그저 단련해 낼수 있는 한계속도를 서너배 이상 넘고 있었고, 그런 속도로도 기척 한 점 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렇게 왼손에 작은 통을 쥐고 그림자를 넘나들며 쏘아져 움직이 는 인물은 단연코 응락전의 인물이리라. 일단 응락전 내에 들어서면 쥐죽은듯이 조용하여 볼일이 있는 무사들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껴야 한다. 이놈들이 평상시에도 전주의 명령에 따라 '생활화! 생활화 해랏!'이라는 명령에 따라 이렇 게 기척한점, 숨소리 조금도 없이, 쉴새없이 움직이거나 아니면 나무 위에 몸을 슥 숨기고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싸늘한 안광을 번뜩이며 입가에 상당히 서늘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경 우가 많은지라, 응락전은 어쩐지 모르게 분위기가 살벌했다. 그러나 응락전이 아무리 쥐죽은 듯 조용하더라도 정말 사람들이 없는게 아니다. 쉴새없이, 말마저도 전음으로 확확 튕기면서 날아다니듯 움직이는 탓에 응락전은 쉴새없이 바쁜 듯 보 였지만 실상은 너무 업무 진행이 빨라 전주에게 보고하는 시간 외에는 그야말로 하릴없이 뛰어다니면서 신법 훈련하는 시간이라는 것이 정확하겠다. 비응이 날아들자 마자 순식간에 통을 떼어내고 다시 사라져 버리는 바에야…… 오죽하면 이곳에 날아든 비응들은 식사가 끝나고 텅 빈 쇠그릇을 바라보며 아쉬워하고 있 을 때 갑자기 부드러운 바람이 확 지나가고 나서 어느새 다시 채워진 쇠그릇을 보는 일이 허다했다. 그리고 그러면서 신참 비응(?)들은 간혹 스트레스를 받아 원형탈모증에 걸리는 일까지 있었다. ……그리고 원형탈모로 인해 떨어져 내린 깃털마저도 잡아채며 지나가는 응락전의 인물들 탓에 비응들은 더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어쨌든 그렇게 왼손에 서신이 든 통을 쥔 사내는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나가면서 문득 딱 하고 멈추어 신형을 드러냈다. 그러나 곧 그마저도 스슥, 이라는 의성어가 어울릴듯한 움직 임으로 신형을 감추었다. 그리고 곧 이곳 응락전에서 그나마도 조금 큰 문이 천천히 열렸고, 곧 사내는 그곳으로 스며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자 마자 지독하게 빠르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검기劍氣를 머금고 날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공기를 가르며 소리조차 없이 일정한 방위를 점하며, 웬만한 고수가 아닌 한 피할수도 없을 만큼의 속도로, 응락전의 인물들도 질릴만큼의 속도로 날아왔다. 그러나 사내 는 익숙한 듯 곧 자신이 익힌 보법중 선월보先月步를 가볍게 밟아 너무나도 쉽게 그것을 회 피해 버렸다. 총 일곱 개의 암기는 칠화표우七花票雨라는, 웬만한 무림인들은 정파사파 안가리고 펼칠수 잇는 수법으로 쏟아져 들어왔는데, 그것이 묘하게 변질되어서 지독하게 빠르고 잔악하게도 전신의 혈도를 점하고 쏘아져 들어왔다. 게다가 어디로 피한다고 해도 피하기가 상당히 어 려워 보이도록 묘하게 푸른 검기를 머금은채 떨림까지 보이면서 날아왔던 것이다. 소리조차 없이 지독하게 빠른 속도로. 하나는 왼쪽 어깨의 신경을 정확하게 끊으려고 푸른 검기를 사영射影을 그리며 쏘아져 왔 다. 그리고 순서대로 오른쪽 어깨, 무릎 관절 양쪽, 심장, 우측 폐, 미간眉間을 노린 것이다. 놀랍도록 비쾌하고 간단하면서도 살기까지 품은 암기투척이었다. 그것도 완벽한 검기상인劍 氣傷人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암기에 검기를 불어넣고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집어던진 것이다. 놀랍게도 날카롭게 느껴지는 암기는 하나같이 소나무의 침엽이었다. 비록 활엽수의 잎사귀를 적엽상인의 조화로운 내공통제로 날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나무의 침엽이라고 쇠침처럼 날리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검기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날아오는 것이, 이 칠화표우의 시전자는 거의 화경에 이 르른 인물인 듯 싶었다. 하지만 선월보를 밟은 이도 정말 놀라울 정도로 쉽게 이 까다로운 암기법을 피해냈다. 일 보 일보가 부드럽게 구름 위를 스쳐가듯 빠르게 움직였고, 순식간에 날아온 순서대로 피해 버린 것이다. 쏘아진 순서와 도착한 순서가 정반대였지만, 그는 그것조차 읽어낸 것이다. 먼 저 왼쪽 어깨의 것은 가볍게 몸을 숙이는 것으로 스쳐가도록 한다음 바로 춤추듯 왼쪽 어깨 를 앞으로 내밀어 오른쪽 어깨를 노리는 것을 피했다. 그리고 동시에 쏟아져 들어오는 무릎 관절 관통용 암기는 가볍게 벌린 다리를 바싹 모으고 호신강기를 약간 짙게 함으로써 여파 까지 막아냈다. 그리고 어정쩡하게 서있다가 바로 철판교의 신법을 이용해 누워버렸고, 곧 그는 자신의 몸 위로 지나가는 세 개의 푸른 검기를 바라보다가 다시 발딱 일어났다. 그리고 박수소리가 문득 들려왔고, 그는 곧 고개를 숙이면서 입을 열었다. "전주님을 뵙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전주로 보이는, 시커먼 두건과 경장을 걸친 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 사를 받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는 중년의 그것으로 굵직했다. "무흔無痕 일호답군. 흐흐흐…… '시도때도 없는 공격'을 벌써 완벽하게 통과하다니.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군. 흐흐흐……" ……누가 마교의 인물 아니랄까봐, 일부러 웃음 사악하게 내는 티가 역력했다. 무흔은 그것 을 알면서도 웃음을 참으면서 최대한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 당문에서 사용했다는 만천화우滿天花雨를 본따서 응락전주가 개조한 신新 만천화우를 맞고 죽음으로 갔으리라. 강기剛氣가 충만하게 깃든 암기 난무亂舞는 전주의 필살기였다. 그런데 통과한데 대한 칭찬이 그 내용임에도 '마지막 단계'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무흔이라 고 불린 이는 몸을 움찔 떨었다. 그러나 곧 고개를 흔들어 몸을 휘감은 공포를 떨친 다음 손 에 든 통을 전주에게 날려보냈다. 전주는 그것을 턱 하고 받은 다음 뚜껑에 정밀하게 그려진 모양을 보고 표정을 굳힌 다음 곧 무흔에게 그 통을 다시 던졌다. 이어 전주는 품속에서 금박을 꺼낸다음 그곳에 붉은 기운이 든 먹으로 인을 그려내고 나서 은색의 먹으로 친전 어쩌구저쩌구 하는 내용을 써넣었고, 공력을 이용해 가볍게 덥혀(?) 습기를 날려 통과 표징을 급조했다. 그리고 무흔에게 그 얄팍한 금박을 집어 던졌다. 손바닥 위에 간신히 올라가는 크기의 금표를 받아든 무흔은 전주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바람처럼 흩어져 사라져갔다. 전주의 명령은 이러했다. "교주에게 전해! 교주 친전이다!" 달랑 이것뿐이었으나, 무흔은 적응이 된 듯, 그저 신법만을 전개해 사라졌을 뿐이었다. 그 가 가진 표징이 있으니 교주를 직방으로(?) 알현할수 있을 것이므로, 교주의 주위를 엄호하 고 있는 무리들과 충돌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천류세가와 마교의 수뇌 사이에 오간 짤막한 서신, 그것에 적힌 내용에는 무림에 혈풍을 일으키기에 족했고, 무엇보다 지독히도 큰 파장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런 일이 고작 전서응으로 오갔을 뿐이니…… 세상일은 정말 알기 힘들다. 전서를 통해 논의한 내용이 무림에 드러나게 되는 것은 정확히 일년 후였다. 그리고 그 일 년 후, 지독히도 많은 피를 대지는 받아들이게 된다. 검붉게 물든 대지 위로 핏빛 석양이 내 리는 일은, 오랜기간 계속될 것이리라. 천류세가의 검이 그 단단한 검집의 봉인에서 풀려나오며, 그 예리한 날을 세상 전체를 향 해 겨누며 피를 갈구하고 있었다. 070. 작은 복수의 시작. 살수집단殺手集團. 무림에는 수많은 살수 집단들이 있다. 2, 3류들이 모여있는, 그야말로 그냥 뭉쳐만 있을 뿐 이고 모임으로써 인해 생겨나는 효용따위조차 얻지 못하는 하류 조직들이 있는가 하면, 유 명하면서도 실력 좋고, 실패한 적이 거의 없다는 암살의 첨단(?)을 달리는, 정보, 암살 외 에 기타 등등의 몇 개 임무 달성 따위도 함께 받아서 부수입도 짭짤하고, 이름이 알려지다 보 니 더욱더 많은 의뢰가 들어와 배를 불리고 있는 일류 살수 집단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류 살수 집단 중에서도, 그리고 그 살수 집단 가운데서도 인정하는 한 집단 이 있었다. 은월천銀月天이라는 집단으로, 삼백의 살수들이 포함되어 있고, 그 삼백의 살수 들 하나 하나의 실력은 모두 최상급으로, 수많은 정파명숙에서 사파의 마두까지 명부첩에 밀어넣고 기어이 척살해 버린 전적이 있다. 그리고 그런 집단에 갑자기 누군가 비밀리에 접선을 했고, 수십명을 암살해 달라는 의뢰를 했다. 그 의뢰는 가격도 고만고만한 인물들 ―물론 그럭저럭 이름 날리는 녀석들이지만, 은 월천에서는 불가능할 것도 없는 인물이다.―을 암살할 때 주어질 정도의 액수에서 두배 이 상을 지불하고 있고, 비교적 난이도도 쉬워서 요즘같은 불경기(?)에는 그야말로 짭짤한 의뢰였다. 그런데 그 의뢰는 너무나도 특이한 점이 있었다. '아혈을 점해서라도 대상물에게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고통 끝의 죽음을 선사해 달라.'는 추신이 붙 은 것이다. 신용도 좋고, 실력도 좋은 은월회 였기에, 이 이상한 의뢰라도 군말없이 접수해 서 그대로 시행할 참이었으나, 의문이 생기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은월회에서는 은잠술이 뛰어난 이를 접선자 뒤로 딸려보냈다. 자칫하면 신용을 잃어버릴 짓이었지만, 이번 암살 대상들은 고만고만한 이들이라도 꽤 이 름이 알려져있고, 대거 살상될 경우에는 꽤 큰 반향을 일으키기에 족한 인물들이었다. 그리 고 그 인물들의 과거를 조사하면서 조심스럽게 그 접선자, 무공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온 몸을 시커멓고 하얀 천으로 휘감아 싸맨 그에게 추적자를 딸려보낸 것이다. 그리고 은월회 에서는 결과를 기다렸다. "제길……" 영은 몸을 휘감은 시커멓고 새하얀 천, 치렁치렁한데다가 걸리적거리기까지 한 천이 가뜩 이나 짜증나는데 조금씩 풀어지면서 흘러내리자 신경질 적으로 그것을 다시 정리했다. 그러 다가 은월회쪽에서 무언가 은밀하게 기마저 차단한 녀석들이 스며들 듯 자신의 주변 10장 내로 빠르게 움직이자 그는 피식 웃었다. "살수들은 신용을 중시한다고 들었는데. 워낙에 궁금한 모양이군. 적당히 손 봐줄까? 뭐, 같은 방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니까 죽이지는 말아야겠군." 가볍게 중얼거리면서 영은 시커먼 천 만큼은 풀어버려야 겠다는 생각으로 시커먼 천을 천 천히 벗겨서 둘둘 말았다. 흰색 천은 전신을 뒤덮었지만, 검은색 천은 치렁치렁하게 몸을 장 식하는 용도였으므로, 벗어도 별로 상관이 없었다. 흰색의 옷도 꽤나 치렁치렁했지만, 그 정 도 되는 고수로써는 그다지 운신에 지장도 없었기에 놔 두었다. 그리고 삼매진화의 술로 시커먼 천을 태워버리려다가 그냥 천을 차곡차곡 접어서 품에 집 어 넣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너무나도 느긋하게 걸어갔다. 어둠이 내려앉아있고, 아직 그 어둠이 가시지 않아 그는 약간 더 짙은 그림자에 동화되었다. 대자연의 기 와 함께하면서 말 그대로 바람처럼 흩어져 버린 그의 기척을 잡아내지 못한 은월회의 살수들은 당황하는 눈치 였으나, 곧 천천히 5장 거리 내로 스며들어와 조심히 귀식대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영이 누구인가. 평범한 현경의 고수도 아닌 것이다. 기를 차단하는 술법은 기가 새 어나오지 않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몸뚱아리가 기를 숨긴다고 해서 바람과 함께 사라져 (?) 버리겠는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적어도 화경쯤 되는, 대자연의 기를 어느정도 느낄 수 있는 고수의 탐지에 걸리면, 그 부분의 기가 인간 형태로 텅 비어있는 것을 느끼게 되고, 바로 그 즉시 검강이 날아가 목숨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특히 영은 같은 현경의 고수라고 해도 대자연의 기 자체를 다스려 나가고 있으므로, 그 탐 지 범위는 극악하게도 백여장 내의 대자연의 기의 분포를 세밀하게 느낄수 있다. 그리고 10 여리 내의 생명 정도라면 어느정도 느낄수 있다. 10리. 말이 좋지 3km인 것이다. 3km 이내 의 생명 반응을 찾아내 버리는 영의 능력은 혹시 레이더라도 숨기고 있지 않나 의심받을 정 도로 훌륭했다. 그렇게 살수들의 기척을 훤히 느끼면서 영은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별빛처럼 어둠 사이로 스며들어 한 살수의 뒷덜미를 콱 눌러서 기를 주입해 마혈痲穴을 점해버리고, 아혈까지 점 한다음 목주댕이를 콱 밟아 바닥에 널부러지게 했다. 물론 가벼운 단음강막을 통해 음파가 새어나가는 것을 차단하면서. 그리고 영은 음흉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는 ―물론 상대는 보지 못하겠지만― 어기전성을 시전했다. 「이봐. 은월회의 살수인가? 의뢰는 끝났는데. 전할 말이라도 있나? 그건 아니겠지만 말이 지. 무려 일곱명이나 본좌를 쫓아오다니. 거참, 너무 감격스러워서 하나하나 잡아다가 산채 로 껍질을 벗겨버리고 싶군. 건방지게……」 그의 전음에 살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입에 문 독단毒丹을 깨물어 즉시 죽어버 리려고 했으나 이미 아혈까지 짚여있음을 깨닫고 영에게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곧 영은 살 수의 턱에서 가볍게 허공섭물로 독단을 끄집어 낸다음, 곧바로 삼매진화를 공중에서 발현해 강렬한 양강의 불꽃으로 그것을 아예 잿가루로 변화시켜 날려버렸다. 그리고 오른손을 튕겨 서 은영비銀影匕를 꺼내들었다. 은색 그림자를 남기는 비수라고 이름 붙여진 나이프의 재질은 티타늄Titanium으로써, 아직 이곳의 과학 수준으로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병기였다. 그렇지만 이곳의 한철이나 만년한철, 혹은 현철 등등은 오히려 티타늄보다 더 날카롭고 단단하니…… 가격면에서는 희소가치(?) 때문에 티타늄이 훨씬 비싸겠지만 말이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 충고하는 건데 말이지. 암살자에게 가장 중요한 실력 보다 먼저 신용이라고.」 다시 어기전성한 그는 마혈과 아혈을 풀어내면서 수혈과 혼혈을 동시에 짚었다. 무섭도록 빠른 격공점혈의 묘수였다. 격공해혈과 격공점혈을 동시에, 가볍게 한손가락만 튕겨서 해낸 영의 실력에 경악하면서 사내는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혼혈과 수혈을 풀어낸 즉시 영의 신형은 부드럽게 흩어져 바람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살수들 하나하나가 모두 이 전철을 밟은다음 그대로 어두운 골목에 널부러졌다. 아 마도 아침이나 되어야 깨어나겠지. 다만, 맨 처음 점혈당한 살수와는 달리, 다른 살수들은 모두 은영비의 손잡이에 목 등을 찍히고 뻗었다는 점이 달랐다. 그리고 그들은 역시 아침해가 뜰 지경이 되어서야 퍼뜩 일어났고, 곧 서로 모여서 그의 정 체에 대해 잠시 토론하다가 은영비의 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모두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리 고 빠르게 신법을 발휘해 그들은 은월회로 돌아갔다. 은월회에서는 마침내 피해자(?)가 될 녀석들의 공통점을 발견해 내고야 말았다. 몇시진을 씨름했던가. 추적을 실패하고 아침에야 돌아온 은월회의 살수들은 은영비에 대해 미처 말의 서두조차 꺼내지 못하고, 회주와 만나자 마자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그대로 붙들려서 서 류 분류 작업을 해야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곳에서 단서가 발견된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천류세가의 말살을 위해 출동해서 치사하고 비겁한 수로 천류세가를 곤경에 빠지 게 한 인물들이거나, 혹은 변절자들이었다. 그리고 여러 수로 천류세가에 피해를 입혔던 인 물들이었다. 그리고 그 정체불명의 고수가 천류세가의 인물임이 확인되고, 그가 꺼내든 비수가 은영비 임이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은월회는 뒤집혔다. 수십의 살수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살수 의 신이라는 은영천검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절을 올렸고, 다른 수십의 살수들은 전설(?)을 만난것에 대해 잠시 어벙해졌다. 물론 어느 조직이었다던가 하는 기록이 전혀 없는 이이지만, 전직 살수였다는 것은 확실히 확인되었고, 살수출신의 현경 고수가 튀어나왔다는 것을 살수들은 자랑스러워하던 참이었 다. 그리고 은월회에 그 은영천검이 들린 것이다. 살수계의 대부(?)로 불릴 정도인 그가 들 린 것이다. 그리고 은월회는 발칵 뒤집혔다. 순식간에 은월회에서도 손꼽히는 살수들이 그가 의뢰한 임무를 맡겠다고 발버둥치며 서로 치고박고 싸웠고, 그 정보는 바깥으로 나가기 전 에 살수들이 자발적으로 종이를 태워버렸다.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연예인(?)은 고달픈 모양이다. 071. "우리의 첫번째 적은 누구인가!" "개천검開天劍 궁야적!" 은월회銀月會. 암실暗室. 이곳은 은월회의 비밀 총단의 지하로 파고들고, 그나마 그 지하에도 수많은 기관진식과 기 기묘묘한 진법으로 단단한 보호를 겸해 안전을 도모한 어두운, 그러나 넓은 방이었다. 그리 고 이곳에는 흑색의 두건을 두른, 맨얼굴을 드러낸 인물들이나 아니면 완벽한 흑의로 전신 을 감아버린 사내들이 보였다. 복장이 각기 다른 이들도 있었으나, 그들의 눈에 차있는 감정 은 오직 하나. 꼭 사이비 교주를 따르는 광신도의 그것이었다. 이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것은 집단 의식과도 절묘하게 어우러져 더욱 증폭되고 있었고, 음습한 살기까지 섞여있는데다가 어느 누군가를 위한 것인지 모를 신뢰감까지 스며들어있어 확실한 광신도의 느낌을 주었다. 눈은 지독하게 충혈되어 있고, 살기와 광기, 그리고 기쁨이 적절하게 충만하여 그야말로 미친 놈, 무언가에 미친놈이 아닌한 절대 보여줄수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된 것은 바로 누구의 소행인가? 단언하건대, 이 암실에서 유일하게 일어서서 저 앞에서 역시 핏대선 눈으로 소리치는 인물 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이들의 눈은 어느 누군가의 모습을 상상하는 듯, 비록 강 렬한, 소름끼치는 안광을 담고 있기는 하였으나 결코 저 앞에 있는 이를 향한 것이 아니라, 뿌옇게 흐려진채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나 보더라도, 목숨이 달려있어도 자신도 모르게 미친놈이라는 낱말을 입에 담아 버릴정도로 이곳의 텁텁한 공기에는 차가움과 음습함, 그리고 독기와 광기가 절묘하게 배합 되어 천하 오대지독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듯 했다. 물론 정신적인 면에서. 천하 오대지독이 무엇인가? 뭐, 단연코 첫째로는 일단 마시면 내장을 사정없이 짓이겨 버 리는 고통 끝에 죽음을 선사한다는 단장초였다. 단장초는 그야말로 독의 천국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이름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고, 겉모습 역시 억새풀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 약간의 보랏빛이 돈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그러나 독초들의 천국에서 독초들이 발하는 독 향과 독기를 송두리째 빨아들이고, 독초들이 지기에 섞여들게 한 독의 기운을 지기와 함께 송두리째 빨아들여 웬만한 영약보대 거대한 기운을 독으로 화하게 한 것이다. 아까 말했듯 이, 즉사는 아니나 그야말로 내장을 산산조각 내버린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것도 없다. 그리고 둘째로 뽑을 것은 음양이기陰陽二氣와 지기地氣를 충만히 받아 보통의 풍란이 영약 이자 100년생이 되지 않는 이상은 극독이라는 청홍하풍란靑紅霞風蘭으로, 피면 하늘빛 잎사 귀에 붉은 술을 가진 것과 붉은 잎사귀에 푸른 술을 가진 두 꽃이 피고, 그 향만으로도 사 람을 반의 반각 내로 죽음으로 몰고갈 독이 된다. 다만, 우스운 것은. 그 흔한 감초를 입에 물고 있으면 그 향이 독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꽃잎만으로도 지독한 극독이고, 그 술까지 갈아 배합하면 역시 지독한 독이 되지만, 그것의 청홍과 홍청의 꽃 가운데에 열리는, 보통 난과는 다른 손톱만한 씨앗 다섯 개만큼 독하지는 못하다. 다섯 개의 씨앗이 주황빛이 되었을 때 그 독성이 더욱 강해지는데, 단장초와 섞어주면, 웬 만하면 딱 맞게 섞어주면 서로 충돌하면서 완화하지만, 하독으로 인해 그 독에 중독된 이는 무간지옥의 지옥불에서 춤추는것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일다경의 반정 도 되는 시간속에서 고통을 맞으며 죽어가게 한다. 그리고 세 번째로 천도天桃이다. 천도라 함은, 천상에서 맺힌, 세상 제일가는 영약이라 한 다고도 할수 있으나, 그것의 미성숙된 열매는 그야말로 극독! 숙성되지 않는한, 음양이기와 천지양력이 조화되지 않는한, 인체에 그야말로 지독한 독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천상의 복 숭아는 아니나. 미성숙의 천도는 겁통실劫痛實이라는, 어쩐지 이해가 가지 않는 발음을 선사 하는 열매라고 한다. 어쨌든 그 이름이 뜻하는 바는, 억겁의 시간을 겪으면서 생길 고통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열매라는 뜻이다. 즉사는 아니지만, 대략 일다경 동안 아무런 행동도 하 지 못하고 지독한 고통속에서 죽어간다. 그리고 네 번째로, 홍청금사紅靑金蛇의 독니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과 그 피다. 특이하게도 그 피와 독을 함께 섞으면 자그마치 30년 공력을 주는 영약이 되지만, 피나 독니의 독을 어 느 하나라도 먼저 당하게 되면 즉사卽死한다. 인류의 무수한 적중의 하나인 니코틴이나 발 암물질發癌物質인 타르에서 담배에 함유된 니코틴이라는, 일단 주사되면 뇌에 산소공급 차 단에 신경마비까지 던져주는 독과 비슷한 효과를 주는데. 삽시간에 뇌로 가는 산소와 영양 분의 흐름을 딱! 하고 잘라막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대신 뇌에 흡수되어 즉사의 길로 상 대를 인도한다. 이 홍청금사는 4번 허물을 벗으면서 푸르고 붉은 껍질이 더더욱 진해지는데, 특이한 점은 금이나 철이 많이 포함된 지역에서 모래를 통해 그것을 먹으면서 껍질로 보내 강도를 높이는데, 거의 독물을 넘어 영물의 경지에 이르른 홍청금사의 껍질로 만약 보호구 를 만든다면, 천잠사를 능가하는 강도를 지니게 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천하오독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귀백석鬼魄石이라는 것이다. 돌의 형태 를 하고 있고, 석고 정도의 강도를 지니며, 아주 부드러운 분말로 갈린다. 그리고 피부에다 가는 아무런 효과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을 가볍게 물에 타서 원샷(?) 시키면 효과 는 바로 나타난다. 먼저, 근육의 마비, 그리고 바로 십초 후 신경의 마비, 그리고 다음 바로 신경의 마비가 풀 리며 내장이 마비된다. 이어서 십초 후, 신경이 지독하게 예민해지고, 살점이 즉시로 썩어들 어간다. 귀백석은 의아롭게도 천하오독중에서 가장 구하기 어려운 것인데. 그 이유가 이름에 서 뜻하듯, 귀령의 음념이 축적되면서 그것이 어떠한 일을 계기로 돌에 흡수되는 것이다. 어 떤 돌에 흡수되든 간에 일단 흡수만 되면, 그 돌이 설마 금강석이라도 천천히 그 보기寶氣 가 빠져나가고 그 분자구조가 뒤바뀌고 귀기에 의해 삭아들어가면서 석고와 같이 변하는 것 이다. 그리고 그것을 먹이면 죽는다. 확실하게! 이야기가 샜는데, 어쨌든 나온김에 또 말하겠다. 이 은월회에는 이 천하오대독이 전부. 전 부 존재한다. 치가 떨리는 이야기 아닌가. 혹시 모르지, 이 독을 모두 배합해서 정확한 비율 로 꿀꺽 하고 그것을 공력으로 바꾸면 십여갑자의 공력이 단전에 꽉꽉 들어찰지. ……어쨌든지간에, 이렇게 은월회의 암실에 모인 이들은 분노에 찬, 아니…… 분노라기 보 다 감격에 찬 표정으로 누군가의 초상화를 빼서 걸고는 그 초상화의 주인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려는 듯 살기어린 눈초리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개천검. 궁야적이었다. 과거 천류세가에 쳐들어가서 많은 세가의 하인들을 학살한 인물중 하나로, 별호와 달리 무 공이 그렇게 높은편도 아니며, 그렇다고 인덕이 있는것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주색잡기에만 천하에 나타났던 어떤 색마도 형님소리 나올정도로 추잡한 인물이었다. 피와 여자와 술이라 면 그야말로 환장하는 전형적인 변태성(?) 강한 무림인이었다. 그리고 상당히 기름낀 얼굴로 사악하게 웃고있는 초상화를 보면서 그들은 한층 더 살기를 뿜어냈다. 개천검, 하늘을 여는 검이라고는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알게 모르게 개천 검開川劍이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은영천검이라는 인물이 살던 세계에서 그 상류에 양심불량 공장이 있는 개천 바닥에 뒹굴러 다니는, 온갖 오염물질과 이끼가 끼인 돌탱이같 이 양심과 성격이 쓰레기바닥을 구르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몇 개의 초상화, 이번에 은영천검이 의뢰한 쓰레기들―이미 그들은 정파명숙이건 상관할바 없이 그의 의뢰여서인지 무조건, 심지어는 무림 맹주라도 죽이라고 했으면 죽일 태세가 되어 있었다.―의 초상화를 꺼내들어 벽에 걸면서 모두는 눈빛을 한층 살기어린 그 것으로 바꾸어갔다. 그리고 온갖 병장기를 매섭게 뽑아들었고, 방안에 날카로운 금속성이 퍼 져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옆자리의 사람들과 병장기를 창창 부딪히며 광기와 살기 를 실어 소리쳤다. "척살刺殺!!!" 광기에 젖은채 병장기를 치켜들고 살기와 광기를 불태우는 은월회의 암살자들을 칭하는 말 로써, 본인은 미친놈들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겠다. 그리고 그것 외에는 이 광신도들을 더 적 합하게 표현할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애처로워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 무나도 슬프다. "우오오오오―!!!" ……밀폐된 암실아래, 광기어린 울부짖음이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꼭 만월의 밤에 위어울프Werewolf라고 불리는, 은으로 된 병기나 검기 계통이나 마법 공격 외 에는 타격을 받지 않는다는, 지독한 재생력을 지닌 종족이 만월의 밤에 넘쳐나는 루나틱 에 너지에 환호하며 길다랗게 늘린 손톱을 부딪히는 소리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침착과 인내가 가진 병기 외에 또다른 무기가 된다는 암살자들이 저렇게 평정심을 잃고 광 기에 차서 병장기를 휘두르며 울부짖다니…… 통탄할 일이 아닐수 없다. 영은 어둠이 내려앉은, 평안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어둠의 거리에서 몸을 벽에 기댄 채 그야말로 기척 한올도 없이 자연과 동화되어 신형을 은폐하고 있었다. 고고한 달빛마저도 그를 통과해 가는 듯 했다. 어둠과 함께 녹아들어 신비로운 광휘를 번뜩이는 금월金月의 빛 이 시리게 주변을 휘감았다. 노란빛이었지만, 이상하도록 금빛으로 느껴지는 그 은은한 광 채에 그는 입꼬리를 가볍게 말아올렸다. 그러나 문득 그는 그의 탐지 범위에 속속들이 감지되고 있는 은월회의 총단에서, 그 지하 에서도 뿜어져 나와 하늘을 찌르는 살기와 광기를 보면서 얼굴을 가볍게 일그러뜨렸다. 문 득 음험하고, 음습하고, 너무나도 강렬한 음기와 함께 뿜어져 나온 음파가 대기중의 기를 마 구마구 뒤흔들어 버리는 것마저도 느끼고 잠깐 불안을 느낀 그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피식 피식 웃어버렸다. 그리고 나서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그 소리는 너무 작아서 그의 귀에서 잘 들어오지는 않았는데, 이러한 말이었다. "분위기가 좋은데. 이걸로 준비는 끝난건가? 후후후……" 끄트머리에 자그마한 웃음을 덧붙이면서, 그는 천천히 옷깃을 여몄다. 그리고 가볍게 땅에 발을 굴렀다. 그의 단전에서부터 가볍게 뿜어져 나간 기운이 발바닥에서 대지로 향해 지기 와 가벼운 충돌을 일으켰고, 그것에서 강한 반탄력이 뿜어져 나와 그의 신형을 하늘로 띄워 올리기에 충분한 물리력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 충격을 부드럽게 자신의 몸을 튕겨올리는 탄력으로 이용해 날아오른 그는 문득 공기층에 흐르는 기운과 자신의 몸에서 흐른 기를 의 도적으로 충돌시켜 강력한 반탄력을 다시 얻어내었고, 곧 더욱더 드높이 치솟아 오르면서 달빛 가운데로 들어섰다. 금월金月의 은영銀影과 함께 야조夜鳥처럼 치솟아 오른 그의 신형은 강기의 막을 둘러친채 바람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 속도는 섬전閃電, 그 자체였다. 072. "바람아. 나의 손길이다." 부드럽게 허공중으로 던져져 사그라든 목소리. 그리고 문득 차가운 바람이, 푸근한 의문을 실은채 툭 튀어나온, 밑도 끝도없는 말을 삼키고 날아올라 어딘가로 흩어져 갔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바람이라는 이름의, 빠르지만 결코 신용은 존재하지 않는 전령傳令에 띄워보낸 이 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 나서 찬연한 햇발속에 자신의 존재를 묻으면서 대자연의 호흡을 느꼈다. ……대자연의 들숨은 그 하나만으로도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시원함을 던져주었다. 숲이 우 석거리며 지나가는 바람의 손길에 흔들렸다. 그리고 숲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침엽수는 사철나무 답게 가을이 깊어감에도 이파리에 찬연한 녹색을 흩뿌리면서 아직도 여름의 기운 이 가시지 않은 듯한, 더운 기운을 은근히 바람속에 흘려보냈다. 그리고 따스함과 시원함이 교묘하게 섞여든 자연의 숨이 모든 생명의 폐부를 알싸한 가을향기로 씻어 내는 것을 통해, 그는 산림욕이라는 것을 행하고 있었다. 대자연의 날숨. 그것은 조금더 거칠지만 약간 더 포근하게 흘러들었다. 예의 기라고 하는 자연의 숨결에서 토해져 나오는, 모태의 따스함과 혹독한 차가움을 함께 할수 있는 그것이 조금 더 탁하게 토해져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가을임에도 싱그럽게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자연이라는 것은 묘하게 인간과 닮은데가 있었다. 아니, 모든 생물과에 속하는, 살아 숨쉬 는 것들과 닮은 것인가? 자연도 분노할줄 알고, 슬퍼할줄 알았다. 자연은 인간에게 한없이 자신을 나누어 주지만, 인간은 결코 그것을 돌려주려 하지 않았다. 아니, 돌려주려 하지 못 한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정확하겠지. 인간은 나무를 벤다. 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은 알곡을 보며 웃는다. 그러나 결코 알곡이 대지에게서 뺏어간 지기地氣를 회복시키려 들지는 않는다. 아니, 어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것을 명상을 통해 깨달으면서,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나 대자연에게 고통을 던져 주 었는가를 회상해 보고, 결코 용서될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대 자연, 그 모태의 아름다움을 향해 그의 죄에 용서를 빌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것을 깨달아버린 자신마저도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는지, 알수 없다. 최근 깨달은 사실이다. 자신이 알고 있던 일천 이백년의 공력이 현경에서의 단전 축기량이다. 라는 사실은 결코 진실이 아니었다. 3천 6백년. 자그마치 60갑자라고 하는 기가 체내에 들어설수 있는 것이 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의 힘을 강탈하는 행위였다. 그가 생각하기로, 아마도 이 다음 경 지, 무형검을 만들어내는 신으로 화하는 경지에 들게 된다면, 아마도 대 자연과 자신이 하나 가 되고, 그 대자연에 가깝게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하고 짐작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 지는 도저히 알수 없었다. "바람은 자유自由." 그는 배운 과학 지식으로, 고기압과 저기압, 혹은 온도 차로 발생하는, 빛과 어둠으로 발생 하는, 공기의 이동이라는 것이 바람이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그것 뿐 은 아니었다. 기氣. 거대한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자연의 기가 함께 흐른다. 천지의 기는, 인간과 함께하 여 준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파괴한다. 자신이 살던 곳만 하더라도 부드럽고, 사람에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는 부드러운 바람을, 도시의 빌딩 숲으로 흐려놓아 버렸다. 그리고 과학이라는, 놀랍지만 동시에 턱없이 결과가 벌어져야만이 그 해결책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그나마도 본래의 자연으로 복구해낼수 없는 특이한 파괴의 학문이 발달함으로 파생한, 온갖 특이한 화학물질들로 인해 자연은 손상되어 버렸다. F 제 1의 흔들림이라는 이름의 바람은 자연풍. 인간에게 말 그대로의 포근함을 가져다 준 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의 손길이자 숨결로, 인간을 현대의 과학의 독소에서 어느정도 해방 시키며, 그 몸을 아늑함, 마치 어머니의 자궁, 그 모태의 따스함으로 다시 돌아온듯한 느낌 을 던져준다. 비록 인간의 과학이라는 화려하지만 어두운 그 힘에서 파생된 독이라는 것이 그런 것으로 떨쳐질리는 없으나. 마음의 안정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과학으로는 만들 수 없 는, 자연만이 가지는 힘으로 인간의 마음에 든든한 보루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나마도 사라진 세계가 그곳이 아니던가. 영…… 아니. 현청玄淸이라는 이름을 지닌 불행하지만 행복을 바라볼수 있는 인간은 이곳 만큼은 제발 화약이나 시약을 만들어내는 수준 이상의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 리고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기를 다루는 무武나 마법이라는 이름의, 마나Mana라는 힘을 다루는 정신적인 유산이 함께하는…… 정말로 파괴가 아닌 창생을 향할수 있는 종류로 발전 해 나갔으면 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다면. 자신은 힘이 닿을때까지 파괴의 과학이 파생되는 곳이라면 철저 하게 부숴버리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 하지만, 그는 과학 없이 살아갈수 없는 인류 사이 에서도 몇몇 존재하는, 과학이라는 아이템Item이 없어도 결코 도태되지 않을수 있는, 강인 한 정신과 몸을 지닌, 그곳, 형편없이 기라는 힘이 약해져 있는 세계에서도 그나마 기를 조금 은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연이 살아있는 세계, 과학에 뒤질지, 뒤지지 않을지 알수 없는 검과 마법이 아직 함께 하는 세계와, 자연이 죽고 과학이라는 날카로운 양날의 검이 인간에게 쥐어져 터무니 없는 결과를 파생하고 있는 세계를 동시에 거치고 있는 인간이었고, 신으로의 절차를 확실 하게 밟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파괴의 과학을 막을수 있는 힘이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는 파괴라는 이름의 검 이 인류에게, 이곳의 인류에게 쥐어지는 것을 막고 싶었다. 적어도…… 자연의 힘을 부수는 악랄한 짓 만큼은 막아버리고 싶었다. 그는 바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광적으로 집착하지도 않았다. 바람이라는 이름으로 규정된 한 현상에 얼마나 오묘한 의미가 숨어있는가. 그 세계의 인간들은 난류亂流를 혼돈과학으로 풀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무수히 많다. 마치 하나의 빗방울이 떨어질 때 받게 되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거나 무한대일 가능성의 여부들. 기하급수적으로 한 요인 의 변화만을 도입할때도 발생하는 그것들을 인류는 잡아내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것은 기를 얻은 그에게는 무모하게 느껴졌다. 인류는 많은 불가능으로 규정지어진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왔다. 어쩌면 그 연금이라는 말도 안되는 짓을 언젠가 해낼지도 모른다. 원자핵과 전자의 재배열이라는 개념까지 넘어가 언젠가는 어떤 원소든 만들어내어 자유자재로 은하 자체를 삼키고, 넘어서 차원이라는 것마 저도 지배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과학이라는 이름의 검은…… 어차피 그가 증오하지만 동시에 거역할수 없 는 신이라는 존재가 허락한 무기였으니. 하지만 그것이 언젠가 신의 힘마저 파헤쳐 신의 심 장에 꽂힐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과학의 신의 힘이라고도 볼수 있는 것. 그리고 그것은 신에게도 공포를 가져다 줄 수 있을수 있다. 언젠가는 아주 작은 실의 끄트머리라도 그 모태를 찾아갈수 있는 법이니까. 파생된 것에서 궁극을 찾는 것은 오래 걸리지만, 그렇다고 결코 어려운 것도 아니다. "……훗.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잡생각이 많아진거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그는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매달았다. 자신은 너무도 지나치게 감 상적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어차피 자신은 이 세계에서 이방인임에 틀림이 없는 사람이다. 비록 힘이 있다고 해도 이 세계에 관여하는 짓은 하지 않는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그는 한층 발달한, 현대 화학과 병기학의 약간이지만, 그것을 도 입하고 말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군용병기들의 자료정보가 춤을 추고 있었다. 아마 이것을 모두 책으 로 정립해 놓아 어딘가에 숨겨놓는다면, 그리고 그것을 만들 수준의 기술력이 이 세계에 던 져지고, 그 책이 발견된다면, 아마 세상은 놀랄 것이다. 대체 누가 이런 책을 저술했는가, 하고 말이다. 수류탄이라는 이름의 작은 병기. 그가 아는 바로는, 바뀐 수류탄은 엠보싱을 준 것에 충격 을 주어 산산히 깨지게 만들어 그 파편을 비산飛散하게 만들고, 그 살상력을 지독하게 증가 시키고, 무게를 더욱 가볍게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세세한 수치마저도 그는 외우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는 세상에서 몇백년에 하나 나올만큼의, 어쩌면 천여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한 천재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이었으니까. 아직 화약기술이 범용화 되지 않은. 재료만 있으면, 그리고 조금만 공부하고 위험의 퍼센테 이션을 극감시킬 실험자재만 있으면, 그리고 위험만 감소하면 흑색 화약이나 니트로그리세 린 등등은 누구나 만들어낼수 있는 그 세계가 아닌, 화약기술이 범용화 되지 않는 이곳에서, 그는 세상을 발칵 뒤집어버렸다. 그가 만든 진천뢰는 기존 황궁의 비전으로 만들어진 진천 뢰보다 적어도 두배는 강하고 가벼운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는 다이너마이트라는, 과연 평화를 사랑했을지 의문이 가는, 노벨상이라는 것을 만들어낸 인물이 만든 무서운 파괴력을 자랑하는 병기마저도 이곳에 등장시켜버렸다. 니트 로그리세린이라는 액체폭발물조차 만들어내버렸다. 이곳에서…… 실험장비조차 없는, 지극히 위험한 장소에서. 하지만 그렇게 위험한것도 아니었다. 그는 현경이라는 경지에 올라 설사 정면에서 터진다 해도, 플라스틱 폭탄…… C-4같은 고폭약이 수십발 터져도 버텨낼 정도로 강한 호신강기를 만들어낼수 있었으니까. 이런 사소한 사실에서도 그는 과학은 기와 양존하고, 과학이 기를 다루어 낼수 있다고 생 각해볼수 있었다. 기와 마나. 무형이지만 인간을 거치면 유형이 될 수 있는 그것. 그리고 그 것이 과학과 함께 한다면…… 이것까지 생각이 진행되었을 때. 그는 웃음이 피식 흘러나오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심각하게 궁상을 떨면서 파괴의 과학이라는 양날의 검에 대해 걱정했 는데, 벌써부터 파괴쪽으로 예를 들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그가 계속 생각을 진행시키고 있을 무렵. 누군가 무서운 속도로 그의 탐지 범위 내 에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다지 걱정하거나 긴장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설마 적이 라고 해도 그에게 이길수가 없는 탓이다. 자만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현경이었다. 적어도 전 에 상대했던 천산검주 정도의 실력자, 그것도 둘 이상이 아니라면 기습한다 해도 별로 상관 없었다. 그리고 그의 탐지 범위에서 생명 고유의 기파를 뿜어내는 존재는 그가 알고 있는 존재였 고, 이 세계로 와서 두 번째로 만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는 의아함을 머릿속으로 그려내면 서 잠시 그가 앉아있던, 숲속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바위에 시선을 던졌다가 그것을 손으 로 쓸었다. 그리고 곧 그는 의문을 직접 입밖으로 내었다. "무슨일일까……" 073. 어두운 그림자[暗影]가 그 자락을 붉게 물든 대지 위로 길게 그 몸을 드리웠다. 핏빛의 황 혼이 웅장하게 하늘을 주홍빛으로 잠식하고, 핏빛 분광分光의 편린片鱗들은 조각조각 공기 중에서 부딪히면서 핏빛 광휘光輝를 번뜩였다. 신비로이 동편 하늘로부터 금빛의 파편破片 들이 점점이 드러나면서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아름답다면 아름답다고도 평할수 있는 모습 이지만, 어차피 저 파편들이 깜빡거리는 것은 다만 대기중에 떠도는 먼지들 탓이다. 우주에 서 떠도는 먼지조각 탓이기도 하고. 점멸點滅하는 색색의 별빛들…… 그 보낸 세월이 달라 항성恒星이라고 불리는 별들중에서 가장 먼저 부를수 있는, 진주홍빛에 금빛이 섞여든, 백열하는 태양太陽과는 타오르는 그 빛 이 다른. 금빛으로도, 적색으로도, 백색으로도, 녹색으로도, 푸른색으로도…… 여러 가지 색 색의 빛으로 타오르는 그 항성들이 그 빛의 자락을 더 가까이에서 흐릿하게 피어오른, 하늘 을 물들여 여전히 남은 태양광의 노을과 부딪혀 그 자리를 다툼하고 있다. 밤의 여신의 남빛 옷자락에 박혀든 색색의 보석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그 별빛…… 여신의 금빛 활이 휘우듬한 광휘의 자락을 마지막으로 수놓기 전, 남은…… 타오르는 주홍빛이 맑 은 은색의, 석자 정도에 손가락 한마디 반 만큼의 폭을 지닌, 날카롭지만 얇고 난창거리며 휘어질 듯 위태로운 그것에 깃들어. 물에 섞여들었지만 그 빛이 바래지 않은 핏빛과 같은, 선홍색鮮紅色의 잔영殘影을 남겼다. 그것은 매끄럽고 부드러운, 조용하고 느릿하게 절제된 궤도軌道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엷은 주홍의 빛 마저도 느릿하게 저 너머로, 저 너머로 사라져 버리고, 깊고 차가운 암청빛, 밤의 여신의 옷자락이 천공에 드리워져 밤을 알렸다. 빛과 어둠의 옷이 천공에서 뒤 엉켜 하루동안 가장 다채로운 빛의 하늘을 선보였던 짧은 듯 긴, 하루의 황혼黃昏도 지나가 고, 은빛의 투명하고 서늘한 그것에도, 간간히 별빛만이 흐르게 되었다. 남빛이 된, 식어가는 대지 위에 뻗쳐오른 은색. 그리고 은색의 강에 흐르는 별의 편린들. 그 신비롭기 짝이없는 광경도 곧 끊어진다. 검이 느릿하게 움직였다가. 조금씩 더 속도를 높 이기 시작한 것이다. 결코 멈추지 않는다. 끊김없이 절제된 길을 따라가던, 살상용의 목적이 자 자기 보호의 수단, 그리고 무武에로의 끝없는 정진을 요하는,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알기 어려운 검劍이라 명명된 그 예리한 은색의 대하大河도. 마침내 여신의 활이 휘우듬한 광휘의 자국을 찬란하게 뿌려 밤의 옷에 수놓은 순간, 탄성 있게 튕겨나간 화살이 찬란한 금빛 편린을 머금고, 무수한 작은 보석들을 암청빛 베일에 더 욱더 점점히 뿌려, 마치 별빛이 거센 빗발과도 같이 쏟아지는, 별의 밤을 만들어냈다. 그리 고 그 화살이 마지막으로 '달'이라 명명된 위성을 그려내고 있을 즈음, 검은 그 선로를 따라 움직이던 행동을 멈추고 풍경을 담았다. 그리고, 동시에 창백하게도, 포근하게도 느껴지는 하얀 달빛으로 그 음영陰影을 바닥에 드 리운 움직임도. 그림자마저도 함께 멎어들어갔다. 환영幻影과 같은 달빛이 검의 주인에게 인 식되어서야 검은 멈춘 것이다. 이어 나지막한 숨소리가, 한숨이라고 지칭되는 형태로, 그 형태로 만드는 감정을 담아 주변 에 내려앉기 시작한 어두운 침묵沈默을 몰아내었다. "후우……" 그 한숨마저도 다시 침묵에 먹혀버리고, 고고한 달빛만이 은색 선을 대지 위로 그려내고 있을 때. 그 누군가의 입에서 한숨 대신에 조금 더 길고 뚜렷한 목소리가 흘러나와 침묵과 다시 대적했다. "그 조건대로……" 은월회銀月會. 일급살수一級殺手. 단월斷月. 그것이 바로 그의 이름이었다. 막상 은영천검의 의뢰라는 말을 듣고 곧바로 골에 이성이라 는 이름의 시스템의 전원이 나가버렸고, 발악하면서 첫 번째, 개천검開天劍이라는 명호를 지 닌 궁야적이라는 정파의 쓰레기에 속하는 자를 죽이는 임무를 차지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괴롭히면서' 죽이라는 조건은 조금 걸렸다. 개천검은 심하게 약한편은 아니다. 검기상인劍氣傷人할수 있는 편이니 그렇게 약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공력功力을 끌어올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찰나라도 시간의 말미가 있어 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기척을 감지하지 못하고 평상시의, 내공을 너무 남용하다 보니 게을러져서 그렇게 단련되지 않은 몸―환골탈태換骨奪胎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어차피 내공을 더욱더 많이 사 용하게 되어있다. 기술 수련이나 내공 쌓는것도 바쁜데 어떻게 물리적인 수련이나 하고 앉 아있겠는가. 그러나 일단 환골탈태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내공도 내공이지만, 수련하지 않아 도 놀랍게 잘 짜여지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몸이 생기는 것이다.―을 움직이게 되는 상태 에서 독검毒劍이나 역시 독을 바른 기형병기奇形兵器를 급소에, 십중팔구 심장이나 머리통, 사혈, 중요 장기가 존재하는 부분에 맞고 죽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고수라고 하는 고수들이 암살자들의 기습에 대비를 하지 못하면 고혼이 되 어 저 먼 저승으로 날아가버리는 것이다. 쯧쯧. 단월은 검을 썼다. 하지만 그것 역시 전통적인 패검의 형태를 띈 물건은 아니었다. 검신은 백련정강에 날 부분에만 약간의 현철을 섞은 물건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경악스러운 병 기였지만, 형태 자체는 검이어도 그 효용이 달랐다. 일단 곧은 양날의 검신은 충분히 검이라 불릴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보통 검보다 좀 더 얇은 검신에, 그 너비가 손가락 한마디하고 반 정도의 좁고, 지나치게 끝이 날카로운 것이 문제고, 무엇보다 별로 효용은 없지만 일단 무공으로 비교하면 현경에 이른 기술을 지닌 장인이 아닌 이상 균형잡는데는 필수라고 할수 있는 검막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암살자들이 쓰는, 가드라고도 불리는 부분이 제거된, 휘어진 종류의 칼 도 아니었다. 난창난창 휘어져 연검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변형된 패검이라고 불리 는게 정확할 것이다. 부러질 것 같지만, 백련정강으로만 만들어진 검신에는 조금이지만 한철 이 섞여있어 그 강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석자, 그러니까 '그곳'의 단위로 1m에서 10cm정도를 뺀, 90cm. 석자 정도 길이의 검신이라 더 위태위태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한철 이나 현철을 함께 사용한 것이라 그 내력을 알게 되면 꽤 탐이 나는 병기였다. 그런데, 그는 이 넓은, 개천검 궁야적이라는 자가 있는 곳에서 대략 10리 정도 떨어진 이곳 평야에서 대체 뭘 하고 있었던걸까? 그렇다. 그는 잠시 열광했던 마음을 암살자의 몸가짐, 차갑고, 냉철하고, 이성적이고, 인내심 있는 그것으로 가라앉히고, 검기劍氣와 검기劍技를 동시에 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여느때처럼 검을 휘두르고 느긋하게 검로를 흘러가듯 바람에 맡기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마음은 북풍한설처럼 가라앉았으면서도 통짜 한철로만 만든 예 리한 검처럼 날카로운 기운을 머금게 되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평범하고 태연한 모습을 위장하고 있었다. 눈도 묘하게 웃음을 띈듯한 느 낌을 주었기에, 적어도 화경에 도달했거나 화경, 혹은 그 이상의 고수만이 알아볼 정도의 감 추어진 느낌이었지. 누구에게나 다 드러나면 그것은 암살자로써의 자격부터가 실패였다. 실 제로 영의 예를 들어도 조금 차갑다 뿐이지, 그 화려한 외모로 감추어주고 있지 않은가. 그 리고 기도氣道라는 것도 실상 가라앉은 분위기일 뿐이었다. 그는 검을 거두었다. 검신劍身만 석자고, 손잡이는 반자. 즉 15cm정도 되는 검이라 꽤 길 었지만, 그의 몸을 휘감은, 착 달라붙은 흑의黑衣에는. 특히 허리 부분에 그것을 대각선으로 밀어넣어 단단히 감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운신에는 지장이 없었다. 가볍기도 가벼운 검 이니까 말이다. 그 검의 이름이 단월. 달을 자른다는 뜻이었고, 어느새 그 역시 단월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달쪽의 대기를 갈라 흐릿하게, 두동강 나게 해 보일 정도의 검기상인을 해낼수 있었다. 그것을 회주는 참월무斬月舞라고 불렀다. 물론, 회주라고 못하는것도 아니었지만, 단월은 검기를 제외하면 공력이 그렇게 높은 수준 은 아니었다. 1갑자 하고 1, 20년 정도 더 붙은 정도니까. 그렇지만 그것을 쉽사리 해내는 그의 검술이라는 것은 은월회주로써도 감탄스러운 점이 아닐수 없었다. 검의 기술과 검의 기세는 자신을 더 능가하는 살수. 과거도 알수없고, 현재도, 미래도 알 수 없는 그는 회주로 써도 감탄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감시 대상자였다. 그의 몸은 갑자기 흐릿해져 사라졌다. 그리고 공기중으로 녹아든 듯한 모습으로. 그는 오늘 밤의 살인을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삭― 아무런 형식도 초식도 없는. 시골 촌부의 어설픈 검 휘두름보다는 조금 더 날카롭고. 무림 고수의 그것보다는 좀 더 무딘, 오로지 쾌快만을 중시한 빠른 검은 공기마저도 따라오지 못 하여 파공음조차 없이 그어졌다. 비반사 처리를 위해 재를 발라놓았기에 월광이 반사되어서 들키는 일따위는 없다. 잿빛 어둠속에 그려진 잿빛 호선이 한 생명의 목숨을 우습게 앗아갔다. 경비가 목숨을 잃 은 즉시 밤중의 침입자는 손을 놀려 잘려나간 목줄기 부분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즉시 방수용 단단한 천으로 목을 동여매 두었다. 그리고 느긋하게 다시 신형을 어둠속 으로 녹아들게 하면서 움직였다. 가장 중앙부에, 그리고 가장 경계가 삼엄한 부분. 물론 정보야 있지만, 혹시나 변덕으로 잠 잘 자리라도 옮기면 그로써는 낭패다. 대략 1각 정도를 지체하고 나서, 그는 확실히 그 암살 대상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는 천막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 나 갑자기 번갯불 튀듯 튕겨나온 은색의 섬전이 허공을 자르며 쏟아져 들어옴과 동시에 그 는 뭔가 틀렸다는 것을 직감…… 했지만 검은 목에 멈춘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싸늘한 감각. 자신의 감각마저 속이고 이미 먼저 들어와 있는 자. 대체 누구일지 궁금하기만 했다. 사내 역시 흑의로 몸을 감싸고 있었 는데 꽤나 키가 훤칠했다. 지금 그의 오른손에 들린, 자신의 목에 닿은 살상용 병기는 아주 약간 휘어진, 백금빛의 광휘를 은은하게 뿜어내는 짧은 비수였다. '은영비銀影匕……!' 「은월회의 인물인가? 솜씨가 아주 좋아. 다만 내 탐지 범위가 50장 내라는 것은 알았어야 지. 물론 개방해서 늘리면 2, 3리 내의 모든 기를 포착하는것도 가능 하지만 말이지.」 단월은 잠시 침묵하다가 전음을 보냈다. 「의뢰인이 여기에서 대기하는 것은 무슨 심보요?」 상대. 가녀린 목소리를 지닌 은영천검이라는 희대의 고수가 웃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잠시 멈추어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을 여는 검인지 흘러가는 쓰레기 물인지 알수 없는 놈이나 처리하라고. 일검에 죽 여도 상관없고, 의뢰 내용에 따라도 상관없고. 잠깐 할 이야기가 있으니 아까처럼 흘러 나오 든 기어 나오든 반각 내로 나와.」 단월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074. 단월은 빼어든 검으로 눈을 부릅뜬채, 핏발선 눈으로 누워있는 자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자 신이 암살하려던 자임에 틀림이 없자 감탄했다. 이 자를 만약 자신이 정면대결로 죽이려 들 었다면 고전했으리라. 자세히 궁야적을 살펴보자 그는 다시 경탄했다. 도저히 짐작조차 가지 않는 수법으로 점혈 해놓은 것이다. 전신의 신경이 두배 이상 예민해져 있고, 그러면서도 마혈이 점해져 있어서. 딱딱하게 굳은 몸 상태로도 계속 고통을 받고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단월은 잠시 고민하다가 검을 들어 사정없이 궁야적의 팔목에 찔러 넣었다. 곧 눈이 더더 욱 뜨여지면서 약간 벌어진 입에서 게거품처럼 부글거리는 침이 흘러나왔다. 그저 찔린 고 통의 두배이다. 그것도 단월이 그냥 찌른게 아니라 신경과 근육을 동시에 자르면서 찌른 것이다. 섬뜩하게 뼈를 자르는 감각이 검극으로부터 전해져 들어오자 단월은 그것을 잡고 어깨 쪽 으로 예리하게 날을 세우면서 가볍게 검을 진동시켰다. 그러자 더더욱더 눈이 부릅떠지면서 이번에 아예 눈의 실핏줄이 터지며 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말 그대로 혈루血淚인 것이다. 단지 분노나 슬픔에 의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서 흘러나오는 혈루라는 점이 틀렸다. 단월은 차갑게 궁야적의 눈을 들여다 보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검을 이동시켜 팔목에서 팔꿈치의 중앙부위까지 검으로 주욱 갈라갔다. 피가 와르르 토해지면서 새하얀 천을 물들였 지만, 단월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연이어서 팔꿈치 까지 갈랐다가 아예 어깨까지 칼날을 밀고 올라갔다. 옅게 어기충검御氣充劍하여 검날이 상하는 일도 없고, 어기충검 하지 않아도 별로 상관 없지만, 혹여 뼈에 걸리면 골치 아프므로, 그는 조금이나마 기를 불어넣어 어기충검 한 채로 검을 올려 나갔다. 그그극― 이번에는 검을 멈춘 뒤 검을 뒤틀어 주었다. 혼절한 듯 파르르 떨었지만, 자세히 보자 혼절 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손을 써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기절조차 하지 못하게 한 듯 했다. 영이 한 것은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었다. 다만 먼저 마혈痲穴을 점해두지만 다만 근육과 뼈만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경직만 시키고, 다시 혈도를 쳐서 신경과 몸의 기관을 열어 극도 로 예민하게 해 두었다. 이어서 몸의 혈도중에서 혈액순환血液循環을 좋게 해주고, 머리를 맑게 해준 후.―즉, 뇌에 산소의 공급을 원활하게 해주며.― 먼저 신체를 정화하기 위해 내 공을 아주 가아득! 불어넣어 갈갈이 찢어지는듯한 고통을 선사하면서 몸속의 노폐물을 태워 주었다. 그럼으로 인해 몸의 힘이 극대화되면서 역시 고통에도 예민해진 것이다. 이놈이 날 아예 잡으려고 작정했나. 하고 있던 궁야적은 갑자기 그놈이 나가고, 이번에는 음 습한 기운을 뿜어내는 놈이 들어오자 다시 긴장했다. 그 직후 이렇게 검을 몸통에 꽂고 고통 에 피눈물까지 흘리는 것이다. 영의 잔악함에 혀를 내두르는 단월이었지만, 일은 일이었다. 아직 반각이 되지는 않았지만, 빨리 나간다고 뭐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는 쇄골쪽으로 검을 주욱 그어 올려버렸고, 순식간에 그쪽 팔의 섬세한 근육과 신경, 쇄 골이 두조각 나버리면서 피가 울컥울컥 토해졌다. 단월은 그것을 보다가 반대쪽 팔도 그렇 게 해주었고, 팔을 끝내자 다리쪽으로 다가가 그렇게 해 주었다. 이어서 혈도를 눌러 분근착 골分筋搾骨로 일반의 분근 착골보다 몇배나 되는 고통을 선사한후. 반각의 절반이 남았을 즈음에 검으로 미간을 꿰어 죽여버렸다. 검을 뽑자 뇌수와 피가 섞여 흘러내렸다. 단월은 검을 궁야적의 몸과 이불에 닦은다음 들 고 바깥으로 걸어나왔다. 신음조차 흘리지 못하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낸 궁야 적의 영혼이 과연 극락왕생 할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아마도 그 고통 때문에 이성까지 마 비되어서 원한령이 되는 것은 아닐는지…… 바깥으로 나오자 어둠의 장막 속에서 쏟아져 내리는듯한 별빛과 달빛이 그들을 비추었다. 그러나 초절정의 은신법으로 순식간에 신형을 흐려버린후, 곧 무서운 속도로 건물 자체에서 벗어났다. 이어서 가도 위로 신법을 발휘해 솟구쳐 올랐던 두 사람은, 나무가 보이자 초상비 의 신법으로 나뭇잎을 밟고 튕겨 올라 숲으로 향했다. 이 초상비는 난이도도 난이도지만, 수 상비, 등평도수라는 신법에 비해서는 비록 내공 소모가 좀더 적다지만, 상상도 못할 정도의 내공소모를 가져다 주는 것이었고, 곧 단월은 공력의 보충이 시급함을 느꼈다. 영 역시 그것 을 파악하고는 곧 회전하면서 바닥으로 착지했다. 단월 역시 그것을 보고 나무를 타고 흘러내리는듯한, 유려한 신법으로 바닥에 발바닥을 가 져다 댄채 나무에 등을 기댔다. "이제 전음이 아닌 육성으로 대화할수 있겠군." "……" 은영천검의 말에 잠시 단월은 그가 무슨 의도인지 짐작해 보았다. 그러나 도대체가 있을리 없다. 은월회에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이럴 이유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도 별 필요없을 것이고 말이다. 그는 이야기의 서두를 꺼냈다. "나는 자네가 어느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네. 은월회 내에서도 일급살수 정 도로 활동하지만, 회주를 더 능가하는 실력을 지녔다는 것은 알지. 내공이 부족하다는 것 외 에는 그렇게 떨어지는것도 아니야. 득검得劍할 날도 머지 않았어." 단월의 몸은 순간 꿈틀 했다. "걱정할 필요는 없네. 나는 다만 자네의 실력…… 아니. 자네의 자질이 필요해서 이렇게 수 고를 하고 있는 것이니까. 이 주변에는 3장 너비로 단음강막斷音剛幕이 펼쳐져 있네. 목소리 를 내어도 별로 상관 없어." "……원하는것은." 단월이 마침내 입을 열자. 평범하고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은영천검. 현청은 피식 하고 웃는 듯 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복면을 천천히 벗었다. 인간이라고는 믿 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이 달빛 아래로 드러나자, 그 굳은 마음의 단월조차도, 그리고 주변의 자연조차도 동요하는 듯 했다. 단월은 피식 웃어버렸다. "당신은 무공 외에는 본받을게 없는 것 같소이다. 아직 당신에 대해서 잘 몰라서 이런말을 하기는 하지만. 그런 외모로는 너무 눈에 띄오. 살수로서는 실격이지." "환골탈태 후에 이렇게 된 것이니 그런식으로 대하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단월은 고개를 가볍게 숙여보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복면을 풀었다. 그가 복면을 푼 것은 오직 하나. 상대 역시 복면을 풀었기에 자신 역시 푼 것 뿐이었다. "한결 낫군. 내가 자네에게 줄 것은 무공비급 하나와 환골탈태의 기회일쎄." "……?!" 단월은 고개를 확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단월의 눈빛이 순간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상대가 대체 무슨 의중으로 자신에게 이런말을 하는 것일까. "별 다른 의미는 없어. 다만 부탁이 있어서 이렇게 자네와 접촉하고 있네." 단월은 문득 저 얼굴과 저 목소리, 그리고 어투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확실 히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강렬한 기도는 충분히 그런점을 보완 하 고도 남았다. "내가 줄 비급의 이름은 분혼공分魂功이지. 심법부터 아예 따로 익혀야겠지만. 환골탈태, 그리고 나의 도움이라면 지금 쌓은 공력이 모두 없어져도 금방 지금의 공력보다 몇배는 나 은 힘을 얻을수 있을거야."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소? 그리고 그 부탁은 무엇이길래 이런 수고까지 한단 말이오?" "아. 무림을 뒤집어 주었으면 한다는 거지. 자네가 허락만 한다면. 현 무림맹주보다 더욱 강한 무력을 지닌 화경의 고수로써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고. 멸혼자滅魂者라는 가상의 인물 을 알리고. 분혼문이라는 가상의 문파를 형성시켜 그들을 혼란 시키는 거지. 나로써는 실패 해도 별로 손해보지 않을 거야. 소문은 마교와 세가에서. 그리고 '보도'역시 1년 후에 드러 낼 셈이네. 자네가 무림에서 퇴장하면 말이지." "……퇴장?" "물론 '무림에서'. '분혼객'이라는 이름으로의 퇴장이네. 그 후에는 우리 세가에서 일해주 지 않겠나? 자네 정도라면 솔직히 나로써도 꽤 탐이 나는 인재라서. 천류세가에도 화경의 검 객들이 많지만. 모자란 점도 많아." "……" "허락하겠나? 거부하면 나는 계획이 새어 나갔기에 자네를 죽이지는 않더라도 잡아서 세가 에 데리고 가 감금해야 된다네." "……협박이군." "어쩔수 없지. 혈풍을 다시 무림에 등장시켜 균형을 무너뜨리는데에 이것보다 좋은 수단은 별로 많지 않아서. 전형적이지만. 동시에 효율이 아주 좋다네." 단월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은영천검이라는 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웃고 있었다. 단월의 고민은 그리 깊지도. 길지도 않았다. "……하겠습니다." 핏빛으로 물든듯한 목소리가 음울하게 퍼져나왔다. 실제로 이 목소리가 피를 머금게 되는 날은 머지 않았다. 075. 환골탈태와 깨달음의 상관관계. 고고한 달빛이 열심히 대기중을 통과하여 은은하게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달빛이 대지를 미처 적시지 못하는 부분. 상당히 어두운 숲의 한 귀퉁이에서 새카만 인영 하나가 기문진을 설치하고 있었다. 천변오행보미환진千變五行步迷換陳의 보법으로, 오행의 흐름을 따르지만 진법 내부에 들어선 이가 오행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길을 따라 생문으로 한보를 내딛은 순간 천번 변화하고 오행이 역으로 바뀌어 버리는, 그야말로 확실하게 길을 막는 진 법으로, 살상력은 없는 진법이다. 다만 복잡하기로 천하제일에 가까운 진법이지만. 단순한 기문진이라 검진같은 것과는 다른 것이 이 진법이었다. 그리고 그 진법이 완성 되자 마자 소리와 빛이 이상하게 산란되어 바깥에서는 안을 볼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안쪽에서는 바깥을 볼수 있으며, 엄연히 자신들 끼리도 빛의 반사 로 인한 시야 인식을 할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였다. 눈의 착각과 빛의 산란을 교묘하게 접 합시킨 놀라운 진법이었다. 그리고 두 인영이 자리에 앉고 나서, 조용한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단월은, 현경이라는 경지가 어떠한 것인지는 짐작조차 할수 없었다. 도대체 자신은 전신 대 맥조차 아직 다 뚫지 못하고 있거늘, 임독양맥, 생사현관 까지를 타동하고 두 번의 환골탈태 까지 거친 이가, 자신보다 나이 어린 자가 지금 자신의 앞에서 간략한 설명을 늘어놓고 있 었다. '환골탈태와 깨달음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갑자기 어떤 부분이 나오면 다른곳으로 빠지기도 했지만. 영이 말하는 방법…… 최단 기간 내에 화경 오르기 프로젝트(?)는 간단하면서도 신선했다. 일단 몸의 대맥大脈들이 뚫리지 않은 상태에서 강기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란 하늘의 별을 두들겨 부수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반물질 폭탄이 있다면 모를까. 어쨌든 대맥이 뚫리지 않 아도 천재적인 두뇌로 깨달음을 얻는 그런 이들이 있지만. 수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재 능을 지닌 이들이며, 그나마 그들도 아슬아슬한 찰나의 상념을 잡아 내어 간신히 깨달음을 얻는 것이 대부분이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내공. 공력이었다. 이것을 쌓으려면 일단 몸을 단련하는 것이 기초 이다. 어느정도 몸의 단련이 필요한 것은, 내공이나 외공이나 같았다. 어쨌든 몸이 다져 지 면, 몸속에 흩어진 내기內氣를 단전으로 모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좌공座功의 필요 이유다. 그리고 여기서 영약을 더도 말고 상응하여 반발하지 않는 종류 두가지만 골라 섭취하여 공 력으로 바꾸면 더욱 좋다. 영약이 물론 나쁜 것은 아니고, 잘 복용하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잡다하게 여러 가지를, 효과가 서로 상충하여 어긋나 버리는 것들까지 연단하여 융합과 배합조차 하지 않고 처먹으 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게 되어 있다. 양기와 음기를 먹고 자란 영약들도(극음이든, 극양이 든. 아니면 둘을 동시에 얻어 어느 방향도 아니든.) 간혹 상충하기도 하고, 완전히 용해되는 경우 역시 거의 없기 때문에, '환골탈태'가 정말로 필요하고,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다. 마지막 조건이면서도 그것은 정말로 필요하다. 여기까지의 공력 위주 수련은 일단 명가의 일반적인 수련 방식과도 닮았고, 아마도 거의 같다. 고수가 임독 양맥을 뚫어 주는 경우도 있지만, 진기 소모가 너무나도 지대하므로, 이 방법은 심맥이 그리 화기와 탁기에 굳어지지 않은, 생후 몇 개월이 되어 시행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역시 이 방법도 내력 소모와 진기 소모가 너무나도 크고, 시행하는 이도 잘못하면 목숨이 위태로워 거의 쓰이지 않는 극단적 방법이다. 만약 시행자가 십여갑자에 달하는 공 력을 지녔다면 전혀! 걱정할 필요 없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외공…… 즉. 초식부터 익히며 신체를 단련해온 이들은 몸을 많이 사용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에서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몸을 사용해 나가면서 몸 속의 내기는 점차 강해진다. 선심하여 내공부터 단련한 이들이 십이주천하고 운공하여 축기 蓄氣하는 것과는 달리 내기 자체를 강하게 하는 것이다. 어쨌든 검을 휘두르고 권각을 뻗고 치고 받는 가운데, 몸의 내기를 키워 나가게 되는데, 호흡을 자연적으로 싸우고 단련하며 다 스리는 법을 깨닫게 되면서 자연의 기운도 함께 받아들이면서 몸 곳곳의 내기를 아주 강력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검을 휘두르며 외공을 연마하다 보면, 내기의 단련이 무섭도록 빠르게 가속 화 된다. 역시 내공 위주의 수련에서도 이런 때가 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주변의 기와 자 신의 몸속의 기를 느끼게 된다. 즉, 외공을 단련하며 내기가 커지면 자연적으로 혈맥의 탁기 와 화기가 방출되어 사라지고, 심맥이 부드러워 지는 것이다. 그리고 내기 역시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자동적으로 그 흐름을 보여주게 된다. 그것에 매달려 마침내 그 내기를 혈맥에 편승시키고, 점차적으로 혈맥에 스며든 기운이 단 전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스스로 물러지게 된 임독양맥을 타동하고, 그 길을 따라 십이주천 하고, 팔 다리의 대맥을 뚫고, 환골 탈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외공 위주의 수련 만으로는 힘을 얻기가 불가능하다. 보통 1년 가량의 단련 후에는 기를 좌공을 통해 단전에 축적하고, 임독 양맥부터 뚫어 나가게 마련이다. 이것의 장점은 크다. 순리를 따르며, 내공력의 움직임이 내공 수련부터 했을 때 보다 더욱 더 수월하게 이루어 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영 자신은 지옥같은 날들…… 그 인독으로 만들어지고, 검을 휘두르며 생활하던 나날속에 서 쌓인, 강력하기 짝이 없는 내기. 그리고 신수사의에게 구출 되고 나서 절묘하게 배합되어 있는 영약을 몸 전체로 받아먹은―이라기 보다는 흡수한― 적도 있다 그리고 그의 선천적인 자질과 '기를 다루는' 힘을 통한 수단으로 먼저 환골탈태를 해 나가면서 강기에 대한 깨달음 을 얻어 화경에 오른 뒤, 자신이 만든, 영기의 고리, 기의 고리, 자연의 고리인 '삼기의 고리' 를 만드는 북명천지조화심법을 가속화 하며 현경의 육신으로써 환골탈태 한 것이다. 즉, 생 사현관을 타동했다는 말이다. 마지막 자연의 고리는 주변의 기운을 회전시키면서 점차적으로 그 축기를 쉽게 하기 위해 기의 고리와 반대로 움직여 기의 흐름을 약화시키고,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수법이다. 그러나 영기의 고리라는 것이 왜 만들어지는 지는 그마저도 알수 없다. 어쨌든, 육체가 환골탈태 하여 무공을 얻기 쉬운 조건으로 바뀌면, 깨달음을 얻기가 너무나 도 수월해 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화경. 무형검을 얻는 방법에서부터는 탁 하고 막 혀 버렸다. 일단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무형검이라는 것은 그로써도 난해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환골탈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자 신의 착각―현경의 공력 한계점―을 알게 된 뒤, 그는 더한 혼란에 빠져 버렸다. 전신의 모 든 세포 틈틈 사이까지 공력을 채워 밀어 넣었음에도 전혀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몸이 박 살나 버릴줄 알았거늘, 몸은 오히려 멀쩡했다. 무려 수치상으로 3600년의 공력. 전신이 거대한 진력의 덩어리로 변한 것이다. 단전에서 혈 도를 통해 기운을 움직여 힘을 뿜어낼 필요조차 없었다. 생각한 즉시 흐르는 물과 같은 기 에서 스스로 힘이 움직여 기운을 외부로 전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심검을 만든다. 고 생 각한 즉시 장심에서 기운이 뻗쳐나오고, 단전에서 기가 빠져나간 느낌조차 없었다. 심검은 매개체가 없이 강력한 강기의 실체화된 검을 유지시키는 수법이다. 그래서 그 공력 소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다. 그럼에도 느낌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웬지 모르지만 '금강폭열공'의 막혔던 초식의 이후 부분도 고작 두 개의 초식만 사 용할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그래도 '성공'이라는 것은 신화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였 기에, '틀렸다'는 것은 아니기에 그는 안심할수 있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들을 적당히 요약해서 들은 단월은 놀라고 있었다. 일부는 아는 이야기 지만,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는, '강해지는 방법'의 간단한 개요였다. 그리고 3600년 공력을 가진, 거대한 진기 구슬(?)이 되어버린 현경 고수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단월은 한숨을 토해내었다. "다 들었나? 그럼 나는 먼저 그대의 몸을 '화경'의 경지로 올려 놓을거야. 환골탈태 시켜 주겠다는 것이지. 그리고 다음으로는, 내가 던져주는 이 비급을 익히고. 강호에 나가는 거야. 외운 후에는 이 비급을 태워버려. 어쨌든 앞으로 1개월이면 너는 화경의 극에 이를거다. 그 래봤자 비극상의 내용은 6성 정도를 달성한 것이겠지." ……화경에서 6성이라. 단월은 감탄해버렸다. 하지만 곧 표정을 굳히면서 그에게 물어보았 다. 이정도라면 틀림없이 아까 말한 조건만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리라. 틀림없이 다른 조 건이 있을것이다. "아까 설명한 조건 외에 다른 조건이 있을법 한데……" "아까와 같아. 자네가 만약 사파로 취급당해 공적으로 몰리거나 하더라도 결코 죽는 일은 없을거야. 나는 악당은 아니지만, 선한 이도 아니야. 무공은 가져간다. 물론 공력을 폐한다 는, 단전을 부숴버리겠다는 소리는 아니야. 목숨을 앗겠다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공력을 지 금 수준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지식은 남겠지만. 재구성된 육체 역시 그대로다. 손해보는 장 사는 아니겠지." "……그럼 그쪽은 어떠한 이익을 보는거요? '보도'의 출현 정도로는 무림에 혼란만…… 설마!?" 단월이 뭔가를 눈치채고 신음성을 흘리자 그는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훗. 알았나? 뻔하지 않나." "……" "복수! 피 한방울, 살점 한조각 남기지 않는. 무림맹…… 아니지. 적어도 현 맹주와 그 가문 의 완전한 멸절…… 아니. 파멸! 혈육 한점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그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그 말을 했다. 그래서 단월은 잠시 그 말의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너무나도 가볍게 말한 것이다. 하지만 곧 단월은 침중한 신음을 흘렸다. 자신에게는 물 론 수상쩍은 기연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의 여파는…… "……믿어지지 않는군. 더더욱더. 나 따위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그것도 급조된 고수로 만들어서 강호에 내보내는 것이지만. 이정도 비급과 이 비급을 만들어낼 가상의 문파를 실 제로 믿고, 그 문파의 모든 것이 남아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리고 그 지도가 마침 떠 돌면…… 무서운 혈풍이 불겠군." "……일이 끝난 후. 본 가에서 일해준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말하는 것은 자네가 은월회 로 돌아갈 경우에의 일이네. 절대로 무공을 앗지 않을걸쎄. 비밀만 지켜 준다면. 맹세도 할 수 있네. 내 명예를 걸고 말이야." "……나야 이대로 소속을 옮기던지 말던지. 별로 상관은 없소. 그리고 나 역시 무림인이오. 이름을 날려보는것도 괜찮지 않겠소." "……흠. 믿겠네. 좋아. 그럼 시작해 볼까?" "……" 단월은 격동하는 감정을 억눌렀다. 077. 단월은 긴장이라는, 마치 자신이 살수로써의 첫 임무를 받았을 때 만큼, 아니. 그보다 배는 더 강하게 느껴지는, 이 '긴장감' 때문에 갈증을 느꼈다. 이 갈증은 목을 마르게 하는 것 뿐 만이 아니라, 속까지 시꺼멓게 타들어가게 하는 듯 했다. 그정도로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은 그의 몸 역시 굳어지게 했다. 그의 어깨는 주체하지 못할만큼 거대한 긴장 때문에 건드리면 부서져 버릴 듯, 툭 쳐버리면 우르르 무너져 내릴 듯 굳어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가 암살자든 아니든, 일단은 검을 쥔 무림인이었고, 아무리 화경의 육신을 얻기 위한. 모든 무림인들이 꿈에서도 바라마지 않는 환골탈태를 하기 위해서 라지만, 지금까지 익혀온 심법으로 단전에 단단헤 붙들어둔 원기진 력, 공력을 흩어 체내에 순수 영기로 흐르게 하고, 그것을 다시 다른 심법으로 모아서 대체 하는 것이니, 긴장이 되지 않을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단월은 공력이 상당히 깊었기에, 지금까지 쌓아올린 힘이 송두리째, 단 한 번의 실수로 도 없어져 버릴수 있는 위험부담을 지기에는 불안하다고 할수 있었다. 그는 살수였다. 그래 서 정식으로 내공을 닦을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었기에, 그 위험부담이 더 커진 것이다. 차라 리 도가 계열의 안전한 심법을 익히고 있었더라면 위험부담이 반감되었겠지만, 어쩔수는 없 다. 그런 위험 부담이 있어도 시도는 해 보고자 하는 이들이 무림인이었지만, 그는 암살자라 는 직업을 지니고 있었고, 그런만큼 성격도 신중했기에, 고민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영이 말하길, 아예 영약을 섭취해서 완전 융해를 시키지 않는 바에야, 정파의 명문 자제나 영약없이 순수 내가공부로 하나의 심법만 수련해온 그나 차이는 없으리라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단월같은 살수가 차라리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침착한 정신세계 구조로 인해 뭣도 모르고 날뛰며 칼춤이나 추어 대는 멍청이들보다야 훨씬 안전하다는 것이다. 심법이 라는 것이 단순한 내가진기 운용의 수가 아닌, 정신수양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 육체와 정신 을 모두 통하고, 영혼마저 통하는 것이 바로 기 수련이기 때문에. 차라리 그가 더 안전할수 있다는 것이다. 영의 말도 말이었지만, 단월은 아무리 위험이 크다 하더라도, 한 번은 시도해볼 작정이었다. 잘 되면 좋고, 실패 해도 상관 없었다. 전자는 이름을 크게 강호에 떨치고, 가슴떨리는, 열 기로 끓어오르는 검의 교환과 보다 강한상대들과 싸울수 있다. 그리고 후자라 하더라도, 죽지 만 않는다면 전자로 바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혈맥이 막힌다 치면 영이 그 무시무시한 공 력을 뚫어줄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혈맥이나 단전이 파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앞에서 무시 무시하다는 수식어를 붙일 만큼 깊은 공력을 지니고 있는. 진력의 덩어리나 다름없는 영이 단전과 혈맥 전체를 진기로 감아버리면, 고통은 강하게 느끼게 될 지라도, 어떻게든 환골탈 태는 할수 있을테니까. 환골탈태에 들어서기만 한다면야 그 후로는 걱정이 없었다. 심마만 생겨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생겨나더라도 억누를수 있다면. 영은 잔뜩 굳어버린채 숨을 천천히 쉬면서, 긴장을 애써 눅이려 드는 단월을 바라보았다. 살 수…… 자신도 전직 살수였다. 그런만큼 같은 세계 사람은 아니어도, 같은 과거, 어둠으로 몸을 감고 한 번 그 안온함을 느껴 본적이 있다는 것은, 단월과 자신을 잇는, 동질감의 끈을 볼수 있게 해 주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자신은 어둠을 좀더 일찍 벗었다. 그것도 어둠이 자 신을 삼키려는 것에서 도망쳐 왔었고, 이 단월은 지금, 영의 도움으로 어둠의 옷을 벗으려 한다는 것 정도였다. 어둠은 안온함도 주지만, 죽음과는 다르면서도 같은 빛깔을 띄며, 그 어둠을 입은 자를 끊임없이 삼키려 들기에, 자칫하면, 조금만 방심하면 먹혀버린다. 자신은 이미 죽었지만, 그 형상은 남은 신수사의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져 내려 가다가 구해 졌었다. 그는 살려준 대가로 일을 하나, 무거운 임무를 하나 그에게 남겼다. 배운것도 많 다. 의술, 정신적인 면 말이다. 그리고, 그에게 배운 것은 의술이나 그런 면 외에도 또 한가 지가 있었다. 그것은…… '이 세상도, 그럭저럭 살만 하다는 것…… 정도겠지.' 영은 생각을 끝맺었다. 그리고 단월이 명상에 들어간 것이 보이자 그에게 전음을 보냈다. 「시작한다. 마음의 준비는?」 「……다 된 것 같습니다.」 전음으로 역시 영의 전음에 대답하는 단월이었지만, 육성이 아닌 전음으로도, 갈라진 듯, 긴 장으로 바싹 말라버린 감정의 이미지는 확실하게 전달 되어왔다. 영은 그의 긴장감을 느끼 자 희미하게 미소를 띄웠으나, 곧 단월이 오심을 천으로 향하자 뒤에서 같은 자세로 앉았다. 그리고 영은 천천히 쌍수의 장심을 그의 등에 가져다 댔다. 혈도 위에 올려놓을 필요는 없 었다. 다만 그가 올려놓은 등어리의 부분은, 하단전의 뒷부분과 중단전의 뒷부분이었다. 단월이 영의 손에 등에 올려진 느낌에 마른침을 삼킨 찰나, 갑자기 힘이 몸에서 주욱 빠져 나갔다. 그리고 그제서야 살갗 위로 약간 툭툭 건드리는 느낌이 났다. 순식간에 혈도를 눌러 공력을 단전에 묶은 심법의 흐름을 흩어버린 모양이었다. 가벼웠던 몸이 순식간에 묵직해져 버렸다. 느낌조차 없었는데, 고통도 없이 공력이 단전에서 산산히 흩어져 세맥 사이로 스며 들었다. 이어서 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느낌이 어떤가?」 "몸이…… 무겁다는…… 느낌 외에는……" 단월은 몸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각 때문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가 띄엄 띄엄 대답하자 영은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다시 전음을 사용했다. 「고통은 없었겠지. 좋아. 그럼 시작하겠네. 내가 운용시켜줄 심법은 내가 사용하고 있는 심 법과 이번에 새로 만든 심법을 합쳐서 새로 개발한 심법이네. 잘 익혀두게. 구결은 외울 필 요 없네. 원리만 알면 되니까.」 "……" 단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하겠네.」 갑자기 단월은 전음이 들리자 마자 단전 근처로 무수한, 상당히 많은 양의 내기內氣가 집결 함을 느꼈다. 전신으로 흩어졌던 작은 기의 덩어리들이 단전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무 서운 속도로 모여든 기는 마치 블랙홀로 빛이 빨려들어가듯 단전 내부로 스며들었고, 곧 단 전 내부로 순수한, 심법으로 정제하여 사용할수 있도록 해 놓지 않은 내기가 뭉쳐졌다. 뭉쳐 진 내기의 깨끗한 기운은 단전에 지금까지 축기했던 공력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훨씬 깨끗하다. 하지만 뭔가 무거운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면 이 기운을 느낀 기억이 있다. 단순히 좌공을 통해 공력을 끌어모아 두었을때의 그 감각을 다시 느끼고 있다. 꽤 오랫동안 수련하면서 내기를 끌어모았기에 이 감각은 아직 몸에 그 잔재를 남기고 있었던 듯 했다. 영이 전수해줄 심법은 영이 사용하고 있는 천지조화심법이 아니었다. 다른 심법으로, 속성으 로 내공을 모을수 있는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천지조화심법과 다를바가 없지만, 그 원리와 흐름이 다른 심법이 이번에 그가 전수할 심법이었다. 제조한 분혼신공의 비급에도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천지양기天地兩氣를 흡수하고, 음양이기陰陽二氣의 조화와 무극無極의 힘을 수 련하게 하는 심법으로, 이름은 백령지기순행심법魄靈之氣順行心法이었다. 「자. 잘 기억해 두도록.」 영은 천천히 백령지기순행심법의 구결을 짚어나갔다. 영이 만든 심법의 공통점은 혈점을 그다지 중요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만큼 해는 없지만 이상하기 짝이없는 부작용이 간혹 나타나곤 하는데, 그가 사용하는 삼환심법의 부작용이라고 하기 뭣한 부작용은 바로 영기의 고리였다. 부러 삼환을 만든 것은 아니고, 영 기의 고리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데 생겨나 그것이 좋은 작용을 해 주긴 했지만 어딘 지 모르게 거슬리는 느낌인, 골치아픈 부작용이었다. 그것도 자기 자신에게만 생겨났기에 유 독 골치아픈 물건이었다. 그리고 이 백령지기순행심법. 줄여서 백령심법의 부작용은 아직 알수 없지만, 단월이 이것을 운공하다 보면 무슨 부작용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영이 만든 심법 둘은 확실히 혈점과 혈 심을 무시하고 움직여댔다. 삼환심법만 해도 오로지 임독양맥의 타동을 중시하는 심법으로, 특이한 묘용이 섞여있지 않 았다면 삼류 심법만도 못했을 것이다. 위험도야 없다고 쳐도 북명신공의 완벽한 이해 없이 는 또 다루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영이 아닌 타 전수자는 영기의 고리가 생기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단월의 단전에 뭉쳐져 있는 내기를 영은 어이없게도 천천히 심장위로 밀어올렸다. 심장위로 올라간 내기는 심장 내부로 스며들었고, 심장 내부로 스며들었던 내기는 심장에서 밀려나가 는 거센 혈류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혈류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내기는 무서운 속도로 혈도를 치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혈류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면서 내기의 힘과 혈류의 힘을 합쳐서 조금씩의 내기만을 소모하여 모든 혈맥을 빠르게 뚫어나가는 것이다. 모세혈관母細血管까지 스며들어간 내기는 특이하게도 모공 바깥으로 빠져나와 정수리 위까 지 올라가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주욱 아래로 내려와 주변의 자연력을 빨아들이면서 매우 강 한 기운으로 변모하여 땅으로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조금 더 작은 나선을 그리면서 빨려올라 가 정수리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한번 범위를 좁혀 내려갔다가 거의 몸에 닿을만큼이 되 어 올라와 콧속으로 파고들어 강대해진 내기는 혈류 내부에서 아직도 작용하며 소모되고 있 는 내기와 합류하여 아까보다 오히려 더 많은 양의 기운이 되었다. 순수한 내기가 되어 아직도 정제되지 않은 듯, 기운은 희고 맑았다. 그러나 단월은 알수 있 었다. 이것은 정제된 공력이다. 오히려 너무나도 맑고 깨끗해 주변의 자연력이나 내기와 심 한 차이가 없을 뿐인 것이다. 정순하기 그지없는 공력이 된 기운은 다시 심장으로 돌아와 천천히 뭉쳐졌다. 그리고 점점 퍼져서 아예 사라져 버렸다. 단월은 눈을 번쩍 떴다. "없어지다니……?" "없어진게 아니지." 단월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생사현관을 제외한 모든 대맥은 뚫려있는데…… 아직 심법의 첫 번째 수위밖에 이르지 못 했어. 이것은 혈맥을 뚫기를 먼저 하고 공력 쌓기를 나중으로 하는 심법이라서. 공력을 미리 다른 심법을 쌓았다가 공력을 내기로 바꾸고 다시 단전으로 빨아들여서 시행해야만 하지. 그러니까 이런 경우를 생각하고 만든 심법이다. 이것이야. 비급 내부에 공력을 고통 없이 내 기 자체로 바꾸어 버리는 수법도 기재되어 있어서 아마 무림에 떨어지면 아주 많은 피를 대 지 위로 뿌리겠지." 영은 숨을 가볍고 길게 내뱉었다가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단월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심법의 4성 성취 정도라고 할수 있지. 그리고 이제 제대로 해볼까. 정제되어 공력이 된 기 운은 전신에 일단 고루 퍼져있지. 심장의 힘을 빌려서 혈맥을 뚫은 뒤에 순수한 공력을 단 전으로 끌어모아 '순행'을 시작하는 것이 이 심법의 중심적인 이론이야. 사실 3갑자에 이르 를 정도의 공력이 되도록 계속 이 일을 반복해 주어야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3갑자에 조 금 못 미치는 정도이니 아마 본 운공으로 들어가도 상관 없겠지." 단월은 다시 눈을 반개했다. 그리고 나서 가부좌를 한 자세 그대로 대기하고 마음을 가라앉 혔다. 곧 그가 명상을 시작하자 영은 천천히 그의 몸 전체에 고루 퍼져있는 내기를 빨아들 여 심장으로 모아들였다. 심장으로 모여들어 다시 힘의 덩어리가 된 기운들은 천천히 혈류 를 따라 이동했다. 이번에는 혈류를 따라 이동하던 기운들은 빠르게 혈류 밖으로 빠져나와 전신의 모공에 아직 남아있는 기운들을 돌면서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면서 전신에 아직 쌓여있는 사기邪氣들을 빨아들였는데. 이번에는 야예 자정작용自淨作用까지 하고 있었 다. 조금 탁해졌다 싶으면 무서운 속도로 순청한 그 빛깔로 돌아오는 것이다. 공력은 천천히 단전으로 빨려들어왔다. 그리고 단전 내부로 스며들어 다시 단전을 채워나간 공력이 모두 원상 복귀 되었다 싶자 곧 그것의 제어가 풀리면서 단월은 정신이 맑아짐을 느 꼈다. 몸이 날아갈 듯 상쾌했다. 그저 운기해서 맛봤던 상쾌함의 수준이 아니었다. 말 그대 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은 느낌…… 세상 모든 것이 새로이 느껴졌다. 공력이 돌아오자 급속하게 좁아졌던 감각의 범위가 오히려 일전보다 두배는 넓어졌다. 주변 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숨결이 그에게 한걸음 더 크게 다가왔다. 주변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 람의 흐름마저 느껴질 정도로 그의 감각은 세밀하면서도 더더욱더 커져 있었다. 눈을 감았 음에도 눈을 뜬것보다 더 많은 정보가 그의 몸을 들락날락거렸다. "자. 이제 운공을 시작하고. 바로 십이주천을 끝마치면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시작될거야. 그 러면 백령심법의 운용 대신 호흡을 깊게 시작하면 빠른 속도로 공력이 돌아올거야. 백령심 법의 묘용은 또 여기에 있지. 부러 쉬면서 운공할 필요 없이, 현경에 오르지 않아도 주변의 기를 자유자재로 흡수할수 있지. 단점이라면 공력을 쌓는데 더 큰 효용을 주지는 못한다는 점이지. 시작하게." 단월이 날아갈 듯 가벼운 몸과. 무서울 정도로 강해지고 깊어진 공력에 대해 감탄하고 있다 가 그의 말에 깨어났다. 그렇지만 그는 두말없이 공력을 운용해 십이주천을 시작했다. 또 하 나의 화경에 이르른 고수가 탄생하려는, 역사적이면서 무림을 뒤흔들 또 하나의 사건이 시 작되려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영은 아무 감흥도 없이 이런 생각만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제 이따위 늙은 말투 쓰지 않아도 되겠군.' ……아무리 칙칙하고 고리타분한 영이라고 해도 이 말투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 다. 연기는 잘 했다고 쳐도 어색함은 어쩔수 없는 모양이다. 078. 십이주천을 막 마치기 시작한 단월의 몸에서 은근한 회백색灰白色의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 작했다. 그리고 그 회백색의 기운은 탁한 그 빛에서 순수한 백색으로 변했고, 흔들리며 춤을 추는 백색의 불꽃과 같은 그 기운이 천천히 몸 주위에서 회전하기 시작하자 단월의 몸이 가 볍게 흔들렸다. 주변의 자연력이 소용돌이 치기 시작함을 느낀 영은 나뭇가지와 돌멩이를 몇 개 더 사용해 서 진법을 강화하고 주변에서 이 기의 회오리를 느끼지 못하도록 기의 회전을 차단했다. 그 리고 나서 그는 환골탈태의 현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단월의 몸에서 피어올라서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는 백색의 불꽃이 한자 정도 더 뻗어나왔 고, 순간 그것이 강렬한 열기로 변하여 주변을 덮치기 시작하자 영은 공력을 움직여 강한 호신강기護身剛氣를 형성해 열기를 차단했다. 주변의 풀은 강렬한 열기에 누렇게 말라 비틀어지다가 순식간에 연소되어 탄소가루가 되어 버렸다. 시커멓게 타들어간 수풀. 결코 나무도 안전하지 못했다. 열기가 한층 한층 그 강도 를 높역마에 따라 나무의 껍질도 말라 비틀어지기 시작했고, 곧 시커멓게 타버린 나무와 나 뭇잎들을 바라보면서 영은 인상을 구겼다. 나무의 껍데기 뿐만 아니라 내부까지 열기가 천 천히 침투하는 것과 나뭇잎이 타고 나뭇가지가 부숴져 내리며 쏟아지기 시작한 재들 때문에 어쩔수없이 영은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의 염파동念波動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순수한 정신력이 기적을 일으켰다. 염파. 강렬한 염원이 닿은 순간 영의 몸 주변으로 강력한 역장力場이 형성되었고. 밀어내는 힘을 지닌 염력의 장이 영을 중심으로 2장 정도 퍼져 재가루를 요란하게 밀어내었다. 염파동의 막 위로 무수한 재들이 쏟아져 내렸으나 재들은 옆으로 미끄러져 내리면서 영의 주변에만 수북하게 쌓였을 뿐이었다. 이제 단월의 몸은 강대한 기류를 휘감고 거의 반 장에 이르르는 백색 불꽃을 휘감고 있었 다. 백색 불꽃이 강해질때마다 단월의 피부가 주욱주욱 갈라졌다. 실상 갈라지기 시작한 것 이 아니라 이미 내부는 기의 태동에 재가 되어있었다. 외부의 변화도 놀랍지만, 내부 역시 그러했다. 기는 무서운 속도로 주천했다. 십이주천에서 가속이 붙자 마자 벌써 몇 번째 회전인지 알수 없을 정도였고, 회전할때마다 몸의 피부 바로 아래까지 기의 파장이 갔다가 부딪히면서 다 시 한쪽으로 돌아와 공력을 늘려주었다. 그러나 파장의 발산이 멈추었을 무렵에는 불꽃의 확산도 멈춘 후였다. 그리고 공력이 소모되기 시작했다. 전신의 모공을 통해 빠져나간 공력이 정수리 위로 올라 가 뿌연 안개의 장막을 형성했다가, 천천히 뭉치면서 그것은 하나의 연꽃 봉오리로 화했다. 너무나도 선명한 연꽃의 봉오리. 그리고 그것이 천천히 피어나며 잎을 선보인 순간. 그것은 공기중으로 녹아버리듯 사라졌고, 지독한 열기가 추던 춤도 사그라들었다. 공력은 마지막으로 빠져나가 삼화취정을 보이기 전에 단전의 용량을 늘렸고, 전신의 근맥과 혈도를 강화시켰으며, 뼈와 살을 단단하게 만들고, 정신을 맑게 해 주었다. 몸이 재구성되면 서 아예 20대 초반의 미남으로 탈바꿈한 단월은 옷마저도 완벽하게 타서 그렇지 않아도 검 은 옷이 아예 재가 되어버렸다. 매끈하고 깨끗하지만 단단한 살결이 열기가 사그라 들고 나서 드러났다. 단월이 환골탈태를 끝내고 나서 기진맥진 해 있다가 영이 말한대로 호흡을 깊게 하여 공력을 조금씩 보충하고 있을 무렵 이미 영은 기문진 바깥으로 나가 기문진 바깥에서 천천히 주변을 훑어보고 있었 다. 기문진 바깥은 조용했지만 영의 감각 범위 내에는 이미 여섯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와. 셋만. 나머지는 주변을 살피도록." 사사사삭― 영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자 나뭇잎을 헤치고 세명의 인물들이 나타났다. 전부 다 흑색의 옷 을 입은 이들로서. 바로 천류세가의 천광대들이었다. 그들은 천천히 영에게로 다가와서 가볍 게 경례를 했다. "그것은 완성 되었나? 아, 일단 여분의 옷부터." 영이 말하자마자 천광대중 한명은 등에 멘 봇짐에서 흑의 하나와 속옷가지 하나를 꺼내들었 다. 영은 그것을 받아들고 나서 한숨을 토해냈다. "그건?" "완성되었습니다. 여기." 옷을 건네준 천광대원중 하나가 등에 맨 두 개의 검중 하나를 아예 검집채로 풀어서 하나를 영에게 건네었다. 영은 천천히 검을 받아서 검 손잡이를 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주 느긋하 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뽑았다. 스르릉― 날카로운 금속성이 주변에 퍼져나갔고, 곧 영의 눈에 보인 것은 묵빛을 흘리는 회흑색灰黑 色의 한자루 검이었다. 검은 날카로웠지만 어둠속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앵앵거리면서 예 기를 번뜩이는, 그러나 웬만하면 느껴지지 않는 날카로운 기운은 검에 은은하게만 맺혀있었 다. 영은 피식 웃었다. 명검이군. 하는 생각이 든 탓이다. 8할은 오철. 나머지 2할중에서 절반은 풍아風牙라는 특이한 금속이었고, 나머지는 현철玄鐵 이었다. 풍아라는 것은 은은한 녹색빛이 도는 금속이었지만 금속 자체는 탁한 은빛이었다. 그러나 그 빛을 오철과 현철의 맑은 어둠의 색이 눌러버린 것이다. 그래서 검은 은근한 바 람이 일어난다는 것을 제외하면 흑색의 패검이었다. 일반적인 패검보다는 좀더 검신이 넓었 지만 그외 특이점은 없었다. 풍아는 은근한 녹색빛이 도는 금속이면서 동시에 다른 특이점이 있다. 현철보다 오히려 더 단단한 금속이지만 순수 풍아를 검으로 만들기는 힘들다. 순수 현철로 만든 검은 있지만 순 수 풍아로 만든 검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이 금속은 제련이 어렵다. 현철보다 두배는 많이 생산되는 금속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다루기란 정말 힘들다. 이 풍아를 녹인 것도 영이 드 디어 만들어낸 특수 풀무와 화약을 먹여놓은 숯 덕분에 만들어 낼수 있었다. 웬만한 명장은 풍아를 가공하기 위해 활화산 근처에서 산다. 그리고 마그마의 열기를 끌어 들여 풍아를 제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은 화약을 먹인 숯과 특수한 풀무로 마그마의 열기 에 근접하는 열을 반각 정도 유지시킬수 있었고, 그것으로 공력을 이용해 검에 포함시킨 것 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또 제련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일단 검날을 만들기가 공교로웠던 것 이다. 검날은 어떻게든 어느정도 만들어낼수 있었지만 또 이게 날 세우기가 어지간히 힘들 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은 그것을 방법이 있다는 운에게 던져주고 먼저 활동부터 시작한 것이다. 운이 어 떤 방법으로 검날을 세웠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재주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영은 검신을 다시 검집으로 밀어넣었다. "재주도 좋군. 무슨수로 날을 세운거야?" "피를 이용했다고 들었습니다." "피?" 영이 호기심이 동해서 물어보자 천광대원중 한명이 천천히 설명했다. "옛부터 대장장이들은 필생의 대작을 만들다가, 특이 금속을 다루다가 실수했을거나 하는 경우 피를 이용한다고 들었습니다. 다량의 인혈을 부어 금속의 기운을 일순간 억눌렀다더군 요. 그 화약을 먹인 숯과 풀무를 이용해서 다시 가열했으나 실패해서 피를 이용해 날을 간 신히 세울수 있었답니다." "그런가…… 포상해야겠군. 후하게 지불하라고 지시하게." 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천광대원은 깊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영은 옷과 검을 챙겨 든다음 그 자리에서 증발되어 사라졌다. 신형이 움직였다는 느낌조차 없었는데 이미 그의 신형은 기문 진 안쪽으로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천광대원들은 그가 자리에서 종적을 감추자 천천히 몸을 숨기고 기척을 감추었다. 영이 어둠에 몸을 감추고 기문진 안쪽으로 스며들어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단월의 면 상에 옷을 집어 던지자 단월은 눈을 감고 있다가 퍼뜩 깨어났고, 곧 옷을 받고 나서 그것을 대충 걸쳤다. 단월의 외모는 확 바뀌어있었다. 물론 심하게 바뀐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도 날 카로웠던, 한자루 검과 같았던 기세가 많이 사라져 있었다. 잘 갈무리되어 있는 기세여서 그 런지 몰라도. 눈에 깃들어있는 강렬한 기광氣光만 아니라면 아주 평범하게 보였다. 외모 자 체는 미남의 그것이었으나 그 날카로웠던 눈매도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고, 환골탈태 하면서 얻어낸 몇가지 깨달음으로 인해 살기와 살의, 그리고 예기와 냉기로 점철되어 있던 눈빛 역 시 아주 차분하게 가라앉아있었다. "기분은?" "……최고입니다." "잘됐군. 소감은?" "상쾌하다는 느낌 외에는……" "그렇겠지. 좋아. 이제 비급을 배우도록 하고…… 세가로 오지 않겠나? 본타 건물의 깊숙한 곳에서라면 무리없이 무공공부를 할수 있을테니……" "……연성 후에는, 무림에 나가서 어떤 방식으로 무림인들을 속이면 됩니까?" 단월은 일반 사람이 따라하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길게 들이쉬고 내 뱉으면서, 한점의 감정 동요조차 없이 질문을 던졌고, 영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비무행比武行. 살殺! 정正과 사邪의 구별 없이." 영의 말에 단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문조차 없었다. 나지막하게 중얼거릴 뿐. "정, 사를 가리지 말고…… 혈풍血風이 불겠군." "마교만 건드리지 마." 영의 말에 단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영이 던져준 검을 받아들더니 보통 무사들이 뛰 어난 명검을 쥐었을 때 발하는 감탄사도 없이 무덤덤한 눈길로 검을 반쯤 뽑아 훑어보다가 다시 검집에 밀어넣고는 그것을 허리에 찼다. 그리고 나서 가볍게 한숨을 토해냈다. "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참령검斬靈劍." "영혼을 자르는 검이라……" 단월은 가볍게 검의 손잡이를 쓰다듬었다. 단월의 감각은 놀랍도록 확장되어 있었다. 이전의 감각보다 몇배는 더 넓어진 감각. 대기의 파동 하나 하나가 몸에 착 감겨들 듯이 정밀하게 느껴졌다. 근처를 지나는 먼지 한조각, 풀 이 사르륵 거리는 소리. 물론 저 앞에 있는 현경의 고수는 이보다 배는 더 정밀하고 정확하 고, 동시에 넓은 감각 범위를 지니고 있을 테지만…… 감각만 제대로 집중하고 느끼면 설마 귀식대법을 쓴 살수라도 아마 느껴질 것이다. 귀식대 법을 썼다 하더라도 심장이 뛰긴 하니까. 아무리 느릿하게 뛰는 심장이라도 일단 박동이 있 는 한. 그리고 그것이 10장 내에 있는 한은 절대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기를 감춘다 하더라 도 주변의 기 파동을 느낄수 있으므로 아마 '기가 없는 구간'이 느껴지게 될 터였다. 화경의 육신은 기가 막힐 정도로 성능이 좋았다. 단월은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보았다. 굳은살도 없는 새하얀 손. 자신의 앞에 있는 작자보다 는 더 투박한 모습이지만 부잣집 귀공자의 손이라고 해도 믿어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에 는 이 손이 얼마나 무서운 흉기인지가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뼈는 가늘게 보이지만 지독히 도 단단하여 백련정강에 맞먹는 강도를 지니고 있으며, 살결마저도 기만 약간 불어넣으면 근육이 세근 형태로 일어나서 깊은 상처를 막아준다. 거기에 일전보다 오히려 더 탄탄하고 가벼우면서도 강한 완력을 발휘할수 있는 몸이었다. 손가락은 길고 얇았다. 검을 쥐기에 알 맞으면서도 장공을 펼치기에 모자람이 없는 손…… "……"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이제 알겠지?" 영의 물음에 그는 한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육신으로 검강劍剛 을 뿜어내면서 검을 휘두르면 대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할 것인가…… 079. 또 하나의 차원次元 이동자移動者. 영. 그러니까 현청玄淸이 막 차원문을 통과하여 초죽음상태가 되어 동대륙의 어딘가에 처박 혔을 무렵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전. 영이 막 선천기를 폭주시켜 은영비에서 형강 검기를 뿜어내기 10분 전. 그가 존재하는 차원계와 겹쳐있는 공간의 이면. 시간과 공간의 틈사이. 차원력次元力의 흐름이 맞물려 벌어져 있는 아공간의 틈 사이에서, 푸른 빛이 스며나오고 있었다. 아스트랄 에너지Astral Enegy가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만약 생명체를 저기다 던져 놓으면 말 그대로 영혼까지 분해되어 영자靈子로 환원되어 버리겠지만. 그곳에는 틀림없이 생명체로 보이는 두 존재가 있었다. 하나는 은백색의 날개로 밖에 보이지 않는. 휘황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는…… 얇으면서도 깃털의 깃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보이는. 은백색의 화려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에테르 윙 Ether Wing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등에 달고 있는 존재로. 에테르 윙의 숫자는 무려 열 두 장이었다. 그리고 그 존재의 오른손에는 흑색빛의 심과 붉은빛의 날을 지닌 특이한 형태의 대검 하나가 들려있었다. 아스트랄 계의 청백광 탓에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머리로 보이는 부분에서는 은색 실이 퍼 져나와 뒤로 휘날리고 있었다. 아스트랄 계 씩이나 되는 곳에 생명체로는 보이지만 생명체 로 보이지 않기도 하는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앞. 대충 열 걸음이나 될까말까 한 곳에 또 다른 존재가 있었다. 청백광에 잠식 되기는 했으나 역시 길다란 은색 실로 보이는 무언가. 그 은색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을 달고 있는 또 다른 존재가 무언가를 들고 서 있었다. 양손에 들려있는 그것은 약간 휘어진 예도 형태의 무기 하나와 곧게 선, 얇은 검이었다. 그리고 둘다 열 두장의 에테르 윙을 달고 있었 고, 은백색 빛이 강하게 두 존재의 등 위에서 퍼져나오고 있었다. 두 존재의 목소리가 아스트랄 계를 울려댔다. 「붕파鵬破를 방출放出할 때가 왔다.」 「……꼭 해야할까요?」 두 목소리는 닮았으면서도 정 반대였다. 하나의 목소리가 지독히도 차디찬 냉기를 품고 있 는데 반해 다른 하나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 그러나 둘 다 하나같이 깨끗하고 가녀린 음색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상반된 느낌을 자아낼수 있는지가 의문스러웠다. 「바인 K. 워드. 파멸破滅의 서곡序曲을 연주하는 자者. Kite Genocider. Dis Space…… 그를 방출할 때가 왔다. 활살活殺의 시험이……」 「……돌이킬 기회는 아직 남아 있지요?」 「음…… 글쎄. 그런데. 현청玄淸…… 그를 어떻게 할거지? 붕파를 폐기처분할 때써먹을 건 가? 네가 관할했었지……」 「글쎄요…… 봉인계의 파장이 크게 흐트러질 시간에 정확하게 검기劍氣로 시공벽을 자를테 지만…… 봉인계는 원래 취약과 밀폐성을 동시에 얻던 곳이니까…… 검기로도 충분히 시공 벽을 자를수 있겠지만……」 「봉인계는 내가 오랜세월 체험해 보아서 알고 있다. 현청이라는 자가 각성을 위해 움직일 때…… 네가 나설건가?」 「네…… 아마 그래야겠죠.」 「그럼 나는 이곳에 있어야겠군. 그렇지 않으면…… 네가 소멸할테니까.」 「그래요. 우리 둘이 공존 할수 있는 곳은 공교롭게도 이곳밖에 없지요. 당신이 그토록이나 부수고 싶어 하던.」 「무한無限이 둘일수는 없으니까. 그럼 잠깐 나는 붕파를 방출하고 오겠다. 아. 현청이라 했 던가? 그를 파견할때 함께 방출하면 되겠군.」 「……그런데. 폐기처분이라고 했었지요. 아무리 이용하고 반드시 없애야 할 정도로 흐름을 흐트리는 존재라지만 당신이 직접 빚어낸 존재가 아닌가요? 영자코드를 일일이 제어해서 창 조해 냈을만큼 신경써서 만든 존재인데…… 오히려 현청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는 데…… 애착이 없나요? 기염氣焰과 공간空間…… 그리고 광음光陰은 봉인계에 데려다 두었 으면서……」 「그들은 쓸데가 있으니까. ……어쨌든. 무한에게 애착을 바라지 않는게 오히려 정상일텐데? 그쪽이야 말로 아무런 감흥도 없으면서 그런식으로 말하는게 오히려 나에게는 이상하게 보 이는군.」 「……아무래도 좋아요. 그런데 멸화滅火는 어떻게 하실건가요? 바인 다음에 창조해낼 존재 아닌가요?」 「이상하게 신경쓰는군. 안그래도 폐기할 가능성이 커진 것 아닌가? 단 한 번이라도 '그것' 들이 나를 납득시킨다면 이 계획 자체를 백지화하겠다고 나는 약속했었지. 그대도 찬성하 지 않았었나? 아무리 그대가 만들었다고 해도 감흥이 없었잖아? 무언가 미련이라도 생긴건 가? 무한無限 원신元神 은염銀焰이여?」 「악취미군요. 꼭 그렇게 불러야 겠나요?」 「잘 어울리는 별명이니까. 자. 준비해야겠군. 나는 붕파를 방출하겠어. 차원파장을 좀더 흔들면 두명을 흩어서 보내겠어. 과연 두명이 얼마나 큰 힘을 손에 넣어서 '그것'들에게 활 의 가치가 있는지 살의 가치가 있는지를…… 확실하게 입증할수 있을지……」 목소리는 차가운 냉기를 흐리면서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청백의 어지러운 빛살이 난무하는 가운데.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닌 존재만이 남아있었다. 그는 한숨을 토해냈다. 「후우…… 시작해볼까……」 그의 몸 주변에서 아스트랄 에너지가 파동치기 시작했다. 시작하자는 생각을 하자마자 그 의 의지는 아스트랄 에너지 자체를 뒤흔들었다. 세상이 그의 의지에 복종하기 시작했고, 곧 봉인계라 불리는 차원벽은 뒤흔들리면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봉인계의 벽은 잠시 침묵 을 가졌다가 흰 빛과 회백색의 빛을 토해내 그것을 어딘가로 쏘아보냈다. 물론 이곳에서 보 이지는 않지만 그의 절대안絶對眼에는 모든 것이 다 눈에 들어왔다. 절대차원구絶對次元球 의 차원류 한가닥. 마력의 움직임 한 가닥까지도 모두 그의 눈을 피해갈수는 없었다. 두 존재의 느낌이 길다란 궤적을 그리면서 한 차원벽을 부수면서 쏟아져 들어가 어딘가로 사라져 기氣와 마나Mana의 흐름에 파고드는 것을 느낀 그는 한숨을 토해냈다. 「이제 시작인가……」 두 존재중 하나는 동대륙의 어딘가로 떨어졌다. 그리고 기氣의 힘을 먼저 손에 넣었다. 그러 나 다른 존재는 서대륙. 아스타르 대륙이라 불리는 곳의 어딘가로 떨어져 내렸다. 지금부터 그의 흔적을 추적해 보도록하자. 먼저 설명할 것이 있다. 봉인계封印界라 불리는 곳은 바로 절대차원구의 균형을 위해 존재 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신들의 유폐장소다. 그들의 정신과 힘을 봉인한채, 힘조차 회복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곳으로써. 일단 기와 마나의 농도가 현저하게 낮다. 타 차원계에 비하면 10분의 1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옅어서 일단 검을 쥐고 아무리 휘둘러 봐야. 끽해야 1갑자 공력이 한계고, 그나마도 사용하고 나면 회복이 늦다. 게다가 마나가 너무나도 옅어서 인간 보다 더 많은 기와 마나를 몸과 정신을 지탱하는데에 쓰는 몬스터들은 중세에 조금 있다가 완벽하게 사라져버렸고, 타 차원계와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적인' 역사를 탄 곳이었 다. 유일하게 신의 손길 없이 생명체들이 돌아 다니는 곳이며, 동시에 차원 유지의 신이 없 는 유일한 차원이었다. 그리고 일단 그곳에서 생활하는 인간들은 생활에 그리 불편을 겪지 않는다. 그곳에서 기껏해야 육체적인 힘 외에 통용되는, 봉인되지 않는 힘이라고 하는 것 이래봐야 영력靈力 정도였다. 그래서 영적인 힘 외에는 거의 없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게다가 마력 을 머금고 있는 재료들이 없는 탓에 마법적인 힘도 사라져 가고 있었고, 세상을 지탱하는데 거의 최소에 이르르는 분량의 마나와 기만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타 차원계에 는 존재하는 신력과 암흑마기 따위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가끔 스펙터 계통의 마물 들이 집합하여 영력의 덩어리가 되었다가 그것이 스스로 정화되어 생겨난, 천사 비슷한 것 들이나 악마 비슷한 것들 외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곳에서 가장 배타적인 종교인 기독 교에서 그토록 찬미하는 신이나 천사라고 해도 결국 악령이 집합했다가 정화되어 상급 정신 체 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타 차원계에서도 그런 일이 없잖 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힘없는 허신虛神이 되어 있는 탓에 다른 차원계는 균형있게 잘 돌아가고 있었다. 봉인계에 거주하는 존재들은 워낙 옅은 기와 마나를 호흡하며 살아가는 탓에 몸 안쪽에 내 기나 마력이 쌓이는 공간만이 타 차원계의 존재들보다 두배 이상 넓어져 있을뿐. 마나나 기 의 축적은 전혀 할수 없는 것이다. 마나의 축적은 또 주변의 마나를 배치하여 마법을 사용 하는 것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마나를 축적하고 영혼에 마나를 녹여 사용하는 마법을 클래스의 마법으로, 그리고 주변의 마나를 정신력과 사념파로 재배치하여, 몸의 마나는 극소 량으로 하는 마법을 서클 마법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어차피 아홉번째 단계를 넘어서면 둘 의 개념이 모두 합일된다. 즉, 아홉번째 단계를 넘으면 주변의 마나건 몸의 마나건 둘다 사 용하여 마법을 쓸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건 인간으로써 해내기에는 터무니없이 높은 경지이니 일단 마법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 두 자. 어쨌든 봉인계에 있는 존재들이 우연하게 다른 세계에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 아무리 허약하고 약한 존재가 되었어도 그 차원계에서는 무언가 특수한 힘을 얻게 마련이었 고, 보통 차원을 이동하는 자들은 차원벽을 넘으면서 영자의 흐름에 한 번 영혼을 담갔다가 세상으로 오는 바, 그곳의 지식중에서 적어도 언어 하나만큼은 반드시 얻을수 있게 된다. 그 리고 그 영자력의 스트림에 빠지게 되면 영혼이 단련되는데, 영혼이 깨어나면서 쓸수 있는 힘이 영자력의 흐름에 영혼을 담갔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많아진다. 그러나 아무리 오랫동안 그 흐름에 영혼을 싣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4가지 이상 생겨나지 않는다. 그중 첫째가 Genoglossia라고 하는 능력으로. 언어 해독능력이었다. 다만 영혼이 '말하고 자 하는 뜻'을 자신의 뇌가 익혀놓고 있는 언어로 전환하여 의지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기 에 단순히 언어를 할줄 아는 것 뿐만 아니라 감정의 미묘한 전환이나 무언가 속이려 든다고 하 는 것 따위의 미묘한 감정을 느낄수도 있게 된다. 두 번째로는 마나의 제어다. 그래서 마법을 익히게 되면 주변의 마나를 제어하는 것이 더 수월해 지므로 1, 2년이면 다섯 번째 단계 이상은 뛰어넘게 마련이었다. 세 번째로는 육신의 활성화다. 몸의 상태가 아주 조금이지만 나아지게 된다. 영혼의 힘이 조 금 늘어나면서 육체의 힘을 더 사용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두뇌를 더 많이 사용할수 있게 된다. 네 번째로는 언령인데. 이 경우에는 영혼의 울림이 주변의 마나와 기를 움직이게 하는 것으 로.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좀 더 고위 정신체로 진화했다가 얼결에 봉인계로 떨어져 버린 존재들이나 쓰게 될까…… 쿠콰콰쾅―!! 동대륙에 떨어진 누군가와는 다르게, 아예 처음부터 붕파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떨어진 녀석은 거대한 빛의 구에 휩쌓여서 아스타르 대륙의, 그 밝은 대낮의 상공에도 눈에 확 들 어올만큼 밝고 강렬한 빛의 선을 그리면서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위험지대로 향했다. 아스타 르 대륙에서도 웬만하면 접근하지 않는. 국가의 판도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느 국가에 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하나의 숲. 이 숲에는 특급으로 취급되는 몬스터들도 널려있는데다가, 숲인데도 불구하고 산에서 거주 하는 몬스터들도 대량 분포했다. 이유는 알수 없지만. 괴팍한 드래곤의 레어가 있다는 설이 식자들 간에서는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가련하게도 붕파라고 불린 존재는, 쌔애액 하고 빛의 선이 되어 숲의 동반부에 내리 꽂혔고, 그야말로 끔찍하게 높은. 봉인계에서 통일되어 주로 사용되는 단위로 대충 30m정도 높이에 넓이는 무지막지한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거기다가 얼마나 세게 내리꽂혔는지, 주변의 나무는 그것을 중심으로 바깥쪽을 향해 대충 반경 50m정도의 원을 그리면서 널브러져 있었고, 중앙부에서 5m정도 떨어진 곳으로 원을 그린 부분은 나무들이 산산히 부서져 있었다. 얼마나 강한 공기충격파가 일어났는지, 아직도 새하얗게 보이는 공기파동. 소닉 붐의 여파가 조금 일어나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강한 공기 파동에 휩쓸리면서 돌개바람이 되어 몇몇 몬스터들의 몸을 사정없이 절단해버렸고, 공기충 격파에 휩쓸린 온갖 몬스터들은 불행하게도 피떡이 되어버렸다. 공기압력이 반경 50m정도 의 원을 짓누르고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그 구역에 있던, 9할에 다다르는 몬스터들이 즉사 해버렸다. 그리고 나머지들도 거의 대부분 초죽음이 되어 낑낑대고 있었고, 피를 콸콸 쏟으 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이번의 대지를 후려친 공격(?)은 쿠콰쾅! 하는 굉음 외에도 음파의 육중한 진동은 숲의 10 분의 1에 달하는 구역을 두드려댔고, 음파를 생성시킨 원인에서 직접적 여파가 미치지 않는, 그러나 꽤 가까운 곳에 있던 오거Oger 노인에 와이번 갓난아기, 장로 오크가 급사하는 일까 지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물론 이런 위력을 만들어낸 빛의 구. 그리고 그 빛의 구 중앙에 있을 붕파라는 녀석의 몸이 대지에 그대로 부딪혔다면 아마 곤죽이 되었을 것이고, 이번 충격의 여파로 죽어간 많은 몬 스터들의 원령은 그것을 바랐을 것이나, 숲을 이모양 이꼴로 만들고 자연을 훼손하여 지대 한 국가적 손실 ― 일까? 이곳은 어느 나라의 관할 구역도 아니다. ― 을 일으킨 건방진 녀 석은 아쉽게도 멀쩡했다. 거기다가 먼지구름을 휩쓸어 바깥으로 쫓아낼 정도로 강한 소닉붐 마저도 그놈을 해하지 못 한 것이 아닌가.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이런 먼지구름을 뒤집어 쓰기라도 했다면 조금이라 도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놈은 먼지 한조각 묻지 않은 멀쩡한 모습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고인故人(?) ― 고물故物(…)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고괴故怪는 어감이 이상하니 까 말이다. ― 이 되신 몬스터들께서는 상당히 기분이 더러울 것이나, 어쩔수 없는 일이었 다. 다만 그들은 아직 살아있는 다른 몬스터들이 그를 도륙屠戮하고 갈기갈기 찢어 뜯어먹 어 주기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으음……" 나지막한 신음을 흘리면서 깨어난 녀석의 상반신이 스르륵 위로 올라왔다. 그는 잠에 취한 눈으로 멀뚱멀뚱하게 주변을 훑어보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뜨면서 몸을 확 위로 치 켜올려 벌떡 일어섰다. "……" 다시 주변을 휩쓸어 본다. 그리고 나서 그는 생각에 잠겼다. "……" 다시 침묵. 그의 입에서는 어떤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는 다시 생각에서 깨어난 듯 주변을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땅을 바라보고, 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행동이 끝 나고 난 뒤. 그는 아직도 남아있던 잠에서 완벽하게 깨어났고, 곧 주변을 바라보며 지금 자신 의 상황에 대한 의문을 표했다. "으헥?" ……희안한 의문의 표출이었다. 080. 드래곤들은 많은 색으로 그 종의 다양성(?)을 알린다. 빛의 힘이 유난히도 강한 골드 드래곤Gold Dragon. 이 골드 드래곤은 현명하고 인간들에게 따스한 연민의 정마저 가져 줄 정도로 착한 녀석들이었다. 물론 일단 드래곤 일족인지라 열 뻗쳐버리면 사정없이 브레스 날려댄다는 점에는 다를바가 없으나 이들은 지혜로웠다. 드래 곤들은 최강의 육체를 가지고 있고, 그 육체라는 것이 태초의 무한대신無限大神이 직접 창 조하여 세상의 균형을 위해, 존재하기만 하여도 세상의 균형을 이룰수 있는 존재. 차원의 구 심점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나이만 먹어도 힘이 무자비하게(?) 늘어난다. 그리고 신의 경지에 올라야만 쓸수 있는 12서클을 그들은 태어나고 십만년이 흐르면 자동적 으로 쓸수 있게 된다. 나이가 1억이 넘어서면 13서클까지 들어설수 있으며, 또 그게 사람에 게 개인차가 있듯 이들에게도 개용차(?)가 있어 5만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13서클을 마스 터하는 무식하게 강한 드래곤도 있었다. 어쨌든 이들 골드 일족은 최강의 핏줄로 태어나는 바. 황금빛의 비늘에 속성을 가리지 않는 브레스를 뿜어낼수 있었다. 일단 드래곤은 3천세를 돌파하게 되면 골드 드래곤이 아닐 때 다른 속성의 브레스 하나를 얻을수 있다. 물론 위에서 나열한 무섭도록 긴 세월은 수련하지 않고 그냥 잠만 퍼자고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드래곤들은 틀림없이 오랜 세월을 삶으로 인해서 게으르기 짝이 없지만 인간들의 의무교육과 비슷한 제도가 있어 적어도 2천세가 되어 인간들이 웜이라고 부르는 형태의 몸 체를 가지기 전까지는 자기 수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놈의 드래곤들 은 5천세를 넘으면 자기의 몸 크기 조절 정도는 일이 아니었다. 아예 몸의 드래곤 본과 피 육은 영혼을 강하게 지탱하는데만 쓰게 되므로 자연체가 되어간다. 일단 균형을 이루게 되 는 보루니까. 자연체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런바, 마나와 인간들이 말하는 기라는 개념이 스스로 합성되어 창조된다. 즉, 주변의 마나 와 기를 빨아들여 힘을 형성하는 인간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이 드래곤 중에서도 골드는 가히 최강으로. 웜급 골드가 5천세가 넘어간, 다시말해 드래곤의 고어로 '레겔'. 그리고 인간들의 말로 '에인션트'를 지난 그린 드래곤과 맞먹는 힘 을 지니게 된다. 물론 그린 드래곤이라고 수련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닌 바. 월등히 뛰어날 것 이나 수련 없이 성장하는 것만으로 따지면 그렇다는 이야기였다. 드래곤은 해츨링일 무렵때부터도 100세쯤 되면 소드 마스터, 혹은 마스터라 불리는. 화경에 이르른 작자들이 없다면 그야말로 처참하게 아작나버린다. 아무리 어리지만 드래곤만의 수 련법. 그러니까 '마나 순환법'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비늘의 강도와 힘의 용량(?)이 달라지 는 것이다. 웬만한 검기 정도는 100세쯤 된 드래곤의 비늘과 가벼운 배리어로 튕겨낼수 있 다. 물론 아스타르 대륙에서 말하는, 소드 익스퍼트Sword Expert 최상급에 달해 예의 금빛 검기를 만들 정도라면 적어도 300세쯤 된 드래곤의 비늘까지는 뻥뻥 뚫어버릴수 있었 지만 말이다. 골드 드래곤은 속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태어난다. 그래서 드래곤 로드는 골드 일족에서 많이 선출된다. 지혜롭고 포용할줄 아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이것도 개용차가 있다.) 금빛 비늘과 금빛 눈동자를 지니고 있으며. R 스펠링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지닌다. 속성차는 있 지만 브레스는 빛의 힘을 타고나듯, 레이저 브레스Laser Breath가 가장 강한 위력을 발한 다. 레이저 브레스는 관통형이지만 폭발형으로도 바꿀수 있다. 실버 드래곤Silver Dragon은 은빛의 비늘을 지닌 드래곤 일족으로. 물과 얼음을 다룬다. 브 레스는 물론 블리저드 브레스Blizzard Breath를 사용한다. 드래곤 일족중에서 가장 차분한 성격이며, 오만한 기가 없잖아 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를 자랑하는 일족으로, 서열로 따지면 골드 바로 다음이다. 은빛 비늘을 지녔지만 눈동자는 남빛이다. K나 C의 스펠링을 앞에 두는 이름을 지닌다. 레드 드래곤은 불의 속성을 타고 태어난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모든 브레스를 다 다룰수 있게 되기는 하지만 적어도 레겔 이전에는 플레임 브레스Falme Breath만을 사용하는 것이 다. 레드 일족은 불을 다루는 바. 성격이 불과 같다. 한마디로 성질이 더럽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혜롭지 않은 바는 아니나. 불과 같은 성격이 인간들보다는 월등히 크지 만 그 불과 같은 성격을 감당하기 버거운 인내심으로 제어되지 않아 종종 사고를 치는 종족 은 레드 일족에서 가장 많이 나왔었다. B의 스펠링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지닌다. 서열별로 네 번째는 바로 블랙 드래곤Black Dragon이다. 서열별로 따진다고 해도 골드 드 래곤만 빼면 그놈이 그놈이지만. 속성 문제도 있으니까 넘어 가자. 골드 드래곤과는 반대로 어둠의 힘을 지니지만 브레스의 표출은 애시드 브레스. 강한 산성의 브레스다. 물론 웜급이 되면 몸에 쌓인 암령의 힘을 섞어서 사용할수 있지만, 그 전까지는 애시드 브레스를 사용한 다. 이 산酸은 일반의 산과는 달라서 금속이건 뭐건 모두 부식시키고 녹여버린다. 성질은 물 론 조금 급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드 드래곤만큼은 아니다. 차분한 휴식을 주는 암흑의 이 미지. 맑은 어둠을 보는 듯한 성격이다. Y나 I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다. 서열별로 다섯 번째는 블루 드래곤Blue Dragon이다. 푸른 비늘에 푸른 눈을 지닌다. 천지 간 속성중 가장 공격성이 강하다는 뇌雷의 힘을 타고난다. 라이트닝 브레스Lightning Breath를 사용하며. 방사형으로 터져 나가는 브레스와 한점에 집약하며 토해내는 뇌정의 숨 결을 사용한다. 뇌격은 파괴적으로. 드래곤중에서도 레드 다음으로 난폭한 성격이라는 말이 있다. 드래곤 중에서 골드 다음으로 가장 빠른 비행 속력을 지녔다. J나 Z으로 시작되는 이름 을 지니고 있다. 서열별로 여섯 번째는 그린 드래곤Green Dragon이다. 녹색 비늘에 녹색 눈. 속성중에서 바 람의 힘을 가장 많이 타고난 드래곤이다. 그러나 바람의 힘이라고 해도 오행의 힘으로 따지 면 목의 힘을 많이 얻어낸 드래곤인지라. 생명을 사멸시키고 힘을 더해주기도 하는 브레스 를 사용한다. 인간들에게는 포이즌 브레스라 불리나 이것은 생명의 힘이기 때문에, 파멸시키 고자 하는 자들만 없앨수 있는 아주 유용한 브레스다. 유기질의 사멸을 마음대로 좌우할수 있는 강력한 숨결. A로 시작하는 이름을 지닌다. 자연을 사랑하는 성격이며 따스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의외지만 드래곤 중에서 가장 무신경하다. 마지막으로 화이트 드래곤White Dragon. 실버 드래곤과는 달리 순수한 백색의 비늘과 백색 의 눈을 지니고 있다. 드래곤 중에서 최약이라고는 하지만 심한 차이는 없다. 실버 드래곤이 블리저드 브레스로 사물을 모두 얼어붙어 동파凍破 시켜버린다면 화이트 드래곤은 차가운 숨결과 바람의 힘을 섞어 사물을 진공검과 냉기로 동파와 절삭을 동시에 행한다. 그러나 화 이트 드래곤은 실버 드래곤의 브레스보다는 위력이 더 떨어진다. 화이트 드래곤은 프로즌 브레스나 아이스 브레스로 불리는 힘을 쓰고 있지만 오히려 빛의 힘 역시 함께 쓰기 때문에 드래곤중에서 골드 일족을 제외하면 세가지나 되는 힘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G의 스펠링으 로 시작하는 이름을 지닌다. 성격은 실버드래곤과 비슷하다. 나이가 차면서 브레스의 양과 질은(?) 늘어가기만 한다. 1만세쯤 된 드래곤이라면 나라 한 두개쯤 말아먹는 것이 별것도 아니다. 드래곤이 잠만 퍼자고 살다 죽을 경우에는 많은 차이 가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20억쯤 되는 세월이 가면 죽게 되는데. 죽기 몇백년 전 정도의 드 래곤이라면, 신경神境이라 불리는, 네단계로 나누어지는 경지 중에서 가장 끝. 고위신에 오 른 존재들을 둘이나 감당할 정도로 강대한 힘을 사용할수 있다. 어쨌든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드래곤은 대충 이러한 종족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모두 인 간들에게 알려진다면 아마 드래곤 사냥하겠다고 깝죽거리는 병신들은 없겠지만 그래도 모른 다. 700세쯤 되어 성룡이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드래곤이라면, 그것도 블루나 그린 정도 라면 그랜드 소드 마스터 하나와 소드 마스터 하나. 8서클 마스터 하나에 대륙에서 최고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성직자 둘 정도에 고대병기나 무식하게 강한 마검이나 신검 하나정 도 들고 있다면 혹시 잡을수 있을지도…… 지금까지 드래곤에 대해 설명한 이유를 아시겠는가? 그렇다. 이번에 불행하게도 봉인계에서 추방당해 으헥이라는 특이한 의문을 표출해낸 녀석이 지금 어벙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 일부가 훼손당해 버린 이 숲에 바로 1억세에 다다른, 무식하게 강한 그린 드래곤이 하나 살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 얼마나 무신경한지 숲이 파괴당했는데도 아직도 날아오지 않고 있다. 차원벽 을 관통하고 마나와 기를 밀어내면서 내리꽂힐 때 근처 숲 전체의 마나와 기를 요동치게 만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린 드래곤은 날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혹 유희라도 나갔는지 모 르나. 그럴 경우에는 지금 상황 파악에 여념이 없는 저 인간이 몬스터의 한끼 식사거리가 되어버린다. 그러면 어떻게 될지 다 아실거라 믿는다. "끄응……" 신음을 흘리면서 인상을 구기고 있는 불행한 인간. 붕파鵬破라 불린 녀석은 한숨을 토해내 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젠장. 뭐하는 데야. 여긴……" 녀석이 고개를 흔들자 상당히 긴 느낌의 머리카락이 출렁거렸다. 물론 출렁거렸다 정도의 표현을 쓸만큼 긴 것은 아니었지만, 고등학생의 교복을 챙겨 입은, 그것도 남자 녀석이 할 만한 머리카락 길이는 아니었다. 거의 목덜미를 덮을만큼 긴 뒷머리에 눈을 가릴정도로 길 다란 앞머리…… '머리를 흔들자 출렁거린다' 라고 표현할 정도로, 남성 중에서는 길었다. 물 론 저 동대륙의 누군가는 정말 길다란 머리카락을 지녔지만. 지금은 넘어 가자. "설원雪園아, 설원아…… 제정신 차려라……" 설원이 그의 이름인 듯 싶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제정신 차리라는 둥의. 보통 사람이 보면 미쳤다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행동을 한 다음 이를 콱 깨물었다. 그리고 욕을 토해냈다. "니미랄! 여긴 대체 어디냐고오―!!! 크아아아아악―!!!" 그의 입에서 터져나와 주변을 쩌렁쩌렁 울리던 소리는 금방 잦아들었다. 녀석은 씩씩거리고 는 있었지만 안정된 듯. 조금 바지에 묻어있는 흙먼지를 털어내고는 살기를 스물스물 피워 올리면서 걸어갔다. 외모는 머리카락을 빼면 단정했다. 새하얗고 깨끗한 피부. 미남이라 불 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외모. 오히려 미남으로 따지면 최상층에 이르르지 않으려나 할 정도 의 외모였다. 흑발은 말 그대로 빛을 빨아들이는 맑은 어둠의 그것이었고, 눈동자 역시 그러 했다. 그런데 예의 봉인계 한국인의 굵은 모발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드물디 드문, 거의 없다 시피 한 가느다랗고 건조한 모발이었다. 시원시원스럽게 생긴 미남이었다. 17세 정도 되어보였지만 키는 자그마치 그곳 단위로 180cm를 조금 넘고 있는데다가 8등신이라 잘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렵하게 보이는 몸 매는 헐렁한 교복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으나 걸을 때 얼핏얼핏 드러났다. 그는 걸으면서, 자신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바깥쪽을 향해 널브러진 나무들을 보면서 눈이 동그래졌지만 '이러나 저라나 지금 상황은 특이한 상황이므로 저 정도로 놀라고 있으면 오히려 우스운 일 이다'라고 생각한 듯. 곧바로 차가운 눈길이 되어 주변을 주욱 훑어보고는 쓰러진 나무 하나 에 올라가 걷기 시작했다. 꽤 미끄러운 나무 껍질이었지만 그는 놀랍게도 정말 깔끔하게 그 위를 걷고 있었다. 놀라운 균형감각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겨났다. 나무는 쓰러졌다. 그런고로 깔린 아랫부분의 나뭇가지는 모조리 부 러졌지만 이놈의 나무들이 겹쳐서 쓰러지는 바람에 나뭇잎과 가지들이 얽혀서 견고한 울창 수십개가 이 쓰러진 나무들이 구축하고 있는 원 바깥으로 가는 길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 이다. 이를 어찌할꼬. 하면서 고민하던 그는 곧 피식 웃었다. "허虛와 공空의 검劍!" 나지막하게 입가에서 내뱉어진 소리는 그의 몸에서 무언가 반응을 일으켰다. 갑자기 회백색 灰白色의 오러Arua와 회흑색灰黑色의 오러가 오른쪽 손과 왼쪽 손에서 넘실거리며 피어오 르기 시작한 것이다. 회백색과 회흑색의 영기靈氣는 허공중에서 너울거리며 타오르다가 뭉 쳐져 길다란 검을 형성했다. 동대륙에서 패검이라고 불리는, 무림인들이 주로 쓰는 검보다 좀더 길고 폭은 비슷한, 무지하게 간단한 스타일의 검이 된 것이다. 오른손에는 회흑색의 검이. 왼손에는 회백색의 검이 쥐어져 있었다. ……이놈도 평범한 녀석은 아니었다. 녀석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맺힘과 동시에 미간을 점으로 하여 오른쪽에서는 회흑색의 영 기가, 왼쪽에서는 회백색 영기가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고, 그것은 검으로 빨려들어가 강 렬한 빛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두자루 검의 검신에 달라붙은 영기들은 검신의 넓이와 길이 를 두배 이상으로 늘리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고, 곧 그의 몸은 어떤 자세를 잡았다. 왼 다리 는 뒤로. 오른 다리는 그 자리에서 가볍게 굽히고, 왼손의 검은 가볍게 늘어뜨리고, 오른쪽 의 검은 정면에서 왼쪽으로 기울인다. 현청이 맨 처음 이곳에 떨어져 얻은 힘이 염동력의 증강이었다면, 설원은 아예 처음부터 이 러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봉인계에서는 힘을 흡수하지만, 이 힘은 흡수 할만큼 큰 힘이 아니면서 동시에 결계를 부술만큼 강한 힘이었다. "허공섬虛空閃! 가랏!!" 몸은 회전하고, 검은 비스듬히 시간차를 두고 그어 올려졌다. 치이이익 하는 괴이한 소리가 나면서 회백색 선과 회흑색 선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가새표 모양으로 교차했다. 그리고 그 것으로 모든 것은…… 공간과 함께 베어졌다. 두 색의 선은 삼차원적으로 볼 때 면面이 되어 모든 사물을 절삭하고, 공간을 잘랐다. 일정 공간이 그그긍 하는 소리를 내면서 어긋나 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공간의 복원력으로 인해 금방 다시 맞물렸고, 오랫동안 마나와 기의 파동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아까 차원벽을 뚫고 내리꽂혔을때보다 배는 큰 마나와 기의 흔들림이었다. 설원이 범위를 지정했기 때문인지. 설원의 앞쪽에 있는, 울창을 형성하는 모든 얽힌 나뭇가 지들이 다 잘려나가 널브러졌고, 5할 정도는 허공의 틈으로 삼켜졌다. 그리고 저 앞쪽, 범위 바깥의 멀쩡한 나무 다섯그루 정도가 완벽하게 허공에 먹혀져 버려 허무로 돌아갔다. 대단 한 위력이었다. 설마 현경의 극에 이르른 현청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할수는 없었다. 마법적 인 힘과 검으로 얻어지는 힘이 합일되어 펼쳐진듯한 공격이었다. "에구…… 지친다……" 그러나 역시 이번 일격은 그에게서 많은 힘을 앗아간 모양이었다. 그의 얼굴은 헬쓱하게 질 려버렸고, 창백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가 에구구 하고 신음을 토하면서 주저앉기 직전. 허 와 공의 검이라고 불리는 두자루의 검은 나타날때처럼 영기의 형태가 되어 그의 장심으로 빨려들어갔고, 그는 양손을 나무에 짚었다. "으윽…… 죽겠군……" 정신이 가물가물 거리는 듯, 녀석은 눈을 깜빡깜빡 거렸다. 그것도 딱 졸린 사람의 눈이었 다. 흐물흐물 풀어진 몸은 이미 추욱 늘어져버렸고, 곧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상당히 위험한 장소에서 잠드는 것이었으나, 다행인 것은 지독히도 강한 마나와 기의 파동 때문에 주변의 몬스터들이 겁에 질려서 감히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일까…… 그러나 아마 다른 존재는 오게 될 것이다. 이 숲에서 사는 가장 강대한 자는. 081. 무려 1억세가 되어 초고룡이라고 불리는, 속성을 이미 초월하여 드래곤의 브레스 중에서 가 장 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파멸의 숨결'까지 사용할수 있는 그린 드래곤 미뉴엘은 10년 정도의 유희를 한바탕 마치고 한 100년쯤 늘어지게 자고 난 뒤 깨어나기 직전. 그러니까 조 금씩 깨어나서 앞으로 한 며칠이면 깨어나게 되는 상태에 돌입해 있었다. 1억세쯤 된 드래곤이면 이미 영혼과 정신의 크기가 거대해져서 행성 하나쯤 관조하는 것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관조라는 것이 실상 아직 힘든 수준이었다. 그의 정신은 뇌에 속박되 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오히려 인간이 갓 에이전트God Agent, 그러니까 선경仙境에 올라 대륙 하나를 관조하면서도 혼란을 느끼지 않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기에, 그는 관조의 눈은 닫고 있었다. 용안과 신안이 결합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그는 지금 1억세 의 초고룡이 되어 선악을 탈피하여 혜의 신경의 정신에 돌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잠자는데 깨우면 어느 누구나 성질이 나게 되어있었다. 잠 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다는 말이 있지 아니한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면 사자 는 간지러워서 깬다. 그리고 자신의 잠을 깨운 자를 매섭게 노려보고 나서 이렇게 생각한다. 달콤한 잠을 깨웠으니 신경질도 나고, 자고 일어나서 배도 고픈데 이놈을 잡아 먹어야 겠다. 하고 생각하며, 동시에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그 깨운 작자가 적어도 소드 익스퍼트 정도 되지 않는다면 사자에게 잡아먹힐 것이요. 5서 클의 마스터 정도가 되어서 2서클 정도의 화염마법을 시동어만으로 발할수 있지 못하다면 역시 사자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잠을 깨우고 나서 그 달콤한 꿈을 박탈당 한 자의 분노를 감당할수 있는 힘을 지녔거나 그작자가 악몽을 꾸고 있었다거나, 혹은 자신 이 지고한 신분이라 깨워진 자가 감히 화를 낼수 없거나 혹은 그 깨워진 자가 평소에 무지 막지한 순둥이라 강제로 잠에서 일어나고도 화를 내지 않는다면 깨워도 좋다. 어찌되었든 무신경한 그린 드래곤인지라 비몽사몽간에 약간 관조안을 무심코 열었던 그는 차원벽이 두 번이나 연속으로 정 반대 방향에서 관통된후 무식하게 강한 마나와 기의 파동 을 일으키면서 두 존재가 쏘아져 내려와 대륙에 처박히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여기까 지는 무신경하게 넘어갈수 있었다. 잠이 조금 더 빨리 깼다는 것을 제외하면 화낼 구석이 없었으니까. 아무리 강한 마나와 기의 파동이래도 그렇지, 지금 그가 체내에 지니고 있는 강대한 마나의 존재감이 차라리 더 강력했기에 그는 그것을 무덤덤하게 넘어갈수 있었다. 드래곤은 양성체 인지라 그인지 그녀인지 알수는 없지만, 정확하게 그가 어떤 성향의 성격인지는 알수 없지 만, '그'로 칭하겠다. 어쨌든지 간에 그는 여기까지는 참아낼수 있었다. 이 후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런 데 갑자기 쿠르르릉 하고 강대한 진동이 울려퍼지며 숲의 일부가 날아가는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강한 마나와 기의 흐름이 울리면서 찌잉 하고 이명이 귀에 일었다. 여기라 면 심상치 않아서 골드라면 일어나 원인조사를 했을것이고, 레드라면 일어나서 그놈을 향해 분노의 숨결을 토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신경한 그린 드래곤이었다. 여기까지도 참아 주었다. 그는 자신의 인내심이 이토록 깊었었나 하고 중얼거리면서 아직도 비몽사몽간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오래간 침묵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이, 그가 쓸수 있는 브레스중 하나인. 속성의 숨결중 하나인 '허무虛無의 숨결'에 비교 하면 그야말로 미약하기 짝이없는, 태양과 1서클의 라이트Light 마법을 비교하는 것과 같았 지만…… 이것은 틀림없는 허무의 기운이었다. 비록 양과 힘이 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그야말로 제어되어 있으면서도 강한 존재감을 풍기는 허무의 느낌. 그는 퍼뜩 눈을 떴다. 가물가물한 정신이 또렷하게 돌아왔고, 그 강렬한 허무의 체취 탓에 그는 즐거운 잠의 여운을 탈취당하고 말았다. 그는 눈을 뜨면서 적외선을 감지 할수 있는 녹색의 눈으로 레어 안쪽의 갈빛 벽을 바라보았다. 대충 1천세 정도 드래곤의 몸 크기를 하 고 있는 탓에 무지하게 넓은 느낌을 주는 레어였으나 그런 것에 정신 팔릴 상황이 아니었 다. 약하지만 허무의 기운이 레어 근처에서 터져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상당히 좋아하는 잠의 여운이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었다. 감히 누군지는 모르나 잠 의 여운을 깨웠던 것이다. 그놈이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나, 지금 당장 날아가 5서클 마법인 플레이밍 스트라이크Flaming Strike를 한방 먹여주고 싶은 욕망이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것 이다. 조사도 조사였지만, 무엇보다 지금 그는 상당한 짜증에 드래곤 피어를 풀풀 날려대고 있었다. 「변變!」 용언龍言이 그의 사념에 더해져 주변의 마나를 움직였다. 주변의 마나는 무서운 속도로 그 의 몸에 달라붙어 재배치 되어 폴리모프 셀프Polymorph Self의 마법을 구동시켰고, 그의 몸 은 용언의 힘에 의해 재구성되어 인간의 형태로 변했다. 물론 인간 형태로 변한 바. 마력의 제한을 아주 조금 받기는 하지만 그는 1억세의 드래곤이었기에 12서클 마법을 모두 발할수 있었다. 본질은 드래곤인지라 강대한 마나가 그의 육신을 감싸안고 있어서 마법을 문제없이 구현할수 있는 것이다. 실상 드래곤은 본체이거나 아니거나 거의 풀파워를 모두 사용할수 있었다. 본체로 쓰는 힘이 10이라면 인간이나 엘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 했을 때 쓸수 있는 힘은 9.99정도로, 거의 차이없는 것이다. "어떤 괘씸한 녀석이지……?" 투덜투덜 대면서 그는 가볍게 다시 입을 열어 용언을 발했다. 실상 이미 신언과 합일이 되 어서 용언이라기 보다는 신언神言에 가깝지만 둘다 차이없는 언령술이고 명칭만 다르니까 별로 상관 없으려나…… 「창조創造! 감싸라!」 두 번 연이어 발해진 용언의 힘. 그리고 '10서클의 창조創造'가 발동되었다. 마나가 몰려들면 서 곧바로 재배치 없이 주변의 원소들을 분자로 바꾸고, 그것으로 옷을 짜고 있었다. 하늘하 늘한 백색의 토가, 그리고 그 토가에 연한 녹색빛이 더해지고 나서 갑자기 그것은 풀어졌고, 곧바로 7서클의 마법인 드레스 체인지Dress Change ― 원소를 집적시켜서 물질을 창조시키 는 것은 10서클이다. 11서클의 창조는 아예 대기중의 '힘'을 묶어서 원소로 바꾼다음 그것을 조합시켜서 만드는 것으로, 아예 원소 자체가 생성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냥 구성되어 있는 물질을 단지 분자로 분해해서 그냥 형태만 바꾸어 결합시키는 것으로, 옷의 형태를 바꿀수 도 있으나 그냥 여기서는 옷을 입는데 사용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옷 갈아입는데 7서클 씩이나 쓰는 드래곤의 정신 체계를 굳이 이해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 가 발휘되어 그의 몸에 옷이 착 감겨들었고, 곧 그는 만족한 듯 몸을 바라보았다. 드러난 것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경계가 모호한 미인이었다. 누가 드래곤 아니랄까봐 남녀 성별 구분 모호한 미인이었고, 추가적으로 자신이 그린 드래곤이라는 것을 과시하듯 녹색 머리카락에 녹색 눈을 지니고 있다. 새하얀 피부에 티 한점 없다는 묘사는 이제 지겨워서 그만 두겠다. 설명 안해도 다 알것이라 생각된다. 경국지색 능가하는 미인이라는 말만 해 두 도록 하겠다. 신장도 남녀 경계가 모호하여, 남성이라 보기에는 조금 작고, 여성이라 보기에 는 조금 큰, 그야말로 모호한 미인이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에 가느다랗기 짝이없 는 팔다리…… 그러나 몸 내부에서 출렁거리는 마나가 인간의 몸 혈맥을 타고 순환하고 있는 탓에 오거 Oger를 몇배 능가하는 괴력도, 5서클 마법인 헤이스트 아더Haste Other에 걸려 있는 소드 익스퍼트Sword Expert의 만큼의 속도도 낼수 있었다. 거기다가 초고룡인 만큼, 마법에 흥미 를 잃어버리고 검을 휘둘러 댔을 것이 분명하여 적어도 소드 마스터가 검 다루는 것 만큼은 할수 있을게 틀림 없었다. 마나의 특성상 검강은 안되더라도 검기 비슷한 모습의 기운은 검 을 통해 뿜어낼수도 있겠고, 워낙 방대한 마나인만큼 검만으로도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죽 쒀먹을 정도일 것이다. 어쨌든지 간에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그린 드래곤 미뉴엘이 손가락을 튀겨서 레어의 창고 에 있었던 것 같은, 마법에 걸려서 전혀 손상된 곳이 없는 레이피어 한자루를 텔레포트 Teleport시켜서 챙겨 든 것을 보면 이 짐작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으음…… 가볼까?" 하고 텔레포트 하려던 미뉴엘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관조안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정신 이 확장되어 숲 전체를 훑어 본 다음, 그는 나무가 쓰러져 있는 장소를 보자 마자 곧바로 그놈이 누군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확인도 하지 않은다음 관조안을 닫고, 그 장소의 이미지 를 강하게 떠올리며 가볍게 웅얼거렸다. 「이동移動.」 주변의 마나가 용언에 반응하고, 그의 염파에 반응했다. 마나는 곧바로 몰려들며 재배치 되 어 공간과 공간을 맞대었고, 그가 있는 공간을 아예 저쪽으로 옮겼다. 보통의 텔레포트 수법 이 아니라 공간을 아예 맞대어서 아인슈타인-로젠 다리를 형성한 수법으로. 서클로 따지자 면 8서클 정도는 될 것 같았다. 그는 이미지를 지우면서 눈을 떴다. 그리고 이동이 끝났음을 느낌과 동시에 의지로 주변의 마나를 움직여 시동어조차 없이 4서클 비행마법 플라이Fly를 시전했다. 곧 그는 대충 설원 이라는 불쌍한 인간이 쓰러져서 곤히 잠들어 있는 곳에서 열걸음 정도 떨어진 곳, 그리고 그곳에서 10m정도 상공에 떠올라 있음을 파악하게 되었다. 목표물로 보이는, 허와 공의 기 운이 몸 내부에서 강하게 풍겨나오는 한 인간이 나무에 철푸덕 엎드려서 코를 도로롱 골며 자고 있는 것을 보았을때는 황당함을 느꼈지만, 무신경한 그린 드래곤답게 그러려니 하고는 천천히 나무 등걸 위에 내려섰다. 그리고 그는 주변을 휘적휘적 둘러보며 정말 어지간히도 파괴했군, 하고 중얼대다가 건방진 인간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저놈인가? ……간이 크군 그래. 이런데서 자고 있다니. 용감한건지, 무식한건지." ……굳이 말하자면. 둘 다라고 해야겠지만. 뭐, 앞으로 이 드래곤은 철저하게 그것을 깨닫게 될터이니, 알려주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정말 무식無識한건 아니지만…… 하는 짓이 잘 돌아가는 대가리에 비해 무식하기 짝이없으니…… 082. 환풍幻風과 천빙天氷. 그리고 허원虛元. 고요한 정적과 파문. 입가에 자애로운 미소를 내 걸고 있는, 은녹색의 길다란 머리카락을 가 볍게 정리해서 바닥에 닿지 않도록 하고 앉은 한 인물이 가느다랗고 섬세한 손가락으로 붓 을 흔들림없이 쥔채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화폭을 메워나가고 있었다. 왼손에 쥐어져 있는 파레트에 묻어있는 유화물감들이 배합되어 붓에 묻혀지면, 붓은 물감으로 화려하게 화폭 위 로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화폭에 그려진 모습은…… 아직은 알수 없었다. 스케치조차 없이 유화물감만으로 그려나가 고 있는 탓에, 그 형태는 알수 없었지만 너무나도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조용하게 붓이 움 직이면, 주변의 공기가 차분하고 따스하게 흐르면서 기분좋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붓의 움 직임이 물 흐르듯, 아니…… 엄밀히 말하면 자유로운 청풍淸風의 흐름과 같이, 그러나 결코 빠르지는 않게 화폭을 메워나간다. 정적이었다. 동시에 파문이었다. 고요하게, 먼지조차 일정한 바람의 흐름, 건물 내부에서는 미약하기 짝이없으나 틀림없이 불고 있는 바람에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채광좋은 창 을 타고 넘어들어온 아름다운 햇살만이 기울어져 오후의 포근함을 던진다. 그러나 문득 붓 을 쥔, 아름답고 섬세한…… 흉터 하나 없이 투명하기만 한 손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손의 주인의 몸은 머리카락과 머리 부분을 제외한, 얼굴과 나머지 부분은 모두 햇빛을 등지고 있 는데다가 어두움에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입가에 걸린 부드러운 미소만이 얼핏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 손이 멈추고, 붓이 멈추었다. 그리고 붓은 손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과 조우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탁 하고 떨어진 붓은 데구르르 굴러 물감의 궤적을 바닥에 그렸다. 궤적은 길게 이어지다가 붓이 다각다각거리며 흔들림과 동시에 붓끝의 흔들림에 따라 아주 좁은 구 역에 그 색을 칠했다. 바닥이 그 색을 입고 햇빛을 맞고 튕겨내 묘한 느낌을 던져주었다. 침 묵과 고요의 공간은, 순식간에 깨어져버렸다. 오후의 아늑함을 머금고 조용하게 가라앉아 평 안함만을, 불길할 정도의 평안함만을 던져주던 그 공간이 깨어진 것이다. 그 색은 바로…… "……시작인가?" 깨끗하고 맑아 차가운 느낌을 주었지만 동시에 긴장이 서려있어 시린 목소리와 어울리는, 너무나도 푸른 스카이 블루Sky Blue의 그것이었다. 그가 붓을 떨구었을 때, 두 존재는 차원 벽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의 외모가 햇빛에 환하게 드러났다. 햇빛조차 압도해 버릴만큼 환하고 부드러운, 자애로운 미소가 걸려있는 입. 입술은 피를 바른 듯 붉었지만 색 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얼굴은…… 마치 늙은 예술가가 대리석에 빚어낸, 신의 아름다 움을 보고 나서 빚어낸 대리석의 그것보다도 아름다울 만큼, 완벽 그 자체였다. 더하고 뺄것없이 아름다운 얼굴. 그 얼굴은 20대 초반의 청년이었으며, 시원스러운 미와 미 녀의 그것이 조화되어 있었다. 부드러운 미소는 바람의 그것만큼 시원하게 다가왔다. 은녹색 의 머리카락은 가볍게 흔들렸다. 그가 일어서자 잘 묶여있던 것이 화려하게 풀어지면서 폭 포수처럼 쏟아져 내려 햇빛을 튕겨냈다. 메탈릭 실버Metallic Silver의 그것이 4할, 6할은 자연의 연초록빛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 고 있는 머리카락이었고, 눈동자 색 역시 비율이 반반 정도로 머리카락보다 은빛이 좀더 강하 다는 것 외에는 거의 다르지 않았다. 눈에 담긴 기색은, 심연의 깊음과 바람의 자유로움. 그 리고…… 무언가 다른, 미묘한 불안이었다. 외눈 안경을 걸고 있어서 어딘지 모르게 학구적인 미인의 이미지가 만들어졌지만, 그가 그 외눈 안경을 천천히 벗고 결심한 듯 고개를 가볍게 숙인채 입술을 꽉 깨문 다음, 그가 고개 를 들자, 부드럽고 깊은 안광은 이미 없어져 있었다. 불안이 가볍게 출렁거리고 있는 눈은, 지독히도 날카롭게 제련된 한자루 검劍만큼이나 잘 벼려진 전사의 눈이었다. "아슈라스 님…… 시작하셨군요……" 꼭 그 아슈라스라는 자가 앞에 있다는 듯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목소리는 불안과 깊은 슬픔이 담겨져 있었다. 그의 이름은 세라스 Windsinger. 퓨리 드. 현재 아스타르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예술계의 거장인 존재였다. 비록 미들 네임과는 상관 없는 그림을 그려내고는 있었지만, 그의 붓이 흘러가듯 화폭 위를 누비는 것을 본 사람은 모 두들 이렇게 말한다. 그는 화폭위에서 바람을 노래한다고…… 그는 한숨을 가볍게 흘리면서 왼손을 든 후 중얼거렸다. "환풍幻風을 써본지도 무려 5천년이 다 되었지만……" 5천년. 무서운 세월의 흐름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동대륙에서 말하는 현경이라는 경지, 그리고 진력을 전신의 세맥까지 모두 채워 무서운 양의 진원기를 얻으면 3천년을 넘어 4천년에 육박하는 세월을 살수 있게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5천년을 넘기고도 이런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으려면(혹시 모른다, 속은 늙었는지.) 대체 어떤 경지일까? 꼭 이런 경지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정도 외모에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으려면 10서클은 통과 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거기다가 환풍이라고 말한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환풍이라는 말 한마디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만으로도 주변의 마나와 기들은 그의 몸을 휘감으면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 것을 느낀 듯…… 그의 입꼬리가 가볍게 말아올려졌다. "……그분의 명이라면. 무엇이든 못할까. 이제 시작인가? 붕파鵬破여!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 노력해보거라…… 그분의 뜻을 위해……" ……잠깐. 이 친구, 혹시 전형적인 반동인물? 그것도…… 엑스트라? 보통 악당들은 꼭 '그 분' 하고 말하지 않던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정말 아주아주 전형적이다. 악당들은 양지에서, 정의의 용사들(?)은 음지에서 생활하다 역전되지 않던가? 그럼 이 아름다운 미인 이 고작 엑스트라밖에 되지 않는단 말인가! 그의 몸은 천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입꼬리를 아주 묘하게 말아올렸다. 아까의 자애 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품은 미소는 그야말로 거짓이었는지, 너무나도 쉽게 그는 잔인한 느낌이 드는 미소를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아스타르 대륙에서 그를 만나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본다면 절대 동일인이라 인정하지 않을 만큼, 그의 입꼬리에 걸린 미 소는 위험스러웠다. 그의 모습이 흐려져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마나와 기들의 흔들림은 다시 원래의 구성으로 돌아갔고, 잠시 후…… 부드러운…… 은녹색의 아주 옅은 빛을 띈 바람이 그 자리에서 퍼져 나와 바닥을 정화하고 붓을 들어올려 화폭의 대에 올려놓았고, 그가 탁자에 올려두었던 파 레트의 물감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거짓말인 듯, 여전히 이곳은 조용하고 고요했다. 고요와 동화되 어 있었던 것 같은 자라서 그런지…… 공간에는 여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 왔군." 이번에는 누구일까? 또다시 차원벽에 꿰뚫리는 것을 누군가가 느끼고 있었다. 서늘한 청은 빛의 머리카락, 남빛의 차가운 눈동자를 지닌 청년은 세라스의 그것보다 배는 위험해 보이 는 미소를 지었다. 그는 세라스만큼의 미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역시 아름답다는데는 미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미에 관해 해탈한 자들 뿐일 것이다. 그러나 실상 해탈한 자들이라 해 도 회가 동(?)할 만큼 청년의 자태는 고혹적이었다. 웬만한 미녀가 와서 보더라도 울고갈만큼 그는 아름다웠다. 세라스가 고결하고 안온한, 정결 의 바람과 같은 이미지라면, 그의 외모는 그야말로 얼음의 귀공자였다. 그리고 색기가 철철 넘쳐 흘렀다. 잘 짜여진 몸매는 실상 매우 가늘었고 얼굴선 역시 세라스에 맞먹게 가늘었지 만 매우 잘 짜여져 한자루의 잘 벼려진 검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얼 음으로 된 검이라는 말이 오히려 잘 어울렸다. 서늘해 보이는 머리카락과 남빛의 눈동자. 그 리고 그 남빛의 눈동자에는 다시 싸늘한 눈빛이 실려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 끼게 했다. 실제로 그의 몸에서는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물은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흐른다. 그러나 결코 겸손하지 않다. 순리를 따르는 존재일 뿐. 그의 모습은 날카롭고 차가웠지만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 는 느낌만을 타인에게 줄 뿐이었다. 길다란 속눈썹이 눈이 감기고 나서 파르르 떨렸다. 눈빛 만 사라지고 분위기만 부드러워지면 순식간에 여성으로 오인될만큼 여성스러운 이미지가 풍 겼으나, 일단 눈을 뜨고 냉기어린 분위기가 돌아오면 어느 누구도 여성으로 착각할수 없을 만큼 강렬한 위엄의 냄새가 그의 몸에서는 풍겨나왔다. 세라스가 포용하는 느낌의 자애로움이라면 그는 위압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좋아. 5천년만에 천빙天氷을 쓸수 있겠군. 틈틈히 연습이라도 해둘걸 그랬나?" 가볍게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역시 싸늘했다. 그의 입꼬리가 말려올라가면서 그의 몸 역시 세라스가 그러했듯 천천히 투명해지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공기중으로 녹아드는 그 의 입가에는 여전히 차갑디 차가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세라스가 있었 떤 장소와 거의 차이가 없었지만 그가 존재함으로 해서 지독히도 차갑고 정갈한 느낌을 주 는 방이 되어있었다. 실제로 방이 추운 이유가 있었다. 그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청은빛 머리카락의 색 만큼이나 투명하고 차갑고 맑은…… 차가운 얼음이, 방금까지 있었던 그의 앞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 다. 그리고 그 얼음은…… 차가운 얼음의 날개를 편, 아름다운 비응飛鷹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얼음으로 조각된 비응 의 앞에는, 날카로운 조각도가 놓여져 있었다. 그가 떠나면서 남긴 목소리만이 가볍게 울려 퍼졌다가 사라졌다. "얼마 안남았어……" 회색빛의 우중충한 공간이었다. 이 회색빛의 공간은 방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바라보았던 존 재들이 있던 방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회색빛으로 도배되어 있는, 명암 조차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회색으로 도배되어 있는 공간이었다. 넓게도 느껴졌지만 좁게도 느껴졌다. 소름끼치도록 텅 비어버린 공간. 아마 제정신인 사람. 제대로 정신을 단련한 마법사라도 이 곳에 가져다놓고 하루만 놓아두면 제정신이 아닐 것이며, 삼일정도면 아마 미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만큼 이곳은 텁텁하고 무거운 분위기였으며, 동시에 가벼우며 밝은 분위기였다. 회색은 그만큼 짙으면서도 명암조차 없어 자신의 좌표조차 알수 없는 곳이었다. 사람의 감각을 폭주시킬만큼의 정적. 그러나 동시에 이곳은 수많은 소리로 가득차 있는 듯 했다. 회색의 바글거리는 벌레들이 주변에 들끓는 듯 어지럽기 짝이 없었으나 자세히 보면 다시 아무런 느낌조차 없는 회색의 텅 빈 공간일 뿐이었다. 허무虛無. 절대적인 정적의 허무만이 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을 뿐…… 어느것도 없었다. 아니…… 있었다. 아주 엷은 하늘빛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는 존재. 무릎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가느다 란 양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웅크려 있는 모양이었으나, 틀림없이 살아있는 존재가 있었다. 그러나……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그 존재는 이 공간, 절대적인 허무의 공간과 동화되어 있 는 듯 했다. 자세히 바라보면, 엷은 하늘빛의 길다란 머리카락 사이로 삐죽 튀어나와 있는 무언가가 보 였다. 그것은 귀였다. 엘프Elf의 그것만큼 긴 귀가 그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끝없이 자신의 의문속으로 침잠하는 구도자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어떻게는 나락으로 가라앉으며 미칠 듯 이 절규하는 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혼돈스러우면서도 텅 빈 느낌. 그것이 몸 전체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정말 영원히 그 자세로만 있을 듯 했던 '그'…… 아니. '그녀'가 귀를 쫑긋거렸다. 그리고 웅크렸던 몸을 천천히 펴 세웠다. 외모는 20대 초반의 아름다운 미녀였다. 몸매 역시 나올데 나오고 들어갈데 들어간, 완벽하게 빚어진 듯 아름다운 몸매였고, 외모 역시 앞의 두명보다 떨어질게 없을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나 앞의 둘이 입술의 붉음으로 그 새하얀 얼굴에서도 혈색이 있음을 보여주었는데, 이 미녀는 입술색마저 아주 옅은 분홍색이었다. 몸 전체에 있는 색소라는 색소가 아예 엷은 색 인 듯 싶을 정도였다. 눈동자 역시 아주 엷은 물빛과 아주 엷은 청동빛이 섞여있는 그것이었고, 얼굴 역시 새하얗 게 느껴지나 아주 뿌연 느낌을 주었다. 눈빛은 텅 비어버린 그것이었으며, 어떤 감정도 그녀 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몸을 펴 세우기는 했으나 계속 그렇게 허무의 물결에 몸 을 실은채 출렁거리기만 할 듯 했던 그녀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리고 입술이 열리면서 음성이 새어나왔다. "허원虛元의 니에노르…… 슈리…… 알았어……" 띄엄띄엄 단어만을 나열하던 그녀는 가냘픈 음성을 허무속으로 띄워보내며, 허무, 그 깊은 회색빛으로 녹아들어가듯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짐으로써 그나마 회색이 아닌(비슷한 느낌 을 줄 정도로 공간과 닮았지만) 다른 색마저 공간 속에서 지워져 버렸지만, 공간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무심하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아니, 그런 출렁거림마저 없을만큼 의, 죽음보다 더한 침묵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환풍幻風(Shade Gale)의 세라스 Windsinger. 퓨리드. 풍령風靈을 그려내는 자者. 천빙天氷(Est Frozen)의 케셀 Icerune. 드림. 한빙寒氷을 조각하는 자者. 허원虛元(Non-Genesis)의 니에노르 Apocalypse. 크리시스트. 허무의 나락에서 울부짖는 자. 이 세명이 붕파鵬破를 주시하는 자로써 선택되었다. 수레바퀴(Wheel). 그것도 운명運命(Destiny)의 수레바퀴는 숨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언 제까지 맞물려 줄지는 모르나. 그것은 아마도 끝에 이르러서야 알수 있으리라. 083. 꿈이다. 이건 꿈이라고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체 왜 괴로워 하고 있는걸까? 대 체 왜? 알고 있으면서 왜 괴로워 하는 걸까…… 역시 감성과 이성은 서로 어느정도 영향을 주기는 해도 이성이 감성을 이기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는, 설원雪園은…… 악몽惡夢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었다. 나이트메어Nightmare가 만약에 설원이 꾸는 꿈을 본다면 당장에라도 설원을 먹이로 삼았을 것이나, 설원은 지금 드래곤Dragon, 그것도 1억세가 넘어가서 거의 신에 필적하거나 웬만한 신은 넘는 권능을 지닌 그린 드래곤의 레어Lair에 있었다. 그 탓에 감히 몽마夢魔 따위는 접근조차 하지 못했고, 설마 접근했다 하더라도 설원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강렬한 허무의 체취탓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설마 감히 접근해서 설원의 꿈에서 피어나는 음기 를 흡수하고 설원에게 더 큰 악몽을 부여했다 할지라도 허무에 먹히던가 견뎠더라도 그의 검에 죽었으리라. 설원의 눈은 영안靈眼의 효능도 지니고 있었기에…… "형…… 대체 왜……" 그는 형을 부르고 있었다. 입에서 흘러나온 형이라는 외침에는 의문과 불안과 슬픔의 냄새 가 짙게 배어있었다. 지독히도 슬픈 느낌. 영혼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듯 싶을 정도였다. 언제나, 간혹 힘을 무리하게 쓰고 나면 이런 꿈을 꾸어왔다. 자신의 짚은 싱그러운 녹빛이 흐르는 숲 안에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언제나 즐거운 삶을 영위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형. 비록 불행한 모습이기는 하였으나 자신의 형이 언제나 옆에 있어주며, 꼭 챙겨주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일이 바빠 자신들을 계속 챙겨주지 못하던 부모님들을 대신하여 자신들을 지극히 챙겨주던 사람이 그였다. 막내인 설연雪蓮과 함께 언제나 설원의 옆에서 함께 행복해줄것만 같던 그가…… 언제부터 였던가. 변하기 시작했다. 설원은 이상한 사건에 휘말려 버렸다. 심연과 섬월이라는 특이한 이들이 자신의 삶에 개입하고 나서부터. 그는 변해가야만 했다. 하교길에 난데없이 지독한 독을 바른 날카로운 단검을 어깨에 맞게 되고서부터…… 그리고 그자들이 알 수 없는 이름 으로 자신을 부르고 나서부터…… 심연과 섬월은 여러명의, 그 암살자로 보이는 이들의 목을 순식간에, 그야말로 10초 내에 수 십명의 목을 몸으로부터 분리시키고도 전혀 지치지 않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운명은 뒤틀려버렸다. 원래부터 그리 될 운명이었을 수도 있으나, 설원에게는 뒤틀린 운명이었다. 자신의 형인 설영雪影도 그때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확실하게 변해버렸다. 그들과 잠깐의 대면을 가진 직후 거의 50여명에 달하는, 소름 돋게 만드는 비릿한 혈향과 더불어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들이 등장하여 자신들을 죽이려 들었을 때,심연과 섬월 마저, 그 강대한 힘과 검술로 상대들을 죽여나가던 그들마저도 50여명의 뒤에 있던 일곱명 이 나서고 난 뒤 처참하게 깨져버렸고, 그들이 피를 울컥 토해내고 있을 때, 설영이 나섰다. 그는 움직였고,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쏘아보낸 강대한 힘을 보고 설원이 놀라 울부 짖었을 때…… 그 강대한 기운 앞에 설영의 가녀린 육신이 산산조각 나버릴 듯 했을 때. 이미 설영은 그 강대한 기운을 손으로 갈라 헤치면서, 음속의 벽마저 돌파해 상대들의 머리통을박살내고 있었다. 그 가느다랗고 새하얀 손이 '적'으로 보이는 이들의 심장을 무참히 육신에서 뽑아내 었을 때…… 설영은…… 웃고있었다. 흰 미소. 창백하리만치 아름다운 얼굴 위로 걸려있는 섬뜩한 살소殺 笑. 그때부터 설원은 깨달았어야만 했다. 설영은 자신이 아는, 허약하지만 아름다웠던 자신 의 형이 아니라는 것을…… 그 후로, 심연과 섬월이라는 두 존재는 자신에게 회흑색의 검과 회백색의 검 한자루, 그리고 알 수 없는 책자를 남기고 사라져버렸고, 그 후부터 설원은 어쩔수 없이 검을 들고 휘둘러 야만 했다. 그 책자에는 검술과 그 힘을 다루는 방법이 적혀있었고, 설원은 그것을 익힌 후 부터 육신이 급격히 뒤바뀜을 느꼈다.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두뇌의 성능이 몇배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 어버리지 않는다는 수준에서 한 장면을 보고 눈을 감으면 그것의 흠집 하나마저 기억날 만 큼 방대한 기억용량과 놀라운 암기력을 지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육체적인 면에서도 무 서우리만치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먼저 알게 된 것은, 시력視力과 청력聽力의 변화였다. 설원의 시력은 나쁘지 않았다. 1.5정도의 시력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러나 시력이 변화하고 난 뒤, 그는 창공으로 비상 하는 매의 깃털 사이로 부서지는 햇빛의 편린의 작은 흔들림마저 보게 되었으며, 가시광선 의 범위를 넘어 적외선까지 눈으로 감별할수 있게 되었다. 청력으로는 백걸음 바깥의 나뭇 잎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리게 되었다. 흔히 무협지에서 쓰이는 묘사나, 확실히 이 렇게 변했다는 것 하나만큼은 부정할수 없었다. 청각에 일부 초음파 지각까지 할수 있게 된 바. 그는 이미 초인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완력의 변화였다. 그의 팔뚝은 지구력은 좋지만 한순간에 낼수 있는 완력 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나 겉모양이 아주 조금 변한 뒤로는 확실하게 달라졌다. 근육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고 얇은 팔뚝이 되어버린 뒤에는, 검을 쥐고 몇천번을 휘둘러 댔음에 도 불구하고 굳은살이 박히지 않게 되고, 평소에는 매우 부드럽지만 일단 힘을 주기 시작하 면 칼조차 들어가지 않을 만큼 질기고, 단단한 살갗과 강철을 능가하는 강도의 뼈를 지니게 된 후에는…… 그는 단단한 바위를 부수게 될 만큼 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 세 번째는 민첩성과 운동신경의 변화. 그는 대단히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니고 있었지만, 일 단 변화된 후로는 야생에 사는 맹수조차도 따라오지 못할만큼 예민한 신경과 빠르기, 그리 고 제 육감을 지니게 되었다. 반경 10m내부의 모든 사정, 공기의 흐름마저 알게 되었으며, 날아오는 돌멩이 수십개조차 한꺼번에 쳐서 튕겨낼수 있게 될 정도로, 그의 몸은 많은 변화 를 거쳤다. 그러나, 그런 그마저…… 백발과 백색의 눈동자, 그리고 희디 흰 피부가 알비노Albino를 입 증하고, 동시에 변화한 자신보다도 가느다란 팔다리와 몸매를 지니고 있는…… 선천적으로 허약하기 그지 없었던 형. 설영은 꺾었다. 그 후부터 문득 부드럽고 따스한 미소를 지어보이 는 형에서 냉혹한 살소를 입가에 가끔 지어보이던 형이, 자신이 쓰는…… 소환해 낼수 있는. 다이아몬드조차 갈라버리는 허검과 공검을 평범한 백련정강 예도銳刀 한자루로 꺾어버렸던 것이다. 설영은 완력이나 스피드가 아닌, 완벽한 기술로써 그를 제압해왔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다 해도 완력이나 스피드, 그리고 시각이나 청각이 별로 좋지 않다면 처참하게 깨진다. 기술이 뛰어나도 힘이 뒷받침 되어지지 않으면 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 러나 설영은 아니었다. 이미 그 범주에서 벗어난지 오래라는 듯, 부드럽고 빠른 베기와 흔들 리며 다가오는 찌르기, 그리고…… 일순간 빛을 잘라버렸다고 생각될 정도로 깔끔한 세 번의 삼방향 자르고 찌르는 공격만으로 자신의 검을 손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으며, 목에 검을 들이대고 차갑게 웃어보였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비웃음이었다. '이정도로 모두를 지키겠다고 감히 말할수 있겠는가.' 하는 의미 의 그것이었고, 설원은 그날부터 더욱더 강해졌다. 그리고 어느날이었을까. 설원은……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바로 그날은. 참 우스우면서도 특이한 일이 일어났었다. "……놀라워!" 그린 드래곤. 미뉴엘은 설원의 몸에서 채취한 여러종의 세포를 마법으로 스캔Scan하고, 정 신술과 용언을 더해서 그야말로 정밀하게 분석하고, 대상의 정보를 정신세계에서 완벽하게 재현하여 여러 가지로 이미지와 시뮬레이션을 세팅해서 돌려본 뒤. 입을 쩍 벌렸다. "이거…… 굉장한걸? 누가 만들었을까? 적어도 드래곤 수준에서도 로드Lord정도가 아니면 이정도까지는 힘들겠는데…… 무식하게 강하군. 5년정도만 성숙되면 나도 못당해낼 키메라 군! 아니. 키메라는 아닌가? 이것저것 들어가지는 않았으니…… 어쨌든 아주 재미있게 개조 되었군. 시력은 소드 익스퍼트Sword Expert 최상급의 1.8배에 달하고, 적외선까지 감지되는 데다가 특이한 기운 역시 형상화되어 볼수 있군. 영안에 반쯤 용안까지 추가되어있고. 청각 은 1.5배 정도인가? 초음파에 그 전음이나 메시지 마법까지 옅들을수 있어? 얼씨구! 대단하 군! 근육세포는 오거Oger 저리가라…… 아니. 오거도 상대가 안되겠는데?" 한동안 중얼거리며 감탄하던 그는 더욱더 놀랐다. 이건 질량보존법칙도 무시해버리잖는가! 자신쯤 되는 드래곤이면 물론 마나나 기를 아예 드래곤하트의 특성상 증폭시켜 완벽하게 창 조해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좀 비효율적이라 그렇지. 어쨌든 이것은 완벽하게 질량 보존법칙을 무시하는 근육세포였다. 그러나 그런만큼 마나나 기를 가해주어 에너지를 공급하면(음식물이라도 상관없다.) 무식하 리만치 완벽하게 증폭되면서 오거를 훨씬 넘는 괴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신체 밸 런스는 자신이 셋팅해도 이정도는 불가능했다. 거기다가 신경계 구조나 두뇌. 그리고 모든 점에서 100점 만점에 플러스 알파까지 가능할 정도였다. 게다가 이놈은 또 어떻게 손질을 해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절대 노화하지 않는 세포에(노화 루틴 자체가 없다.) 기나 마나 자체를 조금씩 빨아들여 재생력도 극한까지 늘려놓았고, 단순 한 재생력뿐만 아니라 신성력으로 치유술을 쓰면 증폭해서 받아들여 재생도 빨라지고, 저주 술중에서도 드래곤도 레겔급 이전에는 걸리면 자살해 버릴 정도로 고통을 주는 '암흑혈화의 분노' 정도의 주문도 문제없이 무효화한다. 추가적으로 마나를 배치하여 공격하는 마법레벨중 5서클급 마법까지는 거의 중화가능했고, 더군다나 검기계열 공격조차 대충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공격까지도 몸이 튕겨낼 정도로 기 와 마나에 대한 반발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나와 기를 문제없이 의지 대로 받아들일수 있는 몸이라…… 걸작이다. 확실한. 거기다가 산소공급이 없는 상태에서도 이놈의 몸은 대략 10분 이상을 버티고도 장기조직 손 상이 없었다. 뇌마저도 산소없이 15분을 버틸만큼 놀라운 놈이고, 진공 상태에서도 몸이 이 상을 느끼지 않으며, 반고리관조차도 급이상이 생기지 않는, 생체밸런스도 끔찍하리만큼 완 벽하고, 신체비율도 황금 비율 그 자체인데다가, 물속에서조차 약한 뇌기雷氣로 정확하게 뇌 와 몸의 활동이 가능할 만큼의 산소를 전기분해해서 흡수하도록 만들어진, 개조해서 만들어 진 존재들 중에서는 최강의 것인데…… "이걸 누가 만들었느냐가 문제로군." 추가적으로 대기중의 산소가 0.01%만 되더라도 멀쩡히 호흡 가능하다. 체력은 오크나 오거 도 저리가라고. 어떤 키메라도 이정도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미뉴엘은 이놈이 자신의 잠의 여운을 모조리 날려먹은 놈임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느꼈고, 여기서부터 설원과 미뉴엘의 악 연은 시작되고야 만다. 설원이 정신없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침울해하며 음기의 장을 넓혀 아예 음기를 형상 화 시킬정도로 궁상을 떨어대고 있을 때. 그 지독히도 강렬한 사념조차 느끼지 못하며 미뉴 엘은 머리를 굴리며 자신의 천재성(…)에 감탄하고 있었다. ……드래곤이라는 종족의 머리구조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精神健康에 좋겠다 는 결론을 내리는게 좋지 않을까? 084. 고룡古龍, 의무義務에 금제禁制 당하다. 미뉴엘은 설원이라는 인간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이놈의 인간은 깨어나고 나서 자신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정말로…… 이 인간 은 뻔뻔스러웠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이 인간인지 의심스러운 육체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 놈의 반응이 이래서는 아니되는데! 감히 인간주제에 드래곤과 맞먹으려 들고 있는 것이다. 이놈의 자식이! "거기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곱상한 자식. 밥 내놔라." 미뉴엘은 처음 들어보는 이 황당한 말에 어이없어 했다가, 곧 분노를 지글지글 피워올렸다. 분노는 살의로 변질되어 강렬한 드래곤 피어Dragon Fear가 되어 주변을 뒤덮었고, 곧 미뉴 엘은 이 앞의 건방지고 황당한 인간이 벌벌 떨며 생명을 구걸하거나 졸도하리라 믿어 의심 치 않았다. 그러나 이젠 드래곤 피어를 드래곤이 그 성능을 의심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찾아왔으니, 이놈은 능력도 뭣도 강하지 않은 주제에, 뻔뻔스럽게 드래곤 피어를 무시! 무시해버린 것이 다! 그렇다. 이놈은 그 살기殺氣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강한 자극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어 떤 둔탱이라도 이럴수는 없는 것이다! 설원의 표정과 기세는 지독히도 차갑게 가라앉은, 불만과 살의와 분노를 가둔채, 얼음가면을 쓰고 살기를 질질 날리고 있는. 한마디로 미친놈에 가까운 그것이었다. 그래서 드래곤 피어 고 뭐고 무시해버렸고, 그것은 그의 특성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설원은 용감할수 있었다. 무식한 방면으로. "자식아! 밥 안줄거야?! 그 곱상한 얼굴 구겨봤자 하나도 안무서워!" 그리고 놈은 누워있던 침대의 옆 탁상에서 컵 하나를 집어서 휙 집어 던져 미뉴엘의 머리에 택! 하고 맞아 튕겨나가게 하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그 컵은 매우 가벼운 재질이었고, 무엇 보다 저놈도 힘을 주지 않고 가볍게 던졌기에 말 그대로 택! 하는 효과음과 통증 외에는 주 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미뉴엘의 분노를 불러왔다. "이 건방진 인간놈이!!!" 그는 신경질이 나 있었다. 그 빌어먹을 설영雪影. 상상을 초월하는 미모를 지니고 있는 놈의 꿈을 꾼 탓에 기분이 더러워져 있었다. 그래서 평상시의 부드러운 성격은 어디 가버리고 마 음속, 무의식 깊은곳에 잠자고 있는 성질 더러운 자아가 깨어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 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몸의 상태에서 다른 모든 것까지 성질을 박박 긁고 있었다. 일단 몸 을 둘둘 감고 있는 모포의 거친 감촉. 또 몸에 달라붙은 흙먼지. 그리고 꿈에 의해 더러워진 기분과 두통으로 아릿한 머리. 추가로 배가 고팠다. 설원은 배가 고픈. 공복 상태로 돌입하면 집안에서는 악마가 되었던 녀 석이다. 어렸을적 한 3일을 불쌍하게 굶으며 방안 구석에 처박혀 있었던 적이 있는지라, 먹 는것에 대해서는 느긋하고 조용한 상황에서 남김없이 먹고, 감히 반찬이나 밥을 앗아간 녀 석에 대해서는 처절한 응징을 가해온 존재였다. 그런 어이없는 성격 탓에 항상 식사시간에 는 혼자 느긋하게 밥을 먹어치웠고, 그가 들어선 식당은 항상 침묵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콤플렉스 부분에 가까운 존재. 형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상 상을 초월하는 미모를 지닌. 설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허약하게 생기고 곱상하고 형을 떠올 리게 하는 재수없는 놈인지 년인지 모를 것'인 미뉴엘이 들어왔으니…… 평소보다 몇배는 띠꺼운 언사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한마디로…… 꼭지가 돌아버렸다는 것이다. 무협용어를 빌리자면 골수에 심마가 자리잡아 주화입마에 든 상태라 할수 있었다.(하지만 설원은 내공심법을 익히지 않았기에, 광마가 되 어 미뉴엘에게 다짜고짜 공격을 퍼붓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놈이 감히 하해와 같은(?) 고귀한 말(?)을 씹으면서 외치자 금방 폭주모드의 단계 가 더더욱더 레벨 업 되고 말았다. "이 건방진 인간놈이!!!" 추가적으로 미뉴엘의 분노어린 외침은 그의 머리를 울려 약간의 두통을 자아내었고, 그것으 로 빠직. 하고 그의 두뇌는 인내를 상실해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설원의 몸에서 특이한 현상 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육체는 밥 내놔라고 소리치고 있었고, 두통이 밀어닥치는 머리와, 떨 어져 나간 인내의 끈. 그리고 몸속에 존재하는 붕괴와 파멸의 힘이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탓에 '무한이 건네준 힘의 조각'이 각성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말았다. 거기다가 지금 주변을 뒤덮은 드래곤 피어가 그것에 악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드래곤 피어 란, 다시 말해 용의 살의다. 물론 지금의 드래곤 피어는 1천분의 1쯤 되는 살기를 개방한것 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마나와 기는 요동을 치면서 설원을 갈기갈기 찢을 준 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설원이 어떻게 '개조'되었나? 드래곤 피어가 주는 부수효과 정도 는 무시할만큼의 신체에, 무엇보다 지금 그는 꼭지가 돌아있었다. 그래서 인간으로써의 정신 범위로의 제어를 잊은 상황이었고, 그 상황에서…… 그는 천신天神급의 넓이로 관조하는 정신을 폭주시켜 버리게 된 것이다. 그것은 미뉴엘을 능가하는 힘의 관조였다. 물론 지금의 폭주는 그 힘의 아주 일부에 불과했 지만, 붕괴와 파멸의 힘이라는 것은 결코 엿바꾸어 먹어도 될 만큼 간단한 힘이 아니었다. 자연이 창생을 시작하면, 그 창생으로 인해 생겨난 것들은 진화와 순환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진화와 순환이 잘못되면, 그것을 부수고 다시 창생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붕괴와 파멸 이었다. 그리고 그 힘이 천신급 정신과 공명共鳴을 시작한 것이다. 미뉴엘은 드래곤이었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거의 극에 다다른 드래곤의 힘을 손에 넣은, 최 강의 고룡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설원의 변화도 빨리 눈치챘다. 얼마나 이놈이 현 자연 창생 에 위험한 놈인지 직감한 것이다. 드래곤은 균형을 위해 무한 원신이 태초부터 창조한 종족이었다. 그래서 나이만 먹어도 신 급 힘을 발휘할수 있는 강대한 종족이었다. 그래서 균형있게 아직은 잘 돌아가고 있는 세상 에, 지금 이 설원의 공명이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짐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균 형을 유지하기 위한 드래곤 일족의 의무 때문에라도, 설원을 막아야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 도 모르게 설원이 집어 던졌던 컵을 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팔에 상당히 강한 근력 강화 마 법을 걸고…… 컵을 집어 던졌다. 아까 설원이 장난처럼 집어 던진것과는 수준이 다른 속도와 파괴력을 머금은채, 컵은 쏘아 져 나갔고. 설원의 머리에, 미뉴엘이 맞았던 것처럼 직격했다. 아까의 택! 하는 수준이 아니 었다. 미뉴엘의 근력 강화 마법은 그의 마력을 바탕으로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강화 마법 의 수준은 비록 무의식적으로 움직인 마력의 힘이라 그리 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가 느다란 인간형 몸의 힘을 10배 정도로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 힘은 컵을 흉악한 대거 를 능가하는 무기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푸아아악 하는 끔찍한 소리를 내며 날아…… 컵은, 금속질의 그 가벼웠던 컵은. 무시무시한 완력의 여파와 도움의 손길에 힘입어. 설원의 머리 에 쩌억 하고 맞았다. 그것도 그냥 아무데나 맞은 것이 아니었다. 아주 정확하게 컵의 모서 리는 설원의 미간을 찍어버렸던 것이다. 퍼어어어억―! 아까와는 다르게, 소리도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설원의 머리와 정신은 순간적으로 상당한 타 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자연을 무너뜨릴뻔한 공명은. 너무나도 손쉽게 가라앉았다(…). 물리 력을 머금은 컵이 설원의 머리에 닿고, 강한 전자반발이 일어나면서, 그의 두뇌와 정신과 의 식과 영혼에 둔중한 충격을 주었고, 그것은 육체를 완벽하게 졸도 상태로 몰아갔다. 그리고 정신이 닫혔고, 의식이 닫혔으며. 영혼이 시커먼 수마의 나라로 강제출두 당했다. 공명은 끝났다. 미뉴엘은 자신이 무슨짓을 했는지 잠시 생각하다가. 무서운 속도로 연산하는…… 수퍼 컴퓨 터 수백대 분의 무서운 성능을 지닌 두뇌로 금방 왜 자신이 이런 행동을 했는지 알아냈다. 그리고 곧 식은땀을 흘리며 설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절규했다. "끄아아아악!! 저놈을 죽일수도 없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 미뉴엘은 임자를 만났다. 설원의 뻔뻔스러움을 보건대, 결코 그는 이곳에서 떠나 지 않을 것이다. 웬만하면 말이다. 그리고 설원이 다시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된다면, 그의 의 식은 아까의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또 그의 몸에 깃든 붕괴와 파멸의 힘이 자연을 먹어부수려 들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붕괴와 파멸은 단순히 자연만 먹어 부수는게 아 니라. 어쩌면 그 힘의 기척으로 보았을 때, 차원 자체를 함몰시켜 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 럼 그 죄는 누가 덮어 쓰는가? 바로 미뉴엘이 덮어 쓰게 되는 것이다! 설원의 힘은 자연의 일부를 구성한다. 잠들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단지 자연력이 아니라. 오히려 수준높은 '잠재 의지'이며 '법칙'이었다. 아니꼬운 상황이었지만, 법칙과 균형 과 중용을 수호해야만 하는 드래곤으로써. 미뉴엘은 결코 설원을 죽일수 없는 것이다! 그의 몸을 오히려 보호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어쩌다 차원의 법칙중 하나의 힘이 이따위 인간 의 몸에 깃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하나의 족쇄가 되어 미뉴엘을 꽁꽁 묶어버렸다. 이것은 결코 육체적인 수단도 아니었고, 정신적 수단도 결코 아니었다. 누가 육체적인 수단 으로 고룡이자 혜신경에 오른 신 두 마리(?)를 눌러버릴만큼 강한 힘을 지닌 그를, 창조의 권능도 우습게 발하는 그를 묶을수 있단 말인가? 누가 육체적으로 족쇄를 그에게 가할 것인 가? 그리고 정신적으로 불가능 했다. 신경의 혜를 얻기는 했지만 아직 쓰지는 못하는. 그러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하고 넓은 정신의 범위를 지닌 그를, 정신적으로 족쇄를 가해 정 신붕괴를 할수 있단 말인가? 절대로 불가능 했다. 오히려 이것은, 드래곤으로써의 '의무'였다. 태초, 무한 원신이 그들에게 건네준…… 힘과 자 유와 오랜 세월을 살아갈수 있고, 죽음도 마음대로 택할수 있는 그 장대한 이익을 주면서 오직 하나 건넨 의무. '자연과 균형과 중용의 수호'. 그리고 차원의 유지. 그것이었다. 그것 이 이제 족쇄가 되어 그를 유린하는 것이었다. 분노와, 살의를 담아. 그는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그날, 미뉴엘의 레어가 존재하는 숲의 모든 몬스터와 정령들은 공포에 몸을 떨어야 했다. 드 래곤 피어와 미뉴엘의 분노과 의지가 되고 뜻이 되어 마나와 기를 요동치게 하고 몬스터들 과 정령들의 의식을 흐트릴 정도로 강대한 힘의 폭풍을 일으켰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몬스터와 정령들은 알고 있을는지? 그 공포의 대상 미뉴엘이 포효하고 나서 설원 이 깨어날까봐 찔끔 해서 입을 꾹 다물고는 처연한 눈길로 미간에 아주 약간의 푸른 자국을 남긴채 곤히 자고있는(…) 설원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땠을까? 억울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로써 설원은 신변의 안전을 얻었다. 이 차원에 존재하는 모든 드래곤과 신들이 공존할수 없으나 공조하고 있는 두 무한無限의 뜻에 그를 보호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되게 되었던 것이다. 꼴에 그는 이 차원에서 가장 높은 직위를 얻어버렸던 것이다. 고위신, 고룡, 차원신 가리지 않고 그를 떠 받들어야 하는 상황이 닥쳤던 것이다. 동대륙에 떨어져서 아직도 약통에 처박혀 맥을 못추고 있는 누구와는 차원이 다른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085. 마법이 뭔지…… 설원이 깨어났다. 그리고 미뉴엘은 눈치를 보고 찔끔찔끔 거렸다. 설원은 가뿐하게 일어났지만, 갑자기 바락바락 대들면서 고함을 쳐대고, 마지막엔 무엇을 던 져서 자신의 미간에 박아버린(?) 무서운 놈이 왜 눈치를 보는지는 알지 못했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당장 미뉴엘의 머리통을 주먹으로 후려 쳤으리라. 그러나, 일단 설원은 근력 강화 마법을 걸고 컵을 집어 던진 그 미뉴엘의 작태는 기억에서 말소된 상황이었다. 일단 꼭지가 돈 상태여서 그런지 몰라도…… 그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뉴엘은 음흉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이녀석이 빽빽거리고 건방지게 나와 자신의 몸 상태와 처지를 알고 협박하려 드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이놈의 반응. 자신이 왜 갑자 게 빌빌 기는지를 모르는 것 같은 이 반응을 보고 나서 음흉하게도 씨익 웃으면서 사기를 치기로 했다. 나중에 드래곤 로드가 알게되면 경을 칠 일이었지만…… 모르면 어쨌든 그것으로 좋다. 아무도 모르게, 그는 설원에게 사기를 치고 괴롭히기를 시작 하려 들었던 것이다. 일단 사기 공작을 위해 미뉴엘은 근엄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그러나 설 원이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 얼간이가 왜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는 목소리를 내느냐고 생각하는 줄 알았더라면 제대로 말했을 것이다만은…… 미뉴엘은 지금 자신이 어떤 형태로 폴리모프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일전에 유희를 하고 나 서 설정해둔 폴리모프 스펠을 바꾸지도 않고 시전했기에 이렇게 된 것이었다. 이전번 유희 보다 좀더 전에 그는 제법 위엄있는 모습의 중년남으로 거상이 되어 대륙을 금전적으로 손 아귀에 넣은적이 있어 그때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원은 이 미뉴엘의 작태를 보고 속으로 조소를 흘리고 있었으나, 미뉴엘의 설명이 지속될 수록 창백하게 질려갔다. 미뉴엘이 어떤 사기를 쳤을지는 모르나. 설원의 얼굴은 너무나 창 백했다. 어쨌든 설원의 창백한 얼굴은 곧 굳은 결의로 물들었고, 그것을 보면서 미뉴엘은 아 주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다만 설원의 눈에는 아주 조용한 미소로 보였을 뿐이었지만, 그것 은 무시무시한 악마의 미소였다. 자, 그럼 알아보자. 대체 미뉴엘은 어떤 사기를 쳤는가? 설원은 설사 드래곤의 본체가 앞에 있어도 아랑곳 하지 않을만큼, 그린 드래곤보다 무신경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었다. 드래곤이라고 밝힌다는 것이래도 일단 처음에는 믿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왜 10분 정도 이야기를 한 것가지고 저렇게 창백하게 질린 것일까? 10분전, 미뉴엘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그리고 설원이 깨어나기 직전에 미뉴엘이 한 작태 부터 먼저 알아두도록 하자. 미뉴엘은 누워있는 설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음흉하게 웃었다. 쓰러져 있는 설원의 미간에 는 아주 옅은 푸른 점이 찍혀있었다. 일단 미뉴엘은 가볍게 치유마법을 의지만으로 발하여 그 미간의 푸른 점(?)을 지워 증거를 말소했다. 얼마나 강한 타격이었기에 그 작은 점에서 뇌로 충격이 확산되었을지 의문스럽다. 미뉴엘의 입가에 걸린 음흉한 미소는 지워질줄 몰랐다. 어쨌든 그는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집게 손가락을 세웠다. 미뉴엘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설원의 미간에 가볍게 닿은 순간. 설원 의 몸이 움찔거렸고, 미뉴엘도 움찔거렸다. 그러나 설원은 깨어나지 않고 숨을 퓨우 하고 내 어 쉴 뿐이었다. 미뉴엘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면서 설원을 쑤셨다. 마치 '왜 자다말고 꿈틀거려서 이몸을 놀라 게 하느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미뉴엘은 어쨌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계획에 차질이 있을뻔 했던 것이다. 그의 입가에 걸린 음흉한 미소가 순간 짙어졌다. 예상대로 이녀석은 정 신의 크기가 거대할 뿐이지 영혼은 그 아주 일부만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미처 자신이 지 닌 힘이 어느정도인지 모르고, 쓸줄도 모르는 녀석이라 할수 있었다. 그래서, 미뉴엘이 설원보다 정신의 크기가 작음에도. 그의 술수는 설원에게 먹혀 들어가버렸 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기억記憶 말소抹消!」 용언이 시전되었다. 그리고 그 용언은 주변의 마나를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이 용 언은 설원의 기억을 말소하기 위한 마법이었다. 그의 의지가 설원이 꼭지가 돌았던 사실까 지와 컵으로 얻어맞고 졸도한 부분까지를 쑹당 잘라내었고, 그것을 산산이 흩어버렸다. 설원 의 삶에서 멀쩡한 기억을 잘라먹으며 히죽 웃던 미뉴엘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일그러졌다. 설원이 꼭지가 돌았던 이유를 읽은 것이다. "이…… 배고프다고 돌아버리다니……" 허탈함. 미뉴엘의 표정은 그것이었다. 살다살다 이렇게 황당한 인간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미뉴엘은 계속 코웃음을 쳤다. 이런 엽기적인 부류의 인간이라니…… 어쨌든 우습기는 우스웠다. "뭐. 먹을거야 창조마법으로 만들면 그만이니까……" 11서클에만 들어서도 따끈따끈하고 맛있는 음식쯤 만드는 것 일도 아니었다. 센스가 좀 없 다면 환상마법을 이용해서 뇌에 직접 '맛'을 전달하고 맛없게 창조된 음식의 맛을 눌러버릴 수도 있었다. 미각에 착각을 주는 것 쯤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미뉴엘은 상당히 요리 를 잘했다(…). 미뉴엘은 기억을 말소 한 후. 사악하게 웃으면서 이놈이 왜 자신의 레어 근처에서 자고 있 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이놈이 허무의 힘을 이용해 나뭇가지를 자르고 퍼자기 전에, 나무 를 쓰러지게 한 무언가가…… 그 힘은 왜 발생한 걸까? 다른 차원의 마력개념. 클래스로 따 지면 클래스 8이나 9에 달하는 마법 정도가 아니면 기나 마나를 함께 밀어내지는 못한다. '어쩌면 이녀석일수도 있겠군……' 중얼거리면서 미뉴엘은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이녀석이 떨어졌을 때 무슨 일이 있었을 까? 근 30분 간의 기억만을 읽을수 있었을뿐. 이녀석의 기억 뒤편, 과거는 도저히 읽을수 없 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임기응변과 잔머리(?)로 이놈을 속여넘겨서 자신의 현 직위나 다 름없는 처지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자신이 드래곤임을 밝히는 건 필수였다. 그렇지만 이녀석이 일단 자신의 처지 를 활용할수 있다면 또 그것이 문제가 아닌가? 바락바락 소리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드래곤 피어에도 무덤덤한 것을 보니 무신경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 꼭지가 돌아버려서 그냥 팩팩 내뱉은 것 같기도 한데…… 이녀석이 워낙 당당하게 소 리쳐서 이쪽저쪽으로도 생각이 되는 것이다. 사고가 너무 복잡하게 돌아가서 평범한 인간이라면 아마도 이쯤 두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 러나 미뉴엘은 드래곤. 그것도 고룡이었다. 수십갈래의 사고를 하면서도 그는 별로 두통따위 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생각이 더욱더 뻗어나가 잔가지를 뻗고 있었지만, 그는 아 직도 두뇌 공간의 여유가 많이 남아있었다. "흐으음…… 어쩐다?" 미뉴엘은 점점 깊은 사고로 침잠했다. 그리고 나서 손가락을 딱 튀기면서 헤벌쭉(?) 웃으면 서 감탄성을 터뜨렸다. "맞아! 크핫하하하하!!!" ……뒷부분의 광소狂笑는 결코 지금 미뉴엘의 목소리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어쨌든 엄청나게 웃어 젖히던 미뉴엘은 입을 콱 손으로 잡고는 조심스러운 눈초리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설원을 바라보았다. 혹여 깨어난다면 산통 다 깨진다. 조심 해야지. 그럼그럼.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는 조심해야지…… 음흉한 미소가 미뉴엘의 입가에 걸렸다. 다시 말하지만, 저 외모로 음흉한 미소 지어봐야 전 혀 어울리지 않는다. 자, 그럼 미뉴엘은 무슨 짓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일단 이놈은 마나와 기를 한꺼번에 밀 어낼정도로 많은 에너지를 머금고, 그 많은 에너지의 회오리속에서도 멀쩡한 강대한 결계를 몸에 둘둘 감고 자신의 영역에 떨어져 내렸다. 그런고로, 그정도의 힘이라면 아마 차원벽도 뚫을수 있을 것이었다. 아마 이놈은 차원 이동을 한 놈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질적이고 옅은 마나와 기의 기운만이 그의 몸에 묻어있었기에 이것은 확신으로 변했다. 자,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일단 이 설원이라는 녀석은 결코 '그곳'에서 모범생이 아 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예의 판타지 소설이라는 것은 마스터했다는 이야기나 다를 바가 없었다. 미뉴엘의 작전, 아니…… 계획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판타지 소설이라는 것은 만약에, 정말로 가능성 희박하게 차원이동을 통해 이런힘이 지배 하여 힘없는 사람들이 짓밟히는 세상에 떨어진다면 제법 괜찮은 교과서(?)이기 때문이고, 사 전 학습 자료이기 때문이었다. ……상당한 차이를 보이겠지만. "후후후…… 후후후후후……" 음침한 웃음소리는…… 얼굴에 그려진 음흉한 미소와는 달리 아주 리얼했다. 여기서 잠깐. 다시 짚고 넘어가자. 미뉴엘은 틀림없이 성공했다는 것을 다들 알 것이다. 위 (?)에서 틀림없이 설원의 창백해진 얼굴은 모든 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미뉴엘의 능력에 모 두 찬사를 보내…… 지 말고, 이 두 인물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설원은 본래 아주 성격이 좋다. 설영이라는 인물에 대해 나타나는 반응은 성격 광폭화狂爆 化…… 그러니까 버서크Berserk 스펠Spell에 걸린것과 같은 효과를 몸으로 보여주지만 어쨌 든 그는 성격이 아주 좋다. 그리고 머리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고, 결코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 거기다가 평범하지도 않다. 현세의 어느 학생이 살상용殺傷用 살인검. 그것도 살벌한 쌍검을 익히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미뉴엘. 종족부터 드래곤인 이 양반은 그린 드래곤의 무신경함과 오랜 세월을 산 고 룡의 음흉함(?)…… 여기서는 지혜지만. 어쨌든 그런 음흉함을 지니고 있는 작자다. 그리고 성격이 조금 더럽고, 조금 급하고, 조금 사악하고…… 하여튼 그런 존재다. 그리고 머리는 설원과는 비교조차 할수 없을 정도로 좋다. 답 알고 보는 시험이지만…… 일단 소개부터 누 가 유리한지 드러나지 않는가. 그러나 다들 지금까지 이 세계를 보아 오셨다면 알 것이다. 동대륙에서는 술술 일변도로 풀 려가는가 하면 이쪽 대륙으로 건너와서는 이상하게 뒤틀리고 있다는 것 말이다. 그것은 동 대륙의 그 누구와 이곳의 설원과의 비교이기도 하다. 한명은 인독으로 키워진 암살자이며 살인을 우습게 하는 존재. 그리고 한명은 지금까지나마 가정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온, 그러 나 결코 평범하지는 않은. 살인할 준비가 되어있는 존재…… 둘다 비슷한 나이고, 둘다 비슷한 조건이다. 한명은 앞으로 빛에서 살게 되고, 한명은 앞으 로 빛에 살다가 어둠으로 빠지게 되는 케이스니까…… 결코 이 둘은 양립할수 없는 존재다. 서로를 이해한다면 모를까…… 설원과 현청. 이 두 존재는 절대적인 우정을 지닌 친구가 아니면, 생사대적을 넘어 자신을 죽이고 상대를 죽여도 별로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험악한, 피로 피를 씻는 관계가 될 것이다. 그만큼 두 존재의 조장된 삶들은 그 조건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역전逆轉되고 반전反轉되었다. 그리고 또 끔찍하리만큼 섬뜩한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둘 다 앞으로 검을 들고, 사람을 죽이고, 그것을 일상으로 하게 될테니까…… "흠흠. 시작해볼까…… 일단 먹을 것은 나갔다가 창조해서 가져오면 되겠고……" 문득 미뉴엘은 헛기침을 하면서 중얼대며, 아주 위험스러워 보이는 눈빛으로 머리를 굴리며 설원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꼭 잡아먹으려는듯한 눈초리였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위 험한 상황이 아닐수 없다. "아가야. 넌 이제부터 내 밥이란다. 아주…… 귀여워 해주마. 후후후……" 미뉴엘의 눈빛은 장난기와 기대감에 달아올라 번뜩이고 있었다. ……아주아주 날카롭게! 086. ―1개월 후. 설원은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펜을 우두둑 하고 꽉 쥐어 부수어 버렸다. 자신이 살던곳의 볼펜이 그리워 진다. 아무리 후진 것이라도 제발 잉크 좀 번지거나 잉크를 계속 묻혀 쓰는 펜만 아니라면 어떤 종류의 볼펜이라도 환영한다. 벌써 지금 그는 A4용지보다 좀더 길쭉하 고 그 질은 형편없다고 생각되는 종이를 빽빽하게, 자신이 살던 곳에서도 상당히 복잡한 계 산을 통해 70장째 바꾸어 쓰고 있었다. "제기랄! 마나역순환이 왜 또 어긋나냐구! 어째서! 끄아아아악!!!" 틀림없이 그곳에 살던 자신의 지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계산이다. 아주 평범한(?) 학생으 로 살고 있었던 자신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미뉴엘의 무시무시한 교육(?)에 의해 괴롭힘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지금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이 렇게 단시간 내에 마법을 배워서 뭐가 되겠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설원의 두뇌는 극한까지 그 능력이 개방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차원벽을 넘을 때, 본래부터 천재였던 청과는 달리 그의 두뇌는 상당히 좋은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차원 벽을 넘고 나서 거의 청을 능가하는 두뇌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 여파로 단 일주일만에 미 뉴엘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서적을 다 외워버렸고, 현재는 미뉴엘에게 두들겨 맞아가며 마 법을 배우고 있었다. 통한의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말이다. 아무리 자신이 지금 머리가 좋아졌다 하더라도 수 학이 어디 속성으로 다 될만한 것인가? 3주일. 3주일만에 그는 자신이 살던 곳의 최고위 수 준의 물리학자들을 능가하는 계산을 열심히 해야했다. 마나역순환과 순환. 그리고 재배열과 자연력 폭주. 이어지는 마나밸런스의 교차와 마나스트림의 진동에는 변수도 무서울 정도로 많아 혼돈 과학을 능가하는 괴로운 과제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수학식들만 죽어라고 배우 면서 간신히 2서클을 마스터한 상태였고, 2서클을 배운 지금은 미뉴엘의 협박에 의해. 드래 곤들이 배우는 클래스식 마법을 익히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클식 마법. 그것은 마나의 스트림과 에너지 보존 법칙 따위에서부터 수천가지 이론이 조 합되어 만들어지는 여러 마법수련으로 정신력을 극대화하고, 깨달음을 중시하여 주변의 마 나를 재배치하여 자연을 극도로 이해하고 수양하여 마법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실 제로 인간들은 적어도 70세 이상에 도달해야만, 어지간한 수재도 7서클에 이르르게 된다. 그 러나 지금 설원은 고작 3주일만에 2서클을 마스터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두뇌의 극한 사용 은 상상을 초월하는 효과를 가져다 주고 있었다. 그리고 실전 훈련도 별로 걱정하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미뉴엘의 고문에 가까운 그 마법난사를 직접 두들겨 맞아가며 마법의 효과 적인 활용과 보조방식을 배우고 있었으니까. 자신도 맨 처음 서클식 마법을 익히면서 그렇게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물론 두뇌가 활성화 되지 않은 상황에서였다면 미쳐버렸겠지만. 마법이라는 것은 의외로 신선하게 다가 오고 있었다. 그런데 1서클을 5일만에 마스터하자 미뉴엘의 가르침은 괴롭힘 위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2주일 하고 이틀을 추가해 그는 2서클을 마스터했다. 드래곤들의 마법이라 는 것은 같은 서클제도라도 인간들의 제도와는 수준이 달랐다. 훨씬더 복잡하지만 강한 마 나 재배열과 법칙일탈. 그 탓에 인간들의 마법을 배웠더라면 2서클 마스터도 일주일 정도 걸렸을 그가 지금은 가짓 수도 많고 난이도도 상상을 능가하는 탓에 3주일이 걸려 2서클을 마스터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클래스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클래스 마법이란, 드래곤들이 서클 마법과 클래스 마법 을 함께 익히는 경우와 비추었을 때, 서클 마법이 정신과 마법어. 그리고 의지의 공명으로 강하게 마나를 이용해 복잡한 계산으로 법칙을 일탈하며. 메모라이즈를 중요시한다고 생각 하면. 드래곤들의 클래스 마법은 메모라이즈가 필요하지 않은 마법이었다. 물론 인간들이라면 클래스 마법을 익혀도 메모라이즈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드래곤은 달 리 마법종족이 아니다. 그 스스로가 드래곤 하트의 마나가 나이가 늘어가며 증가하고. 자신 들만의 마나순환법(인간들로 말하자면 기의 주천법)을 이용해서 그 마나의 양을 더더욱더 극대화하고, 그 힘을 강대하게 한다. 마나 순환. 드래곤 하트로부터 출발해서 그 강대한 마나를 인간보다 훨씬 많은 혈맥으로 순 환시켜 주변의 자연력. 다시말해 평형의 마나를 끌어당겨 공명시키면서 파생되는 에너지를 다시 환원시켜 마나로 만들어 거의 서너배의 마나축적법을 이용해 마나를 흡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마력을 더더욱더 증대시킨다. 마나를 축적하는 것이다. 마나를 일단 축적한 후, 그것을 자신의 의지와 정신에 융합시켜 동 화시킨다. 그리고 그 후, 그 마나스트림을 주변의 공간에 뿜어내어 자연력을 자신의 몸에 축 적한 마나를 이용해 공명시키거나 재배열 시켜 법칙을 일탈. 마법을 시전한다. 고로, 마나를 축적하면 축적할수록 마법의 규모는 커진다. 드래곤들이야 워낙 마나가 차고 넘치기에, 인간 들처럼 마나를 다루는 훈련 따위가 필요치 않다. 아예 마나 덩어리나 다름없는 그들이고, 몸 자체가 마나에 동화하다 시피 하는 강대한 육신이기에. 마나를 의지만으로 다룰수 있는 것 이 그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메모라이즈도 필요치 않다. 단지 마나를 뿜어내서 인간들처럼 복잡한 계산 없이 재배치만 해도 상관 없다. 그건 서클 체계에서도 마찬가지고. 드래곤들은 놀라운 지혜와 지식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쓸 필요조차 없이 마법은 의지만으 로 활용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설원은 드래곤들이 마나만 뿜어내 몇번 써보고 적당히 익숙해 지면 고위 마법도 훈련없이 발할수 있는데 비해. 미뉴엘 의 괴롭힘을 받아가면서 마법에 익숙해 지고 있었다. 자, 서클 마법은 마나에 익숙하게 되어 동화하는 방식으로 인간들을 보다 높은 경지에 이끌 며. 자연과, 세상과, 차원을 이해하여 인간을 신으로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클래스 마법은 다르다. 마나를 끌어 당겨, 체내에 저장하는 것이다. 심장이나 단전 따위에 마나를 들이 붓 는 일은 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받아들이면, 체내에 융합되어 영혼과 육체를 이어주는 마나 와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마나 홀에 마나를 축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나를 자연력과 동화시켜 끌어당기면, 마치 '드래곤 처럼' 마나와 동화되어 서클 처럼 대 자연을 이해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신이 되는 방식의 마법이다. 설원은 현재 클래스 마법을 익히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마나를 축적하고 있었고, 그의 마나 축적이 드래곤만큼이나 손쉬운 이유는 간단했다. 마나 순환 없이도 그는 마나를 지배할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미 인간의 범위에서 벗어난 존재였다. 인간의 힘이 아니라 인간을 초 월한 힘. 오히려 지금 마나를 쌓아가는 것이 이상하다 말할수 있었다. 무의식과 의식을 깨어버리면 천신의 힘이 각성하여 절대에 달할수 있는 것이 바로 설원이었 다. 그런데 그는 깨달음만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힘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무 의식과 의식이 깨어져 극에 달할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강대한 힘을 사용할수 있을 것이고. 쌓아왔던 힘들은 개방되어 세계에 환원되겠지만…… 그는 처음부터 힘을 쌓고 있었던 것이 다. 그것은 미뉴엘의 사기수단 때문이기도 했다. 어차피 무의식과 의식을 허무는 깨달음을 얻는 기간이나 힘을 쌓아 극한의 힘을 깨닫는 것이나 비슷한 기간이 될 것이기에 미뉴엘은 지금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었다. "우으윽." 1시간이 다시 흘렀고, 그는 마침내 계산을 해내고야 말았다. 클래스 계산과 서클 계산의 조 화 융합. 그것이 이번주에 미뉴엘이 그에게 내준 과제였다. 어지간한 드래곤들도 귀찮아 하 는 일이거늘, 그것을 인간에게 명령한 미뉴엘도 미뉴엘이지만. 그것을 기어이 해내고야 만 설원도 설원이었다. "후아. 이제 마나 축적이다." 기진맥진 한 상황이었지만 설원은 미뉴엘이 준 드링크제를 따르륵 하고 따서 발칵 하고 마 셨고, 순간 그는 자연의 깨끗한 마나와 드링크제에 담긴 마나스트림이 뒤얽혀서 재배치되어 자신의 몸에 힐링 계통의 마법을 시전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정신적 피로와 육체적 피로는 말끔히 날아가 버렸다. "……흐음. 솜씨는 좋단 말야." 중얼거리면서 설원은 천천히 침대위로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렇지만 기를 수련하 는 것처럼 오심을 천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다만 손은 가볍게 겹쳐서 정신과 의지를 알리는 형태를 그리고, 동시에 눈을 감으며 주변의 마나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물론 서클 마법을 2서클까지 마스터 해놓은 덕분에 마력의 축적은 오히려 더 쉬웠다. 대 자연의 마나를 조용히 흡입하면서 그는 눈을 감고, 꿈을 꾸는 듯 편안하게 숨을 쌔액쌔 액 쉬었고, 곧 주변의 마나는, 그의 서클 방식으로 확장된 의식과 정신의 힘에 의해 많은 양 이 모여들어 그의 피부 위에서 그의 몸속에 많은 양이 모아져 있는 마나와 서로 공명했고, 아주 천천히 마나 홀로 스며들어갔다. 마나 순환법은 사용하지 못하지만, 그는 소름 끼칠 정 도의 빠른 속도로 마나를 끌어들여 마나홀에 쌓아나갔다. 마나홀로 스며든 마나는 서로 융 화하여 그의 정신과 의식의 힘에 의해 변형되어 그의 몸과 동화되어갔다. 무려 4시간을 꼼작조차 하지 않고 그는 마나의 동화를 느끼고 있었다. 자연력을 자신의 이 미지처럼 오염(?)시키는 것 같은 이질감에 그는 피식 웃었다. 따스한 기운이 부드럽게 그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자연력의 포근함에 그는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나홀에 스며든 마나는 서서히 1클래스를 완성 시켰다. 마나는 단지 마나홀에서 파동없이 뭉쳐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마나 스트림처럼 자그마한 파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 작아서 인간들은 감지하지 못할 뿐이었고, 드래곤들 은 그 파동을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드래곤 하트에 흡입된 마나들은 거의 고화되 다 시피 하였기 때문에, 절대의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원은 그것을 너무나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주변의 마나 스트림과 같은 흐름이 조금 불완전하게 흐르다가 완벽하게 하나의 빛이 되어 안정되는 순간. 설원은 미소를 지었 다. 1클래스의 마스터였다. 스펠이나 마나 유동방식은 별로 어렵잖게 해낼수 있었기에, 마력 만 쌓으면 1클래스의 마스터라 할수 있는 그였다. 자, 그럼 여기서. 서클 방식과 클래스 방식의 마법 구현에 대한 설명을 하겠다. 서클 마법은 주변의 마나를 다루기에 주변의 마나를 안티 매직 셸로 동결시켜 버리면 움직일수 없고, 클 래스 마법의 소유자는 그의 마나에 마나 홀드Mana Hold를 걸어버리면 마나 스트림의 흐름 에 따라 움직이지 못하게 되므로 마법의 사용이 불가하게 된다. 서클 마법과 클래스 마법의 위력 차이는 없다 시피 하다. 그러나 서클 마법은 클래스 마법 보다 메모라이즈를 중요시 한다. 그러나 클래스 마법이나 서클 마법이나 중요한 절차를 거 쳐 모두 움직이면 메모라이즈가 없이도 마법 사용이 불가능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메모라이즈가 없다면 터무니없이 긴 캐스팅을 통해 마법을 구현하게 되므로, 메모라 이즈는 필수라 아니할수 없었다. 마나 축적과 스펠 인프린팅. 그것이 바로 메모라이즈의 작 업인데. 이것은 클래스 마법에서의 경우고, 서클 마법의 경우는 스펠 인프린팅과 인첸트 마 나 스트림이 그 작업에 들어간다. 서클 마법이라는 것은 마법 구현을 할 때, 의식으로 주변의 마나를 지배해 마나의 스트림을 복잡한 계산을 거쳐 주문어를 통해 그것을 형상화 시키고, 의지만으로는 힘든 마나의 재배 열과 재배치를 돕는 주문어로 법칙 일탈을 통해 마법을 구현한다. 그리고 마법의 효과로 인 해 발생되는 모든 것은 시전자가 어느정도까지는 컨트롤 할수 있게 되어 있었다. 서클 마법 의 특수성으로는 주변의 마나를 조작하여 공격하는 그러한 일이고, 그 정신 집중의 상태에 들어가면 마치 주변의 기를 느껴 그 권경을 넓혀 나가는 검사들과 같은 효과를 낼수 있다. 클래스 마법은 이것보다는 조금 더 모자라다. 그러나 서클 마법은 클래스 마법보다는 정신 력 소모가 훨씬 더 크다는 점이 있지만. 클래스 마법보다는 시전이 더 빠르다. 그리고 무엇 보다 안티 매직셸의 상성조화를 쉽게 풀어낼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클래스 마법이라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마나홀에 마나를 축적했다가, 자신과 맞게 동화시킨 그 마나를 수족처럼 움직여 주변의 마나를 재배열 시키고, 자신의 마나도 재배열 시켜 생겨나는 충돌로 마나 스트림을 흐려서 법칙을 일탈시켜 구현하는 그러한 마법이다. 그런 고로, 마법의 시전이 서클 마법보다 적은 정신력을 소모하게 되고, 마나의 소모라는 점 으로 인해 서클 마법보다는 좀 더 적은 가짓수의 마법을 구사하게 된다. 그러나 1, 2개 정도 의 마법 구사가 불가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서클 마법은 정신력 소모가 크나. 무리해서 마법을 좀더 발동할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클래스 마법은 그렇지 않다. 마나 홀의 마력을 다 사용하고, 스펠 인프린팅의 스펠을 모두 소모하고 난 후에는 마법 사용이 불가능 하다. 드래곤들은 메모라이즈 없이도 마법 구사가 무한에 가까우므로 이에 영향을 받지 않 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지금 설원은 어쨌든 인간의 마법구사 방식이나 다름 없었기에, 보통 인간보다 같은 클래스에서 좀더 많은 스펠 인프린팅과 마나 스트림의 발현을 해낼수 있다 뿐이지(1.5배. 같 은 클래스에서 한 마법사가 십여개의 발현이라면 설원은 열 다섯 개 이상의 스펠을 발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방식은 같았다. 서클 마법이나 클래스 마법이나. 무작정 머리 좋다고 그 등급이 오르기는 쉽지 않다. 천재라 할지라도 감정을 모르고, 세상을 이해할줄 모르는 이는 마법을 배우기 쉽지 않다. 아니, 고 위 마법을 배우기는 어렵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클래스 마법이라는 것도 마나홀에 마나를 축적할 때, 마나 홀이 넓어지게 하려면 클래스 5 이후의 클래스 6을 배우기 위해서는 깨달 음을 얻어야만 한다. 서클 마법 역시 의식과 정신의 확장. 정신력의 확장을 위해서는 단순히 머리만 좋은 것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인한 주변 마나의 지배를, 자연과의 동화를 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법사다. 마법사의 마나축적은 심법을 이용해 기를 주천법으로 운용하는 것과는 달리 마법사를 건드 려도 정신충격이나 혈맥 봉쇄 따위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마법사의 기분이 나빠지 는 일이 생겨날뿐. 자연과 동화한다는 것은 정신적인 쾌락이었기 때문이다. 자연과 동화되어 가면서 생겨나는 정신적인 그 쾌락은 일반인은 알 수 없는 욕구 속에서 이루어진다. 일반인 과 마법사가 다른 것은, 두뇌 용량이나 지식 따위에서 뿐만 아니라. 치열하고 정신적인 투쟁 과 욕구속에서도, 그 상상을 능가하는 정신력에서도 차이가 난다. 어쨌든지간에, 지금 설원은. 한참 그 자연력과의 동화에서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다가, 그 안색을 화아아악! 구겨버렸다.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따아아아악―! "으윽!" 아주 통쾌하고 화려한 궤도로 그어진 새하얀 손은 야무지게 말아져 깔끔한 동작으로 설원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고, 순식간에 설원은 깊은 무의식의 흔들림에서 빠져나와 비명을 지르며 그 범인에게 눈알을 부라렸다. "미뉴에에에에엘!" "왜?" ……그 당연하고도 당당한 한마디에 설원은 분노의 일격을 날리려던 손을 내려야만 했다. 그리고 한숨을 푸욱 흘렸다. 그리고 나서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미뉴엘을 바라보았고, 그 탓에 제 이격의 응징을 받았다. 딱! 아까보다는 한층 짧지만 절도있고 강렬한 일격이었고, 그 탓에 설원은 또다시 신음을 지르 면서 푸욱 하고 침대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것을 보면서 미뉴엘은 아주 고소하다는 듯한 표 정이었다. 눈빛은 여전히 장난스러웠다. "……" "……?" 미뉴엘은 쓰러진채 일어나지 않는 설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설 원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고, 눈을 감고 기. 절. 해 있는 설원의 얼굴이 드러나자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 썰렁한 침묵만이 실내를 감돌았다. 한방에 기절. 또다시 미뉴엘의 손은(저번에는 컵을 집어 던졌었다.) 설원을 강제로 수마의 나라를 향해 추방해버린 것이다. 087. 의문疑問…… 머리를 두드려 맞고 기절해 버린 설원은 그 사이에 피곤이 쌓였는지, 정신적인 피로와 육체 적인 피로를 드링크 만으로 해결한 부작용인지,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잠에 빠져 든 상태에서 상당히 괴로운 듯 신음을 흘리고 있었지만, 미뉴엘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를 침대에 집어 던져둔채 그냥 떠나버…… 리려다 그의 꿈이 궁금해져서 용언을 발휘해 그의 꿈을 공중에 투영했다. 그리고, 미뉴엘은 하얗게 굳어버렸다. "아……" 미뉴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자신의 신음에 그는 간신히 의식을 되찾았다. 설원의 꿈에서 등장한 이 인물. 미뉴엘은 이 인물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드래곤인 자신마저 넋이 나가버 릴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이 인물이. 그는 꿈의 투영을 관찰하면서 천천히 이맛살을 찌 푸렸다. 믿고 싶지 않군. "……형." 화면에는 설원의 어릴적 모습이 투영되고 있었다. 설원이 자신의 과거를 3인칭 방향에서 바 라보고 있을 듯한 광경이다. 설원은 누군가에게 안겨있었다. 누구인지 알수는 없지만, 누군 가에게 안겨 있었다. 미뉴엘은 그 외모가 잠깐동안 드러났다가 사라졌지만, 어느정도로 아름 다운 이 인지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설원의 입에서 흘러나온 나지막한 형이라는 단어. 그 말에 미뉴엘은 다시한번 패닉 상태에 빠질뻔 하였으나 금방 제정신을 찾았다. '형이라니…… 맙소사……' 시리고 차가운 빛. 백은빛의 머리카락이었다. 창백한 백색에 은빛이 아주 조금 서려있는 듯 한 머리카락, 등허리까지 늘어진 머리카락. 그리고 새하얀 피부. 심지어는 눈동자마저도 은 색이었다. 그는 아주 평온하고 따스한 미소를 입가에 걸고 있었다. 입술과 피부색은 지나치 게 창백했다. 입술에는 핏기 한점 없는 분홍빛이었고, 피부색은 새하얗고, 티없이 맑았으나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다. 젖살이 채 빠지지 않아 귀여운 설원을 끌어안아 올린채, 그는 조용 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설원의 머리카락을 쓸어주고 있었다. "원아……" 목소리가 들려왔다. 웅웅 울렸지만 차고, 깨끗하며. 아름다운 목소리라는 것을 미뉴엘은 알 수 있었다. 그는 누구일까? 미뉴엘은 그의 피부를 바라보았다. 혈색 한점 비치지 않는. 혈관 이 비칠 듯한 깨끗함. 꿈속에서 설원이 듣고 있는 소리. "알비니즘Albinism…… 알비노Albino." ……미뉴엘은 신음처럼 그 백피증白皮症이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렇다. 그는 백피증이었 다. '그' 인지조차 의심스러울 만큼 아름다웠지만, 머리카락과 눈동자 마저 순수한 백은색이 었지만. 그는 남성이었다. 지독히도 아름다운 소년. 열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름다운 소 년이었다. 설원은 채 열살 정도가 될까 말까 해보였다. 순수하고 티없이 맑은 미소. 따스함만이 감도는 그 아름다운 미소라니…… 설원은 그의 품 에 안긴채, 얼굴을 묻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잠들어 있었다. "……" 미뉴엘은 침묵 할 수밖에 없었다. 설원의 입에서 그때 잠꼬대가 흘러나왔다. "형……" 소년의 입에서도 같은 말이 흘러나왔지만, 목소리는 달랐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같은 두 목소리…… 미뉴엘은 입술을 깨물면서 그 인물을 주시했다. 여전히 안온하고 따스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는 조용히 설원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면서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때 꿈에 변혁 이 일어났다. 설원의 형이라 짐작되는 자의 입가에 걸린 것은, 이미 따스한 미소가 아닌…… 섬뜩하기 짝이없는 냉랭한 살소殺笑였다. 그리고 이미 구도도 바뀌어 있었다. 타오르는, 숲속의 아담한 집. 그리고 그의 외모도 조금 은 바뀌어 있었다. 그 아름다움은 여전했지만. 부드럽고 따스한 미소가 걸려있던 그 얼굴은 동일인이 아닐거라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냉랭하고 찼다. 섬뜩한 살기가 어려있는 미소와, 냉랭한 눈빛만이 누군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은은한 화광火光이 번져와 그 머리카락을 백은 색이 아닌 다른, 피로 물든듯한 색으로 변질시키고 있었다. "……!" "왜……!" 설원의 입에서 터져나온 목소리. 지금의 그것과 같은 목소리가 서로 마주쳐 공명하기 시작 했다. 그 시끄러움에 미뉴엘은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이를 꽉 깨물었지만, 소리는 고막 속 으로 파고들어와 정신까지 뒤흔들었다. 짙은 원망과 분노가 서려있는 목소리. 격노와 절망이 뒤엉커 이글거리는 그러한 목소리! "유설영―!!! 죽여버리겠어―!!!" "……" 설영이라 불린, 그 아름다운 이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짙어지면서 아련한 화광의 범위 가 더 넓어졌다. 그리고 설영의 왼손에 쥐어져 있는 무언가를 미뉴엘은 확인했고, 곧 신음을 흘렸다. 오른손에 쥐어진 날카로운 예도銳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 심장이었다…… 설영의 그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누군가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주인을 미뉴엘은 금방 찾아냈다. 심장 부위가 완전히 뜯겨져 나가 휑한 구멍 이 뚫린채, 얼굴에 절망과 안타까움이 그려져 있는 소녀. "왜 설연雪蓮을…… 왜?!" "……너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절대로 이해할수 없겠지만. 언젠가는 그 이유를 알수 있을 거다. 그리고 이 말을 기억해 둬. '이것은'. 네 동생이 아니다. 그리고 내 동생도 아니고 말이 지. 후후후…… 나는 폐기처분을 한 것 뿐이야." 설영의 목소리는 차디 찼다. 입가에 걸린 날카로운 살소도 사라져 있었다. 그의 표정은, 냉 랭하고 섬뜩한 무표정이었다. 무표정이 오히려 공포스러웠다. 그는 왼손에 들린 심장을 내팽 개 쳤다. 혈관이 뜯어져 나와 덜렁덜렁 거리는, 네 구역으로 나뉜 심장은 볼썽사납게 바닥을 굴러 화광에 그슬렸다. 그는 예도를 들어 가볍게 허공에 휘둘러보였고, 어둠 위로 수놓아진 은빛의 궤적은 설원을 공포에 질리게했다. 설원의 몸은 주체할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분노. 절망. 공포. 괴로움으로. "무슨 소리야……?" 시체. 소녀의 시체를 바라보면서 그는 '이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다시 그의 입가에 예리한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것은 금새 진득한 비웃음으로 뒤바뀌었다. 예도를 들어 그는 시체 의 복부에 찔러넣었다. 아주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그것은 설원으로 하여금 양손에 들린 검 을 들어 무서운 속도로 몸을 회전시키며 달려들게 만드는 동작이 되었다. "죽어어어어!!! 설영!!!" "흠. 뭐, 금방 알게 되겠지…… '다른 세상에서 보자.' 잘 가도록." 설영은 날카로운 미소를 지었고, 그순간 회백색과 회흑색 선이 천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예리한 은빛이 설원의 심장을 향해 쇄도해 들었다. 그리고 꿈은 끝났다. 식은땀을 전신에서 흘리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 설원만이 보였을 뿐이다. -다른 세상에서 보자…… '다른 세상에서' 만나자는 뜻인가…… 미뉴엘은 천천히 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세상에서 보자. 알고 있었던가? 설영이라는 존재는. 설원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이계로 갈지.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추측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미뉴엘은 아직도 망막에 남은 그 날카롭고 예리한 살소를 떠올리면서 주체할수 없이 떨리는 몸을 붙잡았다. 드래곤인 자신마저 공포를 떠올리게 만들 정도였다. 그 미소라는 것이 던져주는. 공허함과. 살기와. 어두운 이미지는. "……젠장." 폐기처분이라니…… 폐기처분이라니…… 인간의 사체를 보면서, 그는 스스럼 없이 폐기처분 이라고 말했다. 그 섬뜩한 화광속에서, 오히려 열기보다는 한기를 느끼게 하는 화광 속에서, 그는 피로 물든 왼손의 심장을 거리낌 없이 집어 던졌다. 내용을 유추해 보건대. 설원의 동 생인 설연이라는 소녀는 설영이라는, 설원의 형에게 죽은 것 같았다. 의문점은 수도 없이 많 았다. '다음 세상에서 보자.' '이것'은 '너의 동생이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 "……으음." 설원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오자 미뉴엘은 설원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아득히 토 해냈다. 이 존재는 균형을 위한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아스트랄 계다. 청백색 영자의 흐름이 거칠게 흘러 다니는 곳. 그러한 곳에. 또다시 두 존재 는 차가운 은빛의 그림자를 남기고 있었다. 은백색의 열두장 날개를 등 뒤로 펼쳐 떠올라 있는 두 존재는 서로 상반되는 분위기로 만나고 있었다. 「샤드. 표정이 별로 좋지 않군. 내가 설원에게 남겨놓은 '상처'라는 것이 신경쓰이나? 어차 피 설원과 설연은 도구였다. 그 녀석에게 설연이 죽었다는 생각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직접 클론까지 창조했었지.」 「……악취미로군요.」 「흐음? 악취미라. 글쎄. 그대보다 더할까. 나에게 한 일들을 그새 잊어버린 것인가?」 그 말에 샤드라 불린 이는 침묵했다. 그는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영자 의 흐름을 바라보았다. 아스트랄 스트림…… 저것처럼. 운명과 시간은 유구하게 흘러가고 있 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덮치겠지. 「……미안하군요.」 「아아. 걱정 말라고. 나는 신경쓰지 않으니까.」 「……결정은요. 이 세계를 존속시키실 건가요. 아니면……」 「글쎄…… 아직은 결정하지 않았어. 단 한 번이라도 이 세계의 존속이 좋을지 나쁠지를 확 실하게 규명할만한 사건이 생겨난다면 결정되겠지. 지금으로써는 별로 존속시키고 싶은 생 각이 없는데 그래.」 「……그런가요?」 「너나 나같은 존재들이 있기에 이 세상이 불행한 것인지도 모르지. 말해봐라. 너는 대체 왜 드래곤이라는 존재들을 만든 것이었나?」 「글쎄요. 별로 할말은 없지만. 말 그대로였죠. 균형의 취지였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들에 게 자유의 의지도 주었어요.」 「'강대한 힘'도 말이지.」 「……」 둘의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아스트랄 스트림이 강하게 일렁이면서 주변을 메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두 존재는 천천히 서로를 바라보다가 한마디씩을 나누었다. 「나는 이만. 할 일이 있어 가봐야겠군.」 「……'그녀'를 찾으러요?」 「아아. 물론이지. '그'가 소멸하고 난 뒤에야 활동을 시작하겠지만.」 「청은 어떻게 할건가요?」 「써먹어야 겠지. 아까우니까. 그대가 알아서 하라고.」 「……그러죠.」 두 존재중 한명은 천천히 아스트랄 스트림을 열고 어딘가로 스며들어갔고, 한 존재는 여전 히 이곳에 남아있었다. 그는 남아 날개를 흔들면서 쓰디쓴 미소를 입가에 지어 보였다. 088. "우아아아아악!!" 회색빛 새벽의 정적이 가라앉아 있는 미뉴엘의 레어. 난데없이 무서운 비명이 터져나와 새 벽공기를 진동시켰다. 음파는 터져나와 미뉴엘의 고막을 뒤흔들었고, 미뉴엘은 귀가 아팠지 만 씨익. 아주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자신이 판다음 창조마법으로 '그것'들을 풀어넣고 설원 을 집어 던진 그 방을 바라보았다. "후후후." 미뉴엘은 섬뜩하게 웃으면서 설원이 공포인지 고통인지 알수 없는 자극에 의해서 지른 비명 을, 마치 감미로운 음악인냥 들으면서 지그시 눈을 감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이 것을 보면 확실히 미뉴엘은 새티스트 적인 기질이 있었다. "꾸에에에에엑!!" 다시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미뉴엘은 그것을 들으면서도, 전혀 구조해 주려는 생각 을 하고 있지 않았고, 그것은 설원의 불행이었다. 돼지의 멱따는 소리가 다시한번 울려퍼졌 다. 고요한 새벽. 야행성 몬스터가 아닌 주행성 몬스터들은 잠들어있고, 역시 나무의 정령이 나 기타 숲의 정령들이 정신의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간에, 설원은 지대한 민폐를 끼치고 있었다. 그 원인이 미뉴엘일 지언정. 설원은 지금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면서 숲 자체를 이른 시각에 깨우고 있는 것이다. 하긴, 그럴만도 했다. 사람을 3일 내내 잠도 못자고 움직이게 만드는 끔찍한 물건들과 사투 에 사투를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설원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미뉴엘이 그것을 즐겁게 감상 하는 가운데. 안쓰러운 빛을 뿜어내는 태양이 마침내 떠올라 시린 금빛의 환호를 대기에 던 졌고, 그 따스한 빛에 차갑게 식었던 대기는 점점 데워져 갔다. "후후……" "으에에에에엑!!" "후후후후……" "크아아아아악!!" "후하하하하하하……!!" "으아아아아아악……!!" 미뉴엘의 통쾌하게 웃어젖히는 그 웃음과, 처절하게 울려퍼지는 설원의 비명이 묘하게 조화 를 이루면서 마침내 햇빛과 어울려 숲의 단잠을 완벽하게 깨워버렸다. "미뉴엘……" 좀비Zombie처럼 팔을 추욱 늘어트린채, 이리저리 알수 없는 체액과 살점(?)을 전신에 묻히 고 너덜너덜한 몸을 질질 끌면서 피를 줄줄줄 흘려대는 설원. 상당히 잘생긴 외모의 그의 지금 모습은 아수라阿修羅나 나찰악귀. 흉신악살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그런 상황이었다. 무엇의 산물인지 알수 없는 체액과 살점을 덕지덕지 전신에 바르고, 걸레가 된 몸과 너덜너 덜해진 몸으로도, 그는 지금 미뉴엘을 향한 복수의 감정을 불태우면서 클래스 방식으로 축 적한 마나를 왼손과 오른손에서 뿜어내 응축시켜 날카로운 마나 블레이드Mana Blade를 허 공 위에 그려 그의 체질상 마나가 변환되어 생성된 회색빛의 칼날을 두 개 허공에 맺었다. 그 예기와 너덜너덜한 신체의 설원이 뿜어내는 죽음의 냄새는 미뉴엘마저 찔끔 하게 만들었 다. 미뉴엘은 마법 수련을 빙자한 괴롭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설원을 괴롭혀 왔고, 오늘로 설원은 지난 삼일간의 악몽을 떨치고 간신히 그 방에서 탈출한 것이다. "네놈을 죽이고 죽으려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하고 삼일을…… 그 지옥에서 버텼다 …… 이제 네놈이 당할 차례야…… 절대…… 쉽게…… 죽지지이…… 않을테다아…… 쿠엑." 미뉴엘은 간단하게 설원의 목덜미를 수도로 내리쳤고, 설원은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기절일 까?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르르릉…… 피유우우……" ……나지막하게(?) 코를 골며 쓰러졌기 때문이다. 설원의 너덜너덜한 몸을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던 미뉴엘은 나지막하게 용언을 발했다. 「정화淨化와 치유治癒.」 그의 용언이 발해지자 정화의 용언은 6서클의 에스트 퓨리피케이션Est Purification을 시전 해 주번의 마나를 재조합하여 법칙을 깨었다. 그러자 은은한 녹광이 일어나서 설원의 몸과 그의 발걸음이 남긴 핏빛과, 그가 걸어오면서 툭툭 떨어져 내린 체액과 살점 따위를 모두 정화시켜 분해한다음 날려보냈고, 치유의 용언은 8서클의 리스토어레이션Restoration을 흰빛 의 백광으로 구현해 내어 그의 전신에 생겨난 많은 상처와 정신적, 육체적 피로를 대부분 치유했다. 미뉴엘은 만족스럽게 설원을 바라보았다. "흠. 6서클, 6클래스까지는 터득 했겠군." 그렇다! 설원의 빠른 마법수련과 그 클래스, 서클의 마스터에 미뉴엘은 어차피 인간도 아니 니까 이정도 속도겠지. 하고 지레짐작 한다음 아예 드래곤들이 만들어내고, 빚어오고. 수없 이 많은 천재(?)이거나 평범(?)이거나 아니면 참신한(?)감각을 지녔던 드래곤들에 의해 가다 듬어지고, 수정되고, 기타 부족한 부분들이 보충되어 그 양이 인간들에게 전해진 마법 개수 의 2배에 달하는 마법들을 모조리 설원의 두뇌 깊숙한 곳에 심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무의식 속에 말이다. 무의식 속에 10서클과 10클래스까지의 모든 스펠과 기타 유의 점이나 특이사항 따위를 심어버렸고, 그 의식과 무의식을 왔다갔다 하게 하기 위해서 설원 을 극한상황까지 몰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효과적으로 설원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 와 향기는 6서클과 6클래스의 그것이었다. 6단계까지는 순수한 두뇌의 계산으로 스펠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7서클이자 7 클래스부터는 많은 깨달음을 통해서야만이 주변의 마나나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마나홀을 넓힐수 있었다. 의식과 무의식이 넓어져 그 영역이 생기면 생길수록 더더욱더 많은 마나를 축적하고, 더더욱더 많은 마법을 익혀 의식의 영역과 마나의 지배 범위를 넓힐수가 있는 것 이다. 그래서 7단계부터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실상 방금 설원이 3일 진행하고 1일 쉬면서 연속적으로 삼주씩이나 경험했던, 갈수록 정도 가 심화되었던 급수의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은 생사가 교차되고 의식이 무너지고 존재가 부 서질만큼, 인간으로써는 견딜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만큼, 그런 곳에서 평정을 유지하고 깨 달음을 얻어 의식과 정신을 확장시켜 보다 더 '훌륭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 다. 혹시 모른다. 현경의 무극천기 천령단(3600년의 공력과 자신을 동화시키는 단계)에 이르 른 상태의 영이라면 기꺼이 달려들어 이 관문을 넘어 신화경에 도달했을지…… 마나라는 것은 태초의 영자의 조합이다. 육신보다는 좀더 의식과 정신에 많은 힘을 더해주 는 기운이라 할수 있을 것이고. 기라 함은 태초의 영자의 조합이기는 하나 좀더 육신과 강 한 의지에 많은 힘을 부여하는 기운인 것이다. 그래서 마나를 다루어 마법의 극한에 이르면 환골탈태는 없을지라도 의식과 무의식이 확장 되어 육체도 함께 점점 변화하여 생을 오래 지속하게 된다. 9서클 마법사 정도라면 적어도 3, 400년은 살아가니까. 현경의 무극천기 천령단의 존재가 실상 3천년을 넘게 살수 있음을 (마음만 먹는다면) 생각하면 얼마나 그 비중이 다른지 알수 있을 것이다. 10서클이나 10클래 스에 오른 마법사라면 어차피 영원을 살고, 신화경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로 영원을 살지만. 라이프 사이클 정도가 일어나면 어차피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다음. 선경仙境이며 갓 에이전트God Agent라고 불리는 그 경지에 들어 서야만이 비로소 11클래스에 들어선다. 신언이라는 힘을 쓸수 있게 되는 것이다. 드래곤의 용언과도 같으나 11단계에서는 좀더 낮은 경지이며. 미완의 신언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말이 샜는데, 이 이후로부터는 거의 철저하게 깨달음의 위주로 길이 생겨난다. 설원은 어차피 영혼과 정신과 육신이 통하여 버린다면. 순식간에 천신의 경지에 올라서 차 원이나 그런 차원 99개가 모인 초차원 정도는 부수고 만들고를 수십번 하고도 그리 힘의 공 복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힘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쉬울리는 없고, 오히려 차라리 지금부터 힘을 쌓아서 통령하여 천신의 힘을 얻는 것이 더 나을 것이고. 그 걸리는 기간도 비슷할 것이다. "흐음…… 뭐." 미뉴엘은 의외로 이 인간이 마음에 들었다. 하는짓도 제법 귀엽고(…), 성격도 제법 괜찮고. 극한상황에 몰리면 폭주하는 거야 지금의 정신 상태로는 당연한 것이었다. 제법 가르치는 재미도 좋다. 뭐 이제 깨달음을 얻도록 '책'을 통해 이 특이한 존재를 유도해 나가면 된다. 이제 설원으로써는 고생 끝이라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미뉴엘은 설원을 질질 끌어서 심심 풀이로 만들어둔 방의 침대에 그를 집어 던진다음 바깥에 나가서 창조마법으로 따뜻한 수프 와 빵. 그리고 미트볼을 창조해내서 역시 그릇들을 만든다음 그곳에 잘 담아서, 마법으로 띄 운후 방으로 들어갔다. 이유? 마나의 유동에 설원이 깨어날지도 몰랐으니까. ……의외로 이런데서는 나름대로 친절한 미뉴엘이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어둠의 공간. 설원은 그 공간 가운데 가라앉아 있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 다. 당연하다. 꿈이니까…… 설원은 이것이 꿈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시린 은빛이 문득 눈앞 을 스치고 지나갔고, 은색이 주는 그 끔찍한 기억에 설원은 이를 갈았다. 은빛은 차가울 것 같았다. 그러나 금방 따뜻하게 다가왔다. 은빛의 길다란 머리카락이 눈앞 에 존재했다. '그'는 은빛의 머리카락을 한줌 들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금방 지루함 을 느낀 듯 은발을 내팽개 치고는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가느다랗고 새하얀 손가락…… "……" 뭐라고 부르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형…… 인가……' "미안합니다……" 그는 가볍게 속삭였다. 형인지도 이제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은빛의 머리카락은 확실히 형이 아닌가 싶었다. 형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분위기도 틀렸다. 특히…… 그의 말 은 지금 존대어로 자신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왜 사과하는 걸까? 새하얀 손가락'들'이 자신의 가슴 위에 얹어졌다. 설원은 왜 그런지 모르게. 아늑함과 따스함 을 느꼈다. 손가락은 천천히 올라와 자신의 볼을 매만지고 있었다. 따스한 손길…… 그 따스 한 손길에 설원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새하얀 손은 다시 가슴께로 내려가고 있었다. 아늑하고 기분 좋은…… "……!?" 아름답고 가느다란 손은, 정확하게 자신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말 그대로, 파고 들어버렸다. 끔찍한 고통. 가슴이 뜯겨져 나가는 듯한 고통…… 새하얀 손은 너무나도 끔찍한 고통을 자 신에게 새겨 넣고 있었다. 피가 아닌 듯, 회색의 빛이 상처에서 흘러나와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회색의…… 회색의 빛…… "……인. ……에게, 낙인烙印…… 붕崩…… 을……" 뭐라고 말하는지 확실치 않았다. 공간은 너울거리며 일렁이고, 천천히 흩어지고 있었다. 그 러나 마지막에, 그의 목소리는 전달되어 왔다. 너무나도 확실한 마지막 말. 가닥가닥 흩어지 면서, 분분히 휘날리는 공간의 조각들…… 그 사이로, '말'은 설원의 마음을 '찔렀다.' "제노사이더Genocider의 이름을 그대에게……" "……허억!" 설원은 자신의 정신을 찌른 마지막의, 너무나도 선명한 말에 신음을 흘리면서 벌떡 일어났 다. 거친 숨이 설원의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금방 사그라들었다. 설원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굳어있다가. 갑자기 좋은 향기가 코끝을 스치자 고개를 팩 돌렸고, 침대 옆의 탁상 위에 음 식이 차려져 있자 곧 입에 군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아직 채 식지 않은 음식의 옆에는 작은 종이가 있었고, 이 대륙의 언어로 짤막하게 글이 쓰여져 있었다. 유려하고 섬세한. 아 름다운 필체였다. "……뭐야." ―식사 하고 나서 도서관으로 와. 미뉴엘. "……얼레? 또 집어넣는거 아니었나? 흠. 뭐, 나야 좋지." 설원은 아까의 악몽은 기억속에서 날려버리고는, 희희낙락해 하며 스푼을 집어들었다. 089. "우윽." 설원은 목에 손을 얹고 이리저리 휘저었다. 우두두둑 소리가 나면서 목이 부러지는 듯한 소 리와 함께 지독한 통증이 느껴지자 그는 걸어 가다 말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신음을 흘려야 했다. 신음을 토해내다가 목의 통증이 가라앉아 눈물까지 맺힌 눈을 손을 들어 닦은다음 천 천히 기지개를 켰다. 허리에서도 우두둑 소리가 났지만 그는 그것을 기어이 참아내고는 전 신을 배배 꼬았다. 우두둑 거리는, 뼈가 깨어지는 듯한 소리는 마치 박자 맞추듯 이상한 타 이밍으로 한참을 울려 퍼졌고, 설원은 한숨을 길게 토해내면서 가볍게 권각을 탄력있는 동 작으로 뻗어 보았다. "흐음. 그런대로 괜찮군." 설영이 가르쳐준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쓰기 싫지만 이미 버릇처럼 배어버린 기술들은 써보자고 생각하면 부담없이 깔끔한 동작으로 뿌려졌다. 일반 도장에서 배우는 무술과는 수 준이 다른 것들이었다. 정말 '죽이는' 데 사용하는 권법들…… "……젠장." 생각하기 싫은것들까지 생각해버렸다. 투덜거리면서 그는 미뉴엘이 심심해서 모아놓은, 많은 책들(수만권에 이른다.)이 쌓여있는. 말만 도서관이지 책 창고나 다름없는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거의 들리지 않은 작은 소리. 그가 신은 신발이 매우 고급인 롱 부츠로 만들어 졌기는 했지만 이정도로 조용할 수는 없었 다. 이렇게 조용한 이유는 오직 하나. 그가 검을 배웠으니까. 였다. 나빠진 기분…… 그래서 설원은 피식 웃으면서 노래를 조용히 읊기 시작했다. "파묻혀 있는 그대 운명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희미한 모습으로 멀어져만 가는가 그대 모습은 두 눈동자 속에 녹아드는가 알 수 없는 내 미래의 모습 어두운 그림자 속에 묻혀 저 멀리 사라져만 가는 수많은 혼령의 눈빛 그대 모습 그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네 멀지 않은 내 삶의 마지막을 찾아 헤매는 방황의 우주 위해서 나의 손을 잡아줘 어둠속의 내 운명에 빛이 되줘. ―방황彷徨의 우주宇宙." 나지막하게 불렀지만 꽤 변화가 있는 음악이고, 넓지만 통로는 그렇게 넓지 않아서 울렸기 에, 소리는 귓가에 제법 크게 파고들어왔다. 설원은 피시식 웃어버렸다. 설영이 좋아하던 노 래도 많았…… "크윽!" 가슴이 아팠다. 설영이 행한 마지막 모든 것. 그것들이 확연하게 떠올라 눈앞을 스치고 지나 간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금방 고통이 가셔 버리는 것일까. 생각만 떠올 려도 가슴에 칼이 박힌 것처럼 아팠다. 생각을 지우면 금방 그 고통은 사그라들었지만, 익숙 해 지기 힘든 것은 당연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모든 것이…… 모든 것이. 그를 미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처럼 왜 설영을 따스하게 마음속으로 부르고 있을까…… 역시, 익숙해 지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을 까? 그러나, 엄연한 현실이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이 행동은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이면서 동 시에 비현실적이며, 회피적인 행동이다.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르지만. 금방 식어버린다. 부질 없다고 느낀걸까……? 알수 없는 일이었다. 설영의 미소. 아름답고 환한 그의 미소와, 마지막의 시간에 접근하면서 보여주었던 수많은 살기어린 미소와 잔혹한 행동들…… 그리고…… 설연의 죽음. "큭큭큭……" 긁어 내리는듯한 웃음. 그것은 그의 마음과, 의식마저 깨끗하게 긁어내렸고, 가슴은 따끔따 끔 거려왔다. 지독히도 아팠다…… 마음도. 육신도. 욱씬거렸다. 정말 아프다…… "아파…… 형. 우리는…… 그때로 돌아가지 못하겠지?" 꼭, 설영이 자신의 앞에 있는것처럼. 설원은 중얼거렸다. 푹 숙인 그의 고개. 음울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입가에 걸린 쓸쓸한 미소…… 그리고…… 툭― 바닥에 물방울이 떨구어졌다. 주체할수 없이 떨리는 어깨. 그리고…… 눈물. 그의 눈에서 흘 러나오는 눈물은. 고통과 비통한 감정이 더더욱더 뒤섞이면서 흘러내려 바닥에 떨구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폭주가 일어나지 않는다. 설원은 눈앞에 그려지는 설영의 환영을 보면서 신음을 삼켰다. 은빛의 머리카락과 따스한 미소가 걸려있는…… 그러나 설원은 손을 휘둘러 환영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이를 부드득 갈면서 그는 씹어뱉듯 어둠의 통로 뒤로, 목소리를 던졌다. "……내가 죽여줄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살아있어…… 그리고…… 내가 강해질 때. 내가 세상을 붕괴시켜 버릴정도로 강해질 때. 바로 그때 보자구……" 원한과 음념이 음울하게 흘러나와 주변의 기온을 낮추어 버릴 정도였다. 마나를 다루는 존 재였기에, 그의 음울한 상념에 주변의 마나는 조금 변질되어 주변의 기온마저 식혔다. 설원 은 쓰러질 듯 흔들리는 걸음을 다잡으면서 도서실로 걸어갔다. 손을 들어 눈가를 닦아냈다. 감정과 이성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당당하게 일어선 그는 괴로워 보였지만, 매우 굳건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로써.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고, 감정을 제어할수 있음으로. 7단계의 마법은 그에게 찾아와 주었다. 감정을 받아들이면서도 억누르고, 어느 정도로 감정을 이해하고, 감쌀 수 있는 단계에 서 반쯤 그는 7단계 마법의 토대를 완성한 것이었다. "……" 싸늘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자신의 변화를 금새 알아챈 것이다. 얼마나 걸릴까. 10 단계의 마법이라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겠지. "기다려. 형…… 죽여줄게…… 아주 고통스럽게 말야. 설연이 죽은 것처럼, 그렇게 말이야. 좀 더 괴롭게 해주겠어…… 그렇게 할수 있다면…… 나는 뭐든지 할거야. 큭큭큭." 음울한 긁는 웃음은 그의 감정을 통째로 긁어내리고 있었다. 고통이 따끔따끔 밀려올라왔지 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뉴엘은 천천히 그가 읽을만한 책들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대충 일단 오십여권 정도, 매우 두꺼운 것들이고, 글씨 크기도 작다. 이 아스타르 대륙의 활자 인쇄는 상당히 발달해 있었 다. 금속활자…… 마법이라는 힘은 상당히 쓸만한 것이었다. 단지 부수고 죽이는데 쓰는게 아닌 것이다. 마나라는 것을 이용해서 법칙을 일탈시키는 행위는 단지 뒤틀고 부수고 박살 내는데만 쓰는게 아니라 실생활에 얼마든지 이로운 힘이 되어주었다. "……" 여러 가지 책들이었다. 하지만 실상 별로 도움되지는 않을 것이다. 읽는다 하더라도 정말로 시야가 넓어지지는 않는다. 책이라는 것은 정보도 있지만 왜곡된 정보도 있다. 편견이나 여 러 가지 나쁜 악영향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설원은 제법 주변도 살필줄 아는 나이다. 사려 도 깊어지고 있는 나이. 책이라는 것이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한 번쯤 생각은 깊게 해보고 받아들이는 나이인 것이다. "……" 이번 마법수련은 미뉴엘이 정한 마법수련 5단계중 제 3단계였다. 제 1단계는 일단 3서클과 3클래스까지의 마법을 배우게 하는 것. 그리고 2단계는 10서클과 10클래스까지의 지식을 심 은다음 6서클과 6클래스를 '깨우'고 또 그 다루는 것을 잘 익히게 할 겸. 한 방에다가 아공 간을 열고, 거기에 12클래스의 용언 창조술로 특이 몬스터와 미뉴엘의 상상을 동원해 만들 어진 수많은 것들로 좀 괴롭혀주었다. 일루젼도 걸고. 함정도 만들고. 수백가지 조합을 설원 의 몸에 삼주간 3일씩. 하루 휴식 기간을 주면서 아낌없이 퍼부은 것이다. 동대륙의 어떤 기 문진이라도 비견 될 수 있을까? 설원이 전신에 이상한 체액이나 피. 살점을 덕지덕지 붙이고 기어 나온 이유가 있었던 것이 다. 아공간이라지만 소리가 통하므로, 미뉴엘은 아낌없이 설원의 비명을 즐거이 감상해 주었 다. ……사악한 것. 그리고 3단계. 책을 통한 깨달음이다. 간혹 잡동사니면서 쓰레기같은 책들 중에서도 의외로 깨달음에 도움을 줄만한 책이 있으니까. 여기서 어쩌면 8서클과 8클래스 까지는 가능하리라 본다. 그리고 4단계는…… 삐걱― 문이 열리면서 미뉴엘의 생각은 끊겼다. 미뉴엘이 불만에 찬 얼굴로 문을 연. 설원을 바라보 았지만 곧 표정은 찔끔 굳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자신마저 공포를 느꼈던 설영이라는 존재 의 분위기와 거의 흡사해진 상태의 설원이. 냉기와 음기를 풀풀 흩날리면서 걸어들어 왔던 것이다. 깊디 깊은 음기와 원한의 상념이 그의 의식에 투영되어 있었고. 그것을 미뉴엘은 같 은 마나를 다루는 존재로써, '느꼈다.' "……어. 와, 왔어?"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미뉴엘은 조금 창피함을 느끼면서 한숨을 흘렸다. 어쩌다 자 신같은 존재가 저런 인간에게 분위기로 눌리고 있단 말인가. 미뉴엘을 흘끔. 무감정한 눈동 자로 바라본 설원은 아주 천천히 걸어와서 정신무장이 단단히 된 표정으로 말했다. "왜 불렀지?" "……아. 수련 해야지. 수련이라기 보다는 이제 혼자서 해야겠지만. 오늘은 이 정도만 읽으 면 돼. 알았지?" 무리한 요구다. 절대 안된다. 줄여달라며 투덜거렸어야 할 설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심 경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설원은 무려 오십권이나 된 책들중 한권을 빼서 주저없이 자리 에 앉아 읽기 시작했고, 그것 때문에 머쓱해진 미뉴엘은 설원을 바라보다가 섬뜩해짐을 느 꼈다. 설원의 눈은…… 집중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다른 거대한 감정을 일으키고 있었다. "……" 그 감정이라는 것은 바로. 미뉴엘마저도 놀라고, 공포라는 감정이 생길만큼 집요하고 거대한 감정. ……집념執念이었다. 그것을 읽어낸 미뉴엘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주춤 물러났다가 무 시무시하게 쌓여서 정리조차 되지 않은. 단지 보존마법과 경량화 마법만 걸려있는 수많은 책의 한 무더기에 등을 툭 가져다 댔고, 아슬아슬하게 중심이 유지되고 있던 책들은. 분위기 잡지 말고 당장 원래대로 돌아오라는 듯, 냉랭하게 변한 설원과, 질려있는 미뉴엘의 위로, 비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딱딱한 책의 비[書雨]였다. 후두둑 쏟아지면서 퍽퍽퍽 하고 장대한 격타음을 뿌리는 책들. 마치 분위기 더 잡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외치며 주먹을 휘두르는 존재처럼. 책들은 화려하게 모서리로 설원의 머리를 찍어내렸다. "크윽!" "우악!" ……실드고 뭐고 펼칠 사이도 없이 책들의 공격에 깔려버린 설원과 미뉴엘이었다. -동대륙의 현청이 화경에 오른 시각. 서대륙의 존재는 집념이라는 거대한 무기를 가지게 되 었다. 그 집념이라는 이름의 날카로운 비수匕首가 얼마나 큰 무기가 될지는. 어느 누구도 몰 랐다. 그 본인 마저도. 090. 나는 인간임을 포기하겠다. 설원은 책의 벼락(?)을 맞은 후에도 기어이 냉랭함을 고집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의 감정은 많이 녹아버린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문제없이 7서클에 7클래스를 돌파하고 있었다. 마나지배 영역은 넓어졌고, 마나홀 역시 넓어졌다. 책을 읽기 시작한지 단지 하루만 에 그는 7서클과 7클래스를 완성한 것이다. 미뉴엘은 기뻐해 주었고, 설원은 그래서 미뉴엘 에게 미소를 지어줄수 있었다. 마치, 자신의 원을 이뤄 가는데 기뻐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 이다. 미뉴엘은 지혜로운 존재였고, 마치 설원에게 무엇이든 알고 있는 것 같은 존재로 비추 어졌기 때문일까? 비극은 여기서 시작되고 있었다. 자. 그는 7서클과 7클래스를 완성함으로써 무려 4서클과 4클래스의 마법을 여건이 맞아준다 면 시동어 만으로 발할수 있게 된 것이다. ……메모라이즈라는 행위 없이도 말이다. 그는 마 법서가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무의식속에 심어져 있는 마법들을 현재 7단계까지 열람할수 있었기에 4급 그 이상의 마법들은 메모라이즈 할 때 열람만 하면 되는 것이다. "……" 설원은 점점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침울해졌다. 음울한 분위기에 의한 마나의 흔들림이 그 의 주변에는 항상 존재했고, 점점 그는 쓸쓸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미뉴엘은 그에 대한 배려로, 외출을 허가해 주었다. 그러나 설원은 외출 허가가 났음에도 바깥에 나가지 않 았다. 깊고 깊은 동굴 안에서 마법탐구에 전념했을 뿐이었다. 넓은 방 안에서 가끔 미친 듯 이 검을 휘두르면서 체력을 늘렸을 뿐…… 미뉴엘이 아직 처리하지 않은 아공간에 들어가서 남은 괴물과 장애물들을 마법 없이 오로지 검만으로 모조리 부수면서 몸을 혹사시켰고, 그 탓에 거의 반쯤 죽어서 나오기까지 했었다. 그런 그에게 화도 내보고, 타일러도 보았지만. 이제는 어쩔수 없이 치료만 해주고 있는 미뉴 엘이었다. 그가 스스로 진 짐을 미뉴엘은 내려줄수도, 함께 질수도 없었다. 그것이 미뉴엘에 게는 조금은, 마음아픈 일이었다. 왜 인간에게 이런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때까지는 전 혀 알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8급 마법의 기초를 절반 정도밖에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설원은 답답 함을 느꼈는지 미뉴엘의 레어 바깥으로 뛰쳐 나가고 있었다. 드래곤의 영역. 그래서 몬스터 는 많았다. 그렇지만 그에게 몬스터 따위가 범접할수 있을리 없었다. 3서클의 파이어 볼Fire Ball에 4서클의 체이닝Chaining을 함께 사용해서 7개의 화구를 날려주는 것만으로도 와이번 이나 가고일마저 죽어 나자빠졌다. 체이닝의 스펠은 참 유용하다. 마나 재배치를 체이닝을 이용하면 그대로 복사해서 다른 구 역의 마나를 재배열시켜준다. 그가 7급의 마법사였고, 8급의 마스터는 아니었기에 일곱 개의 화구가 체이닝 스펠로 인해 생성되었다. 갓 에이전트에 들어가면 어차피 무의미해 지는 것 이었지만…… 지금 그는 갓 에이전트는커녕 10급도 꿈꿀수 없다. "……" 또 몬스터들이 부시럭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트롤인가…… 하고 중얼거리면서 그는 4서클 의 슬라이스Slice 마법을 준비했다. 천천히 몬스터들이 등장하기를 기다린 그는 그의 길이 관념으로 2.7m정도의 평균키에, 무식하게 두꺼운 팔다리와 몸통을 지니고, 민들민들한데다 가 추악하게 생긴 면상을 지니고. 대머리에 녹색 피부를 지닌. 가죽만 적당히 걸치고 오른팔 에 두터운 나무 몽둥이를 든 트롤 셋이 쿵쿵 하고 걸어나와 그를 날카로운 노란 눈으로 바 라보면서 괴음을 지르자 주저없이 마법을 읊었다. "슬라이스…… 체이닝." 마나가 재배열되고, 순간 이미 트롤들은 조각나고 있었다. 일곱 개로 늘어난 슬라이스 마법 은. 원래 '얇게 베어버리는' 마법의 성질을 세 번 발휘한다. 그런 마법이 일곱 번 체인 연쇄 하여 구현되자 마치 무형의 강선을 스물 한 번 날려서 적을 베어버린 것처럼 트롤들을 수십 조각 내버렸다. 몸도 자르고, 심장도 잘라 튕겨서 조금 떨어트려 조각조각 무너뜨리기는 했 지만, 뇌도 함께 잘랐기에 재생은 하지 않고 있었다. 푸른 체액이 흘러나와 바닥에 적셔지자 그는 인상을 구겼다. 피보다 더 냄새가 나빴으니까. 아무리 익숙해져 있다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광경은 아닌 것이다. "번Burn! 체이닝." 3서클의 번이었다. 연소마법. 손을 휘두르면서 체이닝을 더하자 일곱 번으로 늘어난 연소마 법은 트롤들의 몸에 탐욕스럽게 달려들어 순식간에 그 시체조각들을 시커멓게 타게 했다. 지독한 냄새가 일어났지만 그가 거스트 오브 윈드Gust Of Wind(3서클 마법)을 이용해서 바 람을 일으켜 하늘로 냄새를 날려보내 흩어버리자 금방 탄내는 사그라들고, 약간의 피냄새와 재만이 바닥에 배어 있게 되었다. "……산책이라고 해도 마법사용 숙련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군." 상당히 걸었다. 그래서 숲의 외곽까지 나오게 되었다. 돌아가는 거야 물건들을 치우고 그 자 리에 마법진을 설치해 놓은. 6서클의 리콜Recall을 사용하면 된다. 8급의 텔레포트Teleport 와는 다른점이. 단지 미리 그 자리에 마법진을 설치하고. 리콜을 시전하면 시전자가 되돌아 간다는 점이다. 텔레포트는 좌표를 알아야 이동하는 마법이고, 이동거리에 따라 정신력이나 마력 소모도가 다르지만. 리콜은 이동거리에 관계없이 마나가 적당히 소모된다. 이유는. 그 마법진이 있는 자리의 마나가 함께 소모되니까. 적당히 분담한다고 말할수 있었다. 어쨌든, 설원은 많이 지루해 하고 있었다. 몬스터들과 싸우는. 트롤씩이나 되는 것들을 처리 하는 행동을 벌써 수십번 했음에도 생명의 위협은커녕 정신력 소모도 거의 없고. 아주 편안 한 산책이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말이다. 바람이 은근하게 부는 숲. 풀의 향기는 아주 기분 좋게 다가왔다. 눈을 감으면서 그는 나지 막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조용하게 숲의 정적을 깨트리면서, 간혹 들리는 새의 지저귐과 뒤 섞여 멜로디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몬스터가 오는 것 정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탁 트인 공터가 있으면 가고일에 와이번까지 숲 아래로 내려오는 곳이지만.(근처에 절벽과 동굴이 있어서 가고일과 와이번들이 살만한 장소다. 숲에는 먹을것도 많고 말이다.) 그런대로 아늑 한 느낌을 주는 숲이었다. 만약 마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지옥이나 다름 없었겠지. "후후후……" 설원의 미소는 오랜만에 떠올랐다. 그를 휘감은 음울함은 자연의 기운에 많이 가셔 있었다. 설원은 피식 웃었다. 미뉴엘이 옳은 것 같았다. 그래도 나가면서 돌아다니는게 의외로 기분 전환에 좋았던 것이다. 미뉴엘을 생각하자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자신을 죽어라고 괴롭혔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의 수련이라는 것이 자신에게 이런 힘을 주었고, 복수의 가능성을 조금 더 높여주고 있으 니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뉴엘이라는 존재는 참 특이하다. 드래곤이라는 존재, 그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매우 강했다. 지금의 자신은 인간들 가운데서는 아마 틀림없이 매우 강한 존재일 것이다. 그렇지만 드래 곤과 만나면 기껏 성룡에 불과한 드래곤이라도 자신은 반항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죽는 다. 하지만 죽음을 별로 두려워 하지 않는 설원이었기에, 미뉴엘에게 마저 막 대할수 있었 다. 죽음보다 더한 상황도 아마 있겠지.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주는 것 말이다. 아마 미뉴 엘은 쉽사리 할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뉴엘에게 막 대하고 있는 자신에게는 어떤 제제 도 던져지지 않았고, 미뉴엘은 오히려 자신에게 같은 '동족의 친구' 대하듯 하고 있었다. 그가 특이한 드래곤일까. 아니면 자신이 특이한 인간일까. 아니면 그가 정상이고, 자신도 정 상일까. ……아니. 아니었다. '나'는 정상이 아니다. 적어도 말이다. 절대 설원 자신은 스스로 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인간조차 아니었다. 인간이 '되지 못한다'고 할까…… "아직도 슬퍼할 겨를이 있었나……" 설원은 내심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강한 척 하고 있지만. 자신은 형편없이 약한 정신을 가지 고 있었다. 힘은 생겼는지 모르지만. 자신은 너무나도, 터무니없이 약하고 약한 정신을 지 니고 있는 것이다. "뭐, 상관 없겠지……" 설원은 그렇게 결론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 외에는 어떤것도 중요치 않다. 나약한 정신을 지닌 자신이 마침내 붕괴되어, 주변을 닥치는 대로 파괴한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이 특이한 세계의 인간들과 함께 움직이다가 정신이 붕괴되어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마법으 로 공격하고, 파멸시킨다 해도…… 정말 미쳐버려서 모든 이들에게 괴로움과 죽음을 선사하 려 든다 하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악한가……?" 모든 인간들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거리낌 없이 타인을 죽이거나 가진 것을 빼앗는 인간들도 있었다. 그것이 지나치게 극대화 되어 무 관심하고,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이나. 아예 처음부터 주변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그러면서도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인간들이나 별로 다를바가 없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점점 머릿속만 뒤엉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해결은 낼수 없겠지. 수많은 인간들이 선과 악을 위해 가끔은 생각해 봤을테니." 나지막하게, 생각을 입 바깥으로 흘리며 설원은 쓸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공터의 반반 한 회색 바위에 주저앉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울창한 나뭇잎들. 색색의 나뭇잎들이 었다. 명도의 차이 때문이었지만, 나뭇잎들의 색은 달라 보였다. 부스스한 백색 빛 무리들이 나뭇잎들이 가볍게 흔들릴 때마다 어지럽게 흔들리며 자신의 시야를 유린했다. 하지만 그 유 린당하는 시야의 어지러움에 그는 오히려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난광亂光…… 이지만. 아름다웠다. 충분히…… 충분히 아름답다. 아름다운 빛무리는 설원의 몸을 휘어 감싸고 있었다. 그래…… 이거면 충분하다. 이거면. 자연을 바라보면서 미소지을 수 있는 자유만이라도 남아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 설원은 몸을 움츠렸다. 8급의 마법? 왜 갑자기 떠오르는 걸까? 설원은 떠오르는 8급의 스펠들을 느끼면서 미소지었다. ……깨달았다. 선과 악의 구별은 중 요치 않다. 드래곤이 만약 자신의 선을 행하기 위해 한 인간 무리를 죽였다고 하면. 인간들 은 그 드래곤의 선악 여부를 다른 시각으로는 바라보지 않으려 하면서 악룡. 마룡이라고 말 한다. 그러나 드래곤은 아마 다른 인간들이 뭐라든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선을 행했으니까. 타인이 악이라든 뭐라든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같은 드 래곤이 뭐라고 하던 말든 말이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설 원은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극히 선하다. 이것이 나의 선 善이며 선線이다. 그 순간. 그의 마나홀은 무서운 속도로 넓혀졌고, 의식과 무의식 역시 확장되어 갔다. 드물 게 일어난 행운이었다. 9급이라는 것은 아마 미뉴엘의 조언이 필요하겠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은 지금 8급의 마법사인 것이다. 8서클까지의 대부분은 자유자재로 쓸수 있겠지 만. 아마 훈련은 거쳐야할 것이다. 8클래스의 마법들은 마나를 축적하면 쓸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나는……" 설원은 싸늘하게 미소지은 다음 조용히 말했다. "나는, 선善하다. 그리고 악惡하다. 동시에…… 선도 악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관점에 서 볼때는 절대의 선이다. 모두가, 모든 이들이 나에게 악하다고, 저주를 내리고 비판을 하 고. 죽음을 내리려 할 때도…… 나는 내 길을 가겠다." 여기까지 조용히 중얼거리던 설원은. 천천히 입을 열어서, 결론을 내렸다. "인간人間들이 나에게 악하다 손가락질 하건 아니건……" 설원은 살기를 뿜어냈다. 무섭도록 소용돌이 치면서 뻗어나간 강렬한 살의는 나무들의 몸을 뒤흔들게 했고, 몬스터들마저도 움찔 하며 몸을 되돌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새들이 푸드드득 하고 날갯짓 하며 날아올랐다. 그는 급하게 날아올라 빠진 듯한, 새하얗고 작은 깃털 하나가 팔랑거리며 떨어지자 그것의 깃을 잡으면서 말했다. "나는 사람[人]의 사이[間]에 있는 사람이기를…… 포기하겠다." 091. 냉혹冷酷의 사신死神. 자르지 않아서 지독히도 길어버린 머리카락이 거추장스러웠다. 길다랗고 윤기있는 흑발은 가볍게 찰랑거리면서 그의 어깨선 뒤로 한뼘이나 더 내려가 있었다. 이전의 눈빛이 아니었 다. 지독히도 차갑고 날카로운. 그러나 지금은 매우 가라앉아 있는 흑색의 눈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음울하면서도 슬픈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어서, 그가 분노나 살의의 감정만을 뿜 어내지 않는다면. 비운의 남성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을 스스로가 잘 파악하고 있는 그였으면서도, 아주 조용히 읊조렸을 뿐이 었다. 아주 조용하고 확실하게. '……도움이 되겠군. 여성들에게 정보를 얻거나 할 일이 있다면.' 죽어버린 감정…… 아니. '죽여'버린 감정이 되살아 나려면 얼마나 걸릴까. 아니, 어떤 일이 있어야 그의 죽어버린 감정이 살아날까. 쓸쓸한 표정이 그의 얼굴에 새겨졌다. 슬프다. 그리 고 아프다. 가슴이 따끔거리며 아파왔다. 왜 또 아픈지 모르겠다. 감정이 대부분 식어버려서 인지 마음은 텅 빈것만 같은데…… "또 왜…… 아플까?" 새하얗고 창백한. 그리고 가느다란 손으로 로브를 걸친 가슴 앞섶을 가볍게 쓸어보면서 그 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들릴만한 크기로 자아自我 내면의 심연으로 질문을 던졌지만. 정답은 나오지 않았다. 언제나 처럼 정답인지 오답인지 모호한 말이 나왔을 뿐. 형이 죽어주면 아프지 않겠지. ……무의미할지도 모르지만. 햇빛은 백열白熱하고 있었다. 아침의 금빛의 화려한 옷은 벗어버린 듯, 새하얗게 달아오른 광구光球는 시린 흰빛의 뿌연 무언가를 휘감고 강렬한 빛을 숲 위로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 나 설원의 곁에 다가오면 그 시리고 날카로운, 그리고 동시에 뜨겁기 그지없는 그 햇빛도 식어내려 차갑게 굳어버리는 듯 했다. 짙은 녹음. 그리고 햇빛이 비치지 않을 정도로 높고 무성한 나무들. 그리고 그 사이로 간신히 스며들어오는 햇빛…… 고요와 함께 그것은 조화되어 묘한 아름다움이 되어 설원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다. 설원 은 애써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을 무시하면서 다시 생각으로 깊이 빠져 들어갔다. 지금은 이 아름다움에 파묻혀서 미소지을 수는 없으니까…… "……" 공교롭게도, 다시 시작된 그의 상념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숲의 외곽이고, 그가 아까 살 기를 강하게 뿜어내서 이쪽 공터 방향으로는 몬스터들이 오지 않아서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평온한 분위기에서 숲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던지면서 생각을 정리할수 있었다. 냉랭한 미소 가 설원의 입가에 걸렸다. 일단의 몬스터들이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는 감각이, 그의 마나 지 배 범위에 포착된 것이다. "사냥감이라도 발견했나……?" 무덤덤하게, 그 '사냥감'이 인간이든 아니든 별로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의, 실제의 감정조차 그러한 설원. 그는 만약 그 사냥감이 힘이 없을 경우, 그 사냥감을 보호해 줄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는 결코 대체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대의, 소의 어쩌고 하면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있을수 있다. 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그리고 또한 많은 소를 희생시켜 완성한 대의는 결코 '큰'것이 아니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설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크건 작건, 그는 자신의 마음이 가는 쪽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자신이 소라고 많은 이들이 말하면, 그 많은 이들을 '죽여'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마음이 움직여 내린 판단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희생물 을 구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상념에 빠져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희생자가 내지르는 비명과 몬스터들의 고함이 상념을 방해할지도 모르지만…… 어라? "잠깐. 그럼 감히 그런 내 판단 외의 잡것들이 내 일을 방해할수 있다는 건가?" 설원은 아직 생각이 닿지 않은 방향에서. 인간이 먹히건 아니건. 배고픈 몬스터들의 식욕을 채워줄 존재를 죽이지 않고, 생태계를 건드리지 않으려 했었던 그 생각과, 기타 '자신만을 위한 결정'에서 움직이지 않으려 했던 생각을 철회해야 할 이유를 발견했다. 그것은, 감히 '예외'에 두어주었던 것들이 자신을 방해할수 있다는 것이었다. "블링크Blink. 체이닝Chaining." 그는 4서클의 블링크를 사용하면서 또 같은 서클의 체이닝을 통해 마나재배열 연쇄로 이번 에 마련한 8급의 완성에 의한 도움으로 무려 여덟 번씩이나 되는 블링크를 통해 숲의 나무 나 수풀과 좌표가 겹치지 않도록, 아주 교묘하게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빠르게 희생물의 기 척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의 거리 단위로는 블링크 마법은 6에서 7m정도를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이었다. 그러니까, 적의 검이 들이닥치면 순간적으로 피할 정도는 된다 는 말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체이닝을 플러스하면 고속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마법도 되어주었다. 블링크는 깜빡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실제로 아주 짧은 공간 점프를 통해 움직이는 마법이 블링크였다. 거기에 체이닝을 추가로 더해주면 상당히 쓸만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다. 설원 은 지금 50m정도를 블링크와 체이닝 한 번을 걸때마다 무서운 속도로 깜빡이며 도약하고 있는 것이었다. 보통 이 마법은 탁 트인데서 쓴다. 이유는, 좌표가 겹치면 죽으니까. 하지만 설원 정도의 마나 컨트롤이 가능한 마법사라면 좁은 건물 내나 이런 숲에서마저도 쓸수 있었다. 그래서 설원은 지금 블링크에 치이닝을 더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헤이스트 셀프Haste Self를 이용해서 빠르게 움직일수도 있지만, 블링크보다 빠를수는 없었다. 깜빡거 리면서 여덟 번을 이동하면 어느새 소드 익스퍼트나 심지어는 소드 마스터보다 빠르게 움직 이면서 이미 한참 앞을 가있는데…… 7서클 마법사 정도라면, 상당한 공격력을 지닌 급수의(3급이나 4급) 마법을 시동어와 정신집 중을 발해 조화시킬 타이밍(2초)만 주어진다면 소드 마스터나 소드 익스퍼트라도 죽일 수 있 었다. 그러나 실상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 정도라면 몸에 강한 반탄의 기운을 두르고 비룡탄 飛龍彈의 신법을 통해 마법의 마나 스트림을 미끄러뜨리듯 흘리면서 빠르게 움직여 피할수 있는 것이다. 고로, 매우 빠른 '빛'이나 '번개' 계열이 아니라면 제대로 상대를 칠수 없었다. 그리고 소드 마스터 정도라면 검강을 무서운 속도로 날려서 마법사가 마나를 움직이기도 전에 머리통을 몸에서 분리시켜 버릴수 있으니…… 적어도 오십걸음 떨어져 있지 않다면 마법사는 블링크 도 시도해 보지 못할 것이다. 번개 계열의 마법이라면 또 경지에 오른 검사들은 막을 방법이 있었다. 아주 얇은 기의 반 탄막을 옷 위에 조금만 떠올려서 쳐도 전혀 타격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가 정전기靜電氣 차폐遮廢 효과를 일으켜서 전기를 모조리 흘려버리는 것이다. 대지에 다리가 붙어 있지 않 아도 상관없다. '주변의 기'와 맞닿아서 사방으로 아주 약하게 바꾸어 기의 힘으로 번개의 뇌력을 분산시켜 흡수해 버리니까. 여러모로 마법사들은 불리하다. 그러나 8급부터는 달라진다. 5급의 그리스Grease를 쓸수 있 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를 주변의 바닥에 오브젝트 셋팅 해서 걸어주면 날고 기어도 미끄러 질수 밖에 없었다. 몸을 날려서 쏘아져 오면 블링크 한다음 그 자리에 5급의 플레임 버스트 Flame Burst 한방을 갈겨주면 그만이다. 적어도 소드 마스터가 아니라면 맨몸으로 5급의 마법은 때울수 없었다. 6급이라면 소드 마스터가 전력을 다해 방어한다 하더라도 조금의 충 격을 주고. 7급이라면 정말 반쯤 죽여놓을수 있고. 8급의 헬 파이어Hell Fire정도라면 아마 방비를 해도 재가 될 것이다. 지금 설원은 그런 8급의 마법사였다. 아직 운용이 원활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일주일 정도 만 지나면 모두 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익숙하게 할수 있을 것이다. 설원이 두 번 블링크와 체이닝을 조합시켜 100m정도를 움직이자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퍼졌 다. 옆으로 서너번만 블링크 하면 될 것 같았다. 풍경은 좀더 어둡게 바뀌어 있었다. 날카로 운 비명은 그 비명의 주인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조차 할수 없게 했다. 이 세계는 참 특 이한 놈들이 많아서, 남자놈인지 여자놈인지 헷갈리는 녀석들도 많으니까…… "헤이스트 셀프Haste Self." 설원은 가볍게 헤이스트 셀프라고 중얼거렸고, 그의 몸으로 마나가 재배열, 조합되어 신체의 속력을 두배 정도로 증폭시켰다. 그리고 그 즉시 그의 몸은 그렇지 않아도 민간인들의 돌격 보다 두배는 빠른데, 그 두배 빠른 속도에서 다시 두배를 더해 정말 바람처럼 빠르게 움직 여 나무들 사이로 이리저리 파고들어 무서운 속도로 움직였고, 고작 열을 셀동안 뛰었을까 했더니 이미 그는 헤이스트 부여마법을 풀면서 4급의 베일 실드Vail Sheild를 펼쳤고, 아니 나 다를까. 쏘아져 들어오는 것은 몇 개의 몽둥이였다. 베일 실드는 마치 마나로 이루어진. 경도 12정도의 막을 늘어뜨리듯 앞쪽에만 치는 마법이 다. 4급의 위력이기는 하지만 3급 정도로 캐스팅 타임이 짧아서 그런대로 유효하게 쓰는 마 법이었다. 그 강도도 상당하고 말이다. 그래서 상당한, 인간의 두개골 정도는 우습게 부수고 뇌를 파괴할수 있을 위력으로 날아왔던 몽둥이들은 희뿌연 회색빛의 흐느적거리는 듯한 빛 의 막에 부딪히자 마자 그 힘을 잃고 바닥에 처박혔고, 그 순간 설원은 가차없이 손을 휘두 르면서 가볍게 마법을 구현하고 있었다. "……익스플로시브 애로우Explosive Arrow. 체이닝Chaining." 고저가 없는 목소리가 차디차게 마나에게 명령했다. 마나는 주저없이 움직여 재배열 되었고. 익스플로시브 애로우. 익스플로션Explosion의 스플래쉬Splash를 쏘아져 나가서 일단 타격을 주고 좁은 범위에서 폭발하는, 집중 형태의 마법으로 개조한 익스플로시브 애로우. 5급의 마 법을 법칙을 깨어 소환해 내었다. 주홍빛으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꽃의 화살. 파이어 애 로우와는 수준이 다른 열기였다. 익스플로시브 애로우. 폭발성의 화살. 주홍빛 궤적을 그리는 화살 여덟 개가 떠올랐다가 다시 한번 체이닝에 의해 무려 64개체로 늘어났고, 그 뜨거운 열기에 의해 설원도 이맛살을 가볍 게 구길 정도였다. 설원은 자신이 걸친 로브의 옷자락이 조금 그슬리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토해냈다가 왼손을 휙 그어 적들을 향해 마치 지휘관이 지휘봉을 들어 가리 키는 듯한. 어떻게 보면 파리를 쫓아내는 듯 가벼운 손짓으로 마나들이 만들어낸 폭발성의 화살들을 쏘아내보냈다. 쐐애애애애액―! 콰쾅! 콰콰쾅!! 콰콰쾅쾅!! 연쇄폭발連鎖爆發이었다. 트롤인지 뭔지 알수 없었던 몬스터들은 이제 아예 그 피부색이나 형체마저도 알아 볼수 없었다. 공기를 찢어 발기며 쏘아져 나간 폭발성의 화살들은 놈들의 전신에 이리저리 틀어박혔고, 화살에 맞지 않는 녀석들은 날아가 꽂힌 화살이 무서운 속도 로 좁은 범위 내에서 연쇄폭발하여 공기까지 뒤흔들어 놓자 전신이 피떡이 되면서, 혹은 완 벽하게 연소되면서 바닥에 볼품없이 쏟아져 내렸다. "……조금 남았나?" 그는 조용히 읊조리면서 폭발의 여파로 마구 깨어져 나간 나무조각들을 바라보다가 의식과 무의식의 확장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생겨난 염동력을 이용해 많은 나무조각들을 떠올려 강 한 스핀Spin을 실었고, 나무조각들은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면서 새하얗고 날카로운 기류를 동체에 둘둘 말았다. 설원은 아직 남아있는 적들을 향해. 수백개에 달하는, 회전력으로 예리한 기류를 휘감아 새 하얗게 보이는 나무조각을 염동력을 통해 쏘아보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피륙이 뚫 리는 소리가 나면서 모든 몬스터들은 확실하게 전멸해 버렸고, 남아있던 트롤 몇몇도 뇌가 파괴되어 죽어버렸다. 재생이고 뭐고 할 시간조차 없이 나무조각들은 몸을 관통하고 지나갔 던 것이다. 스핀을 머금고 쏘아졌던 나무 조각들도 염동력이 사라지자 금방 힘을 잃고 바닥 에 떨어져 내렸다. "끝났군." 설원은 마치 더러운 것이 묻은 것처럼 로브를 툭툭 털었고, 상당히 마른 체구여서 가늘게 보이는 그의 몸 때문에 치렁치렁하게 느껴지는 로브는 폭풍이라도 만난 돛처럼 이리저리 펄 럭였다. 설원은 이제 '희생물'이었을지도 몰랐던 누군가에게 관심조차 없이 몸을 돌렸고, 그 탓에 희생물은 설원에게서조차 주목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긴장이 풀린듯(몬스터들에게 는 '음식'의 가치가 있는 존재로써의 주목을 받았을 뿐이다.)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설원은, 그 누군지 모를 이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풀썩. 하고 쓰러지는 소리 때문에 시 선을 돌렸다. 그것뿐이었다. 이 단순한 행동. 그 인물이 아닌 쓰러지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돌린 이 행동……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지만 않았다면, 아니, 지금은 누군지 모를 그 누군가가 쓰 러지지만 않았었더라면…… 냉혹의 사신이라는 이름의 악마가 아스타르 대륙에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092. "……" 설원은 여전히 무심한, 반사적으로 돌린 시선이었기에. 전혀 감정이 실리지 않은. 무기질로 빚어진 정신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 같은. 마치 죽어버린 눈과 같은 시선을 그대로 '자연의 법칙에 따라 희생물이 될뻔 한' 누군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설원의 눈에 이채가 떠올 랐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빠르게 가라앉아버렸다. 설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지금까지 책으로는 읽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결코 한 번도 실제로 본적은 없는. 뾰족한 귀를 지닌 엘프Elf의 작은 소녀였다. 아니…… 엘프는 아니다. '마나와 동화된 정도'와 '자연과 공명하는 정도'가 낮았다. 일반인간보다는 월등히 높았지 만, 미뉴엘이 한 번 용언을 통해 엘프의 분위기와 느낌을 전송해준 적이 있었기에, 엘프의 그 것보다 낮다는 것은 알수 있었다. 나이와는 상관 없는 그 조화와 동화력…… 저건, 반쪽짜리. 다시 말해 Half-. 하프 엘프Halk Elf인 것이다. 딱 절반은 아니지만. 아무래 도 엘프 쪽의 피를 인간보다 더 많은 부여받은 듯. 조금 더 절반에서 많았다. 그리고 인간적 인 감정의 냄새 역시 풍겼다. 마나를 다루면서, 그리고 8급의 마법에 대한 깨달음. 8서클과 8클래스의 존재를 자신과 동화 시킴으로써. 무의식에서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하이엘프라고 알아오던 본질의 엘프. 즉, 엘리멘트 엘프Element Elf를 알아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드래곤을 제외 한 이종족의 본질을 어느정도까지는 알아 볼수 있었다. 10급이 되어 10서클과 10클래스를 터득하게 된다면 드래곤이라도 알아볼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직접 본질은 볼수 없지만. 드래 곤 피어의 느낌은 어느 정도 받을수 있다. 설원 자신이 드래곤 피어라는 것에 대해 그리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드래곤 피어를 받아들 여 동화시켜도 정신의 조화에 무리가 생기지는 않는다. '만들어진 자'의 특권…… 이랄까. 그 중 붕괴와 파괴를 다루는 그였기에, 파괴적인 드래곤 피어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다 른 '만들어진' 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인간과 섞인 엘프. 그래서 엘리멘트 엘프의 향기가 흐르는 아이였지만. 엘리멘트 엘프와 인 간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능력이 조금 나을 뿐. 이외에 특권은 없다. 다른 하프 엘프와 다른 점은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엘프의 감정 중에는 그다지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 '공포'를 엘리멘트 엘프의 '감성동화'의 힘에 의해 설원의 정신세계에서 풍겨나오 는, 차갑게 가라앉은 검광劍光같은 그 예리함을 모두 받아들여, 그의 시선과 마주하자마자 공포에 질려버렸다. 이토록 무서운 존재를 하프 엘프의 아이는 단 한 번도 만나 본적이 없었다. 아까의 몬스터 들만 해도 그렇고, 어머니와 함께 떠돌다가 우연히 보았던 노예사냥꾼들도, 그 음욕과 돈에 대한 욕망에 불타는 이들만 하더라도 결코 이 정도의 공포를 선사할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만나는 '것'은…… 악마라고 해도 이렇게 섬뜩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짙은 공포와 냉기를 풍기고 있 었다. 지옥의 가장 깊은 곳. 그곳에서 풍겨 나오는 사념과 절망의 힘보다도 무서운 것이 아닐 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저 인간은 타인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본질적으로 거 부감을 주는 정신의 '향기'를 매우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엘프는 피와 살이 있는 존재지만. 정신과 의식과 무의식은 정령. 그 마나를 모아 형상화 하 여 자신의 의지를 유지하는 존재들처럼. 조금 더 인간보다 마나와 자연력을 향해 기울어져 있는 존재다. 그리고 그것은 하프 엘프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여서, 보통 엘프가 만났더라도 끔찍한 공포를 느꼈을 설원에게서, 강한 사념과 냉기. 그리고 피냄새를 느끼고 있었다. 설원 에게는, 정말로 십수년을 험지에서 뒹굴며 피를 뒤집어쓴 용병에게서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의 냉기와. 살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험한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설원은 자연력과 어느 정도 동화되고, 자연력을 읽을 수 있는 이 존재에게서, 인간보다는 낫다 는 생각이 드는 이 존재에게서. 조금이나마 호감을 느낄수 있었다. 물론, 이 존재가 자신에 게 해로운 존재이거나 앞으로라도 피해를 줄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면…… 과거에는 줄수 없었던 '것'을 가차없이 베풀 것이다. 한점 거리낌도 없이…… 죽음이라는 이름의 독을…… 소년인지 소녀인지 아직 알수 없는 작은 아이의 머리카락은 짙은 녹색이었다. 엘리멘트 엘 프의 머리카락 7할은 녹색이었다. 이유는 알수 없지만. 역시 엘프들이 숲에 많이 살고, 숲에 서 많이 태어나므로…… 숲에서 풍겨나오는 나무의 오러Aura에 의해 얻어지는 색이 아닌가 하고 엘프들도 막연히 추측할 뿐이었다. 아주 약간 그을린 피부는 건강미를 더했지만, 아주 가냘픈 얼굴 생김새는 결코 건강하다거 나 활발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매우 얌전하고,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보여주는 건방짐 이나.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는데서 나오는 끝모를 독선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다시 말해 나이에 비해 많은 고생으로 너무나 빨리 성숙해버린 정신 수준을 지닌 그런 눈빛 이었다. 키는 작아서 나이를 많이 쳐주어도 열 둘이 채 되지 않은 것 같았다. 군데군데 흙먼지로 더러워진 천옷을 보면서 설원은 지금의 호감을 어떻게 발하는게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그 옷에 친절을 발해주는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는 천천히 하프 엘 프의 아이에게 걸어가 작은 손을 잡아서 일으켜주고는 옷과 팔다리를 털어주고, 군데군데 긁힌 상처를 치유 계열의 마법을 발해서 아물게 했다. 숨막히게 뻗어나오는 공포의 냄새 역시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래서 하프 엘프의 아이는. 주 저없이 그에게서 경계심을 거두었다. 그는…… 마법사였다. 그가 주변의 마나를 휘어잡는 모습은 아이에게 경외심을 가져다 주었다. 하프 엘프였기에, 보다 더 마나에 민감했고. 그래 서 주변의 마나가 어느정도 재배열 되는 것을 느낄수 있었던 것이다. 시동어조차 가볍게 발 하면서 치유 계열의 마법을 사용하는 그는. 그가 나이에 비해 매우 훌륭한 마법사 임을 입 증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착각해버렸다. '믿어도 되는 사람이구나.' 하는. 정말 말도 되지 않는 착각을. 자신의 목숨을 송두리째 자신의 손으로 잘라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행위를 해버린 것이다. 절대 믿어서는 안되는 상황의 그를 믿은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계약이나 특수한 약속에서 는 믿어도 되는 사람이 바로 설원이고. 직접 언급되지 않은 암묵적인 약속에 관해서는 절대 로 믿어서는 안되는 사람이 지금의 설원이었다. 만약 지금이라도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고 싶다면. 입을 열어서 설원에게 '제 목숨을 구 해드리면 어떤 종류의 일을 해드리겠습니다.' 류의 '계약'을 해야 했다. 설원은 그 호감에서 발현된 행동이 끝나서 나서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이전의 쾌활한 설원과는 전혀 다른 행동 패턴이었다. 설원은 주저없이 걸어서 다시 숲속으로 걸어들어갔고, 아이는 화급히 설원의 뒤를 따라갔다. 무엇이었을까…… 이 이끌림은? 대체 왜 아이는…… 외지 생활로 인해 인간을 잘 믿지 않게 된 아이가 절대 믿어서는 안될 인간을 절대 믿어서는 안될 상황에 믿어 버린 걸까. 분위기 에 편승해서? 아니면 공포에 사고가 마비되어? 따라가서는 뒷끝이 좋게 끝나지 않을 류의 인간. 지금의 설원이 바로 그런 인간이었다. ……아니, 사람 사이에 있는 이[人間]가 아닌걸까? 그래서, 그 독특한 분위기에 믿어버렸던 걸까? 사람 사이에 있는 이가 아니라서. 그래서 '모임'에서 생겨나는 집단적인 욕망이나 집 단적인 이기주의. 집단이 생김으로써 당연히 생겨나는 그런 모든 것에서 초월했으리라고 믿 었던 걸까? 아니면, 마법의 수준이 높아서 당연히 심신의 고양이 훌륭한 마법사라고 생각한 걸까? 그 공포의 분위기가 희석되어 단순히 '괴짜'인 마법사의 분위기를 몬스터 때문에 착각 한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 설원의 옆에 따라붙은 아이는 짧은 보폭으로 부지런히 넓은 보폭의 설원의 걸음을 쫓아갔 다. 마법사의 로브를 입고. 마법까지 사용했음에도 일반 검사보다 월등한 체력을 지닌 설원 을 아무리 외지 생활과 오랜 여행. 그리고 고난으로 단련되었다고는 하지만. 어린 아이가 따 라가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다시한번 지쳐서 쓰러져야 했다. 자신이 왜 그를 따라갔는지 궁금해졌다. 멀어져버린 어머니를 찾아야 하는데. 대체 왜일까? 어머니는 엘리멘트 엘프의 성인. 그리고 강하다. 그래서 아무리 이런 몬스터들이 넘치는 숲 이라도 엘프들만의 은신술隱身術을 이용하면 결코 기척이나 모습을 들키지 않는다. 그러므 로 아마 자신의 어머니는 안전할 것이고, 자신의 향기를 쫓고 있을 것이었다. 아마 금방 만 날 수 있겠지. 차라리 한 자리에 앉아있는게 덜 위험할 것이다. 몸을 숨기고 말이다. 그런데 왜 자신은 그를 따라가는 것일까? 지쳐 쓰러져 있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구원이 주어졌다. 설원은 왜, 자신이 느껴도 냉막한 자 신을 쫓아오는지 모를 아이에게 마법을 사용해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조금의 호감 때문 에 왜 정신력을 소모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회복계열의 마법을 사용해주자 아이의 몸 에 쌓인 피로는 금방 사라졌다. 근육 역시 회복되어 거뜬히 다시 체력을 되찾은 것이다. 아 이가 일어나자 설원은 다시 걸었다. 문득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왜 날 따라오는것이지? 하프 엘프의 아이?" 자신의 말투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그리고 목소리는 묻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렇 게 고저가 거의 없을까. 문득 목소리에서 그런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설원은 금방 그 안타까 움과 아쉬움을 지웠다. 아이는 입을 열었다. "저도 몰라요. 마법사님." "……그런가?" 설원은 조용히 미뉴엘의 마력이 흘러나오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아이 를 데려가면 미뉴엘이 죽이려 들겠지. ……이 아이보다 자신을 말이다. 죽이지는 않겠지만 아마 마법 난사 정도는 받아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의 잔소리도 말이다. 지금 너 의 상황이 직시되지 않느냐는…… 설원은 손을 들어서 아이의 머리카락. 어깨선까지 이르른 길다랗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 다듬으면서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머리카락을 부벼보았다. 머리카락은 조금 거칠어져 있긴 하지만 아주 부드러웠다. 그리고 습기가 적절하게 유지되어 기분좋은 서늘함 을 설원의 촉각에 전달했다. 문득 아이가 설원의 머리카락을 바라보았다. 짙디짙은 흑발을. 그리고 냉기가 스민. 텅 빈 듯한 무기질의 흑색의 눈을…… 아이는 몸을 가볍게 떨었다. 저것은 인간의 눈이 아니다. 그 래서 믿고 싶은 걸까? 아직 몬스터나 인간이 아닌 존재는 믿고 싶은걸까? 엘프도 별로 믿 고 싶지 않았다. 엘프들은 하프 엘프를 무시하다시피 했으니까…… 자신도 몇 번 그런 무안 을 당한 적이 있었다. "……부드럽군." 가벼운 감상이었다. 말 그대로의…… 하지만 아이의 얼굴은 그 칭찬아닌 칭찬에 가볍게 붉 어져 있었다. 설원의 눈빛이 조금 더 깊게 가라앉았다. 창백하고 흰 피부. 마치 차가운 흰빛 의 바위를 깎아 만든 듯 굳어진 얼굴이 조금 움직였다. 창백한 분홍빛의 입술이 가볍게 말 려 올라간 것이다. 희미한 미소. 그러나 그것은 금방 없어졌다. 설원의 모습은 이전과 많이 바뀌어 있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여성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비칠 법한 모습이었다. 창백하고 새하얀 피부. 가느다란 선의 얼굴. 이목구비가 확실하고. 음 울하게 가라앉은 눈은 슬픔과 절망. 그리고 살기와 냉기가 조화되어 알 수 없는, 그러나 확 실히 여성들이 보기에는 '낭만적'인 눈빛으로 보였다. 그 위험성을 알만한 여성 용병이나 검 사라면 결코 접근조차 하지 않겠지만…… 설원은 '위험인물'이나 다름 없었다. 아마 그런 분위기를 많이 느껴본 병사라면 긴장부터 하 고 볼 것이다. 창백한 입술은 분홍빛이었지만 갈라졌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피부도 매끈했지 만 어쩐지 거친듯한 창백한 흰색이었다. 음울한 기운을 머금은 눈빛은 흑색으로 반짝이고. 머리카락은 벌써 길다랗게 늘어져 있다. 학자…… 젊은 학자처럼 보이지만. 결코 분위기는 학자의 그것은 아니다. 오히려…… 위험한. 아주 위험한…… 피를 즐기며 살육을 즐기는 자들보다도 더욱더 위험한 향기가 풍기는 그런 청년이었다. 외모는 가늘면서도 아름답다고는 못하겠지만 매우 잘생겼 다. 라고는 할수 있는, 그런 얼굴 이었고. 그 분위기는 억제한다면 알 수 없는 위험함이 더 욱더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런 느낌의 인물 유형이 되겠지만. 지금의 그는 혈향이 풍기는. 그런 살기가 배어 있는 존재였다. 로브로 몸을 감고 있기는 하지만. 로브를 입은 상태에서도 검 한자루만 들면 어느정도 검을 잡아본 이라면 절대로 경시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름이 뭐지?" 드문 일이었다. 설원이 관심을 가지고, 이름을 묻고 있었다. 차가운 눈빛이었지만, 지금은 어 느 정도의 따스함이 섞여 있는 눈빛이었다. 지금 왜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설원은 깨 달았다. 자신은 이 아이에게서. '설연'을 보고 있다. 자신의 동생…… 여자 아이였지만. 어딘 지 모르게 이 아이와 닮은 감이 있었다. "유리엘……" "……좋은 이름이군." 따스한 느낌이 흐르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유?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설연의 느낌.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해도 결코 설원은 냉랭함으로 다시 자신을 휘감지 않았다. 그 는 지금 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연의 느낌을 받는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기특함을 느끼 고 있었다. 아직도 '느낌을 받을' 수는 있구나. "내 이름은……" 설원의 입은 다물어졌다. 그리고 조금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공기가 울렸다. 설원이 아닌 '본질本質'이 말했다. 본질이 속삭여 왔다. 귓가를 간질이는. 공명이 섞인 그것. 「제 이름은…… 바인…… G……」 설원은 자신도 모르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본질은 다시 조용히 가라앉았다. "내 이름은…… 바인…… 바인이다." 자신도 모르게 읊은 이름에 설원은 기분이 가라앉음을 느꼈지만. 고개를 저으면서. 이름따위 아무려면 어떤가. 하는 생각으로 아이를 직시했다. 아이는 환하게 웃어주었고. 그런 미소에 설원은 자신도 모르게 조용한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설원의 미소가 그려진 즉시. 위험한 느낌은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다. 아이는 감탄했 다. 웃음이 입가에 걸리는 일. 그것 하나로 인상은 정말 확 바뀌어버렸다. 냉랭하고 날카로 운 인상. 유약한 느낌이 매우 부드러운 미소가 걸림과 동시에 아늑하고. 마치 기대고 싶은 사람…… '형'이라는 존재와 같은 이미지가 되어주었다. 매우 따뜻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 을수 있으면서. 대체 왜 평소에는 그렇게 냉랭한 표정일까…… 그런 의문을 떠올리면서 하프 엘프의 아이. 아니…… 소녀는 생긋 웃었다. 설원은 느꼈다. 이 미소에서 말이다. 이 아이는…… 여성이다. 093. "인컨디센트 블레이드Incandescent Blade. 체이닝Chaning." 푸화하하학! 설원, 아니. 바인은 아주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손을 휘둘렀고, 5급의 마법. 백열광검白熱光劍 은 체이닝 연쇄 마법에 의해서 연쇄적으로 발현되어 자그마치 여덟 개체가 생성되어 무서운 속도로 공기를 태우며 쏘아져 나갔다. 흰빛으로 이글거리는 검이 공중에 새하얀 선을 그어 놓고, 새하얀 궤적을 그려내면서 복잡하게 쏘아져 들어간 직후. 쾅! 하는 굉음이 터져나오면서 비명조차 없이 커다란 숯덩이가 무너져 내렸다. 한때 같은 몬스터Monster나 인간에게나 공포의 대상이었던, 다섯 마리의 미노타우르스Minotaurs중 마 지막 남은 녀석이었고, 가장 강한 녀석이었다. 손에 쥐어져 있던. 드래곤인 미뉴엘이 창조 마법으로 뿌려서 선사한 질 좋은 순수 강철 배틀 엑스마저 백열하여 습기와 흙을 타들어가 게 했다. 백열하는 칼날 여덟 개가 몸을 난자해 버리자, 많은 인육을 삼켜오고. 한가닥 하는 모험가들도 죽여놓았던 강한 미노타우르스라도 어쩔수가 없었다. "……조금 위험한 숲이군." 내심 설원은 미노타우르스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었다. 어떻게 보면 참 멍청하면서도 동시 에 범인凡人은 생각조차 못할 만큼 참신한(?) 생각 말이다. '소 머리…… 혹시 저것은 소가 오랜 세월을 거쳐 이립보행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자연의 기근으로 서로를 잡아먹게 되고, 송곳니와 고기를 씹는데 좋은 이빨들이 생겨나고. 미뉴엘 같은 흉폭한 드래곤의 근처에 있다 보니 인육을 먹게 되지 않았을까? 으음. 생물학자들에게 보여주면 시체를 천참만륙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 볼지도……' ……할말을 잊게 될 정도로 참신한 생각이다. 어찌되었던 그가 발현한 마법으로 인해 미노 타우르스들은 순식간에 전멸해 버렸고. 그의 몸 뒤에 찰싹 달라 붙은 하프 엘프의 소녀는 두려움에 떨다가 이제 시체만 남자 시체에서 시선을 돌렸다. 바인은 아주 옅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직은' 순수하군. "너…… 몇살이지?" "열살이에요." ……말투는 삭았군. 하고 중얼거리면서 바인은 손을 들어 저으면서 나지막하게 다시 시동어 를 읊었다. 끝 부분은 조금의 강세가 들어가긴 해서 드물게 그의 목소리에 고저를 더해줄수 있었다. ……별 의미 없으려나. "스캔Scan. 오브젝트Object는 강한 자의로 '움직이는 물체[動物]'!" 아주 부드럽고 약한 마나의 물결이 주변을 향해 퍼져나갔다. '강한 자의'라는 말을 집어 넣 어 이미지를 구성하여 마법을 구현한 이유는 오직 하나. '식물'도 자의로 조금씩은 움직이고, 자라고, 물을 찾고. 뿌리를 뻗으니까다. '본능이 아닌 강한 자의'로 '움직이는 물체'를 그는 검색하고 있는 것이다. 범위는 상당히 넓어서. '이 숲에서' 그의 거리 단위로는 반경 5km정도를 뒤질수 있었다. 뭐, 넓히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더 할수 있지만. 더 이상 했다가는 정신력이 너무 크게 소모된다. 필요할때는 할수 있지만. 숲인데다가 지나치게 몬스터들이 많아서 범위가 좀더 좁아졌다. 도 시에서라면 아마 반경 100m정도만 해도 머리가 아프겠지만…… 이 숲에는 적어도 도시의 인간들만큼 몬스터가 몰려 있지는 않아서 반경 5km를 뒤질수 있 다. 실제로 지금까지 오면서 수없이 많은 몬스터들을 도륙해버렸기에 좀더 범위가 넓어졌다 는 것은 아마 다들 짐작하고 계실 것이다. 수도 없이 많은 마나 스펠로, 제법 많은 마법을 보 아왔다고 자부하는 이 하프 엘프의 소녀마저도 그가 사용하는 마법들은 정말 특이한 것이 많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다채롭게 도살을 해왔었다. "이래서야 구별이 되지 않는데……" 중얼거리던 그는 가볍게 인상을 찡그렸다. 빠른 속도로. 다른 몬스터들과는 달리 이쪽으로 빠르게 숲을 헤치며 다가오는 존재가 검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점점 빨라지는 그 속도는 아무래도…… "……몬스터는 아냐. 음?" 마침 몬스터 서넛이 접근하고 있었다. 뭘까. 하고 중얼 거리던 그는 닭(?) 비슷한 것들이 사 박거리며, 아주 근육이 주렁주렁 매달린 다리를 쭈욱쭈욱 뻗으면서 걸어나오자 신음을 흘렸 다. 코카트리스. 별놈들이 다있군. 석화가스를 입에서 뿜어내고 거의 강철을 상회하는 날카 로움을 머금은 부리와 이빨로 사냥감을 포식한다. 닭의 형태지만 날수도 있고, 다리의 빠르 기는…… 5분 정도는 말의 캔터Canter를 추적할수 있을 정도다. 크기는 보통의 수탉보다 덩 치가 1.5배 정도는 크다. 그리고…… "빨라. 슬라이스Slice! 컷Cut!" 쉬이이이익! 그가 손을 그으면서 아주 짧은 정신 집중 후에 시동어를 외치자 마자 새자식들(?)은 달려들 고 있었다. ……우습게도 마치 허공답보라도 흉내내듯 강한 다리의 탄력으로 몸을 날려서 부리를 앞세운채. 물론 도약 상태에서는 석화 가스를 뿜었다간 자신이 도로 뒤집어 쓰기에, 새대가리 치고는 머리를 굴릴줄 아는 놈들은 브레스(?)는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갈 빛 부리는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슬라이스 마법의 선線은 순간 여덟 정도의 코카트리스 중 도약한 네 코카트리스를 여러토막 내버리면서 지나갔고, 요란한 피가 푸학 하고 뿜어져 그의 몸을 적셔버렸다. 흰 로브가 피로 물들고, 흑색 머리카락과 흰 피부도 어김없이 피로 물들어 버리자 흉신악살 하나가 그대로 등장하게 되었고. 아이가 피를 뒤집어 쓰는 것을 드문 친절로(본의 아니게지만 말이다.) 막 아준 그는 짜증을 흘리면서 오른손을 휘둘렀다. 피에 젖은 흑색 머리카락과 구겨진 얼굴. 그리고 드물게 몬스터 중에서는 붉은 피를 지닌 코카트리스의 덕분으로 그는 완전히 토마토 케첩을 전신에 처바른채 데몬스트레이션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냥 토마토 케첩이면 좋겠는데, 코카트리스의 피는 어느정도 산성을 띄 고 있는데다가 냄새는 끔찍하리만큼 독해서, 그는 인상을 더더욱더 험악하게 구기면서 살기 를 토해냈다. 눈 같은 부분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살이 조금씩 치익. 하는 소리를 내면서 타들어가는 고통은 정말…… "닭대가리들이…… 허공검……!" 마침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는 오른손과 왼손을 겹쳐서 장심에서 회백색과 회흑색의 빛을 줄기줄기 토해내었고, 저번과는 다르게 소환된 허공검은 여전히 허검과 공검으로 나뉜 상황 에서 빛줄기로 흩어졌다가 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쥐어져서 서슬푸른 예기를 번뜩였고, 두 검이 새하얀 손에 쥐어진 순간. 이미 코카트리스 하나는 목을 날리고 있었다. 가볍게 다리의 탄력으로만 도약해 왼손으로 코카트리스 하나의 목을 날려버리고 오른손의 검으로는 지나치게 빨리 움직여서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게 위해 가볍게 바닥에 꽂아서 일 단 몸을 회전시켜 멈추고는, 다시 검을 빼어들고 남은 세 코카트리스의 입이 쩌억 벌어지고, 짙은 회색의 구름을 뭉게뭉게 토해내는 순간 무서운 속도로 뛰쳐 올랐다. 자그마치, 그의 단위로는 3m를 단지 제자리에서 도약 하는 것으로 뛰어오른 그는 허공에서 가볍게 윈드 스파우트Wind Spout를 통해 분사하여 몸을 뒤틀어 거스트 오브 윈드Gust of Wind를 아래로 주욱 뿜어냈다. 그러면서 하프 엘프의 소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가볍 게 시동어를 내뱉었다. "베일 실드Vail Shield. 스피어Sphere." 예의 베일 실드였다. 소녀. 유리엘의 몸 앞에 얇은 베일 실드가 생겼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 르게 몇겹으로 너울거리며 유리엘의 몸을 감싸 안고 펄럭였고. 거스트 오브 윈드에 의해 강 한 바람으로 흩어져 버린 석화 가스는 코카트리스 둘을 삼키고 뿜어져 나가 유리엘의 근처 에서 베일 실드에 의해 사라져 버리고, 석화 가스가 완전히 마법적 효능을 잃고 사라지자. 베일 실드는 사그라 들었다. 베일 실드가 생겨났다 사그라 드는 것은 찰나. 그리고 그 순간 이미 남은 하나의 코카트리 스의 목은 바닥에 착지한 직후 휘둘러진 허공검에 의해 잘려 나가고 있었다. 하나는 몸통에 꽂히고, 하나는 머리를 잘라냈다. 피가 다시 푸확! 하고 솟구쳐 오르면서 그의 전신을 피범 벅으로 만들어버렸다. 방금의 장면들은 참 너무나도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먼저 그는 슬라이스 마법으로 달려드는 네 코카트리스들을 조각내버리고, 허공검을 소환해 뛰어들었다. 그리고 하나의 목을 자른 후. 나머지 세 마리가 석화가스를 그를 향해 포위 진형으로 뿜어내자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일단 윈드 스파우트로 바람을 분사해 신형을 탄력으로 곧추 세우고. 거친 바람을 불어 내어 석화 가스를 퍼뜨리면서 유리엘의 몸을 베일 실드로 감아주었다. 그리고 그 바람을 타고 흩어지던 석화가스들은 석화의 힘을 머금은채 두 코카트리스들의 몸 을 휘감았고, 두 코카트리스와 하나의 시체가 된 코카트리스는 돌이 되어 버렸다. 두 코카트 리스들은 생으로 석화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죽어버렸다. 석화 저주와는 다른 확실한 석 화이기 때문에 '죽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남은 하나의 코카트리스는 착지한 즉시 허공검 을 이용해서 몸통을 찌르고 머리를 잘라버리는 빠르고 쾌속한 공격을 해낸 것이다. '제길……' 욕설을 내뱉은 그는 바닥에 두 검을 꽂은다음 폼멜이 있어야 하는 자리. 하지만 폼멜이 없 는 자리에 장심을 얹었고. 허공검은 빛무리가 되어 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싸늘한 미 소를 짓다가 피범벅으로 끈적끈적한 몸. 치익거리며 타들어가는 몸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 다가. 마치 고통을 느끼면서 자신을 자각 하려는 듯. 무려 30여초를 그대로 놔두었다. 이정 도로 부식되면 아무리 인내심이 강해도 치료를 할법 한데. 그는 아주 무심하게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킥. 뭐, 좋아." 그는 마나홀에 축적된 마나를 가볍게 흘려서 피부를 보호했고, 피의 산성은 더 이상 그의 피부를 잠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치유 마법을 이용해서 타들어간 몸을 전부 치유했고, 피부가 깨끗해지자 그는 투덜거리면서 퓨리피케이션 마법을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유리엘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퓨리피케이션 마법을 사용했더라면. 어쩌면 운명이 바뀌었 을 지도 모른다…… 사박 사박― 피에 젖은채. 시체 조각이 이리저리 널린 땅을 밟고 걸어가던 그는. 석화된 코카트리스들. 입을 쩍 벌린채 눈을 부릅뜨고 코믹한 모습으로 굳어진 코카트리스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허 공검을 소환해서 그것들의 목을 기어이 잘라버렸다. 너무나도 쉽게 날카로운 두 검은 돌을 잘라내 주었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다시 딱딱하고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유리엘에 게 다가갔다. 유리엘은 조금 두려운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코 물러나지는 않았다. 그래, 어쩌면 여기서 허공검을 회수했더라면, 운명이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 사박 사박― 이 순간…… 바로 이 순간부터…… 냉혹의 사신의 이름이 그에게 붙여진다. '……살의?' 의문 그러나 행동은 빨랐다. 그는 주저없이 허공검을 들어 공기를 뚫고 쏘아져 오는 날카로 운. 찌르기용 검 에페의 검신을 허공검의 검면으로 긁어 후려 쳤고. 짜앙! 하는 소리가 나면 서 에페는 튕겨져 올라갔다. 여기서 멈추었더라면. 정말로…… 냉혹의 사신이라는 이름이 그 에게 붙지 않았을지도…… 그러나. 바인의 감각은 너무나도 빨리 '상대'가 어떤 부류인지 지정했다. 말조차 없이 다짜고 짜 공격했다. 그러나 몬스터는 아니다. 그렇지만 방금의 일격. 날카롭고 예리한 일격은 나에 게 상처를 입힐만 했다. 적어도 마법을 쓰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다가온다면. 상대로써도 이 번 일격은 전력이 아니었다. 하지만 대체 왜 공격했지?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저쪽에서는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상대는…… 적敵……! 에너미Enemy! 날카롭고 예리한 살의가 바인의 전신에서 일어나 주변의 모든 구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기의 권경이 아니다. 그는 마나의 권경과 살의의 권경을 합일하여. 주변의 공간을 자신의 것 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날카롭게 번뜩이는 회백색의 검과 희흑색의 검이 교차하면서 긁혔다. 가가각! 둘다 역수검으로 쥐어진채 예리한 날을 번뜩이고. 설원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이번에는 상당히 빨라서 인간의 동체 시력으로는 따르지 못하지만. 웬만한 속도의 것들은 다 포착해 내던 그의 눈마저도 세 개의 환영을 남기면서 은빛을 번뜩이는 날카로운 검극이 눈에 들어 왔다. 베기용이 아닌 찌르기 용의 날카로운 검이. 세 개의 흐릿하고 빠른. 날카로운 검에는 아주 은근한 금빛이 서려 있었다. 검 자체는 강철 재질이었다. 그러나 실린 그것은…… 기氣! 바인은 그 상황에서도 두뇌를 빠르게 회전시켰 다. 금빛의 검기. 약하게 싣기는 했지만 이번 일격으로 살의는 파악되었다. 그렇다면 상대 는 더 이상 아군으로 전환될수 없는 자. 그리고 자신의 목숨에 위협을 줄만한 자. 소드 익스 퍼트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자. '그렇다면 죽이는 수밖에.' "킥. 윈드 붐Wind Boom!!" 피식 웃으면서 설원은 몸을 회전시켜 검에 허무의 기운을 실어서 금빛 검기로 휩쌓인 검의 환영과 실체 모두를 너무나도 빠르게 튕겨내 버리고는 몸을 회전시켜 마나를 조합하여 자신 의 몸 앞에 그대로 마법을 구현했고. 몸에 돌리던 클래스 매직의 마력을 피부 위에 표출하 여 은은하지만 짙은 회색으로 덮어 공기충격파를 막아냈다. 콰앙! 강한 공기가 밀집되었다가 터져 나가면서 일어난 충격파로 인해 세 존재는 모두 뒤로 튕겨 져 나갔다. 유리엘은 너무 작은 체구에 방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여 뒤로 튕겨져 나가며 나무에 부딪혔고, 그순간 내상을 조금 입은 듯 입가에서 피를 주르륵 흘렸다. 시급히 조치하 지 않으면 죽을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강한 공기 충격파 탓인지 고막이 터져서 귀에서 피 를 쏟아내고 있었고, 코에서도 피가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듯. 자동으로 생겨난 호신강 기로 몸을 감싸 입가에서만 조금 피를 흘리던 '존재'는 살의를 더더욱더 증폭시키며, 이번에 는 금빛의 타오르는 불꽃같은 검기를 찌르기용 검에 매단채…… 춤을 추며 베고 찌르기를 퍼부어 왔다. 전 방위를 막고 찌르는 환검의 극치. 그것을 보면서도 아주 여유있게 바인은 미소 지었다. "웹Web. 바인드Bind. 홀드Hold. 스턴Stun. 섭콘셔스 브로큰Subconscious Broken. 스톤 스킨 Stone Skin. 헤이스트 셀프Haste Self. 스트렝스Strength. 오버 드라이브Over Drive. 슬링 샷Sling Shot. 그리스Grease." 너무나 빨리 정신력을 소모해 머리가 띵하니 아파왔지만 그래도 그는 아주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웹. 거미줄 마법에 의해 휘발성의 끈적끈적한 거미줄은 달려들어 갑자기 터져나와 존재의 검로를 조금이나마 흔들었고. 바인드는 존재의 몸을 묶기 위해 달려들어 기의 소통 에 흔들림을 주었다. 홀드는 몸을 붙잡아 흔들림을 확고한 잠깐의 굳음으로 만들었고. 스턴 마법은 머리에 조금의 전기충격을 주어 사고를 순간적으로 정지시켰다. 그리고 섭콘셔스 브 로큰은 그 사고의 정지 상황에서 무의식속. 가장 두려워 하는…… '오브젝트의 정신적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광경을 보여주어 존재를 절망에 빠트렸으며. 평상시에는 환상이라 무시했을 광경이었지만 순간적인 흥분과 살의로 인한 공격상황. 그리 고 웹과 바인드와 홀드. 연속적인 묶기 마법과 스턴 마법으로 인한 정신공황으로 인해 너무 나도 쉽게 기의 운용은 멈추었다. 그리고 바인의 몸에는 보조마법이 사용되었다. 스톤 스킨으로 인해 8급의 마법사인 그의 힘 으로 그의 피부는 거의 다이아몬드를 능가하는 강도의 반탄력을 흘리게 되었으며 ―물론 이 반탄력을 흘리는 것은 피부가 단단해지는게 아니라 마나가 필요할 때 단단하게 방어벽을 구 축해 주는 것이다.― 헤이스트 셀프로 인해 지독히도 빠른 속도로 움직일수 있게 되었고. 스 트렝스로 인해 완력이 증폭되고. 오버 드라이브로 인해 전신의 신체 기관이 활성화 되어 30 초간 여섯가지의 '감'이 극도로 발휘되게 되었다. 슬링 샷. 그것은 존재의 정신공황 상태에서 일어난 검로의 흐트러 뜨림을 여덟 번의 공기탄 을 압축. 가속해서 쏘아 붙여 여덟 개 방위의 검격을 차단했으며. 이제 흐트러져서 고작, 아 주 힘없는 세 검로는 그의 스톤 스킨에 차단되었고, 그리스 마법은 바닥에 펼쳐져 흐트러진 상태의 존재를 미끄러트려 완전히 쓰러지게 만들었다. 머리가 울리는 상태에서도 바인은 주저없이 존재의 몸에 검을 찔러넣었다. 그러나, 역시 아 무래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은 쉽게 얻은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느정도 회복한 듯. 아 찔하다는 표정으로 물러나는 존재는…… 엘프의 여성이었다. 살의를 피워 올리는 엘프의 여 성은. 고귀한 엘리멘트 엘프의 존재였다. 094. 길다란 녹발. 그리고 연속적 마법 공격에 정신충격을 입은 듯 조금 흐트러진 모습. 식은땀을 매달고 몸매를 경장을 통해 어느정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깊은 녹색 의 눈동자. 신록의 아름다움이라기 보다. 한 여름의 깊은 녹색이 깃든. 아름다운 그린 에메 랄드의 머리카락과 눈. 새하얀 피부는 땀을 머금고 반짝이고 있었다. 날카로운 살의와 적의 가 깃들어 있는 눈. '오해일까. 아무래도 상관 없지. ……적이다. 드래곤도 해츨링을 건드리면 인간의 한 나라가 멸망하듯. 엘프도 비슷한가? 유리엘과 비슷한 파장인데……' 바인은 나지막하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상대를 탐색했다. 의외로 만만찮았다. 너무 근거리. 하지만 허무의 힘을 싣고 검기 정도는 차단할수 있다. 그리고 보조 마법. 순간적으로 매우 빠르게 시전할수 있는 마법이라면…… 파이어 볼 같은 마법은 아무래도 써서는 안될 것이 고. 아이스 애로우는 폭발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충격을 줄수 없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공기 압축 같은…… 마법을 쓰는게 좋겠지. 불꽃에 의해 나무라도 타들어가서 무너져 내리거나 재가 날리게 되면 자신의 공격에 장애가 생길수도 있고. 로브가 타들어가게 되면 또 골치 아프다. 무엇보다 장애물이 여러개 생기게 되고. 열기 때문에 생긴 땀은 시야를 방애 하고, 체력 역시 급격히 앗아갈 것임에 틀림이 없 었다. 차라리 지금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낫다. 코카트리스의 시체라는 장애물들은 여전히 널려 있기는 하지만…… 그거야 피하면 되고…… 그녀의 키는 매우 컸다. 바인과 비슷할 정도로. 그래서 보폭은 비슷하고. 속도는 오히려 저 쪽이 빠르다. 이쪽이 헤이스트 셀프를 걸고 있지만 아무래도 기를 이용하고, 추가로 엘리멘 트 엘프씩이나 되는데다가 마법까지 사용할테니…… 그녀의 입이 가볍게 오물거린다. 순간 마나가 조금씩 움직였고. 바인은 피식 웃었다. 사용할테면 해봐. 짤막하게 읊조리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적어도 5서클…… "슬라이스Slice!" 마나의 재배열. 그리고 물체를 절단하는 힘이 생성되어 뿜어져 바인의 몸을 난자하려 들기 전에, 바인의 인터럽트가 걸렸다. 5급 마법이 구현된 것이다. 같은 급의 마법사가 아니라면 마나 재배열을 해낼수 없도록 방해하는 마법이…… "마나 스트림Mana Stream - 카운터액트Counteract!" 마나가 재배열되어 슬라이스 컷을 그의 몸에 토해내기 직전. 마나 스트림에 의해 마력 재배 열은 그대로 흐트러져 버렸고. 흐르는 마나로 인해 아주 적절하게 마법을 사전봉쇄 당한 그 녀는 이를 부득 갈면서 천천히 에페에 기를 주입했다. 강하게 피어오르는 금빛 서기. 그는 아주 싸늘한 표정이 되어서 허공검에 한가득 허무의 힘을 주입했고, 두자루 검은 회백색과 회흑색으로 타올랐다. '형에게 배운 검술…… 어디까지 먹히나 보자.' 두자루 전부 역수로 쥔채 그는 왼손의 검을 앞으로, 오른손의 검을 뒤로 한 채 마법사의 로 브를 입은 모습과는 달리 아주 빠르고 날카로운 쌍수 역수검의 극동검을 구사할 자세를 갖 추고 있었다. 날카롭고 시린 눈빛 덕분에 절대 마법사의 검세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덕분에 더더욱더 긴장하면서 금빛의 검기를 검에 더욱더 덧씌웠다. '……지금!' 회백색의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금빛의 부채꼴이 그려져 그것을 막아냈다. 카앙! 하는 소리 와 함께 회백색과 금빛의 불꽃이 튀었고, 그 순간 회흑색의 선과 백색의 몸이 회전하면서 원을 그렸다. 그것 마저 막힌 순간 그녀는 순간적으로 무섭도록 증폭하는 바인의 기세에 신 음을 삼켰다. 그의 다리가 강하게, 그러나 아주 조용하게 대지를 디디고 탄력을 얻은 순간. 두자루의 검이 기묘하게 꺾이면서 에페의 얇은 검신에 뒤얽혔다.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몸 의 근육이 잠력을 격발했고. 금빛의 검기는 얽혀 너무나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다. 그리고 바 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섬전무린퇴閃電舞鱗退…… 난광亂光……' 오버 드라이브의 시각이 5초 남은 순간. 무서운 속도로 그의 몸이 움직였다. 단전의 공력을 운용해서 시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기를 수련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의 몸은 마법 적인 힘과 육체의 급속한 증폭 능력에 의해 잔영까지 남기면서 움직였고. 말 그대로 난광. 어지러운 빛무리처럼 얽힌 에페를 꽉 잡아 쥔 두자루의 검을 놓아버리면서 그의 몸은 쏘아 져 올라서 화려하게, 무려 수십번의 강한 퇴법을 그녀의 몸 위로 수놓았다. 새하얀 로브가 검붉게 물든채 요란하게 펄럭인 순간. 강한 격타음이 연이어서 그녀의 몸을 뒤흔들어 놓았다. 여러번의 차기가 쉴새없이 그녀의 몸에 꽂힌 그 찰나의 속도는 헤이스트 셀프 정도로는 도저히 낼수 없는 극쾌의 퇴법이었다. 호신강기가 미처 발휘될 시간조차 없 이 그녀의 몸은 강한 퇴법에 난자당했고, 뼈가 몇군데에서 부러지는 소리가 난 순간. 그는 뒤로 튕겨져 나가며 바닥에 착지했다. "후우…… 후우……" 섬전과도 같은 빠르기로, 춤을 추는 편린과 같은 퇴법을 날린 그는 천천히 일어서 무너져 내리는 그녀의 몸을 바라보다가 오른손과 왼손을 들었고, 아주 부드럽게 두자루의 검은 그 의 손에 쥐어졌다. 그는 아주 빠르게 다가가 주저없이 쌍검을 그녀의 목 중추와 심장을 향 해 꽂아 넣으려 했다. 그러나 뼈가 몇군데 부러진 상황에서도 그녀는 몸을 굴려서 고통어린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나 이미 조각나버린 에페의 손잡이를 들고 신음을 흘렸다. 찡그린 얼굴…… 그것을 보면서 바인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광경인데……' 설마. 하는 생각으로 바인은 천천히 쌍검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주문을 읊었다. 치유 주문이었지만 바인은 그것을 방관했다. 다만 다가가면서 쌍검을 찌를 준비를 했을 뿐 이었다. 너무나도 냉혹한 발걸음…… "힐링Healing." 은은한 빛무리가 일어나 그녀의 몸에 스며들고. 뼈가 맞붙은 것은 금방이었다. 거의 대부분 의 정신적 여력을 힐링 마법에 소모한 듯. 주변의 마나의 움직임은 매우 컸다. 이것으로 바 인은 그녀의 마법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되었다. 5서클 마스터. 6서클 익스퍼트. "……" 둘은 대화조차 없이 검을 겨루었다. 바인은 문득 유리엘 쪽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고통에 젖 은 몸으로도 빠르게 뛰어 유리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정신적인 힘을 대부분 소모했음에도 입술을 짓씹으면서 치유 계열의 마법을 다시 일으켜 유리엘의 몸에 가했고. 유리엘의 출혈 은 점차 멎어갔다. 기분이 나빠져 온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광경……? "……!" 설영…… 과 자신이 지금 하는 역할이 똑같은가? 문득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고 도 는군…… 설영이나 자신이나. 둘다 미쳐 버린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역시 비교 당하 는건 싫었다. 바인은 속으로는 허탈함과 이유없는 파괴 욕구에 광기어린 미소를 지으면서도. 겉으로는 아주 날카롭고 차가운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했다. 그래서 바인은. 그런 자신에게 더욱더 놀라고 있었다. 바인은 아주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주 천천히…… 너무나도 천천히. 문득, 눈앞에 검 은 영상이 스쳐 지나갔다. 빠르게 스쳐 지나간 그것, 아주 잠깐이었다. 바인은 인상을 가볍 게 찡그린채 왜 갑자기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심히 깊은 고민을 해야 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다시, 살기를 피워 올리면서…… 잔혹하게도 너무나 늦은 걸음으로 그 녀에게 다가갔다. "윈드 블레이드Wind Blade!" "디스펠Dispell!" 마나가 재배열 되면서, 빠르게 바람의 칼날을 형성해 바인의 몸으로 짓쳐 들어왔다. 무색 투 명한 공기의 검날은 너무나도 빠르게, 마나 재배열의 배치를 느낀 즉시 발휘된 그의 짤막한 디스펠에 너무나 빨리 흩어졌다. 압도적인 마법 실력이 있지 않는 한, 디스펠로 공격마법을 해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 스펠의 마나재배열을 알고 그것을 퍼즐 흩어놓듯 다시 본래 의 마나의 안정된 구성으로 돌려놓도록 인터럽트를 걸고 마나 스트림을 역류시키는 것. 그 것이 디스펠의 원리인데. 빠르게 날아오는 공기의 검날을 흩으려면 적어도 두단계 이상의 서클 차이가 있어야만 가능한 경우였다. 바인이 너무나도 쉽게 바람의 칼날을 무효화 시켜버리자 그녀는 입술을 깨물면서 조용히 스 펠을 읊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조용히 울려나오는 목소리, 그러나 바인은 아주 여유있게 그 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먹잇감을 빨리 잡아 죽이는건 아무래도 '의무'가 아니겠지. 하고 중얼거리면서, 너무나도 여유있게 그녀의 공격을 기다렸다. 그녀는 눈을 반짝 빛내면서 외쳤 다. 스펠이 완성된 것이다. "아즈라엘의 검Azrael of Sword!" 6서클 마법…… 바인은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걸었다. 6서클 중반부에 속하는 마법. 아즈라 엘의 검은 영육을 분리시키는 마법…… 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영체가 아니라 유체를 인간 의 몸에서 분리시켜 내는 마법이다. 마나 스트림의 특이 법칙을 이용해서 난이도는 어렵지 만 보다 더 강한 위력을 발하게 만들어진 스펠인 것이다. 물론 유체를 몸에서 잘라낸다고 해도 죽지는 않는다. 6서클 이상 정도의 마법사라면 유체 상태에서도 대략 10초 정도면 다 시 몸으로 귀환할수 있다. 그러나 그 10초면 목 날아가기에 딱 좋은 시간인 것이다. "훗. 고작 그건가. 씰 스펠Seal Spell!" 그녀의 손동작에 따라 강한 마나의 폭풍이 일어나면서 구성된, 반투명한 흑색의 부정형질로 이루어진 듯한, 길이는 웬만한 투핸디드 소드를 능가하는 크기의 검이 뻗어나가 마나를 찢 으며 그의 유체와 육신을 잇는 끈을 잘라내려 한 순간, 검은 소리없이 움직이다. 역시 소리 없이 굳어버렸다. 씰 스펠. 순간적으로 스펠을 동결하는 힘이다. 그러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아주 잠깐의 틈만을 만드는 마법인 것이다. "에테르 월Ether Wall!" 그의 시동어는 다시 터졌다. 아즈라엘의 검과 같은 6서클의 마법. 에테르. 영기의 벽을 형성 하는 스펠이다. 투명한 영기의 막이 생겨나고, 씰 스펠이 깨어져 나감과 동시에 역시 일종의 영기검이 영기의 벽에 충돌했고, 투웅! 하는 소리가 나면서 마나의 물결이 울렁이며 퍼져나 갔다. 마나가 뒤흔들린 것이다. 그 마나의 뒤흔들림에서 바인이나 그녀 역시 둘 다 멀미를 면치 못했고, 순간적으로 정신적인 균형 감각이 흔들리고. 실제 반고리관이 흔들림으로써 몸 을 비틀거렸다. 그러나 바인은 역시 괜히 개조된 인간이 아니었다. 금방 균형감각과 정신적인 흔들림을 부여 잡은 그는 쌍검 둘에 마나홀의 마나를 뽑아내어 불어 넣었고, 순간 아주 강렬한 회백색 기운과 회흑색 기운이 쌍검에 맺혀 일렁이기 시작했 다. 그것에서 풍겨나오는 강한 파괴와 붕괴. 그리고 허무와 소멸의 힘을 느낀 엘리멘트 엘프 의 여성은 이를 따닥따닥 부딪히기 시작했다. 엘프인 그녀로써는 사멸의 힘과 맞서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양면성을 '가지고는 있어서' 창생과 파괴를 모두 사용 할수 있고 포용할수 있는 설원에게는 아주 친숙한 힘일 뿐이었다. 그는 영문을 몰라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힘을 먼저 쓸 것을 그랬나…… 이 힘과는 파장이 맞지 않는 듯 하군…… 교란 정도는 할수 있었을 텐데……' "빛과 어둠의 조화로써 태어나 존재를 감싸 포용하는 바람의 수호자여…… 바람의 정령수精 靈數 셀레이드 소환!" 나지막한 목소리. 그것을 들으면서 바인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이를 갈면서 아주 빠르게 검 을 휘두르려 했다. 그러나 난데없이 녹빛의 자연적 마나를 머금어 은근한 연녹색을 띈 특이 한 기운이 마치 '바람'처럼 회오리 치면서 그의 검을 감싸 빗나가게 했다. 그는 이를 부득 갈면서 마나홀의 마나를 더욱더 많은 양을 뽑아내 검에 불어 넣었고, 일렁이는 붕괴와 파멸 의 힘은, 생명의 바람을 흩어버리면서 강하게 타올랐다. 회색빛의 불꽃…… 그것이 일렁이면 서 강하게 숲의 생명력을 억누르자 주변의 나무들은 가지에 붙은 나뭇잎과 가지의 연결점인 떨켜를 그대로 떨구어 버리면서 나뭇잎을 우수수 떨구었고, 싸늘한 죽음의 냄새가 숲을 휘 감아 돌기 시작했다. 우수수 쏟아지는 나뭇잎들은 이미 선명한 푸르름을 잃어버리고 죽음의 회갈색을 머금은채 바삭거리며 부서지고 있었다. 주변을 잠식하는 사멸의 힘. 그것이 바인의 힘이기에, 너무나도 빨리 나무들은 말라 죽어가며 사멸하고 있었다. 주변의 마나 역시 점점 생령력이 아닌 사멸력을 머금고 강하게 타올랐다. 그 탓에 소환된 존재는 주변의 생명력의 힘을 이용할수 없게 되었고, 상당히 위축된채 공포 라는 감정을 느끼며 바인을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정령수. 여러 등급으로 나뉜 정령들 중에 서 정령수라면 정령왕 바로 아래인 정령인精靈人들 보다 고작 한단계 낮은 존재일 뿐이다. 그정도 존재라면 적어도 6서클급 마법 정도는 막아내거나 그정도 위력의 바람은 일으킬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그러나 그런 존재가 생령력을 다루는 힘을 차단된채 공포를 느끼게 된 것이다. 존재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갈기는 사자의 그것 같지만, 아주 길고 부드럽게 살랑이는 은녹색이었고, 그 털은 전체적으 로 푸르거나 녹색의 빛을 띈, 반투명과 선명의 사이 정도의 빛을 몸에 휘감아 제대로 보이 지 않는, 흐릿한 모습의 존재였다. 정령수 정도면 손에 잡힐 듯 선명한 것이 당연했으나, 지 금의 셀레이드는 생령력을 차단당했기에 중급정령 이상의 힘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아예 주변의 마나 자체가 사멸의 힘으로 다시 재조합되기 시작했으니……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 도 괴롭기 짝이 없을 것이다. 정령과 반대되는 힘을 지닌 존재, 그것이 바인이다. 그가 지닌 사멸의 힘은 창생의 바다에서 태어나 드래곤이 세상 자체를 지탱하고 균형을 바라보고 관조 하는 거대한 기둥이라면, 적어도 이들은 세세한 균형과 그 균형 자체의 어긋남을 맞추어 균 형을 완성해 나가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아버지가 정령왕이고, 그 정령왕들의 어머니가 바로 정령신이다. 정령신이라고는 해도 혜신경급 존재가 정령들의 존재를 관리하 는 것 뿐이지만…… 창생의 힘을 다루는 그들. 아무리 창생과 사멸이 번갈아가며 조화를 이루고, 창생이 없으면 사멸이 없고, 사멸이 없으면 창생은 이미 창생이 아니라 필멸의 벽마저 통과한 진생眞生의 세상이겠지만, 그런 관계라지만 사멸이 등장하면 창생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죽음과 파멸 이라는 것은 필멸을 통과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절대에 가까운 법이고, 언제나 곁에서 생을 위협하고 있으니까. 그런만큼 이 세世에서는 사멸의 힘이 창생을 누른다고 밖에 볼수 없었 다. 물론 사멸이라고 해도 창생을 없애면 자신이 사라지니 압도라고는 할수 없지만, 사멸 자 체가 어쨌든 조금 더 강한 힘을 발한다는 것은 어쩔수 없다. 그런 만큼, 강한 힘을 발휘할수 있는 셀레이드라도 지금의 바인에게는 고양이 앞의 쥐, 아 니. 좀더 발전시켜서 대호大虎나 백호白虎 앞의 설서雪鼠일 뿐이었다. 생령력을 써서 힘을 증폭시킬수 없는 셀레이드 따위는, 사멸의 힘으로 법칙을 수행중인 마나에 휩쌓여 버린 셀 레이드 따위는 어쩌면 중급 정령보다 더 쓸모가 없는 존재였다. 그것을 보면서 엘리멘트 엘 프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주변의 서늘하면서도 천천히 다가오는 사멸의 힘과 파멸의 마 나…… 그것도 그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고, 적이었다. 정신이 붕괴되려 하는 것을 막으면서 버티는 수 외에는 별 다른 힘을 쓸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반 정령체나 다름없는 엘프. 그리 고 엘리멘트 엘프라 더 감응력이 강한 그녀에게는 이 주변의 사멸의 힘은 아무리 자연의 법 칙중 하나라 하더라도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생명체이기에. 아예 이 주변의 마나 자체가 바인의 힘에 제압된 상황이고, 지금 변화된 이 사멸의 힘은 바인의 수하나 다름 없 었다. 그녀는 지금 바인의 정신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095. 휘오오오오―! 강한 바람에 포효를 내 실으면서 실레이드는 도약했다. 마침내 참지 못하고 전신에 푸르른 기운을 머금은 바람을 휘감고 날카로운 바람의 창을 뿜어내며 돌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일 격은 바인에 의해 터무니 없이 간단하게 막혀버렸다. 웬만한 마법사들도 평소라면 긴장하거 나 공포를 느꼈을 진공검의 회오리는 바인의 방어벽에 가볍게 막힌 것이다. 그가 허공검을 휘둘러 공중에 탁한 회색의 검막劍幕을 형성하자 비껴나가 뒤의 죽어버린 나무들만 베거나 부수고는 흐트러져 버렸다. 바인의 입가에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흘렀고, 그의 몸을 휘감고 탁한 회색의 기류가 뿜어져 나와 그의 로브를 휘감고, 그의 모습을 뒤흔들었다. 순간 공간이 울렁인다고 생각하고, 그의 신형이 거칠게 흐려진 순간. 이미 회흑색의 선과 회백색의 선은 공간을 깔끔하게 찌르고 있었다. 그의 신형이 흐려지고, 이미 그 자취를 감춘 순간. 자신의 발걸음으로 열걸음 정도 떨어진 곳의 실레이드의 등 뒤로 그의 몸은 바로 나타나고 있었고, 쌔애액 하는 소리와 함께 사멸 풍이 그리 강하지 않은 생령풍을 중화시켜 버리면서 검은 이미 무언가를 베어버리고 있었 다. 바인은 뇌에 약한 자기磁氣를 흘려보내 순간적으로 인체의 능력 제어를 마비시킨다음 그 한계를 넘어 극한의 힘을 쓴 것이다. 원래 그의 몸과 힘 자체가 극한 속도로 움직일수 있을 만큼 강한 것이었지만, 그는 자기를 흘려보내 그 제어마저 마비시키고 극상까지 힘을 끌어올려 검을 긋고 지나간 것이다. 그 속도는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라 할지라도 감히 볼 수 없을만큼 빠르고 강렬하여, 공기의 장벽마저 뚫어버렸다고 생각될 만큼이었다. 설원은 아 주 부드럽게 검을 미끄러뜨렸고, 그 순간…… 푸화화화화확!! 회백색과 회흑색의 선은 깔끔하게 실레이드의 풍령기로 이루어진 몸을 절단하고 있었다. 쩌 억 하고 벌어져서 자연의 생기를 녹빛의 기운으로 형상화시켜 환상처럼 흩날리는 실레이드 의 몸. 영체라도 허무와 파멸의 힘에 베였으니 고통이 없을리 없었다. 다만 고통으로 끝나지 않을 정도의 타격이었기에, 사멸풍까지 휘감고 베어버린 검의 힘은 실레이드의 존재를 천천 히 분해시키고 있었다. 그 탓에 실레이드는 더더욱더 거대한 고통과 공포를 느끼면서 무너 져 가고 있었다. 휘오오오오오―! 흐릿한 바람이 뒤흔들리며 특이한 포효소리를 만들어냈다. 바인의 입에 스르르 하고 미소가 그려진 순간, 그의 로브의 후드가 싹 하고 끊어졌다. 그리고 그의 외모가 그대로 드러났다. 사르륵 하고 떨어져 내린 후드의 조각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진공검은 그래도 그의 후드 정도는 자를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 개를 더 잘랐다. 바인의 볼에는 아주 얇은 상 처가 나 있었고, 그곳에서 슬금슬금, 진홍빛의 선혈이 기어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볼을 매만 져 보고는 싸늘하게 웃었다. 오랜만의 통증이군. 하고 중얼거리면서 바인은 날카로운 눈빛을 흩어져 가는 실레이드에게 향했다. 바인은 아름다웠다. 어깨선을 조금 넘은 머리카락은 은근한 남빛을 머금고 타오르는 진한 순흑색. 그리고 눈동자 역시 지독히도 짙은 순흑색의 그것이었다. 피부는 유백색으로. 탈색 된 것처럼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날카로운 살기를 머금은 순흑색의 눈은 블랙 다이아몬드처 럼 타오르고 있었다. 창백한 분홍빛의 입술은 아주 가볍게 벌어져 새하얀 이의 일부를 드러 내고 있었으며, 아름답게 보이는. 차분하지만 위험한 향기를 풍기는 학자 같은 유약한 외모 가 드러나자 그의 외모가 머금고 있는 알수 없는 신성神聖의 힘에 엘리멘트 엘프의 여성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저런 사악한 기류를 흘리고 있는 위험한 자가 신성이 깃든 분 위기를 함께 뿜어내고 있는걸까…… 바인은 늘어뜨렸던 쌍검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느긋한 동작으로. 마치 마법의 수인 처럼 양손을 들어올려 가슴 앞에서 화려한 모양으로 흩뿌렸고, 그 순간 그의 몸에서 일렁이 며 퍼져나오는 허무의 힘은 강대하게 피어올라 검으로 스며들어갔고. 검에서는 이제 지독히 도 강렬한 사멸의 힘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너울거리며 타오르는 사멸의 불꽃…… 그것이 검날에 맺혀 타오르자 그는 검 두자루를 뽑아올리기 전. 허무의 힘을 마나와 섞어서 방출해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인첸트Enchant…… 에너지Enegy……" 기이이이이잉―! 마법에 허무의 힘이 섞여 인첸트 마법과 비슷한 효과를 지닌 힘에 의해 허공검에 각인되었 다. 마나라는 재료를 이용해 타오르기 시작한 사멸의 불꽃은 아까보다 배는 거칠었다. 지독 히도 강하게 타오르는 허무의 불꽃. 그는 회흑색과 회백색으로 불타오르는 쌍검을 바닥에서 뽑아들었다. 쌍검이 박혀있던 바닥은 그나마 남겨두고 있던 생령력을 잃어버린채 시커멓게 썩어들어 죽어버리고 있었다. "루 인 버 스 트Ruin Burst…… 회색灰色의 발무發霧……" 주변의 사멸력이 검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은근한 힘이 실린 목소리에 사멸력 을 안개의 형태로 바꾸기 시작했다. 마치 수증기처럼 끈끈하게 휘감기는 사멸의 안개는 실 레이드의 몸에서 그나마 아직 일어나고 있는 생명의 힘을 휘감아 녹여버렸고, 중화된 생명 력은 사멸력에 다시 뒤덮이면서 강한 죽음의 향기로 주변을 뒤덮었다. 그 숨막히는 분위기 에서 바인은 의외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느다랗고 새하얀, 너무나도 부 드럽게 보이는 손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나도 생명일텐데…… 특이하군…… 리치도 아니건만……" 그는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게 중요한가. 지금 내가 할 일이 더 중요하다. 싸늘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다시 맴돌았다. 회색으로 뿜어진 안개는 사멸의 힘으로 이제 주 변을 완전히 초토화 시키기 시작했고. 초토에서 완전히 썩어 죽어버린 흙이 되어버린 주변 의 땅은 진한 죽음의 냄새로 엘리멘트 엘프에게 진한 고통을 선사하고 있었다. 영혼의 비명 이라는 것은 들을것이 되지 못한다. 뽑아올린 두자루의 검은 주변의 안개를 빨아들였다. 이 제 거의 짙은 죽음의 흑색으로 보일 정도로 타오르는 검. 그는 외쳤다. "파멸섬破滅閃!" 무서운 회색의 섬광이 일어나 실레이드의 존재를 베고 지나갔다. 단 일격이었다. 그 찰나에 실레이드의 존재는 이 세상에서 완연히 소멸되어 버렸고, 남겨진 생령의 파편마저도 사멸력 에 중화되어 먹혀버렸다. 바인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주변에서 흐트러지고 있는 사멸을 호흡했다. 그리고 천천히, 빠져나간 힘을 빨아들여 다시 체내에 채워 넣었다. 사멸의 힘. 역 시 보통 힘은 아닐거라 생각했지만, 실상 이런 힘이라니. 만약 자신이 이런 힘을 인간에게 발휘한다면, 보통 인간이라면 아마 순식간에 죽어버릴 것이다. 존재를 죽음이라는 절대로 몰 아가는 힘. 사멸의 힘…… '나는 죽지 않는군. ……별로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그는 한숨을 길게 내어쉬면서 고통에 헐떡이는 엘리멘트 엘프에게 다가갔다. 아주 천천히, 너무나도 천천히 말이다. 아까처럼 마치 말려 죽여 버릴 것처럼 숨막히는 살기를 토해내며 걸어가고 있었다. 단 한순간에 뛰어들어 목을 베어줄수도 있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바인이었다. 적이니까. 그만큼의 대우를 받아야 하겠지. 바인은 나지막하게 중얼거 리면서 아주 부드럽고 매끄러운 궤도로 허공의 쌍검을 그어보였다. 사멸력은 많이 가셔진 상태였다. 그래서 괴로워 하던 유리엘과 엘리멘트 엘프는 호흡에 별로 지장이 없어 보였다. 사멸력 대부분을 빨아들이고 허공검의 힘마저 지금은 가다듬어 놓은 상태였기에, 주변에 숨 막힐 정도의 절대를 퍼트리고 있지는 않았다. 유리엘의 볼에 손을 얹으면서, 그녀의 어머니는 길다란 한숨을 토해냈다. 체념일까. 하지만 눈빛은 강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바인은 생각했다. 아직은 반항하려는 모양 이다. 역시 귀찮은 존재야…… 엘프는…… 다시 그의 몸에서 휘몰아쳐 나오기 시작한 사멸의 힘은 주변을 완전히 휘어잡았다. 아까처 럼 공간을 휘어잡아 마나를 사멸의 힘으로 지배해 버리고, 그는 예상한 바가 있어 그녀가 공격하건 말건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걸어왔다. "콜 라이트닝Call Lightning! - 에스트 볼트Est Bolt!" 유리엘을 바라보던 그녀는 곧 이를 꽉 깨물고 날카로운 살기를 뿜어내며 주문을 읊어 정신 집중을 통해 주변의 마나를 집약해서 재배치 하려 노력하여 마침내 재배치를 끝내고 시동어 를 외쳤다. ……그러나, 그녀의 외침은 허무하게 공중을 가를 뿐, 법칙을 일탈시키는 데에 기폭제조차 되지 못했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다시 콜 라이트닝의 시동어를 외워 보았으나 전혀 마법 은 사용되지 않았다. 바인은 섬뜩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면서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안티 매직 셸Anti Magic Shell - 필드Field나 쉘터Shelter보다 낫군. 후. 내 힘에 이런 효과 가 있을줄은 몰랐는걸…… 사령기死靈氣와 사멸력死滅力…… 두 힘과 동화된 마나 플레이트 Mana Plate는 타인의 마법을 발동시키지 않는군. 아니, 내가 8서클인 탓인가?' 그는 아무래도 좋다. 하고 중얼거리고는 아주 천천히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인, 촉매, 주문을 무시하고 마스터 스펠을 쓰거나 주문 정도만을 사용해 마나력을 격발해서 마 법을 써 왔던것과는 달리, 그는 수인과 주문을 함께 이용하고 있었다. 수인이 복잡하고 화려 하게 마나를 인도하고, 몇번의 화려한 동작을 거치며, 음울하고 조용한 목소리가 마나를 붙 잡아 재배열을 인도한 순간. 그는 싸늘하게 웃으면서 시동어를 나지막하게 외쳤다. "아더월드Otherworld 셋팅Seting. 이미테이션 셋업Imitation Setup! 에스트 디스퍼시브 브레 인 데이터 베이스Est Dispersive Brain Data Base! 8서클 마스터의 힘이 어떤것인지 알려주 도록 하지. 8서클 정신계 마법. 절망Dispire[絶望]!" '최고위 정신마법…… 버텨내려면 버텨 내보라고…… 아무리 진실의 눈을 지닌 엘프라도, 절 대적으로 빠져나갈수 없다. 이것은 나와 미뉴엘의 합작. 뇌 자체에 전기자극과 마법적 자극 을 주는 것……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많이 무너진 상황에다가 아까 나의 섭콘셔 스 브로큰에 맞은 이상, 조금이라도 틈이 생겼을 터. 절대적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 다. 아, 유리엘도 맛보는게 좋겠지. 쓸데없이 끼어들어서 깨어나게 만들면 오히려 나에게 타 격이 오니까…… 가능성은 조금이라도 없애는게 좋아.' 정이라는 감정이 없는 사내…… 냉혹의 사신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어쩌면 이처럼 자신의 목적을 생각했을 때 그 외에는 어떤 이가 피해를 보게 되던, 아니면 그 피해를 본 이가 자 신을 원망하며 죽어가도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무책임과 무감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인간이 아니라서…… 이렇게 만들어져서 무감정하게 넘어갈수 있었는지도 모 를 일이었다. 약점이 없는 대륙 최악의 악마.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도 결코 그의 행로 때문 만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정확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우우우우우웅! 마나 스트림이 일어나면서 유리엘의 어머니와 유리엘. 두 정신에 유지하는 부분이 더 커서 이 마법에는 더없이 약할 수밖에 없는 두 존재. 인간은 아니지만 그래서 인간세人間世를 떠 돌며 인간의 영향을 더더욱더 많이 받아 인간들보다 더욱더 격렬한 충격을 받아야만 하는 두 존재에게 이 마법은 정말 잔혹한 것이었다. 하지만 바인은 너무나도 무표정하게 두 존재 들의 반응을 살피기 시작했다. 마력의 힘에 저항하려 들었으나, 그녀는 허무하게 바인의 정신력에 먹혀 들어가면서 그가 조종한 마나 스트림에 빨려들어가 뇌에 일정하게 가해지는 전기자극과 마법적 자극에 의해 정말 환상속에서 실감있게 떠돌기 시작했다. 영혼이 영력으로 이루어진 환상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것이나 다를바 없는 술법이었다. 오히려 기문진氣門陳보다도 더욱더 잔인한 술법. 감 정을 극한까지 이용하는 어떤 기문진이라도 그가 사용한 정신계 마법. 절망을 피해나갈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보다 더 강한 정신력을 지녔거나, 그가 보여주는 어떤 환영속에서도 멀쩡 할 정신을 지닐수 있을 만큼 정신무장이 되었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자신이 있는 존재 정도일 것이다. "절망의 나락에서……" 바인은 싸늘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가, 그것 마저도 금방 흩어버리면서 조용히 그가 읊은 말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허우적 거려 보라고…… 큭큭큭……" 나지막한 광소가 깃들여진 말…… 그래서 그것은 더더욱더 섬뜩하게 주변의 기온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온갖 마이너스적 감정의 바다는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거야…… 후후후……" 나지막하게 울려퍼진 마지막 말 역시 섬뜩하기 그지없는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 그 말이 떨어진지 몇분도 되지 않아 두 존재의 입에서 비명이 울려퍼져 숲을 울려댔다. 그 러나 어떤 몬스터도 다가오지 못했다. 죽어버린 나무들에서 풍겨나오는 귀기鬼氣와 사기邪 氣…… 그것은 다가온 몬스터들에게 공포를 선사했으며. 사멸의 힘을 머금은 마나는 기氣 마저도 침범하여 오염시켜 다가오는 존재들에게 공포 외에 육체적 기능의 저하를 가져다 주 고 있었다. 그러나 그 파멸의 힘으로 오염된 마나의 바다 한가운데서, 바인은 자신의 세포가 극도로 활성화 됨을 느끼면서 아주 느긋한 미소를 띄워 올렸다. 그러나 만약, 어떤 이가 본 다면 그 미소에서 섬뜩함보다는 공포와 절망의 힘부터 느끼게 될 만큼. 그 미소는 죽음의 기운을 담고 있었다. -그가 창안한 절망. 이 마법의 별명은 두 개이다. 하나는 그와 대적했다가 정신이 완전 붕 괴된 상태에서 간신히 정신을 추스렸으나 마법을 잃어버린 마법사들이 진저리를 치면서 지 은 별명이다. 바로 브레인 스크래치Brain Scratch…… 그리고 그 마법이 어떤 원리로 이루 어진지 알게 된, 그와 대적해 살아남은 이들이 지은 별명이었다. 그 이름은…… -'절망絶望을 수확收穫하는 낫'…… 096. 절망絶望이라는 시동어始動語를 들은 즉시 그녀는 정신을 집중해 정신공격에 대항하려 했으 나, 놀랍게도 정신공격에 대항하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어둠속에 서 있었다. 어둠이라…… 고도의 환상마법과 정신마법을 섞은 것일까? 그녀는 이를 꽉 앙다물면서 점점 엄습해 오는 서늘한 감각을 정말 사력을 다해 억눌렀다. 정말, 어울리지 않게 엘리멘트 엘프Element Elf 가, 공포라는 감정을 포용할줄 아는 존재가 공포를 느끼고 몸을 긴장으로 떨 정도로 험악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정말 오기로 그 공포라는 감정을 눌러버렸다. 이런 극한 상황을 연속적으로 맞아 정신무장이 흐트러지지 않은 상황이었더라면 아마도 그 녀는 공포를 느끼고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까 연속적인 공격기와 오랜 전투로 인 해 극도로 지쳐버린데다가 섭콘셔스 브로큰Subconscious Broken이라는 마법에 걸려서 잠깐 동안 정신붕괴를 일으키고. 마법까지 연속적으로 사용해 정신적으로 피로한 상황이어서 그 녀는 정말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고,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동방의 살진이라고 불리는 기문진 종류를 능가하는 절망이라는 이름의 마법, 물론 알려진 마법은 아니었지만 후에 절망을 수확하는 낫이라 불릴 정도의 마법이니, 그녀라 할지라도 정말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다. 매직 레지스탕스. 그러니까 마법저항魔法抵抗조차 할수 없이 완벽하게 바인의 지배상황하에 든 상황인 것이다. 거기다가 이미테이션 셋업이라는 말이 들 어갔다는 것. 그녀는 그 이미테이션 셋업이라는 말에서 이미 자신이 어떤 상황에 들어섰는 지 어느정도 유추할수 있었다. 가상 현실이라는 말이 옳겠지. 아마 자신은 이 어둠의 공간에 서 현실적인 무언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일단 눈치는 챘으니 좀 덜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눈앞에 희끄무레하게 떠오른 무언가를 보고는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무엇일까. 무 엇인데 이렇게 자신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을까? 이미 주변의 풍경은 어둠에서 아까와 같은 숲속이었다.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까 그 자였다. 그럼 마법이 풀린 것일까? 아니면 자신은 아직도 마법에 걸린 것일까? "……엘프라서 통하지 않는건가?" 혼란이 그녀를 덮었다. 지금 저자의 목소리와 분위기는 아까 그대로였고, 여전히 주변의 마 나는 사령력을 그대로 머금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어느새 옆에는 유리엘이 아까와 같 은 상황으로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기절해 있었다. 정말 풀린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정말 풀린 상황이라면 아마 자신은 공격 기회를 이미 몇번이나 놓치고도 남은 것이다. 그러나 만 약 풀리지 않은 것이라면 저자는 이런 혼란을 자신에게 주고, 이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주문 명 그대로 절망을 느끼게 할 것이다. "아직도 절망에서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건가…… 그럼 받아보도록.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 체이닝Chaning." 그녀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열기가 전해져 오고 있었다. 틀림없이 주변의 마나가 재조합되 면서 법칙을 일탈시키고, 그 존재는 검을 든채 피에 전 모습으로 악귀처럼, 여전히 톤 없는 목소리로 마법을 실현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면서 어느정도 나아진 몸을 돌려 검에 기를 강하게 싣고 휘둘렀다. 그의 몸 주변에서 피어오른 화염은 이미 팔뚝만한 화염의 화살. 핏빛으로 일렁이는 화염의 화살 64개를 형성시켜 무서운 속도로 쏘아냈고, 그녀의 검이 일 으킨 검풍은 빠르게 일어나 소용돌이처럼 화염시중 절반을 막아냈다. 빠르고 작은 연쇄폭발 이 일어나고, 요란하게 흙먼지가 일어나자 그녀는 흙먼지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30여개의 화염시를 향해 짤막한 주문영창을 끝내고 시동어를 외쳤다. 그 전에 몸에서 생령력을 뿜어내 사령력과 부딪혀 순수한 마나의 구역을 만들어 내고나서 말이다. 사령력에 의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그녀였기에 부러 엘프의 힘을 이용해 사 령의 마나를 정화하고 그 일부를 움직여 법칙을 일탈시킨 것이다. "월 오브 아이스Wall of Ice!" 드드드드득! 공기중의 수증기가 급격히 결합하면서 바닥에서부터 얼음, 새하얀 냉기를 일렁이며 솟구쳐 오른 불투명하고 두터운 얼음의 장벽이 형성되었다. 콰쾅쾅! 짤막한 폭굉이 일어나면서 얼 음벽은 절반정도 깨어져나가 볼품없이 뒤흔들렸고, 그녀는 검에 거의 남지 않은 모든 기력 을 실어 휘둘렀다. 그리고 검극에서 피잉! 하는 소리가 나면서 금빛의 신월이 토해져 나가 얼음벽을 소리없이 절단하고 바인이 있을 자리로 쏘아져 나갔다. 서걱! 하는 소리가 나고, 그녀는 성공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정도의 마법사라면 아마도 피 했을 것이고, 아마 자신의 검기는 나무를 쪼개었을 것이다. 진득한 침묵이 흐르고, 흙먼지가 가라앉는 그 순간, 그녀는 놀라움으로 눈을 떴다. 피? 흙먼 지는 선홍빛의 피 위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본 것은…… 두조각 나버린 바인의 사체였다. 바닥에 쓰러진채 흙과 피로 뒤범벅 되어 있는 사체…… 이럴 리가? 그러나 코끝 을 스치는 비릿한 혈향도. 검기의 다음 일격이 스치고 지나간 나무들이 쓰러져 내리며 요란 한 소리를 내는 것도. 가라앉지 않은 흙먼지가 공기중을 노니는 것도…… 전부 다 현실로써 그녀의 몸 주변에 자리했다. 사령력은 천천히 사라져 가고. 생령을 머금은 마나가 그녀의 몸 을 휘감는 것도 진실이고. 숲의 정들은 사령력이 물러가자 그녀에게 속삭임을 던지고 있었 다. 이것도 모두 현실인데……? 그렇다면…… 정말로……? 그녀는 유리엘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검을 집어 던져 버리고 유리엘의 몸을 끌어안은채, 그녀는 공포와 흥분으로 달아오른 몸을 식혔다. 유리엘의 볼을 쓰다듬던 그녀는 드디어 살 았구나, 하는 안도로 쓰러져 있는 유리엘의 몸을 끌어안은채 조금의 기쁨을 느꼈다. 푸욱! "……?!" 눈앞이 거칠게 일렁이고. 심장 깊은곳이 화끈하다. 정말 뜨겁고 딱딱한 무언가가 가슴속을 파고들어온 것이다. 그녀는 불신의 표정이 되어 파육음이 흘러나온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 보았다. 정확히 갈비뼈의 틈 사이로, 예리한 은백색의 단검 한자루가 피를 머금으며, 울컥 울컥 흘러나오는 피를 머금고 천천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자신의 몸에는 볼썽사나운 구 멍이 하나 나 있었다. 생명의 액체를 전신으로 순환시키던 일을 행하던 중요한 기관은 날카 로운 침입자에 의해 그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였고. 꾸역꾸역 피를 뱉어내고 있었다. 불신을 가득 실은 눈.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자신의 친 혈육…… 유리엘. 그 아름다운 소녀의 손에 단단히 쥐어져 있는 날카로운 단검을. 그리고 유리엘의 순진한 눈빛 대신에. 서늘하고 독랄한 기운만이 흐르는 날카로운 눈이 자 신의 몸을 직시하고 있음을. 그녀는 입을 벌렸고, 이제는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전신을 관통하고 있는 화끈한 통증에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폐는 공 기를 불어 넣었고, 경련하는 몸은 성대를 통해 그 억울함을 알렸다. "컥…… 왜……" "절망을 맛봤어?" 예쁘장한 소녀의 입술은 독기와 살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소녀의 입술은 비웃음으로 말 려 올라가 있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알수 있었다. 이것인가? 절망이라는 이름의 마법은 이런 것이었나? 그녀는 유리엘의 날카로운 미소와,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검. 그리고 자신의 몸에 난 구멍을 볼 때 정말 끔찍한 나락을 맛보았다. 그녀는 눈을 감았고, 순간 주변의 공간이 산 산히 깨어져 나가는 광경을 보았다. 다시 그녀는 자신이 몸을 주춤거리면서 휘청거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다시 공간은 아 까와 같은 상황이었다. 바인은 차가운 눈빛. 정말 인간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자신 을 직시하고 있었고, 유리엘은 자신의 옆에 존재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절망의 마법이 끝난건가? "절망을 맛봤나?" 바인의 질문……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딱딱하고 무감정한 목소리에 그녀는 입술을 꽈악 깨 물면서 검을 들어올렸다. 내팽개쳤다 생각한 검은 아직도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남은 기력을 다시 검에 불어넣었고, 빠른 속도로 달려들며 빠르고 강한 찌르기를 행했다. 그러나 바인은 이미 그녀의 앞에 존재치 않았다. 허공을 찌른 에페. 그녀는 즉시 보를 찍어 밟으며 몸을 강하게 회전시켜 옆으로 그었고, 카각! 하는 소리가 났다는 것을 느꼈다. 놀랍게도 금 빛의 서기가 실린 검을 바인은 허공검으로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얇게 좁혀 그를 노려보면서 다시 검을 강하게 찔렀고, 바인은 검을 얽어 받아냈다. 놀랍게도 어떤 기운 도 실리지 않은 검이 금빛의 검기가 실린 일격을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 검은…… 뭐지……?' 바인의 입꼬리는 문득 비웃음으로 긁어 올려졌다. 그리고 강렬한 통증이 그녀의 복부를 자 극했다. 바인이 걷어 차버린 것이다. 이 마법사는 정말 경악스러웠다. 8서클 정도의 마법사 로 보이는데 어떻게 이렇게 강한 공격을, 완력도 약한 마법사가 차기로 그녀의 복부에 심어 넣을수 있는 것인가? 정말 내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맛보면서 물러났지만, 물러나며 그 녀는 아예 검을 놓아버렸다. 그리고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 검기를 실어 강하게 바인의 어깨 에 찌르기를 행했다. 그러나 바인의 검은 두자루였다. 얽힌 검을 그대로 풀어 던져버리며 아 래로 누르자 에페의 끄트머리가 눌리고, 반대로 손잡이 부분이 솟구쳐 오르면서 단검의 끄 트머리를 때린 것이다. 물론 검기에 보호되고는 있었지만 단검의 옆면을 쳐 올린것이나 다 름 없었기에 그녀는 당황해버렸고, 검끝은 흐트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이미 다시한번 강렬 한 차기는 그녀의 복부에 작열했다. 퍽!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녀는 입에서 피를 주르 륵 흘리면서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그녀는 신음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마법사와의 접근전이 불리하다니! 이런 상상을 초월하 는 괴물이 정말 인간이란 말인가? "파이어 볼Fire Ball!!" 그녀가 강하게 소리치자 사령력으로 뒤덮인 공간이 순간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생령의 힘과 충돌하면서 순수한 마나로 되돌아갔고, 그것을 움직여 법칙을 일탈시키자 사람의 몸통 만한 화구가 터져 올라와 바인에게 쏘아져 나갔다. 공기를 태우며 뿜어져 나간 파이어 볼을 순간 회백색 선이 한 대 치고 올라갔고, 순간 화구는 쩌억 하고 벌어져 두동강 나버리고. 피 시식하고 꺼져서 사라져버렸다. 폭발성의 화구를 베어서 사그라뜨린 것이다. 검기조차 없 이…… 그것이 그녀를 더더욱더 괴롭게 했다. "이…… 이럴수가……?" "한눈을 파는건가?"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검기로 뒤덮인 에페를 강하게 내리 쳤다. 콰앙!! 이번에는 그 파 멸과 붕괴의 힘이 실린 회백색과 회흑색의 오러를 덮어 쓴 검 두자루가 한꺼번에 내리찍혀 바닥에 처박혔고, 그녀는 지독히도 빠른 찌르기를 바인에게 뿜어냈다. 그러나 바인의 입가에 걸린 비웃음을 보고 그녀는 섬뜩한 느낌에 검을 급히 돌리면서 바닥을 내리치며 뒤로 물러 났고, 순간 그녀는 바인의 몸이 강하고 탄력있게 움직이며 바닥에 박혀버린 두 검을 긁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몸 앞을 베고 올려 지나간 두 파멸과 붕괴의 기운이 그녀에게 식은땀을 흘리게 했다. 말도 안된다. 틀림없이 극한의 힘을 발휘해 찍어 누르듯 내리찍어 버렸기에 기력의 극한 순환의 로의 힘과 생력과 사령력의 반발로 검은 강한 물리력으로 바닥에 완전히 처박혀 버렸고, 그 녀는 눈으로 그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마법사는 무식하게도 바닥을 갈아 엎어버리면서 검을 긁어 올렸던 것이다. 그녀는 어쨌든 드러난 헛점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헛점이 큰 공격이었기에, 그녀는 헛점에 주저없이 검을 찌른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검술에서조차 바인을 앞서지 못했다. 이미 몸이 회전하면서 검은 그녀의 검을 올려 쳐버렸던 것이다. 정 반대 방향으로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녀의 몸은 균형을 완전히 어그러뜨리면서 튕겨져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무 식한 물리력이라고 밖에 할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순간 조금의 절망을 맛봤다. 검술과 기력에 의한 공격력 만큼은 좀더 우위라고 판 단했었는데, 바인의 물리력으로 인해 완전히 그 차이가 역전되어 버린 것이다. 순간 회백색 선은 그녀의 복부를 관통해버렸다. 그녀는 이를 악물면서 고통을 참았지만, 이미 싸움은 끝 이었다. 장이 손상되었고, 근육에 사령력으로 모조리 죽어버려서 그녀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 는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검이 빠져나가고, 바인은 그녀를 차가운 표정으로 내려다 보다가 유리엘에게 몸을 돌렸다. "아, 안돼!! 으읍!" 입에서 선명한 홍색의 피가 토해져 나왔다. 그녀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힘으로 소리쳤지 만 결국 더욱더 수명을 단축하는 결과를 유발했을 뿐이었다. 상상을 능가하는 고통을 맛보 면서, 그녀는 유리엘에게 다가간 바인이 검을 들어 올리는 것을 정말 어쩔수 없이 보아야만 했다. 바인이 그녀를 바라보면서 시동어를 내뱉었기에. "홀드Hold." 홀드 마법으로 인해 꼼짝 달싹 할수 없게된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바인이 검을 휘둘러 내리 치는 것을 봐야했다. 정말 정신이 새하얗게 비어버린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상태로 그녀는 전락해 버렸다. 검이 빠르게, 정말 딱딱 끊어지는 것처럼 내리쳐 진다. 그리고 피가 튀어 오 르고. 깨어난 유리엘의 비명이 그녀의 귓가를 울렸다. 정말 정신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괴로 움…… 그리고 붉은 피를 한가득 머금은 검이 들어올려지고, 처참하게 난도질된 유리엘의 사체가 눈앞에 들어오자. 그녀는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절망을 맛봤나?" 바인의 입에서 흘러 나온 말…… 그리고 다시 어둠이 주변을 뒤덮어버렸다. 그녀의 정신은, 무력감과 괴로움과 절망으로 처절하게 죽어나가고 있었다. 몇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매번 새로운 패턴.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이제는 혼돈스러울 지경이었다. 정말 처참하게 불어 닥치는 핏빛의 폭풍과 회색빛의 폭풍. 이제는 사물이 무엇인지조차 인지할수 없었다. 깜빡거리는 검고 흰 장면들. 점점 주변의 사물을 인지하는 수준이 단순화 되어간다고, 그녀 는 찰나간 생각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이쪽은 끝났군. 유리엘은 정신붕괴는 일어나지 않았나? 상관은 없지만…… 스펠 캔슬Spell Cancel." 바인은 중얼거리면서 동공이 완전 풀려버린 엘리멘트 엘프의 여성을 바라보면서, 그는 완벽 히 정신붕괴가 일어나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버린 엘프. 그는 그 멍하게 풀어진채, 죽어버린 눈동자로 자신을 멍하니 직시하고 있는 그녀 를 바라보았다. "정신이 죽었군…… 엘프니까 몇 달이면 제정신이 되겠지만." "으으음……" 바인은 유리엘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오자 고개를 가볍게 좌우로 흔들었다. 하프 엘프라도 엘프는 엘프라는건가. 역시 빨랐다. 회복도 대부분 되어 있었고, 그녀의 어머니에 게 걸린 절망보다는 정도가 덜해서라지만, 그래도 인간이었다면 몇주는 요양했어야 할 것이 었다. 바인은 피 한방울 묻지 않은 허공의 양 검을 바라보다가 두 검을 전부 다시 거두었다. 그리고 나서 빈 손으로 천천히 무슨 주문이 좋을까. 하고 기억을 뒤적여 찾기 시작했다. 그 는 잠깐동안 기억을 찾다가 마법 하나를 발견해 내고는 대수롭잖게 시동어를 내뱉으려 했 다. 정신 집중을 끝내고 말이다. 그러나 마법은 발동되지 못했다. "데스 셰……" "유…… 리…… 엘……" 주저 앉아있던 그녀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기에. 097. 깜빡인다. 바인은 정신이 나가버린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갑자기 세상이 검게 물들었 다가 다시 환해졌다고 느꼈다. 자신은 눈을 깜빡인 것이 아니었다. 세상이 순식간에 어둠으 로 감싸였다가 다시 풀린 것일까? 아니다. 이것은, 아까의 그것이다. 절망을 사용하기 전에 잠깐 깜박였던 흑색의 암영. "……!" 방금보다는 조금더 길게. 두배 정도…… 어둠이 주변을 휩쌓았다. 바인은 몸을 흠칫 떨었다. 강제로 빚어낸 마음의 평정은 조금씩 깨어져 나가고 있었다. 무슨 현상일까? 바인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고룡의 레어에 쌓인 모든 책과 고룡이 설명해준 모든 지식 가운데서도 갑 자기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었다. 무언가 원인이 있을 것이다. 물론 바인은 어리석 지 않았기에 금방 평정을 회복하고는 유리엘과 그녀의 어머니는 절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 고는 있었다. 그녀들은 힘이 없으니까. 이런 현상을 일으켜서 순간적으로 아공간을 지금 자신이 서있는 현실의 플레인Plain에 겹쳐 서 점점 잠식하는 현상은…… 간섭? 그래. 다른 공간이 이 공간에 간섭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바인은 문득 자신의 내부에 있는 허虛의 힘이 공간의 간섭을 막고 있다는 것을 깨 달았다. 자신의 내부에 가득했던 허무와 파멸의 힘이 점점 줄어들면서, 다시한번 길다랗게 어둠이 내려앉은 것이다. 침묵이 어지럽게 가라앉은 묵빛 공간. 이번에는 십초― 정도. 바인은 천천히 정신을 집중하면서 그 어둠의 공간에서의 감각을 되 살려. 그 공간에는 마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몸을 흠칫 떨었다. 마나가 없다…… 라 는 것은…… 마법을 쓸수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마나홀에 존재하는 마나도 그 곳에 가면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린다는 것, 존재를 감춘다는 것 역시 기억해 냈다. 바인은 입 술을 깨물면서 그 강대한 누군가를 의심해 보았다. 이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라면 적어도 미뉴엘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런 특이한 '자신만의 플 레인'을 공간에 간섭시켜서 아예 다른 이를 강제로 불러들이는 것은, 그것도 바인 정도의 존 재를 불러들인다는 것은, 미뉴엘이라도 힘든 일이었다. 그 이유는…… 바인의 '존재감'이라는 것이 이미 인간의 그것이 아닌 천신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바인 스스로가 각성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드래곤이라도 느낄수는 없지만 그런 일을 강제로 성공시킬수는 없는 것이 다. 무엇보다 미뉴엘의 설명으로 드래곤이라는 종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었기 에. 바인은 안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 질려버렸다. 만약 드래곤이 아니라면, 미뉴 엘이 설명한 '적'의 존재들이 자신에게 벌써 손을 쓴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다. 하지만 의아했 다. 미뉴엘의 말로는 설마 이곳의 차원신이라도 자신에게 손을 댔다가는 소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 말했지 않던가. '그렇다면…… <그>인가!' 환희가 바인의 몸을 뒤흔들었다. 주체할수 없이 흔들리는 몸. 다시한번 길게…… 이번에는 이십초 정도……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길다랗게 허무의 그림자가 스며 올라가 창공을 질타 하는듯한 환영이 스치고 지나간다. 바인은 그것을 보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입술을 가 볍게 깨물었다. 쿵― 쿵― 심장 박동이 거세어지면서, 혈류의 속도도 빨라졌다. 바인은 힘겹게 조소를 머금었다. 이젠 비웃음을 짓는것조차 힘들어졌다. 심장 박동은 주체할수 없이 빨라지고, 몸은 불타들어가는 듯 뜨거웠다. 다리가 풀려버려 간신히 몸을 지탱한 그는 검을 바닥에 박아 넣으면서 몸을 지탱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식은땀이 흘러나와 얼굴선을 타고 흘렀다. 순간 어둠이 다시 도래했다. 땀방울이 떨어졌다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버리고, 바인은 몸을 움찔거렸다. 이상하다…… 다시 현실이 도래하고. 바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악…… 하악……" 쿵쿵― 쿵쿵― 쿵쿵― 심장 박동은 더더욱더 거세어져 마치 목을 두들기는 것처럼 뜨겁게 흔들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긴장. 입은 바짝바짝 마르고, 식은땀은 이제 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인은 창백한 얼굴에 열기로 인해 붉어진 얼굴을 들어 올리면서 이를 갈아붙였다. 부드드득! 그 소리가 나면서 바인은 열기에서 정신을 차렸다. 어둠은 이미 세상을 완전히 덮어버리고 있었다. 쿠 르르릉 하고 어둠과 허무의 나락이 진동하는 느낌이 들고, 그것은 몸까지 함께 뒤흔들어 놓 았다. 바인은 점점 뒤흔들리는 허무의 나락을 보면서, 자신은 서 있음이 틀림 없는데 어둠이 강하게 소용돌이 치면서 자신의 주변 위로 올라간다고 느꼈다. 그 말은, 자신이 떨어져 내리 고 있다는 말과 일맥 상통했다. 어느새 심장의 요동과 긴장은 사라졌다. 알 수 없는 포근함과 속도감만이 바인을 어지럽게 흔들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안온함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위를 올려다보면서 현기증을 느꼈다. 회흑색의 창천이 위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꼭 나를 삼켜 버릴 것만 같군. 하고 중얼거린 그는 바닥에 박혀있지 않는 듯, 걸리적 거리는게 없는 허공검 둘을 다시 자신의 내부로 되돌리면서 중얼거렸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것 같군. 음?」 목소리가…… 마치 허공으로 풀려나가 올올이 흩날리는 것 처럼, 가볍게 흔들리며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무겁고 텁텁한 대기 속에 있는 것처럼. 그는 조금 안온함이나 차분함. 침 묵이 심해져 무거움으로 변함을 느꼈다. 신경질적으로 땀에 젖은 앞머리를 쳐 올리면서 그 는 긴장으로 인해 뚜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몸을 풀면서 눈을 감았다가. 이상하게 그 묘 한 속도감마저 없어지자 눈을 떴다. 「……!!」 눈 앞에는 검은 그림자가 존재했다. 그림자는 점점 엷어졌고, 마침내…… '바인'이 되었다. 이제 바인이 아닌 설원이 된 그는 바인이라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점점 가느다랗고 날카로 운 눈초리가 된채 '바인'을 노려보던 그는 입을 열었다. 「너는 뭐지?」 바인의 존재는 특이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허리와 날개뼈 사이쯤까지 길다랗고 짙은 회색의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그는. 회흑색으로 타오르는 보석같은 눈을 빛내며. 새하얗고, 어쩐지 아주 엷은 회색빛이 도는 것처럼 창백한 얼굴로, 회백색과 회흑색의 날개 둘. 한쌍을 등 뒤에 매단채 떠올라 양손을 가볍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의 입술을 창백했고, 지금의 설 원 만큼이나 약한 인상을 주었다. 「당신도 알고 있는 해답입니다. 저는 당신입니다. 설원이라는 이름의 인간이고…… 동시에 바인 Genocider. 워드라는 존재……」 놀랍도록 닮은 꼴이면서 전혀 다른 둘의 존재. 냉랭하고 차가운 인상의 설원과 어쩐지 부드 럽고 여유 있는. 그러나 꼭 폭풍 전야처럼 고요하면서도 불안정하고 광폭한 느낌이 드는 바 인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어느새 똑같은,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인간은 아닌 모양이군.」 설원의 말에 바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이 흘러가면서, 설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드디어 알겠어. 내가 무의식의 가장 깊은곳, 본질의 내부.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파 고든 모양이군. 미뉴엘조차 영혼에 대해서는 전부 다 알지 못하니까. 하지만 알수는 있어. 그대도 그렇지 않나? 그대도 영혼에 대해서는 전부 알지 못하는 것 같은데.」 「적어도…… 그 그린 일족의 고룡보다는 많이 알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바인은 조금 부드러운 인상을, 설원은 냉랭함을. 같은 목소리이지만 톤 하나로 이렇게 차이 날 수 있을까. 설원은 길다랗게 한숨을 토해냈다. 물론 무의식 깊은곳, 영혼의 내부이기에. 본질의 고향이기에 설원이 한숨을 내쉰다는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행동 자체는 가능 하다. 어쨌든 자신의 내부니까. 「왜 갑자기 우리가 만나게 되었나? 그리고 '그'는 무엇하는 존재인가? 나의 형이라고 믿어 왔던 그 악마……」 바인은 그 말에 쓸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설원의 앞으로 다가왔다. 날개는 이미 접힌 채였다. 그러나 사라지지는 않았다. 희미한 회흑색과 회백색의 빛을 발하는 쌍익은 추욱 늘 어져 버린채 주인의 관심에서 벗어나 버렸다. 「그의 이름은…… '아슈라스 이쥬리엘 샤이제르크'. 무한과 유한의 교차점…… 마지막 무한 의 신神…… 더 이상은 말할수 없습니다. 아마 당신이 저를 알고, 각성해 모든 기억을 되찾 는다면 알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각성조차 하기 전에 그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너와 나에게. '학살자虐殺者'의 낙인烙印을 부여한 자는?」 설원이 희미하게 꿈으로 보았던 그 존재에 대해서 질문하자. 바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 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역시 단편적인 정보밖에 알려 줄수 없겠지. 설원도 알고 있었다. 보 나 마나였다. 아마 그 존재들은 자신을 갖고 노는 것이겠지. 신이라는 존재가 선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여덟살 때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신자였고, 그런 그를 처참하게 죽여버 린 신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인간에게 무관심하고, 인간의 구원에 관심이 없는지 이미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샤이네이드 아르사디온 가르디스트'. 태고太古, 은빛의 불꽃…… 무한無限 원신元神. 아슈 라스나 샤이네이드나…… 둘 모두 극한의 존재…… 감히 대적할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정도로 충분해. 젠장. 창조주의 동생이라. 참 웃기지도 않는군. 정말 동생은 아니지 만 말야. 너도 기분나쁘지 않은가?」 설원이 입가에 노골적인 비웃음을 걸며 '자신'의 '본질'에게 질문하자. 바인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면서 다시 날개를 펼쳐 올렸다. 펼쳐진 날개는 아주 거대했다. 바인은 눈을 아예 감아버 리고는 떠올라서 설원에게 입을 열었다. 「당신도 비웃고 있을뿐. 그다지 기분 나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조소의 대상이지 경멸의 대상은 아니니까요.」 「……그래, 신 나부랭이에게 나같은 놈이 어떻게 덤비겠나. 하지만 '나'라는 존재를 그 세월 을 희롱하며 살아가는 미친놈들에게 각인시켜 주고는 싶군 그래.」 바인은 조용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면서 말했다. 「역시 당신은 저와 같군요.」 「너나 나나 선도 악도 아니니까.」 바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회흑색의 날개와 회백색의 날개를 퍼덕이면서 상당히 떠올랐다가 설원에게 내려꽂히며 속삭였다. 「힘을 드리겠습니다. 저로써는 이것이 한계로군요.」 파아아아앗!! 설원의 어둠과 바인의 허무가 겹치는 순간. 강렬한 회색 광채가 뻗어나와 주변을 잠식했고, 설원. 아니, 바인은 다시 태양빛이 흐르고 있지만 어두운 숲속의 한 장소에 서 있었다. 어느 새 다시 양손에 쥐어져 있는 두자루의 허공검. 이미 두 자루의 검에는 지독히도 강렬한 오 러가 맺혀있었다. 바인은 피식 웃으면서, '본질'이 지니고 있던 빛으로 이루어진 회흑색과 회 백색의 광익을 떠올려 보았다. 지독히도 날카로워 보였지? "그럼, 끝인가?" 다시 잡상념을 끝내면서 바인은 검을 들어 가차없이 엘리멘트 엘프의 심장에 꽂아 넣으려 했다. 그러나 그때 외침이 들려왔다. "안돼!!" 유리엘이 눈을 뜬 것이다. 그러나 바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너무나도 우습게 허공검중 '허'는 심장에 꽂혀 들었고, 엘리멘트 엘프의 존재 는. 허무의 힘에 그대로 뒤흔들려 강한 충격을 받으면서 영혼까지 뒤틀렸다. 그러나 그 충격 으로 일순간 바인을 제대로 된 정신으로 바라볼수 있게 된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걸어 올리면서 유리엘을 바라보았다. 애처로운 눈길로 유리엘을 바라보면서 숨을 거칠게 몰 아쉬던 그녀는 아주 천천히 입술만을 움직여 단어 몇 개를 만들어냈다. 유리엘은 창백하게 질려 버린채. 텅 빈 공허한 눈동자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 바인은 그것을 알아 들었다. 그리고 허검을 뽑아 들고는 공검을 그녀의 폐부에 밀어 넣었다. 파육음조차 없이 박혀 들어간 검. 그리고 허검과 공검에 실린 기운 둘이 그녀의 육체와 영 혼에 자리함으로써 강하게 공명했고. 허무와 파멸의 힘이 공명하면서 일어나는 붕괴의 힘은 그녀의 육체를 소거하고, 영혼을 소멸시켜버렸다. 완전히 파멸과 붕괴의 힘으로 인해 영혼의 입자로 흩어져 다른 플레인으로 사라져버린 그녀의 존재는 없었다. 육체마저 소립자로, 쿼크 를 구성하는 본질로 변해 완전히 흩어져버린 것이다. 다만 은은한 풀내음만이 풍겨 올라와 바인의 코끝을 스쳤을 뿐이었다. "……빌어먹을!" 바인은 욕설을 토해냈다. 바인은 텅 비어버린. 죽어버린 눈빛을 한 유리엘을 바라보다가 고 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 순간이었다. 바인이 눈치채지 못한 무언가가 공기를 자르며 쇄도해 왔다. 공기를 찢어 발기며 쏘아져 들어온 그 무엇은 지독히도 푸르르면서도 고형화된 무엇 이었다. 바인은 그것에서 풍기는 기운이 마나가 아닌, 다른 것…… 기氣라는 것을 깨닫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검강劍剛! "블링크Blink." 조용히 중얼거리자 이미 검강은 애꿎은 나무만 스치고 지나가 뒤쪽의 나무 몇그루를 잘라냈 다. 서걱 하는 소리가 나면서 나무가 마찰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무들이 넘어가면서 흙먼지 가 일어나고. 나뭇잎들이 거칠게 마찰하면서 일어나는 부석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일어났 다. 바인은 인상을 구겼다. 하필 소드마스터인가…… "그리스Grease - 필드Field." 사사사삭 하고 지면을 아주 스치듯 달려오던 존재는 순간 미끄러지면서 그대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마찰계수가 지극히도 낮아져버린 바닥 때문에 휘청거리는 존재는 바인의 일 격을 허용해야 했다. 물론 소드 마스터Sword Master. 동방에서 화경이라 불리는 경지에 오 른 이상 이정도 일격에 죽을리는 없겠지만. "에어 붐Air Boom. 프로즌 웨이브Frozen Wave - 스파이럴 웨이Spiral Way. 플레임 스파 우트Flame Spout - 게이저Geyser. 다크 미스트Dark Mist - 데스 포이즌Death Poison." 바인은 시동어를 연달아 외쳤다. 질풍처럼 스펠을 난사하는 것이다. 에어 붐. 공기가 무서운 속도로 몰려들어 신형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말 그대로 당황하고 있는 그를 향해 몰려들어 압축되면서 동시에 격발,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약간의 주황빛 불꽃 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프로즌 웨이브가 바인의 손짓에 의해 발 앞에서 일어나 날카 로운 얼음기둥과 함께 바닥을 동파凍破시키면서 쇄도해 흙먼지가 솟아오른 곳의 공기를 냉 각시키면서 스파이럴. 나선을 그리며 중앙으로 모여들어 완전히 빙결의 벽을 형성시켜 버렸 고, 순간 플레임 스파우트. 불꽃을 뿜어내는 스펠이 게이저. 간헐천의 형태로 빙결의 벽 중 앙에서 솟구쳐 올라 냉기를 삼키고 강한 폭염爆焰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다크 미스트와 데 스 포이즌의 스펠이 섞여 강렬한 독을 머금은 어둠의 안개가 되어 덮어버렸다. 아무리 화경의 경지에 오른 검사라 환골탈태로 만독불침의 몸을 지녔다 하더라도 동방의 칠 대독을 더 능가하는 독의 안개가 뒤덮어 버렸는데, 견디려면 아마 강기막을 치고 있어야 할 것이었다. 바인은 이것으로 끝낼 생각이 없는 다시 시동어를 연달아 외쳤다. "블러디 플레임Bloody Flame. 콜 라이트닝Call Lightning. 슬라이스Slice. 섭콘셔스 브로큰 Subconscious Broken. 펌블Fumble. 일루젼Illusion. 다크 애로우Dark Arrow……" 물론 중간중간에 주문을 조금 외워주는 마법이 있기는 했지만 7서클 이하 수준의 것들이라 메모라이즈 하지 않아도 남발이 가능한 것들이 8할이었다. 5서클 마법인 핏빛의 화염이 요 란하게 터져나와 완전히 감아 강렬한 열기로 존재를 태우고. 콜 라이트닝으로 인해 공기중 의 전리가 변환되어 지독히도 강한 전류가 여러가루의 채찍처럼 연달아 폭발을 일으키고. 슬라이스 마법이 발휘되어 공기가 찢어져버리고, 섭콘셔스 브로큰을 일단 뿌린 다음 연속적 으로 전사라면 기의 운용을 흐트러지게 만들어 내상을 유도하고. 마법사라면 스펠을 머릿속 에서 흔들어 놓을 마법이 시전되고. 연이어 일루젼으로 뇌에 직접 자극을 주는 환상이 일어 나고. 다크 애로우. 흑색의 기류가 뭉쳐져서 여덟 개의 화살을 이룬후 쏘아져 들어가고…… 어지럽게 펼쳐진 마법공격. 아마 웬만한 검사라면 순식간에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 넘어갈 것이고, 적어도 동급의 마법사가 아니라면 막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소드 마스터는 소드 마스터였다. 블러디 플레임은 뛰어올라 피해버리고, 바인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콜 라이트닝을 그 자리에 낭비한 다음에야 알아차려서 슬라이스 마법의 궤도를 수정해 날리고. 그 이름모를 소드 마스터가 강막을 전개해 슬라이스 마법을 흐트러트린후 그리스 마법의 효력이 다한 땅 에 안전히 착지하고. 섭콘셔스 브로큰을 맞았지만 정신을 집중해 몰아낸 후 강기를 운용하 려다가 펌블에 기가 흐트러져서 간신히 내상만은 면하고, 일루젼 때문에 조금 고생하다가 아예 피해버리자 다크 애로우의 흑선黑線은 허공만을 찔렀다. "홀드Hold. 패럴라이즈Paralyse. 바인드Bind. 플래시Flash. 슬라이스Slice. 섭콘셔스 브로큰. 펌블. 아이스 애로우Ice Arrow. 파이어 볼Fire Ball - 체이닝Chaning. 블레이즈 익스플로시 브 애로우Blaze Explosive Arrow. 인컨디센트 블레이드Incandescent Blade." 이렇게 연속적으로 마법을 남발하고도 지치지 않는 마법사는 정말 역사상에 드래곤 외에는 없었을 것이다. 상상을 능가하는 마법들이 연이어서, 그것도 강도까지 강화되어 쏟아져 나왔 지만 바인은 그다지 지친 기색이 없었다. '본질'과 만나 얻은 두 날개 덕분에 그는 더욱더 강한 정신력과 힘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홀드, 패럴라이즈, 바인드. 세 마법은 순식간에 그 소드 마스터를 붙잡아버렸다. 기를 극한까 지 끌어올려 요동을 쳤지만 아무래도 빠져나가기 힘든 모양이었다. 하긴 8급의 마스터에 강 화된 행동금지 마법이니 빠져나가기 쉬울 리가 없었다. 거기에 플래시를 이용해서 강한 섬 광을 터뜨려 버리자 시야도 잠깐 마비되었고, 슬라이스가 뿜어져 나가 공기를 절단하는 것 을 느끼면서도 섭콘셔스 브로큰과 펌블 때문에 기의 운용까지 흐트러져 버렸다. 거기에 아 이스 애로우와 파이어볼의 체이닝. 그리고 강화된 익스플로시브 애로우와 인컨디센트 블레 이드까지. 죽음의 위기였다. "안티 매직 셸Anti Magic Shell!!" 이런 스펠이 터지기 전까지는. 한 굵은 목소리의 외침이 들려오고 나서, 바인은 인상을 일그 러뜨렸다. 그리고 바로 허공검에 한층 힘이 늘어난 붕괴와 파멸의 힘을 불어넣자 회흑색과 회백색으로 일렁이는 오러를 휘감으며, 두 검은 강하게 울부짖었다. 검명劍鳴을 토해내며 웅 웅거림과 동시에, 바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완전히 안티 매직 셸이 사용됨과 동시에 요란하게 터져 나가던 마법들은 사그라들어버렸고, 바인은 우위을 잡았다가 순식간에 위험에 처한 것이다. 바인으로써는 그 마법의 사용자를 향해 욕설을 터뜨려도 시원치 않을 상황이었고, 그 이름모를 소드 마스터로써는 정말 시기 적절한 구명 스펠이었다. 정말 질려버린 표정이었지만, 소드 마스터는 시린 은빛의 검에서부터 푸른 강기를 일으켜 바인에게 검을 휘둘러왔고, 신월형의 강기는 바인에게 쇄도해들었다. 그러나, 바인은 서클 마법만 익힌 일반 마법사가 아니었다. "블링크Blinck." "말도 안돼!!" 누군지 모를 마법사의 외침이 터져나오면서 바인은 블링크를 이용해 신월의 강기를 우습게 피해내버렸고, 순간 다시 파이어볼 체이닝이 요란하게 터져나와 무려 8개체의 불꽃의 구는 쇄도해 들어 강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쾅!! "……" '피하는게 좋겠군……' 바인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면서 중얼거렸다. 아직은 아니다. 자신이 한서클만 더 높은 경지 였어도 아마 저 7서클 마스터 마법사로 보이는 이와 저 소드 마스터의 합공 정도는 우습게 막아냈을 것이었지만. 소드 마스터와 7서클 마스터 마법사의 조합은 바인으로써도 위협이었 다. 물론 죽일거라면 못 죽일것도 없지만. 상처 없이 이기리라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플라즈마 볼Plasma Ball. 블링크. 체이닝." 바인은 손을 들어 휘어 젓고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허공검을 든 바인 이 있었던 자리를 은빛 검이 푸른 기운을 머금고 가르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는 무서운 속 도로 앞으로 튀어 나갔고, 마법사는 여유가 있었는지 베일 실드를 이용해서 둘 모두와 유리 엘까지 감아서 플라즈마 볼, 전리기구체의 후폭풍의 여파에서 자신들을 보호했다. 검사는 허 탈한 표정이 되었다. 아직도 그 엄청난 마법의 난무에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데 살려 보 내버리다니. 거기다가 친구의 원수인데…… "젠장. 마법사라고 우습게 볼게 아니군…… 제길! 시리엘이 죽어버리다니……" 그는 이를 부드득 갈면서 사체가 아예 소멸해버린 자리를 바라보았다. 이를 갈아 붙이면서. 침통한 표정이 된채 다가온 중년 마법사에게 쏘아 붙였다. "제길! 그러게 빨리빨리 가자고 했잖습니까!" "나라고 빨리 가고 싶지 않았겠나……" 중년 마법사는 침울한 표정이었다. 바인의 얼굴을 보았고, 또 마법 실력을 보았기에. 바인의 외모는 많이 보아줘도 고작 약관이 좀 넘었을까. 싶을 정도의 청년이었다. 그러나 이미 자신 의 실력을 넘어버린 강력한 마법사였다. 최소 8서클 마스터. 거기다가 안티 매직 셸을 깨지 않고도 마법을 사용해 사라져버렸다. 정말 인간인지 의심스러운 존재. 추가로 검까지 들고 있지 않았던가. 마법사이면서도 보조마법이 있건 없건 검을 들고 설칠 정도의 육체 수준이 라는 말과 다름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은 질투다. 적어도 9서클 마스터 정도는 되 어야 일단 노화가 중지되면서 조금씩 젊어지고. 마나 게더링이나 드레인Drain류의 술법을 쓰면 더 젊어질수도 있고. 생체연구를 통해 육체를 새로 만들고 육체에 남겨진 모든 의식, 무의식, 기억들을 끌어다가 그 '완벽한' 육체에 부어 넣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느꼈을 때. 그는 8서클 마스터였지 결코 9서클 마스터는 아니었다. 자신도 60세 정도이고. 7서클 마스터 라 10여년 정도 외모보다 젊게 보이고, 몸 역시 노화 정도가 늦기는 하지만 저정도로 젊어 질수는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저 8서클 마스터는 30세 정도일 것이다. 많아 봐야 30세를 넘 기 힘들었다. '……대단하군. 누가 스승인지는 알수 없지만. 아니, 어쩌면 이곳의 그린 드래곤 일수도 있 지. 논 디텍트Non-Detect와 리플렉트 스캔으로 막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간파되었을지도 모르고…… 으음……' "저 아이는 어쩌죠?" "……유리엘 말인가?" "예…… 어쨌든 은인의 아이니까요." 중년의 마법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일단 나가서 고민하세." 그들은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확실히 그 마법사도 벅찬 상대고. 힘도 많이 떨어진 상태다. 이런 숲에서 오래 있으면 좋을것도 없었다. 그들은 정신이 나간 상태인 유리엘을 데리고 빠 른 속도로 숲에서 사라져갔다. -유리엘이라는 이름의 하프 엘프의 정신 속에 각인된 장면은 오로지 검 한자루가 어머니의 심장에 파고드는 것. 그리고 어머니를 죽인 자의 얼굴은 냉랭하고 차가운 흑발의 청년이었 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잠깐의 시간을 보낸 일들도.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녀의 내부에 자리잡게 되고 말았다. 바인은 윈드 스텝Wind Step의 마법을 이용해서 빠르게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면서 중얼거렸 다. 그녀가 남긴 말…… '너만은 죽지 말아라……' 정말 선명하게 각인된 한마디였다.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건 바인은 자기 자신을 합리화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하다는 것을 눈 치채지 못했다. 다만 바인의 입에 걸린 소리는 오로지 어쩔수 없다는 말 뿐이었다. 그러나 바인은 마음에 상처 입으면 입을수록 점점 냉정하고 굳어진 정신을 지니게 되었으며, 그것 으로 인해 점점 인간의 영성을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알았다면, 미래가 바뀌 었을 지도 몰랐을텐데. 「시작이군…… 흥미로워. 하지만 샤드. 역시나 내 예상을 벗어나지 못하지 않는가? 뭐, 그 청이라는 존재는 제법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럭저럭 가능성도 보이는데…… 큭큭큭.」 은근한 광기가 실린 목소리는 올올이 풀려나가면서 어지럽게 펼쳐진 아스트랄 플레인의 청 백광 가운데서도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존재는 은빛의 날개를 가볍게 접으면 서 대꾸했다. 그 날개를 접는 행동만큼 내용이 가볍지는 못했지만. 「바인이야 당신이 만든 존재이니까요.」 「뭐, 나야 '만드는' 일은 아직 익숙치 않으니까. 그쪽이야 무한에 가까운 세월을 만들고 부 수고를 해 왔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쪽에 놀아나버려서 항상 부수는 일만 하게 되더라고 말 야. 아아, 비꼬는 것 아냐. 그런 표정 짓지 마.」 「……아직 화가 났나요?」 그 말에 아슈라스. 그는 나지막한 웃음을 흘렸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채 말이다. 그러 나 샤드가 제풀에 지쳐 대답을 포기했을 무렵, 대답이 들려왔다. 「……애교로 봐 주지.」 「후후…… 그래요. 당신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사니까.」 「자…… 그럼, 이제 시작인가? 이제부터 조금 재미있겠군. 이제부터는……」 아슈라스는 말을 맺지 않았다. 그러나 샤드는 알고 있었다. 생략된 말. 그 뒷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두 운명의 굴레바퀴에 '깔려 죽지' 않으려는 두 존재의 발악이 어느 정도인지…… 흥미롭다는 말이겠지. 이미 존재의 영성을 벗어버리고 샤드조차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아슈라스. 샤드는 조금의 불안을 느끼면서 날개를 다시 펼쳤다. 시린 은빛이 화려하게 피어올랐다가 청백광 사이로 녹아 들어 스러졌다. 098. 광검光劍. 바인은 여전히 딱딱하고 냉랭한 표정…… 이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무기질로 빚어진 듯한 무표정을 고수하며 단아하고 우아한 동작으로 흰빛의 수수한 찻잔에 담겨진 단홍빛 액체의 향기를 후각으로 만끽하면서 아주 부드러운 동작으로 그 액체의 맛을 입에 머금어 보고는 핏빛의 입술에 묻어있는 아주 약간의 수분을 붉은 혀로 가볍게 핥았고, 그것을 보면서 미뉴 엘은 중얼거렸다. '저거 남자야. 여자야?' 불행하게도 남자였다. 바인은 나인 서클이자 나인 클래스에 들어서면서부터 확 바뀌어있었 다. 기氣가 육체에 머무르는 개념을 주로 삼아 단계가 올라 소드 마스터. 즉, 화경이 되면 바로 한 번의 환골탈태를 이루어 오랜 수명과 강인한 육체를 얻게 되지만. 마법이라는 것은 수명만 연장하고 노화만 억누를뿐 9급 마법을 익혀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육신은 그대로였 다. 어쨌든 9서클에 오른 그는 아스타르에서는 리버스Rebirth라고 불리는 현상을 겪었다. 물론 마법사가 9서클에 올라 겪는 리버스와 검사들이 겪는 리라이프Relife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육신이 다만 거대한 마나역류를 받을수 있는 힘과 지식적 정신적 힘만이 더욱더 거대 해질 뿐. 체력적 문제가 두배정도 나아지고 몸이 가뿐해질 따름. 리라이프와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큰 차이가. 원래 육신이 상상을 능가하는 성능을 지니고 있어서 리버스 를 한 번 겪어버리자 환골탈태에 버금가는 효과로 육신이 재구성 되었지만, 그래도 많은 차 이가 있었다. 바인은 딱딱하고 냉랭한 표정에서 아주 조금의 온화함을 되찾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증오를 버렸다. 다만 그 '신'이라는 존재의 면상을 긁어버리고 싶을 뿐. 하늘에 올라 위대한 자라 불리는 놈들의 면상을 밟아버리겠다. 이것이 현재 그의 의지였다. 엄밀히 말하면 증오를 버린 것은 아니지만, 억누를줄은 알았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여전히 그는 냉혹의 사신이었다. 어찌되었든 리버스를 겪으며 그는 외모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마치 동방의 누군가가 환골탈태를 겪으면서 미인으로 변한 것처럼, 그도 상당한 염기와 색 기를 뿌리는 아름다움을 머금은, 어떻게 보면 가냘프고 청초해 보이는(결코 어울리지 않는 묘사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묘사는 없다.) 미인이 되버린 것이다. 머리카락이 제법 길어서 등허리에 이르러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자르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미뉴엘은 바인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물론 속으로 중얼거렸기에 바인이 자신을 바라보 면서 뭐라고 중얼거리냐는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바인이 쓰는 무기…… 물론 쌍검이고 제법 괜찮기는 하지만 또 다른 무기들도 필요할텐데. 아무리 <내면의 검>이라는 무기지만……' 이제 그녀로 확고하게 결정난 미뉴엘은 차향을 즐기면서 기어이 마지막 한모금까지 위로 넘 겨 버리고. 찻잔을 비워버린다음 찻잔을 내려놓고 어떻게 보면 다소곳한 자세로 손을 겹쳐 무릎위에 던져놓은채 먼곳을 응시하는 것처럼 명상에 빠져들어 있는 그의 입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감돌자 흠칫 놀랐지만 그러려니 하고 이제는 포기해버렸다. 손을 꼼지락 거리면서 감히 방해할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를 흘리고 있는 바인을 보던 미뉴엘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제 많이 분위기는 가라앉아있었다. '고요한 폭풍'과 '살기의 옷을 걸친 자'로 불릴 만큼 위험한 느낌을 주었던 그는 이제 조금 위태롭지만 두터운 강화유리벽 내부에 살기의 폭풍을 가둔 정도로, 조금 더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미뉴엘로써는 폭풍전야나 다름없는 그의 분위기에 아마도 많은 여자들이 불행 을 겪으리라는 것을 예측해 보면서 피식 웃었다. 인간이라는 것은 금기를 좋아하고 은밀하게 동경하기 마련이다. 그 위험도와 차분하고 음울 한 슬픔이 은근히 배어나오는 그의 분위기에 아마 수많은 아스타르의 여성들은 넘어가 버릴 것이 틀림 없었다. 그리고 희생되겠지. 터부Taboo라는 것은 죽음과 맞닿아 있고, 그 죽음과 맞닿은 유혹은 알 수 없는 매력이 되어 그를 수렁으로 만든다. 리버스 현상을 겪으며 바인의 흑발과 흑안은 더더욱더 깊고 맑은 빛으로 변해있었다. 흑안 은 맑게도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광기와 살의가 흘러 탁하게도 보였다. 미뉴엘은 그런 그의 고요함에 파문을 던져야 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기어이 입을 열었다. "……무기 보러 갈까?" "……?" 바인이 조금의 의문을 흐릿하게 거의 변화없는 표정에 실으면서 미뉴엘을 돌아보자, 아주 희미하지만 장난기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미뉴엘은 스펠의 시동어를 토해냈다. 「플레인Plane 전이轉移!」 마나는 용언이 실린 그녀의 명령에 철저하게 복종했다. 재배열된 마나는 법칙을 깨었고, 탁 자와 의자채로 그들은 아주 살벌한 예기가 공기중에 떠 다니는 방 안에 도달해 있었다. 여 전히 다소곳하게도 보이는 자세로 앉아있던 바인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는 아주 천천히, 느긋하고 조용하게 일어나 걸음을 옮겼고. 자신의 앞에 등장한 찬란한 금속광의 춤에 눈살 을 가볍게 찌푸렸다. 수없이 많은 종류의 검들. 같은 모양의 검들도 자세히 보면 같은 재료로 다른 제법과 제련 법을 이용해 만든 무기가 있고, 다른 재료로 같은 제법. 다른 재료로 같은 제법을 이용해 벼 린 수없이 많은 병장기들이 공중에 떠서 회전하고 있었다. 은은한 백색광을 머금은채 공중 에 떠 빙글빙글, 느릿하게 도는 검들. 이런데다가 마나를 남용하는 건가. 하고 바인은 속으 로 조소하며 검들을 바라보았다. 대부분 서양식 검이라 혈조가 아닌 코어Core가 존재했기에 그는 탐탁찮은 눈으로 동방식 계열의 검들을 바라보았다. 현철에서 많은 특이 금속들로 많 은 배합과, 특이 조합. 그리고 순수 금속으로 만들어진 수백자루의 동방식 검들 사이에서 헤 매던 그는 아주 특이한 검들이 밀집해 있는 장소로 걸어갔다. 검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창이나 다른 무기는 쓰지 않았기에, 스피어에서 할버드. 그리고 검 중에서도 대검 종류 는 모조리 무시당했다. 동방식 검들 중에서도 예도나 패검 종류가 각광을 받을 것 같았으나 역시 특이 종류의 무기들이 보여진 이상 그의 시선을 더 받을수는 없게 되었다. 환상적인 광경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지나쳐 버리면서 그는 특이 종류의 무기들이 떠있는 장 소로 걸어갔다. 하나의 무기를 바라보며 바인은 눈꼬리를 가볍게 휘었다. 뭐랄까? 꼭 무식하 게 만들어진 무기라는 표현이 옳다. 웨이퍼 블레이드. 꽂는 검날을 집어넣어 아주 예리한 찌 르기와 베기용의 세이버 종류의 날을 지니고 있었지만 방아쇠도 있고, 포구도 있는 무기. 웨 이퍼 블레이드는 아다만타이트로 만들어져 있었고, 나머지도 미스릴에 은근히 인첸트 되어 있는 마법으로 강한 마력이 흘러나온다. 추가로 잡기도 좋은 것 같았다. "건 세이버Gun Saber…… 인가?" 책에서 읽은…… 대충 넘어간 무기. 어쨌든 비싼데다가 국가에서도 조금 제약을 가하고 있 는 화약무기에 검날을 단 것인데. 어디서는 소드 블래스터Sword Blaster라고도 부르는 총과 검을 합친 무기였다. 날도 예리하고 위력도 강하니까 잘만 이용하면 아마 웬만한 몬스터도 어지간히 무너뜨릴수 있을 것이다. "쓸만하지? 172구경이라 그렇게 강하지는 않지만." 미뉴엘의 대수롭지 않은 말에 바인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미뉴엘 정도의 능력. 그러니까 용언으로 생명도 어느정도까지는 창조해낼 정도의 힘을 지녔다면 이런 무기야 '복제'가 가 능 한 것이다. 그것도 대량양산으로. 그런 미친짓을 하는 드래곤은 없지만 어쨌든 가능한 일이 니까. 수만 많다면 공포의 대상이 될 것이다. 매끄러운 은흑색의 날이 화려하게 번쩍이고 있었지만 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무시해버릴 뿐이었다. 다만 문득 살던 세상에서 이것과 비슷한 효능을 지닌 무기를 도입한 컴퓨터 게임 하나가 떠올라서 입가에 아주 흐릿한 미소를 떠올렸을 뿐. '거기서는 부스터 슬라이서Buster Slicer라고 불렀었지.' 그리고 그 다음 그가 본것들은 핸드 캐논Hand Cannon이었다. 핸드 캐논은 여섯 개가 있었 는데, 다른 다섯 개는 빼고 바인마저도 놀란 눈으로 바라본 것이 바로 미뉴엘도 조금 노력 해서 만들어본 물건이었다. 리피팅 기능은 없지만 일단 네 개의 탄을 넣을수 있는, 한발은 장전해서 넣어 두고 세발을 탄 옆에 꽂아둔다음 당겨서 장전하면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집 어넣어둔 탄이 다시 장전되는데다가 추가적 사항으로 장약 비격발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주 정교한 미스릴 체인을 이용한 물건이었다. 강도 강화 마법에 약화된 프리즈 인첸트를 걸어서 과열되지 않도록 해둔. 4연사가 가능한 323구경 핸드 캐논이었다. 미뉴엘이 제작한 마력석 여섯 개를 박아놓은 판으로 탄판을 대체 시키면 그 여섯 개에 마법을 불어넣고 총구 앞에서 마법을 실현시키는 것도 가능한 물건이 라 바인도 제법 감탄했다. 아다만타이트, 미스릴, 이터니움의 세 금속을 이용한 핸드 캐논. 거기다가 마력 무반동기를 설치해서 겨냥의 흐트러짐 없이 4연사가 가능하다. 이거라면 제법 쓸만하겠다는 생각을 하 면서 바인은 그 기능적인데다가 전혀 비져나옴 없이 아름답기까지 한 총신을 바라보았다. 그 옆에 매달아둔 아공간 주머니에 잔탄이 500발 들어있기 까지 했다. 하지만 역시 바인은 바인이었다. 감상은 오로지 한마디였을 뿐. "비싸겠군." 핸드 캐논과 소드 블래스터 ― 역시 아공간 주머니가 있고 잔탄도 500발이다. ― 를 받아챙 긴 그는 몇번 써보고 나서 소드 블래스터는 허리에 찼고, 핸드 캐논은 미뉴엘에게 받은 푸 른 로브의 헐렁한 곳, 스페이스 백팩Space Backpack 마법이 걸린 그곳에 집어넣어 두었다. 아마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었고, 그럴 성격도 아닌 바인은 감사인사조차 없이 그것을 뻔뻔 스럽게도 챙긴 것이다. 무수한 스크롤들도 받아 챙겼고, 수없이 많은 설명하기조차 어려울 많은 마법기들이 그의 소유로 넘어갔다. 그러나 미뉴엘은 아주 간단하게 그것들을 보충했다. '창조'라는 한마디로 말이다. 어쨌든 그런 물건들을 받아 챙기고 나서 미뉴엘이 던져준 아공간 백팩을 이용해 정 리하고, 역시 아공간 백팩용 주머니를 받아서 많은 보석과 금화에서 은화, 동화까지 받아 챙 겨 ― 그 나머지 역시 미뉴엘의 창조용언으로 메워졌다. 어디까지나 미뉴엘은 신급 존재였 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 품속에 집어넣고 나서 그는 추가적으로 무기까지 받았다. 스태프Staff한자루. 혼연의 지팡이라 불리는 일급 마법기. 에고 스틱Ego Stick인 그것은 은 은한 금빛이 도는 나무 지팡이로 그가 허무의 힘을 이용했을 때 혼연의 힘과의 공명으로 기 존 혼연력보다 몇배는 강력한 마법공격을 펼칠수 있게 되었다. 혼연의 지팡이의 효능이라고 는 정신집중과 마법적 에너지 증폭 정도. 그리고 언데드 종류의 몬스터 소거였다. 미뉴엘이 심심할 때 수집해둔 대륙 마법기보중 10위 안에 당당히 들어가는 광익의光翼衣 ― 자그마치 7서클급 공격력을 지닌 마법의 로브 ― 와 대륙 제 일의 마법기보인 혼연의 지팡이가 지닌 능력이 바로 언데드 몬스터의 소거인데, 광익의는 빛의 날개를 이용해서 비행능력까지 추가 적으로 생성되기에 바인도 만족한 무기다. 에잇 클래스의 스펙트럼 디사이더Spectrum Decider를 발현할수 있는 옷이고, 아다만타이트 와 미스릴을 제련한 금속사金屬絲로 짠 가볍고 튼튼한 옷이었다. 동방식으로 따지면 천잠사 의보다 배는 낫다고 보면 된다. 마법적 방어능력도 뛰어나니까. 에고 스틱 혼연의 지팡이. 이것이 바로 바인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두번째 낫'이라고 불리는 무기다. 그가 냉혹의 사신 으로 이름을 떨칠 때 붙은 이름이라 할수 있다. '두번째 낫'이라고도 불리고, '혼연의 파멸' 이 라는 별명도 새로 얻었을 정도로 악명높은 성명병기(?)가 되는 것이다. 099. 유리엘은 정신적 충격을 극복 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밤만 되면 악몽으로써 그 기억은 강림한다. 여김없이 그 꿈이 끝날 즈음이면 가위에 눌렸던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식은땀으로 젖은채 깨어나 그 기억의 장면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해야 하는 것이다. 떠 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욱씬거리며 아파온다. 그녀가 제일 먼저 제정신을 차리고 나서 떠올 린 단어는 오직 하나. 복수라는 단어…… 엘프들은 선하지만 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엘프들은 강하다. 검과 마법. 두 힘을 동시에 사 용할수 있는 종족이면서도 그 진도가 인간보다는 조금 더 빠른 것이다. 거기다가 수명 역시 인간보다 더더욱더 길다. 그러나 엘프중에서 소드 마스터 그 이상의 경지를 발견한 이들은 거의 존재치 않는다. 9서클에 도달한 엘프는 존재치 않는다. 그 이유는 엘프들도 알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감정이라는 격류를 견뎌내고 나서 생기는 보다 더 높은 정신을 구가하는 그 러한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유리엘은 정신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인간들을 만났고, 인간의 장점을 조금이나마 가졌다. 그리고 엘프의 성격이라는 것이 바인의 단 한 번의 찌르기. 그것으로 산산조각나버 렸다. 그날부터 어머니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한명의 소드 마스터와 한명의 7서클 마 법사에게 그녀는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녀가 그날 이후로부터 손에 들기 시작한 것은 얇은 롱 소드 한자루와 마법서 뿐이었다. 정말 미친 듯이 그녀는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배웠다. 그 집념에 그녀의 스승인 두명이 질려버릴 정도였다. 인간의 마법사 레펠테온은 엘프에게 마법을 전수받은 자다. 그리고 드래곤이 쓴 마법서도 한권쯤 본 존재였다. 엘프 시리엘은 그들의 은인이었고, 그는 유리엘에게 자신이 배운 모든 것들을 가르쳤다. 전투적인 마법의 활용부터 응용까지. 그도 바인의 마법과 그 마법적 운용 을 생각하면 소름부터 돋았기에 그날부터 유리엘과 함께 자신의 공부를 시작했고, 젊은 소 드 마스터 유스 역시 그날부터 자신을 혹사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검을 휘둘러댔다. 아마 그 즈음 바인이 이미 9서클의 마스터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유리엘의 수련속도는 빨랐다. 엘프라서 그런지 몰라도 기와 마나에 좀더 친화적이고 정신적 으로 높은 경지에 이른 엘프의 영성을 지닌 그녀였기에 벌써 1서클의 스펠 대부분은 터득하 고 있었고. 검술도 많은 진척을 보이고 있었다. 유스 역시 엘프에게서 검술을 배웠다. 그러 나 엘프에게서 사사받은 검술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인간의 검술과 흡사한 검술이었기에 유스 은 유리엘이 조금 걱정되었다. 그러나 유리엘은 정말 그 스스로도 엘프가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검술을 배워 나갔다. 역시 하프 엘프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엘리멘트 엘프 의 피를 이었기에 일반 엘프보다 오히려 더 영성으로써는 높을 텐데. 그녀는 놀랍도록 빠르 게 타격계열의 검술에 적응했고, 레펠테온의 전투마법 훈련에도 적응했다. 바인과 영이라는 인간인지 의심스러운 두 천재들이 각기 9급의 마법과 현경의 극에 이르를 즈음이 바로 이때. 두명의 나이는 둘 모두 18세였다. "내가 배운 검술은 본래 엘프의 검술중에서도 인간의 검술과 흡사한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 검술의 많은 부분을 고쳐가면서 나의 몸에 맞게 변형시켰다. 너 역시 그리 해야 할 테지 만 내 검술인 라이팅 블레이드는 소화해내기 힘들 것이다. 지나치게 인간의 검술과 비슷하 기에 그 본질이 많이 변화한 때문이다. 내 검술은 기의 발출을 주로 하는 검술이며, 광검이라고도 불리는 이 검술은 빠름을 주로한 다. 힘보다는 빠르기다. 그리고 찌르기가 조금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순간의 반짝 임과 같은 그것이 검에 실린 기로써 발현되어 보통 운용해서 오의에 해당하는 기술들 대부 분은 극한쾌와 순백색의 기운을 뿜어내서 존재를 베고, 찌르는 것이다. 총 11개의 비기와 27 개의 검형. 그리고 두종류의 스텝이 존재한다. 나머지 제대로된 검의 따위는 네가 스스로 터 득해야 할 것이다. 깨달음을 설명해 줄수는 없으니까." "……네." 표정이 많이 사라져버린 유리엘은 아주 진지하게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조금의 안쓰 러움을 느낀 유스이었지만 수련에 있어서는 진지하게 임해야 했기에 그 감정을 애써 억누르 면서 먼저 검을 들어서 그녀에게 검형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시작한 제 1 검형은 조금 방어적인 성향이 강한 검격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검형부터는 지독히도 빠른 쾌검이 었다. 도저히 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빠른 찌르기와 베기가 사방을 난자하고 있었는데. 다른 검형이 모두 끝날 즈음 유리엘은 검풍에 흩날리 먼지 때문에 옷을 털어내고 있었다. 유스은 그 다음 비기의 검형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기의 검형 11개는 단순하기 그지 없어 서 첫 번째 비기의 검형은 단순히 강하고 빠르게 수평으로 베는것에 지나지 않았다. 두 번 째 비기의 검형은 수직 내려치기, 그리고 8방 베기가 전부 끝나고 아홉번째의 비기는 몸을 회전시키면서 모든 방위를 8방베기로 자르는 것이었고, 열번째의 비기에서는 도약해서 사방 을 전방위 베기로 난자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마지막것은 달랐다. 수없이 많은 십자의 검형이 겹치고 겹치는 환영이 그려진 것으로, 이 광검의 검형중에서 유일하게 극쾌이면서도 환의 구결을 짚어 넣은 검결이었다. "최종 비기는 서전 크로스. 팔방마다 세 개의 검강으로 십자가를 그려 겹쳐서 그 힘을 극한 까지 증폭시켜 모든 범위를 파괴시켜 버리는 비기다. 잘못하면 내상을 입을수 있기에 자제 해야 할 검결이기도 하다." 동방에는 삼인첩이라 불리는 비기가 있다. 방금의 설명처럼 장인이나 검인을 여러 가지 형 태로 변화시켜서 세 번 겹쳐 기의 공명으로 극한까지 파괴력을 내는 수법으로. 기력이 부족 한 상태에서 펼쳤다가는 진원진기가 고갈되어 버리는데다가 내력의 소모가 심해 잘 사용하 지 않는다. 거기다가 화경의 고수가 펼쳐도 기의 운용이 힘들어 내상을 입기 쉬웠다. 여러번 검기나 강기를 겹쳐 폭주시키는 비기로. 이것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내상을 입지 않도록 개 조한 기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동방의 고대 청심문이라는 문파의 살법중 하나인 천지멸 겁天地滅劫이었다. 나중에 영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 비서秘書이기는 하지만…… 유리엘의 검형 수련이 끝난 것은, 황혼 무렵이었다. 그래도 어려운 검결과 검형들인데 고작 하루만에 전부 외워버린 것이다. 물론 검형을 완성하고 검기라도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의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었지만…… 그녀의 암기 속도는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해 력 역시 놀라워서 검형 대부분을 소화했을 때 까지는 고작 한달이 걸렸을 뿐이었다. 그 사 이에 그녀는 이미 2서클을 마스터 하고 있었다. 바인이 미뉴엘의 레어에서 나와 여행을 시작할 즈음 되어서는 벌써 푸른 검기를 만들어내 소드 익스퍼트 하급에 올라 있었고. 3서클의 마스터가 되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 었다. 유스와 레펠테온이 그녀를 데리고 엘프들이 거주하는 숲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 길을 나섰을 즈음이 바로 바인이 길을 나섰을 때였다. 바인이 미뉴엘의 레어에서 나와서 여러 짐들을 챙기고 육포 하나를 잘라서 질겅질겅 씹고, 간혹 수통을 열어 물을 마시면서 걸어나오자 아침의 공기는 그를 반겼다. 금빛의 햇살은 창 공이라는 공간을 넘어 그를 따스하게 비춰 주었다. 그러나 결코 바인의 분위기가 되어버린 듯한 음울한 슬픔은 결코 녹지 않았다. 여전히 무심한 듯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가볍게 입속으로 짤막하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는 걷기 시작했다. 인상을 가볍게 찡 그린 것이 눈이 부셨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광익의를 걸친채 가볍게 의지를 발현했고, 광익의. 그 희디 흰 로브에서는 ― 전에 입 었던 로브는 미뉴엘에게 반환했다. ― 강렬한 흰 빛살을 머금은 날개가 펼쳐져 그를 중력에 서 벗어나게 했다. 날아오른 그는 몇번 나는 연습을 해 보더니 익숙해진 듯 금방 속도를 내 어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공기가 빠르게 몸에 와 닿아 광익의를 펄럭이게 하고, 길어진 머리카락을 공기중에 내 던져 찰랑거리게 만든다. 혼연의 지팡이를 쥐고 있던 그는 그것을 품속에 집어 넣고, 멘 가방을 9서클 마스터의 특권 인 아공간에 집어 넣은채 한참을 날고 있었다. 미뉴엘. 그녀의 숲은 넓어서 20여분을 쾌속으 로 날고 있었음에도 간신히 5분의 1이나 통과했을 정도였다. 그의 관념으로 따졌을때, 시속 7, 80km 정도로 계속 쏘아져 나가고 있었지만. 아마 숲의 끝에서 끝까지가 대충 120km정도 가 되는 것 같았다. 정말 지독히도 넓은 숲이었다. 그런 숲이 대륙의 일부 정도에 불과하니 아스타르 대륙의 넓이도 알아 줘야 될 것 같다. 역시 동대륙과 서대륙 둘만으로 행성의 반 을 차지할 정도니 역시 넓기는 넓다. 공기를 가르면서 쏘아져 나가지만 역시 바람이 너무 거칠어서 조금 눈이 아파왔다. 광익의 에 의지를 보내 엷은 빛의 막을 형성하자 그제야 옷과 머리카락은 펄럭임을 멈추었다. 빠르 게 쏘아져 나가던 바인은 날개를 거칠게 퍼덕여 멈추었다. 마법적인 힘이라 날개를 움직이 지 않아도 상관 없었지만 가속을 위해서는 사용해야 했다. "와이번Wyvern…… 셋이군." 앞다리가 없고 오직 날개만 존재하는 와이번이 높게 떠올라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아무 래도 먹이로 삼은 듯 했다. 바인의 등에 달린 날개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본체(?)만을 향해서 쏘아져 오고 있었다. 거리를 좁혀오는 와이번을 보면서 바인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나서 품속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스페이스 백팩 마법이 걸린 로브의 주머니 안쪽에서 예의 그 핸드 캐논을 빼 냈다. 허리에 걸린 소드 블래스터는 무시한 것이다. 장전은 이미 되어있 었기에 빼 내고 나서 겨냥한 그는 정말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콰쾅!! 총구에서 터져나온 굉음과 요란한 불꽃. 그러나 무반동기 덕분으로 바인은 조금도 반동을 받지 않은채 똑같은 자세로 겨냥하고 있었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바인은 즉시 손을 들어 총신을 잡고 잡아 당겼고.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조금 찌그러진 은빛의 탄피가 총신 옆구 멍에서 튕겨져 나갔고, 한발은 다시 장전됐다. 바인은 싸늘하게 웃으면서 꼭 샷건을 다루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다시 한발을 날렸다. 콰쾅!! 아까와 똑같은 소리. 와이번 하나는 첫발에 머리통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목 아래쪽도 어느 정도 날아가버려서 이 핸드 캐논의 파괴력이 어떤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했다. 무뇌아가 되 버린 와이번 하나는 그대로 추락하여 나뭇가지들을 요란뻑적지근하게 부러뜨리면서 죽음을 맞았고, 두 번째 탄은 한 와이번의 등짝에 작렬해 장기들과 척추를 파괴해서 다시 추락하게 했다. 바인은 사라졌다고 생각한 유머감각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며 ― 이런 상황에서 웃 음이 나오다니. ― 짤막하게 대사를 중얼거렸다. 장전을 겸하며 말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콰쾅!! 마지막 말을 외치며 방아쇠를 당기자 정면에서 몸통이 날아가버린 와이번은 그야말로 깔끔 하게 바닥에 처박혔고, 나무 한그루가 기기긱 하는 소리를 내며 넘어가버린다. 바인은 날개 를 이용해 중심을 잡으면서 조금 더 떠올라 잔탄을 세 개 끄집어 낸 다음 다시 장전을 통해 남은 한발의 탄을 발사 준비 완료 상태로 만들어 놓고 큼직한 탄 셋을 탄창에 끼워 놓고 품 속에 집어 넣었다. 꽤 큰 핸드 캐논이 스페이스 백팩에 그대로 다 들어가자 바인은 다시 날 개를 펄럭여 가속해 아까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100. 바인이 수없이 많은 비행형 몬스터들을 격추시키며 그 통쾌함에 아주 흐릿하게 나마 미소짓 고 있을 때, 유리엘은 엘프의 숲에 도착했다. 많은 엘프들이 존재하는 곳. 왜곡공간과 여러 마법적 결계를 통해 보호되고 있는 숲. 하프 엘프인 유리엘로써는 별로 환영받지 못할만한 장소였다. 그러나 레펠테온과 유스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유리엘의 어머니는 엘프들 가운데 서도 널리 알려진 존재이며, 많은 엘프의 존경을 받은 엘리멘트 엘프 중에서도 최고위에 속 하는 존재였기에 아마도 유리엘은 받아들여 질 것이다. 차별은 있을지라도. 유리엘은 어떤 제제를 가해오든지 간에 자신을 강하게만 해준다면 엘프라는 종족을 철저하 게 이용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었다. 레펠테온 역시 그러는게 낫다는 말을 했고. 막말이지만 솔직히 엘프라는 종족은 아집과 자존심이 강해서 그 프라이드에 침범이 될 만한 존재인 하 프 엘프는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하고 자유롭지만 호전적인 면도 없잖아 있어 서 결코 따사로운 성미만을 지닌 선한 종족이 아니었다. 엘프에 대해 어떤 환상을 지니고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잊는게 좋다. 천사의 탈을 쓴 악마만큼이나 잔혹해질수 있는 그들이었다. 만약 자연과 조화와 포용을 이 룬다면 그 자연의 일부인 인간을 어째서 포용할수 없는가? 그들과 어울려 생긴 하프엘프들 을 어째서 포용할수 없는가. 그들은 결코 선하지 않다. 차라리 진취적인 면이 많은 ― 파괴 적 면도 강하지만 ― 인간이 더 낫지 않을까. 시간에 묻혀 살아가는 무감각한 그들보다는 차라리 감정이라는 면이 조금 더 강한 인간이 나을 것이다. 그 감정에 휩쓸려 자신의 그림 자에 먹히는 인간이 많을지라도. 그들은 활동적이니까. 엘프이면서도 인간의 장점을 갖기 시작한 유리엘은 어떻게 보면 오히려 다른 엘프들보다는 훨씬 나은 존재다. 엘프와 인간의 장점을 모두 지니게 되었으니까. 두 종족의 단점 대부분도 그 장점의 융화로 녹아버렸고. 여행은 짧았다. 마력파동변환전수 계산이 끝나고 나서 그 마력파동장. 즉, 리콜Recall 스펠 Spell을 위한 마법진이 닫는 곳까지 이동한후 바로 리콜 스펠을 이용해서 모두 공간이동해 서 엘프들이 거주하는 숲 근처로 온 것일 뿐이었다. 기의 파동을 받아들이고, 마나의 힘을 다루는 수업으로 인해 백색의 빛을 내는 검기를 만들어내는데까지 성공시키고 나서 유리엘 은 이렇게 엘프들이 사는 숲에 와 있는 것이다. 마법은 3서클에서 더 진척이 없었다. 숲의 입구는 운무. 순백의 운무가 은은하게 감돌고 있어 바인이 바라보고 있던 숲의 깊이와 다를바가 없을 정도였다. 아침즈음이었지만 소드 마스터 유스의 감지 범위에는 많은 기척들 이 서성이고 있었다. 유스와 레펠테온을 알아 본것인지. 기척들중 셋이 움직여서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아주 가벼운 동작으로 착지한 그들의 몸에서는 강한 기의 흔적이 풍겨나왔고, 유스는 그들이 대 충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서 상급 사이 쯤 되는 실력을 지닌 것을 깨달았다. 레펠테온은 그 들의 의식과 무의식 수준이 이제 5서클 마스터 수준인 것을 느끼고는 속으로나마 코웃음을 쳤다. 젊은 엘프들이군. 차라리 유리엘이 더 진도가 빠를 것이다. 그들 눈에는 시리엘과 그 녀의 딸인 유리엘 외에는 엘프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껍데기들로 비쳤기에. 엘프들과 함께 자랐기에 오히려 그들은 더욱더 엘프들의 폐단을 잘 알고 있었다. 바닥에 착지한 엘프들중 둘은 금발이고, 다른 하나는 짙은 순흑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 이었다. 동방의 단궁과 비슷할만큼 작고 탄력있는 활과 최고급인 화살이 화살통에 다발로 꽂혀있었다. 소검 한자루씩을 허리에 찬채 아주 활동적인 복장으로 상당히 노출이 심했다. 그러나 성별이 남성인 엘프라도 외모 때문인지 거부감은 없었다. 인간들이 입으면 노출이 심하고, 엘프들이 입으면 역동적인 분위기가 나타나는 복장이랄까. 레펠테온이나 유스나 둘 모두 정신수양이 상당히 깊었기에 그 복장에 동요하지는 않았다. 유리엘도 이미 많은 정신충격과 그것을 이겨낸 정신력이 있었기에 그런 것 따위에 신경쓸만 큼 낮은 정신수준도 아니었다. 그중 흑발의 엘프 여성이 암묵적으로 높은 지위인 듯, 그들에 게 말을 걸어왔다. "레펠테온 님과 유스 님. 돌아오셨군요. 그런데…… 그 아이는……?" 레펠테온은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유리엘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분의 딸이네." 그녀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하프 엘프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 때문에 유스는 내심 혀를 찼다. 아무래도 역시 하프 엘프라는 점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협박하면 그만이었 다. 유스는 소드 마스터에. 엘리멘트 엘프의 장로나 엘프 로드도 쉽게 대할수 없을 만큼 강 한 7서클의 마스터인 레펠테온의 힘이 합쳐지면 8서클 마스터인데다가 전투마법도 상당한 조예를 이룬 바인을 합공해 물러나게 할 정도가 된다. 역시 엘프는 머리가 좋다. 그리고 동시에 합리적이다. 그런 사실들에 생각이 미친 듯. 그 엘 프의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통과. 시리엘에 대한 존경심도 한몫 한 듯. 유리엘도 통과시 켰다. 레펠테온들은 그 숲의 입구를 통과해 안개가 휘감아 돌고 있는 나무들 사이를 지났다. 다시 숲 위로 그들은 올라 섰다. 유스는 많은 기척들을 느꼈지만 입구를 소란없이 통과한 이들이었기에 문제없이 넘어갔다. 아까 그 흑발의 엘프 여성안 아무래도 이곳을 통솔할 정 도로 경험있고 나이가 제법 되는 이였던 모양이다. 그녀가 통과시키자 아무도 제지하지 않 았던 것이다. 의외로군. 하고 레펠테온은 중얼거렸다. 수해樹海. 푸르른 수해. 그들은 수해를 거쳐 상당한 시간을 걷고 나서야 마을에 도착했다. 집들은 대부분 진흙을 마법적 불꽃으로 구워 만들어 쌓은 종류이거나 아니면 여러 가지 마 법을 이용해서 만든 돌집들 뿐이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들은 나무를 이용해서 집을 짓기보 다는 차라리 나무의 근원인 흙과 그 흙의 근원인 돌을 이용해 집을 짓는 것이 낫다는 결론 을 내린 모양이다. 차라리 드워프들에게 도움을 받는게 나을 정도로 조잡했지만 나름대로 사용할만은 하나보다. 장인중의 장인. 장인의 종족이자 문명을 쌓아나가는 종족이라 불리는 드워프들이나 노움들 이 본다면 평소에 그 도도한 엘프들이 자신들을 오랜세월동안 탐탁찮게 여기며 인정해 주지 않아 쌓이고 쌓인 분통을 유쾌와 상쾌와 통쾌를 외치면서 통렬하게 비웃어 줄 정도로 볼품 없었지만 마법적 불꽃과 점성좋은 흙고 몇몇 보補를 위한 재료를 첨가해서 단단하고 튼튼하 게 만들어져 있었다. 뭐, 그렇다 해도 3, 4서클 정도의 마법적 공격이나 바인이 소유하고 있 는 핸드 캐논Hand Cannon 한방이면 산산조각 나버리겠지만. 물리적인 충격은 상당히 버틸 수 있을 만큼 튼튼했다. 엘프들이야 심미안도 괜찮고 인간들 중에서 간혹 나오는 변태적 취향을 지닐만큼 타락한 종 도 아니기에 물론 저런 집이라고 별로 보기 좋을 리가 없었지만 그들은 손재주가 별로 없었 다. 의외로 그들은 검술과 마법이라는 파괴적인 ― 동방대륙과는 달리 여기서는 활검도 없 었다. 도道를 추구하는 궁극의 검따위는 생각지도 않는 다는 것이다. ― 힘을 잘 사용했기 에, 파괴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듯 하지만 굴을 캐고 철광석과 보석을 캐어 가공하여 아 름다운 예술을 통해 많은 이들을 감화시키는 ― 물론 탐욕 때문에 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르 지만. ― 면이 있는 드워프보다 오히려 파괴적인 성향이 많았다. 뭐, 엘프들이라고 결코 고상하지는 않다. 웬만하면 육식을 하지 않지만 하는 엘프들도 있고. 상당히 트인 엘프들도 많다. 바인에게 소멸당한 엘리멘트 엘프 시리엘도 그중 하나고. 그럭 저럭 트였다고나 할까. 유리엘이야 이미 바인과 연루되어 망가질대로 망가졌으니 넘어가는 게 좋겠다. 사실상 육식이라는게 살생殺生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동물들은 자기들 나름대 로 울어 젖히면서 대화 비슷한 것을 하기도 하고. 커뮤니케이션도 있는데다가 측은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도살할 때 안쓰러움을 느끼고, 심지어는 메쓰꺼움 때문에 현장에서 도륙된 짐승의 고기가 다듬어져서 불에 구워지면 아마 넘기기도 힘들 것이다. 엘프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그런 행위가 싫은건지, 아니면 엘프라는 종이라는 것이 다른 종 족들보다 월등히 뛰어나고 고상하고 선해서 도살을 통해 얻어지는 음식물을 섭취해서 살아 간다는게 싫다는 건지. 그들은 채식을 통해 식물들이 허용한 범위에서의 음식물들을 채취해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맞는 말인가? 그 나무들이 말을 할줄 알고, 고통까지 느낀다면 손도 못대겠지. 열매나 잎사귀를 먹는다고는 하지만 동물로 따지면 그건 태아를 뜯어먹는것 하고 뭐가 다르단 말인가. 열매에는 씨가 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씨앗을 둘러싸고 있는 양 수나 다름이 아니다. 임산부의 배를 파헤치고 양수를 마셔대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말 이 조금(?) 잔인무도 해졌지만 맞는 말 아닌가? 어쩌면 초대 엘프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그들중 대부분이 육식으로 인한 콜레스테롤 축적이 민첩한 몸놀림과 아름다운 몸매(?) 가꾸기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채식으로 전환 하여 그게 전통이 되었다가 이상하게 변질된 것일지도 모른다. 엘프라는 족속들은 인간들이 품은 환상과는 먼 당신들이다. 채식은 몸에 좋으니까 그 오랜 삶을 살고도 장수하고 싶었던 특이 ― 인간으로써는 당연한데도 말이다. 솔직히 엘프라는 족속들이 조화를 이루고 순환에 따른다고는 하지만 그건 방임에다가 무기력과 허무감에 취해 뒹구는 인간과 뭐가 다른가. 전혀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 엘프가 채식해서 몸에 탁기濁氣를 축적하지 않고 그나마 조 금 나은 곡기穀氣를 쌓아가면서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타의 모범이 되어 수많은 엘프들이 오염(?)되었을지도…… 육식을 못하는것도 아닌 주제에 뭐 그렇게 따지는게 많은지 모르겠다. 나무에 살짝 도끼날 만 닿아도 기염을 토해내며(?) 활질을 해대는 족속. 그것이 엘프다. 초면인 개, 돼지에 심지 어 늑대 따위는 못죽여도 알고지내던 드워프나 인간은 참살斬殺 해버리는게 엘프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배은망덕에 신의부족. 그리고 속어로 싸가지가 없는 종족이라고도 할수 있다. 물론 그렇게 어긋난 엘프가 있을리 없지만 ― 가끔 결벽엘프가 한둘은 나온다. ― . 하여튼 인간들은 엘프라는 족속들에 대해서 생각을 고쳐야 한다. 인간들이 보기에 제법 아 름다운 외모나 ― 따지고 보면 본편의 주인공인 청淸이 더 아름답게 생기지 않았던가? 웬만 한 엘프 여성과 비교해봐도 능가했으면 능가했지 부족하지는 않다. ― 긴 수명. 그리고 기와 마나를 아주 잘 다룰수 있는 능력과 정령을 대부분 사용할수 있고 또 냉정한 결단과 필요한 지혜와 지식이 어떤 환상을 부르는 것 같다. 예의 로맨스Romance나 사가Saga 따위에 출현 하는 엘프들은 처절하게 미화되어 있지 아니한가. 그 환상을 엘프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상 세한 지식은 산산히 깨부수게 하는 것이다. 책은 지식의 보고지만 지혜의 보고는 아니다. 명심하는게 좋다. 책이라고 꼭 사실만 쓰여있 으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이래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엘프들의 마을. 그 중앙에 있는 다른 나무들보다 두배는 높고 두배는 넓은 거목의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역시 다른 엘프들이 지은 건물보다 두배 는 세련되고 두배는 넓고 두배는 아름답고, 두배는 정교하고 두배는 튼튼해 보이는 그런 건 물로 레펠테온들은 걸어갔다. 그 집은, 이 엘프들의 부락. 그리고 그 부락의 중심부인 엘리 멘트 엘프들의 거처로 통하는 워프 게이트가 존재하는 '소통로' 였다. 집이 큰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마법적 왜곡을 버티기 위해서. 그 집을 구성하는 재료들도 대부분 강화마법이 부 여되어 있었다. 여러 절차를 거친 레펠테온은 일회용이지만 워프 게이트를 열어서 특수한 유사왜곡 아공간 으로 연결짓게 해주는 마력이 깃든 수정을 받아서 건물 내로 들어갔다. 유리엘은 아주 살벌 한 시선을 받았지만 그녀는 예전의 유리엘이 아니라 몇배는 살벌한 눈빛으로 맞받아쳐 버렸 던 것이다. 엘리멘트 엘프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녹발인 그녀가 왜 보통 엘프 정도의 기운을 풍기고 있는지, 모든 엘프들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프 엘프는 엘프들에게 있어 배척의 대상이니까. 101. 바인은 혀를 가볍게 차면서 핸드 캐논을 들어 방아쇠를 주저없이 당겼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작렬탄이 아닌 풀메탈재킷이었지만 정말 터무니없이 강 력했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그를 향해 열심히 달려오던 트롤의 숨골에 내리꽂힌 탄은 환상적인 파괴력으로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버리고는 날아가 뒤쪽의 나무마저 박살내고 지 나갔다. 무반동기가 없었다면 바인이라도 반동에 뼈가 상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작렬탄이 아 까운데다가 나무들이 이렇게 빽빽한 숲에서는 별로 효용도 없다. 작렬탄은 와이번들에게만 사용했지만 땅에 내려와서 공중에서 본 숲 근처의 길로 접근하는 지금 사용할 이유가 없었 다. 사실 와이번이라는 것들에게도 풀메탈재킷만 사용해도 되었겠지만…… 요란뻑적지근하게 재생할 여부도 없이 목만 날아가 버렸다. 거기다가 기관지와 식도, 그리고 혈관이 지나가는 곳까지 모조리 날려버린 풀메탈재킷의 위력은 재생은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듯 완전히 그 부분의 내용물조차 박살내 버렸다. 바인은 아직도 입을 벌리며 이빨을 드러내 죽고 싶지 않다는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트롤의 흉측한 대머리를 혼연의 지팡이로 내 리쳐 박살내버렸다. 오거Oger를 능가할 정도가 되어있는 힘은 정말 상상을 능가하여. 아무 리 혼연의 지팡이가 마법기보라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파괴력으로 단단한 트롤 의 두 개골을 박살내고 뇌수를 바닥에 쏟게 한 것이다. 트롤의 피는 인간의 피보다 더 냄새가 좋지 않았지만 바인의 표정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스펠을 시동어조차 생략하고 시전해 모조리 탄화시켜 버릴 뿐. 혼연의 지팡이의 보조 적 효과중의 하나였다. 그러고 보니 방금 피어난 트롤의 독혈향은 주변에 가득 메워진 끔찍 한 여러 가지 냄새들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바인이 핸드 캐논을 갈무리하고 주변을 돌아볼 즈음 되어서는 이 냄새 때문에 많은 몬스터들이 질려서 피해갈 정도가 되어 있었다. 바람이 거의 없는 수해였기에 냄새가 흩어질 일도 없었다. 바인은 묵묵히 주변을 바 라보았다. 정말 처절한 광경이라고 밖에 표현할수 없는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일곱구 정도가 되어보이는 트롤Troll의 사체는 정말 처참하게 박살나 있었다. 팔, 다리 정도 가 적당히(?) 남아있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것들도 상당히 타들어가 꼭 태우다 만 담배꼴같 았다. 트롤은 재생력이 좋기에 화염계열 마법이 잘 먹힌다. 그래서인지 바인이 사용한 마법 은 대부분 사체의 형태로 추측해볼 때 5서클의 익스플로젼Explosion이나 익스플로시브 애로 우Explosive Arrow. 혹은 슬라이스Slice 마법 후 바로 플레임 스파우트Flame Spout를 먹여 서 날려버린 것일 것이다. 일단 트롤이라는 놈은 신경부분에 재생을 명령하는 특수 효소가 있는 모양인지 끊어져 나가도 주워 붙이기 전에 떨어져 나간 팔이나 다리 같은 부위에서 재 생을 준비하듯 세포가 조금씩 활성화 상태로 들어가 있다. 모조리 태워버리면 고열로 인한 변성 때문에 재생이고 뭐고 소용 없겠지만. 그 다음으로는 트롤따위(?)와는 비교가 안되는 몬스터. 힘 하나는 알아주는 오거Oger의 사 체 두구가 존재했다. 이런 숲에 오거가 있을리 없었다. 당연히 미뉴엘의 작품. 역시 보통 오 거와는 달라서 하드 레더에 강철 제의 여러 잡다한 대검류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 대검 에 마나 슬래쉬Mana Slash의 스펠이 인첸팅 되어있음은 다연한 일이었고. 미뉴엘에게 있어 실력도 없는것들이 감히 드래곤 레어 근처에 쳐들어와서 깝죽대는 꼴은 도저히 못봐줄 일이 었던 것이다. "이래저래…… 귀찮군. 스펙트럼 디사이더Spectrum Deicider를 써버리면 좋겠지만……" 조금 귀찮다는 듯한 표정이 된 바인은 자신이 입은 흰 광익의를 가볍게 쓸며 중얼거렸다. 사실 8급의 마법인 스펙트럼 디사이더라는 것은 스펙트럼. 분광된 빛의 극파장을 역충돌시 켜서 마나 붐으로 극대증폭시켜 순수한 흰빛의 에너지 덩어리로 폭렬구간을 만들어 모조리 파괴하는 마법이다. 그리고 추가로 열폭풍까지 일으켜 장범위를 휩쓸어버리는 가공스러운 위력을 자랑하는, 8급에서도 궁극마법에 속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런 마법을 발할수 있도록 해주는 광익의는 확실히 악한의 손에 들어가면 웬만한 나라 한둘쯤은 그냥 박살나버 릴 것이다. 물론 남발했다가는 광익의 자체가 못쓰게 되겠지만. 아무리 아티펙트가 좋아도 마법사는 이길수 없는 것이다. 아티펙트라고 딜레이 없이 마법을 쓸수 있는게 아니다. 단지 마법사보다 좀더 빠를뿐. 클래스 마법으로 부여되었다고는 하나 주변의 마나를 급히 빨아들 여 매체에 축적시켰다 발하는 것이 아니던가. '역시 파괴수단으로는 핸드 캐논보다는 탄 소모가 없는게 낫겠지.' 그는 핸드 캐논 대신 다른 것을 써먹어 보도록 하고는 품속에서 '그것'을 빼 들었다. 아주 흐릿한 냉소를 떠올린 그는 정말 그 로브 안에 있었다고는 생각도 안될만큼 터무니 없이 긴 그것을 잡아서 마법석을 깎아 만든 손잡이 두 개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천천히 마나홀 에 뭉쳐져 있는 자신의 마나를 모아서 그 손잡이를 통해 복잡한 마법기관을 통해 정제되도 록 만들어진 마법학적 기관을 지나 그 끄트머리에서 조금 가까운 마력집약구에 모여들자 작 은 막대 하나가 달려있는 그곳에서 연사連射 모드Mode라고 자그마하게 적혀있는 부분으로 움직여 걸쇠에 걸자 딸칵 하는 소리가 나면서 '총구' 부분의 떨어져 나가있던 하나의 마력 매 질석이 여러개 박힌 판이 회전하며 마력응집구와 맞물리는 소리가 들린다. 찰칵 하고 말이 다. 바인의 입가에 흐릿한 냉소가 다시 맺힌 후. 그는 이제 희석되어 어디론가 사라진 냄새 때문에라도 몰려들고 있는 많은 기척들을 향해 그것의 총구를 겨누었다. '비록 화약이나 장약을 이용하는게 아니지만 역시 총이라는 것은 이런 손맛 때문에 쓰는 모 양이군. 자. 오너라.' 바사사사삭! 살기를 풍기면서 쇄도해 들어오는 많은 몬스터들을 향해 싸늘한 냉소를 지어주면서 바인은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투투투투! 총구 부위에 난 선 모양의 구멍에서 옆으로 녹색의 광휘가 마치 소총을 난사하는 듯한 느낌 처럼 퍼져나오고. 수십,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초 고압축 마나의 탄환이 녹색의 신선한(?) 광휘를 번뜩이며 쏘아져 나가 나무들을 갈기갈기 찢어 발겨 무수히 작은 구멍을 뚫고 나뭇 조각들을 튕겨나가게 하며 많은 몬스터들의 전신을 꿰뚫고 지나갔다. 마나를 응축시켜 만든 강기탄을 마법적총기구로 난사하다니! 이것 역시 우리 음흉한 미뉴엘 어르신의 작품이었다. 설명이야 굳이 할 필요도 없으리라. 마 나를 이용한 것으로. 핸드캐논이 주는 한방의 통쾌함(…)이 아니라 난사함으로써의 그 쾌감 을 주도록 특수제작된. 미뉴엘의 취미를 알만한 물건이다. 어쨌든 그 제작자의 의도대로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끼면서도 바인은 여전히 아주 가끔 떠오르는 냉소 외에는 거의 다른 표정이 없는 그 무심하고 냉막한 얼굴을 유지한채 무심하 게 몸을 회전시켜 나가면서. 아주 간단하게 방아쇠를 갈기며 자신의 초고압 마력탄을 총구 에서 난사해 많은 몬스터들의 몸을 걸레로 만들고 있었다. 수많은 걸레들. 정말 걸레로 사용 해도 괜찮을 정도로 짓이겨진 몬스터들의 사체가 대량으로 양산되고, 마침내 바인이 손가락 을 방아쇠에서 끌어 낸 것은. 거의 클래스 5 분량의 축적된 마나가 난사된 후였다. 바인은 조금은 상쾌한 듯한 분위기가 되어 총구를 들어 올려서 가볍게 불어보려다가 자신이 한심하 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나 참. 한심하군. 과열이 되었을 리가 없잖아. 초연이 올라올리도 없고.'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요란하게 너덜너덜해진 주변의 수많은 나무들 사이로 은근한 햇빛이 갈라져 들어오고 있었 다. 이 처참한 파괴의 정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이상하게 그 햇빛은 아늑하게 느껴졌 다. 그것을 느끼는 이는 물론 바인 뿐이다. 지금 고혼이 되어버린 몬스터들에게 물어보면 아 마도 바인이 아니라 그 질문자를 물어뜯어 개껌처럼 질겅질겅 씹어댈 것이다. 바인은 그 요술로브라 불러줘도 모자람이 없을만큼 허용 용량이 꽤 되는 그 알 수 없는 속 주머니에 다시 그것을 갈무리했다. 역시 드래곤이라는 동물은 긴 세월을 살다 보니 웬만한 아티팩트는 만들어 쌓아놓고 그것을 보는 재미로나마 살게 되는 모양이다. 이제 건 세이버 Gun Saber를 뽑아 든채 허공검보다야 훨씬 못하지만 그래도 정말 날 시린 그 기형의 검을 쥐어든 그는 쌍검이 아니면 역시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드는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하지만 뭐 상관 없다는 듯한 표정이 되어 다시 걸음을 내딛는 것을 보니 쌍검을 쓰기 전에는 한자 루만 다루고 있었나 보다. 금방 익숙해진 것이다. 쌍검과 일검은 많은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 하고 그새 제대로 다시 기척을 느껴가며 마법사 답지 않게 부드러우면서도 빠른 그 체술로 움직여 나가는 그의 모습은 알 수 없는 오한을 돋게 만들만큼 시렸다. 나무들 사이로 움직이며, 많은 수풀들을 건 세이버로 잘라내면서 움직인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즈음. 바인은 숲에 떠도는 묘한 살기가 많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숲 외곽으로 나왔 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정한 길로 나왔다면 관도 근처일 테지만. 사실 이 숲이라는 것이 정말 터무니없이 위험하고 흉폭한 생물 ― 미뉴엘을 뜻한다. ― 이 사는 곳 인지라 이 대륙에 사는 어떤 존재도 함부로 할수 없는 곳이었고. 그래서 신급 존재들도 가 능한한 이 숲 근처에서 깝죽거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바인은 역시 자신이 제대로 짚어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방향치는 아니라는 사실에 안 심하며 걸어나왔다. 그가 읽었던 많은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대부분이 3치에 속했기 때문에 혹여 자신도 그렇지 않을까 의심스러웠던 것이다(뜨끔). 하지만 그것도 그럴것이, 퓨 전 판타지에 흔히 나오는 차원 이동자들이 길치에 속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도시에 태어 나서 이래저래 돌아다녀 보지도 않았고. 허구한날 아는 길만 차를 타고 이동하고, 기계적인 삶을 살아가니 길을 보는 눈이 발달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특히 방향치는 더욱 더 그렇다. 여러 건물들의 숲에서 자연적 이정표조차 없는데 방향을 제대로 알 리가 없잖은가. 태양이 라는 것도 있지만 솔직히 도시에서 방향 안다고 제대로 움직일수 있을까. 완전 계획도시라 면 모를까. 방사형과 무계획성에 속하는 구역이 많은 서울같은 도시라면 사람 죽여놓는데 아주 훌륭한 요건이 된다. 많은 이들이 투덜 거리는 것이. 다른 차원에 가는 행운(?)을 잡았으면 조금 멋진 면을 보여 야 되지 않느냐. 생각없이 행동하고 이리저리 다 부수고 죽이고 힘이 있으면서도 제대로 활 용 못하고. 그렇다고 머리가 좋냐, 아니면 영웅적 면모가 있냐. 먹을 것 밝히지. 미인에게 꼼 짝 못하지. 길치에 방향치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백치에 가까운 캐릭터들도 있다. 거기다가 삑 하고 인내선이 끊어지는 일이 다반사고 조금 말장난만 해도 폭주를 시작하고…… 뭐가 잘났다고 함부로 막말하고 심지어는 의지까지 약하다. 그거야 당연하다. 왜냐! 태어나서 처참한 삶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지 아니한가. 도시 곳 곳에도 틀림없이 위험은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 험악한 세상보다야 훨씬 낫다! 길가다가 갑자기 죽을 확률도 별로 없고. 이 세상보다는 먹을것도 풍부하고 죽을 위험도 없고. 어려서 는 공부만(이것도 힘든 일이긴 하지만) 하면 되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그것도 못하는 이들 도 있지만 이 세상이 훨씬 문맹률이 높은데다가 자유 평등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게 좋 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전제군주가 멀쩡히 존재해 손가락질, 발가락질, 입질의 가벼운 장난 만으로도 수천이 죽어나가는 세상인 것이다! 모험가? 음유시인? 말이 좋다. 모험가란 종족들은 던전 하나씩 털어가면서 간신히 살아가고. 간혹 임무를 맡으면서 그 집단에서도 최강에 속하는 이들만 간신히 풍족하게 살지 않던가. 그나마 그들도 죽음의 위기속에서 살아간다. 매일 매일이 죽음의 그림자가 비치는 나날이고, 원한관계라도 맺으면 그야말로 처참하다. 일 하나만 잘못 맡아도 윗대가리들 정치싸움의 험 악함에 죽어나가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찰나에 지옥으로 떨어져버리는 것이다. 아, 지옥이라는 것이 '차원 대정화(예의 말세)'때만 잠깐 경험하고 끝나는 것이니 상관 없 나? 어쨌든 아카식 스트림에 존재를 까발겨 토해내고 다시 지옥같은 세상에 떨어진다! 자신이 그나마 얻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음유시인이라. 물론 그들이 검이나 마법을 조금 해서 모험가 성향을 띈 이들이 있다면 그나 마 낫다. 차라리 그런 힘이 없어도 음악이나 상상을 초월하도록 통달해서 귀족가에 불려가 서라도 돈으로 벌어먹고 산다면 또 모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악기라는 것의 가격은 정말 상상을 불허한다. 특히 고급악기에 속할수록 더더욱더 그렇다. 음유시인들은 그날 하루 끼니 를 채우고 돈을 아끼기 위해서 술집 근처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일도 있는 것이다. 호신술조 차 없다면 어디 골목길에서 칼맞고 죽어넘어져 이름없는 계곡의 이름없는 시체가 될 수도 있다. 거기다가 평민들 사이에서도 멸시어린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왜? 이방인은 달 갑지 않으니까.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 대부분 신관이나 마법사들의 힘에 의존하고 있는 상 황. 오지에서 전염병이라도 묻혀 오는 음유시인들은 확실히 반가운 대상이 아니다. 이 세상 은 살기 바쁜 곳이란 말이다! 한끼 한끼가 힘든 세상. 결코 좋아보이지 않는다. 평민들 삶터는 귀족들이 유희터로 간혹 보고 혹은 아주 어이없을 만큼 멍청한 동경의 대상 이 될 뿐이다. 그들은 순박하지 않다. 그들의 내면에는 귀족들만큼이나, 어쩌면 그들보다 더 추악한 욕망과 마이너스적 상념으로 가득 메워져 있는 것이다. 조금만 힘들어져도 그들의 입에서는 귀족들과 국왕을 저주하는 말이 튀어나온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상 황을 조절하는 것은 예의 '나랏님'들이니까. 그런 사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바인은 걸어갔다. 아마 이런 사실들을 바인도 깨닫고 있을 것이다. 그는 머리가 좋다. 무엇보다 복수라는 현실적인 상황에 기대어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상황. 힘도 있고, 드래곤이라는 든든한 보조자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머리가 좋다. 아주 현실적이고 냉정하다. 그래서 그는 동정과 연민을 조금이나마 평민들에게 보낼지언정. 다른 공명심에 가득찬 얼간이들처럼 이 세상의 룰을 파 괴해서 민주국가라도 만들어보겠다는 바보짓을 하려들지는 않는 것이다. 그의 제 1 목표는 지금은 '복수'다. 아니. 복수라기보다는 발악에 가깝지만. 가능성은 0%. 그렇다면 복수 대신 발악. 발버둥쳐 보기라도 해야 속시원해질 것 같아서이다.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신념은 결코 다른 얼간이들의, 체험해 보지 못한자들의 입놀림에 무너질만큼 약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영웅심이 없다. 그러나 과연 영웅이 아닐까? 그나마 여유롭게 세상을 살게 될만큼 강 한 힘과 금전과 권력 ― 9서클의 마스터라는 것은 이미 범국가적 존재다. 아마 그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 그의 주변에 많은 암투가 일어나리라. ― 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잠재적 힘만 하더라도 그는 이미 대륙의 모든 시선이 집중될만큼 대단한 존재다. "……이러다가 싫어하던 담배라도 피게 될것같군." 수많은 범위의 생각들을 파고들면서, 마치 백년은 산 고목만큼 많은 가지와 잎사귀를 지닌 생각의 상념들을 진행해 나가면서도 그는 별로 두통을 느끼지 못했다. 두통이라기 보다는. 조금의 갈증을 느꼈다. 휴식에 대한 갈증. '마을이라도 들리면 담배라도 좀 사야겠군. 시가는 독할텐데……' 이놈의 세상은 아무래도 담배나 술 없이 남자들이 살아갈만한 장소는 아닌 모양이다. 아니. 남자들…… 이라기 보다는 사는 모든 이들의. 이모탈에 속하는 모든 존재들은 아마도 자살 충동을 느끼지 않은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선, 악, 강, 약을 불문하고 삶은 나름대로의 고 달픔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102. 유리엘은 감탄하고 있었다. 마법진 위에 올라 게이트를 지나 온 곳은. 이미테이션 플레인을 적용시킨 특수 아공간인 것이다. 일명 '순수한 거짓의 파편'. 바로 이곳에 엘프 로드Elf Lord 인 그녀가 있는 것이다. 레펠테온은 묵묵히 걷고 있었다. 엘프 로드인 '그녀'는 시리엘과 많 은 친분을 나누었던 사이였기에 아마도 받아줄 것이다. 그 대우가 어떻게 될지는 알수 없으 나, 그녀는 다른 엘프들 보다는 훨씬 나은 정신 ― 제정신이라는 뜻이다. ― 상태였기에 아 마도 나쁜 대우는 아닐 것이다. 순수한 거짓의 파편은 아공간이면서 이미테이션 플레인이고 또한 세계의 축중 하나이기 때 문에 그것을 유지하는 엘프 로드는 유클리드 차원. 그러니까 본래차원으로 나갈수 없다. 그 나마 염체를 구성시켜서 어느정도의 힘을 발휘할수 있을 뿐이다. 엘프 로드들의 힘은 계승 된다. 그래서 신생차원이 아닌 이곳 차원의 엘프 로드인 그녀는 선대의 모든 지식과 의지를 받아들였기에 월등히 높은 의식을 지니고 있어 이미 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데미 갓Demi God이다. 염체만으로도 갓 에이전트 급 위력을 발할수 있지만 그 제약은 상당해서 아마 직 접적으로 대륙에 빠져나올수는 없다. 엘프 로드들의 숙명은 바로 소멸. 존재는 의지의 집결. 그래서 그들은 후대에 모든 것을 다 물려주고 존재성을 상실한채 사라져버린다. 정말 소멸인지는 알수 없다. 그것들은 로드의 힘을 계승할수 있는 종족. 녹발과 녹안을 지닌 엘리멘트 엘프들도 잘 알지 못하며. 로드들도 아마 조금만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마도 아카식 스트림에 의해 정화되어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그들은 5천년간 엘프 로드의 일을 행해야 하며. 그 후에 해방된다. 유리엘도 하프 엘프지만 엘리멘트 엘프의 피를 이었기에 엘프 로드가 될 수는 있겠지만 하지 않는게 사실상 좋은 일이기도 하다. 타 차원 에도 수많은 엘프 로드들이 있지만, 태고의 엘프인 '그'를 대신할수 없는 일이다. 태고의 엘프는 존재성 만으로도 이미 상상을 능가하는 존재이며. 바인이나 영의 내부에 존 재하는 부여된 힘과 그 의지와 맞먹는 급수의 존재일 것이다. 태고천의 힘을 쓸수 있기에 오히려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물론 힘으로 존재성을 평가해서는 안될 일이지만 그렇다는 말이다. 엘프 로드들도 본질의 내면 안에서는 중급신 정도의 의지급이 되지만 그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엘프들의 아버지인 그가 어떤 존재인지는 태고적부터 비밀이며, 적어도 신급 중에서도 최고위의 존재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지금 상황에 별로 중요 하지 않으니 다시 유리엘의 일로 넘어가자. 이 공간은 정말 상상을 능가한다. 기묘복잡막측하다고나 할까. 은빛의 하늘에 금빛 구름. 그 리고 청백색의 태양이라니. 은빛으로 흐릿하게 가라앉은 하늘은 묘하게도 잘 어울렸다. 푸른 창천이 아닌 금속성의 하늘에 역시 금속성의 빛을 머금은 두리뭉실한 구름이라니. 금으로 된 아주 가느다란 실을 뭉쳐 만든 듯한 구름은 정말 아름다웠다. 청백색으로 흔들리는 태양 은 아름답게 코로나Corona 자체의 빛만으로 타오르는 것 같았다. 청백색의 열광에 흔들리는 나무. 가로수같은 나뭇잎들 사이로 흘러내리는 빛살은 흩날리며 은근한 회흑색 그림자를 아 련하게 대지에 투영한다. 대지는 짙푸른 잔디들로 휘감겨 흔들리고, 대지는 동산처럼 봉긋하 게 솟아 있었다. 그들은 그런 동산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매번 와 보는 것이지만 정말 여기는 아름답군……" 레펠테온은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면서 동산 아래를 바라보았다. 유리엘은 눈을 동그랗게 떴 다. 감정 대부분이 죽어버린 그녀로써도 이것은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꽃의 숲. 꽃의 숲이라고밖에 표현할수 없는 빛으로 고고한 자태를 드리우고 있는 모든 것들 이 존재했다. 다만 우습게도 그 꽃에는 전혀 벌들이 꼬이지 않았다. 청백색의 태양이 보석처 럼 아름다운 빛을 머금고 있는 꽃들 사이로 내려와 비산하고, 꽃잎 위에 내려앉은 빛의 입 자조차도 튕겨져 나가 그 빛을 아름답게 뒤흔들었다. 레펠테온들은 동산 아래로 내려와 꽃 들을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유리엘은 그 환상의 광경에서 위화감을 잡아냈다. 꽃에는 생기가 없었다. 역시 이미테이션 플레인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런 광경이 솔직히 정말 진실일 리가 없지 않은가. 꽃잎들의 색도 그러했다. 한 꽃들의 줄기는 대부분 마치 보석을 빚어 만든 것과 같은 색이었다. 녹색 의 줄기가 있다 해도 그것은 에메랄드 그린Emerald Green의 숨막힐 것 같은 보석의 녹색으 로 매끈할 따름이었지. 우드 그린Wood Green의 그것은 아니었다. 블러디 루비의 붉은 색은 숨막힐 것같은 빛이고, 사파이어 블루의 그 차가움은 온도를 낮추는것만 같았다. 전부 다 보 석을 세공해 만든 것 같은 꽃들 뿐. 그 이형과 아름다움은 놀랄만 했지만 만져보자 꽃잎의 감촉과 다를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 위화감은 대체…… 막말로 하자면 대뇌를 척출해서 전기적 자극으로 연출하는 광 경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뭐랄까. 끔찍했다. 유리엘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면서 씹어 뱉 듯이 말했다. "여긴 정말 엘프가 만든 곳이 맞나요?" "……위화감이 차고 넘치는 곳이지. 자, 조금만 더 가면 '꿈의 도시'가 있다. 도시라기 보다 는…… 별 것 아니지만. 차라리 저 동산과 평범한 나무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저 나무 도 현실에 존재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유스가 대수롭잖게 말했지만, 유리엘은 묘한 경멸을 눈빛에 담아 이미테이션 플레인의 소산 물들을 바라보았다. 그 신비로움은 이미 사라져버린지 오래였다. 묘한 긴장만이 느껴질 따 름. 바람이 스쳐지나가며 꽃의 바다를 핥고 지나갔다. 그 서늘한 바람마저도 불쾌하게 느껴 질 정도로 이 공간은 위화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불쾌하군요." "당연하지. 우리는 유클리드 공간에 존재했던 이들. 그런 이들이 이런 거짓 공간에서 위화감 을 느끼지 않는다면 다시없는 둔치거나 아니면 나같은 마법에 미쳐버린 마법사 정도일게다. 허허허허." 레펠테온이 너털웃음을 터뜨리자 유리엘도 흐릿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이 햇빛도 뜨거운 청백색의 폭염은 아니다. 역시 법칙에 위배된다. 에너지 드레인을 이용해서 전자적 반발을 모두 한군데에 집결해버리면 분광으로도 순백색의 폭염을 만들어낼수 있기는 하지만 태양 자체가 청백색으로 타오르고 있는데도 이정도의 안온한 열기 밖에 느껴지지 않다니. 역시 터무니 없는 공간이다. 뭐랄까…… 어쩐지 바보같은 느낌. "이 생기없는 위화감의 바다를 지나고 나면 순금을 처바른것같은 풀들이 살랑이고 있는 길 이 나오지. 그나마 그곳은 하늘빛이 정상이야." 유스의 말은 신랄했다. 하기사. 이런 광경을 보고 나서 조금 더 정상적인(?) 광경을 보면 어 느 누가 엘프들을 욕하지 않으랴. 이곳에 초대되었다면 완전히 그들 기를 죽이기 위한 공간 일 뿐. 어떤 효용도 없어보이지 않는가. 기문진 같은거라도 설치해놨다면 모를까…… 대부분 의 기문진이 환살진이고, 자기암시를 통한 육체, 정신손상을 행하고. 아니라면 기관장치를 섞어서 사람을 살상하는 것이지. 대부분의 노루표(?) 무협에 나오는대로 돌멩이 몇 개 쌓는 다고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해서 되었다면 천지사방에 그런 진이 생겨서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을 것이 다. 실상 주변의 영기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기문진이라 영기의 흐름까지 같이 붙잡는 진법까지 설치하다 보면 건물 형태만 봐도 '아∼ 이것이 세월물좀 먹었구나. 진법이 설치되 어 있나 보다. 다들 조심해라.'가 되는 것이다. 차라리 기문진 대신 대량 살상용 기관을 설 치 하거나 화약을 싸잡아 파묻고 터뜨리는게 나을 지경이다. 물론 몇 달이나 몇 년만 쓸거라면 상관 없지만. 진법이라는 것이 아무리 사악독랄한 것이라고 하고 정묘하다 해도 파훼 안되 는 진법이라는 것은 존재치 않는다. 환상진이라는 것 대부분이 영기를 이용해 존재의 의식을 자극해 암시를 주는 것이다. 의지 만 정말 굳건하다면 사문을 밟아도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의 보완을 위해 기관을 섞거 나 아니면 날카로운 창칼 같은 종류의 무기나 함정을 파놓고 함부로 해체하지 못하도록 하 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검풍만 날려도 대부분이 다 해체되어 버릴테지. 영기의 힘 자체가 방어벽을 구축하기도 하지만…… 폭발성의 검강 한 번만 날려도 다 박살나 버릴테 지. 그런데 대체 왜 무림인들은 꼭 알고도 들어가서 죽어나가는지 알수가 없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걸까. 무식한걸까. 아니면 무식해서 용감한가? "빨리 가죠. 숨막혀서 못참겠어요." 유리엘의 말에 둘 모두 꽃의 숲을 짓밟으면서 ― 아마 엘프들도 뭐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들도 이것에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테니. ― 걸어간다. 일부러 뭉 개기까지 할 정도였다. 이 위화감의 바다임과 동시에 색깔의 바다이면서도 오히려 무색無色 해 보이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생기와 색깔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그들이었다. 내 면을 볼줄 모르는 범인이나 얼간이라면 이 아름답게만 보이는 광경에 취해서 그것을 어지럽 힌다고 생각되는 저 셋을 칼로 쑤시려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조금 위화감이 덜한, 유스가 신랄하게 씹어댄 그 길을 지나 꿈의 도시로 향하고 나 서 유리엘이 얻은 것은. 엘프들도 허영심이 있나. 하는 의문 뿐이었다. 오색광이 은은하게 흐르는 투명한 돌들로 지어진 간소하게 보이는 여러 집들, 그 안쪽에는 많은 엘프들이 움직 이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 엘리멘트 엘프들이 사는 곳은 아니었다. 다만 저들은 먹고 마시고 가 필요치 않은 이곳에서 다만 업무를 처리하고 있을 뿐. 무슨 엘프들 사는데 업무가 필요 하냐 할지도 모르지만 엘프들도 많은 일들이 있다. 엘프 마을들을 유지하는 일들이 단지 숲 에서 얻어지는 것만으로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신계나 그린 드래곤들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금새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엘프도 의외로 숫자가 상당하니까. 이곳에 있는 엘프들은 전부 다 녹발녹안을 지니고 있었다. 간혹 다른 머리색을 지닌 엘프들 도 있었지만 그들은 유전자 이상이거나 아니면 '선택된 혈통'의 엘리멘트 엘프였던 것이다. 엘리멘트 엘프들 가운데서도 간혹 유전자 이상으로 머리카락 색이 다른 엘프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선택받은 혈통이라는 것은 엘프들의 신이자 이터널 엘프 마스터인 '그'가 부여한 힘을 쓸수 있는 '신성의 혈족'. 그리고 기에 좀더 친밀하여 소드 마스터 엘프를 가장 많이 배출한 '원기의 일족'. 그리고 마나에 조금 더 친밀하여 많은 8서클 마스터를 배출한 '초월의 일족'. 마지막으로 절대적인 친화력을 지녀 물아일체. 만물과 자신을 소통할수 있는 능력을 지녀 세기와 운명을 읽는 '신안의 일족'이 있는 것이다. 신성의 혈족은 은발과 녹안. 원기의 일족은 청발과 녹안. 초월의 일족은 금발과 녹안. 신안 의 일족은 흑발과 흑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넷 모두 엘리멘트 엘프에 속하는데. 대체 혈 족이면서도 간혹 다른 엘프들 사이에서 태어나기도 하기에 그 이유는 엘프 로드도 모른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 엘프 마스터는 알고 있겠지만. 유리엘은 도시를 지나면서 '길'에는 엘프들이 거의 존재치 않음에 의아했지만 별로 궁금하 지 는 않았기에 레펠테온이 걷는대로 따라갔다. 유스는 수많은 미인들이 난무하고 있음에도 전 혀 동요하지 않은채 걸어갔다. 뭐, 어렸을때부터 많은 엘프들을 보아왔기에 웬만한 미인이 아니어서는 그에게 동요를 줄수는 없을 것이다. 분위기나 존재감이라면 모를까. 도시를 지나고 나서 유리엘은 다시 끝없는 들판이 펼쳐지자 의아해했다. 도시 내에 있는 것 이 아니었나? 얼핏 표정에 의문이 드러나자 레펠테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 아직도 도시의 안이란다. 꿈의 건물들이 널려있는 곳은 도시의 주변에 불과해. 아직 은의 결계를 통과하지 않았…… 아. 방금 통과했다. 자, 보거라. 저곳이 바로……" 유리엘의 눈은 부릅떠졌다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듯. 레펠테온은 아주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레트로논 라플라스 아카란. 대대로 엘프 로드들이 거주하는 공간. 꿈의 도시 중앙에 위치 해 있는…… 일족一族의 성지聖地. 뜻이라고 하면. '안정의 의지가 깃드는 곳'이다. 엘프의 고어古語이기는 하지만……" "대단하군요……" 끝을 알수 없는 높이의 빛기둥. 빛의 입자로 이루어진 기둥. 마치 빛이라는 파동 그 자체. 빛이 표현할수 있는 그 모든 무언가를 가둔 듯한 기둥. 단지 그러한 빛기둥은 아니었다. 색이라는 모든 색. 빛과 분광으로 표현될수 있는 모든 감도의 색입자가 휘감겨 올라가는 상 상을 능가하는 크기의 회오리. 빛의 회오리. '광검光劍'이라 불릴만한 이 장엄한 광경. 그 빛살과 업광의 그림자. 그리고 그 일렁이는 빛의 회오리에 비친 영상들. 플러스적 에너 지, 마이너스적 에너지에서 파생되는 그 모든 무언가가. 마음 한구석까지 와닿는다. 이 장엄 함이라니. 무언가. 이것을 보면서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이 조잡한 묘사로는 이 광경을 표현할수조차 없었다. 세상 모든 아름다움과 추함과 밝음과 어두움과 지혜와 어리석음과 생 기와 죽음이 모두 깃들어 춤을 추며 어울리고 있는 듯한 태고의 존재! "그리고…… '조화의 빛살이 흐르는 곳'이라고도 불리지……" '이 이미테이션 플레인에 존재하는 것에서 내가 너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광경이기도 하다. 유리엘.' 레펠테온은 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 유스는 나지막하게 미소지으면서 그 빛의 회오리를 바 라보았다. 태초의 장엄함이 새겨진 이 아름다운 그것. 도저히 잡을수 없는 꿈의 환영. 모든 태고의 의지와 존재를 버무린 듯한 그 무엇. 잡을수 없는 세상의 해답. 모든 몽환과 꿈과 보 석의 파편을 한데 모아 빚어낸 듯한. 천개의 이슬이 뭉친 듯한 그 아름다움 빛살의 환영. 세 상 모든 것이자 모든 것이 아닌 답. 그것이 바로 저기에 서 있었다. 자신이 사사받은 검술은 이것의 영향을 받았다. 이 태고의 빛살. 이 세상이 존재했을때부터 허원속에 타올랐을 이 것. 잡을수 없는 환영과 같은 빛의 검. 그래, 광검光劍. 자신의 검이 이것을 닮을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유스나 유리엘이나. 이것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속의 검을 가다듬어 가고 있었다. 레펠테온은 여러번 보는 것이지만 볼때마다 새로운 이 장엄한 빛의 회오리 속으로 파묻혀 갔고. 그제서 야 유스와 유리엘도 그를 따라 이 위대한 빛의 파도로 몸을 묻었다. 그들을 휘감아 삼킨 거 대한 광검은 그 휘황한 광채로 공간을 뒤덮었다. 103. 청심비록淸心秘錄 청백색의 입자가 화려하게 흩날리면서 흐르는 아스트랄 플레인Astral Plane. 본질의 본질. 기보다도 조금 더 본질에 가까운 무극. 그리고 그 무극보다 좀더 본질에 가까운 영기. 본질의 본질. 마나보다도 조금 더 본질에 가까운 에너지. 그리고 그 에너지보다 좀더 본질에 가까운 에테르. 그리고 두 힘의 본질보다 더 깊은 본질. 태고의 흐름. 아스트랄. 영자靈子의 흐름이 가득한 이 폐쇄적인 공간에는 여전히 두 존재가 어떤 휴식도 취하지 않 은채 여러 영상들을 띄우다가 마침내 그것을 닫으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전히 두 존재의 날개를 청백색의 에너지 폭풍속에서도 아름다운 은색의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청 백색으로 달아오르는 영자의 폭풍이 가시자 흐릿한 이미지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머 리카락이나 등 뒤에서 아름답게 일렁이는 날개의 빛은 아주 잘 보였다. 한 존재는 순수한 은빛으로 펼쳐진 아스트랄 윙을 흔들고 있었다. 길다란 머리카락 역시 순 수한 금속성의 그것이었다. 너무나도 깨끗한 은빛이라 도저히 다른 말로는 표현 할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그러한 빛깔. 요사스러울 만큼 깨끗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길다란 은발은 영자의 폭풍속에 휘감기면서도 흠집하나 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날개 역시 소름끼칠 만큼 깨끗한 은빛이라 일전의 비아냥 거리는 듯한 어투의 주인공이라고는 생각도 안될 정도였다. 그 분위기 역시 정말 너무나도 깨끗했다. 그와 극과 극일만큼 상대방은 달랐다. 너무나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주고 있다. 깨끗 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화려하고 위엄있는 분위기는 그것을 쉽게 가둔 다. 역시 전체적으로 볼 때 같은 은빛에 깨끗하다는 것은 다를바가 없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시신경을 톡 쏘는것만 같은 현란함이 어지럽게 숨어있다. 마치 거울처럼 영자의 흐름을 비 추고는 있었지만, 그 아름다운 세상 모든 빛깔이 숨어있는 것 같은 화려함은 가둘수가 없었 다. 머리카락은 마치 은의 실에 세상 모든 보석의 가장 깨끗한 파편과 가루를 모아 그 입자 를 은의 실 안쪽의 눈으로는 볼수 없는 아주 작은 틈에 하나하나 채워넣은 듯한. 세상 모든 보석의 가루를 모아 은으로 가둔것만 같이 세상 모든 색소의 찬란함이 은빛의 감옥에 가두 어진것처럼. 빛을 반사할때마다 그 화려한 빛깔로 눈을 톡 쏜다. 그 날개 역시 마찬가지라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그 아름다운 모든 세상빛깔 보석의 입자를 박아놓은 듯 찬란하게 은빛 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같은 은빛이지만 어떻게 저런 다른 모습을 보일수 있는걸까. 날개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활 짝 펼쳐져 그 빛을 영자폭풍 한가운데 고고히 드러내고 있었다. 「재미있지 않나? 바인이 저런 것들을 손에 넣었으니 청 역시 '지금 수준에서는 필요할' 것 을 선물해야 하지 않겠어? 물론 바인이 쓰는 것 같은 것들을 줄수는 없지만. '불리하니까' 내면의 검 정도는 꺼내주는것도 나쁘지 않지. 그렇지 않나. 은염銀焰이여?」 은염…… 은빛으로 고고하게 타오르는 불꽃. 그것처럼 그렇게 불린 이는 정말로 청백색 푸 른 흐름속에서도 고고하게 타올라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너무나도 투명할것처럼 아름다워서 부서질듯한 그는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 다. 너무나도 투명하고 희어서 탁한 색의 세상 가운데서 잘 보이는. 한 존재는 너무나도 깨 끗하고 화려한 빛으로 부각되어 있었고, 한 존재는 너무나도 투명하고 희어서 잘 보인다. 그 이질감이라니…… 「……나쁘지는 않겠죠. 바인도 허공의 검을 사용하고 있으니까. 그에 상응하는 무기를 지녀 야 하지 않겠어요? 당신이 보여준 그 '샤이셀레스'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군요. 그런 위험 한 것을 그에게 부여했으니까요.」 그 말에 잠시 그는 침묵했다. 그러나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은 아냐. 그것을 사용할만큼 제대로 된 정신상태가 아니지. 빨리 조금이라도 더 각성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갓 에이전트God Agent정도는 되어야…… 그렇다면 무 엇이 좋을까……」 잠시동안 고민하는 듯. 둘 모두 침묵으로 잠겨들어 있었다. 길다란 침묵은 어지럽게 난무하 는 청백색의 회오리 속에서도 거리낌 없이 이어진다. 소리없는 광기가 청백색의 회오리 속 에서 수없이 폭발한다. 그 상황에서 마침내 무언가를 생각해 낸 듯.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 「청심淸心의 도道가 좋겠군. 그 책이라면 괜찮겠어. 터무니없이 양이 많기는 하지만 그중 필요한건 몇 개 안되니까. 가장 분량이 많은 사극四極은 제외하고…… 천지양기를 전부 끌 어다 쓸수 있으니까 그 힘을 쓸 필요는 없지. 그렇다 해도 기껏해야 줄수 있는게 얼마 안되 는군. 신수사령의 권결과 검결도 제외하고 나서…… 일단 두권으로 나누면 청심도 전체 내 용의 5할 정도는 줄수 있겠어. 사극과 신수사령의 구결들만 4할을 차지하고. 나머지 1할도 대부분 잡술들이니까.」 「위험…… 하지 않을까요? 청심의 도는 너무나 강력한 힘이라 대부분 차단하고 있잖아요. 천지멸겁天地滅劫과 무형의 장은 너무 강력하니까요.」 「그를 각성하기 위한 '반동인물'들이 천지멸겁보다 몇십배는 위험한걸 갖고 있으니 괜찮아. 그 멍청이들을 쓸어 버릴겸 무형천하無形天下 섬閃을 주는것도 괜찮겠지. 제대로만 된다면 좋겠지만…… 진도가 너무 느리니 강수를 쓸 수밖에 없지.」 그 말에 다시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반동인물이라 한마디로 규정지어 버리고 나서는 잠시 자신도 그 말에 기분이 묘해졌는지 너무나도 천진해서 오히려 더 유혹적인 느낌을 주는 긁 는 듯한 웃음을 흘리면서 그는 씹어뱉듯 말을 읊조렸다. 「킥킥킥…… 우습군. 오래전에 네놈도 나를 이런저런 식으로 조절했었지? 이거. 너와 다를 바 없는 일을 하고 있는건가?」 그 말에 반대편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침묵이 흐른 후 다른 화제를 끌어내려 는 듯 말을 돌렸다. 상당히 껄끄러운 과거였기에 지금은 아직 끄집어 내고 싶지 않았던 것 이다. 무엇보다 둘 모두 일치하는 감정이었기에 다시 두 존재는 거리낌없이 다시 대화를 나 누기 시작했다. 감정 제어도 빨랐지만 일도 중요하니까. 「어떤 방식으로 부여하는게 좋을까요?」 「아무래도 우연 비슷한 게 좋겠지. 사실 그는 너무나도 오래 발전이 없었어. 무극의 힘을 얻은지 벌써 몇 개월이나 흘렀지? 너무 발전이 없다. 천지양기와 북명의 힘의 조화에 실패 해서 전리층이나 다름없는 영기의 환이 생긴 탓이야. 차라리 그것을 없애는 파환의 결이라 도 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두명의 성장균형이 깨질테고…… 이래저래 골치아프군.」 그 말은 어폐가 있다고 아주 작게 입안에서 웅얼거리며 화려한 보석빛의 날개를 접은 그는 의식적으로 한숨을 흘리며 생각했다. '차라리 당신께서 만든 청심의 도가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기에 그 수습으로 귀찮은 것이겠 죠. 그렇지 않나요?' 그러나 이 생각을 굳이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가 더 강력하고 완벽한 존재이기는 하지 만 자신도 무한의 원신. 생각을 굳이 그가 읽으려 들지 않으면 방어도 가능했고, 무엇보다 그가 자신을 존중해주는 탓에 그럴 일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앞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생각을 진행시켜 나갈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은 그가 자신에게 배려라는 행위를 하고 있었 기에 그것을 버릴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물론 어떤 직접적으로 신경을 거슬린다 하더라도 아마 그는 다 용납해 줄 테지만…… 그 이유는 둘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오랜시간 동안 알지는 못했지만. 둘 모두 이제는 너무나 도 잘 알고 있었다. 의지와 생각을 함께 공유하기조차 했으니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 낀 듯. 그는 아주 맑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다가 역시 날개를 접어서 영자의 흐름 위에 다리를 딛어 단단히 선 후. 손을 들어 휘저었다. 의지를 집중 할것도 없이 주변의 영자는 빛 을 발하며 모여들어 두권의 책 형태로 변하더니 그의 자그맣고 흰 손 위로 떨어져 내렸고. 두 책을 잡아 쥔 그는 흐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두 책은 '낡은 듯한 형태'로 제작된, 영이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도 제법 오래 전에 제조된 듯한 제책방식으로 만들어진 책이었다. 표면에는 먹을 잘 갈아 개어서 쓴 듯한 가늘고 섬세 하면서도 빠르게 긁어내리듯 쓴 글이 적혀 있었다. 놀라운 일이지만, 의지의 집중조차 없이 생각에 동動의 동으로 정停의 정을 격발해서 물질을 창조한 것이다. 상세한 내용까지 적혀 진 책자를…… 신급 존재라도 가벼운 언 정도는 더해줘야 할텐데. 그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그런 것을 창조해낸 것이다. 두 책의 표지에 같은 필체로 적힌 것을 보면서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내용 자체도 한자가 아닌 봉인계의 '한글'을 섞었기에 일반 무림인들이 보고 수련하 다는 순식간에 주화입마에 걸려 죽어갈것이었다. 그만큼 난해하기도 했고. 몇 달 익힌다고 바로 효능을 볼만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영 정도의 고수 정도여야 몇몇 부분에서 발전을 이룰 만한 지침서이자 무공요결정도였다. 그 책자의 표지에 쓰여진 글귀는 이러했다. 글귀만은 한자어로 쓰여져 있었다. 청심지도淸心之道 비록秘錄 상上. 청심지도淸心之道 비록秘錄 하下. 104. 끔찍하리만큼의 한파가 할퀴고 지나가는 대지. 아무래도 고도가 처절하리만치 높아서 그런 지 대륙 최북단의 한지에는 만년설이라고 불리기에 오히려 지나침이 있는 세월을 보낸 파우 더 상태의 눈들은 별로 흩날리지 않고 있었다. 고도가 높은데다가 특이하게도 열평형 현상 이 일어나 ― 열평형이래봐야 분자운동도 거의 없다. 온도가 낮으니까 비활성화 상태인 것 이다. 금속이 동파凍破될 정도로 춥기 때문이다. ― 바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햇빛도 거의 받지 않고 항상 흐릿한 날에 햇빛도 약하다. 그래서 이곳의 눈들은 오히려 바람이나 햇빛에 의해 눈의 입자가 날카롭게 되어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저렇게 눈바다 위에 깊은 발자국을 찍으면서도 살갗이 피로 물들지 않은 것이리라. 물론 기공氣功 중에서도 외문기공을 익혀서 피부가 질길수도 있겠지만 수만각도로 베어들어 오는 검이나 다름없을만치 예리하게 변형된 눈이라면 흠집은 날 수밖에 없었다. 척 보기에 도 힘없어 보이는 노인이었지만 눈에 서린 정광은 결코 사마외도의 것이 아니어서 지금 다 급한 상태라 공력을 대부분 소모하고 쫓기는 중일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은 자기 도 모르게, 숨을 헐떡이며 입김을 토해내고. 피부가 얼어터져가는 것도 무시하면서 쉰 목소 리로 긁어내는 듯한 목소리를 뱉어냈다. "크으으…… 맹주…… 맹주! 그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악적…… 나를 암습하여 죽음으로 몰아 넣다니……" 듣자 하니 무림맹주에 의해 쫓기는 듯 했다. 그러나 일단 아무리 표리부동에 인면수심의 악 당이라 하더라도 그 무림맹주가 저 노인을 대놓고 쫓는다는 것은 그럴만한 명분이 될 물건. 다시말해 전대 무림의 고절한 고인의 무공비급이라던가 아니면 장보도 정도의, 흔히 출현하 는 물건을 지니고 있으리라. 눈이 전신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평소에는 늘어뜨려져 매끈하게 자신의 백색을 뽐내었을 수 염도 피와 물기에 젖었다가 얼어붙은 듯 처참하기 짝이없는 몰골이었다. 등에 맨 붕대에서 피가 조금씩 번져나오고, 얼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만큼, 땀이 흘러나오는 즉시 얼고 피 부가 갈라져 피도 조금씩 흘려낼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등에 입은 자상은 제법 깊은 듯. 상처가 일단 터져버리자 따뜻한 피를 쏟아내 눈의 입자들을 감싸 물들이며 녹여냈다. 처절 한 기침을 토해내던 노인은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주변을 둘러보다가 흐릿한, 회심의 미 소를 입에 걸고 남은 기력을 긁어 모아 신법을 이용해 눈들이 절벽에서 끊긴 부근까지 피와 발자국으로 상흔을 내고는 자신의 앞에 보이는, 거의 높이만 30장에 다다르는 빙벽에 등의 상처를 벌려 피를 쏟아 던져 자국을 남기고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옆의 눈 언덕을 파들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렸다가 추위에 의해 상처가 얼어붙 어 피가 나오지 않자 그 작업을 시작해 눈구덩이를 만든 것이다. 물론 진원지기까지 사용해 가며 답설무흔을 이용해 굴을 파서 그 안으로 들어간후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이용해 언덕 을 메웠다. 각도가 묘해서 뛰어내려오던 추적자들도 아마 노인을 보지는 못할 것이었다. 아 니, 언덕을 파내려간 자리에 남은 묘한 흔적을 느낄수 없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노인은 그나마 눈 속이 포근하자 가부좌를 틀고는 운기조식에 들어갔고, 운기조식으로 인해 예민해 진 감각에 기척들이 포착되었지만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기를 운용해갔다. 아주 미약한 남빛의 기운이 일어나 노인의 몸을 휘감아 들었고, 그 은근한 기운은 조금씩 불어나면서 노인의 소모된 기운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1할 정도를 사용했던 진원지기는 어 쩔수 없다 치더라도 내력 자체가 빠르게 회복되는 것이 일반 정파의 기공이라고는 생각도 할수 없었다. 그러나 마기나 사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그가 운용하고 있는 기공은 청심문의 다섯 심법중 하나인 명룡심결冥龍心訣로 양류의 흐름을 빨아들이는 기공이면서도 극성에 이르르면 음양과 건곤이 조화되는 심결이었다. 다 섯 심법중 순위상으로 세 번째의 심결이며 연성하기가 매우 힘든 심법이었다. 노인은 솔직 히 말하면 화경의 고수였기에 대단한 인물이긴 했지만 재질상으로 명룡심결을 익히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에 간신히 몸을 숨기고 죽음을 맞고 있을 때 문득 전설의 문파 청심문의 나뉘어진 심결이 풀이되어 자신의 깨어진 심법을 대신하여 명룡심결이 자신 의 목숨을 건져낸 것이다. 청심문의 심법의 특징이 기공을 운용하면 생령력이 증가하며 몸 의 회복이 빨라진다는 것이었고, 단순간에 8성까지의 명룡심결을 익혀 자신의 4갑자 내공을 모두 수습할수 있었다. 4갑자의 내공으로도 명룡심결을 8성까지밖에 익히지 못했지만 그것 만으로도 여러군데 창상과 자상을 입은 그의 몸은 깨끗하게 치유된 것이다. 실제로도 지금 등의 상처가 느릿하게 아물어가고 있었고, 골수가 주변의 기를 양분 대신 사 용하며 피를 만들어내 부족한 혈액을 보충했다. 노인은 운기조식을 하면서 문득 다른생각을 진행시켜 나갔다. 청심문의 심결은 너무나도 터무니 없어서 일단 운용되기 시작하면 기 자 체의 영성에 그 운용을 맡겨버리는데, 그래서 주화입마에 들만한 정신충격을 받아도 기의 운용은 흐트러지지 않는 개세적인 묘용이 존재했다. 그래서 노인은 생각을 진행시켜 나갈수 있었다. 청심문의 비록 상과 하중에서 상만이 오로지 노인에게 도움을 줄수 있었다. 그가 본 심결은 이 책을 얻은 동굴에 쓰여져 있었고, 누군지 알수 없는 고인의 배려로 인해 서열이 세 번째 에 드는 명룡심결을 익혀 목숨을 건져 지금 도주중인 것이었다. 하필 자신이 얻은 양피지가 무림맹주에게 옮겨지던 것이었기에 그는 맹주의 추격을 받고 있었고, 현재 많은 사파의 고 수들과 마교의 고수들까지 움직여 그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고인이 남긴 심결이 아니었 다면 이미 자신은 책을 탈취당했으리라. 전설의 문파 청심문. 역사가 그렇게 오래지 않았다지만 800년이나 이어져 내려온 천산검파 와는 달리 그 청심문은 일인단맥하는 문파였고. 자그마치 3000년이나 이어져 내려오다 500 년전 그 맥이 끊겼다고 알려져 있었다. 말 많은 이들은 청심문이 어느 문파의 습격을 받아 무너졌다고도 했고, 하나씩 하나씩 무림에 나타나던 청심문의 고수들이 문규를 바꾸어 아예 폐쇄적으로 무공을 탐구하기 시작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청심문의 고수들은 간 혹 무림의 지배를 위해 일어난 많은 문파들을 모조리 무너뜨렸고, 무림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나 하나가 모두 현경이 아닌 이가 없었으며, 심지 어는 신화경의 고수도 간혹 나타났다고 했다. 나타날때마다 사용하는 신공절학들이 모두 달 라 무림인들에게 공포를 안겨준 그들 청심문. 과연 남아있는 이가 있는지 알수는 없으나 그 들의 비급의 일부가 간혹 무림에 떠돌며 피를 부르곤 했었다. 그런 청심문의 비록이 상, 하권. 둘 모두 다시 500년이나 되는 기간만에 출현했으니 당대 무 림인들이 흥분하지 않을수 없었다. 3000년이나 쌓인 명성은 500년 정도의 잠적기로는 도저 히 잠재울수 없었고, 무림인들은 비급에 미쳐서 서로를 난자해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무림사가인 천류세가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가주와 그 심복인 현경의 고수 은 영천검만 움직였다고 알고 있었다. 그들만 휙 사라져서 정체를 감추고 움직이고 있었던 것 이다. 그 때문에 그들에게 의심이 쏠렸으나 청심비록의 첫장을 볼수 있었지만 그 다음 바로 비명횡사 한 누군가가 마지막에 진본이라고 확인해 주었기에 의심은 풀렸다. 다만 이제 모 두들 비급을 향해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다가온 기척들은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절벽쪽으로 내려갔다 다시 모여서 토론하는 듯 했다. 그러다가 흩어져서 사라졌고, 노인은 안도하며 12주천을 끝냈다. 생사현관을 뚫으려면 적어 도 5갑자 정도의 내공이 필요하고, 안전하게 하려면 6에서 7갑자의 내공은 필요할 것이었다. 그러나 임독양맥을 다 뚫어도 수용 가능한 기력은 350년 정도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무림인 들은 5갑자의 공력을 이루면 바로 생사현관을 뚫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청심문 비록의 상권에 있는 여러 수법들을 익히기는 했지만 그중 소화해낸 것은 고작 둘밖 에 없었다. 나머지들은 3, 4성에 머물러서 사용해봤자 별로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익힌 것이라고는 강탄剛彈과 강환剛環 뿐이었다. 그가 사용하는 것들은 수조장각手爪掌脚이 라 검이나 도를 쓰지 않아서 각 경지에서 쓸수 있는 '의意'들을 정묘하게 사용할수 있도록 해주는 초식중에서도 강탄과 강환을 효율적으로 사용할수 있게 해주는 수법들만 익혔을 따 름이었다. 수도手刀로 강선剛線을 만들어낼수는 있었지만 강탄이나 강환을 쓸수는 없었는데, 천우신조로 그것을 깨달아 진일보 할수 있었던 것이다. 강기화剛氣花나 강기막剛氣幕은 웬 만한 화경 고수들이 강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금방 깨닫는 것이지만 강선이나 그 다음인 강환이나 강탄은 정말 그 위력이 강한만큼 사용하기 어려워서 보통은 깨닫지 못 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현경인 청만 하더라도 강선까지는 쓸수 있지만 강환은 미완성이고 강탄은 무식하게 강한 공 력으로 흉내만 내고 있지 않는가. 강기의 발전형 중에서 강기화는 환幻을 극으로 일으킨 강 기공이고, 강막은 검막을 강기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리고 강선은 절絶을 극으로 행한 살생 강기 중에서도 가장 절단력이 높은 경지다. 그 다음인 강환은 오로지 파괴! 분쇄粉碎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내가기경으로도 쓸수 있지만 순수한 파괴력을 응집시켜 고리로 만들 어 여러 수법을 이용해 살상을 할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다. 절단이라기 보다는 파괴를 위한 수법이라 할수 있겠다. 봉쇄를 위해 쓰기도 하지만 파괴력이 너무나 강해 제어하기도 어렵 다. 그래서 강환에 이르면 공력 소모가 강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다. 그 다음인 강탄은 정 말 파破를 극까지 일으킨 것이었다. 강환보다도 끔찍해 극파! 파쇄만을 위한 의意였다. 강기 를 극한까지 응축해서 뚫고[貫], 부수고[破], 터뜨리고[爆], 두들기고[擊], 튕겨내는[彈] 성질 을 이끌어내는 수법이었다. 응축해 쏘아진 강기는 뚫고들어가 관통하기도 하고. 순수한 충격의 기력을 전달해 내부를 진탕시켜 부숴버리기도 하며. 응축되었다가 폭발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충격 만을 전달하기도 한다. 거기다가 강탄들을 회전시키면서 방어를 이용해 강탄보다 견고하지 못한 기경은 모두 튕겨내기까지 하는 것이다. 폭뢰강으로도 쓸수 있는 수법이었다. '산을 내려가면 많은 고수들이 포진해 있을텐데…… 이 비급을 파破해 버리는게 낫겠다. 상 편에 실린 의만으로도 내가 벌써 두단계나 발전을 이루었는데 하에 이르면 과연 어떠할 것 인가! 그것은 아마 인간의 범위를 초월한 것들이리라!' 노인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아예 존재부터 인간이 만들지 않은 비급. 청심문의 결중에서 총람에 가까운 비록이었기에…… 비록 심법은 전부 제거되어 있고 가장 중요하다 할수 있는 신수사령권과 신수사령검법. 그리고 사황四皇인 사신수의 힘을 융합시키는 심결인 신수사령 심법도 없다지만 청심문의 오의들은 이미 존재 자체가 인간이 신이 되기 위해 거칠 시련들 을 가장 빠른시간 내에 풀어줄수 있는 것들. 심득과 심의와 그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다시말 하여 가장 살상력 높게 사용할수 있는 비법들이 기재된 것들이라 아마 이것을 소화해낸다면 최단기간에 신화경에 이르른 고수로 기록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것의 목적 자체가 탈인선입脫人仙入을 위한 것.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비록 청심문의 오의중 6할이 사라진 것들이지만…… 심법과 청심문의 비 의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신수사령의 법을 빼낸 것들이지만 노인이 고작 도주기간에 배워 익 히고 심결 하나를 얻은 것 만으로도 벌써 강환과 강탄을 완벽하게 쓸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응용해서 쓸만한 깊이있는 수법들도 있었지만 그것들을 단순간에 익히기에는 노인의 재질이 모자랐다. 1년정도 미친척 하고 파고들면 7, 8성정도는 달성해 같은 화경급 고수들 사이에서 도 써서 승기를 잡을수 있겠지만…… 수십의 차원을 거치면서 흘러온 청심문의 비법들은 신들에게 있어서도 균형을 위해서는 없 어져 주어야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신중의 신. '무한'이 계획하는 일들이었기에 감 히 신 나부랭이(?)들이 간섭하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계획들이었다. 그 계획중 하나일 뿐 이지만 인간의 활살活殺이라는, 인간들로써는 너무나 큰 주제가 걸린 '내기'였다. 인간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스케일이었던 것이다. '……으음.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인가. 어디로 내려가든 죽음은 면치 못할터. 차라리 천하 모든 이들이 모인 가운데 명룡심결의 발發로 명룡염冥龍焰을 일으켜 태워버리는 수밖에. 외 우려고 노력해 봤자 외울수도 없으니……' 지금 노인이 비급을 없앨수 없는 이유는 오직 하나. 지금 없애봤자 효용이 없으니. 일단 벗 어나서 천하 군중들이 서로를 제압하면서 이리저리 밀고, 자신이 말할 기회가 주어지면 그 때 비급 둘을 꺼내 불살라버릴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은 이상 비급이 없다 해도 믿어줄리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자리에서 속임수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공격할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자신의 몸을 수색해 보라고 하면 될 일이었다. 잠깐, 여기서 노인이 말하는 '외우려고 노력해 봤자 외울수도 없다'는 말은 뭔가 어폐가 있 었다. 뜻을 몰라도 복잡한 경문을 붙잡고 노력하면 외울수는 있듯이…… 그런데 대체 왜 외 울수 없을까? 자. 그것의 답은 '누가 이 책을 만들었느냐'에 있다. 바로 무한無限이 만든 비 급인 것이다. 내용도 그가 작성한 것이었다. 비홀더Beholder라는 몬스터가 있다. 그 몬스터의 이름. 그것의 뜻은 '주시자注視者'다. 딥 아 이즈Deep Eyes라는 것을 이용해서 스펠을 외워서 마나스트림을 계산하고 있으면 그 계산과 정을 머릿속에서 통째로 날려버리는 술법을 쓰는 것이 그 몬스터다. 눈을 마주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눈에서 디스인터그레이트 레이Disintegrate Ray를 쏘아내기도 하기 에 급수도 높고 위험천만한 것이다. 자, 그럼 갑자기 왜 몬스터와는 하등 관계없는 동방대륙 에서 이 이야기를 하나면. 이 책에 그와 비슷한 술법을 걸었던 것이다. 읽어도 읽어도 이해를 한다거나 할수는 있지만 정말 꽉꽉 눌러 외워버리려고 하면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말끔하게 날아가버리는 술수가 내재되어 있었다. 만약 몸으로 익혀서 외운 상태 면 구결도 떠올릴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바로 이런 노인과 같은 사람 이 외운다음 태워서 조금씩 소화해 내려고 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다시말해 현 무림 최고수인 영의 손에 들어가게 하도록 하기 위한 술수였다. 노인은 생각의 진행을 멈추고는 눈을 떴다. 정신은 맑았고, 사용한 1할의 진원도 대부분 보 충되었다. 한 번 더 12주천을 돌렸던 것이다. 아마 시간이 제법 흘렀을 것이었다. 지금 손을 바닥에 찔러넣어 열기를 머금은 암경을 뿜어내본 결과 그 반탄은 두 장 정도 밑으로 파고들 어가야 바닥에 닿았다. 눈이 단단하게 뭉쳐서 얼음이나 다름없었지만 노인은 열양공을 익혔 고, 거기다가 이제 기력도 충만하고 상처도 없었으니 최상의 상태…… 딱 탈출하기 좋았던 것이다. 대충 1리 정도는 굳은 눈을 파고 움직여야 했다. 물론 그런 짓은 정말 죽어나가기 딱 좋고 괴로운 일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몰려와 상처를 또 입게 되면 이번에는 도망갈수 있을지 그것 자체가 가능성이 의심되었고, 그래서 노인…… 2차 정사마 대전에서 멸문된 정파의 몇몇 문파중 하나. 점창의 마지막 일인인 천기상인天機 上人은 이런 방법이라도 사용해 살아남아야 했다. 105. 노인이 파고 들어간 자리를 흑의인들은 찾아내지 못했다. 무림맹. 파사조직중에서도 가장 강 하면서도 가장 은밀한 36명의 검수들이 주변을 전부 뒤지고 있었음에도 전혀 그 천기상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저 하늘에 타는 태양을 시린 검기劍氣로 쏘아 맞춘다는 사일검법射日 劍法. 태양을 찔러 떨군다는 이름만큼이나 대단한 검법을 절기로 삼고 있는 점창의 천기상 인은 역시 아무리 뛰어난 영약과 대단한 재능을 지닌 그들이라도 당해낼수 없을만큼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는 물론 검을 쓰지는 않지만 점창의 권장각술을 극까지 익혔고, 실상 사일 검이나 분광검법分光劍法도 수도로 펼쳐낼수 있기에 검에 찔린것이나 다를바가 아니었다. 사일검법을 손으로 펼치자 강렬한 서기가 일어나며 정말 소름끼칠만큼 날카로운 찌르기가 흑익탕마대의 육인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분광검법을 손으로 펼쳐내자 정말 빛을 잘라내는 듯 빠른 수강이 넷이나 되는 이들을 죽였다. 천기상인도 거의 죽음에 이르는 상처와 진력의 고갈을 입었으나 아마 이쯤 되었으면 어느 정도 수습을 했을 것이다. 아마 지니고 있는 단 약을 써서라도 내상을 치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 그가 점창의 심법이 아닌 명룡심결로 인해 배는 더 정갈하고 깨끗한 내력으로 상처까지 아물게 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아마 알았다면 통탄했으리라. 흑익탕마대도 이제 스물여섯.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었으나 이 구역은 자신들 의 책임이었고 벌써 신호탄을 날렸으나 구원은 오지 않았다. 아마 그들은 산을 올라오려는 적들을 견제하기에 바쁠것이었다. 산은 너무나 높았지만 이 봉오리 자체는 심하게 넓지 않 아서 중요 입로만 막으면 점령이 가능했다. 흑익탕마대의 대주는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뭔가 놓쳤다는 생각에 천기상인의 투로를 기억 해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사일검법을 손으로 펼치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점창의 권장각은 쓰지 않았다. 이유는 알수 없지만 사일검법을 펼쳐 넷을 죽이 고 난 후 손가락을 들어 놀랍게도 강기를 응축시켜 탄으로 만들어 두 대원의 심장을 뚫고 분광검을 손으로 펼쳐 수강을 휘두르다가 갑자기 강기의 고리를 만들어 두 대원의 몸을 분 쇄시켰던 것이다. 강환과 강탄. 그가 화경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들 36명을 이길수는 없을터인데…… 대주만 하더라도 이미 화경의 고수였기에 화경의 중반부에 이르른 그와 다 른 35명의 대원이라면 아마 순식간에 천기상인을 죽여놓을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런데 천기상인은 자신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열명이나 되는 대원을 죽여놓고 숨어있는 것 이었다. 아마 이 다음에 자신이 죽기라도 한다면…… 끝장이다. 놓칠 가능성은 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부지리로 어떤 무림인. 특히 무림사가의 은영천검이 얻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천산검주 혼자로는 도저히 막을수 없는 고수가 바로 그 은영천 검이었던 것이다. 최근에 또 한 번 만나 검을 겨루고 나서 천산검주는 피를 토하고 고작 50 초식 내에 물러났던 것이다. 목숨도 건졌고 기도 상하지 않았으나 천산검주는 그 후로 스스 로 폐관에 들어버렸다. 충격은 충격이었다. 마지막 일수. 금강폭열공金剛爆熱功은 넘을수 없 는 벽이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 이야기 보다는 청심비록이 더 중요하다. 대주는 입술을 깨물면서 허리춤에 걸린 검이 조금 무겁다는 생각을 했다. 묘한 불안감이 찾아들기는 했지만 그는 꿈에도 몰랐 다. '상인上人'이라는 이름이 붙은 천기상인이 마치 기듯 얼음굴을 파내며 자그마치 1리의 길을 가고 있고, 심지어는 방금 발 밑을 지났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주의했으면 느꼈을 지도 모르지만 그는 지금 정신상태가 흐트러져 있어서 그런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 반각 사이에 천기상인은 벌써 삼장 이상 멀어져버렸다. 정말 뼈아픈 실책이었다. 물론 나 중에 알게되면 이지만 어떻게 빠져나갔는지도 모르게 되니까. 왜 모르게 되냐면……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죽게 되니까.' "너, 넌 누구냐……" "저 말인가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흑익탕마대의 한 대원. 근처에서 잠복해 있다가 난데없이 몸이 뻣뻣해지면서 내동댕이쳐진 다음, 그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심연의 차가움 내부에 숨겨진 뜨거운 파멸의 기운을 머금은 듯한 분위기. 그러나 우습게도 그 느낌은 살기를 뿜을때만 느 껴졌고, 금방 그 느낌은 아주 부드럽고 안온한 느낌으로 변했지만 이미 평범한 이라면 느낀 순간 미쳐버렸을 그 기운은 잊혀지지 않고 있었다. 눈밭에 널브러진 그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주 푸르른 번개를 머금은 날이 선 섭선. 접힌 채 그 시린 날을 드리우고 있는 섭선은 살이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금속은 자세 히 보지 않으면 옥玉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부드러운 은옥색을 띄고 있었다. 정말 금속이 아닌것만 같았지만 끔찍한 예기가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아마 평소에는 날도 드러내지 않 을 것이고, 예기도 없을 테지만 지금은 병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크…… 으으…… 누, 누구길래…… 나를 이렇게……" "……자부심이 대단하시군요! 당금 천하에 당신을 죽이지 못할만한 사람이 너무 많은데요? 뭐, 늘어 놓는건 귀찮으니까 그만 두고. 이만 죽어주세요." 소름끼칠만큼 밝은. 망막을 태울것만 같은 빛의 유리처럼 투명한 뇌력을 머금은 섭선은 너 무나도 쉽사리 존재를 말살시켰다. 단지 가볍게 심장부를 누른 것 뿐이었지만 뇌력은 전신 으로 타고흘러들어가 존재를 태워버린 것이다. 영혼까지 말살하는 멸절의 뇌력. '그녀'는 아 주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람을 죽이면서 웃을수 있는 존재. 그러나 분위기도 정말로 부드럽고 온화하여 죽음을 맞을때도 그 아름다움을 보면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온화한 죽음…… 실제로 공포에 떨던 상대도 그녀의 미소를 본 즉시 자신도 모르게 웃으면 서 죽어가고 있었다. "아. 끝났다. 자, 이제 대답해 드리죠. 저는 말예요. 극뢰極雷, 혹은 영뢰靈雷(Soul Blitz)의 이즈 T. 슬레이드…… 라고 한답니다. T는 Thunderlord. 천뢰天雷로 심판審判하는 자라고도 해요. 뭐 별로 마음에는 안들지만…… '그분'이 주셨으니 쓸수밖에요. 본질을 깨우치기 전에 는 소素씨 성에 우雨라는 이름을 썼죠." 다 타들어간 잿가루 위에 천연덕스럽게 말하면서 그녀는 연한 청색과 아주 옅은 연보랏빛, 그리고 연한 옥색의 실을 이용해 짠 달라붙는 듯한, 봉황鳳凰을 수놓은 봉황포의 자락을 흔 들어보이면서 아주 천진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손에 쥐어진 섭선 하나는 이미 어느새 봉황 포의 안자락에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생긋 웃으면서 몸을 돌리고는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재 위에 음파를 남기고는 사라졌다. "당신에게 내 극뢰선을 써준것만 하더라도 대단한 영광이라구요. 그럼 안녕히. 다른 바보들 을 유클리드 공간에서 추방해야 하거든요." 그녀가 한걸음 옮겼다고 생각한 즉시 이미 그녀의 신형은 공간으로 올올히 녹아나가 사라져 버린 후였다. 단지 그녀가 남긴 아주 신비로우면서도 공포스러운 느낌만이 잠시 남아있다가 약한 바람에 휩쓸려 사라졌을 뿐이었다. 하나 하나 그녀의 손에 모두 죽어갔다. 극뢰선을 쓰는 것이 별로 기분 좋지 않은 듯 아주 희디 희고 투명하리만치 깨끗한 섬섬옥수纖纖玉手를 들어 가볍게 휘젓기만 하면 그녀가 뇌 령풍雷靈風이라 이름붙인 번개의 흐름이 일어나 존재를 삼켜서 재로 만들어버릴 따름이었 다. 눈은 전혀 녹지 않았다. 강렬한 스파크Spark가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결코 녹지 않 았다. 그녀의 손짓은 가벼웠고, 길다란 속눈썹은 무심하게 흔들리지도 않는 눈 때문에 미동 조차 하지 않고 고아하게 늘어져 있었다. 조금 소녀 같은 분위기의 미녀. '여성의 몸'이라고 보면 이보다 더 완벽할수 없으리만치 아 름다운 육신이 착 달라붙은 봉황포에 의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손목까지 덮은 봉황포는 소매가 조금 길어서 살짝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곡옥이 달린 신발을 가볍게 들어 눈 입자 하나만을 밟고 몸을 날렸다 그리고 조금 생각에 빠져있다가 고의로 낸 공기를 가르는 소리 에 흑익탕마주는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자신이 느끼지도 못한 사이에 이미 부하 들은 전부 다 죽어넘어져 있었다. 아니, 재가 되어있었다. 자신의 옆에 있던 이도 어느새 소 리없이 뇌령풍에 휘감겨 존재가 유클리드 공간에서 추방된 것이다. 영혼마저 이미 공간에서 그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었다. "자, 당신은 그래도 임독양맥 정도는 타동한 수고에 경의를 표하면서 뇌령풍이 아니라 다른 기술로 추방해주겠어요. 뭐 유클리드 공간이라고 말해봤자 이해도 못할테지만. 아, 마법사들 이면 이해하려나?" 그녀는 신형을 날려서 가볍게 착지한다음 아주 고아하면서도 조금 오만한 듯한 자세를 보이 면서 그 신비한 은옥색銀玉色의 머리카락과 창천蒼天의 오연함과 찬란함이 그대로 실린 맑 은 스파크를 그대로 보석으로 빚은 듯한 눈동자를 대주를 향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맑은 눈빛에 비해 지독히도 허무주의에 쌓인 듯한 그 눈은 무심하기 그지 없어 대주를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제길!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타난거야?! 전멸이라니!' "어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미인에게 괴물이라니. 너무하군요." 대주는 흠칫 놀라버렸다. 그리고 경악의 시선을 그녀에게 보냈다. 생각을…… 읽어낸 것이 다! 저 여자는 인간이 아니란 말인가! 그러나 곧 잠시 그녀가 말한 내용을 생각해보고는 멍 해졌다. 스스로가 아름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천연덕 스럽게 말하자 대주는 이제 긴장이고 뭐고 다 날아가버렸다. 어이없다는 눈빛의 대주를 본 그녀는 코웃음을 나지막하게 치면서 섭선을 들어 가볍게 흔들어보였다. 뭐 그녀도 잠시 민망함을 느꼈으니 이런 전투 방 식으로 지금까지의 적들에게 처절한 공포를 느끼게 하고 죽게한 그녀였기에 아마 그녀에게 죽어간 이들은 이즈 T 슬레이드에게 민망함씩이나 되는 감정을 부여했으니 정말 놀랄 일이 라고 박수를 쳤을 것이다. 영혼이라도 남았다면. "뭐, 일단 죽어주세요. '그분'의 뜻이니까. 어줍잖게 방해했으니 대가를 치러야죠? 감히 유한 자의 틀도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주제에 말에요. 모르고 했다 해도 대가는 치러야 할거에요. 뭐 어차피 당신쯤 죽는다고 균형이 깨질것도 아니고. 플로트Float!" 대주로써는 알 수 없는 발음의 언어를 섞어서 말하던 그녀는 아주 온화한 미소를 그어 올리 면서 손짓했고, 순간 바닥에 쌓인 파우더 스노우들이 솟아올라서 뭉쳐지면서 얼음의 구가 되었다. 녹더니 바로 얼어붙어 뭉쳐진 것이다. 그 경악할만한 장면에 대주는 몸이 굳어버렸 다. 정말 대단한 광경이 아닌가! 수백개체에 달하는 얼음의 구들이 순식간에 떠올라 그의 몸 주변에 머무르자 그녀는 생긋, 아주 천진하고 맑게 웃으면서 대주를 혼란에 빠트렸다. 대 주마저도 잠시 이성을 잃어버리고 미소를 지을뻔 했다. 도대체 저 여자는 뭐하는 여자인지 알수 없었다.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기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면서 반탄막을 준비했다. 이미 저 얼음의 구들이 떠올라 전 방위를 가로막아버렸던 것이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심상찮아서 강기막을 전개한 것이다. 은근한 푸른빛을 머금은 강기막이 형성되었지만 그녀는 아랑곳없 이 얼음의 구들을 바라보면서 이리저리 이동시키다가 박수를 가볍게 치면서 다시한번 찬란 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뭐, 이걸 막는다면 아마 당신은 수련을 착실히 한 것일거에요. 뭐 화경 고수 정도면 막겠지 만.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리플렉티브 레젼Reflective Region∼" 그녀는 장난스러운 뉘앙스로. 이번에는 천진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띄우면서 손가락을 들어 가볍게 허공을 찔렀고, 그 순간 허공의 모든 존재적 입자는 강렬하게 흔들리면서 전자적 반 발을 이르키며 전리기체로 분화되고 말았다. 순간 얼음의 구들에 부여된 리플렉션 파워 오 버의 스펠은 터무니없이 대단한 반사능으로 뇌력마저 모두 산개시키고 말았다. 순간 그 공 간은 지옥이 되었다. 그 얼음의 구가 분포된 안쪽으로 전리기체의 전자적 에너지가 모조리 집결되었던 것이다. 이미 뇌정강기의 수준을 벗어난 공격이었다. 거의 7서클급에 다다르는 마법적 공격이었던 것이다. 그런 것을 그녀는 가볍게 손짓만으로 해결했다. 시동어가 다른 것으로 미루어보아 기술명으로 장난스럽게 외친것이나 다를바가 없었다. 체이닝 연쇄 뇌격반응으로 이내 안쪽은 점점 그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그 열기는 주 변의 눈을 모조리 녹이고 전기분해해버렸다. 수소와 산소들은 그 뇌격에 의해 요란하게 펑 펑 터지면서 주변의 습기를 태워버렸다. 그렇지만 그녀와 그녀의 옷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여전히 천진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있을 뿐. 파지직! 파지지직! 요란한 뇌전이 점점 사라지면서 그녀는 손짓했고, 잔류뇌전도 모조리 사그라들어 다시 공간 이 안정상태로 돌아가자 새카맣게 탄채 서 있는 모습의 인영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신형 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대고 있었다. 시커먼 연기가 모락모락 흘러나오는 것이 강기막이 깨 지고 호신강기로 끝부분을 간신히 버틴 것 같았다. 그녀는 반색하면서 말했다. 마치 장난감 이 부서질줄 알았는데 부서지지 않아서 즐겁다는 듯이. 소름끼칠만큼의 천진함이었다. 물론 아이가 잠자리 날개를 뜯어내고 밟으면서 환하게 웃는것과는 수준이 다른 것이었다. "어머! 살아있었군요. 잘됐네요. 기술을 또 시험해 볼수 있겠어요. 방금것은 균형을 무너뜨려 서 일순간 전리기체의 장을 만들어낸 기술이거든요. 다른 언어라 못알아 들었죠? 정말 죄송 해서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네요. 자. 그럼 다시 받아보세요!" 대주는 미칠것만 같았다. 얼음의 구들은 이제 다 녹아서 사라지고 없었지만 몸은 찌릿찌릿 거렸고, 몸을 흔들자 스파크가 튀었다. 경락은 반쯤 뒤틀려서 그의 입에서는 피가 주르륵 흐 르고 있었다. 공력의 9할이 사라져버렸기에 그는 남은 공력의 일부를 빌어 간신히 몸을 움 직이고 있었다. 이를 부드득 갈며 대주는 진원지기와 선천지기를 모조리 극한까지 단전에 밀어넣고 마공중의 하나인 역기충혈대법으로 잔력殘力과 잠력潛力까지 모아들여 단전에 끌 어냈다. 오히려 전의 내력보다 배 이상 많은 양이었다. 그래서 거의 육에서 칠갑자에 육박하 는 양의 기운은 그의 옷을 바스라뜨려 날려버렸고 입에서 피를 울컥 쏟아내게 했다. 그러나 정신은 맑아졌고, 그래서 그는 형체도 없는 검은 놓아 두고 모든 기력을 다해 그의 최고 절 초를 뿜어냈다. 살의를 담아. 그가 사용하는 최고 절초는 바로 무당의 태극혜검太極慧劍이었 다. 그는 무당파 출신이었던 듯. 모자란 태극혜검의 오의를 남아도는 기력으로 보충해 극한 의 태극패와 같은 형태의 강기로 주변의 눈들을 모조리 날아오르게 하며 가공할 강기를 토 해내 대지를 쪼개버렸다. 파파파파파파팟! 대지를 질주하며 쏟아져 들어오는 흑백의 가공할 강기류. 그러나 그녀는 아주 여유롭게 그 것을 바라보았다. 사력을 다한공격이었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가볍게 그것을 막아버렸다. 정 말 허무하도록 간단하게. "흩어져." 한마디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소리도 없이 강기는 사그라들었다. 대지를 요란하게 울리면 서 쏟아져들어오던 죽음의 강기회오리, 그 강기의 폭주는 허무하게 사그라들면서 순수한 기 자체로 '흩어져'버렸다. 강기가 흩어지면서 일어난 기의 바람을 느끼려는 듯, 그녀는 눈을 가 볍게 감고 싱그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그리고 곧바로 손가락을 튀겼다. 그 순간 퍼억! 하는 소리가 나면서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바이탈리티Vitality가 있는 삶이 좋다니까. 뭐 그런 삶을 산다는건 지금의 나로썬 불가능인 가? 후후훗."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 한마디를 남긴 다음…… 공간속으로 녹아들어가듯 사라져 버 렸다. 경신술도 아니었다.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순간으로 이미 그녀는 공간을 넘어서 저 멀리 다른 곳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 문득 뇌전 한줄기가 일어나 머리통이 폭발에 뇌수를 쏟고 죽은 대주 의 시체를 향해 흘러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뇌전은 폭포수 처럼 주변으로 쏟아져 나가 '어떤 일'을 했다. 파괴의 극인 전뢰가 창생의 힘을 머금고 주변 의 경관을 원래대로 바꾸고 있었다. 파괴된 대지와 어지러워진 주변의 모든 것들이 제자리 를 찾아가. 어느 누구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으로 가득채워졌다. 다시 은근한 바람이 부는 설백의 냉지로 변해버린 이곳에는 어떤 흔적도 없었다. 다만 오로지 천기상인이 5장마다 뚫 어놓는 공기구멍만이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 갈 뿐…… 106. 칠흙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 싸늘하기 그지없는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는 가운데, 아마 심장이 좋지 않은 노약자라면 이 냉풍을 맞은 즉시 심장마비로 돌아가실것만 같은 냉랭한 살기가 은근히 공간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냉랭한 침묵 안쪽에서도 여유작 작하게 몸을 숨기고 공상에 몽상까지 진행시켜 나가다가 퍼뜩 정신을 차려도 전혀 그 기척 이 드러나지 않는 '괴물'이 노닥거리고 있음을 누가 알겠는가. 이런 살기가 두루뭉실하게 퍼 져있는 공간, 너무나 약한 살기지만 공간 자체를 장악하고 있어 멀리서는 몰라도 아마 이 공간 안에서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두루뭉실하게 퍼져나가던 살기는 금방 피식 하고 사그라들었다. 살기를 뿜어내던 당사자들이 죽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괴물'은 노닥거리 면서 흑색으로 칠한 바늘을 날려 정확하게 상대를 마비시키며 동시에 죽여버려서 적어도 반 시진이 지나지 않는다면 쓰러지지 않을것이다. '붓으로 검은 물감을 발라놓은 것 같군.' 그는 나지막하게 입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거추장스러운 자신의 길다란 머리를 잘라버 려서 쾌속한 행동에 도움이 되도록 할지, 아니면 계속 달고 다닐지에 대한 깊이 있는, 다시 말해 심오한 고찰을 계속했다. 이놈의 길다란 머리카락은 은영천검의 트레이드 마크Trade Mark(?)나 다름없게 변질되어 버려서 ― 그는 자신이 출현할때마다 귀신같이 알아 보는 것 이 다만 머리카락 때문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요염과 청순을 왔다갔다 하는 그 외모탓임에 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자신의 외모가 특이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스타르 대륙의 누구가 미남계도 자유자재로 쓸수 있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하겠다. ― 자를수 없게 된 작금의 상황에 욕이 나올 정도였다. 솔직히 이정도 길이의 머리카락을 보존하는게 쉬운가? 머리카락을 감는것도 정말 상상을 능 가하는 괴로움을 부여한다. 물론 기를 세밀하게 잘 운용해서 호르몬을 억제하면 한 삼일을 감지 않아도 별로 변화가 없지만 기의 소모는 어쩔수 없다. 끊임없이 계속 소모되고 그런데 신경쓰느니 차라리 감아주는게 두배 더 낫다. 이 머리카락도 빠지기는 어지간히 잘 빠지고, 무게도 장난이 아니다. 물을 먹으면 정말 끔찍하게 무거워 지는 것이다. 숱도 많고 길기도 길어서 자신 스스로가 자신을 묶는 족쇄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넋두리(?)도 잠시, 묶은 머리카락이 풀어질까봐 노심초사 하면서 잘 묶어 흑의 안에 감추고는 은신술을 극도로 펼쳐 어둠이 내려앉은 냉기가 흐르는 대지를 스쳐지나가며 그는 안력을 돋웠다. 은신술이야 아까부터 펼치고 있었지만 안심이 되 지 않아서 모든 것을 다 차단한 것이다. 주변의 기를 조금씩 끌어모아서 호흡도 보충하고 기류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컨트롤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이 되지 않는 것 은 마찬가지다. '목표'는 화경의 고수니까…… 누군가 아주 조심스러운 몸놀림으로, 화경급 고수라도 알아내기 힘들만큼의 조용한 몸놀림 으로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신법身法은 신법이었는데 어떤 신법인지 알아볼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고절함은 영도 감탄할만큼 대단했다. 그래서 그는 주저없이 현 정파나 마교, 혹은 사파계열의 어떤 무공도 아니라고 결론 지었다. 그러나 저 인물 자체는 정파 인물임에 틀림 없다고 결론지었다. 지금 저 작자가 사용하고 있는 내공심결에서 퍼져나오는 아주 은은한 기파동은 양강陽剛이면서도 느낌 자체는 암흑暗黑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어둠속에서도 빛을 드러내지 않는 열 자체로 다가오는 기파동이었다는 말이다. '저런 특이한 심법이 있었나? 그럼 저 인물이 현 무림을 돌아다니고 있는 그 빌어먹을 비급 을 얻었나 본데? 뭐…… 저 노인네가 방금 저기 숨어있던 한 정파의 얼간이를 죽일 때 쓴 수법은 빠르긴 한데 아무래도 검법에 가까워……' 그는 중얼거리면서 빠르게 기억을 뒤져 신수사의가 수집(?)했던 비급들에서 그 기록을 찾아 내고야 말았다. 망했다고 기록된 사일검법의 초식중 하나였다. 강기를 쓰지는 않았지만 기를 실어서 그 심법 자체에서 유발되는 속성의 기력으로 날카로운 일격을 상대방의 심장에 심어 놓은 것이다. 정말 빠르면서도 무자비한 일격. 날카로운 찌르기를 주로 하는 점창의 검법과 같았다. 뭐 눈으로 보았다기 보다 공중의 기결氣結의 끊김을 느낀것이라고 보는게 옳았지만. 직접 본것과 별로 다르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좋았다. '점창의 심결은 아니다…… 그렇다는 말은 저 노인네가 죽기 직전에 심법을 대체해서 살아 났다는 것이군. 하긴, 저 심법. 내가 사용하는 심결에 별로 뒤지지 않는군. 물론 많이 떨어지 고 조금 치우치기는 했지만 점점 완성되어 가는 기결파동으로 미루어 볼 때 초기 시작은 한 쪽에 치우쳐서 조금 빠른 진도를 꾀하고 후반부에 조화적인 내공으로 완성시켜 나가는 심법 이다. 하지만 뭔가 부족해……' 그럴만도 했다. 청심문의 심법인 사황태극의 조화심결이 네가지로 나뉘어 신녀유무심결神女 柔舞心訣, 천녀강령심결天女降靈心訣, 신룡심결神龍心訣, 명룡심결冥龍心訣로써 이름을 받고 있었으니…… 각기 심법이 결국 궁극에 이르면 같아지지만 사황태극의 심결과는 비할바가 아니었다. 지금 영이 사용하는 북명천지조화심법보다 오히려 뛰어난 부분도 있을 정도인 심 결인 것이다. 아니. 안정성 면에서는 오히려 낫다. 미완성의 심법인 만큼 북명천지조화심법 이 부작용이 몇군데 드러나는 반면에 ― 흡기를 위해 넣은 영기의 고리의 구결이 낳은 부작 용이 하나 존재한다. ― 사황태극의 심결은 그 변용이 너무나 완벽하여 한꺼번에 모든 중루 와 경락을 열어 젖혀 잘못했다가는 죽음에 이르는 통증을 유발하기는 하지만 일단 완성하면 현경에 올라서 노력하여 얻어야 하는 무극지기無極之氣를 저절로 연성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 연속 환골탈태를 하게 되는 고통을 어떻게 비할수 있으랴. 정말 너무나 빠른 속성의 심 결이면서도 정파의 어떤 심법보다도 더 깊고 깨끗한 기운을 닦게 해주는 심결이었다. 가장 빠르게 신화경에 오를수 있게 하는 심결이기도 했지만 현재 나타난 청심비록에는 사황태극 의 심결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현재 기재되어 있는 수법들만 하더라도, 영이 경악을 금치 못할만큼 대단한 것들 뿐이었지만…… 어찌되었든 청심문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은 사황태극의 심결과 신수사령의 오의들이니 엄밀히 말하면 청심비록에 기재된 것들은 쭉정이 나 다름이 아니었다. 소리도 없이 다시 노인, 천기상인의 손짓에 따라 한 인물의 생명이 사라졌다. 노인의 은밀한 신법은 빠르고도 빨라 어둠에 거의 동화되어 그를 발견한 이는 현재 '괴물'. 청淸 뿐이었다. 팔검위들중 화경에 든 이들은 이곳에 없었지만 아마 왔더라도 노인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 다. 정말 아주 부드럽고 빠른 신법. 무슨 신법인지 지금은 그림자라고 자기를 칭하고 있는 그는 몰랐지만 청심문에서 전해지는 많은 신법중 제법 빠르고 ― 무림에서 보면 극악한 빠 르기와 정묘함을 지닌 신법이 된다. ― 나름대로 정묘한, 보법으로도 쓰고 신법으로도 쓰는 은영隱影이라는 신법이었다. 주로 밤에 은밀하게 이동할 때 사용할만한 신법으로, 그 수준은 12성 달성했을 때는 아마 현재의 영으로써도 신경을 제법 써야 쫓을만한 신법이었다. 이것 은 완전히 은신용이지만 극성에 이르면 등평도수, 즉 수상비水上飛는 문제없이 해내고 답설 무흔踏雪無痕이나 빙상보氷上步정도는 된다. 공력이 깊다면 허공답보도 노려볼만한 신법인 것이다. 물론 최상승 신법으로 평가되는 것이 청심문에는 있지만 그것은 천기상인으로써도 4성 이상 익히지 못했다. 은영술 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몸을 숨기며 빙상보나 수상비 등을 해낼수 있다는 것은 정말 별로 쓰고싶지 않은 표현이지만 개세절학이라는 표현이 아깝 지 않을 정도였다. 그중 최상승에 이르는 풍신난영風身亂影은 환幻과 쾌快의 극을 보여주는 신법이고 영으로써 도 힘들 정도로 정묘한 것이기에 천기상인도 4성 정도가 한계였던 것이다. 영이 배운다면 극성에 이르르는것도 별로 어렵지 않겠지만. 공력이 넘쳐나는 영으로써도 물론 가능하지만 직접 오의를 이해하면 공력소모가 줄어들게 되고 그 몸놀림도 달라지니까…… 풍신난영이라 함은 환과 쾌. 이형환위異形幻僞의 극이다. 수백개의 검은 그림자를 찰나간 점멸하게 만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물론 청심문에도 이형환위라는 신법이 따로 있지만…… 어 쨌든 풍신난영은 신법이라기 보다는 단거리 내의 이동, 보법에 가깝게 쓰인다. 장거리 이동 의 신법으로 쓰기에는 좀 무리가 있으리만치 많은 기력을 소모하니까. 염동력을 더한다면 순간적으로나마 음속도 돌파할수 있는 영으로써는 그래도 더 공력소모가 적어지니 배울만하 다. 잘못보면 마법중에서 블링크Blink에 체이닝Chaning을 더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니 그 속 도가 얼마나 빠를지…… "……" 영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서 기파동을 느껴보았다. 과연 천기상인이 잠시 멈칫한 사이에 이미 주변은 포위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천기상인이나 자신이 '죽여'버렸기에 신호가 오가지 않아서 저쪽에서도 눈치채고 모두를 부른 것 같았다. 어둠은 점점 가시고, 대치는 오래 지속된다. 날은 조금씩 밝아오는데…… 차디차게 식은 공 기가 조금 고개를 내밀며 날카로운 금빛의 시린 기운을 뿜어내 세상을 찌르는 태양에 의해 조금씩이나마 덥혀져 나갔다. 천기상인은 지금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제 사일검이나 분광검 은 던져버렸다. 청심문의 비전절학중 탄퇴법이나 각법, 혹은 장법이나 손을 직접 이용하는 많은 술수들로 말없이 공격해오는, 정파 소속이면서도 결코 명망은 없는 '잔챙이'들을 도륙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살수를 쓰지 않았지만 너무나 끈질기게 덮쳐왔기에 아예 '잔챙이들 은 꺼져라'하는 방식으로 모조리 도륙해 버리는 것이다. 손에 뒤덮인 남빛의 은은한 수강은 지 독히도 예리해서 미약하나마 생긴 검기나 일어나는 검풍으로 공격해오는 많은 '잔챙이'들을 정말 쓸어버렸다. 조각조각은 기본이어서 영도 찬탄을 보낼 지경이었다. 피와 내장이 즐비하 게 널려 쌓인 눈들을 녹이고, 땅을 더럽혔다. 손을 빠르게 세 방향으로 그었을 뿐이다. 대각선, 수평형, 그리고 직검단천의 기세로. 그 세 번을 그었을 뿐인데 지독히도 강렬한 남빛의 수강은 석자나 쭈욱 솟아서 모조리 그 궤도를 그어 그 범위 내에 든 이들은 강기로, 그 범위 바깥은 기파동이나 예기를 머금은 바람으로 쪼개버린 것이다. 영이 기겁해서 '심검心劍'이 아닌지 눈을 부릅떴으나 금방 다시 줄어드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심검은 아닌 것 같았다. 하긴, 수도手刀의 형태에서 강기를 심형心形으로 찰나간 변형시켰을 뿐이니…… 하지만 무엇인지 알수는 없었다. 이제 '잔챙이'의 이류무사에서 일류무사, 간혹 삼류무사가 낀 녹림이나 기타 등등의 '잡것' 들 은 이미 태반이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화경의 고수라지만 천기상인은 가볍게 호흡하며 남빛의 오러를 뿜어내면서 주변의 기를 '삼켜'서 기력을 보충했고, 그것은 영에게 도 충격을 주었다. 자신만이 순간적으로 기력을 빨아들여 보충할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화 경의 노인이 성공한 것이다. 진원지기를 늘릴수는 없는 수법이었지만 영으로써도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놀랄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청심문. 대체 뭐하는 곳이길래……' 이제 정, 사, 마의 세 존재들이 한껏 뭉쳐 있는 상황. 천기상인이 혈로를 뚫으면서 움직였지 만 이제는 표정에 허탈함만 스며있을 뿐이었다. 나무를 하나하나 건너던 영도 이제는 외각 에 위치해 있어서 아무래도 은신이 힘들어질 것 같았다. 보호도 힘들어질테고. 그래서 영은 나뭇잎 오십여개를 따서 '준비'했다. 어기비행술御氣飛行術도 물론 할수 있지만 '힘들다'. 아 직 그것의 오의를 깨닫지 못한 지금으로써는…… 어기풍룡륜의 신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 은 회전과 원심력을 통한 부유형 신법이라 기력 소모가 배는 많았다. "……?!" 천기상인은 검을 들고 있었다. 들지 않으리라 생각한 검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는 말이 없었다. 아마도 조금의 부끄러움이나 탐욕으로 범벅된 정신상태라 모두 말이 필요 없었다. 수뇌 몇몇이 뭐라고 떠들었지만 영은 심상치 않은 기운이 천기상인에게 집결되고 있어서 자 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훔치고 있었다. 지금의 천기상인으로써는 차마 천산검주와도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떨어지지는 않을것이고 고인故人 뇌검자도 아마 적어도 300초식 내면 죽을 것이다. 실제로 천기상인은 주변의 기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남빛의 오러가 불꽃처럼 날름거리며 산소를 삼키는 불길처럼 주변의 기를 삼켜 조금씩 거대해지고 있었다. 청심문의 생령염生靈焰. 선천소신先氣消身 격발激發! 그렇지 않아도 뇌검자를 넘을만한 힘 을 지니게 된 화경고수가 비기를 사용해서 기를 벌써 세배 이상으로 증폭시켜버린 것이다. 12갑자의 공력으로 너울거리는 남빛의 기염氣焰! 그것에 모두는 질려서 물러나 있었다. 이 정도 공력이면 이미 천산검주는 넘어버렸다. 천산검주도 10갑자가 채 되지 않는데…… 지금 공력이면 영의 5분의 1에 달하는 극한의 공력인 것이다! 혈맥은 찢어질 듯 팽창하고, 천기 상인은 입에서 피를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격돌은 시작되었다. 천산의 검객들이 몇 몇 나와서 그를 견제하고 있었고, 화경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이미 기파동만으로도 피를 게 워내면서 뒤로 물러나있었다. 눈을 부릅뜬채 선천기를 격발시키면서 동시에 역기충혈대법을 통해 기력을 소잔시키고, 그것을 다시 음혈맥과 양혈맥이 이어지는 부근에서 충돌시켜버리 고 셋에서 네 번을 주천시킨후에 아예 상단전과 중단전에 남은 기의 잔흔마저 긁어내는 극 악한 격발수법이었다. 일반의 격발수법과는 달라 이것은 영혼에 남은 영기마저 뽑아내는 것 이다! 잘못하면 영혼의 소멸消滅로 이어지는 수법! 영혼에서 긁어낸 영기가 들끓어오르며 생성된 극파의 기운과 섞이며 그것이 무극지기無極之 氣로 바뀌며 12갑자의 힘은 다른 심법으로 모은 기보다 훨씬더 월등하여 사실상 지금 무림 에서는 15갑자 이상의 힘을 발할수 있는 것이다. 영도 무극지기를 지니고 있었기에 지금 저 남빛의 기염이 투명해져가면서 타오르는 것이 바로 무극지기의 불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 었다. 그가 잡은 검의 검극에 강렬하기 짝이없는 뇌정지기雷精之氣가 모여들면서 푸르른 뇌 염으로써 타올라 스파크를 일으켰다. 가장 순수한 뇌정지기의 덩어리가 10갑자 가량의 힘을 머금고 강렬하게 백열하고 있는 것이다. 유리처럼 투명한 번개가 요란하게 일어나면서 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청심문. 중급기中級技 검결劍訣 진뢰震雷. 폭주일섬暴走一閃. 청심문에서는 저정도의 검기조차 중급기로 분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탈인선입의 비급 이라 할만 했다. 어찌되었든 일어난 유리빛 전류는 일렁이면 검극 위로 거대한 뇌력의 구를 만들면서 타올라 주변의 전자를 뒤흔들어놓았다. 천산의 검객들은 그러나 검에서 요란한 검 강을 피워올리며 검을 그었고, 순간적으로 순백색의 강기가 신월형으로 뿜어져 나가면서 뇌 정과 마주쳤다. 검강은 먹혀버렸다. 뇌정은 검강을 삼키면서 오히려 더더욱더 거대해진 것이 다. 순백의 파괴가 순수한 힘에 삼켜진 것이다. "섬閃!" 창노한 음성으로 검을 휘두르면서 천기상인은 소리쳤다. 청심문에서 살법으로 분류하는 핏 빛의 전류와 같은 강기. 뇌살강雷殺剛과는 다르게 이것은 상급기로 분류하는 뇌류강雷流剛 의 불완전한 기결이었기에 중급기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일반강기와는 적어도 세배 이상 위 력차가 나는데다가 10갑자. 다시말해 600년의 공력을 투입해 일으킨 공격이었기에 이것을 막을만한 이는 장내에 영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힘으로 눌러야 했던 것이다. 쿵! 영의 심장은 진동하며 피를 가쁘게 전신으로 돌렸다. 평소보다 더 가쁘게 뛰면서 심장은 요 동쳤다. 영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린 뒤였다. 천기상인의 검이 느릿한 궤도로 그어지면서 뇌력의 파도를 일으키고, 뇌력의 파도는 요란하게 타넘으면서 순백색, 청백색으로 타오른다. 타오르는 전격의 파도. 그것을 보면서 영은 머릿속에서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영상을 시각적 이지 않은, 영적인 '느낌'으로써 '보았다'. 콰쾅! 뇌음雷音. 천둥이었다. 은빛의 환영幻影. 검은 바람속에서 요동치는 그것. 쿵. 쿵. 쿵! 다시한번 심장은 뒤흔들리면서 영의 뇌리 가장 깊숙한곳, 무의식 내부의 꿈 어딘가에서 그 것을 끄집어 내었다. 콰쾅! 콰콰쾅! 다시한번 뇌음이 울려퍼지며, 흑풍黑風…… 치가 떨릴만치 검은 바람이 황량한 광야를 휩쓸고 지나간다. 욕지기를 부르는 빛의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을 베고 지나가는 은광銀光. 심장의 요동은 이제 발광에 가까웠다. 그러나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은 찰나의 찰나. 다시한 번 무의식속에서, 아니. 영혼의 내부에서 그를 부르는 외침이 들려온다. 콰콰쾅! 무슨 소리 인가. 이제는 현세에서의 벼락이 무의식의 벼락으로 그를 이끌었다. 우르르릉…… 울어 젖힌다. 모래의 회오리를 쪼개어 날카롭게 내리 쳐 퍼져 나가는 뇌격雷擊. 미친 듯이 약동하며 춤을 추는 바람, 그 바람에 휘말린 흰빛의 모래의 입자들. 햇빛은 없다. 그래서 비현실적일만큼 어두운 바람과 흰 모래가 뒤섞이며 춤을 춘다. 이미 영은 무아無我에 빠져 무의식의 부름.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 그 안쪽의 부름으로 빠 져들어가고 있었다. 느릿하게 들려오는 검음은 푸른 번개를 머금고 터져올라 파도로써 이미 검강의 벽과 충돌하며 굉음을 토해냈다. 콰르르르릉! 우르릉…… 콰르르릉! 천지뇌명天地雷鳴. 멸망이 내려온 듯. 번개가 울고 천지가 흐른다. 태 동하는 세계…… 비현실적인 흰빛의 모래의 영상이 존재를 덮쳤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공간이 베여져 나 갔다. 천참千斬하고 만섬萬閃하며 겁멸劫滅한다. 순간의 섬전이 천번 쪼개고 만번 빛나며 억겁으로 멸한다. 순은純銀의 광채! 순은의 뇌류를 머금고 쏟아져 내리는 천상의 검劍! 현세現世속, 퍼져나가는 뇌력의 파도가 멎었다. 뇌력의 파도의 중심인 뇌정을 머금은 검이 산산조각나면서 깨어져 나갔다. 은빛의 섬전閃電이 공간을 찢고 존재存在를 베었다. 터져나 가는 혈향血香. 혈옥血玉의 운무雲霧. 그리고 운무를 삼키고 혼을 절단하는 검의 울부짖음. 은빛의 천지뇌명. 그리고, 뇌격의 파도는 검강을 삼켜들며 망막을 태울것처럼 백열하다가 처 량한 비명을 토해내면서 사그라들었다. 우르릉……! 비릿한 피의 회오리와 함께…… 107. 요란한 뇌음이 휩쓸었다가 사라진 장내는 경악의 도가니였다. 은빛의 섬전은 외각의 나무에 서 뻗어나와 번개의 파도, 벼락의 장벽을 '꿰뚫고' 지나가 뇌정의 한 가운데에 꽂혀 들어갔다. 그리고 뇌력의 장벽과 뇌정지기를 모조리 삼키면서 금속성이 아닌 정말 소름끼치도록 깨끗 한 순은의 번개로 환원시켰다. 바닥에 꽂힌채 파르르르 떨면서 은빛의 뇌전을 간혹 튀기는 장검長劍 한자루. 혈조도 코어Core도 없는, 그래서 더욱 특이한 얇은 검. 검신 자체는 은빛 의 수정을 빚어서 만든 듯 아름답기 그지없는 은은한 은빛의 광채를 주변에 발산하고 있었 다. 비스듬히 꽂힌 그 검은 금빛의 수실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갑자기 스쳐간 바람이 정말 순금으로 만든 듯한 수실을 흔들자 모두는 퍼뜩 제정신이 들었다. 환상같은 은빛의 섬전은 정말 터무니없으리 만치 빠르게 쏘아져 나가서 뇌정을 머금은 검을 산산조각내고 모든 뇌정을 빨아들여버린 것이다. 검劍은 태고의 아름다움과 현세의 모든 아 름다움으로 빚어 만든 듯, 이 자리에 선 모든 이들의 혼을 빼놓았다. 그들은 무림인이었고, 인간이었기에. 정말 보물이면서 명검名劍이 드러나자 탐욕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검은 감히 그들과 같은 존재들이 만져서 살아남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과연 자신도 모르게 탐욕에 취해버린 한 인간은 검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탐욕어린 표정으 로 다가가 손잡이에 손을 얹었던 이름모를 누군가는 퍼뜩 제정신을 차리는 듯 했다가 검에 얹어진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눈을 부릅떴다. 강렬한 번개의 꽃이 검신에서부 터 개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은빛의 번개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꽃은 개화하여 천천히 벌어 져 사내를 덮쳤다. 식인화처럼 닫혀버린 번개의 꽃잎…… 은빛을 머금은 유리같은 기운이 일어나 사내를 눈 깜작할 사이에 삼켜버림과 동시에 이미 영혼마저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고, 그것은 모두로 하여금 소름이 전신을 치고 달 리게 했다. 검에서 뿜어져나오는 노기怒氣와 살기殺氣는 너무나 예리했따.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내딛던 장내의 모두는 검의 징벌懲罰에 퍼뜩 제정신으로 돌아왔고, 그 광경은 잠시 정 신적공백에 빠졌던 영마저 제정신으로 돌려놓았다. 비명조차 지르지못하고 영적 뇌격에 영혼마저 재가 되어버린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금빛 수실은 아늑하게 나부꼈다. 영은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게로 다가갔다. 허공답보하여 내려앉 은채 그는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알 수 없는 동질감과 따스함. 검의 손잡이는 정말 따스했 다. 유릿빛 뇌전이 일어나 그를 휘감았지만 그것은 금방 사그라들면서 사라졌고, 영은 알 수 없는 따스함에 검을 바라보면서 흐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검은 가볍게 진동했다. 우웅 하 고 검명을 토해내자 영의 미소는 조금 더 짙어졌다. 사르르릉― 바람이 지나가며 얇은 검날과 검신을 흔들자 금속음이 일어났다. 은청색의 검빛이 일어나 장내의 모두를 놀라움으로 밀어넣었다. 그 소름끼치도록 맑은 금속음은 이제 일어나 조금 더 솟구쳐 오른 금빛의 햇살과 맞물리면서 모두를 한기의 바다로 몰아넣었다. 은청색의 검 빛이 금색의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아침햇살과 섞이면서 찬란한 빛의 검처럼 보였다. 은청 색의 수정과 같은, 반투명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맑고 깨끗한 검신. 혈조도, 코어도 존재하지 않은 얇은 검신은 연검이나 세검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지만 이 검은 틀림없는 장검이 었다. 정말 너무나 얇게 느껴지지만 어지간한 정도는 되었다. 은청색 검劍. 석자를 넘는 검신은 다시 말하지만, 너무나도 얇았다. 지금의 야금冶金 정도로 는 해낼수 없으리만치 아름다웠지만 정말 얇았다. 부러질 것 처럼. 에페나 협봉검과도 비교 해서 별로 차이 나지 않을만치 좁은 검폭. 물론 그보다는 조금 더 넓긴 했지만 장검이라기 에는 아슬아슬할 정도였다. 예술품이라고밖에 부르지 못하리만치 아름다운 빛. 너무나 깨끗 한 사파이어와 가장 깨끗한 백련철의 반사광이 섞여있는 듯한 검은 빛으로 인해 일어난 그 림자 조차 고고하게 타오른다. 가드. 다시말해 검막이는 그야말로 장식물인 듯 작았지만 매 끈했다. 힐트…… 손잡이는 흰색의 가죽을 이용했고, 가드 중앙에 박혀있는 것은 은색의 번 개를 봉인하여 만든듯한 성인의 손톱만한 브릴리언트 컷으로 만든 보석이었다. 재질은 알수 없었지만…… 이어서 폼멜은 장식용 기능만 있을 정도로, 손톱만큼이나 작았다. 폼멜의 재질 역시 가드에 박힌 보석과 같았다. 천천히 물속에 풀리는 잉크처럼 검은 흐트러져 나갔다. 영은 의아해 했지만 천천히 검은 흐 트러져가면서 은빛의 번개가 되어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어갔고, 10여초가 흘렀을 즈음에는 이미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꿈처럼 사라져버렸지만 검이 나타났다는 증거…… 바닥 에 남은 재가루는 그대로 바람에 휩쓸려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에 한바탕 다시 휩쓸고 지나 간 즉시 모두는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영은 그와 함께 주저없이 복면을 던져버리고, 머 리카락을 풀었다. 흑요석같은 흑색 머리카락이 찬란한 금빛 햇살을 튕겨내는 모습은 아름다 움으로써 모두에게 다가왔고, 숨이 막힌다는 듯한 외침이 침묵을 갈랐다. "은영천검!" 모두가 웅성거리는 가운데서도 영은 여전히 사라져버린 검에서 느껴지던 친근함을 생각하고 있었다. 검…… 무엇이었을까? 알 수 없는 친근함이 느껴지는 검 한자루. 은청빛의 검날이 눈앞에 남아있는 것 같다. 오른손에 쥐어졌던 장검 한자루는 마치 자신의 손에 쥐어지기 위 해 만들어진 듯 꼭 맞았다. 없으니까 허전할 정도로, 그것은 자기 자신과 같다는 느낌이 드 는 묘한 검이었다. 오른손에 쥐어졌을 때 느껴지던 감정은 자신감. 이 검이 있다면 어느 누 구도 나를 해할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안온함. 왜 사라져버렸는지는 알수 없지만 자신의 몸 속으로 흡수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리고 검신 자체가 자신의 몸에서 형성되어 번개를 삼킨 것으로 유추해보면…… 그것은 자신과 무슨 관련이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 불러낼수 있을것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안심되었다. 그 검이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흐릿한 미소를 지을수 있을 뿐이었다. 찬란한 금빛 햇살 가운데, 이제는 기억하는 꿈속에서의 그 비정상적인 흰 모래같이 느껴지 는 눈이 한가득한 벌판에 서서, 영은 오만하게 창천蒼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였 지만, 영은 금방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 칠공에서 피를 쏟고, 모공에 서도 피를 조금씩 흘려내고 있는 천기상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천기상인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그는 손을 들어 품속의 청심비록 상, 하권을 빼낸 것이다. 영은 움찔 했고, 천기상인 은 곧바로 청심비록에 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조화적인 운용도 아니었다. 무작정 불어넣은 것이다. 보통 조화적 운용 없이 불어넣게 되면 기의 한계로 인해 종이따위는 금방 타버린다. 그것도 양을 잘 조절해야 하지만…… 남은 2갑자 공력을 모조리 불어넣었으니 아마 청심비 록은 타버릴 것이다…… 라고 천기상인은 생각했다. 영도 그것을 느꼈고, 화경고수들도 그것을 느꼈다. 모두가 헛바람을 삼켰다. 그 상황에서 다 른 모두 역시 삼매진화의 수로 청심비록을 태우려 함을 느꼈기에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청심비록은 우습게도 기를 머금더니 소름끼치리만 큼 화려한 강기剛氣를 토해냈을 뿐이었다. 지강指剛도 아닌 지강紙剛이었다. 청심비록을 구 성하고 있는 종이들은 보통 종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 때문에 천기상인의 눈은 부릅떠 졌고, 모두는 허탈함이 서린 표정이 되었다. 영마저 예외는 아니었다. 천기상인이 보인 신위 는 대단하여 모두가 비급을 노리고 있어서 아마 지금 타들어갔다면 천기상인의 시체는 그나 마도 제대로 보존되지 않았을 것이다. 천기상인은 남은 기력을 모두 모아 비급을 수강手剛을 뿜어내어 찢어버리려 했으나 이미 한 줄기 바람같은 기운이 스치고 지나간후, 그의 몸은 뻣뻣이 굳어버렸다. 영이 음유한 기력을 실어 모든 마혈을 순차적으로 짚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청심비 록은 영의 손에 넘어가있었다. 그 즉시 영은 이미 바닥에 반탄강기를 펼치고 진각을 찍어 오장이나 솟구쳐 올라있었다. 비급을 잡음과 동시에 솟구쳐 오른 것이다. "이런! 잡아라!" 영이 탄신彈身하면서 공중에서 무섭도록 빠르게 질주하는 것을 어느 누구도 막지 못했다. 다만 검을 휘둘러서 날려보낸 검기나 검강은 그의 주변으로 뿜어져 나감과 동시에 사그라들 었다. 영은 빠른속도로 공중을 질주해서 쏘아져 나갔고, 모두는 허탈함이 서린 표정이 되었 다가 경공을 펼치면서 그를 추격했다. 그러나 그의 속도는 너무나 빨라서 모든 무림인들의 시야에서 금방 벗어나버렸고, 다만 그의 뒤꽁무니를 쫓아가는 강렬한 기파동을 뿜어내는 강 기 수백가닥만이 잠깐이나마 그를 추격했을 뿐이었다. 8할 이상의 강기를 피해내고 이제는 2할 가량. 즉, 40여가닥의 날카로운 다색다형多色多形의 찬란한 파멸이 그를 붙들었을 뿐이 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파르르르르르! 그가 공중에서 갑자기 몸을 빙그르르 회전시키자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흑포가 요란하게 흔들리면서 공기와 마찰하며 특이한 소리를 퍼뜨렸다. 순간 그의 쌍수가 떨쳐내지자 금빛의 서기瑞氣가 호弧를 그리면서 퍼져나와 강기들을 뒤흔들었다. 공기중에서 요란한 폭발음이 일어나며 태반의 강기가 흐트러졌다. 방금은 그 금강폭열공金剛爆熱功을 잠시 응용한 것으 로, 강기룡을 뿜어내면서 충돌시켜 기파동을 뿜어내 강기의 기결을 끊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기세를 잃지 않고 공간을 쪼개오는 날카로운 강기의 선을 바라보면서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몸을 빙글 돌려서 제대로 자세를 잡으면서 흑색의 불꽃처럼 휘날리는 머리 카락을 넘긴다음 쌍수를 휘돌렸다. 그 순간 다시 금빛의 황홀한 서기가 피어오르면서 짧게 끊어졌고, 순간 황금빛을 찬란하게 토해내는 금빛의 신룡神龍들이 괴음을 지르면서 튀어나 와 그의 몸 주변에서 빙그르르 돌면서 응축되어 금강탄金剛彈으로 형체를 변환했다. 비록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자그마치 서른개에 달하는 금빛 서기를 줄기줄기 토해내는 강탄은 주 먹 반만한 구슬 형태로 일렁이면서 무서운 속도로 쇄도하는 강기들을 모조리 관통해서 흩어 버리고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 금빛의 폭발을 일으켰다. 콰쾅! 콰콰쾅!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폭발들을 무시하면서 영은 몸을 회전해서 그대로 또 주욱 신형을 뽑 아올렸다. 그 찰나 추격해온 이들이 재차 검강에서 수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격을 퍼부 었으나 영은 인상을 찡그리며 아예 이번에는 몸을 회전시키면서 수백마리의 강기룡을 뿜어 내 저 너머까지 모조리 휩쓸어버리는 장관을 연출해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굉음을 터 뜨리며 쏘아져 나간 강기룡들은 금빛 서기로 이루어진 털과 같은 기운을 올올이 흩뿌리면서 모든 강기를 삼켜버리고 몰려가 대지를 갈아 엎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너무나 화려한 서 기를 머금은 금강폭열공을 보게 되어서 사상자는 10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마교측의 피해 는 물론 전무했고, 전부 다 사파에 속하거나 정파에 속한 이들의 피해였다. 묘하게 마교쪽은 오히려 영을 지원하기 위해 온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뭐, 대가는 영이 마교에서 소실된 비급 몇 개를 건네주는 것으로 지불했기에 마교는 청심비록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천기상인의 신위를 본 뒤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비급 여섯 개와 청심비록 하나에서는 차라리 자신들의 비급 여섯 개를 택한 것이다. 마교도로써의 자존심이랄까. 차라리 타파의 비급보다는 자신들의 소실된 보급을 보충하기를 원했다 할수 있었다. 3각쯤 무서운 속도로 공간을 가르던 영의 신형은 바닥에 내리 꽂혔고, 금방 그의 주변에 나 타난 흑의인 30여명은 그를 호위하면서 근처에 있는 2, 300의 세가 사람들과 합류해 그들을 추격하는 이들이 흔적을 발견하기도 전에 내빼버렸다.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운과 합류한 그는 500 정도로 불어난 인원을 무사히 다시 본가에 돌려놓을수 있었다. 털도 뽑지 않고 ― 한마디로 대가도 '거의' 치르지 않고 ― 개세절학이 기록된 비급 하나를 삼켜버린 그들이었 다. 청심비록은 그정도의 가치가 있었기에, 어차피 사본을 베껴놓은 비급 여섯 개를 마교에 건네는 정도로는 오히려 싸게 지불한 셈이었다. 108. 굳이 소리로 표현하자면 금속과 금속이 느릿하게 마찰하는 듯한 소리가 날 듯한 모든 에너 지가 흐르는 곳. 아스트랄 플레인. 마나Mana, 에테르Ether에서 기氣와 영기靈氣. 그리고 심 지어는 신성력에서 신력, 그리고 마족에게 주어진 혼연의 힘까지 흘러 다니는 곳. 물론 그 본질의 본질. 아스트랄이 엉키면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삼라만상森羅萬象과 물질계에 구현 될수 있는 모든 것이 형성되며 만색만상萬色萬象이 구현되는 곳. 그러나 지금 당장은 청백 색의 폭염같은 느낌의 아스트랄만이 흘러다니며 엉키는 곳. 난류亂流를 연상케 하는 아스트 랄의 흐름은 어지러워서 바라보고만 있어도 두통이 생길 정도였다. 아스트랄은 자세히 보면 고리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이 아스트랄 계의 중심축, 역내면의 법으로 인해 봉인계의 축과 연결되어 있는 그곳. 블랙홀이나 다름없지만 빨아들이지는 않는다. 그 내부의 중력은 끔찍하 리만큼 대단하지만 중력이나 역중력따위에도 마음만 먹으면 영향받지 않을수 있는 '그들'은 마음껏 오갈수 있었다. 아스트랄의 중심축에는 여전히 만물이 담긴 은빛의 날개와 투명하리만치 깨끗한 은빛 날개 를 펼치고 있는 '그들'이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둘 모두 본질이 무한이었지만 같은 유클 리드 공간에 공존해 있을수 있는 이유는 한쪽이 무한과 유한의 '교차점'인 탓이었고, 하나는 순수한 무한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이 아스트랄 플레인 만큼은 절대적인 법에서 벗 어나 있었기에 둘 모두 이 공간에서는 존재적 상충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의외야. 아직 반영체화反靈體化도 이루지 못한 녀석이 아我의 심연深淵에서 내면의 검을 찾아내다니…… 뭐 상관은 없는 일이지만. 청심비록도 손에 들어 갔군. '일단은' 그럭저럭 성공적이야…… 삼매진화三昧眞火 따위에는 타지 않도록 금속섬유사金屬纖維紙로 만들기를 잘했군.」 천기상인이 삼매진화에 실패한 이유가 이것에 있었던가. 천기상인이 알게 된다면 통탄할 일 이었다. 금속섬유로 짠 종이였으니 강기가 뿜어져 나올만도 했다. 그렇게 되면 지검강紙劍剛 이 되는것인가? 어찌되었든 그들은 여전히 음모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말을 하고 있었다. 꼭 일반 만화나 소설들을 보면 체스를 두면서 '오, 역시 예상대로 움직였군' 류의 말을 하면 서 음침한 냄새를 날리는데. 차라리 이쪽은 양호하다 하겠다. 어둠을 배경으로 '겔겔겔'거리 면서 발광하는 것보다야 차라리 직설적으로 표현하는게 낫지 그런식으로 우회적 표현을 시 도하게 되면 작가만 죽어난다. 그래서 그런 류의 캐릭터들은 절대! 정상적으로는 못죽는 것 이다! 헐떡거리면서 고통을 감내하고 죽는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결코 만물이 피어나는 곳이 아니다. 삼라만상이 탄생 '될 수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결코 시작점이 아닌 것이다. 다만 '카르마의 시작점'과 유사한 환경일 따름이었다. 유사환경 이라는 말이 나와서 한마디 하는데. 그렇다고 플레인 채널이 비슷할 뿐이지 연결되지는 않 는다. 디멘션 루프가 닮았다는 소리인 것이다. 결국 비슷하다는 말을 조금 더 어렵게 한것에 불과하다. 어쨌든 12서클. 11서클인 선仙의 경지에서 벗어나 신神에 들면 생물창조정도야 일 도 아니다. 물론 두단계 이상 더 올라야 세계창조가 가능하지만 이 세계를 만드는 것은 유 한존재로써는 힘들다. 신이라고 해도 진짜 무한은 아닌데다가 적어도 천신경 이상쯤이 아니 라면 이것을 흉내내는 것도 힘든 것이다. 본질의 본질을 이해하는 경지. 빛과 어둠의 극을 다루는 극화極化가 아니라면 영자력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심비록을 얻으면 신화경神化境에 들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어떻게 하실건가요?」 「뭐, 설원이 10서클이 아니니까 일단 방해해야…… 음? 뭐지? 이건?」 문득 그는 무엇인가를 느낀 듯 했다. 아무리 '이어져 있어도 단절된' 아스트랄 플레인에 있 다고는 하지만 둘 모두 자신들이 만든 세상이었기에 어떤 이상이 있어도 이해할수 있는 것 이다. 순은의 날개를 지닌 자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손가락을 튀겼고, 그 순간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빛으로 된 얇은 판이 그의 앞에 떠올랐다. 그는 쉴새없이 변하는 그 차원 판도를 들여다보다가 웃음, 흐릿한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후……」 「방금 그것은……?」 「계산착오는 아니지만 그래도 의외군. 피해가 조금 큰데. 설원과 청의 존재로 인해 흔들린 차원벽에 틈이 생겼어. 덕분에 봉인계에서 자그마치 셋이나 다른 차원에 떨어졌어. 그중 둘 은 주신계에서 차단해서 근방차원에 떨어졌지만 공교롭게 한녀석은 우리가 주시하고 있는 '그곳'에 떨어졌군. 동대륙이야.」 「계획과는 관련되지 않을까요?」 그 말에 은익銀翼의 그는 한숨을 쉬어내는 듯한 제스처를 보여주다가 고개를 저었다. 「……필히 관련될거야. 봉인계 사는 놈들은 워낙 기와 마나가 적은 세상에서 살다 보니 신 체 자체가 기와 마나에 민감하지 못하면서도 예민해서 마나와 기가 충만한 곳에 떨어지면 다시 변화하여 기와 마나를 엄청나게 삼켜대잖아. 겉보기에는 재질도 별로고 머리가 안좋다 하더라도 길게는 5년, 짧게는 3년만 수련하면 화경은 기본이고 적어도 7서클 마스터까지는 가니까…… 정말 끔찍한 위험이란 말이야. 게다가 대부분 염세주의자들에다가 삶에 질리고 썩어서 살인하다 보면 재미도 들리고 종교도 싫어하는 녀석들이 많아서 쓸데없이 그 차원신 들의 계획에도 없는 나라가 하나 건국되기도 하고 거기에 고등학생이라고 하면 욕구불만에 허덕이는데다가 스트레스도 쌓여서 이성이 끊어지면 본능대로 행동하고 살인은 밥먹듯 하고 여자 밝히고 자기 제어도 하지 못하는데다가 바보들도 많아. 닥치는대로 마법 난사에다가 신성모독은 기본이고 마음에 안드는 놈들은 고문 끝에 죽이기도 하고 흑발흑안이라 우민愚 民들에게 마족이라 불리면 열받아서 가끔 마족도 학살하고 천사들이 말리러 가도 모조리 학 살해버리는 괴물들만……」 ……길었다. 10여분 동안 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는 어차피 호흡조차 하지 않았기에 문 제 없다는 투로 마지막 말을 결정지었다. 「봉인계 놈들은 위험한놈들밖에 없어. 광신도狂信徒아니면 유신론자有神論者. 혹은 무신론 자無神論者에다가 유신무용론자有神無用論者에 아카식 스트림 신봉자까지 별놈들이 다있으 니 하여튼 만상 위험의 집결지야. 왜 멸종하지 않는지 의심스럽다니까. 몬스터가 돌아 다니 는 곳보다 오히려 험악해서는 총기류로 같은 종족을 난살하기도 하고 성생활 문란에……」 점점 왜 윤리적 측면으로 기운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거기다가 물건 팔기 위해 전쟁하는 나라도 있고 건드렸다고 초토화까지 시키는데다가 민 주주의니 어쩌니 하면서 내부부터 썩어나가는 데도 있고 민주주의인 것 같으면서도 군국주 의인 바보들도 있고…… 쓸데없이 그런 이념들이나 가지고 가서 다른세상이나 오염汚染시키 고…… 하여튼 제정신인 놈들이 없다니까.」 당연한 투덜거림이다. 봉인계. 온갖 사상과 이념이 얽혀 있는 곳. 차라리 다른 세상들은 마 법과 기라는 힘에 의해 그 성장이 미약해지고 있다. 과학도 함께 발전시키면서 오염된 것들 을 대단위 정화마법으로 정화시킬수도 있을텐데 대체 왜 이런 바보짓을 하는지 알수가 없 다. 어쨌든 그곳은 그곳이고 봉인계는 봉인계이지만…… 이런 사례가 있으니 봉인계 차원이 동자는 별로 탐탁치 않은 것이다. 어떤 일이었냐 하면. 봉인계에서 어느 나라의 영웅이 차원 이동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그놈은 사람 자체만 보면 별로 나쁜놈도 아니었지만 사상이 썩어서 그 세상에 나치즘 비슷한 것을 부흥시켜버리는 엄청난 짓을 했고. 지금 신들이 만든 간이지옥(?)에서 10조 년이라는 시간동안 고통받고 있다. 실제로 그 세상은 그놈 때문에 50 억년이나 정화를 앞당겨서 다시 처음부터 쌓아나가야 했고, 그 덕분에 신들은 그놈의 영혼 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괴롭히면서 분을 풀고 있다 한다. 그리 오래전에 일어난 일은 아 니다(?). 물론 차원적 시간으로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지만…… 우주조차 변할 시간이지만 차원적으로 보면 그다지 오랜 시간이 아닌 것이다. 「그는 어디에 있죠?」 「……그녀석. 봉인계에 내가 잠깐 퍼뜨린 청심문의 심법을 얻은 녀석인데? 남자 주제에 신 녀유무심결을 익혔어…… 뭐 명룡결도 익혔으니 그럭저럭 괜찮기는 한데……」 마치 직접 보고 느끼는 듯 했다. 기파동까지 느낄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아스트랄 계에 있는데……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아무리 욕심이 있 어도 그렇지 청심문의 신녀유무심결은 본래 여자가 익히는 심결이다. 사황태극의 심결은 신 녀유무심결, 천녀강령심결, 신룡결, 명룡결을 조화시켜야만 가능한 심결로, 정말 상상을 능가 하는 고통을 유발한다. 하지만 진도는 지나치리만치 빨라서 청심문을 전파했을 때 그 역사 상 익힌 이는 그 유구한 태초에서조차 별로 멀지 않은 세월에서 지금까지도 세자리를 벗어 나지 못하고 있었다. 여성이 익히기에 좋은 심결을 익혀서 부작용을 경험한 이들도 있고 조 화되는 심결. 신녀유무심결과 명룡결, 그리고 천녀강령심결과 신룡결을 조화시켜서 양 심결 의 화후를 이용해 부작용을 억누르면서 경지에 오른 이들은 있었지만 사황태극심결을 익힌 이는 없었던 것이다. 네 심법의 부작용이 최고조로 승화되는 정말 끔찍한 부작용이 하나 있 기는 하지만 제법 탐은 나는 심결이다. 범인도 미인으로 바꿔주는 심결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심각한 성형심법(?)인 것이다. 네 심법 모두 외모가 조금씩 바뀌지만 극성에 이르면 Before와 After가 심각할 정도로 많은 차이를 보인다. 거기다가 사황태극심결은 어떻겠는게, 네 심결이 상충하면서 그 효용이 극도로 높여지는데…… 생각지 못하게 성형의 효용조차도 조금 거짓말 붙여서 백배상승하여 외모가 개조되어 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두 개의 심결을 조화시키면서도 조금만 실수하면 사황태극의 심결에는 이르지 못하 더라도 그 '성형'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증폭되어 버리는 탓에…… 그 외모는 남자가 익혀도 엄청난 변화를 겪는 것이다. 영도 제법 미인이었지만 환골탈태를 두 번 거치고 난 뒤 바뀌 었듯이 이 심법도 환골탈태를 두 번 거치면 외모가 터무니없이 변해버리는 것이다! 반로환 동이 아니라 정말 몸 전체를 새로 주문해서 만든 것 처럼…… 「……이녀석, 균형이 깨졌군. 그것도 엄청나게……」 ……은근히 양심이 찔리는 그였다. 어쨌든 심결을 만든 자은 그였으니까. 109. 사방신수四方神獸 신수사령神獸四靈 봉인계. 행성 지구. 신들은 '흐름의 감옥' 칭하는 살아있는 지옥地獄. 그리고 그 내면의 역행 을 보면 봉인계만을 담당하는 하나의 신계가 있다. 우주를 접어서 초원형으로 가두었기 때 문에, 전체적으로 하나의 고리의 형태로 하고 있고, 그 고리들이 차곡차곡 쌓여 10개 이어져 긴 끈의 형태를 하고 있고, 그 끈은 다시 고리가 되어있다. 사실상 절대차원구는 신들이 보 기에는 별로 넓지 않기 때문에 그 안에 방대한 우주가 3차원적인 공간을 4차원적, 아니. 그 이상의 수법으로 접어놓는 것을 필수였다. 봉인계만 9개의 세계로 이루어진 탓에 다른 차원들이 그 공간내부의 필요적으로 구분된…… 다시 말해서 마계나 선계, 혹은 하다못해 정령계나 허차원 따위는 내외면의 다면적인 구조 를 이용해 설치한 것이다. 봉인계의 10개 세계중 가장 밑의 세 개를 악마들이 사용한다. 그 나마도 여러층으로 나누어놓았지만. 그리고 그 위가 바로 정령계 한층. 타 차원의 정령들과 는 달리 계급도 없고 말 그대로의 순수적 자연에너지의 응집체일 따름이다. 힘의 상징으로 써 악마들을 막는다. 그리고 그 위가 바로 인간들이 존재하는 유클리드 공간. 물질계다. 우 주적 공간과 겹쳐있는 공간이다. 두 개의 고리를 쓰고 있었다. 아예 우주 세 개를 악마들에게 주었으니 사실상 봉인계에서는 그 악마나 신들의 힘이 타 차 원보다 보다 강력했다. 봉인계가 워낙 불안정한 탓에 그렇게 힘이 주어진 탓이기도 하고. 두 개의 고리로 이루어진 인류가 사는 공간은 모두 마나와 기가 타 차원에 비해 10분의 1. 다 시말해 인간들이 죽어나가지 않을 정도 뿐인지라 나머지는 모두 위 아래로 에너지를 몰아주 고 있었다. 그 다음 다시 위로 정령계가 한층 있고, 그 다음 남은 세 개의 고리를 전부 다 신계와 선계가 쓰고 있었다. 뭐 어찌되었든 엄청난 다신교적인 차원이었기 때문에 인간들이 전해주는 정신적 힘은 마나, 기와 맞물려 증폭되어 신계와 지옥계열의 세상을 지탱하고 있 었다. 광신도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가? 어쨌든 신계와 악마계는 정말 '뒤집어' 지고 있었다. 방금 거대한 타격이 와서 루프가 흔들 려 물질계에 흠집이 생겼다가 간신히 복구된 것이다. 그 탓에 선계와 신계의 천사나 환수들 만 죽어라고 고생하며 물질계의 취약한 결계를 보강하고 있었다. 마나나 기를 모두 몰아준 탓에 세계를 구성하고 받쳐주는데 쓰는 마나나 기를 받아들인 신들이나 존재들이 괴로울 정 도로 고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의아할 정도였다. 하지만 우주적 축에 그 중요한 아스트랄 플레인과 연결되는 통로가 고리의 안쪽에 존재했기에 지켜지지 않 는다면 절대차원구에 아마 구멍이 나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신급 존재들은 죽지 않겠 지만 물질계는 파멸되고 그들은 지금까지의 수고를 다시 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깊고 음침하리라 생각되는 무간지옥은 의외로 물질계와 다르지 않았다. 인간의 과학이 극에 이르면 어떻게 될것인가? 아마 신에게도 도전할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딱 그 모습이 었다. 마법과 과학을 조화시켜서 마법적 차크라를 이용한 부스터를 뿜어내면서 열심히 경도 20에 가까운 은백색 함선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중력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있는 99개의 고 리로 이루어진 판데모니엄의 중앙으로 향해 선체에서 일곱 개의 빛으로 이루어진 선을 뽑아 내 기계적인 메커니즘과 마법적인 메커니즘 발휘된 '도킹'을 끝냈다. 그리고 그 빛의 선을 타고 많은 색깔의 입자가 전송되었다. 그리고 판데모니엄 제일 바깥쪽에 위치한 99환(고리니까.)의 수없이 많은 거대한 입구의 빛 의 원반위로 빛의 입자들이 뿜어져 나와 결합되어 인간의 형상을 이루었다. 정말 놀랍지 않 은가. 이게 악마들 사는 세상인가? 신들보다 더 재미있게 사는 것 같은데? 어쨌든간에 그것 에서 형성되어 아마도 전이되었을 인물은 많이 겪어왔는지 별로 행동에 이상 없이 그대로 흑색의 반反 신성의 날개를 펼치면서 빠른 속도로 신형을 움직였다. 다급한 표정이 서린 얼 굴의 그는 빼어난 미남자였다. 흑진주의 광택을 머금은 흑발은 레드 와인의 반사광 같은 빛 이 흐릿하게 흐르고. 눈은 순도 높은 레드 루비의 그것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키는 180cm가 조금 넘는 정도였고, 잘 다져진 몸에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그것의 재질은 놀랍게도 마기를 이용해 물들인 미스릴이었다. 미스릴 섬유 장갑이라니…… 어쨌든 옷 역시 붉은색이 도는 정장으로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상당한 마력이 감도는 옷의 등 뒤로는 아무 무리 없 이 반투명한 흑익이 번져나와 있었다. 옷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어차피 에쎄릴Ethereal 공간에서 움직이면서 유클리드 공간과 반동화된 상태의 날개였기에 옷은 상하지 않은 것이 다. 이미 속도는 음속에 가까워져 있었지만 의아하게도 공기는 진동하지 않았다. 그는 한참 을 움직여 여러개의 고리를 거치며 가장 중앙에 위치한 흑색의 물결이 파동치는 공간으로 워프한 그는 한숨을 길게 토해내면서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젠장…… 신계놈들하고 합작해야 하다니 이거." 핏빛의 입술이 벌어지면서 내뱉은 것은 나지막한 욕설과 더불어 발휘된 투덜거림이었다. 그 는 허리춤에 이르는 검으면서도 붉은기가 은은하게 도는 머리카락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잘 정리한후, 문의 옆에 위치한 푸른 단추중 하나를 눌렀다. 문은 경도를 알수 없는 백색 광택 이 흐르는 금속인지 목재인지 알수 없는 것이었다. 삐익 하는 소리가 나면서 문은 치익 소 리를 내며 열렸다. 그전에 문에서 은근한 푸른빛이 스며나와 그를 비추었는데, 아무래도 신 원 확인에 가까운 듯 했다. 뭐 인간과는 달리 존재적 파장을 읽어내는 것인지라 그는 감추 었던 기운을 조금 풀어내야 했다. 감추었던 기운을 풀어내자 강렬하게 존재감이 번져나왔는 데 적어도 상급신 이상의 파동이었다. 문이 치이익 하고 옆으로 밀려나가자 주변을 뒤덮고 있던 흑색의 파장이 더더욱더 짙어졌 다. 그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어둠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씨부렁거렸다. "젠장. 하여 튼 취미한번 독특하다니까. 그 공간 영성 파동기 발명한놈 대체 누구야? 잡히기만 해봐라." 그는 전혀 진지함 없는, 짜증어린 표정으로 걸어들어가면서 주변의 공간을 둘러보았다. 놀랍 게도 공간은 우주의 파동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절대영도의 우주가 아니라 말 그대로 홀로그램 비슷하게 공간의 채널을 바꾼 것에 불과하고 방은 그대로였다. 성운星雲들이 밝은 빛을 뿜어내고, 암흑성운도 가끔 보인다. 가까운 근처의 행성은 다채로운 빛으로 시야를 사 로잡은채 잠시나마 그를 짜증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뭐 어차피 진짜 우주도 아니었기에 그는 걸음을 옮기면서 방의 중앙에서 빛의 자그마한 판들을 정신없이 떠올리고, 끄고 건드리면서 작업하는 이를 발견하고 난 후 짜증을 수그러뜨렸다. 뭐, 상급자이기도 하고 저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고 나니 그래도 조금 화가 누그러진 것이다. 평소에는 탱자탱자 놀던 작자라 성질이 난것도 사실이지만. 뭐 어쨌든 차원이 흔들린 것은 윗분들의 '계획' 때문이라 화 내봐야 자신이 뭘 어쩌겠나. 차원파동을 안정시키는 것부터 하 기 위해 서류를 가지고 온 것이다. 물론 서류라는 것이 정말 종이일리는 없었다. 마법과 과 학을 조화시켜 지옥이라 불리는 이곳을 모조리 도배해버렸다고는 해도 이런 중요한 일은 직 접 만나면서 해내야 했다. 지옥을 연결하는 모든 마학적 네트워크는 정신적인 교통의 물꼬 를 트는것도 가능했지만 지금으로써는 직접 만나는게 낫다. '점점 인간사회하고 비슷해지는데……'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그는 정신없이 작업하고 있는, 육신이 없지만 그래도 많이 흐트러진 듯한 모습의 악마왕. 루시퍼Lucifer에게 다가갔다. 릴리스Lilith야 황금의 궁에 있었지만 아 마 그녀도 눈돌릴새 없이 서류처리로 폭주하고 있을 것이었다. 신계는 아마 원래부터 조금 꾸준히 작업해 왔기에 회의하고 눈돌릴 시간은 있겠지만. 하여튼 악마들은 워낙에 제멋대로 라 업무에 게으른 것도 사실이다. 사실 악마들이 계악하고 신계에서 막는 것은 자기들끼리 짜고하는 각본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차원은 몰라도 봉인계는 그렇다! 이들은 일에 질려버 린 불쌍한 직업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차라리 인간들이 동정을 보낼 정도로 불쌍하게 오 랜 세월동안 일을 하다가 스스로 소멸을 선택한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숫자가 널리고 널렸 지만 워낙 큰 일은 수뇌들이 해결해야 하는지라 수뇌를 무작정 늘려버릴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서 본래 정령계와의 경계를 맡고 있는 바알이라는 악마씩이나 되는 자신이 이렇게 찾아 온 것이다. 정령계의 의식이 그나마 있는 수뇌들도 업무로 바빠서 이미 경계의 모든 이들은 철수한지 오래였다. ……정말 처절하게 상식에서 벗어나는 세상이라고 아니할수 없었다. "제기랄! 바알! 난 바쁘니까 빨리 놔두고 꺼져!" 바알은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폭포수처럼 길다란 머리카락을 아예 줄여버리고 평소의 우아 함(?)만이 가득찬 금빛 눈에는 독기와 현기증으로 인한 스트레스만이 철철 넘치고 있다. 피 부야 꺼칠할 이유가 없었지만 바알의 눈에는 인간들이 휴식없이 밤을 새며 일하고 나서 기 미가 끼고 피부가 꺼칠해진 모습과 별로 다를바가 없이 비쳐졌다. 솔직히 영체인 그들이 이 정도로 흐트러졌으면 얼마나 업무가 폭주하고 있는지 알만할 일이었다. 바알도 방금에야 한 숨 돌리고 왔지 않은가. 루시퍼는 미친 듯이 손을 놀리면서도 자신의 그림자를 이용해 다른 업무를 4중처리(!)하고 있었다. 인간과는 사고수준이 다른 그라도 너무나 어려운 일들 뿐이 라 4중동시업무 처리(컴퓨터일까? 컴퓨터라도 이 경우는 하나밖에 처리할수 없을것이다.)가 한계였다. 그래도 팔다리를 하나씩 더 달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 였다. 영체라서 팔을 여러개 다는 것은 별로 이상하지 않지만 역시 악마들은 이 상황에서도 우아함을 찾았기에 팔을 늘 리는 이는 없었다. 다만 그림자를 움직일 뿐. 그림자 따위야 팔이 수십개 달려도 추하지 않 으니까. 어차피 그림자 자체만으로도 나이트 셰이드Knight Shade에 다름이 아닌 괴이한 모 습으로 변환되어 있었지만. 바알은 오른손목에 차여진 12개의 눈금이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는 팔찌를 보다가 눈금을 돌 려서 붉은색과 겹쳐 자줏빛이 어린 작은 눈금과 맞추었고, 순간 부웅 하는 소리가 일어나면 서 루시퍼의 앞에 존재하는 지옥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풀기동하고 있는 기기, 루시퍼와 연결된 상태의 그 기기에 푸른빛을 토해냈다. 자줏빛으로 서서히 물들다가 투명하게 변해 빛이 사라지자 루시퍼의 안색이 구겨졌다. 그리고 간신히 서너개의 작업을 끝낸 듯 다시 다 른 작업에 몰두하면서 그것을 빼내 정신없이 시선을 던져 읽던 그는 몸을 굳혔다. 전신에 붙어있던 플러그 비슷한 것들의 반투명한 코드에서 흐르던 광속의 10배 이상으로 순환하는, 정신적인 명령을 간신히 따라갈수 있는 수준의 그 코드에서 흐르던 광류가 딱 멈추었다. 그 리고 루시퍼는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광기어린 웃음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바알이 가져온 보고서에 신계와의 합작을 위한 조건과 봉인계에서 떨어져나간 3명의 인간들 중 한명을 '윗분'들이 이용하기 위하여 준 허가요청서가 덤으로 끼워져 있음을 본 것이다. 그 탓에 더더욱더 해결할 일이 늘어나버린 루시퍼는 이를 갈아붙이면서 중얼거렸다. "차라리 물질계를 시공동결해버리는게 낫겠군! 물질계적 시간으로 아주 조금씩. 젠장! 타 차 원하고 시간차가 조금 나겠지만 어쩔수 없지! 원래 독립적이었으니! 이건 승인 하고……" 땀이라도 질질질 흘렸다면 어울렸겠지만 루시퍼는 어차피 영체라 땀은 흘리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던 바알은 그가 건네준 일곱 개의 서류를 팔찌에 받아들였고, 순간 비어있던 푸른빛들이 자줏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바알은 정말 쾌속하게 몸을 날려 바깥으로 나감과 동시에 워프해버렸다. 그리고 다시 도킹한채 멈추어 있던 함선으로 돌아가 무서운 속도로 자신의 성을 향해 날아갔다. 현재 지옥은 업무 폭주중. 신계. 금미달. 혜신급 존재인 한웅桓雄도 솔직히 말해서는 악마계의 모든 이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같은 혜신급이지만 자신의 아버지인 한인조차도 정말 이러 다 영체가 붕괴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폭주하고 있는 업무를 간신히 붙잡고 있었던 것이 다. 그나마도 천사들이나 환수들이 평소에 꾸준히 봉인계를 보호해 왔기에 다행이지 자칫 잘못했다가는 악마계보다 더 업무가 폭주해서 봉인계를 존재적 봉인으로 완전 동결시켜야 할뻔 했다. 그렇게 되면 아스트랄 플레인은 좁혀지고 자신들은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아니, 소멸인가? 순흑의 머리카락에 백색의 토가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다녔던 미청년 한웅도 지 금은 간편한 흰옷을 입은채 루시퍼와 비슷한 방식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한웅도 혜 신의 존재라 심의는 너무나 깊었지만 지금으로써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 었다. 계속계속 밀려들어오는 서류는 악마계가 마학적 메커니즘으로 쉽사리 소화해 낸다면 이곳에서는 마학적이지 않은, 악마계와 비교하면 시골이나 다름없는, 고아한 미적인 부분만 충족한 건물들이라 강한 힘을 지닌 신족이나 천사들도 워프를 열심히 사용하다 보니 힘이 고갈될 정도였다. 세상에, 신이나 천사들이 워프하느라 힘이 고갈될 정도라니. 이러다가 금 미달이 중력 이상으로 구멍이 뚫려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난잡했다. 뭐, 이렇게 되면 악마계나 신계나 별로 다를바 없나? 타 차원에서는 여전히 탱자탱자 놀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은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 고 있었다. 한웅은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쥐어 뜯다가 이게 아니다 하고 중얼거리면서 빛을 몸에서 일으켜 무려 10여개의 섬세한 모습의 팔들을 뽑아내면서 몸을 일으켜 뒤로 물 러나면서 그 빛의 원반들을 움직여가면서 정신적인 메커니즘으로만 이어진 신계의 네트워크 에 욕을 퍼부으면서 그나마 자세를 눕는 자세로 바꾸었다. 한숨만 자꾸 흐른다. 일본에서 받들어지고 있는 중급신 아마테라스는 태양신이라는 이름답게 금빛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미청년이었는데, 지금은 처절하게 망가진 모습으로 중간적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 다. 위쪽에서 처리하는 업무와 명령을 하달하고, 밑에서 보내는 정보들을 분류해서 올리는것 도 양이 엄청나서 그도 지금 미칠것만 같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중국의 고사에 언급 되는 혜신급의 여와나 복희도 다를바 아니었다. 마침 간신히 업무처리가 끊어지면서 혜신급 존재들은 모두 모여서 회의를 할수 있게 되었다. 루시퍼의 머리에서 나온 '순간 동결론'은 그들에게 있어서 루시퍼와 악감정을 지닌 신들조차 그를 우러러 보게 될 정도로 좋은 혜안 이었고, 그들은 당장 모여들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참석한 이들의 숫자는 상당히 많았지만 그래도 혜신급 존재중에서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제우스와 헤라, 한인과 한웅, 반고와 몇몇 신들이 몰려들어서 정신없이 서로의 의사를 소통 하면서 마침내 낸 결론은 어차피 만장일치였다. 모든 종류(?)의 신들이 이처럼 의사가 통일 된 일은 없을 정도였다. 악마계와 신계의 합작(?)도 별로 어려움없이 이루어졌고, 모두는 그 즉시 봉인계의 순간적인 동결을 위한 마나와 기에너지의 계산에 들어갔다. 그 업무도 엄청 났지만 나중의 업무를 처리할 시간이나마 얻게 되는 이 생산적인 일은 그들에게 있어 차라 리 즐거운 시간이었다. 봉인계를 순간적으로 몇번 동결하면서 아스트랄 플레인의 흐름을 마 비시키지 않는 수준의 시간을 계산해 내고 나서 곧바로 그만한 에너지를 뿜어낼만한 존재들 이 곧바로 두 개의 고리를 동결시키기 시작했고, 그것은 반복적이긴 했지만 업무 처리보다 는 나았기에 조금씩, 신계와 악마계를 폭주시킨 업무의 열기를 가라앉아갔다. "오늘의 교훈은……" 악마계의 루시퍼가 퇴폐적인…… 아니. 업무에 찌든 월급쟁이의 염세주의적 표정을 그대로 구현해 내면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자 혜신급 존재인 반고가 그 말을 받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한국의 격언格言이군. 누가 그 말을 했는지 몰라도 참 존경스러운 필멸자야." 110. 봉인계. 유클리드 공간. 한국의 서울. "Pushing The Sky……" 가늘고 길다란. 새하얗고 아름다운 손가락이 벌려져 하늘을 가렸다. 눈이 부신 듯 백열하는 햇빛을 막아내면서 그는 조용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다가 한숨을 흘리면서 손을 쭈욱 폈 다. 하늘을 밀어내듯이. 그리고 나서 그는 품속에서 선 글래스를 꺼내서 썼고, 곧 세상은 색 안경에 의해서 갈빛으로 변해버렸다. MP3P의 노래가 끝나면서 그는 어떤 음악이 나오는지 귀를 기울이다가 곧 실소를 머금었다. Flying Tea Pot. 날아 다니는 찻 주전자라. 뭐, 이 즈 음에서 정말 하늘 위를 가로지르는 찻 주전자가 있다면 딱 맞는…… "어랏?" 태양빛 사이를 가로지르는 흰 무언가. 그것을 자세히 보면…… 음영陰影이었다. 더욱더 자세 히 보면…… 눈부신 햇살 사이로 음영이 되어 날아오는 저 무언가. 액체가 유난히 반짝이는 데, 홍차였다. 공기중에서 울렁이는 홍차. ……찻 주전자? 어이가 없어서 당황한 표정을 지 어보이던 그는 그 찻주전자의 목표물이 자신임을 깨닫고는 기겁해 어렸을때부터 12년간 수 련해온 청심지도淸心之道의 신녀유무심법神女柔舞心法과 명룡심법冥龍心法을 끌어올렸다. 일주천 함과 함께 사지백해에 기가 퍼져나가면서 산근山筋에서 세근細筋에 이르기까지 힘을 머금고 충만해지자 주변의 기도 확연히 느껴졌다. 기결은 별로 상관 없더라도 농도가 지나 치게 옅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옅어서 두 심법은 대단히 훌륭한 심법이지만 자신이 쌓은 공력은 20년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하급영약인 태청단太淸丹이라도 꾸준히 복용해 와서 얻 어낸 공력인 것이다. 어찌되었든 단전에서부터 푸근한 기운이 퍼져들어가자 중극까지 뚫린 임독양맥에서부터 힘 이 퍼져나와 그의 모든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찻주전자는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 다. 그래서 그는 귓가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결코 감상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 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청심지도의 신법중 하나인 섬전閃電을 펼쳤다. 공력이 1갑자는 되 어야 10성으로 펼칠수 있는 신법이었지만 지금으로써도 굉장히 빠르게 순간적으로 몸을 움 직여 찻주전자를 피하고 그 찻주전자가 그리는 궤도로 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 잡을수 있도 록 해 주었다. 티 포트Tea Pot의 손잡이를 기가막히게 움켜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뭐 그래도 일단 잡기 는 잡았으니까…… 어라? 우우우웅― 그, 이서륜李瑞輪이 기를 회수하여 단전에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퍼져나온 기파동은 요란하 게 퍼져나와 등허리에 이른 그의 머리카락을 뒤흔들면서 주변의 기와 상충했다. 뭔가 평소 와는 다른반응…… 그는 몰랐다. 지금 마침 차원벽이 뒤흔들리면서 그 차원의 벽에 틈이 생 겼고, 원래부터 약하기 그지없었던 차원에 기를 끌어올려 출하고 갈무리 하는 과정에서 생 긴 기파동이 주변의 기류와 연동하면서 차원벽을 두드려 깨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는 주 변의 공간이 일렁이는 것을 깨닫고는 기겁했다. "이런, 젠장!" 그를 향해 다가오던 누군가는 아무래도 다방에서 차를 끓여 가던 것 같았다. 요즘도 다방에 서 차 끓여 배달하냐? 하는 생각을 하던 그는 이를 갈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찻주전자를 잡 기 위해 공력을 끌어올렸던 탓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사부에게서 당부받았던 신녀유무심결의 폭주나 명룡심결의 폭주를 제지하기 위한 '균형있는 출수'를 실패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명룡심법을 먼저 끌어내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이를 갈면서 찻 주전자를 날려보낸 얼간이를 쏘아보았다. 또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다. '젠장! 매니저다!' 그는 그 상황에서도 이를 갈았다. 봉인계에서 연예인으로 제법 이름이 알려진 현재 21세의 미남.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아름답고 가느다란 몸으로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 었던 그였고, 지금은 지겨워져서 땡땡이(?)를 치고 빠져나와 담배라도 조금 피우고 싶었지만 그만 두고 MP3P를 Play했던 것인데…… 이런 기구한 일이. 무슨일인지는 알수 없어도 공간 이 요란하게 파동치면서 그를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악! 서륜씨! 이게 무슨……!" 우우우웅―! 서륜을 중심으로 파동치던 공간이 쩌어억 열렸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흐릿한 혼연의 회색. 그리고 그 회색은 요동치며 뻗어나와 촉수처럼 서륜의 몸을 휘감았다. 가히 불쾌한 그 감각 에 서륜은 기력을 끌어올리려 했으나 몸은 물먹은 듯 늘어지기만 할뿐. 기조차도 의意로써 움직이지 않아 운용이 불가능했다. '우웃. 제길!' 하고 욕설을 뱉어보는 그였지만 마치 아혈 이 제압당한 것처럼 말조차 할수 없었다. 공간은 쩌어억 벌어져서 원형으로 그를 덮쳐버렸 다. 그는 그 차원균열의 희생자로 그 원형 공간으로 빨려들어가 버렸고, 곧 비명을 나지막하 게 울리면서 공간은 닫혔다. 허탈한 표정이 된 매니저와 그 찻주전자를 나르던 이는 기겁을 했다. 갑자기 셋이나 되는 사람이 흐릿하게 형상을 이루다가 모습을 드러냈고, 곧 신음을 흘 리면서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곳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에게 손을 뻗으면서 주변의 마나를 응집시켰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재배열한다음 외쳤다. "리멤브런스 씰Remembrance Seal!" 고급 마법인 기억 봉인. 곧바로 제한적 기억봉인에 의해 목격자들은 제자리에서 잠시 멍한 상태로 변했고, 그 상황에서 세명은 신속하게 일을 처리했다. 옷깃에서 가느다란 코드로 연 결된 초소형 마이크를 꺼내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광검光劍이다. 차원이동자次元移動者가 발생했다. 피해자는 이서륜. 21세. 현재 연예인으로 사회에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다. 무마하기가 힘들어질 것 같다. 지금 당장 작업을 시행하 라. 성별은 남. 키는 177cm. 얇은 체구. 신계와 마계에 알리도록 하겠다."- 다른 두명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이미 공간은 깔끔하게 맞물려 있었 다. 증거를 찾을래야 찾을수도 없다. 무한과 유한의 교차점이 이곳에 있을 때. 100년 전부터 만든 조직의 인물들이었다. 지금에서는 PAER이라는 조직으로 한국에 버젓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광검. 현건을玄乾乙은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자신이 아무리 혜신경급 존재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부려먹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이미 인간이 아닌데 사회적인 조작까지 행하면서…… 뭐, 능력자니까 평범하게 보이면서 살려면 이런 방식이 좋겠지만. 자 신의 옆에 있는 이들은 마나응집을 통한 서클 마법을 쓸수 있도록 훈련받은 마법사들이었 다. PAER에서 아무리 이런 사건들이 대두되지 않도록 막고 또 막는다지만 역시 수가 너무 부족했다. "빌어먹을……" 상당히 인간적인 혜신경의 존재였다. 한숨을 길게 흘린 그는 거의 허리춤까지 늘어진 머리 카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젓고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상당한 미청년이었다. 키도 훤칠했 고 몸매도 단단한 느낌의. 미청년이 난무하기는 하지만 중성적 미인이 더더욱 많은 이 세상 에서(?) 과연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길래 이렇게 의미심장하게(…) 행동한단 말인가. 어찌되 었든 그는 멍한 상태의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젓고는 곧바로 모두에게 손짓했고, 곧 현건을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주문을 읊으며 마나를 응집시키며 재배열했다. 건을은 그저 가볍게 사이킥 파워를 이용해 좌표를 맞추고 텔레포트 해버렸고, 곧 그들은 자리에서 흔적 도 없이 사라졌다. "으아아앗!" 비명을 지르면서 공간을 열고 나타난 이는 바로 서륜이었다. 음침한 동굴속이었다. 그러나 기를 돌려서 어느정도 어둠을 꿰뚫어 볼수 있는 그는 별로 어둡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정말 어둡고 음침하기 그지없는 동굴 내부. 참 위험스러웠다. 한 1m정도만 옆으로 워프되었어도 좌표가 겹쳐서 돌아가셨을게 아닌가! 서륜은 오른손에 여전히 쥐어져 있는 티 포트를 노려 보다가 바닥에 내팽겨친다음 짓밟아서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서륜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흩날리다가 벽에 텔레포트 되어서 10cm가량에 좌표가 겹쳐버린 것을 확인하고 식은땀을 흘 렸다. 고개를 숙였다가 뭔가 당기는 느낌에 짜증을 부렸는데 좌표가 겹친 것이다. "허…… 허허……" 텔레포트해서 물질 좌표가 겹치면 '소멸'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서륜은 하얗게 질려서 수도 에 기력을 불어넣어 휘둘렀고, 순간 끝부분 15cm정도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가자 거의 어깨 부분을 넘을 정도로 짧아졌다. 상당히 짧아졌지만 그는 오히려 가벼움을 느꼈다. 한숨을 길 게 토해낸 서륜은 단면을 더듬어서 깨끗하긴 깨끗하게 절단되었음을 확인하고 쥐파먹은 머 리카락이 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허탈한 표정이 된 그는 이렇게 아무 도 없는 주변을 향해 의문을 표할수 밖에 없었다. "대체 여기가 어디야!?" 한참을 허탈함에 빠져있던 서륜은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이건 텔레포트? 하지만 기 때문에 공간이동한다는 소리는 들어본적도 없다고 투덜거리면서 벽을 후려갈겼다. 욕설 이 입안을 맴돈다. 혹시 여기가 해저동굴이라던가 아니면 외국일 경우 정말 골치아파지는 것이다. 이런 제기랄. 하고 욕을 뱉어내며 마음을 진정시킨 그는 심결을 운용하며 주변의 기 를 느껴보았다.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이것이 좀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깜 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가…… "뭐, 뭐야?!" 숨이 막힐정도로 가득한 기氣. 열배 이상이나 짙디 짙은 농도의 기는 기에 목마른 그의 몸 을 호시탐탐 노리고(?)있었다. 스멀스멀 춤을 추는 기가 이렇게 숨막히다고 생각해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제법 피곤함을 느끼면서 인상을 찌푸 렸다. 남성 치고는 대단히 선이 가늘고 아름답고 단려한 얼굴이 일그러지자 묘한 박력이 느 껴졌다. 그는 그렇게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서있다가 한숨을 토해내며 옷을 툭툭 털었다. 식 은땀이 어느새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차라리 이런 행동으로라도 안정을 되찾고 싶었다. 이렇게 기의 농도가 높은 장소라니. 이런 곳에서 공력을 수련하면 대체 누가 고수가 되지 않겠는가! 하고 투덜거리며 그는 길게 한숨 을 토해냈다. 태청단을 먹고 기를 수련하면서도 진도가 늦어 조금 불안했던 날이 어이가 없 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자연오염 때문에 기력이 감소한게 아니라 어 딘가에 '묶여'있거나 '전이'된 것인걸까. 그럼 바로 이곳이 그곳? 이렇게 되면 상당히 운이 좋다고 할수 있나? MP3P는 꺼져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예 고장나 버린 것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왜 고장났는 지 알수도 없다. 뭐 당연한 일이지만 민감한 전자기기가 3차원적 이동이라도 자기장을 차원 벽까지 넘으며 두드려 맞았는데 멀쩡할 수 있겠는가? 뭐 신급 존재라면 가볍게 차단하면서 이동할수도 있지만 그가 신급 존재도 아니고 자기장을 무화 시킬수 있는 능력이 있는것도 아니었기에 MP3P는 정말 망가져버린 것이다. "끄응…… 여기라도 탐험해 봐야하나." 일단 동굴이긴 하지만 걸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에 서륜은 고전적인 방법으로 출구를 찾기 시 작했다. 입에 손가락을 물고 나서 들어보자 바람은…… 저쪽이다. 그는 씨이익 웃으면서 걸 음을 옮기려다가 다시 생각에 빠졌다. 뭔가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바람이라는 것은? → 공기의 이동, 그리고 기의 이동. 그렇다면 그것의 발생원은? → 기압차, 혹은 온도차 → 고 저차. 이 동굴은 경사가 져 있다. → 결국 둘다 구멍 뚫려있다! "이런 빌어먹을!" 욕을 내뱉으면서 그는 양쪽을 바라보다가 손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미인이라도 별수 있나? 어쨌든 이놈은 앞서 여러번 성토한바 있는 봉인계의 위험인물인 것이다. 손바닥을 서로 타 악 내리치면서 그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으나…… "젠장! 이마에 묻었잖아!" 그는 코트의 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내 이마를 문지르고 손을 닦은다음 바닥에 집어 던졌다. 뭐 휴지는 썩으니까 자연 훼손은 아니다. 하고 자기를 위안하며 그는 아무데로나 걸음을 옮 겼다. 한참을 걸어가면서 어둠을 바라보고, 또한 벽을 들여보며 슬슬 문질러보자. 이것은 아 무래도 해양각질이라기 보다는 땅 위의 그것에 가깝고 물도 잘 흐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지 상이 건기이거나 아니면 지하수가 없는 지형이니까 곧 나갈수 있을 것이다. 하고 결론을 내 리며 위안을 얻은 그가. 그렇게 한참을 걷고 나서 그가 도착한 곳은 허망하게도…… "……이래서 바람이 분 거였냐?" 절벽이었다. 동굴속 절벽이라니. 그것도 밑이 안보이는 것이다. 새카만 어둠이 가라앉아 있 는 절벽에서 어둠의 냉기를 머금은 바람이 몰아쳐 나오자 몸이 부르르르 떨렸다. 여기서 떨 어지면 뼈도 못추릴 것이다. 그나마 저 너머는 아주 가볍게! 막혀있었고. 폭도 30여 m. 다시 말해서 10여장이나 되는 이 절벽. 깊디 깊은 천장단애였다. 몸을 돌리면서 욕설을 내뱉은 그 는 경공까지 전개해가면서 빠르게 몸을 움직여 날렸다. 다시 아까 그 장소로 돌아온 그는 몸을 날려서 다시 주욱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것은! "뭐…… 야…… 이건?" 우둘두툴하고 높이도 균등치 않은 동굴을 30여분을 달리고 달려서 도착한 곳은 벽의 구분이 확실하게 되어 있는 곳이었다. 길이 갑자기 사각형의 돌로 잘 쌓여진 통로로 바뀐 것이다. 물론 이 다음에는 원래 막혀있었고, 저 천장단애의 밑으로 중력가속도로 10여초를 떨어져야 입구가 있는, 산중동山中洞이었다. 말 그대로 산 중앙의 동굴인 것이다. 그런 곳에 이런 것 이 있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대단한 힘과 실력을 지녀도 인간이 이런 공사를 해낼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고색까지 창연한 석벽이었지만 매우 튼튼하고 매끈하게 지어져 있어서 그도 대단히 놀랐다. 하지만 그는 알수 있을까? 이 돌로 이루어진 길. 그리고 저 비싸디 비싼 야광주들이 벽에 박혀 늘여진 10장여의 강옥의 길이 만들어진지 10여분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것도 한 순간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111. "허…… 어억……" 서륜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경악, 경탄, 경이의 감정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끊 어 흘리고 말았다. 헛바람을 삼킨 것이다. 길은 갈수록 가관이었다. 강옥석으로 만들어진 통 로를 지나 그가 도달한 곳은 수정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영롱하기 그지없는 빛무리를 어 디서 받아오는지 알수 없었지만 박혀있는 사람 눈알보다 조금더 커 보이는 ― 안구眼球는 일단 뽑아서 보면 상당히 크다. ― 야광주가 은은한 연녹광을 뿜어 흩뿌리자 유리벽과 마주 치면서 흩어져 아름다운 빛무리를 그려냈다. 물론 그 아름다움 만으로 놀랄 리가 없었다. 동 굴의 수정 벽에 높이 3m에 지름 1m가 조금 넘어보이는 빈 공간들이 늘어져 있었고, 그 빈 공간에는 시리디 시린 냉기를 스산하게 뿜어내는 얼음 기둥 안에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10 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 다양한 미남미녀들이 갇혀서 눈을 감고 있지 아니한가! 그것 때 문에 놀란 것이기도 하지만 오로지 얼음기둥 안에 갇혀진 이들의 아름다움과 이곳의 묘한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세상에……" 그는 하나의 얼음기둥으로 다가가서 눈을 들어 17세 정도로 보이는 아름다운 흑발을 늘어뜨 린채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잠든것처럼 죽어있는 한 미인을 바라보았다. 여자인가 싶었 지만 남자였다. 여성으로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년이었던 것이다. 맑디 맑은 피부에 살 아 생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가냘픈 듯 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외모. 붉 은 입술과 우윳빛의 피부는 정말 묘하게 여성스러웠다. 키가 180cm는 되어 보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아름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생전에 생기를 머금고 움직였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문득 그 얼음기둥의 밑에 작은 금속판이 유리바닥에 박혀있는 것이 보였다. 몸을 숙인 서륜은 그것을 쓰다듬어 보았다. 차가운 금속판의 감촉이 정신을 일깨웠다. 그곳에 쓰인 글귀, 한자로 되어있는 글귀 를 그는 읽어 보았다. 익숙한 한자가 눈에 닿아온다. "淸心之道 43代 門主 武盡…… 처, 청심문?" 기겁한 서륜은 서둘러 그 밑에 적혀있는 글귀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둘러서 글귀들을 읽는 서륜의 심장은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特技 一級技 滅世劍…… 四皇太極氣 功…… 享年 白九十二歲 別世……" 천천히 읽어 나가던 그는 눈을 부릅떴다. 사황태극기공?! 그것은 사황태극음양천지조화심결. 다시말해 청심문에 전해지는 4개의 심결을 모두 융합하 게 되면 익힐수 있는 심결이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청심문에서도 성공한 이가 거의 없을 정 도의 심결이었다. 그 정도는 북명천지조화심법보다 오히려 나은 면이 있을 정도의 심법인 것이다. 뭐 부작용이 크긴 하지만…… 연성할 때 엄청난 고통이 느껴진다는 것과 일단 연성 할 때 처음에는 명룡경이나 신룡경을 연성하거나 여성일 경우는 반대로 다른 두 심결을 연 성하게 된다. 나중에 쌓인 공력으로 연속 두 번 환골탈태 하게 되는 고통을 거쳐야 극성까 지 연성하게 되는 것이다. 속성이기에 그만큼 도박으로 보일만치 위험한 심법인 것이다. 아 니, 실제로 도박이었다. 내공이란 실제로 차근차근 쌓아 나가는 것이 정석이고, 그래야만이 정순한 내공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마교 쪽에서는 워낙 내공의 속성만을 중요시하며 잔머리를 굴리다 보니 역행 으로 고통을 느끼면서 내공을 쌓고 주화입마나 심마의 위험까지 감수해 나가면서 축기하는 데 정심한 내공을 정말 역행하는 심법보다 더 빨리 쌓아가면서 심상치 않은 부작용까지 만 들어 내다 보니 그 심적, 육적 고통이 어지간 하겠는가 말이다. 두 번 연속으로 환골탈태하 는 괴로움이 어찌 내공의 역행에 비하랴? 이건 정말 도박중의 도박인 것이다. 실제로 청심 문의 사람들 중에서도 사황태극심결을 연성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정말 처절하게 몸상태 가 핀치(?)에 몰렸다던가 아니면 내상이 극심하게 되었다던가 아니면 내공이 폭주하게 되었 을 경우였다. 자, 생각해보자. 탈인선입을 위해 정말 극의 극까지 연구한 무공. 말 그대로 기 를 다루는 의법의 정수에 이른 것이 바로 이 청심문의 무공인 것이다. 아무리 머리가 안돌 아가도 화경 고수의 극에 이르는 정도는 되어 왔던 것이 바로 이 청심문의 문도들이나 문주 들이었다. 보통 일인단맥 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신축성 있는 법도를 세워서 많은 제자를 받 기도 해서 청심문은 일찍이 기사멸조의 죄라 하여 단죄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아왔다. 청심문에서는 '배우고 싶은 점이 있다면 배워라'. '이왕이면 배울 때 끝까지 털어와라'.는 황 당하게 보일 정도의 조사의 언言이 남아 있을 정도였다. '잡기雜技건 쓸만한 것이건 가리지 않고 배워라. 배워서 남주냐!'라는 7대 조사 제열의 말이 계속 전해올 정도였다. 천산검파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대단하기 그지없는 개방적인 면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무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가끔 학살도 하고 술도 처마시고 고기도 뜯어버리라는 것이 청심문의 가르침이었 다. 도저히 '맑은 마음'을 위해 기를 수련하는 문파라고는 생각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방조 적인 면이 강하달까? 심지어는 길을 가다가 보통 무림인이라면 무시했을 한 아이들의 대화 를 집중해 유심히 들어, '세상 모든 것에 진리가 숨어있으니 항시 탐구정신을 잊지 말고 아 我와 타他에 모두 배려할줄 알아야 한다. 촌로의 한마디에도 현기가 숨어있을수 있는 법이 다.' 라는 조사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그 대화만으로 신화경에 오른 문주가 있을 정도였다. 웬만히 재능이 있다면 현경까지는 어렵지 않게 오르도록 해 주는. 심득이라는 심득을 모두 청심비록에 모으면서 거의 태고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깨달음의 집대성이 바로 이 청심문 의 비록인 것이다. 어찌되었든 정수중의 정수인 '심득의 서'는 지금 이 세상에 나돌아다니고 있지 않지만 초식이나 어느정도의 제한된 깨달음이 적힌 청심비록은 지금 영에게, 정수중의 정수라고 할수 있는 사방신수권결과 신수사령검결이 이곳, 이 수정으로 도배된 동굴 안에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 청심문의 유대감은 그야말로 끈적끈적할 정도(?)여서 사조들은 아낌없이 천하를 뒤져서 그 엄청난 능력을 약초 찾고 온갖 것들. 시, 서, 화, 의술에 만술卍術. 무술巫術에 도술道術. 그리고 영법靈法. 그리고 음공이나 모든 것을 악기로 사용하는 수법이라던가 모든 것을 무 기로 사용하는 천하 모든 심득이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들도 집대성 되어 있을 정 도였다. 물론 그것중 음공이나 도술, 무술, 영술이나 영적인 계열을 제외하고 의술이나 음공 들은 전부 청심비록에 적혀 있었다. 나머지 것들은 전부 빠져 있는 것이다. 완전한 청심문의 가르침들은 한 사람이 환골탈태해서 500년을 기어이 살며 다 배워도 배우기 힘들정도로 넘 쳐나서 선경에 올라 불멸에 가까운 영역으로 오성이 확대되지 않는다면 마스터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힘들 정도겠지만. 오랜 세월이 고스란히 쌓인, 탈인선입을 넘 어 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신이 되고자 발악하는 자라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물건 중 하나였다. 물론 세상의 균형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없어야할 물건이기도 했다. "……으음. 청심문이 이 정도였나? 젠장. 그럼 나는 완전 식빵 테두리만 뜯어먹은거나 다름 없군. 심법은 그렇다 쳐도……" 다른 얼음기둥 아래에 있는 금속판들을 모두 읽어본 결과 수천개에 달하는 기둥들이 늘어져 있었는데. 그나마 이것들도 전부 '신수사령검결'과 '사방신수권결'을 연마 한 조사들만 남아 있었다. 서륜으로써는 청심문의 역사가 이렇게 깊을수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서륜은 다시 생각에 빠져들면서 중얼거렸다. '정말 나는 식빵 테두리만 뜯어먹었군. 심법은 넘어가고 여러번 돌아가면서 다 본 바로 의 하 면 나는 아마 청심문의 기본기도 반절정도밖에 익히지 못했다는 말 아냐? 젠장! 하급기도 몇 개 배웠지만 그 하급기도 지금의 내가 이 공력으로 우습게 사람 수십 쳐죽일 정도인데 공력이 2, 3갑자를 넘어서 중급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대체 어느정도란 말인가? 기본기에 만 검기劍氣를 위한 심득이 있을정도면 정말……' 서륜은 얼핏 가전에 전해져 내려오는 청심문의 파편중의 파편만 골라 익힌 셈이었다. 하지 만 그정도로도 서륜은 엄청난 괴력을 발할수 있었는데…… 기본기도 반절일 뿐이고. 청심문 외전에 존재하는 것들은 한줄도 보지 못했다. 심득에 관한 것은 거의 읽지 못했고. 하급기 따위 서너개만 배웠을 뿐인 것이다. 신법은 어찌된 일인지 십수개를 익힐수 있었지만 사실 상 그것들도 완전한 요결이 아닌 전반부일 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혹시 이곳에 뭔가 있지 않을까? 서륜은 저 깊은, 은은한 빛이 난무하는 이 수정벽 속에서도 어둡게 보이는 저 너머를 바라 보면서 문득 피곤을 느꼈다. 자신을 잡아먹을 듯 탁한 어둠이 서린 저 통로에서 묘한 한기 가 풍겨나왔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서륜은 이때 자신이 어떤 일을 겪어나갈 것인지 어렴풋 이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한숨을 길게 피워 내쉬면서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물론 신발은 벗어버리고 더우니까 외투도 집어 던졌다. 그리고 나서 눈을 반개하고 기를 운 용하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기를 조금씩 조금씩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서륜은 당 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제기랄!!' 그 빌어먹을 명룡경과 신녀유무경의 심결들이 화후가 어긋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심각하 게! 누누히 그 부작용을 들어서 알고 있던 서륜은 등골을 무언가 싸늘하게 후리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미 그의 걱정이라는 것은 심법이나 자신의 지금 상황에 쏠려 있었지. 아마 봉인계에 남아있었으면 곧 시작했을 방송이나 매니저가 어떤 괴로움을 겪을지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뭐 신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한 PAER의 광검光劍이 땀을 질질 퍼흘리며 잘 처리하고 있으니 어쩌면 별로 괴롭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신일 가능성이 높은 존재인만큼. 적어도 갓 에이전트God Agent. 선경급 존재 정도는 되어 보이니까…… '……쳇. 어쩔수 없지.' 서륜은 점점 주변의 기를 통제해서 영기로 전환한 뒤 자신의 조화적인 부분이 어긋난 것을 막기 위해 앞선 신녀유무경의 운용을 자제하면서 명룡심결과 동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명 룡결의 진기를 유동시켜 나가자 기가 충만하게 사지백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 득 저 안쪽에서 묘한 영기의 흐름, 극파極破와 비슷한 느낌의 영기가 흘러나왔고, 언제 느껴 본 것인가 싶어서 그 기운의 파동을 말초의 기관까지 통제하여 느끼고 난 후 서륜은 조금 놀라서 짧게 삼주천 정도를 끝내고 단전에 기력을 집결시켰다. 그리고 일어나서 옷을 제대 로 챙겨 입고 신발을 신은 후 까마득한 사조들 에게 절을 대충 두 번씩 양 방향으로 하고는 극한까지 기력을 끌어올려 그새 주변의 충만한 기와 동화되어 2, 3년치 정도 늘어난 듯 한 공력이 운용되면서 그는 다시 마음속으로 구결을 짚어 나가며 빠르게 몸을 날렸다. 청심지도의 신법중 하나인 비천飛天으로 부운신법에 가까운 수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 력이 모자라 한뼘이 조금 못될 정도만 떠오른채 거의 발을 땅에 디디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 얼음기둥은 끝이 없었지만 사조들도 이제는 보이지 않 았다. 단지 얼음기둥은 텅텅 비어있을 뿐이었고, 점점 신형을 날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은 은한 영기는 강해져갔다. 그를 대경케한 영기는 대체 무엇일까? 어찌되었든 그는 묘하게 주 변의 공기에 습기가 모자라다는 것을 알수 있게 되었다. 조금 의문스러웠지만 저 통로 끝에 있는 것이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것이라면 아마 당연한 일일 것이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신법을 펼치면서 문득 실소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하…… 그래도 나름대로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기 수련이나 신법을 배우는 것 정도야 몇몇 친분있는 치들은 수행해 나가곤 하는 것을 보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텔 레포트 되어서 나와 관계있는 곳에 떨어지다니. 이건 참 우스운 일이군.' 묘한 불안감이 들기는 했지만 그는 애써 이곳이 한국의 어디일 것이다. 하고 되뇌면서 자신 을 안심시켰다. 이것은 정말 바램이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어딘가라던가 중국이라던가, 아 니면 나가지 못할만치 깊디 깊은 지하계곡 어딘가와 이어져 있는 곳이면? 물도 없고 음식도 없으니까 아무래도 아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런 방식의 비참한 죽음을 맞을거라는 불안감은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륜은 차원이동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하고 있었지만은…… 곧 얼마 안있어 깨닫게 되리라. 서륜은 문득 기의 활용이 원활해지고 옅은 기의 농도에 적응해서 살아오다가 문득 주변의 텁텁하게 느껴질 정도의. 숨막힐 정도의 농후하고 농밀한 기의 흐름에 적응했다는 것을 깨 달았다. 이거, 나가고 나서 또 공기가 부족하다는 느낌에 괴로워 하는게 아닐까 하고 피시식 웃으면서도 문득 인간이라는 동물은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점점 통로는 끝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서륜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갈래의 길이 보였다. 하나는 왼쪽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다시 강옥의 커다란 돌로 쌓은 통로였다. 오른쪽은 가는 길은 묘하게도 새 하얀 대리석들로 만들어진 길이었는데. 정말 소름끼칠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 었다. 하지만 그가 느낀 영기는 이런 것이 아니라 가운데 길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가운데의 길은 돌의 길이었지만 금속 입자는 전혀 없는, 단단하면서도 특이한 재질의 돌로 이루어진 길이었다. 오른쪽 길은 느낌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추워질 것 같았고, 왼쪽 길은 용도 는 모르겠지만 꼭 출구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바람은 없어서 출구가 아니리라 하고 짐작하면서 그는 가운데 통로로 들어 섰다. 흉포하게도 느껴지고 따가운 느낌도 드는 극파의 영기가 흘러나오는 통로는 정말 습기가 없 어 바작바작 타는 느낌의 통로였다. 문득 오른쪽 통로에서 습기가 흐르는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알 수 없는 갈증에 오른쪽 통로로 들어 서서 20여 미터를 빙 돌아가는 길로 움직이자 점점 냉기가 강해지고, 옆에는 살얼음이 흐릿하게 비치는 맑디 맑은 물이 퐁퐁 새어나왔다 가 빨려들어가고 있는, 너비가 상당하여 사각형이긴 하지만 작은 연못이라 해도 과언이 아 닌 냉기서린 물을 저장하는데 쓰는 듯한 곳을 발견했다. 그는 물을 떠서 입안에 부었다. 맛은 훌륭했다. 차가움과 맑은 느낌의 계곡물 같았는데 아무 래도 지하수니까 그럴 것이다. 물을 서너번 떠서 갈증을 달랜 그는 몸을 일으켜서 다시 갈 래 있는 통로로 돌아와 가운뎃 통로로 들어섰다. 다시 습기없는 바작거리는 통로를 느끼면 서 그는 묘하게 그 통로에서 푸른 청광이 비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륜은 기를 흘리면서 다시 신법을 발동해 쾌속으로 공간을 날았다. 그런데 자꾸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어 옷깃을 만졌는데 정말 정전기로 따끔! 하는 느낌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버렸다. "으읏!" 정말 심상치 않은 정전기라 외투에서 바직 하는 푸른 스파크까지 튄 것이다. 기가 막혀서 그는 다시 통로를 되돌아 나온다음 잠시 고심하기 시작했다. 통로를 지날때마다 점점 그 극 파의 영기는 강렬해져 갔다. 그래서 그는 일단 그 기운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천지간에 가장 강한 자연력인 뇌정지기雷精之氣가 있거나 아니면 그것이 깃든 무기라도 있 나? 어쩌면 뭐…… 지금같은 시대에 우습지도 않지만 영수靈獸 같은 거라도 있을 가능성도 있군. 뭐 과학적으로는 별로 설명되지 않으니까……' 그는 자신의 생각이 우스워서 피식 웃어버렸지만 곧 인상을 찡그리면서 피뢰避雷할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접지接地하는게 낫겠지? 그는 자신이 쓸만한 쇠사슬 같은게 있는 지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곧 한숨을 길게 토해내면서 손목에 찬, 금속질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뭐 안통할지도 모르지만 없는것보단 나으리라. 그는 금속제의 시계를 풀러서 바짓단을 뜯어 낸후 늘어뜨리고 그 바짓단 끝에 묶어서 바닥에 댔다. 부서질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뇌정지 기를 얻어 맞으면 전기저항 때문에 망가질 물건이었다. 그리고 비싼것도 아니니까. "흐으읍. 하아앗!" 외투를 벗어서 풀어버리고 윗도리도 벗어버린 그는 진지하기 그지없는 표정이 되었다가 숨 을 길게 들이마시고 기합을 넣으면서 기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뒤, 서륜은 지금 상황에서 펼칠수 있는 가장 빠른 신법. 궁신탄영弓身彈影을 발휘해 나는 듯 쏘아져 나갔다. 112. 파지지직! 파지지지직! 피부를 짜릿짜릿 두들기는 스파크는 정말 증오스러울 정도로 지속되는, 도저히 적응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신경계에 전달했다. 그 탓에 서륜은 이를 갈며 여기를 건축한 사조를 마구 욕하고 있었다. 속으로 나마 욕을 갈기면서 그는 30년도 안되는 공력이나마 극한까지 끌어 올리면서 신법을 펼쳐야 했다. 그러나 빨리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문제가 있는지 점점 자신 의 몸 주변에서 일어나는 스파크는 강렬해져만 가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망막이 타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전광電光이 저 통로 너머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서륜 으로써 불안하기 그지없는 점은 점점 파지직 거리는 소리까지 커져 간다는 것이었다. 그 소리에 소름이 등골을 치닫는 것을 느끼며 그는 옷의 실밥이나 접지되지 않은, 다시말해 섬유가 균등하지 않은 부분이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타들어간다는 사실에 경악했지만 곧 잠 시 멈추어서 전광이 정말 시신경을 마비시킬만큼 강렬하게 춤을 추자 몸을 움츠리며 조심스 럽게 눈을 반개한채 걸어갔다. 얼마나 강한 뇌정지기가 존재하기에 이렇게 엄청난 여파로 주변에 피해를 준단 말인가? 그의 발목에 접지랍시고 걸친 금속제의 시계는 이미 전기저항 때문에 조금씩 부식되고 있었 다. 거기다가 푸르른 전격의 흐름이 콸콸콸 쏟아지다시피 바닥에 흘려보내면서 춤을 춰 대 자 서륜으로써도 점점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머리카락도 몇군데씩 타들어가고 있는 꼴이 그 로써는 정말 두렵기 그지없었다. 이제 전광電光은 통로로 번져나가고 있는 것같은 환상으로 그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만약 자세히 볼수 있을만한 환경이었다면 벽에 이질적인 금속의 선이 전격을 방출하면서 무 슨 전리電離와 전위차電位差를 이용한 기관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나마 짐작 할수 있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전기가 흘러서 무언가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나마 깨달았겠지만 통로 전체를 채운채 화려하게 번쩍이는 뇌격의 광휘는 그에게 있어 다른 사고를 허락하지 않았 다. 그래서 서륜은 더더욱더 불안했다. 마침내 서륜은 전체적으로 대공동大空洞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만치 대단한 금속으로 이 루어진 거대 광장의 입구로 들어서게 되었다.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면서 서륜은 천천히 뇌 광에 적응했다. 그 서슬푸른 뇌광은 서륜의 몸으로 푸른 스파크가 기어갈 정도로 강렬한 정 전기를 양산해 내고 있었고, 그 탓에 서륜은 따가운 철사가 삐죽삐죽 튀어나온 금속제 옷을 입은것보다 괴로운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예수가 썼다던 면류관의 재질을 강철로 바꾸고 그 끄트머리를 잘 갈아서 옷으로 만든 것 만큼이나 대단해서 만약 이 고통이 금속에 의한 창상이었다면 이미 출혈 과다로 죽어넘어졌으리라. "크으……" 파파파파파팟!! 스파크가 이리저리 튀어 다니는 것을 보면서 서륜은 그제야 이것이 뭔가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많은 것들을 배웠는지라 태극이나 오행 정도는 알고 있는지라 그것 보다 심오한 이치가 뇌광을 가두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정말 소름끼치는 장관이었다. 뇌광이 흘러나오는, 뇌정지기의 거대한 구球가 공동의 중앙에서 부유한채 그 광기를 드러내 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번개가 저렇게 구를 이루면서 봉인되어 있는것일까? 아니, 그것보다 는 어떻게 저렇게 강렬한 뇌정지기가 나가지 못하고 봉인되어 있는지가 궁금했다. 만약 기 관진으로 차단하고 있다면 절연체도 아닌 것들로 어떻게 저렇게 감쌀수 있는지가 그에게는 중요했다. 그는 저 뇌정지기가 만약 풀려난다면 자신은 죽음을 면치 못할거라는 사실을 깨 닫고는 감히 무언가를 건드렸다가는 큰일날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했고, 금방 마음이 서늘해 지자 이성이 경악스러운 광경에서 그의 평정심을 회복시켰다. "대단하군…… 이것.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극파의 뇌정지기를 모아 가둘수 있는 것일까? 하하하하. 만약 저것을 모두 흡수해서 융화시킬수만 있다면 10갑자까지는 어떻게든 되겠군." 600년 공력! 말이 쉽지! 영이라는 괴물같은 인간이 무극지기를 극한까지 달성해 3600년이나 되는, 정말 말로 형용하기가 힘들만치 대단한 기공력을 지니고 있다지만 그것은 정말 무극 지기가 극에 달해 일어난 현상이지 만약 이런 기연으로 얻어낼수만 있다면 잘만 소화시켜서 바로 현경에 오르는것도 일이 아닌 것이다. 서륜만 하더라도 이곳 근처에서 일어나는 뇌정 지기의 잔여영기만 흡수해도 10년 내로 현경에 오를수 있을 정도인데 저걸 단숨에 흡수하면 어느정도이겠는가? 통로 전반부에 흩어져 있는 모든 뇌정의 영기를 흡수해서 끌어모으기만 해도 아마 10갑자는 바로 돌파할 공력에 그리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힘이 될 것이었다. 물론 전부 기력 으로 융화시키는 것은 어렵기에 100년 공력 정도는 소실되겠지만 그래도 10갑자 정도는 넘 어갈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천산검주마저도 경악에 경악을 금치못할 숫자상으로는 극상의 힘이 되는 것이다. 서륜은 저 거대한 뇌정지기 덩어리를 보면서 조금의 탐욕은 일었으나 저 정도의 힘을 흡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 아깝지만 입맛을 다시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호기심은 어쩔수 없는 것. 그래서 서륜은 주변의 기관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뇌정지기 구를 포박하고 있는 것은 그로써도 한 번도 본적 없는 뾰족한 은백색 금 속들의 막대기였다. 두껍고 석순과 비슷한 느낌의 은백색 금속들의 막대기는 주변을 빙 둘 러싼채 불규칙하게 뻗어나와 가지각색의 길이와 각도로 뇌정지기를 향해 뻗쳐 있었는데, 그 금속 창의 뿌리에서부터 가느다란 선이 바닥으로 뻗어나와 오행팔괘구궁을 이룬채 뇌정지기 를 포박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 자신이 들어온 '입구'중의 하나가 사실상으로 오행 의 다섯 궤중에서 금金의 자리에 있음을 느꼈다. 다른 통로가 어디로 가는지는 알수 없었지 만 지금으로써는 갈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입술을 삐죽이면서 투덜거렸다. "금…… 이라? 그런데 왜 금金이 입구지?" 그는 알수 없었지만 이것이 묘한 안배임을 알 정도의 수준의 학사라면 이미 천재를 넘어서 지식만으로는 유한자, 다시말해 필멸자 수준에서는 현인을 훨씬 넘은 수준의 대학사 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 안배를 짐작할 정도로 추리력이 뛰어날 테니까. 지혜와 지식이 조화를 이 루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었다. 서륜은 문득 이 주변에 돌아 다니는 뇌정의 영 기의 잔력나마 빨아들일수 없을까 하고 중얼거리면서 가부좌를 틀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뇌정지기의 잔력 정도는 빨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륜은 몰랐다. 지금 '금'의 방위의 입구 부근으로 뇌정지기의 흐름 자체가 통제되어 끈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도 모른채 가부좌를 틀고 앉은 서륜은 심법 둘 을 운용하면서 먼저 명룡심결을 이용해 뇌정지기의 잔력을 한움큼 뽑아내 신녀유무심결과 조화를 이루어 나갔다. 그러나 곧 서륜의 표정은 낭패감으로 물들어갔다. 그리고 그 낭패감 은 고통으로 연결되었다. 서륜의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다. 뇌정지기의 잔력이 모두 집결되고 심지어는 뇌정의 코어 Core마저 구 형태에서 바닥으로 스며들어가 소실없이 서륜의 몸으로 집결되고 있는 것이었 다. 덕분에 서륜의 옷은 점점 부식되고 있었다.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타들어가기 시작한 부 분도 많았다. 이미 접지를 위해 놓았던 손목시계는 끊어져버린지 오래였다. 그의 전신으로 뇌정지기는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천지간에 가장 극파의 힘을 머금은 것이 바로 진뢰眞 雷의 힘이라. 세포를 조금씩 갉아들어가면서 그 힘은 서륜의 몸을 유린했다. '크윽…… 이럴 리가 없는데…… 왜 전부 흡기吸氣되고 있는 것이지……? 왜?' 서륜의 기력은 무서운 속도로 증폭되고 있었다. 단전에 모여드는 기운들은 뇌정지기였다가 주천하는 힘의 흐름에 따라 두 갈래의 기력으로 융화되어 빠른속도로 혈도를 타동시키기 시 작했다. 임독양맥으로 흘러들어간 기운들은 정말 끔찍하리만치 빠르게 그의 몸을 갉아들어 가면서도 하나 하나 혈도가 타동될때마다 청량감을 그의 뇌리에 선사했다. 잘만 이용하면 이것은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몰랐지만 조금만 실수해도 아마 순식간에 재가 되어 이곳에서 흐트러질지도 모를 정도로 뇌력은 강했다. 음유한 기운과 양강에 속하는 두 기운이 융화되면서 태극을 이루고 있었지만 정말 너무나도 모자랐다. 뇌정지기는 충만하여 이제 1갑자를 넘기 시작한 두 기운으로써는. 두 개의 갈고리 로는 폭주하는 뇌정지기를 묶어두기 힘들었다. 정말 끔찍하리만큼의 고통이 유발되는 가운 데 문득 서륜의 뇌리를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성형심법이나 다름없는 이 청심문에 전 해지는 심법중 네 개의 심법인 그것들을 모두 운용하면 묶어두어 모두 융화시킬수 있지 않 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문득 모골이 송연해졌다. 네가지 심결을 조화시켜 사황 태극천지음양조화심법을 완성시킬 경우 네 심법의 부작용이나 다름없는 '그것'들이 승화작 용 하게 된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을 쓰지 않으면 죽을수 밖에 없 었다. 그러나 다시 뇌리에 아까 보았던 무수히 많은 사조들이 떠올랐다. 개중 사황태극의 힘 을 완성시킨 이들의 외모가 어떠했는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문득 창백하게 변했 다. 피가 모두 몸으로 몰려 내려간것처럼 말이다. '제기랄. 하지만 어쩔수 없지……' 서륜은 이를 악물면서 네가지 심결의 구결을 모두 읊조리면서 일단 두 개의 심결의 운용을 멈춘다음 처음 운용해보지만 별로 어렵지는 않은 신룡경과 천녀강령경의 심결을 운용해서 뇌정지기의 흐름을 다잡아 갔다. 그리고 점점 네가지 심결의 균형은 맞아가기 시작했다. 이 제 공력은 2갑자. 뇌정지기는 여전히 8에서 9갑자를 상회하고 있었다. 2갑자의 힘은 각기 30 년의 공력으로 네 심결이 되어 마치 맞물리기 위해 만들어진것처럼 깨끗하게 뭉쳐들고 있었 으나 그는 지금 죽고 싶을만치 엄청난 통증을 맛보고 있었다. 네 심결을 빠르게 운용해 나 가면서 뇌정지기를 제압해 나가자 점점 기력은 증폭되어 나갔고, 노도처럼 밀려드는 기력의 힘에 이미 백회혈까지 무너져 버렸다. 3갑자를 넘기 시작한 기력은 서서히, 여전히 엄청난 고통을 유발하면서도 네 심결의 힘에 의해 뇌정지기와 융화되어 완벽한, 너무나도 완벽한 무극지기를 속성으로 만들어냈기에 그 만큼의 고통으로 가격을 지불하면서 그의 머리 위로 삼화취정의 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천천히 피어난 세 삼화취정의 꽃은 과연 무극지기 답게 완벽한 삼각형을 이루면서 빙글빙글 회전하며 주변의 기운을 백회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아직 흡수하지 못한 뇌정지기까지 빨아 들이고 있는 탓에 서륜은 기겁하면서 다시 불어나는 기운들을 통제해 나갔다. 그리고 그의 몸은 이미 부공삼매의 현상을 보이면서 서서히 떠올라 거대한 열파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사황태극심결의 부작용중 하나인 '고통'의 지불에 박차를 가하는 첫 번째 환골탈태가 시작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륜이 무아에 빠져들어 고통마저 잊어버리고 기력을 제어해 나갈 즈음에 끝났다. 이미 5갑자를 상회하는 기력은 점점 더 그 양이 불어나면서 6갑자를 넘기 시작했고, 생사현관을 타동하지 못한 지금의 불완전한 대주천으로는 도저히 감당할수 없으 리만치 불어나기 시작하자 그는 기겁하며 생사현관으로 기의 소통을 돌렸다. 과연 무극지기 는 일반 기경과는 틀렸다. 정말 노도처럼 밀려가 충격이 가해지면 되돌아 오는게 아니라 끈 덕지게 칼날처럼 밀고 들어가면서 생사현관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순간 고통은 정말 싸악 가셔버렸다. 썰물처럼 사라져버린 고통에 그는 쾌재를 불렀 지만 한 번 성공해서 투명하기 그지없는 우윳빛 피부를 드러내게 했던 심결은 다시 그를 환 골탈태로 이끌었다. 삼화취정 대신에 기력이 융화됨에 따라 색색의 고리 다섯 개가 떠올라 원을 그리면서 점점 범위를 넓혀갔다. 그리고 삼화취정의 삼각형 역시 마찬가지였다. 점점 넓어진 삼화취정과 오기조원의 완성, 그리고 무극지기의 달성 탓에 일어난 또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희고 검은 네 개의 구슬과 같은 영기가 일어나 태극太極의 문양으로 삼화취정의 자리에 멈추면서 주변의 기운을 모두 무극지기로 융화시키기에 더 쉬운 마지막 낙인을 찍은 것이다. 이제 아예 반개가 아니라 눈을 감아버린 서륜은 여전히 가부좌를 유지하고 있다가 갑자기 눈을 떴고, 공중에 떠있던 서륜이 눈을 뜨자 하나의 태극도는 그의 몸으로 융화되어 단전으로 되돌아갔다. 퍼어어어엉!! 서륜의 몸 주변에 쌓였던 재들이 일어난 공기폭풍이 밀려나가면서 쏴아아 하고 퍼져 나가자 서륜의 몸은 드디어 바닥에 닿았다. 그리고 서륜은 자신의 알몸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길게 토해내고는 치렁치렁 쏟아져 이미 허리에 이른 머리카락을 붙잡고 있다가 등허리쯤에 숱까 지 많은 머리카락을 모아 쥐고는 기경을 일으켜 절絶 해버렸다. 그리고 그가 손을 놓자 솨 르르르 하고 삼단같은 흑발이 쏟아져 내렸다. 너무 긴 것은 그에게 있어 상당한 문제였고, 그 탓에 영 꼴 나지 않게 자른 것이다. 물론 그냥 지금에 있어서는 길어서 귀찮았기 때문이 었지만…… 그는 금의 통로로 돌아갔다. 만약 그 건립자의 안배로 인한 환골탈태였다면 되돌아가서 왼 쪽 통로, 그곳으로 들어서면 옷이 있으리라 짐작했던 것이다. 모든 맥이 열리고 자연지기와 동화되기 시작한 서륜의 뇌는 이미 극한까지 활성화 되어 있어서 전처럼 탁탁 막혀서 돌아 가는게 아니라 아주 잘 운용되고 있었다. CPU의 버전이 세단계 이상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해도 그 비교에 모자람이 없을만치 상당한 지능의 증가로 서륜은 무심하게도 느껴지지만 매 우 현기어려 있는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역시 네 심결은 성형심법(?)이라는 불미스러운 이름답게 서륜을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미인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서륜은 자신의 외모를 보고 싶지 않았기에 거울 같은 것이 있다 면 바로 박살내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환골탈태 했으니 눈도 어지간히 좋아졌을텐데…… 대 공동과 금속으로 만들어진 통로에 흩어져 있던 뇌정지기를 거의 소실없이 받아들인 그는 지금 10갑자를 조금 넘는 공력을 단전에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환골탈태 할 때만은 없었 던 고통 속에서 자신이 배웠던 검리를 많이 깨칠수 있었으며 그래서 지금 그는 검강 정도는 무리없이 사용할수 있었다. 그리고 의가 일면 기가 인다는 경지에 오른 상황이라 문제없이 신법을 펼치치라 생각하자 이전과는 비교가 안되는 속도로 환영까지 흐릿하게 남기면서 이 미 여러갈래의 통로에 도달해 있었다. 그는 왼쪽 통로로 들어섰다. 강옥으로 만들어진 벽은 왼쪽으로 주우욱 휘어져 한 자그마한 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말이 자그마한 방이었지 그의 생각에 의하면 삼십평은 넘 어보이는 거대한 방이었다. 방에는 먼지가 상당히 쌓이고 눅눅한데다가 곰팡이까지 피어 있 는 침구 하나와 이상하게 잘 보존되어 있는 책들이었다. 그러나 책들도 상당히 낡아있어서 서륜에게 있어서는 정말 퀴퀴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고 생각게 할정도였다. 과연 궤짝이 하나 있었다. 단목으로 된 궤짝 안에는 은근히 서늘한 기운이 풍겨나오는 냉기 어린 옥 두 개가 나왔고, 그 냉기와 청량한 기운으로 제법 잘 보존되고 풍화도 없었던 것 같은 청의와 속옷가지를 챙겨입은 그는 키가 전보다 좀더 컸음을 깨닫고는 피식 웃었다. 환 골탈태라니. 전에는 꿈도 꿔보지 못한 것이었는데. 뭐 한 50살쯤 넘으면 할수 있을지도 모른 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단시일 내에 이룰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익힌 심결들이 터무니없이 우수해서이지, 기의 농도가 풍부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방안에 존재하는 모든 책들이 한문으로 쓰여진 책임을 깨닫자 읽지 못할줄 알았지만 의아스럽게도 펼친 즉시 그 한자의 뜻과 이어져 읽히는게 아닌가? 그는 몰랐지만 차원을 넘 으면서 그의 영혼이 이 공간에서 제노글라시아나 몇가지 능력을 얻었음을 알지 못했다. 지 금으로써는 사이킥 파워도 어느정도 쓸수 있었지만 전혀 알수 없었기에 그는 방안에 있는 것들을 직접 손으로 일일이 보고 다녔다. 그리고 그가 깨달은 것은…… "무공비급이닷!" 이라는 것이었다. 별게 다 있다는 것에 그는 감탄했다. 마공 같은 부류는 그래도 마기가 조 금 덜 풍기면서 대단한 상승절기에 속하는 것들, 소수마공이나 혈수마공에서 몇가지 신법에 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곧 심법들도 몇 개 찾아냈지만 외우는 것으로 그쳤다. 이상하게 한두번 읽은 즉시 그 어려운 비급들이 주석까지 모두 순서대로 외워지는 것을 깨 닫고 과연 환골탈태는 좋은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지만 뭐 환골탈태만으로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다. 한 서너시간쯤이 흐르고 방안의 모든 비급들, 거의 수백권에 달하는 것들을 모두 외운 그는 그 사이에도 무리武理에 많은 진전을 얻었다. 그러나 그것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채 신법을 일으켜서 그는 오른쪽 통로로 들어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문득 음식 문제는 아마도 이렇게 서슬푸른(?) 냉기가 풍겨오는 통로 안쪽에 있지 않을까 하 는 생각에 통로 안쪽으로 들어가자 점점 벽에 서리와 성에가 달라붙어 있고, 그 양이 늘어 나 폐부가 조금 시리다는 느낌까지 받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서리가 다닥다닥 붙은, 고드 름이 몇 개 달라붙어있는 철문 앞에 도달했을 즈음에는 그 냉기가 북극 한복판에 서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단하여 한서불침인 그로써도 은근히 시림을 느낄 정도였다. "으음…… 이거, 강철은 아닌데? 무슨 철이지?" ……만년한철이었지만 그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푸르른 기운이 돌면서도 정말 시리 기 그지없는 냉기까지 자체적으로 일으키는. 강철을 능가하는 강도의 철이라니? 티타늄도 아닌 것 같았는데. 하고 중얼거리면서 그는 기력을 끌어올려 천천히 문을 잡아 당겼다. 손에 서늘한 감각이 와 닿았지만 문을 잡아 당기면서 사량발천근의 묘용을 발휘하자 금방 문은 끼이이익 하는 마찰음을 내며 열렸다. 그리고 서륜은 감탄했다. "아…… 하하하. 대, 대단하군." 쏴아아아 하고 새하얀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창고. 터무니없이 넓디 넓은 창고는 대 체 어디서 냉기를 끄집어 내는가 싶을 정도로 서늘했다. 그리고 집판장마냥 많은 과일과 채 소들이 냉동보존 되고 있는데다가 몇군데서는 벽곡단이 그득한 항아리와 빈 물병들을 많이 발견하고 그는 입을 쩌억 벌렸다. 주먹만한 벽곡단 서너개를 주워 씹으면서 그는 머리를 긁 적였다. 정말 너무나 양이 많아서 10년을 먹고 살아도 10분의 1을 채 먹지 못할 것 같았다. 벽곡단만 하더라도 주먹만한 것들이 수백개가 들었을만한 커다란 항아리가 1천개는 되어보 이는 만큼 많이 늘어져 있자 한숨을 토해냈다. 한끼에 벽곡단 서너개면 충분했는데…… 지 금 씹고 있는 벽곡단도 세 개를 씹어 먹어 식도로 넘기자 청량한 감각이 들면서 조금 텁텁 한 느낌도 침이 배어나오자 사라져버리고 허기는 온데간데 없었던 것이다. 과연 도사들이 먹을만한 고급음식! 서륜은 쓸데없는 감탄은 집어 던지고 남은 네 번째 벽곡단을 입에서 침을 배어내 씹어댔다. 금방 허기는 메워졌고 활력을 얻자 그는 이 엄청난 음식의 산이 많은 부담을 준다는 것을 깨닫고 바깥으로 걸어나와 만년한철 문을 닫았다. 정말 끔찍하리만치 무겁고 두터웠지만 부 족한 사량발천근으로도 많은 힘을 발휘할만한 공력을 쌓은 그였기에 금방 닫고 신법을 발휘 해 다시 그 뇌정지기가 가두어져 있던 거대한 공동에 다시 돌아왔다. 물론 오는김에 벽곡단 이십여개를 근처에 있던 가죽주머니에 처넣고 물병에 물까지 떠서 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 다. 뭐 이왕 탐사하는 김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먹을만한 것도 먹어 두어야 하지 않겠는 가 말이다. 뭐 벽곡단 이십여개면 아껴 먹어서 오일은 넘게 버틸수 있었다. 물도 별로 마시 지 않는 ― 주변을 떠도는 수증기水蒸氣와 수령지기水靈之氣를 빨아들일수 있으니까. ― 그 는 물병에 담긴 물 정도면 열흘을 버틸수 있었다. "끄응. 오행중 어디부터 들어가 볼까?" 여기서부터 서륜의 수련기는 시작되는 것이었다. 서륜으로써도 알수 없었다. 그의 대단한 재 능으로도 1년이나 되어서야 간신히 극성이 아닌 10성까지 밖에 익힐수 없을만치 대단한 검 공과 권법이 이곳에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응……? 태양신太陽神 주작朱鵲의…… 뭐? 주작?" 눈을 동그랗게 뜬 서륜은 다른 통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화火의 방위에는 태양신 주작의 무결이 배치된 동굴이었던 것이다. 한숨을 토해낸 그는 화의 극성인 토土의 방위로 다가갔 다. 흙은 불꽃을 덮어 끌수 있었기에 물보다 오히려 더 화염과 극성이었던 것이다. 토의 방 위에 이은 그는 토라고 새겨진 동 옆에 그려진 글귀를 바라보며 또 기겁했다. "태, 태음신太陰神 현무玄武? 설마 이곳은 청심지도淸心之道의 비문秘門……" 청심문의 비검비의가 모두 집결된 '그것'들이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그는 경악하지 않 을 수 없었다. 그로써도 정말 이곳에서 그것들을 얻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던 탓이다. 목木이자 풍風인 백호白虎와 수水의 청룡靑龍의 동까지 보고 난 후 그는 허탈함을 금치 못했다. 어디 부터 들어서야 할지 고민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금방 상생원리를 생각해 보았다. 화火에서 금金이 생生하고, 금金에서 토土가 생生하며, 토土에서 수水가 생生하고, 수水에서 목木이 생生하며, 목木에서 화火가 생生한다. 화火는 토土로써 제制하고, 금金은 수水로 제制하며, 토土는 목木으로 제하고, 수水는 화火 로써 제制하며, 목木은 금金으로 제制한다. 이 외에도 상성과 생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수많은 오행원리중에서는 이것이 가장 타당성 있다 생각했다. 어쨌든간에 원소상으로 보면 이것 외에도 수없이 많은 원리로 맞물리겠지만(가령 나무는 불길로 타들어간다는 것) 일단 지금 그가 서있는 방위는 금이었 으니까 토의 방위로 가서 태음신 현무의 공功을 취하는게 안배에 따르는 것이라는 생각이었 다. 그는 그래서 현무의 방으로 들어섰다. 113. "……으음?" 은근히 냉기가 서린 듯 하지만 포근한 느낌의 갈빛 금속벽과 그 벽에 '금속 주조'로 새겨진 벽화는 현무의 자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사신도四神圖의 북방北方에 있는 북방신수 현무의 모습이 웅장하게 금빛과 은빛, 그리고 갈빛으로 조화되어 그려져 있는 모습은 그에 게 감탄을 느끼게 했다. 금속주조로 새겨져 있었지만 너무나도 웅장하고 거대한 그 존재감 은 정말 실체처럼 다가와 그의 심장을 뒤흔들고 있었다. 은은한 감동이 느껴지는 그림, 그러 나 그는 의아함을 느꼈다. 현무玄武의 그림 외에는 방 안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 이가 없어서 그는 현무에게로 다가갔다. 방은 상당히 넓어서 20여평에 높이는 10m는 되 보 였다. 그만큼 넓은 벽 한켠에 현무는 그대로 자리하며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정말 살아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실감있는 현무는 환상의 신수임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감을 생동감 있게 드러내고 있었다. 왼쪽과 오른쪽 벽에는 무수한 글귀가 쓰여져 있었지만 몇번 본적 있 던 가림토문자임을 깨닫고 그는 허탈함을 느꼈다. 그러나 곧 그는 묘하게 익숙한 구절이 눈 에 들어옴을 깨달았다. "처…… 천부경天符經?" 그랬다! 벽에 빽빽하게 쓰여져 있던 글귀는 전부 천부경이었던 것이다. 놀랍고도 경악스러 웠지만 글귀와 의意는 한문으로 번역된 천부경과 비슷했다. 얼핏 본적 있던, 최근에 발굴된 천부경 원본과 비슷했던 것이다. 그는 굉장이 날카로워진 안력으로 천장을 바라보았고, 천장 에 알 수 없는 도형들이 방 자체를 묘한 선으로 장식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현무도에도 아 주 얕게 패여져 있는 그 문양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사각형의 방에 본래 원형으로 기록할 천체를 그린 듯 했지만 뭔가 묘한 영기가 흐르는 코어Core 같은 느낌이었다. 현무도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그는 갑자기 심장이 덜컥 멈추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주변 의 공간 모두가 천천히 옅어져 간다는 느낌에 움찔거렸다. 공간은 박동搏動하고 있었다. 세 상 모든 산맥의 태동지기를 머금은 듯, 이곳 공간은 박동하면서 무언가를 알려주려 하고 있 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쿵. 쿵 하고 규칙적으로 뛰던 심장은 천천히 그 숫자를 늘려가면 서 그의 머릿속을 두드렸다. 무언가 잊혀졌던 것이 깨어난 느낌…… 서륜은 어느새 보보를 옮기면서 손과 발과 몸으로 그 박동을 표현하고 있었다. 거대한 의와 염念이 그의 몸을 휘감고 자연스럽게 자연과 통령하며 태음의 춤을 추고 있었다. 이미 서륜 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륜은 아我를 관觀하고 있었다. 이미 그에게 있어 몸을 움직이고 의로 써 기를 통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정말 관찰하고 있었다. 이미 그의 감각에 는 오로지 현무도 속에서 이미 깨어나와 움직이는 현무의 생동감만이 새겨지고 있었다. 뇌 리 깊숙한 곳에 각인되는 것들. 검경劍經의 극이라는 검무劍舞가 되어 그려지고 있었다. 쥐 어져 있을리 없는 아我의 검이 시린 은빛의 검궤를 새기면서 그에게 너울너울 일렁이는 흰 궤적과 은빛 궤적이 합쳐지면서 모든 언言과 행行의 합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미 검은 버려 두고 검무가 아닌 말 그대로의 춤을 추고 있었다. 빠르고 강하고 무겁고 박동하며 대지를 끌어 올리는 춤. 태음신의 포효도, 두 머리를 지닌 현무의 날카로운 이빨도. 대지의 고동을 밟아나가는 거대한 일보 일보도. 모두 하나처럼 서 륜의 몸과 뇌리 깊숙이 새겨지고 있었다. 서륜의 동작은 너무나도 무거우면서도 빨랐고 강 했다. 청의의 소매는 하늘을 깨어버릴 듯 했지만 오히려 포용하는 것처럼 부드러움도 함께 하고 있었다. 둔중한 그 느낌이 관을 견으로 끌어내렸고, 견을 의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순 간 폭풍을 만난 듯 요동하던 지기地氣가 몰려들며 극강한 갈빛의 기운을 권拳의 끝에 모아 현무도의 거대한 힘과 맞부딪혔다. 두우우웅― 두두두둥― 현무도는 마치 물결처럼 파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무도의 중앙에 닿아있는 그의 권극에 서 퍼져나간 갈빛의 지기의 총아는 퍼져나가며 사각의 현무도의 끝에 다다랐다가 다시 권극 으로 모여들어 거대한 충격을 서륜에게 되돌렸다. 그러나 서륜은 입에서 선혈鮮血을 왈칵 토해내면서도 권극을 결코 현무도에서 떼어내지 않았다. 다시 거대한 진각이 대지를 뒤흔들 며 지기를 격발했다. 그순간 갈색의 빛살은 이제 태양처럼 너울너울 타오르고 있었다. 너무 나도 거대한 힘. 그것은 현무도를 다시한번 힘차게 뒤흔들었다. 현무도는 아직 멀었다는 듯 다시한번 거대한 지기를 충 하여 그에게 되돌려 보냈다. 투우우웅― 투투투퉁― 간격없는 거대한 진동이 현무도에 금 한줄기를 치달리게 했다. 서륜은 입에서 다시 왈칵 피 를 토해냈지만 진각을 힘차게 짓밟으면서 힘차게 장소성을 토해냈다. 마치 현무의 포효소리 같은 거대한 장소성은 도저히 표현할수 없는 그러한 길고 깊은 느낌이었다. 스코틀랜드의 파이프보다도 더더욱더 깊고 무거운 울림으로 퍼져나간 그 소리는 이 막힌 공간에서 요란하 게 퍼지면서 현무도에 그어진 금을 수십줄기로 바꾸었다. 현무도에 새겨진 금들은 천천히 그 사이에서 갈빛을 스멀스멀 토해내면서 일렁였다. 이제 백열하는 현무는 다시한번 장소를 내지르며 서륜과 맞부딪혔다. 괴로울텐데도 서륜은 아랑곳 없이 입에서 선혈을 왈칵 토해내며 장소를 토해내며 몸을 강렬하게 회전시키며 일곱 번 연속 탄퇴彈退, 너무나 빨라 각법脚法이라 불러야 할만한 걷어차기를 화려하게 토해냈다. 선풍각도 있었고, 탄퇴도 있었고, 내리 찍기도, 올려 차기도, 찔러 차기도, 후려 차기도, 돌 려 차기도 모두 포함되었다. 칠연격의 탄퇴각은 선연한 지기를 머금고 현무를 두들겼다. "아아아아―!!" 쩌저저저저적!! 현무도에 거대한 금이 치달리면서 우르르르 무너짐과 동시에 가루로 화하면서 서륜을 휘감 고 지나갔다. 서륜은 손상된 내장과 중루들을 스치고 지나가는 대 자연의 손길에 모든 것이 안정되면서 치유되어 가는 것을 느끼며 입에서 죽은 선혈을 한 번 토해내고 그 꿈결같은 환 상의 일권과 칠연각을 떠올리면서 흐릿한 미소를 그어 올렸다. 그리고 나서 무너진 현무도 의 안쪽에 있는 하나의 물건을 보고 천천히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나서 그는 현무 도 안쪽에 숨겨진 갈색 금속질의 간편한 세스투스Cestus를 집어 들어 손에 찼다. 마치 대고 만든 듯 손에 딱 들어맞는 갈빛에 알 수 없는 재질의 흰빛의 천으로 장식된 그 전투장갑을 살짝 쥐어 금속판을 맞물려 보면서 중얼거렸다. "현무玄武 비秘 일권일각一拳一脚. 태음권太陰拳과 태음각太陰脚." 열기는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는 10갑자에 달하는 모든 힘이 바닥나버렸음을 깨닫고 추욱 늘어졌다. 세상에! 현무도 하나에 담긴 힘과 영법으로 구성한 천부경의 힘만으로 10갑자에 달하는 힘이 실린 일권과 일곱 번의 차기로 구성된 일퇴의 힘이 모두 소모되었단 말인가? 그러나 서륜은 억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무도가 박살난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는 환상속에서 자신과 싸우는 갈빛 머리카락의 30대 정도로 보이는 건장하고 선이 굵어보 이는 사내 한명과 싸웠다. 그 땅의 거대한 힘을 빌어 서로 맞섬과 동시에 자신은 그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정말 오기로 끝까지 맞붙었다. 그의 몸이 산산조각나는 찰나, 그는 존재의 입에 서린 미소를 보았다. 그래서 서륜은 장갑이 끼워진 손을 들어서 찰칵 쥐어보이 면서 중얼거렸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현무의 검무劍舞도 사실 간신히 받아냈다. 나중의 살벌한 일권일각은 그렇다 쳐도 그 검무 는 기가 거의 실리지 않고 오로지 지기만을 빌어서 맞부딪혔는데. 그것으로써는 무승부였다. 사실 말로 하기 바쁜 논검論劍이나 다름 없었지만 그로써는 그것도 만족스러웠다. 이번 하 나로 이미 그는 어검술을 넘어 심형어검강 정도까지는 깨달았고, 여러 가지 의意를 깨달았 기 때문이었다. "그정도로 봐주시는 한분과 싸웠을 뿐인데 아주 힘이 쭈욱 빠지는군……" 서륜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입구에 놓아둔 가죽 주머니와 물병을 들어 세 개의 벽곡단을 씹으면서 물을 벌컥 마셨다. 전신은 이미 땀 범벅. 한 번의 싸움만으로도 그는 녹초였다. 그 한끼의 식사를 끝내고 수분을 섭취한 그는 곧바로 이번에 깨달은 천지양기중 '땅의 기운'을 주욱 빨아들여 무극지기로 바꾸었다. 마법중에서는 드레인Drain과 비슷했지만 그것과는 달 리 이것이 훨씬 더 안전하고 정순한 수법이었다. 드레인은 힘을 가리지 않고 빨아들이며 정 제도 하지 못하지만 이것은 땅의 기운을 순수한 무극지기로 정제할수 있었기에 그만큼 안전 하면서도 쉬웠던 것이다. 진원지기로 만드려면 이 다음 무언가 또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지 거의 늘지 않았지만 일단 비어버린 단전과 진원이 포용할수 있는 기력을 보충하는 것은 금 방이었다. 12주천을 끝내고 나자 충만하게 차오른 기력, 그리고 그는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그리고 또다시 벽곡단 하나를 씹으면서 투덜거렸다. 벽곡단이 이리저리 튀었지만 그래도 대 단한 미인이라서 추해보이지는 않았다. "으으으. 이 다음은 수水의 청룡인가? 수령지기는 어차피 대기중에 가득하니까 역시 배우려 면 죽어 나겠군. 주작의 화령지기는 공기중에 분포하는 열이겠고…… 지금도 오행지기가 가 득하다는 것은 알수 있는데. 그러고보니 금령지기의 주인은 없구나. 중국은 북기린에 남봉황 이었던가?" 사람과의 대화라는 것이 단절되다 보니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고생을 거쳐서 거의 몇 달은 지난 것 같은 그는 갑자기 주변의 토령지기가 가득 살아나는 느낌에 움찔거렸다. 그리 고 창백하게 질려 현무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현무도는 천천히 다시 갈빛의 화려한 지기가 모여들어 충만해짐과 함께 복구되고 있었다. '그…… 러고보니 지금 난 비기인 일권일각과 그 권결을 검으로 전환시키는 것만 배운거였 지? 진짜 검결과 권결은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는 건데…… 일단 기초만 배웠다는 건가?' 그는 신음을 토해내면서 털푸덕 엎어졌다. 아직 끝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으으으으으!!" 그 무렵, 그처럼 골머리를 썩히는 사내가 있었다. 전에 영이 이럭저럭 해서 만들어낸 무공인 분혼신공分魂神功을 열심히 연마하고 있는 단월斷月이었다. 골머리를 썩히면서 머리가 아플때 면 운기조식도 해 나가면서 검을 휘두르고 권을 뻗고 일각을 뻗어내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환골탈태를 했지만 모자람은 정말 터무니없이 컸다. '어려워!' 이것이 그의 심정이었다. 굉장히 쉽게 풀어서 쓴 것이었지만 상당한 재능을 지닌 단월로써 도 정말 고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분혼신공의 비급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검결과 권결과 신법들을 익혀나가고 많은 응용잡편들까지 읽어보고는 했지만 성취는 미비해서 고작 2성이었다. 물론 이 분혼신공이 현경에 이르게 해줄정도로 대단한 물건이다 보니 6성에만 이르러도 화경의 끝이니 2성에 이르렀다 해도 검강을 못쓰는게 아닌 것이다. 단지 이래저래 세부적으로 운용할 것이 많아서 청심문의 무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웬만한 무공비급쯤은 눌러버릴만큼 대단한 것이 바로 이 분혼신공이었기에 단월은 괴로워 하고 있었다. 동굴에 숨어서 가끔 세가에서 보내주는 물건들을 이용해 연명(?)해 나가며 수련을 하고는 있었지만 정말 이건 어려웠다. 영이 와서 지도를 조금 해주면 더 빨라지겠지만, 하긴. 아직 배운지 2, 3개월이 조금 넘었는데 비해 벌써 2성을 익혔다는 것은 단월의 재능이 대단하다 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지만. 아마 영의 예언대로 1년정도가 아니면 역시 분혼신공을 6성 까지 달성하기는 힘들어보였다. "공파空波! 백멸魄滅!" 회색빛의 진한 영기靈氣를 이글이글 피워올리던 단월은 천천히 허리에 걸린 애검愛劍 참령 斬靈을 발검하여 그대로 휘둘렀다. 순간 지이잉 하는 검명이 일어나면서 검이 휘어지다 시 피 하여 휘둘러졌고, 순간 하얗게 공기충격파가 일어나면서 동굴 벽을 쳤다. 아니, 친것처럼 보였다. 어느새 공기충격파 앞에는 단월이 서 있었던 것이다. 순간 회흑색의 영기를 머금은 검날이 강기를 줄기줄기 토해내면서 예리하게 날을 세우며 내리 꽂혔다. "파잠波潛! 단혼斷魂!" 둘 모두 같은 분혼신공에 들어선 검경劍經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도刀의 파경破經인 천강 天剛과 비슷한 공파. 백멸을 촌경과 비슷하지만 기경을 차단하는 파잠. 단혼으로 둘 모두 자 신이 만들어 막아낸 것이다. 이형환위까지 성공시킨 저 신법은 역시 분혼신공 상의 귀혼묵 령보鬼魂墨靈步였다. 공기충격파를 발산해 내고 그것을 사그라 뜨리는 검경 연결은 상당히 고단수여서 아마 지금 그의 숙련도와 내공으로는 아마 힘든 수법일 것이다. "우욱!" 자, 보라. 저렇게 피를 게워낸 후 바로 다시 가부좌를 틀고 운공을 시작하지 않는가? 선혈을 입으로 왈칵 쏟아낸 단월은 바로 심법을 운용하면서 주변의 기력으로 경락의 흔들림 을 다스려나갔다. 주천을 끝마치고 나자 심법이 얼마나 뛰어난지 금방 내상은 훌쩍 치유되 어버렸고, 단월은 다시 멀쩡하게 일어나서 검을 잡고 명상에 빠져들어갔다. 그리고 나서 다 시 동굴 너머로 회흑색의 기경은 뿜어져 나와 날카롭게 동굴벽에 상흔을 남겼다. 단월은 여 전히 흔들림없이 침잠한 상황에서 검경을 뿜어내는 방식으로 검을 익혀 나가고 있었다. 일 검 일검에 담긴 의意가 모두 달라 아마 절정 고수 수준의 무인이 본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다채로운 검경이 동굴벽에 그 흔적을 확실하게 새겨넣었다. 단월은 그렇게 진지하게 검을 뻗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정말 골이 흔들리는 두통을 삭히느라 고통어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뭐, 지금 청심비록을 싸쥐고 괴로워 하고 있는 영도 피장파 장이니 단월로써는 별로 억울하지 않겠지만…… 114. 루인 블레이드Ruin Blade. 거대한 삼라만상의 광검의 내부로 걸어들어간 유리엘은 몸이 부웅 하고 뜨는 느낌을 받았 다. 그 부웅 하고 뜨는 느낌은 단지 마법중에서 플라이Fly의 스펠이나 레비테이션 계열의 부유마법에 걸린 느낌이 아니었다. 마치 중력重力자체가 없는 공간에 들어온 느낌. 실제로 자신의 몸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숨을 쉬는것도 어쩐지 편안해지고 박자가 느 려진 느낌. 몸 자체가 이완되면서 세상의 모태 속에 들어와 그 생령의 힘속에 파묻혀 안전 하게 보호받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 굉장히 강력한 힘이 대단한 밀도로 메워져 있는 결계 같았지만 그 강력한 힘은 세상의 삼라만상에서 얻어지는 모든 힘의 융화적인 조화에서 풍겨 나오는 안온함으로 감싸줄뿐 거부감은 없었다. '여기는……? 엘프 로드Elf Lord가 있는 공간이 바로 여기?' 유리엘은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생각으로 발을 옮기려 했으나, 순간 스르륵 하고 몸이 미끄 러지듯 앞으로 흘러나가는 그 감각에 깜짝 놀랐다. 점점 세상 모든 것이 담겨있는 듯한 그 빛의 회오리에 익숙해져 가면서 감동은 사라져갔다. 그리고 유리엘은 대체 어디로 가야 엘 프 로드를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엘프 로드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해 봐도 아까처럼 미끄러져 나가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떠올라 볼까. 하고 중얼거린순간 유리엘은 빠른 속도로 광류光流를 따라 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삼라만상의 광류는 유리엘을 부드럽게 밀어올렸 고, 그 기분을 만끽하면서 유리엘 모르게 그녀의 금이 가버린 마음을 세상은 포근하게 감싸 안아 주었다. 그러나 곧 유리엘은 자신이 이렇게 안주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고, 곧 이 광류의 평온함이 자신의 굳은 마음을 녹여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곧바로 광류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광류는 이제 끊임없이 그녀를 밀어올리고 있었다. '안돼…… 아직은…… 이렇게 쉴 수 없어……' 광류는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지만 어느새 그녀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진 뒤였다. 차갑고 딱딱해진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이것은 유리엘에게 있어 평온하고 따스하기는 했지만 어떻 게 보면 자신의 결심을 오염汚染시키는 독소毒素에 다름이 아니었다. 그래서 점점 결심을 굳혀가는 유리엘의 주변에 있던 광류는 더 이상 그녀를 감싸고 돌지 않았다. 점점 광류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었고, 그것에서 톡 쏘는 듯한 색소의 느낌을 받은 유리엘은 씁쓸한 미소 를 입에 걸면서 광류의 흐름이 멎은 순간, 눈을 감았다 떴다. 한 번 눈을 감았다 떴다 했을 뿐이었지만 이미 장면은 확 바뀌어있었다. 여전히 익숙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은은한 미소를 띄우고 있는 레펠테온과 유스를 발견한 것이다. 레 펠테온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고, 유리엘 역시 그러했다. 그리고 놀라버렸다. 은은한 녹 색의 광휘가 흐르는 에메랄드로 이루어진 타블렛들을 짜 맞추어서 만든 듯한 원형의 방, 그 러나 자세히 보니 은은한 마나가 흐르는 특이한 덩쿨들이 마치 보석처럼 굳어진 채로 그 아 름다움을 드리우고 있는 것 뿐이었다. 바닥은 갈빛이 도는 대리석이었다. 그 대리석으로 이 루어진 포석을 밟아가며 세 존재는 아까 본 그 삼라만상의 광류가 동그랗게 파인 바닥에서 천장으로 솟구쳐 올라가며 가속되어 가는 그 작게 축소된 듯한 기둥을 바라보았다. 레펠테온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기사가 예를 표하는 것 같은 동작을 취했고, 유스 는 검을 뽑으면서 바닥에 내리며 군주에게 취하는 최고의 예를 표했다. 유리엘은 무심한 눈 길을 광류에 보냈을 뿐이었다. 광류는 천천히 그 가속을 멈추면서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 고 그 일렁임 가운데로 투명한 녹색 광휘가 흘러나와 영체. 아스트랄 바디를 이루면서 존재 를 유클리드 공간에 투영했다. 그 탓에 유리엘은 화들짝 놀랐다. 깨달아버린 것이다. 그렇다 면 엘프 로드라는 존재는…… 살아 있지 않은 존재. 그 가냘픈 영혼을 저 광류가 흐르는 다른 플레인에 뿌리둔채 엘프들 을 보호하다가 영체가 사그라들어 없어지면 다시 세대를 교체하는, 불행하기 그지없는 존재 였단 말인가! 유리엘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렇게 되면 엘프들은 인간의 흑마법사들보 다도 오히려 질이 나쁜 존재에 다름이 아니다! 어떻게 한 존재를 희생시키고 자신들은 바깥 에서 조화를 이루는척, 위하는척 한단 말인가! 엘프 로드라는 존재는 '축'을 이루는데 힘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 자체를 던져 천천히 허무로 사그라드는 공포와 고통을 그대로 감내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바인이라는 사내는 정말 처절할 정도로 이기적이었다. 그러 나 그 이기적인 감정의 밑바탕에서는 유리엘도 이제야 느낀, '복수'라는 것을 위한…… 유리 엘과는 비교조차도 되지 않을 정도로 피눈물의 결정이나 다름없으리만치 차갑고 무거운 감 정이 깔려있었다. 그렇게 무심하려고 노력한 것은 더 이상 정이라는 것 없이 그 복수의 대 상자를 죽이기 위함이 아닌가. 유리엘도 '복수'를 생각하는 것은 바인에게 어느정도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정도로 대단한 무게와 피를 받아내고도 성공일지 실패일지 알 수 없는, 그 무서운 힘을 지닌 바인도 확신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대체 그는 누구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잃은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 복수의 대상조차 자신이 사랑하던, 정말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사랑하던 가 족이 아니었을까? 그에게 배반당했기에 그렇게 마음이 깊게 가라앉아 살기로 범벅되어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유리엘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완전히 형체를 갖춘 아스트랄 바디를 바라보 았다. 가볍게 웨이브 졌지만 몸이 전체적으로 반투명해서 묘한 느낌을 주는, 연녹색의 빛의 섬유를 가닥가닥 짜낸 듯한 머리카락이 치렁치렁 흘러내려와 바닥에 닿고 있었다. 그러나 반투명한 빛의 영체는 유리엘이 보기에 정말 너무나도 불행한 존재였다. 은은한 녹색의 혜 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것은 자기를 태워서 빛을 태는 불꽃의 아름다움에 다름이 아니라고 유리엘은 평가내렸다. 자신을 태우는 자는 아름답게도 비치지만 어리석게도 비추는 법이었다. 과연 일행이 오기 전에 있던 손님은 아직까지도 엘프 로드에게 차가운 눈초리를 던지고 있었다. 동정이 아닌 경멸이었다. 그 눈빛은 예리하게 살아있었지만 정말 차디찬 눈초리. 어쩌면 경멸조차 아닌 무심하기 그지없는 무생물의 눈빛과 같은 금속질의 그것이었다. 정말 시리디 시린 순금빛의 눈동자는 완전을 이룬 순도의 순금을 섬유로 바꾼 듯 가늘면서도 부드럽게 반짝이는 머리카 락과 더불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핏빛의 입술과 창백한 표정은 가냘프게도 보였지만 묘하게 그는 굳세고 단단해 보였다. 아 니, 존재감 자체가 인간과는 달랐다. 키는 상당히 장신이어서 봉인계인들이 보았다면 상당한 미인이지만 키가 너무 커서 조금 거칠어 보이는, 눈빛 자체만 봐도 염세적이고 퇴폐적인 눈 초리의 미청년이었다. 얼굴 자체만 봐서는 놀라운 미인인 엘프 로드도 감히 비교조차 할수 없으리만치 아름다웠지만 그의 기세와 퇴폐적인 기색은 그를 오랜 세월을 거친 존재로 확실 히 각인해 주었다. 레펠테온과 유스는 그를 알고 있었는지 그를 본 즉시 바로 고개를 숙여 보이면서 최고의 예를 취했다. "오랜만이군. 필멸자의 영웅들…… 레펠테온과 유스라고 했나? 저 아이는 못보던 존재인데 …… 레서 엘프Lesser Elf의 엘리멘트 엘프Element Elf인 모양이군." 레서 엘프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뱉어낸 그는 아주 느긋하고 방만한 자세를 취하면서 탁한 갈빛의 단단해 보이는, 나무인지 금속인지 알수없어 보이는 재질의 몸에 은빛 테를 지닌 검 집에 꽂힌, 가드가 이상스럽게 긴 바스타드 소드Bastard Sword 한자루를 삐딱하게 기대고 는 그들을 예리하게 날이 산 눈초리로, 그러나 무심하고 냉랭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 아이는 아니군." 「'그분'께서는 약속을 지키는 분이시죠. 이런때에 리에……」 "닥쳐! 레서 엘프! 너 따위가 가볍게 부를 이름이 아니다! 엘더 엘프Elder Elf의 마스터라 하더라도 내 앞에서 그 이름을 언급했다 소멸 직전까지 갔다!" 누군가를 언급하고 난후 또다시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며 부드러운 분위기로 말을 하려고 했 던 엘프 로드는 정말 살기가 따갑게 배어나오는 금빛의 서늘한 안광에 입을 다물었다. 마치 전투기계로 타고난 듯 용골이지만 가느다란 몸을 지닌 청년의 입에서 튀어나온 싸늘한 목소 리에 움찔 하고 몸을 굳힌 것이다. 벼락같은 일갈이었다. 유리엘이 심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 금발금안의 청년의 눈길에는 싸늘함과 조소만이 가득 했다. 그런데 엘더 엘프의 마스터…… 태고의 엘프를 이름이 아닌가. 유리엘은 알수 없었지 만 그 말에 어느정도는 알고 있는 듯, 레펠테온은 몸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감히 생각을 표 면적으로 떠올리지는 않았다. 감히 저 존재 앞에서 생각이라도 함부로 하는 날에는 소멸을 면치 못할지도 몰랐다. 감히 누가 저 존재 앞에서 권위를 뽐낼수 있을까? 엘더 드래곤 로드Elder Dragon Lord이자 이터널 드래곤 마스터Eternal Dragon Master. 리 아네리스 드 골드. 금빛의 사신이라는 극한極限에 오른 자 앞에서…… 자그마치 이미 신神 을 탈脫한 존재임에야. 용신 씩이나 되는 존재가 왜 이런 곳에 와 있을까? 하지만 태고신 둘이 함께 관심을 기울이 고 있는 차원이라면 이런 존재가 하나쯤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바스타드 소드의 검병을 쥐는 순간 검집에서조차 예리하게 산 기운이 퍼져나오는 것이 검 보다는 그 주인의 솜씨라 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눈썹을 치켜올린채 일갈했던 그는 금방 다시 냉랭하고 무표정한 얼 굴로 돌아와 바스타드 소드를 들어 유리엘에게 날려보냈다. 유리엘은 깜짝 놀랐지만 아주 부드럽게 날아온 바스타드 소드는 그녀의 손에 덜컥 쥐어졌다. "루인 블레이드Ruin Blade…… 운명의 가운데에 선 자에게 쥐어질만한 검이지. 큭큭큭." 긁는 듯한 웃음을 흘리면서 광기狂氣를 표출해보이자 갈빛의 간단한 스타일의 옷이 살짝 흔 들리면서 새하얀 목선이 드러났다. 그 목선 위를 출렁거리며 흘러내리는 금발은 광기, 그리 고 퇴폐적인 미와 어울려서 숨막힐 정도로 아름답게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존재감을 감 추고 있었기에 이 공간에 존재가 살아있을수 있었다. 존재감 자체만을 모두 드러내더라도 아마 유클리드 공간 자체가 잠깐 존재를 상실할 정도로 거대한 존재였다. 비록 저렇게 인간 형으로 존재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는 엘더 드래곤. 해츨링때부터 존재를 깨닫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러서는 감히 대적할자 없는 절대에 가까운 존재. 이미 신의 존재성마저 탈피해 버린 절대에 가까운 존재…… 그러나 알 수 없는 슬픔으로 뒤덮인 그는 유리엘에게 그 금빛의 눈을 들어보였다. 순간 유 리엘은 충격에 휩쌓였다. 그의 금빛 눈에 갇혀진 거대한 광기와 살의는 그렇다고 쳐도 그 내면에 가두어진 거대한 슬픔. 아니, 그 슬픔의 내면에는 오로지 무無. 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은은하게 퍼져있는 무의 그림자는 그녀도 얼핏 보았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저 광기와 슬픔은 위장에 다름이 아니었다. 오로지 그는 자신이 신성마저 탈 하여 가졌던 슬픔 과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정신적 리비도. 유지하고 싶어서 광기를 발산했던 그 마지막남은 일말의 그것조차 사라져버렸기에 남아있는 공허한 정신을 광기와 만들어진 살의로 뒤덮은채 그렇게 간신히 살아있는것처럼 보이는 존재로 보여질수 있었다. 그러나 유리엘은 찰나나마, 그가 얼핏 드러내 보였기에 볼수 있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너무 나도 커서 그가 던져준 바스타드 소드. 루인 블레이드를 놓칠뻔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곧 조금 슬픈 눈길을 금발금안의 청년. 리아네리스 드 골드에게 던지고 있는 엘프 로드를 발견 하고 유리엘은 측은함이 가득한 눈길을 보냈다. 엘프 로드가 보내는 눈길은 사랑이었다. 하 기사, 엘더 드래곤 마스터의 영혼은 퇴폐적이었지만 그만큼의 거대한 미美를 풍기고 있었기 에 유한자인 레서 엘프의 로드중 한명인 그녀가 사랑을 느끼지 않을수 있었을까. 정말 너무 나도 유혹적인 신성이었기에 강제에 가까운 유혹이었다. "뽑아봐. 레서 엘프 유리엘."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 물면서 손가락에 잡혀진, 이 너무나도 가볍지만 터무니없이 밸런스가 좋아서 폼멜조차 없다 시피 한 이 바스타드 소드를 검집에 봉인하고 있는 클립을 찰칵 연 다음 어쩐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면서, 루인 블레이드. 파멸인破滅刃을 뽑아들었다. 사르르르릉 하는 소름이 돋 아오르는 소리와 함께 보랏빛의 검날이 드러냈다. 코어Core는 아주 부드럽고 원만하게, 매 끄럽게 올라가 있어 각진 부분이라고는 전혀 없는 검이었다. 스르르르릉― 시린 느낌과 함께 검날에서 퍼져오는 기운은 무심無心. 검 자체가 에고Ego를 띄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에고 자체가 무심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을 가리지 않는 신검神劍이지만 그 주인을 무너뜨릴만치 광기를 발산하는 때가 있기에 지금까지 주인을 만 나지 못했던 비운의 검. 그러나 그 존재를 리아네리스 드 골드라는 존재는 간단하게 유리엘 에게 인도했다. 자신이 거두어서 그 성질머리를 정화시킨 검이었지만 너무나도 애착없이 던 져준 것이다. 이 소름끼칠만큼의 명검名劍은 은은한 검명을 발하면서 떨리고 있었다. 힐트는 손에 착 달라붙는 듯 하고, 폼멜은 아예 없다시피 한 자그마한 보석으로 된 추였다. 그러나 이것의 밸런스는 터무니없이 완벽했다. 가드는 길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밸런스를 완 벽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드, 힐트, 폼멜이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손에 너무나도 잘 맞는 명검. 검신의 길이는 일반 바스타드 소드보다 조금 길고 폭도 아주 약간이지만 넓었다. 그런데 묘한 느낌이 그녀를 덮었다. 검날은 시리도 록 맑고 깨끗했지만 검 자체가 보랏빛이었기에 느끼지 못한 것. 묘하게 주변 공간과 분리되 어 있는 듯한. 에테르로만 빚어낸듯한 검날에 알 수 없는 신성神性이 배어들어 있다는 것이 었다. 귀검鬼劍도 영검靈劍도 신검神劍도 마검魔劍도 될 수 있는 검…… 그리도 보랏빛이어서 너무나도 선명하게 주변과 구분되기에 느껴지는 것. 그것은 너무나도 얇은 각도라서 알수 없었지만 검신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너무 미약해서 웬만히 검을 본다 는 이들도 알수 없을만한 잔흔. 유엽형流葉形의 검신이라는 것이었다. 바스타드 소드에 웬 유엽형이나 싶겠지만 이 검은 아주 은은하게나마 유엽형 검신의 잔흔이 남아있었다. 물론 검극의 소드 엣지 부분으로 가기 전, 아랫쪽으로 한뼘 아래서부터 남아있는 잔흔에 불과했 지만 각진 부분조차 없는 검이 그것을 증명했다. 코어가 아주 미약하게 불쑥 솟아있는 검이 었기에 코어부분조차 얇았다. 그래서 부러질 듯 아슬아슬 했지만 유리엘은 직감적으로 알수 있었다. 이 검을 파괴할만한 힘은 이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고 이 검을 능가할만한 금속은 적어도 신급 존재가 지닌 검 외에는 없다고. "'그'가 아무래도 너라는 존재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해서 말이야…… '꼭두각시'를 각성시키 는 데 너란 존재가 중요하다고 하더군…… 네 복수의 대상이 지닌 검은 어떠한가?" 유리엘은 그 말에서 수상함과 더불어 저 존재가 말하는 그나 저 자신이 그녀를 이용하려 든 다는 사실을 엿보았지만 아무래도 좋다고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바인이 지녔던 허공의 쌍검 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정말 끔찍하리만치 예리하게 날이 산 명검. 비록 바인이 제대 로 검날에 대한 잇점을 살리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 두자루 검의 합격을 받아내려면 일도 류라지만 이정도 검은 있어야 될까 싶었다. 이정도 검이라면 아마 받아낼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면서 그녀는 검병을 쥔 손에 힘을 조금 더 가했다. 115. "훗." 바인은 입으로 나지막하게 비웃는 듯한 느낌의 웃음을 흘리고는 아주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 면서 바닥에 너저분하게 늘어진 시체조각들을 피해지나갔다. 지금까지 바인이 행한 이 만행 을 어찌 다 필설로 형용할수 있으랴(할수 있는데?). 바인은 수십가지 마법들을 사용하며 마 치 마법을 맞아줄 샌드백으로 휴머노이드 몬스터들을 선택. 그들을 처참하게 학살하고 박살 을 낸 후 거의 잠깐동안 이 근처 모든 몬스터들의 생태계 사이클Cycle이 바쁘지 않을수 없 으리만치 많은 숫자를 줄여놓고도 별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광익의를 추스르면서 걸 음을 옮기고 있었다. 입으로는 육포를 가볍게 씹으면서 말이다. 워터 엘리멘탈 계열의 마법 을 이용해 수통까지 채우며 바인은 비위좋게 저 처절하게 널브러진, 죽기는 죽었지만 그 방 식이 다양해서 산으로 태웠다던가 아니면 화상으로 녹아내렸다든다, 아니면 얼어붙었거나 부숴졌거나 피떡이 나버린 시체들 속에서도 육포를 꿀꺽꿀꺽 넘기고 있었다. 세상에, 아무리 비위가 좋아도 그렇지 프레셔Pressure 계열의 마법으로 바닥에 판박이 된 시체를 보고도 육포를 씹을수 있단 말인가? 군것질 하면서 지금 이 상황을 보고 있는 분들 에게는 미안하기 그지없지만 바인은 그런 처참한 광경을 잘도 유도하면서 육포를 질근질근 씹고 있었다. 바인은 왜 지금까지 몬스터들만 살해하고 숲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지 알수 없지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바인은 지금 길을 잘못 찾아버린 것이었다! 비행마법을 쓰면 되지 않느냐 싶지만 그로써도 정신력 소모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금 대량 양산한 시체들 도 반은 핸드 캐논을 이용한 것이었고 나머지 반은 적당히 쉬어 회복된 정신력으로 몇가지 마법을 시험해본것에 불과하다. "조금 텁텁하군." 바인은 육포를 씹으며 중얼거렸다. 아, 대체 이 세상에서 대화가 난무할만한 이벤트는 없는 것이었던가. 바인은 그래도 나름대로 영웅이다. 아니, 웬만한 영웅 넘었으면 넘었지 한가지 만 빼면 확실한 영웅이다. 영웅의 자질이라는 것은 강하기도 강해야 하지만 웬만하면 쓰러 져서 치료받을 때 만난 여자나 위기에 빠진 이들을 구할 때 미녀를 많이 만나는 자질로도 결정된다(이건 웬 개소리냐?). 바인은 그래도 나름대로 대단한 존재인데 이쯤 되어서 미녀 안만나는게 수상할 정도가 아닌가. 바인은 엑스트라가 아니다! 결코 산적 1, 산적 2나 마을 사람 A나 심지어는 몬스터 C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궤도 수정을 했다 하지만 너무 숲에서 오래걸리는데. 이쯤 되면 사람이 라도 하나 튀어나와야 정상 아닌가. 그래야 숙소라도 공짜로 얻을수 있을텐데." 드래곤. 그것도 엘더 드래곤에서도 고룡인 존재의 레어에서 보석을 한가득 털어온 놈으로써 그게 할말인가? 그러나 바인은 여전히 무심하고 냉랭한 눈길로 후드를 덮어 쓴채 걸음을 옮 기고 있었다. 핸드 캐논은 여전히 광익의 안깃의 백팩에 박혀있었고, 그가 든 것은 허공검중 허검 한자루와 왼손에 든 혼연의 지팡이 하나 뿐이었다. 왼손의 것으로 간혹 삐져나온 나뭇 가지를 붕괴의 힘을 불어넣어 소멸시켜 버리면서 걸어가고, 동시에 혼연의 지팡이에 사멸의 힘을 불어넣어 근처를 돌아 다니는 기분나쁜 날벌레들을 말 그대로 사멸시켜 버리면서 그는 그나마 편하게 걷고 있었다. 웬만한 모험가라 하더라도 정말 할수 없는 일들 투성이지 않은 가! 누가 몬스터들 튀어나오면 편안하게 핸드캐논을 갈겨버리고 마법을 '시험' 해볼만큼 여 유작작하게 굴수 있단 말인가? 여전히 질기고 텁텁한 육포를 씹으면서 바인은 물을 가끔 입에 가져가더니 기어이 두툼한 육포 하나를 모두 위로 넘겼다. 육포 하나에 한끼나 다름없었는데 바인은 그것을 먹고도 조 금 아쉬워서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여긴 숲이고 산이 없어서 토끼를 만날 수 있을리도 없 었고, 어차피 몬스터들이 철철 넘치는 자연 사이클인데 노루나 사슴 따위가 뛰놀면서 물을 할짝마실 리가…… 있었다! "허……" 바인마저 허탈해서 갑자기 드러난 공터에 있는 노루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묵념하며 허검을 집어 던졌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광경이기는 했다. 가끔 일부 소설에서도 호수처럼 맑은 물 을 혀로 핥으면서 위협을 두려워 하는 겁 많은 노루의 모습은 숲 한가운 데서도 정말 그림 과 같은 광경으로 다가올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바인에게 그런 순수하면서도 예술적인 감 성을 떠올려 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리한 요구임이 확연하지 않은가. 바인이 왼손을 뻗자 허검은 마치 어기동검술御氣動劍術을 시전한 것 처럼. 어떻게 보면 이 기어검술처럼 미약한 마나를 머금은채 회색빛을 번뜩이며 공간을 갈랐다. 순간 노루는 간단 하게 목이 서걱 하고 잘려나가면서 갑자기 쓰러져버렸고, 피를 콸콸콸 쏟아냈다. 노루의 목 을 반원을 그리며 자른 허검은 빙글 돌며 돌아와 바인의 손에 무사히 안착했다. 바인은 싱 긋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한끼 해결 됐군. 뭐 육포도 지겨운데 잘라서 마법으로 말린다음 기름기도 빼고 보존마법걸 린 가죽주머니에 넣으면 되겠군." 여전히 바인은 아무 걱정 없이 여유작작하기만 했다. 그때 문득 바인의 등골을 서늘한 감각 이 후리고 지나갔다. 바인은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마 알수 없을 것 이다. 바로 이때가 유리엘이 루인 블레이드를 잡으면서 복수를 다짐할 때라고는. 하지만 바 인은 곧 기척이 없자 예리하게 날이 산 보팔 나이프를 꺼내서 노루의 피를 빼내고는 살을 발라내기 시작했다. 꽤 크기는 했지만 바인의 마력이 실린 보팔 나이프는 녹색빛의 날을 세 워보이면서 간단하게 해부했다. 많은 몬스터들을 해부하다 보니 근육과 살점의 결을 짚을수 있게 된 바인은 능숙하게 먹을수 있는 부분을 골라내고는 깨끗하게 벗긴 가죽은 물로 잘 씻 고 말렸다. 주변에 가벼운 결계를 쳐서 피냄새가 퍼져나가지는 않을 것이었다. 금방 피들을 날려보내고 먹을수 있는 고기는 가열 마법으로 구워서 백팩에서 꺼낸 소금과 후추를 가볍게 뿌려서 염동력으로 띄운채 한점한점 씹으면서 그는 다른 것들은 잘 절여서 기름기를 빼내고 마법으로 드라잉Drying 해서 보존마법이 걸린 가죽주머니에 담았다. 가죽이야 언제 쓸지 모 르니까 잘 접어서 백팩에 집어 넣었고. "편하네?" 뼈하고 쓸데없는 부분만 남은 노루의 사체를 보던 그는 손가락을 딱 튀겨서 시동의 영창도 없이 번Burn 마법을 발해서 깡그리 태워 없애고는 연기는 염동력으로 산산히 흩었다. 그리 고 나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재들을 염동력으로 물에 흘려 보낸 후 바인은 다시 방향을 제대로 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끼니도 제대로 때웠고, 빵이나 채소 없이도 고기를 별로 비위 에 거슬리지도 않는지 잘도 먹어치운 그는 소금과 후추를 뿌린 양이 조금 많았는지 물병으 로 나발을 불어대다가 소화기관이 가득찬 탓에 한숨을 길게 토해내면서 걸음을 옮겼다. 배 는 가득 찼고, 기력은 철철 넘친다. 그리고 그 남아 넘치는 기력을 소모시킬 일이 바로 바인에게 닥쳤다. 역시 운명이라는 것은 악당의 편인가? 딱 준비 끝나고 최상의 컨디션을 회복한 후에 바로 일이 터지다니! 그의 초 인적인, 아니. 이미 인간이 아니니까. 하여튼 예리하기 그지없는 청각은 금속이 맞부딪히면 서 일어나는 날카로운 소성을 포착한 것이다. 금속이 처음 맞부딪히고 약한 폭발음이 이는 것이 아무래도 마법사가 있는것도 같았다. 그래서 바인은 고개를 갸웃 거렸지만 별로 상관 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뭐 밀리는 쪽이 선하든 악하든 도와주기만 하면 숙식제공이나 적어도 금전을 받는 것은 쉬울 것 같았기에 후드를 잘 잡아 고정시키고 블링크와 체이닝을 잘 이용해 좌표가 겹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소리의 진원지로 빠르게 움직였다. 퓨퓨퓨퓻! 블링크라는 말 그대로 깜빡이듯 신형을 찰나간에 저 멀리로 옮기면서 바인은 잠깐이나마 잡 생각을 더했다. 정말 터무니없이 사악한. '왕족따위면 그 후의 일 따위에는 별로 관련되고 싶지 않으니 적당히 하는것도 좋겠는데?' 너는 피가 끓어오르는…… 아니. 피가 끓어 오르면 죽는구나. 어쨌든 열혈의 용사지망자가 아니란 말이냐? 아니. 아니란 말이냐가 아니라 아니었다. 바인은 지금 복수라는 지극히 개인 적인 일이면서도 아주 중요한 일로 움직이고 있는 탓에 아마도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유는 있다지만 별로 필요 없었기에 이렇게 간단하기 그지없는, 숙식을 위한다는 이유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바인에게 많은 기대를 걸어서 수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려댄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하지만 이 퇴폐적인 인간이 의외로 인기가 많은 법이다. 뭐 몸을 섞는다거나 하는 원색적인 경우는 아예 없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미녀들 닥치는대 로 건드리면서(가 아니라 미녀들이 엉겨 붙는 경우겠지만) 돌아 다니는 캐릭터는 통쾌함을 선사하게 마련이다. 바인이야 마음에 안드는 인간들에게는 단지 껍질을 벗겨 소금을 뿌린다 는 간단한 행동이 아니라 절망絶望 마법을 연차로 퍼부어주고 소울 크랙Soul Crack을 걸고 마인드 섀터Mind Shatter 계열의 마법을 난사하고 온갖 고문기술을 퍼부어 주면서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망가뜨리는 악당중의 악당이기에 아마 통쾌함을 느낄시간은 별로 없으리라 본다. 이 바인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삐뚤어진 정신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점점 가까워 지는데……" 날카로운 금속성과 욕지기, 그리고 피륙을 가르는 소리와 갑옷을 치고 가죽을 가르며 살을 태우고 찢는 소리는 과격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서 바인은 이제 블링크와 체이닝 대신 에 가볍게 혼연의 지팡이에 붕괴의 힘을 불어넣어 예리한 검날을 2m정도 길이로 뻗쳐올린 다음 반 부분에서 낫처럼 주욱 꺾었다. 뭐 이정도면 좋겠지. 하고 나름대로 납득한 바인은 아주 천천히 걸어나오면서 저 광기로 뒤범벅된 전쟁터와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아름 드리 나무를 바라보다가. 낫을 들어 강하게 휘둘렀다. 부우우웅!! 붕괴의 힘이 가르고 지나간 부위는 옆으로 번져 나가듯 원자결합구조가 붕괴되면서 흩어져 나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형을 비스듬하게 잃어버린 커다란 거목 한그루는 가드드드등 하는 거친 마찰음을 퍼뜨리면서 나뭇잎과 나뭇밥 등을 토해내면서 기울어져 싸움터 한복판 에 있는 운나쁜 여섯 검객들을 깔아서 죽음으로 몰고갔다. 적아를 가리지 않는 죽음이었기 에, 그리고 거대한 나무 한그루가 갑자기 바닥에 처박힌 일이었기에 전투는 소강상태로 들 어갔다. 바인은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염동력으로 몸을 떠올려서 아주 느긋하게 나무 위를 가로질러 싸움터로 걸어들어갔다. 어느새 붕괴의 힘은 사멸의 힘과 섞여서 너울 너울 타오르는 플레어 사이즈가 되어 있었다. 그 광경은 바인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사멸의 힘과 더불어 정말 주변의 공간을 깔끔하게 제압해 버렸고, 싸움터는 침묵으로 깊게 가라앉았다. 바인은 아주 흐릿하게나마 회심의 미소 를 그어올리면서 무심하게 걸어가 아직은 죽지 않은 거목에 사멸의 힘이 깃든 영기의 낫을 꽂아 넣었다. 순간 부스스스 하고 잎사귀가 순식간에 말라들어가면서 바닥에 쏟아졌고, 그것 은 곧 말라비틀어져간 나무를 보는 모든 이들에게 공포를 선사했다. 바인은 그 사이에 주변 을 살폈다. 수가 적의 5분의 1쯤 되어보이는 십여명을 기사들이 경계의 눈초리로 바인을 바 라보고 있었다. 하프 플레이트 메일에 다채로운 머리색깔. 그리고 은근하게 풍겨나오는 기는 적어도 중급 소드 익스퍼트 정도는 된다는 사실을 그에게 주지케 했다. 그리고 상대편들은 아주 간단한 복장이면서도 소속을 명시하는 부분이 없어 대충 보면 용병 집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확실히 기색 자체부터 용병과는 틀렸다. '암살자들인가…… 백주대낮에 허를 찌르는 행동 자체는 제법 대단하지만 그래도 암살이라 는 것은 조용하게 처리하는거야. 하긴 살인멸구하면 아주 조용해지지만.' 바인은 갈라진 두 편을 확인한 즉시 기사들 너머에 존재하는, 두서넛의 기사가 뒤로 빠져 호위하고 있는 호화로운 마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즉시 사멸의 힘이 깃든 낫에서 붕괴 의 힘과 사멸의 힘을 모두 거두었다. 그러자 회색의 영기를 너울너울 피워올리던 낫의 형상 은 사그라들고 혼연의 지팡이의 형색만 남았다. 왼손의 허검은 이미 감춘지 오래여서 그는 지금 보면 아주 노회하고 노련한 느낌의 마법사로만 보였다. 후드를 벗으면 음침한 노인 마 법사에서 아름답지만 퇴폐적인 개성적인 느낌의 마법사로 탈바꿈하지만. "그쪽은 어쌔신들인가……" 바인의 목소리는 아름답고 매끄러운 그것이었지만 사멸의 힘이 은근히 드러나 정말 살아있 는 생명체에게는 위협 그 자체로 다가왔다. 그 탓에 어쌔신이나 기사들이나 가리지 않고 공 포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그래도 어쌔신이 죽음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사멸이라는 것 자 체는 생명의 본능에게 있어 두려움의 대상. 그래서 어쌔신들은 그가 풍기는 위압적인 분위 기에 공포라는 것을 다시 맛보고 있었다. 사멸의 영기가 은근히 흘러나와 순백색의 로브마 저도 회색으로 탁하게 물들이는 것 같았다. "슬라이스Slice. 필드 배리어Field Barrier." 슬라이스 마법이 구현되면서 순간 예기銳氣의 은색 선이 요란하게 구간 장벽처럼 퍼져나와 어쌔신들에게로 좁혀들었다. 순간 어쌔신들은 급하게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머뭇거리던 이들이나 외곽의 어쌔신 십여명은 처참하게 조각나면서 쓰러지는 수밖에 없었다. 뭐 쓰러지는것도 아니고 시체가 되어 널브러지는 것에 불과했지만. 바인은 대응도 빠르게 솟구쳐 오른 사십이 조금 못되는 어쌔신들에게 감탄하면서도 지팡이를 그으면서 마 나를 끌어모아 재배열하며 외쳤다. "임프로브드 라이팅 애로우Improved Lighting Arrow! 플로잉Flowing! 더 체인The Chain!" 개량 라이팅 애로우. 순간 그의 주변에 부우웅 하는 기음이 일어나면서 빛의 사람 팔뚝만한 화살 이십여개가 생기면서 순간 순백색 광류光流로 그 흐름을 바꾸면서 마치 흘러다니듯 쏘 아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체이닝 마법이 다른 방식으로 발휘되면서 연쇄적으로 그 자리 그 대로 다시 이십여개의 광류가 흘러나가듯 다른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사십여 개체의 광 류가 뿜어져 나가다가 방향을 일렁이며 바꾸어 어쌔신들의 심장을 관통시키고, 미간을 뚫고, 전신을 난자하는 모습은 일견 장관이었다. 빛의 화살은 강한 열기를 머금고 있는지 허공중 에 흩뿌려진 피마저 태워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살아남은 어쌔신 몇몇이 빈틈을 발견하고 달려들고 있었는데, 바인은 별로 아 랑곳없이 아직 그 궤적을 남기고 있는 광류를 가볍게 조정하면서 그들의 몸을 모조리 그어 버렸다.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면서. "라이팅 블레이드 컷팅 슬래셔Lighting Blade Cuting Slasher." 그 주문어 한마디로 곧바로 광류는 고착되면서 빛의 검劍이 되어 요란하게 남은 어쌔신들이 부유하는 순간에 몸을 슥슥 긋고나서 다시 광입자가 되어 흩어진 것이다. 바인은 손을 거두 면서 피식 웃었다. 역시 마법이란 무궁무진하여 끝이 없다. 그냥 임프로브드 라이팅 애로우 의 광궤적에 클래스식 마나를 불어넣으면서 강화 고착시킨후 서클식 마법을 클래스 수식으 로 전환시키면서 그어버리자 그것으로 다시 접근전을 위해 달려드는 전사들을 살상하는데 쓰는 주문으로 바뀌어버리지 않는가. 9서클이며 9클래스에 든 이상 이미 반쯤은 마법구현에 서 탈피해서 이런식으로의 변화도 어렵지 않았다. 물론 일반 9서클 마법사라면 어림도 없다. 바인이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후두두둑 하고 수십조각이 난 인간의 사체들이 쏟아지면서 피를 토해냈다. 조각나 떨어진 사체들이 범벅되면서 그로테스크하게 널브러졌고, 피는 바닥을 슬금슬금 기어가거나 흡수되 어 대지를 피로 물들였다. 116. 이제 장내에 남아있는 어쌔신은 없었다. 그러나 길 저 너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듣기 전에도 바인은 아직 숨어있는 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인은 정정당당하고 어렸을 때 머리에서 뇌수가 나도록 쇠망치로 두드려 맞아서 그 나이에도 순진하고 착한 얼간이가 아니었기에 주저없이 그 구역 근처를 전부 오브젝트 셋팅Object Seting 하고 나서 바로 필드Field 계열의 마법을 퍼부어 주었다. 물론 이 마법들은 상당히 고위마법이라서 맨 처음 쓴 마법은 그렇다고 쳐도 후반부 의 두 개는 정말 바인으로써도 정신력 소모가 제법 컸다. 6서클에 속한 마법 두개와 7서클 에 속한 마법을 연달아 사용하는 짓이었으니. "베이컨트 플레인Vacant Plane!" 먼저 6서클 마법 베이컨트가 사용됨에 따라 중력장과 작용하는 힘에 의해 숨어있는 구간은 놀랍게도 진공眞空 상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공기가 쭈우욱 밀려 나가면서 중력은 그대로 놓아 두면서 호흡에는 치명적인 방해를 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력은 그대로고 공기는 없 다. 그래서 그들은 점점 옅어져서 밀려나오는 공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빠져나오기 위해 뛰 려 했고, 그 탓에 공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순환하던 공기 탓에 폐에 남아있던 소량의 공 기까지 모두 빠져나가버렸다. 혈액순환이 가속되면서 코피가 터지고 고막이 터지는 등 피가 쭈욱 빠져나오기 시작하자 그 야말로 처참하게 피를 쏟아내면서 납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신체 기관이 괴사하면서 점점 살아남을 확률은 뚝뚝 떨어져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숨을 기어이 참으면서 중 력마법을 사용하는 몇몇 마법사들이 기어나오는 바람에 공기를 붙잡아 당기게 되고 가볍게 디스펠을 몇번 사용하는 마법사들 탓에 공기는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인은 7서클 마법을 한방 갈겨주면서 싸늘하게 미소지었다. "그래비테이셔널 웨이브Gravitational wave!" 중력파重力波! 순간 울렁이면서 중력 자체가 파동치면서 그들의 몸을 뒤흔들었다. 그냥 그 정도였다면 모를까 중력파의 범위 내에서 일렁이며 파도처럼 몰려갔다가 반사하며 다시 중 앙으로 몰려들면서 천천히 공간까지 불안정하게 뒤흔드는 것이 아닌가! 간신히 포스 필드 Force Field. 5서클에서도 고급인 역장결계를 친 마법사들은 살아남을수 있었으나 5서클에 속하는 포스 필드는 그다지 강하지 않아서 공간까지 뒤흔들리는데 불안정해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8서클의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라면 저급 운석 소환술(운석 소환자체가 엄청난 고급 마법이지만)에 속하는 미티어 샤워Meteor Shower도 여러발 막아낼수 있고 그 범위가 넓어 져도 약해지지 않는 ― 5서클의 포스 필드는 범위가 넓어지면 방어력이 약해진다. ― 강력 한 마법이기에 중력마법이나 공간마법이라도 막을수 있었다. 그러나 바인은 아무리 포스 필 드라도 결코 이 마법을 막아낼수 없음을 확신했다. 7서클에서도 8서클에 속하는 메일스트림 과 비견될 만큼 강력해서 거의 궁극마법으로 취급되는 마법을 말이다. "그래비테이셔널 콜랍스Gravitational Collapse! 중력붕괴! 천체가 중력 이상으로 수축되어 들어가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었지만 그것을 소형 으로 구현해내는 마법이어서 웬만한 마법사라도 막아내려면 고생좀 해야 할 것이었다. 어쨌 뜬 거의 공간에 금을 가게 만드는 마법이었기에 7서클에서도 필드 계열의 단발 마법으로는 손에 꼽아주는 마법이었다. 그래서 포스 필드마저도 힘없이 붕괴되어 버리고, 마법사들은 공 간과 함께 육체가 붕괴되면서 순식간에 피떡이 되어버렸다. 물론 그 범위내에 있던 모든 자 연물들이 박살나버렸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바인으로써는 저곳에도 6서클 이상의 마법을 쓸수 있는 마법사들이 있는 이상 화염마법보다 는 차라리 단발적으로 간단하게 물질까지 붕괴시킬수 있는 이런 중력계열 마법이 더 편했 다. 그리고 지금은 골렘 따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니까 진공상태를 만드는것도 아주 좋은 수법이어서 이 스펠들을 캐스팅 한 것이다. 메모라이즈 해둔 고급마법중에서도 바인이 상당 히 쓸만하다고 인정한 스펠들이었다. 9서클을 마스터해서 6서클 마법중에서도 정말 고위에 속하는 몇 개 정도만 빼면 그 이하 수 준의 것들은 다 메모라이즈 하지 않아도 남발할수 있는 ― 정신력 소모가 크기는 하지만 ― 것들 뿐이었기에 그가 메모라이즈 할수 있는 대로 고위마법중 중력계열이나 대량학살에 쓸 만한 것들을 메모라이즈 했기에 별로 어렵잖게 쓸수 있었다. 바인에게 있어 방어마법이란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사실 5서클의 포스 필드도 여러겹 중첩시키면서 더블 스펠을 사용하 고 클래스식 마력도 더해주면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보다 더 강력한 방어벽을 칠수 있었기에 역시 방어마법이란 무소용이었다. 뭐 나중에 필요하다면 메모라이즈 해두는것도 나쁘지 않 겠지만…… 드래곤들은 혼자 살지만 정보는 공유하곤 한다. 그리고 고룡인 미뉴엘이라면 사실 정보 공 유 할것도 없이 집단무의식을 형성한 세계의 뿌리로 향해서 여러 가지들을 참고하면서 소일 거리로 서클 마법에 자신이 만든 마법들을 추가하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 일에 역시 심심해서 레어에서 괴성을 토해내는 드래곤들을 끌어들여 이래저래 마법서도 한 번 써 서 배포한다음 인세에 어떤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피바람도 일으켜 보고 ― 하나 의 주인없는 유명 무공비급이 얼마나 많은 피를 뿌리게 하는지 생각해 보면 알수 있는 점이 다. ― 해서 여러 가지 지식들이 축적되어 있었기에 사실 인간들의 마법길드에 배포되어 있 는 서클 마법보다 가짓수가 2.5배 정도는 되었다. 드래곤들 사이에서도 가끔 은거하고 있는 고위 마법사로 위장하고 길드에서 이래저래 마법 서들도 훔쳐 보고 해서 드래곤들도 나름대로의 서클 마법식과 그것을 클래스식으로 옮기고 또 서클식으로 불가능한 마나사이즈의 마법을 클래스식으로 ― 인간들이 클래스식을 익혀도 마법진이 없으면 불가능한 ― 창조했기에 서클식보다는 클래스식 마법이 가짓수가 더 많았 다. 클래스식은 메모라이즈가 필요 없었지만 인간들이 익히면 드래곤 하트같은 마나 집결체 가 없어서, 그리고 그정도의 양을 끌어들이고도 육체 붕괴가 되지 않을 부위가 없어서 의식 과 무의식 사이에 마나를 가두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클식이나 클래스식이나 인간들로써는 오히려 서클식이 더 나았다. 그리고 클래스식 자체가 인간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아서 ― 알 려진 차원도 있지만. ― 바인은 실상 같은 레벨의 마법사와 싸워도 정신력도 배 이상 월등 해서 적어도 3배 이상 더 많은 가짓수의 마법을 난사할수 있었다. 사실 드래곤들은 워낙 의식과 무의식이 커서 별 깨달음 없이도 9서클 이상을 사용할수 있 다. 물론 웜급 이상이 아니라면 9서클 이상 마법을 난사하는건 힘들었다. 어차피 대동할수 있는 마나 사이즈 자체가 턱없이 달라서 드래곤들이 쓰는 서클마법과 클래스 마법은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들이 쓸수 있는 마법범위나 위력보다 월등히 차이난다. 왜 드래곤 슬레이어 들이 위대하기 그지없는지 다들 알수 있겠는가? 사실상 막 성룡이 된 드래곤이라도 공부만 열심히 했다면 8서클 마법을 난사하는것도 어렵지 않고 ― 뇌의 개방량 차이다. ― 같은 성 룡이라도 골드 드래곤을 잡을수는 없었다. 드래곤들도 재능차가 있기에 단지 클래스식의 마 나량과 브레스의 강도, 그리고 육신의 강인함만 달라질뿐 마법적 깨달음이 달라지면 해츨링 도 성룡을 밟아버릴수 있었다. 물론 나이차가 크면 클수록 힘들어지겠지만. 사실 해츨링이 9 급 레벨을 돌파해서 리버스를 겪으면 엄청나게 육신이 성장해 버리기에 육신의 성장도 그렇 게 큰 의미는 없었다. 드래곤들은 메모라이즈도 필요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래서 종족차이는 너무 크다. 인간들은 숫자와 성격차로 대륙에서 가장 강성하다고 하지 사실 능력비만 따져도 엘프와 드워프에게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었다. 드워프들은 마나를 다루지 않고 기 능력자도 한정되어 있지만 사실 개체능력만 따지면 소드 익스퍼트 여럿이 모여도 드워프 백개체를 이겨낼수 없다. 그들은 화약기술에 노움까지 함께하고 있었 기에 과학기술만 제대로 인간식으로 사회를 이루며 발전시켰어도 인간들 쓸어버리는건 일도 아니었다. 드래곤과 신들이 이리저리 제어를 잘 해두어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한 종족 제노 사이드 당하는건 일도 아닌 세상이 바로 이곳이었다. 어쨌든 간에 바인은 가볍게 지팡이를 바닥에 꽂아 고정시킨 다음 아주 느긋하게 수인을 맺 으면서 짤막하게 캐스팅했다. 향香[Incense]이라도 피워야 할 정도로 비참하게, 많은 한을 남기고 죽어나간 사체들 조각을 향해 손을 뻗으며 고위마법이라면 고위마법인 마법을 사용 했다. 마법의 요소중 수인手印과 주문呪文은 충족했지만 촉매觸媒도 없이 또 고위마법을 사 용한 것이다. 서클식과 클래스식이 전부 다 9급에 이르렀기에 저런 7서클 마법도 문제없이 남발할수 있었지 아니었다면 촉매 없이는 저런 마법을 사용할수는 없었다. "인센디어리 범Incendiary Bomb! 스피어Sphere!" 말하자면 소이탄을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그런데 고작(?) 소이탄 한발 사용하는 마법으로 7 서클에 들겠는가? 아니었다. 바인이 손을 그으면서 마법을 사용함과 동시에 마나파동이 일 어나면서 산소를 꽉꽉 억눌러서 놀라운 고압의 공기 덩어리를 만든 것이다. 거기에 불꽃을 붙여버리자 초 고밀도 파이어 볼이나 다름이 없어서 인센디어리 범에서도 폭발력이 가장 뛰 어난 스피어를 실어주자 점점 불길의 색이 스펙트럼 상에서 노란색으로 물들어가는게 아닌 가. 노란 불꽃이 얼마나 뜨거운지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구는 점점 색이 변해 서 푸른색으로 물들어갔다. 그러나 그정도로 뜨겁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음에도 화염탄은 이 상하게도 주변에는 별로 열기를 미치지 않았다. 불꽃구의 숫자는 총 7개. 그런데 자세히 보 면 불길의 광채가 전부 다 틀려 핏빛의 화염덩어리, 주홍빛의 화염 덩어리, 노란색의 화염 덩어리…… 전부 다 스펙트럼 7광을 차지하는 색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닌가. 푸른색까지는 몰라도 7서클인데 저정도로 흰색의 불꽃이 발생할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푸른색 불꽃 다음부터는 전부 다 마력의 변형으로 그렇게 색깔이 변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실제로 푸른색 불꽃까지만 하더라도 이 근처 숲을 홀라당 태우는게 어렵지 않았다. 바 인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천천히 다른 주문을 캐스팅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라이트Light 주문을 발휘한다음 그 빛을 천천히 고착시키면서 빠르게 다시 연속으로 라이트 주문을 중첩시켜버리는게 아닌가. 순백광이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 바인은 화염탄들을 유도 해 시체구덩이로 날려보내면서 빠르게 순백광으로 이글거리며 망막도 태워버릴 정도로 강해 진 빛들을 전부 유도해서 캐스팅을 완료지었다. "프리즈매틱 스피어Prismatic Sphere!" 8서클의 방어마법이었다. 분광 스펙트럼이 아니기는 했지만 마력상으로 한겹 한겹 모두 각 기 상성에 맞거나 파해하기에 쉬운 마법으로 붕괴시키지 않으면 엄청난 물리력이 필요한 강 력하기 그지없는 방어마법을 그는 아낌없이 사용해 시체들 주변에 쳐서 화염구들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대지에 포함된 원소들을 액화液化 시켜 버리기까지 하고 있는 것을 차단한 것이다. 그러나 어지간히 폭발이 대단한지 넓게 분산시킨 7채분광막인 프리즈매틱 스피어도 두겹이나 파괴되어 버렸다.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보다는 차라리 라이트 마법을 이용해서 촉 매를 충족시킨 프리즈매틱 스피어가 정신력소모가 훨씬 덜해서 바인은 경제적으로 처리한 것이었다. 물론 혼연의 지팡이에 마력을 결집시킨 후 제어했다면 훨씬 쉬워졌겠지만 미처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땅을 뒤흔드는 굉음이 요란하게 칠연속으로 터지면서 충격파를 쏟아냈지만 진공충격파나 중 력파 정도로는 해제되지 않는 프리즈매틱 스피어는 그것들을 기어이 전부 다 차단해버렸고, 곧 바인의 의지에 따라 프리즈매틱 스피어가 사라지자 시꺼먼 연기가 하늘로 쏴아 하고 솟 구쳐 올라갔다. 그러나 개중 넓게 퍼지려 드는것들이 있어서 바인은 시동어도 없이 3서클의 거스트 오브 윈드Gust Of Wind와 위로 빨려올라가는 성질을 지닌 윈드 월Wind Wall을 이 용해서 대부분 다 재와 연기를 날려보내버렸다. "끝났나……?" 거의 남지 않은, 이제 십여명이 채 안되어보이는 기사들은 경악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 다. 바인의 목소리는 다시금 말하지만 미성美聲이다. 그래서 듣기에도 매우 젊은 이의 목소 리로 들리는데 그런 젊은니가 저런 강력하기 그지없는 마법을 짧디 짧은 캐스팅 타임으로 난사해버리는 모습은 일반적 상식을 지닌 이들에게 있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참상이다. 인간은 이기심 많은 동물이라 일단 리버스나 리라이프 따위를 잘 알고 있는 바, 늙은 마스 터가 젊어져서 세상에 나왔다고 억지를 부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이것이 얼마나 억지스러운 생각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들이 이렇 게 약해 빠져서 어쌔신들에게 학살당하고 있을 때 저런 젊은 강자가 튀어나와 모조리 연계 마법으로 박살내 버리는 것도 간신히 감내할수 있었다. 그러자 느껴지는 감정은 경이였다. 약관弱冠이나 되어보이는 젊은이가 7서클과 8서클 마법을 자유자재로 운용하고 잘은 모르지 만 필요하다고 알려진 촉매도 생략하며 잘도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은 경외감을 가져다 주었 다. 그리고 그는 생명의 은인(나중에 어떤 험한 꼴을 당하게 할지는 모르지만.)이었기에 저 자세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고상하고 우아하고 차분하며 부드러운 분위기로 영지내의 수많은 남자들을 욕망에 허덕이게(?) 만들었던 그녀도 원래 성격이라면 모두에게 친절했겠으나 지금의 사태 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가 그 공포심을 쫓아내준 젊은 마법사가 등장하자 당연히 그에게 호 감을 품고 말았다. 뭐 만약 평상시였다면 그녀의 친위대를 자처하는 바보들에게 밀려서 인 사는커녕 사상자(?)만 잔뜩 내게 했을 것이다. 만약 영지에서 바인을 만나게 되었을 경우라 면 그녀를 바라보며 욕망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얼간이들이 바인의 손에 학살되었을테니 어 쩌면 냉혹의 사신의 출두를 조금 늦추는 좋은 사건이기도 했다.(죽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 다가는 욕밖에 더 먹겠냐마는.) 바인으로써는 조금 입맛이 썼다. 사실 지금 써보고 싶은 마법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그래도 그렇지 강력한 마법연계를 쳐서 뿜었다고 해도 저렇게 쉽게 작살날줄은 몰랐다. 그래도 지 금 그가 사용한 마법 대부분이 마력 자체를 상당히 억제하고 축소한 것들이었는데 이건 너 무 간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검술과 마법의 차이는 위력 뿐이지 어렵기는 둘다 마찬 가지다. 물론 검술도 신화경에 이르면 9서클급 마법같은 파괴력을 낼수 있었지만 현경에서 는 8서클의 미티어 샤워 같은 경우도 막아내기 힘들었다. 뭐 영같은 경우라면 기폭풍으로 전부 궤도를 다 바꿔버릴수 있겠지만 ― 대기를 뚫고 날아 오는 것을 염동력을 이용해 텔레포트 시켜버릴수도 있었다. ― 그렇지 않은 이들은 맞고 죽 는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실 운석이 쏟아져 내려오면서 전달하는 열기만 하더라도 어지간해 서는 구워져 죽을 수밖에 없는 강대한 것이었다. 7서클 정도 마법만 풀기동해도 행성 평균 기온 올리는건 일도 아니다. 어쨌든간에 지금 이 사건은 의외로 냉혹의 사신이라는 마법사 의 존재를 대륙에 부각 시키는 것을 늦추는 일로 보이지만, 글쎄. 과연 그렇게 될까? 사실 냉혹의 사신이라는 존재의 부각도 이 사건에서 오히려 더 진도가 빨라지니까…… 끼이이익― 마차의 문이 열렸다. 기사로 보이는 이들은 움찔 하면서 마차의 문으로 다가갔다. "아가씨. 나오시면 안됩니다." "위험은 없어졌으니까요. 그리고 은인께 감사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한 눈꼬리가 날카롭게 보이는 이가 그렇게 말하며 마차안의 그녀를 만류했지만 본래 품행과 성정인 부드럽고 조용한 포용에 가까운 느낌을 주는 성격이 다시 공포의 지배에서 벗어나 다시 발휘되기 시작한 이상 기사는 절대 그녀를 저지할수 없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어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논리적(?)으로 입을 열자 기사는 본래 힘없는 칼잡이인것도 서 러운데 이런 부분에서 두뇌의 사용은 멍청이 소리 들어도 별로 할말 없을 정도였기에 그저 벌레씹은 얼굴을 간신히 감추면서 물러났다. 사박. 아주 가볍게 자그한 발이 대지를 디뎠다. 그리고 바인의 눈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그 감정은 결코 아름다움에 놀라는 것이 아니었다. 후드의 어둠 속에 감추어진 바인의 눈이 조 금씩 커져가면서 경악과 놀라움으로 가득찼다. 그것은 그리움으로 범벅되어 있어서 그의 감 정의 격동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눈이 마음의 창이라지만 평소에 워낙 무심함과 허무 함만을 드러냈던 그의 눈은 지금 거대한 동요와 생동감으로 가득차오르고 있었다. 심장은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바인은 몰랐다. 자신의 이야기가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미리 깨닫고 있어야 했 다. 어쩌면 그는 환상덩어리에 다름이 아닌 이 세상에 묻혀버려서 나름대로 게임하는 기분 으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체 왜 지금 하필이면 귀족가의 여식이 지금 이곳을 지나갔 겠는가. 그리고 왜 하필이면 그 귀족가의 여식이. 그 여자가 자신이 아는, 그 누군가와 너무 나도 닮았겠는가! 그리고 이 만남의 결과가 왜 비극적으로 끝났겠는가! 게임의 시나리오처 럼, 바인은 꼭두각시가 되어 그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그는 기계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완성된 컴퓨터 게임이라는 것의 플레이어Player가 아닌, 캐릭터에 불과했다. 117. 차아앙―! 유리엘은 손에서 검을 놓칠뻔 했다. 그러나 에고Ego 이면서 그래도 나름대로 유리엘이 마 음에 든 듯 한. 루인 블레이드의 자아는 진동을 통해 강력하기 그지없는 일격을 막아주었다. 빠르게 휘둘러 자르는 스타일의 강한, 친다는 느낌이 더 강한 서방식 검의 검격劍擊에 가까 운 베기에서 갑자기 전환하면서 오히려 더 강한 대검大劍류를 다루듯 강하게 반대쪽 손에 기를 흘리면서 세검의 반대 검날을(!) 쳐서 힘을 가하고 격돌의 순간에 힐트를 꽉 잡아 임 팩트를 주어서충격을 그대로 고스란히 퍼뜨려 전신에 산재하도록 만드는 검술. 너무나도 변 칙적이면서도 변화무쌍하고 또 변할때마다 그 검경이나 그 검술의 극에 이르른 모습을 보여 주는 리안이라는 남자는 정말 가혹하게 검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으읏……" "고작 이정도로 쓰러질텐가. 레서 엘프?" "내…… 이름은……" 유리엘은 이를 악물면서 일어났다. 아직 바스타드 계열에 속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이 아름 다운 보랏빛의 검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에고가 있는 이 검은 빠르게 유리엘이 적응토록 배려해 주고 있었다. 말도 없고 영성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쩐지 백치미 있는 소녀가 생각 나는 검이었다. 바스타드지만 유엽형의 느낌도 있고 날씬한데다가 얇고 아름다운 검이어서 도저히 남성적 스타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저 남자는 세검細劍을 쥐고 휘두르는데 갑자기 그 세검 자체가 연검軟劍으로 변하기도 하고 대검처럼 쓰기도 하면서 갑자기 길이와 넓이가 바뀌는 바람에 정말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가능시간내에 유리엘의 경험을 최고조로 끌어올 려 주려는 듯 배려는 세심했으나 당하는 유리엘로써는 알 리가 없었다. 다만 유스는 정말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리안의 검로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레서 엘프 따위가 아니야!!" 드디어 뚜껑이 열려버린 듯 유리엘은 분기탱천했지만 여전히 매끄러운 검로로, 이성적인 흥 분을 검에 실어서 휘둘렀고, 이글이글 불타는 집념어린 눈동자는 바인의 그것에는 결코 비 할바가 아니었지만 상당히 예리해서 리안도 그 순간은 아주 흐릿하게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 다. 그러나 그 미소는 유리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리엘을 통해 어느 누군가를 투영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의 미소였다. 과거를 떠올리며 짓는 은은한 그런 미소. 도저히 광기로 점철된 평소의 그는 떠올리지 못할만큼 부드러운 미소였다. 그래서 그만큼 흐릿하기도 했다. '나로써는 도저히…… 만약 저분이 나에게 죽이겠다고 작정하고 검을 휘두른 즉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하긴. 저분의 일검을 받아낼 자가 세상에 별로 없겠지만.' "핫!" 유리엘은 짧은 기합을 넣으면서 갑자기 찌르던 검을 진각을 통해 탄승彈昇 시켜 정말 자로 잰듯하면서도 부드럽고 매끄럽기 그지없어 선으로 고심해서 그려낸듯한 아름다운 궤도로 보 랏빛에 은은하게 떠오른 백색광이 검극에 묻어나게 기를 불어넣어 바람을 절단해버렸다. 그 광경에 순간 나무에 기대서 있던 유스마저 벌떡 일어날정도로 아름답고 깔끔한 궤도여서 대 체 유리엘이 이 짧은 기간에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루었는지 알게 해주었다. 이미 은빛 검기를 뿜어낼수 있는 유리엘은 리안이라는 존재가 주변의 기운을 빨아들여 순수 한 기를 몸에 불어넣고 그녀의 뇌리에 이채로운 '혈도'라는 것과 여러 가지 동방의 점혈이 나 가벼운 의료. 그리고 그 혈도를 통해 쓸수 있는 한두가지 검술들을 전해주고 나서 심법 하 나를 전달해 주었기에 급속하게 기력을 단전에 모으고 주천법을 시작해서 이미 1갑자에 이 르르는 공력을 발할수 있었다. 아름다운 검궤는 리안으로써도 참 유한자가 이런 발전을 이뤘다고 감탄하리만치 대단해서 유리엘이 기특하기 그지없었지만 별로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이것보다 훨씬 빠 른 성취를 보이는 괴물들이 널린 세상에서 그녀는 아직 약자였다. 그녀의 예술같은 대각선 으로 그어 올리는 매끄러운 베기는 가벼운 탄彈에 밀려나버렸다. 리안은 아주 퉁기듯 가볍 게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모든 신체 기관을 정말 호흡 간격이나 근육 섬유 하나의 움직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적인, 유스가 봐도 도저히 짐작이 안되는 검경을 뿜어내서 그녀의 날카로운 베기를 차단해버리고 밀어냈다. "하아…… 하아……" 유리엘로써도 상당히 무리수인 방금의 즉쾌섬은 오히려 봉인계에 있던. 모든 육체적과 내기 적 운용을 통한 검경을 합치하는데 주요점을 둔 조선이라는 나라의 검무. 황창랑무의 일부 를 떼어낸 듯 매끄러웠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기력의 소모가 너무나도 큰 살검이어서 조화를 깨닫지 못한 그녀로써는 터무니없이 힘든 검술이었다. 그래도 어느정도 동방검과 서방검에 대한 이해를 하나의 교본으로 꿰어냈으니 그 속도는 같은 급수의 검사와 도 비교가 되지않을만큼 빠를 것이다. 물론 소드마스터가 되려면 깨달음을 얻어야 하겠기에 신축성 있는 사고가 모자란 엘프에게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인간적인 부분을 많이 깨 우친 상황이라 늦지 않게 검강을 터득할수 있을 것이었다. "섬閃!" 리안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띄우면서 진각을 밟은다음 극쾌의 일섬을 가했다. 그 극한의 빠 름이 실린 찌르기는 장검의 가드와 장검의 힐트를 지닌 특이한 날의 반투명한 은색과 흑색 이 섞인 다크 디옵사이드Dark Diopside. 검은 투휘석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신검에 속하는 마검과 합쳐져서 웬만한 검사라도 막으려 들다가 죽게 될만큼 빠르고 강력했다. 그러나 유 리엘은 이미 한 번 당해본 기술이라 그 일섬을 막아내기 위해서 자신의 기량을 총 동원하는 강수에는 동귀어진의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같이 찔러 나갔다. 유리엘 은 순간 리안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진震! 이어서 타打!" 찔러나가는 세검의 날이 묘하게 파동쳤다. 일도류와 이도류를 모두 사용하고 세상 모든 무 기를 전부 다 쓸수 있는, 그것도 극에 가깝게 쓸수 있고 신급 존재로써의 사용방식도 모두 터득하고 있는 강자인 리안으로써는 별로 어렵지 않은 기술이었지만 정말 빠르게 찔러나가 는 검에서 저렇게 깔끔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유리엘로써는 하늘같은 경지였다. 묘하게 웅웅거리는 세검의 날은 이상하게 꺾이면서 유리엘의 찌르기를 튕겨내버렸다. 차아아앙! 아직 놓치는 않았지만 거의 높게 솟구쳐 오른 그녀의 검은 그대로 충격을 말 그대로 진동시 켜서 팔에 전달했고, 팔이 저릿저릿 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리안의 검이 진동해서 튕겨올 려낸 후 바로 그는 몸을 회전시켜 아래서 다시한번 강하게 유리엘의 검을 임팩트를 걸어 후 려 쳤고, 순간 검은 하늘로 높게 튕겨 올라버렸다. 이건 저항 불가다. 어떤 검사라도 이 상 황에 몰린 이상 검을 놓지 않을수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그어져 올라간 리안의 검이 하늘 에서 뚝 멎었다. 그리고 곧바로 주우욱, 그어져 내렸다. 너무나도 선명한 반투명한 은흑색의 궤도를 예술적으로 허공에 못박으며. "참斬!" "아악!" 자신도 모르게 그 거대하고 날카로운 서슬에 질려버린 그녀는 입에서 짤막한 비명을 터뜨리 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다. 유스마저도 그 서슬에 몸을 움찔거리며 검을 뽑 으려 들었을 정도였는데 하물며. 그녀는 갑자기 차가운 금속이 자신의 볼을 툭 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눈을 뜬 그녀를 싸늘한 미소를 지은 리안이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래서 오 기를 느낀 그녀는 화를 실어서 리안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눈을 내리깔 수밖에 없 었다. 냉엄함 속에 담겨진 슬픈 허무를 본 이상 그 빛을 감히 감당할수 없었던 것이다. "아직 한참 멀었군. 네 기량이라도 다른손에서 기를 분화하여 후려 갈기던가 퇴법이나 각법 으로 올려 차거나 다리를 걸었다면 조금이라도 검궤를 바꾸고 동귀어진이나마 가능할수 있 었을텐데." 리안의 말에 그녀는 한숨을 길게 토해내면서 주저앉았다. 긴장과 긴장이 겹치면서 정말 터 무니없는 떨림을 전신에 가져다 주었다. 스르릉 하고 그의 다크 디옵사이드가 지나가는 바 람에 몸을 내맞기며 얇은 칼날을 진동시켰다. 우웅 하고 떨린 검은 곧바로 그의 손에서 펼 쳐진 어둠에 먹혀 아공간으로 사라졌다. 그는 몸을 돌리면서 한마디를 남겼다. "오늘의 수업은 이걸로 끝이다. 나머지는 유스에게 배워라." 목소리는 묘하게도 살짝 떨리고 있었다. 리안은 천천히 장신의 몸을 움직여서, 물 흘러가듯 걸어가 사라져버렸고. 곧 유스와 유리엘의 논검은 시작됐다. 그 논검이 끝났을 무렵은 엘프 로드가 만들어준 이 공간에서도 황혼이 질 무렵이었다. 기의 흐름이나 마나의 흐름도 존재 하는 곳이었기에 검술이나 마법이나 전부 가능한 장소. 그러나 공간을 겹으로 고착시킨 장 소라서 이곳 내부에서 9서클 이상의 순수 에너지 폭발이 아니면 바깥에 충격을 줄수도 없었 고 소리나 어떤 힘의 전달도 소용이 없는 폐쇄적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에서 유리엘은 지금 까지 검을 계속 배워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레펠테온은 어디에 있을까? "수고했다." 레펠테온은 마법서를 덮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순금을 올올히 뽑아 낸 듯한 금발. 리 안의 찬란한 신성이 담긴 금발과 비교해보면 칙칙하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금발에 순진무구 함과 깨끗함을 가득 담은. 도저히 엘리멘트 엘프라고는 믿기지 않는 녹안의 아름다움. 그리 고 조금 귀엽다는 느낌이 더 강한 얼굴에 아주 진지한 자세로 그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던 그녀는 입가에 아주 생동감 있는 미소를 걸고 있었다. 엘프의 미소라기보다는 천진한 인간 의 소녀가 지을법한 미소. '하긴, 그랬기에 유리엘과도 친해질수 있었겠지. ……외향적인 엘프라니.' 레펠테온은 가볍게 눈을 감고 속으로 한숨을 토해냈다. 다행이지 않은 바는 아니었으나 그 래도 이건 조금 너무했다. 초월의 일족으로 마나에 조금 더 친밀하여 6서클 마스터인 미성 년 엘프 라샤니엘은 외향적이고 쾌활한 성격을 지닌 특이한(?) 엘프였다. 세상 단맛쓴맛 다 본 레펠테온으로써는 충분히 사회시스템에서 발생하는 어두움이 철철 넘치치는 않더라도 충 분히 존재하는 이 엘프의 숲에서도 그 어두움에 전혀 물들지 않은 이 엘프가 이해되지 않았 다. 뭐 사실상 이정도 엘프가 탄생되었다면 근처 혈육이나 그녀의 이 순진무구함에 반한 다 른 엘프들이 오염(?)의 가능성이 있는 어둠의 산물(?)들을 철저히 막아줬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어쩌면 그녀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깨끗함과 화려함을 유지할수 있는 존재일 지도 모르지만 레펠테온의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접하지 못해서 깨끗한, 다시말해 너무 깨끗 해서 지문이 찍힐까 두려운, 깨어질까 두려운 얇은 유리 세공품에 가깝지 않을까 했다. 방금 레펠테온이 가르친 것들은 마법의 보조적 활용이었다. 이 소녀는 지식은 있지만 지혜 는 없는 전형적이고 어리지만 별로 소심하지는 않은.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주변을 살필수 있을 만큼은 되었기에 뭐 위험한 일 당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조금 그렇다. 엘프 로드와 용신은 무슨생각인지 난데없이 초월의 엘프족이 모인 곳에 가서 이 소녀를 뽑 아서 레펠테온에게 던져주고(?) 가르치라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물론 마법을 가르치고 실 전에 쓸만한 방식과 실전에서 직접적으로 때려 부수는 무식하고 단편사고적인 마법활용이 아닌 여러갖 보조적이면서도 탁월한 마법사용을 가르친다면 리안이 훨씬 더 잘 가르치겠지 만 리안은 유리엘을 가르치겠다고 가버렸다. 그래서 레펠테온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 던 수많은 전투에서 얻고 다른 이들에게서 배운 지식들을 토대로 완성한 전투마법활용을 한 권의 책으로 꿰어서 그녀에게 가르치고 있었던 것이다. 라샤니엘은 정령도 다룰수 있고 마력도 강력하고 상당한 마법사였지만 아무래도 실전 경험 이 모자라서 임프로브드 일루젼Improved Illusion의 스크롤Scroll을 수십다발 리안에게서 받 았다. 물론 그냥 있는걸 받은게 아니라. 리안이 마력을 끌어모아 가볍게 한마디. '창조'라고 외쳤을 뿐이었지만 순식간에 이런 강력하기 그지없는 주문이 고작 마법사의 전투 수련용으 로 쓰기 위해 창조된 것이다. 이것 하나 하나에 웬만한 크기의 보석 하나 정도는 받을수 있 을 정도인데. 임프로브드 일루젼은 그만큼 강력하기 그지없어서 브로큰 마인드Broken Mind 나 바인이 사용하는 절망이나 아직 쓰지 않은 세뇌전용의. 기존의 소울 크랙보다 더 강력하 고 안전한 디스퍼즈 스피릿Disperse Spirit과 비견될만한 것이었다. 어쨌든 그 강력한 힘에 제법 마법에 대해서 아는 모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유스 역시 이 런 말도 안되는 짓을 보고서야 비로소 '과연 용들의 신이라 불릴만 하구나'하고 인정했을 정 도였다. 극악한 마나사이즈의 힘과 기, 그리고 에테르까지 끌어당겨서 물질을 창조하고 스크 롤을 만든 것이다. 어쨌든 이미지 트레이닝 치고는 값도 비싸고 과격했지만 리안은 아랑곳 하지않고 얇은 은으로 만든 종이에 미스릴을 입힌 스크롤을 수천다발 창조해도 전혀 힘의 달림을 느끼지 않을 정도이기에 이정도는 별것도 아니었다. 미뉴엘도 할수 있는 일이다. 물 론 이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현해서 스크롤을 만드려면 조금 무리해야 하지만. "자, 이론은 전수 했으니까 다시 해보자. 이젠 익숙해 졌겠지?" "네. 스승님." 꼬박꼬박 스승님이라는 말을 붙이지만 레펠테온은 부담스러웠다. 뭐 10년 내로 자신을 능가 할 마법사에게 스승님이라는 말을 듣는것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는 미스릴로 마나 유동과 그 스트림을 제어하도록 만들어진 은 스크롤을 들어 읽어내려가자 스크롤에서 은은 한 금빛이 흐르면서 주변의 마나를 통제하자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그녀가 겪어야할 상황을 강화된 일루젼 마법으로 이미테이션 플레인 마법의 일종을 발현해서 그녀를 오브젝트로 지 정했다. 마나가 재배열되고, 법칙은 깨졌다. "임프로브드 일루젼!" 순간 라샤니엘은 저항의지조차 없이 받아들였기에 동공이 풀리면서 털썩 하고 쓰러졌고, 레 펠테온은 그런 그녀를 침대 위에 옮겨놓고 천천히 그녀가 들여다 보고 있는 광경과 자신의 의식을 연동시켰다. 그녀는 상당히 훌륭하게 마법과 정령술을 응용해서 힘을 보태고, 증폭시 키면서 그녀 나름대로의 마학적 메커니즘을 포함시킨 전투로 융화시키고 있었다. 물론 레펠 테온이 가르쳐 준것들도 좋았지만 그녀가 스스로 생각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방식도 레펠테 온으로써는 가르친 보람이 있어 상당히 흡족했다. "흐음. 배컴 캐논Baccum Cannon에 바람의 정령을 이용하면 거의 피어싱 마법을 남발하는 것과 별로 다를바 없는 위력이 나오는군. 진공검이야 배컴 배리어로 차단하거나 윈드 월로 막으면 그만이지만…… 마법사와 싸우는건 아니니까. 나중에는 마법사들과의 실전 대련도 필요하겠군. 일단 메모하는것도 나쁘지 않겠어." 레펠테온은 개방적이고 음습한 면은 없는 선하고(?) 합리적인(?) 마법사였기에 라샤니엘에 게 아낌없이 가르치고 그녀가 만든 여러 가지 전투법들을 기록해 나갔다. 물론 그는 정령을 쓸수 없었지만 엘리멘탈 계열의 마법을 적당히 융화시켜서 정령들 몇몇에게 대가를 주고 계 약한다면 쓸수 있는 간편하고도 빠른 공격술들이었기에 메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퍼져나가고. 상당히 얌전하게 끝난 교육은 유리엘이 보았을 때 상당히 원통해할만큼 정신적이고 조용한 방식이었다. 118. "……!" 바인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제어할수 없었다. 심장은 벌떡벌떡 뛰면서 목구멍을 두들겨 대는 것처럼 알 수 없는 나른함과 고통을 전신에 선사했다. 의식은 하얗게 비어버리고, 무의식 속, 깊은곳에 봉인했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단지 육체만이 미쳐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기억들마저 미쳐 날뛰고 있다. 그리고 정신력이 강해지면서 억눌렀던 그때의 감정 들이 빠르게 되살아나 전신을 휘저었다. 심장 내벽에 막대를 꽂아넣고 휘저어도 이정도는 고통스럽지 않으리라. 바인은 이를 꽈악 깨물었다. 참아내야 한다. 이 격류를. 이 감정의 격 류를! 너무나도 닮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야. 다른 사람인데 왜? "……크윽." 나지막하게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흘린 신음이었지만 너무나 작아서 아직 산만한 정신상태 인 기사들은 듣지 못했다. 바인은 몸을 간신히 가누면서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자신의 동생. 설연과 저 알 수 없는 귀족가의 영애의 얼굴이 흐릿하게 겹쳐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은 쿵 쾅거리고 있었지만 불현 듯 떠오르는 존재…… '유…… 설…… 영……' "까드드득!" 신체 부위중 아주 단단하기 그지없는 이빨이 맞물리면서 거칠게 긁혔다. 이를 갈아 붙인 바 인은 그 짧은 고통과 억눌린 잇몸에서 전해져 오는 둔한 통감에 간신히 폭주하려 드는 정신 을 억눌러 잡을수 있었다. 괴로웠다…… 그 얼굴과 저 얼굴이 너무나도 닮았다는 사실은 그 에게 있어 괴로움의 원천이며 자신의 무의식속에 잠자고 있는 트라우마. 그 약점을 불러일 으키고 복수를 위해 다잡은 마음. 나인 레벨에 오르기 위해서 얻은 깨달음마저 부서뜨리는 그러한 것일 뿐이었다. 그래서 바인은 스스로 자기암시를 걸면서 최대한 자기안정을 위해 마력을 운용해 몸의 격렬한 통증을 가라앉혔다. "후우…… 후우…… 후우……" 그녀가 아니다. 저 부드럽게 흘러내린 흑발과 귀여워 보이면서도 성숙해 있고 아주 부드럽고 따스하게 걸린 저 미소마저 터무니없는 확률을 넘어서 닮아있다. 동생의 클론이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 로 같은 존재. 하지만 향기와 영혼적인 분위기는 달랐다. 그녀가 상당히 외향적이면서도 조 금 더 저 여성보다 포근하다고 한다면 저 여성은 머리가 너무나도 영리해서 '위험하다'는 느낌마저 든다는 점에서 감히 설연과는 비교할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설연이 오히려 포근하 고 아름답다면 저 여자는 고아한 귀족가의 정화이리라. 하지만 그것을 깨달았기에 금방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사뿐히 발을 내 디디고 바인을 향해 아주 약간의 호의가 섞인 미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에서가 아니었다. 그 녀의 미소에 섞인 조금의, 설연과는 전혀 다른 처세적이고 가식적인 미소가 섞인 그런 미소 는 그에게 있어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저 여성의 눈빛이 달라서 그랬으리라. 설 연이 따스하고 한없는 믿음이 담긴 눈길을 보내주었다면 저 여성의 눈길은 탐색과 경계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덧씌운 호의의 눈빛 내부에 숨겨진 그것은 바인의 날카로운 눈길을 벗 어나지 못했다. 한 레벨만 낮은 마법사였어도 속을뻔 할 정도로 저 여자는 보통의 여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바인은 무심함을 되찾을수 있었다. 자세히 보면 저 여성의 눈은 흑색이 아닌 연한 갈색이라는 것 자체도 그녀와 달랐기 때문인 지도 몰랐다. 바인은 속으로 나지막하게 실소했다. 만약 '원수'가 그녀의 클론이라도 잔뜩 만들어서 자신을 죽이려 든다면 반항도 힘들게 아닌가? 정말 우스울 정도다. 만약 방어벽을 간신히 쳤다 해도 그녀들에게 자신을 단박에 날려버릴만한 폭발물이나 마법무구들을 잔뜩 쥐어주고 격발시켜버리면 살아남을 재간이 없었다. 클론따위야 죽어도 상관 없었지만 본질 의 고결함을 지닌 그녀. 설연을 죽여버린 설영이라는 빌어먹을 존재가 아직 죽지 않았고 자 신을 비웃으며 바라보고 있으리라는 것 자체가 지금 그에게는 생의 버팀대였다. "저희들의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의 이름은 라시에 폰 헬리론드. 헬리론드 가 의 여식입니다. 은인의 이름을 알려주실수 있을까요?" 바인은, 이미 그녀와 설연의 차이를 확실하게 인식한 뒤여서 더 이상 감각체계에 혼란을 일 으키지 않을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무뚝뚝하게 입을 떼었다. 아니, 무뚝뚝하다기 보다는 무 심하고 염세주의적인 면이 강한. 허무가 서린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라시에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너무나도 귀족세상의 그림자에 물들어서 더 이상 깨끗한 정신을 지니지 않은 그녀는 흠칫 놀랐지만 금새 익히고 배운, '가면'으로 자신을 가릴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남 자로 태어났다면 반란이라도 성공시켰을수 있을 것이었으나. 아직 여성보다는 남성 위주의 사회인지라(마법이나 검술이나 아직은 여성들보다 남성들이 더 많이 배우고 익혔다. 배울기 회가 없다고 봐야하나?) 그녀에게 있어 가문을 잇는 것 이상의 성공은 있을리 없었다. "바인…… 바인 워드.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마법사다." 바인의 어투는 무심하기 그지없고 예의라고는 전혀 없었지만 일단 그는 은인이었고 사실 마 법사라는 것이 괴팍한 이들도 많아서 고위마법사들 일수록 광기를 발산하는 미친것들이 많 았다. 레펠테온이나 엘프 종자들은 예외일 것이지만. 원래 마법사들도 의외로 장수하는 직업 이고 돈도 많이 벌지만 이래저래 정신소모가 많고 범위도 넓어서 점점 골수에 광기가 파고 든다. 그래서 그녀로써는 이 바인이라는 마법사의 심기를 거슬렸다가 그가 살심을 품고 발 산하는 마법을 단 하나라도 막을 힘이 없었다. 아니꼽지만 비위에 거슬리지 않기 위해 노력 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 그래서 권력을 눌러버릴수 있는 힘을 포섭하기 위해 그리도 노력하는 것이었던가?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바인이라고 불러도 좋다. 이미 옛 이름은 잊었으니까. 그대는 어떤 일로 습격받고 있었지? 중요한 계약이나 각 국가 사이에서의 일이라도 치르고 있나? 헬리론드 가의 여식. 그대는 유능해 보이는군. 성별을 잘못 타고난 것 같아." 바인은 이미 그녀의 유능하다면 유능하고, 음험하다면 음험할수 있는 재능을 잘 알고 있었 다. 바인의 사람 보는 눈은 이미 인간이 아닌대로 너무나 잘 꿰뚫어 볼수 있었다. 여기에 심 안이 추가된다면 더욱더 좋겠지만 심안은 서클식과 클래스식이 융합되는 열번째 루프에 올 라서야 얻을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인은 아쉬운대로 자신의 눈과 이성적 판단에 만족 할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인은 지혜로웠고 또한 그 지식은 지혜를 뒷받침하고도 남았다. 과연 그런대로 옳아서 그녀는 움찔 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저정도의 어쌔신이 습격할 정도라면 그대는 너무나 중요한 물건을 지니고 있거나 그대 자체가 중요 인물이라는 뜻. 정략결혼쯤 되겠지. 그렇지 않은가. 내전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상황에서 그대와 같은 능력좋고 아름다운 귀족가의 영애라면 충분히 명분있다고 생각 되거나 혈연이 닿은 왕가에 보내는건 나쁘지 않은 일이지. 본인으로써 그렇지 않을지도 모 르지만." 바인은 허공을 올려다 보면서도 무심하기 그지없이 툭툭 내뱉고 있었다. 그로써는 정치 따 위에는 관여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봉인계의 한국도 어지간히 썩었는데 이곳은 어지간하 겠느냐는 투였지만 사실이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는 청운의 꿈 따위는 품고 있지 않았 고 개인으로 국가를 대적할만한 거대한 힘과 또 단신으로 행성 하나를 초토화 시키는 일도 식후 운동거리에 불과한 강력한 존재가 뒤에 서 있었기에 국가 하나와 맞서도 별로 상관없 는 일이었다. 그의 두뇌는 매우 훌륭한 질이었다. 다시말해 그는 천재였다. 거기다가 추리력이나 다른 모 든 방위에서의 두뇌활용도 떨어지지 않아서 문제없이 추리해서 저 영리한 여자가 무심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상황을 읽는 바인의 모습에서 '나는 관심 없으니 영지에 초대하고 부르고 하는 방식으로 나를 끌어들이려 하지 마라'는 것을 유추해 낼수 있다는 사실도 파악하고 있 었다. 과연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바인은 선수를 쳐서 모든 방위에서의 귀찮은 접근 을 막아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여자라면 내 동생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면에서도 움직여 주는게 나쁘지 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여자는 그녀가 아니다. 이래서 인간이라는 동물은 우습군. 이성과 감성을 전부 갖추고 있기에 이렇게 갈등하는 것인가? 정말 참을수 없는 패러독스. 하지만 그래서 인간은 발전할수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는…… 불필요하기 그지없는 단점이다. 인간을 초월하면 괴물밖에 더 되겠냐만은 나도 지금으로써는 리비도를 거세당하는 한이 있어도 인간이 아니고 싶다.' 바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정도로 그는 지금 정신적 갈등에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감 정과 이성의 충돌이 이정도로 강해진다는 것은 아무래도 자신의 정신을 붙들고 있는, 복수 라는 이름의 날카로운 양날의 검을 스스로 부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역시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바인은 다시 이를 악물었다. 후드를 눌러 쓴 상황이었기에 얼굴은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 그런 기색 역시 라시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사람의 기질이나 기색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외적인 모습에서 더 느낄수 있는 면이 많았다. 살기는 내면이 외면을 건드리면 서 발출되는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의지였지만 바인이 풍기는 기질은 그래도 후드 정도로 충분히 가릴수 있었다. 마력에 가까운 매혹. 그 퇴폐적인 느낌의 인상도 존재 영성 자체가 그다지 강해지지 않았기에 광익의라는 일급 마법기 정도로 문제없이 차단할수 있었던 것이 다. 라시에는 그런 바인의 모습과 목소리에서 저 흰 로브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 다. 흰 로브 자체가 탁한 회색으로 느껴질 정도로 바인의 분위기는 묘한데가 있었다. '……나는 내 힘이 어느정도인지 잘 알고 있다. 이 세상에 얼마나 큰 파급波及을 불러 일으 킬수 있는지도. 9급의 마법사라면 이미 탈 인간적인 존재…… 그리고 이미 나는, 원래부터 인간이 아니었다.' 바인의 태도는 일견 건방지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충분히 그럴 자격도 있었다. 작위가 없어 도 자신의 앞에서 호령하는 작위를 가진 귀족이라는 이가 속한 나라에 운석을 퍼부어 그 나 라를 괴멸시켜 작위를 무효시킬수 있으리만치 대단한 마법사인 그로써는 이미 국가간의 권 력이나 암살에 의해 죽을정도는 아니었다. 암살이 만약에 실패해서 다른 나라에 붙어버리면 그야말로 골치아팠기 때문이다. 8서클의 유성소환 마법인 미티어 샤워만 하더라도 어지간히 막기 괴로운 수법이었다. 바인으로써는 어디 숨어 좌표만 맞추어 날려대도 전 국가에 분포 해 있는 마법사들이 결계를 한무더기 사용하고 워프 게이트를 열어 유성을 없애버려도 결국 유성소환 마법은 막아내기 힘들다. 하지만 뭣도 모르는 어리석은, 머리나쁜데다가 그녀에게 보이는 일견 불경해 보이기도 한 태도는 멍청한 기사들에게 상당히 분통을 터뜨리게 만드는 행동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한 기사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행동을 하고야 말았다. 뭐 바인이 라도 아량이 없는건 아니고 ― 라기 보다는 귀찮으니까 ― 해서 아마 '그 당사자'만 죽여 없앨 확률이 크지만 그래도 라시에로써는 기겁하지 않을수 없는 행동이었다. "아무리 당신이 저분과 우리 모두를 구했다고는 하지만 후작가의 영애 앞에서 너무하는 일 아니오! 당장 그 후드를 벗고 예를 갖추지 않는다면……" 분기탱천…… 이라기보다는 생물학적 욕구에 가까운 ― 어느 누가 사랑이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 통해서 육체관계를 맺었다 이상의 어떤 가치도 아니라 말했던가! 이 상황에 적용 하면 딱 맞아 떨어지리라. ― 뇌내감정 물질 발산으로 인한, 본능적인 행동. 다시말해 미인 이며 사회적이나 개인적으로도 능력좋고 돈도 많고 가문도 괜찮아서 일단 마음을 얻게 되면 앞날이 탁 트일지도 모르는 여성의 호감을 얻기 위한 추하기 그지없는 인간군상의 그림자를 그대로 드러내는 멍청한 기사 하나를 보던 바인은 그말에 인터럽트Interrupt를 걸었다. "않는다면? 결투라도 신청할 셈인가? 귀찮군……" 바인은 주저없이 후드를 넘겼다. 그리고 않는다면…… 후에 결투를 신청하겠다고 말하려 했 던 기사는 입을 쩌억 벌렸고. 그것은 라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라시에마저도 일순간 가식적인 미소를 섞은 그 웃음을 지워버리고 입을 살짝 벌린채 경탄해 버렸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바인은 리버스를 거친 이후 본질이 어느정도 깨어나 그 외모는 이미 인간의 수준에서 벗어 나 있었다. 만약 바인의 세포를 가져다가 클론을 만들어도 바인의 외모와 같기는 하겠지만 …… 같을수는 없었다. 인간의 클론이라는 것은 영혼까지는 어떻게 해볼수 없어서 만들어진 클론은 영혼이 없다. 클론에 영혼을 부여하려면 영체 자체를 복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기에 인간이 만 든 클론이라면 분위기나 기질 자체가 달라서 미인으로 보이기는 하겠지만 결코 지금과 같은 블랙홀 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의 아름다움을 만들수는 없었다. 바인의 블랙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깊고 화려한 광채를 내고 있는. 단색이지만 단색이 아닌 것만 같은 흑 발이 바람이 스쳐가면서 휘날리자 그 광경은 바인의 허무감과 퇴폐적인 기운이 담긴 눈빛과 더불어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었다. 결코 잊을수 없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은근히 회색빛의 사악한 허무감이 도는 듯한 그의 눈은 절대악까지는 아니더라도 극악까지 는 되었다. 그러나 그 극악은 허무의 극에 감싸여 선과 뒤죽박죽 섞여있어서 혼돈에 가까워 서 악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람이 많았다. 그 혼돈과 퇴폐. 그리고 허무감이 실린 눈빛은 라시 에로 하여금 여심이 진탕되게 할 정도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아마 같은 동성의 남자가 보더라도 크게 동요할 정도인데 하물며 여성이어서는. 여성은 이래저래 생물학적 본능이건 정신적인 문제건 모성본능도 있고 해서 망가진 듯 어쩐지 애처로운 느낌도 주는 바인의 모 습은 일단 10대 중반에서 20대 후반까지 다채롭게 여성의 호감을 얻어내기 충분했다. 라시에로써는 후드로 얼굴을 가린 젊지만 음침하고 냉랭한 느낌의 마법사로써 다가왔던 바 인의 이미지가 확 개선되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후드를 벗은 순간. 아니, 그 전에 후 드를 벗으라고 시비를 걸어온 멍청한 기사 하나 때문에 냉혹의 사신의 낫은 좀더 빠르게 아 스타르 대륙을 할퀴게 된 것이다. 라시에는 그제야 제대로 바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허리 에 걸린 건 세이버Gun Saber는 아무리 라시에가 식견이 높다 하더라도 웬만한 식자들이 아 니라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여서 일단 넘어갔지만 기형검이라는 것은 알아볼수 있었다. 바인 의 몸매는 가느다랗게 보였지만 일단 보면 근육 섬유는 상당히 질겼다. 손에 쥐어진 혼연의 지팡이는 그렇다 쳐도 그가 걸친 순백의 로브는 은은한 광택이 어려있어서 낮은 그녀의 식 견으로도 고급 마법기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마법사로써 감히 로브를 입고 '나 마법사요'하고 외치며 돌아다닐 정도라면 아무래도 스스 로 의 마법에 자신이 있는, 적어도 5서클에서 6서클은 넘는 마법사라 할수 있었고, 바인이 보여 준 마법은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력해서 그녀는 바인을 8서클 이상의 마법사로 결정지 었다. 그러나 그녀가 어찌알랴. 드래곤밑에서 마법을 배운 바인은 파멸과 붕괴의 힘. 학살자 의 낙인으로 인해 얻은 허공의 검과 여러 마법무구들. 그리고 그 본신의 능력만으로도 클래 스식과 서클식이 9단계에 이르러 있음을 말이다. 이정도면 세계 멸망을 바란다 하더라도 별로 힘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괴물중의 괴물이었 다. 인간을 초월하면 괴물밖에 더 되겠는가. 신이라 할지라도 고결함 없는 신은 괴물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다. 외모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우민들은 그렇다 쳐도…… 바인의 경우만 보 아도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고결한 느낌을 주는 학자풍의 미인이지만 속내는 냉혹함으로 가 득하지 않은가. 육체도 겉보기에는 약해 보이지만 사실 그 힘이나 기타 등 등의 모든 기능 에서만도 이미 인간의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육체 개조를 아무리 해도 이정도로 완벽 할 수는 없을 정도니까. 일단 이곳의 사람들이 보면 바인은 호감받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어지간한 착각이지만 어 쩔수 없지 않은가. 사람 속내를 읽어낼 재주는 그들에게 없었다. 그래서 라시에는 정말 후회 할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전 수도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길인데 습격을 받게 되었군요. 아무래도 저희 가문의 영향 력도 크고 바인 님의 말대로 저는 상당히 영향력이 크니까요. 정략결혼에 영리한 여자는 필 요 없겠지만……" 그녀는 조금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뭐 이런 가문에 태어난게 축복이면서 저주이련가. 어 쩔수 없었다. 귀족의 '여자들이 익혀야 할 교양'을 배우는것도 신물이 나서 그 좋고 잘 돌아 가는 머리로 많은 학사들에게서 재주를 배우고 익혔지만 그녀는 마법사가 될 정도로 영리하 진 않았다. 아마 10년쯤 배우면 3서클 마스터정도는 되겠지만 그 이상은 힘드리라. 그래서 그녀는 애초에 마법을 배우면서 세월을 낭비하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그녀가 아무리 영리해도 황태자 정도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있을지 없을지 모를 야심조차 펼칠수 없었다. 일단 이 세상은 여자보단 남자가 더 영향력이 크니까. 검술도 여자 보다는 남자가 좀더 유리하고 마법도 마찬가지다. 마법이라는 것은 여성이 배우기에는 험한 부분이 터무니없이 많고 의외로 여성들이 세심하다지만 살상이나 보조를 위해서 마법을 쓰 는 것은 전투에 대한 감각이 더 탁월한 남성들이 더 나았다. 아마 여성들이 그런 것도 문제 없이 해낸다면 전쟁이나 강간도 여자들이 하는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바인 님. 또다시 습격이 있을지 모르니 영지까지 동행해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여행하시는 것 같은데 보급도 필요하실테니까요." 바인은 곧 이해득실을 따지기 시작했다. 물론 바인이 아무리 육체의 힘이 강력하고 마법이 끔찍하리만치 강하다 하더라도 물은 몰라도 먹을만한 유기질들을 창조해낼 재주는 없었다. 11서클에 든다면 또 모를까. 뭐 11서클이라도 생명창조는 불가능하지만 일단 창조술을 적당 히 살려서 유기질을 조합하고 영혼 하나를 잡아와서 집어넣은다음 세뇌시켜서 만드는 수도 있지만. 일단 사냥을 한다 해도 바인의 몸은 인간의 몸인지라 균형있는 음식물의 섭취가 필 요하다. 그래서 바인은 곧 결론을 내렸다. 휴식과 보급이 필요하다. 그리고 웬만하면 마법사 길드에 들려서 가입도 할 생각이었다. 대충 8서클 마스터 정도로 속이는게 낫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일단 이름이 알려지고 길드에서 증표나 신분증을 얻게 되면 이 세상에서도 금방 쉽게 돌아 다닐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이 빛과 축복으로 가득찼다면 모를까 아무리 순둥이 같은 인간들이 모여있어도 그림자는 생기게 마련이고 그런 것은 소설에서도 흔히 국경 경비 대들이 뇌물을 받아처먹고 괜히 여행자들에게 시비를 거는 미친짓(윗대가리들도 썩었다면 모를까 들키면 교수대에 목이 걸릴 짓이잖은가? 기요틴이 있다면 목이 잘리겠지.)을 해 대 는 일은 음울함이 가득한 현실적 소설에서만 나타나는게 아닌 실제였다. 일단 그들도 월급 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끝없는 심연의 욕심이 내부에서 들끓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바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도록 하지." 119. 디멘트 송Dement Song. "으읏!" 다크 디옵사이드Dark Diopside가 반투명한 순흑의 섬광을 그려낸 순간 암흑의 오러가 검이 긋고 지나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진공의 검날 형태로 변형되어 유리엘을 향해 쇄도해 들어 왔다. 그 파괴력은 터무니없이 강해서 유리엘은 그 예리하고 암울하며 마치 피해자를 지옥 의 영겁에 끌고들어갈것만 같은 강렬한 암흑의 힘에 짤막한 비명을 터뜨리면서도 엉겁결에 루인 블레이드에 기를 불어넣었다. 순간 정제조차 하지 않고 불어넣어진 기는 루인 블레이 드 자체가 스스로 정제하면서 보랏빛의 신기神氣로 전환하여 강剛의 형태로 뿜어져 암흑의 힘을 머금은 바람같은 느낌의 칼날과 맞부딪혔다. 푸화학― 묘한 파열음이 들려옴과 함께 다크 디옵사이드의 검신에서 묘한 열기가 치달렸다. 다시한번 그어진 검궤에서 피어오른 암흑의 바람은 파공음을 내며 유리엘과의 거리를 좁혔다. 유리엘 은 이를 꽉 깨물면서 바로 검을 가볍게 뒤로 뺀다음 근육에 기를 불어넣고 탄력있게 뿜어내 면서 검을 찔렀다. 순간 보랏빛의 힘에 휘감긴 검에서 찬란한 금빛이 일어나면서 싹 하고 금빛의 호선을 그리며 순흑의 바람이 불어오는 결을 끊어 흩어버렸다. 광검光劍의 참결斬訣 중 하나인 라이트 슬래쉬Light Slash로 순간적으로 극한의 빠르기를 내어 물질을 절단하는 극쾌의 검술인 광검에서도 상급기에 속하는 수법이었다. "좋은 일검이었다. 일취월장 하는군." "두 스승중 한분은 소드 마스터고 또 다른 스승은 완전히 괴물이니까요. 안그래요?" 톡 쏘아붙이는 유리엘은 어느새 말발도 상당해져 있었다…… 라기 보다는 이제 긴장같은 것 이 많이 풀린 것 같았다. 리안이 배려해주는 점도 이미 충분히 느끼고 있었고 결정적인 것 은 리안의 눈 깊은곳에서 일렁이는 깊은 슬픔 때문에 반감이 많이 줄어들어서 일것이다만 은. 무엇보다 리안은 초월을 초월한 미인이니까. 영이나 바인과 비교하는게 리안에게 모욕일 정도로 그는 아름다웠다. 뭐 그나저나 그런 미인을 괴물이라고 칭하는 것도 이제 그 초월적인 미에 많이 익숙해졌다 는 점과 리안이 기도를 거의 대부분 숨기고 있다는 점 때문이겠지마는. 그래도 이정도로 무 덤덤하게 대할수 있을 정도면 감정의 제어가 익숙해졌다는 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감정이 되살아났지만 심법으로 인해 감정제어가 훨씬 쉬워지면서 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할수 있게 되었고 검의 발전을 묶던 많은 분노나 사념도 많이 사그라들어 있었다. "……괴물이라면 괴물이겠군. 누가 인간을 초월하면 괴물이 될 뿐이라고 말했더라. 태생부터 괴물이지만. 훗. 잡담은 그만이다. 간다!" "……!" 리안은 다크 디옵사이드를 세우면서 아주 태만하게 보이면서도 뭔가 잡힌 듯한 자세. 자세 를 취한 듯 하면서도 자유롭고 편한듯한 자세여서 묘하게 긴장을 주는. 리안으로써는 이정 도면 신화경 고수 정도가 적당히 마음 먹고 쓰는 정도의 자세이니까 유리엘에게 상당한 감 각을 부여해줄만한 자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리안으로써는 수준낮은 자세로 취급받는 것이다. 영이 이 자세를 보았다면 경악하다 못해 넋이 나가버릴 정도였다. 그러나 이 자세에 서 현기 정도만을 느낄수 있었던 유리엘은 극도로 긴장하면서 광검의 기수식중 하나인 블레 이즈 셀렉션Blaze Selection의 자세를 취했다. 이미 리안의 일검은 광검을 익힌 자신으로써도 따라가기 힘든 쾌검으로도, 혹은 막아내기 버거운 중검으로도 변할수 있는. 천변만화하면서도 그 각 변화의 검의를 모두 극까지 사용 할수 있는 엄청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극한의 빠르기와 베고 지나가면 상대 방이 뜨거움을 먼저 느낄 정도로 예리한 자르기와 찌르기를 뿜을수 있는 기수식을 취한 것 이다. 이 다음 바로 글레어 트리니티 버스터Glare Trinity Buster. 다르게 표기하면 붕휘삼 연참절검세崩輝三連斬切劍勢로 넘어갈수 있었기에 유스도 강자와의 싸움에서 즐겨쓰는 검세 였다. 베기도 찌르기도 가능한 치명타를 먹여주는 삼연검을 먹이는 극쾌검을 뿜는 일격이었 다. 글레어 트리니티 버스터를 제대로 맞으면 상급천사라도 별수 없었다. 광검은 막는다면 모를까 피하지는 못하는 검술이니까. 뭐 피할 존재 많기도 많지만 인간 수준에서는 피할사 람은 별로 없었다. "플리커Flicker!" 그녀는 짤막하게 소리치면서 바로 선제공격으로 들어갔다. 물론 선제공격 해봤자 일검도 막 아내기 힘들테지만…… 플리커. 명멸한다는 뜻이다. 일단 블레이즈 셀렉션에서 플리커라는 극쾌 일점섬으로 들어가고 나서 원호를 그리며 패링 댄스. 회검무를 이용해 물러나며 끌어 들이고 글레어 트리니티 버스터로 들어갈 생각인 것 같았다. 뭐 바인도 이정도는 기본으로 막아낼수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빨라서 적어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 이상이 아니면 살생 각을 말아야 했을 것이다. 뭐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라도 팔 하나쯤은 내어줘야 간신히 살 아남을 정도의 강렬한 공격이었다. 유리엘의 손이 깜빡 한 순간 보랏빛은 온데간데 없고 순백색의 일섬이 리안에게 쏘아져 들 어가고 있었다. 리안은 제법이다. 는듯한 눈빛이었지만 주저없이 검을 올려 그었다. 유리엘 의 일섬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올려그어진 검은 순백의 일섬에 흑색의 장막을 펼쳤고, 차 앙! 하는 기음이 들림과 함께 이미 유리엘의 몸은 스핀을 먹여 핑그르르 돌며 다시 일검을 거칠게 뿜고 있었다. "샤이닝 탈론Shining Talon!" 전광석화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일격으로 베기라기 보다는 검날로 쳐 긁어내는 듯, 맹수의 발톱으로 긁어내는 듯한 쾌검이었다. 예리하기 보다는 거친 느낌의 살검이었다. 그러나 곧 그 빠른 일격도 리안이 비스듬히 받아내자 그녀는 미끄러지는 느낌과 함께 검이 창 하고 밀 려나가면서 자신의 몸이 위로 튕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여기서 그녀는 곧 몸을 회전 시켜 그어 내리면서 글레어 트리니티 버스터로 들어갔다. 일단 기를 실어 검에 백색의 광염 을 머금게 한 다음 싸악 내리 그은 것이다. 그러나 리안은 그것을 맞아주지 않았다. 가볍게 몸을 빙글 돌려 작은 원을 그리며 내려베기를 흘린 것이다. 그러나 과연 유리엘이랄 까, 살짝 하고 착지한다음 바로 발목의 힘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거칠게 하방에서 상방으로 대각선 자르기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리안은 역시 괴물이라 불릴만 했다. 베어들어오는 방향의 발목을 살짝 떼었다가 자신의 발목에 탁 치면서 그 힘을 이용해 몸무게를 0으로 만 들어버리고는 튀어올라 원을 그리며 유리엘을 향해 검을 찔러내려간 것이다. 유리엘은 거기까지는 계산하지 못했지만 바로 죽어라고 몸을 튀로 튕기면서 마지막 삼검에 들어갔다. 바로 자세를 잡고 내려앉는 리안을 향해 일섬! 한 번의 찌르기, 그리고 베기. 다 음 안정된 자세로 찔러 들어가는 붕휘삼연검. 유리엘은 재능도 좋고 운용하는 감각도 훌륭 해서 이 순간에는 리안도 약한 미소나마 입가에 걸었다. '그러나 역시 아직 무뎌. 차라리 바닥에서 내리 그어 올라가며 검기를 발출하는게 더 살상력 있는 공격이 되었을텐데.' 리안은 터무니없게도 순간 발목 힘만으로 공기층을 가볍게 차서 일섬이 공간을 헛되이 찌르 자 루인 블레이드의 검날 위에 사뿐히 발끝을 얹었다. 강철 실이라도 올려놓으면 소리없이 절단되어 흘러내릴 예리한 루인 블레이드의 검날 위에서 그는 전혀 지장없이 서 있었던 것 이다. 유리엘은 어이도 없고 기가 막혀서 그를 멀거니 바라보았고, 리안은 곧 다크 디옵사이 드의 세검다운 얇은 검신을 의지로 주욱 늘려서 유리엘의 목에 들이 댔다.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끝." "우우읏." "리미티드Limited. 블러디 레이즈Bloody Raze." 숫자가 적어지자 숲 근처에 있다 보니 몬스터들이 일행의 몸에 밴 혈향과 인간 특유의 향기 를 느끼고 다가온 것 같았다. 일부 비판적인 식자들은 인간의 그림자에 숨겨진 광기를 극단 적으로 가진 생명체라고 은근슬쩍 인간까지 동시에 비꼬는데 사용하는 표현의 주인공인 몬 스터들은 살육의 광기에 살아남기 위한 생물적인 욕구. 다시말해 '음식물 섭취'를 위해 일행 을 습격했고, 그럴때마다 바인의 화려한 마법은 몬스터들을 박살내놓았다. 아무리 비위좋은 기사들이라도 보기 뭣할 정도로 몬스터들을 박살내고 태우고 갈기갈기 찢어놓아 효과적으로 살상해버리는 바인은 정말 악마로 보였다. 또다시 트롤계통의 몬스터들이 우르르 몰려나오자 바인은 주저없이 건 세이버를 날려서 한 마리의 머리통을 깨끗이 산산조각내 지휘체계를 전달하는 뇌하수체에서 신경이 뻗어나오는 부분의 집결체. 다시말해 두뇌를 제거하자 놈은 풀썩 하고 쓰러져 목에서 피를 주르륵 쏟아 냈다. 바인은 멈추지 않고 어느새 오른손에 쥐었던 건 세이버를 칼집에 꽂아넣고 일단 제한 블러디 레이즈라는 6서클 마법을 날려 붉은 기운을 바닥에서부터 안개처럼 피워올리게 한다 음 그 안개에 살의를 불어넣었다. 안개는 촉수가 되어 트롤 세 마리를 붙잡으면서 날을 세 웠고, 순간 트롤들은 우습게도 피가 쪼옥 빨려나가면서 즉사해버렸다. 그리고 날을 세운 붉 은 핏빛 기운은 서걱서걱 시체를 난자해버린 것이다. 트롤들은 당황했지만 곧 포효하면서 돌격해왔다. 그것을 보면서도 바인은 태연히 혼연의 지 팡이를 꺼내 사멸의 힘을 불어넣었다. 순간 혼연의 지팡이 위로 순회색의 강렬한 기운을 머 금은 검날이 쑤욱 솟구쳐 나왔고, 바인은 바로 주저없이 몸을 날리며 트롤들에게 돌격했다. 그리고 기사들이 입을 쩍 벌리고 마법사가 육박전을 하려 드는, 다시말해 자살하러 가는 듯 한 장면을 보고 소리치기도 전에 정말 소름끼치도록 깔끔한 평행 베기가 그어졌다. 트롤들은 장신에 근육까지 주렁주렁 매달았으나 오거조차 상대가 안되는 바인의 완력에 이 겨낼리 없었다. 그리고 사멸의 힘으로 뻗어나온 길다란 검날을 막아낼 어떤 마법적 능력도 없는 그들은 사멸의 힘에 스친 즉시 재생은커녕 오히려 역으로 살이 썩어들어가고 세포가 사멸해가면서 시커멓게 썩어들어갔다. 그러나 트롤들도 그렇게 싸움에서 멍청하지는 않아서 능숙하게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바인을 공격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그를 포위하는 것이 싸 움도 어지간히 많이 해본 것 같았다. 멍청하기 그지없는 몬스터가 이런 잔수를 쓸 정도로 바인이 강하다는 말이기도 했지만. "제독세除獨勢. 팔방난살八方亂殺." 바인은 그런 트롤들을 비웃으며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여덟 개 방위로 요란하게 폭포처럼 초식들을 주르륵 섞어 쏟아냈고, 팔방난살이라는 이름에 따라 트롤들의 몸은 너무나도 쉽사 리 난자당했고, 그들의 무기도 산산조각나 부숴졌다. 소리조차 없이 극쾌로 휘둘러진 바인의 팔과 그의 신형의 움직임은 웬만한 소드 익스퍼트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였고 검술 자체로만 따지면 소드 마스터라도 그를 경시할수 없었다. 과연 그의 기술은 강해서 트롤중 남은 놈들 은 고작 둘 뿐이었다. 바인은 그런 놈들마저 보내줄 마음이 없는 듯 손가락을 딱 튀기면서 시동어를 발했다. "피어싱Piercing!" 5서클의 꿰뚫는마법. 위력은 과연 대단해서 한 마리 트롤의 가슴 부위에 커다란 구멍이 퍼 억 하고 뚫리면서 피와 내장을 뒤로 토해냈다. 척추마저 박살나버린 일격이라 트롤은 바닥 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트롤의 모습과 남은 트롤이 도주냐 공격이냐에서 갈팡질 팡 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혼연의 지팡이에 실린 사멸의 기운을 빨아들인다음 지팡이를 잘 갈무리하고 광익의의 백팩에서 프리즘 스틱Prism Stick 하나를 꺼냈다. 꽤 고급인 마법 매질처럼 보였다. 마법적 제련을 거친 듯 깨끗한 광택의 크리스탈에 광입자 흡수에 순환마법이 걸려있어서 프 리즘 자체에서 은은한 무지갯빛이 뿜어지고 있었다. 그런 프리즘에 로브의 소매를 문지르면 서 은은한 정전기가 일어나자 거기에 클래스식의 마나를 불어넣으면서 그는 시동어조차 없 이 프리즘을 휘둘렀다. 클래스식 마법을 익히는 것이 허용되었던 자들이나 드래곤들이 잘 썼던, 시동어 없는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라고 불리는 마법. 클래스식 마력으로 정전기가 어린 프리즘의 전자반발을 마나를 불어넣음으로써 증폭시켜서 전기를 튀기는 마법이었다. 단거리에서 잘 쓸수 있고 무엇보다 캐스팅이 필요없어서 매우 유용한 마법인 것이다. 라이트닝 볼트와는 달리 여러 방식으로 운용할수 있어서 아주 편리 하고 강한 술수였다. 마법이라기 보다는 기술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위력은 마나에 따라 달 라지니 무시할것도 못된다. 바인은 이번 공격에 거의 3클래스 분량의 마력을 모조리 불어넣 어 버렸고 주변의 마나까지 동시동조 시켜서 강렬한 전광은 이글거리며 피어올라 프리즘 스 틱의 끝에서 요란한 뇌음을 토해내며 뻗어나갔다. 꾸르르르르― 파지지지직! "크르르르르!" 트롤들은 포효하면서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감전사를 하는 이유가 몸에 전기가 흐르 면서 저항으로 인해 생겨난 열기와 에너지의 전달. 그리고 전자의 들뜸으로 인해 쉽사리 죽 는 것이고 전격 자체의 파괴력도 무시할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튼튼무쌍한 트롤들 이라 해도 일단 강렬한 전기가 전신을 관통하고 있는 이상 타들어가지 않을수 없었고, 화상 은 필연적으로 재생을 막았다. 그래서 뇌와 신체장기, 세포들이 파괴된 트롤과 바닥에서 꿈 틀거리며 재생해 나가던 트롤도 처참하게 죽음을 맞았다. "끝인가." 바인은 프리즘 스틱을 백팩에 갈무리하면서 혼연의 지팡이도 잘 챙겼다. '그나저나 치안이 엉망이군…… 하긴. 이 숲은 위험한 생물(미뉴엘)이 있으니까 인간이라면 그 포악한 괴물을 상대하긴 힘들겠지. 창조술까지 멋대로하는 신급 존재를 대체 누가 감당 할 것인가? 하필 그놈의 드래곤의 영성 자체가 몬스터들의 복종을 유도하는 기질이 있다니. 인간들이 알고 있는 대로는 드래곤 피어나 드래곤 자체가 <일자의 왕>이기에 가능하다고 했는데 모두 헛소리였군. 뭐 나름대로 편한 능력이지만 드래곤이라도 몬스터들을 먹여살릴 능력은 없으니까.' 바인은 그렇게 여유로운 동작으로 생각을 진행시켜 나가면서 마차 옆으로 돌아왔다. 기사들 은 이미 질려서 바인의 무심하고 허무함이 뒤섞인 눈길에 움찔하고 물러섰다. 바인은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로브를 탁탁 털면서 마차의 마부석에 걸터 앉았고, 바인의 옆에 앉은 마부 는 찔끔 했다. 하지만 신기하긴 하다. 기사보다 잘 싸우는 마법사라니. 웬만한 기사는 바인 의 검술에 대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마부는 그래도 기사들이 싸우는 것을 많이 보아왔고, 눈썰미는 제법 좋았다. 문외한이라도 오랫동안 보면 누가 수준 차이 감별을 못할까. 바인의 검술은 간단하면서도 소름끼치도록 예리하고 안정되어 있었다. 이정도 검술이면 적어도 소드 마스터? 소드 마스 터도 두 번쯤 볼수 있었던 마부는 가끔 그들이 휘두르는 검무를 볼수 있었고, 기사들이 그 것과 비교해보면서 많은 시계가 넓었다. 그래서 바인의 간단한 평행 베기가 얼마나 이상적 인 참격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바인의 검술은, 뭐랄까…… '나는 이것을 베지 못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진로에 아무것도 없다는 듯 휘둘러 버리고, 그 안쪽의 모든 것은 당연히 간단하게 잘려나가버린다. 영이라도 육박전으로 기의 사용 없이 싸우게 되면 10분 내로 제압할수 없을 정도였다. 웬만한 소드마 스터를 넘을 정도니까. 영이 청심비록을 얻어서 검의에 많은 진전이 있기는 했지만 바인은 그 청심문 창시자에게 검술을 배운 존재인 것이다. 육체적의 능력에 사멸의 힘. 축적된 마 나. 그리고 화경에 이른 검술이 융합되면 소드 마스터라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마법도 있으 니 헤이스트에 스트렝스나 몇 개 보조마법을 더하면 살 생각은 버려야 할 정도이니까. 영이나 바인이나 인간의 범주는 한참 넘어버렸으니 서글프지 않을수 없었다. 영이나 바인의 가치관으로는 '인간이 어리석고 추한 면도 있기는 하나 인간을 버리고 신에게 기대 스스로 의 인간으로써의 존재의의와 자긍심을 버리는 짓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다.'에 근접해 있고 또 그와 같으니 스스로도 제법 곤란할 것이다만은. 바인은 명분이 있고 자신 스스로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한 이상 별로 이상할 점은 없었다. 애초에 어떻게 보면 영도 인 간은 아니었다. '이래저래 입맛이 쓰군.' "괜찮으신가요?" 라시에가 질문해 왔지만 이미 예전의 착한 설원은 없었다. 그래서 무심하기 그지없는. 어느 정도 인간에게서 정신까지 멀어지게 된 그는 리비도Libido를 척출당한 듯 아무 의욕도 생각 도 없는 듯한. 그러나 내부에는 복수에의 거대한 열망을 가둔채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정도에 당할 정도라면 마법사 소리는 듣지 말아야지." "……" 아예 대화의 흐름을 이어가지 못하게 해버리는 화법을 구사한다고 해도 사실 그는 나이도 어리다. 하지만 그의 성격과 정신의 많은 변화와 미뉴엘에 의한 고생은 그를 조금 더 원숙 하게 보이게 만들었고, 결과로 그는 20대 초반이 조금 넘어보여서 22세 정도는 되어 보였다. 영이 20세가 막 된듯한 느낌이라면 바인이 조금 더 나이가 많아보이는 것이다. 뭐 어떻게 보면 바인이 더 성숙한 미녀(?) 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본인 앞에서 하면 온갖 질 병과 저주에 동시에 걸려 죽어갈 일이다. 자고로 여장은 변태와 영웅의 전유물이라는 소리(봉인계에서는 가끔 행사랍시고 남자는 여 장을, 여자는 남장을 하는 정신나간 행사도 있어서 좀…… 그렇지만.)가 있다. 아마 바인과 영은 나름대로 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존재들이라 한 번쯤은 여장할 기회가 올지도 모르 지만 둘 다 워낙 강력한 존재라 과연 여장할만큼 몰릴 경우가 있을까? 아마 절대 없으리라 자신한다. 동방에서는 사실 밀려도 여장할 이유가 없으니까. 은신술도 대단한 영이 여장따위 할 이유도 없고 여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여자로 보인다(…). "그나저나 얼마나 더 가야하지?" "아, 네. 영지에 도착한다면 삼일 후 황혼무렵쯤 되겠죠. 마차 속도를 낼수도 없구요." "……그런가. 영지가 교통로나 중요 특산품이라도 나나? 후작가쯤 되는데 수도에 없다는게 이상하군. 밀려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아, 그건 나라가 워낙 넓으니까요. 중앙지부만 수도를 중심으로 어느 구역 직접통치 구역이 고 동, 서, 남, 북부로 대공들이 한분씩 계셔서 책임지고 그 구역을 통치하시죠. 저희는 동부 지역에 있어요. 대공분들의 성 근처에 저희 영지가 있죠. 그러니까 동부에서는 영향력이 상 당하다는 것이에요." "……전형적이군." "……네?" 바인은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다. 이 전형적 봉건주의가 팽배해서 바인으로써는 모두가 엑 스트라인 민주주의와(모두가 엑스트라이면서 주인이지만 무시도 당한다. 바로 그 주체인 국 민이! 이율배반적이랄까?) 너무 권력이 집결되어 있어서 억울하기 그지없이 인권도 보장되 지 않는 이런 제도는 정말 짜증만 일어난다.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니까. 솔직히 말해서 둘다 나쁜점이 끔찍하게 많잖은가? 이래저래 악용이나 하고 말이다. "제도가 터무니없이 전형적이군. 하필 전 왕이 왕족을 대량생산(!) 한건가. 멍청하기 그지없 군. 왕자가 하나만 더있어도 골치아파지는데. 쓸데없이 욕심은 많아서 '백성이 준 권리'를 남용한단 말인가. 백성이 없으면 나라도 없는 것을. 왕족이나 귀족쯤 참살되봐야 혼란기가 지 나고 나면 오히려 더 나아지지 않을까. 백성도 등용하지 않은 멍청한 제도에서 발버둥치는 나라보단 역시 민주주의가 낫나?" 바인은 그래도 시비를 일으키는 멍청이는 아니라 모국어(일까?)로 중얼거렸다. 한국어를 전 혀 알아듣지 못하는 라시에는 뭐라고 가볍게 인상을 일그러뜨린채 짜증어린 어조로 투덜거 리는 느낌을 주는 그를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도 눈치는 있어서 아무래도 이런 봉건제 에 상당히 반감을 지니고 있는 이상주의자가 아닐까 싶었지만 바인은 곧 자조어린 미소를 피우면서 중얼거렸다. 다시 이곳의 언어로.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이방인異邦人이 관여할 세상은 아냐…… 꿈속에서 발버둥치는 바보 같은 세상을 보면서 즐기는것도 나름대로 멋인가." 앞부분은 이곳의 언어로, 그러나 뒷부분은 다시 한국어로 중얼거리는 바인. 그런 그를 불안 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녀였다. 고위 마법사들은 아무리 성격좋아도 광기가 쌓이는건 어쩔수 없었고, 바인은 겉보기에도 염세주의와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것처럼 보이고 퇴 폐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런만큼 걱정되는건 어쩔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뭐 바인은 이미 미 친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별로 걱정할 바는 아니겠지. 어쩌면 미쳐서, 한없는 백일몽白日夢에 서 벗어난 지금이 오히려…… 미친 것이 아닌 정상인 것일지도. 이전의 '설원'은 조용하고 기분좋은 나날들을 보내왔었으니까. 120. 3일이 지났다. 바인 일행이 막 영지에 도착해서 하루를 보내고 있을 시간이었다. 창백하고 푸르스름한 빛을 찬란하게 뿜어내며 대지를 비추는 만월滿月[Full Moon]의 광기 는 극도에 이르르고 있었다. 보통 달은 금빛을 은은하게 뿜어내게 마련이었지만 이 행성의 위성의 재질은 달과 전혀 틀렸고 각도도 다르다. 그래서 뜨는 시간과 지는 시간도 전혀 달 랐다. 행성에 존재하는 위성은 봉인계의 지구라는 행성의 위성과 별로 다르지는 않았지만 어느정도 차이가 있음은 당연하다. 중력이 매우 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대기가 있어 서 창백한 흰빛으로 반사광을 달리하는 것이다. 만월의 광기狂氣가 정점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휘황한 광채 안쪽에서도 저 먼 행성들의 빛이 명멸하고 있었다. 본래 명멸할 이유는 없었지만 행성의 대기에는 불순물이 의외로 많아서 그것이 지날때마다 빛을 가리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공기가 맑아도 저 별빛의 흔들림은 어 찌할수 없었다. 깊디 깊고 맑은 흑묵빛의 하늘은 빌로드 천처럼 은은하게 다가오지만 잡으 려 들면 부드럽게 멀어져 버리는 기괴한 침묵을 대지에 뿌리고 있었다. 빌로드 천에 박힌 색색의 보석들처럼 각기 온도의 스펙트럼에 따른 빛을 흐릿하게 뿌리고 있다. 물론 이곳에 서 보면 약하고 조용한 빛무리지만 가까이서 보면 청백색으로 불타올라 오히려 태양보다 더 뜨겁기 그지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만월의 광기가 퍼져나가고 있는 심야. 깊디 깊은 월야의 한 가운데. 검은 능선의 위에 서 무언가가. 정적 위로 동적인 선을 부드럽고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춤을 추는것만 같 이 움직이고 있는 존재. 그 춤은 뭐랄까. 역동적이긴 하지만 부드럽고 은은해서 도저히 움직 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영원한 시간의 잔재속에 오래도록 멈추어 있는것만 같은 느낌을 환상처럼 가져다 주었다. 어둠속에서 어둠이 되어 만월과 별빛으로 인해 살짝 드러나 있는 검은 선 위에서 움직이는 은은한 움직임은 알 수 없는 환상이 되어 시야를 덮쳤다. "Lunatic Moon. 광기어린 달빛에는……"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알 수 없는 광기에 가득차 있었다. '그'는 여전히 부드럽고 은은한 동작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가장 순수한 환상의 조각과 같은 빛무리가 그의 소매 끝에서 일어났다. 어둠의 옷은 순수한 어둠과 동조하면서 만월의 광기하에서 그를 벗어나게 하고 있었다. "Dement Song. 광기어린 노래가 잘 어울리지……" 어둠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미소.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죽음에의 향기를 느끼 게 하는 살기의 표출. 달빛을 올려다 보는 그는 싸늘하게 웃고 있었다. "아직은 아냐. 내일. 내일이야. 내일이 바로 진짜 만월이지. 광기라는 것을 이해했을 즘이면 이미 달콤한 유혹에 잠들어 있겠지. 라시에 양. 큭큭큭." 새하얗고 자그마한 손이 부드럽게 어둠위로 궤적을 남겼다. 어둠속에서도 하얗고 부옇게 흔 들리고 있는 손의 잔영은 달빛과 함께 환상처럼 다가와 은은하게 멀어져버렸다. 새하얀 손 은 소매에 감추어졌고, 그는 곧 정말 깔끔하게 능선 위에서 지워져 버렸다. 그녀의 집이라는 곳. 영지 중앙의 거대한 저택에 들린 다음 바인은 짜증을 느겼다. 분명히 라시에의 아버지 헬리론드 후작은 확실히 대단한 인물이지만 속세의 인물이다. 그래서 바인 의 거대한 힘이라는 것과 기도를 어느정도 읽을수 있는 거물중의 거물이었다. 썩지 않은 귀 족이지만 그렇다고 썩은 부분이 없는것도 아니었다. 바인은 그와의 대면에서 짜증부터 느꼈 고, 그의 능숙하면서도 젊고 경험없는 이를 다루려는 듯한 어투에 바인은 냉랭하고 무심한 화법으로 대응했고, 후작은 곧 바인을 물렁하게 봤다는 사실을 스스로 납득해야했다. 바인은 결국 어느정도의 돈 정도만 받아두고 저택에서 식사를 끝낸후 건 세이버를 꺼내들고 일도류에 익숙해 지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애초에 배울때부터 이도류를 배우긴 했 지만 이론상으로나마 일도류를 배우지 않은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검법이나 여러 가지 배운 것 만으로는, 다 소화해 낸다는 전제를 걸어보면 오히려 일도류가 더 강력했다. 사실 공격력 자체만 따지면 일도류가 더 강하지만 이도류는 살상 면에서는 더 위험하다. 바인같은 경우 는 양검 음검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난자해버릴수도 있는 파격적인 검술도 간단히 해내기에 별로 상관은 없지만. 애초에 검술은 음과 양을 중요시 한다. 조화랄까? 베기는 양으로 베고 거둘때는 음으로 거 두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공격하는 부분은 양이고 주축이 되는 부분은 음이다. 기의 발출 면에서는 별로 상관없는 면이지만 이쪽 아스타르 대륙의 검들은 9할이 다 음양에서 벗어나 있었다. 바인은 둘 다 양검이 될 수 있고 둘다 음검이 될 수 있는 검식을 배웠지만 웬만한 능력 이상의 상대와 싸울때는 음양을 조화시켜 싸우는데 주를 둔다. 양검을 사용하면 공격 력이 극까지 일어나지만 균형이 깨져서 방어가 형편없어지고 뒤쪽을 맞기라도 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음검은 너무 방어에 치중되어 수세에 몰리고 결국 균형이 깨지게 마련이다. 방어와 공격의 적절한 조화가 바로 이도류의 오의인 것이다. "후우…… 수상월영水上月影!" 바인이 배운 일도류중 하나는 역시 전해준 존재가 존재인만큼 매우 강력한 것으로. 일도류 는 두가지를 전수받았지만…… 어쨌든 그 두가지중 가장 익숙한 것이 바로 우일검宇日劍이 다. 주월검宙月劍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두 일도류를 조화시켜서 우주조화일월신 검류宇宙造化日月神劍流다. 뒤의 길디 긴 검술은 이도류로 귀결되지만 사실 우일검과 주월 검은 각기 공격과 방어에 좀더 비중을 두어 음양이 깨져있다. 그래서 바인은 지금 후반의 이도류를 일도류에 적용시켜 음양조화를 이루어서 자신의 검술을 한층 진일보 시키고 싶은 상태인 것이다. 마법을 익힌 뒤로 답보상태이기는 하지만 육체적 능력은 아무래도 상관 없 었고, 그가 배우고 싶은 것은 검의劍意다. 주월검을 좀더 단련시켜서 우일검과 주월검의 화후를 맞추기 위해서 건 세이버를 왼손에 들 고 휘두르기도 하고 오른손에 들고 휘두르기도 했다. 주월검중 방금의 수상월영은 일단 아 래서 위로 수직으로 그은다음 몸을 돌려 검을 하단부로 내리고 물위에 비친 달그림자처럼 흐릿하지만 떨리면서 변화가 심해 공격인 듯 하면서도 오히려 방어에 가까워 확실하지 않으 면서도 묘한 환상같은 원형베기를 아주 낮게 그린다음 바로 월광이 반사되어 잠깐 환하게 빛나는 것처럼 폭발적으로 신월형의 달 그림자처럼 검을 그어올린다. 체력소모가 꽤나 커서 양손으로 번갈아가면서 한 번씩 1천번을 반복했을 무렵에는, 어느정 도 한계까지 느리게 휘두르면서 기술을 가다듬고 그 의를 느끼려 들었기 때문에 체력 소모 가 굉장히 커서 그 바인이라도 뻗어버릴 것 같아서 바닥에 주저앉은채 숨을 몰아시고 있었 다. 그러나 역시 바인은 바인이라 5분이 지나기도 전에 거의 체력이 다 회복되어 있었다. 기 분좋다기 보다는 어처구니 없어서 바인은 오기가 올라버렸다. 갑자기 주월검의 단련이 무의 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천천히 블링크 주문을 외워서 영지의 저 택 바로 옆에 있는, 수상하기 그지없는 느낌의 완만한 동산으로 걸어올라갔다. "여기가 좋겠군. 시작해볼까?" 그는 건 세이버를 검집채로 풀어서 내려놓고 천천히 허공의 쌍검을 뽑아올렸다. 그리고 우 주조화일월신검류를 느릿하게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검의 궤적은 은은하게 뿌려진다. 회흑색 과 회백색의 검은 거의 다 차올랐지만 아직은 아닌 만월의 광기를 비추면서 회흑색과 회백 색의 알 수 없는 광택을 빛내는 호선들을 그려나갔다. 찌르기, 베기. 단순히 두가지가 아니 라 그 안쪽에는 수많은 기경이 숨어있지만 겉보기에는 찌르기, 베기의 속도차이 외에는 아 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감정을 배제하고 보는 문제. 마치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은빛 판 위에 어둠의 장막. 그리고 쏟아질듯한 요란한 별빛 의 칸타타가 그대로 새겨지는 느낌. 달빛으로 인해 폭발하는 음기 사이로 양기가 뿜어져 나 와 거대한 태극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건 경이였다! 바인은 자신도 모르게 내부에 숨겨진 깨달음들을 열고 있었다. 인간의 영성에서는 절대 열수 없는 영성적 차크라가 뒤흔들리며 열리고 있었다. 회흑색의 오러와 회백색의 오러가 요란하게 피어오르면서 맞물리고, 그것은 오오라가 되어 검궤를 새기고 있었다. 검궤는 선에서 면이 되어 달빛을 황홀하게 비추며 일렁이고, 어둠속에서 춤을 추는 바인은 이제 어느새 끊어지는 검결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검무劍舞로 바꾸고 있었다. 검경의 오의라 는 검무. 단지 그냥 검무가 아니라 모든 검경. 상반되는것조차 완벽하고 자연스럽게 합일하 여 춤을 추며 자연을 쓰다듬는 하나의 의지. 검의는 세상의 의지가 되고. 이 순간 바인은 제 노사이더가 아니라 제네시스. 창세의 주역이었다. 그는 만들어내고 있었다. 감정과 존재를 실어서. 그가 지금 긋는 검궤는 파멸과 사멸의 힘이되 그 파멸과 사멸이 그려내는 것은 결 코 멸망이 아닌 창생이었다. "큭!" 바인은 순간 갑자기 쌍검을 휘둘러서 무언가를 털어내듯 손잡이에 임팩트를 주며 휘둘렀고. 퍼어어엉! 하는 공기를 뜯어내는 듯한 기음이 터져나오면서 갑자기 새하얀 진공충격파가 일 어나 회색으로 너울거리는 영기를 할퀴어 뜯어버리면서 그가 검을 휘두른 방위를 향해 쏘아 져 나갔다. 새하얀 흐름이 검무의 흐름을 끊어버렸고. 바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허검 과 공검을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무릎을 바닥에 찍으면서 바닥에 손을 짚었다. "크윽…… 우우욱!" 바인은 피를 울컥 토해냈다. 깨달았지만 바인은 또다시 자신을 가로막은 장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빌어먹게도 그것은…… 학살자의 낙인이었다. 영혼 자체가 학살자의 낙인이 었고, 그 영혼은 순천의 검무의 깨달음의 극을 멈추었다. 바인은 피를 토해내는지 뭔가가 더 러워서 구역질을 하는건지 알수 없을 정도로 구역질을 해 댔고, 곧 금방 그것은 욕지기로 바뀌었다. "제기랄! 빌어먹을! 허억…… 허억…… 제노사이더Genocider라는게 그렇게 증오스럽더냐. 이 빌어먹을 세상아!!" 자연에 동화되면서 검무를 추어가던 바인은 자연이 자신을 쫓아내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 다. 아마 이 검무 자체를 깨닫기도 했고 다시 해낼수 있지만 했다가는 육신이 망가져 버릴 것이다. 바인은 욕지기가 토해져 나온다는 사실에 실소했다. 언제 이렇게 격렬한 감정이 다 시 일어날 거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던가. 세상은 그를 버려버렸다. 아무리 사멸과 파멸이라 도 결국 세상의 이치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 '살아있어서 모순적인' 세상은 그를 너무나 간단히 짓눌러버렸다. 아직 세상과 비교하기에는 너무나 약한 자신을 생각하며 바인은 구역 질이 다시 토해지는걸 느꼈다. 광기가 어린 바인의 눈은 흑색이 아니었다. 회색으로 탁해져버린 흑색의 눈. 머리카락 역시 조금 흰빛이 섞여서 회색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분노처럼, 그의 증오처럼. 그는 이를 꽈악 깨물어 닫으면서 비릿한 쇠맛이 도는 이 끔찍함도 어지러웠다. 바닥에 쏟아진 죽어버 린 피에서 혈향이 요란하게 피어올랐다. "죽여버리고 싶군 그래…… 세상이 아니라 나를…… 큭큭. 제노사이더도 사멸하나? 우습군 그래. 시커멓게 죽은 피라니……" 세상이 증오스러웠다. 그리고 죽을것처럼 어지러웠다. 세상은 나를 버렸다. 그래서 나도 세상을 버리겠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죽여없애버린다! 나는 사멸시키는 존재 제노사이더! 존재를 죽여 없애는 힘을 타고난 벌레! 그 벌레의 법칙으로 나를 거부해버린, 나를 버린 세상을 먹어치우고 부수어 없애버릴테다! "그렇게 내가 증오스럽더냐! 그렇다면 죽여주마!!" 바인은 울부짖었다. 절규. 마음은 절규하지만 외면은 증오와 분노로 인해 미쳐버릴것처럼. 아니, 이미 미쳐버려서 검을 든채 사방에 사멸과 파멸을 뿜어내고 있었다. 자연의 힘은 전부 밀려 나가고, 오로지 트루 뉴트럴인 마나와 에테르만이 그의 주변에 존재하고 있었다. 기도 사실 트루 뉴트럴이지만 주변에는 생명이 있어서 기는 어느정도 생령기와 동화된 상태였던 것이다. 사멸의 힘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극살 보다는 극활이 더 강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누가 정했던가. 관념의 노예인 인간의 생각이 아닌가! 생명은 사멸로 사라지 고, 파멸은 생명으로 사라진다. 결국 물고 물리는 관계일 따름이다. 역천도 하늘의 이치건만 왜 마와 사를 없애려 든단 말인가? 결국 무극이고 결국 일원에서 태어난 하나의 이치일 따 름인 것을. 인간의 어리석음에 구역질이 이는 것을 느끼면서 바인은 다시 시원스럽게 피를 토해냈다. 시원스럽다? 아니. 오히려 무서울 정도였다. 증오로 불타오르는 그의 눈은 회색으 로 진하게 물들어 있어서 어제의 흑발은 전혀 연상할수 없었다. '옛날로…… 돌아갈수 없나.' 오직 이 생각만이 그에게 있어서는 지금 슬픔이었다. 깊은 슬픔. 그리고 증오. 그 상황에서 아련하게 떠오르는 환상은 자신의 동생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과거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 다. 오로지 그 이미지만이 지금의 고통에 절어있는 바인에게 밝은 미소를 띄워올릴수 있었 다. 바인은 미소를 짓고 있다가 주변의 모든 생명에 혐오감이 이는 것을 느꼈다. '날 버렸나?' 바인은 이를 악물면서 바닥에 꽂은 허검과 공검의 손잡이를 꽈악 잡아쥐었다. 오로지 이것 만이 사멸과 멸살을 부른다. '나를 타락시켰나?' 바인은 천천히 전신에 내재된 사멸과 붕괴의 힘으로 주변 공기를 모두 생명에 위협적인 것 으로 바꾸었다. 그도 생명이지만 본질은 제노사이더. 학살자이며 멸살자다. 그는 모든 생명 의 적이지만 세상의 이치에 있어서는 당연한 마지막 황혼黃昏. 그러나 생명. 살아남고 싶은. 어떤 것을 희생시켜서라도 이모탈리티를 희망하는 종족들은 결코 바라보고 싶지 않은. 도달 하고 싶지 않은 정해진 마지막. 바인은 무섭도로 이글거리며 피어오르는 사멸의 힘을 제어 하면서, 불꽃처럼 너울너울 일어나 광익의마저 혼탁한 회색으로 보이게 하는 그 힘을 더욱 더 끌어올리면서, 회흑색으로 불타오르는 동공. 그리고 회백색으로 너울거리는 머리카락을 세상에 들이 대며 외쳤다. "죽여, 없애주마. 반드시!" 121. 행성이 자전하면서 햇빛이 닿아오자 밝아진 헬리론드 영지는 서서히 그 활기를 되찾고 있었 다. 뭐 나름대로 권력 강한 인간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고. 이제 조금만 더 발전하게 되면 엄청나게 그 위명을 떨치겠지만 아직은 그렇게 발전하지는 않았다. 수도와 비교하면 처절할 정도로 초라하다. 이쪽 귀족부의 중심지인 대공의 영지와 비교해도 크기가 4배 이상 차이나 는 것이다. 물론 이곳도 제법 넓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초라함이 감추어지는 것은 아니 었다. 알 수 없는 인물이 잠시동안 광기의 달빛 아래 환상같은 춤을 선보이고, 바인이 그 극 상의 검무를 펼쳐보였던 완만한 능선 위도 서서히 빛무리에 잠겨가고. 그 빛무리 가운데에 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쩐지 몸집이 상당히 작다는 느낌이 드는데 은은한 푸른빛이 도는 로브로 몸을 감추고 있 었고, 짐은 가벼운, 옆으로 매는 가방 정도였다. 하지만 저정도 체구의 사람이 지기에는 약 간 무리가 있어보이는데 문제없이 지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성별은 남자가 아닐까. 남자가 아닌 여자라면 할말은 없지만. 어쩌면 가방은 의외로 가벼울지도 모른다. 마법이 걸려 있다 던가 아니라면 짐이 별로 없던가. 아니라면 저 인간형의 생물체가 인간이 아닌 이종족일 경 우도 염두에 두어야겠지. 그인지 그녀인지 알수 없는 존재는 느긋하고 가볍고 완만한 동작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 다. 은은한 푸른빛이 도는 로브를 천천히 걷어내리고 드러나는 얼굴은 참 의외였다. 남자라 기에는 얼굴선이 지나치게 가늘지만 여자라고 보기에도 조금 특이한 분위기. 귀에 걸린 이 슬방울 장식 형의 푸른 수정의 피어스는 오직 하나일 뿐이지만 살짝 늘어뜨린 것이 은빛과 푸른빛이 아주 잘 어울렸다. 피어스는 은銀에 푸른수정을 쓴 것 같았는데 왜 피어스를 은으 로 했는지는 알수 없었다. "인구 수가 많아보이는데…… 뭐 그러니까 괜찮겠지." 목소리는 매우 맑았지만 옥타브 구별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하긴 15세가 조금 덜 되어 보이 는 느낌의 가는 선의 외모인데. 뭐 이런 미인이라면 아직 변성기도 아니고 심한 차이는 없 었다. 이정도 미형의 인물이니까 그런 것이겠지만. 그러고보니 특이사항은 더 있었다. 금빛 이 은은하게 섞인 주홍朱紅의 머리카락은 스타일 자체는 상당히 소녀같은 느낌이었지만 묘 하게 분위기는 남성적이었다. 그러니까 미소년인지 미소녀인지 전혀 알수 없다는 이야기였 다. 성대도 전혀 튀어나온 느낌이 없었고…… 어쨌든 금빛이 섞인 주홍의 머리카락 밑으로 보이는 눈은 묘하게도 청색과 녹색이 제대로 섞이지 않은 듯한 청록색의 눈동자였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깊고 맑으면서도 짙은 느낌의 블루 사파이어 같고, 어떻게 보면 너무 탁도가 크지만 영롱한 빛의 그린 에메랄드 같은 느 낌의 묘한 눈동자였다. 분위기에 더해진 그것은 남성적인 느낌을 더해주어서 여성적인 면을 상당히 가려주었지만 그래도 미인은 미인이다. 또 미인이란 말인가! 그는 가방을 내렸다. 그리고 나서 가방에서 천천히 무언가를 꺼내들었는데 그것은 류트Lute 로 보였다. 류트로 보기에는 좀 그런 것이 현이 8개라는 것이었다. 앞의 일곱 개는 그렇다 쳐도 다른 한 개는? 뭐 그거야 소유주가 잘 알고 있겠지만…… 그 소유주는 가방을 잘 챙기 고 손에 그것을 살짝 올려 든채 가볍게 새하얗고 긴 손가락을 들어 현을 진동케 했다. 그런 데 류트의 현은 의외로 정말 질기고 금속이 섞인 경우가 많은에 그런 위험한 물건을 저런 연약해 보이는 손가락으로 진동시키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은 여전히 희고 부드러 운 느낌이었으며 붉은 자국도 없었고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으음. 뭐 괜찮네. 그럼 월담해 볼까?" 그리고 그는 빠르게, 아주 빠르고 부드러운 동물적인 느낌이 강한 속도로 움직여서 흐릿하 게 사라져버렸다. 놀라운 스피드였는데, 은은하게 번져나오는 파동은 그가 기氣 능력자임을 알수 있게 해주었다. 바닥에는 고작 서 있던 발자국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동방에서 보아도 대단한 경신술이라 칭찬받아 마땅할 재간이었다. 경신술이란 몸을 가볍게 한다는 것 인데 이 경우는 아예 날아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사실 인간이 기 능력을 쌓는것보다는 타 종족이 쌓는게 더 무섭다. 물론 인간이 더 소드 마 스터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건 또 종족성 문제…… 결국 이종족에서 그정도 고수가 나오 면 좀더 강해지는 것이다. 오거가 환골탈태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엄청난 괴물이 나오겠 는가? 인간만 기 수련을 할수 있는건 아닌 것이다. 트롤이 환골탈태해서 재생력을 두배나 더 같게 된다고 생각해보면 곤욕스러울 정도고 드래 곤이 환골탈태한다고 생각하면 절망부터 느껴진다. 뭐 드래곤이야 마나를 더 잘 다루지만 그들이 단전으로 쓸만한 드래곤 하트에 기와 마나가 공존하지 못하는건 아니다. 오히려 드 래곤의 선천내재기운은 드래곤하트에 집결되어 있으면서도 전신에 퍼져있는 것이다. 그러니 까 드래곤이라고 검술 못배우란 법은 없었다. 폴리모프가 아닌 트랜스포메이션으로 배우게 되면 더 쉬우려나(폴리모프는 존재적 육신을 아예 바꾸지만 트랜스포메이션은 드래곤 자체 능력으로 본질은 그대로다.)? 어찌되었든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금부터 중요한 것은 그가 대체 누구냐 하는 것이 다. 이유는 그의 종족이 무엇인가에 있다. 바인은 이제 후드를 다시 쓰고 있었다. 짜증이랄까. 어둠속의 변화는 그의 퇴폐적이고 염세 적이며, 인간 혐오적인 분위기를 더더욱더 짙게 만들었고. 그것은 어비스Abyss. 죽음의 심 연보다도 더 유혹적으로 다가왔다. 나락은 대단한 금기고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금기에 대한 갈망으로 다가온다. 호감보다는 후에 집착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큰 위험하기 그지없 는 분위기인 것이다. 그것은 외모에 더해짐으로써 커지고 그래서 후드 하나로도 충분히 그 사멸에의 유혹은 반 이상 무효화되었다. 하지만 어둠에 사는 존재들의 카리스마 같은 그 느낌은 결코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무의 식적으로 거리를 지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는 것이리라. 휴대식량을 구입하고 (야채를 데쳐 간다음 말려서 어느정도의 비타민을 얻을수 있게 한 것들이나 육포따위등.) 그 는 책을 구하기 위해 서점을 찾고 있었다. 귀족가에 신세지는 짓거리는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고 그들의 도서실에는 틀림없이 쓸데없는 책들만 그득하다. 왜곡된 서적들 말이다. 차라리 직접 보면서 찾는게 백배 나았다. 귀족가 도서실 따위에서 얻을만한 지식들은 이미 바인의 머릿속에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그나저나 유혹적인 죽음의 향기는 공포도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감히 일부 있는 소매치기 나 몇몇 눈심 있는 도시의 삼류 깡패들은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저런 기도를 별로 생각없이 자연적으로 발산시키고도 주변에 오히려 위험을 던져줄만한 존재라면 괜히 건드리지 않는게 좋다. 바인은 어느새 도시의 중앙에 있는 분수대에 나와 있었다. 분수대의 물은 아주 은근하게 뿜어지고 있었는데 바인은 그것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헤론의 분수대에 간단한 공정을 어느정도 집어넣은 너무 간편한 구조였으니까. 그나마도 마 법적 힘을 조금 가하지 않았다면 너무 간단해서 보기에 짜증날 정도였으리라. 분수대에 걸터 앉으면서 바인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봉인계의 하늘보다 이곳의 하늘은 매우 맑디 맑았다. 푸르르기 그지없는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들은 묘하게 느낌이 봉인계의 하늘과는 달랐다. 뭐 구름이 다 그게 아니냐 할지도 모르지만 바인은 그래도 그렇게 느끼고 싶었다. 그정도도 못느낄만큼 감정이 죽어버렸다면 그건 자신에게 너무 비참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게 될 테니 비참하기 그지없는 것일까.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디리리링― '음?' 바인은 문득 갑자기 들려오는 류트 소리에 뒤를 바라보았다. 류트 음향이라기에는 좀 그랬 지만. 훨씬 더 부드러우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거칠다. 그러나 방금 가볍게 튕겨본 탄주만 으로도 매우 익숙한 음이라 실력을 짐작케 했다. 그는 자신처럼 후드를 눌러 쓴 인물이 또 하나 분수대에 걸터 앉아 있음을 보고는 실소했다. 그는 그러나 곧 후드를 걷었고, 바인은 별로 동요하지 않았지만 괜히 이방인에게 시비 걸만한 쓰레기들은 회가 동하는(?) 모습이었 다. 이 세상은 빛이나 축복에 가득찬 세상은 아니어서 추잡하게 노는것들은 얼마든지 널리 고 널려있었고 그래서 바인은 불쾌함을 느꼈다. 금빛이 어린 주홍빛 머리카락을 잘 정리한 그는 곧 느긋하게 류트로 보이지만 아닌 8현금을 튕기기 시작했다. 탄주 솜씨는 참으로 훌륭해서 바인도 잠시 흐릿한 미소를 지으면서 노랫 가락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부드럽게 다가왔다가 은은하게 멀어져가는 8현금의 멜로디는 길 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손쉽게 발걸음을 붙잡은 그는 새하얗고 길다란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현을 아주 유려하게 퉁기고 있었다. 이미 손가락 하나 하나의 움직임이 '퉁긴다' 는 간단한 동작으로 서술되기 힘드리만치 흐르듯 움직이면서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예 술적인 움직임을 선보이자 바인은 내심 감탄했다. 금빛의 날개를 지닌 나비 한 마리가 흐르는 푸르른 수정같은 물길 위에 내려앉았다. 수정의 물길 위로 은은한 파문이 밀려 나가고, 나비는 금빛가루같은 물무리를 박차고 오른다. "?" 바인은 문득 뇌리에 명령하듯 떠오른 이미지에 움찔 했다. 잘은 모르지만 이건 마법적인 힘 이 조금 가미되어 있는 것 같았다. 동방식의 섭혼술이나 바인이 사용하는 절망의 이미테이 션 플레인을 만들기 위한 뇌의 직접 자극같은. 그만큼 강하지는 않았지만 순간 눈앞에 그런 사진을 들이대는 것 같은 환상을 만들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바인은 눈앞의 인물에 호기 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보통솜씨가 아니군. 마법적이긴 하지만 이미 이 주변 자체를 마나스트림으로 제어해버리고 있어. 그 다음 환상을 더해주는건가? 대단한 환술사幻術士로군. 저정도 솜씨라면 환상 계열 에서는 어느 누구도 따라가기 힘들겠군. 인간이 아니라면 몰라도…… 만약 인간이 확실하다 면 저 나이에 환술의 극치에 이른 마법사로 널리널리 알려지겠지.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또 모르겠지만.' 바인은 그를 보면서 한숨을 토해냈다. 그나저나 솜씨 좋군. 눈을 아주 부드럽게 감고 이완된 듯한 표정으로 빠르게 이미지들을 전달하며 안그래도 환상적인 탄주 솜씨를 더더욱 극치로 이끌어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환상으로 빠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신기에 가까운 솜씨와 환술의 더해짐도 결코 음험하고 사악한 상념의 차단은 성공시키지 못한 모양이었다. 바인의 귓가에 이런 말이 들어온 것이다. "이봐. 저녀석 최상등품인데? 저정도인데다가 저런 솜씨도 있으면 물건이잖아?" "비싸겠는데. 큭큭." 바인의 안색이 급변했다. 인간에 대한 혐오와 증오로 일그러진 표정. 그러나 후드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가려주었고. 바인은 싸늘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천천히 건 세이버를 뽑 아들었다. 바인의 귀는 너무나도 예민해서 그 조용하게 속삭이는 소리를 눈치챈 것이다. 바 인의 안색은 서늘함으로 바뀌었고, 노래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 움직임도 발 견하지 못할것임을 확신한 그는 시동어를 읊었다. "블링크Blink. 더블Double." 저 골목 쪽으로 바로 블링크한 바인은 노한 얼굴로, 당황하는 두 '인간'을 향해 건 세이버를 휘둘렀다. 단숨에 치익 목을 긋고 지나간 건 세이버는 전혀 피 묻지 않은 시린 검날을 번뜩 였다. 그리고 그 후 곧바로 검집으로 되돌아갔다. 번뜩이며 그어진 호선은 예리한 살상력을 그대로 여과없이 부여해 생명의 목줄기를 따버렸고 그것은 금방 죽음으로 이어졌다. 바인은 경멸어린 표정으로 천천히 후드를 벗으면서 경악과 당황이 서린 얼굴로 널브러진 즉사한 두 시체가 피를 울컥울컥 토해내자 써늘한 비웃음을 그리면서 천천히 캐스팅을 시작했다. 그러 나 5초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완성한 것이었고, 수인과 촉매가 더해졌기 때문에 8서클인 이 마법도 빠르게 시전되었다. "디스인티그레이트Disintegrate. 더블Double." 체이닝 마법이 아닌 더블은 체이닝 마법보다 한서클 낮아서 3서클에 있는 마법이지만 아주 유용해서 마법 발휘후에 바로 발동시킬 수준이 된다면, 정신력 소모도 감당할 수준이 된다 면 6서클에 올라 같은 6서클 궁극마법을 날린다음 다시 또 더블을 이용해 연차로 날릴수 있 었다. 블링크도 체이닝이 아닌 더블을 이용해 움직여 그들의 앞에 나타나 검을 긋고 바로 급속 풍화마법으로 그들의 시체를 완전히 분해시켜버린 것이다. 흔적도 없이 두놈의 사체는 사라져버렸고, 그는 냉랭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망언妄言을 함부로 입밖에 낸 대가다. 뭐 사실 저정도 환술사라면 마법도 제법 쓸수 있을 테니 너희같은 쓰레기들에 당할바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내손으로 처단하고 싶 었다." 바인은 싸늘한 미소를 걸었다. 사실 이놈들이 부모가 있건 모실 노모가 있건 상관 없었다. 가족중 착한 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런 말종이 죽어주는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기적이기 그지없지만 바인으로써는 수많은 이념이 부딪히는 사회에서, 자신이 분류하건대 쓰레기이고 실제로 남에게 해악을 끼칠 경우가 더 많을 이런 것들쯤 죽어봐야 세상은 눈 하 나 깜빡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 자리에서 사람 죽인 것을 후회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냥 적당히 기분나쁜척 하고 금방 넘어가버리고 대충대충 사는게 훨씬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따위 곳에서 무너져 봐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시작도 할수 없다. "큭. 이만 가야…… 음?"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것이다. 바인은 나름대로 자기 자신을 추스르느라 10분여 정도를 잡 아먹은 것이다. 그도 아직 감정이 남아 있었고, 이전에는 아주 선한 존재였다. 수동적인 존 재라는게 더 옳으려나. 바인은 문득 햇빛이 스며들어오는 골목에 그림자가 비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곧 금빛에 주홍빛이 뒤섞인 머리카락을 지닌 음유시인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한 인 물이 자신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 바닥에 핏자국은 남아 있 었고, 저정도 마법술사라면 충분히 디스인티그레이트의 흔적을 알아볼수 있었다. "다, 당신……" "뭐지. 환술사?" 바인은 조금 당황했지만 금방 무심함으로 돌아와서 싸늘하기 그지없는 냉기가 어린. 딱딱함 에 가까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놀란 눈으로 바인을 바라보다가 곧 싱긋 웃었다. 그 미소는 상당히 밝았다. "당신은 사람 목숨을 뭐라고 생각하지요?" 이런 말은 보통 화를 내면서 하는게 아니었나? 하고 중얼거려 보지만 뭐 개인 성격차겠지. 바인은 무신경하게 입을 열었고, 그 대답은 상대방에게 아주 통쾌함을 불러일으킨 모양이었 다. 금방 웃어대는 것을 보니. "자르면 피 쏟아지는 유기질덩어리." "……아하하하핫!!" 벽에 손까지 짚고 웃어대는걸 보니 어쩐지 불안하다. 곱게 미친(?) 마법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바인은 그러나 여전히 무심함만 가득한 눈과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바 래버린 회백색 머리카락이 사르륵 하고 흘러내리고, 회흑색 눈은 무심함을 싣고 그를 바라 보고 있었다. 한참을 웃어대던 푸른 로브의 소년은 곧 눈물이 맺힌 눈으로 일어났다. "하아. 나도 조금 손을 봐주고 끝내려고 했는데 당신은 아주 쉽게 죽여버리는군요. 이건 고 맙다고 해야될지아니면 화를 내야 될지 모르겠네요." 바인은 그의 말에 고소를 살짝 입가에 머금었다. 저녀석도 들었나? 그렇다는 말은 상당히 단련된 존재라는 말도 된다. 가느다란 몸이지만 바인도 그것은 마찬가지. 어저면 저녀석은 인간이 아닐지도 몰랐다. 바인은 어디까지나 신적 영성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존재지만 저 쪽은 확실히 이종족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바인은 9서클에 올라 얻은 본질을 보는 눈을 열었다. 정신력 소모가 꽤 되서 막아두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잠깐 열었다가 그 눈을 닫은후. 바인은 조금의 경이가 서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새침한 표정이 된 그는 바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인간이 아닌가?" "그래. 난 인간이 아냐." 말투도 확 바뀌어 있었다. 그나저나 진리의 눈을 순식간에 느낄 정도면 아무래도 확실히 인 간은 아니다. 6서클 마스터쯤 되는 솜씨를 지닌 것 같았는데 역시 그런가. 바인은 무심함이 가득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인간인 당신은 그 강대한 힘으로 날 죽일테지?" "나도 인간은 아니니까 상관 없겠지. 나와 같은 이방인이여." 바인은 여전히 톤의 변화가 없는 목소리로 말했고. 그인지 그녀인지 알수 없는 엘더 라이칸 스롭은 그를 살짝 노려보면서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서 바인의 피부를 쓸어보 더니 약간의 향기를 맡는 것 같았다. "아냐, 당신은 인간이야. 향기가…… 어랏?" 바인은 몸에서 은근히 사멸의 힘을 뿜어냈고, 그것을 감지한 듯 생명인 이상 당연히 느끼는 죽음에의 공포를 느낀 그는 사색이 되어 물러났다. 질겁한 표정. 바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화는 나지 않는다. 알수없군. "다, 당신…… 방금 그것 뭐야?" 바인의 몸에서 일순간 연기처럼 너울너울 피어오른 사멸의 힘은 생물로써는 감히 공포를 느 끼지 않을수 없는 거대한 위엄. 제노사이드는 누구에게나 공포다. "사멸이 본질인 생물도 있나. 있다면 아마 나와 같은 타입이겠지. 그러고 보면 나는 프로토 타입인가?" 바인은 중얼거리면서 놀람이 가득찬 얼굴의 그를 바라보았다. 과연 어떤 반응일까. 으음. 역 시 거부일테지. 그는 생명이고 당연히 죽음의 힘은 거부해야 마땅하다. 사멸과 파괴의 힘을 본질로써 지니고 있는 바인은 견디기 힘든 강력한 존재적 영성이고 그 사멸의 힘은 창세의 끝에 다름이 아니다. 바인은 제노사이더였고, 저쪽은 이종족이고 라이칸스롭이긴 하지만 생 명이다. 과연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하아. 인간이 아닌거였어? 그럼 데미 갓Demi God 같은 거라도 되나? 흐응. 그러니까 그렇 게 유능하구나. 하아. 나도 인간이 아닐거면 당신정도로 유능했으면 좋았을…… 뭐, 뭐야?" 바인은 웃고 있었다. 긁는 듯한 웃음. 즐겁다는 듯한 웃음은 상대방에게 상당한 공포를 가져 다 준 모양이었다. 벽에 손가락은 박혀들어갔다. 너무나 쉽게 푸스슥 하고 돌가루가 떨어져 내리고, 바인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폐가 조일정도로 웃었다. 우습군. 세상이 날 버리긴 했지 만 역시 세상이 버려버린, 빌어먹을 생명들이 거부한 어둠속에서 살아온 자들은 내 우방인 가. 적의 적은 우방이라는 말인가! "크크큭. 우습군. 정말로. 하하하하하!" 바인의 웃음은 밝았고, 그것은 도저히 사멸의 존재적인 자가 짓는 웃음으로는 어울리지 않 았다. 그래서 그 웃음은 상대방의 놀람이 가득한 얼굴을 결과로 유도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동시에 질린 것이다. 인간의 나약한 육신에 가두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우습게 벽을 손가락으로 뚫어버리고 있었다. 악력으로만 쉽사리 뚫어버리고, 그 후에 드러난 손은 돌가루가 좀 묻었을뿐, 손톱에 흠집도 나지 않았다. 바인은 키득거리다가 곧 워터 엘리멘탈 계열의 마법을 이용해 돌가루가 묻은 손을 씻어냈다. "재미있군. 라이칸스롭. 이름이 뭐지?" "이름을 물어 보려면……" "바인 G 워드. 그쪽은?" 자신의 이름부터 밝혀야지. 라고 말하려 했던 그는 바인이 입을 열어 인터럽트를 걸자 조금 부은 얼굴로 변했다. 정신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투정부리는 어린애는 아닌지라 금방 표정을 풀면서, 위엄어린 얼굴과 자신의 종족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서린 얼굴로 천천히. 또박또박 단어를 토해내어 의미를 바인에게 전달했다. "엘더 라이칸스롭의 마지막 후예이자 대륙 최고의 네크로맨서. 아라테온 풀 문 셀리버." 122. 바인은 그 말을 듣고 나서 잠시 눈을 가늘게 떴지만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 미소에 아 라테온은 움찔 했다. 바인의 아름다움이 퇴폐적인 것에서 밝은 미소로 인해 변화되자 가일 층 더 아름답게 보였기에 이종족인 아라테온이라 해도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라테 온의 예상과는 달리 바인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아예 희로애락이나 일체의 감정을 칼로 잘라 끊어내버린 듯 별로 동요는 없었다. 오히려 심 연처럼 차분하면서도 서늘한 느낌만이 다가왔을 뿐이다. 차분함을 넘어서 서늘함까지 느껴 지는 듯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인의 미소는 환했다. "……그런데 아라테온. 여기서 뭘 하려고 했지?" "응? 아, 이 영지에서 레서 라이칸스롭을 조금 만들어 내고 음기도 모으고 피도 상당부분 받아내고…… 몇마리 만들고 나서 내일의 만월에 음기를 모아서 그놈들을 레서에서 상위급 으로 탈바꿈 시키면 이성도 얻을테고……" 끝도 없이 나열하려 드는걸 손을 뒤흔들어 막아버린 바인은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고작 그 런 이유란 말인가. 어둠속에서 살고 있다는게 별로 기분나쁘지 않다는건가. 바인이 만약 아 라테온 같았다면 당장에 몰래 능력을 총발휘해 숨어든다음 바로 후작과 라시에의 목줄기를 물어뜯어 반 라이칸스롭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 후 이 나라의 수뇌부를 점점 라이칸스롭화 시켜버린다음 다른나라와 전쟁을 걸어버리면 서 인간들을 제노사이드 시켜버리는게 훨씬 더 생산적인 일일텐데…… "고작…… 그정도인가?" "차라리 국왕 목을 물어뜯지 고작 후작 하나 물어뜯는다고 나아질건 없잖아. 이 영지도 제 법 쓸만하지만 조금 구석지에 있어서 본거지로는 별로 안좋아. 병사도 없고." 바인은 피식 웃었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일단 이곳의 후작은 능력도 제법이고 인품도 좋고 명망도 있어서 그 후작을 라이칸스롭화 시킨다음 그 후작을 이용해 대공의 목줄기를 뜯고, 그렇게 점점 수뇌부를 라이칸스롭화 시킨다음 자신이 직접 움직여 이나라 동서남북의 대공 들을 모두 라이칸스롭으로 만든다음 중앙으로 쳐들어가고 자신을 왕족으로 위조시킨후 국민 을 대대적으로 속이면서 등극할수도 있었다. 뭐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아니, 이곳의 후작은 명망도 있고…… 능력도 괜찮으니 대공과의 단독면담도 어렵지 않다. 네가 마법적인 봉인을 걸어놓으면 마법사들도 눈치채지 못할테고. 그정도면 동서남북의 모 든 대공들을 휘하로 두고 너 스스로 숨겨진 왕족으로 신분을 위장해 이 왕국을 삼킬수도 있 는 것이다." "……뭐 하지만 지금은 준비도 안됐고. 내 휘하의 라이칸스롭들도 배울게 많아. 아직은 아 냐. 확실해. 내가 바인처럼 머리가 잘 돌아가는건 아니지만. 9서클 마법사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머리가 나쁘다고는 생각치 않으니까." "뭐 그렇다면. 내가 후작과의 만남도 주선해 줄수 있었는데 말이야." 바인은 피식 웃었다. 갑자기 대화가 왜 이쪽으로 흘렀지? 아라테온도 그쪽에 생각이 미친것 인지 실소를 흘린다. 바인은 인간이 아닌데다가 사멸의 존재인 자신에 대한 반응도 상당히 특이하다는 것에서 아라테온에게 상당한 호감을 지닌 것이다. 무엇보다 설연의 성격 일부를 닮은 아라테온은 아무래도 여전히 설연에게 집착하고 있는 바 인에게 있어서 호감의 대상이 아니게 될 수가 없었다. 바인은 그곳에 생각이 닿아서 한숨을 토해냈다. 이건 고칠수도 없는데. 역시 감정은 이성으로 제어하기 힘든 것인가. 둘이 스스로의 생각들에 조소하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순간 둘 모두 흠칫 하고 말았 다. 심상찮은 기운을 느낀 탓이었다. 이 공간을 음화시켜 버릴만큼 강한 음기가 순간 흐릿하 게 퍼졌다가 사그라진 것이다. 물론 그냥 저 멀리서 바람이 실어온 냉기나 약한 음기도 이정도를 줄수 있지만 두 능력자는 이미 어느 수준을 넘은 이들이었고, 순간 약하게 드러낸 냉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거대한 음기는 처절한 영혼의 절규, 고통, 분노, 증오만으로 뒤범벅 된 것이었다. 피의 향기 가 진하게 풍겨나오는 그 느낌에 아라테온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붉디 붉으면서도 아담 한 입술이 단단한 이에 짓눌렸지만 터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바인은 금방 무심함을 회복한채 음기의 진원지를 파악했다. 그리고 그는 곧 저 코발트 블루 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디 맑은 하늘에 아직 햇빛이 쨍쨍한데…… 눈이 부실 정도다. 아직 세상은 양적인 기운의 영역이다. "그런데도 뱀파이어가 날뛰는건가. 그것도 하급이 아니란 말이지." "상당한 음기인데……" 두 존재는 음기를 느끼면서 하늘을 바라보다가 저 뜨거운 열기를 복사열만으로 뿜어내는 엄 청난 괴물(?)의 빛에서 오히려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아라테온은 몸을 흠칫 떨었지만 바인 은 무심하게 혼연의 지팡이를 꺼내 의지를 보냈다. 순간 혼연의 지팡이가 쭈욱 길어지면서 길다란 떡갈나무 지팡이마냥, 원래도 평범했는데 마 치 시골 촌로가 짚을법한 형태로 변해버렸다. 뭐 떡갈나무 로드 정도로 보일 뿐이지만. 그러 나 그 진면목은 검강으로 수십, 수백번 내리쳐도 흠집이 갈까 말까한 특급 마법기인것이다. "이건…… 초대장인가." "아무래도 날 미행한 것 같은데……" 아라테온은 중얼거리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래도 그는 엘더 라이칸스롭. 감히 뱀파이어 따위의 저속한 종족이 꼬아낼만한 종족이 아니다. 자존심에 상당한 상처를 받았지만 이정도 음기를 뿜어내고 가볍게 제어할 정도의 뱀파이어라면 거의 퍼스트 블러드First Blood에 근 접했거나 그보다 한단계쯤 낮은 괴물중의 괴물이라 8서클 마스터 정도가 아니면 상대하기도 힘들었다. 아라테온이 강하기는 하지만 뱀파이어를 쉽게 잡을수 있는 이들은 에테르를 조종할수 있는 마법사와 대사제보다 더 강력한 신성력을 보유한 신관 정도였다. 아무리 아라테온이 강력하 기 그지없는 네크로맨서라지만 만약 강력한 언데드들을 일으키게 되면 도시에서 좋은 꼴 보 겠다. 거의 괴수 대결전(?)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바인은 그것을 보면서 '괴수 영화를 찍는군.'하고 중얼거릴만한 세기의 대 결전이 될 것이다. 적은 아마도 수가 상당하긴 하겠지만 스물 이상은 못되고, 아마 10에서 20 사이쯤 되는 수 자이리라. 레서 뱀파이어 따위의 이성 마비된 얼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수로 때울만큼 멍 청한 적도 아닌 것 같았고…… 그러니까 소수(?) 정예들만 데리고 다닐 테지. 아마 그들은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아서 일곱에서 여덟 이상 까지는 아라테온이 전부 감당할수 있겠지 만 거기에 서넛만 더 들어가도 아라테온은 치명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네크로맨서라고 좀비나 언데드만 다루라는 법은 없다. 아라테온 정도의 네크로맨서라면 나 이트 셰이드Knight Shade 중에서도 로얄 가드Royal Guard급에 이르르는 것들도 별 제약없 이 서넛 이상 소환해서 쓸수 있을 것이고 팬텀 스티드Phantom Steed나 스펙터Spector들도 다량 소환하는게 가능할 것이다. 전부 다 언데드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이니까. 비록 네거티 브 플레인의 주민이라 할지라도 언데드이기는 마찬가지다. "가봐야겠군. 후작가에 신세도 졌으니 이번 기회에 갚아버리고 가는게 좋을까." 내심은 또 달랐다. 아라테온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돕는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호기심이랄까? 아직 완전히 모탈의 테두리를 벗지 못한 그였기에 호기심은 아직 그의 행동을 움직이는데 효용을 발휘한다. 아무리 감정이 죽어도 호기심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공포조차 이기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강력한 것이 바로 인간의 호 기심이었다. 뭐 그 호기심으로 모든 것을 다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으음? 도와주려고?" 아라테온이 먼저 설명한 그것을 지적했다. 그리고 인간이니까 호기심도 있을것이고 마법사 니까 탐구심도 크겠지. 하고 생각한 것이다. 바인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면서 천천히 후드 를 덮어 썼다. 그리고 소매까지 쏟아내려 지팡이를 잡은 손끝까지 다 덮어버리더니 아주 천 천히, 그러나 물 흐르듯 부드럽게 걷기 시작했다. 수상화엽신법水上花葉身法였다. 공력은 없 지만 오의가 담긴 걸음은 소름끼치도록 부드럽게 흘러간다. "아. 그 몸놀림 대단한데? 정말 마법사 맞아?" 아라테온도 흘러가듯 유유하지만 매우 빠른 바인의 몸놀림과 비슷하지만 그냥 걷는것처럼 보이는 속보로 따라오며 질문했다. 역시 둘다 이미 인간의 이해 범주를 한참 벗어나버린 강 력한 존재들이라 숨결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바인 역시 걸으면서 체력회복이 가능한 괴물이 었기에 별로 호흡 곤란 없이 대답했다. "글쎄…… 그냥 발 놀리는 법이지……" "헤에? 검사들이 배운다는 그것?" "좁은 범위에서 검을 휘두르기 위해 배우는게 아니라 장거리 이동을 위해 배우는 수법이다. 기를 다룰수 있다면 몸을 가볍게 할수 있겠지만……" 아라테온은 혀를 내둘렀다. 바인의 지금 흐름만 원형으로 바꾸어주면 소드 마스터라 할지라 도 검강이나 검기의 사용 없이는 옷자락도 베지 못할 터였다. 검풍 정도는 가볍게 빗겨갈 정도로 굉장한 신법을 바인은 무리없이 구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상화엽신법은 청심문 비 전의 신법중 하나지만 공력 없이는 다만 장거리 운신법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밤에 찾아가는게 예의가 아닐까." 아라테온의 말에 바인은 고개를 저었다. 바인은 아라테온이 왜 그러냐는 듯 바라보자 입을 열었다. 매우 합리적인 말이다. "낮에는 그들의 힘이 약해진다. 차라리 그때 목을 쳐버리는게 낫지. 밤에 강해지는건 너나 그들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난 역시 낮이 조금 더 편하다. 물론 깊은 밤이 되면 귀찮은 시선 을 피할수 있지만…… 차라리 지금이 더 낫다." "하지만…… 그래도 정당한게 낫지 않아?" "그런 것 따질만큼 난 명예의식이 없다. 너는 있다 하더라도 상황이 별로 좋은건 아니니까. 일단 후작의 집에서 얻어먹은 만큼은 해야겠지." "……그런가?" "영지의 시민들이 학살당하면 학살당할수록 눈치보게 되지. 차라리 알릴 사이도 없이 완벽 하게 쓸어버리고 훌쩍 떠나버리는게 훨씬 낫다." "헤에……" 아라테온과 바인은 둘 모두 후드를 덮어쓰고 얼핏 보기에는 몰라도 대단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빠르게 걷는 속도의 두배 정도지만 많은 이들은 그들의 유려한 몸놀림에 상당 히 놀라고 있었다. 달리는것처럼 보이지만 저 후드를 쓴 이들은 별로 지침없이 대화하면서 흘러가듯 움직일 따름인 것이다. 바인은 음기의 근원지로 가려면 지금 속도로 3, 4분쯤 걸릴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곤 조금씩 속도를 늦추었고, 아라테온 역시 그의 의도를 눈치 챘는지 속도를 줄여나갔다. 속도가 많이 줄어든 그들은 이제 걷고 있었다. 음기의 흐름이 느껴진 장소로 말이다. 길을 빠르게 걸어가면서 그들은 사람들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든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골목 몇 개를 통과해 금방 도시의 외곽중의 외곽으로 나왔다. 사창가 근처도 통과했기 때문 에 바인이나 아라테온이나 표정이 조금 굳어있었다. 바인은 조금의 불쾌함으로, 아라테온은 그저 무심함으로 지나쳐버렸다. 바뀐게 아닐까 싶었지만 인간 존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 는 바인으로써는 어쩌면 당연한게 아닐까? 바인은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외각 중의 외각이어서 사람조차 없는 거리를 지나며 몸 전 체를 음한의 기운이 스치고 지나간 것을 느낀 것이다. 아라테온 역시 그것을 느꼈고, 그들은 풍부한 지식을 기반으로 추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네거티브 에너지Nagative Energy가 이 주 변에 막 형태로 이 외각 한 블록을 통째로 감싸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는 말 은 바로…… "이건 네거티브 에너지로 결계를 친 모양인데? 이건 상당한 수준의 결계인데…… 아마 소리 나 마력, 빛같은 파장도 모조리 차단되는 것 같아. 그냥 바깥에서 보면 그저 멀쩡하기 그지 없는 거리만 보일 뿐이겠지. 이 안에서는 8서클 마법도 마나 스트림이 새어나가지 않겠는 데? 대단해. 마법사용에도 제한이 없는 것 같고……" 아라테온이 혀를 내두르며 그렇게 중얼거리자 바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 말은 이 근처에 적들이 숨어있다는 말이었고, 바인은 곧 정신을 집중해 주변의 마나스트림을 느껴나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마나스트림이 거슬리는 곳을 찾아낸 그는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 와서 천천히 손가락을 부비면서 중얼거렸다. "……있군. 이 근처를 통째로 구입한 것 같은데. 임프로브드 선 레이Improved Sun Ray! 타 겟 록 온Target Lock On. 오브젝트Object는 네거티브 코어Negative Core!" 바인은 짤막하게, 캐스팅없이 바로 6서클의 임프로브드 선 레이를 날려보냈다. 세가닥으로 나뉜 백열광 세가닥이 쏘아져나가 휘어져 3층 건물 사각으로 파고들었다. 다른 하나는 바인 의 바로 앞쪽으로 직진하다가 왼쪽으로 휘어져 뭔가를 관통했고, 다른 하나는 하늘로 쏘아 져 올라가서 무언가의 심장을 꿰뚫었다. 바인이 타겟 록 온을 건다음 오브젝트를 음기의 집 약체로 바꾸어서 쏘아보낸 것이 적중한 것 같았다. "끄아아아악!" "크아아악!" 바인은 무심한 눈길로 투명술이 풀린 두 시체와 저쪽 사각에서 뭔가 쓰러져 부스러지는 소 리를 들었다. 눈앞에 존재하는 두 시체는 검은 옷만 남기고 강한 빛 덩어리에 심장을 관통 해서 즉사한채 재가 되어 사라졌다. 바인은 흡혈귀. 뱀파이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음 기의 덩어리. 다시말해 뱀파이어의 피가 가장 많이 몰린 심장에 양기덩어리를 쏘아보내 코 어와 모아둔 생혈력을 박살내 버린 것이다. 강력한 흡혈귀였지만 역시 바인에게는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기습이니까. "으음. 즉사랄것도 없군. 그냥 회귀인가. 선라이즈Sunrise!" 바인은 느끼지 못한 것들이 있나 싶어서 일단 5서클의 태양광 방사 마법을 사용했다. 주변 의 태양광을 끌어모아서 찬란한 빛을 섬광처럼 터뜨려버린다음 뭔가 타들어가는 소리같은 것들이 들리지 않자 곧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 짚으면서 눈을 감았다. 아라테온은 한숨을 토 해내며 바인을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다. 저렇게 간단하게 잡아 죽이다니. 아라테온도 고작 하늘 위의 딱 하나만 발견했는데 어느새 전부 다 느끼고 죽인 것이다. "……환영인사가 별로 화려하지 못한데? 블러Blur!" 그는 자신의 몸에 마법을 걸면서 몸을 살짝 빙글 돌렸다. 순간 바인의 몸의 경계선과 몸 자 체의 빛들이 산란하면서 부연 안개에 뒤섞인 듯 그 윤곽과 거리를 흐트러뜨렸고 쏘아져 들 어오던 대거 하나는 피해도 맞는 궤도였음에도 빗나가서 로브 자락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 바인은 혀를 찼다. "이런, 피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내 로브가 고급 마법기라는걸 잊어버렸어. 여기서 갑자기 그래비톤 오버Gravtion Over! 50배!" 쿠우우우우― 중력 50배면 무게가 50배로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뱀파이어. 흡혈귀는 달과 밤에 힘이 강해 지고 실제로 물리적인 힘도 강대하기 그지없다. 피를 마시면 파실수록 그것에서 힘을 얻어 나가는 것이다. 하급 레서 뱀파이어만 하더라도 돌벽을 주먹으로 몇번 치면 부수는게 어렵 지 않은 괴물들이지만 중력 자체로 몸이 50배 이상 무거워 지면 만약에 움직인다 하더라도 그 속도가 어떠할지는 다 알수 있다. 인간이 맞게 되면 순식간에 짜부라져 박살나 버릴것인 데, 뱀파이어 역시 그것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모양이다. "크윽!" "크악!" 아까보다는 조금더 강한 뱀파이어들인 듯, 정면에서 빠르게 다가오다가 바인의 강력한 중력 마법에 의해 바닥에 볼썽사납게 내리찍힌 것이다. 아직 판박이 되지는 않았지만 견디지 못 한다면 프레스에 찍혀버리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다. 그들로써는 저 중력이 증대된 공간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무리인 것 같았다. 그러나 갑자기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중력 마법이 사용된 구간에 마법이 작열한 것이다. "안티 매직 셀Anti Magic Shell!" "이런……" 바인은 혀를 차면서 붕괴의 힘을 끌어올려 자신의 앞에 짤막한 검신 형태로 여러개 배열한 다음 날려보냈다. 그것들은 안티 매직 셀에 맞은 즉시 안티 매직 셀을 완전히 붕괴시켜버렸 고, 곧 안티 매직 셀도 해체되었다. 바인은 이미 무효화 되버린 중력마법이 아까워서 그런지 마법이 아닌 자신의 본질에서 나는 원천의 힘으로 안티 매직 셀을 파괴한 것이다. "블레이즈 파이어 볼Blaze Fire Ball!" 마법사는 이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위 뱀파이어 답게 몸을 추스르며 일어난 그들은 바 로 블레이즈 파이어 볼을 날린 것이다. 강화 파이어 볼인 6서클의 블레이즈 파이어 볼은 그 냥 파이어 볼이 아니라 거의 직경만으로도 사람 두, 셋은 삼킬만한 크기에다가 청색과 노란 색이 섞여서 기묘하게 타오른다. 그 열기 만으로도 무시못할 만큼 강해서 사용자도 괴로울 정도였다. 그 복사열만으로도 가뿐히 용암은 넘어버릴 파이어볼 한방. 사실 이걸 확장형으로 뿜어내버리면 영지 반은 박살날 터였다. 바인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블레이즈 파이어 볼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저 파이어 볼을 충 격파 없이 간단하게 제거해 버리기 위해서는…… "베이컨트 플레인Vacant Plane!" 바인이 수인을 맺고 시동어를 외치자 곧바로 블레이즈 파이어 볼과 그 뱀파이어들 주변의 공기가 밀려나가며 진공상태로 변화했다. 아무리 마나를 삼키고 타는 불꽃이라지만 블레이 즈 파이어 볼도 결국 질료 없으면 오랫동안 탈수 없다. 과연 그 위력이 급감하면서 노랗게, 그리고 점점 붉게 변화하며 이제 주황빛으로 타오르는 파이어 볼을 보면서 상대쪽에서는 당 황하는 것 같았다. 화르르르륵. 블레이즈 파이어 볼은 곧 빠르게 날아왔지만 조금씩 크기가 줄어들고 그 불꽃의 색도가 붉 은색으로 잦아들더니 바인이 가볍게 붕괴의 힘을 덩어리로 만들어 날려보내자 순식간에 흩 어져 버리면서 사라졌다. 그때 저쪽에서는 한참 주문을 영창하더니 곧 시동어를 토해냈다. 저 건물 위쪽에서 새하얀 냉기의 창이 쏘아져 내려온 것이다. "콘 오브 콜드Corn Of Cold!" 주변의 공기를 반쯤 액화시켜버리면서 쏘아져 들어오니 바인이나 아라테온으로써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몸이 조금씩 통제를 벗어나면서 옷자락에 서리가 달라붙는 것이다. 바인은 빠 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수인을 맺고나서 바로 콘 오브 콜드를 기상 천외한 방법으로 막아내 고야 말았다. 그렇게 고급 주문도 아닌 듯 캐스팅 타임은 존재치 않았다. "익스텐드 월 오브 아이스Extend Wall Of Ice!" 형태가 없는 냉기의 회오리치는 창을 같은 월 오브 아이스로 막아낸 것이다! 얼음이니까 더 얼어서 부숴질 염려도 없다. 액화된 공기를 끌어다가 넓고 두터운 확장형 월 오브 아이스로 만들고 아라테온이 자신도 모르게 외운 레지스트 콜드Regist Cold를 필드 형태로 펼쳐 바인 과 자신의 몸에 두르자 월 오브 아이스 자체에서 뿜어진 냉기는 금방 차단되었다. 쏴아아아 하고 쏟아지 냉기가 아주 넓은 얼음의 장벽에 맞고 흩어져 버리자 바인은 곧바로 월 오브 아이스를 제거한다음 아직 남아서 쏟아지는 냉기를 거스트 오브 윈드로 흩어버렸다. "그래도 춥긴 추운데." 바인은 서리가 달라붙고 하얗게 얼어서 옅은 회색으로 보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줌 들어 보이다가 그래도 부서지지는 않는구나. 하고 중얼거리곤 자신의 생체기관이 동파凍破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곧 혼연의 지팡이를 쓰다듬으면서 주문을 읊어 나갔다. 바인이 주문을 외울 정도면 대체 얼마나 고급 주문일까? 바인의 몸 주변에서 마나의 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마나 자체가 너무 광범위하게 움직이면 서 장벽을 형성하고, 또한 마나 재배열 자체가 마법진을 이루어내면서 거대한 마나장을 형 성하기 시작했다. 트리 디멘셔널 섹사그램을 통해 마력을 더더욱 증폭시키는 것이다. 캐스팅 타임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8서클이거나 크면 9서클 정도인 것 같았다. 바인은 빠르게 주 문을 마무리하고는 외쳤다. "임프로브드 블레싱 오브 솔라Improved Blessing Of Solar!!" 본래 성직자 주문에 가까운 이 수법은 마나를 에테르화 시킨다음 그 에테르에 강렬한 포지 티브 에너지를 부여해서 주변 공간을 생명체에게 아주 도움되는 강한 생명력과 양기로 가득 채운다음 강화된 태양광으로 쓸어버리는 마법이었다. 인간에게는 공격력이 없겠지만 만약 뱀파이어나 나이트 셰이드. 혹은 악마들이 맞았다면 당장 강제귀환되거나 소멸되어 버릴 정 도로 강력했다. 바인은 제노사이더였기에 그들 둘 주변에서만 생명력이 밀려나가면서 오직 양기만 뿜어졌 다. 아라테온은 라이칸스롭이어서 음기 쪽에 더 잘 어울리지만 그래도 고족 답게 양기조차 다룰수 있는 엘더 위어울프다. 그래서 둘 모두 전혀 피해없이 주변에만 태양의 축복을 가득 뿜어낼수 있었다. 성직자들이 봐도 놀랄만한 신성神聖한 기운이 너울너울 뻗쳐 올라가 오오 라처럼 타오르며 주변을 완전히 정화시켜버렸다. 곧 눈앞에 보이던 뱀파이어들이 깨끗하게 타들어나갔지만 저 건물 위쪽의 뱀파이어는 다크 쉘터 주문으로 간단하게 빛의 폭풍을 막아냈다. 바인을 중심으로 해서 물결처럼 밀려나간 양기의 파도는 거푸 날치면서 도시를 휩쓸어 나갔다. 주민들 모두가 경악하여 신성한 기운 이 가득한 회오리를 맞으면서 신의 이름을 외쳐댔다는 것을 알았다면 바인은 열받아서 바로 미티어 샤워를 쏟아버렸겠지만 듣지는 못했으니 그럴 일도 없었다. 임프로브드 블레싱 오브 솔라. 바인이 별로 좋아하는 주문은 아니었지만 자그마치 9서클에 속하는 대단위 정화마법이었다. 뱀파이어들에 의해 음화되어가던 공간이 새로이 양기를 머 금고 피어나고 있었다. 아라테온은 감탄해서 바인을 바라보았다. 만약 바인이 익스텐드 루틴 을 집어 넣었다면 도시 주변 거의 모두가 다 정화되었겠지만 확장 루틴은 빼고 캐스팅해서 위력은 8서클 중반 정도였다. 바인을 중심으로 하여 어마어마한 양기를 머금은 검날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면서 회오리 처럼 뿜어낸 양기의 파도는 정말 깔끔하게 뱀파이어들을 멸절시켜버렸다. 오로지 어둠의 장 막으로 막아낸 뱀파이어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이것은 빛을 질료로 뿜어내는 것이라 건물 내부나 지하에 있던 다른 뱀파이어들은 무사했다. 차라리 에테르 파동에 힘을 실어주었다면 타격을 줄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역시 이것은 빛의 성향이 더 강해서 5서클 정도의 암계 주 문 정도면 간단하게 막을수 있었다. 상성 문제인 것이다. "후우…… 메모라이즈 해놓기를 잘했군." 바인은 피식 웃었다. 다른 뱀파이어들도 다 죽었으면 좋았을텐데. 바인은 에테르 파동으로 좀더 힘을 전이시키는 방식으로 주문을 조금 고쳐보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곧 저 건물 위에서 날아내려오듯 움직이는 뱀파이어를 보면서 지팡이를 다잡았다. 123. "흐읍!" 바인은 오른손에 본연 기운을 모아서 응집시킨다음 허검虛劍을 뽑아냈다. 그다지 길지 않고 심플한 디자인의 검빛이 토해지면서 바인의 손에 단단히 쥐어진 순간 바인은 발을 옮기면서 그대로 검을 하방에서 상방으로 쳐 올렸다. 치이이익 하고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일어나 면서 검빛이 쳐 올라갔다. "포스 필드Force Field!" 상대방은 떨어져 내리면서 캐스팅을 한 듯 포스 필드를 쳤고, 바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허검 의 예기라면 포스 필드라도 쪼개버릴수 있을테지만 아마 육신을 베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 다. 바인은 붕괴의 힘을 검극에 모아서 덩어리지게 만들었고, 순간 검으로 촌경寸經. 투透를 시전했다. 빠르게 쏘아져 나간 검극은 붕괴의 기운을 포스필드와 맞부딪히게 했고, 순식간에 포스 필드는 와해되어버렸다. 콰앙! 산근과 세근을 조절해서 조화롭게 힘을 격발시켜 바인의 그 오거를 능가하는 완력을 검극에 집중시키자 거대한 화포가 발사하는 작렬탄의 힘을 모두 한군데로 집중시킨 것 같은 강대한 위력이 되어 공기를 폭풍처럼 밀어내며 강한 충격파를 형성했다. 그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 는 운석도 막아낸다. 아무리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가 아니어도 포스 필드인데 그 역장은 붕 괴의 힘까지 더해 종잇장처럼 뚫려버렸고, 순간 바인은 검극이 무언가를 찔렀다는 것을 느 꼈다. 그러나…… '얕다! 이런!' "크윽!" 피이잇! 바인의 후드 옆면이 길게 찢겨지며 바인의 볼에 실선이 그어졌다. 얼마나 빠르게 찔렀는지 핏방울이 팍 터졌지만 상처는 얕았고 바인은 재생력도 상당하다. 그래서 금방 상처는 회복 되었다. 바인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잘려나간 후드가 천천히 아무는 것을 바라보았다. 광익의 는 특급 마법기다. 그런데 그런 마법기가 아무리 얇아도 이렇게 쉽고, 예리하게 찢어놓다니. 뭘로 벤걸까. "쳇!" 상대방은 뒤로 휘익 물러났다. 마찰계수가 낮은 공기를 차고 뒤로 물러난게 아닌가 싶을 정 도였다. 상대방은 공중제비를 넘으며 아라테온이 이를 살짝 드러내며 그 라이칸스롭의 엄청 난 완력을 더해 품속에서 꺼낸 쇼트소드보다 조금 더 짧은, 그러나 매우 시린 예기를 줄기 줄기 토해내는 검을 휘두르는 것을 피해냈다. 그리고 아라테온이 빠르게 몸을 날리려는 순 간 단검을 한자루 날렸다. 바우우우웅! 아라테온은 무시무시한 완력을 더해 그것을 박살내버렸고, 곧 상대는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 어 뒤로 빙글 돌아 몸을 날려 자세를 잡았다. 길다랗고 맑은 흑발이 흩뿌려지면서 창백하고 가느다란 선의 미녀가 오른손에 세 개의 예리하고 작은 단검을 잡고 왼손에 팔뚝만한 길이 에 얇은 검 하나를 역수로 쥐고 당황함을 맑은 청색의 눈으로 그들을 주시했다. 바인은 그 녀가 지나간 자리에 묘한 향기가 느껴진 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에…… 포스 필드를 완력을 뚫고 미스릴 단검을 쳐서 부숴? 네놈들 괴물이냐?" "뱀파이어에게 괴물 소리 듣고 싶지 않아!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 아라테온은 검을 강하게 휘두르면서 외쳤고, 곧바로 공기가 압축, 산란되면서 빛을 뿜어내는 공기의 화살. 마력을 머금은 화살 여러개가 쏘아져 나가면서 뱀파이어에게 돌격했다. 상당히 장신에 역동적이고 매혹적인 몸놀림을 지닌 그녀는 유려하게 그것들을 왼손에 쥐어진 역수 검으로 쪼개었고, 마법검인 듯 간단하게 매직 미사일들은 쪼개졌다. "이봐! 그쪽이야 말로 괴물 아냐?! 아무리 마법검이라도 픽싱 타겟 기능이 있는 매직 미사 일을 잘라내다니!" "이 싸움이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다는건 당연한 일이다. 셋다 인간이 아니니까! 치열한 설전 舌戰은 필요 없어. 내가 비록 어둠의 일족이라 해서 무조건 사악하다고 편견을 가지는 멍청 이는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적에게 알량한 자비심을 가지는 얼간이기를 기대하지는 마라! 잡 설이 길었지만 디스파이어[絶望]!" 바인은 예의 절망을 날려보냈다. 바인으로써는 이정도 기습이면 걸리리라 주저 없었는데 갑 자기 그녀는 눈을 감더니 피에 마력이 흐르는 일족 특유의 마법저항력을 정신력을 증폭시킴 으로써 펼쳐내더니 그것으로 디스파이어의 스펠을 흐트러뜨린다음 바로 블링크를 걸어서 옆 으로 피해버리는게 아닌가! 바인은 그 놀라운 회피법에 충격을 받았다. "대, 대단하군!" 바인은 자신답지 않게 감탄하면서도 공검空劍을 소환해서 사멸의 힘과 붕괴의 힘을 동시에 일으켰다. 그러자 바인의 머리카락이 어지럽게 흩날리면서, 옷자락 역시 흩날리기 시작했다. 회흑색과 회백색의 불꽃같은 오오라가 너울거리며 피어오르자 아라테온도 기겁하면서 물러 났고, 바인은 아랑곳 하지 않으면서 공검을 휘둘러 붕괴의 힘을 번개처럼 뻗어냈다. "디스트럭션 볼트Destruction Bolt!" 짤막한 외침과 더불어 번쩍 하고 회색의 번개가 토해져 나갔다. 그 번개를 또 그녀는 기상 천외한 방법으로 막아내버렸다. 갑자기 등에 건 망토를 몸에 감으면서 바로 에테르 워프를 걸어버린 것이다. 바인은 눈을 크게 떴다. 아라테온 역시 입을 쩍 벌렸다. 번개를 피하다니! 아무리 인간이 아니라지만 바인조차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빛의 속도로 치고 지나가는 검 을 막을수 없는 것처럼 전광석화電光石火라는 말은 괜히 있는게 아니다. "저 망토는…… 설마 특급 마법기인가? 자유의 날개라는, 절대 회피를 보장하는 마법기가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저것이 바로?" 아라테온은 놀라서 중얼거리긴 했지만 전투경험이 많은 듯 바로 주저없이 마법을 사용했다. 다시 매직미사일을 쏘아 붙이면서 달려든 것이다. 바람을 가르는 늑대처럼 달려든 아라테온 은 바로 검을 휘둘렀고, 치잇 하는 소리가 나며 은빛 호선이 그려졌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부터 마법기를 제대로 활용하려는 듯 망토를 펄럭이며, 도저히 인간의 동작은 아닌것처럼 공간 자체에서 좌표를 미끄러뜨렸다. 인간의 신법이나 체술로는 절대 해낼수 없는 움직임. 좌표 자체에서의 공간계수를 일그러뜨린 것 같았다. "그렇다면…… 블랙 핀Black Pin!" 바인이 손가락을 튀기자 순간 어둠이 휘르르 하고 바람처럼 일어나면서 주변을 뒤덮었다. 뱀파이어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뱀파이어, 어둠의 귀족에게 암계 마법을 사용하 다니. 그러나 곧 그녀는 경악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둠의 장막이 빛을 완전히 차 단해 버린 순간, 어둠과 완전히 동화된 날카로운 물리력의 바늘들이 수십가닥 쏘아져 들어 와 전신을 멋지게 수놓아 버리려 들었기 때문이다. "프로텍트Protect!" 그녀는 수인을 맺고 바로 프로텍트 마법을 걸었다. 순간 어둠의 장막 자체를 촉매로 얇은 어둠의 막이 일어나 물리적이고 날카롭게 날이 산 바늘들은 티티팅 하고 튕겨져 나갔다. 바 인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인프러비젼이나 다름없는 눈으로 어둠속 윤곽을 바라보다 블랙 핀 을 해체했다. 바인이 정신을 제어하자 어둠의 장막이 씻은 듯 사라져 버리자 바로 바인은 어떠한 준비에 들어갔고, 잠시 침묵하던 아라테온이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무려 6서클 마법이라 아라 테온으로써는 캐스팅이 필요했다. "에어 드라이버Air Driver!!" 기이이이이! 순간 무게만으로도 사람 뭉개버리기 충분한 양의 공기가 뭉치면서 빛을 강하게 산란시켰다. 그리고 그것들은 빙그르르 돌아가면서 공기의 회전하는 송곳이 되어 주었다. 저것도 한발만 제대로 맞으면 트롤이라도 살이 말리고 관통되어 즉사할 위력이었는데, 그런것들이 자그마 치 십수개체나 되어서 뱀파이어도 상당히 놀라는 것 같았다. 바인은 그것들을 보더니 백팩에서 뭔가 촉매같은 것을 꺼냈다. 접은 종이였는데, 그것을 풀 어서 손바닥에 종이 안에 든 가루를 쏟고 나서 바인은 그 가루를 에어 드라이버에 뿌리면서 가루에 걸어놓은 불변不變의 마법을 해제시켰다. 바로 그 가루는 백린이었다. 마법적 제련을 거친 백린. 불변의 마법이 풀린 순간 억제당하던 백린은 공기의 회전하는 창에 말려들어가며 하얗게 타올랐다. 순간 아라테온은 에어 드라이 버를 날려보냈다. 이미 파이어 드라이버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불꽃의 소용돌이 치는 창은 쇄애액 하고 뻗어나 갔다. 그러나 과연 뱀파이어. 어둠의 귀족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종족은 어지간히 전투 경험 이 풍부한지 불리한걸 깨닫자 바로 블링크와 4서클의 드로우 파워Draw Power를 걸어서 남 빛의 망토를 반투명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남빛의 짙고 얇지만 냉기나 열기에 탁월한 저항 을 지닌 것이 확실한 마법기를 펼쳤다. 불꽃의 혀처럼 갈라지는 남빛의 망토는 이제 거의 타오르는 불꽃처럼 휘르르르 하고 공기와 부딪히고 있었다. 놀랍게도 망토의 숨겨진 기능을 뱀파이어가 이끌어 낸 것이다. 회피의 기 능에 강한 에테르 반발력이 존재하는 망토의 봉인된 힘. 강한 에어 엘리멘탈 제어의 힘을 끌어내서 순식간에 에어 드라이버를 역회전시켜 백린을 흩어버린 것이다. 백린의 타오르는 입자가 금방 꺼져버리면서 자그마치 6서클이나 되는 마법이 흩어졌다. 그러나 과연 바인이랄까. 이미 그는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2, 3초 정도 되는 짧은 기간이었 지만 설명은 길다. 이제 그의 로브는 과연 특급 마법기 답게 반투명한 순백색으로 타오르면 서 강렬한 백색광을 토해내고 있었다. 휘오오오 하는 소리가 어울리리 만치 아름다운 백색 광의 입자를 전신에 두른 바인의 머리카락도 너울너울 흔들렸다. 이미 후드는 벗겨진지 오 래였고, 바인은 짙은 회색 눈동자에 백색 불꽃같은 이미지를 투영했다. 그는 모든 스펙트럼 에너지를 융합시켜 모든 것을 소멸로 되돌리는, 거의 '빽빽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빛 입자의 폭풍우로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그 스펙트럼 디사이더 Spectrum Deicider를 광익의를 이용해 시전한 것이다. 아무리 특급 마법기라도 그 8서클의 스펙트럼 디사이더를 이렇게 빨리 쓸수는 없었다. 바인도 촉매, 수인을 모두 사용해도 7에서 8초 이상은 필요한 것이다. 바인은 주변의 마력을 끌어모아 로브의 힘을 활성화시키면서 자신의 마나로 부족한 양을 보 태서 위력은 7서클 정도에 확장형이 아닌 집중형의 스펙트럼 디사이더를 시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위력은 절대적이라 아니할수 없었다. 바인의 몸에서부터 뻗어나온 빛의 입자들은 가장 순수한 파괴의 악마가 되어 빛의 창이 되었다. 주변으로 쏴르르르 하고 한조각 한조각 거대하게 타오르며 순백색 플레어들은 한점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빛의 입자들을 철 가루로 생각하고 자석을 이용해 정렬시킨것만 같이, 그 순백색 플레어는 쉴새없이 공기중의 입자들을 폭발시키고 소멸시키면서 더더욱더 에너지를 증폭시켰다. 지반 은 쉼없이 진동하고, 그 망막을 태워버릴것만 같은 순수한 힘의 시각적 외침은 아라테온마 저 눈을 감게 만들었다. 그러나 바인은 눈을 감지 않았다. "가라! 빛의 낙인. 라이트 스탬프Light Stamp!" 쏴르르르. 하는 소리가 들린것만 같았다. 빛의 입자들이 마찰하면서 내는것만 같이. 빛들은 모조리 해일처럼 뱀파이어에게로 쏠려들어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창백한 그녀의 얼굴 이 더더욱더 하얗게 질리는 것 같았지만 역시 경험이라는 것은 무시할것이 못된다. 누가 봐 도 소멸해버릴것만 같던 그녀가 바로 그것을 막아내버린 것이다! 그녀에게도 특급 마법기라 불릴만한 것이 있었으므로! "드로우 파워! 더블 스펠Doble Spell! 언리미티드 아티펙트 파워Unlimited Artifact Power!" 그녀는 바로 힘을 이끌어내는 드로우 파워를 망토에 걸고 아직도 반투명하게 남빛으로 타오 르는 망토를 두갈래로 가른 상태에서 더블 스펠을 건다음 손가락에 낀 두터워보이는 반지 하나를 빼서 문지르며 언리미티드 아티펙트 파워. 아티펙트의 힘에 제한을 없앤다는 뜻만큼 엄청난 증폭마법을 걸었다. 자그마치 7서클로, 방금 그녀가 손가락에 낀 반지에 마력을 불어 넣고 격발시켜 파괴하기까지 하면서 그 수법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이 스펙트럼 디사이더에 박살나 버렸을 것이다. "아니!?" 아라테온이 경악하여 소리쳤다. "에테르 윙즈 크리티컬 스파이럴 볼택스Ether Wing's Critical Spiral Vortex?" 바인 역시 놀라서 중얼거렸다. 이 수는 정말 신묘하게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순간 자신과 망토의 영성을 뮤테이션시켜서 남빛의 불꽃같은 에테르 윙을 뽑아올린 다음 도약해서 몸을 강하게 회전시켰다. 그러자 피르르르 하고 묘한 소리가 일어나면서 에 테르 윙은 무서운 남빛의 반투명한 불꽃의 회오리 폭풍을 일으켜 빛을 절삭시키고 주욱 빨 아들여 하늘로 튕겨 올려버렸다. 수십가닥으로 갈라져버린 것 같은 에테르 윙이 불꽃처럼 소용돌이쳐 빛의 폭격을 모조리 무효화 시켜버렸다. "과연 특급 마법기군. 왜 특급 마법기의 종류를 보면서 서열을 결정하는 바보짓을 하지 말 라고 했는지 잘 알겠어." "쳇. 맞받기라면 어려워도 빗겨내기는 할수 있다는 건가!" 바인은 에테르 윙이 사그라들고 남빛의 망토가 다시 짙은 빛깔로 돌아오면서 그녀가 착지하 며 세 단검을 날림과 동시에 공격을 감행했다. 그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백팩에서 핸드 캐논 Hand Cannon을 꺼내서 그녀를 겨냥한다음 손으로 총신을 잡고 총열을 들이댄다음 사연속 으로 갈겨버린 것이다. 겨냥한 오른손으로는 방아쇠를 당기며 왼손으로는 장전을 한다. 핸드 캐논의 그 어마어마한 반탄력도 바인은 악력으로 간단하게 억눌렀다. 콰콰쾅쾅!! 쿠르르르…… 주변 건물들이 진동할 정도의 폭발음이 일면서 총열에서 노란불빛이 연이어 터졌다. 총신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싶겠지만 강화마법이 걸려있어서 별로 무리는 없었다. 풀메탈재킷의 탄 네발이 연이어 날아갔고, 바인은 이번 공격은 일단 피하기도, 막기도 힘들거라고 믿었다. 날 아오던 단검은 마력을 머금고 번뜩였으나, 아라테온이 단 한 번 검을 그어버림으로써 모조 리 박살내버렸고, 순간 단검들에서 열기가 뿜어져나왔다. 아라테온이 아차 하면서 바로 소매를 걷은다음 손목에 걸린 팔찌를 쓰다듬으면서 외쳤다. 주변의 마력을 무서운 속도로 빨아들이고 아라테온에게서도 부족한 마력을 보충한 팔찌는 찬란한 은백색의 빛을 뿜어내면서 둥그스런 방어벽을 형성했다. 마나는 급속도로 주변의 에 너지를 얻어 약동하는 분자나 원자들을 꽉 붙들어 음기를 얻어냈고, 그것은 실드에 흐르면 서 단검에서 뿜어져 나온 5서클의 플레임 버스트Flame Burst 연속폭발을 간단하게 막아내 주었다. 자그마치 6서클 후반부에 속하는 루나틱 실드였다. "루나틱 실드Lunatic Shield!" 부우우웅― 바인과 상대쪽 뱀파이어는 동시에 놀랐다. 얼핏 보긴 했지만 아라테온의 가느다란 오른손목 에 걸린 팔지 역시 특급 마법기! 대륙에서도 기보중의 기보라는, 거의 대부분의 방어마법을 가능케 해주는 수호의 팔찌였다. 요란한 폭발은 루나틱 실드의 방어력으로 간단히 차단되었고, 바인이 쏘아붙인 네발의 풀메 탈재킷의 탄도 블링크 한 번으로 무효화 되었다. 망토에 내재된 기능은 한두개가 아니라서 하루에 5번 연속으로 블링크 하게 해주는 기능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과연 특급마법기라 할 만 했다. "후우. 이거, 공격이 별 의미가 없군." "으음." 루나틱 실드의 은백색이 영기처럼 가느다랗게 변해 아라테온의 팔찌로 밀려들어와 깜빡이곤 사라져버렸다. 폭발음 때문에 떨어지는 소리가 묻혀버린 탄피들이 데구르르 굴러서 저 너머 로 사라져버렸다. 바인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뱀파이어를 바라보았다. 바인의 짙은 회색의 눈과 뱀파이어의 눈이 정확하게 마주쳤다. 뱀파이어는 기회라고 느꼈는지 바로 바인에게 뱀파이어 특유의 유혹. 이성을 트랜스 상태로 빠트리는 수법을 걸었다. 그러나 바인의 눈에는 살기만 넘실거릴 뿐이었고, 그래서 뱀파이어 는 잠시 저 바인의 아름다움을 더해 '여자인가?'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야 마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 전투는 상당히 소모적인 양상으로 접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제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 인데. 당연히 바인과 아라테온쪽이 90% 이상의 확률로 이길 터였다. 양쪽 진영 다 만만치 않다. 물론 숲이나 그런 곳에서 싸웠다면 단박에 끝났겠지만 바인은 지금 이 도시의 영주에 게 밥값을 하는 중이라 영지를 파괴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우습게도 참 골치가 아픈 이 소모적인 싸움은 간단하게 끝을 맺었다. "내가 그분의 신관이라서 어둠의 일족이라 해서 무조건 사악하다고 편견을 가지는 멍청이는 아니라지만 적에게 알량한 자비심을 가지는 얼간이는 아니…… 고 싶어! 젠장! 대단한 미인 이라 아깝지만 일단! 무한의 신! 절대자 아슈라스의 이름으로 턴 언데드Turn Undead!!" 묘하게 바인의 아까 대사와 닮은 말이 변형되서 튀어나오자 바인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지만 금방 놀라서 눈을 부릅뜨고야 말았다. 그런데 상당히, 뭐랄까…… 난잡하고 속세적인 기도문 이었다. 그 말에 바인도 일순 할말을 잃을 정도였다. "아니?" "……뭐라고?!" "아악!" 연속적으로 터져나온 이 반응에 대해서 설명해 보자면 첫 번째가 아라테온으로 기척조차 눈 치채지 못한 누군가가 갑자기 턴 언데드를 뱀파이어에게 걸어서 놀란 것이고. 바인은 '아슈 라스'라는 이름에 대경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여성 뱀파이어가 턴 언데드에 두들겨 맞 으면서 물러난 것이다. 아슈라스라는 무한자의 이름을 내건 턴 언데드인 이상 견습 신관이라도 퍼스트 블러드 급을 움찔 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정식 신관의 성언령력이 실린 턴 언데드는 간단하 게 고위 뱀파이어인 그녀를 쫓아내버렸고, 그녀는 이를 갈며 치익 하고 타들어가는 몸을 추 스르며 외쳤다. "아직 끝난게 아니다! 오늘 밤을 기대하라고! 그쪽 마법사! 나의 이름은 음영陰影 일족의 아 쥬리아 뮤도아스다! 오늘 밤 반드시 죽여주겠어! 너에게 명예가 있다면! 우리 일족을 물리칠 재주가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 일족의 도전을 받고도 무사할 자신이 있다면! 영지 밖의 언 덕으로 오너라! 인간의 마법사여!" "나는 바인 제노사이더 워드. 다음에는 어둠속에서도 어둠을 보지 못하는 엉터리 어둠의 일 족인 너를 소멸이라는 영원의 감옥에 가둬주마. 그리고, 나는 인간이 아니다." 그 살기어린 말에 뱀파이어 마저도 움찔 했고, 아라테온은 사멸의 오러에 질겁하면서 물러 났다. 누구보다 강한 리비도를 지닌 엘더 라이칸스롭인 아라테온은 그 아찔한 사멸의 기운 에 도저히 버틸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인은 이미 쌍검을 거두고는 혼연의 지팡이를 꾸욱 쥔채 사르륵 하고 사라져버린 그녀가 있던 자리를 쏘아보다가 몸을 돌렸다. 이제 자신의 용건. 아슈라스라는 이름에 대한 의문을 충족시켜야 할 때다. 아라테온이 아슈라스의 신관이라는 말을 기억하면서 놀라서 몸을 피하려는데 바인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라테온은 바인을 바라보았고, 바인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래서 아 라테온은 머쓱한 표정으로 간신히 안정을 되찾았다. 바인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나저나 턴 언데드 한방으로 간단하게 고위 뱀파이어를 쫓아보낼 정도라니. 역시 무한 답다고 해야 할까. 과연 대단한 권능이다. 신관 한명에게 고작 언령 한 번으로 고위 뱀파이어를 물리칠 힘을 주다니. "……" '과연, 아슈라스의 신관이군. 그런데…… 그자의 신관도 과연 일반 신관 같을까?' 바인은 그 의문을 금방 해결해버릴수 있었다. 바인마저도 입을 살짝 벌리고 경악해 버린 것 이다. 아라테온은 눈을 살짝 감고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곧 스스로의 기억에서 대체 아슈 라스의 신관이라는 놈들이 어떤 망종들인지 기억해 낸 것이다. "으아! 아깝다! 굉장한 미인이었는데!! 한 번이라도 유혹당해볼걸! 젠장!" ……바인은 황당함이 마음 깊은곳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그 '엄청난 말'을 한 신관이 라는 놈을 바라보았다. 신관 복장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제멋대로의 여행자 복장의 가슴 위에 단지 은실로 불꽃의 문양과 금실로 불꽃의 문양을 두 개 겹쳐놓은 문양을 새기고 오른손에 그것과 비슷하지만 동그랗고 청색을 띈 수정패에 금빛과 은빛의 불꽃 문양을 겹친 디바인 마크Divine Mark를 손에 쥔채 정말 안타까움이 철철 흘러 넘치는 얼굴로 뱀파이어 아쥬리아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는 것이다. 외모는 상당한 미청년이었지만 신관 특유의 그 광신격에 자기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그 고집스러운 분위기 같은 것들은 없었다. 정말 순금을 녹여서 한올한올 붙인 것 같은, 어깨 너비에서 찰랑거리는 금발에 우드 그린의 탁록색과 청록색이 섞인 묘한 눈을 장난기로 번쩍 이는 눈과 신관의 말이라고는 도저히 생각조차 되지 않는 말을 뱉어내는 입만 존재할 뿐이 었다. 광기까지 비치는 눈은…… 뭐랄까. "……아슈라스의 신관은 다 저런가?" "……아마도 그럴걸. 저정도면 양호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슈라스의 신관은 인간적 리비도를 거세하는것이나 다를바가 없는 다른 교단의 율법같은게 별로 없어. '인간의 가운데서 인간 의 모든 권리를 누벼라'라는 조항까지 있다고 들었는데. 아슈라스의 신관은 도박장을 운영하는 곳도 있고 그 도박장들은 상당히 고급이지만 귀족이나 평민 가리지 않고 다 들인다더군. 아 슈라스의 신도인 귀족의 경우 귀족임에도 귀족을 욕하는 엄청난 인간들이 많아." "……" 바인은 정말 할말을 잃고 말았다. 신전이 도박장을 운영해? 그럼 부정 부패 같은건 없나? 바인은 정말 간신히, 너무나도 간신히 질문을 던질수 있었다. "……부, 부정부패 같은건 없나?" "전혀 없어. 그 신이라는 작자가 신전 총 본산. 무한의 문 안쪽에서 가끔 보석을 무더기로 만들어서 신관들한테 뿌린다던데. 그리고 보통 신전들은 도시 근처에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민간인들의 출입은 웬만해서는 금하는게 보통이야. 그런데 아슈라스의 신전은 민간인들도 들이고 '사람들을 수련의 방해물로 삼는 종교따위 지옥불로 잘 구워서 씹어먹자'는 율법 조 항도 있다고 들었어." "……" 바인은 허탈함과 정신적 충격. 뭔가 환상을 깨버리는 컬쳐 쇼크격에 가까운 그 엄청난 충격 에 다리의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지만 주저앉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상당히 인간적 이고 고정적인 틀에 빠진 사고관념을 지닌 바인에게 있어서 신관이라는 족속들이 그렇다는 것은…… 정말 웃고 싶지만 웃을수 없는 이야기였다. "뭐였더라? 그쪽 신관들은 결혼도 되고 심지어는 뱀파이어와 결혼한 신관도 몇 있던데? 심 지어는 지금 교황은 '신이 주신 신성력을 마음껏 활용하여 밤을 불사르자'는 엄청난 소리까 지 했지. 뭐였더라. 애인이 일곱명이라던가? 그곳 신관들은 종족도 가리지 않아. 그 엘프들 까지 오염시키는데. 어쨌든간에 아슈라스의 신관들은 엄청난 괴물들이 많아. 심지어는 대신관중의 한명이…… 그랜드 소드 마스터Grand Sword Master라더군. 신관중에 서 마법사도 많고. 성기사들이 없는게 특징인데. 사실 신관들중에서 검 쓴다는 이들만 불러 모아도 이미 다른 교단 성기사단을 모두 합친것보다 더 전력이 뛰어나. 독한 술들을 마시는 것도 허용하는 교단이야." ……바인은 더 이상 그 말들을 듣고싶지 않았다. 아직도 아깝다고 중얼거리면서 안타깝게 아쥬리아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다가 바인들에게 아슈라스의 신관. 금발 탁록안의 미청년 만이 어쩐지 절도없고 흐느적흐느적 하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발걸음 은 어쩐지 경쾌했지만 그것을 보는 바인은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바 인의 귓가를 아라테온의 마지막 말이 간질였다. "그야말로 '자금과 힘이 무한한 공포의 테러집단'이지. 범국가적이긴 하지만 마음에 안드는 귀족들 두들겨 패고 심지어는 국왕에게 '임포텐츠 아더(…)'라는 저주를 걸어서 나쁜 버릇을 개과천선 시킨적도 있다던데? '범국가적 테러집단'이라는 말을 오히려 반기는 교단이지. 마 족이나 뭐 그런것들 차별도 없지만…… 하여튼 교단이라기 보다는 마음에 안들면 모조리 작 살내는 범국가적 무력집단이야." 오답이라고 부르짖을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픈 세상이다. 124. 바인과 아라테온은 그다지 말수가 많지 않다. 거기다가 현명하며 사려 깊다고는 못하겠지만 생각이 깊은 것은 사실이다. 둘 모두 해야 할 일이 있기에 그 현명함과 깊은 생각이 집념과 스스로의 시선. 스스로 선과 악을 판가름 하는…… 절대적인 선과 악이 없는 세상에서 자신 나름대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바인의 경우에는 선악이라는 거창한 개념이라기 보다는 '장애 물'과 '조력자', '방관자'외에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다. 아라테온이 예외라면 예외일까.) 생각하며 행동해야 할 것은 생명체로써 당연한 일이다. 다만 이성이 나약하여 감성적으로, 오만하고 일견 자아의 부족함과 이 좁은 세상에 갇힌 나 약한 자아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다는 것이, 인간적 윤리조차 지키지 못하는 이들이 9할을 넘는다는 것이 슬플 따름이다. 물론 어리석음으로 점철된 선과 악의 판단 ― 사실, 사람을 참살하고 뒷골목 인생을 사는 자들이 악이라 할수 있겠는가? 인간적 윤리로 보았을때는 모르나 그들도 사정이 있고 또한 반 상대주의조차 포용하는 것이 진정한 상대주의라 볼 때, 그리고 또 절대적인 선과 악이 없다고 볼 때 세상이 '신'의 선과 악의 분별도 무시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조차 나약 하기 그지없는 자아로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 도 물론 있기에 감히 비판하는 자들도 생겨나는 셈이다. 그러나 보라. 신이 과연 선한가! 스스로를 붙들고, 스스로를 인정해 세상에 서서 오연하게 자아를 확립할수 없어 인간이 만들어낸 신에게 기대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얼마나 많 은가! 신앙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약한 자아를 신에게 맡긴채 스스로를 정의라고 포장하고 행하는 모든 비윤리적인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신과 정의라는 이름 아래 가하는 린치란 생명인 이상 모두 가지는 사디스트적인 쾌감을 보장하는 것이고 또한 이 잘못된 사 회 구조는 그것을 합법이라 인정하기에 그것이 문제일 따름이다. 종교는 인간이 만들었다. 그러나 그 피에 절어버린 화려한 목발은 인간의 다리를 잘라내고 인간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그래서 광신도狂信徒가 생겨나고(신을 미쳐서 믿는 것인지 자기 스스로의 그릇된 관념들을 미쳐서 맹신하는 것인지는 스스로 생각해볼 일이다.) 스스 로의 아집, 그릇된 잣대로 세상을 재고 마음대로 작아빠진 가슴에 구겨박고 바라보는 조잡 한 정신을 가진 자들이 생겨난다. 종교라는 것은 당연히 숭고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조 금 더 윤리적인 생활과 깨끗한 삶을 '강제적으로 요구'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확실히 서비스 업에 가까운 것이 바로 종교다. 그런 점을 모두 포용하는 것이 아슈라스 교단이다. 그런 만큼 어리석은 세인들의 눈으로 보 기에 아슈라스 교단의 신관들은 정말 파격적이고 컬처 쇼크에 가까운 충격을 모두에게 선사 했다. 아슈라스 교단이 가장 위세높은 이유는…… 부정 부패가 없기 때문이며 또한 만민에 게 봉사함과 동시에 스스로 봉사받으며 또 봉사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인간이랄까. 개인주의 와 이타주의와 이기주의를 버무리고 뭉쳐서 자신과 융화시켜 버린 것 같은 자유스러운 이들 이 바로 그들 아슈라스 교단의 신관이다. 물론 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정도로 불신자不信者들을 포용하고 감싸준다는 것은 확실히 대단하다. 다른 신관들이 편협함과 거짓된 선과 악의 관념으로 미쳐 돌아가고 있을 때 아슈라스 교단은 신에게서 시선을 돌려 오히려 인간을 바라보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었 고, 그래서 아슈라스라는 신은 인간에 가깝다. 무한하며 유한한 자. 그래서 무한자와 유한자 를 모두 이해할수 있었으며, 또한 냉소적일수 있고 한없이 자애로울수 있었다. 뭐 별로 믿음 은 가지 않지만. 지혜롭고 또한 대단한 식자인 바인과 아라테온으로써는 역시 굳어져버린 생각으로 인해 아 슈라스 교단의 신관. 금발에 탁록안을 지닌, 장난스럽고 또한 불경하게 보이는 휴이즈를 처 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무신경한 바인과 엘더 라이칸스롭이라 불릴 자격이 충분 한 위대한(?) 정신을 지닌 아라테온은 금방 그 장난기로 철철 넘쳐나고 이성관계에 익숙하 기에 다른 교단의 어긋나버리고 일그러진 신관들처럼 몰래 욕망을 채우는 쓰레기가 되지 않 을수 있었다. 아슈라스 교단의 최대 장점이라면 극히 개방적이고 중립적이라는 점이면서 또한 계산적이지 만 헌신적일수 있는 휴머니즘도 지니고 있고 또 인간 멸시적인 성향도 지니는. 다시말해 모 든 것을 다 그런대로 넘겨버리는 성격의 교단인데다가 다른 교단에서 멸시하는 음陰의 성향 으로 기울어진. 다시말해 그들이 악의 존재. 어둠의 존재라 외치는 자들마저 포용하기에 다 른 교단에게 있어 아슈라스 교단은 적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아슈라스 교단의 신관들의 힘은 강력하고 또한 다른 신들보다 훨씬 상위에 놓여있었다. 가령 다른 교단의 성기사 하나가 아슈라스 교단의 신관에게 시비를 걸었다고 하자. 아니, 시 비라기 보다 이념의 충돌에 의한 성향의 변환(공격적으로)이랄까? 만약 그럴 경우 그 성기 사는 바로 자신이 영혼과 몸에 동화시킨 자신의 신의 성향으로 스스로 믿어 변환시킨 에테 르Ether. 마나를 변화시켜서 받아들인 에테르가 순식간에 무화無化되어 버릴 것이다. 아슈라 스 교단의 신관들은 타 교단 신관들의 성력을 박탈해버릴수 있었고, 그것은 곧 아슈라스 교 단에서 '에테르'를 다루는 다채롭고 또한 깊은 이해를 통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냥 검이나 마법을 익히지 않은 아슈라스 교단의 신관이라도 웬만한 마법사 정도 되는 공 격력을 발휘할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도 오오라로. "아아. 정식으로 인사해야 겠군요. 보통 귀족이 신관이 되면 성을 버리는게 일반적이고 그 권리조차 버리지만. 아슈라스 교단은 아니거든요. 하하하하. 이 영지의 장남인 휴이즈 폰 헬 리론드입니다. 사실상 가출이지만. 아버지는 아슈라스 교단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거든요! 누가 자기 충성의 대상을 '합법적으로' 혼내줄수 있는 집단을 좋아하겠습니까?" "그, 그렇습니까." 바인마저 무심의 마인드 컨트롤이 깨어져버렸다. 그래서 더듬더듬 대답하게 되고 말았다. 아 라테온도 얼이 빠져 있었다. 아슈라스 교단에 대해 익히 들어오긴 했지만 이건 너무하군. 확 실히 백문이불여일견이라던가. 바인은 고서적들을 많이 보고 신간도 보긴 했지만 교단 같은 것을 다루는 책들 따위는 보지 않았다. 신학책 따위는 따분하기 그지없고 편협하기가 둘 째 가라면 서러운 일신교를 보고 나름대로 종교관을 정립했기에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상식 을 깨부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대부분 다 충족해버리는 아슈라스 교단을 만나자 그는 완전히 뒤흔들려 버린 것이다. "아하하하. 사실 신을 믿는다는게 나약한 자아를 신에게 기댄다는 뜻 아닙니까? 사실 종교 대부분이 마지막 심판에는 항상 구원받으리라는 것이고 곧 목에 개줄차고 신에게 사육되길 바란다는 뜻이죠. 그래서 아슈라스님의 신관이 되려면 일단 자아확립과 제대로 된 중도를 지킬수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어둠조차도 포용할수 있는 것이 바로 진짜 신앙 아닙니까? 어둠이라고 무조건 기피하고 매도한다지만 사실 사람이라는 동물 은 어둠의 안온함에서 휴식하고 잠을 취한단 말입니다. 뭐 방금의 경우야 임무 때문이니까 어쩔수 없었지만요. 아아. 생각해보니 정말 아깝네. 그정도 미인은 흔하지 않은데. 쳇!" "……" 신관 답지 않은 과격하기 그지없는 발언. 그 말에 아라테온이나 바인이나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입맛이 쓰지는 않으니 꿀먹은 벙어리라는 표현도 용납이 될 것이다. 달지는 않 지만 쓰지도 않으니까. 둘 다 신선하기 그지없는 충격을 받으면서도 많은 것들을 깨닫고 있 었다. 금새 제정신을 회복한 둘은 잠시 생각을 정리해 나름대로의 지혜의 탑에 몇가지 정보 를 더 새겨 넣고 입을 열었다. 바인은 그답지 않게 '진짜 신앙인의 표본'같은 성직자를 만나 서 자신도 모르게 존대어를 쓰고 있었다. "바인 G 워드. 마법사입니다." "아라테온 셀리버. 역시 마법사죠." "흐응. 뭐 둘 다 인간은 아닌 것 같지만 넘어 가죠. 우리 교단은 인간이 아니라고 차별하진 않아요. 마법에서도 사도로 취급되는 것들을 이용해 탄생시킨 존재나 소환된 마족이라도 상 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쪽 아라테온은 너무 긴장하지 마시죠? 우리 교단에 대해서 상당히 잘 아는 것 같던데." 그 말에 아라테온은 별로 내색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슈라스 교단은 적을 거의 만들지 않 는다. 다만 아집에 가득찬 바보들이 아슈라스 교단을 욕하고 또 공격해 대지만 워낙 엄청나 게 강력한 집단이기에 공격하면 가볍게 찍 눌러버린다. 살인이 금지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 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는 것은 이성과 감성을 모두 지닌 존재고 욕망도 있다. 그래서 아슈라 스 교단에서는 굳이 율법따위로 신관들을 구속하지는 않았다. 믿고 스스로 가는 방향으로 가라. 절대적인 선과 악이란 없다. 신은 결코 선이 아니며 또한 너희들이 말하는 어둠과 음 지에 속한 자들도 빛을 갈망하며 결코 악이 아니다. "자. 그럼 둘 다 저택으로 갑시다? 이런데서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릴거에요? 뭐 어쨌든 그들 도 이런저런 준비를 하면서 힘을 뺄테니 우리는 그 시간에 느긋하게 쉬면서 힘을 보충하는 게 저쪽에 지대한 타격을 입히는데 한결 더 도움이 될겁니다. 와하하하. 아직 안온한 어둠이 내려앉지 않았잖습니까?" 활발하게 웃으면서 걸어가는 모습은 부모와 불화관계가 있는 불효자 아들의 행동으로는 보 이지 않았다. 천연덕 스럽지 않은가. 신관이면서도 결코 인간의 직위라던지 하는 것들을 유 지하게 해주는 아슈라스 교단은 역시…… 굉장한 컬쳐 쇼크다. 보통 재가 프리스트라면 모 를까 정식 프리스트이면서도 가문명을 버리지 않을수 있다니. 바인과 아라테온은 내심 감탄 하면서도, 여전히 패닉 모드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얼떨결에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휴이즈가 카리스마(?)가 있어서 질질 끌려가는건지 알수 없는 걸음으로 그를 따랐다. "하하하. 오늘 날씨가 이렇게 좋은 것은 저와 당신들의 만남을 주재하시는 아슈라스 님의 은총이군요!" 뭔가 아슈라스 교단에 맞지 않는 듯한 말이 튀어나오자 아라테온은 고개를 갸웃 했고. 그는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원래 오늘은 구름이 상당히 많이 낀 날씨입니다. 바람이 습기를 상당히 몰아와서 저 산사 면 반대편에서 적란운이 일어나서 비가 쏟아졌어야 합니다만. 아슈라스 님은 한낱 프리스트 에게도 강건한 권능을 주시기에 말이죠. 마침 가뭄도 아니고 해서 구름을 저 멀리 몰아내 버렸습니다. 뭐 자연 법칙이 좀 어그러지겠지만 뭐 어때요? 돌발성 적란운인데 몰아낸다고 그리 심각하진 않겠죠?" 그는 한쪽 눈을 찡긋 하면서 장난스럽게 말했고, 바인과 아라테온은 드디어 질려버렸다. 컨 트롤 웨더라니. 에테르식 성법술로도 굉장히 고급인데. 아슈라스의 신관들은 모두 괴물들인 가. 휴이즈 스스로의 말로는 자신은 프리스트들 사이에서도 그 권능이 중간에 조금 못되는 정도라고 한다. 그럼 프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능력을 지녔거나 대신관과 신관 사이 의 특수한 임무로 떠도는 계층의 신관들은 대체 얼마나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인가. 거 기다가 아슈라스 교단의 신관들은 마법사도 겸하고 검사도 겸한다. '세계 최강의 무력집단…… 인가. 과연 아슈라스……' 바인은 입맛이 쓰다는 표정을 수유간에 지어보인다음 금방 다시 무표정을 회복하면서, 무심 하고 허무감이 가득찬 얼굴로 상당히 발랄하게(?) 걸어가는 휴이즈를 바라보았다. 나름대로 제대로 된 관찰을 위해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다. 진지함이 철철 흘러 넘치지만 무심하고 허 무감으로 덧씌워져 있어 도저히 내심을 알수 없는 시선이 휴이즈에게 꽂혔다. 하지만 그 시선의 주인. 바인은 한숨을 토해내야 했다. 신관인 주제에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 면서 씨익 웃어보이는건 또 뭐고 간혹 간이 음식점 같은 것이 보이면 군침도 삼킨다. 감정 대부분을 모조리 의식 표층 위로 드러내 버린 것 같지만 바인은 잘 알고 있었다. 가벼워 보 이지만 저 휴이즈라는 자가 얼마나 내심을 잘 숨기고 있는지…… 역시 귀족 수업도 받은 탓 인데 거기에 아슈라스의 신관이라는 직책이 더해지자 저런 괴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휴이즈라는 사람 믿을만 한 것 같아?" 아라테온이 바인에게 질문했다. 아라테온으로써는 당연한 질문이다. 아라테온의 나이는 상당 하기는 하지만 노련함이라던가 하는 점으로 따지면 오히려 '설원'이 더 냉철하게 따질수 있 을 터였다. 무엇보다 천천히 '본질'속에 잠든 '제노사이더 바인'과 합치되어가고 있었기에 사 람 보는 눈으로는 그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떤 의도를 지녔건 간에 바인에게는 간파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아니다. '……<그>보다 상위上位 존재의 신관인 탓인가. 아슈라스의 가호가 임한다면 역시 알아보긴 쉽지 않겠지.' 바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다시 깊은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며 생각을 이어 나가려고 했 지만 금방 시선을 느끼고 생각을 정지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는 3, 4초 정도 무시당해서 자 신에게 눈을 흘기고 있는 아라테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각이 정리 되지는 않았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별로. 믿고 싶지는 않군. 저자는 위험하다." "아슈라스 신은 중립이잖아?" "너보다는 나에게 위험하다. 적대시 해서는 안될 타입이야. 저 휴이즈는…… 저자는 외면과 내면을 확실히 분리할줄 아는군. 나도 착각할뻔 했다. 그리고 아슈라스의 신관이라 강대한 권능을 지니고 있기에 더하다." "……으음." 아라테온은 조금 미심쩍은 표정으로 생기발랄(엽기발랄?)한 표정과 동작의 휴이즈와 바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바인은 무심하고 잘 연마된 칼날같은 시선을 찰나간 휴이즈에게 뿜어냈 지만 곧 허무감으로 가득찬 눈으로 되돌아왔다. 휴이즈가 생동감 있다면 바인은 마치 정교 하기 그지없는, 회색으로 굳어진 석상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바인이 무심하지만 확실한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일까. 어쩐지 휴이즈의 동작에서 위 화감이 은은하게 배어나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아라테온이나 바인보다 한단계라도 사람 보는 눈이 낮다면 절대 느낄수 없는 약하디 약한 흔적. 아라테온은 그제서야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위화감 있는데?" "저런 연극을 제대로 배운 자다. 귀족들의 오랜 세월동안 정립해온 내면을 닫는 공부를 제 대로 했어. 게다가 워낙 표정이 능숙하고 자연스럽고 눈빛이나 자신의 마음마저 잘 조종할 수 있다. 이성으로 감성을 쉽게 제어할줄 아는 자는 위험하다. 자신을 믿는 자라도 거리낌 없이 버릴수 있으면서도 주변의 증오에 휩쌓이지 않을수 있는 자. 군주로써는 대단한 자질이다. 그…… 뭐랄까. 여우와 뱀의 교활함. 그리고 그 교활함에서 나온 계획을 거리낌없이 실천할수 있는 과단성까지 지녔다고 해야할까. 저자는, 위험하다. 사자의 힘과 여우의 약삭빠름. 뱀의 교활함……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겠지?" "……확실히. 하지만 아슈라스 신에 대한 믿음은 진실인 것 같군." "아마도. 그렇기에 반역은 생각도 하지 않겠지. 그런 재능이 있지만 불행하게도 자유에 대한 갈망또한 지니고 있기에 절대 군주는 되지 못할자다." "재능이 있지만 성향 때문에 불가능하다…… 복잡하네. 인간은." 아라테온이 어쩐지 안타깝게 느껴지는 휴이즈의 뒷모습을 보면서 중얼거리자 바인은 곧 고 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인간은 조화를 구가하기 위해 주변에 거리낌없이 혼돈을 던질수 있다. 그러나 그 조화는 혼돈으로…… 그리고 그 혼돈에서 뻗어나온 조화의 칼날은 인간을 참살해버리지." "그런가? 하지만 사실 그런것도 다 관념 아닌가?" "그렇지. 관념의 노예가 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아. 그렇기에 인간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 그래서 급박한 삶을 살게된다. 그런 면에서 휴이즈는 옳은 길을 택했어. 법에 구애되 지 않으면서 또한 신성불가침이며 또한 무력으로도 이미 이 대륙에서 절대라 할수 있는 아 슈라스 교단의 프리스트가 되었으니." 바인은 그 사이에 파악한 아슈라스 교단의 특성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라테온 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당히 멀어진 휴이즈를 따라 걸어갔다. 바인은 흐르듯 가볍게 땅을 딛으며 휴이즈를 향해 걸어갔다. 휴이즈는 1, 2분 거리를 남겨두고 저택 앞에서 멈추었다. 바인과 아라테온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음." 헬리론드 후작은 정말 탐탁치 않은 눈초리로 휴이즈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휴이즈는 그 서 슬퍼런 기세에도 불구하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가볍게 그 눈초리를 받아내버렸다. 헬리론드 후작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아들 휴이즈는 너무나도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있음 에도 불구하고 아슈라스 교단에서 프리스트가 되어 버렸다. 후작으로써는 별로 탐탁치 않은 교단이 아슈라스 교단이다. 물론 부정부패 없고 백성들을 간단하게 도우면서 전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교단이라는 것은 물론 좋지만 그런 교단이 너 무나 강대한 힘을 지녀 국왕을 두들겨 패고 밟아버린다음 욕을 퍼부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 고 백성들은 박수만 친다는 사실은 분통이 터진다. "……아직 돌아올 생각 없느냐?" "하하하하. 참. 아버지. 그게 말입니다. 아슈라스 교단은 귀족 작위를 지녀도 프리스트로 인 정한다는 사실 잊지 않으셨겠죠? 무한의 신 아슈라스 님은 아주 관대하신 분이라 인간 자체 를 포용하시지 않습니까? 물론 맹신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편하잖아요? 그분께서 말씀 하셨듯이 성직자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업인이고 그런 면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종교의 수뇌들은 배를 불리면서 사는 경우가 많지만 아슈라스 교단은 그렇지 않아요. 너무 범국가적이고 강력해서 범국가적 신성 테러 집단이라 불리긴 하지만 뭐 그래 도 나쁘지 않잖습니까? 너무 그렇게 싫어하시지는 말아 주세요." 아들의 직설적이고 다른 교단에서 들었다면 신성모독이라고 고함지르면서 불 싸지를 소리에 신음을 흘리며 이마를 짚은 후작은 무심하게 찻잔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바인과 과자를 씹 으면서 재미있다는 듯 후작과 휴이즈의 대화를 듣고 있는 아라테온을 보면서 또다시 골치를 썩였다. 정말 골치아픈 작자들이었다. 이놈의 괴물같은 힘을 지닌 아들놈은 그렇다 쳐도 저 마법사 두명은 그에 필적하거나 넘어버리지 않던가 말이다. "끄으응……" "아. 아버지. 혹시 변비세요? 하지만 그렇다고 화장실도 아닌데 그렇게 이마를 구겨대면서 근육을 조여서 직장을 누르면 손님들 앞에서 실례할지도 모르……" "휴이즈!!" "……아, 예. 그만 두죠 뭐. 아하하하하." 신관이면서 귀족들이 보기에 천박하기 그지없는 헛소리까지 주절대는 모습이 더더욱더 후작 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당히 포커페이스고 표정을 마음대로 유도할수 있는 후작이라 도 이 빌어먹을 아들놈 앞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활화산처럼 치솟은 분노. 뺨을 후려갈 기려고 손을 들어도 아마 아들놈은 아주 여유있게 흐느적흐느적 거리며 모조리 다 피해버릴 것이었다. 폭발해서 롱 소드를 들고 아들놈의 몸에 명예의 검상을 새겨주려 했을 때 얻은 교훈이었다. 에테르를 순환시키면서 몸의 모든 기관을 일깨우고 몸을 절단할만한 예기銳氣를 모조리 피 해내는, 그것도 눈을 감고 목 뒤로 깍지를 낀채 작은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그리고 부드럽 게 피해내 버리는 모습은 도저히 신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참고로 아슈라스 신관들 중에서는 권각술만으로도 상급 소드 익스퍼트를 눕히는 괴물들도 많다. 아슈라스의 신관들이 배우는것중 하나가 바로 에테르를 이용한 신체의 극한 활용과 더불어 전사들의 빠른 공격을 피해내는 보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이건 의무지만 뭐 나 름대로 운동도 되고 재미도 있기에 많은 교단인들이 익히고 사용했다. 휴이즈도 전해지는 여러 가지 보법 중에서 난류보亂流步를 밟고 빙글 돌며 어지럽게 환형으 로 몸을 돌리며 찌르기, 베기를 모조리 다 피해내는 데는 숙달되었기 때문에 후작의 어설픈 칼질에 맞아 몸에 자상을 새겨놓을 일은 없었다. 후작도 손님들 앞이라 자제하면서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은채 죽여버릴 듯 휴이즈를 노려보았지만 휴이즈는 히죽 웃어버림으로써 후작 에게 자포자기를 스스로 시행하도록 만들었다. "하아. 아버지. 좀 그만 두시죠? 솔직히 말해서 귀족따위 별로 되고싶지도 않아요. 저는 천 성이 떠돌이라니까요. 차라리 동생도 똑똑하고 이왕 하는김에 최초의 귀족여가주를 탄생시 켜서 타에 모범이 되는게 어떨까요? 전례 따지지 말고 아예 새로 전례를 만드는거 말에요. 하하하하!" 귀족 아버지 복장을 득득 긁는 불효자 귀족 신관은 쾌소까지 터뜨렸다. 아버지 속은 알지만 결코 따라줄수 없다는 완강한 고집이 느껴진다. 귀족 아버지는 속으로 이를 북북 갈면서 얼 굴을 미소라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일그러짐이 2할인 꿈틀거리는 표정을 간신히 만들어낸다 음 눈으로는 아들을 노려보고 입으로는 꿈틀거리는 미소를 건채 핏대를 조였다 푸는 놀라운 재주를 선보였다. '무, 무지하게 웃긴다……' 아라테온은 키득거리면서 그 장면을 감상했다. 웃음을 도저히 참을수는 없었지만 턱을 가슴 에 박고 부르르 떠는 것으로 그것을 참아냈다. 나름대로 수양이 쌓인 그로써도 이번 것은 정말 엔돌핀 생산량이 커서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런 황당한 상황에서도 무심함을 자랑하고 있는 바인이 아라테온은 더더욱더 웃겼다. 웃음 없이 못볼 촌극을 무심함과 허무감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보는 관객이라니! 바인은 무 심함과 허무감에 느긋함을 섞으면서 찻잔을 기울였다. 다 식어버린 차가 바인의 목구멍으로 넘어갔고, 바인은 곧 찻잔을 쟁반에 내려놓았다. 아주 완만하고 느긋하게 찻잔을 내려놓긴 했지만 역시 소리는 어쩔수 없었다. 딸칵 하는 소리가 났지만 이제 기싸움으로 들어간 비언比言중이던 고수는 버릇없고 불효자 식인 귀족 신관의 승리로 마무리된 상태고 이제 막판 누르기(?)로 들어간 상황이라 바인이 낸 아주 작은 소리는 그들을 깨어나게 하지 못했다. 아라테온은 이제 숨 넘어갈 정도였지만 끅끅거리는 웃음소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아라테온은 간신히 가라앉은 웃음을 틀어막기 위해 심호흡을 하면서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등을 기댔다. "흠흠. 죄, 죄송하오. 험한 꼴을 보였소이다." 후작이 간신히 지금 상황을 인지하고 둘을 향해 사과했지만 바인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 고 아라테온은 간신히 끅끅 거리면서 눈물까지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의 얼굴 은 불그스름해지고 말았고, 곧 휴이즈는 통렬한 쾌소를 터뜨리면서 낄낄거렸다. 후작의 얼굴 이 검붉게 변했을 즈음에야 간신히 분위기는 진정되었다. 어쨌든 한바탕 촌극이 끝나고 간신히 진지한 분위기가 이루어지자 바인은 천천히 입을 열어 서 지금까지 계속 정리한 생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지 외각을 통째로 사들인 자들이 있지요?" "아. 그들 말입니까. 돈은 꼬박꼬박 잘 내기에 일단 대여하고 있소이다. 그런데 그것은 왜 질문하는 것이오?" "먼저 말하지만…… 당신은 어둠의 힘과 좀더 음에 가까운 힘을 지닌 자들과 빛에 가깝고 양의 힘을 다루는 자들의 선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답여부에 따라 이 이야기 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인의 말에 휴이즈는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고, 아라테온은 깜짝 놀랐다. 사람들을 공격할지 도 모르는데 그런 것을 알려주지 않겠다는 말은 후작의 됨됨이를 보고 사람들의 생사를 결 정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아라테온이나 휴이즈나 이 순간에는 바인의 눈에 담긴 무심함과 허무감. 그 속에 감추어진 거대한 광기의 한자락을 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은 등줄기를 치고 달리는 한기와 목 뒤에서 바작바작 배어나오는 식은땀을 느껴야 했다. "어둠과 빛? 별로 상관은 없소이다. 나는 후작이고. 또한 나라에 종속된 자요. 그리고 이 나 라를 부강케 할 의무가 있는 자이며. 국왕의 충성된 신하이기에 어둠이건 빛이건 나라에 도 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이용할 생각이오. 그리고 별 차이 있소? 사람이란 동물은 어둠속에서 잠들고 빛에서 생활하긴 하고 빛에서 좀더 안정감을 느끼긴 하 지만 빛속에서는 잠을 자지 못하는 생물이라서 본래는 어둠을 안온하게 여겨야 하오. 하지 만 몇몇 멍청이들이 어둠속에서 튀어나오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무서워서 어둠에서 휴식하 는 모든 자들을 매도하려 든단 말이야. 뭐 사실 나라도 몇몇 일을 겪지 않았다면 뱀파이어나 그런 것들이라면 무조건 매도했겠지. 서큐버스 같은 종류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나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긴 하지만 마족을 만난 적 있고 그들이 결코 악하지 않다는 사실은 확인 했소. 오히려 그들을 공격하던 이들이 더 사악하고 저열해 보였지." 후작의 말에 바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이용할 생각이다'라는 말에 는 흐릿한 미소를 띄워올렸고, 뒷부분에 갈수록 역시 '배운 자'들은 그런대로 틔였다는 생각 을 떠올리게 되었다. 바인은 피식 웃었다. "당신께서는 아마도 일반론 때문에라도 이런 대답을 하시지 않을수 없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뭐 뻔한 질문이었으니까." 후작이나 바인이나 이 순간에 만큼은 묘하게 동류처럼 보였다. 바인은 천천히 설명을 시작 했다. 그곳에 뱀파이어들의 무리가 있으며, 또한 그들은 '추방된 자들'로 보이며 그래서 인간 들을 사냥하면서 힘을 보충하는, 다시말해 처단해도 음에 속한 일족들이 보복해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과 그 외각에 쳐진 결계의 존재. 그리고 그들이 어디서 만나자고 말하고 사라 졌는지에 대해서 말했다. "숫자는…… 어느정도 되는 것 같소이까?" "많아도 스물이 안될겁니다. 몇 명은 처단했으니까." "헛참. 마족이건 인간이건 이탈자는 결국 처단 대상이군." "뭐 생각있는 존재들은 스스로를 오롯이 존재할만한 강력한 존재가 아닐 경우에는 몰려 다 니는 기질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죠. 이런 말이 있다던가요. '전쟁터에서 사는 방법은 앞으로 도망가는 것이다'." 바인의 말에 미소를 떠올리며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오?" 125. 바인은 슬그머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음기와 함께 부풀어 올라 은빛과 금빛을 뿌려대는 일렉트럼 문Electrum Moon. 언덕 위에는 누군가가 팔을 벌리고, 한껏 부풀어 오르는 불경 不敬과 광기狂氣의 만월滿月의 광휘를 품어 안은채 거대한 마력의 검을 저 짙지만 맑은 순 흑의 하늘 위로 찔러 올리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바인의 몸이 가볍게 경련했다. 이정도 마력이면 8서클의 마나를 한데 응집시킨 정도…… 마력과 융화된 음기는 일렁이며 춤을 추는 요기를 피워냈고, 그 힘은 대 지 자체에 배어들 듯 강렬하다. "강력하군…… 소환진인가. 트리 디멘셔널 헥사그램은 아니군. 이차원적 평면의 헥사그램인 가? 이렇게 강력한 음화라면……" 바인은 수증기가 얼어붙어 가라앉아 건조하지만 차가운 추변 공기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중 얼거렸다. 이정도로 강력하다면 아무래도 조금 상대하기 귀찮겠군. 9서클 마스터에 9클래스 마스터이기도 한 그를 쓰러트릴 존재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바인은 어느정도 여유 가 있을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사멸과 붕괴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양손에 쥐어진 허공의 검이 멋지게 회은의 궤적을 그리면서 투명하게 빛난다. "광기는 달에서 온다던가." "음기도 달에서 오지. 인간의 마법사!" 여성의 목소리. 한껏 고조된 목소리였다. 달을 품어안고 선, 기묘한 매력을 풍기는 자세를 풀어내리자 곧 여섯 개의 인영人影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녀 주변의 여섯 인영에서는 강렬 한 생동감이 뿜어져 나오지만 딱딱하다. 바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아라테온을 데리고 나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큭큭. 그가 없기에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도 마음껏 드러낼수 있겠지.' 아라테온에게 호감을 느낀 그였기에 이 모습은 정말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광기로 비스듬 하게 올라간 미소. 그리고 바인은 기척도 없이, 소리도 없이 달려들었다. 공기를 쫘아악 하 고 갈라내는, 바다의 파도를 가르는 선풍旋風보다도 더 예리하게. 진공 구간에서 달리는 듯 바인은 보이지도 않은 속도로 몸을 날렸다. 헤이스트 셀프를 몸에 걸어놓은 것이다. 소리도 없이 언덕을 순식간에 박차고 뛰어올라 회백색과 회흑색의 날카로운 바람을 몸에 휘 감은 바인은 죽음의 신과 같은 기세로 그들에게 엄습했다. 안식을 허락받지 못한 자. 죽으면 영혼조차 단죄의 불꽃에 사그라들 불행한 흡혈귀 일족들은 금방 산개하면서 바인이 쇄도해 든 자리에 마법공격을 퍼부었다.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링 레이Ring Ray!" "파이어 볼Fire Ball!" "배컴 휠Vaccum Wheel!" "스피릿 에일Spirit Ail!" "워터 피어싱 폴Water Piercing Pole!" 라이트닝 볼트. 전격계 마법이 유릿빛 전류처럼 바인에게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고리 모양을 한 강한 에너지가 실려서 절삭하고 태우는 성질을 지닌 빛이 밀려들어오고, 연속으로 커다 란 폭발성의 화염탄, 진공의 소용돌이 치는 수레바퀴. 그리고 정신을 난자질하는 마법과 아 래서부터 수증기가 모여들어서 높고 날카롭게 찔러 올리는 물의 창을 형성하는 마법. 모두 맞으면 생명체일 경우 즉사할수 밖에 없었다. 드래곤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바인은 그 위협적이고, 강렬한 모든 공세를 너무나도 간단히 무효화시켰다. "디스트럭션 필드Destruction Field!" 차가운 미소가 순간 흐르고. 바인은 두 검에 붕괴의 힘을 실어 강하게 몸을 회전시켜 검기 대신으로 그 붕괴의 오러를 이용해서 검막劍幕을 형성시켰다. 휘우웅 하고 일어난 회색의 장벽은 다가든 모든 마법적 공세를 모조리 다 붕괴시키고 소멸시켰다. 간단하게 와해되어버린 스펠들에 모두 당황해버리면서 잠깐 굳은 순간. 붕괴의 막이 사라지 면서 바인이 친 검의 궤적만이 환상처럼 남았다. 바인은 우주일월신검류를 짚어나가면서 빠 르게 다시 몸을 회전시켜 검막을 시전했다. 과연 바인의 판단은 옳아서 제정신을 차리고 쏟은 마법들이 모조리 다시 붕괴되었고, 바인 은 빠르게 외쳤다. 정신을 집중하여 마나를 끌어들이고, 클래스식의 마력을 더해서 두배 이 상 스펠을 강화시킨것이다. "선 샤인 플리커Sun Shine Flicker!" 순간 바인의 앞에서 찬란한 금빛의 광휘가 날개를 펼쳤다. 일초간 빛나고 사라진 빛의 광채. 그러나 굉장히 강력한 양기를 머금고 있어서 그 태양빛은 고위 뱀파이어들의 살갗을 그을게 만들고 시각을 마비시켰다. 주변의 음기도 잠깐동안 마비될 정도였다. 바인은 바닥에 쌍검을 꽂아넣은다음 양손을 바꿔 겹쳐서 쌍검을 역수로 쥐고 바로 탄력있게 퓨핫 하고 그어 올렸다. 바닥을 갈아 엎듯 거칠게 쌍검을 역수로 뿜어올리며 동시에 몸까지 날렸다. 검기가 아니라 묘기에 가까운 그 검궤에 한 뱀파이어는 그대로 걸렸고, 사멸과 붕괴 의 힘이 실린 쌍검에 네조각 나버린 그는 밤임에도 불구하고 재가 되어 사그라져버렸다. "이, 이런?!" "하나." <아마 뱀파이어들은 저를 끌어 낸다음 도시에서 일을 벌일겁니다. 아주 간단하고 쉬운 계책 이죠. 그래서 아라테온이 이곳에 남을겁니다.> 바인은 하나, 하고 중얼거리며 자신이 한 말을 떠올려 보았다. 그렇기에 빨리 처리하고 합류 해야 하는것이다. 그래서 그는 바로 여러번 사용한 마법을 바로 시전했다. "익스플로시브 애로우Explosive Arrow!" 백열하는 빛의 화살들이 순간적으로 일어나 무서운 속도로 뻗어나갔다. 픽싱 타겟을 걸어두 었기에 과연 뱀파이어들이 피한 순간 두 뱀파이어를 제외하고 다른 뱀파에어 셋은 그대로 익스플로시브 애로우에 격중되었다. 놀랍게도 그 화살은 복부에 박혀 그대로 멎었고. 뱀파이 어들은 깜짝 놀랐다. 바인은 역수로 쥔 검을 다시 정수로 바꾸어쥐면서 외쳤다. "터져라!" 콰콰쾅!! 과연 바인의 명령대로 몸 곳곳에 박힌 빛의 화살들은 그대로 폭발해버렸고, 세 뱀파이어들 은 재가 될 기회도 없이 열기와 강한 폭발력에 산산조각나서 타들어가버렸다. 그리고 바인 은 쉴새없이 몸을 움직여서 정면에서 무언가를 계속 하고 있는 아쥬리아에게 달려가려했다. "둘, 셋, 넷인데…… 이런!" "……원하노니 심연의 차가움과 어둠의 광폭함으로 다가와 사멸을 선사하는 자여. 그림자의 기사이자 어둠의 수호자 나이트 셰이드Knight Shade들이여. 나의 마력을 제물로써 그대들 을 소환하노라. 서몬Summon!" "이런! 나이트 셰이드!" 바인은 짤막하게 한탄하면서 바로 주저없이 쌍검에 붕괴의 힘을 실어서 양쪽으로 흩뿌렸다. 디스트럭션 볼트를 사용한 것이다. 순간 회색 번개가 남은 뱀파이어 둘을 한 대씩 치고 지 나갔고, 존재들은 묶여있던 힘만을 공중에 풀어놓으며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여 뱀파이어. 아쥬리아는 오히려 차디찬 냉소를 떠올렸다. 뱀파이어들이 죽으며 풀려났던 힘들이 소용돌이치면서 빨아들여져 자그마치 여섯 개체의 그 림자와 음기로 구성된 거대한 악마 형태를 띈 그림자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만월은 밝지 만 그 만월의 광휘마저 삼켜버릴 듯 거칠어보이고, 2차원인지 3차원인지 알수 없으리만치 흉폭한 느낌의 그림자의 기사는. 주변의 공간을 음화시키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음영의 귀족이여. 우리들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저 마법사의 처단입니다!" 「알았다. 마법사여. 각오하라!」 나이트 셰이드 여섯이 순간 산개하면서 각기 특이한 무기들을 음기를 모아 만들어내기 시작 했다. 검푸른 잔영을 남기는 거대한 투핸디드 소드에서 채찍, 그리고 바인처럼 쌍검을 들고 있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놈은 핼버드를 들고 있기도 했다. 바인은 쓴웃음을 띄우면서 차갑게 응결되어 음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주변 공간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이 정도라면 바인이라 할지라도 상당히 시간이 소비된다! "어쩔수 없군……" 바인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사멸과 붕괴의 힘을 모조리 끌어내기 시작했다. 불꽃처럼 피어오른 본연의 힘은 난류가 되어 그의 몸을 휘감고 지나가면서 일렁이기 시작했 다. 바인의 눈은 순간 열렸다. 그리고 무심함은 더 이상 존재치 않았다. 살의, 광기, 그리고 거대한 광폭함만이 가득할 따름이었다. "크르르르……" 바인의 입에서 도저히 인간의 구강구조로 낼수 있는 소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바인은 그의 몸놀림을 이미 한참 초월한 속도로 쌍검을 쥐어 틀어 잡고, 바 인의 날카롭게 각도가 선 검술이라고는 생각도 되지 않는 거칠고 난폭한 검격을 펼치기 시 작했다. 원보다는 직선! 파우우우웅!! 검이 눕혀졌다가 거칠게 요동치는 팔뚝에 의해 힘을 받으면서 공기를 거칠게 뜯어내버렸다. 그리고 붕괴의 힘이 가득 실린 검은 '찰나'간에 나이트 셰이드 하나를 반조각 내버렸다. 바인은 불꽃같은 회백색과 회흑색의 힘을 쌍검에 실어서 투핸디드 소드보다 세배 는 길어보이는 검을 만들어낸채 하나를 스치면서 두조각내 허무로 몰아버린 것이다. 「아, 아니!?」 이미 바인의 움직임은 보법이나 신법의 유려함. 흐르는듯한 느낌은 없었다. 광폭함. 광기. 그 리고 짐승의 거칠고 단순한 방위로 움직이지만 음속을 능가할 정도로 빠르고 빨라서 나이트 셰이드들도 느낄수 없으리만치 빠른 살기만이 흐를 뿐. "크아아아아아아……!!" 비스트Beast. 이미 바인이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야수. 피에 굶주린 짐승 한 마리만 남았을 뿐이었다. 요란하게 포효하며 달의 광기에 젖어든 듯 살기와 광기로 번들거리는 바인의 눈 은 수려함이 지워지고 추악함이 남았을 따름이었다. 이전에 미뉴엘이 형성한 결계 안에서 두 번 사용했던 이 폭주는 자신의 정신에 버서크를 중 첩해서 건다음 무의식과 융합시켜 버리는 방법으로 힘이 폭주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크카아아악!" 광기어린 포효. 그리고 살의. 넘실거리는 회색 불꽃을 머금은 쌍검은 이제 잘 갈무리된 영기 로 타오를 뿐. 나이트 셰이드들은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며 자신들이 사용할수 있는 마법을 날려보냈다. 냉기의 폭풍. 혹은 공기를 액화시킬만큼 강한 음기의 소용돌이라던지…… 그러나 바인의 몸 에 걸쳐진 광익의가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인의 몸이 회색과 백색의 소용 돌이에 휘감겼다. 그리고…… 바인의 몸이 음기의 폭풍에 달려들었다. 나이트 셰이드는 폭주상태로 들어간 바인을 비웃으 면서 단숨에 얼어붙은 그의 몸을 쳐죽이려 했으나 바인은 냉기를 쪼개버렸다. 공검이 직검 단천의 기세로 내리 그어지고, 수유의 시간에 검극에서 뻗어나온 회색의 거대한 강기같은 느낌의 대검은 촤아아아 하고 냉기를 갈랐다. 푸르른 냉기가 촤아아아 하고 갈라져 나가는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리고 바인의 몸에 휘감긴 백색광의 소용돌이가 뻗어나가면서 냉기를 잠재웠다. 광익의의 마법저항력이 바인의 폭주로 인해 활성화된 기운으로 역시 극도까지 끌어올려 지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리고 허검은, 찔러졌다. 바인 자체가 거대한 붕괴의 힘을 지닌 검이 되어 냉기의 파도를 가르고, 나이트 셰이드 셋을 동시에 소멸로 몰아가버리면서 쇄도했다. 그리고 바인의 몸이 허공에서 회전했다. 마법도 기도 아니다. 단지 감각으로 빙글 돌아 가볍게 착지한 것이다. "그르르르……" 바인의 눈이 희번뜩거리며 광기를 토해냈다. 나이트 셰이드들은 대단히 당황했으며, 이제 남 아있는 둘 마저도 그 존재의 생존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바인의 양손에 들린 쌍검이 빙글 돌면서 바닥에 꽂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시커머죽죽하게 흙은 썩고 생명의 기운이 사그라들어갔다. 그리고 쌍검을 바닥에 꽂은 짐승의 자아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곧 광폭한 기운이 사그라들어가면서 금방 바인의 자아가 눈을 떴다. "후우…… 후우…… 대체 얼마나 미쳐서 움직인거지…… 근육에 조금 무리가 갔군." 바인은 숨을 토해내어 스스로를 안정시킨다음 다시 쌍검을 뽑아들었다. 광기어린 짐승을 다 시 흩고 잠재운다음 그가 할 일은 '포위'해서 마법을 퍼부어 바인을 얼려 죽일만한 위세였 던 여섯 나이트 셰이드 중에서 간신히 둘 남은 놈들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익스플로시브 애로우! 체이닝Chaning!" 우우우웅웅. 수십개에 달하는 폭발성의 화살들이 불쑥불쑥 솟아오르면서 상당한 복사열로 음기를 몰아내 기 시작하자 나이트 셰이드들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소환자는 정신을 집중하면서 뭔가 다른 것을 하고 있었고, 나이트 셰이드들은 대가로 받아먹은 마력을 위해서 바인을 죽여 없애야 했다. 그러나 승산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단 몸을 피하면서 방어를 하려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어둠위로 흰 선의 궤적을 남기며 놈들의 전신으로 꽂혀내린 폭발성의 화살들이 정말 모조리 폭발해버린 것이다. 엄청난 폭굉에 휩쌓여 제대로 직격당한 나이트 셰이드들은 금방 소멸해 버렸다. 마력을 상당히 퍼부은 상태라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것이다. 흰빛의 폭굉에 휩쌓여 하얗게 소멸해버린 나이트 셰이드들의 음기를 느끼면서 바인은 조금 그을리고 머리카락같은 부분이 서리가 낀 묘하게 망가진 모습으로 아쥬리아를 노려보았다. "당신도 이제 끝이야." "……그건 그쪽 이야기다." "글쎄. 아직 나이트 셰이드들에게 대가를 건네지 않았거든. 그리고 그들이 소멸하면서 남긴 잔여 마력도 모조리 흡수할수 있게 됐어." "그럼 그 헥사그램이……" 바인이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리기 무섭게 그녀의 발 밑에서 찬란한 붉은빛이 솟아오르기 시 작했다. 넘실거리며 솟구쳐 오른 붉은 빛이 강력한 방어벽을 형성하면서 주변에 퍼진 잔여 마력들을 모조리 끌어모아 그녀의 몸에 스며들게했고, 그녀는 흡혈한 뱀파이어처럼 충만한 마력을 느끼며 바인에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바인은 살짝 일그러진 얼굴로 바로 주문을 준비했다. 어느새 허공의 검은 다시 내면으로 거두어버린 뒤다. "본질을 사멸시키는 망아의 화염火焰……" 9서클 이상의 수준은 룬어와 마나제어식의 캐스팅과 더불어 시전어가 더해져야 한다. 그 이 유는 바로 9서클이 10급 마법에 가까워 언령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파워 워드 킬 도 그런 종류의 것이기에 바인으로써는 캐스팅을 머릿속에서 완성시켜 나가면서 시전어를 함께 중첩시킨 것이다. 정신력 소모는 엄청나겠지만 워낙 회복속도도 빠르고 정신의 크기가 방대한 그로써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영혼을 동파시키는 파백의 극한極寒……" "서, 설마?! 그것은 드래곤들의 것인데……!!" "모든 것을 사르며 춤을 추어라. 청백靑白의 화염이여! 모든 것을 밀어내고 피어오르라. 칠 흙의 냉기여!" 그녀는 다급한 표정이 되어 블링크라도 사용하려고 했으나 주변의 마나 자체가 거대한 스트 림에 의해 빨려들어오고 있었기에 발 밑의 마법진에 모조리 마력을 불어넣고 그것으로 실드 를 치기로 결정내렸다. 곧바로 캐스팅에 들어간 그녀는 자신이 아는 가장 강력한 실드 주문을 마력을 이용해 시전 했고, 곧 강력한 붉으스름한 실드가 용오름치며 굳어졌다. 핏빛의 장벽이 형성된 순간. 바인 의 주문 역시 완성되었다. "리미트Limite……" 가볍게 말꼬리를 잡아 끌며 나머지 수식을 완성시킨 순간. 주변의 모든 전자의 흔들림. 다시 말해 '열'이 한점에 집약되기 시작했다. 엄청난 범위의 열에너지가 한점에 집약되자 청백색 의, 복사열조차 숲을 태울만큼 강렬한 화염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땅이 반쯤 녹아들어가며 치익치익 타오르지만 바인의 등 위로 흰빛의 에테르 윙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광익의의 효능이었다. 떠올라서 열기까지 차단하긴 했지만 이건 제한을 걸어놓은 9서클 주문이었기에 이정도의 효과만 미칠 따름이었다. 위력과 범위 모두 극히 제한해놓았기에 이정도였지 전부 다 개방했다면…… 이미 저 도시마 저 녹아내리고, 다시 얼어붙으며 소멸되어 가고 있을 것이었다. 혼마저 사르고 동파시켜버리 는 궁극마법. "루나틱 헬 파이어Lunatic Hell Fire!" 열을 빼앗긴 주변의 공간은 마법적인 힘까지 더해져 순흑의 냉기로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 마저 불꽃처럼 보인다. 순흑의 불꽃. 칠흙의 화염. 거의 절대영도에 가까워진 냉기의 회오리 와 스펙트럼 상으로 청백색이 되어 타오르는 불꽃이 순간 쌍룡雙龍처럼 꼬이고 뒤틀리면서 엄청난 스파크를 튀기기 시작했다. 녹고 기화되고 다시 얼어붙고 고체화 되어버리는 주변의 공기와 물질은 아예 물질붕괴가 일 어날 지경이 되어 있었다. 마력까지 더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가라!!" 그리고 두 번째 방어가 펼쳐지고 있었다. 반투명한 남빛의 망토가 수십가닥으로 갈라져 뻗 어나와 반 에테르화 한채 붉은 방어벽에 달라붙어 강력한 힘으로 방어벽을 형성한 것이다. 회피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녀는 막아내야만 했다. 그렇기에 저렇게 무리수까지 둔 것이리 라. 바인의 손이 휘둘러졌다. 어느새 손에 쥐어져 촉매가 되어 있는 혼연의 지팡이. 그 지팡 이에서 회색의 너울거리는 기운이 뻗어나와 방어벽을 더욱더 튼튼히 지탱했다. 구오오오오오― 공간까지 일그러뜨리며 쏘아져나간 청백색의 미쳐버린 불꽃. 그리고 순흑의 불꽃처럼 보이 는 절대영도에 가까운 냉기. 그것은 쌍룡처럼 몸을 뒤틀며 쏘아져 나가 그대로 방어벽에 부 딪혔다. 그리고, 소리도 없이…… 어떤 진동조차 없이 거대한 빛의 광시곡이 터져나왔다. 그 리고 그것은 오라토리오로 바뀌고, 쉴새없이 귓가에 소리없는 음악을 연주했다. "……!!" 바인으로써도 처음 써보는 마법이기에, 그러나 위력은 익히 알고 있기에 제한을 걸었지만 제한을 걸었음에도 이정도의 파괴력을 보이는 루나틱 헬 파이어에는 질려버렸다. 이건 제한 을 풀어버리고 사용하면 지금처럼 돌을 녹여 상승기류를 일으키며 돌기둥을 말아올려 다시 냉기로 동파시켜 우박처럼 쏟아버리고 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물질 소멸로 인해 생겨난 거대한 에너지로 다시 주변 공간을 갈기갈기 찢어놓을수 있을만한 수준이었다. 이것을 확장 형으로 사용한다고 생각해보면…… '서울의 두배쯤 되는 면적을 말아먹겠군. 그런 면에서 미티어 샤워Meteor Shower가 왜 8서 클인지 알수 없어…… 하긴, 8서클이긴 하지만 마법진에 촉매도 필요하고…… 제한도 많군. 8서클이지만 9서클 중반부 마법정도의 캐스팅이 필요한 이유가 그거겠지. 난이도야 8서클에 속하지만.' 바인은 입속에서 그것을 읊조렸다. 바로 그때였다. 콰콰콰쾅!! 영지 중앙의 저택에서 강렬한 굉음이 터져나오면서 그의 고막을 뒤흔들었다. 바인은 골이 뒤흔들리는 감각을 맛보면서도 다급히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뭐지? 설마 아라테온이 밀리고 있나?!" "그야 당연하지!" 바인은 흠칫 놀라버렸다. 세상에! 아무리 상당한 리미트를 걸어서 위력이 저하되었다지만 그래도 9서클 마법인데. 그것도 9서클에서도 굉장한 고위마법인 루나틱 헬 파이어였는데 버 텨냈다! 과연 잔여마력을 모두 끌어모아 만들어낸 실드 다웠다. 그녀는 이제 퍼석퍼석해서 극도의 풍화로 인해 모래가 되어버린 주변 땅(모래가 되긴 했지만 녹고 얼어붙기를 반복해 서 세립질에 반짝거리는 유리같았다.)을 바라보면서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휴우. 과연 9서클 마법 답군. 리미트를 걸지 않았으면 이 주변 대지는 몇백년간 생명이 살 아갈수 없는 환경이 되었겠지? '자유의 날개'가 상당히 타들어가긴 했지만 자체 재생도 되고 …… 지금도 반쯤 재생 됐잖아? 흐응. 역시 좋은 물건인데." "……" 그녀의 말대로 마법의 여파가 미친곳은 복사열로도 녹아들어가고 타들어가는 대참상에 하늘 에서부터 우박처럼 쏟아져내린 돌들의 결정으로 인해 그나마 드문드문 돌들이 보이긴 했지 만 다 탄화되어서 검은 재가루가 되어있거나 수정처럼 반짝거리는 가루같은 모래의 바다가 되어있었다. 언덕과 그 주변 땅 대부분이 처참하게 푸욱 패여서 높이가 상당히 낮아져 있었고, 꼭 질나 쁜 양초가 바닥에 질펀하게 퍼진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모래언덕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높아서 퍼져버린 것이다. 거기다가 마법의 충격파 탓에 패이기도 했다. "굉장한걸? 그쪽도 정신력 소모가 상당하겠지?" 그녀가 결계를 쳐서 막아낸 곳도 조금 그을리고 얼어붙긴 했지만 간신히 흙 형태를 유지하 고 있었다. 넓은 범위긴 했지만 푹 녹고 얼어붙고 가루가 되어버린 이 언덕 전체에 비하면 좁은 범위였다. 9서클 마법은 리미트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파괴에 일조한 것이다. 바인마저도 그 위력에 어이가 없는데(확장형으로 범위를 넓힌것도 아닌데 언덕 하나를 통째로 죽음 자 체로 뒤덮지 않았던가) 그것을 막아내기까지 하다니 아쥬리아도 이제 만만찮은 괴물인 것 같다. 그러나 그정도 강력한 마력으로 막지 못한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만약 바인이 '집약' 형태 로 사용했다면 공간붕괴까지 일어났을테니까, 사실 공간붕괴가 일어났다면 영지가 허차원으 로 함몰되어버릴 가능성도 높아서 바인으로써는 감히 집중해서 공격을 가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리미트까지 건 루나틱 헬파이어의 여파를 막아내는 것 만으로도 힘 소모가 큰지 아쥬리아는 지친 표정이었지만 어느정도 자신감도 지닌 얼굴이다. 이 엄청난 공격마법을 막아낸 것이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바인이 10급 마법에 속하는 수퍼 노바Super Nova를 사용했다면 리미트를 걸었어도 이 행성 자체를 흐물흐물하게 녹여버리고 평균기온을 10도 이상 높여버리는 기적을 창출해낼수 있었 겠지만 그는 아직 그정도는 아니다. 아니, 지금이라도 8, 9서클 마법중에서 유성소환 마법이나 몇몇 마법에 리미트를 걸지 않고 사용한다면 인류멸망이라도 가능하다. 물론 폭주해서 그런 마법에 리미트를 걸지 않는다면 드래곤을 제외하고 살아남을 생명체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아슈라스의 신관들이라면 살아 남을수 있을지도…… "제길……" "저곳에는 음영 일족의 수장께서 가 계시지. 그때 본 그 괴물하고 아슈라스의 신관 정도로 는 막아낼수 없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내 공격을 받아봐라! 인간의 마법사!" 바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화광이 충천하게 솟아오르고 음기의 소용돌이가 치솟으며 굉장한 살기로 점철되어 가는. 비명이 울려 퍼지는 영지를 흘깃 바라보고 나서 살기를 천천 히 뿜어내기 시작했다. 바인은 입안으로 짤막한 중얼거림을 흘리고는 바로 혼연의 지팡이를 들고 정신집중을 시작했다. "라이튼Lighten. 헤이스트 셀프Haste Self. 스트렝스Strength. 스트라이킹Striking. 아이언 스 킨Iron Skin. 매직 파워 코텍스Magic Power Cotex. 라이트풋티드Light-Footed. 님블Nimble. 뮤테이션 엘리멘탈Mutation Elematal - 에어Air 윈드 스트림Wind Stream." 스스로의 몸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주문과 헤이스트 스펠. 그리고 체력과 완력을 강하게 만 들어주는 스트렝스. 그리고 무기 자체의 파괴력을 늘려주는 스트라이킹을 지팡이에 걸어준 다. 이어서 몸 자체의 피부를 강화 강철 정도로 만들어주는 아이언 스킨에 피부 자체에 마 력을 코팅시켜 흐르게 만들어 많은 종류의 마법을 튕겨내게 만드는 마법을 걸었다. 이곳의 모래처럼 푹푹 빠지는 땅에서 발놀림을 잘못할 경우 바로 치명타로 이어질 가능성이 풍부했기에 동방식으로 설명하자면 답설무흔踏雪無痕의 경공을 발휘하게 해주는 마법까지 부여하고, 아예 몸 자체의 민첩성을 증폭시키는 수법과 공기의 흐름과 동화되는 마법을 걸 었다. 이것으로 저 자유의 날개의 효능 3분의 2쯤 되는 회피능력만은 손에 넣은것이다. 이 엄청난 보조마법들에 아쥬리아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상당한 고급의 보조주문도 들어가 있는데 그런것들을 시동어도 생략하고 몸에 부을수 있다니. 뮤테이션 엘리멘탈 스펠의 경우 6서클인데다가 매직 파워 코텍스는 클래스 6의 스펠이다. 아이언 스킨 역시 클래스 6의 주 문인 것이다. 그런것들을 시동어만으로 몸에 부여해버린 괴물이라니. 전문 인첸터도 아닌데 바인은 손쉽게 몸에 마법을 부여한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당연하게도 아쥬리아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정신력이 남았나! 정말 괴물이로군! 루나틱 헬 파이어까지 쓰는 9서클 마스터라니." "……각오하라!" 바인은 바로 몸을 날렸다. 가볍게 팟 하고 모래를 밟았지만 모래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기척조차 없이 공기와 동화되어 흐르듯 몸을 날린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단검을 날려 보냈지만 아예 광익의의 소매를 이용해 미스릴 단검을 받아 튕겨내버리며 바인은 무서운 속 도로 오른손에 쥔 혼연의 지팡이에 사멸과 붕괴의 힘을 동시에 불어넣었다. 생혈의 마력으 로 몸을 지탱해나가는 뱀파이어로써는 사멸의 힘조차 독이었다. 혼연의 지팡이의 끄트머리에서 불쑥 회색의 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고형화되면서 주욱 뻗 어올라가 위에서 굽어져 날 길이만 일반 숏 소드의 길이에 맞먹는 낫의 형태를 이루었다. 본래 낫이라는 무기는 베거나 치는데는 공격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찍고 걸어잡는데 효 용이 더 큰 것이다. 그러나 바인은 일반 범주를 한참 넘은 괴물이었다. 그 완력과 스피드, 그리고 기술에 보조마 법까지 첨가한 상태, 당연히 그녀가 발악처럼 뿌려낸 핏빛의 기운을 장난처럼 갈라버리면서 날아들 수 있었다. "블링크Blink!" 그녀는 스스로에게 블링크 마법을 걸며 아직 재생되지 않은 망토의 힘까지 더해 에쎄릴 동 화법을 이용해 일반 블링크보다 세배는 되는 거리를 단번에 뛰어넘었고, 바인의 낫은 허공 을 갈라야 했다. 그러나 바인은 그 휘두른 힘을 이용해 몸을 빙글 회전시키면서 그녀를 향해 급속히 방향전 환을 하며 달려들었다. 보조마법은 이런 묘기妙技에 다름이 아닌 동작도 가능케 해주었다. 공격한 후에 그 공격 무게 중심을 빠르게 이동시키며 달려드는…… "핫!" 바인의 몸이 순간적으로 가속하면서 왼손으로 오른손 위쪽의 혼연의 지팡이 끄트머리에 손 을 대면서 바로 몸을 회전시킴과 동시에 낫 형태의 기운을 길쭉하게 늘이면서 강하게 찔렀 고, 순간 원심력과 찔러나가는 힘을 고스란히 머금은 그 붕괴와 사멸의 힘은 쭈우욱 하고 길이를 늘리면서 우습게 그녀의 몸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음? 감각이 없다!' "미러 이미지Mirror Image?!" 바인이 미러 이미지 따위 주문에 속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녀는 망토의 에쎄릴 능력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느라 평소의 감각이 상당히 상실된 바인의 흐트러진 몸상태를 이용해 맞 으면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Improved Force Field라도 반쯤은 뚫어버릴 것 같은 엄청난 힘 이 실린 공격을 피해버렸다. 붕괴된 미러 이미지의 마법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인은 역시 안하던 짓을 하면 바보가 된다. 고 중얼거리며 혼연의 지팡이에 불어넣은 기운을 거두고, 혼연의 지팡이까지 백팩에 집어 넣은다음 허공검을 다시 불러서 양손에 감아쥐었다. "인시너레이트 스파이럴Incinerate Spiral! 휠 윈드Wheel Wind!" 아쥬리아가 주문을 매섭게 외쳐 시동한 7서클의 인시너레이트 스파이럴이 작열했다. 휘르르 르 하는 괴이한 음향과 더불어 주변의 산소가 급격히 연소되면서 샛노란 불꽃이 이글거리며 요동을 쳤다. 회오리의 형상을 그리며 바인을 중심으로 3차원적이고 기묘한 불꽃이 춤을 추 어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느껴지는 복사열. 그리고 다시 작열하는 4서클 마법. 휠 윈드가 뿜어졌다. 대규모의 공기 이동과 더불어 대량의 산소가 인시너레이트 스파이럴에 공급되었고, 순간 화 악 하고 타오르며 바인의 광익의마저 그을렸다. "윈드 월Wind Wall! 아더맨시 실드Athermancy Shield!" 바인의 몸 주변으로 순간 화아 하고 바람이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회오리가 아닌, 순수한 바 람의 장벽이 원형으로 열기를 저 하늘로 실어 날랐고, 하늘에 붉은 불꽃이 요란하게 일어났 다. 그러나 윈드 월의 장벽을 타고 다시 불길이 쇄도해들었다. 오히려 더 순수한 산소를 머금고 바인에게 몰려들던 화염줄기들이 순간 바인의 이어지는 외 침에 간단하게 사그라들어버렸다. 투명한 장벽이 그의 몸을 둘러싼 것이다. 불투열성不透熱 性의 방어벽이 형성되자 불길은 형편없이 사그라들며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개벽검開闢劍. 일출日出!' 가볍게 다시 모래땅을 박차고 열기의 잔재가 남은 공기를 뚫자 마자 그의 오른손이 폭발적 인 파괴력을 머금고 움직였다. 우주조화일월신검류의 개벽검에서 일출. 우검의 활동을 이르 름이다. 그리고 바인의 신형이 기가막힐 정도로 깔끔하게 움직여 회색 궤적을 어둠 위로 수 놓자 금방 기겁하면서 아쥬리아는 물러났다. 주문을 연속으로 사용했기에 정신력 소모로 조 금 지친 상태였는데 갑자기 바인의 공격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흑야검黑夜劍. 원월환무圓月幻霧.' 바인의 몸이 가볍게 회전하면서 양쪽 검을 강하게 뿌려냈다. 오른손에 쥔 무기로 찔러들어 온 그녀의 날카롭고 자로 잰듯한 공격을 좌검으로 부드러운 원을 그린다. 원월 주변에 흐릿 하게 뿜어진 달무리처럼 움직이는지 움직이지 않는지 알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유검세였 다. 그리고 또한 확실한 방어여서 검은 탱 하고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또 그 검은 튕겨져 나가다가 강렬한 힘이 실린 그 부드러움과 무게감을 버티지 못하 고 주인의 손에서 빠져나가 튕겨 올라가다 두조각 나버렸다. 환상같은 달무리와 같은 검형. 보조마법에 그 강력한 검술까지 함께하자 도저히 당해낼수 없다. 아쥬리아는 다행히 손이 찢어지지는 않았다. 그 검의 엄청난 타격력을 느낀 순간 바로 놓아서 그냥 잠깐 얼얼할 따 름이었다. '백주검白晝劍. 개기일식皆旣日蝕!' 흑야검이자 음월에 속하는 좌검이 순간 우검을 가리고, 몸이 좌검과 합일되면서 우검을 가 렸다. 그리고 순간 달에 가려진 태양의 은은한 광휘가 코로나의 푸른빛과 함께 터져나가는 환상이 그려졌다. 우검은 밀려나오듯 그 열기를 발휘하는 코로나처럼, 그리고 달의 궤도가 다시 태양빛에 가 려진 순간 우검은 강하게 터져나오는 햇살의 강렬함으로 그녀의 몸을 긁어버리고 지나갔다. 마치 맹수가 할퀴듯 거칠게, 그러나 충분히 살기어린 공격이었다. "아악!" "우주검宇宙劍. 성운星雲!" 기술명을 짤막하게 외치면서 바인은 제 이타를 먹이기 위해 쌍검을 빠르게 움직였다. 이 경 우는 좌검과 우검이 동시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조화검결이라 바인도 배워 나갈 때 꽤 애를 먹은 검결의 장이었다. 우주검 성운. 우주에 퍼진 빛을 내는 성운과 암흑성운暗 黑星雲을 흉내내며 음과 양을 교차로 내세우고 거두면서 바인의 몸은 춤추듯, 꿈결처럼 성 운의 광휘를 따라 움직였다. 몸이 검을 인도하고, 검이 몸을 인도한다. 마음이 검을 인도하고, 검이 마음을 인도한다. 그리고 성운의 마지막 한 자락을 허검과 공검이 맺어낸 순간. 촤촤촤ㅊ 하고 날카로운 살기 의 궤적이 그녀의 몸을 난자질해버렸다. 허공의 검에 실린 붕괴와 사멸의 힘은 짤막하게 드 러났을 뿐이지만 그녀의 힘을 벌써 3분의 1쯤은 흩어버리고 있었다. 차가운 피가 요란하게 피어올라 만개滿開한다. "난살……" 성운 - 난살. 마지막으로 입안에서 작게 읊조린 바인은 완숙한 동작으로 허공의 검을 다시 내면으로 회수하며 쓰러져버린 아쥬리아를 바라보았다. 엄청난 살상력을 지닌 검술이었지만 뱀파이어인 이상 사멸과 붕괴의 힘의 파장을 받았더라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엄청난 힘을 빨아들여서 이미 한참 고위 뱀파이어에서도 최고에 가깝게 강력해진 그녀인 이상 바인이 어느정도 손속에 여유를 두고 가한 검격으로 죽을 리가 없었다. 고운 모래 입 자가 차가운 피에 달라붙는 모습은 상당히 처참했다. "……음?" 순간 영지 중앙에서 거대한 음기의 회오리가 치솟아 올랐다. 아라테온과 누군가 또 다른 자 들이 사력을 다해 힘을 발휘해 서로의 음기로 대결하는 모양이다. 만월은 엘더 라이칸스롭 과 고위 뱀파이어에게 엄청난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 증거로 아쥬리아도 월광을 받으며 몸의 상처 대부분을 아물게 했으며, 은은한 빛이 몸에 서리면서 말라붙은 피와 모래들이 바 닥으로 쏟아져 내려 사라져버렸다. "대단한걸. 만월에 흡혈의 욕망이나 광기도 제어할 정도면 강력한 뱀파이어들인데…… 어째 서 이런 영지를 노리나?" 바인은 뱀파이어 정도는 가볍게 눌러버릴 정도로 강력한 성력을 지닌 휴이즈와 엘더 라이칸 스롭인 아라테온의 힘을 어느정도 측정은 하고 있었기에 그래도 도망갈 정도는 되리라 생각했다. 그는 허검에 사멸과 붕괴의 힘을 동시에 섞었고, 순간 츠파파팟 하고 회색의 스파크가 튀다 가 안정되어 유형화된 검기처럼 치르르 하고 검신 위로 회색의 기운이 치달렸다. 그 허검이 그녀의 목 위로 겨누어지자, 그녀는 숨이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멸과 붕괴의 힘은 너무 나도 강력한 파장으로 그녀를 휘어 잡아버린 것이다. "으…… 으윽…… 그, 그건……" "크흐…… 그래. 그건 말이다. 제노사이드에는 카운터 제노사이드로 맞받을수 밖에 없기 때 문이지. 그러나 계획 발설은 이정도다. 우리는 마지막이라고 멍청하게 떠벌리는 저열한 멍청 이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입을 닫아야 하지." 그래, 소년이었다. 하늘빛의 머리카락은 피에 절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그 광택을 잃지 않았 다. 피와 남빛의 투명하리만치 깨끗한 눈에 가득찬 광기만 제거한다면 충분히 보통 소년으 로 보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새카만 옷에 달라붙은 끈적거리는 액체를 쓸어서 손바닥에 묻 혀보이며, 광기서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라테온은 뱀파이어 로드가 한것처럼 피에 절은 후드를 살짝 문질러서 손에 피를 묻혀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두 존재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음기는 충돌하면서 거대한 폭발음을 낼 정 도였고, 주변의 공기를 급속히 식혀나가고 있었다. 성수나 몇가지 빛에 속한 병기들로 다섯이 넘는 고위 뱀파이어들을 죽여놓긴 했지만 그들의 주변에서 싸우던 기사나 사병들은 갈기갈기 찢겨나가 죽은지 오래였다. 영지민 수십명이 그 들의 노예가 되어 공격해왔고, 너무나 악질적으로 홀린 그들을 아라테온은 참살해야했다. 음 기가 부딪히며 생성된 강렬한 폭발은 모두의 몸을 갈기갈기 찢고 얼리면서 차갑게 식고 굳 은 피를 모두에게 뒤집어 씌웠다. 저 멀리 휴이즈가 에테르 파워를 양손에 싣고 보법을 밟거나 신성법을 사용하면서 십여명에 가까운 뱀파이어들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아라테온은 피곤한 표정이었지만 곧 만월의 거대한 음기를 빌어와 양손에 맺었다. 뱀파이어는 은적색의 강렬한, 영기화 된 음기를. 아라 테온은 은청색의 환상같은, 그리고 투명하리만치 깨끗한 음기를 서릿발처럼 푸르스름하게 유형화시켜 손에 싣고 부딪혔다. 파파파파팡!! "크윽!" "치잇!" 아라테온과 음영 일족의 수장. 뱀파이어 로드는 신음을 토해내며 뒤로 물러났다. 둘 모두 상 대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아라테온은 어리긴 하지만 그래도 엘더 라이칸스롭인 자신과 대등 하게 맞서는 괴물같은 흡혈귀에 대한 감탄이었고, 뱀파이어 로드는 거의 퍼스트 블러드에 맞먹는 음기를 사용할수 있고, 본질만 이제 변환해서 모든 힘을 다 끌어낼수 있으면 금방 퍼스트 블러드가 될 수 있는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는 괴물같은 인간형을 한 존재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었다. "받아라! 글라시어 웨이브Glacier Wave!" 음기를 촉매로 하여 마나도 거의 제어하지 않고 아라테온은 음기의 파도를 만들어냈다. 서 릿발 같은 음기와 얼음의 칼날같은 조각들을 머금고 회전하면서 쏴르르르 밀려나가는 냉기 의 파도. 과연 '진짜 빙하'라 할만 했다. 멋지게 퍼져나가는 파도가 순간 아라테온의 손짓에 따라 3차 원적으로 뱀파이어 로드에게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코 놀라지도 않고 뱀파이어 로드는 싸움에 대한 희열만으로 가득찬 얼굴로 양손을 교차시켜 밀어냈다. "글라시어 웨이브!" 역시 같은 수법으로 냉기의 파도를 밀어내버린 것이다. 쏴아아 하고 맞부딪혀 버린 두 기운 은 섞이면서 소용돌이쳤고, 금방 바닥에 쏟아져내리며 와해되어버렸다. 음기로 허옇게 얼어 붙은 옷가지를 툭툭 쳐서 깨버리면서 뱀파이어 로드는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이제 숫 제 빙강氷剛처럼 보이는 은적색 음기의 칼날을 쥔채 달려드는 그의 모습은 소년임에도 불구 하고 맹수에 가깝게 보였다. '뱀파이어인데 저정도로 강력하다니! 흡혈귀라고 우습게 볼게 못되겠는데?' 두 존재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거대한 음기는 이제 맞물려서 부딪히며 무형의 회오리가 되어 솟구쳐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은 반짝거리는 얼음조각들을 머금고 있어서 굉장히 아름다워 보였지만 사람이 휩쓸리면 얼어 죽어 스펙터가 될만큼 강렬한 음기였기에 위험천만하다. 아라테온의 손이 순간 가볍게 흔들리면서 거대한 천 처럼 보이는 냉기의 융단을 뿜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뱀파이어 로드는 오른손에 음기를 칼날처럼 바꾸어 쫘아아아악 가르면서 쇄 도해들었고, 아라테온은 순간 음기를 탄彈 형태로 응축해서 무서운 속도로 난사하며 몸을 옆으로 날리며 원의 궤적을 그렸다. 바닥은 얼어붙어있어서 좌악좌악 잘도 미끄러졌다. "가랏! 블리자드 스톰Blizzard Storm!!" 본래 7서클 마법이었지만 모아놓은 거대한 음기의 힘으로 인해 아라테온은 캐스팅을 9할 이 상 생략해보이고 소매틱 만으로 엄청난 냉기회오리를 만들어낼수 있었다. 냉기의 탄환들을 쌍수를 놀려 모조리 다 쳐냈던 뱀파이어 로드도 순간 당황해버렸다.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천천히 눈보라가 일고, 그 눈보라는 날카롭게 예기를 번뜩이며 전신 을 휘감아 돌고, 거대한 눈보라와 얼음칼날의 폭풍이 되고, 진공검까지 더해서 거대한 직경 의 눈회오리가 되어 하늘까지 치솟아버렸기 때문이다. "크아아아악!!" 뱀파이어 로드는 순간 기지를 발휘해 모아놓은 음기들을 전부 이 음기 회오리의 반대 방향 으로 회전시키며 주우욱 갈라내리며 아래로 파고들어갔다. 한참을 떠올랐던 몸은 1, 2분이나 흘러서야 간신히 바닥에 닿을수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는 피부까지 슬슬 얼어붙어 있어서 잘못했다간 죽을 지경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충천하던 음기 회오리와 더해진 이 강력한 마 법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방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바람과 함께 냉기까지 공격해 오므로, 그 바람이라는 것이 '밀어내는' 정도와 '베 고 지나가는' 힘이 충분히 강력해서 방어할 경우 힘을 상당히 소모하게 된다. 그래서 회전하는 바람의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면서 그 여력을 중화시키면서 바닥으로 내려온 것이다. '강력한 힘이군…… 그런만큼 이제 힘을 상당히 소모했겠지.' 눈의 회오리가 사그라들고 있었다. 음기가 거의 다 소모되어 자연에 환원된 것이다. 기와 마 나의 흐름으로 음기가 다량 환원되면서 공기는 다시 청명한 차가움 외에는 어떠한 것도 받 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달은 미친 듯이 부풀어올라 거대한 음기와 광기를 발산해 내고 있었 고, 끝까지 부풀어오른 달은 금빛과 은빛을 머금고 일렉트럼 문의 자태를 요요하게 드러낸 다. 그 휘황함에 별빛은 완전히 눌려버렸다. "큭?!" 갑자기 음기를 끌어모으던 뱀파이어 로드는 눈앞에 나타난 흐릿한 신형에 놀라서 팔을 교차 시키고 한쪽 다리를 끌어올린 다음 음기의 강력한 방어벽을 사용했으나 그에 상응하는 파괴 력을 지닌 음기가 부딪힌 탓에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그 충격을 고스란히 전달해버렸다. 그리고 뱀파이어 로드는 체구가 작은데다가 역시 몸무게도 그렇게 무겁지 않아서 완전히 뒤 로 이십여 걸음이나 날아가버렸다. 날아가는 와중에 생각을 빠르게 정리한 뱀파이어 로드는 충격을 해소하면서 아예 음기를 제 어해서 바람 비슷한 흐름으로 몸을 휘감고 저택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아라테온은 아차 싶 어 레비테이션 마법을 건후 비행마법 가속술인 윙 마법을 이용해 공기를 제어해서 무서운 속도로 신형을 날렸다. 그 뒤로 휴이즈는 양손에 에테르를 한가득 모아서 뿌리면서 턴 언데드를 건 다음 바로 에테 르를 가속시켜서 마나와 동조시킨다음 노란 불꽃을 일으켜 뱀파이어 하나를 그대로 재로 만 들어버렸다. 신성의 기운이 깃든 노란 불꽃이 뱀파이어의 몸을 완전히 살라버린 다음 신성 의 기운은 갑자기 어둠의 기운으로 전환되었다. 아슈라스 신관의 성력聖力은 본래 중도적인 것. 그래서 자유자재로 그 성격이 변화될수 있 었고, 어둠도, 빛도, 열기도, 냉기도 모두 다 포용한다. 그래서 방어와 공격의 모든 성향에 다 구애받지 않는 것이었다. 본래 성향 자체가 선도 악도 아니기에 아슈라스의 신관들은 힘 을 발휘하는데에 제약도 없었다. "에이이잇!! 저리들 꺼져!!" 휴이즈는 그렇게 외치면서 어둠의 속성으로 변화한 에테르를 바람의 엘리멘탈에 실어 뿜어 냈고, 순간 부웅 하고 어둠의 장벽이 펼쳐지며 뱀파이어들은 뒤로 밀려나갔다. 순간 휴이즈 는 오른손과 왼손을 합치시켜서 그것을 순수한 바람의 힘으로 변화시켰다. 기보다 훨씬 속 성이 풍부한 영기와 비슷한 에테르였기에 그 변화속도는 일수유나 될까 말까했다. 은은한 백색이 서린 바람은 그의 손놀림에 따라 자유로이 움직였는데, 곧 휴이즈는 그것을 다루어 무언가를 형성시킨다음 살기를 뿜어내며 외쳤다. "선더Sunder!" 선더. 가르다, 떼다, 찢다. 끊다라는 뜻의 단어. 과연 빛의 바람은 날카롭게 그 예기를 복돋 우며 뱀파이어들 셋을 휘감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자르고, 찢으면서 바람은 점점 광기를 머금고 주변을 밝혀 휘돌았고, 휴이즈는 이를 갈면서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이미 뱀파이어 들은 다시 공격을 퍼부어왔다. "제에기랄! 라시에!" 요란한 화광과 폭발음이 그의 바람으로 이루어진 수호벽을 두드렸다. 곧 다시 바람은 성향 을 변화하여 빠르게 뱀파이어들에게 쇄도해들어갔다. 이번에는 허무의 힘이었다. 심연의 허 무가 어둠마저 빨아들이며 소용돌이 쳤다. "이렇게 된 이상 빠르게 처리하고 간다앗! 소우 엠티Sow Empty!" "불안하군." 후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꽤나 육감이 좋은 듯 음기의 소용돌이를 조금은 느끼고 있었 다. 실제로 실내 기온이 상당히 내려가 있어서 후작과 라시에는 불안함을 느꼈다. 안온함은 간데없고 기온은 한겨울의 그것에 가까워 가고 있었다. 후작과 라시에는 폭발음과 더불어 저택 자체를 뒤흔드는 충격파 때문에 계속 긴장하고 있을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이길수 있을까요? 전 혼자 간 그 바인이라는 마법사가 걱정되는데." "그가 스스로 말했다. 자신은 9서클의 마법사라고. 그러니 아마 죽지 않을거다. 게다가 몸놀 림이라 그런것만 봐도 대단한 수준의 검사야. 너도 눈치채지 않았느냐? 그 바인이라는 자는 스스로를 마법사라고 하지만 검도 함께 익힌 자다. 몸이 단단하기도 하고……" 후작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조금의 불안함을 느꼈다. 차라리 아라테온이나 휴이즈는 제법 실 력있는 기사나 몇몇 마법사와 함께 있었다. 그래, '있었'다. 마법사들은 이미 뱀파이어들의 공격에 죽어나간지 오래였고 그 소드 익스퍼트인 기사들은 마법공세와 아라테온과 뱀파이어 로드의 싸움 여파만으로 죽어버렸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것이다. 휴이즈가 그들 생각보다 는 예상외로 분전(당연한 것이지만)해서 고위 뱀파이어들을 전부 죽여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 아마 상당히 놀랄 것이다. 그들이 저쪽 언덕에서 일어난 엄청난 충격파와 굉음에 긴장했지만 그들은 금방 다시 이 근 처에서 일어나는 굉음에 정신을 쏟았다. 그 엄청난 폭발에 놀랐지만 9서클 마법사가 싸우고 있으니 그럴만 하다 하고 넘어갔다. 건물을 통째로 뜯어낼것만 같은 공포스러운 충격파들. 실제로 이미 건물의 일부는 얼어붙어서 부서지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벽만 조금 부서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부서진 벽으로, 뱀파이어 로드가 파고들었다. 뱀파이어 로드는 생명의 파동이 느 껴지는 곳을 찾아나갔다. 그리고 건물의 구조를 파악해 나가면서 남아있는 몇몇 하인들을 잡아 피를 빨고 머리통을 박살내서 죽인다음 힘을 어느정도 보충하고 빠르게 몸을 날렸다. '생명의 기운이 강한'쪽은 아무래도 체력이 쌓인 병사나 하인, 혹은 기 자체가 강한 기사들 일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간낭비 할 것 없이 기운이 약한쪽부터 찾기 시작했다. 그는 최고위 뱀파이어였고, 그래서 생명반응에 민감하다. 금방 기운이 약한쪽을 찾아낸 그는 아예 뱀파이어들의 능력중 하나인 무화霧化 능력을 이용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방 그들이 있는 장소로 이동한 그는 빠르게 몸을 실체화시켰다. "아?!" 라시에와 후작은 깜짝 놀라서 뱀파이어 로드를 바라보았다. 뱀파이어 로드는 날카로운 미소 를 지어보인다음 바로 후작에게 달려들어 손을 휘둘렀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손을 휘둘렀 기에 후작은 단 일격에 피를 게워내며 벽에 처박힐 수밖에 없었다. 내장이 손상된 후작은 피를 쿨럭거리며 토해냈다. "으…… 으윽……" "찾았다…… 큭큭큭." 뱀파이어 로드는 그 가냘프고 창백한 손을 들어서 살짝 쥐어보이며 라시에의 눈을 직시했 다. 그러자 라시에의 눈이 서서히 풀려나갔고, 라시에는 멍한 표정으로 뱀파이어 로드를 바 라보게 되었다. 뱀파이어가 이성에게 발휘할수 있는 '매혹'의 힘. 서큐버스나 인큐버스도 발 할수 있기는 하지만 뱀파이어의 것처럼 강하지는 않다. 그들은 꿈을 이용해서 침투하거나 아예 육체적으로 정기를 흡수하며 이성에게 이상형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뱀파이어처 럼 최면에 가까운 매혹의 힘은 지니고 있지 않다. "좋아…… 해볼까." 뱀파이어 로드는 씨익 웃으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크…… 으윽. 아, 안돼! 라시에! 정신 차려라……" 후작은 피를 게워내면서도 다시 제정신을 차렸는지 다급하게 그녀에게 외쳤지만 아무런 능 력도 없는 그녀로써는 그정도의 자극에 제정신으로 돌아올 리가 없었다. 뱀파이어 로드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바로 후작에게 손을 뻗고 마법을 사용했다. "슬립Sleep!" 후작은 갑자기 맹렬하게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눈꺼풀이 자꾸 감기려들고, 정신이 풀어져 나갔다. 몸이 노곤노곤 해지면서 잠이 들려 한다. 피까지 게워내고 내장이 상해서 고 통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정도의 고통으로는 자극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제 거의 비몽사몽 상태가 된 후작을 향해 뱀파이어 로드는 마무리를 했다. "스턴Stun!" 극도로 다른데에 정신이 쏠리지 않다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충격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보통 사람이라면 기절해버리고 정신을 집중한다면 기절하지 않을수 있다. 그러나 슬립에 걸 려서 비몽사몽 상태인 후작이 과연 버틸수 있을까? 그는 정신력이 강하긴 했지만 뱀파이어 로드의 주문에 저항할 정도는 아니었다. 후작은 눈앞이 새하얗게 물드는 충격을 받음과 동 시에 그대로 눈을 감고 기절해버렸다. 후작의 고개가 꺾이면서 늘어져버렸다. 후작의 몸은 제어를 잃고 바닥에 처박혔다. 그러나 그런 소란에서도 라시에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으로 라시에가 확실히 트랜스 상태임을 확인하게 된 뱀파이어 로드는 만족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저택 밑 부분 에서 콰앙! 하는 굉음이 들리자 눈살을 찡그렸다. '놈들이군.' "빨리 해야 겠는걸. 라시에!" 그가 가늘고 긴 손가락을 까닥 하자 라시에는 천천히 뱀파이어 로드의 목을 끌어안으면서 안겨들었다. 뱀파이어 로드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손으로 빠르게 라시에의 새하 얗고 가느다란 선의 목덜미를 드러내게 했다. 그리고, 정말 한점의 거리낌도 없이 빠르게 이 빨을 목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라시에의 멍한 눈에 황홀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얼굴은 급 속도로 창백해져 가고, 입술도 납빛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곧 뱀파이어 로드는 무릎을 꿇고 멍한 표정으로 늘어져 있는 라시에를 바라보면서, 입에서부터 선혈을 흘리면서 몽롱한 표정으로 잠시 멍청하게 서있다가. 곧 고개를 흔들어 제정신을 차리고는 문을 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시녀 한명을 제압해서 질질 끌고 왔다. 시녀는 갈색 머리카락에 희고 조금 거친 피부. 다시말해 영양상태가 약간 모자라긴 하지만 전형적인 백인의 그것이었다. 뱀파이어 로드는 지체없이 라시에를 보면서 '명령'했다. "'이것'을 물어라. 그리고 마셔라." ------ [ 4권 end ] ------ 126. 폭주暴走 휴이즈가 남은 모든 뱀파이어를 척살하고 바로 아라테온을 따라잡았다. 휴이즈는 굉장히 강 력한 힘을 발휘하기는 했지만 아직 자신의 가장 강력한 힘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금 방 사용해야 될지도 모른다. 야수적이고 빠른 몸놀림으로 달빛을 받으며 달려나가는 아라테 온은 과연 아름다운 엘더 라이칸스롭의 움직임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었다. 그 매끄럽고 흠 잡을데 없는, 인간으로는 상상도 하기 힘든 빠르기를 휴이즈는 그대로 따라붙었다. 아라테온은 깜짝 놀라버렸다. 휴이즈는 정말 도저히 인간으로는 생각하기 힘든 강함과 속도 를 지니고 있다. 휴이즈는 빠르게 아라테온의 뒤를 따라가면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들 이 저택에 도착했을 즈음, 휴이즈는 욕설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제기랄!" 저택의 입구에서 두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고위 뱀파이어 둘이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 고 있었다. 아라테온은 전신을 휘감은 음기를 바로 양손에 응축시켰다. 사람 머리통보다 조 금더 커다란 음기의 구가 응축되면서 현물화되어갔다. 새하얗게 반짝거리는 얼음의 자그마 한 조각들을 빙그르르 구 형태로 도는 바람결에 다량 밀어넣은 것 같다. 일렉트럼 문의 음 기와 광기를 받아 반짝이는 음기의 덩어리를 아라테온은 강하게 내쏘았다. 쉬이이익 하고 쏘아져 나아가는 음기의 구는 정말 빨랐다. "윈드 월Wind Wall!" 저쪽에서는 바람의 장벽으로 한 뱀파이어가 대응해왔다. 공기를 빠르게 빨아올리는 바람의 장벽이 형성되었다. 음기의 구는 물론 바람의 장벽을 뚫고 지나갔지만 3분의 1쯤 되는 음기 가 소실되었다. 음기를 빨아올린 바람의 장벽은 하늘로 음기의 반짝거리는 파편을 뿌려댔다. 일렉트럼 문의 광기를 받으면서 화려하게 반짝이는 음기는 아름다웠지만 충분한 살상력을 포함하고 있었다. "플레임 스트라이크Flame Strike!" 순간 노란 불꽃의 구가 붉은 불꽃을 너울너울 휘감고 쏘아져 나왔다. 사람 몸통만한 노란 불꽃의 구는 붉은 비단같은. 아니, 시스루 천과 같은 모양의 불꽃을 머금고 음기의 구와 충 돌했다. 순간 콰앙!! 하는 굉음이 일어나면서 음기와 불꽃은 맞물려 사그라들었다. 뱀파이어 들의 대응은 상당히 신속해서 아라테온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포석이 깨져 나가고 건물들 이 뒤흔들릴만큼 큰 폭발이 일어났다. "에에에잇!! 꺼져!! 에테르 윙Ether Wing 전개展開!" 위우우웅. 기음이 일어나면서 휴이즈의 등 뒤로 세쌍의 에테르 윙이 뿜어져 나왔다. 어둠속 에서 환상같은 궤도로 일어난 에테르 윙은 거대하고 넓었다. 반투명한 백색으로 타오르며 은빛의 궤적을 남긴 에테르 윙은 일렉트럼 문의 음기가 감히 범접하지 못할만치 화려하고 또한 아름답고 강력했다. 휴이즈의 분노와 뒤섞여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에테르는 붉은빛을 은은하게 머금고 있었 지만 에테르 윙은 아름답고 깨끗했다. 부우우웅 하는 기음이 인다. 마치 초진동하는 물체처 럼 공명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공간마저 일부 제어하고 음속으로 날아도 전혀 사용자에게 부하를 주지 않는 강력한 에테르 윙. 또한 의지에 따라 미스릴도 가볍게 절단해버리는 칼날이 되는 에테르 윙이 세쌍씩이나 형성된 것이다. 순간 에테르 윙은 신성의 정염을 머금고 강렬하게 타올랐다. 순간 공간을 제어한 휴이즈는 두 번 연속 블링크 해서 바로 뱀파이어들 사이에 나타났다. 뱀파이어들은 깜짝 놀라서 공격하려 했지만 그들이 검술이고 마법이고 사용할 시간조차 없 었다. 휘우우웅 하고 공기를 쪼개면서 에테르 윙은 공간을 난자질해버렸다. 서거거걱. 수십조각나버리면서 새하얀 불꽃에 휩쌓여 타들어가며 뱀파이어들은 금방 재가되어버렸고, 그것에 아라테온은 깜짝 놀라버렸다. 미처 반응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공 격이었다. '대, 대단하군! 세상에! 에테르 윙이 세쌍이라니! 휴이즈는 프리스트일 뿐인데! 제길! 나도 아슈라스의 신관이나 할까? 프리스트가 저정도면 대체 대신관쯤 되는자는 얼마나 강한거 지?!' 휴이즈는 바로 날개를 강하게 홰쳤다. 순간 바람이 일어나면서 난기류가 형성되고. 그것을 제어하여 몸을 휘감은채 날개를 다시 한 번 강하게 홰 치면서 건물의 정문으로 쏘아져 들어 간 휴이즈는 그 문에 새겨진 아름다운 문양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바로 문을 향해 몸 을 비틀면서 에테르 윙을 그어버렸다. 순간 에테르 윙이 번쩍번쩍 하며 문을 그었고, 그 단 단하고 커다란 문은 조각조각 나며 쏟아져 내렸다. 지금의 그는 문을 열만한 시간조차 부여 할만큼 여유있지 않은 정신상태였다. 휴이즈의 빠른 움직임을 따라 아라테온은 달려들어갔다. 이미 휴이즈는 날개를 반쯤 접고 살짝 기울여서 등 뒤로 날개를 배치했다. 그러자 에테르 윙이 좁은 복도에 걸리지는 않았다. 현물화한 상태라 에테르 윙은 복도의 물질에 걸리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접은 것이다. 휴이 즈는 분노에 가득찬 얼굴로 달려들어갔고, 그들이 계단을 올라서 홀에 도착했을 즈음에 숫 자가 이십에 다다르는 기사들과 사병, 혹은 하인이나 하녀들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채 험악한 분위기로, 붉은 눈빛을 그들에게 쏘아보내고 있었다. "레서 뱀파이어들!" 아라테온이 깜짝 놀라 휴이즈를 바라보았지만 휴이즈는 날카로운 살기를 뿜어내며 그들에게 달려가 반응조차 할사이도 없이 몸을 회전시키며 그대로 날개를 강하게 휘둘렀다. 퓨우우웅 하는 날카로운 공기가르는 소리가 일어나면서 순간 피가 요란하게 터져올랐다. 죽어버린 검 은 피가 벽에 끼얹어지면서 흘러내린다. 순식간에 토막난 시체들이 대량양산되며 쏟아져내렸다. 옷가지나 금속 갑옷조차 소리없이 가른 에테르 윙은 복도와 홀에 일진광풍을 일으켰다. 그 검은 피의 비를 아라테온은 가벼운 바람의 장벽으로 모두 막아냈지만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찰나간에 이 복도는 ' 뱀 파이어가 살만한 인테리어'로 장식되어버렸다. 비릿한 피의 향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휴이즈는 달려들어갔다. 정말 망설임조차 없이 모조리 다 죽여버린 것이다. 면식이 있는자도 있었을텐데…… 휴이즈의 발걸음은 이제 재가 되어버 린 그들의 몸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한점 거리낌도 없었다. 사실 매우 현명한 일이다. 뱀파이어 로드가 자신의 피까지 이용해서 약간의 힘을 부여하고 절대 저주가 풀리지 않도록 '죽여서' 만들어버린 레서 뱀파이어들이었기에 죽이는게 당연하 다. 휴이즈는 정말 너무나도 빠르게 결단을 내리고 모조리 죽여버린 것이다. '바인이 맞았어…… 휴이즈는 역시 신관으로 살 자가 아니야. 저 냉혹한 결정과 빠른 행동 력. 그러나 약간 이성이 마비된 점이 문제인가?' 한계단을 더 올라서 그들이 다시 홀에 도착했을 때 십여명에 달하는 레서 뱀파이어들이 붉 은 영기를 휘감고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전부 다 기사들이었는데 조금 더 피를 많이 받 은 듯 이들은 굉장히 강력한 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폭발적인 힘으로 바닥을 푹푹 패게 만들며 달려든 그들은 손에 쥔 검을 휘둘렀다. 전부 다 기사였는데, 생명의 힘인 기를 잃은 대신 그 엄청난 힘으로 검술만을 이용해 그들을 공격해오고 있었다. "크! 진정한 휴식의 어둠으로 돌아가라!" 그 위세가 심상치 않았지만 휴이즈는 비웃어 버리면서 날개에 힘을 불어넣고 홰를 쳤다. 날 개가 펄럭이면서 그 바람결에 순수한 신의 정염의 조각들이 실리며 하얗게 타올랐다. 그리 고 그것들은 레서 뱀파이어들에게 뿌려졌다. 키이이 하는 괴음을 지르면서 그들은 하얗게 타들어가서 재가 되어 흩날렸다. 아까는 시체들이 피를 토해냈지만 지금은 피를 뿌릴 사이 도 없이 바로 재가되어버렸다. 아라테온은 그 엄청난 에테르의 정염들의 조각이 뒤로도 날아오자 몸에 강력한 음기의 회오 리를 이용해 모두 중화하면서 중얼거렸다. 엘더 라이칸스롭인 아라테온은 신의 정염에 타들 어가는 몸을 지니고 있어서 막지 않을수 없었다. '아아. 제길. 나는 완전히 잊어버렸군.' 푸스스스하고 흩날리는 재를 맞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휴이즈는 바로 몸을 날렸다. 아라 테온은 그런 휴이즈를 따라가면서도 눈살을 찌푸렸다. 휴이즈는 살의와 분노의 오오라를 일 으키면서 짧게 끊어 외쳤다. "이 칙칙한 자식들! 라시에와 아버지에게 어떤 일이라도 생기기만 하면 모조리 소멸시켜 버 리겠다아아아!!" 저돌적인 동작으로 쏘아져 나가면서 휴이즈는 곧 집무실로 올라가는 층의 입구에 한 뱀파이 어가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음을 발견했다. 휴이즈는 곧바로 양손에 신의 정염. 에테르를 한 가득 피워 맺으며 날려보냈다. 한가득 맺힌 그 새하얗게 백열하는 불꽃은 사람 하나쯤은 모 두 휘감고도 남을 크기로써 복도를 가득 메우며 밀려들어갔다. 그 뱀파이어는 무언가를 하려고 했지만 바로 그 신속한 공격에 맞고 새하얀 정염에 휘감기 더니 타들어가며 깔끔하게 재가되어버렸다. 휴이즈는 곧바로 광기어린 미소와 함께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아라테온은 그런 휴이즈를 따라 올라가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휴이즈는 불안 감의 증폭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제길! 바인! 빨리 와줘! 휴이즈가 제정신이 아니란 말이야!' "후우. 늦지 않았기를……" 바인은 살짝 찡그려진 표정을 지으면서 중얼거리다가 등 뒤에서 펄럭이는 남빛의 망토를 바 라보았다. 아쥬리아에게서 강탈(?)한 물건이었다. 이렇게 되면 바인은 특급 마법기를 자그마 치 세 개나 가지고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1위의 혼연의 지팡이와 2위의 광익의에 적어도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는 자유의 날개까지. 바인은 등 뒤에서 펄럭이는 반투명한 남빛으로 타오르는 날개 같은 망토에 의지를 보냈고, 순간 바인의 몸은 약한 바람에 휩싸이더니 공기층을 주욱 가르면서 빠른속도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주인의 능력에 따라 그 힘을 극한까지 발휘하는 자유의 날개는 아쥬리아가 사용 할때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바인이 마력을 불어넣어 복구한뒤로 오히려 전보다 더 강해진 것이다. 조금 더 그 범위가 확장되고 넓어진채 펄럭이는 망토는 마치 불꽃같았다. "윈드 스텝Wind Step - 셀프Self! 드로우 파워Drow Power!" 바인은 윈드 스텝 캐스터Caster 스펠Spell을 외워 몸에 걸었다. 6서클이었지만 고급주문이라 서 바인으로써도 짤막한 캐스팅이 필요했다. 그리고 망토에 드로우 파워를 걸자 공기가 빠 르게 안정되면서 갈라져 나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불꽃처럼 거칠게 펄럭이는 망토 가 주변의 공기를 제어하는 것이다. 주인의 신경계와 뇌의 신체 민첩 제어장치와 동화하여 어느정도의 민첩성과 운동신경계의 성능을 증폭시키는 기능이 있기도 했기에 보조 마법 없 이도 바인은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성직자 주문에 포함되었지만 마법사들이 그것의 효용에 반해 마나로도 사용 할수 있게 전환한 윈드 스텝이 더해지자 정말 바람을 앞질러 내달려나간다. 소리도 없이 살 짝 떠오른 상태에서 공기층을 밟으며 질주하는 바인의 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 예 리한 시선은 상당히 망가진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인은 몸을 빙글 돌려 한 3층 건물의 위까지 도약해 오른다음 강하게 벽을 밀어 차며 신형을 날렸다. "윙 & 엑셀레이션Wing & Excelation!" 광익의 뒤쪽에서 순간 순백의 에테르 윙이 넓게 펼쳐져 올랐다. 거기에 비행마법의 속력을 늘려주는 마법과 좀더 그것보다 고급 마법인 엑셀레이션을 함께 걸어주자 정말 상상을 능가 하는 속도로 쏘아져 나가는 것이다. 자유의 날개는 에테르 윙에 찰싹 달라 붙어서 에테르 윙으로 하여금 남빛의 불꽃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공기저항도 느끼지 못한채 바인은 이제 거의 저택에 도달해 있었다. 상당히 파괴된 저택 부근의 건물과 길을 바라보면서 바인은 불 길함을 느꼈다. 그 불길함은 금새 맞아떨어졌다. 건물의 일부가 박살나버리고 군데군데 벽까지 깨져 내부가 보이는 저택은 정말 처참하게 부수어져 있었다. 정문에 내려앉아 에테르 윙을 접고 다시 남 빛의 망토가 반투명하게 펄럭이는 평상시의 상태로 바꾼 그는 보조마법들을 풀고 정문을 바 라보았다. 저택 내부로 통하는 나무문은 조각조각 잘려있었다. 나무조각을 하나 들어올려 단 면을 손끝으로 쓸어본 바인의 눈에 충격이 치달렸다. "대단하군. 이것을 검으로 베었다면 엄청난 솜씨의 검사겠지. 하지만 에테르가 은은히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이건 휴이즈의 작품인가? 아슈라스 교단. 대단한데. 고작 프리스트 한명이 에테르 윙을 쓸수 있단 말인가?" 바인은 눈을 찡그렸다. 이런 힘을 쓸 정도라면 상황이 상당히 급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 기에 문을 열고 들어갈 정도의 정신적 여유가 없었기에 이렇게 에테르 윙을 휘둘러서 절단 해 버린 것일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상당히 수양이 깊어보이던 그가 동요할 정도의 일이고 그렇다는 것은 같은 가족중 누군가가 피해를 당했다는 것이다. 영지야 파괴되든 말든 그에 겐 별로 상관 없다. 오로지 가족들만 살아남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후작과 라시에가 위험하군. 저택에는 전투의 흔적이 있긴 하지만…… 어디로 간거지? 하인 들이나 병사…… 기사들도 없군. 생체 반응이라고는…… 하나?" 바인은 정신의 힘을 사용해 저택을 뒤지다가 최상층 바로 밑에 익숙한 생명반응이 전해짐을 느꼈다. 바인은 부숴진 저택 또 부숴져도 별로 상관없다는 얼굴로 광익의의 에테르 윙을 뿜 어냈다. 등 뒤에서 하얀빛이 팍 터져나와 천장을 난자질했다. 순간 우르르 하고 쪼개진 천장 의 잔해가 쏟아졌고, 바인은 에테르 윙을 이용해 그 돌조각들을 다 튕겨내 버리곤 바로 날 아올라 위층으로 올라섰다. '카운터 제노사이드Counter Genocide라. 뱀파이어 로드. 한 일족의 로드 정도로 생각했는데 거의 갓 에이전트에 가까웠단 말인가?! 그렇다면 나라도 도망치는게 불가능하다. 후. 그 전 에 막아야겠지. 라시에…… 제길.' 그리고 바인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무렵. 그의 예민한 청각기관에 희미한 신음소리가 포착되 었다. 바인은 서둘러서 반쯤 박살난 문을 밀고 들어가 벽에 처박혔다가 미끄러져 내린 것 같은 모습의 후작을 바라보았다. 피를 울컥 토해낸 폼이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내장이 상해 서 흘러나온 선홍색의 피와 잠시 후에 나온 죽은 피가 뒤섞여 엉겨있어 얼핏 보기에도 처참 했다. 그리고 실제로 죽음에 임박해 있었다. 바인은 서둘러서 그의 심장께에 손을 가져가 마나를 불어넣었고, 천천히 그 박동이 줄어가 던 심장은 충격을 받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바인은 이어서 그의 몸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 했고, 몸이 괴사해서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복강에 고인 피는 죽어가고 있 고, 내장이나 근육, 세포조직도 점점 죽어간다. 이건 진공 상태에 던져놓고 죽여가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 정도다. 다만 피가 쏴아 하고 다 흘러나오지는 않았을 뿐. "제길! 조금만 늦었어도 죽었겠군! 그대, 꺼져가는 정명자의 숨결에 지탱하는 존재의 숨결을 더하노니. 그대 정명자여 당연히 일어나 숨을 쉬고 사그라든 생의 불길을 화려하게 일으킬 지어다. 위대한 마나의 힘은 곧 그대에게 생명수일 지니. 어라이크 리바이벌Alike Revival [유사 부활類似 復活]!" 바인은 남은 클래스식의 모든 마력을 혼연의 지팡이에 불어넣고 쓰다듬으며 띄워 올린다음 수인을 세 번 맺어 공중에 서클식으로 끌어모은 마나를 정제해서 세 개의 룬 문자를 남겼 다. 알파나 베타, 오메가와 비슷한 문양이었지만 판이하게 다르기도 하다. 그 세 개의 룬 문자 사이로 붉고, 푸르고, 노란 빛의 선이 연결되면서 가운데로 찬란한 순백 색의 불꽃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것을 회색빛으로 타오르는 혼연의 지팡이에 가져다 대자 순간 혼연의 지팡이로 주변의 마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천, 수만가지 빛의 입자가 되어, 덩어리 지기도 하고 빛살이 되기도 하고 분말처럼 흘러내 려오기도 하면서 마나들이 천변만화한다. 그리고 그 마나는 혼연의 지팡이로 모여들고 있었 다. 너무나도 거대하고 강렬한 마나의 기운. 9서클 마법 다웠다. 유사 부활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후작을 되살리기에도 충분했고 오히려 10년에서 20년 이상 생명을 연장시킬수도 있으리만치 강력한 주문이었다. 바인이 지닌 회복주문은 시간이 조금 걸리게 되어 있어서 오히려 유사 부활이 더 탁월하면서도 빠른 효과를 지니고 있기에 아깝 지만 사용하게 된 것이다. "됐다!" 바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순백색의 불꽃과 천변만화하는 마나의 흐름이 후작의 몸을 휘감으 면서 춤을 추어댔다. 그리고 그것은 빠르게 그의 심장으로 흘러들이면서 혈도를 통해 스며 들고 정신을 치유해 나가면서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 모든 마나가 다 흡수되었을 즈음에 후 작은 갑자기 피를 왈칵 토해냈다. 복강에 고인 피까지 토해내게 하는 극에 다다른 회복마법. 유사 부활의 주문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부활 마법보다 더 강력하다. "후우…… 웨이크풀Wakeful!" 바인의 손이 후작의 이마에 닿았다. 다른 손으로 수인을 맺은다음 딱 튕기면서 외치자 순간 후작의 눈이 뜨여졌다. 바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오늘 9서클 마법을 두차 례나 사용했기에 아무리 그라도 정신력과 체력 소모가 상당했던 것이다. 게다가 야수에 가 까운 상태로 스스로의 자아를 변질시키기도 했다. "으, 으음. 내가 살아있는건가?" "어디로 갔습니까! 그들은?" 후작은 깜짝 놀라서 바인을 바라보았다. 바인은 냉기가 가득 찬 눈으로 후작을 바라보았다. 평소의 허무감과 무심함이 아닌 강한 의지로 불타오르는 바인의 눈은 회흑색으로 인해 꼭 블랙 다이아몬드 처럼 보였다. 그 빛에 후작은 감탄했지만 지금의 사태를 금방 깨달았다. 이 미 유사 부활의 주문으로 인해 생기가 가득 차 있는 몸은 그의 기억을 되살릴수 있게 해 주 었다. "그들은 이 위층에 있네. 아라테온 군이 말하기를 '아공간 형성'의 주법을 형성했다고 하네. 위의 다락으로 가려면 저 책장의 푸른 표지를 한 책을 빼내게." "그러죠. 그럼 갑니다!" 바인은 활활 타오르는 듯한 시선을 책장에 보냈다. 후작이 손가락으로 알려준 책장에 다가 간 바인은 책장 중간의 푸른 표지의 책을 꺼냈고, 책끄트머리에 달린 작은 쇠사슬이 치르르 하고 흔들렸다. 순간 드르르 하는 기이한 소리가 들리면서 바로 옆 책장이 뒤로 말려들어가 더니 옆의 빈 공간으로 철컥 하고 들어가버리는게 아닌가? 바인은 그리고 곧 열걸음 정도의 거리를 둔 계단을 발견할수 있었다. "라시에가 뱀파이어 로드에게 구속되어 있네. 반드시 그 아이를 구해주게!" "노력해 보지요." 바인은 그 말만을 남기고 빠른 속도로 뛰어들어갔다. 그가 뛰어 들어가고 나서 후작은 눈을 감았다. 한숨을 토해낸 후작은 이를 갈았다. 그에게 이 사건은 처음으로 스스로에 대한 회의 감을 던져주게 했다. 스스로의 힘은 너무나 약했기 때문이다. "내 딸아이조차 내 손으로 구해낼수 없다니……" 127. 타타타타탓― 바인의 발걸음은 석벽을 두드렸다. 이어서 그는 품속의 스페이스 백팩에 손을 집어넣어 무 언가의 손잡이를 콱 잡아 쥐었다. 바인은 어느새 날아 오르듯 세 개씩의 계단을 차고 올라 어느새 군데군데 녹이 슨 철로 보강된 나무문을 보게 되었다. 그것을 발로 밀어 찬 바인은 빠른 속도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아공간 게이트인가?" 은은한 빛을 발하는 순백의 게이트가 괴리를 일으키고 있었다. 공간을 뻥 뚫어놓기는 했지 만 방사능 따위는 방출되지 않았다. 바인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꼭 드라이아이스로 연출 한 것 처럼 바닥에 흐르는 흰 연기같은 빛무리를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는 주저없이 흰빛의 회오리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공간감의 상실을 느꼈다. 몸이 주욱 늘어나서 알 수 없을 정도로 꼬인 통로를 미끄러지는 느낌과 함께 그는 현실같은 공간에 도착했다. "이미테이션 플레인같은데." 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칠흙의 하늘을 보석을 입힌 실 같은 것으로 수놓은것만 같았다. 온갖 빛의 파편으로 가득 찬 하늘,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요요히 빛나는 일렉트럼 문. 그러 나 바인은 야외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저 일렉트럼 문은 음기를 발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음기가 없는 것이 아니다. 뱀 파이어 로드가 만든 이상 없을 리가 없었다. 아예 이 공간 자체가 음기로 가득차 있었다. 바 인은 인상을 찡그리면서 스페이스 백팩에 넣은 손을 빼어 냈다. "귀찮게 되었군." 쿠구구구궁― 순간 바인은 고개를 휙 돌렸다. 이곳은 정말 비현실적인 곳이었다. 청색으로 물든 고운 모래 입자가 가득찬 사막같은 장소 위로 요요한 일렉트럼 문의 빛살과 보석같은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 바인은 이곳에서 새하얀 날개 여섯장을 휘두르며 공격하는 누군가와 그것을 맞받으며 음기 의 회오리로 반격하는 한 존재를 금방 찾아냈다. 탁 트인 장소여서 그의 좋은 눈은 금방 그 것을 포착한 것이다. "격돌중인가. 음? 아라테온은…… 라시에와 싸우는것인가? 역시 라시에는 뱀파이어가 된 모 양이군." 라시에는 굉장히 강력한 음기를 양손에 맺고 아라테온을 공격하고 있었다. 라시에가 전투법 을 알 리가 없다. 다만 뱀파이어 로드와 영성이 통한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뱀파이어 로드의 조각이기에 그 힘을 일깨운 것 만으로도 그녀를 제압하려 드는. 다시말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지 않은 아라테온을 괴롭힐 정도는 되었다. 에테르의 날개 여섯장을 무서운 속도로 휘 두르며 치고 자르는 휴이즈의 모습은 살기가 차고 넘쳤다. 뱀파이어 로드나 휴이즈는 그 공격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은 듯 마법과 신술을 치고 받으면서 굉장한 폭발을 일으킨다. 쾅쾅 하는 굉음과 함께 푸른 모래가 푹푹 패였다. 바인은 천천히 품속에서 핸드캐논을 끄집어 냈다. 그는 총열을 잘 붙잡고 그 예리한 눈으로 뱀파이어 로드 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잘 겨눈다. 바인의 완력은 정말 엄청나서 저 핸드캐논의 반동도 제압 해 버릴 정도였다. "가랏!" 양손을 이용해 무서운 속도로 탄피를 튕겨내면서 쏴 갈긴다. 풀메탈재킷의 탄을 네발 장전 해 놓은 상태가 콰콰쾅쾅 하는 기음과 함께 총구에서 불꽃이 하얗게 튄다.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나간 네발의 풀메탈재킷은 놀랍게도 파이어볼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다른 한발은 음기의 회오리를 관통해 사그라들게 했으며 또 하나는 왼손을 뻗어 휘두르려던 뱀파이어 로드의 팔꿈치에 맞아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끊어 터뜨려버렸다. 그리고 남은 한발은 뱀파이어 로드의 발치에 박혀 요란한 굉음과 함께 모래를 밀어냈다. "명중률 낮은 핸드캐논 치고는 잘 맞았는데. 허리를 노렸는데 말이지. 역시 핸드캐논에 장거 리는 위험한가?" 바인은 휴이즈도 가까운 거리에 있었는데 핸드캐논을 난사해버린 것이다. 모래속으로 탄피 가 파고들었다. 바인은 핸드캐논을 품속의 백팩에 집어 넣고 바로 양손위로 허공검을 소환 했다. 회백색과 회흑색의 불꽃과 함께 두자루의 검이 그 예리한 자태를 드리운다. 그리고 바인은 무서운 속도로 치달렸다. 그러나 그 발걸음은 가벼워서 모래가 거의 파이지 않을 정도다. 뱀파이어 로드의 팔뚝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지만 핸드캐논의 탄은 마법적인 것이 아니라 금방 빠르게 재생되어 오른다. 떨어진 팔뚝이 꿈틀거리지만 금방 축 늘어졌다. "크. 건방진것들. 죽어라! 글라시어 퀘이크Glacier Quake!" 뱀파이어 로드의 왼발이 진각처럼 떨어져 내렸다. 순간 음기가 그를 중심으로 빠르게 회오 리치면서 둥글게 퍼져나갔다. 콰가가가가각! 거대한 얼음덩이들을 대지위로 생성시키고, 그 거대하고 날카로운 얼음의 칼날은 부서지면서 휘오오 하고 퍼져나가는 그 둥근 원의 바람에 섞이면서 지진과 함께 휴이즈, 그리고 바인, 아라테온과 라시에까지 공격해 나갔다. 그러나 라시에는 오히려 퍼져나오는 글라시어 퀘이크를 조종해서 그것으로 몸을 휘감았고, 아라테온은 바로 모래를 염동으로 조종해서 단단한 벽을 형성해 그 냉기의 충격파를 막아냈 다. 바인은 가볍게 자유의 날개를 이용해 몸을 휘감고 모든 얼음조각과 충격파를 다 미끄러 뜨려버렸다. 여기서 라시에와 휴이즈가 가장 효율적으로 냉기를 막아냈는데 휴이즈는 바로 에테르 윙으로 몸을 감싸 막아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모두 강한 에테르의 힘을 빌어 친 방어벽은 고작 글라시어 퀘이크 정도 의 주문으로는 뚫을수 없었다. 사람도 갈기갈기 찢고 얼려버리는 고급주문을 고작이라고 말 하는 것은 너무하지만 휴이즈의 세쌍이나 되는 에테르 윙의 장벽은 너무나도 두텁고 강력했 다. 그런만큼 뱀파이어 로드는 시간을 벌기 위해 공격한 것이라 할수 있겠다. "슬라이스Slice! 체이닝Chaning!" 뱀파이어 로드가 양손을 휘저으며 외치자 순간 예리한 은빛 선들이 휘어지면서 뿜어져 나갔 다. 그 공격을 바인은 허공검을 들어서 휘둘러 끊어내버렸다. 휴이즈나 아라테온들도 잘 막 아냈다. 라시에는 그것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아서 금방 뱀파이어 로드에게 접근해 올수 잇었다. 뱀 파이어 로드는 다가온 라시에의 이마에 손을 짚으면서 싸늘하게 웃었다. 순간 그의 왼손에 음기가 현물화되어 날카로운 얼음의 검이 되었고, 그것은 라시에의 목에 들이대졌다. "이, 이런……" "저놈이?!" 아라테온은 짜증어린 표정이 되었고 휴이즈는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을, 바인은 무심한 표정 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뱀파이어 로드는 득의에 찬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라시에라는 인간이 아니라 그 영혼이다. 그러니까 이 조건은 너희들에게 아주 좋은거라 할수 있다." "뭐지?" "라시에의 영혼에 담긴 내 조각만 받아가겠다. 좋은 조건이 아닌가?" 휴이즈와 아라테온은 바보가 아니다. 뱀파이어 로드를 무서운 눈길로 노려보자 뱀파이어 로 드는 짐짓 겁먹은 듯한 표정이 되었지만 그것이 조롱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수 있는 표정 이요, 행동이었다. 그때 바인이 그 행동에 인터럽트를 걸었고, 뱀파이어 로드는 곧 바인을 노려보게 되었다. "교섭따위는 거절한다. 네놈이 그 힘을 되찾으면 곧 '완벽한 영성'을 되찾을테고 그 후에는 네 약속이 제대로 이루어질 거라는 것을 난 믿을수 없다. 그 후에는 나조차도 너를 이길수 없을테니까." 바인은 그리고 허공의 검에 붕괴와 사멸의 힘을 불어 넣었다. 휴이즈는 바인을 날카롭게 노 려보았지만 더 이상 무언가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점점 이성이 되돌아 오는 모양이다. 뭐 지금 상황은 인질극이니까 그럴만도 했다. "난 갓 에이전트에 가까운 괴물을 소멸시킬만큼 강하지 못해서." "가, 갓 에이전트?!" 휴이즈와 아라테온이 깜짝 놀라서 그런 바인을 바라보았다. 바인은 싸늘한 표정으로 이제 회색으로 강하게 불타오르는 쌍검을 들어서 '멸절세滅切勢 건곤합일乾坤合一'을 취했다. 좌 검은 역수로 쥐고 우검은 정수로 쥔다음 좌검을 기울여 그 검극을 좌상방으로 향하고 몸을 틀어 우검을 복검으로 향한 뒤 왼 다리를 앞으로, 그리고 오른다리를 굽혀 몸을 회전시켜 상대방을 치는 신기회절의 검세를 취했다. "그럼 지금 라시에까지 함께 죽여버리는 수밖에." "마음대로 하라. 하지만 내 생각에 너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라시에가 '죽으'면 그 힘까지 함께 다시 윤회하게 되겠지?" 그 말에 뱀파이어 로드는 미간을 찡그렸다. 어떻게 속일수도 없으니 이건 표정 관리조차 필 요없는 상황이었다. 바인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은 누군가가 발설했다고 밖에 여길수 없는 상황이다. 뱀파이어 로드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참아 냈다. 누가 발설 했든 상관없었다. 힘만 되찾으면 된다. 뱀파이어 로드는 휴이즈와 아라테온이 바인을 바라보 고 있음을 느끼고는 피식 웃었다. "흥. 나야 그정도 기간쯤 기다릴수 있지. 도망가는 것은 쉬우니까." "그럼 사라지시던지." 바인은 냉소로 되받아 쳤고, 뭔가 다른 반응을 끌어내 보려던 뱀파이어 로드는 점점 상황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짜증이 읾을 느꼈다. 그는 곧 천천히 얼음의 검을 라시에의 목으 로 파고들게 만들었다. 검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려 얼음의 검을 타고 흘러내렸다. 속이 부 글부글 끓는다는 표정의 휴이즈는 '나 폭발 직전이다'라는 동작을 취해보였지만 뱀파이어 로 드를 막지는 못했다. "블링크Blink……" 휴이즈의 몸이 순간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에테르 윙을 이용한 블링크였다. 깜빡 하고 흐려 진다음 뱀파이어 로드가 미처 반응할 사이도 없이 에테르 윙이 얼음의 검날에 부딪혔다. 그 러나 챙! 하는 기음이 흐를뿐 얼음의 검날은 깨어지지 않았다. 뱀파이어 로드는 싸늘한 미 소와 함께 바로 강렬한 음기를 왼쪽 다리에 실어 휴이즈의 가슴을 걷어 찼다. 순간 콰앙 하 는 폭발이 일면서 휴이즈의 날개가 급격히 흐트러지며 그의 몸이 뒤로 후욱 쏘아졌다. "건방진…… 큭?!" 바인의 신형이 어느새 뱀파이어 로드의 시야에 나타났다. 그리고 우일검이 매끄러운 궤도를 그렸다. 어느새 힘이 다 거두어지고 붕괴의 힘만이 검날에 얇게 맺혀있었다. 번쩍 하고 회색 궤도가 그려진 순간 치이익 하고 얼음의 검날을 칼날이 지났다. 그리고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의 검날에 금이 치달렸다. 치익 하고 벌어진 얼음의 검날이 라시에의 목에 닿아있 다가 떨어져 나왔고, 뱀파이어 로드는 밀어찬 자세 그대로 바인을 걷어 차버렸다. "큭?!" 바인은 좌검을 움직여서 가드로 간신히 막아냈지만 쾅 하는 폭발이 일면서 그도 아찔한 고 통과 함께 뒤로 튕겨져 나갔다. 뱀파이어 로드가 힘을 어느정도 감추어 왔는지 바인이나 휴 이즈도 금방 튕겨져 나가버린 것이다. 사실 근거리에서 바인이나 휴이즈가 '제대로 된 공격' 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당연히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뱀파이어 로드도 대단히 강 력한 존재였기에.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뱀파이어 로드의 왼손에서 순간 유리빛 뇌전이 치달려 바인에게 직격했다. 광익의에서 흰빛 이 뿜어져 나오 라이트닝 볼트를 비껴냈지만 이것은 뱀파이어 로드가 예상한 바. 뇌전의 궤 적은 달려나오려던 아라테온에게로 향했다. 깜짝 놀란 아라테온은 검에 뇌격마법을 걸어 유 도전류를 이용해 뇌전을 쳐서 비껴냈다. 아라테온의 돌격이 저지당해 버린 것이다. "이런! 펌블Fumble!" 바인은 뱀파이어 로드에게 펌블 스펠을 걸었지만 뱀파이어 로드의 마력은 강력하여 저항력 으로 인해 펌블 주문은 가볍게 튕겨져 나가버렸다. 휴이즈는 몸을 추스르고는 빠르게 날아 들어 에테르 윙 여섯장을 빠르게 휘둘러 대면서 온갖 각도에서 무서운 스피드로 공격해 댔 지만 뱀파이어 로드는 라시에를 이용해서 간단하게 에테르 윙의 공격을 무력화했다. 거기에 라시에까지 음기를 이용해 휴이즈를 한 대 쳐버리자 휴이즈는 간신히 에테르 윙 두 장으로 막아내고 다른 네장으로 강하게 찌르고 쳐베어서 뱀파이어 로드의 공격을 저지하면 서 뒤로 밀려 나가버렸다. 휴이즈는 이를 악물면서 양손을 들어 신술을 펼쳐 에테르의 정염 을 토해냈지만 그 빛무리는 두 음기의 흐름에 풀려서 흐트러진다. 설명은 길었지만 무척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아라테온이 나 바인은 스펠을 완성해서 무차별로 퍼부을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라시에 때문 에 강력한 공격을 쓸수는 없어서 아라테온은 휴이즈에게 뱀파이어 로드를 공격할수 있게 하 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한계였고 바인은 라시에를 무력화시키는게 한계였다. "피어싱Piercing!" "윈드 월Wind Wall - 스파이럴Spiral!" '꿰뚫는' 강한 찌르기가 뱀파이어 로드의 음기를 뚫어버렸다. 간단하게 꿰뚫려버린 음기의 회오리가 흐트러지고, 라시에의 음기 회오리는 윈드 월 스파이럴에 흡수되어서 저 하늘 위 로 음기를 흩날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휴이즈부터 바인까지 음기의 피해를 입어 군데군 데 몸 위로 서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차아아아앗!" 순간 바인도 깜짝 놀라버렸다. 강렬한 기합이 휴이즈의 입에서 터져나왔고, 휴이즈는 미끄러 지듯 몸을 회전시키고, 한보 딛고 복잡하고 빠르게 물 흐르듯 몸을 놀리면서 날개 여섯장을 빛이라는 것이 폭발하는 것처럼 휘둘러댔다. 찌르고 자르고 치고 베는 무서운 공격. 에테르 윙 자체가 거의 어검강에 맞먹는 예기를 지니고 그 강도 역시 상상을 능가하는 만큼 그 에 테르 윙의 날카로움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 초입의 여섯명이 거의 공간 제한 없이 동시에 검 술을 펼치는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휘휘휘휘이익!! 빛의 난무. 마치 바람같은 에테르 윙의 질풍의 궤도로 정신없이 치고 그어댔다. 음기는 완전 히 흩어져버렸고, 여섯장 에테르 윙이 그려내는 궤도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 빛의 폭풍과 어 지러운 공격이 온갖 각도에서 다 쏟아져 나왔다. 뱀파이어 로드도 몇군데 베였고, 라시에는 '치는' 공격에 얻어맞고 뒤로 주우욱 밀려 나갔다. 뱀파이어 로드의 몸이 난자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 심하게는 다치지 않았다. 공격도 방 어도 완벽한 휴이즈를 도저히 쳐서 물러나게 만들 수 없었다. 바인도 저 공격을 상처없이 받아낼 생각은 하지 말아야 될 정도. 보법을 무서운 속도로 밟고 또 흐르는 듯한 몸놀림으로 에테르 윙을 휘둘러 빙그르르 돌며 원의 궤적으로 치고 자르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여섯자루 검을 날려보내고 치고 회전시키면서 자유자재로 다루어 검무를 추는 것 같았다. 흰빛으로 강하게 타오르는 에테르 윙의 난무는 숨이 거의 끊어져 나갈 듯 한 상황의 휴이즈가 지쳐서 여섯장으로 빠르게 찌르 고 날개를 펼쳐 물러나 호흡을 가다듬게 되자 끝났다. "후우…… 후우……" "네, 네놈 정말 신관이냐?!" 뱀파이어 로드도 어지간히 당황했다. 이건 소드 마스터라도 막아낼수 없으리만치 강력한 공 격이었던 것이다. 한방 한방이 어검강에 견주는 에테르 윙의 공격의 난무를 누가 막아낼 것 인가? 게다가 에테르가 현물화된 것이기에 깎이거나 잘려도 다시 달라 붙는다. 물론 고통은 느껴지겠지만 그것은 얼마든지 참을수 있다. 휴이즈는 거친 숨을 몰아 쉬다가 다시 달려드 려고 했고 뱀파이어 로드마저도 그런 휴이즈에게는 질려버렸다. 에테르 윙에 의해 난 상처라 뱀파이어 로드의 몸은 재생이 늦었다. 뱀파이어 로드는 빠르게 음기를 이용해 에테르 잔여력을 밀어냈다. 그러자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그 엄청난 재생 력에는 모두가 다 익숙해진 참이라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재생이라는 행위는 모두의 사력을 다한 공격을 불렀을 뿐이다. "이이이이잇!!" 휴이즈의 이마에 핏대가 올랐다. 그의 몸을 휘감고 에테르가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치솟아 아공간까지 일그러뜨린다. 공간이 울렁일 정도로 강력한 에테르가 춤을 추며 휘황하게 치솟 아 올라 검이 되었다. 위우웅 하고 에테르 윙 두장이 더 솟아올랐다. 에테르 윙은 여섯장에서 여덟장으로 늘어났다. 이것은 휴이즈로써도 상당히 무리인지 고통 이 조금씩 찾아든다. 휴이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기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날개를 펼쳤다. 장엄하게 펼쳐진 거대한 에테르의 날개가 반짝이며 깃털을 흩날린다. "하프 트랜스듀스Half Transduce[반半 변환變換]!" 아라테온의 그 머리카락이 순간 길어지면서 등허리까지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 은 찬란하게 은청색으로 변했고, 그의 손톱이 상당히 길어지면서 날카롭게 마감되었다. 눈빛 이 순수한 푸른색으로 타오르면서 음기를 방출했다. 송곳니가 길어져 입밖으로 비어져 나왔 지만 심하게 길지는 않았다. 귀가 뾰족해지긴 했지만 엘프의 그것에 가까웠다. 반쯤 라이칸 스롭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마나여, 나의 뜻에 따라 변화하라! 그대 세상을 떠받치고 조화를 이루는 힘이여! 그 위대한 본연과 본질의 힘으로 거듭나 모든 자를 복종케 하라! 너어어어어!! 위대하고 또 거대한 언 령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라져라[권능언령멸權能言靈滅 - Power Word Extinction]!!" 사력을 다한 캐스팅과 더불어 시전어를 조화시켜 수인까지 변화시켜가며 시동어가 토해진 다.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진 시동어는 무서운 속도로 마나를 변화시키면서 뱀파이어 로드에 게 집결되었다. 그것에서 위협을 느낀 그는 가장 먼저 도달한 바인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 마법저항력을 결집시켰다. 그리고 나서 그 강대한 '소멸의 의지'에 잠깐 저항하다가 빠른속도로 디스펠과 체이닝을 이 용해 어느정도 스펠을 흐트러뜨린다음 정신력으로 저항했다. 덕분에 권능언령멸은 반쯤 해 소되어 사라졌으나 그때 바로 긴장을 풀어버렸기 때문에 몰려들어 뱀파이어 로드의 왼쪽 팔 과 어깨를 삼켜버렸다. "크윽?!" 신음하는 뱀파이어 로드에게 제 이차 공격이 퍼부어졌다. 아라테온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 며 포효한 것이다. "캬아아앗!!" 파파파파파팍― 모래가 요란하게 튄다. 가볍지만 빠른 속도여서 난류가 일고, 푸른 모래가 그것에 휘감기는 것이다. 은청색으로 변한 머리카락이 일렉트럼 문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빛났다. 길어진 손톱에 음기가 형상화되면서 푸르고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미 강기조차 비교 가 안될 정도로 강력해져서 뱀파이어 로드를 향해 엄습하고 있었다. 128. 라시에가 아라테온에게 달려들었다. 강력한 음기를 형상화시켜 양손에 맺은채 그것을 회전 시켜서 날려보낸 것이다. 아라테온은 주저없이 왼손을 휘둘러 손톱으로 그 음기를 갈라버렸 고, 다시 빠르게 달려들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뱀파이어 로드에게는 다행히도 손톱의 푸른 궤도는 오른손목만 반쯤 절단하고 지나갔다. 뱀파이어 로드는 너덜너덜해진 양쪽 손 대신 발을 이용해 강한 회전차기를 날렸고, 곧 아라 테온은 양팔을 겹쳐 가드해서 그것을 막아낸 뒤 아예 라시에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제압하려 들었다. 지금의 아라테온이라면 얼마든지 제압이 가능할 것이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뱀 파이어 로드는 간신히 움직여주는 오른손으로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날려보냈다. 피이잇 하고 쏘아져 들어간 단검은 팍 하고 터져서 강렬한 화염을 뿜어냈고, 그 노란 화염 을 가른 아라테온은 길다랗게 포효하면서 뱀파이어 로드를 향해 공격을 가하려 했다. 그러 나 그때 또다시 라시에의 음기 공격이 퍼부어졌다. 반쯤 본질을 일깨우기는 했지만 주변에 가득찬 음기와 저 일렉트럼 문이 그의 사고를 어느정도 방해하고 있었다. "방해하지 말고 라시에나 붙잡아!!" 그렇게 고함치면서 순백색의 에테르를 불꽃처럼 전신에 휘감은 휴이즈는 빠르게 날아들어 이젠 여덟장의 날개를 휘둘렀다. 역시 불타오르는 것처럼 흰색의 불꽃을 휘감은 에테르 윙 이 치솟으며 더 다양하고 넓은 각도로 짓쳐들어오자 뱀파이어 로드도 이때는 정말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뱀파이어 로드는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다. "아즈라엘의 검!!" 그는 오른손을 들어 쏟아지는 피를 이용해 작은 고리를 형성하며 외쳤고, 6서클의 스펠인 아즈라엘의 검은 그 피의 힘을 빌어 빠르게 형성되었다. 흑색의 에테르로 이루어진 반투명 한 검이 에테르 윙 여덟장의 궤도를 전부 가로막흔 순간 강렬한 괴리가 일어났다. 폭발, 그 리고 일그러짐. "크아아악!" 휴이즈는 입에서 피를 토해내며 뒤로 날아가버렸다. 신성의 에테르와 절혼의 에테르, 거의 극단에 가까운 두 힘이 마주쳐버리면서 아공간의 음기와 동시반발을 일으켜 그 공명을 모두 휴이즈에게 쏟아버린 것이다. 그 엄청난 에너지를 받은 휴이즈는 피를 쏟으며 튕겨져 나가 버렸고 정신력 소모로 인해 관자놀이를 붙잡은채 신음하고 있던 바인이 제정신을 차리지 않 는 이상 전세는 걷잡을수 없이 기울것이 확실했다. '제길! 빨리 해야겠군!' 뱀파이어 로드는 그 아즈라엘의 검과 에테르가 부딪히는 것에서 무언가를 착안해 내고는 싸 늘하게 웃었다. 곧 블레이즈 파이어 볼Blaze Fire Ball을 한방 날려보내 아라테온을 공격한 그는 블링크를 사용해 라시에의 등 뒤로 이동했다. 그리고 빠르게 캐스팅을 끝마친후 싸늘 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는 매개물로 품속의 소검 하나를 선택했다. "최후의 승리자는 나다! 아즈라엘의……" 바인은 흐릿한 정신 속에서 라시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라시에를 통해서 또 다른 누군 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의 머리카락은 일렉트럼 문의 환상속에서 길다란 은발 로 보였다. 그리고 겉잡을수 없는 분노가 치달아 일어났다. 의식적으로 봉인했던, 기억 깊은 곳의 그 영상. 쿵! 쿵! 쿠쿵! 심장이 벌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뇌리까지 분노가 치달아 올라 눈앞을 부옇게 만들었다. 바인의 몸에서 살기와 사멸의 힘이 조화되어 흘러나오고, 분노와 붕괴의 힘이 조화되어 미 친 듯이 요동을 쳐댔다. 그 변화는 아직 누구도 인지하지 못했다. 본질이 내면을 박차고 부 상하기 시작했다. 뱀파이어 로드의 오른손에 쥐어진 팔뚝만한 길이의 소검의 검극에서 반투명한 흑색의 에테 르로 이루어진 검날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것은 라시에의 몸을 투과해서 뚫고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무방비적인 정신 상태인 라시에의 유체와 영혼을 분리시켜 몸 밖으로 빠져나 오게 만들었다. 사실 이정도로 강력한 주문은 아닌 아즈라엘의 검이 정신이 봉인된 라시에 의 영혼을 끄집어 낸 것이다. 에테르의 검이 '그때 그 검'으로 보였다. 피를 머금고 튀어나온 검날. 그리고 바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라시에의 몸이 추욱 늘어지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문득 바인의 몸 주변에 열기가 치솟아 올랐다. 열기, 그리고 그것은 다시 과거의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불길한 그 이미지.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길, 쓰러진 설연. 섬뜩한 붉은색과 은색은 요란한 은적색으로 불길 가운데 춤을 춘다. 일렉트럼 문에 의한 환상과 흐릿한 시야로 뱀파이어 로드의 머리카락이 바뀌어 보인다. 은 색의 머리카락, 그리고 은빛의 눈동자. 반투명한 흑색의 에테르체조차 순은의 칼날로 보였 다. 그리고 있을리 없는 피가 묻어있는 것 같았다. 바인의 몸이 부르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회색의 불길이 화아악 하고 치솟아 번져나오기 시작했다. 뱀파이어 로 드는 유체와 영체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본연의 힘을 한가득 빨아올렸다. 본연의 힘이 그와 동화되면서 구멍이 난 존재의 영성이 메꿔져 간다. 아직 어느 누구도 바 인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했다. 뱀파이어 로드의 몸에서 음기가 화아악 하고 치솟아 오른다. 하늘을 찌르는 영기와 에테르. 그것은 곧 점점 그의 본질적 수치로 상승하기 시작했고, 푸른 음기가 흑색의 어둠과 뒤섞이면서 묘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그러나 그것도 은빛으로 보이 는 환상을 막지 못했다. 뱀파이어 로드는 소검에 강력한 힘을 실어서 라시에의 복부를 꿰뚫었다. 그리고 송곳니를 드러내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박아넣고 피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힘까지 전부. 조금 돌아 왔던 그녀의 의식은 완전히 식어버렸고, 휴이즈는 경악하여 눈을 부릅떴다. 에테르 윙은 다 시 여섯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라테온과 휴이즈는 무서운 속도로 치달아서 공격을 가했지 만 가볍게 휘저은 손길에 튕겨져 나가버렸다. "크읏!" "카아앗!" 아라테온은 양쪽 손에 음기를 집결시켜 푸르른 강기처럼 치솟게 만들어 교차적으로 손톱을 휘둘렀다. 그러자 푸른 기운이 주욱주욱 연이어 뻗어나가 뱀파이어 로드를 공격해 들어갔다. 뱀파이어 로드는 라시에의 몸을 들어 집어 던졌다. 이미 생명이 끊어지고 혼까지 사라져버 린 라시에의 몸은 음기의 회오리에 산산히 찢겨져 나갔다. "크…… 으……" 바인의 눈동자에 광기와 살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을 휘감은 회색의 불꽃이 더더 욱더 강력하게 발화했다. 이제 아공간은 천천히 그를 중심으로 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러나 아직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휴이즈는 분노에 가득차 음기를 간단히 튕겨내는 뱀파 이어 로드에게 달려들려 했다. "크아아아아아아!!" 바인이 포효를 내지르기 전까지. 모두의 시선이 바인에게 가 닿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회백 색과 회흑색의 불꽃이 순수한 회색으로 뒤섞여 타오르며 거대한 불기둥이 되어 공간을 잠식 해 들어갔다. 아라테온은 힘을 가라앉혀 바로 인간형으로 되돌아온다음 휴이즈와 함께 아공 간에서 탈출했다. 라시에의 산산조각나버린 시체는 회수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카아아아아아아!!」 바인의 등 뒤에서 회백색과 회흑색의 날개가 뻗쳐나오기 시작했다. 단 두장 뿐이었지만 그 길이는 보통 에테르 윙의 세배 이상. 점점더 길어지고 거대해져 나가는 날개는 공간을 완전 히 찢어발겨버렸다. 아공간은 물론이고 물질좌표적 공간까지 찢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공 간이 울렁이면서 그의 본질이 고개를 쳐들었다. 「죽여라! 멸하라!」 본연의 외침. 바인은 그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광기와 살의와 뒤범벅이 되어버린 정신은 폭 주를 가라앉힐 정도의 이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바인의 피부가 은은하고 미약한 회색을 띈채 묘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파괴하라! 무너뜨려라!」 다시한번 터져나온 본연의 외침. 바인은 또다시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회백색과 회흑색의 날개는 이제 성장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거대하여 이미 공간을 꿰뚫고 허공 의 나락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양손에 쥐어진 허공의 검에서는 그 검보다 길이가 열배 나 되는 회백색과 회흑색의 칼날이 비어져 나와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사멸과 붕괴의 힘. 순수한 본질로써 각성하기 시작한 바인은 말 그대로 폭주중이었다. 미뉴엘이 그토록 막으려 들었던 일인 것이다. 그런만큼 천천히 지각까지 붕괴되면서 무너져 버리고 있었다. 저택은 송두리째 허위 차원으로 함몰되어버렸고 공간은 우주로 열리기 시작 했다. 사멸과 붕괴의 힘으로 공간까지 삼켜나가고 있어서 이미 바인은 점점 신으로 변해하 고 있었다. 본질이 사멸과 붕괴인 파괴의 신이. 뱀파이어 로드는 긴장한채 바인을 바라보았다. 아니, 아예 공포가 일어나서 영혼의 끝뿌리까 지 점령당해 버린 상태였다. 사멸과 붕괴. 본연의 소멸을 바라보게 하는 그 엄청난 힘은 두 려움으로 뱀파이어 로드를 붙잡아버렸다. 암황이 된 뱀파이어 로드였지만 지금의 바인에게 는 단 일검에 스쳐도 소멸을 면치 못할 정도로 나약한 존재였다. 바인이 힘의 0.1%도 되찾 지 못했다는 것을 미루어 볼 때 확실히 인간을 초월하면 괴물이 될 뿐이라는 말이 정말 정 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우오오오오오―!!」 공간을 양단해버리면서 사멸의 칼날이 내리 찍혔다. 뱀파이어 로드는 그 엄청난 일격을 막 아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모든 본연의 힘을 끌어모아 간신히 몸을 이동시켰다. 그러나 사 멸의 기류에 휘말린 것만으로도 힘의 상당부분이 파괴되어버렸다. 절망이 가득한 뱀파이어 로드의 몸을 붕괴의 칼날이 꿰뚫었다. 뱀파이어 로드는 정말 허무하게 사그라져 없어져 버 렸다. 지금까지 바인이 저정도에 당했다는 것이 한심할 정도로 쉬웠다. 바인의 사멸과 붕괴의 힘이 공간까지 잡아 먹어나가면서 그 범위를 늘려 영지 자체를 허위 차원에 처박아 나가고 있을 때. 휴이즈와 아라테온, 그리고 그들이 데리고 간 후작은 간신히 영지에서 멀어져 높은 상공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색의 진광이 서려있는 영지는 푸욱 파여져서 점점 좌표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흑색과 백색의 스파크가 요란하게 튀면서 회색으로 뒤덮여버린 공간을 휘감아 돌았다. 그것 을 보면서 후작은 허망해 하는 표정이었다. 휴이즈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라시에는 죽었 다. 그것을 인정한 것이다. 스스로를 이성으로 제어하고는 있었지만 가슴이 따끔따끔 거렸 다. 그러나 지금은 저 광경에 혼이 빠져나가 버릴 정도로 놀라고 있다. "허, 허차원까지 영지를 함몰시켜버리다니!! 허차원도 조금씩 파괴되고 있다?!" "저건 인간의 힘이 아니야…… 아무리 힘이 강해도 저럴수 있나?" "물론 가능하다." 이것은 어느 누구의 대답도 아니었다. 아라테온과 휴이즈는 깜짝 놀라서 옆을 바라보았다. 휴이즈는 에테르 윙으로, 아라테온은 그런 휴이즈에게 매달려서, 후작은 아라테온의 강한 완 력으로 붙잡혀 있었다. 아무리 놀라고 상황이 좋지 않아도 기척 정도는 알아야 되었을텐데 어느새 그들의 옆에는 누군가가 어둠 위로 떠올라 있었다. 일렉트럼 문의 광기가 비추어지 지만 그의 은청색 머리카락의 광택을 지우지는 못했다. 순은에 사파이어를 입힌것만 같은 아름다운 은청색의 머리카락이 요요하게 흔들린다. "흠. 벌써 폭주인가. 어쨌든 대단하군. 힘의 만분의 일도 사용하지 못하는 주제에 저정도라 니. 확실히 강하긴 한데?" 냉엄한 표정이지만 핏빛의 입술과 아름다운 얼굴은 알 수 없는 색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름 다운 청년은 그렇게 선채 저 장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탄조차 없이. 말의 내용은 감탄이었 지만 결코 감탄의 느낌이 담기지는 않았다. 그것은 당연했다. 그는 천신의 존재. 천빙天氷의 케셀이었으니까. "빨리 진정 시키지 않으면 어지간히 파괴되겠군." 길다랗게 늘어진 은청색의 머리카락의 아름다움은 일렉트럼 문의 광휘조차 억누를 정도였 다. 눈은 사파이어의 그것과 같은 푸른색. 짙은 푸른색은 아름답게 반짝이면서 냉엄하지만 서려있는 광기를 담은채 함몰되어가는 공간을 바라보았다. 물질 좌표 공간에 허차원 좌표까 지 모조리 뭉개버리고 있는 저 무식한 힘이 더 개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가 온 것이다. "나로도 충분하겠지." 그는 오른손바닥을 하늘로 향했다. 그러자 오른손에서 서늘한 냉기가 퍼지기 시작하더니 응 집되어 푸른색의 손바닥만한 원을 열었다. 그리고 그 원에서 불쑥 하고 창 한자루가 튀어나 왔다. 전체적으로 푸르른 색의 창은 마치 커다란 터키석을 깎아서 만들어낸 듯 했다. 길이는 일반 창보다 조금 길었다. 푸르른 청룡이 새겨져 타고 올라 창날 바로 아래까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 창날은 반투명한 금속이었는데 하늘색으로, 어둠속에서도 찬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서늘한 냉기를 발산했지만 자체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모두에게 확실히 인지되는…… 얼 음으로 빚어낸것만 같은 창. 도저히 예술품 외에 어떤 가치도 없어 보이지만 그것에서 느껴 지는 힘의 파장은 강력했다. "자, 천빙의 힘을 받아봐라!" 순간 주변의 마나와 기가 모두 천빙의 창에 빨려들어왔다. 그리고 천빙의 창은 하늘색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냉기를 발산하고 있었지만 빛을 토해내는 것이 꼭 타오르는것만 같았다. 창대를 양손으로 잡아 가볍게 빙글 돌려보던 그는 만족스러운 듯 창을 꽉 쥐고 나서 저 죽 음과 붕괴의 공간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휙 창을 집어 던졌다. 가볍게 집어 던지기는 했지만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 폭포의 굉음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한 냉기를 머금은 창은 푸르른 기운을 화려하게 토해내면 서 무서운 속도로 내리꽂혀 공간을 꿰뚫어버리듯 쏘아져 내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스피 드. 거의 빛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그것은 금방 쏘아져 내려 바인에게 직격했다. 바인은 물론 그 거대한 회색 화염의 칼날을 휘둘러 창을 쳐내려 했지만 놀랍게도 푸르른 빛 으로 가득찬 창은 빠르게 회전하면서 회색의 화염을 모조리 다 흩어버린다음 바인의 몸에 직격했다. 콰아아아앙!! 다행히 꿰뚫지는 않았지만 바인의 몸을 휘감은 회색의 불꽃을 완전히 흩어버리면서 굉장한 폭발음을 일으켰다. 그 엄청난 충격파에 바인의 몸이 흔들렸다. 갑자기 빙글 하고 회전한 창 은 자아를 가진 듯 창대로 바인의 머리를 시원스럽게 후려 갈겨버렸다. 퍼어억 하는 소리와 함께 바인의 고개가 푹 꺾였다. 그리고 창대에서 시원한 냉기로 이루어진 실들이 슬금슬금 뻗어나와 바인의 몸을 휘감았다. 창대에 머리를 후려친 순간 허공의 검은 그의 내면으로 돌아가버렸다. 뻗쳐나오던 본질의 힘은 금방 가라앉아버렸다. 고작 창대로 한 대 맞은 것 뿐(?)인데 본질이 가라앉은 것이다. "이제 머리가 좀 식었나보군. 발광을 멈춘 것을 보니." "……" "귀찮잖아. 이 멍청이는. 아물어라!" 다시 무서운 속도로 튕겨 올라 바인을 끌고온 창대를 잡으면서 그는 왼손을 가볍게 함몰된 공간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마나와 기가 요동치면서 함몰된 공간을 향해 몰려들었다. 그 리고 찬란한 빛무리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공간이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공간은 빠르게 아 물어 공간 붕괴의 시작점인 곳으로 정확하게 맞물렸고, 곧 파괴된 참상이 드러났다. 운석 맞 은것보다 더 처참한 상흔이 남은 대지를 바라보던 천빙의 케셀은 감상을 던졌다. "멋지게 부쉈군. 미생물 한 마리도 안남았는데?" 129. 실제로 그 상흔의 크기는 매우 거대했다. 그리고 여파 또한 거대했다. 금속마저 녹여버릴 정 도로 강렬한 방사능이 뿌려진 정도? 물론 사멸의 힘에 오염된 것이지만…… 그렇다 하더라 도 그 방사능보다 약하지는 않았다. 다만 성질이 다른 것은 방사능처럼 어디로 퍼져나가거 나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저곳의 모든 미생물과 유기질은 처참하게 분해되거나 아예 성 질 자체가 바뀌어 있었다. 일렉트럼 문은 이제 서서히 그 광휘의 날개를 접고 있었다. 달의 광기는 식어가고, 마침내 서서히 잠들어간다. 뿜어내던 강렬하기 그지없던 음기, 공기중에서 피어나던 음기의 꽃도 시 들해져갔다. 달은 기울어지고 밤은 이제 서서히 흩어져 간다. 햇빛의 손길이 닿은 순간 그 밤의 광기어린 꿈은 사라지고 안온한 공기만이 생명을 감싸리라. 아마도 대지를 오염시킨 사멸의 힘도 서서히 조금씩이나마 정화되어 나갈 것이다. 최소 5년 후라면 먹이사슬 최하단계의 분해자들도 다시 자리를 찾을수 있을 것이다. 대륙 전체의 모든 술사나 마법사들이 느낄수 있으리만치 강력하긴 했지만 그것은 이제 서서히 흩 어지는 거대한 결계의 힘으로 차단되어 있다가 은은하게 흘러나갈 뿐이었다. 그 결계의 주 인은 환상의 바람을 다스리는 천신인 세라스. 그도 지금 그가 힘을 흘려보내 형성한 거대한 바람의 결계를 풀었을 것이다. 사멸의 힘은 기와 마나를 가리지 않고 오염시켜 그 성질을 전환시켰다. 다만 에테르와 영기 만이 그 흐름에서 간신히 빗겨나갔을 뿐이다. 5년이라는 세월은 인간이 보기에도 제법 긴 세월이다. 그런만큼 저 땅에 나무를 하나 심는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말라 죽을 것이었다. 대 지마저 오염된 이상 아마 사멸의 기운이 5년 후에 사라지더라도 최소 분해자들만이 살아가 게 될 것이고, 적어도 100년쯤은 지나야 숲이 자랄 것이었다. 물론 지금 이 상태 그대로 놓아 둔다면 이라는 전제 아래서. 이 자리에는 여섯장의 에테르 윙을 쓸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신관 하나와 엘더 라이칸스롭 하나가 존재하 지 않던가. 그들을 제외하고서라도 지금 이 자리에는 공간을 시선으로 가르고 우주를 손짓 으로 파괴할수 있는 괴물(?)이 하나 있었다. 그가 비록 천빙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지만 천신. 사실상 다루는 속성 때문에 붙기는 했어도 모든 속성을 다룰수 있다. 다만 천빙 의 힘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다룰수 있을 뿐. 그렇다 해도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에테르와 마나. 그리고 영기와 기를 모두 포용하고 있는데다가 천신쯤 되는 신의 신언이라면 단 한마디로 차원을 무너뜨릴수 있었다. 「그대, 오염된 자연과 대지여. 되살아나라! 그리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라!」 손을 가볍게 휘저으며 케셀은 외쳤다. 그 가벼운 한마디. 그러나 그 가벼운 동작과 말은 세 계를 진동시켰다. 거대한 마나의 흐름과 기의 흐름, 에테르와 영기의 흐름이 사멸의 힘을 포 용하기 시작했다. 아니, 사멸의 힘 자체가 서서히 흩어지면서 사그라들어갔다. 본래 바인만 하더라도 본질은 천신중에서도 끝에 이르르는 최강의 영체다. 그러나 각성이 이루어지지 않 은 이상 파멸과 붕괴라는 그 본질의 힘은 강력하기는 해도 천신을 해할 정도는 못되었다. 마나의 흐름은 신언神言으로써 바뀌고, 기의 흐름 역시 통제되었다. 먼저 마나는 에테르와 융화되기 시작했다. 에테르와 합일된 마나는 아직 아물기는 했어도 불안정한 공간을 다시 유클리드적 공간으로 고착시켜 안정상태로 되돌렸다. 그리고 기와 영기는 흩어진 사멸의 기 운을 대신하여 강렬한 생명력으로 대지의 오염을 사그라뜨렸다. 「사멸한 모든 것들이여, 이제 생명을 머금고 피어나 세상을 노래할 지어다!」 그것만으로는 단지 생명이 피어날 조건만이 마련되었을 뿐이다. 그의 한마디에 마나와 기, 영기와 에테르가 모두 뭉쳐지며 '창조'의 업을 이루기 시작했다. 풀잎이 피어 오르고, 나무가 돋아 올라 형성된다. 순식간에 양수림陽樹林(햇빛을 다량으로 받아 형성된 숲이다. 햇빛을 많이 받으려면 그 숲 전체에 조성된 나무들의 나이가 적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작아야 '가려 지지' 않을 것 아닌가?)을 건너뛰어버렸다. 그리고는 울창한 음수림(양수림하고는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형성된지 오래 되어 음지에서 자란 나무가 많아진다. 한마디로 울창한 숲.)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어서 그것은 인간들이 다닐 '길'을 제외하고 깔끔하게 영지가 무너진 자리를 뒤덮었다. 함몰된 대지는 간단하게 메 워져버렸고, 그 위로 기와 마나에 흐트러지지 않는 수준 하에서 숲이 형성되었다. 이곳 기후 와 그 토질에 맞는 종류의 식물들이 가득 메워서 이젠 영지가 있었다고는 생각할수 없을 정 도로 완벽한 땅이 되었다. "이정도인가? 젠장. 아무리 사멸과 붕괴라도 영혼까지 소멸시켜버리면 내가 천신이라도 무 슨수로 사람을 되살리란 말이야? 휴우. 이정도로 끝내자." 케셀은 중얼거리면서 서늘한 푸른 빛으로 가득한 시선을 사방으로 둘러보다가 뭔가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만족한 얼굴이 되었다. 멍한 얼굴로 방금의 위대한 업적을 바라보던 그는 창백한 얼굴의 후작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순간 후작은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 다. 파괴되어가던 정신이 안정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스스로의 의지를 아슈 라스의 신전에 통해 몇가지의 말들을 전하고는 다시 눈을 떴다. 제법 커다랗고 또한 중요한 곳에 위치한 도시 하나가 날아가버린 엄청난 사건이니 아슈라스 의 신전을 통해 무마하려 든 것이다. 먼저 아슈라스 신전에서는 '마나와 기의 대 충돌 사고' 를 통한 영지의 소멸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그 균형이 무너진 대지에 신관들을 대거 투 입해 오염된 대지를 되살리고 숲을 형성시킴으로써 이 나라에 심심한 조의를 표할 것이다. 뭐 일단 그런식으로는 마무리 할수 있겠지만. 이렇게 되면 후작을 비롯한 일행의 제거가 필요하겠지만 모두에게 케셀이 함구령을 내리고 이 나라의 국왕에게 어느정도 사실을 알려주면 된다. 물론 조작된 사실이다. 영지를 습격한 뱀파이어들이 행한 일이라고. 어차피 죽었는데 좀 덮어 씌우든 말든 그들은 항의조차 하지 못할것이 아닌가? 후작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천신이 있는 이상 정신이나 기 억을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완벽하게 마무리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이쪽 차례인가. 거기 신관. 아슈라스님의 신관이겠지? 필멸자여. 네 이름은 휴이 즈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없어진 영지의 영주는 바로 저 인간이겠지." "……그,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누구십니까?" 휴이즈는 케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 분위기는 도저히 인간의 그것 이 아니었다. 아니, 분위기 자체는 인간의 그것이지만 그 존재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그 위 치하고 있는 존재감에서 풍기는 너무나도 큰 위화감은 강대한 권능을 지닌 신관. 그리고 아 슈라스의 신관인 그에게 있어 느끼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아니, 케셀이라는 존재가 부러 드 러냈다고 할수 있었다. 아라테온은 케셀과 휴이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케셀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받아들여 충 격을 느낄 정도로 아라테온은 안정된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휴이즈는 이제 묘하게 침착해 져 있었고, 아라테온은 판단 불가능한 상황에서 스스로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 케셀을 분석 해보고 있었다. 아라테온이 판단하기로 케셀은 인간이 확실히 아니고, 무엇보다 드래곤조차 아니다. 드래곤이라면 아마 엘더 라이칸스롭으로써는 느꼈어야 한다. '……그렇다는 말은 저 사내가 신급 존재란 말인가?! 하긴, 저 창조의 권능은 감히 필멸자로 써는 흉내조차 낼수 없는 거대한 힘이지 않은가. 어느누가 저 대지를 간단한 언령으로 정화 하고 되살릴수 있단 말인가? 드래곤이라면 모르겠지만……' 케셀은 손에 쥔 천빙이라는 이름의 창을 서서히 내면으로 갈무리했다. 푸른빛의 잔흔과 함 께 공중 위로 빛의 고리로 느껴지는 환상을 뿜어낸 창은 금새 사라져버렸다. 매우 가냘프지 만 인간의 그것은 아닌 바인의 허리를 덥썩 끌어 잡은 케셀은 휴이즈를 직시했다. 마치 탁 록색과 청록색이 겹친 것 같은 빛의 눈은 그 푸르디 푸른 눈과 마주쳤다. 어둠속이었지만 이미 이곳에 있는 모두는 어둠에 구속될 정도의 존재들이 아니었다. "어떤 이야기를 듣고 이곳으로 왔나?" "……예. 신전에서 바인이라는 사내를 잡아서 그가 폭주하지 않도록 동행하며 그런 기미가 보일 때 그분께서 선사하신……" 거기까지 말한 휴이즈는 품속에서 서클릿Circlet 하나를 끄집어 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한 고리 형태였지만 또 아니었다. 이마에 쓰는 서클릿이긴 했지만 그 아름다움은 놀라울 정도 였다. 드워프 장인이라도 최소 10년 이상 공을 들여야 될 정도였다. 보통 서클릿의 테는 둥 글게 접어 마감한다. 그렇지 않으면 쓴 사람의 피부가 상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것은 둥글게 마감하긴 했으되 그 둥글게 마감한 부분에 굉장히 작은 보석들을 조 각해서 맞물려 살에 닿는 부분은 둥글면서도 보기에 매우 화려한 꽃들을 넝쿨에 매달린 모 양으로 형성시켜 놓았고 서클릿의 테 가운데 부분에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마의 중앙에 위치할 부분에는 타원형의 순흑색 보석이 하나 마감되어 있었다. 그 순흑색 보석은 매우 특이했다. 모든 계열의 흑색. 탁하고 맑은 흑색의 기류들이 안쪽에서 얽히고 휘말리며 춤을 추는 빛의, 블랙 다이아몬드의 그것은 아니었다. 블랙 다이아몬드를 타원형의 카보숑 따위로 제련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흑색의 보석은 모든 어둠을 다 긁 어 모아 가둔듯한 느낌을 주었다. "트, 특급마법기 휴암환休暗環?!" 아라테온은 그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라버렸다. 9서클의 마법사라도 만들 수 없는 특급 마법 기들. 몇종이 있는지 또 얼마나 강력한지 모르지만 그 중에는 에고가 있는 물건도 있었고 아니면 없는, 순수한 마법기가 존재하기도 했다. 다만 마법과 그 응용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일반인이라도 수천의 생명을 학살할수 있는 강력한 마법기라고 알려져 있었다. 알려진 종류 는 그리 많지 않고 현재 바인이 셋. 아라테온이 하나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휴이즈도 그것을 지니고 있었던 모양이다. "예. 휴암환입니다. 광익의와 비견되는 최고급 마법기. 강력하기 그지없는 어둠의 힘을 사용 할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리고 이것에는 지금 또 하나 힘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 하시길. <신법神法 영면永眠>이라고 하셨죠. 지금은 쓸수 없게 되었습니다만…… 본래 제가 그때의 싸움에서 그에게 이것을 던져버리기만 했더라도 아마 폭주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 니다. '영면'이라고는 하지만 휴암환을 씌워주면 다시 해제되어 깨어날거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문제와 이 문제는 다르다. 이미 바인은 폭주해버렸고 그것을 막아낼수 있었 던 물건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아라테온은 자신도 모르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신도 상 당히 답답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뱀파이어 로드와 대치중일 때 라시에의 죽음으로 폭주한 것인지 아니면 갑자 기 폭주한 것인지가 문제잖아요?" "모르겠습니다. 라시에와는 생면부지에 어떤 사이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만. 이제 제가 묻겠 습니다. 어째서 그가 폭주한 것입니까? 그리고 그는 누구입니까?" 케셀은 무심한 눈길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사그라들어가는 일렉트럼 문의 광휘. 케셀은 중얼거렸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간들에게 이런 일을 다 설명 해 줄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충 넘어갈 상황도 아니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힐수도 없었다. 물 론 아슈라스의 신관은 어느정도 알고 있겠지만…… 자기 입으로 대놓고 말하는것과 짐작은 틀리지 않은가? '더럽게 걸렸군. 왜 하필이면 나지?'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뭐 미뤄봤자 다른 이도 결국 할 일. 빠르게 끝내버리고 사라지는게 좋은 것이다. 서둘러서 마무리 하고 사라져야 할 때가 왔다. 이야기 하던중 이 바인이라는 놈이 깨어나면 정말 골치아파진다. 케셀은 속으로 한숨을 토해냈다. 그래도 천신급인데 어째서인지 자신은 상당히 인간적인 부분이 많았다. 인간이라고 보기에 는 망가진 부분이 상당히 많지만 말이다. "그분께 답을 얻으라." "예?" "아슈라스 님께서 해명하실 것이다. 다만 내가 할 말은 오직 이것 뿐. 바인이라는 자는 파멸 시키는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파괴되어가는 자다. 그대 신관이여, 부탁한다. 그에 게 신전으로 찾아오라고 전하라." "……알겠습니다." 케셀은 한숨을 길게 토해내고는 휴이즈의 손에 들린 휴암환을 손을 휘저어서 자신의 손 위 로 공간이동 시켰다. 그리고 그것에 걸려있는 <신법 영면>을 간단하게 해제시킨다음 곧 그 것을 바인의 이마에 씌웠다. 휴암환은 그냥 씌우는게 아니라 뒤쪽에 맞물리는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에 박혀있는 손톱만 한 보석을 누르자 찰칵 하고 상당히 복잡한 부분이 옆으로 벌어지면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살짝 벌리자 코어가 박힌 부분에서 손가락 두마디 정도를 두고 살짝 접히는 것이다. 열린 휴암환을 바인의 이마에 씌우기 전에 머리카락을 염동으로 다 들어올린다음 씌우고 다 시 접힌 부분을 눌러서 맞물리게 하자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은은한 흑색의 안개같은 기운 을 뿜어내다가 금새 그 진동이 멎었다. '그러고보니 이건 인간이 만들만한 물건이 아닌데…… 나중에 알아봐야겠군. 저 광익의라는 물건도 에테르 윙을 펼칠수 있게 만들어진 물건인데…… 다 리미트와 제어가 제대로 이루어 져 있긴 하지만 제어가 풀리기만해도 대륙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겠어.' 케셀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다가 금방 다시 무심함과 냉기가 흐르는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추욱 늘어진 바인을 붙잡고 있다가 휴이즈에게 집어던지자 그는 턱 받아들었다. 이런 고도 에서는 미친짓이라 하지 않을수 없었지만 바람은 멎어있어서 저들에게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다. 설마 놓친다 할지라도 간단하게 구해질테니까. 휴이즈의 다리를 붙잡고 있던 아라테 온은 곤란하다는 표정이었지만 곧 후작을 들어올려 덥썩 붙잡고는 수인 없이 캐스팅에 들어 갔다. 캐스팅이 조금 길어졌지만 마나는 곧 아라테온의 몸을 떠받치게 되었다. "레비테이트Levitate!" 공중부양을 가능하게 하는 마법이었다. 물론 빠르게 날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마법 사 용에 그다지 제약도 주지 않는 주문이었다. 4서클의 주문으로 고도가 얼마든 일단 떠오르는 것은 가능하다. 비행보다는 단지 부유할수 있게 해주는 마법인 것이다. 떠오른 상태에서 약 간의 정신력 소모로 마나를 붙잡아 몸을 지탱하면서 그 완력으로 간단하게 후작을 들고 있 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우스웠다. "으음?" 문득 케셀은 저 하늘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는 것이 뭔가 불쾌 하다는 표정이었다. 케셀은 곧 허공을 매섭게 노려보면서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다. 그러다가 다시 냉정한 얼굴로 돌아와서 고개를 홰홰 저으며 중얼거린다. '대체 뭐라고 말한 거야? 빨리 가봐야겠는데. 더듬더듬 거리면 어떻게 알아들어?'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다." 케셀은 그렇게 말하고는 오른손을 들어 옆의 허공에 짚는 자세를 취했다. 순간 우우웅 하고 공간이 그의 손을 중심으로 사람 서너명이 지나칠수 있을 만큼의 너비로 벌어졌다. 액체가 밀려나가는것처럼 우웅 하고 밀려나간채 공간의 파동을 일으키는 모습은 워프 게이트 스펠 과 비슷한 효과였다. 케셀은 몸을 그곳으로 날렸고, 금방 공간의 파동이 사라지면서 공간은 깔끔하게 아물었다. "……대단하군. 공간을 저렇게 가볍게 열고 이동하다니." "그것보다는 창조가 훨씬 대단한 권능인데." 아라테온은 케셀이 신언으로 완전히 숲으로 복구해버린, 영지가 있었던 장소를 바라보면서 감탄어린 목소리를 발했다. 휴이즈는 대체 아라테온에게 화를 내야할지 아니면 그냥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도 영지가 있었던 장소고 수많은 인간들까지 있 었던 곳인데 너무하지 않은가? 아라테온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화 는 난다. "후우……" 바인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내려다 보던 휴이즈는 깜짝 놀라버렸다. 바인의 모습은 또다시 바뀌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시들어가는 달빛의 광휘 한 가운데서 순흑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흑요석보다도 더 짙은 어둠의 빛.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 광택은 은은한 회색으로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흑색이 훨씬 짙은 회흑색의 머리카락이랄까. 9할이 순흑색이고 1할이 회색 인. 맑은 어둠을 머금은 머리카락. "이, 이건?" "음? 바, 바인…… 머리카락이?" 추욱 늘어져 있는 바인의 몸은 그다지 바뀐 바가 없는 것 같았지만 조금 더 본질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일단 지금 머리카락 색의 변화는 휴암환에 의한 변화였다. 휴암환에 숨겨진 <신법神法 각성覺醒>이 약하나마 바인의 힘을 담을수 있는 본질의 그릇을 깨운 것이다. 손 상된 몸이 다시 회복되면서 머리카락 색이 흑색으로 되돌아온 것이라 할수 있겠다. 전에는 바인의 분노와 자연의 거부로 인해 머리카락과 동공의 색이 '본질의 힘'에 침범받은 것이었으나 다시 그것이 그의 완벽한 제어하에 들어간 것이다. 활성화 되어 그릇에서 넘쳐 난 힘이 다시 그릇이 커지니까 안정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몸의 손상을 불렀 고, 머리카락과 동공의 색을 좀더 탁하게 보이게 했다. "어떻게……" "휴암환의 영향이 아닐까요?" 아라테온의 질문에 휴이즈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특급마법기라도 왜 주인의 외형을 바꾸겠는가? 이것은 어둠에 침범받거나 오염되었거나 할 때의 성향이다. 아니, 그것과 비슷할 뿐이었다. 휴이즈가 보기에는 탈색되었다가 회복된 것으로 보였고, 틀 리긴 했지만 그렇게 답에서 벗어나지는 않은 추정이었다. 위험한 하루는 끝났다. 저 동쪽에서 동이 터 오고 있었다. 이 행성은 봉인계의 지구와 축이 기울어진 정도가 거의 같아서 역자전逆自轉이 아니다. 따라서 해가 뜨는 방향은 동쪽이었다. 화려한 금실이 천공을 양단해 서쪽까지 이어진다. 장엄한 일출日出이 공간을 메우고, 어둠에 적셔져 있던 주변의 공간을 빛으로 씻어 나갔다. 어둠의 안온함에 잠들어있던 모든 것들이 빛으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아름답군." 휴이즈의 조용한 감탄에 대답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있었다. 맑고 가느다랗지만 허무감과 냉기가 도는 목소리였다. "태양의 본질을 안다 할지라도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은 훼손되지 않습니다. 이제 놓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만." 바인이었다. 바인은 눈을 뜬채 휴이즈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허무감과 무심함으로 가득찬 눈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순흑색에 회백색이 은은하게 섞여든. 머리카락과 비슷한 모습. 오히려 바인이 이곳에 막 왔을때와 비슷한 머리카락과 눈동자의 색이었다. 맑디 맑았 지만 그 깊이는 심연의 차가움으로 휴이즈에게 인식되었다. 휴이즈는 깜짝 놀라서 바인을 내려다 보다가 그를 붙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바인은 광익의의 힘을 이용해서 백색의 에테르 윙을 펼쳐 올려서 공중에 떠 있다가 문득 이 마에 뭔가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서클릿을 스치는 모습, 의아 하다는 표정의 바인은 모든 염세적인 분위기가 다 사라지고 순수한 궁금증으로 가득차 있어 서 그 아름다움이 휴이즈에게는 아찔함으로 다가왔다. 얼굴을 슬쩍 붉히면서 휴이즈는 효과적으로 서서히 떠올라 눈을 부시게 만드는 태양의 광휘 로 얼굴을 향해 금빛의 잔흔으로 신색을 가렸다. 그러면서 휴이즈는 투덜거렸다. 지금은 너 무 눈부셔서 떠오르는 태양의 아름다움을 더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아, 제길. 어째서 저정도로 아름다울수 있는거지? 따지고 보면 저자 때문에 영지가 완전히 박살난 것인데…… 아니. 뱀파이어 로드 때문에 소멸하는것보다 더 비참한 곳이 되었으려나. 하아, 막을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던 내가 멍청한 것이겠지.' 저 광야에서 금빛의 덩어리가 되어, 화려한 순금의 화살을 쏘아 붙이는…… 태양은 이제 완 전히 떠올라 하늘을 아련한 푸른빛으로 채색했다. 짙은 남빛으로 물들어 은은한 별빛과 광 기어린 달빛을 지상에 뿌렸던 밤의 하늘은 저 서쪽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저 서쪽에는 아직 어슴푸레하게 남빛이 남아있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바인은 휴암환을 쓰다듬어 보다가 휴이즈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로써는 볼수 없었으니까. 다 만 강력한 힘이 실려있다는 것은 알수 있었다. 광익의와 비견되는 그런 마법기. 특급 마법기 라는 것은 알수 있었지만…… "이정도의 힘을 지닌 서클릿이라면…… 설마 휴암환?" 휴이즈는 이때부터 골치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바인에게 시선을 돌리긴 했지만 또 금방 얼굴을 붉히며 태양이 몸을 일으키는 쪽으로 시선을 던지게 되었다. 바인은 고개를 살짝 기 울이고 있었는데 금방 부러질 것 같이 가느다랗고 흰 목위에서 쏟아져 내리는 순흑의 머리 카락이 발하는 광택은 묘한 흥분을 던져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빛의 햇살은 그 머리카락 의 아름다움에 플러스 알파를 더했다. '으아∼! 젠장! 나 이상한 놈 취급받겠다!' 휴이즈가 속으로 자신의 몸과 정신체계를 비판하면서 스스로를 가다듬고 있는지도 모르고 바인은 이제 그 궁금증만으로 가득차서 순해보이던 눈빛을 날카로움으로 가다듬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감정 표현이 상당히 밖으로 빠져나왔다는 것을 몰랐다. 휴암환은 어둠의 안식. 스스로의 기억에 숨겨져 있던 칼날같은 기억들은 그 어둠의 안식에 묻혀 무뎌져 있었고, 한 번의 폭주로 인해 그의 정신은 철옹성 만큼이나 단단하게 무장되어 있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달까? "어떻게 된것입니까?" "그, 그게 말입니다." 바인의 질책에 가까울 정도의 질문. 휴이즈는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북북 문지르면서 일 단 한숨을 먼저 토해낸후 영지를 향해 손가락질 했다. 그 손가락 끝을 따라가본 바인은 울 창한 음수림이 금빛의 햇살을 받으면서 녹색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잠시 그 것에 대해서 탐구를 가졌다. "저 지형은…… 서, 설마." "그래요…… 헬리론드 영지입니다. 아니, 영지였던 곳이라고 해야되나?" 바인이 10서클에 오르는데 한창 걸리는 이유는. 아직 영도 신화경이 아니기 때문이랄까요∼ 둘다 체계가 확 바뀌어 버리기 때문인 겁니다. 어쨌든 현경이나 9서클 마스터가 맞붙으면 100% 9서클이 이기죠. 왜냐하면 그놈의 블링크에 체이닝을 더해서 열심히 날아다니면 되기 때문입니다-_-; 시동어만으로 강력한 공격도 가능하고요. 8서클이면 현경과 비슷하군요. 7서클이면 일검에 끝납니다. 10서클과 신화경의 괴물들이 싸 우게 되면 결과는 짐작 불가. 10서클 마스터면 몇몇 주문을 빼고 8서클 마법까지 난사가 가 능하기 때문에-_-; 다른 주문도 캐스팅이 필요 없고 단지 마나 스트림 계산만 필요해집니다. 신화경에 이르면 빛입자 하나하나에 무형검을 실을수도 있고-_-; 완전한 괴물로 거듭납니다. 검을 잡고 기를 다루면 리라이프 2번. 그리고 영기화 1번. 마나를 다루면 리버스 1번. 에테르 체인지 1번씩 해서 '인간으로써의 궁극'에 이르게 됩니다. 130. 일행들은 땅에 내려 섰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바인은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고 있는 표정 이었다. 스스로가 누구인지, 아니. '무엇'인지, 어디서 왔고 또 어떻게 그런 힘을 사용할수 있 는지. 그가 사멸과 붕괴의 힘을 처음 사용했을때는 그리 강력하지 않고 단지 특이한 힘의 성향으로 공간을 잠시 '끊어져 나간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고급 삭검朔劍이상의 것이 아니 었다. 그가 사용한 허공섬 정도의 위력이라면 강선剛線정도와 대등한 효과였다. 설영이 알려주었던 '무상본연기공無常本然氣功'은 심법처럼 후천진기를 단전에 그러모으는 계열의 것이 아니라 단지 호흡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깨워 혼의 힘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 었다. 최근 이곳에 와서는 거의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것이 어떤 효과를 통해 계속적으 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힘>이 이전보다 세배는 강해져있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옳은것인가? <바인>이 떠 올라서 나와 동화한다는 것인가?' 그는 중얼거리면서 손을 내려다보았다. 새하얗고 가느다란 손. 굳은살이 별로 잡히지 않고 매끄럽지만 잡아보면 상당히 질기다. 그냥 별로 날카롭지 않은 이곳의 병기로는 얕은 자상 정도는 생각해볼수 있지만 잘라서 떨어져 나가게 하기는 쉽지 않다. 검기 정도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지간히 힘이 좋아야 할 것이다. 무기의 날도 좋아야 할 것이고. '육체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이건 마법사로써의 육신의 변화가 아니야. 아무리 리버스를 거친다 하더라도 이렇게 변할 수는 없어. 나는…… <무엇>일까?' 바인은 한참동안이나 손을 들여다 보고 있다가 숲의 바닥에 주저 앉았다. 표토表土도 제대 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훼손되고 오염된 땅을 얼마나 제대로 회복시켰는지 알아볼수 있었다. 비옥도가 지나쳐 조금 끈적거릴 정도였다. 바인은 흙을 한줌 쥐어 올려 스르르 하고 흘려보 면서 잔디처럼 부드럽게 형성된, 의외로 습기가 없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지의류 따위가 달 라붙은 바위나 검고 칙칙한 빛깔을 뿜는 나무들은 형성된지 이, 삼십분쯤 된 것이라고는 생 각조차 되지 않았다. 전형적인 음수림이었으니까. 휴이즈의 설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제 꼼짝없이 아슈라스의 신전으로 가봐야 하는 것이 다. 벌써 가봐야 하는 것인가. 하고 읊조려 보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문득 아쥬리아에 대한 생각이 든다. 그녀에게서 자유의 날개를 얻고 나서 바인 답지 않게 죽여 없애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면서 비척비척 사라졌는데 사멸의 힘 때문에 회복이 늦는 것 같았다. 피를 마시지 않으면 그 회복은 상당히 늦을 것이다. 그때 상태로 계속 움직였다면 햇빛에 조금 그을렸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힘의 폭주에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뱀파이어가 또 죽을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영혼이라는게 있기 는 하니까. 다만 그 형질이 뱀파이어일 뿐. 영혼은 그 유체가 어느정도 육체에 어울릴뿐 변 하지 않는다. 그 발전된 등급으로 따지면 엄청난 변화가 있지만(예를 들어 인간과 신. 혹은 드래곤.) 대부분 거의 비슷하거나 같았다. 후작은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바닥을 치운 뒤 후작을 눕히고 어그러진 후작의 정신에 신성주문을 읊으면서 은은한 흰빛을 뿜어내는 손을 통해 치유하고 있는 휴이즈의 표정은 안 쓰러움이 묻어있기는 했지만 매우 딱딱했다. 아라테온은 짐을 잠깐 정리해 보는 듯 했다. 아 라테온의 짐과 바인의 짐은 전부 바인이 열어놓은 아공간에 처박았기 때문에 바인이 깨어난 지금에서 회수한 것이다. 아공간을 여는 마법은 9서클 주문이라서 바인도 한 번에 4개 이상 메모라이즈Memorize 하지 않았다. 휴이즈는 손에서 뿜어내던 흰 빛을 거두었다. 에테르의 운용을 멈추고 나서 그는 한숨을 길 게 토해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그라도 밤새 잠 한숨 자지 못하고 싸움을 해 댔 으니 몸이 온전할리 없었다. 거기다가 에테르를 워낙 남발했기 때문에 고급 치유술인 정신 계 치유신성주문까지 써 대고 나자 머리가 핑 돌 정도였다. "으음." 상당히 더럽혀진 옷소매를 이마를 닦으려다가 휴이즈는 남은 에테르를 끌어올려 일행 모두 에게 정화의 신성주문을 가했다. 그러자 옷에 묻은 핏자국이나 더럽혀진 부분이 전부 깨끗 하게 변화했고 몸에 쌓인 어느정도의 피곤함도 조금씩은 씻겨져 나갔다. 그것까지 끝내고 나자 곧 그는 근처에 지의류가 다닥다닥 달라붙은 바위 위에 앉아서 눈을 감고 무언가를 하 는 듯 했다. 바인은 조금의 호기심을 느껴서 휴이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은은하게 마나가 휴이즈의 피부 위로 공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투명한 물의 표면 위로 방울져 흘러내린 물방울이 연이어서 파장을 일 으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피부로 다가왔다가 여러개의 파문을 일으키며 멀어져간다. 바인 은 곧 그 마나의 힘이 조금 더 본질에 가까운 성질로 변해 에테르가 되어 휴이즈의 몸을 휘 감으며 그의 몸을 회복시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과연, 아슈라스의 신관은 저런 수법도 쓸수 있군.' 조금 감탄하긴 했지만 다시 그는 자신의 고민으로 깊이 침잠해들어갔다. 자아 정체성에 상 당한 타격이 오는 문제였으니까. 휴이즈는 몸과 정신을 안정시키고 있었고 바인이나 아라테 온은 스스로의 생각에 빠져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햇빛이 비스듬하게나마 흘러들어오는 음수림은 묘한 아늑함을 선사했다. 비스듬히 흘러내려오며 은은히 떠 다니는 먼지들을 비추 어 금빛으로 물들이는 모습이 조용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의 심사는 매우 복잡했다. 바인은 눈을 감고 옛 기억들을 떠올 려 보았다. 꼭 예리하게 날이 산 비수들이 심장을 베어내는 것만 같던 고통을 주던 기억들 은 날카로움이 상당히 무뎌져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안식의 어둠'을 상징하고 그 효용이 있 는 휴암환이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 번의 폭주로 인해 더욱 굳건해진 정 신과 마음은 문제없이 옛 기억들을 튕겨내고 있었다. 그러나 또 언제 폭주할지 모른다. 아무리 굳건하다 하더라도 따끔거리며 마음이 아픈것도 사실이었다. 허무감이 걷혀지고 쓸쓸함이 어린 바인의 눈이 흑색으로 반짝였다. 그러나 그것 도 잠시, 탁한 허무의 회색이 흑색의 눈 위로 흘러 그의 마음을 간단히 차단해버렸다. 바인 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휴이즈를 바라보았다. 안개의 백색 분말같은 느낌의 기운이 연한 빛을 내뿜으며 서기瑞氣처럼 그의 몸을 휘감아 돌다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이 완연히 가라앉다가 한 번 확 하고 빛난 후에 깔끔하게 지워지자 휴이즈의 특이한 탁록색과 청록색이 섞인 듯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눈꺼풀을 열고 일어난 휴이즈는 길게 한숨을 토해내면서 바인들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후작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 다. 휴이즈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빨리 아버지께서 깨어 나셔야 할텐데. 그나저나 바인과 뱀파이어 로드가 싸우던 것은 보지 못했으니까 다행이군. 뱀파이어 로드의 수작으로 결론 지을수 있을 테니까. 일단 이정도로 해두자. 하지만 거대한 영지 하나가 사라져 버렸는데……' 휴이즈는 문득 라시에를 떠올려 보고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바인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정략 결혼이나 몇가지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고려해 봐야겠지만 혼까지 소멸해버린 이상 되살릴 수가 없다. 뱀파이어 로드의 혼백 일부인 그녀는 이미 갈기갈기 찢 겨 소멸한지 오래였다. '하아…… 그나저나 나란 놈도 문제가 있군. 슬픔이 느껴지지 않다니. 혼까지 완전히 소멸해 버렸으니까…… 다시 환생할수 있는것도 아닌데 왜 슬프지 않을까? 아아. 그만 두자. 아버지 가 깨어난 후에 설명을 어떻게 해야 될지가 더 급한 일이니.' 휴이즈의 입에서 길다란 한숨이 흘러나왔다. 안정되지 않은 그의 마음 상태는 곧 에테르의 흔들림으로 나타났고, 그래서 곧 휴이즈는 다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마음을 가라앉 히고 안정시킨 휴이즈는 다시 눈을 떴다. 어지간히 흔들리는 모습의 휴이즈에게 묘한 시선 을 던지던 아라테온은 바인을 바라보았다. 뭔가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의 그는 고개까지 갸 웃거리면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염세주의자 아저씨같은 분위기가 없어지면 완전 여자 같기는 한데……' 바인의 얼굴에는 다시 염세주의적 허무감이 철철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아라테온은 그것을 보면서 한숨을 푸욱 토해냈다. 염세주의자 중년 아저씨 같은 분위기에 탁한 허무감과 무심 함이 뒤섞인 바인의 모습은 아름답긴 했지만 확실히 거부감을 준다. 이런 그들이 자신들의 상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은 1시간이나 계속되었고, 그것이 끝난 것은 후작이 간신히 눈 을 뜨고 나서였다. 후작이 깨어나긴 했지만, 휴이즈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후작의 정신력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건지 아니면 바인의 사멸과 붕괴의 힘에 정신 이 오염된것인지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다. 복잡하게 무엇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있어서는 좋을 것이나 후작은 휴이즈의 아버지였다. 어떤 천하의 불효자식이 아버지가 정신 에 상처를 입고 멍해져 있는데 좋아한단 말인가? 그런놈이 바로 벼락맞아 죽을 놈이지.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겁니까." 바인은 여전히 억양없는 목소리로 휴이즈에게 질문을 던졌다. 물론 그 목소리는 틀림없이 미성에서도 최고에 속할만치 아름다웠지만 억양조차 없고 허무감이 섞인 목소리는 어쩐지 모르게 탁하게 느껴졌다. 휴이즈는 바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저었다. 휴이즈로써도 지 금 상황은 정리하기가 힘들었다. "하나는 확실합니다만." "아슈라스의 신전 총본산이 목적지가 됩니까?" 드물게 바인이 억양을 넣었지만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느라 제대로 듣지 못한 휴이즈는 감탄 할 기회도 놓쳐버렸다. 곧 그는 천천히 대답했다. "예. 아스트랄의 당에는 아슈라스님이 계시니까요. 일단 제 의문도 풀어야 하겠고. 바인도 질문할게 있겠지요." "……으음." 바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휴이즈는 그런 그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꼭 세상살이에 서툰 어린 아이 같은 면도 있었지만 굉장히 냉정하고 무심한데다가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이성적 코드 가 감성 코드보다 우선하는 무서운 남자다. 그러나 지금에야 깨달았지만 자기 자신의 감정 을 자기 바깥으로 조금이나마 드러낼때는 놀랍도록 순수하고 천진해 보인다. 세상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 같은. '절대적인 이방인'같은 남자. ……뭐 남자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요. 목적은 정해졌군요. 그곳에는 굉장한 권능을 얻으신 분들도 계시니 아버지의 치료 도 쉬울 것 같습니다. '라큐리엔 시얀 트 테 라이엘 시리움(삼라와 만상이 모이는 곳. 에테 르의 어語다. 에테르를 다스리는 언. 룬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배열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이 목적지죠." "……얼마나 걸립니까?" 바인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에게 질문했다. 삼라만상의 집결지. 아슈라스 신전의 총 본산이 어디에 있는지 그는 몰랐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오랫동안 레어에서 나가지 않 은 미뉴엘이 수집한 서적에서만 배우고 익혀놓았기에 역사적인 부분이나 지리적인 요소에서 는 전혀 몰랐다. 미뉴엘이 지닌 지도라고 해봤자 골동품의 가치만 보유하고 있는 것들 뿐. 그러니까 마찬가지다. "으음…… 늦으면 두달. 빠르면 한달입니다만. 급하게 가고 싶으시면 마법사 길드에서 마법 진을 사용하시면 될겁니다." 바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9서클의 마법사이긴 하지만 길드에는 등록되지 않은 마법 사였기에 길드에 들어서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바인은 이제 마법사의 테가 확실히 났 기 때문이다. 7서클의 마법사만 만나도 바인의 실력은 몰라도 '마법사라는 것'은 알게 되기 때문에…… 7서클의 마법사가 모른다면 적어도 8서클의 마법사가 되기 때문에 그로써는 마 법사 길드에 들리면 아주 골치아픈 일이 일어날 것이다. 바인은 이마에 쓴 서클릿을 만지작거렸다. 휴암환. 이 특급마법기는 서클릿에 어둠의 안온함 을 상징하는 것처럼 엄청난 정신계열 방어력을 지니고 있으면 정신공격마법도 내재되어 있 는 물건이다. 그러니까 특급마법기라 불리는 것이겠지만. '개체 공격력'으로 최강의 무구라 면 특급 마법기에 속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그러나 나라 하나를 뒤흔들 정도의 마법기라면 특 급 마법기라 주저없이 불릴정도의 물건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정신계열 탐색의 방어력을 지닌 휴암환은 그런만큼 눈에도 띄고 마법사라면 더 알아 보기 쉽다. 물론 바인은 9서클의 마법사. 이미 휴암환의 에고 자체가 그를 인정해버렸기에 '만약' 바인을 죽이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휴암환은 자신의 모든 마력과 주변에서 동원할 수 있는 마력을 모조리 끌어모아 내재된 궁극 마법을 퍼부어버릴 것이다. 바인은 서클릿의 서 늘한 감촉에 약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텔레포트 헥사그램 사용은 하지 않는게 좋겠죠. 저는 길드에 등록된 마법사가 아니니까." "음. 당신이 사용했던 마법들은 9서클에 속한 것들도 있었으니까……" 휴이즈는 신관이기는 하지만 귀족으로써 활동해도 아버지인 헬리론드 후작과 비견될 정도의 능력을 단시일 내에 쌓을 정도의 실력자다. 거기에 두뇌라는 것의 성능이 일반인과 비교하 면 모욕일 정도로 뛰어났기에 금방 알아 듣고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러저래 일행들 전 부가 엘리트다 보니 막 떠오른 사실의 서두만 꺼내도 모조리 다 연상해서 알아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쩐지 말수가 적어보이는것도 사실이다. "일단 방향을 잡고 근처 마을에 들러서 가는게 좋겠습니다." 휴이즈의 말에 아라테온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의견을 내 놓았다. "그럼 일단 떠올라서 근처에 마을이 있는지 살펴 보고 나서 그곳에서 방향을 잡죠. 피로도 좀 있고…… 쉬는게 좋을테니까요." 휴이즈는 바로 그것을 승낙했다. 그리 오랫동안 함께하지는 않았어도 죽을고비까지 넘긴데 다가 흉험한 전투까지 잘 치러낸 그들에게는 진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아주 좋은 의견이니까 당연한 선택이었다. 휴이즈는 바로 후작을 업어 들었다. 추욱 늘어진채 무 엇을 중얼거리고 있는 후작의 모습은 정말 안쓰러웠다. 휴이즈는 그런 후작을 바라보다가 수면의 신법을 발휘해서 잠들게 만들고 왼손에서 에테르 윙을 뽑아올렸다. 위우우웅 하고 흰빛의 날개가 뻗어나왔다. 놀랍게도 등 뒤가 아닌 왼손목에서 두장의 긴 에 테르 윙을 뽑아 올린 것이다. 관성, 중력제어까지 가능한 날개니 어디서 뽑든 상관은 없다. 근육조직으로 이루어진것도 아닌 것이다. 곧 휴이즈의 몸은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고, 아라 테온은 빠르게 주문을 외워 몸에 고급의 자유비행 마법을 걸었다. 의지를 통해 사이킥 어빌 리티Psychic Ability 중에서 레비테이션을 사용하게 해주는 주문인 것이다. 바인은 광익의의 에테르 윙을 뽑아올리고는 날아올랐다. 뭐랄까. 이 일행은. 후작만 빼면 수 륙양용水陸兩用이랄까. 산전수전山戰水戰에 공중전空中戰.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그 능력이 강력하게 발휘 될 것 같았다. 바인 혼자만으로도 대륙 멸망이 어렵지 않은데(지금까지는 전 투 스타일이 잘 안맞기도 했었고 마법에 리미트를 걸지 않으면 자연 균형도 깨지기에 9서클 마법을 남발하지는 못했다.) 엘더 라이칸스롭인 아라테온에 전투에도 상당한 센스를 지니고 있는 식스 에테르 윙 유저Six Ether Wing User…… 대단하지 않은가? 게다가 바인은 그냥 9서클 마스터도 아닌 본질이 사멸과 붕괴의 힘을 다루는 강력한 천신급 존재가 아닌가? 차원 몇 개쯤은 손 휘두르는 것 정도로 말아먹는 최강자중 최강자였다. 물 론 지금은 본질인 '바인'이 설원에게 완전히 섞이지도 않았고 설원 본인이 완벽하게 자각하 지도 않았기에 힘을 그렇게 많이 쓸수는 없지만 이정도로도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비견될 정도다. 무극지기를 완성한 그랜드 마스터라면 이길수 없겠지만. 바인은 흰 로브의 소매로 찬란하게 빛나는 햇빛을 막았다. 나무가지를 헤치고 날아오른 세 명은 곧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고, 바인의 시력은 굳이 따지면 8.0에 아주 약간의 염으로 적 외선까지 볼수 있었다. 최고로 개량된 인프러비전을 이식한것보다 더욱더 밝은 눈. 인간의 눈이 아니랄까? 아라테온도 엘더 라이칸스롭. 육체적인 조건도 대단히 훌륭하고 휴이즈야 에테르 자체가 신체를 극도로 활성화시키기에 고급 검사가 기를 순환시킬때의 신체 조건까 지는 따라 붙을수 있다. "저기 있군. 지금 시각의 햇빛 입사각으로 따지면…… 북서쪽인가?" "그럼…… 가죠. 근처에서 착륙하는 겁니다." "으음." 곧 그들의 몸은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그 속도라는 것이 화경에 달한 무림인이 펼치 는 신법에 근접할 정도로 빨랐다. 물론 이들은 음속도 넘을수 있지만 휴이즈의 등에 업힌 후작에겐 안정이 필요했고 그정도의 속도는 공기의 장벽이 찢기면서 일어나는 굉음을 유발 하게 되어 있었다. 고막이 찢어발겨질 정도의. 그래서 그들은 빠른 속도로 날아 마을 근처 숲에서 내려앉았다. '이제…… 출발인가.' 바인의 얼굴이 문득 피곤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131. 무림을 스치는 혼돈의 바람 [1] 그로부터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많은 일이 일어났고 또 마무리되었다. 새로 등장한 분혼객이라는 화경의 고수는 무서운 속도로 무림을 휩쓸며 비무행을 일삼았고, 그나마 1차 정·사·마 대전에서 살아남았던 정파와 사파의 거두들의 목이 달아나면서 그 조직마저 붕 괴되기 시작했다. 오로지 그의 비무행은 마교의 수뇌와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마 교의 인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또 한명의 화경의 고수가 무림에 등장했다. 이서륜이라는 이름을 지닌 아름다운 미 인은 갑자기 떠올라 화경의 고수임에도 천산검주에게 감탄을 토해내게 만든 기재중의 기재 로 근 6개월간 많은 소문을 끌고 다녔다. 그가 청심문의 후예라는 말도 있었고 그 사실 남 장한 여걸이라느니 하는 유언비어까지 나돌았다. 그는 4가지 신기神器를 들고 다녔는데 그 의 입에서 나온 말로는 신수사령검법과 신수사령권법이 그가 익힌 무공이라 했다. 푸른빛 검신을 지닌 길이가 2장에 이르는 연검. 그리고 마치 아스타르 대륙에서 사용하는 건틀릿과 비슷한 금속빛이 나는 갈색의 장갑, 그리고 붉은 옥으로 만든 것 같은 옥소 한자 루, 마지막으로 등에 건 커다란 대검大劍이 그가 지니고 있는 신기들인데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외모와 함께 그의 상징이 되었다. 천산검주와 함께 유일하게 은영천검과 대적할 자격이 있으리라 판단된 인물중 한명이 바로 그였다. 사실 분혼검마分魂劍魔나 사신검협四神劍俠이나 강기를 주로 사용한다는 데서 화경이라는 판단을 내렸지 둘 다 최소 화경의 끝에 이르렀으리라 추측된다. 어쩌면 현경 초입일지도 모 르겠다. 분혼검마는 수상한데가 많아서 같은 화경의 고수라도 상처조차 입지 않고 500여초 안에 참살해버렸던 것이다. 사신검협도 마찬가지로 일단 싸우게 된 상대는 그 인간 됨됨이 에 따라 죽음과 삶이 나뉘었다. 두명 모두 정사지간의 인물로 알려졌지만 외모 차이가 크다고 보겠다. 분혼검마는 상당한 미남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날카롭고 음험한 구석이 있어서(계책을 꾸민다기 보다 분위기가 그렇다 이말이다. 분위기가 음험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계책 꾸미는 모사로써는 실격이다.) 외형으로도 선입견이 생기는 것이다. 그에 비해 사신검협은 미녀도 저리가라 할 정도의 미 인이었던 것이다. 분혼검마와 사신검협은 만난적이 전혀 없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곳에서 공통점이 발 견되어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었다. 게다가 둘 모두 듣도 보도 못한 강력한 무공으로 간단하 게 고수들을 제압하고 죽여 나간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조건은 비슷하지만 평가는 판이하게 다르다. 아무리 꽉 막힌 얼간이들이라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게 하는 조건이 아닌가? 꼭 누 가 비슷한 조건으로 성격만 다르게 변화시켜서 실험해보는 것만 같은 상황…… 둘 모두 전혀 본적도 없지만 현묘하고 강력한 무공을 사용한다. 그래서 많은 무림인들은 그 들 모두가 청심문에서 나온 이들이 아닌가 하고 추측할 따름이었다. 조심스럽게 추측했지만 반만 맞았달까. 이서륜은 청심문에서도 정화에 가까운 신수사령의 검과 체술을 익혔으니까. 무림은 한가득 흥분하고 있었다. 분혼검마와 사신검협이 검을 맞부딪히게 되면 과연 누가 이기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로써. 무림의 세력 판도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정도 무림맹과 천류세가는 정말 상상을 능 가할 정도의 규모로 성장해서 제국을 반으로 가르다 시피 해서 국지전을 벌이고 있었다. '국 지전'이라면 반역이겠지만 어쨌든 간에…… 이제는 제국에서도 묵인할수 없는 수준에 이르 렀던 것이다. 그러나 제국으로써는 끼어들 수 없었다. 아무리 비밀리에 키운 고수가 있으면 뭐하나? 현경과 화경의 괴물들이 칼을 부딪히는 틈바구니인 것을. 그러나 제국으로써는 천류세가가 탐탁치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밀리에 여러 화약무 기들을 지원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비밀은 천하에 존재하지 않는 법. 은밀하게 흘러나간 소 문은 천류세가에도 들어갔고, 천류세가는 제국에 냉소를 보내면서 비밀 분타를 하나 세우고 거기서 영의 지식과 지혜의 한도를 빌어내서 온갖 화약무기를 제조했다. 사실상 이렇게 되 면 대등하다 아니할수 없었다. 이미 무극지기를 달성해버린데다가 원래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주변의 기를 대량으로 움직일 수 있는 영에게 있어서 내공이란 바다와 같았다. 그 바다물을 증류시켜 물을 담아내는 것이 어려울뿐 무한하다 하겠다. 이제 천류세가에 존재하는, 앞으로 약간의 영약을 더해서 10년만 노력하면 환골탈태를 할수 있는 검사들의 수는…… 무려 2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끊임없는 국지전(?)과 흩어짐으로 인해서 그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는 않았지만. 천류세가도 이제 많은 세력을 포함하게 되었다. 독불장군으로 살아남을수는 없는 것이다. 많 은 세력들에 천류세가의 팔명검을 변형시켜 전달하고 영의 무극지기와 기의 소통은 강력해 서 본인은 원기 손상은커녕 진기 소모도 별로 없는데 대부분의 자기 세력들의 힘을 더 강력 하게 끌어 올렸다. 무림맹도 남아있는 세력을 모조리 끌어 모으고 천산검파도 기염을 토해 내듯 많은 고수들에게 영약을 제공하고 가르침으로써 그 힘을 끌어올렸다. 6개월은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영약과 현경의 고수라는 고수 생산기(?)가 존재하는 이상 어렵지 않았다. 몇몇 고수들은 떠돌면서 전혀 그 싸움에 상관하지 않았지만. 대표적으로 현 경인 광협 문열과 화경의 끝에 있음에도 문열을 쩔쩔매게 만든 신승 공공. 그리고 사신검협 과 분혼검마와 마지막으로 신비스러운 발걸음으로 많은 이들을 혼란에 빠트린 한 청년과 여 성이 있었다. 백금발을 한 아름다운 여성과 아스타르 대륙에서 입는 로브를 걸친채 후드를 걷고 돌아 다 니는 한 은색과 흑색이 반반쯤 섞인 것 같은 머리카락을 지닌, 역시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는데 그들을 적으로 오인하고 달려든 자들의 죽음은 모 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천류세가 검객들중 100여명, 그리고 무림맹의 사람들 80여명에 몇몇 잡 세력의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그정도면 엄청난 것으로 화경의 고수라도 죽음을 결심해야 할 것인데, 청년은 어디서 나타 났는지 알수 없는 거대한 맑은 흑색의 날을 지닌 낫을 휘저어 그들의 몸을 상하좌우로 불리 시켜버렸고, 그 여성은 모든 빛의 조각을 끌어 모은 듯한 빛으로 이루어진 채찍을 날려 달 려든 이들의 목을 쳐서 끊고 몸을 잘라내고 사방으로 휘둘러서 몸에 구멍을 뚫어버렸다. 그 것을 보면서 얼마나 두려워 했던가? 강기도 아니고 검기도 아닌 것을 심형으로 형성시켜 채찍 형태로 휘두르다니! 물론 그런 것 은 아니었지만 채찍이 지나간 궤적에서 일어난 빛의 조각들이 얇은 선을 이루며 모든 것을 다 쪼개고 갈라버렸다. 그것이 어떻게 강기가 아닐까? 그러나 사실 그것은 순수한 빛의 응 축된 입자들로 어떻게 보면 강기가 맞겠지만…… 빛을 현물화 시켜서 이루어낸 공격인 것이 다. 마법의 힘과 기의 힘을 조합시키면 그렇게 될까? 그들은 그 일 후에 바로 다시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사라져버렸지만 모두에게 두려 움을 안겨주었다. 혹시 제 삼의 세력이 있어 어부지리를 노리고 있다면 그만큼 무서운게 없 었기 때문이다. 현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천류세가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무림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외 세력중 수담을 구경하며 훈수를 두는 것처럼 바라볼수 있 었던 이들만 그런 우려를 표했을 따름이다. 거대해진 두 세력은 황제의 분노를 불렀지만 황제로써도 이젠 손을 쓸수 없었다. 그들이 만 약 혁명(?)을 일으키려 든다면 황제의 목이 달아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다. 영이 직접 잠입해서 칼을 쓱 휘두르기만 해도 황제의 목은 누가 잘랐는지도 모르게 툭 떨어질 것이다. 그건 무림맹쪽도 마찬가지였다. 둘 모두 엄청난 암살자 세력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천류세가 는 영이라는 살수계의 신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많은 살수세력을 얻었다. 그러나 무림맹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비밀리에 키운 살수세력과 직접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선이 닿아있는 살수세력이 통합되자 거의 천류세가가 지닌 암살자들의 숫자가 비슷해진 것 이다. 질 역시 비슷하긴 마찬가지였다. 천류세가는 비록 무림맹에서 무림사가로 매도하고 있 기는 하지만 정도에 속다. 거기에 체면이 있는 무림맹에서 암살자를 보내는 멍청이짓을 하 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방비를 멈추지 않았다. 뭐, 체면 문제 뿐만 아니라 힘 소모니까.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 혼잡함을 틈타 쓰는 것이 훨 씬 효과적인데 이런데서 힘 소모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괜히 신경쓰인다. 게다가 한쪽에서 보내기 시작하면 저쪽에서도 보내기 시작할 것인데 그것 막느라 힘이 다할 것이었다. 자칫 하다가 암살에 엄청난 조예를 지니고 있는 영이 직접 나서기 시작하면 무림맹은 대출혈을 하게 될 것이다. 그건 천류세가로써도 마찬가지인 것이, 영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림맹이 공격해서 모조리 참살해버리면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이다. 천산검파라는 강력한 이들이 선두에 서서 도륙해 버리면 아무리 천류세가의 검수들이라 할지라도 대출혈을 하게 될 터였다. 그래서 지금 이 렇게 묘한 균형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천류세가 쪽이 훨씬 유리하다. 왜냐하면 그들 진 영의 힘 7할이 천류세가 인데 비해 무림맹은 조각조각 나뉜것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만약 천류세가에서 '비보가 출현했다'는 소문과 함께 약간의 신호만 흘려줘도 무림맹을 구성 하고 있는 4할의 힘은 뚝 떨어져 나갈 것이었다. 아마 5할도 기대할수 있을 것이다. 천류세 가에서는 나머지 3할의 오합지졸들은 다 떨어져 나갈테지만 힘 6할은 보존할수 있다. 나머 지 1할은 소모하게 될테니까. 어쨌든 그 힘 6할은 남은 무림맹의 반쪽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여전히 이런 험악한 상황에서도 사신검협은 유람을, 분혼검마는 비무행을 계속했다. 천류세 가에도 가끔 비무를 던지긴 했지만 영과 운에게 비무첩이 날아들지는 않았다. 그야 당연한 것이지만. 천산검주들이나 무림맹의 '진짜 수뇌'들 에게도 비무첩이 날아들지는 않았다. 그러 나 이미 분혼검마의 신공절기는 세상에 드러난 후였고, 그것은 사신검협도 마찬가지였다. 그 런만큼 둘중 하나가 지닌 비급이 떠돌기 시작한다면…… 이 힘의 균형은 깨어지고, 무림 전체는 피로 물들게 될 것이다. 그 피는 어떻게도 씻겨지지 않고 오래도록 대지의 상흔 위에 자리하겠지…… [2] "……" 검신을 타고 예리한 살기가 흘러나와 공간을 지배했다. 그 공간에 가득한 살기는 너무나도 진득하고 끈적끈적하여 도저히 정도의 검객이 뿜은 살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살수가 고 의적으로 뿜어내는 살기만큼이나 끈적끈적하고 소름을 돋게 만드는 노골적인 살기다. 검극 에서 일어난 은은한 무형지기는 강력하여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피를 토하고 물러나게 할 정도였다. 서서히 검극에서 부터 떠오른 푸르른 아지랑이는 일렁이며 순백색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곧 그것은 부드러운 궤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검이 품은 살기는 끈적끈적 하지 도. 무형지기를 머금어 강력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 엄청난 기세 앞에, 유를 위장한 거대한 해일같은 압력 앞에서도 오연히 서 있었다. 그 검날에 실린 살기는 오로지 하나의 형태. 찌 르고, 잘라내는 검의 형태였다. "……놀랍소이다. 진인. 유검의 극을 추구하니 그 검에서 또 다른 극의 검의가 태어났다? 처 음 보는 일이오." "그대가 보기에 어떤가?" "부드럽지만…… 무겁고, 강하군!" 상대방의 검이 거대한 무게감을 싣고 부드러운 궤적으로 휘둘러졌다. 강과 유가 조화되었던 것이다! 상당히 보기 드문 검술이었다. 도저히 환검과 유검의 극을 추구하다가 생긴 검술이 라고는 생각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샛길로 새긴 했지만 이건 오히려 중검과 유검을 합친 모습이 된 것이 아닌가! 검에 실린 그 웅대함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크고 강력하여 오히려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 다. 그러나 확실히 그렇다 보니 중검에 다름이 아니었다. 중검과 다른, 두층은 높은 오의였 지만…… 순백색으로 타오른 아지랑이는 이제 순수한 강기剛氣의 회오리가 되어 바람결을 타고 용오름쳤다. "어떻게 파훼하겠나?" 상대방의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진기는 한올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구름을 밟고 노닐 듯 은은한 보법으로 무겁지만 탄력있게, 발자국조차 남지 않게 밟아나간다. 보법 은 틀림없는 무당의 그것이었지만 취팔선보같기도 하고 뭔가 다른 보법같기도 했다. 이건 신법의 제운종의 일부 같으면서도 뭔가 달랐다. 소림의 연대구품도 아니고…… 이건 도저히 알아 볼수가 없어서 새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게 옳을 정도였다. 몸이 움직일때마다 검극은 꿈틀거리며 궤적을 바꾼다. 검신 자체가 흐느 적거리는 뱀처럼 쉭쉭거리며 그 살기를 번뜩였다. 이제 순백색의 강기 회오리가 무형지기와 섞여 폭풍우 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보면서도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어떤 기운도 뿜지 않았으나 주변을 용오름 치는 기운들은 그 파괴의 권능을 그에게 미 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증거로 그 주변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불조차 차게 느낄 만큼 의 집중력. 강기의 폭풍은 그를 비껴나가고 있었다. 그는 눈을 날카롭게 빛내면서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능유제강能柔制剛이라 하나 곧 강능단유剛能斷柔라!" 그 말은 스스로의 기량이 저 강대하고 부드러운 검무를 추는 이보다 뛰어나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자연체는 고요하고 강력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강기를 함부로 뚫을수 있다고는 확신 이 들지는 않는다. 상대방의 눈썹은 가볍게 흔들렸지만 곧 주저없이 검무를 공세로 바꾸어 나갔다. 서슬푸른 찌르기와 베기가 살기를 머금고 달려들고 있었다. 강기의 폭풍은 이제 더 욱 강하게 소용돌이 치며 그 위력을 자랑했다. 이미 상대는 화경의 검수였다. "그렇다면 끊어보라!! 용혼무龍魂霧 영무세永舞勢!" 일갈하며 무당의 도인은 달려들었다. 분혼검마는 이제 검을 가볍게 들어올려, 너무나도 가볍 게 내리 그었다. 도인의 눈이 커다랗게 뜨여졌다. 검극이 그린 가벼운 은선은 공기를 뒤흔들 었다. 울렁이며 퍼져나간 공기는 강기와 맞부딪혔다. 투우웅 하는 가벼운 음향. 그러나 바람 에 실린 강기는 뒤흔들리며 그 움직임이 흔들렸다. "산혼파散魂波…… 참斬! 월月!" 검은 아주 부드럽게 그어올려졌다. 순간 다시 투우웅 하는 기음이 일어났다. 공기가 울렁이 며 밀려나가 확실하게 강기를 흩은 것이다. 검풍도 뭣도 아니었다. 검압이 강렬한 내력을 머 금은 보이지 않는 바람으로 강기의 바람을 뒤흔든 것이다. 혼을 흩어버리는 파도…… 과연 그런 이름이 붙을만한 검식이었다. 그리고…… 몸이 검을 인도했다. 흑색의 신형이 칼날이 되어 모든 것을 끊어놓았다. 순흑의 강기에 휘감긴 몸과 탁한 회색의 강기에 휘감긴 검이 단절을 선사했다. 치이이이익 하는 기 음과 함께 강기의 바람이 딱 끊기며 흩어졌다. 검이 사강 하고 흔들리더니 떨어져 두조각났 다. 그리고 파아악 하는, 고기를 절단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흑색의 강기는 불꽃이 너울거 리는것처럼 흔들리다 바람맞은 안개처럼 사라졌고, 검에 휘감긴 강기도 사라졌다. "크…… 읏." 붉은 선이 팔과 몸에 그려진 무당의 도인은 잠시 몸을 부르르 떨다가 그대로 두조각나며 바 닥에 떨구어졌고 피가 왈칵 하고 토해져나와 대지를 쓸었다. 그런 모습을 본, 무당파 본산을 지키며 남아있던 제자들이 진노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과연 천하제일도가이며 천하제일검문 인 무당파의 이름은 허명이 아닌지 전부 다 검에서 서슬퍼런 검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달 려들었다. 예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지, 진인을!" "이 사악한! 비무라 하지 않았더냐!" "받아라! 사문의 원수!" 아무리 수양이 깊어도 참을수 없는지 분노로 충천한 검을 휘둘러 온다. 그러나 다들 전부 분노로 흔들리는 검 따위로는 상처조차 낼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모두 분 기를 가라앉히고 살기를 실은채 차분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기는 공기중에 퍼져나가 무형지기와 함께 그를 덮쳐들어왔다. 개중에는 검강을 날 려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푸르른 살기와 차가운 검기, 혹은 강기들이 몰려들어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 바람에 옷자락조차 휘날리지 않았다. 검마는 귀찮기 그지없다는 표정이었다. 이정도면 사실 굉장한 공격이었다. 아무리 화경의 고수라도 받아내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던 것이다. 거의 이 십여명에 이르는 강력한 검객들인 것이다. 검호의 경지에 이르른 자들도 있었다. 전부 다 한솥밥을 먹던 이들이라 그런지 개인적인 알력 따위는 제하고서라도 다들 호흡이 잘 맞았다. 알력이 있고 마찰이 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상대를 더 잘 파악하게 된다는 뜻 이기도 했다. 그런 강력한 공세를 무심하게 바라보던 검마는 무정한 검을 휘둘러 떨쳤다. 파 리라도 쫓는 듯 가벼운 검격. 그러나 결코 그 검에서 일어난 노을같은 기운은 가볍지 않았 다. 오히려 무겁고 강력했다. "파혼破魂과 산백散魄. 적멸赤滅!" 순간 검 위로 노을빛 검기가 치달렸다. 그리고 짙은 청흑색의 검기가 노을빛 검기와 뒤섞이 기 시작했다. 몸을 빙글 돌려 검기의 회오리를 일으켜 무당의 젊은 도인들을 저지한 그는 가볍게 검을 휘둘러 탄력있게 떨쳤다. 노을빛의 소용돌이와 청흑색의 소용돌이가 마침내 검 을 통해 하나로 합일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순수한 붉은빛의 파멸이 되어 퍼져나갔다. 강기의 빛! "크악!" "끄억!" 퍼퍼퍼퍽! 강기풍剛氣風도 뭣도 아니었다. 순수한 빛에 실린 강기는 그대로 사방을 주욱 밀고나가며 모조리 다 분해시키고 갈아버린다. 그라인더나 프레스에 사람을 집어넣고 갈아버리거나 찍 어도 저렇게는 되지 않을 것이다. 광량의 강기는 모든 존재와 사물을 절단해버렸고, 그 후에 남은 것은 철저하게 파괴된 해검지와 소량의 뼛조각 뿐이었다. 그는 일견 무심하지만 차분하게 무당파 본산의 건물을 바라보다가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본산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그곳에 자신을 조금이나마 흥분하게 할만한 검귀가 없다는 사실 을 잘 알고 있었다. 뭐 남아있는 모든 무당고수들과 싸운다면 아무리 그라도 피해를 입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그는 무당파 본전이 아닌 해검지에서 비무를 벌였던 것이다. 비무라기 보 다는 죽이기 위해 청하는 결투에 다름이 아니었다. '지겹군…… 현경의 초입 만으로도 이런 힘을 발할수 있다니…… 허무하다. 은영천검은 대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사신검협은…… 얼마나 강할까? 하지만 그가 될 수 있으면 마주치 지 말라고 했었지……' 한숨을 길게 토해낸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울적한 회색으로 뒤덮인 하늘은 쉴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구름이 흘러가는 것이지만 어쩐지 그는 하늘이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득 자신도 모르게 그답지 않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천기는 어디로 가는가? 무림맹? 천류세가? 과연 어느쪽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그는 허무감이 서린 얼굴로 터벅터벅 무당을 걸어내려갔다. 그의 걸음은 결코 빠르지 않았 으며 다급한 걸음걸이따위도 아니었다. 지금의 무당은 쫓아와서 그를 죽일만큼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부분 다 천류세가와의 접전에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까. 그는 무심 하게 검집에 탁 하고 검을 꽂아 넣었다. 보기 드문 명검이었고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예리 함과 품격을 지닌 검이었다. "너는 주인을 잘못 만났구나." 그렇게 말하던 그는 문득 이 검이나 자신이나 별로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은 물 론 섬길만한 사람이다. 품격도 있으며 강하기도 굉장히 강하다. 외모는 제쳐 두더라도 말이 다. 그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나 심지어는 천하제일에 욕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런 데서 이미 벗어난 사람이었다. 그것은 단월도 마찬가지였다. 단월은 애초에 입신양명이나 무 림제패를 위해 검을 배워온 자가 아니다. 그냥 영이 내민 손길을 받아 지겨운 청부살인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뿐이다. 수 련하던때에는 그래도 희열도 느껴지고 기분도 좋았었다. 피도 토하고 괴롭기도 했지만 그래 도 그때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의 일이 생산적인 일이라는데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젠 지겹달까. 암살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빛에 드러내놓고 검을 휘두른다는 것만 다를 뿐…… "뭐 많이 다르지만…… 나도 지친건가? 하하하. 설마. 이 내가 지쳤으리라고." 물론 현경의 고수에 6여갑자에 이르는 강력한 공력을 지니고 있는 그가 지칠리도 없었다. 두번의 환골탈태와 꾸준한 신체단련으로 빚어진 그 몸이 지칠 리가 없다. 영같은 경우는 워 낙 바쁘기도 하고 이미 현경의 극에 이르러서 육체 단련이 필요없기 때문이지만. 확실히 그 도 육체적으로는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전신에서 끓어오르는 활기와 생기는 거대하기만 하 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신적으로는 많이 지친 것 같았다. 문득 사신검협이라는 이가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광협 문열이라도 찾아서 검 을 나눠보고 싶었다. 죽는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에게서 감정섞인 의지가 일자 기가 움직였 다. 그는 생각과 함께 기가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웠다. 지금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굳이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기를 빠르게 유동시켜 사지백해로 흘려보 내 몸을 잠깐 점검해본 그는 기를 움직여 바로 탄력있게 대지를 찍어 날아올랐다. 그리고 통통 튀듯, 일보에 5장여씩,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한보를 딛었나 싶으면 어 느새 저 앞으로 신형이 날고 있었다. 그의 시점에서 보면 오히려 그냥 가볍게 발을 구르는 것 같은데 주변의 사물이 휘이익 하고 뒤로 밀려나가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일보에 무려 7 여장에 이르는 거리를 주파하는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것도 1에서 2초에 조금 못 이르 는 시간에 7여장을 넘는 것이다. 얇은 강기막이 공기의 저항에서 몸을 보호했다. "일단…… 근처 마을로 가봐야겠군…… 산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은 좀 곤란하고……" 단월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면서 조금 더 속력을 올렸다. 기를 순환시키면서 쏘아져 나가자 공기가 시이익 하고 갈라진다. 그러나 그 소리는 매우 작았다. 아무래도 살수일을 할 때의 버릇이 남아있는 것 같다. 영같은 경우에는 사이킥 파워를 더해서 음속으로 움직여도 파공 음이 나지 않지만 단월은 사이키커도 아니었고 마법의 사일런스 스펠 같은 것을 유동 방식 으로 쓸수 있는 마법사도 아니었다. 그래서 아무리 기척이 없어도 이정도 빠르기에서는 소 리가 나지 않을수 없다. 단월의 신형이 빠르게 공기를 찢었다. 피잉 하는 공기 찢는 소리와 함께 단월은 날아내려가 며 다시 바닥에 일보를 디뎌 쏘아져 나갔다. 이각여가 조금 못되게 뛰었지만 전혀 공력의 달림을 느끼지 않는다. 이제 슬슬 멈추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어기충소를 한 번 시전해 5 장여를 치솟았다. 주변을 휘휘 둘러본 다음 그의 신형은 소매를 펄럭이며 날아내려왔고, 그는 곧 가볍게 대지 를 디디고 거기서 탄력을 얻어 다시 신법을 전개했다. 어기비행술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기비행술은 정말 너무 공력소모가 많았다. 6갑자 공력으로도 한시진이나 날면 다행일 정 도로. 공력 소모가 정말 막심했던 것이다. 눈에 공력을 잠깐 돌려서 시력을 향상시키자 그의 시야는 매우 넓어졌고, 그 넓어진 시야에 마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크긴 제대로 큰 마을이었다. 하기사 무당파가 근처에 있기도 하 고…… 일단은 길목이니까. 무당산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 말고 근처에 있는 마을로 내려왔 음에도 불구하고(그의 신법은 매우 빨라서 금방 지나쳐왔다.) 상당히 컸던 것이다. 단월은 슬슬 신법의 운용을 멈추고는 봐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걸음걸이는 그냥 보통 촌민들의 '적당히' 들쑥날쑥한 발걸음으로 걷는다. 신경쓴다고 해도 이것이 더 힘들다. 살수이기에 그냥 이렇게 돌아다닐 경우의 발걸음을 위해 익혀두었던 것이 유용하게 쓰이는 것이다. 발꿈치조차 대놓고 디디는 사람을 누가 고수라고 생각하겠는가? 무림인들 대부분이 일단 발끝으로 대지를 튕겨 탄력을 얻어 신법과 보법을 사용하고 소리없 이 움직이기 위해 발끝부터 디디는게 보통이었다. 보통사람과 반대인 셈이다. 그리고 그 걸 음 걸이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보폭이 일정하다. 그러니 단월의 발자국을 보고 누가 고수라고 생각하겠는가? "……조금 쉬어야 겠군." 단월은 약간 지친 표정으로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겨갔다. 약간 지친 표정, 그리고 여상스러 우면서도 약간의 긴장이 스민. 대충 이류 무사쯤 되어보이는게 누가 그를 분혼검마라 부르 겠는가. 혼을 나눈다고 하는 날카로운 검기를 지닌 검객. 그러나 그가 전직 살수라는 것을 아는 자들은 매우 적었다. 느지렁느지렁 거리는 듯 하지만 절도가 스며있는 걸음걸이가 완벽하게 이류 무사의 그것을 본따고 있었다. '진짜 완벽'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거의 비슷했다. 일류 무사와 이류 무사의 중간쯤 되게 보인달까? 그런 걸음걸이로 서서히 단월은 마을로 접어드는 길을 발견하게 되 었다. 관도는 아니었다. 관도로 이어지는 길인 것이다. [3] 껍질을 자르지도 않은 사과를 물고 있는 입이 보인다. 얼마나 급하면 사과를 통째로 입에 문채 호흡 곤란 직전까지 가고 있을까? 버석 하고 사과를 베어 물었지만 사과는 여전히 떠 있었다. 공중에 둥실 떠 있는 사과를 새하얀 손이 낚아 챘다. 새하얀 손은 이어 다시 사과를 입에 물려놓았고 곧 5회정도 사과를 베어 문 입가에 사과의 달디단 과즙이 묻자 곧 다시 그 입 주변을 새하얀 손가락이 스쳐지나간다. '맛은 있는데.' 영은 입술을 살짝 삐죽이면서 그렇게 입안에서 웅얼거렸다. 가지런하고 아름다운 흰빛을 뽐 내는 치아가 버적버적 사과의 과육果肉을 물어 뜯었다. 그럴때마다 아주 약하디 약한 산성 의 액체와 함께 비타민이 풍부한 사과의 살점들은 씹혀서 그의 식도로 넘어갔다. 금방 사과 하나를 해치운 그는 남은 사과의 뼈다귀에 기를 불어넣어 삼매진화로 태워버렸다. 그냥 시 커먼 재가 부스스 흩날릴 뿐이었지만 그것은 그만큼 고위의 삼매진화 수법이라는 말이다. '사과치고는 물기가 좀 모자라.' 영은 그렇게 중얼거리곤 길을 걸어 나갔다. 고급스럽게 제작된 인피면구人皮面具를 쓰고 있 는 그였기에 외모로 눈길을 끌지는 않았다. 가느다란 몸과 새하얀 손이 시선을 끌 따름이었 다. 얼굴 자체도 어느정도의 미남으로 보일 뿐이어서 어디 대갓집 자제로구나 하는 생각만 들게 할 따름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걸음걸이로 그는 걸어나왔다. 지금쯤 아마 세가는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서류처리하기 지쳤어.' 그렇다. 그는 지금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 것이다. 운이 씨근덕거리며 자신에게 바가지로 욕 을 퍼붓고 있을것이 자명했지만 3일동안이나 서류처리에 밤을 샜다. 그래서 새하얗고 말랑 말랑해 보이지만 손 안쪽은 지금 붓과 닿은 부위는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기력을 조금씩 순환시켜 나가면서 재생력을 높였다곤 해도 아직까지 화끈화끈 거린다. 그 통증이라는 것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내출혈이 일어난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 심후한 공력을 주천시켜서 몸 곳곳을 활성화 시켰기에 각성제를 다량 섭취한 것처럼 몸 에 피로는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머리는 지끈거린다. 심인성 스트레스랄까? 아무리 두뇌와 몸이 완전 각성되어있어도 지겹기 그지없다. 지리한 작업의 반복은 비록 두뇌와 몸 모두가 지치지 않는다 해도 꼭 지친것처럼 느껴진다. 지루한 삶에 약간이나마 활력을 주기 위해 라 는 명목 아래 그는 말 그대로 농땡이를 쳐 버렸다. '아아∼ 그러니까 진즉 도왔어야지.' 천류세가에는 머리 좋은 이들이 제법 많긴 하지만 그래도 믿을만한 이들이 별로 없다. 은거 하는 기인들을 살수조직의 정보를 이용해서(본래 살수조직의 정보는 외부에 유출되지 않지 만 자그마치 살수출신의 현경 고수인 영의 부탁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몇몇 잠적한 이들 에게 찾아가 봉인된 세상의 지식을 통한 새로운 견해라던가 하는 것들을 전달함으로써 그들 을 포섭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믿을수는 없는 일이다. 한 여섯쯤 모았지만 그 여섯명의 모사가 영이나 운보다 조금 지식적인 부분에서는 떨어지 만. 하지만 운과 영에게 있어 그 여섯은 정말 소중한 인재들이다. 8검위들도 이제 전부 다 화경이다. 물론 한 두명은 화경 중후반부고 두명은 화경 중반부. 나머지 넷은 초입이거나 아 니면 중초입에 이르른 이들이다. 그렇다고 해도 화경이 어디 내기도박해서 얻을수 있는 경 지인가? 다 영과 운의 피를 말리는 교육 덕분에 얻어진 것이다. 운은 아직 현경에 오르지 못했다. 운 스스로의 자존심 때문에라도 영의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신 스스로 오르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화경의 완전한 끝에 이르른데다가 청심비록을 어느정도 읽으면서 화경의 끝에 이르른 고수가 또 있다 하더라도 운이 이길 가 능성은 7할 이상이 된다. 그 정도로 청심문의 비록은 파격적이면서도 완벽. 정말 완벽에 가 까운 그런 무의武意과 무리武理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영은 심지어 검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권이나 각으로써 현경을 이룩한 이들이 사용하는 수법 들도 쓸수 있었고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검의나 무리들을 완성시킬수 있었다. 공력도 효율적 으로 쓸수 있게 되었으며 자그마치 60갑자나 되는 강력한 힘의 제어도 쉽게 해낼수 있었다. 여러 가지 수법들의 고명함에 얼마나 감탄했던가? 이 무공을 만든 이는 도저히 인간이라고 는 생각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잔혹한 수법들도 있었다. 그 검의와 모든 무리의 '위력에 걸맞는' 형식이랄까. 그 형식이라는 것은 '효율적으로 죽이고 부수고 베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영이 몇 년이나 고심해서 만들어봐도 이것보다 더 효율적으로 '죽일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인간의 순환계 시스템 같은 곳이나 인간 이 아닌 다른 동물이라도 아마 스치기만 해도 순환계가 크게 상할 수법이었다. 근육의 결, 지방 밑, 내장, 폐부…… 모든 치명적인 장소를 치고 가르는…… 다시말해 '고기 다지듯 다져버리는' 수법들이다. 백정같은 이가 만들었나 싶을 정도다. 그러 나 백정이라고 해도 소를 해체하는게 아니라 인간만 수천번을 해체한 인간백정같을 정도였 다. 그나마 그 수천명을 그냥 해체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하나하나를 들 어 올려 해체해본 듯한…… 영은 그것을 떠올리면서 몸을 살짝 떨었다. 언제나 떠올릴때마 다 두렵다. 그들이 자기 말로 청심문이라고는 하지만 도저히 '맑은 마음'을 수련하는 곳에서 익힐만한 무공은 아니다. 하긴, 어쩌면 이 '악마의 무공'의 유혹에서 버티면서 명경지수같은 마음을 닦 아 나가라는 의지에서 만든 것 같기도 하다. 영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천류세가의 존재로 인해 그 치안이 강력해진 이 백마성은 확장되어 수많은 사람 들로 버글버글 거리고 있었다. 그런만큼 먹거리도 많고 볼거리도 많다. 탄도呑刀(칼을 삼키는 묘기妙技)를 해 보이는 이들과 온갖 차력(영이 볼 때 대부분 다 사기 였다.)을 다 해보이는 자들. 칼을 들어 쩡쩡 뜯어내기도 하고 소도小刀를 들어 두터운 중검 을 날려올린후 확확 휘둘러서 잘라버린다거나 아니면 그 자리에서 납을 녹인다음 수저 위에 그것을 올려서 입에 문 후 굳혀 뱉는다거나(이건 일단 수저에서 조금 굳힌 다음 이빨로 긁 어 물고 뱉는 것이다. 위험하긴 마찬가지지만.) 하는 이도 있었다. 비취빛 사탕을 사서 갈무리한 영은 주루에 들어서려다가 몸을 흠칫 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 을 느낀 탓이다. 그러나 그것은 금방 사그라져 버렸고, 영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면서 살짝 굳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곧 흑죽만화라 이름붙은 주루로 걸어들어갔다. 흑색의 대나무에 만가지 꽃이 핀다? 과연 인테리어가 심상치 않았다. 대나무가 있기는 있었지만 그것은 칸막 이로 쓰이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흑단목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루 치곤 상당히 심상치 않은게 그의 귓가에는 야릇한 신음성도 들려(이게 아니잖 아!) 왔다. 4층이나 되는 주루고 굉장히 넓었는데 3층 부터는 아무래도 그렇고 그런 일이 벌 어지고 있는 듯 했다. 주향이 그윽하게 풍기고 손님들이 제법 많았지만 대부분 돈이 철철 넘치는 작자들로 보이는 것으로 보아 고급 주루임이 확실하다. 뭐 술마시고 식사하러 온 이 들이 얼마나 될까? '?!' 영은 깜짝 놀라서 다시 주루에 걸어들어가기 직전에 느꼈던 그 감각이 다시 전신을 자극함 을 느끼고는 주변을 자연스럽게 둘러보았다. 놀라긴 했지만 시선을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라 놀란 모습을 보일수는 없다. 영은 한숨을 길게 토하고는 빈 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손을 들 어 매끄러운 탁상을 문질러보았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손가락 끝에서 흔들린다. 영은 빙 그레 웃고는 다가오는 점소이를 바라보았다. "아이구, 공자님. 무엇을 시키시겠습니까?" 아까 들어올 때 잠시 주방에 다녀오느라 인사하지 못해서 당황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 러나 영은 곧 피식 웃어버렸다. 점소이 치고는 상당히 잘생긴 외모에 몸도 탄탄하긴 했다. 그러나 어느정도 수준이지 무림인의 균형있는 몸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영은 잠시 생 각하다가 금방 입을 열어 주문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기력을 일으켜서 점소이의 귓가에 전 음을 날려보냈다. 물론 그의 전음은 당연하게도 어기전성御氣傳聲이었다. "검남춘 한병. 그리고 저분이 드시고 계시는 음식 부탁하네." 「연기실력이 상당한데? 몇번째 대대隊 소속인가?」 그 말을 듣고도 점소이의 몸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약간 죄송스러운 듯한 표정. 영은 빙그레 웃었다. 입과 전음이 따로따로 전달되게 한 영을 그대로 흉내낸 상대는 고개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20년된 검남춘 한병이 남았는데 그놈이 공자님을 기다리느라 나가지 않은 듯 합니다." 「총호법께 복종을! 예, 저는 제 팔 검대 소속의 임명휘입니다.」 그는 천류세가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검대에 속할 정도의 최고수가 이런데서 점소 이나 하고 앉아있다니. 영은 스스로도 모르게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그럼 이 주루는 천류세 가의 소유였던가. 역시 백마성 아래는 천류세가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감히 말 할수 있을 것이다. 영은 손을 저어서 가보라는 뜻을 전달했다. 임명휘라는 검수는 금방 검남 춘과 음식을 가져와서 준비했다. 영은 느긋하게 술잔에 술을 따랐다. 40도나 되는 검남춘은 독주毒酒라서 술에 그다지 강하 지 않은 영으로써는 어느정도 공력을 사용해야 했다. 알코올에 일반인보다 두배는 강한 저 항력을 지니고 있지만 주당酒黨이라 불릴 수준은 아니었다. 따르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작 은 술잔이 곧 차올랐다. 술을 한모금 마시면서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입에 가져와 씹 었다. 이 땅 요리는 기름기가 많고 샹차이를 쓰는게 대부분이라서 독한 술이나 진한 차와 함께 마셔주지 않으면 맛을 느낄수가 없었다. 이런 술 대부분이 그렇듯이 씁쓰름한 맛이 나기 때문에 기름의 진한 맛과 샹차이의 향기는 지워졌다. 음식을 깨작깨작 먹는것도 일각쯤 지나자 금방 검남춘 한병은 비워졌고 음식은 동이 났다. 금방 임명휘는 술병과 술잔, 그리고 접시를 치워갔다. 영은 등을 기댄채 아주 조 금씩 술기운을 방출해서 흘려보냈다. 그때 영의 몸은 제어에서 벗어나 벼락 맞은 듯 뒤흔들 렸다. 깜짝 놀란 영은 중얼거렸다. '확실해! 이것은…… 이 기운은!' 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속으로, 경악성을 내질렀다. 이것은 정말 천지개벽할 일이었다. 이곳에 온 후, 처음으로 만나는 인물인 것이다. 그 스스로도 이룩치 못한 경지에 든 인물이 그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의도적으로 기를 뿜어내서 시선을 자신에게 오게 만들 고 있었다. '신화경神化境의, 신화경의 고수다! 바깥에 있어!' 영은 급히 몸을 일으켰다. 명휘가 몸을 움찔 했지만 영은 고개를 살짝 저어보이고는 은자를 날린다음 바로 거친 발걸음으로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엄청난 일이었다. 그가 사상 초유로 만나는 신화경의 고수! 물론 저 아스타르 대륙에서는 천신급의 강자들이 돌아다니고 있고 실제로 이 대륙에서도 만나지 않았다 뿐이지 천신급의 신들은 셋이나 된다. 영의 몸은 어느새 조금의 기력을 순환시키고 있었다. 그 기운은 명주실처럼 가늘게 뻗쳐나 와 그의 몸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천천히 멀어지고 있었기에 영은 다급하게 몸을 날렸다. 일 단 가볍게 기를 용천혈에 모아 왼발로 딛어 기를 분출시킨다. 화악 하고 바람이 원의 형태 로 뿜어져 나가 먼지를 휘감고 그 형태를 드러내 보였다. 영의 신형은 어느새 3여장 치솟고 있었다. 몸을 가볍게 나선으로 꼬아 튕긴 그는 다시 오른발의 용천에서 기력을 토했다. 신발은 전혀 손상되지 않으면서 기력이 다시 분사되면서 그의 신형은 8여장 이상 치솟고 있 었다. 다시한번 몸을 뒤튼 그는 어기풍룡륜御氣風龍輪의 기결을 잠깐 응용해 어풍의 구결로 몸을 휘감아 땅에서 20여장 이상 멀어져 있었다. 고작 초로 따지면 2초도 안되는 시간에 이 만큼 치솟아버린 영은 몸을 살짝 비틀어 마찰계수가 지극히 낮은 허공에 의지를 컨트롤해 얇은 강기막을 친후 그것을 딛어차고 몸 위로 염동의 막을 펼친 후에…… 파우우우웅―! 길다란 파공음과 함께 쏘아져 나갔다. 일순간 공기의 장막이 뒤흔들리며 일렁거렸다. 때아닌 광풍이 20여장 아래의 땅 위로 몰아쳤고 사람들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흩날리며 먼지를 뿜 어 올렸다. 그를 보았던 이들은 입을 쩍 벌리고 감탄하느라 화도 내지 못했고 때아닌 광풍 에 먼지를 뒤집어쓴 이들은 욕설을 토했다. 영은 청심비록의 신법중 상위에 속하는 나선비천螺線飛天 탄영彈影에 어풍의 구결을 조금 섞자마자 거의 음속의 반에 달할 정도로 근접한 속력에 깜짝 놀랐다. 소닉 배리어를 뚫어서 공기충격파를 생성시키지 않을 정도로 예리한 움직임을 이런 간단한 탄결로 가능케 하다니. 과연 청심비록은 누가 저술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굉장한 비급이었다. 운도 외운 즉시 태워 버리고 그 일부를 천류세가의 검수들에게 전수하고 있을 뿐 원본은 남아 있지 않다. "흡!" '진뢰眞雷!' 기력을 급하게 순환시키며 몸을 튕기며 장심과 용천에서 기를 뿜어 충돌시킨다음 그 난류를 제어해 그것을 박차면서 몸을 휘날리자 쩌르르릉 하는 뇌명雷鳴과 함께 섬영閃影 진뢰가 펼 쳐졌다. 순간적으로 급가속할 때 주로 쓰이기도 하고 섬영 계열의 신법중에서 기습을 할 때 주로 쓰이는 신법이었다. 지금은 급가속에 쓰였고, 한줄기 푸르른 기운을 몸에 휘감은채 그 는 푸르른 번개가 되어 그 얄팍한 기운을 따라 움직였다. 그 기운의 근처에 이르르자 마자 그는 곧 강하게 다리의 경락에 흐르는 기운을 거칠게 뿜어 내며 몸을 두바퀴 상하로 회전시킨다음 나선착螺線着의 수법으로 나선비천 탄영의 수법과 정 반대로 마치 계단 밟아 내려가듯 여력을 흩어버리며 몸을 빙글 돌려 땅으로 쓸어내려갔 다. 다시 바람이 거칠게 일어났지만 그는 다시 나선착을 한 번 더 시전해 계단 밟듯 20여장 의 높은 곳에서 순식간에 땅과의 거리가 반장이 안되는 거리로 내려섰다. 탁 하고 가볍게 착지한 영은 발끝으로 사뿐히 땅을 박차고는 신형을 날려 솟구친다음 나뭇 가지를 밟았다. 이제 대충 100여장 남았다. 그 기운의 주인은 주루 바깥에서 바로 어떤 방법 으로 마치 공간을 뛰어 넘듯 움직이며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기운의 주인은 지금 딱 백 여장 바깥에 멈추어 선 것이다. 영은 가벼운 초상비의 신법으로 나뭇가지를 박차고 나뭇잎을 살짝 건드리며 속력을 조금 냄 다음 10여장 남은 거리에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숲을 헤치며 걷기 시작했다. 백마성 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숲이었는데 상당히 넓은 숲이라 그가 신법을 길게 전개했음에도 이제 야 커다란 공터 하나에 다다랐을 뿐이다. 바스락― 풀잎들을 밀어내면서 영은 걸어갔다. 검은 없었다. 그냥 여전히 오른쪽 소매에 은영비가 숨 겨져 있을 뿐. 품속에 사탕이 갈무리되어 있고 추가로 은영비보다 약간 작은 단검 두자루가 그의 무기로 품속에 숨겨져 있다. 영은 의외로 큰 키라서 금방 걸어 공터에 도착했다. 영은 햇빛을 받아 역광으로 가볍게 흐려보인 상대를 직시했다. "……당신이 나를 불렀습니까?" "예. 제가 당신을 불렀습니다. 찾아오셨군요." "후. 불렀으니까." "위험할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까?" "죽어도 상관은 없었습니다만." 둘은 아주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상대방은 아스타르 대륙의 로브 비슷한 옷으로 몸을 감 싸고 후드를 내려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영은 한숨을 흘리고는 인피면구를 조심스럽게 벗 어서 품속에 잘 갈무리했다. 상대가 웃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대의 목소리는 매우 가느 다란 미성이어서 남자의 목소리라고는 생각도 되지 않는다. 체형도 남자고 분위기도 남자 같았지만 묘하게 여성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는 영이 본 얼굴을 드러내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영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마침 햇빛이 구름을 가리며 지독한 광량이 어느정도 줄어들었다. 영 의 시야에 그의 얼굴이 확실히 각인되어 왔다. [4] 영은 머릿속이 텅 비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곧 그답게 금방 제정신을 찾았다. 이건 사람의 아름다움을 한참 넘어 서 있었다. 신성神聖하며 또 신성神性하다. 길다란 흑발은 후드 위로 쏴아 하고 흘러내려 번쩍인다. 순흑의 빛. 어떤 빛도 용납하지 않는 순흑의 머리카락이라니. 약한 갈색도, 푸른빛도 섞이지 않은 말 그대로의 순흑색이었다. 그 흑진주마저도 푸른 광택 이 어리는 것이 대부분이고 오래되면 그 색도 퇴색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저 자는 영으로써는 짐작도 할수 없는 유구하고 긴 세월이 서린 눈임에도 불구하고 그 머리카락의 빛이나 눈동자의 빛이 퇴색하지 않았다. 불멸로써 세월을 살게 되면 필연히 광기는 쌓이게 되어있다. 이성을 지닌 자로써 싸워야할 권태는 조금씩 조금씩 불멸자를 광 기로 물들인다. 신이라 할지라도 피해갈수 없는 광기. 그것은 영원의 감옥에서 사는 자인 이 상은 어쩔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차가운 진실. 그러나 저 유구한 세월을 살아온 자는 온화함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온화한 미소와 함께 따 스한 눈빛은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할듯한 그러한 것. 핏빛의 입술이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써 영 마저 그 마음이 흐트러질 정도의 압도적인 매혹 으로 다가왔다. 절대에 가까울 정도의 매혹은 여성스러운 부드러움, 그리고 신성과 함께 세 상 모든 것이 그를 사랑할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 무심한 영조차도 마찬가지여서 자꾸 저 아름다운 이를 보면서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저 온화하고 포근한 분위기는 영혼을 낳았다는 저 차원의 바다보다도. 세상을 떠받치는 저 차원의 대지보다도 모두에게 고향에 대해 품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향수랄까?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소유욕도 걷잡을수 없이 치솟는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까 지 발전하지는 않더라도 그러한 감정이 미약하게나마 모든 생명에게는 부여된다. 그런 의미로써 영은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부모의 정에 대해 상당히 굶주려 자랐기 때문에 더한지도 몰랐다. 영은 씁쓰레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흔들릴 정도로 자기 자신이 나 약했던가 하는 의문. 그건 어쩔수 없다. 철벽같은 정신을 지닌 자는 이미 그 자체로 존재하 지 않는다. 신도 감정이 있는데 하물며…… 인간이, 이성적인 코드보다 감정적인 코드가 우 선할 경우가 많은 인간이…… "……후우." "미안해요." 무엇에 대한 사과일까? 영은 스스로에 대해 조소하면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니, 저 사 람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잠시 기를 운행해 마음을 가다듬은 그는 천천히 저 아름다운 이 를 바라보았다. "아니, 미안할 것 없습니다. 휘둘린 내가 잘못이겠지요." "으음.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영은 저 아름다운 얼굴이 온화함과 평온함에서 궁금함이 뒤섞이자 풍부한 표정이 나타남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일까? 무공을 수련한다는 것은 마음의 단련과 마찬가지다. 마음의 단련…… 그렇다. 평온함. 어떤 상황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할수 있는 그 강철같은 정 신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인데…… 어째서 저자는 '모두' 다 드러내는 것일까? 감정이라는 것 자체와 이성이 공존하면서 서로 충돌하지 않는 저 자연스러움이라니. 그러나 아마 저 사람도 오랫동안, 아주 오래도록 번민했을 것이다. 태어났을때부터 저럴수는 없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감정과 이성은 충돌할수 밖에 없는 것. 저런 정신을 이룩하기 위 해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겪었을까? 피부 위에 난 상처는 재생되지만 흉터가 남을 경우도 있다. 그 흉터까지 사라지게 만들 정도로 자아를 수련할 정도라면 얼마나 많은 번뇌, 번민, 괴로움을 겪어왔을까? '나로써는 짐작도 할수 없겠지. 후.' "당신의 이름은 청淸이라고 알고 있어요. 맞나요?" 영은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이 세계에 와서는 단 한 번도 발설하지 않은 이름. 알아 서는 안되는 이름이었다. 영은 싸늘하게 굳은, 긴장으로 차가워진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 다. 그는 여전히 온화하고 조용한 분위기일 뿐이다. 영은 살기를 조금씩 조금씩 일으키면서 몸을 긴장시켜 나갔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조용한 시선을 영에게 보냈을 뿐. 영은 그 맑은 눈빛에 움찔 했 지만 다시 그 기세를 날카롭게 복돋우면서 오른손을 살짝 튕겼다. 그러자 차앙 하는 금속성 과 함께 은영비가 은빛을 토해내며 뻗어나와 그의 손에 쥐어졌다. 저번에 사용했던 그 은빛 의 번개와 같은 그 검은 그때 이후로는 사용할수 없었다. 그것이 뭔지도 몰랐고 어떻게 사 용할수 있는지도 알수 없다. 그래서 그는 지금 은영비를 꺼내 든 것이다. "왜 무기를 꺼냈죠?" "당신이, 나를 이곳으로 불렀습니까?" "아니오." 은영비는 조용히 살짝 내려갔다. 영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올라갔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는 지금 '공격'할 셈이었다. 죽어도 상관없다. 신화경의 고수가 얼마나 강력한지, 어떤 경지로 싸우는지, 그리고 대체 그가 어째서 '알고' 있는지에 대한 것들. 아니오 라는 대답을 그대로 믿을 정도로 그는 멍청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저 사람이 믿을만 하다 하더라도 믿어서는 안 되었다. 영은 싸늘한 미소와 함께…… 살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너울거리며 살기는 이제 아예 눈으로 드러나 보였다. 아지랑이 처럼 치솟는 살기. 그리고 주변의 모든 기운, 지기, 천기, 자연기, 생기등이 그의 의지에 따 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의 살기는 모든 자연을 휘어 잡아버렸고, 대지는 뒤흔들리고, 공기 는 떨어 울렸다. 구그그그그그 우우우우우웅 대지의 진동, 그리고 은영비의 검명劍鳴. 은영비에서 짜릿한 영기가 치솟아 올라 거대한 기 운을 이루었다. 그가 청심비록을 토대로써 배우고 익힌 심형어기폭뢰검강心形御氣爆雷劍剛 이 검 자체를 타고 흐르며 치솟아 올라 꾸물거렸다. 핏빛의 전류가 파지직 거리며 은영비에 서 치솟았다. 거의 1장(3m)에 가까운 엄청난 길이가 된 핏빛의 어기검御氣劍. 폭뢰강기와 심형어기검의 합치된 검의. 핏빛의 뇌류와 푸른기운, 그리고 은빛의 날카로움이 뒤섞여 극한의 파괴력을 머금고 대지를 떨어 울렸다. 이 검격에 실린 기가 모두 개방된다면 마을 하나쯤은 가볍게 말아먹을수 있을 정도였다. 주변의 기류가 하늘로 치솟음과 함께 지각이 뒤흔들리며 서서히 돌들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가벼운 모든 것들이 중력을 이탈해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거대한 힘의 구 간은 중력과 행성이 가진 모든 물리력을 차단해버렸다. 영의 몸은 핏빛의 영기와 푸른빛의 영기를 함께 휘감고 보랏빛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있었 다. 영기를 몸에 휘감고 있는 그의 모습은 살기와 어울려 아름다워 보였지만 그것은 끔찍한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기품과 살기가 어우러진 모습. 두께는 한자(30cm)정도 되고 그 길이 는 한 장이 넘는 혈뢰검은 미친 듯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이 힘들이 주는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있었다. 그는 옷자락 외에 어떤 것도 미동하지 않는다. 옷이 펄럭이며 흔들리지만 머리카락은 한올 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무심한 시선을 영의 기검에 들이대다가 한숨을 흘릴 뿐이었다. 그는 하늘로 조용히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영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왼손으로 은영비 아래쪽의 혈뢰기검을 붙잡고, 양손으로 붙잡은채 쯔바이 핸더보다 더 욱더 큰 그 검을 상대방의 심장을 향해 겨냥했다. 그리고, 손이 그어 내려졌다. "뭐, 뭐야?!" 순간 모든 것이 멎었다. 기가 멎고, 세상이 멎고, 대지가 멎고, 하늘이 멎었다. 하늘을 향해 솟구치던 광기어린 영기는 영의 의지에서 떨어져 나와 사그라들었고, 어느새 확 하고 혈기검은 풀어져버렸다. 자연에서 일탈해 중력권 바깥으로 벗어나던 물질들은 조용 히 가라앉아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갔다. 기가 가라앉고, 대지의 흔들림이 멎었다. 떨어울리 던 공기도 멎고, 은영비의 검명도 멎어들어갔다. 그리고 기는 뒤흔들리기는커녕 완벽하게 가 라앉아버렸다. "이, 이럴수가……" 영은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신화경이 이러한 것인가?! 영의 기도 깔끔하게 가라앉 아서 다시 몸에서 잔잔하게 멈춘다. 기의 소모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내상도 없다. 다만 영 의 의지가 아닌 그의 의지로써 완벽하게 거두어지고, 가라앉은 것이다. 남의 기마저 마음대 로 조정할수 있을 정도라니. 영의 생명이 그의 손에 붙들려져 있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 다. 그가 손만 움켜쥐면 덧없이 죽을 것이다. '대…… 대단해……' 전혀 알수 없었다. 어떤 기법도, 검의도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손을 들어 올렸다가 부드럽 게 그어 내렸을 뿐. 어떤 현기도, 어떤 느낌도 받지 못한 단순한 동작. 그러나 기는 가라앉 았고 영의 마음도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여전히 온화하고 조용한 동작으 로 그 가느다랗고 흰 손가락을 들어 지나가는 바람결을 쓰다듬을 뿐이다. "자연을 괴롭히지 말아요." "아, 미안합니…… 가 아니잖습니까!!" 영은 날카로운 시선을 그에게 꽂았다. 그는 지극히 심려된다는 표정으로 지나가는 바람결을 쓰다듬고, 자연이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 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금 질책하는 표정으로 영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 온유한 분위기에 영은 자신도 모르게 말려들어가 사과하려 다가 간신히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음. 안넘어가네요." "……" 영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온유함이 아 니라 꼭 장난기 어린 표정의 '소. 녀.' 같은 분위기랄까? 저렇게 천변만화 할수 있다니. 영은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긴장감이고 살기고 뭐고 다 날아가버렸다. 영은 심호흡을 해 어지럽 혀진 정신을 가라앉힌다음 은영비를 들었다. "또 공격할건가요?" 슬프다는 얼굴의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흔들리지만 설명해주지 않을것같은 저 분위 기에 짜증부터 지솟는다. 영은 입술을 깨물고는 주변의 기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내부의 기 와 주변의 기의 운용이 절묘하게 맞닿으면서 공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라보던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을 뻗어 영에게 외쳤다. "앗! 당신, 청심비록을 익혔어요?" "……" 영은 입술을 깨물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곧 공중에 무려 32개체에 달하는 심형어검강이 뻗 쳐나오기 시작했다. 한 장 반은 되어보이는 은푸른빛의 강기검들은 주변을 빙글빙글 떠돌며 기와 공명해 더욱더 강하게 빛을 토해냈다. 그 삼엄한 예기에 주변의 분위기는 다시 삭막해 져 가고 있었다. "가라!" 청심지도淸心之道. 일급기一級技. 심명心鳴 무극기공無極氣功. 환라어강幻羅御剛! 핑그르르 회전하면서 날카로운 예기의 고리를 만들어낸 그 32개체의 심형어검강들은 무서운 속도로 그를 향해 쏘아져 나가 갈기갈기 찢어버리려 들었다. 영은 바로 신법을 발휘해 몸을 날리면서 그 날카로운 심형어검강들을 피해 그에게 쇄도하며 빠르게 은영비에서 심형어검강 을 뿜어냈다. 그리고, 일섬! "핫!" "그럼 일단 무형류無形流!" 그는 다시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순간 주변의 기가 은은하게 파동치며 움직였다. 그리고, 공간 사이로 기가 쏟아져 들어가 무형의 흐름을 형성했고, 환라어강의 기검들은 모조리 그 것에 부딪힘과 동시에 흡수되어버렸다. 영이 찔러넣은 심형어검강도 마찬가지여서 그 음속 을 넘어버린 일섬을 그는 가볍게 무형류로 막아냈다. 공간이 울렁이며 흘러가는 것 같은 그 무형류에 간단하게 막힌 것이다. "큭?!" 영은 어마어마한 반탄력에 공격받고는 뒤로 확 튕겨져 나갔고, 곧 그는 허공에서 염동의 막 을 걷어 차 탄신해서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면서 은영비의 검극에서부터 은선을 그려내기 시 작했다. 강기의 선이 은빛으로 찬연하게 빛나며 상대방을 덮쳐갔다. 그러나 상대는 아랑곳하 지 않고 여전히 흐르고 있는 무형류의 기운을 운용했다. "무형풍無形風!" 휘오오오오! 화려한 바람이 일어나면서 흐르는 무형검은 그 바람의 결 하나하나에 실려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폭뢰강기막을 펼쳐서 그 무형풍과 부딪혔다. 폭 발음은 울리지 않았다. 무형풍은 아주 부드럽게 폭뢰강기막을 감아돌고 은선을 완전히 흡수해 버린다음 영을 무력화시켜 튕겨내버렸다. "크윽!" "무형박無形縛!" 주변의 기가 끈적끈적한 공간의 울렁임으로 변해 영을 둘둘 감아 묶어버렸다. 무형검 자체 의 오의인지 진원진기를 제외한 모든 기운이 쭈욱 빨려나가서 완전히 주변의 기운으로 풀어 버렸다. 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진원진기를 움직여 보려고 했으나 진원의 힘은 아예 묶여버 린 것 같았다. 진원진기도 흡수해서 환원시켜 버릴수 있었지만 그대로 놔 뒀다는 것을 깨달 은 근은 몸에서 힘을 빼냈다. '너무…… 너무나 강하다!' 사르르르 하고 바람이 가라앉으며 그의 머리카락과 옷을 흐트렸다. 영은 눈을 감으면서 이 곳에 와서 처음 맛본 패배에 정신이 아찔함을 느꼈다. 져버렸다. 물론 자신도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다. 진짜 '죽이려' 들었으면 사이킥 파워와 기를 모조리 이용해서 말 그대로 이곳 자체를 초토화 시켜 버렸을 것이었다. 금강폭열공에 존재하는 12초식을 뿜어낼수도 있었고. 말하자면 이것은 탐색전인 것이다. 그는 마음이 일면 이미 기가 가 닿는 경지에 올라 있어서 3600년의 거대한 기운이라면 다른 고수가 마음이 일면 기가 가 닿는 그 속도보다 몇배는 더 빨랐다. 그런데도 그는 이렇게 가 볍게 무력화 된 것이다. 신화경에 닿아 얻을수 있는 무형의 오의는 이런 것이었을까? 남의 기조차도 마음대로 박탈할수 있는. 진정한 물아일체物我一體. 내가 곧 세상이며 세상이 곧 나다…… 라는. "음. 대단하네요. 청심비록을 그정도까지 소화해 내다니. 일단 제 말을 좀 들어주시겠어요?" "……패자는 말이 없습니다. 마음대로 하시죠." 영은 가시돋은 어투로 쏘아 붙였는데 그 모습은 퉁명스러운게 아니라 그의 외모와 맞물려 꼭 철없는 귀한집 아가씨가 투정부리는 것 같았다. 그것을 느낀 듯 그도 피식 웃어버렸다. 영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고. 그는 그 웃음을 멈추었다. "제 이름은 리오디안 에셀니퍼 크레지스Riodian Eselniper Xrezis…… 라고 해요." "……" 영은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뭐 그래도 영 역시 긴장이 풀려서인지, 아니면 그것이 저자의 능력인지 반응이 상당히 충실했다. 이곳에 와서 처음 듣는 서양식 이름. 그러나 뜻은 전혀 알수 없었다. 잠시 머리를 굴려서 그것을 분석해보려다가 포기한 그는 다시 리오디안 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편하신 대로 부르시면 되지요. 어쨌든, 당신을 이곳에 오도록 안배하신 '그분'께서 당신에게 전하시는 선물이 있어서 말이죠." '과연…… 저자는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한 그자와 관련이 있었어.' 영은 한숨을 토해내며 리오디안을 바라보았다. 그는 먼지투성이가 된 머리카락을 풀어서 툭 툭 털었다. 그런데 묘한 것이 머리카락이 얼마나 긴지 모르겠다. 그냥 긴 생머리 같기는 한 데 옷 안쪽으로 들어가서 빠져나와 종아리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사실 그는 지금 허리에서 두바퀴 감은 다음 늘어뜨린 것인데 대체 그런 식으로 늘어뜨려도 종아리 근처에서 흔들릴 정도면 얼마나 길단 말인가? "음. <내면의 검>의 일깨움. 그리고 본연의 힘을 어느정도 사용할수 있게 각성시키라는 것 이었는데. 어디보자……" 그는 로브 비슷한 그 옷을 살짝 풀어서 안쪽을 보았다. 어처구니 없게도 품 안에는 둘둘 말 린 가죽 비슷한 재질의 스크롤Scroll이 존재했는데 몇겹을 감았는지 알수 없을 정도였다. 그 것이 양쪽에 두 개 있었는데 그는 그중 하나를 살짝 풀어서 풀었다. 그러자 차르르륵 하고 그것이 풀림과 동시에 무서울 정도의 빛이 찬란하게 뿜어져 나왔다. 레더 스크롤의 안쪽에는 수백개는 넘어 보이는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보석, 혹은 마나메탈로 이루어진 신표神標들이 걸려있었다. 그는 그중 하나를 꺼내서 말아 쥔다음 다시 레더 스크 롤을 말아 올렸다. 차르륵 하고 레더 스크롤이 말려 올라갔다. 아예 보석들을 통째로 가공한 것들도 있었고 마나메탈과 보석을 이용해 만든 것들도 있었는데 그는 보석으로만 이루어진 것을 하나 끄집어 냈다. 은의 입자를 물에 곱게 풀어서 반투명한 보석으로 만든듯한 느낌. 그것은 불꽃의 형태로 가 공되어 있었는데 너울거리는 모양새가 어떻게 그렇게 화려한지 놀라울 정도다. 그 불꽃의 안쪽에 역시 불꽃 모양의, 금의 입자를 곱게 풀어서 굳힌듯한 느낌의 보석이 존재했다. 저런 게 만들어질수 있나 싶을 정도의…… 아예 생성되었을 때부터 저렇게 만들어진게 틀림 없었 다. 은은한 금빛과 은빛이 뒤섞여 광휘의 덩어리가 된 그것은 주먹 반만 했다. 그것을 쥔채 곧 리오디안은 눈을 감았다. 조용히 눈을 감자 눈썹이 파르르하고 흔들렸다. 곧 그의 몸 주변에서 금은빛의 영기가 회오리처럼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신표는 강하게 빛 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그는 곧 그 신표를 기도하는 손 모양으로 쥐고는 조용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언어도 아니었지만 영은 그 담긴 '뜻'을 확실히 알아 들을수 있었다. 세상 전 체가 그 언어를 반복하고 있었다. 기는 춤을 추며 모든 것이 된다. 마나는 노래하며 모든 것을 배척한다. 영기는 흘러가며 삼라森羅를 그리고, 에테르는 날개를 펼쳐 만상萬象을 표현한다. 무한과 유한의 교차점이시여. 그대의 종이 당신을 청합니다! 당신의 뜻이 곧 모든 것이며 당신의 마음이 곧 세상이니 어느 것이 복종치 않을수 있으랴! 「그대여, 깨어라!」 [5] 순금純金의 빛기둥이 나선형으로 휘말려 올라간다. 그것은 순금을 1미크론보다 더 가느다란 굵기로 한올한올 실로 뽑아내서 수십만 가닥을 꽂아 불꽃의 형태로 말아 올린 것처럼 그 결 하나하나가 세세하게 느껴지는 듯 아름다웠다. 순은純銀의 빛기둥이 나선형으로 휘말려 내려온다. 그것은 순은의 거대한 기둥을 세워놓고 수만 명의 장인들이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손에 쥐어지는 여러자루 조각도로 세밀하게 그 결을 깎아 내려간 것처럼, 그렇게…… 아름다웠다. 두 빛기둥, 합쳐질수 없는 두 개의 빛기둥이 금은빛으로 뒤섞여 아름답게 타올랐다. 회오리 치며 솟구쳐 올라가는 일렉트럼 파이어 스톰Electrum Fire Storm. 금은빛의 회오리는 단지 바람기둥이 순금과 순은을 아주 가느다란 강판에 갈고 또 그것을 곱게 빻은 가루를 언덕처 럼 쌓아둔 위로 지나가며 휘말려 올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면 햇빛과 월광이 똑같은 광도로 수면에 뿜어져 그 금은빛이 뒤섞인 위로 거대한 용권 이 지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름다웠다. 불꽃같기도 하지만 뜨겁지 않았다. 오히 려 끝없는 안온함이 다가들 뿐. 금은의 회오리를 그대로 얼린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매끄 러운 물의 표면처럼 빛을 반사할 것 같기도 한 그 환상적인 아름다움은 삼라와 만상의 아름 다움 모두를 핀셋으로 짜 맞춘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빛기둥은 서서히 거대화하기 시작했다. 풀어져 나가는 것이다. 나선의 궤 적은 점점 넓어지고 헐거워지며, 그 가느다란 결들은 마치 머리카락 풀려 나가듯 쏟아지기 도 하고, 분말이 되어 흩날리기도 한다. 어떤 소리도 없었다. 모든 것이 노래하고, 되뇌고, 무한자의 이름과 명령 받은 바를 해낼 뿐. 수많은 빛 입자들의 무도회는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막대한 양의 공기를 하늘이 탐욕스럽게 빨아 올렸다가 다시 환원시켰다. 그렇지 않다면 이 상기후가 일어나서 그 많은 공기를 모두 눈이라는 이름의 최종결과물로 배설하게 될 것이 다. 그런데 배설排泄인지, 배설排雪인지 알수 없는 문제지만. 아마 후자가 맞을 것이다. 리오 디안은 닐Kneel의 자세에서 양 손을 꽉 맞잡고 눈을 부드럽게 감고 있다가 다시 눈을 떴다. 그는 조용한 미소를 입에 머금고 있었다. 그는 아주 부드럽고 우아한 동작으로, 어느것이 먼저인지 알수 없게 일어나며 손을 풀어냈 다. 다시 레더 스크롤을 차르륵 하고 풀어낸 그는 그 특이한 모양의 신표를 레더 스크롤에 건다음 다시 레더 스크롤을 차르륵 하고 감아 올렸다. 그는 이제 아예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감고 있지만 표정은 여전히 온화하다. 눈가에 주름도 전혀 잡히지 않았지만 그 온화함과 평온함에는 금이 가지 않고 있었다. 눈썹은 아주 가볍게 떨렸지만 금방 다시 멈추었다. 눈을 부드럽게 감은 그는 다시 후드를 뒤집어 썼고, 그는 보이지도 않을텐데 시선을 영에게 던졌다. 영은 금은빛의 기둥에 휘말려 본질을 조금 씩, 조금씩 되찾아가다가 빛의 기둥이 확 하고 풀어지자 천천히 하강하고 있었다. 조용히 혼절한 모습의 그는 바닥에 눕혀졌다. 리오디안은 보이지도 않을텐데 누운채 깨어나 지 못하는 그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주고 나서 아주 완만하고 매끄러운 동작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수풀을 조용히 헤 치면서 발걸음소리 하나 없이 숲의 어둠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영은 여전히 깨어나지 못 하고 누워 있었다. 별로 바뀐 것은 없어보였다. 그러나 그의 몸 주변에서는 '그' 은빛 스파크Spark가 미약하게 니미 튀고 있었다. 은빛의 전격이라니! 은빛을 발하는 전류가 있을 리가 있나! 그것은 어느 누가 보아도 마법적인 힘이 작용해 있었다. 마법적인 힘이라면 마법적인 힘이고, '신적'인 힘 이라면 신적인 힘일 것이다만은. 아마도 마법이라기 보다는 신의 힘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였다. 영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곧 그의 뇌는 빠르게 몸을 장악하여 그의 의지대로 움직일수 있게 만들었다. 부시럭 거리며 멍한 표정으로 일어난 그의 얼굴은 백치미가 더해져서 참 환상적인 모습이긴 했지만 전신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흙먼지는 그 아름다움을 대폭 삭감해버렸다. 몸에 달라붙은 흙먼지와 검불들의 불쾌한 감촉을 느낀 듯 그는 손을 들어 탁탁하고 몸을 툭 툭 치다가 한숨을 토해내면서 피부 위로 기를 돌렸다가 강한 반탄지기를 뿜어냈다. 순간 흙 검불들이 확하고 퍼져나와 주변을 떠돌다가 가라앉았다. 그는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입은 헤 벌린 것이 흙먼지라도 들어올 것 같았지만 그의 반탄 강기가 꽤 강력했던지 먼지들은 멀리 튕겨나가 가라앉아 버렸다.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정체 불명의 지식들은 새로 주어진 힘을 다루는 방법이었다. 그는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새겨진 지식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이다. 기억중추에 기억을 빠르게 정리해 넣긴 했지만 아직도 멍하다. 왜냐하면 이건 기 같은 능력 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새로 주어진 권능…… 체내에서 느끼지조차 못했던 힘이건만 그는 그 지식들을 받아들이고 나서 바로 그 힘을 느 끼고 있었다. 영혼의 힘이랄까? 왼손을 천천히 들어올린 그는 그 새하얀 손을 바라보았다. 지나치게 희고 부드러운 손. 검을 쥐고 휘둘러도 얼마나 질긴지 상처 나는 일도 없었고 매끈매끈거리고 말캉거리지만 조 금만 기가 불어넣어져도 나무 정도의 섬유질은 우습게 끊어버린다. 그런 손을 쥐었다 폈다 해본 그는 그 흉기 위로 새로운 흉기를 발현시켰다. 기와 마나, 에테르와 영기가 모두 우웅 하고 공명하며 진동했다. 그의 영혼 내부에서 일정부분 개방되어 깊은 심층에서 표층으로 떠오른 힘의 일부가 구현된 것이다. 순은純銀의 빛이 은은하게 서리다가 마치 기전력氣電力이 튀는것처럼 공기와 마찰 해 요란하면서도 날카로운 음향을 토해냈다. 파지지지직! 은빛. 그렇다. 그가 이전에 꿈속에서 보아온 순은의 빛살. 그 번개가 그의 손에 자리잡고 있 었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고 그때마다 힘이 점점 표층으로 불러들여져 춤을 추었다. 그냥 스파크가 되어 튀었던 전력은 이제 일체화된 전하電荷를 띄고 용오름 치고 있었다. 기와 마나, 에테르와 영기가 함께 그 힘의 주변을 돌며 몸서리쳤다. 반투명한 은빛 유리같은 뇌전은 점점 겹치면서 짙은 은빛으로 불타올랐다. 파지지직 하는 기음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이젠 순수한 전격이 되어 타오를 뿐. 거대한 전격의 검劍이 된 전류는 점점 더 거대화되어 이제는 응축되기 시작했다. 마치 플라 즈마Plasma. 원자핵과 전자가 완전 분리상태에 들어갈 정도로 강한 힘이 응집된 상태처럼 요란하게 춤을 추면서 거의 2장 길이의 전격의 검이 되었다. 아니, 이제는 검이라기 보다는 거대하고 두꺼운 기둥같았다. 그것을 쥔 그는 머릿속에서 떠 돌다가 이제 완전히 실체화된 이미지를 떠올리며 조용히 읊조렸다. 내 내면의 벽을 건드려 문을 열라 내면을 열고 외면으로 뛰쳐나오라 나의 일부이며 나의 영혼의 조각이며 또한 나의 반대편인 자 "실버Silver……" 파파파파파팟! 이젠 소용돌이 치는 은빛의 뇌류. 그를 중심으로 하여 모든 힘들이 파동치며, 솟구쳐 올랐 다. 저번과는 확연히 다른 힘의 파동. 그때는 내면에서 순간적으로 검이 발현된 것이었으나 지금은 아니다. 완전히 내면. 꽉 닫혀있던 내면을 열고 본질인 힘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영 혼의 내면에 가두어졌던 거대한 힘이 열리는 것이니 지금 이 현상도 사실 부족한 편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아직 완전한 힘을 손에 넣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입에서 떨어진 단어가 단순한 음파동이 아닌 순수한 힘이 되어 퍼져나와 세상을 언령 으로 자극했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방원 5장여에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은빛의 파도 가 일렁였다. 그것은 이미 전격의 형태가 아닌 순수한 빛의 파동이었다. 같은 전자기력電磁 氣力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굉장히 신비해보였다. 은빛의 기둥이 솟구쳐 오른다. 빛의 순수한 기둥…… 그것의 주변으로는 나선형으로 전류의 길이 유도전류로써 휘감기고 있었다. 단지 에너지의 상승류일 뿐인데 그 힘이 발현되어 휘감겨 오르는 것이다. 이제 은뢰銀雷는 또다른 형태로 써 주변에 여파를 끼치고 있었다. 전류가 닿은 부분에서 순은의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힘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빌어오고'있는 힘의 흔적일 뿐. 그러나 그것으 로도 충분하여 거의 은빛 전류의 위세와 맞먹었다. 은빛의 불꽃들이 피어오르고, 불똥이 튀고, 소용돌이가 되어 은빛의 시린 뇌전과 맞물려 화 려한 광휘를 불태웠다. 이정도 기운이라면 어느 누구나 다 눈치챌법 했으나 소동이 일어나 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 '누군가' 그것을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빛의 기둥과 은빛의 광염만 하더라도 눈에 쉽게 띈다. 멀리서 보더라도 그 찬연한 빛살 을 날개로써 펼쳐 올리는 이 힘들은 시계에 잘 들어온다. 그런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느끼 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히 누군가의 권능으로 은폐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블릿츠Blitz……" 우우우우우웅! 빛의 기둥 위로 은빛 불꽃과 은빛 뇌전의 길이 타고 올라 나선형으로 휘말려 올라갔다. 순 간 그의 왼손 위로 순은의 빛이 은은하게 퍼져나왔다. 은빛속에서 보이지 않을 것 같았으나 반투명한 빛살 가운데서도 확연하게 그 존재를 자리매김 하고 있는 은빛의 막대는 검의 형 태를 띄어가고 있었다.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그 모습. 물론 나타날때마다 이렇게 될 리는 없으나 지금은 어떻게 보면 첫 번째 개방이었다. 이전의 것은 불완전한 것이었고 단순한 검형만이 드러났었을 뿐이었다. 지금은 완연히 내면 이 열리고 그 안에서 힘이 터져나온 것이다. 말하자면 거센 물살을 튼튼한 방제로 묶어놓고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었다가 그 제방이 한칼에 쓱 하고 치워진 경우라고나 할까? 그 제방에 조그만 구멍만 나도 거센 물살이 쌓인 거대한 에너지는 단숨에 방제를 붕괴시키 고 만다. 하물며 이 경우는 대륙 하나를 완전 소멸 시켜버리고도 남아서 행성 하나를 말아 먹을 에너지가 안전한 수순 내에서 개방되는 것이니…… 본질의 힘을 다 되찾지 못한 상태에서도 그정도의 힘일 것이니 현경이라 할지라도 이 근방 에서는 목숨 부지하기가 힘겨울 터였다. 그 많은 기, 마나들이 혼비백산한 인간들처럼 난리 를 피우면서 밀려나가고 있으니. 쿠오오오오 ― 순은의 빛살에 푸른빛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물빛의 수정에 은의 입자를 섞어넣는것만 같은 아름다운 모습. 이제 완연히 현물화現物化한 그것은 늘씬하고 수려한 검의 자태가 되 어 있었다. 영 그 자신을 본뜬것만 같은 아름다운 모습. 단지 그 색상이 차이날뿐 그의 새하 얀 왼손에 쥐어진 검은 정말로 잘 어울렸다. 부러 디자인을 맞춘것만 같았다. 은청색 검劍. 넉자가 조금 못되는 검신은 얇았다. 손가락 세마디가 안되어 보이는 좁은 검폭 에 지나치게 얇은 검신이었다. 은의 입자와 물빛 사파이어를 섞어놓은 보석을 깎아내 놓은 듯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검. 그것은 지금 은빛이 남긴 그림자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검막이…… 가드는 그야말로 장식물인 듯 작았지만 매끈한 백색이었다. 손잡이는 흰색의 가 죽 같았지만 느낌은 다르다. 가드 중앙에 박혀있는 것은 은색의 번개를 봉인하여 만든듯한 성인의 손톱만한 보석이었다. 폼멜은 장식용 기능만 있을 정도로, 손톱만큼이나 작았다. 그 폼멜마저도 물푸른 빛의 보석으로 되어 있었다. 왼손의 검은 어느새 오른손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는 부드럽게 검을 휘둘러 보았다. 공기가 조용히 끊어져 나간다. 예리하게 맛이 사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부드럽게 흔들리자 마자 어느새 검궤는 끝나있고 공기는 끊어질 새조차 없이 다시 달라붙었다고나 할까? 빠른 쾌검 이긴 했지만 검이 지나치게 명검이어서 그랬다. 검신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 검날역시 아름답다. 희미하게 은빛을 발하는데 반사광이 아니라 정말로 은빛을 발하고 있는 얇은 선의 형태였다. 각진 검신이긴 하지만 얇고 섬세해서 말 그대로 예술품 이상의 가치였다. 그는 영혼 내부에서 풀려나와 약동하며 조금씩 조금씩 통 제되고, 거대화 되어가는 그 힘을 손잡이로 불어넣어보았다. 파즈즈즈즈즈 ― 손잡이부터 타고 오르기 시작한 은빛의 전류는 천천히 가드에 박혀있는 보석을 채우고 올라 검신으로 약동하며 꾸르르르 하는 기음을 흘렸다. 검날이 찬연한 빛으로 달아올랐다. 위이잉 하고 모든 기운과 공명하는 검, 그는 천천히 자세를 잡아 갖추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6] 물빛의 시림으로, 또 차가운 은빛으로 반짝이는 호선이 부드럽게 그어졌다. 부채꼴인것도 같 으면서도 묘하게 형태가 다르다. 공기를 얇게 저며내는 듯한 예리한 베기다. 예리하고, 얇고, 아름다우며 곧은 검신이 순간 스르릉 하는 기음을 퍼뜨렸다. 공기가 예리하게 찢겨져 나가 면서 검의 궤적으로 반작거리는, 물빛 수정가루 같은 편광이 퍼져나갔다. 소리도 없이 공기 가 갈라져 나가지만 그 느낌은 부드러움이었지 쾌검의 일섬으로 인해 잘려나가는게 아니었 다.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은빛과 물빛의 영롱한 군무가 이루어진다. 낭창낭창 휘어질것만 같은 검은 실제로 그런 환상을 이루어 내고 있었다. 곧은 막대를 부드 럽게 흔들어주면 마치 정말로 낭창낭창 휘어지는것만 같은 눈의 착각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한도의 부드러움이 검을 움직이고 있었다. 검궤의 변화는 한을 모르는 부드러운 속에서 화 려 그 자체가 되어 피어났다. 부드러운 걸음, 그리고 부드러운 베기, 부드러운 호흡은 소리 없이 조화롭게 연계되었고 그것을 계산해보고 그것을 예술로 표현한다면 절대적인 아름다움 이 될 정도로 완벽했다. 실제로 무인이 본다면 그 아름다움에 넋이 나가 그 검이 자신의 목숨을 앗으려 든다 하여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매끄럽게 흐르는 검은 공기를 타고 흐르기도 하고 베어내기도 하지 만 결코 결을 벗어나지 않았다. 미끄러지는 듯 가벼우며 마찰 계수 자체가 0에 근접했거나 없는 것 같은 그 흐드러짐이라니. 경쾌한 듯 하며 미려하고 사뿐사뿐 가벼운 보법과 남은 왼손의 움직임. 흩날리는 순흑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지는 듯 하면서도 제어되는 공기의 흐름 에 따라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조화되고 맞물리면서 환상같은, 도저히 도달할수 없을것만 같은 아름다움이 되어 빛을 발한다. 꿈과 같이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그 아련함, 그 비현실감이 실물이 되어 그려지고 있었다. 은빛과 물빛이 어우러지며 미려한 곡선을 돋보이게 만든다. 그 미려하고 아름다운 곡선은 도저히 예리한 살기를 머금을 수 없는 무희의 춤과 같은 보였다. 그러나 그 부드러운 궤적 안에 사람이 들어가게 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치명상을 입게 되어 있었 다. 검 위로 흐르는 은빛 역시 이 검무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했다. 검의 위에서 번져나오기까지 하는 은빛의 기류. 순은빛의 뇌전과 순은의 불길은 나선, 혹은 직선이나 곡선을 그리면서 부딪힐 것 같으면서도 부딪히지 않고 섞일 것 같으면서도 섞이지 않았다. 그러나 멋지게 한폭의 은빛의 물감을 이용한 산수화를 그려나가는 것 같았다. 그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만 같은 검무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시 빛이었다. 검이 지나가면 그 위로 은은한 뇌명雷鳴이 울어일어나고 치달리는 은빛의 불길이 포효하면 기가 떨고 마력 이 흩어졌다. 검극이 순간 매끄러운 궤적을 그리다가 하늘을 떠 받쳤다. 검극이 그린 선이 일말의 흔들림 조차 없이 선을 그리며 멈추어 섰다. 아직도 부드럽게 움직이는것만 같은 극한의 부드러움 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멈추어 서서 멈추어 섰는지 움직이고 있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하늘을 떠받친 검의 기세…… 비스듬한 검날의 경사가 '간극'을 그린 순간, 모든 것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세상은 문자 그대로 뒤집혀 버렸다. 검이 그어 내려진 순간, 시익 하고 무언가 끊어졌다. 기는 생生을 지향하다 사死의 심연으로 그 원천을 바꾸었고, 마나는 중립中立에서 모든 것 을 적대하였고, 에테르Ether는 구성을 저버리고 무너져버렸으며 영기靈氣는 그 흐릿함을 벗 어 던지고 현물화했다. 검극이 다시 선을 그리며 유려한 은빛의 불길을 피워올렸다. 은빛의 뇌전이 파지직 하고 타들어간 순간 모든 것은 은빛의 불꽃과 번개에 잠식되었고, 다시 역전 을 겪어 본래의 성질로 되돌아갔다. 파도와 같은 은빛의 섬광은 넘실거리며 검무의 끝을 선 언하게 위해 검날과 검극으로 뭉쳐들어왔다. 파하아아앙 ― ! 검은 부드러움을 저버리고 매서운 탄력과 함께 회초리처럼 휘어지듯 파항 하는 파공성을 퍼 뜨리며 공기를 퍼뜨렸다. 검극은 회초리처럼 뻗어나갔다가 시익 하고 공기를 갈라 터뜨리고 회수되었고 곧 검은 멈추었다. 불길과 뇌전이 뒤섞여 폭풍이 되어 전방으로 번져 나갔으나 나무나 수풀까지 퍼져나가지는 않았다. "아……" 영은 문득 제정신을 차렸다. 은청빛이 고고하게 서린 검은 매우 예리했고, 그는 이것을 시험 해 보고자 조용히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리오디안이 남긴 말이 뇌리에서 떠오르자 한숨을 토해내면서 조용히 걸어나왔다. 그리고 자를 만한 바위를 찾은 것은 한다경 지난 후 였다. 한다경쯤 지나자 사람 몸통을 세 개 합친 것 같은 커다란 바위가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곧 그는 자세를 잡고 눈을 스르륵 감았다. 그는 순간 자기를 잊고 내면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심연의 차가운 바닷속으로 침전해 들 어가는것만 같이…… 빛조차도 그 위세를 잃고 어둠에 동화되어 가는것만 같은 차갑고 예리 하게 날이 선 분위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핫!" 그가 짧은 기합을 퍼뜨림과 함께 은빛의 궤적이 쌔액 하고 채찍처럼 뻗어나갔다. 섬전이 되 어 튀어 나갔다가 다시 회수되어 온 것은 고작 1초의 반도 되지 않는 짧은 간극. 그는 기도 싣지 않고 다만 육체적인 힘만을 끌어내서 휘두른 것이다. 그는 조용히 검을 늘어뜨렸다. 그 리고 눈을 떴다. 눈에 보이는 것은 흠집도 나지 않은 바위. 그러나 그는 곧 감탄하는 얼굴로 자신이 검으로 긋고 지나간 부분을 쓰다듬었다. 눈에 기를 불어넣어 돋우자 순간 거의 미크론 단위라고 생 각될 정도의 얇은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검신은 얇긴 해도 1mm에서 2mm사이인 데 베고 지나간 자국은 미크론 단위…… 머리카락 한올 두께보다 약간 얇을 정도였다. 어떻 게 된것이냐 하면 그가 베고자 하는 의지를 표출한 순간 검은 그 예기를 극한까지 돋운 것 이다. 그것으로 이 검과 그가 하나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는 검을 바라보면서 검을 회수할 것에 대한 생각을 떠올려 집중하자 순간 검은 은청색의 빛으로 화해 어느새 그의 팔 안쪽으로 스며들어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그가 아직 인식 하지 못할 범위로 흡수된 것이다. 영혼의 내면으로…… 검 자체를 꺼낼수는 있겠지만 아직 영혼 그 자체에 대해서는 그 제어를 해낼수 없는 것이다. 그는 영기를 수련 한 것이 아니라 기를 수련했기 때문이다. 영기가 좀더 영혼 본연에 가까운 것이다. 유체 이탈 수련을 한다 해도 그것은 유체…… 에테르나 영기에 가까운 것이지 영혼 본질의 것은 아니다. "하아……" 영은 이제 완전히 그 꿈결같은 검무에서 벗어나 있었다. 무아지경에 들어가 자기 자신조차 잊고 검에 따라 검무를 춘 것 뿐이었다. 연검처럼 휘어질 것 같았지만 산악보다도 더 굳건 하고 곧은 무언가…… 영은 겉보기에는 매우 가냘프지만 그 마음은 예리하게 다듬어진 칼날 과 같았고 또 곧았다. 하지만 역시 이지러진 부분은 어쩔수 없으리라. 그러나 검에는 이지러 진 부분이 나타나지 않았다. "……음." 영은 눈을 감고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부드러운 바람이 그의 몸을 휘감아 돌고 지 나갔고, 곧 그는 온화한 미소를 떠올릴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지어보지 못한 미소였다. [7] 서륜은 조용히, 아주 조용히 출수할 준비를 했다. 아무리 현묘지경에 이른 자신이라 할지라 도 이녀석은 도저히 이겨낼 도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무공의 고하에 관계가 없는 것 이었기 때문이다. 환골탈태를 했어도 이것은 극복되지가 않았다. 서륜은 두 번의 환골탈태 후 더욱더 예민해진 후각을 끔찍할 정도로 잔혹하게 후벼파고 있는 이 향기에 단아한 검미 를 살짝 찌푸렸다. 긴 두 개의 나무막대. 이것이 지금 서륜이 사용하고 있는 무기였다. 사실 무공을 펼칠거라면 검이 더 좋겠으나 서륜은 이미 무기는 별로 상관 없었다. 얇디 얇은 나무막대 하나라도 그 의 손에서는 하늘을 쪼개는 칼로 탈바꿈 하는 것이다. 서륜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것을 살짝 마주친다음, 떨리는 손을 가다 듬으며 조용히 출수했다. 꼭 고수들이 뿜어내는 무형지 기無形之氣의 바다를 가르고 들어가듯 느릿하게 '젓가락'은 움직였다. 끔찍한 샹차이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고기요리가 젓가락에 살짝 쥐어졌다. 그의 표정은 무 덤덤했으나 지금이라도 식은땀을 흘리며 긴장의 내색이 역력해질 정도로 그는 자기제어의 평형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도산검림刀山劍林보다 지금 시식해야 할 요리가 훨씬 무서웠다. 왜냐하면 그는 얼큰한 것 좋아하고 뜨거운 국물을 즐겨하는 몸과 마음 모두 건강 한 의지의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영처럼 곤란을 겪었던 것이다. 중국 대륙으로 온것과 다름 없는 상황이었기에 차원이 동자로써 그들은 음식에 적응해야 했다. 그런 고로 아스타르에 떨어진 설원은 운이 좋았다 고 할수 있었다. 알다시피 중화요리라는 것은 기름기가 진하고 불이 닿지 않는 요리가 거의 없다. 그리고 향채가 들어가기 때문에 매우 향기가 진했다. 그래서 기름기를 씻어내려줄 진 한 차와 독한 술을 식사때 함께 마셨다. 죽엽청은 명주名酒다. 흔히 등장해서 명주가 아닌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명주다. 고급 주 루라서 금방 맛볼수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틀림없는 명주다. 성인이서 소주를 병나발로 분 적도 있는 서륜이었지만, 환골탈태를 한 육신으로도 30도를 넘는 술을 많이 마시는건 내력 의 활용을 필요로 했다. 역시 알코올은 심하면 독이 되지만 그래도 평상시에는 그저 효소이 기 때문에 육신은 그것을 독으로 인지하지 않는 것이었다. 환골탈태 한 육신의 좋은 점은 과음해도 절대 숙취를 겪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륜은 그러나 술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었다. 간신히 그 향채 냄새와 짙은 기름의 냄새를 견딘 서륜은 입 에 넣고 씹으면서 죽엽청을 가볍게 입 안에 부었다. '특선' 중화요리라고 불러줘도 모자라지 않을 진한 기름기와 향채 냄새로 뒤범벅된 음식은 그래도 이 근방에서는 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만큼 재료나 양념이 내는 맛이 진할수도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런고로…… 서륜 은 먹으면서도 죽을 맛이었다. 동석한 이들은 잘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데 비하여 서륜 은 지금 오만상을 쓰고 있어도 속이 안풀릴 지경인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그는 예전 직업 의 연기력을 총동원하여 깨작깨작 먹으면서도 그 깨작깨작을 은폐하여 적당한 양을 먹는 정 도로 위장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무공 수련보다 이게 더 힘들어.' 서륜은 얼핏 표정에 낭패를 비치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접시를 간신히 다 비운 후에야 죽엽청을 조용히 마시면서 기력을 이용해 기름기에 양기를 불어넣어 조금씩 기화氣 化시켜서 배출했다. 그 기름은 음식냄새와 섞여서 금방 흩어져버렸고, 서륜은 그제야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주정酒精을 조금씩 모아서 강제 정화시키기 시작한 그는 금방 아주 약간 취한 술이 깼고, 그제야 간신히 육체의 제어를 끝마쳤다. 특별히 적은 없는 서륜이었지만 그래도 무림은 방심할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가뜩이나 감시 하는 놈들이 철철 넘치는데 술에 취해 좋을 것은 없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자신을 관찰하 고 있을 뿐이지(눈빛에는 어처구니 없게도 존경이라든가 감탄도 섞여 있는 경우가 있었다) 살기나 예기 따위는 감각을 연마하고 잘 갈아서 탐색해봐도 느껴지지 않았다. 서륜은 이 이 상한 관찰자들에 대해 신기해 하면서도 또 그 출신이 어디인지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중 하나에게 조심스럽게 전음을 날려보았다. 어기전성御氣傳聲인 데다가 성대의 소리 자체를 공기중에서 본떠 전송시킨 것이었기에 어느 누구도 그가 기를 운용했다는 사실 조차 알아채지 못하였다. 서륜은 존대어에 예기가 섞인 어투로 전음을 날려 보냈지만 그의 원래 성격에 기인한 말투는 절대 아니었다. 그는 원래 별로 존대어를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싸가지가 없냐면 그게 아니라 쓸데없이 같은 연배에서 격식을 차리는 일이 없다는 뜻이었 다. 그런데 이놈의 무림은 그게 아니라 예절 정도가 심각하리만큼 끔찍했다. 다행히 그도 무협지를 탐독하는데 있어서는 열과 성을 다 올릴 정도로 집착한 적이 있었기 에 몇가지 정도의 상식은 알고 있었다. 뭐 가령 첫째로 숙지한 것은 무림에서는 여자, 노인, 어린아이는 무슨짓을 할지 모른다…… 는 것인데 그것은 그가 인지하고 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출도 하고 나서 맨 처음 직격당한 일이 바로 여자들에게 시달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전에도 상당한 미남이었는데 그놈의 사황심결을 완성하는 바람에 환골탈태 두 번을 겪자 마자 엄청난 미인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신들은 왜 저를 감시하고 있습니까?」 상대의 기척이 살짝 움찔 거렸지만 그와 동석하고 있는 이 실력모자라고 경계성 별로 없는 바보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서륜은 속으로만 혀를 차고는 조용히 투박한 듯 하면서도 산악같은 고고한 기상이 서린…… 대검이면서도 바람의 향기가 나는 그 검을 슬쩍 기울이고 검병을 천천히 쥐었다. 그런데 상대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았다. 「과연 사신검협四神劍俠이시군요. 저희는 다만 지시를 받았을 뿐입니다. 그럼 일행분들이 잠들면 객잔 지붕에서 뵙겠습니다.」 곧 기척들은 스르르 하고 물러났는데 서륜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말투를 보면 수하중에 서도 그렇게 직위가 높은 자들은 아닌데 저정도의 실력이라니. 저자들중 한명만 이곳에 떨 어져도 자신과 동석하고 있는 초출들중 단 한명을 제외한 바보들은 한다경도 안되어서 참살 될 것이다. 내공도 조금 닦고 무공도 조금 익어서 기고만장해 하는 모습은 좀 고깝지만 그 래도 측은지심에 데리고 다니고 있는 것들인데 고작 저 한명과 상대해도 단숨에 죽어나가게 될 것이다. 한다경도 아까웠다. 2분이면 충분했다. 어쩌면 단 몇초식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굉장한 훈련정도인데…… 어디일까? 이정도라면 무림맹? 마교? 아니면…… 천류세가?' 마지막 단체를 읊조린 그는 씁쓸한 미소를 띄웠다. 솔직히 첫 번째랑 두 번째 빼고는 별로 인연이 없었다. 무림맹에서 쓰레기로 취급되는 놈들이 깐죽거리며 신경을 긁자 때려눕히고 나중에 또 공격해오고 집요하게 굴자 모조리 싹 쓸어버린 것 외엔 할 일이 없었다. 싹 쓸어 버린다는 것은 죽였다는 말과 뜻이 일맥상통했다. 마교의 경우는 악연은 아니었다. 그쪽은 칼과 같은 절도를 보여주었는데 무림맹보다 훨씬 나은게 아무래도 이 삼파전은 마교나 천류 세가쪽이 유리할 듯 했다. 천류세가의 진영도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교에 비해 오히려 나은 면도 있어 보였다. 셋다 세력이 비슷비슷하다 보니…… 무림맹의 경우는 사실 이전에 박살나버린 문파들만 완 벽하게 재건 되었으면 좀 세력다툼으로 투닥거리기는 할지라도 힘만으로는 마교와 천류세가 의 합한 힘보다 약간 떨어지는 거대한 덩치로 두 단체를 짓눌렀을 터였다. 마교쪽도 피해가 커서 지금 복구중인건 마찬가지였지만. 예전의 영광을 다 회복한 세 단체가 싸운다면 또 역시 비슷하니까…… 지금 삼파전은 규모 만 줄어들었다 뿐이지 전보다 더 치열한 데가 있었다. 혈천교는 완전 박살나서 우습게도 천 류세가가 아니라 무림맹으로 흡수되었다. 천류세가와 마교가 합작했으니 파편이라도 무림맹 에 달라 붙어야 좀더 낫겠지만…… 복수라는 것은 매우 달콤한 열매라서 지금까지 피로 피 를 씻는 관계였다 하더라도 금방 동료가 될 수 있었다. 이 무림이라는 곳의 생리는 원래가 그렇다. 무림에서는 강한자와 승자의 뜻이 바로 정의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서륜은 좀 찝찝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기 자신도 피에 손을 담갔기 때문이다. 마음은 칼날같이 정련되어 별로 죄책감따위는 없었다. 그게 좀더 찝찝하지만 하지 만…… 뭐 사람 죽여놓고 광기어린 미소를 짓고 피를 마셔대는 것보다야 죽이고 약간 양심 가책 느끼고 넘어가는 쪽이 훨씬 정상 아닌가? 어쨌든 서륜은 아직 죽이는데 대해 무덤덤하 지는 않았다. 죽여야겠다고 생각하면 손속에 망설임이란 없었지만.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서륜은 자신의 변화에 대해 탐탁치 않음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것도 그렇다. 그는 아 무리 연예인이니 뭐니 해도 민간인이었단 말이다. 손에 피묻히고 살아갔던 영과는 달리 그 는 확실한 민간인이었다. '뭐 어쨌든…… 만나서 물어보면 되겠지. 안되면 족쳐서 캐내면 될 일이고……' 서륜의 사고방식은 아무래도 상당히 과격화된 모양이었다. 서륜 스스로도 그것을 인지했는 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미약하게 흘리고 말았다. 뭐 저 둔탱이들은 웃고 떠드느라 전혀 눈치채질 못했지만. 서륜은 조용히 주변의 기를 뒤흔들어놓았다. 무극기가 주변의 기를 뒤흔들자 난류가 휘말리 며 방 안의 물건이 가볍게 흔들렸다. 난류는 곧 그의 의지에 따라 어풍의 구결로 통제되어 부드럽게 그를 휘감아 안았고, 곧 음파동을 잡아 묶으면서, 그는 조심스럽게 창 밖으로 몸을 빼 냈다. 부드러운 바람에 휘감긴채 소리없이 떠오른 그는 곧 객잔의 지붕 ― 진흙을 구워내서 만든 기와 위로 가볍게 착지했다. 짐은 무겁기 그지없었지만 경신술輕身術이란 혈맥이 위치하고 있는 신체 뿐만 아니라 물질 또한 가볍게 할수 있는 것을 통틀어 말함이기에 소리는 나지 않았다. 무림인이라면 짐이 많은 경우가 있거나 무기가 무거운 경우가 있는데 경신술을 전개해도 효 과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기에 오랜기간 동안 무림인들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신체가 아 닌 다른 물체도 가볍게 할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청심 문은 고대 무림에서 그것을 선결 과제로 삼았을 때 이미 무형검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았 으니, 확실히 청심문의 무공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수 있다. 실제로 무 한자가 만들어낸 것이니 그 수준이 어찌 낮으랴? 등에 맨 대검은 바람의 향기를 은은하게 풍길 뿐이었다. 확실히 대검이라면 투박하다는 소 리를 듣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리 아름다워서 일단 크기가 크면 뭔가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뭔가 현기가 어려있는 청아한 검신은 그 생각을 싹 씻어준다. 고아하고 곧은 검신…… 산악과 같으면서도 또 그 기세를 보면 부드러운 미풍과 같은 느낌 을 주었다. 휘두르면 광풍狂風으로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낼것만 같은 파괴력이 내재되어 있 으면서도 미풍이 잔잔히 흐르는 그런 아름다움이 실린 검. 신검神劍이라 칭한다 하더라도 불만을 표시할 자는 없을 것이다. 그는 갑자기 오른손을 대검의 손잡이로 가져갔다가 거칠게 뽑아내며 왼손까지 더해 쌍수로 단단히 틀어 쥔 뒤 거칠게 휘둘렀다. 공기를 거칠게 찢어발기는 파공음과 함께 미쳐버린 바 람의 소용돌이가 객잔 위를 몰아쳤다. 그러나 아무 반응도 없다. 그는 고개를 갸웃 거리다가 다시 대검을 갈무리했다. 그 순간 소리없이 인기척이 생성되었고, 서륜은 피식 웃었다. 바람에 휘말려서 인지 복면이 상당히 흐트러진 인물이 올라와 서 있었다. 그 인물은 아무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대지를 쪼갤 듯 선연한 월광은 시리디 시렸고 공기는 차갑게 가라앉아 긴장을 더한다. '제대로 된 검풍劍風은 아니라고 해도 단지 검풍을 넓혀 권경을 뿌렸는데 복면만 조금 흐트 러진 정도라…… 저정도면 거의 화경? 화경을 수하로 부리는 곳이라니! 화경의 고수라면 정 도건 마도건 대단한 대접을 받게 되는데 이런 일을 하다니?' "따라 오십시오." 그는 아주 부드럽게 스르르르 하고 뒤로 미끄러져 가더니 객잔 지붕 아래로 휙 사라져 버렸 다. 기척만이 느껴지는 가운데 서륜은 잠시 고민했다. 아무리 자신이 현경의 고수. 그것도 거의 끝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위험할수 있는데…… 아무래도 이 경우에는 조심하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가볍게 기와 한 장을 굴렀다. 그리고 주변의 기를 '가르'면서 그 구간으로 몸을 던졌다. 기와 공기의 진공을 만든 후 자신의 몸을 공기와 기의 구간으로 감아 안고 비어버린 공간으 로 내달리는 것이다. 신법을 운용하면서 내달리자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공기의 방어벽 위 에 또 진공의 방어벽을 친 셈이니까). 그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쉽게 말해서 타인이 쫓아옴을 허가치 않을 정도로 빠르게)해서 저 먼 곳으로 멀어진 상대의 뒤를 간단하게 쫓을수 있었다. 전력을 다해 달린다면 그를 쫓 아올 존재는 없을 것이다. 음속은 되지 않아도 음속에 거의 근접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공기가 휙 하고 찢어졌을 뿐인데 어느새 그는 안내인(?)의 뒤에 서 있었다. 안내인은 꿈틀 하긴 했지만 다시 신법을 계속적으로 전개하여 빠르게 한 주루 앞에 섰다. 도시는 끔찍할 정도로 넓어서 짧은 시간이라도 이렇게 빠르게 움직였지만 아직 끝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안내인은 한 주루로 스며들 듯 흘러들어갔고, 서륜은 입구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청아루淸雅樓……?' 서륜은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다. 청아루라…… 누각이긴 한데 5층이나 되어서 이 시대에는 보기 드문 건축물이었다. 객잔을 겸하는 것 같았다. 입구로 들어선 서륜은 깜짝 놀랐다. 제 법 훌륭해 보이기는 했지만 내면은 더욱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놓여진 도자기 같은 것도 굉장한 고급품들 뿐이었고 벽에 걸린 시나 서화, 그림은 서륜의 부족한 안목으로도 절로 감탄이 나오는, 현기가 서려있는 솜씨였다. 서륜은 조심스럽게 걸음 을 옮겼다. 2층으로 올라가는 세 개의 계단중 중앙계단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아주 가벼운 옷차림을 한 미녀였는데 새하얀 피부에 흑발을 장신구로 틀어 올린채 눈을 살 짝 내리 깔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약간 푸른 빛을 띈 새하얀 옷은 소매가 상당히 크고 바닥에 끌릴 것 같아서 서륜으로써는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무공을 익힌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시지요. 만나뵈어 영광입니다. 대협. 그분은 4층에 계십니다." 그녀는 옥음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사뿐사뿐 계단을 올라 걷기 시작했다. 무공은 익히지 않 은 것 같은데 심법은 어느정도 익혔는지 몸은 지나치리만큼 깨끗했다. 서륜은 대체 무슨 심 법인지 알아보고자 했지만 그냥 일반 심법 변형이라고 생각되었을 따름이었다. 상당히 훌륭 한 것이긴 했지만 이 너무 효과가 지나쳐서 사람을 분노하게 만드는 사황태극심결에는 미치 지 못하였다. 서륜은 이곳이 보통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그냥 주루에서 고용한 고수치고 는 지나치게 강력한 이들이 많았는데 하나같이 같은 심법을 익히고 있었다. 서륜은 민감한 기파동 감지 능력을 더 예민하게 돋우면서 4층이라고 생각되는 곳의 기파동을 살펴봤다. 그 리고 서륜의 얼굴은 무심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에서 심각한 충격을 받은 얼굴로 변하고 말았 다. 4층에…… 자신과 같은 고수가 있었다. 그 역시 잠깐 움찔 했지만 곧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그것은 서륜도 마찬가지였다. 화경 의 극에 이른 인물 한명이 더 있었지만 서륜으로써는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드물게 평정심 이 깨지며 약간의 다급함이 자리잡았지만 금방 그는 평정심을 회복했다. 계단을 조심스럽게 걸어올라가며 서륜은 조금 감탄했다. 왜냐하면 이 건축 방식은 현대의 그것에 결코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벽을 살짝 매만져 보고 서륜은 깜짝 놀랐다. 기를 살짝 투과시켜 보았는데 겉면은 진흙을 이용한 것이었지만 속은 석회였기 때문이다. 석회석, 금속가루 등을 이용해 만든…… '시멘트? 이곳에도 시멘트로 건축하는 방식이 있었나?' 서륜은 혼란스러워진 정신을 가다듬었다. 점점 알면 알수록 또 모르는 사실이 많아진다. 이 곳의 주인이 대체 누구이기에…… 석회석이라는 것은 이 나라에서는 별로 그렇게 효용이 크 지 않았다. 가끔 건축할 때 섞긴 해도 이렇게 시멘트나 콘크리트 방식으로 만들어내지는 않 는다. 아니, 할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시멘트나 콘크리트는 문명이 개방되고도 제법 시간이 흘러야 만들어 낼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알수 없어…… 어쨌든 대단하긴 하군. 이런 규모라니 말이야. 어쩐지 하중을 잘 견딘다고 생각했더니 나무가 아니라 철근을 많이 사용한 거였어. 이런 것은 건축할 때 눈에 잘 띌텐 데…… 어떻게 한거지?' 서륜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았지만 역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이건 직접 질문해 봐야 알 테지만 그는 굳이 질문할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어지럽긴 하지만 묻어두면 그만인 문 제…… 그래도 역시 신기했다. 이 시대에 철근으로 건축할만한 재주가 있었나? 간혹 벽돌도 보였는데 그래서 그는 더 놀랐다. '이곳은 벽돌을 쓰지 않아!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그전에도 썼 었나? 유대인들은 썼다고 했는데…… 하지만 이곳엔 벽돌 제조법이 알려지지 않았어! 이건 …… 대체가.' 정신은 더욱더 혼잡해져갔다. 이래서야 뭐가 제대로 될 수 없겠다는 생각에 혼란을 유발하 는 생각을 지우고 그는 걸음을 옮겼다. 계단 역시 이 시대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 었다. 나무 틀로 짜 맞춘게 아니었다. 마치 리벳처럼 돌을 잘라서(그 두께는 5cm쯤 되는 것 같다) 틀 위에 맞춘 것이다. 붙인 것은 제대로 붙이진 않은 것 같지만 완벽하게 잘 다듬어 서 붙였기에 떨어지진 않을 듯 했다. 마침내 돌계단을 올라(계단 전부를, 리벳 방식이라고 해도 돌로 만들다니 철근방식이 아니 었으면 하중에 무너질 미친 짓이었다) 4층에 도착하자 그를 4층까지 안내한 그녀는 옆으로 살짝 비키면서 입을 열었다. "청죽실靑竹室로……" 정면에 보이는 여러개의 방 중에서 한 개의 방에 푸른 염료로 청죽실이라고 쓰여져 있었는 데 그것도 매우 깔끔한 솜씨였다. 이곳의 구조는 특이해서 커다란 사각형의 복도와 그 안에 작은 사각형의 복도를 설치하고 복도로 각기 그 선분의 중점을 이어놓았다. 다시말해 안쪽 에 네 개의 방이 있고 바깥쪽에도 네 개의 방이 있다는 소리였다. 안쪽은 사군자인 것 같은 데 바깥쪽은…… "?!" '어째서 기린麒麟이 아니라 현무玄武지? 여긴 중국과 매우 흡사해서 남봉황南鳳凰 북기린北 麒麟이라고 하는데? 북현무北玄武 남주작南朱鵲이라니! 이상해…… 이상하다구!' 뭔가 이상한 예감을 받은 그는 조심스럽게 안쪽의 사각형의 한쪽에 위치한 청죽실을 열었 다. 안쪽의 사각형이라 해도 상당히 넓었는데 총 여덟 개의 방에서 이 주루에서 알아주는 기녀들을 나누어 들이는 것 같았다. 여긴 홍루가 아니라 청루였기 때문에…… 어쨌든 서륜 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청죽실의 문을 바라보았다. 파여진 손잡이를 잡은 그는 조심스 럽게 옆으로 밀었다. 스르륵 하고 고급의 나무가 마찰하면서 실내의 정경이 드러났다. 안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벽에 걸린 그림이나 시, 서화등은 대부분 대나무에 관계된 것이었 다. 사군자중 대나무는 부러질 지언정 휘어지지 않는다(註 : 대나무는 바람이 심하게 불면 부드럽게 휘어지면서 꺾이지 않기 위해 그 충격을 완화한다. 꺾일 경우는 지나치게 수령이 길어서 굳은 대나무일 뿐이다)고 해서 충절을 의미하는지라 연대순서로 적어놓았다고 해도 무림인과는 무관한 시가가 많았다. 보통 대나무는 나라에 대한 충정을 노래하는 시가에 들 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시도 그렇지만 그림 역시 당대에서 알아주는 이들이 그린 것들 뿐이었다. 방 안의 모든 것 은 푸르르고 단단한 대나무로 치장한 것들 뿐…… 그러나 역시 이것도 보통 사람이 만든 것 은 아니었고 일평생동안 배우고 익히고 공부한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것들 같았 다. 물건에서 현기가 느껴진달까? '대단하군……' 침대는 대나무 살과 부드러운 비단을 이용해서 치장한 것이고 술잔마저도 대나무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상스럽게 아름다워 보였다. 청아한 향기가 방 안을 돌아다니는데 대나무 본 연의 향기지 다른 어떤 인공적 수단의 그것은 아니었다. 대나무를 이용해 만든 것들만 놓여 져 있어서 꼭 사람이 만들어낸 건물의 방 안이 아니라 자연의 녹음, 대나무의 숲속에 들어 와 있는것만 같았다. "……멋지군."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군요. 이 대협." 청아하고 조용한, 그러면서도 매끄러운 목소리가 은은하게 그의 고막을 흔들었다. 음공도 아 무것도 운용하지 않았음에도 서륜은 그 목소리로 인해 마음이 흔들림을 느꼈다. 지나치게 아름답고 완벽한 목소리. 가느다란 느낌이면서도 맑고 깨끗하여 듣는 이가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미성. 서륜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발을 이용해서 조심스럽게 방문 을 다시 닫았다. 탁 하고 문이 닫히자 마자 서륜은 조용히 자연체自然體의 형세를 취했다. "굳이 그렇게 경계하실 필요 없어요. 우린 나쁜 의도로 당신의 걸음을 청한 것이 아니니까." "……" 다시 심장박동수가 빨라진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호적수라서…… 그런 것일까? 솔직히 현경이라도 격이 떨어지는 놈들은 열명 이상 상대해서 죽여버릴수도 있는 신위를 지닌 이가 서륜이건만 이번 상대에게는 두려움까지 느껴진다. 정말…… 두렵다. 그러나 상대는 자신을 두려워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는 조금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갔다. 그가 일반 무림인하고는 전혀 틀린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 대방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면 바로 무기부터 뽑고 보는 것이 무림인의 생리니까. "앉으시지요." "……음." '젠장. 한국 생각나잖아? 여긴 정말…… 이상해.' 서륜은 눈을 살짝 찌푸리고는 알고 싶은 것을 질문하기로 했다. 그 전에 충고를 따라야지. 그는 조용히 탁자 옆에 놓인 가볍고 튼튼하게 만든 대나무 의자에 앉았다. 상대방은 특이한 휘장을 치고 있어서 그의 눈으로도 뚫어보기가 힘들었다. 상대방 두명의 실루엣이 미약하게 나마 보일 뿐…… 138. 영법靈法. 그리고 염술念術. 1. 바인은 조용히 허공의 쌍검중 허의 검을 들어서 가볍게 휘둘러 보았다. 공기가 예리하게 끊 겨가나는 느낌이 그의 감각에 잡혔다. 그리고 나서 고개를 갸웃거린 그는 마치 펜서Fencer 같은 자세를 취해보고는 멋지게 전질보를 짚어 검을 공기중으로 찔러넣었다. 시익 하는 소 리와 함께 공기가 간단하게 꿰뚫렸다. 휴이즈의 눈에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다가 아라테온 역시 잔상 외엔 보지 못했다. 흔들림 한점 없고 찌르고 난 뒤 잔심殘心 역시 존재 하지 않는 멋진 찌르기. 호흡, 자세, 리듬 모든 것이 하나로 일치된 찌르기는 말 그대로 일 격필살! 그야말로 찌르기만 10년도 넘게 사용해온 펜서 같은 찌르기였다. 휴이즈는 문득 이 상한 점을 발견했다. 사실 쌍검을 쓰던 바인의 검술은 마치 두 개의 독립적인 검술을 쓰는 사람 두명이서 수만번을 정밀하게 연습 한 듯 연계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빈틈없이, 톱니바 퀴 맞물리듯 몰아붙이는 종류의 것이었고 또한 그것 역시 쌍검의 극이라 불러줘도 이상이 없을 정도의 것이다. 그런데도 바인은 그 쌍검으로 사용하던 허검만을 오른손에 쥐고는 마치 에스터크나 레이피 어를 들고 휘두르거나 찌르는 세검술, 다시 말해 펜서들의 검술을 완벽하게 펼쳐보이는게 아닌가? 그것은 이미 신기神技라고 불러줘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완숙해 있었다. 아니 완숙 정도가 아니라 이건 아예 태어났을때부터 펜서로써 검을 휘두르고 찔러 온 것 같은 찌르기 다. 흠잡을데 없는 찌르기인 것이다. 인간이 저렇게 다양한 검술을 저 경지까지 연마 할수 있다니. 그래도 역시 바인은 쌍검술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의 성격 때문일까? 우일검과 주월검. 합쳐서 우주조화일월신검류는 정말 정묘한 톱니바퀴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갑자기 일탈하기도 하고…… 형식과 무형식을 자유롭게 오간달까? 하지만 형식, 무형식을 따지는 것 자체가 검을 검로와 생각에 얽어 매는 일인 것을. 바인은 아직 형식과 무형식 자체에서 벗어날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춤추듯 뒤로 물러나며 시익 하고 반원을 그리지만 그것은 베기가 아니라 에스터크의 둔한 검면으로 상대방의 검을 치고 물러나게 만드는 종류의 자세였다. 그리고 다시 찌르기 수십 번이 파파팟 하고 뻗어나가 공중을 꿰뚫었다.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예리하고 서늘한 찌르 기들. 완벽에 가깝게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그의 다리는 부드럽게, 마치 술에 취한 듯 흐느적 거리면서도 미끄러지듯 움직이는게 아닌가? 그는 검술을 연무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는 멋 진 찌르기와 베기를 춤을 추어 나가듯 뻗어냈다. 신들린 듯 회색의 검영들이 뻗어나가 공중 을 수놓는다. 그것을 보면서 아라테온은 점점 넋이 나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검무이긴 하 지만 진득한 살기를 머금고 있어서 위험해 보인다. 공기중의 먼지 하나하나를 찌를 듯 예리 하고 흔들림없는 찌르기. 탄력있으면서도 매끄러운 찌르기들. 전부 다 일격필살이었다. 기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저정도 수준의 검술이라니. 마법사가 아니라 검사로 전직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바인은 무심한 눈 으로 정면을 응시하다가 조용히 검을 늘어뜨렸다. 그리고 다시 부드럽게 감아 쥐더니 몸을 가볍게 회전시켰다. 검은 힘없이 바닥에 끌릴 듯 말 듯 흘러가다가 갑자기 바인이 몸을 탄 력있게 회전시키며 검을 뿌리자 촤아아악 하고 공기를 갈라냈다. 부드럽게 그어 올라가다가 쫘악 하고 뿌려진 검은 마치 채찍처럼 예리하게 공기를 끊었다. 멋진 베기. 독사가 멈추어 있다가 앞으로 튕겨 나가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바인은 다시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그 여 력을 해소한 뒤 다리를 굳건히 바닥에 대었다. 흰 로브를 입고 있으면서도 그는 검을 뻗어 내고 회수하는게 자유로웠다. 곧 그는 허검을 쌍수로 쥐어보였다. 놀랍게도 허검은 갑자기 약간 두꺼워지고 좀더 길어지 더니 스윽 하고 휘어져서 그 형태가 매우 특이한, 원래 크기의 1.2배쯤 되어보이는 예도銳刀 가 되는게 아닌가? 바인은 그것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내 생각이 맞았군. 하고 말이다. '역시…… 내면의 검이라는 것인가. 의지를 통해 형태가 바뀐다는…… 그렇다면 그 길이나 마찰계수 따위도 자유자재라는 것인데…… 내 의지가 굳건해질수록 그 예리함도 달라진다는 것…… 영혼 자체의 다기드를 파괴하지 않는 한 절대 부러지지 않는 검은…… 확실히 쓸모 가 있겠어.' 그는 양손으로 약간 더 길어진 손잡이를 단단히 틀어쥔다음 회전하기 시작했다. 몸을 회전 시키면서 검 역시 회전시키는 것이다. 양날의 소검과 장검 사이 길이였던 허검이 예도 형태 로 변하면서 한쪽 날이 접혀들어가고 약간 뭉툭해졌지만 그걸로도 반대쪽 날은 더 예리하게 느껴졌다. 바인은 예도 형태로 변한 허검을 들고 연무를 하기 시작했다. 바인이 배웠던 검술 중 또 하나인 신라의 황창랑무로 부드러우면서도 확실히 예리한 검술이다. 그 자체로는 실 용성이 약간 떨어지기 때문에 그는 우주조화일월신검류의 우일검과 주월검을 익혀나가면서 그 자체를 수정해서 익혀두었다. 여러 가지 검술을 배워놓고 나중에 쌍검술을 택한 그였기 때문에 다른 검술도 매우 뛰어났다. 원래 그는 일도류를 썼으니까. 부드럽게 원을 그리는 검술. 황창랑무 자체를 유검술로 바꿔버렸기 때문에 수백개의 원이 겹쳐지면서 그 궤도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지 에 붙어있음에도 비어있는 곳이 없다니! 원을 그리는 검은 완벽에 가까운 궤도, 성상의 회 전같은 느낌을 주었다. 칼끝이 닿는 범위가 곧 데드라인Deadline이었다. 그 궤적 안에 들어 온 자라면 어느 누구도 살아나갈수 없는…… 그 연무를 보면서 자기 자신을 그 안에 끼워넣 어 보았던 휴이즈나 아라테온도 식은땀을 흘리며 몰입해 있었다. 검무는 부드러웠지만 그 회전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스르르릉 하는 기음이 공기를 쪼개어 나간다. 점점 바람이 그 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휴이즈는 에테르 윙Ether Wing을 사용해서 휘두르면서도 그 궤적 안에서 쩔쩔매야 했고 아 라테온 역시 검을 쓰면서 상대해 보지만 이미 수십차례는 죽어버린 상태였다. 이미지 투영 만으로도 그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피할수 없는 검. 예도가 마침내 하늘 위를 겨누고 뚝 멎었다. 그리고 스르릉 하는 기음이 울려퍼졌다. 예도가 어느새 그어내려졌 고 예리하게 끊겨나간 공기의 흐름이 팔랑거리며 주변을 몰아쳤다. 얼마나 빨랐는지 검에서 소리가 난게 아니라 팔에 부딪힌 공기에서 파앙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조용히 검을 내렸다가 원을 그리며 거두었다. 음으로 뻗어 양으로 베고 음으로 거둔다는 묘리를 그는 확 실히 시행한 것이다. 검을 거두었는지 조차 모르게 검무는 끝났다. 곧 바인은 그 예도 형태로 변한 허검을 다시 본래 형태로 돌리고는 곧 다른 손에서 공검까 지 소환해냈다. 회색 빛줄기가 똑같은 모습에 광택만 다른 형태의 검을 이루자 그는 두 검 을 역수로 쥐고는 부드럽게 염을 가했다. 검은 간단하게 시미터나 다마스커스 비슷한 형태 로 변형되었고 곧 그는 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휘어진 도刀는 그가 스냅을 주며 탄력있게 뿜어내는 순간 교차되면서 지극히 동적이면서도 강렬한 춤의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뒤로 돌아가기도 하고 직선으로 치기도 하면서 도는 연신 교차되며 바인이 설정한 듯한 가상의 대상을 난도질 해댔고 그 여러명이 동시에 베는 듯한, 도저히 동방검이나 서방의 어떤 검술 도 아닌…… 사막에서 사용하는 도검술 같은 그 죽음의 춤은 휴이즈나 아라테온의 상념 속 에서 깨어지지 않는 철벽이 되었다. "음. 이제 몸도 다 회복된 것 같고…… 풀리기도 다 풀렸는데……" 바인이 마지막에 도검을 교차시킨 다음 다시 허공검의 본래 형태로 되돌려서 다시 영혼 내 부로 되돌리자 다들 제정신을 차렸다.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관 뒤 쪽 뜰에서 검술을 연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길을 가다가 입을 헤벌레 벌린채 바인의 검무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여관의 하인들도 나와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다지 큰 규 모의 마을은 아니고 슬슬 열려서 발전 되어 가는 크기다. 하긴 '있었던' 후작의 영지 근처 마을이니 연결로가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물도 제법 풍족하고 비옥도가 좀 지나쳐서 땅이 끈적거리는 느낌을 주는 땅에 농사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풍작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금방 후작 영지 못지 않게 발전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발전의 원천인 후작 영지가 파괴되 었으니…… 바인은 조용히 풀어놓았던 블래스팅 팡Blasting Fang을 검집에서 뽑아보았다. 서슬푸른 소 리와 함께 맑은 검날이 드러났다. 바인은 폼멜을 돌려서 뽑고 가드 부분의 멈춤쇠를 누른다 음 당겼다. 그러자 덜컥 하고 텅 빈 탄창(?)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는 품 안의 스페이스 백 팩에서 앰플 주머니를 찾아 꺼낸다음 20개의 유리 앰플들을 꺼냈다. 그리고 스페이스 백팩 에서 마치 탄들을 작은 가죽 고리에 끼워놓고 쓸수 있는 허리띠를 꺼냈다. 일단 20여개 정 도의 앰플을 쥔 바인은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 앰플들은 겉은 탄소강화 크리스탈이고 속은 액체금속 이긴 해도 마나메탈인 '엠티움 Emptyum'이 채워져 있었다. 엠티움을 특수처리하면 마법을 봉封하고 특수매체에 그 힘만을 전달해서 매개성과 그 파장을 변전기가 전압을 변화시키듯 마음대로 그 이미지를 다르게 염 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블래스팅 팡. 드래곤들의 전유물중의 하나고 엘더 휴 먼Elder Human들이 남긴 유물들중에서도 간혹 있었지만 사실 엘더 휴먼이나 드래곤이 아 닌 이상 정말 비효율적인 물건이다. 왜냐하면 마법사가 염을 다루는 방식으로 마법적 힘을 검신에 불어 넣어야 하는데 아무리 대단하여도 검사가 염을 제대로 다룰수 있을리 없지 않은가? 에너지의 조절이란 기와는 달 라서 마나적힘인 것이다. 그런 고로 기를 다룰수 없는 마법사이면서도 검술을 어느 정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써 왔는데 바인같은 경우 검술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필적하고 있고(아 직 형식과 무형식이라는 이름 자체의 틀을 벗지는 못했지만) 또 마법 역시 9서클 마스터인 것이다. 블래스팅 팡을 미뉴엘이 건네 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앰플을 쥔 바인은 시동어를 외워가면서 6서클 주문들을 마나 메탈에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원래 고대에 블래스팅 팡의 앰플에 마법을 새길때는 화염계와 전격계가 대부분이었다. 간혹 정신계를 불어넣기도 했지만 역시 화염폭발주문이 훨씬 나은 것이다. 전격계 주문의 경우 방아쇠처럼 생긴 에너지 계기판에 손가락을 얹고 염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조절해서 마치 검 강처럼 유도전류나 전위를 변경할수 있었다. 화염폭발 주문도 마찬가지로 검극에 화염을 모아들여서 적의 몸 안에 꽂아넣고 폭발시킬 수 도 있는 것이다. 빙계 주문도 사용 가능하지만 원래 빙계 마법의 효과나 범위를 따져볼 때 부여하는건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는게 좋다. 정신계 주문도 몸 안에서 직접 터뜨리 면 더 효율을 볼수 있으나 이칭Itching같은 주문이 아니라면 쓸모도 없다. 그래서 바인은 화 염폭발 주문과 전격계 주문, 혹은 광계 주문을 인첸트Enchant 하고 있었다. 바인은 인첸터 도 아니었지만 저렇게 간단하게 앰플에 주문을 부여하는 것이다. 앰플에 가득차 있는 수은같은 액체들이 푸른색, 붉은색으로 물들어갔고 바인은 그 앰플들 여섯 개를 탄창에 채워 넣었다. 세 개는 화염폭발 주문이고 세 개는 전격계였다. 그는 일도 류도 익숙했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쓸 생각이었다. 나머지 앰플들은 허리띠 비슷한 그 가죽띠에 다 꽂아넣었다. 총 14개를 꽂을수 있었는데 스무개를 꺼냈기 때문에 딱 들어 맞았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블래스팅 팡이 다시 원래 형태를 찾았고 바인은 블래스팅 팡의 손잡이를 감아 쥐고는 멋지게 공기를 한 번 베어보았다. "좋군." 바인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예리하게 공기가 끊어져 나가는 감각을 되살려 보다가 조심스 럽게 탄창의 구동부를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페시온Pecion의 핀 비슷한 것이 달려 있었는데 유리 앰플의 몸 옆에 난 작은 홈에 그것을 찔러넣어서 마법적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이다. 핀이라고 해도 마나메탈중 아다만티움보다 마법적 전달성은 더 월등한 페시온이었기 때문에 핀이라 하더라도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건 손가락 굵기만한 아다만티움 보다 더 훨신 효율이 높았다. 7서클 주문이라면 위험하겠지만 대부분 5서클에서 6서클 주문들이었기 때문에 무리 는 없을 것이다. '저번 싸움에 이걸 미리 사용했다면 좋았을텐데 말이지.' 바인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그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휴암환 위로 흩날렸다. 이제는 거의 다 회복되었기 때문에 순흑색으로 부드럽게 빛나고 있다.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머리카락은 그 태양의 백금색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블래스팅 팡의 안전장 치(페시온을 떼어서 미스릴 대에 고정시킨다)를 찰칵 하고 맞물리게 만든 그는 그것을 검집 에 잘 끼워 넣고 허리에 찼다. 광익의는 로브 형태이긴 했어도 얼마든지 검집을 맬 허리띠 를 차도 무리가 없었다. 그가 꺼낸 예의 허리띠는 백색의 가죽이었기 때문에 광익의와 잘 어울린다. 그 자체로 마도 생물의 가죽이었기 때문이지만 저 백색은 마법으로 연마 했기에 나는 색인 것이다. 백색 가 죽으로 보일 뿐이지만 확실히 은은한 마력이 풍긴다. 색색의 앰플들을 가볍게 로브를 내림 으로써 가려버렸다. 그 허리띠에는 소드 벨트로 써도 될 정도의 고리가 달려 있었기에 블래 스팅 팡을 매달수 있었던 것이다. 허리띠 자체도 백색 검기 정도가 아니면 벨수 없을 정도 로 질기고 튼튼했기 때문에 소드 벨트로 쓰기 충분하다. "으음." 순백색의 로브였지만 바인에게는 잘 어울린다. 새하얀 피부와 구별이 안될 정도로 깨끗한 로브가 가볍게 펄럭인다. 순흑색의 머리카락이나 순흑의 눈썹, 그리고 눈동자는 이상할 정도 로 로브와 대비되기는커녕 더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본래의 분위기를 회복한 바인 은 그 마법사의 복장속에서도 예리한 검사의 분위기로 인해 지적인 분위기가 많이 삭감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본인도 자신이 단련된 검사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무 엇보다 9서클 마법사라는 것 역시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브를 입고도 별로 위화감을 느 끼지 않고 있었다. 마법사 로브에 검이라니 어울리지 않지만 분위기 자체가 묘하게 융합되면서 그를 '강한 자' 로 보이게 만든다. 지적이면서도 검사로 보이다니 융화되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그에겐 충 분히 잘 어울렸다. 바인은 코발트 블루의 빛이 군데군데 드러난 하늘을 바라보면서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양떼구름이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하늘 대부분을 매운 흰 구름. 손가락 을 살짝 들어보이자 차디 찬 습기가 손가락에 감겨오는 느낌이다. 비가 올 것 같은데. 하고 중얼 거린 그는 조심스럽게 의지를 마나에 동화시켜 기류를 살피기 시작했다. "……으음. Air Mass(氣丹)가 전선을 형성하기 시작했는데…… 우기雨期인가? 이곳도 장마 가 있군 그래." 자신도 모르게 모국어로 중얼거려버린 그는 휴이즈와 아라테온의 의아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무심하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드러난 하늘은 매우 푸르디 푸르렀지만 그건 비올 징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실 저번에 휴이즈가 함부로 써버렸던 콘트롤 웨더Controll Weather 가 가뜩이나 우기인데 비구름을 몰아내버려서 이 근방은 평소보다 1.2배는 많은 비를 맞아 야 될 것이다. 콘트롤 웨더건 서포트 밸런스 스펠Support Balance Spell이건 자연계를 마음 대로 조정한다는 점에서 별로 좋지는 않다. 부작용은 서포트 밸런스가 월등히 적지만 이번 의 경우는 에테르식 콘트롤 웨더 술식으로 인해 우기가 더 활성화 되버린 것이다. 휴이즈가 그런 지식을 알 리가 없었고 바인 역시 과가 지구과학2는 아니었기 때문에(마법을 배워도 이런걸 시시콜콜하게 배울 리가 없다) 모를 수밖에. 이 지방의 기후는 아열대성 기후여서 봉인계의 한국과 의외로 비슷하다. 위도도 사실상 비 슷하고 말이다. 동대륙이건 아스타르건 굉장히 넓기 때문에 기후가 여러별로 나타난다. 동대 륙의 경우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지 않았지만 아스타르 대륙은 사막화된 곳이 조금 있었다. 그 마법이라는 것과 고대 문명의 여파인 것이다. 아무리 잘났어도 사막화 막기가 쉬울까? 토질 자체가 풍화로 인해 모래가 된 것인데 그걸 재구성하는건 정말 쉬운일이 아니다. 사막 모래는 별로 쓸모가 없다. 모든 암석이 다 풍화되어 버린 것이기 때문에 규산질 모래 만 걸러내는건 쉬운일이 아니다. 유리를 만드는건 규산질의 모래에서 원료를 채취하는 것인 데 유리세공이나 제법이 발달하지 않으면 유리 판 같은 것을 만드는데도 기포가 생기고 우 둘투둘해지는 등 가뜩이나 결정질도 안좋고 충격을 분산시키는 것도 별로인(석영은 경도가 7이고 유리도 마찬가지이지만 유리 같은 경우 더 쉽게 깨진다. 결정 형태 차이다) 유리의 강도를 더 갉아먹는 것이다. 금속이 아닌지라 강도剛度가 약한 유리는 쉽게 깨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도 유리로 만든 검은 암살용 외엔 쓰이지 않는다. 예식용이라던가. 하여튼 여러모로 사막은 아직 쓸모를 발견하지 못했다. 각박하고 험악한 사막의 환경이란 인간이 맨몸으로 살아가기 좋은 땅은 아닌 것이다. 아직 아스타르 대륙도 환경오염이나 그 런 것들이 심하지는 않아서(한국과 비슷한 땅도 있는데 난류가 많아서 황사도 맞지 않는다. 그리고 황사가 발생할 땅도 없다. 근처 땅 대부분이 다 녹지이기 때문에) 사막화가 별로 진 행되지 않았고 사막이라고 있는 것들도 강력한 존재들이 힘을 사역하고 맞부딪히며 생성된 폐허가 사막이 된 것이니까. 어쨌든 완벽한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동대륙은 북반구의 북극쪽에서 적도를 넘어서 남반구 까지 이어지는 초 거대 대륙이지만 정 글은 있어도 사막은 없었다. 북쪽으로 거대한 산맥이 있고 그곳은 엄청난 한파가 몰아치는 땅이기 때문에 북극쪽으로 갈 이유도 없었다. 맨틀대류로 인한 움직임은 일어나고 있지만 행성이 태어나서 원시대륙이 두 개로 갈라진지 그리 오래지 않은 상태가 배경이기 때문에 지구보다는 어린 행성이다. 아스타르 대륙쪽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고작 대륙이 두 개에 불 과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륙이 큰 이유도 당연하다. 아스타르의 경우는 북반구 중간쯤부터 남반구 남극쪽으로 내려가는 대륙이기 때문에 남쪽으로 갈수록 춥다. 그런고로 봉인계의 지 구, 한반도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를수 있다는 점도 있는 것이다. "……으음. 확실히. 양떼구름도 몰리고 있고……" 바인은 마나와 의지를 다시 분할해서 제정신을 차렸다. 방대한 양의 마나에 의지를 통합시 켜 나가 주변의 환경을 느꼈기 때문에 바인이 마나와 의지를 통합한 부근은 그에 의해 모든 생명이 지배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의지를 이용해 뒤덮어 나간 땅은 그에 의해 생사 여탈이 결정되는 땅이었다는 것이다. 아라테온이나 휴이즈도 그것을 느꼈기 때문에 바인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9서클 마스터의 힘을 실감한 것이다. 하지만 동료라 그래도 너무 잘 믿는게 아닐까? 바인은 계약했을 때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 믿어도 될 정도의 사람이지만 가계약 같은 경우는 별로 믿을만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 마을에서 쉬었다 가는게 좋겠군. 좀 오래 걸리겠어. 비가 그치고 나서야 움직이는게 편 하겠지? 말을 사야하나?" 바인은 중얼거리면서 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직 마을은 평화로웠다. 2. 마을에는 어둠이 내려 앉기 시작했다. 한적한 마을이다. 어느정도 발전단계에 있긴 했지만 그래도 한적하다 할수 있었다. 근처에 모험가들이나 마법사들이 몰려들만한 유적 같은 것이 있는것도 아니고 몬스터가 들끓는 것도 아니다. 창백한 달빛이 어둠을 적셔 내리면서 쏟아 졌고 그것은 순백색의 로브에 비추어졌다. 푸른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달. 이 행성은 위성이 단 한 개에 불과했기 때문에(지구와 어느정도 동일하다고 볼수 있다. 지각은 판게아에 흡사 하지만) 뭔가 판타지적인 요소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흔히 정말 붉은 빛이나 푸른 빛을 내 는 달이 쓰여진 소설 등이 나오긴 하지만 지구와 어느정도 동일한 행성이었기 때문에 창백 한 달빛은 지구의 그것과 거의 같았다. 달빛을 받아 은색으로 보이는 바인의 얼굴이 들어 올려졌다. 그는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그는 내운기경內運氣勁 종류의 것은 사용하지 못하지만 기의 흐름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우주조화일월신검류의 공능중 하나로써 그는 마법사임에도 기의 흐름에 역시 상당히 민감했 던 것이다. 달빛이 쏟아져 내리고 음기가 강해지자 마을 전체에서 스산한 기운이 풍기기 시 작한 것이다. 민간인들의 얼굴색이나 기의 반응 정도를 볼 때 이상은 없었는데…… 뭔가 이 상한 사건이 일어난 기색 따위도 없었다. 바인 들은 겉보기만 해도 상당한 모험가다. 분위기 자체나 기도氣道 역시 어중간한 싸구려, 혹은 애송이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휴이즈나 아라테 온은 거의 감추고 있지만 바인은 싸늘하게 굳힌 안색으로 살기까지 풍겨대는 것이다. 일반인들도 바인 본인이 범상치 않은 자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라 위 험하다는 것도 알수 있다. 정말 충분하다 못해 넘칠 지경이다. 물론 후드를 뒤집어 쓰면 상 관 없지만 말이다. 기도라는 것은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외모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한다. 네거티브 카리스마란 목소리, 표정, 눈빛과 분위기 등이 조합되어야 완성되는 거지 그 한 부분만으로는 힘들다. 바인의 목소리는 미성이긴 하지만 냉엄한 기색이 잔뜩 깃들어 있 어서 듣기만 해도 없던 절도가 생길 지경이었다. "영기가 매우 강하군. 만월도 아닌데 이정도라니. 소름이 다 돋을 정도야." 바인은 그렇게 읊조리곤 지붕에 걸터 앉은 자세를 약간 더 편하게 바꾸고는 블래스팅 팡을 가볍게 뽑아서 휘둘러보았다. 시익 하고 공기가 끊어지는 소리가 나지만 그건 무기의 날카 로움 때문이었지 그의 의미없는 휘저음이 날카로운 것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스피드라고는 찾아 볼수 없는 일격이었다. 바인은 무심하게 다시 검을 꽂았다. 발검은 무섭도록 빨랐지만 베는건 느리다니. 속도가 자유자재라는 말인데…… 물론 바인도 사력을 다해 분경分勁(접촉 후의 기경) 같은 것을 펼친다면 거둘수 없겠지만 말이다. 원래 그의 공격 자체는 쾌검도 들 어있기는 하지만 톱니바퀴처럼 깨끗하게 맞물리며 돌아가는 예리함과 그러면서도 초식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운, 구름같은 패링에 있었다. 검술 자체도 대단하지만 그의 전투 센스도 마 법사 치고는 어마어마 하다 하겠다. 원래부터가 재능이 있긴 했지만 이곳에 와서 검술은 더 진전을 본 셈이다. 말하자면 스피드는 경공을 사용하는 무림인보다 약간 더 빠를 지경이고 완력은 오거를 한참 능가하는데다가 검술은 현경에 준하니까…… 괴물인 셈이다. 그러면서 9서클 마스터에 나인 클래스 마스터니 이건 정말 괴물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이덴티시 크라이시스 Identity Crisis(정체성 위기) 따위의 문제를 끌어안고 버벅거리기엔 그나 너무 냉철했다. 무엇보다 그 사건 전에는 상당히 사랑받고 살았으니까 자기 가치관도 확실하고…… 지금은 9 서클 마법사나 되는 정신력을 지니고 있고 마인드 컨트롤도 상당하니까. 특급 마법기들을 가진것도 합하면 어마어마한 것이다. 바인은 갑자기 달의 영기가 확대되어 마을을 감싸기 시작하자 눈썹을 가볍게 움직였다. 이목구비에 완벽하게 장식되어 있는 검미가 찌푸려지는 것은 만약 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심장이 덜컥 할 정도로 진지하게 느껴졌다. 바인은 가볍게 광익의에 염을 가해 에테르 윙Ether Wing을 뽑아올렸다. 즈윙 하고 뿜어져 나온 한쌍의 날개는 빛을 영롱하게 발하며 하얗게 빛났다. 그러나 바인은 곧 피식 웃고는 조용히 수인을 맺으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물론 몇 개 주문은 메모라 이즈 없이도 사용 가능한 주문이었고 한두개 주문만이 그가 수인과 주문을 함께 써야 하는 주문이었다. "논 디텍트None-Detect. 하이드 바이탈리티Hide Vitality. 다크 미스트Dark Mist. 임프 로브드 인비저빌리티Improved Invisibility. 하이드 매직 포스Hide Magic Force." 주문을 빠르게 사용하면서 그는 피식 웃었다. 논 디텍트야 기척을 막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던전에서 봉인된 물건을 막기 위한 가디언으로 언데드나 고렘 같은 종류를 놓았을 때, 혹은 염과 정을 뭉쳐서 만든 마법적인 생물중에서 시각이 없는 것들의 초지각을 막아내기 위한 주문이었다. 3서클에 속하긴 했지만 그래도 정교한 운용이 요구되는 주문인 것이다. 이어서 한단계 더 놓은 4서클의 하이드 바이탈리티야 말 그대로 생명력을 감추는 것이다. 이것 역 시 마법사들이 은신을 위해서 사용한다. 기감에 특히 민감한 자들이 있는데 생명력의 파장 이나 선천진기의 파장, 혹은 아드레날린 분비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기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주문이다. 4서클의 다크 미스트야 당연하게도 빛을 산란하는 에테르 윙과 흰 옷에 희디 흰 피부를 지 닌 그를 둘둘 감아놓을 암흑의 안개다. 그냥 미세한 빛 입자들을 밀어내는 주문인 것이다. 공기중에 잔재하는 파장이자 입자인 빛을 밀어내서 어둠의 안개처럼 보이는 광입자 거부공 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럼 바인도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그건 투시주문을 사용하면 된다. 그리고 그 안개와 그를 동시에 투명하게 만들 임프로브드 인비저빌리티는 자그마치 8서클 주문인 것이다. 기존의 3서클 주문 인비저빌리티가 단지 최면과 가벼운 광왜곡, 그리고 환상 을 이용한 주문이라면 이것은 그 공간 자체를 연성있는 아공간으로 뒤덮어 막아버리는 주문 인 것이다. 덕분에 8서클 주문인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 다음 이렇게 중첩으로 걸린 주문 이 만들어내는 마나의 파장을 막는 하이드 매직 포스. 5서클 주문의 하이드 매직 포스를 거 는 것이다. 임프로브드 인비저빌리티는 시야에 방해를 주지 않으니까 상관 없지만 다크 미스트에는 염 을 가해서 나가는 적외선은 차단하고 들어오는 적외선만 받아들이도록 해야 했다. 그래야 바인은 보이지 않고 들어오는 적외선 시각을 이용하는 것이다. 임프러비전같은 자신의 눈에 염을 가하자 곧 금방 적외선 시각이 열렸다. 그러나 적외선 시각 치고는 수준이 상당해서 적외선 파장에 포함된 색깔도 볼수 있는 눈이어서 좀 색감이 이상한것만 빼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에테르 윙 가속을 이용해 하늘로 거세게 날아오른 그는 에테르 윙의 특권인 관성제어, 물리제어, 마찰계수 제어의 권능을 이용해 바람의 마찰을 간단하게 버텨내고는 적외선 시야로 마을을 살피기 시작했다. 열원에 의한 적외선 시각인지라 바인처럼 염을 가한 실드에 하이드 매직 포스를 걸지 않는 이상 자신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감추면 마을 전체를 감아놓지 않는 한 오 히려 들키게 되어 있다. 바인은 곧 눈을 감고 영기의 흐름을 느끼면서 기억해놓은 이미지와 겹쳐보기 시작했다. 뭐 어쨌든 마법이란 단순한 자연현상을 흉내내거나 모든걸 파괴하는 것 이 아닌 것이다. 마나를 이용한 법칙 일탈, 혹은 법칙 구현이지 파괴를 위한 힘은 아니다. 요즘이야 때려부수는 짓만 해대느라 상상력 빈곤으로 허덕이는 싸구려들이 넘치지만 불과 300년전까지만 해도 마법사들은 마도에 대한 탐구와 그 응용, 그리고 자연에의 폭넓은 시각 을 위해 마법을 배웠지 결코 지금처럼 힘이나 국가적인 무언가를 위해 배우지 않았다. 정화 가 끝나서 판게아가 둘로 나뉘어버린 상황에서 마법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전쟁에서 활용 되기 시작한 것은 100년 전부터였다. '……뭐 결국 마법이란 힘이 전쟁에서 인간을 효율적으로 학살하면서 개체수를 줄이게 되었 으니 오히려 타 종족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 되어버렸군. 자업 자득이야. 큭큭. 엘프건 드 워프건 긍지조차 없는 버러지들이 죽어나가면 죽어 나갈수록 좋겠지만.' 바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영기가 펼쳐졌다가 무서운 속도로 모이는 곳을 향해 날기 시작 했다. 그의 초인적인 청각기관에도 은은한 진동음이 걸리기 시작했다. 광익光翼, 에테르 윙 을 이용해 단순간에 아음속에 도달한 그는 마찰계수를 제어하며 수직강하를 한 후 날개로 크게 홰를 쳤다. 그리고 가볍게 난류를 일으켜 관성을 얻은 그는 다시 빠른 속도로 그 장소 를 향해 움직여갔다. 휘두를때를 제외하면 날때에는 날개에서 부웅 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 았다. 그래서 그는 정숙성 있게 그 장소로 향할 수 있었다. "念雷!" "解!" 천지간에 내재되어 있는 영기靈氣가 전광. 번갯불이 되어 쩌르릉 하는 뢰명과 함께 직선으 로 뻗어나갔다. 영기의 힘이 전위차를 일으킨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영기 자체가 번개의 염. 그러니까 이미지와 동화되어서 속성을 달리해 전광이 된 것이라 할수 있겠다. 염술念術 이라 불리는 이 수법은 간단한 이미지나 복잡한 염을 영기에 투영해서 원소력이나 특수한 힘을 사용하게 만드는. 단순하면서도 영력에 따라 그 위력이 차이가 나므로 무시할만한 것 이 아니었다. 방금 사용된 염뢰에도 상당한 영력이 실려있었기 때문에 사람 하나쯤은 우습게 튀겨서 그 저항으로 전소全燒 시킬수 있는 위력이었다. 마나와 마력. 간단한 차이지만 영기와 영력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다. 자연에 퍼져있는 상태의 마력이 마나이고 몸에 응축시켰거나 운용 할수 있는 것이 마력이다. 영기도 그와 같다. 영력은 기본적으로 백회혈이나 몇가지 특이한 영력 축적법에 따라 다른 혈을 이용해서 흡수하는데 기본적으로 대부분 백회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그곳에 영혼의 퍼스널 스피릿 서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곱 개의 고리를 그리며 7색 스펙트럼 비슷하게 빛나면서 회전하고 있는 그것은 항상 제일 안쪽의 고리만 운용할수 있었다. 인간으로써라면 말이다. 에테르가 날개라면 영기는 고리로 변하는 셈이었다. 눈에도 보이지 않고 초지각으로도 느낄수 없는 것이지만 심안心眼과 영기 를 수련해 얻을 수 있거나 아니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영안靈眼보다 더 높은 단계의 '눈'을 열수 있다 볼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 영기를 주재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고리 가운데의 텅 빈 곳과 백회혈을 이용하여 영기를 가느다란 선으로 응축, 가속시켜서 영혼에 흡입해 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운용해서 사용한다. 영기는 기로 전환될 수 있지만 영력은 기로 전환될 수 없다. 영력은 그 자체로써 영기를 다 루어 얻은 힘이기 때문에 영기와는 달라진 셈이다. 속성에 따라 달라지고 기보다도 훨씬 다 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삼재三才, 사상四象, 오행五行, 육합六合, 칠정七情, 팔괘八卦, 구궁九宮 등의 속성을 다 포함하는 것이다. 감정이나 그외 기타 영적, 정신적인 힘을 이루는 것이 영기이며 이 세상을 이루는 축 중의 하나였다. 정신에 더 심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기 를 운용하다 주화입마에 걸리면 육체적 타격과 정신적 타격을 모두 입지만 영기의 경우 심 기에 타격을 입으면 정신에 8할 이상의 타격을 입는다. 심마나 주화입마가 어떻게든 육체를 바로잡으면 극복할 수 있는 것인데 비해 영력의 심마는 그야말로 정신이 유리그릇을 바닥에 내던져서 산산조각 내버리는 것처럼 박살나버리기 때문 에 복구하려면 신적인 힘이 필요했다. 아니면 부서진 상태에서 영혼의 내면에 존재하는 깨 달음을 찾아낼 수 있다면 모를까. 염뢰는 푸른 빛을 튀기며 뻗어 나갔지만 단 한마디의 외 침에 간단하게 흩어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곳은 아스타르 대륙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용된 언어는 한자어라는 점이었다. "念火!" 다시 영기가 은은하게 뻗어나왔다. 얼마나 강력한 영기인지 영감이 없는 이들도 무언가를 느낄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우웅 하는 기음. 그리고 결집되는 열기. 공중에서 핏빛의 화 염이 뻗어나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핏빛의 화염은 공기를 사르면서 뭉치기 시작 했다. 영력을 인因으로 하여 과果로써 생겨난 불꽃이었기 때문에 단순한 횃불과는 달리 영 혼에도 타격을 줄수 있는 불꽃이었다. 영력이 가중되기 시작하자 점점 불꽃은 노랗게 물들 어가기 시작했다. 오렌지빛으로 일렁이던 불꽃은 노랗게 물들어갔고 그것이 주홍빛에서 완 전히 황색으로 변했을 때 그 열기는 지독히도 강렬했다. 스펙트럼으로 황색이라도 사람 하나쯤 불살라 죽이기엔 모자람이 없는 불꽃인 것이다. 그 불꽃은 더욱더 열기를 뿜어내면서 백황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2, 3초만에 백황색으로 변 화한 불꽃은 조용히 그 염화의 주인이 수인을 맺으며 영기를 인도하자 형태를 변화하며 완 전히 순백색으로 불타올랐다. 얼마나 강력한 열기인지 물이 에너지를 얻어 그 수분이 완전 히 산소와 수소로 분해되어 그 분해된 상태에서 더 열기를 더해줄 정도였다. "白焰神龍!" "散!" 새하얀 불꽃은 점점 길어지더니 그 크기가 아나콘다 정도는 새끼로 둘 정도로 거대한 형태 의 신룡으로 변해갔고 그것이 불꽃의 수염을 길게 흩날리며 쏘아져 나갔을 때 이미 상대방 은 여유있게 산이라는 단어를 외쳤다. 과연 불꽃으로 이루어진 신룡은 주둥이부터 조금씩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강력한 힘이었다. 염술念術을 인으로 하여 과로써는 영법靈法을 이끌어낸 셈이다. 염술과는 달리 영법은 무신巫神들의 힘을 빌어오거나 아니면 신유사백神幽師伯 등의 힘을 영력을 지불함으로써 끌어내는 거래이거나 아니면 영력 자체를 전신에서 운용하여 마치 기경氣勁처럼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염술과는 달리 오랜 참오가 필 요하고 또 타격을 받으면 영력이 깨어져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것으로. 그 위력중 인 간이 수련해서 낼 수 있는 힘으로는 거의 8서클 주문까지 가능하다. 호풍환우呼風喚雨라는 단어가 괜히 생긴 것이 아닌만큼 영력을 사용하면 비도 부를 수 있었 다. 물론 무신들의 힘을 빌어오는 것이지만 그렇다 해도 강력한 힘인 것이다. 이번엔 힘을 빌어온 것이 아니라 빠르게 혈도를 이용해 운용하여 신룡 형태를 사용한 것이다. 염술에 가 까운 영법이고 중급 영법 정도에 불과하지만 강력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런 새하얀 불꽃의 용을 간단하게 흩은 것이다. 짤막한 단어를 통해 영법을 시전하는 그 자의 능력을 간단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중급 영법을 신산술 정도로 가볍게 흩는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칫! 실력으로는 안되면서 최상급 마령검魔靈劍 한자루 들자 마자 저렇게 강력한 힘을 구사 할 수 있다니……' "사매…… 후. 우리 무상류無常流 역대 최고의 재질을 지녔다는 네가 이렇게 형편 없었더 냐? 허무하구나. 아무리 힘을 길러 보았자 고작 검 한자루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지 않느냐! 그러고도 네가 옳다는 것이냐!" "흥. 사형? 아니, 스승을 해친 쓰레기겠지? 스승을 해치고 얻은 힘이 고작 그정도인가요? 내 가 지금이라도 금제를 풀면 당신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알텐데? 그리고 나도 그 에 준하는 법기法器를 지니고 있어요." ……둘 다 모두 백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대화할때는 아스타르 대륙 공용어를 사 용했지만 틀림없이 염술과 영법을 사용할때는 동방어를 썼다. 바람이 휘잉 하고 주변을 휩 쓸고 지나갔다. 차가운 바람이었다. 날씨에 맞지 않는. 사매라고 불린 여성의 남보랏빛 머리 카락이 흩날렸다. 보랏빛은 고작 1할쯤이었고 달빛이 비칠때마다 가볍게 반사되는 정도였지 만 그래도 보랏빛이 섞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짙은 남색. 흑색으로 보일 정 도의 남색인 것이다. 이제 14세나 되어보임 직한 모습 치고는 지금 목소리는 매우 표독했다. 분노와 증오가 서려있는 목소리. 그러나 평소에는 부드럽고 곱다는 소리를 들을 만한 목소리였다. 얼굴 역시 상당히 가는 선 에 희고 깨끗한 피부고 눈 역시 상당히 커서 귀엽다는 느낌이 아직 강한 미소녀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눈은 불타오르는 듯 따가운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남청색의 수정같은 홍채, 눈동자는 순흑의 그것. 아무리 봐도 피부는 백인이지만 머리카락을 볼 때 아무래도 혼혈인 것 같았다. 동방인이 이곳까지 와서 누군가와 결혼했고, 그 아이는 그 동방인에게서 영법을 익혔다? 아마 스승이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아마 아버지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그에 비해 사형. 아니 쓰레기라고 평가절하된 이를 바라보면 이제 17세나 되어 보임직한 소 년이다. 연보랏빛의 머리카락을 한가닥으로 묶어서 늘어뜨린, 아름답다기 보다 수려하고 가 느다란 느낌이 드는 준수한 소년이었다. 자줏빛 홍채에 짙은 보랏빛 눈동자. 옷 역시 자줏빛 의 장포였다. 자줏빛과 보라색의 유사한 빛으로 전신을 도배한 소년이다. 몸은 제법 단련되 어 있긴 하지만 아직 가늘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비슷한 장포였지만 사매쪽이 완전히 붉은 옷과 소매를 지니고 있는 옷이라면 상대쪽은 자줏빛이었다. "훗. 사매가 지금이라도 영부술靈符術을 사용한다면 아마 나는 이것을 지니고 있어도 죽을 수 밖에 없겠지. 오늘은 만월滿月이 아니니까. 하지만…… 너는 법기의 사용을 금한다는 금 제를 깨지 못할거야. 왜냐하면 스승님의 당부였으니까." "고작 힘에 취해 스승을 죽인 패륜아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당부 정도는 저버릴 생각이 있어 요. 지금이라도…… 보여드릴까요?" 그녀는 눈썹을 치켜 떴다. 순간 그녀의 몸에서 강대한 영기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강력한 영력인지 주변의 영기와 뒤섞여 말 그대로 '영기'. 오러가 되어서 끓어오르는 것이 다. 주변의 기류가 소용돌이치며 그녀의 몸을 감아돌았다. 사형이라고 해도 그 성취가 모자 란 것인지 상대의 영기는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하지 않다 해도 사매라 불린 여성 의 3분의 1쯤은 되어 보였다. 소녀의 몸에서 끓어올라 하늘을 찌르는 영기는 깊은 남빛이었 고 그것은 밤하늘과 어울려 매우 아름다웠다. 소년의 몸에서 끓어오르는 영기는 보랏빛. 그런데 그 보랏빛 영기가 은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만월이 아니었지만 이제 막 기울어지기 시작한 달의 힘은 강했다. 소년이 오른손 에 단단히 쥐고 있는 소검 한자루가 무섭도록 은색의 파장을 뿜어내며 이글거렸다. 소년의 영기는 거의 소녀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영기에 준하는 양으로 부풀어 올랐다. 소녀는 눈살 을 찌푸렸다. 달의 영기가 강해서 더 마령검, 진야월영震夜月影의 힘도 강대했다. 달이 뿜어 내는 영기를 받아들이는 마령검. 그 봉인을 스스로의 몸으로 해두었던 스승을 진야월영으로 베어 피를 묻혀 봉인을 깨자 마 자 저 검은 지독히도 강한 음기를 발하고 있었다. 자유가 좋은 것인지 웅웅거리며 은파銀波 를 퍼뜨리는 검. 시린 은빛의 월광이 검극에 닿아 흩어지면 빛이 일어났다. 소년은 피식 웃 으며 가볍게 검을 휘둘러보았다. "어때, 아무리 부족한 성취의 나라도 너와 맞먹는 영력을 사용할 수 있어. 그것도 질은 더 나은 힘을. 진월의 검을 봉한 이유를 모르겠군 그래." 소년은 그렇게 말하고는 가볍게 다시 검을 흔들었다. 검의 손잡이에 달린 은색의 실로 만들 어놓은 술이 흔들리면서 번뜩였다. 사르륵 하는 소리가 나면서 흔들린다. 눈부신 월광을 흡 입하는 검. 검은 월광을 호흡하고 있었다. 검은 웅웅 하고 진동하면서 무언가 또 다른 금제 를 풀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금제는 다섯겹이나 되었다. 그리고 굉장히 튼튼했다. 자색의 영기를 잔뜩 머금은채 은색의 영기와 부딪혀 스파크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 만 아직 영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괜히 마령검이라고 불린게 아니에요. 그것은 마에 닿은 영검. 당신을 조종할 겁니다." "그래서 사매가 직접 써준 강력한 봉령부封靈符를 다섯장이나 겹쳐서 감아놓지 않았나. 그 리고 영부가 파괴되면 즉시 검집에 봉하면 되니까." 아무리 마령검이고 강력하다 하더라도 태어날때부터 짝으로 만들어놓은 검집에 꽂힌다면 힘 을 전혀 쓸수 없다. 그건 법칙이었다. 게다가 검집 겉이 아니라 안쪽에다가 봉인부를 잔뜩 붙여놓았고 강력한 역대 스승들이 죽기 전에 영력의 진원마저 모두 모아 그린 봉인부를 한 겹 한겹 쌓아왔기 때문에 이제 48대째 넘어가고 있는 이 무상류가 붙인 부적의 힘 역시 끔 찍하리만치 강했다. "내가 아무리 영력이 약해도.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검사다. 검술 하나만큼은 상당하다는 소 리를 들어 왔지. 이 검의 주인이 되기에는 턱없이 약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영력까지 더하 면 억누를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시나 보죠? 그럼 갑니다." 소녀의 눈이 날카로운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력의 파도와 영력의 파도가 부 딪혔다. 소년은 가볍게 긴 은색술을 흔들어 손목에 둘둘 감은다음 왼쪽 허리춤에 달려있는 검집에 검을 꽂았다. 영력을 흘려넣으면서 염을 가했기에 검집의 봉인속에서 오히려 힘은 더 공명하며 검에 모여들었다. 왼손을 가볍게 오른쪽 팔꿈치에 대고 가볍게 몸을 낮춘다. 소 년의 눈이 무섭도록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리고…… 두 강대한 힘이 격돌했다. 3. 영기가 일으킨 바람에 의해 펄럭이는 붉은 장삼자락이 흔들린다. 거칠게 불어오르는 바람은 남빛의 반투명하고 가끔가끔 불투명하게 빛을 발하는 영기와 영력에 의해 뒤섞여서 밤의 바 람에 어울리는 빛으로 변화했다. 소녀의 남빛 머리카락이 펄럭이며 공기중으로 내던져졌다. 한올한올 떨어져 흩날리고 있었다. 가볍게 맺힌 땀이 머리카락과 피부를 달라 붙게 했으나 영기의 바람이 얼마나 강한지 머리카락의 습기를 다 날려버리고 흐트러 뜨린 것이다. 이마에 맨 붉은 천의 띠를 매긴 했지만 그건 그냥 동여 맨 것일 뿐 머리카락을 위한 어떤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이마를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보일 정도였다. 머리카락을 동여 매기 위해서 맨 것이 아니다. 띠 자체에서 이상한 영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소녀는 영기가 최고조에 달하자 마자 수인을 맺고 손가락으로 도형을 그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보 이지 않는 영기의 흐름이 그녀의 앞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천라뇌신제명 급급여율령칙 멸신무극영영 멸마령 멸마령 천벌천뢰! 뇌신이여! 이곳에 그대 의 분노를 내리소서! 진천뇌격멸살법震天雷擊滅殺法!" 상대방 역시 눈을 감은채 주문을 빠르게 외웠다. 보랏빛 머리카락과 은색의 영기는 기묘할 정도로 잘 어울린다. 은색에는 붉은색, 녹색, 푸른색 모두가 잘 매치되는 것이다. 은백색으 로 작열하는 영기의 회오리. 영력의 대결. 공기중에서 스파크가 요란하게 튀었다. 영기와 영 기의 기둥이 부딪히면서 강렬한 충격파와 파장이 터져나갔다. "원월은파격적 파황천격월급 멸천멸지멸혼 일월신명재명 은광파천 진혼연진천겁! 일월신명 의 권위가 이검에 있을지니, 섬閃. 승월천망은파昇月天網銀波!" 둘이 발동어를 외침과 동시에 강대한 전위의 비틀림이 주변에 일어나기 시작했고, 달의 음 기가 너울거리며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은색의 영기와 섬뜩한 청백색의 영기가 부딪히기 시 작했다. 소년은 순간 영력을 발동해 바람을 전신에서 뿜어냈고 순간 반동에 의해 그의 육신 은 거의 3층 건물 높이의 두배 이상을 치솟았다. 과연 그가 있던 자리에 뇌성이 내리 꽂혔 다. 벼락의 한 가닥이 그가 있던 자리를 채찍처럼 후려 친 것이다. 전격임에도 불구하고 땅 은 시커멓게 그을린채 푸욱 패여버렸다. "만물의 인을 앗는 힘은 하늘을 가르고 땅을 파한다!" "떠오른 은월은 천망이 되어 은색의 파도로 모든 것을 쇄할지어다!" 그녀를 중심으로 전류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쩌르릉, 쩌르릉 하는 뇌음이 터져나 오고, 뢰명이 울어 젖힌다. 공기중의 먼지같은 입자들이 전격에 반응해 뇌전을 머금기 시작 했다. 그리고 그것은 청백색으로 작열하며 사방으로 비산飛散하기 시작했다. 수만가닥의 뇌 전이 퍼져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기중의 입자들에 의해 더 역가속되면서 퍼져 나 가 이제 수백만 가닥여에 이르는 뇌전의 화살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회전 하며 한가닥으로 변화했다. 어마어마한 두께의 뇌전창. 7서클 주문에 준하는 전격이었다. 직격당하면 인간쯤은 1초도 안 되어 그 저항에 의해 습기도 없는 잿더미로 만들 수 있었고 건물 하나쯤도 전소하는게 일도 아니다. 아니, 전격이 아니라 화염의 형태라면 마을 하나 전소하는 것도 일이 아닐 정도의 어마어마한 전격창이었다. 꾸르르르 하는 뇌성이 울려 퍼진 순간 이미 전격은 가속되면서 그 전위를 변화하여 섬전이 되어 소년을 향해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소년은 공중에서조차 예리한 발검의 자세를 그대 로 유지하고 있다가 왼쪽의 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누르고 있는 그 반력을 이용해 훨씬 더 빠른 발검을 해냈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은선이 그어졌다. 은색의 호선…… 그리고, 은색의 영기가 넘실거리는 파도가 되어 퍼져나갔다. 그물처럼 화악 퍼져나간 영검기 의 선. 검환에 준하는 최고의 절기라는 검망劍網에 비교되는 은색의 기가 퍼져나가 은색의 파도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은색의 파장과 뇌전의 창. 넘실거리는 은색의 바다와 백금빛의 산란광. 그리고 그것을 가르는 작열의 창. 전격이 튀고 영기와 영기가 부딪히며 거대한 충격 파를 뿜어냈다. 대지를 떨어 울리는 전격과 은색의 파도. 파도는 갈라졌으나 파장의 성격 상 당연히 소녀에게도 밀려 나갔다. "……이, 이런!" 소녀는 다급히 품속에서 두장의 영부靈符를 꺼냈다. 단지 부적과는 다른 힘. 부적이 영기를 조금씩 빨아들이거나 영기 자체의 힘을 빌어오고, 혹은 정신적인 힘을 무신이나 신유사백들 에게 바침으로써 그 힘을 깃들게 한다면 영부는 그 자체로 영법을 깃들게 하는 힘이다. 영 적인 힘을 빌어오는 수준이 아니라 그 자체의 영법을 깃들게 하는 힘인 것이다. 그녀가 꺼낸 영부는 치자물을 들인 노란 종이에 붉은 글씨로 무언가 빽빽하게 씌여져 있었 는데 중앙 부분에는 한줄씩 섬세한 필치로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종이 그 자체에는 어마어 마한 영력이 깃들어 있었다. 영력을 붓에 불어넣고 영법을 운용하며 써야 하는 영부. 부적술 중에서는 최고위라 불리는 영부는 제조도 힘들고 시간도 정해져 있었지만 그 위력은 이루말 할데가 없었다. "칫!" 부적을 가볍게 쓸며 염을 가함 동시에 부적 두장이 공중으로 퍼져나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부적에서 반투명한 우윳빛 영기의 장막이 퍼졌고 부적은 마치 그 영기의 장막에 달라 붙은 듯한 형상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영부 자체에서 퍼져나온 영기. 순간 은색의 파장과 영기 의 장막이 부딪혔다. 3차원적으로 퍼져 들어오는 영기의 파도. 그리고…… 거대한 반발. 영부 자체가 그 힘을 감당하고 있었으므로 과부하는 영부의 종이에 가겠지만 말이다. 영부 는 단지 치자물을 들인 종이로만 쓸 수 있는게 아니다. 금속으로 짠 천도 상관 없었다. 영부 는 1회용이 아니다. 영력만 보충해 준다면 영구히 쓸수 있도록 써 내릴 수도 있었다. 최고위 라고 불리는 영부는 천잠사로 짠 비단에 한올한올 금사로 수를 놓고 그 위에 진주가루를 얇 게 입혀서 굳혀놓는 것이다. 돈 덩어리라고 밖에 할수 없는 부적이었다. 그정도 부적이면 상 급 영법도 가볍게 각인 시켜놓을 수 있다. 파파파파파팟! 전격의 창은 은색의 파도를 가르며 은색의 그물에 작열했다. 순간 은색의 그물은 움푹 패이 면서 타격점 옆 부위가 퍼져 나가며 전격의 창을 휘감기 시작했다. 요란한 스파크가 튀고 반발력에 의해 폭발이 일어난다. 영기의 장막은 은색의 파도를 거의 대부분 막아 내고 소멸 했으며 남은 은색영기는 그녀가 손을 휘둘러 일으킨 가벼운 염에 의해 튕겨져 나갔다. 그녀 도 영언술을 쓸수 있었기 때문에 彈의 영언을 사용하여 그것을 튕겨낸 것이다. 마치 뢰신이 집어 던진 투창 같은 전격의 창은 은색 그물과 함께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년이 쥔 검에는 은색의 영기가 아직 깃들어 있었다. 소녀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 었기 때문에 수인을 맺으면서 찢겨나가고 군데군데 타들어간, 이젠 사용 할수 없는 바닥의 영부를 발로 차서 밀어냈다. 그리고 다시 영기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소년은 바람을 영기로 제어해서 가볍게 땅에 착지함과 동시에 기를 운용해서 몸을 날렸다. 검에 깃든 영기 위로 푸른 검기劍氣. 소드 실루엣Sword Silhouette이 퍼져나와 예기를 번뜩였다. 그리고 푸른 호 선이 그어졌다. 매끄러운 궤도에는 소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녀의 몸은 아주 부드럽게 땅을 밟아 뒤로 빠졌다. 완전히 다 벗어나지는 못해서 장포 위엔 붉은 혈선이 그어졌지만 그냥 검기의 여파에 살짝 긁힌 상처일 뿐이었다. 순간 수인이 앞으로 밀려나갔다. 그리고 영기의 파도가 터져나갔다. 단순한 염술이지만 소년의 몸 은 뒤로 튕겨져 나가버렸다. "쳇…… 과연 사매로군." "念火!" 그러나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년에게는 오히려 노랗게 이글거리는 여러가닥 불꽃이 뿜어져 올 뿐이었다. 입안이 바싹 바르는 듯한 염화. 그러나 소년은 소드 실루엣이 맺혀 있는 검을 휘둘러서 불꽃들을 쳐서 흩었다. 경勁중에서 분경分勁과 추경推勁 류의 기술을 사용한 것이 다. 몇 개는 갈랐고 몇 개는 쳐서 충격파로 흩었다. 푸른 검기는 순간 소용돌이치며 중앙으 로 모였다가 퍼져나가면서 백색으로 변화했다. 순백색의 검기. 그것에 은색의 영기가 섞여들 면서 검은 은백색으로 불타올랐다. "파월破月!" 소년이 소리침과 동시에 검은 움직였다. 호선 여러가닥이 그어치면서 파항 하는 폭발이 일 어났다. 은색 신월이 일어나 소녀를 향해 터져나갔다. 검기상인劍氣傷人의 수로 검극에서 주 욱 뻗어나온 은백색 영검기가 덮쳐나간 것이다. 안개처럼 퍼져나가던 그것은 산산조각으로 터져나가듯 수십조각으로 나뉘어 소녀를 향해 뻗어나갔다. 그러나 소녀는 여유있게 수인을 풀면서 손을 휘둘렀다. "反!" 수십조각의 영검기에서 은색의 영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날아오는 것은 백색의 검기들 뿐. 소녀는 그것을 보면서 아연질색했다. 영기와 검기가 합쳐졌으니 영기를 밀어냈으면 틀림없 이 함께 밀려나가야 정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년은 단지 영기를 검기에 덧씌웠지 융합 하지는 않았다. 소녀는 기겁하면서 그대로 발을 굴렀다. 발을 구름과 동시에 영기가 내운기경처럼 운용되면서 그녀의 몸을 띄워 올렸다. 신발 끝에 검기가 스치긴 했지만 몸에 상처가 나지는 않았다. 영력으로 공기를 쳐서 다시 뒤로 공중제 비를 넘은 그녀는 자신이 있던 자리에 백색의 검기가 길게 늘어나 스치는 것을 보면서 그대 로 발을 차서 찍어 내렸다. 과연 검을 거칠게 휘두르느라 무방비가 된 소년은 그대로 콧등 을 발꿈치에 찍혀버렸다. "크윽!" 소년은 그대로 균형을 잃으며 뒤로 튕겨져나가버렸다. 그냥 내려 찍은게 아니라 영력을 충 만하게 불어넣어 친 것이다. 아무리 기의 특성이 약하다고 해도 기는 기. 영기의 힘 역시 완 력 증폭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게다가 내려찍기라니, 여자가 해도 살점이 찢겨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공격인데 영력까지 불어넣었으니. 당연하게도 뻐거걱 하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코뼈는 부러져버렸다. 소년은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코뼈를 맞춰버리고는 치유주술을 사용해 고통을 가라앉혔다. 코뼈가 부러지면 고통도 고통이고 시각에 문제가 생기므로 코뼈를 붙게 만든 것이다. 영력을 일부러 사용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쳇. 한방 먹었군." 뭐 솔직히 이정도는 애교다. 싸움인데 말이다. 만약 그녀가 신발에 칼날 같은 거라도 달아 놓고 찍었다면 이미 소년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영기까지 불어넣으면 기보다 상위 에너지인 영기가 아무리 호신강기를 쳤어도 얼굴 하나 베지 못하겠는가? 코뼈 부러지는 것 정도는 버티고 싸워야 되는 경우도 있었다. 영력을 불어넣어 신체대사를 빠르게 하고 부러 진 뼈 부분에서 파손된 모세혈관을 복구한다. 빛이 서림과 동시에 뜨드득 하는 소리가 나면 서 뼈는 다시 깨끗하게 이어졌다. "아니, 한방 정도가 아닌가?" 그렇다. 한방 정도가 아니었다. 원래 전투센스 자체는 그가 훨씬 뛰어났다. 소드 익스퍼트 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영기로도 대등한데 상대가 되질 않았다. 영법은 대부분 다 비슷하게 알고 있었고 스승을 죽이면서 얻은 무상류 비전오의중에서도 살법이라 불리는 것 들 역시 얻었고 무상류의 비전검술서도 얻어서 흡수했는데 그녀에게 한 대 맞은 것이다. 방심해서였기도 하지만 그 방심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매의 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힘의 90% 이상을 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100%를 넘어 200%의 힘이라도 내야 할 상 황이었다. 막상 싸울때에는 그렇게 센스가 좋지 않던 사매였는데 분노로 쌍심지를 켜자 마 자 이정도까지 해낸 것이다. 임기 응변도 장난이 아닐 정도였다. 사매도 원래 전투에 재능이 있었던 것일까? 눈살이 절 로 찌푸려진다.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이 상황에서 도망가는게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매가 지닌 진산절예중 무상류 영부술은 정말 탐이 났다. 영부술 만큼은 아직 흉내 낼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저급 영부 정도는 그릴 수 있었지만 사매처럼 중급에서 상급의 영 법조차 불어넣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영부술은 상당히 급이 높아서 상급 영부는 1회용으로 그렸지만 중급까지는 영력만 불어 넣으면 반영구, 혹은 영구히 지속되도록 쓸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고작 6년 동안 배 웠을 뿐인데 이미 자신을 한참 넘었다. 그는 11년이나 배워 왔음에도 사매를 이겨보지 못했 던 것이다. 싸우면 자신이 이길 줄 알았는데…… 계산 착오였다. "……쳇. 심각하군." 소년은 중얼거리며 진야월영을 움켜 쥐었다. 진야월영을 뿌리듯 가볍게 흔들자 은색의 그림 자가 흔들렸다. 은을 곱게 빻고 갈아서 뿌려놓은 다음 그 위로 강한 바람을 불게 해서 흩날 리게 하면 이런 빛무리가 일어날 듯 했다. 은색과 은백색의 빛무리가 어지러이 섞여서 공기 중으로 가라앉았다. 소년은 다시 전투 자세를 위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매도 공중에서 땅으로 착지해 영부 두장을 꺼낸채 양쪽의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그 손가락으로는 수인을 맺고 있었다. '저런것도 가능한가…… 수인과 영부를 조합시켜? 이거, 너무 얕봤군.' 소년은 생각하면서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다시 분위기가 고조되어가고 있었따. 그의 몸에서 다시 은색 영기가 피어오르고, 소녀의 몸에서 남빛 영기가 피어올랐다. 보랏빛 영기는 완전 히 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순간 진야월영이 우우웅 하고 검명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냥 검 명처럼 울리는게 아니었다. 음기와 은색의 영기들을 빨아들여서 힘을 보충하느라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래, 계속 울어 젖히고 있는 것이었다. 대치하고 있는 10여초 동안이 나 검이 계속 울부짖는 것이다. 마령검이라도 영검은 영검. 마법검 중에서도 에고 소드가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그 자체로 혼이 부여되어 있는 검인 것이다. 마령검과 상성이 잘 맞아서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고 마령 검 자체도 소년이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최상급 마령검인 진야월영이 그를 지배하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그는 마령검이 한 번 울며 음기들을 흡수할 때 그냥 알아서 보충하나 보다 생각했는 데 아니었다. 마령검은 검신이 버티지 못할 정도로 힘을 끌어 당겨서 공명하고 있었다. 그는 흠칫 떨면서 마령검의 손잡이를 콱 움켜쥐었다. 그러자 떨림이 멎으면서 은색의 기운이 스 스로 배어나와 칼날을 예리하게 갈았다. 마령검 진야월영은, 공포로 질려서 울고 있었다. 4. "칫……" 마령검에서 풍겨나오는 감정의 영기와 은색의 영기가 공명하면서 자신에게도 고스란히 전해 졌다. 까닭없이 마음에서 차오르는 공포감을 혀를 참으로써 애써 정리한 그는 가볍게 오른 다리를 왼쪽 다리 앞쪽의 옆으로 보내며 몸을 강하게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은백색으 로 작열하기 시작한 영검기가 검풍을 일으켰다. 바람의 칼날이 뻗어 나가면서 소녀는 바로 수인을 밀어냈다. 순간 수인에서 타는 듯한 백색광이 퍼져나와 소년의 시각을 마비시켰다. '섬광술閃光術?' 소년은 깜짝 놀랐다. 시각을 마비시킨 불빛은 매우 강렬해서 시각이 쉽게 회복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시각을 마비시켰다는건 새로운 패턴의 공격을 가하기 위한 작업이다. 시각 이 마비된 이상 방어도 쉽지 않고 공격도 쉽지 않았다.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는 그는 바로 몸을 회전시키며 검으로 매끄러운 원을 그렸다. 파아아앗! 순간 검에서 은백색 장막이 퍼져나와 공기를 밀어내며 파공음과 함께 영검막을 세웠다. 영 기와 검기를 융합하여 그 힘을 강화시킨다음 펼쳐낸 검막은 이미 거의 강기막에 필적하는 방어력과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판단은 옳았는지 영검막에 무언가가 충돌해왔다. 펑 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소년은 이상하게 약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검막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아직 영검막의 자체적인 파괴력에도 견딘채 강대한 영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은 두 장의 영부였다. 일단 영력의 탄으로 영부를 휘감아 그 영력의 탄환을 이용해 폭발을 일으켜서 영부를 보호 하고 영부의 힘을 이용하는 수법 같았다. 소년은 눈살을 찌푸리며 영부의 주문언을 읽어나 갔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그 영부는…… '이런, 폭멸부爆滅符! 피하기엔 늦었어! 그렇다면!' 중급 영법인 업화폭멸법業火爆滅法이 실려 있는 영부인 것이다. 업화폭멸법은 인간보다는 음과 어둠에 속한, 죽음의 존재들에게 타격이 더 큰 영법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인간 하나쯤 은 우습게 태워죽일 수 있다. 인간도 영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인지라 업화에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거의 4서클의 화염폭발마법에 맞먹는 타격력을 지니고 있다. 3서클의 파이어 볼만 해도 사람 10여명쯤은 우습게 태워죽인다. 영기막에 달라 붙은 영부에서 내재된 영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소년은 판단을 끝마 치자 마자 빠르게 진야월영을 땅에 꽂아 넣었다. 순간 진야월영에서 어마어마한 영력이 뿜 어져 나오면서 폭멸부의 영력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폭멸부는 이미 폭발해버렸기에 폭발을 막을 수는 없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나오면서 요란한 충격파가 대기를 뒤흔들고 대지를 떨어 울렸다. 그리 고 붉고, 노랗고, 하얀 폭발의 화염이 퍼져나와 대기중으로 흩어진 흙먼지를 불살랐다. 타닥 타닥 하고 불꽃이 요란하게 튀어댔다. 충격파 만으로도 사람의 고막 정도는 가볍게 터뜨릴 수 있을 정도의 폭발. 그러나 그 폭발운이 갈라지면서 인영이 튀어나왔다. 소년은 전혀 그을 리지도 않은 모습으로 빠르게 신법을 전개해서 튀어나온 것이다. 달의 빛을 받아들이며 진 야월영은 다시 울어 젖혔다. "젠장!" 소년은 눈살을 찌푸렸다. 튀어나오자 마자 새하얗게 작열하는 불꽃의 탄환들이 30여개체나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발 한발이 폭발할때마다 3서클의 파이어 볼Fire Ball에 준하는 충격파를 일으킬 수 있고 5서클급 화염폭발주문의 화력을 머금고 있는 것들이다. 마을 하나 쯤은 전소시킬수 있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영력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한곳에 집중되어 폭발하도록 염이 걸려있는 상태였다. 만약 시가지에 떨어진다면 반 블록 정도의 구간은 그 충격파로 인한 지진에 무너질 정도였다. 그 안을 휩쓰는 열풍은 물론 5서클급이겠지만. "千斬風!" 소년은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진야월영에 영력을 불어넣고 영법을 실현시킨 것이다. 진야월 영이 대신 영법을 실현해 준 것이었으므로 다급하게 썼다 해도 타격은 없었다. 그 이름 대 로 천번을 참하는 바람이 일어났다. 당연히 천여개는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수백개는 넘어보이는 바람의 칼날과 진공의 칼날이 일어나 뿜어져 나갔다. 주변의 나무나 풀들이 볼품없이, 그러나 예리하게 사각사각하고 썰려 나가면서 30여개체의 불꽃 탄환과 바람의 칼날이 맞부딪혔다. 그리고 충격파와 열풍이 터져 나와 나무, 풀들을 모조리 불살랐다. 아직도 남아있는 나무와 풀이 있다는게 더 신기할 정도로 이 싸움은 흉험했다. 웬만한 마법 사들은 이걸 보고 나서 전직을 할까 말까 고뇌하게 될 것이다. 무슨 이런 어린놈들이, 그것 도 순수한 인간이 7서클급에 맞먹는 공격을 저렇게 짧은 주문으로 난사하고 5서클은 되는 파괴력을 난사해댄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그다지 지친 기색이 없다니! 영기가 아무리 마나 보다 상위 에너지라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충격파가 밀려나왔지만 소년은 아랑곳 하지 않 고 오히려 검을 세워서 바람을 가르며 달려들어갔다. "죽엇!" 짤막한 외침. 그러나 살기와 독기가 충분히 실려 있는 외침이었다. 소년의 검이 무려 아홉 개로 나뉘면서 허초와 실초를 적절히 배합해 찌르고 갈라들어갔다. 구궁연환검九宮連環劍! 무당의 구궁연환검법인 것이다. 어째서 소년이 이것을 배울 수 있었을까? 그것은 소년이 베 어 죽인 스승이 재질은 모자라 검술을 익히지 못했지만 무당파의 검법 비급 두 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익힐수 있었던 것이다. 아스타르 대륙인 답지 않게 혈도와 심법 등을 다 알 고 있었으므로 그의 재질까지 더해지자 구궁연환검을 배울수 있었던 것이다. 구궁연환검 말고도 그는 무당의 태청검법太淸劍法 역시 익히고 있었다. 은백색으로 작열하 는 검. 도가의 도의대로 움직이지만 초식은 죽어있었다. 살의로 불타오르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하지만 소녀에겐 확실히 어지럽고 신묘한 검술로 비쳤다. 구궁의 흐름에 따르고만 있 었지 의지는 합치되지 않은, 초식만 완성되고 그 변형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무당의 사상 검법四象劍法만 해도 아스타르 대륙에서는 고급 검술이 될 수 있었다. 아스타르에서는 검사들이 득세하고 있긴 해도 기사들 역시 무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워낙 강 强과 강剛을 중시했던 것이다. 드물게도 광검 같은 검술이 있긴 했지만 그것 역시 동방검에 비하면 파괴력만 무지막지한 얌전한 검술이다. 청심문의 검술을 보면 특히 더 잘 알수 있는 데. 변화, 단순함, 빠름, 느림 등을 모조리 다 포함하여 그것을 적재 적소에서, 사람 죽이 기 딱 좋도록 휘두르는 것이 그 모토였기 때문에 아스타르 대륙에서 그 검술을 보면 간악하고 사악하고 치사하다고 할 것이다. 어쨌든 소녀에게 그 완성되지 않은 싸구려라고 해도 구궁연환검이 펼쳐졌으니 죽을 맛일 수 밖에 없었다. 어지럽게 펼쳐지는 구궁연환검. 간신히 조금 피해보아도 어느새 사방에서 꺾여 들면서 아홉 개로 늘어난 은백색의 환영이 어지럽히며 다가든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이라고 했지만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라도 목숨을 사려야 될정도로 위협적인 검술이었다. 무림에선 자신있게 돌아 다니는 놈들마다 검기 정도는 중급 무공으로 알고 있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 기 때문에 무림에선 일류 무사 정도라도 이곳에 오면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 둘쯤은 가볍게 눕혀버릴 수 있었다. 기의 힘은 비슷하다고 해도 검술이 어마어마하게 차이나는데 무슨 수로 싸울까? 무림에서 화경 중반부라고 하면 이곳에서는 소드 마스터 둘쯤은 상대할수 있었다. 물론 예외도 있지 만 그래도 수준이 그정도로 차이난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리 방패에 기를 불어넣어 방어해 봐야 방패는 방패일 뿐이다. 검기 특유의 예리함을 뭉 툭한 검기로 막는 셈이니, 검막이나 강막을 치지 않는 한 막을 수 없다. 방패로 강막을 펼치 면 검으로 강기막을 펼치는 것보다 내력 소모가 더 크다. 그래서 방패는 아스타르 대륙에서 도 많이 줄어드는 추세였다. 기껏해야 팔에 착용하는 라운드 실드 같은 종류나 카이트 실드 종류가 남아 있을 뿐. "하아앗!" 보법은 표풍무상보飄風無常步에 검법은 구궁연환검이었으니 기력을 익히지 않은 소녀가 버 틸 수 있을리 없었다. 간신히 영력의 막을 펼치긴 했으나 그대로 뚫리면서 몸 군데군데 혈 선이 그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몰린 덕분에 그녀는 그대로 찬스를 잡을 수 있었다. 간신히 피하면서 영부 한자를 꺼내 검에 집어 던진 것이다. 놀랍게도 영검기는 영부를 베지 못했다. 오히려 강대한 전류 같은 통증이 검극에서 일어나 신경을 타고 뇌리에 도달했다. 봉인용 영부를 이용해서 검에 깃든 봉인의 기운과 공명해서 검과 소년에게 동시에 타격을 준 것이다. 그리고 움찔 하고 뒤로 물러난 소년을 향해 염화 의 탄환들이 터져나갔다. 소녀는 이미 열걸음 이상 뒤로 물러난 뒤였고 소년의 몸 주위에서 염화들이 아낌없이 폭발 했다. 샛노란 폭발운이 일어나면서 주홍빛 불꽃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사그라들었다. 1초만에 에너지가 다 열로 전환된 것이다. 폭발의 화염은 순식간에 공기를 불태워버리고 사그라든 것이다. 원래 폭발이라는 것은 괜히 폭발이라고 불리는게 아니라서 폭발 후 주변 산소를 모 조리 다 태워버리면 단 1, 2초만에 순수한 열로 전환된다. "쳇…… 막았군." 그렇다. 소년은 표풍무상보를 이용해 그 자리에서 몸을 빠르게 회전시킴으로써 일종의 검막 을 친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은백색 영기로 폭발을 밀어내서 피해를 최소로 했고 덕 분에 머리카락 끄트머리 약간이 타들어가고 옷이 살짝 그을렸을 뿐이다. 둘 다 제법 영력의 소모가 일어났기 때문에 점점 신중하고 날카로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念氷!" 서클, 클래스식 마법에서 아이스 스톰Ice Storm류의 마법은 대부분 공기중의 먼지를 촉매로 하여 온도를 급격히 하강한다음 얼음이 섞인 눈보라를 몰아치게 하거나 수증기를 이용한다. 그러나 이 염으로 얼음을 사용하는 것은 공기중의 수증기가 영기에 의해 스스로 뭉치더니 팔뚝만한 얼음 창이나 얼음의 날카롭고 얇은 원반이 되더니 그대로 쏘아져 나가는 것이다. 소년은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물론 검날을 가볍게 눕히듯, 후려 치듯 뻗어낸 것이다. 그는 검풍을 일으킨 것이다. 아주 적절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얼음의 원반들은 그대 로 부서지더니 날카롭고 작은 얼음의 파편이 되어 몰아치듯 날아오고 얼음의 창들은 오히려 스산한 냉기까지 휘감고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쳇! 念火!" 그가 수인을 맺으면서 손을 뻗자 마자 새하얀 불꽃이 화악 하고 뿜어져 나갔다. 은색의 영 기와 조화된 염화는 단순간에 스펙트럼으로 흰 빛을 뿜어낼 정도로 강한 열기를 뿜어내는 화염이 된 것이다. 얼음 조각들은 순식간에 녹아서 물이 되어버렸지만 소녀는 그 사이에 수 인을 맺고 주문을 외움으로써 영법을 시전했다. "氷雪擊!" 얼음의 창은 강하게 회전하며 냉기를 퍼뜨렸고 주변에 있는 먼지, 물 입자 들이 뭉쳐들면서 말 그대로 눈보라가 되어버렸다. 눈보라, 그리고 뭉쳐든 손톱만한 얼음의 칼날들. 그것이 불 규칙하게 소용돌이치고, 회전하며 난류가 되어 소년을 덮쳐들자 뼈까지 얼려버릴 듯한 냉기 가 느껴졌다. 냉기의 바다에 빠져 버린 듯한 기분. 거친 바람의 칼날들이 소년의 옷을 찢고 혈선을 그어놓았다. 하지만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거칠게 휘둘렀다. 순간 은파가 퍼 져나가면서 냉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소년은 재차 검을 휘둘렀다. 분경分勁류의 검술로 바람을 갈라놓는 것이다. 쫘아아아악 하고 냉기와 얼음이 검극이 그리 는 선에 의해 벌어져 나가면서 소년은 질풍이 되어 눈보라와 얼음폭풍을 가르면서 뛰쳐들어 갔다. 옷이 너덜너덜해지고 새하얗고 섬세한 근육질을 지니고 있는 몸이 찢겨 피를 흩었지 만 그건 얕은 자상에 불과했다. 피는 뿜어져 나오긴 했지만 금방 얼어붙었다. 서리가 끼고, 머리카락에 성에가 달라붙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보호하며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검경중 척경尺勁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경이 없이는 참 힘들다. 검기상인도 척경에 포함되는 경인 것이다. 원거리에서 쳐서 닿게 하는 것. 검풍 역시 그의 일종이다. 소년의 몸 에서는 아예 척경이 그 권경이 되어 간극을 모두 지배하고 있었다. 거대한 영기의 회오리를 몸에 휘감은 소년은 얼음의 바다를 가르고 나오자 날아드는 염화를 휘말아서 비껴내 빙설폭 풍에 부딪히게 했다. 폭발이 일어나면서 흙먼지가 우수수 일어나 소년의 몸을 가렸다. 바람 은 흙먼지를 몸에 닿지 않게 해 주었다. 척경, 풍파風波! 검이 그어졌다. 그리고 요란하게 퉁겨지면서 공기층을 두드렸다. 공기층을 두드렸을 뿐인데 은색의 영파가 전이되면서 공기의 충격파는 파도가 되어 소녀에게 밀려들어갔다. 염화의 잔 여 폭발을 모두 밀어내버린 은파는 그대로 쇄도했다. 물론 그의 사매는 간단하게 은파를 쳐 내고 소년에게 역습을 가할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일격필살一擊必殺의 각오로 몸을 날렸 다. 살을 주고 뼈를 친다. 골참육단骨斬肉斷의 각오였다. "차앗!" 짧은, 그러나 힘이 충분히 실린 기합과 함께 은빛이 예리하게 튀어 올랐다. 5. 소녀는 일단 가볍게 밀려오는 은파를 어느새 한 장 꺼낸 영부로 밀어냈다. 영부에서 찬연한 빛이 흘러나와 은파를 밀어낸 것이다. 소녀는 은파가 밀려 나간 즉시 영부를 집어 던졌다. 방호부防護符라는 이름을 지닌 영부는 흰빛을 뿜어내며 원호를 이루었다. 순간 튀어오른 은 빛과 원호가 맞부딪혔다. 은빛의 영기와 백색의 검기가 뒤섞여 찬연한 은백색을 발하고 있 는 검날이 더욱 더 백열하면서 타올랐다. 은백색과 흰 빛의 불똥이 주변에 튀고 스파크가 흘러다녔다. 그 힘의 격돌 파장만으로도 민간인은 죽음을 맞을 정도였다. 쩌어어엉! 그그그그그극! 커다란 물리력을 머금은 금속과 금속이 마주쳐 떠는 소리와 강판을 강철조鋼鐵爪를 낀채 긁 어내리는 듯 하면서도 상당히 무거운 소리가 동시에 일어났다. 동방의 패검이나 아스타르의 레이피어나 세이버 류에 가까운 진야월영과 상급 영법이 깃든 방호부이긴 하지만 그것이 그 려낸 얄팍한 장벽이 내는 소리라고는 생각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무겁고 둔중한 것들이 서 로 부딪히며 깎여나가는 소리 같다. 그라인더로 쇠를 갈 때 나는 소리와 적어도 10t이상 되 는 쇳덩이가 지면과 마찰하며 내는 소리를 융합하면 이렇지 않을까 할 정도였다. 검날과 방어부의 면이 닿은 곳에서 요란한 백색 불꽃이 튀어올랐다. 까가가각 하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퍼졌으나 검날에서 문득 찬란한 은백색 기운이 안개처럼 퍼져나와 검을 휘감기 시작했다. 소년의 몸에서부터도 지독한 은백색 기운이 피어올랐다. 언제 머리카락을 묶은 끈 이 끊어지거나 풀어졌는지 연보랏빛의 머리카락이 불꽃처럼 흔들리며 공기중으로 너울너울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도 어마어마한 은색의 영기와 체내에서 운용되는 기운이 합 쳐져 은백색의 회오리가 되며 수증기가 끓어오르듯 일렁이며 퍼져나갔다. "카아아아아앗!!" 거센 기합. 마치 짐승이 포효하는 것만 같은 거센 기합이 그 지독한 마찰음마저도 억눌러버 렸다. 기백이랄까. 힘으로 밀어 붙이는 것이다. 이제 완전히 마주치고 있었고 또 근거리였기 때문에 소년이 매우 유리했다. 이대로 밀어 붙인다면 이길 가능성도 상당히 높은 것이다. 그 러나 그의 사매도 보통 여자가 아닌지라 방호부의 힘은 뚫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까가아 앙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은백색의 기운이 스르릉 하고 직선을 그렸다. 검이 휘 둘러진 것이다. 방호부를 베어버린 검날이 그어지자 검날의 궤적에서 스르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은백색의 빛이 직선으로 뿜어져 나갔다. 사르르릉 하는 소름이 돋는 소리와 함께 전면의 돌, 나무, 공 기가 완전히 베어져나갔다. 어마어마한 공격이었는데 치명적인 예기를 뿜어내고 있어서 소 드 익스퍼트 하급 정도라면 그 예기만으로도 절명할 수 있을 정도였다. 허약한 마법사, 그것 도 무방비의 마법사라면 말할것도 없었다. 영기와 기가 조합되면서 어처구니 없는 위력을 선보인 것이다. 소년은 그런 엄청난 공격을 하고도 힘이 남아 도는지 그대로 신법을 발휘해 몸을 그대로 띄워올리며 회전시켰다. 치이이이이익! 검이 은선을 그리며 나선을 그리며 어지럽게 사방으로 짓쳐나갔다. 사방으로 쇄도하는 은백 색의 영검기! 그것은 이제 영기검화靈氣劍花가 된 것이다. 그 예리함과 파괴력은 보기 드문 것으로 소드 익스퍼트 중급인 소년이 영기와 진야월영의 힘을 조합해서 만들어낸 비검기秘 劍技이며 비오의秘奧意인 것이다. 그 절삭력만 하더라도 어검강에 맞먹을 정도였다. 에테르 윙Ether Wing 정도라면 어떻게든 막아낼 수는 있겠지만 발출형 검기나 검강과는 달리 이건 사검絲劍처럼, 그리고 채찍처럼 출렁이며 변화하며 검화를 연이어 피워내는게 아닌가? 은백색의 꽃과 꽃잎들이 펼쳐졌다. 순백의 설원 위에서 은색의 꽃이 핀 듯한 광경이었다. 은 색의 꽃잎의 치명도는 어검강에 준하거나 상회하고 있었으므로 일단 스치기만 해도 두조각 나다 못해 분해되어버릴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영기경靈氣勁에 실린 예리함과 그 파괴력이 조화되자 검의 자체는 모자라고 어설프긴 했어도 틀림없이 강력하고 흠 잡을데 없었다. 아 무리 엉성해도 파괴력이 높으면 막아내거나 피하기 힘든게 사실이었다. 아무리 어설픈 동작 이어도 스피드가 음속이라면 막아낼 수도, 피할 수도 없는게 당연하다. "으으읏!" 그때 소녀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남빛 영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 리면서 어쩔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마에 두른 끈을 풀었다. 순간 그녀의 미간에서 청백 색의 문양이 빛을 찬연하게 발했다. 뭐랄까? 만트라Mantra와 비슷한 문양이면서도 또 뭔가 룬Rune 문자와 비슷해서 도저히 구별 할 수 없었다. 범어 문자와 같기도 하고…… 하지만 틀림 없는건 지독히도 강력한 영력이 풍긴다는 것이다. 머리띠 자체에서도 어마어마한 영력 이 깃들어 있었는데 그런 머리띠로 봉했음에도 항상 힘이 새어나온 문양…… 소녀는 머리띠에 수를 놓아서 미리 영력을 묶을 수 있도록 해둔 금제를 풀고 머리띠에 깃든 영력을 모두 회수했다. 남빛의 영기는 한층 더 강해지며 은백색으로 춤을 추는 꽃잎들과 격 돌했다. 은백색의 꽃잎들이 폭풍에 휘말려 하느작거리며 윤무를 추는 것 같았지만 치명적인 위력을 지녔다는건 변하지 않는다. 콰콰쾅! 콰콰콰쾅! 연이은 폭발. 그리고 소녀는 입에서 피를 한모금 왈칵 토해냈다. 그건 소년도 마찬가지였지 만 소녀쪽이 타격이 더 심하다는건 확실했다. 하지만 소녀는 조금 씁쓸한 웃음을 입가에 띈 채 머리띠를 품속에 집어 넣더니 수인을 맺으면서 빠르게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녀로 써는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은 힘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아이덴티시 크라이시스 정도에 무너질 그녀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힘든 건 사실이었다. "태고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위대한 힘의 조각! 그 힘의 조각을 계승한 영혼에 가해진 금 제를 풀어 이 자리에서 그 신의 위를 해방한다! 봉신영력진식해제!" "뭐, 뭐라고?! 그런!" 소년은 깜짝 놀라 바라보았지만 이미 그녀의 미간에 존재하는 문양은 청백색의 빛을 사방에 작열시키면서 어마어마한 영력의 회오리를 일으켰다. 그녀의 몸에 흐르는 남빛의 영기가 순 간적으로 청백색 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청백색으로 작열하는 문장이 공중으로 투영되 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 인간의 냄새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때. 순간적으로 놀라운 양의 마나Mana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시전어를 읊었다. "나, 위대한 마력을 사역하는 자의 이름으로써 불멸한 존재의 모든 것을 포박한다! 위대한 마나, 위대한 룬, 위대한 의지의 힘으로써 그대의 자유를 박탈할 언령의 밧줄을 펼치나니! 임프리즌먼트 투 이모탈Imprisonment to Immortal!" 청백색 문양들이 펼쳐지면서 차르르륵 하고 배열되면서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입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을 때 바로 마나로 인해 생성된. 언령의 밧줄이 그녀의 몸에 감겨들어갔 다. 투명하고, 보이지 않는 언령과 의지와 마나의 밧줄. 밧줄이라기 보다는 족쇄에 가깝지만 말이다. 9서클 주문인 임프리즌먼트 투 이모탈은 순간적으로나마 불멸적이거나 그에 준하는 존재들의 영성을 묶는 주문으로 단지 5초 정도 여유를 줄 뿐이지만 그 타이밍에 9서클 마법 사라면 저 멀리 사라져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아홉번째 서클의 힘과 아홉번째 클래스의 힘이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에 청 백색 문장들은 다시 하나로 겹치면서 그녀의 이마로 빨려들어갔다. 게다가 이 주문의 사용 자는 저 청백색 문장에 봉인된 존재보다 훨씬 강력한 영성을 지니고 있었다. 본인이 완전히 자각하지 못했을 지라도 말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영성이 깃든 축적 마력과 그의 영성이 전달된 의지가 조종한 체외의 마력이 결합되어 거의 10서클에 준하는 힘을 발휘했기 때문에 채 봉인이 풀리기도 전에 불멸의 힘이 봉인된 것이다. 아마 소녀가 봉인을 풀고 나서 그 힘을 조정했건, 그 힘에 먹혔던 간에 인간의 그것인 육신 은 거의 붕괴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을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사용한 것이긴 했어도 의지를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쉽게 원래의 봉인상태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그 힘의 여파 만으로도 충분히 소년이 사용한 영기검화는 깨어져 있었다. 소녀와 소년 모두 막대한 신체 적, 정신적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그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움직임에 질려버렸다. 평상시라면 그렇게 타격을 입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각혈 까지 한 상황인 것이다. 9서클 주문이라고 해도 임프리즌먼트 투 이모탈의 스펠은 봉신술식이다. 그러나 하급 신이 라 할지라도 단 1초면 가볍게 깨고 나올 수 있는게 보통이었다. 이 술식 자체가 원래 진짜 신을 목적으로 한게 아니라 타락한 신의 휘하 존재이거나 신급으로 향하는 데미 갓 류를 잠 깐동안 묶을 수 있는 스펠일 뿐이었다. 인간에게 이를 가하면 물론 9서클 마법사라도 쉽게 풀려 날 수 없겠지만 이 봉인주문은 봉신을 위해 만들어진 주문인 것이다. 그런 주문 치고 는 빈약하지만 그래도 강력한 것은 사실이다. 즈위이이잉! 순간 공중에서 아무런 기척도 없는 자리에 어둠이 풀려 나가고 주문이 해체되면서 부옇게 보이면서도 또 찬연하고 화려한 빛살을 머금은 광익光翼. 에테르 윙을 펼친 한 인물이 보였 다. 중첩으로 보조주문들을 건채 9서클 주문을 사용하는 건 그로써도 조금 무리였는지 촉매 로 특급 마법기이며 그 특급 마법기의 수좌를 차지하고 있는 혼연의 지팡이를 꺼내서 그것 으로 힘을 증폭한 모양이었다. 두말 할것도 없이 바인이었다. 그는 사실 이런 사적인 일에 참견할 만한 놈이 아니었지만 이 경우는 자신도 모르게 소녀를 도운 것이다. 솔직히 조금 궁금함이 발동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체 이놈은 동생을 핑계 로 모든 여자에게 마수를 뻗치기로(?) 작정한 것일까? 아니, 궁금함은 3할이고 흥미가 3할 이며 나머지 4할은 과거 일 때문이었다. 궁금함이란. 바로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영법과 염 술에 대한 것이었다. 마나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힘이 작용한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기와 동일하면서도 마법과 비슷한 힘을 쓸 수 있다니. 에테르에서 마나가 파생되었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다. 미뉴엘이 알려준 것이기 는 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영기에서 마나가 파생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영기의 효용은 다 채로웠다. 그에 비해 에테르는 조금 그 다채로움이 모자라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그것은 그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다. 오히려 에테르가 영기보다 조금 더 우위에 있음이 진 실이다. 에테르는 그 영기의 마나적 성향에 대해 강력한 저항성을 지니고 있을뿐더러. 에테 르 역시 영법이나 염술처럼 사용할 수 있는 성향이 내재되어 있었다. 좀더 비자유 적인 성향에다가 날개를 이용한 힘의 사용이 훨씬 간편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뿐이다. 신전에 전해져 내려오는 수련법으로 에테르를 영파동에 동화시키고, 그것을 축 적한다. 그리고 그 축적한 힘을 '신앙'으로써 변화시키고 신전 특유의 수련방법으로 받아들 인다. 그런데 그 수련방법이라는 것이 뭐랄까? 신에게서 힘을 빌어온다는 착각을 유발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신성력이 신의 증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테르는 신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신들은 대부분 에테르, 영기, 마나, 기력을 모두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밤의 어둠을 에테르 윙으로 밀어낸채, 오른손에는 어쩐지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약간 회색을 띈 떡갈나무 지팡이 같은 혼연의 지팡이를 쥐고, 광익 한쌍을 달고, 후드를 젖 힌채 그 아름다운 흑발을 흩날리며 지적이면서도 냉엄한 얼굴로 공중에 떠서 그들을 바라보 고 있는 모습은 정말 심장에 찬물을 쏟는 것만큼이나 충분한 타격을 소년과 소녀에게 심어 주었다. 네거티브 카리스마적인 느낌과 함께 지적이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모두 지니고 있는 바인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가느다란 몸에 제법 길어진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것도 그 환 상(?)에 한몫 하긴 했지만 말이다. 바인에게는, 그 예리하고 삼엄하면서도 깊디 깊은 기도氣道가 있었다. 정신적인 기라고 밖에 설명할수 없는 어떠한 흐름. 그의 주변에는 깊은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시정잡배들도 충분 히 인식할수 있는 무거운 느낌. 신경이 굵어서 꺼내고 파면 그대로 경동맥으로 쓸수 있을 정도가 아니라면 무시할수 없는 흐름이었다. 그런 인간들이라면 틀림없이 무시할 수 있겠지 만 바인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기운은 정말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확실히 비인간적非人間的인 분위기에 인간의 냄새도 많이 사라져 있는 바인은 스스로 누군 가에게 왕족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믿어줄 정도로 그 분위기가 위엄에 차 있었다. 도저히 인 간으로는 생각 할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인 분위기였다. 귀족적인 아름다움을 지녔으면서도 식자적인 분위기까지 함께 가지고 있어서 동성연애자건 정상적인 여성이건 매혹시켜 버릴 정도였다. 뭐 애들은 좀 무서워 하긴 하겠지만…… 그런데 바인은 애초에 갓 태어난 갓난아기건 한참 청춘을 불사를 청년이건 염세주의자 중년 아저씨건 심각한 허무주의자 노인이건간에 매우 무서워 해야 할 상대다. 상식이 먹히지 않 는데다가 9서클, 9클래스급 마도사 아닌가? 거슬리거나 자신의 목적에 방해가 된다면 인륜 을 가차없이 깨버리고 인간의 권리를 유린하고 하는 것쯤은 장난으로 여길 인간이다. 정말 필요하다면 9서클급 유성소환계열 주문을 모조리 이 행성에 퍼부어 버릴 수도 있는, 한마디 로 확실하게 말해서…… 막가는 놈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 두명이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일단 생긴게 아름답게 생겨먹었고 분위기가 장난이 아닐 정도로 냉엄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데다가 분위기 자체부터가 신비주 의적이고 그녀의 몸에 봉인되어 있는 중급 광무신狂巫神(중급 무신이라 해도 미쳐버린데다 가 그 자체로 하급신을 능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폭주한 즉시 이 행성은 멸망이다) 조차도 봉인해버렸다. 그 힘을 잃어서 하급 무신 정도 밖에 되지 않겠지만 그정도만 해도 갓 에이 전트God Agent(동방에서는 선경仙境) 두, 셋쯤은 간단하게 감당할수 있는 괴물이다. 이성 도 마비되어 있으니 말 그대로 파괴마인 것이다. 그 디스트로이어Destroyer가 깨어나도 바 인 주변에서 그를 보호하며 또 감시하고 있는 존재들이 나서긴 하겠지만 위험천만 하다는 것 에 변함은 없었다. "그 봉인…… 마법으로 행해진 것이 아니더군. 어떻게 봉했지? 그 힘은 신급의 그것이라 불 러줘도 모자란 것이 아니었다." 바인은 밑도 끝도 없이 질문했다. 뭐 자기 소개고 뭐고 잔말 빼고 이것부터 질문한 것이다. 바인도 마도에 몸을 담그다 보니, 그리고 9급의 마법을 달성하고 보니 그 프라이드와 오만 함이 보통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반말부터 찍찍 내뱉는 것이겠지. 그러나 아스타르 대륙 은 머리가 텅텅 빈 귀족들과 왕족들이 지배하고 있는 봉건주의, 전제주의로 돌아가고 있는 세상이었다. 바인은 한 나라에서 절대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도를 내뿜고 있는 것이다. 가리려면 얼마든지 가릴수 있지만. 이것은 그의 존재 영성. 그 본질에서도 기인되는 것으로 사멸과 붕괴라고는 하지만 신적인 영성의 힘인 것이다. 아무리 강해도 인간이라면 복종시킬수 있을 정도로. 그 힘이 아직 강하 지 않았지만 파괴적인 힘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게 거대한 위엄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데미 갓이나 갓 에이전트 급이라고 해도 바인이 사멸과 붕괴의 힘을 일격이라도 적중 시킨다면 영체격살의 힘에 따라 영체가 상당부분 파괴될 것임에 틀림은 없었다. '맞출수' 있 다면 말이다. 허차원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갓 에이전트라면 아직 신의 영성을 유인으로 하는 힘이어도 시간적 좌표까지 더해서 4차원에 국한되는 그의 힘에 맞을 리가 없었고 데미 갓 역시 물리적이고 마학적인 힘으로 어느정도 방어할 수 있었다. 그의 사멸은 영체에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생명의 사멸에 아직 더 비중을 두고 있었고 그의 붕괴 역시 영혼마저 소멸시킬수 있지만 정신붕괴보다는 물질과 힘의 붕괴에 더 비중을 두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에 대해 깨닫는다면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겠으나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다. 그 위압감이 어디에서 기인 했든 간에 대단한 강자이 긴 하지만 상당히 약해진 상태라 둘은 그 힘에 자신도 모르게 동조해서 제압되고 있었다. 강자이건만 신급의 힘에는 버틸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영법靈法에 의한 것입니다." "영법……" 바인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가볍게 손가락을 들어 이마에 대었다 정확히 말하면 서클릿에 댄 것이다. 그는 서클릿의 힘을 빌어서 정신적인 구역을 빠르게 살피기 시작했다. 예전만 해도 떠올린 즉시 광기가 치밀 정도의 기억들도 간단하게 탐색하면서 그가 익힌 우주조화일월신 검류의 검보 내에 적힌 외경의 만물록에서 영법에 대한 기록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슬슬 불 멸적 존재의 자신을 자각하고 있는 그였기 때문에 그 기억이 물 쏟아지듯 간단하게 전체적 으로 읽혀졌고 그는 그 즉시 자신이 여전히 염으로 묶고 있던 임프리즌먼트 투 이모탈의 스 펠을 해제했다. 이제 그 문양이 충분히 그 힘을 회복 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봉인되서 떨어져 나간 것이었기 때문에 또 9서클의 주문을 이용해야 했다. "룬 매직 디스펠Rune Magic Dispell! 마나 스트림 인터피어런스Mana Stream Interference!" 수인을 맺으면서 여전히 광익을 펼친채 광익의와 휴암환, 그리고 혼연의 지팡이. 이렇게 셋 의 특급마법기를 이용해 룬의 힘으로 이루어진 마법적인 제 1차 보호막을 디스펠한다음 그 와 공명하고 있는 마나 스트림에 간섭을 가했다. 정묘하게 얽힌 구역을 칼로 찌른것이나 다 름없었기 때문에 간단하게 화악 하고 풀린 마나의 흐름은 다시 본연의 구성으로 되돌아갔 다. 과연 청백색으로 작열하던 빛이 사라지고 그냥 은은한 푸른빛의 안료로 그려넣은 듯한 문장이 미간에서 영기를 발하고 있었다. 소년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진야월영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영력을 운용하고 기경을 운 용해서 어느정도 내상을 치유한 것이다. 소녀는 자신이 내상을 입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지 만 일단 다시 회수한 영기의 자체적인 힘만으로도 내상이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소년은 빠 르게 대지를 박차고 움직였다. 소녀가 정신을 팔고 있는 상황에서 만이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은빛이 역동적인 동작으로 탄력있게 튀어올라 세 개로 나뉘었다. 은 백색의 영검기로 어느새 뒤덮힌 검이 빛을 발했다. 6. 그러나 바인이 그것을 멍청히 보고 있을 리가 있나? 일단 실상을 파악하고 물러나는 것은 별로 인간애에 구애받지 않는 그여서 양심에 일말의 흔들림도 없지만 일단 벌여놓거나 참견 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것이 그다. 그가 손을 뻗고 휘두르자 전위가 생겨나면서 번 갯불이 튀었다. 쫘아악하는 소리와 파지직 하는 소리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푸른 번갯불이 연속적으로 튀며 꾸르르르 하는 뇌음과 함께 소년의 검에 작열했다. 은백색 검기로 뒤집어 싸 안았다고 해도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주문이 괜히 4서클이 아니다. 전격이라고 해도 그 자체 주문으로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바인은 그 사이에 술식을 이 용해 마나를 움직였다. 사실 술식이라는 것이 왜 필요하냐면 마나의 재배열을 위한 공간좌표계산과 정신변전식에 있지 마나 자체를 술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증거로, 감각이 있다면 4서클 마스터가 1 서클 주문 정도는 암산도 없이 염만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바인 역시 촉매나 주문까지 생 략하고 낮은 서클(?)의 주문은 남발해오지 않았던가? 시동어조차 없이 발동한 라이트닝 볼 트는 전광을 뿜어내며 소년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소년은 잠깐 벼락으로 인해 감전 되고 옷이 그을렸으나 바로 충격파를 해소하기 위해 물러난 자리에서 검을 거칠게 휘둘렀 다. 아직 패닉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소녀의 몸으로 은백색의 검기가 파고들어갈 찰나 다시 전광이 튀겼다. 그런데 이번 전격은 보통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우르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벼락의 궤적이 한가닥, 두가닥 내리꽂히면서 파고들더니 바닥에 부딪혀서 패이거나 흙을 태우지 않고 그 자리에서 멈추더니 계속 변전위하며 구의 형태로 계속 흐르는게 아닌가? 역전하 가속을 시작하는 것이다. 자그마치 50여가닥의 라이 트닝 볼트가 내리꽂혀 벼락의 구를 만든 것이다. 쩌르르릉 하는 낮은 뇌음을 흘리면서, 사람 머리통의 지름보다 네, 다섯배는 큰 뇌구가 형성되며 스파크를 형성시켰다. 다가오는 먼지를 불사르기 때문에 전광과 함께 붉은 불꽃까지 일어났다. 순간 벼락의 구의 전광이 더 강렬해 지기 시작했다.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게 변하고, 그 흐름이 유리구슬의 안쪽에서 수백만가닥 의 벼락이 튀어 다니는 것처럼 변함과 동시에. "Thunder-Bolt Sphere. Broken, Spout Dance of Lightning!" 바인의 시동어가 터져나왔다. 그는 혼연의 지팡이를 가볍게 공중에 찔렀다. 그러자 파지지직 하는 요란한 뇌성이 터져나오면서 우르르릉 하는 기음과 함께 혼연의 지팡이에서, 라이트닝 볼트보다 열배는 더 두꺼워 보이는 어마어마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순간 벼락의 구는 제 법 되는 높이로 솟아올라버렸고 그 강대한 벼락과 벼락의 구가 부딪혔다. 순간 시야가 순백 색으로 폭발했다. 콰르르릉 하는 소리처럼 들리는, 소름을 돋아오르게 만드는 뇌성과 뇌명이 일면서 아무리 적어도 천가닥 한참 넘어보이는 라이트닝 볼트들이 터져나온 것이다. 마치 '뿜어'지듯 터져나온 벼락의 궤적은 사방으로 방사되었다가 멈칫 하며 그대로 꺾여 소년을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소년도 타격을 버티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제법 근성이 있군. 이번으로 전투불능이 되긴 하겠지만…… 아니. 버틸수 있으려나? 그 은 색의 영기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어둠속에서 타오르는 전광의 강. 수많은 벼락의 빗줄기가 쏟아져 나와 쇄도하는 모습은 정 말 장관이었다. 뇌전의 화살들. 소리조차 울리지 않고 파고드는 푸르고 흰 벼락의 춤. 정말 로 파괴에서부터 내뿜어지는 벼락의 춤이었다. 과연 바인의 기대대로, 아니 예상대로 소년은 춤을 추듯 검을 휘두르며 은파를 거푸 뿜어냈다. 연거푸 날치는 파도같은 은색의 파장이 벼 락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은파에 내리꽂히는 벼락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나고 2천여발에 달하는 모든 라이트닝 볼트가 모두 은파에 내리꽂히자 은색의 파도는 완전 히 깨어져 나가면서 밀려 나갔다. 그러나 소년은 그때 또 제 이격을 펼쳤다. 진야월영의 검 극을 잡은채 가볍게 튕기면서 휘두른 것이다. 살짝 검 옆날로 공기를 밀어내듯 파경을 터뜨린다. 바람과 파도. 이상적인 배열이 일어났다. 은색의 영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일어나고 백색의 파도가 밀려나갔다. 합쳐진 그것은 바 람과 파도의 결합이 되어 은백색을 사납게 뿜어냈다. 과연 벼락의 난무와 부딪히면서 그것 들은 서로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다. 연속적으로 전위를 변화시키고 주변의 전하를 어그러뜨 리면서 이제 거의 파도가 되어 타오르는 벼락의 춤. 그리고 은백색의 소용돌이를 잔뜩 머금 고 있는 파도. 바인은 상당히 여유 있게, 그답지 않게 제법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보면서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달의 힘을 최대한 끌어모아 은 색의 파도와 소용돌이를 뿜어냈다. "흐음. 괜찮겠군. 믿어도 되겠어. 하나 더! 데스 플로시브 룬Death Plosive Rune!" 원래는 플로시브 룬이라고 불리는 이 기법은 서클식에는 없다. 클래스식의 응용판인 것이다. 축적한 마력을 풀어낸 바인은 그대로 혼연의 지팡이를 들어 공중에 룬의 문자를 그리기 시 작했다. 간단하게 휘갈기듯 그었을 뿐인데 어느새 찬연한 회색빛을 발하는 기이한 문양이 공중에 떠 있었다. 여러 가지 룬 문자를 겹친듯한 모양새였다. 그는 공중에 떠 있는, 사람 몸통만한 그 룬 문자에 사멸의 힘을 불어넣었다. 불길한 회색의 광휘를 잔뜩 머금고 있는 룬 문자에서는 겉보기만 해도 살기가 풍겼다. 원래 서클식의 플로시브 팡Plosive Pang이라는 주문이건만. 플로시브 팡은 정신, 육신적인 음파인데 그것을 맞으면 전신의 세포가 분할되고 파열하면서 느끼는 듯한 고통을 맛보게 된 다. 실제로 그 강도를 강화하면 육신을 완전히 파열시킬 수 있었다. 공격력도 대단한 주문인 데 그것을 룬 문자로 그린 후 마나를 음파의 전달매체로 사용해서 사멸의 힘까지 더한 것이 다. 바인은 그 주문을 변형시켜서 룬을 겹쳐 그 효과를 내는 룬 문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클 래스식 비주문마법이긴 하지만 이건 바인의 독창마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외에 는 쓸수 없는 마법. 어느 누가 천신의 위를 지닌 사멸과 붕괴의 힘을 인간으로써 몸에 담을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검술은 형편없군. 목검도 들지 못한 녀석에게 진검을 들려놓은 느낌이야. 으음. 확 실히. 구궁에 기초를 둔 검술 치곤 형편없군. 검의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잖아?' 그가 손가락을 딱 튕긴 순간 은파는 벼락을 밀어내고야 말았다. 수많은 벼락이 비산해서 대 지를 강타하고 공간을 가르며 사그라들었다. 연이어 폭발이 일어나며 대지가 시커멓게 그을 렸다. 어둠속이라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이들이야 자신들이 가진 힘을 이용해 시각을 강화 하고 영법사인 두명은 영안靈眼을 여는 등으로 대체하긴 했지만 지금은 일반인도 시각에 지 장이 없을 정도로 달이 밝았다. 만월이라도 그렇게 밝지 않은게 정상인데 공기가 깨끗해서 그런지 기울어지고 있는 달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아름다운 월광으로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그 광도는 꽤 밝았기 때문에 안그래도 어둠에서 지장 받지 않은 이 셋은 더 선명하게 사태 를 느끼고, 주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벼락을 밀어낸 은파가 주춤 한 사이 데스 플로시브 룬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것은 은파와 격돌했고, 강대한 회색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간단하게 은파를 뚫어버렸다. 6클래스 에 상당하는 마력을 뽑아내 사용했으니 이것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저쪽에서는 승복하 지를 못하겠는지(승복하면 죽으니까) 바인의 입장에서는 가소롭게도 몸까지 망쳐가며 주변 의 영기를 대량으로 빨아들이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은파에 은파가 겹치면서 파장의 힘 이 데스 플로시브 룬을 거푸 뒤흔들었다. 데스 플로시브 룬의 마력은 계속 따다다당 하는 소리와 함께 흐트러져 나갔고 마침내 검이 날카롭게 휘둘러서 뿜어낸 은백색의 검기에 맞은 순간 그 마나 배열을 깨어져 흐트러졌다. 그러나 회색의 잔영만은 안개처럼 뻗어나갔다. 사멸의 힘이었다. 소년은 기겁해서 신법을 전 개해 그 안개를 피했고 안개는 뻗어나가 저 멀리에 존재하는 나무 한그루를 휘감았다. 나무 는 순간…… 부스러져버렸다. 파사사삭 하는 소리와 함께 잎사귀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 도로 말라비틀어져 회갈색으로 물들어 부스스스 하고 가루가 되어 흩날렸고 나무 역시 말라 비틀어지더니 2, 3초 만에 완전히 죽어버린 무기질의 흙이 되어 쏟아져 내렸다. 우르르르 하 고 쏟아져 내린 그것을 보고 소년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이런 사악한 힘이!" "사악하다? 남의 힘을 매도하지 말아주겠나? 이 힘을 얻기 위해서 난 내 정신을 희생해야 했다. 인간성의 상당부분을 포기했지. 아아, 그렇다고 처녀를 잡아다가 제물로 바쳤다는 헛 소리는 아니라고. 차라리 그랬으면 속이라도 편하겠군. 자. 다시 간다! 일단 자네가 움직이 는걸 막아야 하니까! 훗, 칼에 맞든 창에 맞든 화살에 맞든 죽기는 매한가지다!" 바인은 지팡이를 핑그르르 돌리면서 가볍게 밀어냈다. 순간 장대한 구역의 마나가 움직이며 그의 지팡이를 중심으로 날카로운 선풍旋風을 일으켰다. 칼날을 잔뜩 머금은 선풍이 일어나 자 소년은 주저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은백색이 뿜어져 나오면서 선풍의 눈을 관통해버렸고 선풍은 힘을 읽고 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인은 여전히 여유 있는 표정 이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마자 즉시 공중에서 마나들이 재배열되며 무려 30여개체의 다른 주문들이 생겨났다. 파이어 볼Fire Ball에서 아이스 스톰Ice Strom,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윈드 블 래스트Wind Blast,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 등등의 주문들이었다. 바인의 마법사용은 더 완숙해져 있었고 지금은 세 개나 되는 특급마법기의 도움을 받아 그것들을 촉매로 마법을 사용 하고 있었으므로 정신력 소모도 현저했다. 화구들이 터져나가 폭발하고 아이스 스톰이 폭발 의 구름마저 감싸 얼어붙게 만들고, 벼락이 그 사이로 튀고 바람의 소용돌이가 불꽃과 냉기 로 인해 더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급격한 연소의 폭발을 휘감고 춤을 추며 파이어 애로우나 여 러 가지 관통주문들이 폭발의 구름을 꿰뚫고 지나갔다. 이정도면 5서클 이상의 마법사여서 포스 필드Force Field를 치지 않는 한 살아날 수 없는 공세였다. 방진이라 하더라도 잘 사용하면 300명 이상을 몰살시킬수 있는 강력한 공격인 것이다. 폭발 하며 주문끼리 부딪히며 마나 자체를 뒤흔들어 놓으며 연쇄폭발까지 해댔기 때문에 그 위력 은 6서클급 화염폭발 주문을 터뜨린 것과 비견될만 했다. 그러나 바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이한 제스쳐로군. "아. 소드 익스퍼트이기도 했었지? 피하면서 검막을 전개하다니…… 제법인데? 게다가! 여 기까지 뛰어오르다니 제법 게습 실력이 좋아!" 그렇게 말하면서 바인은 무서운 속도로 날개 두장을 연이어 휘둘렀다. 과연 그 사이에 하늘 로 도약한다음 바람을 염으로 움직여서 은백색 검기를 잔뜩 머금은채 예리하게 날을 갈고 있는 검을 휘두르던 소년은 기겁하면서 검으로 날개 두장의, 열 여섯차례의 강력한 공격을 막아냈다. 따다다다다다당! 연이어 울려퍼지는 소성. 그리고 소년의 몸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지만 바람을 운용해서 몸을 휘감아 가볍게 착지했기 때문에 타격은 없었다. 에테르의 결집체인지라 예리한 절삭력을 지녔고 소년 역시 폭발하기 위한 방출형 기술이 아닌 응집해 서 베는데 주력했으므로 둘 모두 폭발에 휘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에테르의 힘은 원래 방출 할때도 그다지 폭발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흐음. 좋아. 얕본 것을 사과하지. 소드 익스퍼트이면서도 마법과 비슷한 주술을 동시에 운 용하는 상대와는 처음 싸워봐서 그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어." 바인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에겐 여전히 여유가 존재했다. 지워지지 않는 여유. 그것은 바인이 자신이 저정도의 상대에게는 무너지지 않는 다는 것을 확신하는 눈이었다. 자만심이 아니다. 그는 자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의 힘으로는 머리카 락 한올 잘라낼 수 없는 상대가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중에 그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열번째 단계에 올라선 마법사와 신화경의 존재는 현재 이 행성에 단 한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존재도 바인의 적이 아니었다. 동대륙에 존재하는 현청도 지금 의 바인에게 있어서 상대는 아니었다. 현청이라 해도 8서클급 마법을 난무해대는 바인을 무 슨 수로 막겠는가? 순간 바인의 눈이 싸늘한 기운을 머금었다. "그러나 반항도 여기까지다! 나 자격있는 자가 말한다. 이는 권능있는 말이라 명하니 죽으라 하매 죽으리라! 파워 워드 킬Power Word Kill!" 임프리즌먼트 투 이모탈의 주문은 아무리 특급 마법기를 촉매로 사용해도 시전어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파워 워드 킬 주문보다는 마나 사용량이 배는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때는 혼연의 지팡이와 광익의만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휴암환까지 더해서 사용하자 그의 정신력은 대단히 증폭되었고 추가로 마나의 사용량도 늘어났다. 그래 서 지금은 7서클 소규모 주문쯤은 시동어만으로도 발동할 수 있을 정도였다. 파워 워드 킬. 권능언령살權能言靈殺. 물론 바인은 지금 소년을 죽일 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위력을 5분의 1쯤으로 조절해 두었지만 소년이 버틴다고 하더라도 9할 이상의 영력을 소 모할 것이고 정신력, 체력 역시 대부분이 고갈될 것이다. 바인과 소년의 힘, 정신력 격차는 그정도로 수준이 차이났던 것이다. 과연 무형의 명령이 소년에게 가 닿자 소년의 눈이 허옇 게 뒤집히면서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안색 역시 더 창백해져 갔으며 피부 역 시 마찬가지였다. 몸의 경련이 점점 심해져갔다. "호오…… 제법 잘 버티는데? 죽지야 않겠지만…… 고생좀 하겠군." 바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제압을 위해서라면 파워 워드 스턴Power Word Stun(8서클. 권능언령도權能言靈倒)이 더 좋겠지만 그래도 권능언령살처럼 힘을 다 빠지게 만들지는 못한다. 권능언령도는 말 그대로 졸도 시키는 주문인 것이다. 후유증이 제법 상당 하지만 파워 워드 킬 수준은 아니었다. 바인은 고작 제압을 위해서 위험천만한 주문을 구사 한 것이다. 자기 주문 제어에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제압을 위해 파워 워드 킬을 사용하다 니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었다. 순간 진야월영에서 광망이 뻗어나오며 검명을 일으켰다. 눈에 이채를 띈 채 바인은 생각에 빠지면서도 권능언령살의 힘을 약간 증가시켰다. 검명이 파워 워드 킬을 무효화 하는 것을 느낀 것이다. "에고 소드Ego Sword? 마검도 아닌데 에고가 셋팅되어 있다니 이상한데…… 혹시 혼이 깃 든 검[Soul Brand]일까? 힘도 제법 쓸만한 것 같군." 바인은 소년의 생사보다는 검에 더 관심이 생긴 모양이다. 아, 정말 완전히 악당의 모습 아 닌가? 물론 선과 악의 기준이 모호하고 절대적인 선악과 정의와 불의란 없게 마련이지만 인 간들이 볼때는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 뇌리에 도달하는 천연덕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가 없었다. 사람을 저렇게 죽음 앞에 내 몰고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행동하다니. 확실히 바인이 휴머니스트도 아니고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타인을 위해 진정 희생하고 측은해 할 수 있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 타인에게 얻어들은 휴머니즘은 싸구려가 되게 마련이고 그 감성 역시 얕게 마련이다. 하지만 바인은 지금 있는지 없는지 모를 인권 이나마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스승을 죽인 패륜아라도 사형은 사형이고 미운정도 정인지 소년은 그 모습을 외면하 고 있었다. 아니, 성격이 약해서 그랬던 것일까? 바인은 여상스럽다는 듯 소년이 털썩 쓰러 지고 진야월영의 검명이 멎자 피식 웃었다. 안죽었군. 죽건 말건 사실 별로 상관이 없었다. 바인은 느긋하게, 꼭 식사 전에 신문이라도 챙겨 읽으려고 현관쪽으로 향하는 듯 여상스러 운 걸음으로 마령검 진야월영으로 향했다. 7. 우우우우우웅! 바인이 다가오자 진야월영은 경고라도 하려는 듯 발작적으로 검명을 토해내며 꿈틀거렸다. 그러나 바인은 피식 웃으면서 허검을 불러내서 진야월영의 검신에 칼끝을 얹었다. 허검에 회색의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의 마력인 것이다. 마력이 진야월영으로 타고흘러가며 기 괴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끼아아아아아!! "이 검. 성질을 좀 죽일 필요가 있을 것 같군." 그러나 바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검을 더 들이댄채 마력을 흘려보냈다. 회색과 은색의 파 장이 연이어 터져나오면서 회색의 스파크가 일어났다. 진야월영이 비명을 흘리면서 꿈틀대 자 바인은 냉엄한 신색을 회복하고는 거친 검명이 들리건 말건 계속 마력을 흘려넣었다. 그 리고 조금 얌전해졌다 싶자 손을 회색을 띈 마력으로 감싼채 검신을 가볍게 밟았다. 허검을 다시 내면으로 되돌린 후에 말이다. 그리고 바인은 약간의 리듬을 주어서 탄력있게 발로 검을 차 올렸다. 검신이 빙글 돌며 어 느새 그 손잡이가 바인의 손에 쥐어졌다. 검이 다시 발악을 하며 은색의 기운을 뿜어냈지만 바인은 마력을 이용해 그것을 감싸버리고는 조용히 왼손을 들어 어둠의 장막을 펼쳤다. 빛 입자를 밀어내는 어둠의 장막이 펼쳐져 달을 완전히 가려버리자 검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던 기운이 대폭 감소했다. "역시 달의 음기를 받아들이는 음령기검이었군 그래. 제법 연구 가치가 있겠어." 마력을 강제로 밀어넣어 영기에 대해 느껴보던 바인은 마력을 이용해서 검신의 구석구석을 강제로 탐색했다. 이상한 구석은 없지만 검 자체에 서려있는 영기는 확실히 느껴진다. 근원 은 검신 자체. 검 손잡이 자체는 별로 특이할게 없지만 음기와 영기에 잔뜩 물들어 있었다. 만들어진지 제법 세월이 지난 검 같았다. 그러나 손잡이도 검신도 흠 하나 없었다. 바인은 별 것 느껴지지 않자 바로 꺾어버릴 생각이었으나 그래도 콜렉션으로써의 가치 역시 충분하 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일단 바닥에 꽂았다. 이어서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봉마술식封魔術式. 클래스식과 서클식을 함께 운용하는 방법이었다. 기존의 봉마술식과는 전 혀 다른 아류我流의 봉마술식인 것이다. 일단 에테르Ether를 이용하는데 그것을 위해 광익 의를 촉매로 사용한다. 무엇이 촉매이든 상관 없지만 광익의 자체가 특급 마법기 인데다가 에테르의 힘도 내재되어 있어서 그것을 소모하지 않아도 좀더 수월하게 힘을 부여할 수 있 었다. 일단 마력을 뿜어내서 제마制魔의 힘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에테르 자체를 성聖의 성향으로 변이시킨다음 마력과 융합 후에 반마反魔를 상징하는 룬의 문양을 그린다. 그리고 이어서 모든 에테르, 엘리멘탈, 마나식의 룬을 배열하면서 12황도의 방식으로 룬을 도열시킨 다. 이것만으로도 바인이 축적한 대부분의 마력이 날아가는 것이다. 진야월영은 주인이라는 촉매가 없어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마령검이고 자아도 있었 기 때문에 바인은 일단 봉인해서 위험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소년의 허리에 매여져 있는 검집을 가져다가 꽂아넣으면 되겠지만 그건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항상 꽂아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연구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마령검 진야월영의 앞날이 캄캄하기만 하다. 바인이라면 온갖 시약을 꺼내서 부어대고 마법 을 걸고 휘두르고 아다만티움과 미스릴 등등으로 경도 비교를 해보고 조각을 떼어내서 조사 하기 위해 9서클 궁극주문을 사용하는 짓도 감수할 것이다. 뭐 고작 조각 떼어내는데 9서클 궁극주문이 필요하겠는가? 아무리 써봤자(?) 8서클급 중력주문 정도겠지(8서클 중력주문이 면 약간의 응용만으로 중력장을 이용한 마이크로 블랙홀을 만들수도 있다!). "Celestial Aura! Zodiacal Hexagram. Rune Spell to Sacred Arrangement!" 광익의의 에테르를 룬의 힘으로 셀레스티얼 오러로 감싼다음 여러 룬의 문장을 배열해 황도 대를 이룬다. 이 행성은 봉인계의 지구와 매우 비슷하여 황도대 역시 비슷하게 짜 맞추어져 있었다. 별자리야 인간들이라면 제멋대로 짜 맞출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어처구니 없는 형상을 땅의 형상에 짜 맞추는건 쉽다. 인간들은 무언가를 보고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면 얼 마든지 재해석해서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성당이나 종교적인 무언가에서 대 화재가 나 연기가 피어오르면 그 모양을 악마의 얼굴로 본다던가 아니면 사진을 조작해서까 지 그런 루머를 돌게 만든다. 할 일이 없는 걸까? 아니면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에 의미 를 두는걸까. 바인은 룬의 스펠을 룬 문자에 하나하나 찍어 넣고 그것으로 진야월영의 검신에 날인을 가 했다. 신성의 배열로 룬을 정리하면서 날인을 찍어대니 아무리 진야월영이라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특급마법기라도 봉할 정도로 강력한 봉인인데 아무리 영기를 다루는 검이라도 이 봉인을 깰 리가 없지. 게다가 마령검의 음기에 반하는 신성한 힘을 머금은 에테르를 마력과 조화시켰으니 그 봉인 역시 굉장히 강력한 것이다. 재배열된 배치로 마나와 에테르의 흐름이 조절되고 변화하면서 봉인은 조금씩 더 그 두께를 더해갔고 마침내 봉인이 끝나자 진야월영은 그 자체의 강도와 영력, 그리고 바인의 봉인에 의해 상상을 불허하는 강도를 지닌, 기조차 불어 넣을 수 없는 통뼈 칼(?)이 되어버리고 말 았다. 그 은색의 영파동도 잃어버린채 평범한 검처럼 보이는, 그러나 그 표면에는 강대한 마 나가 흐르고 있었다. 술식과 마법진 배열로 그 힘을 속박하고 있어 마법에도 상당한 저항력 을 지니고 있게 되긴 했지만 그게 어디 본연의 힘에 미칠까? 바인은 곧 염동력을 발휘해서 가볍게 소년의 허리에 매여져 있는 검집을 끌러다가 검을 검 집에 꽂아넣고 피식 웃었다. 간결하게 한 것 치고는 굉장히 훌륭하다. 주변의 마력을 지속적 으로 빨아들이면서 봉인하게 되는 것이다. 바인의 염에서 떨어져 나오긴 했어도 9서클 이상 의 마법사가 설치한 안티 매직 셸Anti Magic Shell 구역이나 마나 배척구역에 들어가지 않 는 한 봉인은 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슈라스 패거리(?)들을 제외하고 이 행성 내에 봉인 을 깰 존재는 오로지 바인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블래스팅 팡Blasting Fang 보다 더 튼튼한 검이다. 아다만티움 정도는 비교가 되지 않는. 마법적인 존재중에서 소울 섀도우Soul Shadow나 나이트 셰이드Knight Shade라 할지라도 벨 수 있는 검. 그러나 마법적인 특성을 조절하기는 불가능하다. 블래스팅 팡보다, 어떤 면 에서는 마법적인 힘으로도 더 강력하다. 9서클의 힘, 그것도 잔뜩 응축되어 있는 힘이 검신 그 자체이니…… 날은 죽지 않았고 강도도 증가했으니 단지 쇠붙이로써의 가치는 상승한 상 태다. 어검강으로도 흠집 하나 낼 수 없는 검인 것이다. 모르지, 한 7주야를 심형어검강으로 난타해대면 깨질지. 하지만 그정도로 기력이 차고 넘치는 인간은 저 동대륙에 딱 두명밖에 없으니 통탄할 일이다. 이래서 강력한 마령검(바인에겐 그저 연구 가치가 있는 성질 고약한 쇠붙이일 뿐이다) 진야 월영은 바인에게 봉인까지 당하고 연구 대상으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 마령검의 진정한 주인은 따로 있지 않나? 아니, 바인은 뭐 공수래 공수거라는 이념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지금 이 물건의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바인에게 무슨 다채로운 공격마법을 얻어맞고 허차원으로 날아가버리게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바인은 그렇게 되면 검의 주인이 없어졌으 니 순식간에 마령검 하나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바인으로써는 끼어든 상황이다. 물건 강탈 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면 그건 강력하다 뿐이지 완전히 강도가 되는 것이다. 그의 프라이드 가 그걸 용납하질 못하는 것이다. 뭐,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하겠지만 솔직히 마령검쯤이야 별로 아쉽지 않았다. 그저 '조금' 궁금할 뿐인 것이다. 바인은 자신의 호기심을 위해서라면 사람 수백쯤은 우습게 말아먹을 놈이었다. 예를 들어, 쓸만한 시약을 만드려고 하면 도시의 시민들을 대량으로 납 치해서 하나씩 하나씩 먹여보면서 결과를 기록하면서 뻔뻔스럽게 웃을 수도 있는 놈이다. 말하자면 정상이 아니다. 바인이 정상인이 아니라는 것은 일행들도 알고 있다. 폭주해서 마 을 하나를 날려버리는 인간인데 정상일까? 갓 에이전트 급을 일격에 소멸시켜 버리는 괴물 인데 그게 정상이라면 세상에는 비정상만 있나? 이 세상은 하늘을 가르고 땅을 뒤집고 바다를 날려버리는 궁극마법이 많이 있다. 물론 인 간 수준에서는 쓸수 없지만 이 무대를 돌아 다니는 놈들 중에서 주시받는 놈들이 다 괴물들 이니까. 현청이 지금까지 해낸 위업(?)을 보면 정말 불가능밖에 없다. 정상적인 현경이라면 그렇게 광범위한 폭발도 일으킬 수가 없다. 현청의 기감氣感이 뛰어나 기의 흐름을 격발시 키고 폭발시키고 주변의 기의 흐름을 제어하고 몸에 한가득 쌓인 무극의 기운과 충돌시키는 식으로 힘을 증폭시켜 왔을 뿐이지 정상적인 현경이라면 불가능하다. 깨달아서 비급으로 운 용한다면 모를까. 하지만 현경의 극에 이르면 몸을 진력 덩어리로 만들어도 통령단 이전에 는 주변의 기를 그렇게 대량으로 운용할 수가 없었다. 현청이 인간이 아니기에 가능한 짓인 것이다. 만들어진 존재는 강하다. 현청이 무의식중에 주변의 기력과 충돌시킴으로써 금강폭열공을 사용해서 그 위력을 대량 증폭시키고 분진폭발이나 공명 등을 운용해 온 것이지 순수한 기로 그 어마어마한 공격력을 재현하려고 했다면 지금의 무극지기를 달성했어도 한 10여번 연속으로 사용하고 나면 진원 을 제외한 진기는 바닥나 버릴 것이다. 그런즉, 자연법칙을 변화하고 재현하는 마법사가 공 격력은 월등할 수밖에 없다. 다만 마법사들이 한곳에 힘을 효과적으로 집중해서 사용하는 주문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확장주문은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 소규모 주문이면 전격은 흘려버리면 되고 화염폭발 역시 마찬가지다. 냉기야 내공으로 저항할 수 있고…… 내공만으로는 막기 힘든 물리력계나 중력계 공격주문 같은건 검기나 검강으로 맞받아 치면 된다. 물리력을 검막으로 막기 까다로운 것의 예를 들어 보자면 아무리 내공을 통해 검막을 써도 같은 1갑자 내공을 쓰는 상대가 태도를 들어 찍어 내리면 충격은 그대로 받는다. 검막 은 확장형이지 찔러서 뿜어내는 검기처럼 날카로움도 없다. 물론 물질이 닿으면 부서지긴 하지만 말이다. 믈런 검술로는 공간붕괴 같은 스펠은 받아 칠수도 없고 신법으로 피할 수도 없지만…… 공 간붕괴 주문은 강력한 것이기 때문에 캐스팅 중에 공격하면 된다. 하지만 캐스팅 전에 방어 주문을 사용해 둔다면 역시 또 공격이 불가능하다. 물론 방어벽은 깰 수 있지만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Improved Force Field 주문이라도 걸어놓는다면 확실히 깨기가 힘들다. 아니, 힘 든 정도가 아니다. 이렇게 가위 바위 보나 다름없는 짓을 보고 있으면 조금, 아니 꽤 한심하 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목숨 달린 일이다. 지금까지의 상대한 검사(라고 해도 얼마 안된다)들이 바인에게 상대 되지 않은 것은 힘의 격차도 격차지만 바인의 전투센스가 훌륭한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파괴력도 대단한 주문 을 닥치는대로 난사해 대니 막을 수가 있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인은 검사중에서도 출중한 인물인 것이다. 게다가 기를 사용하는 데에 있어 동방인들이 훨씬 더 다재다능 하니 까. 그리고 적을 시·공적 이미지를 정신좌표계에 구현해서 지속적으로 공격하는 것에는 마 법사가 제일 뛰어난 것이다. 그것도 전투 센스가 없으면 별 것 아니지만. "자, 잠깐 지금……" "봉인했다." 아, 그러고보니 소유주가 따로 있었군 하는 표정이 된 바인은 룬, 에테르, 봉인부의 세겹이 나 되는 강력한 봉인에 걸려있는 진야월영을 들어보였다. 검집에까지 봉인의 힘이 전달되면 서 검집 역시 아다만티움 보다 더 나은 강도의 그것으로 변한 상태였다. 바인은 진야월영을 소녀에게 집어던졌다. 뭐 저 검을 다시 받으면 연구야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상관 없다. 소녀는 그것을 받아들자 마자 빠르게 뽑아보았다. 그러나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는 검. 강렬 한 어떤 흐름에 휩쌓여 있긴 하지만 그 힘이 바로 검의 영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독히도 강력한 봉인을 걸어버린 셈이다. 검을 휘둘러 보자 날이 예리하게 공기를 가르는 느낌은 왔으나 어떤 영파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이런! 마령검이라도 영검인데 이런 쇠붙이로 만들어버리다니! 이 검은 우리 사문의 기 보라고요!" "검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문제겠지. 들어보니 이놈은……" 바인은 그렇게 발을 들어 널브러진 소년의 몸을 툭툭 찼다. 그냥 심드렁한 뉘앙스일 뿐이었 지만 소년의 몸이 걷어차일 때마다 소녀는 그가 죽는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죽어도 나쁠 게 없지만 죄값은 물려야 할게 아닌가. 그런데 저렇게 회개도 없이 걷어차여서 죽으면 정말 비참하다. 밟혀죽는다니 그야말로 멋없는 죽음 아닌가? 죽음의 방식에 의미를 부여하는건 참 웃긴 일이지만…… 바인의 말마따나 칼에 맞든 창에 맞든 화살에 맞든 죽는건 마찬가지 아닐까? 활검에 맞는다고 살이 다시 붙고 늙은이가 청년으로 돌아가나? "네 사문을 배신한 모양인데 말야. 사문을 배신한 놈에게 그 사문의 기보인 영검이 힘을 줄 까? 오히려 배신했으니까 힘을 준 것 같은데 말이야." 그 말은 소녀의 정곡을 푹 하고 찔렀고 덕분에 생각해 놓은 말을 쉴새없이 떠들려고 했던 소녀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아니, 꿀 먹은 벙어리라면 달기라도 하지 이건 무슨 소태를 물에다가 개어서 씹도록 한 것 같다. 그만큼 입맛이 쓰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자를 말발로 이길 수 있다니 역시 마법사란 대단한 직업이다(무슨 상관이 있나?)! "그렇지 않나? 응?" 소년이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파워 워드 킬을 버티느라 체력 대부분과 영력 대부분이 날 아가버리고 정신력까지 날아갔는데 벌써 일어나다니. 역시 소년도 대단한 놈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바인은 무자비하게도 그 무지막지한 완력을 순발력으로 이용하고 몸의 무게 를 실어서 명문혈을 꾹 눌러줬다. 순수 무게만으로 500kg은 될 그 무게가 명문혈에 집중되 자 소년은 거품을 토해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그냥 캑 하고 숨을 뱉고는 기절 해버렸다. 소녀는 이제 지쳐버리기까지 한 얼굴로 질문했다. "주, 죽었어요?" "반쯤만 죽었어." 바인은 그렇게 말하고 소년의 유해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몸을 툭툭 걷어 찼다. 소녀 는 바인의 하는 짓이 상당히 밉다고 생각했다. 아니, 보통 미운 정도가 아니라 얄미웠다. 소 녀는 화가 상당히 일었지만 왜 화가 나는지는 몰랐다. 화를 내는게 아니라 고마워해야 정상 아닐까? 다룰수 있을지 의아스러운, 그러면서도 도둑 맞아 세상에 나가면 많은 피의 비를 뿌릴 검을 검집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완전히 봉해버렸는데도 고맙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고마워 해서도 안된다. 바인은 자기본위적으로 한 것이다.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지 소녀를 돕고자 하는 갸륵한(?) 마음에서 한 일이 아닌 것이다. 바인은 그 사이에 손을 들어 어둠의 장막을 치웠다. 그러자 다시 조금 기울어지긴 했어도 기막히리만치 밝은 월광이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진야월영은 세겹이나 되는 봉인으로 인해 검명 일으킬 힘도 없었다. 바인은 모든 무기를 다 갈무리했다. 그나저나 블래스팅 팡은 쓸 필요도 없는데 왜 정비를 한 거야? "내 이름은 바인 워드다. 그쪽은?" 바인은 여전히 안하무인에 밑도 끝도 없이 툭 하고 내던지듯 말했다. 여전히 위엄에 가득 찬 바인의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소녀는 그 분위기에 짓눌리면서도, 마른침을 꿀 꺽 삼키고는 말했다. "렌시아." "렌시아?" 바인이 말꼬리를 올려 반문하자 그녀는 풀 네임을 말했다. "렌시아 엘유리스." "좋군." 그렇게 간단하게 말한 바인은 여전히 빛을 발하면서 흔들리고 있는 광익을 접으면서 사라지 게 만들었다. 정신력이 제법 소모되니까 아껴두는게 좋은 것이다. 그는 그렇게 광익을 접어 그 에테르를 완전히 광익의에 되돌렸다. 광익의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은 사라지고 이제 월 광만이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지금 바인의 모습은 담배 한 대라도 꺼내 문다음 불을 붙이 면 제법 어울릴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바인은 담배를 피워도 뇌내에서 쾌락물질이 분비 되지 않기 때문에(만약 분비되어도 즉시 해독된다) 그냥 매운 연기에 불과했다. "말해봐. 그 힘. 동대륙에서 온 사람이 이곳에서 사승관계로 계속 전수한 힘인가? 이곳의 힘 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마법도 아니고. 뭐랄까…… 좀더 고등高等의 힘으로 느껴진던데 말이 지. 마나와 닮았다면 닮았고 기와도 너무 흡사해. 영기를 힘으로 쓸수 있는 건가? 내적인 힘 과 외적인 힘에 골고루 닿아 있다니." 바인의 말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확실히 바인의 머리카락은 흑발이고 눈 역시 흑색이긴 하 지만 피부는 희고 지나치게 서방적인 느낌이 난다. 키도 컸고 몸매도 늘씬하다. 거기에 아름 다운 것이다. 추가로 마법까지 쓰고. 이곳의 언어도 매우 능숙하게 쓴다. 동방인의 외모이면 서도 동방의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행성에 존재하는 두 대륙은 판게아 형이다. 남극, 북극류에도 대륙 비슷한 것이 존재하긴 하지만 60% 이상이 얼음이었 기 때문에 차라리 큰 섬이면 큰 섬이지 대륙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판게아이기 때문에 현세의 바다도 지구의 판타랏사나 테티스 해와 비슷할 지경이다. 대륙이 없는 부분의 순수한 바다에서는 완전대류가 일어날 지경인 것이다. 대륙이 세분화되 어 퍼져있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 형태 역시 단순하다. 피오로드나 여러 가지 침식 지형이 제법 되긴 하지만 지구의 그것만큼 다양하진 않다. 지각 변동을 그렇게 많이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토질은 다양하고 석회동굴 같은 것도 있다. 하지만 석회동굴은 아무리 석주 나 종유석이 늦게 생성된다고 해도 빠르긴 하다. 지각변동이 꾸준히 일어나고 플레이트가 움직이면서 습곡을 만들고 섬을 새로 만드는 등의 것보다는 훨씬 짧은 시간내에 이루어진다. 조건이 잘 맞은 상태에서 몇천년이면 그럴듯한 석회동 하나가 형성되는데에 비해 습곡이나 섬이 생기고 떨어져 나오는 것은 생길 가능성은 높고 당연해도 화산섬이 아닌 이상 오래걸리게 되어 있다. 몇천년이면 무시무시한 세월이지 만 전 우주적 관점에서 볼때는 아주 짧은, 지극히 짧은 시간이다. 우주가 태어나고 사멸하는 기간에 비추어 볼 때 찰나나 다름없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확실히 바인은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다. 우주조화일월신검류는 '검법서'가 아닌 '검보'다. 그래서 여러장이긴 하지만 책은 아닌 것이다. 마지막 장에는 우주조화일월신검류를 익혔던 자 들이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그 검류 자체를 자신에 맞게 하는 방법과 그 성향에 대해서 연 구한, 다양하고 정밀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그것을 읽으면서 바인은 많은 간접경험을 한 셈 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전투기록도 많았고, 도사들 중에서 '식신'을 부르거나 신산술로 번 개, 화염을 날리는 능력을 지닌 특이한 자들과의 싸움도 있었다. 물론 싸우고 나서 이겼으니 적은 것이지 졌으면 죽어서 기록은 없었으리라. "확인하고 싶어서." "영력이에요." "역시……" 바인은 피식 웃었다. 미뉴엘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고 바인에게는 그다지 가르쳐 주지 않 은 것이지만. 세상에는 많은 힘이 있고 인간들이 마족이라, 악마라 칭하는 자들은 에테르 Ehter를 다루되 반 에테르反 Ether를 다루는 것 뿐이라고…… 반령기反靈氣를 다루는 족속 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있다. 정과 반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성향이 다르게 분류되 어 있을 뿐 사실 다를바가 없다. 두 힘이 충돌하면 흩어지면서 인간의 영혼으로도 느낄수 없는 다른 무언가가 되어 세계로 환원된다고 한다. 인간들이 다루는 기는 생명친화, 자연친 화적인 것이지만 그와 반대되는 반 생령기反 生靈氣라는 것이 있다고 말이다. "영력이었군. 신산술 류인가 도가의 법술인가? 아니면 다른 것?" "꼭 그렇게 분류되는건 아니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도가에 가까운 주문과 법술을 공부하는 문파지요. 동방의 무림에서 문파들이 존재하는 것과 다를바 없어요. 더 은밀하고, 더 비밀스 럽고, 더 힘들다 뿐이지요." "마법보다는 쉬운 것 같던데? 아니, 너희들 재능이 특출한것인가?" 바인은 그렇게 말하고 염을 발해 불꽃을 가볍게 피워올렸다. 염을 다루게 되는 것부터가 그 정신력을 이용한 사이킥을 어느정도는 쓸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염동…… 물리력을 발하는 사이코키네시스Psychokinesis(달리 텔레키네시스Telekinesis라고도 한다). 발화. 다시말해 불꽃을 피워 올리는, 파이로키네시스Pyrokinesis. 정신감응 강하게는 세뇌도 가능 한 텔레파시Telepathy. 그리고 마법적인 것에 가까운 전자기력 제어라던가 전자반발을 제어 하는 것도 어느 수준까지는 가능하다. 텔레포트나 그외 특수능력은 역시 사용 불가능하다. 하 지만 이것만 해도 어디인가? 어쨌든 그것을 보면서 렌시아는 깜짝 놀랐다. 어떤 힘의 파장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방 금 일어난 불꽃은 대체? 마나의 힘도 뭣도 아니다. "방금…… 어떻게 했지요?" "그냥 의지의 힘이지. 마력 없이도 가능해. 정신력이 소모되긴 하지만. 순수 사이킥으로 이 걸 발휘하는 인간이라면 파이로키네시스트라고 하겠지만." 마법사들이 발휘하는 염동은 이런 '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신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니 그냥 선천적인 염력과는 다르지만 오히려 더 낫다. 그 컨트롤에 있어서는. 게다가 그는 발화 능력에 텔레파시까지 열었으니까. 전자기력 제어도 가능하니 염을 충분히 잘 활용한다고 할 수 있었다. 응용력도 응용력이지만 지식이 받쳐주니까. 불꽃이 피어났다가 다시 사그라들자 다시 붉은빛이 사라지고 월광만이 남았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힘의 격돌이 있었는데 휴이즈와 아라테온은 왜 오지 않는거지?' 바인이 아무리 총명해도 그 둘이 깨어났다가 귀찮아서 다시 잠든줄은 모르고 있었다. 바인 은 조금 기분이 나빠졌지만 그것을 간단히 억누르고 그녀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사문을 배신하며 스승까지 죽인 녀석을 회개라도 시키거나 죽일 모양새던데? 그 런다고 뉘우치기나 할까? 자기 가치관이 확립되어버린 녀석을 말로 설득하는건 어불성설이 야. 현실은 삼류 소설같은 일이 벌어질 확률은 너무 드물다고. 게다가 보통 자기 정의에 취 한 놈이 아니던데?" "그, 그런것쯤은 나도 알고 있어요." 그녀는 상당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당연히 화가 나야 한다. 나지 않으면 그게 인간일까? 지 금 상황은 성자라도 역정을 부릴 정도였다. 바인이라는 녀석은 어찌된 일인지 사람 평정심 무너뜨리고 염장을 지르고 속을 북북 긁어대는 대는 재능이 출중했다.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하게 되는 것이다. 정상인이 아니라서 그럴까? 바인은 상당히 호기심이 생겼 다는 표정으로 뻔뻔스럽게 진야월영을 강탈했다. 렌시아가 어떻게 해 볼 사이도 없이 염으 로 진야월영을 슥 건드려서 집어 들어 받은 것이다. 바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회수이지만 렌시아의 입장에서는 도둑질이었다. 그녀가 무슨 짓이냐고 말하기도 전에, 바인은 느긋한 표 정으로 명령에 가까운 말을 했다. "자, 그럼 이야기를 좀 해주는게 어때? 궁금하군." 145. 고대의 유적 1. 금빛 햇살이 저 동대륙 있는곳에서부터 화악 하고 뿜어왔다. 그리고 동대륙의 동쪽에서는 달이 희끄무레하게 보이고 있겠지? 완전 반대편에 있는건 아니지만 동대륙 동쪽 극단부에서 는 어둠이 뻗어오고 태양이 지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을 것이다. 바다는 석양의 주홍빛으로 물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서대륙에는 금빛 햇살이 닿아오고 있었다. 간단하게, 두 마디로 줄여서 말하면. 아침이 밝았다. 행성의 자전은 멈추지 않는다. 정확히는 조금씩 느려지는 것이지만. 지구의 쥐라기에는 하루 시간이 21시간쯤이었다고 한다. 뭐 어쨌든 잠이 많은 이들은 아침이 싫을 것이다. 저혈압 환 자들도 마찬가지고…… 그러나 닭 모가지를 비튼다고 새벽이 안 오는건 아니니까. 물론 마 법의 힘이란 강대하여 행성의 자전을 제어하는 마법은 있지만 바인 수준으로는 쓰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쓰더라도 조금만 잘못쓰면 중력장이 깨져버릴 것이다. 뭐 게으른 사람이라면 실패 후의 여파건 뭣이건 생각도 할 것 없이 확실히 그 스펠을 사용 하는 데에 있어 무한한 욕망을 느낄 것이다. 밤에 잠들기 싫은 상태에서 잠들어도 아침에 이불과 침대를 붙들어 잡고 깨우려는 사람의 이마에 핏대를 돋우게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 러나 바인은 그 반항하는 인물들…… 찰거머리처럼 침대에 달라붙어 있는 이들을 뜯어내는 대신 간단하게 살기를 뿜어내는 것으로 귀찮은 작업을 대신했다. "헉! 적이로군!" "살기가!" '……쓸데없는 데서 반응이 빠르군.' 바인은 한숨을 토해냈다. 휴이즈는 헛바람을 삼키면서 그렇게 외치고 나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누운 자세에서 놀랍게 도 팔힘으로 하반신을 띄워올리며 빙글 돌아서 일어난다음 에테르를 끌어올린 것이다. 점수 배당이 매우 높을 정도로 상당히 멋진 자세였지만 눈은 아직도 졸린 눈이어서 그 점수를 대 폭 삭감하고 있었다. 멍청하게 보인달까? 아라테온 역시 긴장어린 목소리로 외침을 날린다음 멋지게 옆으로 굴러서 수인을 맺고 있었 다. 그 모습들이 바인에게 무지하게 한심해 보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바인의 좌수가 가볍게 우측 허리에 찬 진야월영의 손잡이에 얹어졌다. 이어 가벼운 염에 의해 새하얀 가죽 허리띠 에 진야월영을 동여 매고 있는 쇠테가 열리고 풀리면서 그의 좌수가 연이어 멋지게 흔들렸 다. 순간…… 따닥! 경쾌하게 울려퍼진 소리. 문득 이 소리가 계속 장단을 맞추어 들린다면 노래라도 불러주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하는 망상이 들게 할만큼 경쾌한 소리였다. 비쾌하게 검집의 씌워진 막대 한 강도의 진야월영이 무서운 속도로 튕겨나가 두 번 번쩍이자 휴이즈와 아라테온은 이마를 움켜쥐고 빌빌거리고 있었다. 이마는 뼈 때문에 맞으면 살이 눌려서 더 아프다. 바인은 잠이 덜깬 눈의, 그러나 그래서인지 더 예쁘장해 보이는 아라테온과 몽롱한 눈으로 몽환적이라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미청년 휴이즈(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거냐면. 정상적인 정신에 미의식까지 가지고 있는 이라면 이런 난폭한 짓을 할수 없었을거라는 말이다)의 이 마를 가차없이 두들겨버린 것이다. 바인은 미의식이 어떻게 되먹은 걸까? 그는 휘두른 진야월영을 다시 오른쪽의 허리춤에 맸다. 그러나 그 수고가 무색하게도 다시 몽롱한 눈으로 풀어지는 두명을 묵묵히 바라보던(그러나 상당히 화가 났음은 확실하다. 슬 슬 인내심이 바닥나는 것이다) 그는 블래스팅 팡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하고 마찰하는 소리 가 나자 그제야 아라테온과 휴이즈는 기겁하며 깨어나 뒤로 움찔 물러났다. 서슬퍼런 예기가 흐르고 있는 블래스팅 팡은 겉보기가 좀 이상하달 뿐이지 그 블레이드는 훌륭한 명검이었다. 게다가 제질이 마법금속 합금이니까. 그것이 뽑히고 서늘한 예기가 바인 의 약간 뿜어낸 살기와 뒤섞여 피부에 와닫자 위험이 느껴지는지 둘은 정말 벼락과 같이 빠 르게 소리쳤다. "이, 일어났다고요!" "이, 일어났어!" ……한결같다. 바인은 다시 블래스팅 팡을 꽂아넣었다. 그 스르릉 하는 검명음이 마치 자장 가로 들리는 듯 아라테온과 휴이즈의 눈은 다시 풀려버렸다. 바인은 눈을 가볍게 감았다. 정 말 평온해 보이는 분위기고 얼굴이다. 초탈했달까? 하지만 이마에 돋아오른 핏대는 뭐하는 물건일까? 여기서 참으면 바인이 아니라고 할수 있다. 바인은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블래스팅 팡을 뽑아들지는 않았다. 정말 블래스팅 팡을 뽑아서 휘두르기엔 이 둘의 능력이 너무 아까웠다. 뭐 진짜 열받으면 닥치는대로 마법을 난 사하겠지만. 뇌에 혈기가 뻗쳐버리면 아무리 냉엄한 바인이라도 발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인은 오히려 광기에 미친 모습이 더 어울리는 놈이다. 휴이즈와 아라테온. 이 두명은 다른 때는 빠릿빠릿한데 지금 하는 짓을 보면 몇대 패주고 싶을 정도다. 그래서 바인의 좌수가 움직였다. 섬섬옥수가 블래스팅 팡과는 다르게 오른쪽 허리에 채여져 있는 진야월영의 손잡이에 얹어졌다. 순간 다시 묶어놓았던 끈과 쇠테가 열리면서 그의 좌 수가 비쾌하게 움직였다. 어떤 검사라도 이 놀라운 손놀림과 로브를 비교해보면서 고심할 듯한 공격이었다. 쌍수검에 이도류인 바인은 너무나도 익숙하게 검을 휘둘러댔다. 진짜 한두 번 휘둘러본 솜씨가 아니다. '두들겨 패는' 데도 소질이 있어보였다. 한두번 움직인게 아닌지 라 연속적으로 경쾌한 음이 울려퍼졌다. 거의 간격이 없었다. 따다다다다닥! "윽!" "으악!" 이 일격이 가해지자 마자 휴이즈와 아라테온은 기겁하면서 눈을 동글동글하게 뜬채로 뒤로 물러나 서로를 답싹 끌어안고 바인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바인이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다. 바인은 다시 진야월영을 스윽 들어보였고 휴이즈와 아라테온은 서둘러서 바인의 공격 범위 내에서 벗어났다. 덕분에 잠이 좀 깬 모양이다. 이들은 간신히 방을 체크아웃하고 적당히 씻은다음 식당으로 내려와 식사를 주문했다. 렌시 아에 대해서 아라테온과 휴이즈가 의문을 품기는 했으나 아라테온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 고 휴이즈는 성직자 답지 않은 느물거리는 눈빛으로 바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바인의 눈 빛이 평소와 다를바 없이 지독히도 냉엄하자 곧 그 눈빛을 거두어야 했다. 바인이야 그냥 휴이즈의 생각조차 모르고 평소처럼 굴었을 뿐이지만 휴이즈 자신이 그렇게 인식 했으니 어 쩔수 없는 노릇이다. 휴이즈가 보기에 바인의 눈빛은 그에 대해 농이라도 걸었다간 바로 블 래스팅 팡을 뽑아서 찔러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침 일의 반사작용일까? 이마에 자국은 남지 않았다. 휴이즈가 성력으로 치료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생각 만 하면 이마가 저려왔다. 퉁퉁 부어오르지도 않고 그냥 시퍼렇게 멍들기만 했었지만 이마 를 내놓고 다니는 아라테온과 휴이즈가 치료도 하지 않으면 그 무슨 망신이냐? 아라테온은 마법사이기도 하면서 시각이 체크 아웃 시각인 9시가 거의 다 되도록 깨어나질 않는 것이 다. 메모라이즈는 덕분에 물 건너 가버렸다. 아라테온이야 특급 마법기도 하나 소유하고 있고 4서클 중반까지의 주문은 남발할수 있으니 까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7서클 주문까지는 굉장히 강력한 것이다. 아라테온은 엘더 라 이칸스롭이고 웨어울프 타입이긴 하지만 월광 아래서도 발작을 간단하게 억누를 수 있다. 다음날은 메모라이즈 할 수 있기를 빌지만 노숙할때도 불침번은 서지 않는 아라테온이다. 엘더이긴 하지만 아직 육신이 완전히 이루어진것도 아니고. 렌시아는 바인이 그 냉엄함으로 여관 주인을 깨웠음에도 그 주인에게 일언반구도 못할 정도 로 몰아세운다음 방 하나를 더 받아 잠자게 해 두었고 그 소년은 적당히 정화술을 걸고 먼 지를 턴다음 모든 힘을 봉해서 묶어다가 이불 한두개를 받아서 바닥에 던져놓았다. 회복주 문을 걸어두긴 했지만 그래도 체력이 다 회복되진 않았다. 체중까지 실어서 명문혈을 밟은 것도 그것이지만 그 전에 파워 워드 킬을 견디지 않았던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그 실력을 입증한 것이다. 렌시아는 늦게 잠들었음에도 그다지 졸려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시각으로 따지면 그 렌시아 보다 3시간은 일찍 잠들었을 아라테온과 휴이즈가 졸려 미치겠다는 표정이 아닌가? 잠을 잘 못 잔 것 치고는 좀 이상했다. 어쨌든 렌시아는 지금 웃음을 참느라 혼나고 있었다. 아직 친 밀한 관계가 아니라서 웃을 수가 없는 것이다. 휴이즈는 대단한 미청년이고 아라테온은 미 소녀로 보일 정도다. 그런데 그 둘이 바인 앞에서 이마를 맞고 풀이 죽은 표정으로 수프와 빵 등으로 간단하게 식사 하는것도 깨작깨작 하고 있는 모습이 우스웠던 것이다. 기상 방법도 특이했고. 렌시아는 바인만 빼면 이 일행들 의외로 재미있을지도 모른다고 생 각했다. 금제는 풀지 않았고 바인이 스페이스 백팩에서 팔찌를 채워둔 소년. 헤인 카나드 역 시 기분이 상당히 더러운 듯 식사를 깨작거리고 있었다. 바인을 중간중간에 무섭게 노려보 았지만 바인이 심유하고 냉엄한 눈으로 무심하게 바라보면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 리 노려봐도 반응 없는 심드렁한 눈. 다시말해 너같은 잔챙이는 염두에 없다는 듯 자신만만 한 눈빛인 것이다. 휴이즈와 아라테온의 모습을 보면 풀죽은 강아지 같아서 렌시아는 웃음을 참기가 역시 힘들 었다. 바인은 절도있고 냉엄한 동작으로(수프하고 빵을 먹는데 저게 가능하다니) 식사를 끝 내버리고는 마력을 순환시켜 마법기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다행히 마법기들에는 과부하도 걸리지 않았고 이상도 없었다. 마법기의 손상은 바인이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지만 그게 심 해지면 복구하기 힘들다. 게다가 전투도중에 이상이 생긴다면 위험천만하기 때문에 시간이 나면 계속 점검해주어야 한다. 마법기를 통한 마법도 공짜가 아닌지라 민간인이 써도 심력 의 소모가 지대하다. 마법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Give&Take. 세상에 공짜는 있을 수 없 다. 심리적인 부채 때문에라도 공짜는 없다. "그런데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여기서 하루 쉬었고 사실상 보급도 끝난것이나 마찬가지인 데. 계속 비행할 수도 없고 체력의 한계도 있으니……" 바인의 말대로였다. 아무리 그들이 에테르 윙을 쓰고 아라테온이 비행주문을 써서 가속한다 고 해도 무리는 있었다. 정신력, 체력 소모가 오죽 큰가. 텔레포트 할수도 있지만 바인은 그 곳의 좌표를 모른다. 휴이즈는 마법을 모르기에 역시 좌표도 외워두지 않았다. 그리고 좌표 를 안다 해도 쓸수 없다. 쓰는 즉시 그 장거리의 이동에 사용되는 광대한 마나의 움직임이 감지될 것이고 그것은 마법진을 사용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길드에 알려서 마법진을 이용해 도 이런 마을에 마법사 길드가 있을리 없었다. 마법사들은 워낙 폐쇄적인 인간들이라 그들의 길드는 대도시나 도시에만 존재했다. 후작의 영지에도 물론 마법사 길드가 있었지만 그들 역시 참전했다가 모조리 다 죽어버렸고 8할 이 상의 마법사들이 뱀파이어들에 의해 은밀하게 죽어버렸기 때문에 마법사 길드 본부에 연락 되지는 않았다. 아슈라스 교단 소속의 마법사들에는 8서클 마법사도 있었고 알려지지 않은, 비정규의 9서클 마법사도 있었지만 이종족이었다. 9서클 마스터가 아니라 9서클 유저나 익 스퍼트다. 그나마도 그들은 전부 아슈라스 교단 소속이었고 바인에겐 상대가 안되었다. 전투 경험이야 있겠지만 바인처럼 검술까지 써대고 사멸에 붕괴의 힘을 쓸수 있는 존재와 싸울 수는 없었다. 게다가 바인도 슬슬 9서클에 적응하고 있었으니까. 휴이즈는 바인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잠시 생각해 보다가 말했다. "뭐 일단 렌시아 양은 바인님의 말에 따르면 방해는 안되겠고. 아버님은 도착 하자 마자 이 곳 신전에다 맡겼고요. 아버지가 일정에 방해가 되는건 사실이니까. 그곳에서 어떻게든 힘을 쓸 것입니다. 아슈라스 교단의 힘은…… 범국가적인 것입니다. 당신처럼. 물론 아슈라스 교 단 자체는 하나의 제국이나 다름 없습니다. 대륙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아슈라스 교 단이니까요." 휴이즈는 목소리를 낮추기 보다 에테르를 운용해서 가볍게 방음결계를 친다음 그렇게 말했 다. 수련에 바빴고 무엇보다 대륙의 정세에 어두운 렌시아는 교단 하나의 세력이 그렇게 크 다는 말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고 곧 그 표정은 아슈라스 교단에 대해 호기심이 어린 표정 이었다. 그녀는 교단 하나가 세력이 아무리 크다고 그 타락 여부에 대해 함부로 결론 내릴 만큼 세상을 잘 알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그녀는 긍정적인 인간이었다. 아, 세상 쓴맛단맛 다 본 휴이즈나 아라테온. 그리고 지독한 경험과 자기본위적인 바인으로 이루어진 막강한데다가 미인들임에도 음침한 냄새가 풀풀나는 파티에 긍정적이고 밝은 인물 이 참여하는가? 휴이즈나 아라테온도 밝은 편이지만 그건 껍데기니까. 그렇지만 그녀도 돌 아다니다 보면 결국 휴이즈나 아라테온 비슷하게 변해버릴 것이다. 바인처럼 냉엄하게 되지 는 않겠지만 그래도 변화가 올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변한다면 휴이즈나 아 라테온의 보호가 더해질 것은 자명하다. 렌시아가 어찌되었든 헤인은 결코 긍정적 인간이 아닌지 냉소했다. "흥. 신앙을 위한 교단이 그렇게 위세가 높다면 그야말로 타락의 제단이겠군?" "설마요. 우리 아슈라스 교단의 교리에 감화된 이들은 절대 그렇게 타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헤인이 냉소하자 휴이즈는 엄숙한 표정으로 결코 그 표정에 어울리지 않는 대사를 발했다. 물론, 헤인에겐 치명타였다. 헤인은 휴이즈의 비심각성과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남 발하는 썰렁한 유머와 위트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면역이 없었다. 그래서 헤인은 정신 에 더 심각한 타격을 입어야 했다. 게다가 아슈라스 교단이 보통 교단인가? 아무리 소년답 지 않아도 종교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고정관념이 있으니까. "더 타락할데도 없거든요. 교리 자체가 합리주의와 상대주의를 인정하지요. 추가로 종교 자 체가 서비스업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니까. 종교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아니, 오리인가? 어쨌 든 그래요. 그렇다는걸 인정하고 시작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쓰레기로 만드는데에 자질 이 없는 사람들 투성이라. 뭐 10인의, 성력이 가장 강한 프리스트들에는 하프 엘프에 엘리멘 트 엘프, 인간, 드워프, 수인족에…… 하여튼 다양합니다. 추가로 이번 해의 가장 훌륭한 신 관은 노움이라고요. 우리 교단은 게다가 범국가적 조직이고. 황제건 국왕이건 버릇 나쁘면 우리가 나서요. 귀족 모가지쯤은 가볍게 날릴수 있으니까." "……" 헤인의 표정은 점점 '넋이 나가다'라는 표현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것으로 변해갔다. 휴이 즈의 말이 이어질때마다 점점 창백하게 질려가는 얼굴이었지만 곧 휴이즈를 혐오에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놈도 고정관념의 덫에 물려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 교단에서는 날붙이 달린 무기도 인정하고 마법사도 인정해요. 뭐 어차피 세상에 놓여 있는 힘이고 신들도 그 힘을 사용하는데 왜 인간이 사용해선 안되느냐∼ 하는 주의랄까? 마지막으로. 우린 어둠에 속한 것들도 인정합니다. 우리 교단은 사회적 관점으로 볼 때 중립이라고요. 어둠이건 빛이건 자체적 판단에 따라 돕습니다. 그리고, 아슈라스 님이 몇번 아스트랄의 당에서 나와 직접 말씀하시기를 '자기 정의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보다 합리적이고 상대적으로 사는게 훨씬 더 생산적인 일이다'라고 하셨지요. 말하자면, 인간도 적으로 삼을수 있는 교단이 아슈라스 교단입니다. 한마디로, 종교에는 안 먹히는 상대주의를 종교에 융화한 교단이라고나 할까요? 이데올로기 충돌이 없는 교단은 우 리가 유일합니다. 신의 직접적 지원을 받는 교단도 우리 교단 뿐이에요." "……" 아슈라스 교단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오히려 봉건제가 그대로 시행되는 국가에서는 농 노도 모두 다 치료해주고 식량까지 나눠주고 국가에 압력까지 가했기 때문에 이 대륙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교단이었다. 추가로 다른 신전의 타락한 말단들이 횡포를 부릴 때 그 쥐꼬리 만한 성력을 박탈하고 그 교단에 압력을 가해서 제대로 수색하게 하고 교황 자체가 논리따 지는 얼간이면 가차없이 목을 날려버리고 그 신전들을 갈아 엎어서 제대로 된 인간을 교황 자리에 올려놓기까지 했다. 간섭하지 말라고 하는 신전도 있었지만 종교는 종교로써의 가치를 다 해야 한다는 교리를 내세우며 철퇴를 휘둘러댔다. 철권이나 다름없긴 하지만 독실하고 아집적인 인간들을 제외 하고는 다들 좋아하는 교단이었다. 아슈라스 교단하면 어느 누구나 다 좋아해주니까. 휴이즈 의 가슴께에 수놓인 아슈라스 교단의 문양은 병사들 앞에서도 잘 통했다. 거기다가 아슈라 스 신의 신위라는 것은 굉장히 강력했다. 다른 신전의 신관들의 성력은 아슈라스 신관들이 수련한 성력앞에 무력했고 아슈라스 교단의 무력은 소드 마스터에 그랜드 마스터, 마법사 길드의 지원까지 받고 있고, 몇몇 부흥 세력의 귀족가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국왕 도 감히 반항하지 못하는 교단이 아슈라스 교단이다. 다만 그 세력이 그릇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일단 중립적인 수단으로 움직이고 이데올로기의 칼날을 함부로(일까? 철권 자체가 이데올로기의 칼날을 함부로 휘두르는 짓이다. 이게 바로 딜레마다) 휘둘러대지는 않았다. 적어도 돈을 착복해대지는 않는 것이다. 가장 성금을 싸게 받는 교단이 아슈라스 교단이었다. 내려면 내라는 식이랄까? 뭐 아슈라스가 돈이 될만한 것 을 직접 퍼다주고 수많은 상단의 지지를 받고 있는 곳이 아슈라스 교단이었다. 합법적으로 돈 될만한 일을 성기사단도 하는 것이다. 일반인의 시각으로 볼 때 확실히 전혀 신비하지 않아서 오히려 친근감이 가는 종교집단이었 다. 교단이라기 보다 오히려 범국가적 무력집단에 가깝다. "……조, 종교집단 맞아?" 바인의 눈도 상당히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바인은 한숨을 토해내고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미 보급은 끝난 상태였다. 아침이라고 해도 비상식량이 나 몇가지 식량을 사둔다. 그리고 잘 싸서 스페이스 백팩에 처 넣는다. 그럼 충분하다. 그리 고 보존마법은 괜히 존재하는게 아니었다. 풍상風霜이나 물리력에 쉽게 상하지 않게 하고,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주문. 보 호법이라고도 불리는 수법이다. 5서클 마법사면 누구나 다 할수 있었다. 물론 효능은 한 3일 쯤밖에 가지 않아서 계속 갱신해주어야 하지만 바인은 9서클 마법사가 아닌가? 게다가 클래 스식 마법사이기도 하다. 물론 음식물 같은 것들에 마력을 잔뜩 불어넣으면 입자의 결집이 끊어질 가능성도 높지만…… 화학반응이라고 하면 위액에도 녹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염을 가해주어야 한다. 특 정 효소(가령 침의 아밀라아제)에 닿거나 일정 온도 이상의 열이 가해지거나 그 형체가 붕 괴되면 마법이 깨어지도록 하는 조건을 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걸지만 취향에 따라 걸거나 조금 정신력이 덜 소모되는 염을 걸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을 다니는 마법사들 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여행 다니는 마법사들은 대부분 4서클정도고 5서클 마법사들은 그 렇게 많지 않았다. "이 마을에는 더 볼일이 없지요?" "몬스터 몇몇하고 싸울 일 빼면 앞으로는 좀 평화스러울겁니다. 뭐 일이 있어도 우리 전력 이면 기사단 몇몇대대쯤은 가볍게 전멸시킬수 있으니." 이건 허튼소리가 아니다. 뭐 음파를 차단해 두었으니 어느 누가 듣고 시비를 걸거나 비웃는 일은 없었다. 뭐 시비를 걸면 십중팔구 병신이 되거나 죽을 것이다. 이 일행은 결코 성격이 좋지 않다. 뭐 렌시아도 있고 휴이즈도 있고(휴이즈의 경우 고려할 필요는 없다) 하니 좀 자 제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휴이즈 한명만 해도 기사단 하나쯤은 가볍게 쓸어버릴수 있다. 에테르 윙의 힘은 그정도인 것이다. 아라테온이야 말할 것도 없이 강력한 존재고 렌시아도 굉장히 강력하다. 진야월영이 없어도 헤인은 기사단 반파가 가능하다. 영법과 검술을 융화시킬수 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으로 바인이야 단신으로 나라 하나를 상대할수 있다. 유성소환 주문(Summons of Meteor Spell)은 괜히 존재하는게 아니다. 8서클의 미티어 샤워 Meteor Shower만 하더라도 대도시 하나를 초토화시킬수 있다.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를 써 도 도시 하나만큼 확장시키면 2∼3t짜리 가벼운(?) 운석 하나로도 종잇장처럼 찢겨질 것이 다. 9서클급 유성소환 주문은 인류멸망도 가능하다. 9서클 마법사가 괜히 범국가적인 존재라 고 불리는게 아니다. 8서클 마스터도 웬만해서는 건드리지 않는데 하물며 한단계 높은 9서 클의 마법사는…… 만약, 바인이 원한다면 일국의 왕좌 따위는 왕좌와 왕관의 디자인이 끝나는 대로 앉고 나서 쓸 수 있었다. 뭐 세력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마법사 길드 쯤이야 얼마든지 포섭할 수 있을 것이고 바인의 등 뒤에는 엘더 드래곤이라는 괴물들이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그 영성으로 보아 얼마 안있어 10서클 마스터가 될게 뻔한데…… 원래 8서클과 9서클을 터득했을 때 바인이 그렇게 쉽게 스펠들을 익혔던 것은 미뉴엘이 7서 클 까지는 터득하도록 하고 8서클, 9서클, 10서클 스펠들은 전부 다 기억을 주입한다음 봉인 해서 의식 바닥에다가 가라앉힌다음 의식과 무의식이 확대되고 마나 홀 역시 확대되면 그 봉인이 풀려 자동으로 익힐수 있도록 해둔 것이다. 엘더 드래곤의 초고룡의 힘이란 그런 것 이었다. 아무리 멍청한 인간이라도 7, 8서클 마스터쯤은 번갯불로 콩볶듯 만들어낼 수 있었 고 9서클 마법사는 약간만 심혈을 기울여도 충분했다. 바인은 고상하게도 스페이스 백팩에서 미뉴엘이 챙겨준 찻잎을 꺼내서 이걸로 시간까지 알 려주며 끓여달라고 주문했다. 동방에서 직수입한 최고급 설녹차로 마법사들이 직접 보존마 법이 영구 걸린 아티팩트들까지 마법진을 통해 만들어낸 상자로 실어나른 것이었다. 뭐 미 뉴엘이야 돈이 차고 넘치니 취미상으로도 살 수 있었고 말이다. 미뉴엘은 좀 쓸데 없는 것 들도 많이 챙겨준 셈이다. 바인이 마셔보았을 때 이곳의 물은 지구에서 따지만 1급수를 한 참 넘어 특급수조차 넘어설 정도로 훌륭하고 청정한 물맛을 자랑했기에 꽤 훌륭한 조합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휴이즈는 설탕을 첨가한 커피를 주문했고 아라테온과 렌시아는 자스민차를. 헤인은 그냥 물 을 가져다가 벌컥 들이켰다. 심기가 매우 불편한 모양이었다. 먼저 자스민차가 나왔기 때문 에 아라테온과 렌시아가 차를 들었는데 아라테온은 별걸 다 배웠는지 바인이 볼때도 제법 차를 마실줄 아는 것 같았다. 렌시아야 동방에서 내려온 영법을 익힐 때 동방에 관한것도 어느정도 익혔는지 특출나지는 않아도 품위가 없어보이지는 않았다. 이곳에 인스턴트 커피가 있을리는 없었기 때문에 귀족출신 신관 휴이즈 역시 향기를 즐기면 서 느긋하게 마실 수 있었다. 녹차도 금방 나왔기 때문에 바인 역시 정말 오랜만에 느긋하 게 마실 수 있었다. 녹차의 색이 시야에 다가오고 그 향기와 맛 덕분에 긴장이 상당히 풀렸 다. 티 타임이야 금방 지나가는게 당연하다. 동방의 애매모호한 시간인 한다경 즈음이 지나서 찻잔은 다 비워졌고 금액을 지불한 바인은 아예 짐까지 챙겨 나왔기 때문에 몇가지를 점검하고는 무기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다시 스 페이스 백팩에 집어 넣었다. 아라테온은 그다지 짐이 많지 않았고 전부 바인에게 맡겨두었 기 때문에 역시 품에 간직한 것들을 제외하곤 단신이었다. 렌시아나 헤인들 역시 살던 곳의 암자 비슷한 곳에서 짐을 챙겨다가 바인이 맡아두었기 때 문에 짐이 없었다. 휴이즈 역시 마찬가지로 이 일행들은 겉보기엔 별 짐이 없었다. 전부 다 무기 투성이랄까? 바인은 헤인에게 걸어둔 주문이 있었기 때문에 헤인에 대해서는 별로 걱 정하지 않았다. 금제를 좀 걸어둔 것이다. 일행들은 덕분에 별 부담없이, 가볍게 사환과 여관주인의 인사를 받으면서 정말 발걸음도 가볍게 걸어나와 아침의 투명한 햇살을 맞이했다. "젠장. 눈부시잖아." 아직 명순응이 이루어지지 않은 듯 헤인은 팔을 들어 눈가를 가리면서 나지막하게 투덜거렸 다. 그리고 욕을 하는 듯 뭐라고 중얼댔다. 뭐 기분 더러운건 알겠지만 그래도 남들이 느끼 는 분위기도 망쳐버리다니. 바인은 아무 시선도 던지지 않았지만 다른 일행들은 헤인을 향 해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게 되었다. '……어째 시작부터 별로 좋지 않은데.' 바인의 나지막한 한탄이었다. 2. 아스타르 대륙은 북반구 위로 약간 치솟아 있고, 남반구 쪽으로는 거의 남극까지 이어져 있 다. 남극과 아스타르 대륙 남반부 사이에는 남빙해南氷海가 존재한다. 그곳에는 실버 드래곤 들이나 화이트 드래곤들이 상당 수 살고 있었다. 남빙해의 바다 속에다가 레어를 지어놓고 사는 드래곤들도 제법 많았다. 뭐 얼음으로 뒤덮인 바다라도 그 속은 제법 볼게 많은 모양 이다. 하긴, 빙산들이 떠 있는 아랫부분의 거대한 것들도 물속에서 보면 제법 볼만 할 것이 다. 아름답겠지? 그것이 죽음의 냉기를 머금고 있지 않다면 말이다. 아스타르 대륙은 4국가 체제다. 그 국가들은 대체로 비슷비슷 하지만 제도가 판이하게 다르 고 득세하고 있는 종족들도 상당히 다르다. 4국가중 이 행성의 적도 부근, 위쪽 북반구 부 분, 그리고 동반부의 해안과 그 근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라마르칸트 제국. 위치상 상 당히 더웠다. 이 아스타르 대륙은 그다지 해안선이 우둘투둘하지도 않고 추가로 그 크기가 넓고 대륙 자체가 장년기의 산맥은 그다지 많지 않다. 중력이 지구보다 아주 약간 낮아서 산들은 보통보다 높은편이긴 하지만. 라마르칸트 제국은 날이 덥고 습도도 높다. 내륙을 제외하곤 바다의 영향도 많이 받았고 군 데군데에선 푄 현상도 나타난다. 산맥은 듬성듬성 하고 평야지대가 많지만 그 토질이 그다 지 좋지는 않았다. 적도 부근은 지나치게 더웠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 햇빛을 많이 받기는 하지만 흑인들은 거의 없었다. 뭐 이 아스타르 대륙 자체가 흑인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곳이기도 하고. 이 행성에서는 흑인들이 그렇게 숫자가 불어날 일도 많지 않았고 흑인들 자체가 소수민족이었다. 그래서 멸시당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체력적인 조건으로는 월등하고 무엇보다 신체적인 조건도 대단하다. 뭐 미적 기준은 인간들이 사회적으로 생성하는 것이므로 넘어가자. 단단한 체구에 키는 백인들과 황 인들보다 약간 작은 수준이 평균이다. 그러나 키야 선천보단 후천적 영향이 더 큰 법이고 흑인들은 대부분 다 유능한 전사인 경우가 많았다. 오지에서 사는 흑인들도 많았고 흑인들 은 원래 '초원의 전사'로써의 본능이 피에 각인되어 있는 거나 다름 없었다. 용병들 중에서 는 흑인을 꽤 발견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 실력이 높은 편이었다. 라마르칸트 제국은 노예제도가 폐지되어 있었지만 그래서 음성적으로 성행하는 제도는 더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그에 대한 대비책도 없이 200여년전에 무조건 노예제도를 폐지해버린 한 멍청한 황제 덕분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귀족들도 그에 대해선 대책이 없었다. 아니, 오 히려 더 좋아할까? 전국에서 자기들 기준에 미모가 제법 맞아 떨어지는 인간들이 있을수도 있으니까. 평민들의 여성 중에서는 아름다운 얼굴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있다면 마누라가 바람을 폈고 그 바람을 핀 대상이 귀족가의 망나니였을 가능성이 높을테지. 뭐 그도 그럴것이 귀족들은 원하는 대로 예쁘장한 얼굴을 발견하면 첩을 얻든가 해서 기어 이 귀족류로 편입을 시켜버릴 테고…… 그래서 귀족제가 있는 국가에서는 평민중에서 미남 이나 미소년은 볼수 있어도 미녀를 보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뭐 바인이야 영웅의 자질이 있 는 녀석이니 얼마든지 발견하고 조우해 내겠지만. 자기를 지킬만한 힘을 얻었거나 산에 숨 어 살거나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평민중에서 미모의 여성을 발견하기란 정말 힘들다. 바인 이야 그런데 신경 쓸 놈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재미(?) 보기를 즐겨하는 귀족들은 오히려 노예상인들을 은근히 보호해 주는 편이었 다. 노예상인들이야 상등품을 발견하면 팔아먹는 방식으로 돈을 짭짤하게 벌수 있었고 이윤 도 많이 남는 편이었고 귀족들이 보호까지 해주니 얼마나 좋은가? 무력만 받쳐주면 떼돈 버 는건 순식간이었다. 뭐 훌륭한 마스크를 지닌 것들이 평민중에서는 그다지 많지 않으니 문 제지. '것'이라고 지칭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노예상인들 눈에는 마스크가 범상치 않다면 이미 그 자체로 '상품'이니까. 뭐 바인이나 휴이즈들이야 외모부터 알아주고 실력 있어보이는 여행자인데다가 귀족의 품위 나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무장되어 있으니 상관은 없었다. 렌시아나 헤인, 아라테온이 문제이 지만 아라테온은 돌변하면 휴이즈도 감당 못할 정도로 섬뜩한 살기를 난무해 대고 얼마든지 엘더 레이스의 위엄으로 자신을 치장할 수 있었다. 뭐 렌시아나 헤인은 어마어마한 힘을 지 니고 있었기 때문에 힘을 쓴다면 하루 내에 도시 하나쯤 멸절시키고 그 안쪽에서 목격자 하 나하나를 다 죽여버리는건 어렵지 않았다. 헤인이야 그렇게 할수 있겠지만 렌시아는 아직까지는 정상적인 인간이었기 때문에 할수는 없었다. 이야기가 딴데로 새 버렸는데 일행들은 지금 라마르칸트 제국에 볼일도 없었고 체 류중도 아니었기 때문에 라마르칸트에 대해서는 후에 언급하겠다. 제국이라고 하니까 당연 히 황제, 귀족제도가 남아있었다. 좀 자유스럽고 귀족중심이라기보다 황제중심이지만 아무리 교육 여건이 좋아도 교육 환경이 어처구니 없으니 제정신머리 박힌 황자나 황손들이 나올 리가 없었고 그래서 귀족중심으로 향하는 추세였다. 본인 머리가 아무리 좋아봐야 손 써서 죽여버리면 다시 반복이다. 귀족들이 직접 손 쓸수는 없으니까 멍청한 놈에게 달라붙어서 충동질하고 힘좀 실어준다음 나중에 꼭두각시 삼아서 괴뢰정부(?)…… 아니 괴뢰황실傀儡皇室을 운용하면 그만이다. 주색잡기에 빠진 황제가 나 라를 위해 뭘 할수 있겠는가? 그냥 반란이 일어나서 영특한 인물이 황제 모가지를 썰고 귀 족들을 말살시켜버리면 꽤 바뀌겠지만 언젠가 다시 그것은 변질될 것이고 악순환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황실이나 왕실이 없다고 해서 조건이 좋은게 아니다. 라마르칸트 제국과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는 엘슈트럼 공화국. 이곳은 그다지 넓지 않다. 그냥 라마르칸트 제국이 차지하 지 못한 서부의 길다랗고 높은 산맥을 방패삼고 밑의 방어선만을 제대로 구축하여 마법사들 을 우대하며 열심히 마법으로 국가를 뜯어고치고 있는 나라다. 하지만 공화정이라고 왕이 없는게 아니다. 공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반적 공화정과는 달랐다. 전 제정과 공화정의 중간단계라고 보기에도 애매모호하고 말이다. 그 공왕의 처지는 정말로 불행하기 그지없다. 왜냐, 국왕이나 황제보다 권력은 적으면서 그 썩어빠진, 뇌에 주름이라곤 하나도 없는(한마디로 멍청한!)…… 욕망덩어리의 늙은이들을 다 독여야 하는 것이다. 더 괴로운 것은 일단 의견이 비틀리면 핏대부터 올리며 마법부터 난사 하고 보는 마법사들도 억눌러야 했다. 이래저래 파벌도 많고 매파, 비둘기파 등등에 온갖 잡 것들이 넘쳤기 때문에 공왕들의 평균수명은 70이 채 못되었다. 공왕만큼 '왕'자 들어간 이 치고 괴로운 이는 드물 정도다. 특산물 따위나 여러 가지 정세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할 바가 있을 것이다. 이 엘슈트럼 공화국의 아래를 가로지르고 있는 거대한 강. 봉인계의 장강에 비견되는 이 어마어마한 강 아래로 두 개의 국가가 존재했는데 이 두 국가는 굉장히 친밀했다. 왜냐하면 엘슈트럼 공화국이나 라마르칸트 제국보다 조건도 좋고 국경선도 붙어있는데 전혀 싸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싸우질 못했다. 그들의 국경선에는 숲이 하나 존재했고 그 숲에는 녹색의 거룡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앉아 신경 거슬리는 놈들이 나타나면 브레 스를 확 뿜어버렸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설명해도 알만큼 아실 것이다. 그린의 초고룡 미 뉴엘이었다. 뭐 친밀한 것은 미뉴엘 덕분이지만 말이다. 미뉴엘이 없어져도 싸움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엘슈트럼 공화국에는 8서클 마스터가 궁정 마법사로 있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그곳에 이 아스타르 대륙의 마법사 길드 총본산인 '각성의 탑'이 존재했 기 때문이다. 각성의 탑은 범국가적인 조직이었지만 그래도 엘슈트럼 공화국이 돈을 잔뜩 부어주었기 때문에 의리는 있었다. 대하大河 피즈리언을 건너 위오리나 왕국과 칼리쉬스 왕 국. 둘 다 왕국이지만 제도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칼리쉬스 왕국은 아직 장원제가 남아있 었고 위오리나 왕국은 완전히 왕족중심이었고 귀족의 영향력은 매우 약했다. 덕분에 왕만 머리가 좋다면 얼마든지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귀족이 말만 귀족이지 사실상 봉인계의 공무원이나 다를바 없었다. 공무원도 그 힘이 상당하지만 은밀하게라면 몰라도 사람 대놓고 죽일수는 없으니까. 이 대 륙의 귀족이라는 것들이 사람 대놓고 죽이는걸 우습게 안다. 자기가 고귀한 핏줄이라고 생 각하는 것이다. 정작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말이다. 그런 버러지들 을 볼때마다 바인과 같은 이라면 검을 그대로 뽑아 휘둘러 버릴 것이다. 바인이 참을성이 없는건 아니지만 이미 범국가적 존재. 짜증나면 썰어버리면 된다. 시비를 걸면 유성소환 몇 방 갈겨버리면 그 뿐이다. 8서클 유성소환쯤이야 연속 세차례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9서클 유성소환주문도 쓸수 있고…… 만부부당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아니, 솔직히 일만 이나 이만 정도로 바인을 상대하는게 우스울 지경이다. 그 전원이 다 소드 마스터라도 마찬 가지다. 검으로 운석을 막을수 있을까?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파괴의 불꽃과 암괴를 향해 검 강을 날려봐야 맥없이 사그라지긴 마찬가지다. 유성소환마법이란 그런 어마어마한 주문이었 다. 괜히 대륙에서 고 서클 마법사들을 우대하는게 아니다. 칼리쉬스 왕국은 솔직히 별로 발전가능성은 없었다. 자리하고 있는 땅은 조건이 매우 좋았 다. 대하 피즈리언에서 갈라져 나온 무수한 지류가 존재하기도 했고 마르지 않는 젖줄 피즈 리언이 범람하고 나서 다시 원래의 흐름으로 돌아가면 규모는 달라도 봉인계 지구의 이집 트. 그곳의 나일강과 같은 효과를 가져다 준다. 근처 평야에 많은 영양분을 쏟아 주는 것이 다. 대하 피즈리언의 시작은 가장 거대한 산맥이며 대륙을 그대로 관통하여 바다에까지 닿 아 있는 가장 긴 산맥이기도 하다. 아스타르 대륙을 사선으로 관통하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산맥은 펄라이트 산맥으로 조산운 동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지만 습곡은 없었다. 지기도 성하고 물 역시 좋고. 광맥또한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드워프와 노움들이 빌붙어 있는 산맥이기도 했다. 노움들이 엘더 휴먼들 이 지녔던 찬란한 과학의 위명을 재현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오염물질을 대기로 뿜어대긴 하 지만 드래곤들이 차마 다 멸절시킬수는 없고 해서 오염물질들을 모조리 다 분해해서 다시 자연에 환원시키는 수고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드래곤들이 노움이나 드워프들을 보는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당연히 드래곤들은 드워프나 노움들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인식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드래곤들이 무슨 나라 를 습격해 보석을 강탈하느니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 별로 필요는 없다. 그냥 고령들은 용언 한방이면 금을 무수하게 만들수도 있고 보석쯤 구워내는거야 어렵지도 않았다. 다이아 몬드 같은거야 마법적인 제련을 써도 되고. 사실 창조하는데 용언만 써도 된다. 투명도라든 가 색도라든가 하는것도 조절이 가능하고. 그러니 드래곤들이 강탈할 이유가 있는가. 용언을 제대로 쓸수 없는 나이의 어린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그냥 나무 꺾어다가 마법으로 분해하고 탄소만 분리해서 모은다음 어느정도의 온도에서 고압으로 압축하고 결정질을 변형 하는 세세한 마법 운용만으로도 다이아몬드 수백톤을 쏟아낼 수 있었다. 온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탄소는 흑연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고온보단 고압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지각 플레 이트가 부딪히며 온도와 압력 조건을 맞추어낸 곳에는 다이아몬드 광맥이 선을 그리면서 이 어져 있었다. 탄소. Carbon이란 이 행성에서는 흔한 재료인 것이다. 자연산 그대로의 모습을, 마법이라는 이름의 권능은 완전히 재현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인 간의 마법사들도 공식, 온도, 압력차, 변수매개라던가 입자를 완전히 투영해서 제어한다면 다이아몬드 쯤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바인도 완전히 자연의 그것과 같은 다이아몬드, 혹은 보석을 만들어내는 드래곤의 보석학(?)에 대해 고문에 가까운 공부를 했기 때문에 나무 좀 꺾어다가 다이아몬드 만들고 불순물 첨가해서 블루 다이아몬드, 블랙 다이아몬드 등등을 만 드는건 어렵지 않았다. 바인은 탄소 위스커 코팅 정도는 야외에서도 할수 있는 강력한 마법의 힘과 그것을 완벽에 가깝게 제어할 수 있는 실력 역시 지니고 있었다. 탄소 위스커. 탄소 단결정도 만드는데 다 이아몬드를 못 만들 리가 없었다. 언령같은 것을 쓰지 못해도 그는 사파이어, 루비 등등은 간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재료야 널리고 널렸고 말이다. 물론 일반 인간의 마법사들은 할수 없었지만 드래곤에게서 마법을 배운 바인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보석 인플레를 일 으킬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희소있는 것들을 만들 가능성이 높았다. 희소성 있는 보석이라면 뭐 가령 500캐럿짜리, 완벽한 브릴리언트 컷의 다이아몬드라던가 겉은 사파이어, 속은 루비가 들어있는 더블릿 쥬얼이라던가…… 뭐 그런 희소성 있고 예술 가치가 풍부한 거라면 만들어서 팔아먹는 등으로. '만약에' 돈이 떨어졌을 시에 보충할 마음 정도는 지니고 있었다. 있으니 써먹어야지.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곳으로 흘러버렸다. 마을을 출발한 일행의 여정은 어느새 3일을 넘고 있었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야 한단 말인가? 뭐 그냥 일행들의 수준으로 보기엔 불쌍할 정도로 안목이 부족한 몬스터 떼거리를 멸살시키면서 몸을 조금 풀 고 헤인이 탈출시도를 했다가 바인에게 반쯤 죽을 정도로 두들겨 맞고 뻗은 것 등이었다. 현 그들의 위치는 위오리나 왕국. 대하 피즈리언 정도는 그냥 가볍게 날아서 건널 생각이었 다. 배에 타는 비효율적인 행동은 그들에겐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냥 아라테온은 바인이, 렌시아는 휴이즈가 맡고 헤인은 밧줄에 꽁꽁 묶어서 바인이 매달고 에테르 윙을 펼치고 헤 인에게 방어주문을 건다음 그대로 가속해서 날아버리면 되니까. 보통 소설을 보면 배에서 이벤트 같은게 발생하게 되게 마련인데 이들의 이동속도는 상상을 불허하는데다가 고작 몬스터들이 그들을 이길수는 없었기 때문에 전혀 상처도 입지 않았다. 밤중에 노숙을 할 것 같으면 에테르 윙으로 비행해서 노숙할만한 장소를 찾거나 근처 가까 운 마을로 이동해서 지도를 보며 다시 방향과 길을 찾아서 비교하며 걷는다. 얼마나 간편한 가? 이미 인간이라 불리기에는 지나친 이들이 한 파티에 그대로 모여있고 다들 두뇌 굴리는 데는 소질이 있는 자들이었다. 바인이야 9서클 마스터고 아라테온도 고 서클의 마법사이며 이 시대의 신관이란 당연히 브 레인들이었고 귀족출신의 신관인 휴이즈가 머리가 나쁠리도 없었다. 렌시아 역시 영법을 배 우는 것 자체가 자연에의 탐구였고 헤인이야 아예 일행들에게 뭔가 도움을 줄 의사는 전혀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외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들은 알아서 척척 움직이며 합리적 으로 하루에 움직이는 거리를 늘여나갔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1주일쯤 걸렸을 거리를 그들은 단 이틀만에 주파해버렸고 이제 그 3일째 의 아침을 맞고 있었다. 도시들은 중소 수준이었고 마을 역시 작았다. 이들은 관도 같은데로 다니지 않아도 상관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더욱 단축된 것이다. 이 아스타르 대륙은 정말 처절하리만치 넓어서 위오리나 왕국 하나가 봉인계의 중국의 3분의 2 수준이었다. 얼마나 큰 것인지 다 알수 있으리라. 정말 이 대륙은 판게아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땅이 지나치리만치 넓었다. 그래서 더 발전이 더딘 것인지도 모른다. 중세라는 것은 수렁이다. 종교라는 것이 발전을 가 로막았다. 의학의 발전을 이루어 줄만한…… 질병에의 연구 따위는 신권에의 도전으로 여겼 으며 화학, 수학 따위도 무시했다. 오로지 신학…… 이 세상은 마법이라는 힘이 존재하므로 조금 나을지도 모르지만 마법 자체가 또 과학의 발전을 막아버린 것이다. 마법과 과학의 조 합이 이루어진다면 제법 볼만할 텐데. 엘더 휴먼들은 그것의 조합에 성공했고 우주조차 지 배해 나가고 있던 와중에 사라져버린 것이지만…… 실제로 이 행성의 밤에 보이는 별들의 5% 가량은 위성이었다. 하늘에서 쏟아져 떨어질 듯 아름답게 흔들리고 있는 별무리중 5%가 위성인 것이다. 아름다운 별무리에 위성이 그정도 로 많이 섞여있다는건 우습지만 그 위성들은 마나를 빨아들여 좌표를 그 장소에 고정시켜 둘뿐 운행조차 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주변 위성들의 좌표를 알아낸후 텅 빈 공간으로 텔 레포트한다. 아직 엘더 휴먼들이 결성해놓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이나 세계 제어를 하고 있 는 다중 고성능 컴퓨터 연산 연결 신경망계의 'The Mother' 역시 무한한 동력을 마력을 통 해 얻고 있었고 계속 동력을 순환, 전송하고 있었으므로 위성들이 얻어내는 정보 같은건 '어 머니'의 데이터로 계속 저장되고 있었다. 자아를 지닌 컴퓨터였기 때문에 더 그 기간이 길어진 것이다. '임기응변'이라고 하는…… 컴 퓨터에게는 미리 행동지령을 정해두지 않으면 나타날 수 없는 일을 해 낼수 있는 '그녀' 였 기에 운석이 떨어진다거나 수명이 다한 위성을 회수해서 그것을 마법으로 분해하고 입자를 뜯어다가 정보는 흡수하고 다시 그것으로 위성을 재구성시켜 띄워올리는 것이다. 사실 띄워 올리는게 아니고 위성들이 형성하고 있는 거대한 마법진 좌표로 전송하는 것이지만 이거나 저거나 마찬가지다. 바인과 일행들은 지금 위오리나 왕국으로 뻗어내린 대하 피즈리언의 지류 아피아 강에 놓여 져 있는 거대한 아피아 다리(정말 개성이 없다) 근처에서 쉬고 있었다. 수없이 뻗어있는 흰 날개 가도를 지나는게 아니라 그냥 지류 치고는 상당히 넓고 아름다운 풍광을 지니고 있는 아피아 강의 강가에서 쉬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여자아이기에 피곤하고 발이 좀 부르텄 는지 렌시아는 부츠를 벗고는 강물에 발을 담그곤 꺄꺄 거리면서 좋아하고 있었다. 일행 분 위기가 깊게 가라앉아 있는 것을 완전히 헤집어 놓고 있는 모습인데 바인이나 휴이즈는 전 혀 상관하지 않았다. 다만 아라테온만이 렌시아 옆에서 잡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라테온은 그래도 음유시인으로 돌아다녔던 전적이 있어서 말솜씨가 좋았고 무엇보다 렌시 아는 날카롭고 냉엄한 바인과 흐물흐물한 듯 하지만 생각이 깊은 휴이즈보다 속내는 몰라도 천진하게 웃어주는 아라테온이 훨씬 나았으리라. 정신연령으로 보면 아라테온이 월등히 높 지만 그는 그래도 바인과는 달리 배려할줄 아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부은 렌시아의 발에 바인이 계속 마법을 써주는 이유가 단지 행군속도가 늦어지면 안된다는 것임에 비해 아라테 온은 많은데서 배려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뭐 바인도 이 즈음이면 느긋하게 가도 된다고 생각을 바꾸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슈라스가 갑자기 소멸해버리지도 않을뿐더러 이 세상이 꽤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바인은 봉인계에 있 을때부터 정치, 역사 등에 꽤 흥미가 많았기 때문에 마키아벨리즘이라던가 하는 것에 대해 서도 꽤 공부를 했었다. 정말 깊이있게 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흥미라는게 덧붙여지니까 무시못할 정도로 제도 같은 것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바인은 만능 인텔리나 다 름 없는 마법사라는 직종이었기 때문에 이젠 수학이나 물리에 대해서도 이해가 깊었다. 미 뉴엘 덕분에 보석학寶石學이라던가 하는것에도 관록이 생겨버렸지만 말이다. 배우는데 게으 르지 않아서(신빙성은 없다) 아는 것이 많은 휴이즈도 바인에겐 여러 수 접어줘야 했다. 그러나 그런 바인마저도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인은 전술 전략에는 매우 훌륭한 솜씨 를 지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술 전략에는 별로 인연이 없고 실제로 실력도 없는 휴이즈 에게 장기로 완전히 박살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바인이 이겼다. 그러자 휴이즈는 방 긋 웃으면서(열 받은걸까?) 두수 정도 접어두었던 실력을 펼쳤고 그 결과 바인은 다음 판에 서 쩔쩔 매다가 다섯수 차로 져 버렸다. 그리고 이번 세 번째 판에는 정말 완전히 박살나고 있는 것이다. "으으음……" 바인은 인상을 찡그리고는 고민에 빠져들어갔다. 그러나 휴이즈는 매우 안색이 밝았다. 생글 생글 웃고 있는 것이다. 이번 3판 2승 전에는 내기도 했기 때문에 바인은 이렇게 괴로워 하 고 있었다. 보통 돈 내기라면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냈을텐데 이건 그냥 내기가 아니었다. 시 작은 그냥 심심해서였다. 스페이스 백팩에서 가끔 미뉴엘과 심심풀이삼아 두었던 위오리나 의 장기 '플레이스 테일'을 꺼내 휴이즈와 내기를 걸고 두기 시작한 것이다. 휴이즈의 입가 에 스친 그 득의만만한 미소가 단지 자만이 아니란걸 알았어야 되었는데. '……이거. 실수로군.' 바인은 일단 눈을 감았다. 2차원적 계도를 염으로 만들어 눈을 감은상태에서도 시신경을 자 극함으로 환상을 떠올리게 했다. 현재 장기의 판도가 그대로 놓여진다. 흰색과 백색이 번갈 아 되어 있는 판. 가로 8칸 세로 8칸. 총 64개의 플레이스를 지니고 있는 정사각형의 판이 다. 그리고 그 위에 남아있는 말들이 하나하나 배열되었다. 바인이 지닌 말은 지금 7개. 휴 이즈는 10개. 휴이즈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체스에서의 나이트 역할을 하는 드래군Dragoon(註 : 영국의 소총기마부대를 가리키나 여기 서는 랜서Lancer를 말한다. 랜서의 다른 용어. 다른 왕국에선 쓰지 않는 말이다. 다른 왕국 에서는 그냥 기마창대나 거창돌격대라고 말하지만 위오리나에서 드래군이라 칭한다) 둘이 다 죽어버렸고 또 병사는 딱 하나 남아있었다. 역전할 수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에 비해 휴이즈는 여유만만이었다. 4칸을 격하는 범위를 공격할 수 있는 마법사가 휴이즈의 진영에는 없었고 바인의 진영에는 있었지만 바인의 마법사가 움직여서 상대를 죽일시에 반드시 그 마법사도 사라질 각오를 해 야 했다. 그렇다고 마법사의 공격사거리 내에 상대의 왕이 있어서 체크 메이트도 아니고 상 황이 매우 곤란한 것이다. 바인은 점점더 표정이 곤란해져만 갔다. 그나저나 참 평화로운 한 때였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때에 마가 끼는 법…… 3. 헤인은 장기를 두고 있는 바인과 휴이즈를, 그 중에서 바인을 매섭게 노려보았지만 바인은 아랑곳 하질 않았다. 후드를 젖혀놓은 상태여서 그 아름다운 얼굴이 완전히 드러나 있었는 데 헤인은 그 아름다움에 무너질(?) 뻔 하다가 바인이 남자라는 것을 상기했고 또 냉혹하고 잔인하며 또 필요하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을 떠올리며 자신을 질책했다. 그러 나 곧 자기혐오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이 순간 얼굴을 붉혔다는 것이다. 자신이 노멀 ()이라고 굳게 믿어오고 있었는데 고작 아름다운 외모 하나를 보고 그렇게 흔들려버리다니 …… 자기 반성을 하던 헤인은 문득 자신이 개그 캐릭터가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했다. '내가 왜 이따위 생각을 하고 앉아 있는거지?' 헤인이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이 일행들 참 한적하면서도 뭐랄까? 널널한 놈들이었다. 스 승을 베어넘긴 헤인에 대해 이제 관심이 끊겼는지 렌시아는 아라테온과 물가에서 잡담하면 서 꺄꺄거리고 있었고 아라테온은 빛이 나는 듯한(외모가 잘나면 무슨 짓을 하든 빛나 보인 다!) 미소를 지어보면서 그에 동참해 있었다. 바인은 고작 내기장기 한판에서 질까봐 전전긍 긍하고 있었으며 휴이즈는 그런 바인을 이겨보이면서 여유작작한 표정이었다. 뭐랄까 이놈 들은 제정신 박힌 것들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헤인 그 자신 역시 제정신이고 정 상으로 보기에는 문제점이 많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인은 평소에는 냉엄한데 어째서 항상 마이 페이스에 포커 페이스이던 면상이 이렇게 깨어 진 것일까? 휴암환의 여파 치곤 좀 심했다. 아무리 휴암환이 정신보호의 힘을 지니고 있다 해도 바인의 정신 자체 역시 상당히 굳건하다. 물론 물만 부으면 팽창해서 정신을 깰만한 쐐기가 좀 박혀있긴 하지만 그 쐐기들도 상당부분 제거된 상태였다. 생각해보면 바인의 제 스처나 표정이 나타날때는 꽤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행동에도 감정이 제법 들어있 는 것처럼 보이고…… 이것은 설원에게 '본질'이 섞이고 그 영성이 깨어나면서 기억이나 옛 감정에 상당부분 벗어 나면서 점점 초탈한 초월자에 가까워지면서 일어난 일이다. 감정 역시 커지고 이성 역시 커 지면서 이젠 상충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면 감성적인 부분이 드러나 자연스럽게 보이고 이성이 강화된 순간에는 냉철하고 잔혹한 마법 사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사멸과 붕괴의 힘 역시 완전히 그의 제어 하에 들어가 회 색으로 변색되어가던 그의 머리카락과 홍채 역시 다시 순흑색으로 변한 뒤였다. 흑진주처럼 반짝거리는 머리카락과 블랙 오닉스 같은 눈동자에 회갈색 홍채는 보기만 해도 아름다웠다. 특히 눈동자와 홍채는 보석 안에 다른 보석이 들어 있는 더블릿처럼 보일 정도 였다. 감정이 드러날때는 생동감도 흘러나왔기 때문에 자신의 외모를,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바인에게 있어서는 좋은 일이라 할수 있었다. 뭐 그 덕분에 극히 아름다워 진 모습이 헤인조차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일행의 현 분위기는 매우 조용하고 평화스러워 보였다. 바인은 지금 휴이즈에게 딱 한수만 물러달라고 말할까 고심하고 있었지만 휴이즈의 얼굴을 보면 결코 물러줄 생각은 없어 보였 다. 하여튼 평소의 위엄을 스스로 모조리 깨먹고 있는 바인이나 결코 신관답지 않은 휴이즈 나 비정상적인 놈들이다. 바인은 고심하다가 갑자기 표정이 밝아졌다. 그냥 다시 무표정에 가까운 미약한 미소를 띄웠을 뿐이지만. 그의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섬섬옥수의 손가락 들이 움직여서 말 하나를 틀어쥐고 옮겼다. 순간 휴이즈의 표정은 급살맞은 자의 것으로 바뀌었고 바인의 얼굴에는 득의만만함이 미약 하게나마 떠올랐다. 귀여워 보일 지경이군. 휴이즈는 이제 여유있는 자의 표정을 깨고 식은 땀 한두방울을 매단채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을 재현해야 했다. 휴이즈는 상당한 미청 년인지라 그의 얼굴이 찡그려지자 헤인은 심장이 덜컥 하는 느낌을 받았다. 곧 진지한 느낌 으로 찡그려지는 그 표정이 무엇 때문에 찡그려졌는지를 다시 떠올리고 자아 비판과 휴이즈 에 대한 냉소를 비쳤지만 말이다. 아라테온이 문득 귀에 매달려 있는 피어싱을 매만졌다. 귀에 걸린 드롭Drop. 떨어져 내리는 이슬방울 장식형으로 깎아놓은 물빛 수정이 몸통이다. 피어스는 오른쪽 귓가에 매달고 있었 다. 은으로 된 사슬로 손가락 반마디 정도 길이로 살짝 늘어뜨린 것이 맑은 은빛과 물빛이 뒤섞여 아주 잘 어울렸다. 은에 푸른수정이지만 마법적인 것이라서 귀를 뚫을 필요는 없었 다. 그냥 벌어져 있는 틈에 귀를 가져다 대고 염을 가하면 깨끗하게 고정된다. 엘더 라이칸스롭인 아라테온이 왜 은으로 귀걸이를 했을까? 겉보기에는 뚫은 것처럼 보이니 피어싱이라고 불러도 상관 없을 것 같았다. 마법의 힘이 느껴지긴 하지만 별로 대단한건 아 닌 것 같은데 말이다. 다만 마법의 기운이 약해도 범상치 않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 냥 무슨 마법기의 일부를 은사슬과 은으로 마감해서 귀에 단 것 처럼……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은의 귀걸이는 확실히 보통 물건은 아니었다. 소유주만 하더라도 엘더 라이칸스롭이니 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라테온은 바인의 광익의에 추가되어 있는 옵션(?)인 스페이스 백팩과 비슷한 기능을 내장 한 자신의 가방(아공간을 열어놓고 경량화 마법을 걸어놓은 것. 제조 할 난이도만 따진다면 드래곤들도 약간 귀찮을 정도다)에서 류트Lute를 꺼냈다. 8현금이니까 뭔가 조금 이름이 다 르겠지만 말이다. 그것을 꺼낸 아라테온은 새하얗고 길고 가늘고…… 하여튼 균형도 맞춤하 고 아름다워 보이는 손가락으로 현을 튕겨보였다. 아라테온은 바인도 상당히 감탄할 정도의 환상법사에 네크로맨서로써도 대륙 최고나 다름 없는 마법사다. 또 그의 탄금 솜씨 역시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환술을 첨가한 탄 금은 순식간에 모두를 휘어잡았다. 강가를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과 풍화되고 물에 쓸려 동 글동글하게 닳아있는 돌멩이들이 놓여있는 강가. 그리고 기분좋은 바람이 훑고 지나가자 숲 이 우석거리는 그 소리는 멋지게 탄금음과 하모니를 이루었다. 두발달린 것이건 네발달린 것이건 가리지 않고 사로잡아 버리는 음. 게다가 환술이 첨가되 어서 인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근처'이지만 관도 근방으로도 동물들이 기어나오고(?) 있었 다. 사슴이나 노루 등. 원래는 깊은 숲속에서 돌아다니고 이 일행들이 위치한 곳이 깊은 숲 속과 숲의 외곽 사이 부분을 관통하는 물길, 그리고 탁 트인 강가가 절묘하게 존재하는 곳 에 있다고 해도 너무 쉽게 나타나는게 아닐까? 곰에서 늑대 같은 것들에 초식동물들까지 터벅터벅 걸어나오고 있었다. 원래 늑대는 숲에서 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위오리나 왕국은 숲 말고도 평야나 황야 역시 존재했다. 이 왕국은 초목이 많았고 엘프들의 숲까지 존재하는 곳이다. 나라 자체도 엘프들에게는 특전을 많이 주고 있었고 에콜로지컬 레이스Ecological Race인 엘프들의 영향을 받고 이 왕국에서 아슈 라스 교 다음으로 득세하고 있는 쥬레온 교단이 자연친화적인 성향이 강했다. 드루이드Druid들이 주세력인 쥬레온 교단이 왕국에도 제법 영향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쥬레온 신은 이 차원의 상급신인데 교리의 성향이 뭐랄까? 타오이즘Taoism에 가까웠다. 무 위無爲랄까? 교단이 생겨난게 이상할 정도였다. 사랑과 자비를 들고 나오는 웃기지도 않는 종교는 아니고 다만 도교학적인 사상에 유사한 교단이었다. 쥬레온이라는 상급신 자체가 자 연의 풍광을 만들어놓길 좋아하는 놈이었기 때문에 교단의 건축양식 역시 최대한 자연친화 적이었다. 강력한 치료 신성술법과 자연에 영향을 주는 에테르Ether를 다루는 신성법이 전수되고 있는 신전인 것이다. 죄다 드루이드들 투성이다 보니 교단에 위계질서가 별로 없었다. 심지어는 교황도 드루이드다 보니 교황 본인이 수많은 드루이드들을 끌고 여행을 하면서 신성법을 써 댔기 때문에 '방랑의 교황'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 본인이 무위사상적이라 세속의 명리에 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다지 타락할 건덕지도 없는 교단이었다. 좀 가난하긴 하지만 괜 히 드루이드들의 교단이 아니었다. 아슈라스 교단이 인간의 타락성을 인정해버리면서 자기들 나름대로 중립을 지키고 있다면 이들 교단은 민의 구제와 득도(?)에 관심이 있을 뿐이지 돈이나 보석 같은 것은 품위 유지 비 정도만 있으면 된다는 주의였다. 그래서 교단 자체가 정렬되어 있지 않은 다시말해 널널 한 교단이었다. 이런 교단이 아슈라스 교단 바로 다음으로 인기가 좋았으니까…… 딱히 강 조하는 정의도 없고 운명순응적도 아니고…… 무위적인게 문제지만 그래도 다들 민중의 구 제를 위해서라면 빠릿빠릿했기 때문에 욕은 거의 먹지 않았다. 좀 막히긴 했어도 나름대로 인기있는 교단인것이다. 그래도 아슈라스 교단에 비할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 대륙에는 총 14개의 교단들이 있 지만 7개의 커다란 교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다 몰락했고 구전으로나마 전해오는게 대부분 이었다. 전설상의 교단도 많았다.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교단들 중에서 신성법이 전해지는 곳은 두군데 밖에 안되고 그나마 하급 신성법만 전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현재 가장 득세하 고 있는 교단은 아슈라스 교단이며 신성법 역시 강력하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신이 직접 현세에 존재하여 후원까지 하고 있으니 절대적인 힘을 지닌 교단인 것이다. 이야기가 딴데로 흘렀는데 이미 아라테온의 금음은 멎어있었다. 초식동물들은 날쌔게 도망 가버렸고 육식동물들이 그 뒤를 쫓아갔다. 역시 금음 자체가 기경으로 진동해서 동물들을 포용한게 아니라 환상의 힘이 좀 강했던 모양이다. 일행들은 다 정신력이 강해서 금음과 그 에 깃든 환술을 즐기면서 들을 수 있긴 했지만 단순한 동물들은 방어 자체가 이루어지질 않 았던 것이다. 일행들은 그냥 방어하면서 즐길 필요성을 느꼈지만 동물들은 안그래도 나약한 정신이 방어 자체를 필요로 할만한 이성이 없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당한(?) 것이다. 뭐 저 항 해봐야 걸릴 것은 자명하지만. "좋긴 하지만 여기서 체크 메이트!" "윽!" 바인은 손을 움직여 병사를 건드렸다. 순간 병사가 한칸만 움직였을 뿐인데 휴이즈의 말은 옴짝달싹 할수 없이 포위되어 버린 것이다. 병사가 바로 눈앞에 있었고 왕은 그것을 잡아 먹으면 된다. 그러나 잡아 먹는 순간 바인의 아처Archer가 사선으로 찔러들어 올 것이다. 체스에서의 비숍Bishop. 그러니까 승정, 혹은 주교의 역할을 하는 말에 당하는 것이다. 그렇 다고 피하면 병사의 밥이 되고 뒤로 물러나도 병사의 밥이 된다. 병사를 잡아죽일만한 말이 근처에 한 마리도 없었던 것이다. 바인이 파상공격을 한 덕분에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바인 은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내기에서도 이긴 셈이다. 휴이즈는 그 즉시 죽을상으로 변해버렸다. 이런 제길 하고 중얼거리면서 판을 들여다보며 고심했지만 도저히 방도가 없었다. 휴이즈는 한수 물려주라고 간청해 볼 생각이었지만 바인 은 다시 냉엄한 표정으로 휴이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무심한 눈이었지만 휴 이즈는 '절대 물려주지 않는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눈으로 비쳤다. 그래서 휴이즈는 절 망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약속은 지키겠지요?" "……예." 바인은 회심의, 그러나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승자의 미소랄까? 휴이즈는 반면에 패자 의 표정으로 투덜대야 했다. 헤인은 문득 호기심이 이는 것을 느꼈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투덜투덜 대는 것일까? 절망의 표정은 아니었기 때문에 뭔가 끔찍한 짓은 아닌 모양 이었다. 하지만 대체 무엇이길래 저렇게 심각한 표정이었을까? 휴이즈는 헤인을 노려보았다. 헤인을 노려보는 그 시선에 헤인은 움찔 하고 몸을 멈칫 거렸다. 그정도로 예리하고 날카로 웠는데 살기까지 섞여 있었다. 휴이즈는 중얼거렸다. '지금이라도 죽여버릴까?' '대, 대체 무슨 일이길래?' 헤인은 그 험악한 시선에 긴장했지만 휴이즈는 눈살을 더 찌푸릴 뿐이었다. 일그러진 표정. 성직자의 표정으로는 아무리 점수를 좋게 주려고 해도 최악의 점수 밖에 나오지 않을 듯한 표정이었다. 지금의 휴이즈와 바인을 비교하면 차라리 바인이 덜 위험한 사람으로 보일 지 경이었다. 휴이즈는 쳇쳇 거리면서 일어 났다. 렌시아는 그런 험악한 상황은 무시하고 아라 테온의 8현금을 받아서 만져보고 있었다. 음유시인에게 악기란 전사의 검과 같은 것인데 저 렇게 쉽게 내줘도 되나? 렌시아가 지금까지 봤던 금은 동방의 묵금 비슷한 것 뿐이었는데 이런 서방에서도 특이한 금을 보게 되자 호기심을 느낀 것이다. 그녀는 사문에 남아있던 신물이랄 것들은 다 가지고 와서 중요한 것은 품에 넣고 나머지 금이라던가 하는 잡다한 짐은 바인에게 넘겨버린 상태 였기 때문에 금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어쨌든 저 8현금의 형태는 그다지 볼만한게 없었 고 상당히 유려하고 아름답다는 것만 제외하면 보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휴이즈는 투덜거리면서 일어난 상황에서도 깜짝 놀라 금을 바라보았다. 바인 역시 조금 놀라 있었다. 처음 봤을때는 몰랐는데 금에서 뭔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금을 탄 주한지 얼마 안되어서 그럴까? 금에서 이질적인 느낌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인은 금 방 흥미를 잃었다. 마법기라 보기엔 뭔가 이상할 정도로 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틀림없는 요기妖氣가 내재되어 있는 8현금. 휴이즈 역시 피식 웃고는 넘어가버렸다. 마법기이긴 했지만 내재된 힘이 그다지 강하지 않 아 보여서였다. 하지만 아라테온이 저런 싸구려를 가지고 다닐 일을 없다는 것을 휴이즈는 잊어버린 것이다. 아라테온의 강한 힘과 능력을 보았음에도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힘만을 짐작하곤 무시한 것이다. 바인은 물론 9서클의 마스터였고 9클래스의 마스터 이기도 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 내재된 힘을 조금은 느낄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봤자 한 2급 마법기 정도이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당연하다고 할수 있다. 바인이 지금 10서클이었다면 아라테온이 지닌 8현금의 진면목을 알아 볼수 있었을 텐데…… 지금 그는 9서클 마스터였고 10서클에 대한 깨달음은 아직 당당 멀었다고 할수 있었다. 지 금 이들은 전혀 이상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라테온이 오늘도 메모라이즈를 하지 못했 다는 것을 휴이즈나 바인이나 잊어버린 것이다. 대체 어떻게 메모라이즈도 없이 환술을 쓸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 금이라도 깨닫는다면 깜짝 놀랄테지만. 나약한 힘의 마법기로 어떻게 환술을 섞은 금음을 탄주 할수 있었던가 하는 것에 대해서 휴이즈나 바인은 전혀 의심하지를 못했다. 아라테온 은 막 렌시아에게서 8현금을 건네 받고는 막 갈무리를 하려 하고 있었다. 4. 동방에는 일원一元(달리 무극無極이라고도 한다), 음양陰陽, 삼재三才, 사상四象, 오행五 行, 육합六合, 칠정七精, 팔괘八卦, 구궁九宮, 십방十方 등의 관념이 존재한다. 일원에서 갈 라져 나오면서 음양, 천, 지, 인 등으로 갈라져 나왔다고 하는 것이다. 동방인들이 삼재진 사상진 오행진 하면서 노는게 오늘 내일 하던 일이 아닌지라 동방의 청심문의 비전오의秘傳奧 意 중에서도 비오의秘奧意인 일월신검류를 익히고 그 검보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워놓은 바인 도 완벽한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은 알고 있었다. 렌시아 역시 아주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조약돌 같은 것들을 주워다가 영기를 이용해 주 변의 기 흐름을 느껴보고는 삼재, 사상에 팔괘와 구궁을 더해서 삼재사상팔괘구궁진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진을 펼쳐보인 것이다. 물론 살기를 머금은 진은 아니었으나 충분히 어지럽 다. 하지만 이렇게 어지럽게 배치해두었다가는 지금처럼 바인이 그냥 아무렇게나 무작위로 내 딛어버리는 동작에 단숨에 파해되어 버릴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휴이즈를 장기로 이 겨버리고 바인은 렌시아를 아라테온에게서 떼어낸다음 수업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라 하더라도 동방의 문화에는 그다지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지 못했다. 그는 봉인 계의 한국인이었지 중국인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현명한 그라도 다 아는건 아니니 까. 하지만 바인은 마법사임에도 기의 흐름을 느낄수 있었고 그래서 이런저런 식으로 휴문 이나 사문이나 생문 같은 것들을 배우면서 진의 설치와 응용 등을 습득하는 것이다. 렌시아 는 전투센스를 제외하고는 헤인보다 한참 위였고 가르치는 자로써의 재능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예를 들어보이면서 지나치게 복잡한 진은 이런식으로도 파해 될 수 있다는 주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어때요?" "……이거, 어처구니없군." 바인은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은 다음 잠시 그렇게 침묵을 유지했다. 기의 흐름, 영기의 흐 름 등을 느끼는 것이다. 기나 영기를 다룰수는 없어도 우주조화일월신검류는 그것에 대한 감각만은 극도로 민감하게 해 주었기 때문에 그는 기나 영기를 느낄수 있었다. 바인은 그렇 게 극도의 정의 자세로 멈추어 서 있다가 가볍게, 아주 가볍게 블래스팅 팡을 뽑아 공중에 찔러 넣었다. 그러자 영기와 기의 조화로 인해 펼쳐져 있던 기문진의 중추가 꿰뚫려버렸다. 물론 아무리 마법기라도 단지 꿰뚫린 정도로는 기문진을 파해할수 없다. 그러나 바인은 붕 괴의 힘을, 블래스팅 팡을 매개로 흘려보낸 것이다. 그의 힘은 블래스팅 팡 자체를 붕괴시키지는 않고 다만 타고 흘러들어가 기와 영기가 이루 고 있는 삼재사상팔괘구궁진의 코어Core를 파괴해 버린 것이다. 그 동작에 렌시아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바깥에 있다지만 어느새 소규모의 진이라고 해도 꽤 넓고 복잡한 이상 코어 를 찾아내는건 정말 힘든데 바인은 기감이 얼마나 민감한지 저렇게 쉽게 파해해버리는 것이 다. 방금 사용한 힘도 기경이 아니었는데…… 자욱한 환상의 안개같은게 걷히고 부서지거나 제 자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돌멩이들을 툭툭 차서 강물에 차넣은 바인은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기나 영기에 대한 느낌을 정리해 보고자 하는 것 같았다. 완전히 흐트러져 자연상태로 되돌아간 기와 영기의 흐름을 느낀 바 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래 기라 하는 것은 일월성신에 내재된 것 뿐만이 아니라 '본연'의 진무극의 것이라 하는 것이고…… 영기와 더해서 그 흐름을, 내운기경이나 그것을 외경으로 발출하여 강이나 기의 힘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인체의 경혈을 거치지 않고, 인간의 의지를 거치지 않고 기 와 영기를, 단순한 가공만으로 환상, 혹은 최면의 힘이 내재된 그것을 끌어내는 것이 기문진 이라는 건가? 기의 속성이란 원래 육체에 좀더 가까운 것이고 생명에 가까운 것이니 감각쯤 속이는거야 쉽긴 하겠지만…… 마법으론 고난이도 술법인데 말이지. 결국 단지 성질만 다른 것 뿐이니까. 하지만 익혀두면 편하겠군. 좀 심력 소모가 생기긴 하겠지만 설치해두면 파괴 되지 않는 한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으니. 하지만 약점도 많군." 바인이 그렇게 간단하게 정의내리자 렌시아는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렌시아도 이것 을 그렇게 오래걸려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바인은 정말 자신과는 격이 다른 천재였던 것이 다. 하긴, 그러니 9서클 마스터를 했겠지만. 아무리 바인이 미뉴엘의 도움을 받고 스펠을 각 인해서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재능이 없다면 대뇌피질 자체가 피범벅이 되거나 녹아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정신력을 소모하는 것이다. 깨달았을 때 바인이 정신력 소모가 없는 것처럼 멀쩡했다는 것 자체가 그의 비인간성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뭐 인간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세상의 사회라는 것 자체가 자신들이 받아들이 기 힘든 범주의 것이라면 일단 적대하고 보는 비탄력적 사고를 가진 이들이 많으니까 말이 다. 오죽하면 숲속에서 편히 살아가는 과부나 노인들을 잡아다가 마녀라고 누명을 씌우고 화형을 시켜버리겠는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들을 거슬린답시고 고문 으로써는 메리트가 없지만 죽일때는 고통스러운 화형으로 죽여버리거나 타락한 성직자들이 욕망을 채우려고 누명을 부러 씌우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인간세상이란 그렇게 살기 좋은 환경의 것은 아니었다. 예의 자기 정의에 취한 엘리트 계열의 멍청이들이 '선량하다'고 생각했던 부류의 인간들이 얼마나 지독한지도 모르니. 사람인 이상 자기 성질은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농민같은 이들 이 성질 없고 욕망 없다고 자기멋대로 '아 세상은 아름다워'하고 해석하는 것은 정말 어처구 니 없는 짓인 것이다. 절대 그들은 선. 량. 하. 지. 않. 다. 세상에서 선량하다는 말은 멍청 하다는 말과도 동일어 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아니면 주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거나. 세상 물정을 몰라도 그렇게 모를수가 있나? 그나마 봉인계는 좀 낫지만 가진놈들이 더 악랄 하다고 더 지독한 범죄가 퍼지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다. 삶은 투쟁이고 세상은 전장이다∼ 라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 니다. 어느 누구나 느끼고 있는 점인 것이다. 봉인계의 사회구조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이곳 보단 더 악랄할 수도 있다. 순박하다는 것은 '모르고 있어서' 성립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 은 다 강할 수가 없다. 나름대로 강한 이들은 얄팍한 휴머니즘을 발휘해서 온갖 웃기지도 않는 윤리를 주절거리며 다니는데 정말 그것이 정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의나 불의 나 선이나 악이나 절대적인 것이란 없다. 뭐 그렇다 보니 절대선, 절대악, 절대적 정의, 절대적 불의를 주장해대는 유일신 교리가 타 락하게 되는 것이지만. 이 대륙에는 다행히도 유일신 교가 없었지만…… 뭐 신흥으로 생겨 난다 해도 아슈라스 교단에 의해 즉시 멸살당할 것이다. 아슈라스 교단은 필요하다면 살육 도 행한다. 정의 불의 따지며 자신들에게 적의를 지니고 있는 자들을 쉽게 몰아넣고 죽이기 위해 온갖 짓을 저질러 놓고 덮어씌우며 '이 사악한 놈들!' 하고 공격해대는 교단은 아니니 까 자기합리화 정도만(그게 정도만이냐?) 할 뿐이다. 뭐 대륙의 여론이라는 놈들이 아슈라스 교단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으니까 웬만한 경우 가 아니면 아슈라스 교단은 밀려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누명을 덮어 씌우고 증거를 제시 해도 일단 사람들이 '설마 그럴 리가 없지!'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아슈라스 교단 은 얻어낸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내에 말이다. 예의 신뢰라고 불리는 것이 종교집단에 게는 별로 생기지 않지만…… 신과 공무원은 예부터 믿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란 없다! 뭐 환상술도 있지만 인因에는 과果가 따르게 마 련이었다. 환상술도 정신, 염, 마나에 대한 컨트롤이 더해져야 하는 것이다. ……어쩌다 다시 이야기가 곁길로 새버렸는데 '말고삐'를 잡아 돌리면 바인은 인간이 되기를 이미 포기한 존재고 인간에 대해서 별로 좋은 감정도 없었다. 말하자면 휴머니즘 없는 천재 랄까? 휴머니즘 없는 강대한 자, 사욕도 없는 자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 다. 봉인계의 마키아 벨리가 쓴 '군주론'에 나오는 군주는 사자와 여우의 모습을 다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바인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자기 자신조차 이용할수 있으며 또 강력 하며 필요하다면 연기조차 할수 있었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군주, 집단과 조직의 우 두머리로는 바인이 가장 훌륭한 인간상 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인간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때, 아라테온이 인간의 귀임에도 귀가 엘프의 귀처럼 쫑긋 하고 움직이는 듯 표정을 바꾸 었다. 물소리…… 마치 배 같은 것이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는 듯한 소리였다. 이곳은 펄라이 트 산맥 근처이기도 하고 대하 피즈리언의 지류이다. 그러나 이 근처에 이 아피아 강 근처 로 존재하는 포구나 나룻터가 있는 마을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그나마 그런 것들이 존 재하는 곳도 도로가 관통하는 류로 발전해 나가는 도시였을 뿐이다. 지금의, 멀리서 들려옴에도 불구하고 틀림없이 무게가 나가고 그 제작단가(Cost)역시 제법 나갈 듯한 해양운행까지 할 수 있는 범선이 올만한 곳은 아닌 것이다. 지나갈 넓이의 수로 는 존재하지만 그런 배들이 올 이유도 없었다. 그나마 한 두척도 아니라 다섯척 정도는 되 는 듯 했다. 그냥 가벼운 수송선 종류가 아니라, 물을 깊게 밀어내면서 나가는 '비싼 해양용 범선'이었다. 갤리선 종류는 물론 당연히 아니지만. 바인도 렌시아와의 수업(?)에 열중해 있다가 그 소리를 초인적인 청각에 잡았고 휴이즈 역 시 뭔가 심상찮은 바인과 아라테온을 보고 에테르를 이용, 신성법으로 청각능력을 강화했다. 렌시아 역시 반영구한 영법이 부여된 영부를 꺼내 귓가에 붙이고 영력을 주입했다. 헤인이 야 기도 사용할수 없게 되어버린 이상(렌시아가 봉인을 걸었다) 들을 방법도 없었다. 과연 조용한, 그러나 우석거리는 소리 정도만 들리던 숲 저쪽으로 굽어서 비틀어 내려오던 아피아 강의 잔잔한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게 아닌가? 그것도 보통 육중하게 가르는 것이 아니었다. 지류 답지 않게 상당한 깊이와 너비와 길이를 지닌 아피아 강이라지만 범선 이, 그것도 상당한 물건이 다섯척이나 움직이다니 뭔가 조금 이상했다. 그나마도 갑자기 세 대는 항진을 하다가 틀어서 다시 되돌아가서 피즈리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제는, 단 두척의 범선만이 물살을 가르며 오고 있을 뿐이다. 잠시 정선해 있다가 뭔가 신 호를 주고 받고 오는 것이 틀림 없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일이 벌어졌거나 말이다. 세상물 정을 그리 잘 알지 못하는 렌시아나 그 소리를 듣지 못한 헤인을 제하고 바인, 아라테온, 휴 이즈는 속내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상쩍다는 생각을 말이다. 보통 수상쩍은 냄새가 나는게 아니었다. 아주 수상쩍고 위험 한 냄새가 나고 있었던 것이다. 뭐 항상 이런 데서 마가 끼는 법이고 그 끼어든 '마'가 사이 에 끼워넣을 이야기가 없을 시에는 항상 정해놓은 이야기와의 교두보가 되게 마련이다(이는 본인도 인정하는 바이다). 소재가 떨어지면 아무것이나 나타나도 수상쩍게 보이게 되고 그 의심이 이야기를 이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냥 스토리 텔 링중인 어떤 인간의 솜씨가 부족함을 비난하시라. 이 괴물들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그런 것 까지 안다는건 좀 무리가 있지마는…… 이 경우 는 워낙 티가 났다. 바인이야 원래 봉인계에서 살았으므로, 그것도 도심에서 살았으니 이런 것을 알 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바다에 나가서 배가 바닷물을 가를 때 가벼운 배와 무거운 배가 물을 가르는 소리가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물의 표면을 유심히 살 피자 이제 여기까지 파랑이 조금씩이나마 이는게 아닌가? 그정도면 확실히 대형 범선이었 다. 이런데 나타나기엔 지극히 수상쩍은 배인 것이다. "뭔가 재미있을 것 같은데?" 에테르를 통한 청력 강화 등을 멈추고 나서 휴이즈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아라테온은 동의했 다. 그러나 바인 만큼은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안내인이나 다름 없는 휴 이즈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설연의 모습 일부를 발견한 아라테온의 정신이 그곳에 팔렸으 니 앞으로 제대로 전진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고 또한 그 어마어마한 행진 속도로 인해서 시간이 남아 도니까 별로 상관은 없었다. 혹시 특급 마법기 같은 것을 건지기라도 하면 제 법 즐거울 테지만 말이다. 바인은 지금 특급 마법기 몇 개 정도를 더 얻어두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저번 바인의 폭주때 작살난 뱀파이어 덕분이다) 특급 마법기가 걸린 일이거나 뭐 쓸만한 물건이 라도 걸린 일이라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냈다. 무엇보다 신전에 가서 알게 될 '진 실'을 잠시나마 회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따라가 볼까?" 헤인은 무슨 일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이 망할 것들(그로써는 당연한 평가다)에게 굳이 말 붙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때 휴이즈가 스스로 '따라가 볼까'하고 스스로 되뇌고 나서 헤인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하다는 듯한 오러를 풍기자 헤인은 식은땀 을 흘리며 굳어버렸다. 휴이즈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기세는 지금으로써는 소드 마스터가 직 접 그 앞에 대면해도 꼼짝없이 굳어버릴 정도였기 때문에 힘이 봉인당한 헤인으로써는 감히 견딜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내기였길래 애꿎은(?) 헤인에게 화살이 가 꽂히는 것일까? 아라테온은 상당히 즐거워 하는 듯 저쪽에서 풍겨나오는 오러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마법가방에서 전투시에 쓸만한 것들을 꺼내고 쓸모 없는 것들을 갈무리했다. 그런데 왜 라 이어Lyre로 보이는 8현금은 그대로 꺼내서 등에 멘 것일까? 수상쩍지 않게 보이기 위해서? 겉모습만 봐도 일단 보통 사람은 아닌것처럼 보이는데 무슨 의미가 있지? 일단 이 일행은 다시 말하는 것이지만 바인이나 휴이즈만 봐도 분위기 잡으면 정말 사람들이 감히 범접하 기 힘들 정도가 된다. 아라테온 역시 우아한 모습을 보이고자 하면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 었다. 카리스마가 풍기는 일행이다. 그런데 음유시인으로 위장한다고 먹힐까? 아니면 마법기라서 들고 다니는 걸까? 자꾸 물음 표들이 튀어나오는데 이제 의문은 그만 던지자. 필자도 머리가 아프다. 글을 프레스로 찍어 내듯 팍팍 찍어 낼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단순한 글은 심하지만 않으면 머리를 쉬고자 하는 독자들에겐 참 좋은 글이다. 세상에는 '적당한' 것이 좋다는 법칙이 있는지라 지나치게 단순하면 해석하느라 심력 소모를 하게 되지만. 무심하고 외부인에게 관심이 없는 마을 사람들이라면 그냥 넘어 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무심해도 마을 지배하면서 떵떵거리기 좋아하는 정신연령낮고 하릴없는 마법사가 정신을 조 종해 좀비Zombie 맞먹는 멍멍한 정신상태로 만들어 놓지 않는다면 이 일행들의 외모에는 신경이 안 쓰일래야 안 쓰일수가 없는지라…… 워낙 화려한 이들의 외모는 시선을 잡아 끄 는 힘이 있었다(잡아 끄는 정도냐?). 그들은 그 외모에 걸맞는 우아한 비행방식으로 날아올랐다. 뭐 겉보기에 별로 우아하진 않 았다. 그냥 바인은 에테르 윙을 끌어 낸다음 렌시아를 몸에 부담 가지 않도록 들고 모두에 게 투명마법 건 다음 바로 느긋하게 상공으로 치솟아 올랐을 뿐이다. 물론 인비저빌리티를 걸었다고 마법기에서 느껴지는 힘이나 에테르의 힘이 사라지는건 아니었기 때문에 모두 일 행의 위치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휴이즈는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고(그러나 투명술로 보이지 않았다) 헤인을 말 그대로 짐짝 들 듯 들고 상승하기 시작했다. 아라테온이야 손목에 존재하는 특급 마법기가 존재했기 때 문에 그것의 도움을 받아 마법을 좀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상승하기 시작했다. 아라테온도 에테르의 힘을 다룰수 있는 마법기나 비행 전용 마법기가 있다면 좋았을텐데…… 덕분에 아 라테온의 부담이 가장 컸다. 휴이즈의 부담이 가장 적었고 다음이 바인, 아라테온 순이었던 것이다. 휴이즈의 에테르 윙 이야 그 스스로의 힘이었고 바인은 염을 계속 사용해서 광익의의 힘을 제어해 주어야 했으 며 아라테온은 마력을 컨트롤하면서 특급 마법기를 촉매, 매개체로 정신 소모를 줄이면서 마법을 썼기 때문에 심력 소모가 꽤 컸다. 그들은 점점 더 상승해서 햇빛이 제법 날카로운 지점까지 상승했다. 휴이즈는 날개를 넓게 펼친채 관성, 물리력을 제어하면서 그 자리에 자 신의 위치를 조정한채 아름답고 오밀조밀한 풍광이 내려다 보이는 아래에서 아피아 강의 줄 기를 바라보았다. 약간 구불구불 하면서 자신들이 있던 자리에서 한 번 길게 굽었다가 다시 저쪽에서 굽어서 저 멀리 가볍게 보이는, 그러나 어마어마한 수량과 너비와 깊이를 자랑하는 대하 피즈리언 에 닿아있는 피즈리언의 지류, 아피아 강. 틀림없이 지류임에도 큰 강이었고 아름다운 강이 었다. 너비도 넓었기 때문에 저기 보이는, 지금은 사람 몸통만 해 보이는 범선 두척이 쉽게 지나가고 있는 것이겠지. 갤리선은 아니었지만 노가 없는게 아니다. 내륙의 강에서는 저 정 도로도 충분히 배가 나아 갈 수 있었다. 게다가 흐름에 따라가고 있었으니까. 나갈때는 뭐 비싼 범선들에는 달려 있는 마력 제너레이터를 이용한 수차 가속이라든가…… 뭐 그런 수단도 있고 말이다. 마법과 노움들의 기술을 융합시킨 마나가속 엔진이라는게 있 는 배가 있다는 소리도 있지만. 그 배는 단지 수차가 아니라 스크루를 이용한 가속과 방향 을 자유자재로 틀 수 있고 필요하다면 7서클급 마력의 마력 제너레이터를 이용해 마법 방어 를 치고 파도를 가르며 나아갈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건 라마르칸트 제국에도 단 두 대 밖 에 존재하지 않았다. 엘더 휴먼들이 남긴 유산을 제외하곤 지금의 문명 수준으로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품인 것이 다. 저 밑에 있는 것들도 마력 제너레이터를 내장하고 있는 것들이었지만…… 바인은 뷰 View 계열의 마법을 이용해 확대하여 선수상, 길이, 마스트 등을 유심히 살피고 몸통 역시 유심하게 살폈다. 그리고 바인이 느낀 것은. 바다이건 강이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배라는 것이다. 마력 제너레이터 역시 강력한 것이다. 스크루 방식이긴 하지만 마력 제너레이터 수 준은 5서클 수준? 마법금속 엠티움을 이용해서 마력을 분해하고 다시 합성하는 방식으로 마법사 길드와 노움 들의 사이언티스트 길드(?)에서 독점하고 있는 최고의 것이었다. 바인이 사용하는 블래스팅 팡의 스펠 인프린팅 앰플들에도 엠티움이 존재하지만 그건 한 번 사용하면 마법의 힘을 잃 어버리며 수은과는 다른 액체금속이 되어버리는 것과는 달리 반 영구였다. 덕분에 서클식 마법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도 마력 축적 방식의 마법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그 망할 엠티움을 금속으로 변형시켜 보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영하 150 도에서도 여전히 점성이 변하지 않는 엠티움을 고화시키는건 실패했다. 마나가 응집시킨다 고 드래곤 하트 되지 않듯 엠티움을 압축시키거나 온도를 낮춘다고 금속이 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엠티움의 고체화 비법을 알아낸 마법사에게는 고대마법서 한권을 주겠다 고 마법사들의 '탑'에서 공언을 내걸었다. 뭐 지금까지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각설하고, 어쨌든 저 배들은 굉장히 고급의 배로 아무래도 페인트를 다르게 칠하긴 했어도 금속이 제법 많이 쓰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냥 사략함대(좋게 말한 것이다. 사략함대란 해적을 말하는 것이니까)에서 쓸만한 것은 아니었다. 사략함대중 최강이라는 '푸른 불길'에 는 6서클급 마력 제너레이터를 내장한 배가 4척이나 된다고 하고 기선은 라마르칸트에도 두 대밖에 존재하지 않는 7서클급 마력 제너레이터를 단, 노움 설계의 배라고 한다. 어마어마한 괴물들인 셈이다. 푸른 불길의 전적중 가장 유명한 것은 라마르칸트 연안 수호함단의 배 스물 네척을 단 반나 절만에, 자신들은 고작 중형 갤리선 한 대만을 침몰당했을 뿐이고 상대의 대형, 중형 갤리선 스물 네척중 반을 나포하고 나머지는 침몰시키고 파괴하는 등 어마어마한 실력을 보여준 것 이다. 배의 질 뿐만 아니라, 실력만 보아도 그들은 최강중 최강이었다. 지금 내려다 보이는 배들도 굉장한 것들이지만 푸른 불길의 것들은 아니라고, 휴이즈는 확 신했다. 푸른 불길에서 소유한 배들도 아니었고 갤리선 타입 비슷할 뿐 갤리선에 뭔가 다른 것을 더한 배였다. 전투 목적용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포가 달려있긴 하지만 1층에다가 옆에 매달아 놓은 것이고 그나마도 캐논 포나 캘버린 종류…… 배에서 땅을 향해 갈기거나 강에 서의 수전에서 그렇게 효율좋은 물건은 아니었다. 바인은 피식 웃으면서 배를 조심스럽게 살펴나갔다. 유선형에 잘 빠지긴 했지만 파이어 볼 몇방이면 순식간에 깨부서져 버릴 배. 마법이란 강력한 힘 아래에서도 과학이란 어느정도나 마 발전하는 것일까. 어쩌면 과학을 발전시키되 마법에 동화시키며 마법의 힘을 더하는 방 식으로 소극적인 발전만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력 제너레이터만 해도…… '마법'이 배 제되면 고철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쪽이 옳은 것일까?' 하지만 정답은 없다. 5. 알프레드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아무리 위오리나에서 귀족들의 힘이 약해도 예의는 표하는게 당연하고 자신의 상전은 매우 존경스러운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문을 두드리면서 알프레드는 먼저 보고를 했다. "항해 시스템 제어사 알프레드입니다." "들어오게." 항해 시스템 제어사라면 바다에서는 1등 항해사나 다름 없는 것이다. 위오리나에서는 용어 가 하나하나 다르기 때문에…… 굳이 설명이 따라붙어야 한다. 알프레드는 문을 열었다. 삐 꺽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문. 그리고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알프레드는 절도있는 동작으 로 걸어들어가 역사 절도있는 동작으로 깊게 인사했다. 딱딱한 동작이지만 알프레드는 상대 방에게 지금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각하. 보고할 것이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은 함장이네. 그래 무슨 일인가 알프레드?" 후작은 느긋하게 선실에 앉아서 차 한잔을 마시고 있었다. 자스민 차이긴 했지만 위오리나 의 귀족들은 쓸데없이 차에 대해 사치 부릴 일은 없었다. 동방에서 수입한 녹차나 용정차 종류는 그들도 돈을 함부로 부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귀족 중에서도 잔뜩 돈을 벌어놓은 이들 외에는 함부로 돈을 부을수가 없는 것이다. 위오리나의 귀족들은 다시 말하지만 '양성 적인 힘'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국왕집권체제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시작 부터가 꽤 좋 은 나라라고나 할까? 지금 국왕도 제법 머리가 좋았기 때문에 앞으로 한 4, 50년은 제법 발 전이 이루어 질 것 같았다. 후작은 약간 색이 옅은 금발을 단정하게 묶은, 매우 잘생긴 40대 후반의 중년이었다. 뭐 잘 보아주면 미중년(?)이라고도 할수 있을 것이다. 옷은 비단 종류에 무명을 이용해서 만들고 색을 잘 입혀놓은, 그러면서도 심플한 느낌의 옷이었다. 편할 듯 하면서도 정장 비슷한 느낌 을 주는 옷. 후작이 얼마나 훌륭한 취향을 지니고 있는가를 반영해 주고 있는 옷인 것이다. 어쨌든 단단한 몸에 키도 장신이었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는 그는 브레인이면서 도 검술 역시 뛰어나다는 것을 알수 있게 해주는 자였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에 속하는 후작은 검술은 취미로 익혔고 그 지식과 지혜 수준에 있어서 후작의 위를 획득한 자인 것이다. 그의 나이는 실제로 50대 후반이었고 소드 익스퍼트 상급 에 속했기 때문에 40대 후반 정도로 보였던 것이다. 신체 역시 매우 잘 다져져 있었지만 분 위기는 검사의 날카로움 대신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포용적인, 다시말해 이상적인 상전의 그 것이었다. "예. 함장님. 앞으로 이 속도로 1시간 뒤면 '아잔티아'에 도착합니다. 마력 제너레이터의 전 원을 끄고 단지 엠티움 순환시스템으로 전환해 두어야 할것 같습니다." "으음…… 아무래도 그게 좋겠지. 그곳에 마법사들이 많다면 이미 느꼈을지도 모르겠군. 마 력 제너레이터는 일단 꺼 두라고 알리게." 후작은 그렇게 말하고 찻잔을 비웠다. 그리고 접시에 찻잔을 올려두었다. 동작에 우아함과 품위가 뚝뚝 묻어 났다. 확실히 후작이라고 해도 보통 정통파가 아닐 정도다. 국민 전체 수 준이 아무리 높아도 이정도로 품위가 뚝뚝 묻어나는 동작은 찾아보기가 힘든데 말이다. 위 오리나의 귀족파에서도 선두를 달리는 후작이니까…… 하지만 귀족파라고 해서 노빌리스적 인 거만함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라 자체의 귀족들 대부분이 실력파인지라 그도 훌 륭한 브레인이었고 칼리쉬스에 비하면 적어도 몇단계 이상 진보한 철학과 지식들을 지니고 있는 위오리나의 제도는 아스타르 대륙에서도 독보적이었다. 국가의 성향이 주전적이 아니 라는 것이 다행일 정도로 위오리나는 강했다. 위오리나 왕국에는 국왕파와 귀족파가 있다. 사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위오리나는 왕권 이 더 강하지만 그렇다고 귀족들이 약하다는 것이 아니다. 위오리나의 후작이면 평민 목숨 좌우하는게 일이 아닌 것이다. 봉인계의 공무원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의 힘은 강하 다. 아무리 귀족의 권한이 약해졌다 하더라도 암흑 속에서는 국왕파도 함부로 손 댈수가 없 다. 성문법(註 : 글로 쓰여 남겨진 법. 지구의 고대 함무라비 법전이 최초의 성문법이라고 한다. 동태복수법이 많이 적용되어서 성문법 치고는 별로 의의가 없지만 그래도 '최초의' 성 문법이니까)중에서 4할 정도만 적용되는 것이 귀족이라도 법의 제제를 받긴 하지만 그들은 '힘'이 있다. 법 정도는 느긋하게 비껴갈 수 있을 정도의. 전에는 칼리쉬스 왕국보다 제도가 낫다고 말했지만 은밀한 어둠은 어쩔수 없었다. 양성적으 로 볼때는 심해 보이지만 음성적으로 감추어 놓았을 때 겉으로는 심하게 테가 나지 않는 것 처럼. 위오리나도 곪아 들어가는 부분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나 칼리쉬스보다 살기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장원제도 없고 영주라는 것도 없고 전부 다 국치제도 였기 때문에…… 뭐 그렇다고 귀족들이 일을 잘 해주는건 아니었지만 능력제였기 때문에 심하진 않다. 위오리나 와 칼리쉬스가 전쟁을 하면 당연히 위오리나가 이기게 될 정도로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 다. 도로망, 상·하수도 망, 브레인들에 대한 장려라는 것을 보면 위오리나가 월등했다. 마법사, 기사를 가리지 않고 다 골고루 등용해 두고 용병제도 상당히 훌륭했다. 직업군인제 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군에 대한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군 복무 기간은 3년 4개월 정도? 유명 소드 익스퍼트들이 검술을 제대로 지도하기 때문에 병사들의 질 역시 매우 좋았 다. 연금술사나 노움들에 대한 대우도 매우 좋았고 땅 일부를 떼어(땅이 남아 도니까) 마법 사들을 통해 오염을 정화하면서 그들에 대해 많은 돈을 쏟아 부어주고 있었다. 벌써 머스킷 소총 정도는 개발해서 5000명으로 이루어진 머스킷 부대, 'Blasting Edge'를 편성해 두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국왕 소속이었다. 성문법에 명시되어 있는 바를 보면 화약 무기 종류는 귀족들의 사병부대에 절대 보급될 수 없다고 되어 있었고 만약 비밀리에라도 편성하는 것이 드러날 시에는 참형으로 대응한다고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뭐 이 '블래스팅 엣지' 들이 들고 있는 머스킷 건들의 성능도 훌륭하 고 말이다. 그러나 보유하고 있는 소총은 5천 자루를 넘는다. 왜냐하면 장전해주는 이도 따 로 편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2인 1조로 움직이는 것이다. 장교 급들은 머스킷 라이플(부싯깃 장총) 한자루와 연금술사 길드와 노움들에게 특별 주문한, 뱀파이어도 때려잡는 실버 클립 카트리지를 달 수 있는 머신건 종류를 하나씩 갖고 있으며 취향에 따라 근거리용에 구경을 줄인 200구경 정도의 핸드 캐논 한자루 씩은 갖고 있었다. 위오리나만큼 강력한 부대를 지니고 있는 국가는 찾아봐야 엘슈트럼 공화국정도? 라마르칸 트가 해상에서는 최강이라고 하지만 막상 싸우면 위오리나가 이길 것은 틀림 없었다. 위오 리나는 경제적으로 가장 덩치가 큰 라마르칸트보다도 더 선두에 서 있었다. 동방 문명과의 교역이 빠져버린 라마르칸트는 그 수입이 반 이하로 줄어버리는데 비해 위오리나는 대륙 내 의 교역 만으로도 최고였다. 도로망이라던가 마법의 상용화 정도도 매우 높은 국가인 것이 다. 엘슈트럼 공화국과도 사실은 비교가 되질 않는 것이다. 칼리쉬스는 위오리나를 못마땅하 게 여기고 국민성 자체도 상당히 호전적이지만 초고룡 미뉴엘의 그림자는 너무 컸다. 가장 많은 드래곤들이 유희를 오는 왕국이 칼리쉬스 왕국과 위오리나로 위오리나에서는 모 험가들이나 여행자들을 꽤 우대해 주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칼리쉬스는 노빌리티의 힘이 굉 장히 강했기 때문에 권력 휘두르면서 놀고 싶은 드래곤들이라면 칼리쉬스에 들린다. 해양학 에 대해 선두라면 라마르칸트지만 과학적인 연구에 대해서는 위오리나가 더 선두에 있었다. 이들 대륙이 모여있는 곳 반대편, 행성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섬 한조각 없는 완전 히 펼쳐진 바다 '델 파리타'에 대한 연구도 위오리나가 더 선두인 것이다. 그 엘더 드래곤이라는 괴물들이 없다면…… 왕국의 발전은 어마어마 해 질 것이지만 말이 다. 칼리쉬스가 시비를 걸어오면 그들, 위오리나 왕국으로써는 좋은 일이다. 블래스팅 엣지 나 마법병단들을 동원해서 쓸어버리면 되니까. '전투마법학문'의 발전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위오리나 인 것이다. 엘슈트럼에 '각성의 탑'이 존재하긴 하지만 전투 마법학문에 너무 비중을 두고 있었고 마법의 상용화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곳이 위오리나 였기에 순수 마법탐구에 돈을 부어주는 엘슈트럼에 각성의 탑이 세워진 것이다. 전투 마법 학문만 아니 었으면 각성의 탑은 위오리나에 힘을 실어주었을 것이다. 중립에 가까운 왕국이지만 힘은 강한 곳. 아주 이상적이고 발전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이었 다. 이곳의 국왕파나 귀족파나 선의의 경쟁 관계였기 때문에 자멸할 가능성도 적었다. 지금 의 국왕도 현명하게 과한 욕심은 없는 나라. 말하자면 지금 극도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나라가 위오리나였다. 평화스럽되 치열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드래곤들에게 그만큼 매력있는 곳도 드물었다. 기후도 좋고 음식문화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었으니…… 봉인계로 따지면 프랑스의 음식문화에 준하는 발전을 구가하고 있었다. 이런 분야건 저런 분야건 위오리나는 매우 훌륭한 문명을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마 법의 상용화가 이루어진다면 더 강력한 문명의 힘을 보유할 수 있을 것이다. 형편없는 인간 군상들이 넘치는건 어쩔수 없어도 그나마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위오리나 왕국이었다. 교 육제도도 훌륭하고…… 브레인 생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교육제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 다. 이 위오리나는, 커다란 변수가 없다면 앞으로 200년 정도는 '아스타르 대륙 최고'의 이 름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알프레드." "예." 알프레드는 잠시 마력 제너레이터와 스크루에 대해서 머릿속에서 검토해 보다가 후작이 갑 자기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동요 없이 대답했다. 후작은 다기茶器를 정리하고 나서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탁자 한쪽에 치워두었던 서류 몇개를 꺼내서 뒤적이다가 알프레드에게 질문 을 했다. 차를 마실때는 부드러웠으나 지금은 북풍한설…… 아니, 아스타르 대륙이니까 남풍 한설南風寒雪이 맞겠다. 어쨌든 남풍한설, 남빙해에 사는 실버 드래곤의 브레스 같이 차가워 져 있는 것이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막해지고 인텔리의 냉철함으로 자신을 무장한 후작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마력 제너레이터의 엠티움 자유전이 사이클에는 이상이 없나? 스크루의 코팅이 벗겨진다거 나. 아니면 냄새를 맡고 몰려든 떼거리들은 없겠지?" "예. 자유전이 사이클에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스크루도 완전히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독립병렬 스크루의 마력 서킷도 무리없습니다. 뷰 레이더 시스템에 걸려드는 마력 조각들은 없고 스크라잉 플레이트Scrying Plate로 주변을 영사해봤지만 보이는것은 없습니다." 스크라잉 플레이트는 마법을 이용해서 임뷰해 주변을 영사하는 판이다. 그것을 이용해서 주 변을 봤다니…… 뭐 그래도 투명술까지 투시할수 있는건 아니니까 아무리 임프로브드 인비 저빌리티가 아니더라도 투명술로 몸을 감추었으니 바인들이 드러날리가 없다. 그리고 이들 이 바인들이 떠오른 위치까지 영사했을까? 적당히 하늘을 영사해보기만 했을 것이다. 그러 나 후작은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혹시 투명술을 쓰고 있는 자들이 있지 않을까?" "불가능합니다. 그정도라면 이 배의 힘도 알고 있을텐데 그정도의 인원과 수준을 지닌 이들 이라 하더라도 그 전원을 2시간 이상 투명술로 보호할수는 없습니다. 마법은 공짜가 아니라 서 정신적인 부담이 가해지고 2시간 이상 하급이라도 투명술로 몸을 감을 수 있는 마법사가 있다면 7서클 이상이겠지요. 스크롤이나 마법기가 아니라면…… 수십명이나 되는 이들을 투 명술로 보호할만한 마법기가 있습니까? 특급 마법기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범위'라는 것이 있는 법입니다. 게다가 마법기 자체가 다인원에게 효용을 미치는 것은 매우 드뭅니다. 특급 마법기가 그정도 수준으로 보호할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마법기가 아니라 신기神器라고 불 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알프레드의 자신있는 답에도 헛점은 있었다. 자신을 숨기고 있는 마법사, 그것도 어 마어마하게 강력한 마법사가 있는 일행이라던가 드래곤이 유희나왔을 경우. 그러나 그 확률 은 매우 적어서 알프레드는 범위내에 넣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전자에 속하는(그것도 괴물 들 투성이) 일행이 상공에 떠서 투명술로 몸을 감아 안고 이들을 주시하고 있음은 전혀 눈 치채지 못했다. 알프레드는 5서클의 마스터다. 위오리나에서도 25세 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5 서클을 마스터한 천재로 꽤 잘 알려진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눈치채지 못했다. 당연한 것이 바인은 자그마치 9서클 마스터인 것이다! 위오리나에는 7서클 마스터가 세명이나 되지만 8서클의 마법사는 유저조차 없었다. 뭐 전체 적으로 수준이 올라가는 중이고 꾸준히 마법사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으니 언젠가는 8서클 을 깨달을 이가 나오긴 하겠지만 그들은 8서클의 마법사가 지금 당장 필요했다. 대륙에도 알려진 8서클 마스터는 단 한명뿐. 엘프들의 숲과 바깥을 왔다 갔다 하는 마법사 레펠테온 도 7서클의 마스터일뿐 8서클은 느낌도 받지 못했다. 마법사들의 성장은 일단 유저가 되면 무궁무진하다지만 그는 유저로써의 깨달음도 얻지 못한 것이다. 후작은 일어 나서 벽장을 열었다. 그리고 천에 둘둘 말려져 있는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후작 이 사용하는 애검이었다. 원래 검사는 항상 무기를 휴대하는 법이었지만 후작은 꽉 막힌 자 는 아니었다. 기사 타입도 검사 타입도 아닌 후작이 꼭 무기를 가지고 다닐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미 검기를 뻗어내서 심형검기心形劍氣를 이룰수 있었기 때문에 품에 지니고 있는 비수匕首 한자루 만으로도 충분했다. 애검을 둘둘 말고 있는 천에서는 빛이 은 은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그것은 봉인封印의 술식術式이었다. 룬이 가 득 매겨져 있는 검…… 알프레드는 인상을 찡그렸다. 후작의 애검에 대해서 그는 상당한 불만을 지니고 있었던 것 이다. 평상시에 저렇게 술식으로 봉해놓지 않으면 항상 피를 보아야 하는 뱀파이어릭 소드 Vampirilc Sword 였기 때문이다. 자아도 있는 에고 소드Ego-Sword에다가 1급 마법기였기 때문에…… 그냥 마력과 피에 내재된 힘만을 드레인 하는게 아니라 정기. 기 마저 흡수하는 것이었다. 엘더 휴먼의 유적에서 발견된 1급 마법기로 흡정검吸精劍이라는 애명도 지니고 있을 정도의 무기인 것이다. 겉보기에는 시미터Scimiter와 유사하게 보이지만 날이 두개였 고 그 굽은 정도는 심하지 않았다. 차라리 동방에서 들어오는 백련정강제 예도 종류와 흡사했다. 실제로 검면을 자세히 보면 선이 미세하게 그어져 있었는데 대충 80번 정도 담금질을 한 다음 마법의 힘과 자아를 부여 했다는 것이다. 마법으로 만든게 아니라 만들어 놓은 것에 마법의 힘을 부여한 것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1급 마법기라니…… 검 자체의 성능도 어마어마한 것이다. 미스릴을 이용한 힐트와 가드에 순수 아다만티움Adamantium의 검신. 그 아다만티움을 80번 이상 정련해서 만든 무기인 것이다. 마법의 힘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최강의 병기나 다름 없었다. 원래 마법검일 경우 검기를 싣기가 힘들지만 이 검은 에고 소드다. 주인과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 상태에서 마법의 힘을 검신에서 숨겨 두면 검기를 최대한으로 뿜어낼 수 있었고 검기가 아니라 마법적인 힘이 필요할때는 검기를 거두고 검이 스스로 마법의 힘을 뿜어내도 록 하는…… 마법기 중에서 '직접 공격용 무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마법검 류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어떤 골빈 마법사가 검사를 위해서 그런 무기를 만들어 주겠는가? 그러나 엘더 휴먼들은 마검사가 많았고 마검사이면서도 고급 마법사인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무기 들을 만들어내곤 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엘더 휴먼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무기가 아니 었지만 지금의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강력한 무기였던 것이다. 후작이 이것을 얻기 위 해서는 꽤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었다. 검의 자아를 자신에게 종속시키기 위해서도 꽤 많은 공을 들여야 했고 말이다. 봉인의 룬이 빛나고 있는 천을 쓰다듬던 후작은 피식 웃으면서 알프레드에게 말했다. "'발굴' 준비를." "예. 알겠습니다." 6. 알프레드는 '발굴'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작업이 절대 일반적인 발굴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땅 파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에 이건 발굴이 아니라 탐험에 가까웠다. 아니 도굴이 될까? 그들은 감히 과학과 마법을 조화시켜 어마어마한 문명 을 이룩한 위엄찬란한 '고대의 문명'. 그들이 봉해놓은 곳을 탐험하려 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 초문명은 그들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덕분에 후작이나 되는 이를 초청하게 된 것이다. 데리고 갈 일행들 중에는 고고학자나 노움, 연금술사들도 있었다. 연금술사들에도 학파가 있다. 생물학, 물리학, 화공학 등. 자연학파의 인물들은 이번 일에 도움이 되질 않았기 때문에 고고학자들과 예의 '연금술사'들. 그리고 노움들의 도움을 받아 야 했다. 노움들도 비법이 실전되어 만들기 힘들어하던 머신건과 지금까지 파헤친 '고대인'들 의 유적에서 얻은 빔 소드Beam Sword들과 많은 스크롤Scroll들…… 그 외에 여러가지 품목 들이 필요했다. 식량 같은 것이야 당연히 필수였고 마법사들 역시 동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 일은 정말 지금까지의 '발굴'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후작은 그렇다 쳐도 이 일은 최상급의 소드 익스퍼트들도 몇몇 동행할 정도의 규모다. 감히 소드 마스터 Sword Master를 초빙해 올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 어디인가? 꽤 다양한 숫자의 일행은 아마 정확히 65명이 될 것이다. 이번 일은 정말 위험천만하기 대문에 이들은 정예중의 정예였다. 머신 건 12정. 라이플 4정에 핸드 캐논 4정. 총기류를 사용할 이들은 총 20명. 그리고 10여 명은 중급의 소드 익스퍼트들이지만 10자루의 빔 소드를 들게 될 것이다. 뭐 당연히 실검實 劍도 지니지만 빔 소드는 공격력 하나만큼은 2급마법기에 필적하는 무기인 것이다. 지금까 지 지나오며 여러가지 물건들을 발굴해낸 유적들에서 얻은 정보가 가리킨 총본산은 바로 이 번에 '발굴'할 유적이었다. 그런 만큼 위오리나에서도 제법 신경을 쓴 것이다. 그렇게 빔 소드를 소지한 소드 익스퍼트들과 함께 4명의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와 상급 소드 익스퍼트의 후작까지 더해서 '검'으로 직접 '가디언'들을 처리할 이들은 15명이었다. 후작 은 빔 소드는 없지만 빔 소드보다 강력한 1급 마법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최상급 소드 익스 퍼트들도 그다지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상급 익스퍼트라고 해도 단지 그것은 검기의 힘 에 따른 결정이지 '검술'에 따른 것이 아닌지라 후작의 검술은 검술 하나만 따지면 소드 마 스터에 필적하는 검술인 것이다. 그리고 5서클에서 6서클의 마법사들이 10명으로 가장 중요한 이들이었다. 알프레드 역시 이 팀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남은 20명중 노움의 마이스터가 셋. '연금술사들'이 6명정도. 고고학자가 2명이고 나머지는 짐을 나를 인부들이었다. 최고 책임자가 후작이긴 하지만 소드 익스퍼트들은 전부 다 '자작'들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골치 아픈 구조인게 사실이었다. 마법 사들 중에서 6서클 마스터 한명이 있는데 그는 백작이기까지 하니까 후작으로써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다독여야 하는 것이다. 뭐 위오리나 왕국 귀족들의 특성상 트러블 같은 것이 생 겨나도 심각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들도 이번엔 잘 모르고 있었다. 이번 '유적'이라는 놈이 얼마나 심각한 곳인지. 지 금까지 발굴해왔던 유적에서도 많은 사상자가 났기 때문에 지금 수준의 일행이라면 아마 총 본산이라도 그다지 인원 피해 없이 넘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유적'은 정 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알프레드도 상당히 불길한 예 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유적을 지날때는 항상 그런 예감을 느껴왔던 터라 상당히 그에 대해서는 무뎌져 있었다. 5서클의 마스터인 알프레드는 자신의 성취에 대해 그렇게 자신만만하지는 않았지만 여러번 '전투경험'을 얻고 특히 저번 유적에서 처참한 일을 많이 겪어봤기 때문에 마법의 사용에 대 해 매우 노련해져 있었다. 게다가 위오리나는 '전투 마법 연구'가 가장 활성화 되어 있는 왕 국인 것이다. 호전적인 것이 아니라…… '마법의 효율적 사용'에 대해 민감한 나라여서였다. 만약 그가 이번 '예감'에 대해서 민감했다면 최악의 사태는 맞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러나 그는 무지했고 그 무지는 최악의 사태를 불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조용했다. 언제까지 그 조용함이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배는 순조롭 게 항해하여 곧 '아잔티아'에 도착했다. 나루가 존재하는 아잔티아는 중소도시였다. '중소도 시'라 불러주기 미안할 정도로 시설이 좋긴 했지만 규모로 보면 중소도시였다. 그리고 위오 리나의 시설 정도로써는 평균이라고 할수 있다. 아잔티아는 그다지 크진 않았지만 '수상도 시'라고 불릴 정도로 물에 대한 시설이 좋았다. 상·하수 시설이 매우 훌륭했고 운하를 통해 도시 내에서도 제법 신속하게 소형선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해둔…… 그러면서도 가로수들의 배치나 도시의 설계 역시 봉인계의 설계가들이 와도 '예술적이고 실용적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을수 없을 정도로 수준 높았다. 화려한 맛은 없지만 간소하면서도 수려한 느낌을 들게 하는 그러한 도시였다. 발전 가능성이 상당히 높 으면서도 그 속도는 약간 느릴 도시. 라마르칸트나 칼리쉬스의 도시들이 상·하수도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을때 필연적으로 발생 한 '도시의 시체 양산공장화'를 막지 못했음에 비해 그때 위오리나는 이미 상·하수도 시설 을, 도시를 건설할때 바로 거미줄처럼 깔아두었고 쓰레기나 오염물질에 대한 정화를 상용화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염병에 대한 피해가 적었다. 그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것도 아슈라스 교단이 간단하게 제압해버렸지만 그래도 그런 일은 존재했다. 이제는 칼리쉬스와 라마르칸트도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었고 그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것도 그나마 위오리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칼리쉬스 나 라마르칸트나 앞으로 50여년은 '심리적인 부채'를 저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위오리나의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했고 엘슈트럼 공화국도 지금 내부의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 에 현재 위오리나는 발전의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 본국과 달리 그 국가에 소속된 중소도시 아잔티아는 발전과 파멸의 기로에 놓 여 있는 상태였다. 아잔티아의 지하에 존재하고 있는 거대한 유적…… 그 유적이 어떠한 것 이냐에 따라 그 발전 여부가 달라질 것이다. 국가의 조사관들이 모이고 모험가들이 모이면 서 뭔가 특색이 생겨나고 사람들이 그 발전에 빌붙어 몰려들게 되면 대도시로 발전하여 영 역을 넓히게 될 것이고 이 유적이 위험한 것이라면…… 국가에서는 아잔티아에 몇가지 제제 를 가하게 될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 도시는 침체되어 파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발전기에 있는 만큼 속에서의 '곪은 가지 자르기'도 빨리 이루어져야 하기에, 아잔티아는 지 금 위험에 처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배가 도착하여 기자재들을 내리고 준비를 하며 식량 등을 나르면서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있을때 그 분주함은 아랑곳 없이 일단의 여행객들이 아잔티아로 스며들었다. 관문 따위는 지나치지 않고, 그들은 논 디텍트None-Detect의 힘을 빌어 간단하게 마법적인 트랩을 피해 도시로 진입한 것이다. 지금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알 프레드가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고…… 알프레드는 마법적 촉매와 자신의 지팡이, 그리고 한개의 3급 마법기를 매개물로 사용할겸 해서 가슴에 달았다. 당연히 로브는 입지 않았고 예의 어드벤처 슈트를 입은 상태였다. 그러 나 지팡이를 들어 바닥에 대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마법사로는 보였다. 무엇보다 알프레 드는 학구파적인 미남이었기 때문에 지팡이까지 더하면 마법사의 분위기는 났던 것이다. 알 프레드도 귀족가의 핏줄이었기 때문에 아직 장원제가 사라지고 난지 수백년이 지난게 아니 라 그 외모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백작이었지만 그는 아직 작위를 제수 받은게 아니라 사실상 평민이나 다를바 없었던 것이다. "……괜찮겠지?" 그는 자신의 배낭을 들고 숨까지 막혀오게 하는 불안감을 떨치려 노력하면서 지팡이를 가볍 게 바닥에 부딪히게 했다. 그리고 나서 심호흡을 한 그는 선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찬연한 햇빛이 그의 시야를 흐리게 하고 있었다. 이 '발굴조'들은 10여개 정도의 발광 마법 이 영구히 걸려있는 엠티움 순환제의 구슬들이 박혀있는 탐사 도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횃불 따위는 필요치 앉았다. 아침에 메모라이즈는 최선을 다해 해 두었지만 그래도 불안한 알프레드였다. 알프레드는 갑판으로 나왔다. 어쩐지 눅눅하게 느껴지는, 사실은 맑은 물냄새 가 후각을 자극했다. 그는 갑판을 지나 나무 판자를 타고 나루에 내려왔다. 후작은 마침 도시의 시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위오리나는 장원제가 사라지고 영주제 역시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시장'이라 는 직책이 새로 생긴 상황이었다. 시장이라고 해도 권력은 그다지 많지 않은 존재다. 시장 중에서는 귀족만 뽑히는게 아니라 능력만 있다면 평민도 맡을 수 있었다. 뭐 평민이 능력이 있어 시장을 맡으면 귀족 작위를 제수 받는게 보통이었지만. 그래서 시장은 자작의 직위를 지니고 있었고 후작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는 공문서만 받아서 무슨 일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만…… 이번에 도시 중앙의 공원에 서 발견된 '금속의 문'이 고대 유적의 것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후작 각하께서 오시다니…… 이번에 발견된 유적은 보통의 것이 아닌 모양이군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런만큼 입단속은 해주시길 바랍니다. 아까 배 위에 오면서 보니 아주 아름다운 도시더군요. 평화롭기도 하고…… 이 도시에 위협이 될지도 모를 유적일수도 있으 니까 확실히 단속해 주십시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총 65명의 인원입니까? 하필이면 도시 중앙이라…… 공간이 동 마법진을 사용해야 하실겁니다. 짐이 있으니까요." 마법진이라는 것…… 원래는 클래스식이긴 하지만 서클식 마법사들도 마법진에 마력을 공급 하는건 할수 있었다. 서클식 마법사가 마법진을 이용할 경우 비효율적이긴 해도 사용은 할 수 있었다. 공간이동 마법진은 좌표계산을 통한 룬 베이스Rune Base의 변형만 할 수 있다 면 3서클 마법사도 쓸수 있었다. 단지 마력 공급이 오래 걸리겠지만. 텔레포트 주문은 자그 마치 8서클 주문인지라 5서클 마법사가 그것을 보충하려면 10분 이상이 걸린다. 단거리라도 10분 정도는 걸린다는 말이다. 도시 내에서의 이동이라면 5분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지만 도시 단위로 뛰어넘는 것이라면 5서클 마법사 한명이 충전할때 1시간은 넘게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 이동 마법진은 계 산능력이 높은 마법사와 텔레포트 마법진을 어느정도 이해하며 룬 베이스를 교체할 수 있는 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5서클 마법사 세명 정도는 존재해야 10분 정도만에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좌표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마법기가 있으면 시간이 단축되고 어마어마한 마력이 담긴, 최고의 마법매개체 드래곤 하트Dragon Heart가 존재한다면 정신 력이 허락하는 내에 펑펑 써댈수 있고…… "마법진 사용에 대한 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발굴조'의 마법사들이 정신력을 소모 할 일은 없을겁니다. 마법사 길드도 이번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으니 도움을 주겠지요." "으음. 중급 정도라도 성직자가 있으면 참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이번 일은 확실히 모험가들 이 시의 허락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성직자들이 있으면 쓸데없이 참견이 많아서. 아 슈라스 교단은 기본적으로 중립이라 도움을 청해도 요구하는게 있을 것이고…… 허참. 그쪽 은 '종교집단'이 아니라 무슨 무력집단 같다는 생각이 듭디다." 시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그도 절실히 동감하는 바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도시를 다스릴때 정말 많은 도움을 주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의 위오리나에겐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도와주지만 너무 강해서 거슬리는 존재들…… 라마르칸트나 칼리쉬스 같은 경우에 는 아슈라스 교단에 대해 제제를 가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위오리나로써는 제도가 제도 인지라 도움이 되긴 하지만. "확실히…… 위오리나로써 볼때 거슬리는 집단이지요. 일견 타락할대로 타락한것 같으면서 도 다른 성직자들의 힘을 강탈할수도 있고…… 전 대륙적으로 볼때 많은 도움을 주고 있긴 하지만 이런 데에서는 장애물이 되니까요." "다른 교단들이 좀 타락한 상태라면 돈 좀 건네서 적당히 무마할수도 있고 성직자들도 써먹 을 수 있는데 아슈라스 교단이 나타나버려서…… 종교 집단이 타락하는건 확실히 보기 좋지 않고 본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건 사실이지만 확실히 지금은 아쉽군요. 그곳은 아예 뇌물 자체가 먹히질 않으니……" "지나치게 깨끗하고 자유로운 집단이고…… 종교에 합리주의가 가당키나 합니까?" 정치집단이 종교집단을 이용해먹을 수 없으니 껄끄러운 상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들의 발 언은 심한 면이 있었다. 물론 이들 입장이라면 어느 누구나 다 그랬겠지만…… 골빈놈 아닌 이상 정치 할때 이용해먹을 것은 다 이용해 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겉으로 볼때는 깨끗해야 하고…… 아슈라스 교단과 정치집단이 비교되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아슈 라스 교단을 탐탁찮게 여기고 있었다. 도움 받는건 좋지만 그 도움을 주는 대상이 정말로 부담스러운 집단인 것이다. 정치에 대해 이리저리 참견하는게 보기 좋은 꼴은 아니었다. 정말 결속력 있으면서도 또 그 결속이 좀 헐거워 보이기도 하니…… 위오리나 출신의 신관들은 이쪽을 떠돌면서 제법 도움 을 주긴 하지만 이런 국가적 행사에는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하면 하는 것이지 교 리를 지나치게 따르는 모습이 얄미운게 사실이었다. 너무 교리가 훌륭하다 보니까 적을 만 든 셈이다. 그러나 국가들은 손 댈수가 없었다. 음모도 꾸밀 수가 없다. 꾸며서 만약 아슈라 스 교단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해도 감히 어떻게 해보기에는 아슈라스 교단의 힘은 너무 막 강했기 때문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슈라스 교단이 당장에 인간 멸망시키겠다고 덤비면 마법사들이 다 덤 벼도 막을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게다가 그들의 신전 본단에 존재하는 '아스트랄 게이 트'는 그들의 신과 직접 통한다고 하지 않던가? 신이 직접 돕고 있는 교단. 신관 한명 한명 의 힘이 너무나도 강력하다. 에테르 윙Ether Wing을 쓰지 못하는 신관이 없을 정도인 것이 다. 평신관의 에테르 윙이 평균 두쌍이라고 하니…… 휴이즈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는 평신관을 간신히 한단계 올라간 상황임에도 무리하면 에 테르 윙 네쌍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무리하다'라는 것은 영혼의 힘까지 사용하는 것 으로 신체의 생명력 소진은 하지 않지만 영체에 타격이 가기 때문에 그 힘을 사용하고 난 후에는 며칠 정도는 본래 쓸수 있는 에테르의 힘을 반 정도밖에 쓸수 없었다. 몸에 무리가 가는게 아니라 영체가 타격을 입는 것이다. "가당할 수도 있겠지요…… 종교에 합리주의와 상대주의라는 것이 결합되니 '타락'이라는 단 어가 어울리지 않는 종교가 되버리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이용하기 글러먹은 것은 사실이지 만 위정자들이 아닌 다른 이들이 볼때는 매우 훌륭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수많은 성왕聖 王과 위정자爲政者들이 그렇게들 하려고 노력했던 구세안민救世安民의 토대를 마련하지 않 았습니까. 우리 위오리나가 이렇게까지 해냈던 것에 아슈라스 교단이 개입되지 않았다고 하 면 거짓말이겠지요. 대륙이 이정도까지 깨끗해진것도 그들의 공이 아닙니까…… 비록 완벽 한 구세안민에 성공한것은 아닐지라도 그 토대를 이루어낸 것 하나만으로 그들은 인정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야 그렇습니다만……" 시장이나 후작이나 브레인중의 브레인들에 파워 엘리트인지라 철학이나 관념에도 공부를 꽤 많이 했는지 그럭저럭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 깊이있는 것은 아니고 어느 누 구나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낼수 있는 결론들이었지만 그래도 '뼈대'였다. 살이 붙어있어야 보기 좋은건 사실이지만 모양을 유추하는건 뼈대만으로 충분하다. '보는 자들'의 독자적인 해석만을 요하는 아닌 초 리얼리즘이라는 것이 있다던가? 지나치게 문체가 간결하면 이해할 때 현기증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적당히만 살이 붙어있다면, 그것이 진정 보기좋고 이해하기 편한 이론과 설명이 된다. 알프레드는 후작과 시장의 대화를 들으면서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는 천재이긴 했 지만 '마법의 천재'였지 '철학과 정치'에 대해서는 천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공부하고 파 고 들면 되겠지만 알프레드의 꿈은 9서클 마스터가 되는 것이었지 철학과 정치를 통해 나라 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뭐 그렇기에 검사임에도 정치와 처세술에 대해서 뛰어난 후작 이 알프레드의 존경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후작은 알프레드가 보기에도 감탄 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기 때문이다. "대화는 이정도로 해두지요. 시장님은 이런곳에 계셔서는 안되는 분 같습니다." "하하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들의 대화중에서 길게 이어질만한 내용은 이것으로 맥이 끊겼다. 후작은 시장을 눈여겨 보았다. 시장은 말은 이럭저럭 대충 하고 있었지만 눈을 볼때 이런곳에서 중소도시 하나를 가꾸며 살아가기엔 너무 커다란 인재였다. 시장을 담기에 이 도시는 너무 작은 그릇이다. 후 작은 돌아간다면 귀족파에 이 인물을 추천해볼 생각이었다.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별 로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서 후작은 '시간'을 마련해두기로 마음 먹었다. "시장님이 원하신다면 수도에서 한번 뵙겠습니다." "시간이 난다면 말입니다. 이 도시는 저같은 세대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빨리 발전해서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하거든요." 후작은 피식 웃었다. 거절일까?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바뀌는 법이기 때문에 언제 차나 한 잔 나누면서 진지하게 대담해볼 생각이었다. 시장이나 후작이나 속에 능구렁이 몇마리는 품 고 있는것 같았다. 후작이 말을 돌렸음에도 시장은 언외언言外言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아 보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알아채며 비슷하게 응수해준 것이다. 시장은 이 도시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것 같았다. 이 도시 태생일까? 만약 그렇다면 '학교'에서 공부하면 서 자기 나름의 포부를 품은 셈이 틀림 없었다. 후작은 돌아간다면 아잔티아의 시장에 대해서, 한번 추천해볼 생각이었다. 후작 그 자신의 눈과 판단은 거의 틀려본적이 없었고 인재를 발굴하는데 대해서는 매우 훌륭한 능력을 지니 고 있었던 것이다. 후작은 알프레드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시장은 미리 생각해 두 었는지 마법진 둘을 연결하려는듯 그들을 인도해서 꽤 거대한 텔레포트 스테이션 앞으로 끌 고갔다. 헥사그램이긴 했지만 일행들이 전부 한꺼번에 전송될 정도는 되었다. 중앙 공원은 아마 인원이 통제되고 있을 것이다. 내부 공사가 있느니 하는 이야기로 시민들 의 발걸음을 막고 입구를 틀어 막은 다음 마법진을 그려놓고 대기하고 있겠지. 아마 입구 근처는 철책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후작과 그 일행들이 전부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약간 비좁은 느낌은 있었지만 빽빽하게 밀집해서 서면 20명 정도는 더 들어갈 정도의 너비였기 때문에 상관은 없었다. 마법사 한명이 꽤 고심해서 그린듯 했다. 마법진은 물감을 이용해서 그려놓은것 같았다. 물감이라도 마법 촉매를 섞어서 광물로 그린 것이다. 물로 씻어버리면 다 씻겨 나가겠지만 단발로 쓰기엔 좀 아깝다고 할수 있었다. 마법 촉매란 아무리 싸구려라도 저정도 크기의 마법진을 그리기엔 너무 비싼 물건이었다. 하지만 후작이나 일행들이나 별로 아랑곳하지 않고 짐을 챙겨든채 섰다. 인간들 사이에 서 있는 노 움들이 확실히 튀었다. 머리가 쑥 들어간 지점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5서클이나 4서클 정도로 보이는 마법사 여섯명에서 일곱명 정도가 마법진을 둘러싸 고 주문을 외우고 수인을 맺으면서 대량의 마나를 끌어모아 마력으로 전환한다음 자신들의 마법기나 촉매들을 이용해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꽤나 복잡한 문양의 마법진 은 서서히 순백의 빛으로 물들어갔다. 마력으로 바꾼다고 해도 단지 순수한 마나를 마법사 들의 염 아래 놓아 마법진에 불어넣는 것이었기 때문에 마력의 충돌은 없었다. 환형環形의 빛이 서서히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7. 후작과 예의 '발굴조'들이 텔레포트되어 나타난지 10분이 흘렀다. 그들이 전부 나타나 유적 에 들어간지는 1분도 채 흐르지 않았다. 어쨌든 참 지루하다. 묘한 긴장감 같은 것은 저기다 버려뒀는지 유적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비병과 몇몇 기사들은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다. 기 사들이 입은 갑옷은 플레이트 아머Plate Armor이긴 했지만 파트 아머Part Armor에 가까워 서 상당히 가벼웠다. 철판갑옷이긴 해도 기능성을 중시한 물건인 것이다. 잘 정련된 강철이긴 해도 그리 두텁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 기사들이 소드 익스퍼트 중급에 속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소드 익스 퍼트 중급쯤 되면 내력이 검에만 밀어넣어 백색 검기를 쓰기엔 좀 남았기 때문에 이런 얇은 갑옷이라도 내력을 불어넣어 호신강기護身剛氣를 두겹으로 만드는 효과를 볼수 있었다. 그 래서 소드 익스퍼트 하급의 기사들은 이보다 조금 두꺼운 플레이트를 입었다. 컴플리트 아머를 입는 미친짓은 돈 낭비였기 때문에 이미 아스타르 대륙에서는 500년전 사 라진 갑옷이었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으로 들어서면 그나마 갑옷도 필요 없어서 그냥 모양 새만 약간 내고 더 얇아진 갑옷을 입었다. 미스릴Mythrill 코팅을 한 갑옷을 입는 경우도 있 었지만 그건 너무 비쌌다. 엘더 휴먼들은 아다만티움Adamantium을 중급 광석으로 칠 정도 로 찬란한 문명을 구가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남아있질 않았다. 마법과 과학이라는 것을 조화시킨 초문명이 엘더 휴먼들의 것이었고 지금 발굴하려는 유적 도 엘더 휴먼들의 것이라고 했다. 어찌되었든 슬슬 갑옷은 사라지는 추세였고 군복(軍服)이 지급되고 최고의 기능적 전투를 위한 '효율 전쟁'을 위한 전술 등이 퍼지고 노움들의 등고선 방식 지도나 몇가지 환영마법을 첨가한 지도 같은 것들이 돌아다니면서 슬슬 구식의 전쟁은 사라지고 있었다. 기사들 나와서 거창 돌격 하고 한바탕 전쟁 치른다음 패배한 쪽이 부상자를 정리하고 식사 를 할때까지 기다려주는 어처구니 없는 짓이 사라져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적어도 위오리나 에서는 기사들의 숫자가 타국의 절반 이하였다. 칼리쉬스는 여전히 장원제를 쓰고 있었으므 로 예의 봉인계의 '중세식 전쟁'이 남아있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리 부싯깃 총 같은 거라도 갑옷 하나쯤은 뚫어버릴 위력이 있었기 때문에 위오리나의 군대를 기사로 상대하는 것은 미 친 짓이었다. 위오리나식 석궁은 한뼘 두께의 강철도 반 이상은 뚫고 들어가기 때문에 총기류를 쓰지 못 해도 배급된 소형 석궁 하나만 지니고 있으면 병사가 기사를 잡을 수 있었다. 그정도면 상 급 소드 익스퍼트의 호신강기가 아닌 이상 밀어내기 쉽지 않다. 충격은 그대로 전달하니까 말이다. 화살촉은 대부분 주철을 쓰지만 위오리나에서는 주철에 강철을 입힌다. 대는 탄력있 는 나무에 아교와 풀을 먹인다. 깃도 풀과 아교를 먹여서 쓴다. 석궁용 쿼렐의 경우는 통째 로 강철을 쓰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석궁의 현을 금속가루를 섞은 오거 힘줄로 만들기 때문에(위오리나는 머스킷 부대를 이용해 서 3년에 한번 국내를 청소한다. 몬스터들을 대량으로 잡아 써먹는 것이다. 그래서 오거 힘 줄 정도는 흔하다) 건틀릿을 장착하거나 튼튼한 장갑을 끼운채 현을 당겨야 한다. 당기는데 는 힘이 좋으면 힘으로 해도 되지만 장전자가 달려 있어서 그걸 돌려주면 10초 안에 장전할 수 있었다.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걸어놓고 달려있는 클립을 걸면 장전을 한 채로 말 에 묶어놓고 다닐수도 있었다. 쿼렐도 가벼운 편이었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새버렸지만 어쨌든 갑옷이란 그런것이다. 칼리쉬스 왕국을 제외하고는 이제 거의 풀 플레이트 같은 것을 만드는데가 없었다. 의장용으로는 만들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곳의 병사들도 전쟁용의 그 강화 석궁을 장전한채 허리춤에 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사들이 검을 뽑아들었다. 모두 강철제의 검이었는데 동방에서 수입해온 중검重劍 이었다. 꽤 비싼값을 준 물건이다. 동방에서는 이런 무기를 별로 쓰지 않지만 군대에서는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중검을 제작하 긴 했다. 백련정강제 중검이었기 때문에 기사들은 이것을 받아 익혀보고 드워프가 만든것도 아닌데 중검이면서 폼멜도 없이 이런 밸런스를 유지하는 명품이라 말하고 놀라워했다. 바다 를 건너온 물건이면서도 정말 터무니없는 예리함을 자랑했다. 기사들은 긴장하며 갑옷에 기 를 불어넣어 미미한 흰빛을 뿜어내게 하고 검에도 내력을 불어넣어 흰빛의 검기를 형성했 다. 불투명한 빛에 검기와 검강의 사이쯤 되어보이는 특이한 백색의 검기가 빛을 발했다. 그러자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훈련받은 대로 정비를 시작했다. 석궁의 클립을 건 채로 그대 로 들어올려 몸에 대고(반력은 전달되지 않으니 상관없다) 몸을 가볍게 숙였다. 그러나 그것 은 4할 정도의 병사들만이었고 그 4할 정도의 병사들이 뒤로 물러나서 안쪽에서 석궁을 들 고 병사와 기사들 사이사이로 활을 들자 나머지 6할의 병사들중 2할은 핼버드를 들고 궁사 들 옆으로 갔고 남은 병사들은 겉은 강철이고 속은 주철인 검을(롱소드에서 바스타드 소드 까지 다양했다) 뽑아든채 기사들 뒤에 섰다. 그것을 보면서 감탄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당연하게도 바인 일행이었다. 그들은 투명화 마법 Invisible Spell을 몸에 걸고 논 디텍트None Detect까지 걸어놓고 조심스레 걷고 있었다. 마법사도 마법을 감지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바인이 히든 매직 포스Hidden Magic Force 주문 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일행 전부 다 호흡을 아주 길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심장을 두근거 리는 등 긴장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간부종에 걸린 마냥 긴장하질 않는 것이다. 그 도 그럴 것이 발각 되어서 만약에 이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능력자들이 다 달려들어도 바인 마법 몇방이면 싹 쓸어버릴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들 모두 자신의 힘에 자신이 있었다. 헤인 이 진야월영이 없어 약해졌다 해도 병사 1, 병사 2나 기사 A 기사 B 같은 엑스트라(?)들이 범접하기엔 너무 강했다. 아무리 군기가 잘 잡혔고 또 포메이션을 잘 짜고 전투교본에 충실하다 해도 밥값과 그 효율 (?)로도 볼때 그들이 매우 처졌다. 숫자는 그들이 많았지만 상대도 되지 않는 것이다. 군대 유지비와 바인들의 숙식비 같은 것을 비교해도 바인들이 더 쌌다(…). 바인들의 힘 하나만 봐도 어마어마한데 유지비부터 더 싸다니! 고용비가 비싸긴 하지만. 바인들은 나라 하나를 대적할수 있는 괴물들인 것이다. 바인은 몇몇 마법사들(5서클 이하인지 로브가 아닌 클로스 아머Cloth Armor를 입었다)을 바라보다가 주문을 사용했다.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스펠이었다. 약간 응용해서 전위를 그들의 뒤쪽에서 걸었다. 유일하게 로브를 입고 있는 마법사(5서클 마스터였다)가 라이트닝 볼트 몇가닥을 카운터 매 직으로 막아냈지만 두줄기의 전격은 막지를 못해서 여섯명의 마법사중 두명이 그대로 머리 부터 내장이 타들어가 즉사했다. 유적 입구로 들어서려고 가까이 가면 마력은폐장이 드러나 기 때문에 아예 다 죽여야 했다. 기절시킬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걸리고 굉음이라도 일어나면 능력자들이 몰려든다. 파지직 하고 전광이 튐과 동시에 몸의 전기저항으로 인해 발 아래로 전류가 흐르자 내장이 다 타버린 마법사들이 쓰러졌다. "마법이다!" 이들이 포메이션을 짠 이유가 바로 일행의 기 능력자 두명 덕분이었는데 헤인과 아라테온이 기력을 순환시키는 바람에 그들이 기를 느끼고 포진한 것이다. 어디에 있는지는 알수 없어 서 일단 포메이션을 짜서 스크럼으로 방어체계를 짠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안쪽에 있는 마 법사들부터 일단 두명이 죽어나가자 약간의 패닉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전투 교본도 내용이 쓸만한 것인지 금방 다들 혼란이 잦아들었다. 100여명쯤 되는 이들중 이제 두명이 죽었을 뿐인 것이다. "상대는 마법사다! 일단 마법이 날아온 방향을 주시하고 대기해라." 마법사들이 디텍트를 해보려고 했지만 마력은폐장을 펼친 마법사가 9서클 마스터였기 때문 에 그들의 모자란 솜씨로는 도저히 논 디텍트 주문과 마력 은폐장을 파해할수 없었다. 그들 은 일단 지휘관인듯한 기사 한명(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였다)에게 뭔가 말하고 나서 기 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문을 외우며 주홍빛으로 타오르는 사람 몸통 반만한 파이어 볼Fire Ball 한개씩을 만들어냈다. 5서클 마스터가 일단 파이어 볼을 라이트닝 볼트가 날아온 쪽으 로 던지자 후끈한 화염과 함께 굉음이 일어났다. 남은 세 마법사가 모두 바인들이 있는 방향으로 파이어 볼을 던졌지만 바인은 피식 웃으면 서 일행들 모두의 발 밑에 플로팅 디스크Floating Disk를 이용해서 빠르게 띄워 올려 폭발 범위에서 벗어났다. 마력은폐장까지 함께 딸려 올라갔기 때문에 파이어 볼의 폭발은 그대로 마력을 흔들어 사용자들에게 전달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 고 매직 미사일들을 만들어내어 군데군데에 날려보았지만 도저히 바인들이 어디있는지 알수 없었다. 바인은 피식 웃으며 시동어를 읊었다. "블레이즈 파이어 볼Blaze Fire Ball 체이닝Chaining." 5서클의 파이어 볼 주문인 블레이즈 파이어 볼이 형성되자 백황색의 화염이 뭉치면서 사람 머리통 두배 크기 정도 되는 화염구가 되어 아래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후끈한 열기. 블레 이즈 파이어 볼 아홉개체가 붉은 화염폭풍을 휘감고 쏘아져 내려가자 그 기세에 병사들과 기사들은 기겁했다. "하늘이었군!" "포스 필드Force Field!" "베일 실드Vail Shield 스피어Sphere!" 5서클 마스터 마법사 한명이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질것을 생각했는지 포스 필드를 쳤다. 포 스 필드는 역장力場이지만 단순한 힘의 장이 아니라 열원이나 분자운동도 차단했기 때문에 바인의 블레이즈 파이어 볼이 같은 5서클이라도 8할 이상의 파괴력이 포스 필드에 의해 차 단되었고 포스 필드가 깨어지자 그 뒤로 세겹의 4서클의 베일 실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화 염폭발의 여운은 다 사라졌지만 충격파와 열풍으로 인해 주변은 초토화 되어 있었다. 바인 이 주변에 마력은폐장을 넓게 하여 막을 치고 음파 차단 주문을 걸었기에 소리가 도시로 퍼 지지는 않았다. "念雷!" 렌시아가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염뢰를 날려보냈다. 염뢰는 베일 실드를 깨버렸 고 마법이 아닌 어떤 공격에 의해 베일 실드가 깨지자 마법사들은 당황해 했다. 그녀의 표 정은 투명술이 아직 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정상적 사고관 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흥미위주로 움직이는 바인에 대해서 탐탁치 않았던 것이다. 물론 바인의 압도적인 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뭐라고 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조금은, 그녀 역시 흥미가 동한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바인의 처사에는 불만이었다. 이래 서 파티에 불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바인의 카리스마에 저항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불만이 있는게 사실이었다. 휴이즈와 아라테온 모두가 이번 공격에 대해서 불만 없다는 것이 그녀 에겐 충격이었다. 신관인 휴이즈가 바인의 말을 반박하지 않고 착해보이던 아라테온 역시 동조하다니! 컬처 쇼크나 다름 없는 충격이었다. 플로팅 디스크 주문이 풀리고 나서 바인은 페더 폴Feather Fall 스펠을 이용해 모두의 몸을 느릿하게 연직으로 추락하게 만들었다. 무게를 10분의 1로 줄이고 공기와의 마찰을 늘리는 주문이었기 때문에 점점 물리력은 감소하면서 떨어졌다. 그렇다고 느리게 떨어진것은 아니 었다. 아라테온은 바닥에 착지하자 마자 즉시 품에서 단검을 꺼내고는 소리없이 지그재그로 뛰어가며 검에서 은빛의 검기를 뿜어내 단검을 휘둘렀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은선銀 線이 그어지자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검사가 즉시 튀어나와 검에서 은빛으로 일렁이는 검기 를 뿜어내 검기의 선. 즉 검선劍線을 막아냈다. "그대의 이름은?" 기사가 질문을 던졌다. 기사는 금발벽안에 늘씬한 키를 지닌 40대 초반의 미남자였는데 검 을 잡는 모습 역시 훌륭하여 검에 대한 이해는 이미 최상급 소드 익스퍼트나 다름 없이 보 였다. 그러나 아라테온은 검 하나만큼은 이미 대종사를 넘어 그랜드 마스터에 필적하는 바 인과의 대무, 그리고 논검으로 꾸준히 단련해온 몸! 기사보다 검술만큼은 오히려 앞섰다. 아 라테온은 비수 치곤 상당히 긴 자신의 검을 가볍게 흔들어 은빛 검기를 응축시켰다. 그리고 아라테온이 가볍게 검을 흔들자 검의 끝에서 가락지만한 검기의 환環들이 뻗어나와 얽히고 부딪히며 찰랑거렸다. 그것을 본 기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라테온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매력적인 미소였지만 깊은 살기가 실려있 었다. 소녀같은 얼굴이었지만 그 살기와 아라테온의 기세는 결코 여성으로 보이지 않게 하 는 위엄이 있었다. '엘더'에 속하는 그였기 때문에 이미 기세 하나만으로도 인간쯤은 복종케 할수 있었다. "아라테온. 아라테온 풀 문 셀리버!" 기사는 조용히 검을 들어 올렸다. 중검이긴 했지만 바스타드 소드보다 약간 짧은 검이었다. 바스타드 소드는 검신 길이만 롱 소드의 1.2배에서 1.4배이지만 중검은 롱 소드 보다 손가락 두마디 정도 길 뿐이었다. 검에서 일렁이는 검기劍氣가 순간 은은한 빛을 토해내며 길어졌 다. 그리고 검이 가볍게 하단에서 위로 그어져 올라갔다. 아라테온은 피식 웃으면서 공기중 에서 찰랑거리고 있는 환형環形의 검기들을 뿌리며 매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바인에게서 교육받은 보법들을 기를 운용하며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라테온의 몸이 열개체 이상으로 분열되며 은색의 검환劍環들이 공간을 가득 메우며 소성을 토해냈다. "차하아아앗!" "하아아아앗!" 순간 기사의 검에서 은빛의 파도가 뿜어져 나와 무수하게 얽히며 끓어오르는 은빛의 고리들 과 부딪혔다. 따다다다다다당 하는 기음이 일어나며 거푸 날치는 파도가 흐트러졌다. 기사의 검이 갑자기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탄력있게 휘어졌다. 대나무처럼 휘어진 은빛의 궤적이 강하게 찌르기로 변환하자 까가가가강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은빛 검광劍光으로 은색의 고리들이 요란하게 부딪히는 것이다. 콩 볶는 듯한 소리가 일어 나면서 찔러들어간 검빛이 사그라들었다. 아라테온의 검이 무수한 고리를 그리며 움직이며 환검幻劍을 선보인다면 기사는 허虛보단 실實을 중시하고 있었다. 아라테온의 검환들 역시 전부 실이긴 하였으나 허의 요결이 많이 섞여있어 기사는 아라테온을 상대하는데 곤란함을 느꼈다. 환상적인 은색의 빛무리들이 서로 얽히며 소성을 토해내고 가끔 폭음을 토해내는 옆으로 마법사魔法士들과 영법사靈法士들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영법사들이 수가 적었으나 더 압도적으로 마법사들을 밀어 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바인은 느 긋하게 검을 뽑아들고 상대편을 베어 넘길수 있었다. 바인은 블래스팅 팡Blasting Fang만 을 뽑아 휘두르고 있었을 뿐이지만 검날에 얕게 맺힌 붕괴의 힘에 의해 물질을 가르고 베는 데 에는 무리가 없었다. 석궁을 쏘아 붙일수 없는 혼전混戰이었다. 적들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 기도 하지만 바인은 검을 휘둘러 대적하는 병사들을 베어 넘기면서도 매직 미사일 수십개를 계산, 발동시켜서 궁사들에게 날려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일도류一刀流를 사 용하고 있는 바인이었지만 일도류건 이도류건 어떤 타입이건 그랜드 마스터에 필적하는 검 술을 지닌 그를 기사 A, B나 병사 1, 2 따위들이 이길수 있을리 없었다. 몸을 빙글 회전시키며 검날을 휙휙 그을 뿐인데 혈관이 잘려 절개되면서 푸하학 하고 피가 터져나오는 것이다. 검날이 빛을 뿌릴때마다 피보라가 일었다. 바인은 왼발을 크게 굴러 몸 을 날리며 검을 정직하게 직선으로 그으며 몸을 살짝 굴리며 왼손의 소매를 휘둘러 빛의 화 살을 생성시켜 한 병사의 심장을 관통시켜버렸다. 그는 로브를 입은 상태에서도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풀 모션으로 병사와 기사들을 학살虐殺하고 있었다. 바인은 피식 웃으며 전방 을 부드럽게 긋고 탄력을 주며 검을 뿌리며 다시 뒤로 돌아 검을 길게 그었다. 검빛이 요란 하게 튀며 예기가 번뜩였다. 잔뜩 사람을 베어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여전히 투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바인은 검에 백색으로 작열하는 빛을 뿜어내는 검기를 싣고 검을 휘둘러오는 한 기사를 바 라보았다. 그 다음 피식 웃고 뛰어 올라 검을 내리 그었다. 뛰어 올랐다 내리 그었을 뿐인데 도 기사의 검무劍舞는 족족 파해되었고 검은 검기가 실린 검조차 베어버렸다. 붕괴의 힘이 실린 날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인은 이어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길게 그었고 기사는 평소 마법과 검을 함께 쓰는 마검사 들을 경멸하고 있었는데 그 마검사에게 죽게 되자 눈을 부릅뜨고 쓰러졌다. 죽기 직전에 검을 한번 휘두르려 했으나 왼팔의 상완부근을 길게 그으 면서 폐와 숭모근등을 완전히 갈라놓았기 때문에 저항할 여력이 없었다. 심장이 펌프로 피 를 퍼내듯 콸콸 하고 토해냈다. 8. "구천제신 청래광전 뢰신지격 광량인참! 구천여의뇌법九天如意雷法!" 렌시아는 중급 영법 구천여의뇌법을 이용해 벼락을 뿜어냈다. 그러나 날아오는 전위의 라이 트닝 볼트들을 상쇄시킬 정도였다. 렌시아는 아직 살인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손속이 약 했다. 그러나 헤인은 라이트닝 볼트와 구천여의뇌법이 상쇄되자 마자 즉시 왼손에 영기와 기를 섞어서 빛의 칼날을 생성시켰다. 영법도 무공도 아닌 수법. 무서운 속도로 달려나간 헤 인은 순간 마법사들 앞에서 보법을 전개했다. 마법사들은 기겁해 하면서 매직 미사일을 날 려보냈지만 그것은 렌시아에게로 날아갔다. 렌시아는 영법을 전개하여 공격주문들을 막아냈 다. 마법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병사들중 핼버드 병들이 달려들었지만 헤인이 왼손의 손가락 을 겹쳐 만들어낸 빛의 칼날에 베여나갔다. 푸줏간 고기 썰리듯 썰려버린채 주저 앉는 사체들. 둔중한 느낌. 렌시아는 눈살을 찌푸렸지 만 이미 한번 넋이 나갔다가 죽을뻔한 전적이 있었기 때문에 즉시 영법을 이용해 주변의 병 사들에게 타격을 가하면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헤인은 광기어린 미소와 함께 빛의 칼 날로 병사와 마법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근거리라 시동어조차 외칠 겨를 없이 네명의 마 법사는 허무하게 빛의 칼날에 썰려나가버렸고 헤인은 푸줏간 주인처럼 고기를 다지듯 주저 없이 다시 빛의 칼날을 놀렸다. 보랏빛과 백색이 섞여 연보랏빛의 영검기靈劍氣가 빠르게 튕겨져 나가 아홉개의 그림자를 그렸다. 구궁연환검법. 구궁연환검에 의해 분열된 칼날들이 움직여 병사 세명의 핼버드를 가 르고 그들의 몸에 이검二劍 씩을 가했다. 핼버드들의 고개가 떨어져 나가고 병사들의 몸에 사선이 그어짐과 동시에 네조각으로 분열되었다. 치익 하고 갈라져 나가고 피가 요란하게 뿜어져 헤인을 적셨지만 헤인은 상관하지 않고 빛의 칼날을 다시 탄력있게 튕겨서 병사들의 몸을 갈랐다. 소드 익스퍼트도 뭣도 그의 심형영검기에 스친 즉시 죽음을 맞았다. 바인이나 헤인이나 지금은 말 그대로 학살자였다. 바인이 훨씬 효율적으로 학살하고 더 대량으로 죽이고 있었다면 헤인은 그보다는 못했지만 푸줏간에서 고기 다듬듯 검을 휘둘러댔다. 닥치는대로 죽이는 것이다. 바인이 냉철함으로 검 을 날린다면 헤인은 광기로 검을 날리고 있었다. 바인이 피식피식 웃어대면서 검을 날리긴 했지만 눈빛 하나만큼은 정말 싸늘했다. 휴이즈는 광익光翼 에테르 윙을 전개해서 기사들 몇명을 상대하고 있었다. 심드렁한 눈빛으로 두쌍의 에테르 윙을 휘둘러 안정적으로 그들의 검을 튕기거나 베고 몸을 가른다. 에테르 윙이 아름답게 번뜩일때마다 피가 요란하게 튀어 나가 바닥을 덮었다. 아라테온은 기사들의 우두머리와 격전을 벌이며 가끔 환형의 검기를 흐트러뜨려 병사들의 심장을 관통시켰다. 어느새 '적'들의 숫자는 3분의 1로 줄어들어 있었다. 궁사들은 바인이 가끔 날리는 매직 미사일에 의해 전멸해 있었고 핼버드 병 역시 남아있질 않았다. 검을 든 병 사들과 기사들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기사들도 휴이즈의 광익이 요란하게 번뜩 일때마다 조각나서 죽어버렸고 가끔 가다 날아가는 바인의 파이어 볼에 의해 남은 병사들도 모두 죽어버렸다. 렌시아는 상당히 화가 나긴 했으나 지금은 전투 중이라 나중에 따지기로 마음 먹었다. 바인은 문득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정말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표정은 무심함의 그것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재미없군." 학살전은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휴이즈의 광익이 부드럽게 튕겨짐과 동시에 남은 기사들의 몸은 에테르의 칼날에 난자질 되어버렸고 헤인의 영검기가 마지막 남은 병사 의 목을 땀과 동시에 학살은 끝났다. 아라테온과 기사의 싸움이 남아있었을 뿐. 아라테온은 느긋하게 단검을 흔들었고 그러자 차르르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얽혀있던 환형의 검기들이 일렁이며 분산되었다. 그리고 기사를 향해 맹렬하게 쇄도했다. 기사는 몸을 비틀며 64검을 정확하게 뿜어냈다. 눈부신 은빛의 환상이 일어났다. 그러자 소 드 배리어Sword Barrier(劍幕)가 펼쳐져 검환의 비를 막아냈다. 물막처럼 은은한 빛을 발하 며 펼쳐진 검기의 막이 고리의 비를 막은 것이다. 까다다다다당! "크윽…… 어째서 증원군이 오지 않는거지!" 기사는 중얼거리며 검을 길게 뻗어냈다. 그러자 검에서 빛의 창이 뻗어나가 아라테온을 향 해 쏘아져 나갔다. 아라테온의 몸을 막 관통할것 같던 은빛의 검기는 아라테온이 춤추듯 유 려한 동작으로 몸을 비틀어 유연하게 굽히자 그냥 저 멀리로 사라져버렸다. 헤인은 손가락 을 딱 튀기며 염뢰를 만들어 뻗어냈다. 기사는 숨을 몰아쉬다가 염뢰를 검을 휘둘러 튕겨내 며 화를 내려 했다. 그러나 이미 아라테온의 검은 기사의 정수리에서 사타구니까지 지나가 고 있었다. 검환 대신 검기를 길게 뻗어내 몸을 가른 것이다. 아라테온은 분노로 가득한 기사의 머리통을 짓밟으면서 말했다. 기사의 표정은 완전히 일그 러져 있었지만 아라테온의 미소는 여전히 맑고 희었다. 사람을 저렇게 죽여놓고도 웃다니. 사람을 벌레보다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뭐랄까? 죽이는데 이미 익숙하다고 할까. 사 람의 원망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얼굴…… 렌시아는 그나마 그럭저럭 정상이라 고 생각했던 아라테온조차 광기가 철철 넘치는 놈이라는 것을 깨닫고 치를 떨고 있었다. 아 라테온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미안하지만 난 고리타분한 기사가 아니라고. 1대 1은 생각해본적도 없어. 다만 힘없는 놈들 학살하는게 마음에 안들어서 시간을 끌었을 뿐이지." 아라테온은 그렇게 말하고 피한방울 묻어나지 않는 단검을 품에 갈무리했다. 장검을 쓰지 않는 아라테온이라도 이미 심형의 검기를 깨달은 상황이라 검기의 길이를 자유자재로 변형 할수 있었던 것이다. 최근 바인에 의해 몇가지 검법을 전수받아서 검환劍環 정도는 쓸수 있 었다. 아직 검탄劍彈 같은 것은 무리였지만 말이다. 검기를 뭉쳐 탄환처럼 쏘아보내는 기술. 달리 검환劍丸이라고도 불리는 기술이었다. 피냄새가 자욱하게 퍼져나갔기 때문에 결계를 그대로 놔 두는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바인 은 귀찮다는 듯 결계를 제거하면서 바람을 이용해 혈향을 사그라뜨렸다. 그와 동시에 정화 술로 '피'를 염으로 지정하며 분해해나갔다. 당연히 피는 증발하듯 사라져버렸고 분자화 되 어버린 이상 시체가 부패하지 않으면 냄새는 나지 않을 것이다. "마법결계가 있군." 바인은 느긋하게 블래스팅 팡의 옆면을 어깨에 살짝 걸치고는 자신에게 정화술을 걸었다. 로브에 묻었던 피들이 다 깨끗하게 사라진 것이다. 일행 모두에게 정화술을 걸어서 핏자국 을 제거한 그는 조용히 블래스팅 팡의 페시온 핀을 조정해서 하나의 앰플에 꽂았다. 앰플의 홈에 페시온의 핀이 맞물리자 바인은 염을 가해서 6서클 화염폭발 마법을 칼날에 전이했다. 검극을 유적 입구로 향한 그는 마법의 힘을 모두 다 검극에 전이했다. 우우우웅 하고 검명 劍鳴이 일어났다. 주홍빛과 진홍빛의 마력이 흐르는 칼날. 칼날이 울면서 기이한 공명이 일었다. 모든 화염폭 발 마법의 힘이 칼날에 실리자 바인은 빠른 속도로 돌진하여 유적 입구를 향해 검을 찔렀 다. 유적 입구에서 순간 광막이 퍼져나와 검극에 부딪혔다. 쿠르르릉 하고 진동이 일어났으 나 바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각과 촌경을 이용해 검을 더 강하게 찔러넣었다. 그러자 광막 이 짜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찢어 발겨졌고 바인의 검이 공중에 멎는 순간 마법이 실현되었 다. 6서클급 화염폭발 마법이 터진 것이다. 그러나 안쪽에서 터진 화염폭발 마법의 힘이라도 광막은 대부분 다 막아낸채 깨졌기 때문에 광익의에 염을 가해 가벼운 에테르의 장막으로 마법의 남은 여파를 막아낸 바인은 몸에 흠 집도 나지 않았다. 블래스팅 팡으로 처음 시현하는 공격마법 사용. 안쪽으로 향하는 염을 차 단하는 플라즈마 실드Plasma Shield였기 때문에 바인은 마법을 검기처럼 응축시켜 찔러넣 어 화염폭발 마법을 실현한 것이다. 덕분에 광막은 완전히 깨어져버렸다. 그는 느긋하게 검을 털어내어 마법의 힘을 모두 소진한 앰플을 그대로 놔 둔채 페시온을 꺼 내 안전장치에 걸어놓았다. 찰칵 하고 페시온의 핀이 안전장치에 붙들리자 바인은 조용히 검을 칼집에 꽂아 넣은채 진야월영을 꺼냈다. 스르릉 하는 소리가 일어나며 진야월영이 뽑 혀나오자 렌시아나 헤인이나 속이 쓰리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왜냐하면 렌시아는 사문에 연 관도 없는데다가 흉악무도(외모는 아름답지만)한 마법사가 사문의 기보를 봉인해서 쓰는 것 때문이었고 헤인은 그때 당한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바인은 느긋하게 유적의 입구로 들어 섰다. 유적의 입구는 청강석이었는데 그것이 매끄럽게 깎여 있는데다가 홈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입구 자체가 하나의 돌을 깎아 만들어 낸 것이었다. 바인은 그걸 깨닫고 매우 놀랐지만 뭐 그러려니 했다. 마법을 이용하면 별로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려면 9서클 마스터 정도는 되어야 가능했다. 입자 재배 열 마법은 8서클에 속한 것이었지만 8서클 마스터 10명 이상보다 9서클 마스터 한명이 있는 게 훨씬 효율적이었다. 8서클 마스터 열명이라고 해도 9서클 마스터 한명을 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인 은 붕괴, 사멸의 힘을 쓰는데다가 검술도 매우 강력했다. 특급 마법기를 넷이나 소유하고 있 으니 이미 바인은 이 대륙에서 인간만을 꼽는다면 최강자였다. 4천살도 안된 드래곤 정도는 부담없이 잡을 수 있는 괴물인 것이다. 바인은 무심하게 걸어들어가며 다시 블래스팅팡을 뽑아 거칠게 휘둘렀다. 거칠긴 하지만 예리하게 단절하고 들어가는 검날. 그러자 정면에서 은빛으로 덮쳐오던 거대한 칼날이 파삭 하고 깨어져 파편을 튀겼다. 어마어마한 물리력으로 스윽 하고 가르고 다시 위로 올라가는 구조였으나 잘리고 파삭 하고 깨어져 버리자 바인이 순간적으로 형성한 사이-필드Psi-Field에 의해 다 걸려서 비껴나갔 다. 바인은 자신의 발목에 피잉 하고 뭔가 떨리는 감각이 오자 오히려 날아오는 커다란 칼날 을 쳐서 박살내버린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물리력에 따라들어오며 에테르를 응집시켜 빛의 구를 형성시킨 휴이즈도 기겁했다. 아라테온들 역시 놀라서 바라보았다. 총 중량이 400kg은 가볍게 넘을것 같은 거대한 칼날을 쳐서 박살내버린 것이다. 그것도 그냥 무게로 떨어져서 스르릉 하고 가르며 지나가는게 아니었다. 그 물건의 재질은 터무니없었다. 슬라이스Slice 주문이 칼날에 겹쳐져 있는 미스릴 코팅제 칼날이었던 것이 다. 그런 걸 쳐서 부숴버리다니…… 소드 마스터라도 내운기경만으로 할 짓이 아니었다. 바인 은 전혀 상하지 않은 손이 가볍게 떨리자 피식 웃었다. 아무리 바인이라도 순간적으로 쳐서 부쉈기 때문에 근육이 조금 놀란 것이다. 바인은 물리력을 잃어버린채 가볍기 흔들리고 있는 칼날의 대 부분을 칼날로 쳐서 끊었다. 쿠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떨어져 바닥에 박혔다. 아직 남아있는 뒷부분의 날 만으로 도 충분히 바닥을 깨어 부수고 박힐수 있었던 것이다. 바인은 처치 곤란한 크기의 칼날을 보면서 블래스팅 팡을 매개로 왼손으로 수인을 맺으며 가볍게 시동어를 읊었다. 분해, 혹은 풍화주문이었다. "디스인터그레이트Disintegrate." 맑지만 낮은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미스릴이 코팅된 칼날과 대가 통째로 분해되서 사라져 버렸고 바인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블래스팅 팡과 광익의를 이용하자 8서클 주문을 날 렸음에도 불구하고 메모라이즈 주문이 아니라 직접 구상해서 사용한 것이다. 인프린팅을 쓰 지 않았지만 조금의 정신력만 사라졌을 뿐이었다. 바인은 아직 공중에 남아있는 대를 잘라 서 바닥에 떨구었다. 그리고 무심하게 걸음을 옮겨서 걸어들어갔다. 사뿐사뿐 걸어들어가면 서 바인은 슬쩍 뒤를 바라보았다. 휴이즈는 에테르의 구를 사람 키만큼 더 띄워 올려서 빛을 밝히고 있었다. 사람 네명의 어 깨 너비 정도의 길이었지만 옆으로 딱 붙어 가도 그 칼날을 피하기는 불가능한 너비였다. 등을 딱 붙인다면 피할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바인은 디텍트Detect 주문으로 '금속'을 찾기 시작했다. 디텍트 메탈Detect Metal 주문은 그리 어려운게 아니라서 그는 기관을 구동할때 필요한 부품들을 다 찾을수 있었다. 그래서 정밀하게 4차원적 공간구현(시간좌표 포함)을 이 용해 블래스팅 팡과 가벼운 염동의 발휘만으로도 기관을 억제할수 있었다. 가령 바닥에서 거칠게 회전하면서 마법의 소용돌이를 이용해 발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강력한 회전돌판이나 바닥이 푹 꺼지면서 다시 찰칵하고 돌아가 다시 맞물리는 것에서부터 발판을 밟음과 동시에 백린이 뿜어져 나오고 화염폭발 주문으로 몸을 불태워 버리는 기관까 지…… 백린은 소모되지만 그 앞에 무시무시한 기관이 많았기 때문에 1회용 기관장치도 몇 개 존재했다. 하지만 바인은 느긋하게 그런것을 차단했다. 백린이 뿜어져 나와도 에테르 제 어를 이용해서 바람으로 뭉쳐서 불태워버리고 회전 돌판 바닥의 금속기관 구동계를 파괴하 는 등 마법적인 힘과 금속이 더해진 함정(그것이 함정의 8할 이상이었다) 등은 걸리지 않고 빠져나갈수 있었다. 그러나 드물게 밑에서 청강석 창이 튀어나오는 등의 원시기관도 존재했기 때문에 불의의 기 습으로는 써먹힐만 했다. 그러나 바인은 혹시나 하고 디텍트 주문이 아니라 예기銳氣 탐사 주문이나 분자배열 탐사 주문등도 몇번 썼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그것들을 파해할수 있었다. 마법사 치곤 몸도 좋고 감각도 훌륭한데다가 전투 센스도 좋았기 때문에 100여개 정도의 함정을 파해했을 때에는 그 포인트를 짚어낼수 있을 정도였다. 천장이 높아서 천장 에 적외선 탐지 같은 조건 주문으로 함정을 발동하는 것들은 파해하진 못했지만 그런 것들 대부분은 1회용이 많았고 또 영구용이라 하더라도 별로 쓸모는 없었다. 언제 한번 바닥과 천장에 무수한 구멍이 뚫려 있고 물체가 지나가면 상처에 조금만 묻어도 살이 녹아들어가며 죽는 끈끈한 점성의 독이 발라진 비침飛針이 수십개씩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구간이 있었는데 바인은 피식 웃으면서 그것에 걸린 마법들을 모조리 다 디스펠해 버리고 혹시나 하여 바닥과 천장에 포스 필드-플레이트Force Field-Plate 스펠을 시전해 놓 고 여유있게 지나가버렸다. 아무리 이런 함정이라도 강력한 마법을 지닌 바인이 있는 이상 별로 쓸모도 없었다. 지금까지 바인이 저장해둔 스펠을 사용한 것은 단 한번으로 갑자기 벽이 닫히면서 차가운 액체질소와 액체산소가 위에서 쏟아졌을 때였는데 그때 바인은 포스 필드를 치고 그 액체들 에 걸린 마법에 의해 포스 필드가 조금씩 뚫리자 그 즉시 암석 분자 구조질 변형 주문을 이 용해 벽을 뚫고 걸어간다음 바닥에 미세하게 뚫린 구멍을 무시하면서 팽창된 공기를 넘어 일행을 정면쪽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포스 필드로 액체가 되어 쏟아진 벽을 대신하고 액체 질소와 액체산소가 다시 흘러가서 사라져버리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포스 필드를 제거한 다음 화염폭발 주문을 안쪽에 한발 날려서 공기를 데웠다. 바인은 획기적이고도 간편한 방법으로(어느 누가 이 대륙에서 5서클의 주문들을 시동어만으 로 발동하고 남발해댈수 있겠는가) 함정들을 파해하면서 걸어갔다. 함정이 많아서 그렇지 그리 긴 복도는 아니었다. 물론 이곳에서 죽어나간 자들은 대부분 입구에만 존재해 있었다. 보나마나 꽤 강력한 마법으로 보호·은폐되고 있었을 이곳이 열리자 병사들이 뭣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참변을 당했을 터였다. 10구 정도 되는것 같았지만 대부분 상하거나 파괴되어 있었다. 감히 이곳에 있는 시체를 꺼낼 생각도 하지 못한듯 해서 부패한 시체는 바인이 번 스펠Burn Spell로 깨끗히 불태웠다. 렌시아는 벽에서도 가끔 함정이 튀어나왔기 때문에 긴장해 있었다. 뭐 벽과 아래의 함정 대 부분은 바인이 다 파해했지만 말이다. 휴이즈는 제법 흥분된다는 표정이었고 아라테온은 바 인을 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전직에 도둑이었나 할 정도로 능숙하게 함정을 파해하며, 바 인은 느긋하게 걷고 있었던 것이다. 보보박살步步搏殺의 함정. 발동필사發動必死의 함정들만 그득한 곳이라 바인은 디텍트 주문을 남발하고 있었지만 별로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휴암 환休暗環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의 육체 특성상 회복 속도도 빨랐다. 정신력 회복은 약간 늦 긴 했지만 그래도 인간의 마법사보다 최고 100배 이상 빠른 속도였다. 헤인은 상당히 창백한 표정이었다. 이곳에서 바인이 혹시나 실수하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죽음은 별로 두렵지 않았지만 고통스럽게 죽는건 정말 최악이었다. 가스가 흘러나오 는 함정이나 독이 뿜어지는 함정의 경우 바인이 디텍트를 이용해서 쉽게 찾아내서 그 입구 를 막아버리거나 그것이 힘들경우 가스나 독무를 휴이즈가 나서서 정화시켜버렸다. 어쨌든 바인이나 휴이즈나 정화, 치유 주문은 강력하기 이를데 없었기 때문에 죽지만 않으면 살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은 바인이나 휴이즈도 마비주문 외엔 어떻게 해줄수가 없었다. 바인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모두가 무슨일인가 하고 바인을 바라보자 바인은 벽을 매만 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벽의 재질이 달라졌다. 색은 같지만 환상주문으로 덮여있어." 휴이즈는 바닥을 가볍게 굴러보았다. 그러자 탁 하는 둔한 소리가 아니라 탕 하는 금속 두 드리는 소리가 났다. 물론 속이 텅 비지는 않았지만 돌소리보단 맑았다. 휴이즈는 에테르 윙 을 두장 뿜어내서 벽을 후려쳐보았다. 그런데 돌이건 쇠건 물 베듯 베어버렸던 에테르 윙이 갑자기 튕겨지는게 아닌가? 부웅 하는 기음과 함께 에테르 윙이 튕겨진 것이다. "결계로군." 휴이즈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뒤로 조금 걸어가 청강석을 향해 에테르 윙을 휘둘러보였다. 그러자 스각 하고 에테르 윙이 돌가루를 부스스스 흘리면서 청강석을 잘라냈다. 청강석은 워낙에 단단해서 예기만은 어검강 맞먹는 에테르 윙이 가루를 흘리면서 돌을 잘라낸 것이 다. 그러나 청강석을 잘라낸 것만 해도 어디인가? 휴이즈가 다시 에테르 윙을 접고 빛의 구 를 더 강화하자 바인은 수인을 맺고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블래스팅 팡은 어느새 검집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디스펠Dispell!" 순간 앞쪽의 벽에 파지지지직 하는 불꽃들이 튀어다녔다. 바인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9서클 마스터가 수인에 주문까지 외워서 강화한 8서클급 위력의 디스펠이 깨어 진 것이다. 스펠을 소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법기까지 써서 강화했는데! 바인은 질 렸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방금 그 반발로 인해 걸린 주문의 힘을 깨달은 것이다. "터무니없군. 고작 은폐를 위해서 이런 강력한 주문을 걸다니! 9서클급 환상이잖아! 대체 왜 이런 힘 낭비를 하는거지? 위험할지도 모르겠는데…… 지금까지는 별것 아니었지만 이제부 터 정말 위험한 곳인지도……" '지금까지는 별것 아니었다'는 말에 모두의 안색이 돌변했다. 모두의 표정에 정말 긴장이 서 렸지만 바인은 여전히 냉엄한 표정으로 블래스팅 팡을 들어 붕괴의 힘을 실어 회색의 빛을 뿌리며 벽을 베어보았다. 과연 부담없이 치익 하고 베어졌다. 휴이즈가 놀라서 바인의 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회색의 빛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색의 빛을 거둔 바인 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했다. "이래도 환상주문이 깨어지지 않다니……" 벽은 베어졌지만 검을 거두고 나자 여전히 청강석의 빛이 서려있었던 것이다. 바인은 벤 자 리에 손을 얹어보았다. 그리고 그의 냉엄한 표정이 깨어졌다. 벽이…… 아물고 있었던 것이 다. 스물스물 하고 뭉치더니 아문 것이다. 길게 베어놓은 자리가 아물어 다시 딱딱하고 차갑 고 매끌매끌한 금속의 그것으로 변한 것이다. 어쨌든 더이상의 함정은 없겠군. "형상기억합금을 액체금속으로, 그 성향을 남긴채 변화시키다니. 대체 이 유적은 어느정도의 힘으로 보호되고 있는것이지? 유적 자체가 강력한 마법으로 구성되어 있다니!" 바인이 경탄어린 표정으로 벽을 쓸어보이면서 말하자 휴이즈가 벽에 손을 대어보고는 짜릿 하게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그 깊이를 도저히 알수 없는 강력한 마력에 질려버린 표정을 지 었다. 9서클을 한참 돌파한 위력이었다. 어쩌면 10서클급의 힘으로 완성되어 있는 유적일수 도 있었다. 어쩌면 신들이 남긴 유적인지도 모른다. 휴이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만약 그렇 다면 에테르 윙으로 쳐서 상처가 남지 않은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9. 트르르르륵! 트르르르르륵! 4족보행의 금속으로 뒤덮인, 아니 금속으로 이루어진 기계 가디언Guardian이 유압장치 비슷 한 대 세개를 이용해 120도 반경으로 움직이며 몸에서 튀어나온 세개의 총열해서 요란하게 총탄을 쏟아냈다. 찰그랑찰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탄피가 후두두둑 하고 탄피배에서 튀어나 와 바닥을 굴렀다. 요란한 불빛이 튀어오르자 비명이 울렸다. 기계가 이런 비명을 부러 지를 리는 없었고 당연히 인간들의 비명이었다. 다른 2족보행의 인간형 가디언이 갑자기 중력을 제어하며 부스터를 방출한다음 치솟아 올라 몸을 빙글 돌려 천장에 섰다. 그리고 허벅지 부근에서 치잉 하는 소리와 함께 손잡이만 있 는 쇠붙이가 털컥 튀어나왔고 금속질이지만 감압점까지 세밀하게 나누어져 있는 손이 그것 을 붙잡았다. 기계의 어색한 감도 없고 말 그대로 빠르고 부드러운, 인간중에서도 능숙한 검 사가 움직이는 듯한 움직임으로 천장을 통해 인간형 가디언 하나가 달려들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중력제어를 통해 가볍게 천장에 선 상황에서 몸을 띄울때는 아킬레스건 부근 에 장착된 부스터를 방출해 가속했다. 그 손에 쥐어져 있는 빔 소드Beam Sword(粒子結集劍)에서 부웅 하고 빛이 뻗어나와 채찍 처럼 휘듯 탄력있게 빛의 궤적을 그렸다. 저건 초소형 마력 제너레이터를 단 마력검인지라 순수한 마력에 약간의 입자결집검과 비슷한 스타일의 기계장치를 더하자 기존의 빔 소드보 다 위력이 4배는 더했다. 후작 일행들이 지닌 빔 소드보다 그 파괴력 하나만 4배가 더 강한 것이다. 즈윙 하고 휘둘러진 검이 전자광과 함께 멋지게 한 검사의 몸을 절단했다. 보통은 쇄골에서 옆구리까지 사선으로 긋지만 이 경우 옆구리에서 쇄골까지 사선으로 그어 올라갔다. 치잉 하는 소리와 함께 썰려나간 검사의 상체가 널브러지고 꿈틀거리는 장기와 잘려나간 폐와 심장이 피를 벌컥벌컥 토해냈다. 잔인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놈 은 부스터를 통해 몸을 회전시키면서 요란하게 풀 모션으로 검을 세번 더 그으며 바닥에 사 뿐히 착지했다. 도저히 쇳덩이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 이렇게 강하다니! 전의 유적에선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후작은 절규하며 검을 휘둘러 은빛 검기를 방출했다. 신월형으로 뻗어나간 은빛 검기는 간 단하게 빔 소드에 의해 차단되었다.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검기보다 더 강력한 빛인 것이다. 빔 소드를 들고 있는 5여기의 2족행 가디언들이 갑자기 그 빔 소드의 파라메터를 조정했다. 순간 츠으으 하고 주변의 마나가 검에 빨려들어갔고 광전의 검은 두배 이상 길어지고 두배 이상 두터워졌다. 그리고 고형화 된게 아니라 반형질화되어 흔들렸다. 굳이 용어를 쓰자면 에너지 블레이드 인코퍼럴 모드Energy Blade Incorporeal Mode랄까? 츠윙 츠윙 하는 공기 가르는 소리와 전광의 공명으로 인해 진동하는 둔중한 소리가 울리면 서 원래는 조용하지만 매우 밝은 이곳 공간을 뒤흔들었다. 검이 멋지게 휘둘러지자 파아아 아 하는 소리와 함께 검기劍氣중에서도 극상승인 검파劍波가 날아드는 것처럼 변형된 마력 검의 파도가 거푸 날치는게 아닌가. 공기를 산란시키는 것만 봐도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충 분히 알수 있었다. 사람 하나쯤 우습게 분쇄시킬수 있는 위력이다. 후작은 이를 악물면서 검을 흔들면서 거칠게 뿌렸다. 다른 검사들도 질린 표정으로 검을 휘 둘렀다. 금빛과 은빛과 백색의 검기들이 근사한 빛을 뿌리면서 뻗어나가 검파들을 절단했지 만 주변의 마나를 이용하는 무기를 지닌 2족보행형 가디언들과 달리 검사들은 체내의 기력 을 쓰고 있었다. 그런고로 그들은 완전히 지치고 있는데 반해 전기력 에너지를 통해 마법적 인 회로에서 더 많은 힘을 얻고 있는 가디언들은 기계인지라 체력 소모도 없었다. 바이오 로봇을 쓰지 않는 이상 지칠리가 없지! 이쪽에서도 머스킷 건이나 핸드 캐논, 머신 건들을 갈겼지만 저쪽에서는 탄알 하나하나에 마법이 입혀졌다. 그래서 2급마법기로 수백회 난타하는 듯한 위력을 선보이는 것이다. 마법 사들이 포스 필드나 베일 실드 같은 것들을 쳐 보았지만 포스 필드가 한 10초 정도 버텼을 뿐 10여기나 되는 4족보행, 혹은 6족보행형의 가디언들이 쏟아내는 탄환들에 깨어져 나갔 다. 마법사들도 숫자가 조금 줄어 있었는데 다행히 모두는 패닉상태에 빠지진 않았다. 노움 과 연금술사들도 무기를 꺼내 도움을 주긴 했으나 이제 이들은 4기 정도의 가디언들을 파괴하 는데 성공했을 뿐이었다. "슬라이스Slice!"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절단주문絶斷呪文 슬라이스 스펠이 펼쳐져 은선을 예리하게 번뜩였고 입구가 그다지 크질 않아서 화염폭발 주문을 쓰면 산소가 다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펼쳐진 전위 변형 주문 라이 트닝 볼트가 뻗어 나갔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2족보행형 가디언들은 왼팔을 들었다. 왼팔에 서 작은 판이 치잉 하고 올라와 마나를 급속히 빨아들여 순간적으로 절연장絶連場이 펼쳐졌 다. 라이트닝 볼트 몇가닥들은 전부 절연장에 의해 무력화되었고 4족보행형 가디언들은 슬 라이스 주문을 향해 마나 동결의 효과가 있는 빛을 방사했다. 4족보행형 가디언들은 비홀더Beholder 같은 류의 몬스터와 비슷한 힘을 내장하고 있는 듯 빛이 뿌려지자 모든걸 잘라버릴듯 날아들던 슬라이스 주문이 쉽게 깨어져버리는게 아닌가? 이놈들은 자체 경도만으로도 어마어마 했기 때문에 로켓 런처Rocket Launcher 같은 걸 날 리거나 바인의 물리적인 절단력까지 발하면서 그 폭발력을 그대로 부여할수 있는 블래스팅 팡 류의 무기를 쓰지 않는 이상 파괴할 도리가 없었다. 아니면 저놈들이 검기를 날릴때면 펼치는 전자기광막電磁氣光幕을 뚫을수 있다면 말이다. 그때 일행중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을 쓸수 있는 6서클의 마스터 한명이 마침내 주문을 완성 했다. 이마에 핏대를 띄운채 그는 주문을 펼쳤다. 지금까지 5서클 마스터였던 알프레드나 몇 몇 마법사들이 모두를 보호하느라 진땀을 뺄때 그는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6서클의 궁극주 문급 주문을 준비한 것이다. "플레임 블래스팅Flame Blasting ― 백 드래프트Back Draft!" 순간 백황색의 불꽃이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산소 소모 같은건 아랑곳하질 않고 사 용한 것이다. 6서클 주문에서도 가뜩이나 강한 주문인데 그것을 폭발 응축형으로 전환한 것 이다. 방출시키면 작은 마을 하나는 전소시킬수 있는 강력한 주문이었다. 매끄럽고 또 기능 적이고 아름다운 외형을 하고 있는 가디언들은 마력파동을 촉매를 이용해 감지하고 그것을 방어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지 목소리를 흘렸다. 놀랍게도 전부 다 디지탈의 기계음이 아니라 아날로그의 음이었다. 그것도 낯긴 했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들이었다. 전부 다 다르다 는게 놀라울 정도다. 「6서클 마스터의 화염폭발주문 특급. 1급 방어체계 발동.」 「6서클 마스터의 화염폭발주문 특급. 1급 방어체계 발동.」 요란하게 목소리가 겹치면서 동시에 그들은 대량의 마나를 몸 안에 내장된듯 한 마법회로로 끌어들였다. 그것을 클래스식으로 주변에 방출하여 운용한 다음 그들은 속의 마법을 부여한 마나 메탈을 발동시켰다. 목소리가 하나로 겹쳐지면서 주문이 발동되었다. 「S. P. F(空間固着結界) 발동發動!」 공간에 마법적인 필드를 고착시키고 고정시켜서 모든 마법, 물리적인 파괴공격을 튕겨내버 리는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A. T 필드에 빗댈수 있을 것이다. 7서클급 마력을 운용해서 만든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에 준하는 강력한 결계가 형성된 것이다. 고작 6서클 궁극 주문 이 맥을 출수 있을리 없었다. 불꽃은 충실하게 한곳으로 몰려들며 필드가 쳐진 주변의 공기 를 모조리 연소시킨다음 순간 퍼져나갔다. 그러자 요란하게 터져나오는 굉음! 백 드래프트 현상을 이용한 파괴주문인 것이다. 그러나 공간고착결계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으니…… 마법사들은 이곳의 조명에 의해 빛을 발하고 있는 장갑의 가디언들을 보며 절망했다. 검사들 역시 절망해버렸다. 후작은 이를 갈 며서 외쳤다. "대체 이번 유적은 왜 이렇게!" 후작은 거칠게 공간고착결계가 열린 즉시 몸을 가속시켜 달려들어갔다. 총탄이 비오듯 쏟아 졌지만 우습게도 그 강력한 총탄은 바닥엔 흠집도 내지 못한채 튀겼다. 그러나 후작은 이미 몸을 굴리면서 안쪽으로 파고들어가 4족보행형 가디언의 몸 위로 검을 깊게 찔러넣었다. 검 은 피잉 하는 소리와 함께 고작 손가락 한마디 정도 깊이로 파고들었지만 후작은 검을 쳐 올리며 검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세번 정확하게 그어버렸다. 그러자 드디어 기기긱 하는 소리와 함께 조각난 가디언 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2족보행형은 다섯기중 한기도 파괴되지 않았지만 4족보행형은 5기 파괴되었다. 그러나 여전 히 9대가 남아있었다. 6족보행형 2기는 뒤쪽에 물러서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공격력만을 따지면 6족보행형이 제일 강할것 같았다. 더 안정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후작은 검막을 그렸지만 검막위로 쏟아진 총탄에 의해 피투성이가 된채 뒤로 튕겨져 나갔다. 왼팔 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지만 돌아가기만 한다면 재생할수 있을 것이다. 즉시 몸을 튕겨서 왼 팔과 몸 몇군데만 총탄에 관통되었을 뿐이지만 그것 만으로도 후작은 죽어가고 있었다. 검사들은 빔 소드를 휘두르곤 했지만 5기의 2족 보행형 가디언들이 휘두르는 빔 소드에 파 칵 하는 소리와 함께 빔 소드가 깨어져버렸다. 빔 소드를 든 모든 검사들이 맥없이 죽어버 렸고 오히려 우습지만 검기를 쓰는 검사들만이 남아 있었다. 기사들도 몇몇 있긴 했지만 말 이다. 금빛 검기의 파도들이 퍼져나가고 신월의 검기들이 공기를 절단했지만 가디언들이 겹 쳐서 치는 전자기광막에는 덧없이 튕겨져버렸다. 6서클 마법사는 다시 주문을 외우면서 뭔 가를 준비하고 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왠지 오래걸렸다. "아이스 스톰Ice Storm!" 알프레드는 아이스 스톰을 시전해서 공기중의 먼지를 이용해 어마어마한 냉풍을 뿜어냈지만 저 망할 쇳덩이들은 몸 위로 마나의 장벽을 쳐서 마법적인 눈보라를 비껴냈다. 정말 효율적 이고 기능적이게 제작된 살인기계들이었다. 이것들이 바깥으로 나간다면 얼마나 엄청난 피 해를 입을까? 아마 위오리나쯤 멸망시키는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벌써 이들은 고작 두번째 층까지 내려오면서 100여기에 달하는 가디언들을 파괴했던 것이다. 한층 내려오면서 가디언 들을 다 부수고 내려온게 아니라 아마 위엔 더 있을 것이다. 그나마 위층에서는 성능이 저번에 거쳐온 유적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고작 한층 내려왔 다고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기계들이 덤벼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점점 함정도 이상하게 변하 고 있었다. 갑자기 적외선을 감지하고 벽에서 개틀링 건이 튀어나와 총탄을 드르르륵 갈겨 버리기도 하고 벽에서 전기를 잔뜩 머금은 금속 섬유 가닥들이 뻗어나와 후려치기도 하고 바닥에서 전위가 변형되어 사람을 태워버리고 하고…… 점점 잔인하고 강력해지는 함정에 벌써 일행은 반 이하로 줄어버렸다. 총탄을 쓰던 이들은 전부 다 죽어버렸기 때문에 마법사들과 검사들, 그나마 살아남은 노움 의 마이스터 두명과 연금술사들이 그들을 회복시키고 무기를 바꾸어 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서 그들은 뼈를 묻게 될것 같았다. 아니, 금속이니 묻을 수는 없나? 뭐 시체를 수거해가 서 태워버리겠지만. 바닥엔 탄피가 가득해서 발걸음 하나만 잘못 딛어도 쓰러질 것이다. 그 래서 한기의 2족보행형 가디언과 검을 부딪히던 검사 하나가 밀렸다가 탄피를 밟고 나동그 라졌고 그 즉시 빔 소드에 의해 목이 잘렸다. 그리 빠르게 베지는 않아서 고열에 의해 단백 질이 변성되어 피가 많이 흐르지는 않았다. "파이널 스트라이크Final Strike!" 6서클 마법사는 드디어 목숨을 건 것이다. 메모라이즈 한 주문의 오브젝트를 정하느라 그렇 게 시간이 걸린 것이다. 뭐 파이널 스트라이크 주문은 1서클에도 있는 것인데 모든 주문의 오브젝트를 지정하고 방사하는 주문이다. 마법사가 정신력을 모조리 다 소모하고 죽음을 맞 게 되긴 하지만 모든 주문을 다 방출할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그는 6서클 마법 4개. 5서클 마법 5개. 4서클 마법 12개를 방출했다. 6서클 마스터인지라 3서클 주문은 시동어만으로 발 동할수 있었기 때문에 3서클 이하는 메모라이즈 하지 않은 것이다. 어마어마한 전격, 불꽃, 냉기, 물리적인 파괴력, 역압 등의 힘이 몰아치며 모든 기계를 공격 해버렸다. 몸에 마나를 흡수하고 나서 방출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기계들도 거의 10기 정도가 동파되고 녹고 부서지고 전기계에 마비되고 물리적인 힘에 절단, 부서지고 역압에 짓눌리며 그 기능을 차례차례 잃어갔다. D&D에서는 정석으로 등장하는 주문이었지만 살아 남은 마법사들로써는 그 희생정신에 감탄해야 했고 기사나 검사들은 자신의 무능력함에 화 를 내야 했다. 어쨌든 덕분에 10기 가량의 가디언들이 파괴되고 나머지는 다 주저앉아 버려서 검사들은 그 즉시 검기를 방출해서 쓰러진 가디언들을 모조리 행동불능으로 만들었다. 1서클 주문 잔뜩 메모라이즈 하고 파이널 스트라이크 써봐야 1서클 마스터라면 죽지도 않지만 6서클 마스터 쯤 된 상황에서 파이널 스트라이크를 갈겼으니 죽지 않으려고 해봐야 죽지 않을수 없었다. 리치Lich라면 상관 없지만 말이다. 라이프 포스 베슬Life Force Vessel에 생명력을 저장해 놨으니 생명력 빠져나갈 일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기억하시라. 6족보행형 가디언들은 남은 것이다. 그놈들은 갑자기 꽤 큰 신체에서 자 그마한 창을 열더니 거의 100여개체에 달하는 인터셉터Interceptor 비슷한 것들을 대량으 로 방출하는게 아닌가? 인터셉터면 요격기다. 손바닥 반만한 인터셉터들이었지만 그것들은 어 처구니 없게도 플라즈마 레이저Plasma Laser를 가속해서 난사했다. 레이저 건 쯤은 다른 가디언들도 다 내장하고 있지만 레이저를 쏘는 것은 에너지를 소모한 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력으로 이용할 에너지까지 쓰면 움직임이 둔해져서 쓰질 않는게 보 통이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성질하게 손가락 세마디 길이의 레이저를 네번 쏘고 다시 돌아 가고 다시 에너지를 보충하고 가속해서 쏘는게 아닌가? 그 한발 한발이 푸른색으로 번뜩이며 길게 뻗어나가자 정말로 근사한 광경이었다. 레이저가 가늘고 작긴 하지만 어지럽게 난사하는데 한발이라도 맞으면 치명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파이널 스트라이크중에서 회복주문 두개가 흩어져 모두를 조금씩 회복시키기까지 했지만 그 래도 레이저를 무슨수로 피할 것인가? 자그마한 광전光箭들이 요란하게 공중을 수놓자 수많은 기사들이 그것에 몸을 관통당하며 심장이나 폐, 뇌를 당해 즉사하거나 중상을 입으며 쓰러졌다. 마법사들은 전광의 막을 치거 나 전위를 형성해 레이저들을 도인道引해서 대부분 다 흐트러뜨렸지만 인터셉터를 다 파괴 하지 않는 한 죽을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은 검사들이 검기를 발출하기 시작했다. 손바닥 반만한 인터셉터가 전자기광막 같 은 기능을 내재할수 있을리 없었고 놈들은 곧 부서지고 산산조각나면서 쓰러져갔다. 마법사 들이 열심히 전위를 형성시켰지만 주문은 계속 소모되어만 갔다. 다만 5서클을 마스터한 자 들 세명이 열심히 2서클급 전위변형 주문으로 플라즈마 레이저를 흐트러뜨릴 뿐. 정신력이 꽤 많이 소모되지만 저장한 주문이 소모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때 폐쇄된 저쪽의 문이 치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고, 곧 철컹거리면서 가디언 10여기가 걸어나왔다. 모두의 얼굴이 절망의 빛깔로 물들었다. 이제 죽을수밖에 없는 것인가? 후작은 간신히 깨어 난 상황에서도 이 비참한 광경을 보곤 이를 악물었다. 왼팔이 끊겨 나가고 몸이 너덜너덜했 지만 그는 자신의 피를 통해 힘을 회복해 주인을 살리고자 하는 뜻을 전달하고 있는, 오른 손에 여전히 꽉 쥐어져 있는 뱀파이어릭 소드를 보곤 큭 하고 웃었다. 광기가 도지기 시작 한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광기가 불꽃처럼 튀는건 당연한 법! 극한상황에 몰리면 몰릴수록 이들은 삶에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 154. 제 육권第 六卷 서序 "……빛[光]은 정신을 꿰뚫는 검이 되고," "……어둠[暗]은 마음을 가르는 칼이 되며," "……공허[無]는 영혼을 파破하는 외침이 되어."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 전부 다 깨끗하고 맑은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들은 전부 이 거다 하고 집어낼수 있는 개성이 존재했다. 지금만큼은 낮게 가라앉아 진지하게 울려 퍼지 고 있었지만 하나는 옥타브가 높았고 하나는 낮았고 하나는 중간쯤이었다. 그리고 옥타브가 높은 목소리는 조금의 굴곡이 있었으며 낮은 옥타브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그리고 마지 막의 적당한 옥타브의 목소리는 생동감이 깃들어 있었다. 이 세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어마어마한 마나Mana와 기氣. 그리고 에테르Ether와 영기靈氣 가 몰려들면서 비록 불완전 하지만 아스트랄Astral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시 주문과 같은…… 언령이 깃든 무언가를 외우기 시작했다. 무언지는 모르지만 공격적인 성향의 주문 과는 달리 이것들은 거대한 '힘'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빛의 인은 에테르와 기를. 어둠의 인은 영기와 마나를. 공허의 인장은 모든 힘을 아스트랄로 통합하고 있었다. 청백색으로 넘실거리는 파도가 아득한 정적만이 존재하는 '진眞 차원계도 次元界道'에 던져졌다. '음파'가 번질만한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지만 의지와 염이 담긴 언령의 힘은 마치 물에 잉크가 올올이 풀려나가는 것처럼 변질되었어도 목소리를 울리게 할 수 있었다. 차원계도에 조차 퍼져있는 '지탱하는 힘'들이 몰려들었다. 슬슬 아스트랄은 반 아스트랄. 역 의 아스트랄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반대로 빛은 영기와 마나를. 어둠은 에테르와 기를 불러들였고 공허의 인장은 그것을 반 아스트랄로 통합했다. 아스트랄과 반 아스트랄을 융합 해서 '진 아스트랄'을 끌어낼 권능이 없는 이들은 그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다시 주 문을 외워나갔다. "빛의 검날은 힘을 분화하는 매듭을 끊고!" "어둠의 칼날은 힘을 묶는 기둥을 가른다!" "무의 외침은 모든 사물을 그 아래 놓는 시공時空을 동결凍結할 지니!" 그들의 외침에 따라 정과 반의 아스트랄은 소용돌이치며 나선을 그렸고 그것은 어마어마한 파동이 되어 '봉인계'를 둘러싸고 있는 차원계도와 봉인계를 유지하는 정보시스템이 담긴 코 어Core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활성화라기 보다는 오히려 봉인계의 시공을 묶 어놓는 것이었다. 9서클 주문중 타임 스톱Time Stop이라 하여 시간을 미분해 시전자를 아예 시간축에서 잠깐 떨어트려 놓는것과는 달리 이것은 아예 시간좌표축을 동결시켜버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200 억년 정도를 주기로 연동한다 해도 하나의 세계를 동결하는 일이었다. 봉인계를, 그것도 우 주 여러개가 고스란히 담긴 차원 두개를 동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이들이라고 해도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야 했다. 봉인계의 많은 '고리'들 중 두개만을 동결해 놓는 것이었지만 태고의 아스트랄이 고여 있는 트루 아스트랄 게이트를 유지하고 있는 고리중 두개가 사라진 것 만으로도 게이트는 흔들리 기 시작했다. 덕분에 봉인계에서 '마魔'의 자리에 선 자들은 판데모니엄의 공간게이트에 아 스트랄 게이트를 연결했다. 지금만큼은 봉인계에서 영성을 지닌 모든 존재들이 힘을 사용하 코어를 동결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드디어 봉인계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그래서 동결을 해야만 했다. 자그마치 천신급의 존 재 셋이 자신의 힘을 봉인 했으되 그 파장을 제어하지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봉인계가 흔 들려서 지금까지 봉인계 관할의 신급 존재들은 피를 말리는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던 것이 다. 뭐 피가 있을리도 없지만. 봉인계의 코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진 아스트랄 플레인으로 통하는 게이트인데 그것을 유 지하게 위해 판데모니엄의 '궁'으로 연결한 것이다. 이로써 판데모니엄의 존재들만 더 죽어 나게 될 것이었다. 4할 정도의 부담을 신계의 존재들이 감당한다고는 하지만…… 덕분에 봉 인계는 축적해둔 힘까지 끄집어내서 쓰고 있었다. 봉인계와 연결된 대차원들에서도 조금씩 차원 코드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힘'을 흡수하고 있 었지만 그건 지극히 미미한 양이었다. 아무래도 봉인계를 유지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동결하게 되었지만. 동결하는 데만도 어마어마한 힘이 소모된다. 뭐 봉인계의 유지를 위해 힘을 써대는 일은 더 이상 필요 없으니 사실상의 업무는 반 이하로 줄어들지만 신마를 가리지 않고 이제는 아스트랄 게이트에 힘을 부어넣어야 하는 것이다. 기, 마나, 영기, 에테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부어 넣어야했다. 아슈라스의 직속 천신 전대天神戰隊(?!)들도 지금은 여유가 없었다. 힘쓸 일은 없지만 지속적으로 신경을 써 주어 야 했기 때문에 천신급이나 되는 그들이라도 함부로 할수 없었다. 아슈라스는 상관 없었지만 샤이네이드는 지금 족쇄를 찬것이나 다름 없었다. 두 존재의 무한성이 겹치고 아슈라스보다는 불완전한 샤이네이드는 세계에 환원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아슈라스마저도 족쇄를 차게 된 것이다. 적어도 한 존재는 태고의 아스트랄 에 파묻혀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아슈라스가 활동할때는 샤이네이드는 쥐죽은듯 지내야 했 고 그것은 아슈라스도 마찬가지였다. 뜻하지 않게 부자유스러워 진 셈이었다. 별로 상관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슈라스도 태고의 아스트랄에 파묻혀 있는 동시에 힘을 이용해서 자신의 아바타인 리오디 안에게 의지를 전달하던지 아니면 천신급의 수족들을 부리면 되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힘을 조금 떼어내서(그 조금도 어마어마한 것이지만) 형상화한다음 염을 부여하고 정신을 접속해 서 분신을 만드는 방법이 있었다. 그건 샤이네이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염을 부여해서 정신 체를 접속,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한과 무한이 부딪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본체는 두고 바깥에서 그런 방식으로 동시에 행동하는 방법도 있었다. "끝났군." 봉인계의 두 '고리'의 시공이 동결되자 세 존재는 안심한듯 멈추어 섰다. 이 세 존재는 언령 과 염을 쓰는 방식으로 힘을 건네오는 영성의 존재들과 자신들의 힘을 보탠것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지쳐버린 것이다. 혜신급. 천신 바로 한단계 아래의 존재들임에도 지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수는건 쉽지만 봉인은 더 힘들었다. 아스트랄 게이트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자그마치 10만배는 더 많았다. 그냥 하나의 차원을 봉인하는 거였다면 혜신급 하나만 나서서 언령 몇마디만 걸어주면 그걸로 끝이었지만. 대충 시간으로 따지면 10분도 안걸릴 일이 1시간여나 걸린 것이다. 그것도 전 영성의 존재들의 힘을 끌어오고 혜신급의 세 존재들이 컨트롤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회색으로 온통 도배되어 버린 듯한 차원계도의 코어는 은은한 은청색의 빛과 은적색의 빛에 휘감겨 있었다. 끈의 형태가 되어 둘둘 말려있는 듯 했지만 꽤 환상적이었다. 인간들이 본다 면 어지러워서 쓰러질 정도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어지러울리가 없었다. 인간 이 아니니까. 사실 신령지체神靈之體의 몸을 지녀서 육안도 있었지만 그들의 육안은 인프러 비전 Lost Code 타입이었기 때문에 성능이 아주 좋았다. 적외선 외에 모든 광파장의 색과 파장 정도를 다 알아 볼수 있었다. 약간의 염으로도 소립 자, 혹은 쿼크까지 볼수 있고 투시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빛의 입자를 하나하나 각도면에 서 관찰할수 있었고 에너지 결정구조까지 볼수 있는 육안이었으니 어마어마하다고 밖에는 할말이 없다. 인간이 이런걸 지니면 미쳐버리겠지만 그들은 정신도 굳건했다. 혜신급의 위치 는 딱지치기로 얻은게 아니니까. 신령지체…… 그러니까 이미 이건 육신이 아니다. 육신이 사라지고 영혼이 형상화되는 경지 인 선경仙境과는 달리 이건 영성 자체가 거대한 힘을 끌어들여 육신을 빚어내는 경지인 것 이다. 하급 신만 하더라도 이미 가벼운 염을 이용하면 수천톤에 달하는 물리력을 사용할수 도 있었고 차원 코드에 정신을 접속하고 가벼운 염만 끌어내도 11서클 궁극 마법을 난사할 수 있었다. 뭐 그건 일종의 기술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기능 하나만으로는 절대에 필적 하는 위력을 지닌 몸이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혜신경 급의 세 존재 중 빛의 신 미트라Mithra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는 원래 페르시아의 주신이었다. 기원전 600년 무렵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교가 기독교 보다 천국과 지옥을 먼저 만들어낸 일종의 대립적 유일신 신앙이지만 미트라는 태양신으로 써 페르시아에서는 주신主神으로 섬겨졌다. 지금은 잊혀진 허신虛神인 셈이다. 비밀리에 신 봉하는 자들의 후예는 있을거라고 생각된다. 조로아스터 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는 지금까 지의 다신교 신앙을 부정하고 빛과 진리와 선의 신 '아후라 마즈다'와 어둠과 거짓과 악의 신 '아리만'이 있다고 주장했고 악의 신 아리만을 몰아내어 아후라 마즈다를 믿으며 선해져 야 한다고 말했다. 아후라 마즈다와 아리만 역시 존재하긴 하지만 두 존재는 그야말로 죽마고우! 동시에 태어 나게 된 두 존재였기에 죽마고우가 안될수가 없었다. 선과 악은 있지도 않은 것이었기 때문 에 그들로써는 싸울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뭐 지금으로써는 일단 태어난 이상 신앙이 없어 져버려도 소멸할 수는 없었다. 원래 그런 식으로 태어났던 신들은 사라지게 되겠지만 아스 트랄 게이트의 존재는 그런 신들마저도 '존재'하게 만들었다. 아스트랄 게이트 이전에 있어왔던 절대차원구의 혼연魂淵에서 토해져 나왔던 거대한 영체 덩어리들이 의지를 갖고 자아를 가져 신이 되었던데 반해 절대차원구 후기에 태어난 신들은 대부분 봉인계의 존재였다. 아스트랄 게이트의 파동에 의해 실체화된 이상 오히려 다른 신 들보다 더 강한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대립이야 당연히 없었다. 신들이 뭐가 아쉽다고 인 간들이 종교때문에 치고 박는 것처럼 치고 박겠는가? 차라리 그냥 힘을 써서 쨍쨍거리며 싸 워대는 종교인들 다 죽여버리겠다! 조로아스터 교에서 제일 처음 주장한 아후라 마즈다의 천국과 아리만의 지옥…… 아리만을 신봉하게 되어 악에 물들면 아후라 마즈다 신이 최후에 승리하여 아리만의 신도들을 지옥불 에 던진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러면 절대선絶對善이 아니잖아? 참 우스운 것은 그런 것이 믿어졌다는 것이다. 선과 악이 있다면 악은 선의 반대급부가 아니다. 선 역시 악의 반대급부 가 아니다. 선과 악이 있다면 그것들은 현재로써 실존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서로 대립하는 것도 아니어야 하고……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 신의 존재는 그야말로 '고명하신 사기꾼'이 되기 때문이다. 뭐 신들이야 맨 처음 차원계도가 정화되었을때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안정시키느라 절대적인 후 광을 뿜어내면서 잘빠진 미남미녀들 모습으로 돌아다닌것 뿐이지만…… 뭐 덕분에 종교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후기에 생겨난 종교로 인하여 생겨나면 바로 신이 태어나는 곳이 봉 인계다. 그러면 업무 줄었다고 좋아할수도 있지만 일 처리가 더 필요하다. 신앙으로 인해 생겨난 엄 청난 에너지 파동이 급증하고 파장의 질까지 바뀌기 때문에 그야말로 적응에 곤욕을 치르게 되는 것이다. 파장과 파장이 상충하면서 일어나는 어마어마한 공간 펄스는 신들에게 있어서 도 곤욕이었다. 그야말로 봉인계를 향해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수백발쯤 퍼부어 버리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봉인계만 하더라도 수많은 행성이 있는데 신들의 숫자는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 들은 모든 행성의 종교를 통일하는데 주력했다. 그중 예의 '아몬드형 눈알에 눈자위 없고, 귀가 길거나 없거나, 팔다리 길고 몸통이 얇고, 입이 흉측한게 기본'인 외계인 들은 '그런 존 재가 있다고 믿어지는' 경우로 인해 생겨난 영체 덩어리인데 신도 아니었다. 간혹 외계인이 신이다 라고 믿는 멍청이들도 있어서 권능이 좀 생겨나긴 했지만 신이라고 하기엔 정말 처 절하게 약했고 인간이라고 보기엔 너무 강했다. 말하자면 UFO는 과학기계가 아니라 그들의 힘으로 변질된 금속의 영체덩어리인 것이다. 금 속에 에고를 부여하고 의지를 통합후 운용하는 물건이었다. 이런식으로 대충 설명하는건 문 제가 있지만 UFO 등장할 일이 없으니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다. 인간들 중에서 선경에 오른 존재가 손가락만 까딱 해도 싸그리 다 멸망당할 약해빠진 것들이었지만 인간쯤 멸절시 키긴 쉬울 정도로 강했다. 그들의 영성에 의해 물든 UFO의 구성물질은 내열, 내한에 경도硬度는 뛰어나지 않으나 강 도剛度 만큼은 굉장히 강했다. 결집력도 강했고 재생하는 성질도 있었다. 형상기억합금으로 써의 성질도 있었지만 그 형태가 파괴되면 완전히 복구될 정도는 아니었다. 주변의 에너지 를 끌어들여서 에너지 포로 가속시켜서 쏠 수도 있었고 180도 방향전환에 광속으로 가속하 는 것도 가능했다. 이미 육신에서 대부분 벗어나버린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광속으로 난다고 중력에 짜부라지진 않았다. 중력, 물리, 관성제어가 가능한 비행매체가 예의 UFO 인 것이 다. 인간들에겐 비확인 물질이지만 신들에겐 그것만큼 쓸모없는 것도 없었다. "이제 우리도 판데모니엄으로 가서 힘을 부어 넣어야 겠군요." 미트라의 말에 마신이라고 알려진 존재중 하나인 환야幻夜는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 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신이었다. 그도 혜신급의 존재였지만 미트라도 죽을상이었기 때문에 이정도는…… 힘의 제어와 힘의 흐름을 유지하는데 가장 힘을 많이 썼던…… 인간 출신의 신인 유천柳天은 그야말로 빌빌거리고 있었다. 영체에 타격이 올 정도였던 것이다. 미트라와 환야는 힘을 조금씩 운용해서 유천의 몸에 언령을 걸었다. 그러나 유천은 같은 혜신경의 존재라 할지라도 최강의 권능을 자랑하는 여호와나 그보다 더 강력한 천제天帝 한인에 그리 떨어지지 않는 최강자였다. 그래서 미트라와 환야의 힘 만으 로는 몸이 잘 회복되질 않았다. 인간들의 시간으로 30여분을 버틴 후에야 유천은 간신히 제 정신을 차렸다. 무의 인장으로 에너지의 흐름을 제어하고 그것으로 동결을 하는 주체가 되며 어마어마한 에 너지량의 아스트랄 게이트까지 전송시켰는데 혜신경이라도 소멸하지 않은게 신기했다. 이것 이 그의 권능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트라와 환야는 내심 경악하고 있었다. 신도도 없 었는데 이정도까지 깨달음만으로 강해지다니. 봉인계에서 인간 출신의 신이라는 말은 그야 말로 최강의 영체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우연이라는 것도 존재했겠지만 그정도까지 해냈다 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었다. 봉인계 인간출신 혜신경이라 하면 가히 다른 세계의 천신급이라고 인정되는 존재인 것이다. 유천은 제정신을 차린 후 서서히 다시 아스트랄 플레인의 파동으로 인해 공백에서 메워져 가고 있는 주변의 힘들을 조금씩 끌어들여 몸을 회복시켜 나갔다. 그로써는 감히 다룰수 없 는 아스트랄과 반 아스트랄을 형성시켜버렸기 때문에 타격이 꽤 컸다. 아무리 빛의 인장, 어 둠의 인장, 무의 인장으로 인한 에너지 결합을 사용했다고 해도 부담은 몇배나 큰 것이다. 차라리 그냥 언령 갈기는게 더 나을지도…… "아무리 그래도 봉인계는 다른 차원보다 규격(?)이 너무 크잖아. 이건 반칙이야!" 투덜거리는 유천의 심정에 미트라나 환야도 같은 마음이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굉장히 고생한 셋은 힘이 회복되기를 기다렸고 인간들로써는 이런 빛도 없고 어둠도 없고 공허조차도 없는 텅 빈 공간좌표 내에서는 지루하다 못해 미쳐버릴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공기의 흐름도 없다. 매질 자체가 없으니 말이다. 뭐 여기라면 인간은 삼일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하루면 미쳐버릴 것이다. 그들은 힘이 어느정도 회복되었다 싶자 판데모니엄으로 영체를 전이시켰다. 텔레포트가 먹 히지 않는 공간이라 영성을 이용한 전이를 시도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봉인계를 동결한 즉시 힘을 회복해 가는 신들과 천사와 마족들, 모든 영성있는 존재들이 판데모니엄 으로 힘을 보냈다. 신급의 존재들일 경우는 직접 움직였고 천사와 마족들의 경우는 차원계 도에서 에너지 코드를 연결해서 힘을 쏟아 부었다. 이제 인간들에게는 처절하게 보일 사투가 시작된 것이다. 신들이나 이런 존재들로써는 끔찍 한 업무보다는 단순무식하게 힘을 쓰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제 비뽑기(!)에서 패배한 불행한 존재들은 지금도 피눈물을 쏟으며 업무를 진행시켜 나가고 있 었다. 신들이나 인간들이나 업무환경 최악의 회사(?)에 잡혀 들어가서 일을 하면 나타내는 반응이 별로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리 신들이라도 항이 수만개에 달하는 방정식이나 미분적분을 넘어서 더 고차원적인 수 식들을 수백개를 동시에 작업하는 것은 있지도 않은 뇌가 타들어가는 기분을 유발하는 것이 다. 다행히 지치지는 않지만 힘을 써야 할 경우는 아무리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보이지만 밑바닥이 있는 그들로써도 힘의 고갈을 느껴야 했다. 그들의 존재가 사라진 이 '무'조차 없는 텅 비어버린 좌표공간의 코어는 시각에는 보이지 않 는 빛으로 가득메워지기 시작했다. 은청색과 은적색의 파동이 얽히면서 특화特化되었기 때 문에 장애물도 없고 먼지도 없어 산란될 우려도 없었기 때문에 가장 순수한 힘이면서 입자 이며 파동이라 혼돈에 가까운 빛이 공간을 메우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아스트랄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빛의 방출로 인해 힘을 조금씩 소모한다 하더라도 겁劫이라는 시간이 흘 러도 고갈되기에는 지나치게 많았다. --- 155. 엘더 휴먼레이스The Elder HumanRace. 바인은 진야월영과 블래스팅 팡으로 이도류를 펼치고 있었다. 진야월영은 그 자체로써 강력 한 마법기다. 방출도 불가능하고 마법적인 타격은 크지 않지만 9서클급 봉인이 되어 있는 검인지라 마법에 치명적인 반력을 지니고 있는 검이 된 것이다. 강도와 예리함 역시 어마어 마하게 강력해진 이상 블래스팅 팡보다 강도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바인은 칼날에 붕괴의 힘을 스며나오게 만들어 물질을 소멸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지금까지 붕괴의 힘을 단지 세포 구조나 분자 구조 붕괴에만 이용해 왔지만 이젠 물질 붕괴 까지 시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검이 스치고 지나갈때마다 물질이 에너지화 하면서 요란한 폭발이 일어났다. 머리카락보다 더 얇은 칼날에서 뿜어지는 붕괴의 힘이라도 소멸한 물질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장난이 아니었다. 검이 스칠때마다 공간 고착 결계를 편 4족보행형 가디 언들은 맥을 추지 못하고 공간 고착 결계를 파괴당했다. 진야월영으로 마법적인 공간 고착 결계를 쳐서 흔들고 블래스팅 팡으로 벤다. 블래스팅 팡 에 붕괴의 힘을 살짝 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인은 진야월영을 휘둘러 가볍게 광 막을 후려 갈겼다. 공간 고착 결계가 파괴되자 가디언은 즉시 전자기광막을 열었지만 그것 도 마법에 인을 둔 것인지라 진야월영에는 맥을 추지 못했다. 붕괴의 힘을 거둔 블래스팅 팡의 페시온 핀을 한 앰플에 꽂고 6서클급 전격 마법을 반 물리화 하여 블래스팅 팡의 칼날 위로 길게 뻗으며 바이오 신경보다 더 효과적이고 높은 레벨 구조인 전자 신경계 중추부에 꽂아넣자 스파크가 파지지직 하고 튀며 한기의 가디언이 파괴되며 주저앉아 부숴졌다. 경도만 해도 장난이 아닌 놈들이었지만 바인은 그 칼날의 예리함과 어마어마한 완력으로 쉽 게 부수어버린 것이다. 물론 바인의 팔에 걸린 과부하는 상당했지만 재생력도 굉장한 그의 신체는 그런 과부하쯤은 쉽게 제거했다. 바인은 다시 쌍검을 교차하며 가디언들을 향해 검 을 뻗었다. 공간 고착 결계를 마법으로 파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8서클 주문이 필요했다. 아무리 한군데에 집약한다 하더라도 공간을 찢어발기는 주문은 7서클 후반부에서 9서클까지 산재해 있었기 때문에 그라도 캐스팅이 필요했던 것이다. 캐스팅 할 시간을 만드려 하면 얼 마든지 만들수 있었지만 가디언들의 공격력은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닌지라 바인이라 해도 함 부로 움직일수 없었다. "念雷 ― 波!" 렌시아는 한발한발이 2급 마법기의 직접타격에 맞먹는 위력의 총탄을 쏟아붓는 4족보행형 가디언들을 향해 염뢰를 파장의 형태로 뿜어냈다. 파도가 아니라 파장의 형태인 것이다. 파 장은 파장에 부딪혀도 서로 간섭하지 않지만 염뢰의 파장은 염까지 실려 있어서 총탄을 다 전자기 도인해서 유도한다음 그대로 전자기광막을 펼친 가디언들을 강타했다. 가디언들은 마법적인 힘이 아닌 염뢰에 의해 무력화되며 마비되었고 그때마다 헤인이 영검기를 손에서 길게 뻗어 몸통을 절단했다. 휴이즈는 굉장히 편하게 싸울수 있었는데 총탄을 쏟아 부으면 에테르 윙을 펼쳐서 다 튕겨 내버리는 것이다. 간혹 직접 공격을 걸거나 플라즈마 레이저를 이용할 경우는 중력제어, 물 리제어를 통해 공간을 일그러뜨려 에너지를 파해했다. 아라테온의 경우 자신의 특급 마법기 '수호의 팔찌'를 이용해서 포스 필드Force Field위에 베일 실드Vail Shield를 겹치는 방식 으로 공격을 다 튕겨냈기 때문에 그 역시 수월한 방어와 공격을 할수 있었다. 공간 고착 결계는 틀림없이 강력하다. 마법의 힘도 작용했지만 바인의 봉인이 잔뜩 걸린 진 야월영이 3차원적 공간의 것이라 공간결계를 파괴하지 못했지만 아라테온의 수호의 팔찌는 그 특수능력을 이용해서 그 결계를 파괴할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파괴는 아니지만. 방어 계 주문 인터피어리언스Interference 능력으로 파해해버릴수 있었던 것이다. 굳이 명칭을 달자면 방어계술식동조해防禦系術式同調解 능력이다. 괜히 이름이 '수호의 팔 찌'가 아니다. 차고 있는 자에게 열기와 냉기, 그 외에 전격 등에 저항력까지 부여해주는 특 급마법기인 것이다. 촉매만 있고 정신력만 받쳐주면 9서클급 방어주문도 쓸수 있는 강력한 마법무구였다. 그 외 헥사그램Hexagram을 이용한 마법도 쓸수 있다. 아라테온은 그런 팔찌 의 힘과 단검을 꺼내고 응축한 은빛의 검기를 길게 지르듯 베고 검기의 선을 뿜어내 절단해 대는 식으로 연계하며 벌써 10여기 이상을 파괴하고 있었다. 휴이즈는 강력한 에테르 윙을 휘둘러 전자기광막을 절개하고 그 안쪽에서 총탄을 퍼붓는 가 디언이나 빔 소드를 휘둘러오는 가디언들을 에테르 윙으로 저며버렸다. 쇠를 저민다는게 웃 기지만 슬라이스처럼 곱게 썰리는것을 보면 반박할수가 없었다. 휴이즈는 벌써 20여기 가량 을 파괴한 상태였다. 신들린듯 검격을 퍼붓고 마법을 전개해 가디언들을 말 그대로 박살내 버리던 바인은 잠시 검을 늘어뜨렸다. 휴이즈와 바인은 사이가 나쁘지만 의외로 호흡이 잘 맞는 렌시아와 헤인(사실 렌시아나 헤인이나 같이 수련했으니까. 그들만큼 서로의 능력을 잘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을 바라보며 여유를 부렸다. 바인의 검술과 휴이즈의 에테르 윙 을 뚫기엔 지하 1층의 가디언들은 너무 약했다. 지금 가디언들도 지하 2층의 가디언들과 별로 차이가 없을 정도로 강력하긴 하지만 말이다. 지하 1, 2층에 존재하는 가디언들만 바깥에 나가도 위오리나를 멸망시키는게 가능할 정도다. 물론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뜯어 고쳐야 가능하겠지만. 사실 이 유적에서는 가디언이 파괴되 어도 얼마든지 양산해낼수 있으니 공격형으로 바꾸면 정말 굉장할 것이다. 이곳의 가디언들 은 로켓 런처 같은건 달고 있지 않지만 달려면 얼마든지 달수도 있다. 이 유적의 발전 정도 를 보고도 전술핵같은게 없다는 말이 나올까? 갑자기 발악하듯 플라즈마 레이저를 갈겨대는 가디언들을 보면서 바인은 이것들이 미쳤나 하고 중얼거리다가 전자광막을 펼쳐서 전부 다 도인道引해서 튕겨내버렸다. 벽에 맞자 벽을 녹이면서 파고 들어가긴 했지만 벽의 손상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그는 파이어 볼 몇발 을 날려 화염폭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서 라이트닝 볼트를 몇발 더 날렸다. 이어서 아이스 스톰을 세번이나 동시에 시전해 그 구간을 겹쳐서 기온을 영하 100도에 가깝게 낮추어버렸 다. 생명체건 기계건 말소되어 버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바인은 그러고도 심드렁하게 진야월영을 검집에 밀어넣고 블래스팅 팡을 들어 휘둘렀다. 블 래스팅 팡이 바람을 가르자 블래스팅 팡의 검극에 전격이 모여들더니 전격의 두터운 채찍이 되어 전방을 후려 갈겼다. 순간 푸가가각 하는 소리와 함께 파편들이 튀었다. 모두는 바인을 질렸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바인의 손속에 질린 것이다. 검과 마법의 합일. 기의 힘을 쓰진 않았지만 이건 단지 때려 부수고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의 문제인 것이다. 같은 9서클 마스터라도 전투효율을 따지면 바인이 몇배나 나았다. "내가 저런 괴물과 싸웠단 말이지?" 헤인은 투덜거리면서 영검기를 뿌려 몇기 정도 남아 발악하고 있는 놈들을 치고 갈랐다. 2 족보행형에 공간결계를 쓸줄 알고 빔 소드도 강력했지만 헤인에게 상대가 되질 않았다. 영 력과 검기를 뒤섞어서 쓰고 가끔 왼손을 휘둘러서 염뢰나 염화를 날려보내는데…… 최선을 다하면 거의 5서클급 확장형 화염폭발 마법같은 파괴력을 자랑하기도 하는 것이다. 진야월 영을 극도로 활용하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 만월의 밤이면 더 강력해질 것이고. 영력과 기력 을 섞자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내는 것을 보면 이놈도 괴물이다. 바인은 2족 보행형의 가디언이 자신에게 달려들자 피식 웃었다. 그리고 블래스팅 팡을 살짝 늘어뜨리곤 몸을 한바퀴, 힘없이 빙글 돌리다가 검을 탄력있게 튕겼다. 치익 하고 공기 찢어 지는 소리와 함께 검이 채찍처럼 튕겨 뻗어나갔다. 칼날이 번뜩였지만 빔 소드와 부딪히자 부웅 하는 공명음과 함께 칼날이 튕겨졌다. 그러나 바인은 가볍게 발을 구르고 몸을 그대로 회전시키면서 2족 보행형 가디언의 뒤통수를 후려 갈겨버린 것이다. 힘의 4할 정도를 실었 을 뿐이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오거를 능가하는 완력에 각력을 지닌 그였기 때문에 2 족 보행형 가디언은 그대로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오토밸런스 시스템이 있다고 해도 2족 보행형은 특성상 아무래도 균형에 취약했다. 바인은 그 자리에서 섬전무린퇴閃電舞鱗退 섬광閃光을 펼쳤다. 문설트를 하면서 섬광처럼 바닥을 향해 찍기를 펼치는 것이다. 무려 32연타가 단 5초만에 펼쳐져 기계를 난타했다. 오 거가 풀모션으로 휘두른 몽둥이가 낼수 있는 타격력보다 100배는 강력한 내리 찍기. 아무리 튼튼해도 박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탄퇴도 아니고 자그마치 내려찍기인 것이다. 어쨌 든 파파파팟 하고 공기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2족 보행형 가디언은 볼품없이 뭉개지고 부숴 져서 파편이 되어버렸다. 바인은 느긋하게 몸을 빙글 돌려 착지하고는 블래스팅 팡을 갈무 리했다. 이미 이 구역에 남은 가디언은 없었다. 주변이 전부 금속이고 미스릴 아다만티움 투성이일지라도 그는 꿋꿋하게 주문을 이용해서 함정을 기막히게 찾아내곤 했다. 마법의 인으로 나타나는 주문은 마법기의 힘을 빌어 족족 디스펠로 파해했고 전기 와이어가 튀어나오는 등의 함정 같은 것은 아라테온이 수호의 팔찌 로 튕겨내거나 바인이 벼락 주문으로 전이시켰다. 일행이 너무 강력하다 보니 예의 후작들 과는 전혀 달라서 아예 지하 1층의 가디언들을 전멸시키다 시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행 중 어느 누구도 생채기 하나 입지 않았다. 「슬슬 시작해볼까.」 누군가는 입꼬리를 슬쩍 말아올리며 염을 퍼뜨렸다. 구그그그그그 바인과 일행들은 움찔 하고 몸을 굳혔다. 갑자기 유적이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 지구의 기계공학으로도 해석하려면 100년도 넘게 걸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메커니즘을 이용해 구성 되어 있는 유적인지라 대체 어떤 것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갑자기 바닥이 열리면서 푹 꺼질 지도 모르고 한층 자체가 엘리베이터처럼 아래로 내려갈지도 모른다. 이 한 층층마다 강력 한 마법결계가 걸려있어 플라즈마 레이저 같은걸 쏠줄 모르는 일행들은 적어도 9서클 주문 을 사용하지 않으면 벽을 파괴할수 없었다. 물론 그냥 부수는건 쉬웠지만 두터운 벽을 뚫고 다른 방으로 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직 거주구역 따위에 도착하지 못한 그들은 완전히 함정과 가디언들로 도배된 위험구역에 있었 는지라 함정에 무방비였다. 그나마 지금까지의 함정은 마법이 있다면 '피할만한 구석'은 있 는 양심적인(?) 함정이었다. 돌벽으로 가두고 액체질소 같은걸 쏟아버리는게 피할만 하냐고 투덜거릴지도 모르지만 바인은 파해해보이지 않았던가? 뭐 그건 '도적의 파해'라고 보기엔 힘들었다. 그냥 무식하게 뚫어버린거랑 다를바가 없었으니. 어쨌든 일행은 당황해 했다. 전 부 다 바인에게 기대의 눈초리를 던졌으나…… "어디서 공격이 들어올지 전혀 알수가 없군. 전체가 진동하고 있으니 파해하고 말것도 없는 함정인데." 바인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전부 헬쓱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지금 이 상황을 서술하고 있는, 아니 창조하고 있는 누군가(…)를 저주하며 일행들은 이를 갈았다. 이들은 염세적인 냄새가 꽤 풍기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 염세적 냄새를 풍기는 작자들도 전부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생에의 집착이 강했다. 바인은 피식 웃으면서 주문을 외웠다. 이번엔 여유 부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유는 무이고 무는 유이다. 무는 유에서 받은 만큼 유에 무를 던져 되돌리리라. 물질이 없음 이 결코 무가 아니고 공간에 물질이 채워짐이 결코 유가 아닐지니. 파괴破壞가 생의 죽음이 아니요 복원復元이 사의 쫓음이 아니다. 생에서 중요한 것은 영혼이나 그 영혼의 발현 역시 생으로써 존재한다. 위대한 마력의 힘을 빌어 나 자격있는 자의 이름으로 이 자리에 '이적' 을 구현한다!" 귀신이 호두알 깨물어 먹는 듯한 알쏭달쏭한 시전어. 비록 들어줄 가치가 없을 정도로 어지 러운 시전어였으나 9서클 주문이었다. 9서클 주문에서도 이적 주문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있는 데 그것들은 '미라클 스펠'로 분류되었다. 미라클 스펠도 급수가 있지만 말이다. 뭐 여러가 지 포함된다 해도 이적임은 변하지 않는다. 가령 어떤 법칙으로도 죽음을 찾아오지 않게 하는 안티 데스 셸Anti Death-Shell이 포함되 고 유성 소환 주문도 대부분 다 '미라클 스펠'에 속한다. 뭐 파괴하는게 이적이라는건 우습 지만 유성소환은 이미 인간이 할수 있는게 아니지 않은가? 원리는 비웃음이 나올 정도로 단 순했다. 난이도만 따지면 1서클 마법사도 이해할 수준이었지만 사용될 마나량이 천문학적 수준인 것이다. 그래서 파괴하는 주문 주제에 이적 주문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8서클 주문에 포함되는 미티어 샤워는 마나량이 그나마 낮아서 8서클에 집어 넣은 것일뿐 9 서클의 어떤 주문보다도 더 마나량의 사용이 많다. 루나틱 헬 파이어보단 약하지만 루나틱 헬 파이어도 축소하거나 리미트를 걸지 않으면 전해져 오는 그대로 시현하려면 인간으로써 는 뇌가 타들어가다 못해 녹아버릴 것이다. 9서클 마스터도 맨몸으로는 쓰지 못한다. 촉매, 마법진, 긴 주문, 길다란 시전어가 더해져야 하는 것이다. 급박한 상황임에도 이렇게 서술하 는건 일행들에겐 불쾌하겠지만 어쩔수 없었다. 마침내 바인은 수인을 복잡하게 변화시키고 휴암환, 혼연의 지팡이, 광익의, 블래스팅 팡의 네가지 마법기를 이용해 마법을 구현했다. 미리 외워둔 주문이라기 보다는 사실 스펠이 한 개쯤 부족해서 어쩔수 없었다. 마법무효화 구간에서도 일단 걸어두면 해제되지 않는 주문이 이 주문이었다. "이적 생존주문 서바이벌Survival!" 퀸텟Quintet(註 : 음악의 5중주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다섯번 구현되는 스펠을 말한다)의 9서 클 궁극주문 남발이었다. 원래 이 서바이벌 주문은 항상 하루에 네번 밖에 외우지 않았지만 마법기의 힘을 그러모아 사용했기에 억지로나마 하나를 더 구현할수 있었다. 물론 부담이 더해졌음은 당연했다. 바인 본인, 아라테온, 휴이즈, 렌시아, 아니꼽지만 헤인에게 모두 주문을 걸자 다섯명은 어 쩐지 유클리드 공간에 서 있으면 안된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이적으로 인해 법칙을 산산 조각으로 깨버렸으니 법칙이 적대하는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미 법칙도 감히 그들을 죽일수 가 없었다. 부작용도 없는 깔끔한 법칙 초월이었다. "서바이벌을 다섯번이나……?" 아라테온은 그래도 마법을 쓸줄 알고 공부도 많이 했는지라 기겁하고 있었다. 바인이 괴물 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미친짓을 하고도 바인은 약간의 어지러움만 느끼고 있었던 것이 다. 9서클의 마스터 중에서 그냥 인간이 이 짓을 했다면 이미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나 바인 은 쓰고도 조금의 어지러움만 느끼고 있었다. "괴, 굉장하군." 휴이즈는 마법에 마음이 열리지 않았으나 9서클 주문을 다섯번 쓴다는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는 귀족이지만 자기 수양에 별로 게으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슈라스의 신 관이었다(이 말로 모든게 다 설명된다는 사실이 우습지만 아슈라스 교단은 관념으로 설명하 기 힘든 놈들의 집단이었다). 그러나 마법에는 문외한인 헤인이나 렌시아는 이 강렬한 괴리 감에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을 뿐이었다. 바인은 헤인과 렌시아를 바라보다가 설명했다. 왜인지 바인은 휴이즈에게는 존대어를 쓰면 서 아라테온에겐 약간이나마 친근한 반말을, 렌시아나 헤인에겐 고압적인 어투를 썼다. 성격 이 망가져서인지도 모르지만. 휴이즈를 존중하는 의미도 있을것이나 아무래도 자신을 나락 에 떨어뜨린 존재를 섬기는 자라서 그런지 거리를 두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평소 하는짓을 보면…… 글쎄. 거리감 같은게 있었던가? "방금 걸어준 주문은 9서클의 생존주문으로…… 진공에서도 생존이 가능하고 마그마에서 헤 엄쳐도 살아남는다. 뭐 주문이 파해되면 즉사하겠지만. 고통도 느껴지지 않아. 주문의 메커 니즘을 보면 모든 가해지는 여파는 무로 돌아가고 생존하기에 최적인 조건이 유지되지. 생 존주문은 사실상 최강의 주문이라고도 하고…… 하지만 비효율적이기에 마법진으로도 쓰이 지 않는다. 이 경우는 부작용이 없지만 보통 마법사 길드에 전해지는 생존주문은 부작용이 심각하지. 운석을 직격으로 맞거나 방사능에 노출되어도 괜찮을테고…… 전이술로 물질과 좌표가 겹쳐져도 멀쩡할 것이다. 유지되는 시간은 2시간. 그리……" 바인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끊어졌다. 진동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바인의 설명에 이 강렬한 괴리감이 왜 인지 깨달은 헤인과 렌시아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정도라면 법 칙을 깨도 어지간히 깨버린게 아닌가? 헤인은 주제에 영력을 수련했다고 에콜로지스트였기 때문에 법칙을 무시해버리는 마법에는 꽤 민감했다. 게다가 렌시아나 헤인은 영력을 쓰는 중에서도 꽤 수양이 깊은 편이었다. 쿠르르르르르 순간 벽이 액체처럼 물컹 하고 뚫리고 몇몇 통로의 위에서 몇겹의 아다만티움 차단기가 내 려와 바닥에 결합되었다. 바인은 입술을 깨물고는 조용히 주문을 외워 광익의로 빛의 입자 를 모으고 프리즈매틱 스피어Prismatic Sphere를 몸 주변에 걸었다. 플라즈마 실드와 유사 하게 사용자가 움직이면 함께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마법기 덕분에 더 빨리 외울수 있었던 것이다. 휴이즈는 에테르 윙으로 결계를 걸었고 아라테온은 팔찌로 약간의 염을 이용해 바 인과 같이 이동하는 프리즈매틱 스피어를 걸었다. 렌시아나 헤인은 서로 영력을 끌어모아서 염으로 방어벽을 쳤다. 바인은 아라테온의 근처로 스윽 하고 발걸음을 옮겼고 휴이즈는 헤인쪽으로, 렌시아 역시 헤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좋아서 한게 아니라 지금 배치 덕분에 일단 헤어지지 않도록 가까운 쪽으로 움직인 것이다. 그것이 일행들에겐 행운이었다. 순간 핀들에서 어마어마한 빛이 퍼져나오더니 방어벽을 후 려치기 시작했고 공간이 얽히고 바닥이 꺼져버린 것이다. 바인은 이 상태에서는 비행술을 쓸수 없는 지라 그대로 떨어져내려버렸다. 어떻게 뭘 할수 도 없는 것이 그냥 바닥이 원형으로 뚫려버린 것이다. 아라테온이 다급히 바인에게 다가가 며 팔찌를 이용해 프리즈매틱 스피어를 바인에게로 전이시켜버렸다. 팔찌의 인터피어리언스 능력을 응용하자 바인은 즉시 염동을 발휘해 아라테온을 끌어당겨 꽉 끌어안았다. 뭐 어쩌 고 할 사이도 없이 중력가속도 그대로 떨어져버린 그들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휴이즈는 이를 악물면서 에테르 윙으로 빛의 파장을 막아냈지만 갑자기 힘의 방향이 바뀌면 서 렌시아와 헤인은 그대로 튕겨져 나가 공간의 이지러짐으로 떨어져버렸고 휴이즈는 그대 로 광파에 부딪혀 한 통로에 열려있는 아공간으로 빨려들어갔다. 일행들은 수단을 쓸것도 없이 흩어져버린 것이다. 156 바인은 이를 악물며 광익의에 염을 가했지만 마법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경악스럽게도 물리 방어가 아니라 마법적 방어계에서는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Improved Force Field에 준한다 는 프리즈매틱 스피어로도 막을수 없는 기이한 파장이 마나 자체를 몰아내고 있었다. 염으 로 마나를 끌어들여 사용한 프리즈매틱 스피어는 흩어지지는 않았지만 급속도로 그 효과가 떨어지고 있었다. 일단 시험조로 바인은 벼락주문을 외워보았지만 라이트닝 볼트는 시전되 지 않았다. 이상한 전자기광막 몇가닥을 뚫고 내려가면서 바인은 어마어마한 충격이 전신을 휩쓰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프리즈매틱 스피어도 타격을 입었는지 파창 하고 일곱겹의 방어벽이 동시에 깨어져 버렸다. 프리즈매틱 스피어는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보단 못해도 8서클 주문이었는데 고작 전자기광막 몇겹을 뚫고 내려가며 찢어져 버린 것이다. 바인은 마나홀이 파괴되지 직전임을 느끼고 축적된 마력을 전부 개방해서 아라테온과 자신을 동시에 둘러 쌓았다. 전자기광막과 커다란 반발을 일으키는 것을 보니 빛의 막처럼 보이는 청백색의 얇은 막은 마력에는 치명 적인 반발력을 지니고 있는듯 싶었다. 서클 주문을 쓸수 없고 클래스식 마법을 위해 축적해 놓은 마력도 소모되고 마법기도 말을 듣지 않는다. 에테르와 마나를 모조리 다 배척해 버리는 이상한 공간이었다. 그는 손 쓸 사이도 없이 떨 어져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라테온은 재생력으로 인해 충격을 받으면서도 회복되는 바인 과는 달리 마력에 타격을 주는 막에 의해 마법적인 신체가 무너지는 듯 이미 기절해 있었 다. 그런 그를 꽉 끌어 안은채 바인은 이를 갈았다. 비행 마법도 통하지 않고 중력이 3배 이 상. 언제까지 추락할지 알수 없을 정도였다. "제기랄…… 이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끝인가?" 아무리 바인이라도 이정도 높이에서 바닥에 부딪히면 산산조각 나버릴 것이었다. 그럼 재생 이고 뭐고 없지. 바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라테온이 피를 줄줄 흘리면서 축 늘어져 있는 것을 내려다 보다가 그는 피식 웃어버렸다. 뭐야, 고작 여기서 포기할 정도로 네 결심은 형 편 없었던 거냐! 넌 네 힘에 기대서 쉽게 파괴되고 쉽게 조절되던 현실에 안주하려고 했던 것이냐! 고작 이정도로 무너질것인가! "무너지긴! 이정도로!" 바인은 조소하며 오른손을 뻗어 허검을 소환해냈다. 그리고 그것을 예도 형태로 바꾸어서 불러내었다. 그리고 벽에 콰악 꽂아넣았다. 허검의 날은 굉장히 예리했고 그의 영혼이 파괴 되지 않는 한 부서지지 않는 내면의 검이고 굉장히 예리한지라 아무리 마법적인 힘과 수수 께끼의 기술로 강화된 벽이라도 치즈처럼 갈라지지 않을수 없었다. 대신 끼리리리릭 하는 높은 옥타브의 소리가 바인의 귀를 강타했다. "차핫!" 바인은 예도를 옆으로 비틀어버렸다. 순간 치이이익 하고 물리력이 전환되면서 팔이 끊어질 듯 아파왔지만 그는 참아냈다. 실제로 팔이 염좌될 지경에 처했지만 재생력이 얼마나 대단 한 것인지 염좌 직전까지 갔던 팔이 다시 달라붙었다. 그는 이를 악물며 몸을 벽에 밀착시 키고 발을 댔다. 그리고 힘을 주었다. 그의 부츠는 마법 부츠가 아닌지라 당연히 치이이 하 는 소리와 함께 타들어갔고 가죽타는 냄새가 심하게 퍼졌다. 그는 악의와 오기에 찬 미소와 함께 밑의 광막을 향해 클래스식 마력을 잠깐 제어해서 파이 어 볼Fire Ball 수십발을 날려버렸다. 연이어 폭발운이 수직통로를 가득 메웠고 반마력의 장 막은 당연히 파괴되어버렸다. 아래로 수십겹이나 남아있던 반마력이 깨어져 버린 것이다. 그 는 헉헉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낙하로 인해 생겼던 가속물리력 대부분을 받아낸 팔은 너덜 너덜해져 있었지만 금방 회복되었다. 바인의 이마에서 피가 주륵 하고 흘러내렸다. 바인은 피식 웃고 다시 클래스식 마력을 운용 해 파이어 볼을 날렸다. 몇겹 더 남아있던 반마력장이 다 깨어져 버렸다. 이곳 중력 가속도 로 딱 8초만 더 떨어졌으면 바닥이었는데…… 대충 40초 정도 떨어져 내린 것 뿐이었지만 중력 가속도로만 따져도 어마어마한 길이였다. 하지만 어차피 이 유적이라는 것 자체가 공 간왜곡이 꽤 많이 들어가 있었고 공간을 접거나 푸는 방식으로도 조합시켰기 때문에 이정도 의 여유 공간을 만들어내는건 쉬웠다. "젠장…… 죽을뻔 했군." 이 행성의 중력가속도는 9m/sec. 약 40초 떨어졌으니 450m는 넘었다. 그리고 8초 거리 남 아 있었으니 500m를 조금 넘기는 수준이다. 이정도의 깊이라니. 땅으로 100m 파고들어갈때 마다 섭씨 3도가 올라가므로…… 섭씨 15도.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기는 여전히 선선했 다. 저 아래에서 출렁이는 마나의 장벽을 느낀 바인은 남은 반마력장 하나를 파괴하자 마력 이 물밀듯 다가오는 것을 느끼곤 마력에 손을 뻗어 마나홀에 마나를 가득 채웠다. 가뜩이나 인프린팅을 많이 해두어서 깨지기 직전이었던 스펠 인프린팅이 마력을 공급받아 다시 수복되었고 덕분에 바인은 회복마법을 사용할수 있었다. 서클식 마법을 사용하기에 충 분한 마력이 주변을 가득 메운 것이다. 그는 아라테온을 품어 안은채 주문을 외웠다. 아무리 그라도 이런 자세로는 6서클급 주문이라도 캐스팅이 필요했다. "힐링Healing! 체이닝Chaning!" 연쇄주문을 외워 6서클의 힐링 주문을 외운 그는 아라테온의 체력이 되돌아오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다시 주문을 외워 자신을 치료했다. 그리고 한두번쯤 다시 주문을 외워 둘을 치료하자 아라테온은 깨어났다. 아라테온은 우습지만 아직도 짐을 놓지 않았으며 그건 바인 도 마찬가지였다. 바인은 스페이스 백팩이나 놓칠리가 없었고 아라테온은 그냥 몇가지를 몸 에 매어 두었으니 끈이 끊어지지 않으면 잃어버릴 염려는 없었지만 집념이라고 밖에는 설명 할 방도가 없었다. "일어났나?" "여, 여긴……" "저승까지 앞으로 한발짝." 바인은 그렇게 시니컬하게 대꾸하고는 예도 형태의 허검을 흡수했다. 그 순간 이미 염을 이 용해서 마법을 사용해 부양주문으로 떠오른건 당연했다. 부양주문으로 떠오른 바인은 아라 테온에게도 부양주문을 걸어서 팔을 놓고 띄웠다. 그냥 사이킥을 써도 상관 없었지만 마법 이 더 부담이 없는 것이다. 그에겐 이미 마법이 수족이나 다름 없었다. 뭐 6서클 주문까지 였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아라테온은 멍청하게 서 있다가 입가에 피가 찝찔하게 달라붙어 있자 혀로 살짝 핥고는 눈 살을 찌푸렸다. 아라테온도 붉은 피라는게 신기했지만 뭐 라이칸스롭이라고 피가 붉지 않을 이유는 없잖은가? 트롤도 아니고 말이지. 오히려 바인이 피가 녹색이라거나 하면 오히려 납 득이 갈 지경일 정도로 바인은 포유류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재생까지 하니 트롤이 라고 불러줘도 무리가 없었다. "아. 우린 함정에 빠졌었지?" 아라테온이 그제야 기억이 난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그 반마력장을 떠올리곤 자존심 이 상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이곳이 대단한 곳이라도 아라테온이 그렇게 쉽게 함정 따위, 그것도 빛의 막 하나에 패망해버리다니. 네번 막을 뚫었을쯤 정신은 혼미해졌고 다섯 번째에는 까무라쳐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막은 뭐야?" "반마력反魔力 비슷한 것 같더군. 다 파괴했다. 그나저나 내려가야겠지?" 바인은 그렇게 말하곤 염으로 조용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500m가 넘는 어마어마한 길이에 너비는 5m도 안되는 수직통로. 위를 올려다 보자 새까만 어둠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러고보 니 바인이 옆으로 달라 붙을수 있었던것 만 해도 천운이었다. 바인은 문득 내면에서 보았던 '그'에 대해서 떠올렸다. 그러고보니까 '그'는 회백색과 회흑색의 날개를 달고 있었다. 그 는 가볍게 염을 가해서 사멸과 붕괴의 힘을 운용해 난다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러나 등 뒤에 서 날개는 뻗어나오지 않았다. "역시 아직은 힘이 모자란가?" "응? 무슨소리야?" 바인이 중얼거리자 아라테온이 용케 알아듣고 반문했다. 그러나 바인은 별로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 고개를 잘레잘레 저었다. 이 둘은 지금 꽤나 낭패한 상태인지라 피가 좀 묻 어 있었는데 바인이 고개를 저으며 그것을 깨닫고는 정화주문으로 가볍게 '외부로 유출된 피'를 오브젝트로 삼아 분해해버렸다. 끈적끈적 한게 사라지자 아라테온도 기분이 좀 나아졌 는지 안색이 편해졌다. 까가가가가르르륵 기이한 울림이 통로로 퍼져나왔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 보자 갑자기 통로의 너비는 다섯 배로 넓어져 있었고 그 너비의 통로 밑의 녹색 광채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치솟고 있었다. 짐승 울림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금속성의 냄새가 났다. 바인은 눈살을 찌푸리곤 투덜거렸 다. 그답지 않은 투덜거림이었다. "비행형의 기계들인가?" "세종류 이상…… 다양한데?" 예도 형태로 잠깐 변화했던 허검의 날에 길게 그어진 상흔에서 시선을 옮겨 아래를 보던 아 라테온은 부웅 하는 소리와 끼릭끼릭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자 중얼거렸다. 과연 곧 아래의 녹색빛위로 대충 50여개체의 비행형 가디언들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바인은 조용히 허 검과 공검을 소환했다. 그리고 허검과 공검을 하나로 만들어 활의 형태로 만들었다. 바인은 느긋하게 있지도 않은 시위를 잡아 당겼다. 그러자 회색의 선이 걸리는게 아닌가? 그리고 회백색과 회흑색의 광선 몇가닥이 걸렸고, 바 인은 시위를 가볍게 튕겼다. 순간 붕괴와 사멸의 힘이 응축되어 강력한 물리력을 지닌 화살 들이 피피핏 하고 공간을 꿰뚫으며 쏘아져 나갔다. 바인은 놀랍게도 궁도 역시 배운 모양이 었다. 훌륭한 속사였다. 파파파팍 붕괴의 화살에 맞은 것들은 말 그대로 붕괴되어 폭발해버렸고 사멸의 화살에 맞은 것들은 생명이 아니니 죽을리는 없었지만 물리력에 파괴되어버렸다. 몇번 더 화살을 날리던 바인은 패턴을 파악했는지 멋지게 회피기동을 하는 것들을 보곤 혀를 찼다. 그리고 허공궁을 다시 검의 형태로 만들어 내면으로 되돌렸다. "아무래도 뭔가를 날려서 쏘는 것보단 장場의 형태로 화염폭발을 일으키던가 얼리는게 더 낫겠군. 하지만 저놈들은 이동속도도 빠르고 반마력장 같은것도 쓸줄 아는것 같은데……" 바인은 중얼거리며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놈들을 바라보았다. 아라테온이 예견한 데로 놈들은 네종류였다. 하나는 사람 머리통만한 공처럼 생긴 청보랏빛 기계였는데 공의 옆에서 칼날같은 푸른 빛이 뻗어나와 회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반마력을 사용할줄 아는 것 같았다. 공뢰空雷 비슷한 물건 같았다. 절삭력 외에도 폭발까지 하는 듯 했으니. 대공시스템 으로써는 당연히 들어가는 것이지만 저 것들보다 비행에 약한 바인이나 아라테온으로써는 곤란한 물건이었다. "열추적인가? 아니면 마법적인……" 바인은 이어 다른걸 살피기 시작했다. 하나는 사람 몸통만하지만 날렵한 비행물체였다. 저건 실탄이 그리 많지는 않은것 같았지만 연발이 아닌 단발형태로 날리거나 사이드 와인더 비슷 한 미사일도 달려 있는게 골치 아픈 상대일것 같았다. 게다가 앞에 비죽 튀어나온 것이 마 나를 흡수, 가속해서 플라즈마 레이저를 날리는 것도 가능할것 같았다. 다른 두개중 하나는 몸통이 사각형이고 그냥 손가락만한 부스터 두개가 달려서 떠 있을 뿐 이었지만 몸통이 열리며 미사일 열발을 쏟아내고, 그 미사일 열발이 다시 수백개로 갈라져 서 쏘아지는 다탄두 미사일을 쏘아 붙여 오는게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바인은 일단 플라즈 마 실드를 쳐서 다탄두 미사일들을 막아냈지만 다탄두 미사일들이 갑자기 터지면서 반마력 장을 통해 플라즈마 실드를 녹여버리는게 아닌가? 바인은 기겁해서 포스 필드를 쳤고 아라 테온 역시 포스 필드를 쳤다. "젠장! 저건 또 뭐야?!" 마지막 남은 것 하나는 원통 형이었는데 갑자기 청백색의 빛을 뿜어내더니 광류光流로 변해 쉬이익 하고 쏘아져 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대단한지 공기충격파는 생기지 않았지만 시야 로 볼수가 없을 정도였다. 광가속. 그 대단한 바인의 동체시력으로도 선으로 밖에 보이지 않 는 스피드였다. 최소 마하 4에서 5에 다다르는 초음속 관통형…… 게다가 사이드 와인더보 다 월등한 메커니즘의 추적계니 맞으면 즉사밖에 할수 없다. 팔뚝 굵기 였지만 일단 당하면 죽는다! "이 빌어먹을 고대유적 같으니!" 바인은 일단 욕을 먼저 하고 나서 빠르게 주문을 연발로 외워 시동어를 외쳤다. 지금 바인 이 한 욕이 위에서 열심히 죽어가고 있는 후작들 일행의 공통적 심정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 었지만…… 어쨌든 이 유적의 무언가를 노리고 오거나 유적이 적대하는 자들은 전부 이 심 정이 되거나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그정도로 이 유적은 위험도가 높았다. 화염폭발주문, 빛의 화살주문, 블리저드 주문등 다양한 주문이 뻗어나가고 그 사이로 벼락이 쳤다. 간혹 플라즈마의 그물이 퍼져나가기도 하고 다양한 빛의 화살들이 이상한 문양을 그 리고 포메이션을 짜기도 하는 등 대충 50여기에 다다르는 기계들을 공격해나갔지만 그놈들 은 합심해 반마력장을 뿜어내 모든 마법적 공격을 무효화해버렸다. 안티 매직 셸을 가볍게 능가하는 효능이었다. "마법은 안되겠는데…… 게다가 크기도 작고." 아라테온은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바인이 악전고투 하는 것을 보고는 허리춤에서 라이어를 꺼냈다. 바인이 뭐하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엄두도 못낼 정도로 마법을 난사하는 사이 아 라테온은 예의 귀걸이를 풀어서 조용히 라이어의 바닥부분의 구멍에 그것을 끼웠다. 그리고 피어스 부분을 분리해 내서 다시 귀에 걸었다. 순간 주변의 마나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라이 어를 향해 몰려들었고 라이어는 찬란한 금빛을 발했다. 바인은 그 금빛을 보면서 외워두었 던 특급 마법기의 이름을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파동을 주재하는 외침'……" 아라테온이 바인을 보고는 감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역사속에서도 잊혀진 물건이었는데 바인은 너무나 쉽게 알아채는 것이다. 바인은 혼연의 지팡이, 광익의, 휴암환을 총동원해 마 법을 퍼부었지만 먹히지 않는데 왜 아라테온이 특급 마법기를 꺼내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바인은 곧 왜 이 마법기가 '파동을 주재하는 외침'이라고 이름이 붙었는지를 깨닫고 뭔가 다른 공격을 시도해보았다. "노이즈Noise…… 샤우트Shout!" 바인이 조용히 뭔가를 중얼거리자 순간 그것은 이명異鳴이 되어 찌이이잉 하고 울리기 시작 했다. 물론 이미 아라테온과 자신의 귀에는 바람의 막을 쳐둔지 오래였다. 찌이이잉 하고 울 리는 소리 자체는 마력에 인 하지만 이미 법칙에 올려진 상태, 당연히 민감한 계기들은 찌 지직 하고 부서졌다. 그러나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원통형의 기계는 타격을 입지 않 았다. 그러나 아라테온이 그때 탄금을 하기 시작했다. 공간을 가득 메우는 부드러운 음파. 그러나 곧 그 음파는 빛의 파장에 실렸고 광파光波는 화려한 금빛을 산란시키며 빛이 되어 쇄도하는 원통형 가디언과 부딪혔다. 순간 파장과 파 장은 간섭해버렸고 바인은 즉시 부서져나며 물리력으로 인해 파편이 되어 쏟아지는 그것들 을 공간 왜곡으로 비껴나가게 했다. 반마력이 남아있지 않아서 공간주문으로도 비껴낼수 있 었던 것이다. 바인은 노이즈로 인해 부서지거나 마비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중력제어로 공중에 떠 있거 나 부스터가 부서지지 않아 떠 있는 것들을 향해 공격마법을 날려 차례차례 파괴했다. 바인 과 아라테온은 그럭저럭 쓸만한 페어 플레이로 가디언들을 다 파괴했고 그제야 조금 여유를 찾을수 있었다. 바인은 조금 정신이 피로한듯 했다. 7서클 주문도 쓰고 9서클 주문도 써댔으 니 지치지 않을수가 없었다. "내려가야겠는데." "저 위쪽은…… 막혔군." 다시 어느새 위쪽에는 반마력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바인과 아라테온은 짜증이 좀 나긴 했 지만 별로 히스테리를 표출하진 않고 레비테이트를 이용해 바닥으로 내려갔다. 바인은 아라 테온에게 레비테이트 주문을 넘겼기 때문에 그는 마법의 원을 통해 주문을 흡수해서 제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으음……" 바인은 넓어져 가는 통로를 보며 조용히 손가락을 튕겼다. 이들은 어둠에서도 별로 시야의 지장을 받지 않았지만 전투를 간신히 끝내고 나니 아무래도 조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곧 서서히 내려가면서 바인이 만들어낸 광구에 의해 드러나는 놀라운 풍경을 바 라보게 되었다. 광구의 빛은 이 통로의 모든것을 폭로하는데 성공했고 바인과 아라테온은 빛이 폭로한 통로의 광경을 볼수 있었다. "저건…… 룬하고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군. 저런게 빽빽하게……" 바인은 정신을 집중해 엘더 휴먼들의 자랑인 True Rune의 힘으로 인해 만들어진 강렬한 염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것은…… 그의 상식에 어긋 나는 것이었으며 마법학에는 충격이었다. "룬으로 반마력장을 만들수 있어?! 이건 정말 마법학에서도 개혁이군! 지금까지 써왔던 룬 이 마력적인 힘만을 사용할수 있었던데 비해 이건 헥사그램 없이 오로지 룬과 약간의 마력 만으로도 반마력을 실행할수 있다니! ……시간만 있으면 좋았을것을." 바인이 투덜거리자 역시 마법사에 속하는 아라테온 역시 짜증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시간 이 남아 돌 정도로 그들은 여유있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곳은 위험천만한지라 마법을 연구하 고 뭐고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엘더 휴먼들이 자랑하는 트루 룬의 위대함은 9서클의 마 스터인 바인도 질려버릴 정도였고 감탄하게 할수 있었지만 시간은 그들에게 트루 룬의 해석 을 용납하게 하지 않았다. "……기회가 있다면 나중에 오자." "시간이 된다면……" 바인과 아라테온은 그렇게 중얼거리곤 빛에서 다시 들려오는 끼릭끼릭 거리는 소리에 살기 를 뿜어내며 즉시 수인을 맺어 마법을 날려버렸다. 바인은 8서클 주문인 스펙트럼 디사이더 를 리미트도 없이 쏘아붙였고 아라테온은 7서클의 케이온 셰퍼레이션을 날린 것이다. 7서클 에서도 궁극인 이 주문은 중간자와 입자를 들뜨게 하고 전자적 반발을 일으켜 에너지 폭발 을 일으키는 주문이었다. 디스인터그레이트보다 고급이었지만 소모마력량이 적어서 더 애용 되는 주문이기도 했다. 곧 아라테온의 수인 끝에서 어마어마한 광량의 전자파도가 뻗어나갔고 바인의 손에서 빛이 대량으로 뿜어져 나왔다가 아래로 몰려나감과 동시에 소리없고 충격파 없는 폭발과 전자폭 풍이 주변을 몰아쳤다. 그리고 무언가가 산산조각으로 부수어지는 소리가 났다. 올라오던 100여기의 비행형 가디언들은 반마력장을 펼쳤음에도 '녹아버린' 것이다. "이 유적…… 쓸모없는 것만 잔뜩 있다면 부숴버릴테다!" 바인은 이를 부드득 하고 갈며 다시 욕을 했다. 157 하강 도중에 바인은 문득 잊어버린 것을 아라테온에게 질문했다. 이것은 정말 바인의 상식 내에서도 설명이 되지 않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본 것들이 이미 상식에는 한참 어긋난 것이 었기 때문에 경악하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 정말 궁금한게 사실이었다. 특급 마법기는 그렇다고 쳐도…… "그런데 아라테온. 어떻게 메모라이즈 하지 않았는데 7서클 주문을 쓸수 있었던 거지? 그외 에도……" "아…… 그것은." 아라테온은 바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미 '파동을 주재 하는 외침'은 다시 봉인한 상태였다. 피어싱을 다시 원래대로 복구해서 귀에 찬 그는 라이어 를 다시 메었다. 그 동작은 꽤 익숙해 보였는데 그도 그럴것이 아라테온은 음유시인 역할을 하면서 돌아다녔던 것이다. "난 인간이 아니잖아. 난 아직 성장이 다 끝나지도 않았고 힘이 그렇게 강하진 않지만 '엘 더'라고. 엘더에 속한 자들의 특권이 마법기와 충분한 시간, 그리고 혈인 마력을 사용해도 될 정도로 몸상태가 좋다면 얼마든지 메모라이즈 없이 주문을 구상공간 내에서 실현할수 있 는 거야." "……이거 좀 불공평한데?" 바인은 머리가 좋은데다가 9서클 마스터고 그 외에 수많은 공부를 미뉴엘의 강요로 한 존재 인지라 한번 듣고 깨달아버렸다. 그 메커니즘까지. 엘더 일족은 피에 굉장한 마력이 흐른다. 마력이긴 해도 주변의 마나와 공명하는 힘이지 그냥 마력 자체가 흐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 런 것이 있으니 주변의 마나를 좀더 쉽게 제어할수 있었던 것이다. 케이온 셰퍼레이션은 마법에 대한 이해와 자연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쓸수 있기는 하지만 아라테온은 마법과 자연법칙에 대한 이해도 깊은 수준이었고 엘더 일족이라 마력제어와 마 나재배열에 대해 천부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어쩐지 메모라이즈 에 게으르더라니…… "불공평하기는. 흥. 그쪽은 그 나이에 9서클 마스터면서……" 바인이 중얼거리자 아라테온은 빈정거림으로 응수했다. 하기야 엘더 라이칸스롭. 자그마치 엘더의 종족인데 아직 나이가 어려서 7서클을 쓸수 있는 아라테온과 달리 바인은 9서클주문 까지 써댈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9서클 주문을 다섯번이나…… 게다가 이적 주문인 서바이 벌은 다른 9서클 주문보다 난이도가 더 대단했다. 10서클에 '이적', '진정한 법칙 파괴'의 주문이 내재되어 있다고 해도 9서클 역시 몇개 정도 는 존재했다. 하지만 마나 사이즈가 다른 만큼 9서클의 주문이라도 그것을 쓰려면 상당히 괴로운 제약이 가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마법기의 마력으로 그 제약까지 물리치면서 바인은 당당하게 다섯번이나 연속으로 그 주문을 써 제낀것이다. 바인은 자신이 할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하긴, 9서클 마스터인데 그런 보조라도 뭐가 좋을까. 하지 만 아라테온이 9서클에 들면 또 달라진다. 하지만 바인은 클래스식 마법도 익히고 있기 때문에 아라테온이 9서클에 올라도 상대가 안 될 것임은 자명했다. 그냥 9서클 마스터보다 더 좋을 것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바인이 9서클 과 9클래스의 마법을 동시에 난사하면서 상대해오면 그것만으로도 상대가 안되었다. 주문 개수부터 지는데…… 아무리 마법은 꼼수(?)가 중요하고 전투 센스와 공간적 배열이 중요한 것이고 주문의 개체 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개체수 역시 무시할수 없는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두배 이상 외운 주문 개수가 차이 난다면 이미 결과는 난 상태인 것이다. 게다가 바인은 검 사이기도 하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아라테온이 상급 소드 익스퍼트에 검술이 뛰어난 편에 속한다 해도 바인은 기 대신 사멸과 붕괴의 힘을 쓰고 검술 하나만큼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필적, 혹은 능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휴이즈들은 어떻게 됐지?" "뭐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헤인이나 렌시아라면 모를까 휴이즈가 설마." 휴이즈는 에테르 윙을 휘둘렀다. 흰빛이 치익 하고 공기를 가르자 대각선으로 슬라이스처럼 저며져버린 기계들이 쓰러졌다. 후작들은 어드벤처 슈트 하나 입고 나타나서 종횡무진 돌진 하며 종횡무진으로 날개를 휘둘러대는 한 성직자를 보며 기가 막힌 표정이었다. 휴이즈는 아공간으로 빨려들어감과 동시에 이곳으로 튕겨져 나와서 후작들과 대면한 것이다. 후작 일행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었기에 시의 허가 없이 이곳에 들어와버린 한 성직자 에 대해서 따질 기회를 갖지 못했다. 솔직히 목숨 살려줬는데 그런걸 따진다는 것은…… 물 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봇짐, 배낭, 돈주머니 다 뺏고 위자료까지 청구하는 꼴이었다. 그 래서 후작들은 신위神位로 가디언들을 말 그대로 저며버리는 정체불명의 성직자 휴이즈에게 어떤 법도 적용시킬수 없었다. "별것도 아닌 놈들이." 휴이즈는 성직자 답지 않게 입으로 웅얼거리는 수준에서 냉소하고는 몸을 회전시키며 가볍 게 날개를 흔들었다. 백색 날개는 채찍처럼 뻗어나갔다가 되돌아왔고 곧 빛이 한대 치고 지 나간 기계는 수직으로 썰려 파괴되었다. 2족 보행 가디언이었는데 온갖 부품들 사이로 스파 크가 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사람을 썰었으면 내장, 심장, 폐등이 보여서 인체해부 학습시간이 되었겠지만 다행히 기계였다. "신성법神聖法. 징벌의 벼락!" 휴이즈는 조용히 에테르 어를 이용해 에테르를 운용해서 신성법 징벌의 벼락을 시전했다. 순간 그의 손에서 하얀 안개가 뿜어져 나오더니 꾸물거리며 구름같은 것을 형성했고 순간 그 뭉게구름(?) 같은 성력의 덩어리에서 청록색의 벼락줄기가 뿜어져 나와 공간고착결계를 난타했다. 신성법 징벌의 벼락은 굉장한 고위의 신성법으로 공간조차 찢어발기는 신의 벼락 이었다. 게다가 아슈라스 신관이니 그 위력이 오죽하랴…… 광범위한 파괴도 할수 있었지만 지금은 단거리에 그냥 방사형태로, 손톱 비슷한 모습으로 공간을 찢어발겼기 때문에 공간을 절단하고 절개한 벼락이 지나가자 가디언들은 볼품없이 부서지고 쪼개져서 무너져내렸다. 휴이즈는 성직자라고 공격력 약한게 아니다라고 주장하려 는 듯 오연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가디언들을 파괴해나갔다. 이 세계에서는 성직자도 무시할 만한 존재가 아닌지라 휴이즈는 정말 당당하게 벼락을 날리고 법칙에 어긋나는 색깔의 화염 을 뿜어내며 가디언들을 파괴했다. 어쨌든 휴이즈는 서바이벌 효과가 지속되는 묘한 괴리감을 맛보는 상태에서도 벼락과 화염 을 날려서 가디언을 무너뜨리고 날개를 휘둘러댔다. 가끔 날아오는 총탄세례는 '난 이미 세 례 받았다'는 증거인 에테르 윙의 신성광막으로 물리쳤고 플라즈마 레이저 역시 그것으로 튕겨내버렸다. 아슈라스 신의 권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고작 신관 하나에도 이정도의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넌 스페셜이다!" 휴이즈는 친절하게 읊조리며 앞으로 중력가속을 이용해 쏘아져 나가며 앞의 두장 날개를 사 선으로 긋고 몸을 위로 떠올려 문설트(?)를 하며 중간의 날개로 내리 찌르듯 꽂아넣고 마지 막으로 뒤에 착지해서 마지막 두장의 날개로 두번 그은다음 가볍게 손을 들어 가새표 형태 로 교차한다음 신성법을 작렬시켰다. 다시 친절한 설명과 함께. "이건 마무리. 다른 말로 덤!" 벼락이 몰아쳐 인터셉터들은 타들어갔다. 막 인터셉터를 뿜어내려고 있던 6족보행형 가디언 은 말 그대로 난도질되어버렸고 '덤'인 성법이 작렬해 인터셉터들은 말 그대로 가루가 되어 버렸다. 정말 악취미적 기술이다! 성직자에게 이런 잔인무쌍한 기술이 있다니! 후작 일행들 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꼴시다는건 그렇다고 치고 위력이 장난이 아니잖은가! 후작은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휴이즈의 가슴에 달려있는 아슈라스 신관의 표징을 보고 쓴웃 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부두에서 시장과 대화를 나누며 아슈라스 교단 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회를 뜨고 품평회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아슈라스 교단의 신 관에게 도움을 받다니, 이래서 인생만사人生萬事가 요지경瑤池鏡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현란하게 마지막 남은 가디언을 향해 벼락을 난사하던 휴이즈는 마지막 한놈 남은 6족보행 형 가디언이 계속 인터셉터를 날리자 하나하나 벼락을 뿜어 마치 현대인들이 슈팅게임 하는 기분으로 박살냈고 곧 벼락의 장막을 펼쳐 인터셉터들을 퍽퍽 부순다음 마지막으로 빠른 속 도로 비행해 날개를 정신없이 휘두르며 가디언을 한대 치고 지나갔고 그 가디언은 간단하게 수십등분 되어버렸다. 예리하게 절단된 자국이 에테르 윙의 예리함과 파괴력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휴이즈는 공중에서 몸을 빙글 돌려 선회하며 착지했다. 일반인들의 성직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간단하게 산산조각 내어버리는 아슈라스 신관들의 파 워풀Powerful하고 터프Tough한 전투법을 감상한 이들은 경악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곧 제 정신을 차렸다. 휴이즈가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신성법을 다시 뻗어내서 죽기 직전의 부상자들도 수리(!)했다. 그리고 휴이즈는 후작에게 마지막으로 신성법을 걸어주고 한숨을 돌렸다. 아슈라스 교단은 달리 인체수리소라고도 불렸는데 '허리가 두조각나도 죽기 전이라면 살렸기' 때문이다. 그 방대한 성력과 강력한 신성법이 조화되니…… 아슈라스 교단에서는 휴이즈 급 성직자 네명 이면 죽은자도 살렸다. 어떤 매개체도 없이 말이다. 휴이즈에게 수리당한(…) 후작은 평상시보다 더 컨디션이 좋은 몸 상태에 감탄하면서도 동 시에 찝찝함을 맛보았다. 아슈라스 교단이 '인체수리소'라는 이름으로 날린 명성(?)을 잘 알 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상황을 서술어로 표현하면 '후작은 아슈라스 교단의 성직자에 게 무료로 수리당했다' 임이 분명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움을 받고 나서도 상당한 찝찝함을 느껴야 했다. 이곳에 있는 이들 모두 상식이 있었기 때문에 치료, 아니 수리를 받고 나서 상당한 찝찝함 을 느꼈다. 그 물컹물컹한 오러는 휴이즈에게도 와 닿았는데 휴이즈는 얼굴에 아다만티움 플레이트를 붙였는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듯 했다. 아슈라스 교단에서는 실지로 인체수리작업을 마치고 나서 뭐랄까…… 그 묘한 찝찝하고 물컹한 분위기에서 오히 려 정신적 쾌감을 얻는 이상한 놈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거부감이 오히려 즐겁달까? 솔 직히 그 비중이 큰것도 아니고…… 그걸로 해꼬지 하는 사람도 없었으니. "괜찮으십니까?" 강력한 마법기를 든 근엄한 풍모의 남자는 '나는 이 일행의 리더요'라고 말하는 듯한 분위기 였기 때문에 눈치가 상당히 빠른 휴이즈는 그에게 다가와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휴 이즈는 매우 잘생긴 얼굴에 분위기도 좋았으나 후작으로써는 매우 찝찝했다. 자신을 수리한 대상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일단 아슈라스 교단의 신관이기에 귀족으로써는 껄끄러웠던 것이 다. 후작이 아슈라스의 신도도 아니고…… 하지만 그는 예를 차릴줄 알았다. "괜찮습니다. 신관님. 저는 카온 벨제우스라고 합니다." "예? 그럼 벨제우스 후작가의……?" 휴이즈의 눈썹이 살짝 휘었다.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벨제우스라면 위오리나에서도 위세등등 한 후작가였다. 이전에 바인이 위오리나에 대해서 지레짐작 하고 투덜거린 적이 있었으나 이미 고인故人인 라시에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이었다. 위오리나가 대공에 의해 영지제 를 채택하고는 있으나 '영지'라는 건 '관할구역'이지 '소유구역'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영 지 없는 귀족들이 활동하기 더 편한 나라가 위오리나였다. 다시 말하지만 위오리나는 장원제 가 없었다. 뭐 지금은 바인도 어느정도 위오리나에 대해선 알고 있지만 말이다. 후작, 카온은 휴이즈가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자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휴이즈가 위오리나 출신이라면 알수도 있지 하고 생각을 마쳤다. 물론 휴이즈가 자기의 인사를 하기 전에는. "전 아슈라스 님의 종인 휴이즈 헬리론드입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이렇게 뵙게되다 니 인연이란 감히 한치도 내다보기 힘들군요." "헬리론드…… 설마 헬리론드 후작님의……?" 후작이 놀라서 질문하자 휴이즈는 그의 반응에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다 자신 의 말에 저런 방식으로 놀란다면 꽤 즐거우리라. 휴이즈는 그런데에서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을줄 아는 인간이었다. 후작은 곧 휴이즈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들은 적이 있었기 때 문이다. "흠. 그러고보니 헬리론드 후작님의 자제분중에 아슈라스 교단에 투신한 이가 있다고 들었 었는데……" "예. 아버님과 아는 사이셨나보군요. 불편하실텐데 하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교 단에 투신한' 정도의 고상한 단어를 골라쓰시려고 노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호부虎父 밑 의 견자犬子가 집안망신 다 시켰다'는 이야기니까요." 휴이즈가 농담처럼, 그러나 진담이 섞인 어투로 신관답지 않은 신랄한 어투로 말해버리자 카온 후작은 대답거리가 곤궁해졌다. 그러나 그는 그래도 후작이었다. 휴이즈는 사실 후작가 의 자식이라고 해도 평민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위오리나는 귀족이 공무원이나 다름 없었지만…… "일단 그럼 그렇게 하는게 좋겠군. 그런데 어째서 자네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인가?" "일단은 심상치 않아서요. 실은 '마력 제너레이터가 탑재된 배가 아피아 강까지 내려오는게 수상해서'라고 하는게 정확하겠군요. 일행에 굉장한 실력의 마법사가 있어서 쉽게 찾아낼수 있었습니다." 실은 물소리를 들은 것이었지만…… 마나파동도 느낄수 있으니 틀린말은 아니었다. 후작은 아슈라스 교단의 성직자 입에서도 '굉장한 실력의 마법사'라고 불릴 정도인 마법사의 능력이 궁금해졌지만 쉽게 말할수가 없었다. 이들 일행의 숫자는 팍 줄어 있었지만 듣는 사람도 많 은데 휴이즈는 가벼운 어투로 말했다. 일단 생각이란게 있는 존재인지라 9서클 마스터라고 말하진 않았다. 그러나 8서클 마스터만 해도 어마어마한 것인데…… "8서클 마스터지요." "……8서클!" 후작이 놀라서 중얼거리자 휴이즈는 피식 웃었다. 이미 에테르를 운용해서 가벼운 막을 쳐 음성의 전달을 막았던 것이다. 에테르 윙을 접긴 했지만 휴이즈는 능력 좋은 성직자. 못할 이유도 없었다. 어쨌든 후작은 반패닉 상태로 빠져들었다. 8서클, 8서클 마스터라니? 대륙에 도 단 한명밖에 존재하지 않는게 아니었나? 아무리 은거한 마법사가 많아도 그럴리가…… 8 서클은 애들 장난이 아니었다. 엘프 숲의 마법사인 레펠테온도 7서클 마스터인 것이다. 후작 은 상당한 정보를 얻게 되었지만 그게 불행이기도 했다. "8서클…… 8서클이라니." "지금은 흩어져버렸지만 금방 찾을수 있을겁니다." 휴이즈는 그렇게 말하곤 잠시 불안해짐을 느꼈다. 이적주문인 9서클의 서바이벌이 아무리 강력해도 이렇게 마력파장이 산란되어 있는 유적에서 과연 느낄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별로 염려되진 않았다. 그냥 바깥으로 나갈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날수 있으니. 마 법효과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일단 나가면 도시에서 만날수 있었다. "8서클 마스터라……" 후작은 그 마스터에 대해서 지레짐작을 했다. 8서클이라면 아마 상당히 괴팍한 노인일 것이 라고…… 8서클은 옆집 강아지 이름이 아닌지라 그것이 일반적 상상이었다. 만나면 최대한 의 조건으로 포섭하겠다고 다짐한 그는 오히려 그 마법사에게 자신이 포섭될줄은 꿈에도 모 르고 있었다. "찾으면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찾을수 있겠나?" "아마 그는 찾아올 겁니다." 어째서인지 '그분을'이라고 지칭하지 않는 휴이즈에게 의아함을 느낀 카온 후작이었으나 휴 이즈는 그의 의아한 시선에 실소했다. 보나마나 늙고 괴팍한 노인을 생각했겠지. 하지만 오 해를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는 문득 렌시아나 헤인이 떠올랐으나 뭐 렌시아가 있으니 잘 하겠지 하고 생각해버리곤 후작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써는 후작과 무슨 이야기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행은…… 구성이 어떻게 됩니까?" 휴이즈는 후작 일행들이 계속 등장하던 가디언들에게 꽤 공격을 받고 난 다음 시점에 등장 했기에 일행은 숫자가 적었다. 노움의 마이스터 둘. 연금술사 두명.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검사 다섯명. 5서클 마스터 마법사 알프레드. 그리고 4서클에 속한 자들 네명과 소드 익스퍼 트 최상급의 두명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남았던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두명은 이미 폐물이었다. 플라즈마 레이저에 당했으 니 죽을밖에. 기해혈도 깨어졌고…… 아무리 '인체수리'를 모토로 내건 아슈라스 교단의 신 관이라도 다 회복할수는 없었다. 일단 살아남긴 했으나 그들은 이제 검사라고도 할수 없었 다. 그래서 상당히 침울해진 상태였다. 그냥 놔두면 자살이라도 할것처럼. 그도 그럴것이 '힘'을 잃은 것이다. 그들이 갈고 닦아온 힘을…… 그것도 평생을 두고 갈고 닦아온 힘이었 다. 그런 '보루'가 깨어져 버리다니…… 합리적으로 볼때 그들은 짐덩이였다. 차라리 칼로 목을 쳐주는게 더 나을 것이었다. 이 상황 에서 카온 후작은 잔혹한 휴머니즘의 철퇴를 휘두르는 멍청함을 선보일 것인가 아니면 합리 적이고 잔혹하되 그들에겐 자비일 칼날로 목숨을 끊어줄 것인가? 후작은 죽여주길 바라는 그들의 몸에 뱀파이어릭 소드를 박았다. 심장에 꽂힌 뱀파이어릭 소드는 혈정을 한가득 빨아들였고 곧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그는 합리적인 사고를 한 것이다. 결국 두 사내는 죽음을 맞았고 후작은 살아나갈 가능성을 좀더 되찾았다. 뱀파이어릭 소드는 피를 마시는 검. 마력이 강화되었으니 어쩌면…… 살아나갈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좀더 옳은 판단을 했어도 후작은 인 간이었다. 혼란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합리적으로 사고했지만 인간의 감성을 지닌 존재…… 당연히 고뇌는 필연적이었다. 어 느 누구(바인)이라면 주저없이 죽여버리고 있는지 없는지 의심스러운 양심에 털끝만큼의 상 처도 받지 않겠지만 후작은 바인이 아니었다. 카온 후작은 피를 빨아들인채 붉은 빛을 내고 있는 자신의 애검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들고 걸어갔다. 휴이즈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라도 그랬을테니. 휴이즈는 사고방식이 후작 과 유사하면서도 다른지라 이런일 따위에 상처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감성이 메말랐다 거나 하는게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한다. 일을 하기 좋아서 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은가? 그 일에 대가 자체가 없다면 하기도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살기 위해선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불편을 감소하고서라도…… 휴이즈는 이런 일을 '불편을 감소하고서라도 꼭 하기는 해야 할 일'로 취급하는 인간이었다. 158 렌시아는 조용히 영부 한장을 꺼냈다. 이상하게 울렁거리는 공간이었다.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공간왜곡 통로였지만 마법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시피 한 그녀로써는 기의 흐름이 수상쩍은 이곳에서 많은 위협만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공간왜곡 통로에서는 일반적 술식 의 마법이 먹히지 않았다. 가디언들도 이런 구역은 돌아다니지 않는다. 마력적인 메커니즘이 본체에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마법이 봉해지거나 마력의 움직임이 아 예 멈추어지고 고정된 구간도 아닌 이런 수상쩍은 마나 유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는 메카 닉 신경계와 그 순환 시스템이 마비를 일으킬수 있었다. 렌시아는 멀쩡한 인간이었지만 시 각이 울렁이고 에너지들이 울렁이자 토할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일종의 멀미였다. "여긴 대체 어디야?" 렌시아는 투덜거리면서 영부 한장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채 영력을 불어넣고 염을 가해 영부 를 활성화 시켰다. 영부의 힘이 활성화 되었지만 그것은 영부의 힘이 발휘될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소화계로 따지면 애피타이저를 먹어서 위에 '식사 들어간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 과 같은 행위였다. 영력 소모가 보다 덜해지는 것이다. 중급 영법인 업화폭멸법業火爆滅法이 깃든 폭멸부였다. 마법이 아닌 영력이었기 때문에 가 디언들은 이에 좀더 효과적으로 대응할수 없었다. 공간 고착 결계는 염뢰로 치고 그 자리에 다시 파장을 겹쳐서 염화를 날려 파동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파괴할수 있지만 마법으로는 그 타이밍을 맞추기 힘들었다. 그래서 렌시아와 헤인은 간혹 여유가 있을때는 이 수법으로 쉽게 공간 고착 결계를 부수어 왔다. 공간 고착 결계에 퍽퍽 하고 마법이 걸릴때도 그들은 염뢰, 염화를 번갈아 사용하는 방식으로 파장과 파동을 겹쳐서 결계를 파괴하고 중급 영법을 한방 먹이는 방식으로 효율적 으로 가디언들을 파괴해왔다. 2족 보행형 가디언들은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파괴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런 것들은 크기 때 문에라도 공간 고착 결계를 향해 염뢰를 여러발 연속으로 날리다 보면 쉽게 파괴되었다. 이 구역에는 가디언들이 전무했지만 렌시아는 그걸 몰랐고 그래서 업화폭멸부를 활성화 시켜서 대기해 둔 곳이다. 지금 렌시아가 향하는 구역은 생물학계 연금술사와 노움의 생물학계 마이스터들이라면 아주 기뻐할만한 곳이었다. 바인도 나노단위로 유전자나 세포를 방사능을 쬐고 마법적인 변형을 가하는 수단을 쓰거나 생물을 합성하고 그 특성과 유전자의 코드를 복제하고 교차하는 방식 으로 키메라를 만들수 있었지만 이곳에 있는 것들은 매우 특별한 것들이었다. 이곳의 가디언들은 다른 구역의 기계들과 비교하면 약하다고 할수 있었지만 마법사들에게는 그야말로 '쥐약'인 것들만 모여있는 것이다. 그렇다. 엘더 휴먼들이 심심풀이삼아 마법으로 뜯어고친 생물학적인 변형이 가해진 키메라와 반 메카닉적인 바이오 로봇들이 돌아다니는 구역이었다. 반 메카닉도 있고 순수 생물도 있었다. ……순수 생물이라기엔 지나치게 강하고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냥 순수 생물이라 도 내장된 몇가지 기능은 엘더 휴먼의 기계문명에 의한 것들이었다. 어떤 기계학적인 것도 내재하지 않은 키메라들은 오히려 다른 구역의 가디언보다 몇배는 강할때도 있었다. 정말 이곳은 '특급 위험구역'인 것이다. 생물은 민감한 기계와는 달라서 재생조차 할수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더 고달프고 귀찮은 상대들이었다. 트롤의 재생능력을 개선한…… 다시말해 '세포증식'과 '신경자극 재생 능력 증대'를 합쳐놓은 것들이 꽤 많았다. 각질인 것들은 대부분 다 재생능력이 없었지만 그 경우 갑옷이나 다름없는 각질이 어느정도의 방어력을 지니고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런 놈들이 돌아다니는데 강한 렌시아라도 이길수 있을까? 기계는 한군데만 다쳐도 무너질 수 있지만 이곳의 생물들은 아예 태워버리거나 중요 신체 기관을 다 자르거나 뽑지 않으면 죽지 않는 것도 있었다. 게다가 제어코드 까지 달려있었고 길도 잘 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끼리는 절대 다투지 않았다. 혼란 마법같은걸 건다면 모를까. 하지만 이곳의 생물들은 지능이 높은 것도 있었고 낮은 것 이라도 마법적인 환상이나 캔트립 같은 것에는 거의 걸리지 않았다. 지능이 높아도 말 그대 로 조종해버리는 탈 인간적인 포용의 힘이라면 모를까. 아무래도 싸움 하나만 일품인 일행 으로써는 할수 없을 것이다. 현청이라면 개조 대신 지옥을 거친 '인독'의 어마어마한 살의로 짓눌러 버리거나 '왕'으로써 의 위엄으로 짓누르거나 무극지기의 포용으로 지배해버리겠지만 일행중 어느 누구도 그 일 을 할수 없었다. 이곳의 생물들은 고통은 몰라도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인은 사멸의 힘으로 '사신'이나 다름 없지만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데 사신이 무슨 소용이랴. 렌시아는 업화폭멸부를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 주변을 스치는 묘 한 살기를 느낀 것이었다. 그녀는 어떤 방식으로 키메라들을 상대할 것인가? 바인과 아라테 온들이 비행형 가디언들을 맞아 잘 싸웠고 휴이즈는 싱거운 상대를 만났고 조력자들도 찾아 냈다. 하지만 고립된 렌시아와 헤인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스흐으으으 푸슈우우우 스흐으으으 푸슈우우우 듣고 있자니 상당히 괴로운 소리가 들렸다. 말하자면 숨소리랄까? 비강에 점액질이 많아 주 체할수가 없는지 기괴한 숨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따라하다간 질식사 할 정도로 그 간격이 길었지만 매우 큰 소리였다. 듣는 사람 숨이 턱턱 막혀오는 길다란 간격의 소리. 다행인 것 은 이곳의 키메라나 합성생물들은 대부분 흩어져 있고 모여있는건 약한 것들이었다. 자기들끼리 영역을 다투는 것이 없지만 바깥에서부터 '인장'없이 침투해 오는 것들을 공격하 는 것이다. 다행이 이번에 만난 상대는 이성이 있는 존재였다. 다만 렌시아가 그것을 몰라서 문제이지만. 렌시아는 그 어마어마한 숨소리에 상당히 큰 동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무슨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인장이 없는 인간이군. 그것도 레서 휴먼…… 지금 이곳에서 물러난다면 놓아주겠다. 빨리 물러나라." 렌시아는 갑자기 웅웅 울리는 듯한, 그리고 뭔가 굉장히 낮으면서도 그 울림이 둔중한 옥타 브의 소리가 들려오자 질겁했다. 그래서 업화폭멸부를 날릴뻔 했지만 목소리가 들려온 장소 를 파악하지 못한지라 반사적으로 날리지는 않았다. 그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어쨌건 렌시아 도 확인했다. 상대는 이성있는 존재였다. 스흐으으으 푸슈우우우 스흐으으으 푸슈우우우 ……렌시아는 어쩐지 그 숨소리를 들으며 짜증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이마에 핏대가 돋아 오르고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영부가 파들파들 떨렸다. 어느 누구라도 성질이 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간격이 너무나도 긴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영부를 날리고 염뢰, 염화를 퍼부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나저나 렌시아 벌써 폭력적이 됐구나. 렌시아를 연구하면 선량한 인간이 주변의 폭력적인 (헤인을 빼면 좀 품위는 있지만) 존재들에게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알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정상인이다 못해 두드려 맞으면서도 벌쭉벌쭉 웃을 메저키스트도 분노하게 만 들 정도로 짜증나는 고요와 호흡소리였다. 바인이라면 진즉 파이어 볼과 라이트닝 볼트 등을 날렸을 것이고 휴이즈라면 이 불쾌한 공 간의 일그러짐에 신성법을 이용해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을 것이다. 그리고 아라테온은 화염 폭발마법과 함께 검기를 뽑아올려 휘두르고 고유의 능력을 사용해서 죽여놨을 것이다. 헤인 은 아마 당장 돌격해서 영검기를 뽑아내 상대방을 난도질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렌시아는 정상적인 인간이었다. 아직까지는 이라는 불길한 단서가 붙어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렌시아는 간신히 화를 가라앉혔다. 목소리는 울림이 있고 둔중하고 약간 절 도 있으면서도 깊은 목소리였는데 숨소리는 정말 끔찍한 것이다. 그런데 저런 숨소리라면 비강때문에라도 구강구조가 인간하고는 다를텐데 어떻게 저런 목소리가 나는거지? 쿠웅 쿠웅 쿠웅 쿠웅 둔중한 발걸음이 들렸다. 렌시아는 꽤 상대가 무거우니 만약 싸우게 된다면 자신은 영력을 이용해서 단발형태 위주로 치고 빠지는게 좋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렌시아는 이곳이 어 떤 곳인지 몰랐다. 몸무게가 무거운 것이나 가벼운 것이나 그 약점을 보완하고 나아가 오히 려 약점이 강점이 될만한 괴물들만 널렸다는 사실을. 렌시아의 입이 쩌억 벌어지며 얼굴색은 말 그대로 창백蒼白하게 질려갔다. 인간의 얼굴색이 이렇게까지 변하다니. 바인이었다면 엽기, 호러, 광기, 추함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그림이라 도무심냉정하게 관찰했을 테지만 그녀는 바인만큼 신경이 굵질 않았다. 그리고 바인이 무뎌 진 심미관을 갖고 있다면 그녀는 아직 감수성 예민한 소녀다! 신장은 보통 성인 남성 키의 2.5배에 4족 보행형이다. 꼬리는 사람 몸통만 하면서도 표홀하 게 쉬릭쉬릭 하고 흔들리는데 반 미터쯤 나가다가 아홉가닥으로 갈라져 있는데 갈라진 꼬리 에는 빽빽하게, 그것도 비늘이 곤두선 형태로 은백색의 날카로운 금속같은 바늘이 박혀있었 고 그 끝에는 새까맣게 번들거리는 두가닥으로 갈라진 커다란 바늘이 존재했다. 예술적이고도 아름다운 모양이라고 볼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몸통으로 가면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한다. 뒷다리(?)는 그야말로 늠름하여 무슨 왕궁 기둥을 보는 듯 하고 녹색으로 반 짝이는 돼지털을 능가하는 굵다란 터럭에 휘감겨 있으며 발은 고양이과의 발 같은데 다리를 들때 발바닥을 보니 발바닥은 그야말로 철옹성 저리가라 할 비늘이 빽빽했다. 발톱은 얼마나 예리한지 미스릴 뺨을 후려갈길 정도였고 그 길이를 보면 무슨 예도銳刀나 카타나를 반토막쳐서 그 끝을 발아놓은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얇지도 않았다. 은백색으로 시리게 반짝이는 살기가 심장을 푹 쑤시는듯 했다. 몸통으로 가자 그나마 뒷다리 쪽 위까지는 녹색 털이라도 있었던게 노란색의 비늘만 그득하 고 그 위로는 은백색 나사 같은 걸로 고정되어 있는 신경계에 연결된 금속 촉수가 있었다. 차르릉 차르릉 하고 흔들리고 있었는데 길이가 자유자재인게 아닌가? 거기에 눈부시게 아름 다운 고압전류의 스파크가 번뜩이고 있는게 스치기만 해도 즉사할듯 했다. 그리고 좀더 앞으로 가서 앞다리 부분에는 어처구니 없게도 붉은 빛의 털로 휘감겨 있었는 데 역시 터럭은 뒷다리쪽의 녹색 터럭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우람한 근육이 불끈거리는 앞, 뒷다리에 몸통의 비늘에 가려서 보이진 않지만 근육의 꿈틀거림에 그에 못지 않을 듯 하였다. 그리고 더 괴로운 것은 붉은 털 사이로 튀어나온 기계로 만들어진 액정의 눈 네개 와 함께 그 네개의 액정안에 달린 옵션이 자그마치 머신건의 총열이었던 것이다! 이놈은 지능도 있으니 저런걸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할게 아닌가? 면상은 얼마나 끔찍한지 사자처럼 갈기가 있는데 면상은 호랑이와 유사하고 이빨은 멸종한 검치호劍齒虎의 이빨과 비견될 정도였다. 날카롭기는 백련정강제 칼날을 씹어 뭉갤 정도였다. 게다가 두텁기도 두터 운게 주먹으로 쥐면 중지와 엄지가 닿지 않을 것 같았다. 눈을 보면 경악을 금치 못하는데 안쪽은 사이보그 아이즈의 검푸른 빛에 기계적인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다른 한쪽 눈은 마치 비홀더 같지 않은가! 하나의 커다란 눈 옆으로 충 혈된 자그마한 아이즈들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도 꿈틀대는 근육과 혈관이 엉키고 얇은 바이오 플레이트로 뒤덮인채. 그야말로 추함의 극상이었다. 마법을 무효화 하는 눈깔이 달려있고 몸은 저렇게 크면서도 다리를 보니 날렵하기 그지없는 4족 보행형 야수의 형태고 꼬리는 아홉가닥이라 후방으로 돌아가도 안심할수가 없다. 전방 에서도 180도 반경으로 움직이며 컨트롤되는 머신건의 총열이 번뜩이고 이빨 역시 예리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저런 이빨과 구강구조에서도 말까지 할수 있다. 저 사이보그 아이즈는 보 나마나 열추적도 가능하고 옆으로 돌아가도 등에서 번뜩이는 고압 전류의 촉수에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 이건 대체 뭐냐?! 가디언들은 공간 고착 필드를 썼지만 이놈들은 비홀더 아이즈에 마법적인 힘도 내재되어 있 는 듯 몸 위에는 금빛이 흘렸다. 갈기 빛은 은색이었다. 꼬리는 은백색. 뒷다리는 녹색. 몸 통은 노란색. 앞다리는 붉은색. 그리고 갈기는 은색. 앞쪽 면상의 색깔은 갈색. 그야말로 화 려하기 짝이없는 컬러링이었다. 그 압도적이고 전위예술적인 컬러링에 압도되어버린 렌시아는 (질려버린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질 못했다. 그녀는 이 전위예술적이고 전율적인 시각, 심미관 파괴의 참혹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감 동(감정이 움직여)해버린 것이다. 아, 이 멋진 설계도라니! 기능성은 그렇다 치고 이거 만 든 놈 대체 누구야? 이런 예술을 과감하게 씹어 삼켜버린 걸 만들다니! 게다가 저 면상에 저 목소리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레서 휴먼이여?" 렌시아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은 어디다 치우고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 자 신의 몰골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괴상망측한 생물은 렌시아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아무래도 이성이 있는데 지능도 상당히 높은것 같았다. 저걸 다 다루며 싸우려면 아마도 아이큐가 120대는 될듯 했다. 괴상망측한 생물은 잠시 렌시아를 바라보았다. 저 표정은 겁에 질리거나 질려서 굳은게 아 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무언가 못볼것을 보고 어처구니 없어 하는 듯한 표정이랄까. 렌시 아는 지금 괴물의 효율적인 뭔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렌시아는 최근 바인에게 염을 제대로 다스리는 방법을 배워서 사이 필드Psi-Field 같은 건 쓸수 있었으니 총탄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고압 전류가 흐르는 길 다랗고 길이가 자유자재에 끝이 날카롭고 날도 달린 촉수를 막아낼수 있다는건 아니지 않은 가? 마법적 전광이 총탄 막아낼 사이 필드에 튕겨져 나갈 물건은 아니니까. "……줘." 렌시아는 갑자기 입을 열어 말했다. 하지만 너무 작은 목소리라 아무리 예민한 귀여도 잠시 다른 생각을 진행하던 괴생물체는 듣질 못했다. 렌시아는 고개를 숙인채 말하고 있었다. 괴 생물체는 다시 렌시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가디언 치고는 상당히 사려깊은 생물체였다. 그나 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뭐라고 했나 레서 휴먼이여." "……보여줘." 역시 이번에도 목소리가 매우 작았다. 그러나 괴생물체의 인내심은 밧줄 수십개를 꼬아 만 든 것인지 보는 사람 짜증나게 만드는 렌시아의 행태에도 전혀 짜증내지를 않는게 아닌가? 하긴 여기서 노화 루틴조차 제거당한채로(생식 기능이 없으니 이곳 생물들은 노화 루틴을 유전자에서 제거당한채 암세포가 발생하면 신체 재구성 마법을 받는다) 오래 살았으니 성격 이 둥글둥글해지는게 당연할지도. "……제발 좀 정상적인 것을 보여줘!" 렌시아는 그렇게 소리쳤다. 렌시아의 의견에 동감이다. 제발 좀 정상적인 것을 보여줬으면 한다. 괴생물체는 얼떨떨한 듯 잠시 굳어버렸다. 어느 누구라도 굳어버리지 않을 수 없는 통 한에 찬 일갈이었으니 지능도 높고 아는것도 그렇게 적지 않은 괴생물체(이제 그만 할까)가 굳지 않을 수 없었다. 헤인은 짜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서 적의 목숨을 노렸다. 적은 그러나 여유있게 웃으며 스윽 피해내며 역시 손가락을 들어 헤인의 멱줄을 찔러왔다. 헤인은 다시 한수를 움직여 그 공격을 막았다. 상대는 한수를 들어 다시 공격을 가했으나 헤인은 이어서 다시 한수로 목줄을 노렸다. "이런. 허허허허." "젠장…… 내가 왜 이런걸 하고 있어야 되는거야?!" 헤인은 괴생물체(?)들의 관할자. 자칭 '클레이브'라고 하는 괴 노인에게 걸려서 장기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렌시아에 비하면 정말 편한 팔자였다. 하긴 일행중 최약인 녀석이 이렇게라 도 하지 않으면 목숨 부지는 쉽지 않을 지도. 렌시아보다 인간형인 존재들에게 강한 그였지 만 이런곳에서 살아날 가능성은 적었던 것이다. "자. 체크 메이트." "으앗! 젠장!" 헤인은 지금 자기 사매의 위험을 알기나 하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태가 예전에 스스로 한심해했던 바인과 휴이즈의 하는 짓과 똑같다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인간 형에 곱게 늙은 노인형의 몸을 한 키메라 클레이브 옹翁은 오랜만에 찾아온 인간 덕분에 지 루한 이곳 생활의 스트레스를 조금 씻을 수 있었다. 신장은 좀 작고 허리도 구부러졌고 관운장처럼 긴 수염을 단전까지 늘어뜨린, 그리고 주름 이 좀 적다 뿐이지 세월의 풍파가 느껴지는 길다랗고 새하얀 눈썹에 머리카락 역시 새하얗 게 세어 있었고 눈까지 감고 있는 노인. 동방에서라면 신선풍의 노인이라고 했을 노인이다. 장기를 좋아하는 듯한 평범한 노인이지만 이 노인은…… 인간이 아니다. 이 구역의 모든 키메라를 관장하는 생명체들의 왕. 'The Mother'에 의해 모든 제어코드를 제어하고 관할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 자의 방에 공간왜곡으로 떨어져버린 헤인은 그야말 로 편안하게 장기를 두고 있었다. 렌시아에 비하면 상당한 상팔자였다. 헤인은 이마에 손가 락을 짚으며 고심하다 마침내 한수를 냈다. "허어. 과연 자네 실력이 좋구먼. 흡수력도 훌륭하고. 나를 이렇게 다섯판째에 몰아 세우다 니. 허허허허. 젊어서 그런가?" 인자한 웃음을 흘리는 노인의 이마에 핏대가 생기는 이유는 뭘까? 심히 궁금하기만 하였다. 노인은 마침내 체크 메이트를 부르면서 헤인을 궁지에 몰아 세웠고 헤인은 마침내 패배 선 언을 했다. 클레이브 옹은 '이거 참 즐거워 지겠는걸'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장기말을 정리해 서 다시 두기 시작했다. "한판이라도 이기면 내 사매를 찾아주는 거지?" "허허허허. 약속 했잖나. 이번 판에 이기면 자네 사매를 찾아주겠네." 헤인은 곧 다시 장기에 빠져들어 골머리를 썩혔다. 그래도 사매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나름 대로 기특한…… 아니, 그게 아니잖아? 사매가 죽든 말든 장기를 두고 있는 것을 보니 시체 라도 가져오라고 하는거 아닐까? 시체 안에는 많은 법기와 영부들이 들어있을테니. 하여튼 전혀 우애없는 사형매지간이었다. 159 바인은 경탄어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년의 감성이 지금은 그대로 드러나서 인지 그 외모가 더 빛이 났다. 미소라곤 전혀 없었지만 감탄의 감정을 전혀 숨기지 않는 표정이 었다. 바인도 정말 놀랐으니까. 지금까지 보아온 '기계문명'의 것도 충분히 놀랄만한 것이었 지만 지금의 것은 정말 사람을 기겁하게 만드는 '과학'과 '마학'의 결합이었다. 마나Mana가 흐르는 코드가 있는데 그 코드가 정보를 실어나른다. 이젠 물질계에서 존재하 는 것들중 고대 마법의 지식을 배웠거나 드래곤에게 마법을 배운게 아니라면 알수 없을 마 력자 가질량치 보전법칙에 의해서 마나는 '염'이 닿으면 특수한 가속을 통해 광가속량값보다 몇백배 이상 그 속도가 상승한다. 제노바의 입자가속기에서 실험된 광속을 능가하는 정보의 전달. 그것과 유사한 면이 있긴 하지만 판이하다. 상대성이론의 추종자들이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예를 들어 비판했던 것이 실제로 가능했던 것처럼(일시지만 광속을 능가하는 속도로 '정보'는 전달되었다) 마나의 흐 름에 정보를 실어 보내는 것이다. 그 투명한 코드에서 빛나는 마나는 모든 색깔의 보석과 모든 색깔의 암석을 나노입자 단위 로 갈아서 섞어 빛을 발하게 만든 것처럼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며 흐르고 있었다. 저것이 진짜 마나를 시각화한 것이다. 바인은 실제로 드래곤에게서 배운 이론이 과학과 결합되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놀라고 있었다. 아라테온도 머리도 좋았고 엘더인지라 고대 지식을 많이 전승받긴 했지만 지금 그는 상당히 괴로웠다. 이런 것이 실제로 존재했다니. 바인은 조용히 매끈하면서도 두께가 제법 되는 투 명한 관을 쓰다듬어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로써는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재질 이었던 것이다. "이, 이런게 존재할수 있나? '아다만티움 단결정'이라니. 게다가 투명하기까지…… 대체 이 런 것을 어떻게 만든거지?" 이것 만큼은 바인도 만들 자신이 없었다. 드래곤의 용언을 손에 넣는다면 얼마든지 할 자신 이 있었지만. 이런 것이 가능한 이상 세계와 접속되어 있는 언령의 힘을 완벽하게 다룰수 있다면 얼마든지 창조할수 있었다. 바인은 잘 모르고 있었지만 아다만티움이 '단결정'형태로 모인 것은 강화된 분자구조변형 마법을 저 안에 흐르고 있는 강력한 '마나'의 힘으로 지탱하 고 있는 것이었지 실상 법칙에는 어긋나는 것이었다. 유클리드 공간이건 리만 공간이건 어쨌든 물질계에 어긋나는 법칙의 것을 이렇게 놔두고도 인과를 비껴나가게 할수 있는 존재들이 있었다니…… 이것이 어찌되었던 바인은 경탄하고 있었다. 온갖 복잡한 코드와 여러가지 빛을 뿜어내며 교차하는 기계들. 바인과 아라테온은 현기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야말로 미증유未曾有의 도시. 바인은 아까 욕했던 것은 잊어버리고 이 유적에 대해서 감 탄하고 있었다. 바인은 이 유적이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짧은 컴퓨터 경력을 믿고는 한 단말기 앞에 앉았다. 메카닉이나 이런 류의 복잡한 것에는 문외한이나 다 름 없었지만 일단 보기로 한 것이다. 언어 정도는 마법의 힘을 빌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속편한 마음이었다. "일단…… 어라?" 바인은 멍청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건 뭔가 이상했다. 단말기인데 어째서 키보드가 없는 걸까? 무언가 입력을 해야 하는게 아닌가? 그냥 연산처리용이라도 감독을 위해서는 키보드 가 있다. 그냥 작업을 보여주기 위한거라면 할말 없지만 모니터에는 이상한 빛만 뿜어지고 있었기에 그런건 아니었다. 입력 장치나 출력 장치는 보이지 않았다. 출력 장치는 모니터지만 저 모니터가 그냥 빛만 뿜어내고 있으니 출력 장치가 아니라 조명장치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커다란 조명장치를 쓸 이유가 있나? 위에서 백색광이 은은하게 뿜어지는데. 입력 장치로 의심되는 것이라고는 웬 주먹만한 구슬 두개와 헬멧 비슷한것 하나만…… "헬멧? 설마 이거 에브왐인가?" 그가 있었던 봉인계에서도 개발되지 않은 물건이다. 에브왐은 뇌파를 이용해서 컴퓨터와 연 동하는 것인데 인간은 잡념이 많고 생각이 겹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에브왐을 사용하려 면 득도한 도사이거나 미쳐버리거나 너무나 단순한 사고를 지니지 않은 한은 불가능했다. 에브왐의 개발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방법이 있었단 말야?" 바인은 조용히 헬멧을 들어 올렸다. 그냥 기능적인 디자인일 뿐이다. 멋은 전혀 없었다. 새 하얀 금속광을 발하는 헬멧. 눈을 가리는 부분은 고글 비슷한 느낌의 반투명한 녹색의 플레 이트 하나만 달려 있었다. 바인은 일단 그걸 썼다. 그리고 나서 자리에 앉았다. 역시 이건 단말기였다. 앉을 자리도 있으니까. 아라테온은 바인이 무엇을 하나 하고 다가왔는데 그가 보기엔 위험한 물건을(처음 보면 뭐 나 다 위험하다. 게다가 장소가 장소니까) 쓰고는 자리에 털썩 앉아버리자 놀랐다. 하지만 바인은 아라테온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바로 수정구 비슷한 구슬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그러자 우우우웅 하고 단말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둔중한 진동이 퍼져나왔다. 방의 가운데에 있는 단말기가 울자 방 전체가 떨어울렸다. 그리 고 기이이잉 하는 봉인계의 컴퓨터 기동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이런 소리쯤 사실 금방 없 앨수 있지만 일부러 남겨둔것 같았다. '제대로 기동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절차랄까? 그리고 그 둔중한 진동 사이로 쉬릭거리는 소리가 났다. 쉬릭 쉬리릭 헬멧에서 뻗어나온 은색의 촉수는 바인의 신경 중추부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으로 파고들어가더니 두피에 달라붙었다. 뚫고 들어가거나 하진 않았다. 그냥 달라붙었을 뿐이다. 그러나 아라테온에겐 위협적이었을까? 깜짝 놀라 단검을 뽑아드려는데 바인이 아라테온의 동작을 느낀듯 그를 제지했다. "아니. 괜찮아. 이건 신경계에 시스템을 연동시키려는 것 같은데. 신경 중추부에 코드를 접 속시켜서 에브왐으로 처리를 한다라…… 제법 훌륭한걸? 그러고보니 이건 이미테이션 플레 인Imitation Plane 방식으로 잡념까지 다 처리하는 거였군. 영상매체 방식으로 뇌에서 영상 을 떠올리게 만들고 가상도시 방식으로…… 이런 방식이면 에브왐이 더 낫겠지." 아라테온은 바인이 귀신이 호두를 통째로 씹어머는 소리를 하자 머리가 핑 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으나 곧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 바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혹여 무슨 위협이라도 생기면 단말기를 박살내버릴 생각이었다. 문득 바인이 손을 얹은 구슬에서 빛이 뿜어져 나 오더니 바인의 팔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부연 빛으로 물들이며 퍼져나간 빛은 어느새 손목을 지나 팔꿈치에 도달했고 마지 막으로 어깨를 지나 광익의 속에서도 빛을 발하며 바인의 몸 전체를 물들였다. 바인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그리고 순간 이 커다란 방의 조명이 강화되면서 은은한 빛이 약간 더 강하 게 비추었다. 아라테온은 놀랐지만 바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집중했다. "흠. 역시 가상작업이라 2초도 걸리지 않는군. 아라테온. 이미테이션을 이 방에 동화한다. 놀라지 말아. 환상 주문 비슷한 거니까. 정말 대단하군…… 이런걸 만들어 내다니." 바인은 그렇게 말했다. 순간 방이 우우웅 하고 떨렸다. 아라테온의 발 밑으로 빛이 모여들자 아라테온은 놀랐으나 놀라지 말라는 바인의 말을 떠올리고는 잠시 멈추어 섰다. 그러자 불 투명한 옷감이고 탁한 색인데도 불구하고 예의 부연 빛이 비추며 아라테온의 발끝부터 정수 리까지 타고올랐다. 아라테온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뜨자…… "아…… 이건!" 바인은 단말기에 여전히 앉아 있었지만 반투명한 녹색의 플레이트가 접히더니 위로 올라갔 다. 그리고 쉬릭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촉수 비슷한 것이 헬멧으로 빨려들어갔고 바인은 헬멧을 조용히 벗었다. 그리고 수정구에서도 손을 떼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미테이션 플레인 은 계속되고 있었다. "웬 수풀?" 아라테온은 닐의 자세로 앉아서 살랑거리고 있는 풀을 만져보았다. 놀랍게도 풀의 감촉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냥 환상 주문이 아니다. 적어도 8서클의 환상주문이 아니라면 이런 감도 까지 조정할수는 없었다. 아라테온은 바인을 바라보았다. 바인은 조용히 천장을 올려다 보았 다. 아니, 천장이 아니었다. 어느새 천장은 완벽한 창천蒼天으로 변해있었다. 하늘의 터키석, 혹은 라피스 라줄리 같은 깊은 검푸른빛이 찬란하게 흔들리고 햇빛은 새하얗게 피어오른 대리석빛 구름에 반사되어 투명하게 산란한다. 구름은 양떼구름처럼 몰려 있기도 했지만 굉장히 높았다. 거의 성층권에 이르를 정도로 대단한 높이였다. 아라테온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이라니. 순간 휘이잉 하고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아라테온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이런 감도까지 완 벽하게 표현할수 있다니. 정정해야겠다. 이건 9서클급 환영주문이었다. 게다가 향기까지 느 껴지고 바람과 함께 수풀 하나하나가 흔들리고 구름의 그림자가 던져지며 생동감과 기까지 느껴지는 이미테이션이라니…… 이건 이미 이미테이션이 아니라 창조 수준이었다. 수풀들이 멋지게 흔들리며 파사아아아 하는 소리를 냈다. 기분 좋은 청량함. 무한하게 펼쳐 진 들판. 그리고 나무 하나하나의 잎새가 보였다. 바인의 흑발 역시 햇빛을 받으며 투명하게 빛나는 햇빛을 산란시키고 있었다. 아라테온은 잠시 넋이 나간 표정이었지만 곧 다시 지상 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거…… 굉장해." "그럴법도 하지. '엘더'의 것이니까. 그것도 엘더 드래곤이나 엘더 엘프들의 것도 아냐. 하 물며 지금은 어설프게나마 과학의 힘을 쓰는 엘더 노움의 것도 아니지. '엘더 휴먼'의 것이 다. 엘더들 중에서는 드래곤과 인간의 영향력이 가장 컸다고 했지만 그게 정말일줄이야." 원래 기계문명적인 느낌이 났던 방은 사라지고 없었다. 은은한 자연향과 자연의 풍미만이 흘러넘치는 곳만 남아 있을 뿐. 아다만티움 단결정으로 만든 코드들과 천장에서 뻗어나온 천차만별의 두께와 반사각도를 지닌 자연적 수정같은 6각형의 길다란 크리스탈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 크리스탈들이 뿜어내던 은은한 녹색의 빛도 사라지고 없었다. 천장에 붙어 있던 원형의 백색광의 고리 역시 역시 남아있지 않았다. 오로지 자연의 풍광만이 그들에게 보였 을 뿐이다. 바인은 감탄하고 있었다. 진짜 자연보다도 더 자연과 같은 순수함만이 가득한…… 깨끗한 공간이었다. 은은한 물 흐르는 소리가 멀리에서 들려오자 바인과 아라테온은 느긋하게 걸어 갔다. 발에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그들의 몸은 그냥 그 자리에서 서 있을지 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바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인은 금방 냉정을 찾는 듯 했다. 아라테온이 나뭇잎을 만지고 그 산림의 향기에 취해 있는 동안 바인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튀겼다. 바인은 아라테온이 단 2, 3초라고 인 지했던 순간 거의 2시간에 다다르는 시간을 보냈고 그 2시간은 그에게 많은 지식을 부여했 기 때문이었다. "'테티스Tethys'. 나와." 바인이 손가락을 딱 튀기면서 그렇게 말하자 순간 공중에서 빛의 입자가 모여들더니 푸른 색을 띄었다. 그리고 아라테온의 입이 벌어졌다. 바인이 창조술로 생명을 만들어낼 정도는 당연히 아닌데 해낸 것이다. 이미테이션 플레인의 주인이 바인일리도 없는데 말이다. 아라테 온은 빛이 사라지고 한 존재가 사뿐하게 착지하자 더 멍청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고보니 테티스라면 판게아Pangaea의 두 바다중 하나인데. 봉인계가 지각변동을 일으키 지 않았을때 판타랏사와 테티스의 두 바다는 원시지각 판게아의 양 옆에 존재하던 바다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봉인계의 신화에 따르면 천공의 우라누스Uranus와 대지의 모신Gaea의 딸이자 대 해양의 신 오세아누스Oceanus의 아내인 신의 이름인데…… 그러고 보면 판게아의 분리체라고 짐작되는 로라시아Laurasia 북대륙과 곤드와나Gondwana 남대륙으로 비교해보면 사실 이건 북반구 남반구 차이니까 북대륙, 남대륙으로 나누어도 될 듯 했다. 신들의 취향이 이상한 것일까? 실제로 나타난 여성도 테티스라는 이름에 아주 잘 어울리는 외모였다. 천지의 딸이며 대해양의 아내…… 뭐가 생각나는가? 당연히 대륙이나 '땅'의 이미지일 것이 다. 머리카락은 짙은 청록색이었지만 피부는 옅은 갈색이었고 자애로운 이미지 였지만 이상 할 정도로 생기가 넘쳤다. 티 하나 없고 상처 하나 없는 피부에 군살 하나 없는 프로포션이 라니 확실히 비인간적이다. 갈색의 홍채에 호수 같은 푸른 눈동자. 갈색의 대지와 물을 연상케하는 푸른 눈. 그리고 녹 음이 무성한 청록의 머리카락에 아주 옅은 갈색의 피부. 복장은 마치 경건한 신관의 새하얗 고 치렁치렁한 옷에 유랑민족의 전통 복장을 어레인지 한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노출도 적당하면서 신관의 옷처럼 하늘하늘하고 길게 늘어진, 새하얗고 맑아 보이는…… 피부색의 건강함을 잘 강조하는 옷이었다. 가슴 부분은 거의 파이지 않았지만 굴곡이 상당 했다. 키는 바인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지만 바인이 워낙 장신이니…… 하지만 아라테온과 비슷한 정도였다. 아라테온의 성장이 다 끝나지 않았어도 그 나이대의 모습에서는 큰 키라 는 것을 짐작해 보면 이 여자도 여성중에서는 장신이었다. 이 테티스라는 이름을 지닌 여성의 얼굴 역시 아름다웠는데 옅은 분홍빛의 입술은 도톰하면 서도 알맞은 크기였다. 바인의 핏빛 입술과는 확실히 차이가 났다. 이목구비도 확연하고 부 드럽고 조용하고 자애로워 보이는 느낌이지만 입가에 걸린 싱그러운 미소는 생기어림의 극 치. 외향 적이면서도 내면 역시 착실한 느낌이었다. 아라테온은 이 외모가 어찌되었고 분위기가 어찌되었든 간에 혼란스러움을 억제할수 없었 다. 그래서 바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바인. 이 여자 누구야?" 바인은 아라테온의 질문에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해 주었다. 그의 목소리가 어쩐지 상당히 깊게 가라앉아있었다. 이로써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으니 오죽 찝찝하랴. 바인은 당장이라도 블래스팅 팡을 뽑아 휘둘러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엘더 휴먼들이 남긴 수많은 유적들을 관리하고 있는 메인 컴퓨터 The Mother에 부여되어 있는 인격이 테티스…… 바로 네가 '이 여자'라고 한 '물건'이다." "아무리 마스터라도 심하군요?" 이 여자는 자존심도 간도 없는지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확실히 인간이 아닌 다른 냄새가 났다. 살아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인격이라니. 그것도 이미테이션…… 바인 은 골머리가 아프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냉소하며 대꾸했다. "입다물어. 그럼 네가 '이성'과 '감성'을 둘 모두 가지고 있는 존재냐? 하다못해 윤회라도 하는 존재이냐? 그대의 불합리성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면 입을 다물겠지. 네가 이 행성을 제어하다 시피 할수 있고 인간들이 실제로 '파헤쳤다'라고 생각하는 유적의 진짜 코어 부분 을 조정하는 굉장한 성능의 행성 구간 제어 시스템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존중해줄 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 잘 알텐데?"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느긋하게 대꾸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생기발랄함 때문에 그 부 드러운 느낌 상당부분이 사라져 있었다. 게다가 바인에게 테티스는 굉장한 강적인지 간단하 게 대꾸해서 바인의 정곡을 쑤셔버리는게 아닌가? 바인으로써는 통한의 일격이며 크리티컬 히트를 먹은 셈이었다. "하지만 마스터도 보통 인간이나 제대로 된 존재라도 정말 진심으로 대접하는게 아니잖아 요? 안 그런가요?" "……역시 성능이 좋아서 말로는 이길수가 없군." 바인은 그렇게 대꾸했지만 '여자'라서 못 이기는게 아닐까? 바인은 품위도 있고 싸구려 술을 퍼마시고 마누라와 자식들을 두들겨 패는 나이 헛먹은 중년과는 한 은하의 나선 끝에서 나 선 끝까지의 거리라고 생각될 정도의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었지만 그래도 바인은 아직까진 남자였다. 인간이건 아니건 남자는 남자다. 테티스는 생명체는 아니었지만 그 메커니즘과 구 조로 비견해보면 그냥 인공 영혼체라고 생각하는게 옮다. 그리고 테티스는 '여자'다. "어머. 칭찬 감사해요." 역시 테티스는 강적이었다. 바인은 속으로 크윽 하고 신음을 흘리며 이마를 짚었다. 드물게 화를 제어하기 힘들었다. 아라테온은 바인의 망가져 가는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하겠는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아라테온의 옷에 이미테이션의, 그러나 실제보다 더 실제감 있는 풀 잎들이 묻어나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문득 바인은 정색을 했다. 지금 하려고 하는게 이게 아니었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일단 그 둘만 대화하기가 좀 그래서 아라테온에게 알릴 겸 이미테이션 플레인을 이 방 전체로 영 사하고 플레이트를 고착시킨 것이었지만 점점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바인의 표정이 변하자 테티스 역시 놀리기를 그만 두었다. "에테르 윙 여섯장을 쓸 정도의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는 개체 하나를 찾아서 영사하고 영력 을 수련한 개체 두개의 위치를 찾아서 홀로그램으로 영사해." "예. 마스터." 그런데 어떻게 바인은 엘더 휴먼들 중에서도 창조자. 그것도 마스터 키를 유전자에 지니고 있는 존재들만 복종시킬수 있는 테티스가 자신을 마스터라고 부를수 있게 한 것일까? 테티 스는 연산을 끝내고 조용히 마나를 인도하고 힘을 제어해서 마법적 영상을 열었다. 그리고 바인과 아라테온의 표정은 급변했다. 바인은 싸늘한 냉기가 도는 표정으로, 그리고 아라테온 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160 "……예전에 '인간을 증오하는' 일족이라는 것이 만들어 졌다네." "응? 무슨소리야 영감?" 헤인은 장기말을 하나 집어 슬쩍 내려놓으면서 그렇게 반문했다. 클레이브 노인(?)은 허허 허 하고 웃으면서 헤인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말을 잡아서 고심하다가 생각하면서 시 간도 끌 겸 이야기를 해 나갔다. "이건 '엘더Elder'에 관한 기억은 아니지. 엘더 휴먼들은 그야말로 극도의 테크놀러지를 손 에 넣었으면서도 기본적으로 에콜로지스트들의 숫자가 꽤 되었으니까. 멸종의 위기에 처한 생명체들을 마법으로 복제하고 유전자를 조금씩 고치고…… 그렇게 개선을 해 나가면서 우 리의 어머니. '테티스'에게 관리를 하도록 했지. 말하자면 자유 의지를 어느정도 집어 넣은 사육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생각이 났는지 장기말을 움직였다. 헤인은 이 노인네가 왜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지를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다. 많이 살다 보니 설명병에 걸린 것도 있고 무엇보다 대 화를 이렇게 나눌만한 상대가 주변에 없어서 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시간을 좀 벌기 위해서 였다. 테티스에 의해 지금 도청(?)되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리고 엘더 휴먼들은 초 문명을 구가하다가…… 하나의 실수로 나락에 떨어져 멸절되고 말았네. 다른 세계로 이주하거나 다른 항성계로 넘어가버린 엘더 휴먼들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넘어갔던 이들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지. 엘더 휴먼들은 지금까지 치밀하게 시스템 으로 연동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약간의 어긋남'은 점점 쌓여서 커다란 과오가 되었고…… 엘 더 휴먼들은 '테티스'를 제외하고는 이 세계에 어떤것도 남기지 못했네." 클레이브는 길고 탐스러운 백색의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장기말을 옮겼다. 헤인의 인상이 조 금씩 구겨져갔다. 그는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점점 이야기를 하면서 클레이브는 무의식중에 놓는 것인지 수준이 다른 실력으로 헤인의 진영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헤인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지금 섬겨지는 신들과는 연관이 없는 고대 신화 같은것. 그러니까 약소 민족들…… 드문 불모지로 밀려나 있는 민족들 사이에 전해져 있는 고대의 전승…… 그런 것에 약간씩 엘더 휴먼들의 무언가가 남아 있고 최근 몇몇의 관리소의 껍데기가 레서 휴먼들에게 넘어가면서 엘더 휴먼의 존재가 조금은 알려 지게 되었지. 초문명…… 이라는 것의 일부가." 클레이브는 계속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헤인이 듣던 말던 상관을 하지 않겠다는 투였다. 이 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헤인으로써는 지금 할 일을 빨리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두뇌를 굴리고 있었다. 그래서 클레이브의 독백은 바인이나 아라테온의 귀에는 들어갔을 지언정 헤 인의 데이터는 되지 못했다. "물론 그것 만으로는 지금의 인간들이 엘더 휴먼들의 '과오'에 직면할 정도로 발전하려면 수 천년이 필요하겠지. 그래도 일단 '미래의 모델'이라는 것이 생긴다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 전하게 되어 있다네. 인간이라는 동물은 말이지. 일단 발전하게 되면 무서운 속도로 빠르게 발전하네. 지금까지도 그랬지." 바인이 절로 고개를 끄덕여 지게 하는 말이었다. 바인은 의외지만 철없던 봉인계에 살던 시 절에서도 꽤 공부를 잘 하던 편이었고 역사에 관해서는 상당히 취미를 붙이고 있었다. 역사 학이란 것은 의외로 적성에 맞았던 것이다. 바인은 그래도 그런 것들이 '진짜 체계적'으로 연구된 봉인계에서 왔고 기초지식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레서 휴먼들은 마법학이 '서클매직' 밖에 남아있지 않았어. 그래서 엘더 휴먼들 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며 발전을 시작했지. '마법'과의 조화를 이룬 과학이 아니라 말 그대로 '파괴'해서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과학. 꼭 어린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고 맘에 안들면 다시 부수고 다시 만드는 방식으로. 그건 좀 간단한 예인가? 지금의 인간들은 둑을 사용하거나 댐을 건설해서 그곳의 '생태계' 자체를 바꾸고 무너뜨리지. 물론 그런건 인 위적이지만 그거라서 꼭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야." 클레이브는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흉강을 공명시켜서 소리를 내는, 다시말해 근육을 활용 하고 공기를 계속 방출하는데도 별로 목이 마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노인 형을 한 키메라 클레이브는 이야기를 해 나갔다. 이미 키메라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엘더 휴먼 에 흡사했지만 그는 그래도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 아닌가? 자연이 허락한 힘으로 만들어낸 댐은…… 지금까지 쌓아왔던 자연의 루프를 파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루프에서 벗어났다는 소리는 아니지 않은가. 일단 댐으로 물이 고이면 안개가 피어나고 습기가 차고…… 물이 고이니 썩는다네. 최근 위 오리나나 엘슈트럼인가 하는 데에서는 쓸만한 공법이 발명되어서 물은 항상 계속 방출하지 만 기존에 계속 흐르던 수량과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 수량을 조절할수 있는 정교한 수문을 개발해도 일단……" 클레이브는 문득 헤인이 음흉하게 장기말을 움직여서 체크 메이트를 노리고 있자 간단하게 말 하나를 움직여 길목을 차단해버렸다. 그리고 헤인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클레이브를 노려 보자 클레이브는 다시 그를 외면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대의 이야기. 학자들이라면 환장 을 하고 달라 붙겠지만 불행히도 헤인은 학자도 역사학자도 고고학자도 아니었다. "그래…… 물의 흐름이 있다고 생각해보게. 거기에 바위를 던져 넣어도 거대한 강. 그러니까 이 근처의 아피아 같은 경우에는 유속이 방해가 되겠나? 당연히 방해되지 않지. 하지만 아 피아 강의 깊이와 넓이만한 그물망을 친다면 물은 그대로 지나가겠지만 일단 '흐름'이 어지 러워진다네. 그물코가 듬성듬성 하지 않다면 수량을 줄이는것도 가능하지. 그러니까 물이 빠 지긴 하지만 흐름이 약해지면서 느릿하게 빠져나갈 수준의 그물코를 지닌 그물이라면 확실 히 가능 하고 그것 하나만으로도 주변 생태계엔 영향이 간다네." 그렇다. 자연계의 메커니즘이란 단순해 보이고 일견 끼어들어도 상관 없을듯 하지만 하나만 이라도 톱니바퀴가 잘못 맞물리면…… 와장창 하고 깨져버릴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듯하고…… 자체적 정화 기능이나 수백가지 변수를 생각해 보면 그야 말로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절대적인 성능이라고 불러주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의 컴퓨터 '테티스'는 모든 변수 를 다 계산해 내고야 말았다. 엘더 휴먼들은 테티스를 만들어 낸데 대해서 쾌재를 불렀다. 오염된 자연을 마법으로 정화하고 사막화되는 땅의 모래를 특수 개발한 식물로 흙 비슷한 결정질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화학적인 비료가 아닌 자연적인 비료를 준다. 대량으로 길 러낸 끈질긴 생명을 지닌 잡초에 불을 놓고 마법으로 그것을 제어해서 땅에 거름을 준다. 그러면서도 다시 거기에 대량의 풀을 심는다. 특히 '로봇'들의 상용화가 이루어지고 나서부터 엘더 휴먼들은 상상을 능가하는 발전을 이룩 해 왔다. 마법은 위대한 힘이 되었다. 8서클 주문이라도 컴퓨터는 가볍게 성공시켰다. 마법 촉매만 대량으로 만들어낸다면…… 엘더 휴먼들은 그것조차 해냈다. 무너뜨릴 건물은 8서클 주문의 디스인터그레이트로 바로 풍화시켜 사라지게 만들고 입자들은 마법적인 힘으로 모아 들여서 마법으로 분자구조를 변형, 다시 원료로 사용한다. 말 그대로의 이상적인 과학…… 이미 그것은 인간이 가진 '과학'이라고 보기엔 힘들었다. "영성을 지닌 많은 동물들이 생겨났네. 동방에서는 주작朱鵲, 현무玄武, 백호白虎, 청룡靑 龍, 봉황鳳凰, 기린麒麟 등으로 불리운다지. 실제로 '있던' 것들이었다네. 환상의 동물이긴 하지만 실존했어. 온갖 환상의 동물들도 실존했다네. 지금 '몬스터' 중에서도 고위에 속하는 것들은 본래 영성을 지니고 있던 존재들의 후예라네. 그리폰이나 세이렌 같은…… 그들은 '영 기靈氣'를 다루거나 마법. 혹은 에테르를 다루었네. 기를 다루는 것들도 있었지. 오히려 인간 보다 더 뛰어날수도 있었다네. 다만 과학이라는 힘이 없었을 뿐." 클레이브는 거기까지 설명하고는 장기말을 움직이면서 체크 메이트를 선언했다. 헤인이 당 황해하며 진땀을 빼는 사이에 그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선천적인 힘' 중에서는 네가지 힘으로 보기 힘든 것들도 있었지. 사이킥을 다루는 영수들 도 상당히 많았네. 그중 으뜸은 '엘더 드래곤'. 그런데 우습지만 '레서 드래곤'은 존재하지 않아. 그런데도 그들은 엘더 드래곤이다. 지금의 엘리멘트 엘프마저도 레서 엘프인데 말이 지. 고대란 그런 것이었지. 자네는 '영력'을 사용하지? 영기를 사용하게 되면 영력이라고 부 르지. '마나'가 클래스매직에 의하면 '마력'이 되는 것처럼." 클레이브는 맨 처음 꺼냈던 '인간을 증오하도록 만들어진 일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클레이브는 과거를 생각하는 듯 아련한 눈으로 공중을 올려다 보았다. 마침내 헤인은 패배 선언을 하고 말았다. "인간을 증오하도록 만들어진 일족. 그것은 테티스의 시험작이었다네." 클레이브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레서 휴먼, 레서 엘프, 레서 드워프 등. 하위로 등장한 '나중의 것들'은 고대의 영성있는 것들과 적대를 하게 되었네. 상식. 그리고 '진실과의 격리'에서 일어난 것이었다네. 그들은 진실을 환상이라 했고 그들의 좁은 틈을 현실이라고 말했지. 그리고 세월과 엘더 휴먼의 과오 에 의해 상당한 영성을 상실해버렸던 '존재'들은 영성을 완전히 잃고 소수의 종족이 되어버 렸지…… 그리고 그것 때문에 만들어진게 '증오하는 일족'이다. 지금의 몬스터들은 인간을 사냥하지만 완전 적대는 아니야. 하지만 '증오하는 일족'은…… 인간의 사회에 침투해서. 안 에서부터 붕괴를 일으킨다. 인간의 숫자를 줄여서 과오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거야." 여기서 바인에게 목덜미를 잡혀 이 화면을 보게 된 휴이즈가 '뭐라고?!'라고 외치며 풍부한 성량을 자랑했다는 것은 미리 말해 두겠다. 클레이브는 말하기 시작했다. "'증오하는 일족' '모든 존재'의 피를 받았다. 말하자면 혼혈이지. 엘더 드래곤에서부터 수 억에 다다르는 피를. 그러면서도 인간의 피는 한방울도 없는 주제에 인간형이라니 참 우습 군. 어쨌든 '그들'은 '네가지 힘'. 그러니까 기, 영기, 마나, 에테르. 혹은 그와 역행되 는 '반대편의 네가지 힘'도 쓰지 않아." 클레이브는 '증오하는 일족'을 생각하는 것인지 입맛이 쓴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 신도 모르게 도취되어 버린듯 했다. "그들은 아름답지만 감정은 없다네. 스스로 인간의 사회에 살다 보니 인간의 그 오염력에 녹아버린 자들도 있지. 인간의 감정은 지니고 있지 않아. 대신 풍부한 감정을 지닌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네. 그들의 힘은 '다스리고' '교감하고' '심판하는' 힘. 모든 살아있는 영 성이 있으며 없는 것들의 힘을 받아들인 존재. 모든 동물의 친구이자 군주." 잠시 말을 끊은 클레이브는 다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것은 바인도 모르는 이야기로 드 래곤들 사이에서는 터부시되는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이 무렵에 휴이즈가 '아름답다 고? 언제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군'이라고 말했다가 바인에게 몇대 맞았다)…… "그 영성 하나만큼은 드래곤에 견줄수 있지. 힘은 물론 그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들은 '두 개'의 목숨을 지니고 있는 일족이기도 하지. 그들이 한번의 죽음을 맞았을때. 그들의 피에 깃들어 있는 레서 휴먼에 의해 영성을 상실한 수많은 일족들의 '한'이 펼쳐져 심판을 내리 지. 모든것을 파괴하는 장엄한 테피스트리. 엘더 드래곤들도 그 앞에서는 피하지. 거의 신급 에 다다른 초 고룡이라면 간단하게 누를수 있겠지만 1억년 이하 정도의 세월을 보내 아직 물질계에 고착된 드래곤이라면 반항도 해볼수 없지." 이런 이유였기 때문이다. 젊은(?) 드래곤이라면 반항조차 할수 없는 피와 광기, 증오와 한 의 테피스트리…… 그 강대한 심판이 내려지는 순간 그 구역 전체의 '영성이 남은' 것들은 멸 절당한다. 절대라고 불러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신위로써. "테티스. 아니 우리의 과오인 셈이라네. 엘더 휴먼들이 남긴 과오중에서는 티끌만도 못한 것 이지만 그래도 피의 값은 대단한 무게를 지니고 있으니. 어쨌든 테티스도 이번 건에서는 손 을 떼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증오하는 일족'. '대신하는 일족'들은 계속 살아가고 있지." 클레이브는 마침내 일어서서 냉장고 비슷한 곳에서 물병 하나를 꺼내 컵을 가져다가 물을 따랐다. 이 세상에서는 상당히 보기 힘든(물잔으로는 잘 만들지 않는다). 굉장히 잘 만들어 진 디자인의 유리컵에 물을 따라서 헤인에게 한잔을 밀어주고 자신이 마셨다. 아무리 키메 라라도 역시 물인가. "그들의 번식은 일반적인 번식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에 숫자는 거의 같지. 그래 서 그들에게 혼혈이란 없다네. 개체가 두번 죽어서 사라져도 그 자리엔 바로 다시 '증오하는 일족'의 일원이 될 아이가 하나 탄생하지. 원래 번식 수단은 그것과는 다르지만. 배타적이면 서도 '대신하고 있는' 종족. 이율 배반의 극치지. 테티스는 나름대로 성공할수 있으리라 생각 하고 만들었는데 영성을 지니고 있어서 더 빨리 증오에 불타버린 셈이야." "음? 그래? 그럼 '증오하는 일족'을 뭐라고 하는데?" 헤인은 의외로 착실히 들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하는 모습을 보면 별로…… 지금 그는 장기 말을 움직여서 다시 정리하고 착실하게 늘어놓았던 모양이다. 머리 속에는 이미 렌시아의 존재 따위 사라져 버린지 오래였다. 렌시아는 이미 아라테온에게 붙잡혀서 바인들과 함께 있었다. 헤인은 반말을 찍찍 내뱉었지만 클레이브는 별로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답은 클레이브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좀더 청량하고 맑은 목소리였다. 말하자면 여성의 목소리랄까? "Type-Duplicational Recorder. 원래는 증오하는 일족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라 '계속되는 기록자'로써 만들어진거라고. 똑바로 말해 클레이브." "하지만 그게 아니잖습니까? 테티스. '증오하는' 이라는 단어 만큼 어울리는게 별로 없는 일 족이 그들이지요. 애초에 기록자로 만드실 거였다면 인간의 피도 같이 섞어서 유전자의 코 드를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것도 이미테이션을 여기다가 영사하시다니 말입니다." 161 테티스는 이 유적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요하다면 위성을 이용해서 이 행성 어디 에나 자신의 모습을 영사할수 있었다. 그냥 빛의 파동이 아니라 염이 실린 마법적인 것이었 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했다. 위성들이 그리는 마법적 궤진은 이 행성 전체에 영역을 펼치 고 있었기 때문에 그정도는 쉬웠던 것이다. 밤하늘에 보이는 별의 5%가 위성…… 어마어마한 숫자이지만 어떻게 보면 이 행성 '전체'를 컨트롤하기에는 모자란 양일 수도 있었다. 게다가 보이는 별의 양은 계절, 그리고 행성의 공 전주기 위치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고 날씨 역시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5%는 추상적인 말이었다. 별이 빼곡히 들어찼다는 말이 어울리는 하늘에서는 5%가 아니라 1%도 되지 않겠지만 이것 도 결국 상대적인 경우에서 였으니까. 문득 테티스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헤인에게는 절대 잊을수 없는 것인지라 테티스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그는 제정신을 차렸다. "'영성을 앗아간 것'을 증오하는 일족이라면 맨 처음 '인간을 증오하는 일족이 만들어졌다'라 는 말은 틀린 것이 아닌가."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레서 엘프, 레서 드워프, 레서 노움 들은 예의 '말살'에는 거의 끼지 않았습니다. 일부만 끼어들었을 뿐. 대부분 인간이 주도한 사건이었으니 당연히 '인간 을 증오하는 일족'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지요.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도 인간이 아닙니 까." 바인은 역시 클레이브가 인간이 아니어서인지 늙은이라도 그냥 반말을 내뱉었다. 고압적이 었지만 클레이브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듯 했다. 헤인에게 하대를 했다는 것을 생각 해보면 무언가 이상했다. 사실 정말 노인이라도 절대 존대를 하지 않을 바인이었지만. 한 나 라의 국왕일지라도, 심지어는 신이라도 바인에게 존대를 들을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자가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을 관할하는 자인가. 테티스? 뭐 생명체라고 하기 에도 좀 뭣하지만……" "예. 마스터." 테티스는 극경極敬에 가까운 자세로 대답했다. 목소리나 동작 모두에도 감정이 확실히 깃들 어 있었다. 그나저나 감정이 정말 있는 존재일까? 영혼이 아닌 이상 프로그램일 텐데 말이 다. 전기적 신호로 보기엔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느낌이 강하고…… 역시 마법적인 힘으로 창조된 인공 영혼체인것 같았다. 어쨌든 그것을 보고 헤인은 충격을 받았다. 테티스는 일단 인간이 아니지만 놀라울 정도의 미인에 속하는데 바인에게 완전히 복종자세 아닌가! 렌시아나 헤인이나 여기서는 별로 의견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바인은 테티스가 절대충성을 바치는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는것 같았다. 아무리 인격이 변했어도 익숙한게 아닐텐데…… 그런데 클레이브는 오히려 감동한듯 한게 아닌가? 바인의 몸에서 철철 넘치는 카리스마는 그야말로 엘더 휴먼 중에서도 발견하기 드문 것이었다. 게다가 바인은 거슬리지 않는 수준 하에서는 '나름대로의 상대주의'를 갖고 있는 놈이었다. 군주로써는 최악이면서 최상인 조건 인 것이다. 사욕도 거의 없고…… "테티스. 드디어 '우리들의 마스터'를 찾았군요." "맞아. 정말 자격있는 영혼을 찾아냈지." 그러나 바인은 클레이브나 테티스. 이 어마어마한 권능을 손에 쥐고 있는 두 존재를 전혀 존중해줄 생각이 없는 것인지 대화하든 말든 무시해버리고 있었다. 테티스가 원한다면 바인 쯤은 가볍게 죽여버릴수 있을테지만 바인은 전혀 꿀리는 감이 없었다. 그는 참 느긋하게 헤 인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을 까닥였다. "저쪽으로 가 있도록." "……쳇." 상당히 기분 나쁘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헤인이었지만 자신만 어정쩡하게 떨어져 있 는 것도 좀 그래서 투덜대긴 했지만 곧 렌시아들 쪽으로 향했다. 휴이즈는 어쩐 일인지 궁 시렁거리며 머리에 회복신성법을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 이야기를 들을때 증오하는 일 족에 대해서 뭐라고 한마디 한것 때문에 한대 맞은것을 치료하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빨리 안내해 주지 않겠나. 엘더 휴먼들중 9서클의 끝에 이르른 자들이 10서클을 터득하기 위한 시련을 겪었다고 하는 장소에." 아라테온은 그 소리를 들어서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휴이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까 지 들은 바로는 저 테티스라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한 존재가 이 유적 전체를 총괄하는 시스템의 자아이고 바인이 그 마스터로 선택되었다는 것(실은 바인이 테티스가 자신을 마스 터로 선택하게 만들었다고 하는것이 정확하다)까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10서클이라니?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또 뭐지. 이 지하 도시나 엘더 휴먼에 대해서는 다 들려주지 않았나. 그 웃기지도 않은 이 유 때문에 싸그리 날아가버린 그 어처구니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말이야. 이 도시에 대해서 라면 이미 모르는게 없는데." 바인이 드물게 표정을 드러냈다. 짜증어린 표정이라는게 문제였지만. 헤인은 어쩐지 울컥 하 는 기분이 들었다. 바인은 자신을 군주로 정한 존재들에게 어떤 경의도 표하지 않았던 것이 다. 아니, 아예 존재 취급을 하지 않고 있었다. 테티스나 클레이브나 그에 대해서는 불만도 없었지만 헤인이 좀 울컥 해버린 것이다. "아니…… 그것 보다는 단지 어떤 존재가 이 유적에 침투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겠지. 안 그런가?" 순간 바인을 비롯하여 이 방에 있던 모두는 경악했다. 어떤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갑자 기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모두는 경계하긴 했지만 아라테온은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 했다. 아라테온은 자신에게 익숙한 목소리라는 사실에 치를 떨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에겐 악의나 살의가 없었기에 경계하기만 했을 뿐인데 왜 아라테온이…… 그때 벽면이 일그러졌다. 아니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그렇게 보인 것 뿐이었다. 공간이 일그 러지면서 겹쳐져 있던 아공간에서 누군가가 가벼운 몸놀림으로 튀어나왔다. 찬란하게 빛나 는 긴 금발이 한올한올 멋지게 흩날리며 쏟아져 내렸다. 키는 바인보다 좀더 컸고 몸매도 늘씬했지만 남성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외모였다. 앳되다기 보다는 깨끗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퇴폐적인 구석이 있는 아름다운 외모였다. 이 목구비도 확실하고 목소리도 미성인데 다만 문제점이 있다면 텅 빈 듯한 느낌에 광기를 덧 씌운 듯한 특이한 분위기에 퇴폐와 광기로 치장하고 있지만 무심하기 그지없는 눈동자였다. 순금의 홍채에 황금의 눈동자라니. 머리카락은 홍채의 색과 같았지만 이상하게 빛이 난다는 느낌이었다. 투명하리만치 희어서 바인의 피부보다도 더 흰 느낌에 티조차 없었지만 서양 특유의 거친 느낌은 존재하지 않았 고 오히려 동양인의 피부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가느다란 팔다리에 길다랗고 가는 손가락. 역 시 전체적으로 가는 느낌이지만 분위기는 칼날같았다. 일전에 유리엘을 가르친 바 있었던 엘더 드래곤의 영원한 군주인 용신龍神 리아네리스였다. 그는 여전히 여유있으면서도 가벼운 발걸음이었지만 아라테온은 명백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 었다. 그러나 그런 적의에도 별로 아랑곳 하지 않고 리아네리스는 아주 느긋하게 미끄러지 듯 걸어내려왔다. 아름답긴 했지만 인간답진 않았다. "……드래곤? 아니 신?" 바인은 문득 느껴지는 영혼의 향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이라면 9서클 마스터다 못해 10서클이라도 할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그 본질은 천신의 것. 그래서 당연히 사멸과 붕괴 의 힘을 바탕으로 그 파장을 흐릿하게나마 느낄수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인지 신인지. 드래 곤에서 벗어나 신이 되었다면 드래곤의 느낌은 전혀 없어야 하는데 이것은…… "호오? 예리한데?" 그는 바인을 바라보며 흥미가 동한듯 느긋하게 웃어보였다. 아라테온은 적의어린 표정으로 리아네리스를 쏘아보고 있었으나 그는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의 시선이 아 라테온에게 가 닿자 그의 입가에는 명백한 조소가 감돌았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 조소는 스스로에게도 향해있다는 것이었다. "엘더 라이칸스롭의 생존자중 하나로군. 으음…… 이 느낌은 위어타이거WereTiger인데. 아. 기억 났다. 미안하군. 너무 기억 량이 많아서 떠올리기가 쉽지 않아. '풀 문'의 셀리버 였지? 아라테온이었던가?" "……기억은 하는군." "피의 무게는 신에게도 무겁다네. 생존자." 아예 도발이라도 하는 것인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바인은 칼날 같이 찔러오는 금빛의 눈에 움찔 했다. 금빛이었지만 다른 누군가를 생각나게 한다. 그는 광 기도 악의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닮아있었다. 바인은 움찔 했지만 곧 무심하고 심유한 눈으 로 칼날같은 눈을 마주했다. "후. 그놈의 '창조물'중 하나인가? 타입은…… 사멸? 붕괴? 아니면 둘 다?" 그 말에 바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것은 분노 같은게 아니라 '창조물'이라 는 단어 때문이었다. 창조물? 만들어졌다…… 뭔가 이상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는 상 당한 거리가 있는…… 그는 바인을 농락한 것이 아니었나? 바인의 생각과는 아랑곳 없이 리 아네리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각성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군. 의외로 만드는데는 별로 소질이 없다니까. 아니 서너번 만들 어본것 치곤 굉장히 잘 만든 거겠지? 나는 처음부터 만드는데는 정말 재능이 없었으니까. 꼴불견에 엉망이었지."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지 혼자서 중얼대는 모습은 꽤나 불안했다. 일단 생겨먹은 것부터 아 름다우니 당연히 표정 하나하나가 변할때마다 그 위압감과 함께 사람들 심장을 덜컥 덜컥 흔들어 놓는다. 게다가 신으로써의 어떤 분위기 때문에 '생물'에 속하는 것들은 동요하고 있 었다. 영격이 높은 존재에게는 당연히 끌리게 되어 있었다. "……만들어져?" "의외인데. 아직 몰랐나? 그럼 알려줄수는 없어. 시나리오를 망쳐놓으면 그녀석 상당히 기분 나빠할 테니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수는 없잖아? 할수는 있지만 리셋은 별로 기분 좋은 선택이 아니지. 루프니까." 리아네리스는 거기까지 말하고 바인에게서도 신경을 끈듯 했다. 그는 자신의 애검중 디옵사 이드를 뽑아들었다. 루인 블레이드는 유리엘에게 넘겼기 때문에 다크 디옵사이드만 남아있 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일행들중 누군가에게 겨누었다. 아라테온이었다. 그리고 검을 자세히 바라보라는듯 잠시 멈추었다. 아라테온은 그것만으로도 잔뜩 긴장한 것인지 짐승의 그르르릉 거리는 듯한 소리를 울리고 있었지만 리아네리스는 가볍게 검집을 끌러서 검을 검집에 꽂아넣고 그것을 아라테온에게 던져버렸다. 아라테온은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들었다. 순간 검집에 꽂힌채로 다크 디옵사이 드는 우우웅 하고 울어젖혔다. "이제 슬슬 시작이겠군. 하아…… 그나저나 애검들을 다 흩어놓다니. 뭐 20년도 안되서 회수 할수 있겠지만……" 리아네리스는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눈을 감고 오른손을 들어 공간에 손을 푹 찔러넣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뒤적거리는 듯 했다. 세상에. 손으로 그냥 푹 찔러 아공간에 손을 집어넣어 물건을 찾다니. 마법사는 할수 있는게 아니었다. 하급신만 되도 간단하게 할수 있는 것이었 지만 그는 아주 여상스러웠다. 정신 집중도 필요 없는 것이다. 한 20초 정도 뭔가를 뒤적거리던 그는 전능한 의지를 별로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지 육신의 움직임에 모든것을 기초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공간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그 리고 약간의 조소와 함께 그것을 바인에게 집어 던졌다. 바인은 그것을 받아 들었는데 놀랍 게도 그것은…… "이, 이것은……" 바인의 입술이 가볍게 떨려왔다. 바인은 이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조용히 그것의 손잡이를 잡고 뽑아들었다. 스르르릉 하는 소름이 돋게 하는 맑은 울림과 함께 은빛 의 검신이 드러났다. 매끄러운…… 하지만 그건 검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예도銳刀였다. 하지 만 바인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놈의 것이군."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나?" "이것이…… 동생의 심장을 헤집어 팠지." 그는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건 뭔가 반응이 달랐다. 휴암환을 쓰고 있어도 너무나 도 여상스럽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도신은 다 뽑혀 나왔다. 손질은 제대로 되긴 했지만 피 를 먹지 않았다가 먹어서 인지…… 도신은 색이 이상했다. 아랫부분은 그냥 은빛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위쪽은 마치…… "피…… 자국.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나." 동생의 심장을 헤집어 팠다는 소리를 들은 즉시 휴이즈나 아라테온 등은 놀라서 그 칼과 바 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인은 냉소하며 칼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리아네리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나서 씹어뱉는 듯한, 지옥에서 끓어 오르는 화염을 빙벽에 가둔 듯한 목소리 로 말했다. "그 빌어먹을 놈이 이걸 보내주는 저의가 무엇인지 모르겠군." "마법사니까 알수 있겠지. 그래도 9서클 아닌가?" 예리하긴 하였으나 그 윗부분의 몸은 약간의 자국이 남아 있었다. 피는 다 닦여 나간듯 했 지만 변색 되어 있는 것이다. 아주 미미하였고 완전히 변색된 것과는 많이 달랐다. 닦아 내 고 정련 했지만 피를 먹은 이상 지워지지 않을 색깔이었다. 아예 용광로에 처박아서 다시 되살려 낸다면 모를까…… "후…… 아주 고맙다고 전해줘. 그것도 가능한가." "아스트랄 플레인 같은게 날 막을수 있을리는 없으니. 놈이 별로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아도 그냥 쳐들어가면 될 일이고. 하여튼 그놈도 악취미야. 굳이 이런 식으로 비비 꼬면서 행동하 고 싶을까." 리아네리스는 전에 천빙을 다루던 케셀이 그러했던 것처럼 손으로 공간을 짚어 웜홀을 튼다 음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검도 뭣도 없어서 홀가분한 듯 했지만 어쩐지 어색해보였다. 역시 리아네리스에게는 검 만큼 어울리는 악세사리가 없었다. 뭐 필요하다면 다크 디옵사이드 같 은건 대량으로 창조할수도 있었지만…… "……의지를 읽으면 되는건가?" 바인은 냉소하면서 마법기 들을 이용해서 메모라이즈 하지 않은 9서클의 주문인 사이코메트 리Psychometry를 시전했다. 단지 기록된 영상이나 염을 읽는 것과는 수준이 다른 주문이 다. 괜히 9서클이 아닌 것이다. 시간과 공간마저 초월하는 의지로 읽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보 다 확실한 영상을 얻을수 있었다. 단편적으로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하는 일반 사이키커들의 힘 과는 수준이 달랐다. "사이코메트리." 바인은 나지막하게 시동어를 외웠다.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스트림을 그리면서 움직이고 여러가지 복잡한 계산과 함께 재배열되자 시동어라는 열쇠는 그것을 구현했다. 그리고 바인 의 손끝을 타고 '정보'들은 대량으로 그의 뇌를 향해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바인의 입가에 조소가 맺혔다. 파창! 칼날이 깨어졌다. 수백조각으로 떨어져 나와 은가루를 흩날리며 떨어져 내린 예도는 간단하 게 흩어져서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고 바인은 칼자루도 부스스스 하고 흩어져서 사라져버리 자 손을 탁탁 털었다. 여전히 그의 입가에 매인 조소는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그는 크크크 큭 하는 긁는 듯한 광소를 흘리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거 굉장하군. 재밌는걸 알았어. 아주 재미있는 걸…… 크크크크." 한동안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광기를 뿜어내던 바인은 그 퍼포먼스 하나하나에 절도가 뚝뚝 떨어져 나오는 듯한 동작으로, 무심한 눈빛을 되찾은채 테티스를 주시했다. 테티스가 자연스 럽게 고개를 숙이면서 닐의 자세를 취하자 바인은 명령을 내렸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테티스 역시 자연스럽게 그 명령을 받았다. "잡혀있는 인간들중 후작을 데려와. 에고가 걸린 1급 마법기의 소유자다." 떨어지는 위엄, 퍼져나오는 광기. 두개의 섬뜩한 모습에 질려있던 휴이즈도 간신히 제정신을 차렸다. 폭풍처럼 나타났다 사라져버린 리아네리스. 그 후로 드러난 섬뜩한 바인의 모습. 바 인은 무엇 때문인지 깨어진 예도의 조각들을 바라보며 가끔 얼굴을 감싸 쥐며 다시 광소를 흘렸다. 대체 무엇을 알았기에…… 바인에게 진실을 털어놓도록 강요할수 없었다. 강요라는 것 자체도 성립되지 않았고 말이다. 하지만 바인의 입이 열리면서 그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2남 1녀의 남매가 존재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남매는 아닌가. 어쨌든 그들 은 나름대로의 행복함 속에서 살았지. 정말 행복했어. 아니 행복할 수밖에 없었지. '그렇게 만들어진 환경'이었으니까."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고 점점 휴이즈들의 안색은 질려만갔다. 이야기에 질린게 아니라 바인 에게 질린 것이다. 바인은 광기를 어느새 싹 씻어버리고는 아주 느긋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걸린건 여유있는 듯한 미소였지만 실상은 조소였다. 세상을 얼려 버릴 듯한 냉 소 역시 깃들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조소였다. "'형'이라고 생각했던 존재는 인간이 아니었어. 아하. 그 이하 동생들도 괴물이니 아주 멋진 남매들이었군. 사실 죽은게 아닌거야. 죽은건 인형인가. 아. 그럼 나도 설마 인형인건가? 원 판이 나타나면 아주 재미있겠군. 재미있겠어." 바인은 냉엄한 신색이었지만 실성한듯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섬뜩한 무언가가 치미는 듯한 느낌이었다. 휴이즈는 조금씩 안색을 굳히고 있었다. 9서클 마법사가 미쳐버린다면 그 야말로 사태는 끔찍할 것이다. 효율적인 사용법이 사라져도 마나는 그를 따른다. 그가 닥치 는대로 파괴하기 위해 염만 떠올려도 마법은…… "옛날 기분이 나는데. 역시 마법기란 편하군. 휴암환이라…… 쓸만한데." 횡설수설한 느낌은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딱딱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결코 안심이 되지 않 았다. 미친놈이 분위기 잘 바뀌는건 상식중의 상식이다. 미친놈은 상식이 먹히지 않지만 상 식이 먹히지 않는다는게 상식이 되어 있었다. 정형화하며 미치는 놈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상식이 먹히지 않는다. "동생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한 미쳐버린 소년이 어쩌다 이런 힘을 얻은거지? 그래도 나름 대로는 평범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바인은 냉소하면서 예도의 파편을 짓밟았다. 그런데 우습게도 파편이라도 강철인데 푸스슥 하고 부서져버리는게 아닌가. 과도한 의지와 기억을 담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박살나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긴 마법의 힘이란 강력한 것이니. 바인은 테티스와 의지를 통한다 음 바로 익스팅션 주문을 이용해 남은 파편들을 모두 소멸시켰다. 9서클이긴 했지만 이걸로 이미 10서클에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10서클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정신력 수준. 마법을 다루는 기교. 스펠의 양. 그리고 본질적인 깨달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10서클의 주문들. 10서클의 주문들을 손에 넣는다면 바인은 9서 클의 마스터 열명이 덤벼도 모조리 다 박살내버릴수 있었다. "아라테온." "……으, 음?" 아라테온은 상당히 질려 있었지만 바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점 감정도 깃들지 않았지만 냉엄한 모습으로 돌아와 질문하자 간신히 대답 비슷한 것을 했다. 바인은 이제 완전히 광기 를 벗어버린 것인지 고요하게 돌아와 있었다. 예도 파편이 사라져서 인지 광기도 어느정도 는 제어가 된듯 했다. "그 검. 보여주겠나." "……이것?" 아라테온이 반문하며 검집채로 들어보이자 바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집만 봐도 범상치 않 았다. 백색, 흑색, 은색으로 심플하게 마감해 놓은 검집으로 겉 모습만 봐도 현기가 느껴지 는 듯 했다. 그리고 그 기세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둠의 그것이었다. "뽑아봐." "……뽑힐까." 아라테온은 자문해 보았다. 엘더들의 마을 두개를 전소시켜버린 사내 리아네리스의 애검이 었다. 그 압도적인 강력함. 신의 힘…… 그 존재가 쓰는 무기인데 과연 미약한 자신에게 뽑 힐까. 대답은 부정적이었지만 아라테온은 그립Grip에 힘을 더하면서 조용히 검을 뽑았다. 세 검에 곧은 검신. 세이버 같지도 않았다. 스르르릉 예리한 검명이 울려퍼지면서 검이 검집에서 벗어났다. 그리 길지 않으며 손에 착 달라 붙는 다. 아라테온에게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류의 세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흑색이며 반투명 한 듯 은빛을 머금고 있는 예리한 검날. 찬란하게 빛나는 듯한 느낌은 없지만 어둠에 가라앉 아 있는 빛을 보는 듯 했다. 가드나 힐트, 폼멜은 검소했지만 은빛과 흑색으로 멋지게 치장되 어 있었다. "밸런스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무게감. 그러면서도 완벽한 밸런스.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았다. 신검神劍이라고 할까? 리아네리스 그가 검따위에 구애받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왜 이런걸 건네준 것일까? 강대하고 광폭한 어둠이 가라앉아 있는 검. 차분하게 포용하는 듯한 광택이 흐르는 검신. "역시…… 에고가 있군. 너 외엔 어느 누구도 쓸수 없는 무기다. 아니, 그 주인 되는 자라면 가능하겠군. 그의 이름은?" "……리아네리스. 리아네리스 드 골드." "드래곤의 향기와 신의 향기를 모두 지니고 있으면서 광기와 허무함을 다 지닌 존재. 특이 하면서도 특이하지 않아. 그 검 역시 마찬가지인가. 금같은 빛하고는 완전히 반대되는 어둠 이지만 그만큼 어울리는 무기도 드물군." 162 "라이트Light. 중첩重疊." 바인은 마나를 응집시키고 빛을 발아시켰다. 빛은 공중에서 뻗어나왔다. 씨앗에서 싹이 트는 것처럼 벌어져 나온 빛. 광점을 공중에 고착시키고 그것을 중첩시키자 공명이 일어나면서 어마어마한 광량光量의 에너지가 응집되기 시작했다. 바인은 짜증을 내는 듯 툭 터는 동작 으로 소매를 휘둘렀고 그 가벼운 소매틱은 공격주문이 되었다. 시동어도 필요 없었다. "5서클의 룩손 피치Luxon Pitch…… 그런걸 시동어도 없이 쓰다니." 아라테온은 마법적 지식이 풍부해서 촉매가 마련되었어도 고작 소매틱 하나로 5서클을 써 갈기는 바인에 대해 놀라고 있었다. 바인의 소매가 펄럭이자 마자 공중에 응집된 어마어마 한 광량의 에너지는 다시 공명하면서 파장이며 입자인 그 성향을 충분히 살려 수만개의 바 늘로 화해서 물속으로 꽂혀 들어갔다. 빛의 주문은 물에서는 산란, 굴절되기 때문에 보통은 광선이나 열파 같은 경우 물을 이용하 면 쉽게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바인이 쓴 주문은 오히려 물리력에 더 큰 성향에 치중된 것인지 물을 관통하고 들어가서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모든 마법적으로 개조된 투 명한 생선(?)들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체외로 유출된 체액은 마법적 힘을 잃어버리는 것인지 곧 물은 기이한 녹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바인은 그것에서 불쾌함을 느낀 것인지 다시 룩손 피치를 걸었다. 룩손이란 질량 이 0이면서 광속도로 움직이는 입자를 말하는 것인데 공기중의 광입자를 가속시켜 질량을 무화시킨후 그것을 응집하여 물리력을 갖게 하는 주문이었던 것이다. 왜 5서클인지 짐작도 안되는 난이도의 주문이었다. 하지만 소모 마력량이 그리 크지 않아서 난이도는 6서클을 넘어 7서클에 준하는데도 5서클의 주문이었다. 그래서 7서클 정도의 마법 사 정도가 돼야 룩손 피치를 자유로이 운용할수 있었다. 이미 실전되어버린 주문으로 드래 곤들이나 알고 있는 마법이었다. 아니면 특수한 경우거나. 모르지 또. 산골 깊숙한 곳에서 은거하는 괴팍한 8, 9서클 마법사들이 그런 실전된 고급주문 들을 은근슬쩍 맥으로 잇고 있는지. 마법이란 단지 마법서만으로는 배우기 힘들다. 수많은 시전, 단련, 마나와의 동화, 그리고 공부! 어마어마한 노력이 깃들어야 조금이나마 더 소화 해낼수 있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노력이 없으면 안된다. 마법서…… 말이 좋지 적어도 7서클 마법사는 되어야 마법서만 보고 마법을 배울수 있는 법 이다. 6서클까진 깨달음이 필요 없지만 7서클 부터는 정신, 의식, 무의식을 좌지우지 하는 가치관이나 깨달음도 마법에 굉장한 영향을 주는 것이다. 마법은 영성적인 것이라 기처럼 어떤 운용의 깨달음보다는 정신의 각성이나 자아의 튼튼함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상위의 브레인에 속하고 스스로를 강철같은 관념으로 붙들면서 모든 것을 조소하는 이라도 그 스스로를 조성한 환경에는 트라우마 같은게 있는 법이었다. 사랑받고 자란 주제에 그런 관념을 지니고 있다면 태어날때부터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잘못 배워서 일 것이다. 아니면 구제 불능의 정신수준을 지녔거나. "아라테온. 룩손 피치의 술식術式이나 재배열 방식. 구조 같은거 알고 있겠지?" "……룩손 피치는 실전주문이라고. 5서클 부터의 마법은 인간에게 마법을 배운 내가 쓸수 있을리가 없잖아. 실전 마법중 4서클에 포함된 것들 정도는 알고 있지만 나머지는…… 게다 가 룩손 피치는 고위 주문에 혈육이라도 전수해주기 꺼려질 정도로 강력한 마법이야." 바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라테온이 조금만 말해주긴 했지만 굉장히 강력한 존재인 듯한 그 금발금안의 사내(라고 보기엔 바인도 상대가 안될 정도로 지나치게 아름답지만)에 의해 그의 마을이 전소 되어버렸으니…… 4서클 까지의 마법만 배웠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아라테온은 엘더 이지만 모두 배울 기회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벼락주문을 쓰지 않은거야?" "민물이라서." 바인은 그렇게 말하고 벼락 주문을 외워 전위를 변경했다. 말이 쉽지 전위를 변경해서 제어 하고 벼락을 날리는 것은 굉장한 고난이도의 작업이다. 하지만 마나 재배열이라는 특성상 굉장히 쉽게 할수 있었다. 게다가 바인은 9서클의 마법사가 아닌가. 9서클의 유저나 익스퍼 트도 아니고 마스터다. 어쨌든 새하얀 전광의 칼날이 물에 꽂혔지만 파지직 하고 근사한 사운드 이펙트와 함께 스 파크만 일어났을 뿐 물로 전하가 퍼져나가지는 않았다. 아직 남아 있는 생물들을 향해 다시 룩손 피치를 사용해서 모조리 다 쓸어버린 바인은 한숨을 토해냈다. 일반 광파光波계의 열 선 주문 같은 경우 잘 먹히지 않는다. 물을 단숨에 수증기로 만들다 못해 에너지로 수소, 산소로 분해시켜 버릴 수준의 열파주문 이라면 상관 없지만 여긴 밀폐된 장소라서 그런 강력한 주문을 썼다간 모조리 다 산소가 고 갈되어 버릴 것이다. 바인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런 곳은 정말 곤란한 장소다. 10m 높이까지 뛰어오를수 있는 개조된 수중 생물이 존재하는데 그 생물이 임프로브드 인비 저빌리티의 능력을 지닌 인비저블 스토커(몬스터의 일종이다. 투명하고 강력한 마법생물)의 힘을 이식해 놓은 거대화된 미스릴 이빨을 지닌 처치 곤란의 생선들이다. 그런 놈들이 헤엄 치고 돌아다니는 민물만 가득 채워진 통로라니. "풍계 주문이나 역압도 잘 먹히지 않고…… 역시…… 이것이 먹힐까." 바인은 이맛살을 찌푸리곤 일단 블래스팅 팡을 뽑고나서 캐스팅에 들어갔다. 바인이 캐스팅 에 들어갈 정도의 주문인 것이다. 짤막하지만 캐스팅이 끝나고 바인은 마나를 인도해서 블 래스팅 팡의 검극에 그것을 모았다. 블래스팅 팡의 검극을 물에 꽂아 넣자 갑자기 어마어마 한 빛이 물에 전이되는게 아닌가? 일단 물의 입자 수만개에 에너지를 전달한다. 과도한 에너지로 인해 튀기 시작한 입자는 다 른 입자와 부딪히며 에너지를 전달하고 곧 그 어마어마한 에너지는 물 전체로 퍼져나간다. 열이 아니라 순수 물입자 이동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인력에 의해 뭉치게 되고 물들은 방울 하나하나로 분리된다. 그리고 그 분리된 물은 음속으로 튀어나가는 것이다. 바인은 그 주문을 시전하자 마자 블래스팅 팡을 들고 포스 필드를 몇겹 정도 치고 진공막을 쳐서 음속 이상의 스피드로 비산飛散하는 수탄들을 막아냈다. 물의 탄환들이 요란하게 비산 하고 나자 이미 이 구역을 가득 채운 수로의 물에는 대부분의 물이 사라져버렸고 공기중에 눅눅한 안개만 가득차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강철같은 강도와 경도의 비늘을 지닌 변태적 인 생선(?)들은 멸절되어버렸다. 이 외에도 초진동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죽이거나 대량의 마법적 독을 풀거나 방사선으로 관 통시켜 버리는 방식이 있었지만 이게 바인에게는 더 간편했다. 이 전의 수로에서는 검극을 꽂아넣고 물의 흐름을 제어, 소용돌이를 생성시키고 그 소용돌이에 슬라이스, 피어싱 주문을 퍼부어서 모조리 다 죽여 없앴지만 전의 수로보다 더 길고 복잡한 지금의 수로에서는 그게 비효율적이었다. "그런데 바인. 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음? 후작을 포섭한것 말인가." "그리고 마법사 길드도 삼킬거라고 했지? 대체 왜?" 바인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그 와중에도 정신을 집중해서 투시 마법과 초음파 방사를 이용한 공간 구상으로 몇가지 정보를 취득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육신에 예속되어 있는 주제에 동시작업이 가능했다. 양의분심공 같은걸 익히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런 짓 을 할수 있을까? 마법이 그에겐 손발보다 더 익숙해져 있었다. 마법의 조합과 운용이란 물 론 굉장히 어렵지만 바인은 여유있게 자신의 페이스로 전투를 이끌어갈수도 있었고 이런 방 식에의 마법 사용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아슈라스 교단을 억눌러야지." "……에?" 아라테온은 멍청한 소리를 지어보였다. 아라테온도 세상 물정에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다. 돌아다닌다고 공부한 만큼 세상 물정에 밝겠는가? 하지만 마법사 길드와 아슈라스 교단의 친밀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아슈라스 교단의 어마어마한 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 었다. 물론 바인의 힘도 잘 알고 있었지만 바인 개인으로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마법사 길드는……!" "아. 물론 아슈라스 교단과 친밀하지. 하지만 난 9서클의 마스터. 길드 마스터가 되기에 충 분하다. 그리고 마법사 길드 외에 자유기사 길드나 모험자 길드, 도적 길드도 흡수할거다. 흐음. 그러려면 압도적인 힘을 증명해야겠지. 마법사 뿐만 아니라 검사로서도. 도시 몇개쯤 멸망시켜 버리면 그럭저럭 이름이 퍼지려나." 바인이 그렇게 가볍게 말해버리자 아라테온도 할말이 궁색해졌다. 말이야 옳은 말이다. 압도 적인 무위 앞에 충성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힘이 있다면 돈이야 얼마든지 모을수 있다. 계획에 무력이 가미되면 그 시너지 효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마법사 길드외에 도적 길드나 몇가지 길드도 삼키게 된다면…… 하지만 도적 길드는 문제가 있었다. "바인. 도적으로써의 테크닉은 있어?" "난 9서클 마스터야. 그리고 검사로써도 모자라지 않아. 금방 익힐수 있다. 검술이 단지 휘 둘러서 때려 부수고 자르는데만 중점을 두는게 아니니까. 내 검술은 오히려 파괴적인 것이 라기 보다 세밀하고 정교한데 중점이 있다." 바인의 말에 아라테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었다. 게다가 바인은 굉장히 세밀하고 정교 한 손놀림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성격은 전혀 아니지만 일은 섬세하게 할수 있다. 그정도면 단기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아라테온이 보기에 바인에겐 그런 야망 같은건 존재하지 않았 다. 지금까지 이야기 해준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는 물론 충분하지 않아. 단지 나는 아슈라스 교단의 '누구'에게 복수하려는 것 뿐이다. 복수라기보다는…… 음. 정확히 표현할 어휘가 없군. 어쨌든 아슈라스 교단이 그를 보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일단 그 시작으로 후작을 수하로 만들어둔 거지. 일단 위오리 나부터. 그 다음은 칼리쉬스다. 엘슈트럼은 몰라도 라마르칸트까지는 5년 내로 흡수할수 있 다. 나에겐 충분해." "……" 아라테온은 전율했다. 바인이 예전에 휴이즈를 평가하길 그는 성직자로써 대충 대충 살아가 기는 글러먹은 재능을 지녔다고 했다. 하지만 바인은 그보다 훨씬 더하다. 저 표정에 외교용 의 미소가 감도는건 생각해보기 힘들었지만 바인이라면 얼마든지 할수 있을 것이다. 아니, 외교용 미소가 아니라 카리스마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타고난 군왕이랄까. 사욕도 없고 냉철하기 그지없고 합리적이기까지 하니…… 물론 독선적 이긴 하지만 어디 독선적이지 않은 군왕 있었던가? 위오리나의 국왕도 자기 이상을 위해서 포용하고 있을 뿐이지 그 스스로의 독선이 없다고 할수 있을까? 독선 없는 군왕은 이미 군 왕이 아닐 것이다. "흐음. 내 계획에서는 인간의 숫자가 꽤나 줄어들테니 증오하는 일족도 건드려볼까. 난 인간 이 아니니 접촉해도 상관 없겠지. 엘프들은 좀 힘들겠지만 드워프나 노움들은 꽤 설득하기 도 편하고…… 그들은 이상이나 관념을 세우는데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기술의 제공이나 일 의 제공, 포상 등에는 꽤 관심이 있을테니. 개발되지 않은 미스릴 광이나 아다만티움 광을 알려주면 개떼처럼 몰려 들겠지." 카온 후작은 바인에게 굴복했다. 그는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몸이었지만 그 대상이 바뀐 셈 이다. 절대적인 충성제. 그러니까 기사로써의 어떤 메리트가 사라져가고 있는 위오리나에서 기사도 아닌 후작이 충성 대상 바꾸기는 쉬웠다. 자신의 이상, 야망을 충족시켜줄 대상으로 바인을 선택한 셈이니 그건 이용이지 충성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후작 따위가 저 바인을 이용할 가능성은 전무…… 그러니 바인은 철저하게 후작을 써먹을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구성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겠군. 대륙은 넓지만 시간은 그보다 더 많다. 내가 장담하지. 앞으로 길어야 10년이면 남쪽의 대륙을 암중으로 지배하는건 내가 될 것이다. 이 제 10서클을 마스터할수 있다면 그걸로 계획은 더 간단해지겠지. 앞으로 길어야 10년이다. 맹세하지." 바인이 '맹세'를 한 이상 길어야 10년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는 그럴수 있는 위인이었다. 어 느 누가 여행을 하다 한 여관에서 동료와 함께 뜨끈뜨끈한 스튜를 들면서 '내일부터 대륙 정복이나 해볼까'라고 말한다면 미친놈 취급을 받겠지만 그 여행자의 이름이 바인 G 워드라 면 아무도 비웃지 못할 것이다. 정확하게 그의 능력을 아는 자라면 아무도 비웃지 못한다. "……이런. 이 구역은 테티스도 봉인해놓은 곳이라 제어코드도 없는 놈들이 돌아다니는군. 아라테온." 아라테온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의 감지 범위 안에 걸려 들어오는 놈들은 제어 코드가 없는 키메라들이었다. 이곳에는 기계들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냥 봉인을 해 놓았을 뿐이기 때문 에 함정도 없었다. 그냥 수로 같은 것만 존재할 뿐이었다. 아라테온은 허리춤에 걸려있는 다 크 디옵사이드를 뽑았다. 스르릉 하고 뻗어나온 검날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반투명한 은흑의 검신에서 빛나는 영롱한 광채가 어둠속에 묻혀가며 어둠과 반쯤 동화되었다. 아라테온이 검에 기를 불어넣자 검은 어둠으로 점점 묻혀만 갔고 어둠의 오오라가 치밀면서 흔들릴때마다 은색의 잔광을 흐트러뜨렸다. 검이 가볍게 휘어졌다가 척경尺勁을 뿜어낸 순 간 검에서 은흑의 검빛이 선처럼 죽죽 그어졌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액체가 후두둑 튀어 바 닥을 적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푸시식 하고 부식되는 소리도 들렸다. "음…… 피에 산이 포함된 놈들인가?" "확실히……" "재미있겠군." 바인은 블래스팅 팡의 페시온 핀을 움직여 화염의 마법이 부여되어 있는 앰플의 홈에 꽂았 다. 그러자 페시온의 핀이 우우웅 하고 떨리면서 진주홍빛의 불꽃같은 힘을 칼날에 전달했 다. 칼날은 묘한 살기를 띄면서 적주홍빛으로 달라올라 흔들릴때마다 어둠에 붉은 잔흔을 새겨넣었다. 그리고 바인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며 검을 그었다. "헤이스트Haste." 치이이이이익 검이 곡선으로 그어졌는데 동대륙의 화경 고수가 신법을 최대한으로 전개하는 것과 유사할 정도의 스피드로 휘둘러져서인지 진홍빛 잔흔은 길게 사선으로 그어져내렸다. 검극이 완전 히 산의 피를 불태워버리고 끓어오르게 만든뒤 춤을 추며 마치 오랑우탄 같은 몸을 난도질 해버리자 그대로 불길에 타오르며 탄화된 시체, 즉 재가 흩어졌다. 바인의 몸은 잔영 수십개를 남겼다. 신법은 아니었지만 너무 빠른데다가 체계적인 보법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바인의 민첩성 자체도 최대한 속력을 내면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신법에 준할 정도였기 때문에 헤이스트가 걸린 이상 이형환위의 상승신법이나 다를바 없었다. 치익 치익 하고 검붉은 잔광이 튀었다. 아라테온 역시 소리없이 조용하게 움직여서 어둠의 오러로 몸을 휘감은채 엘더 라이칸스롭. 그것도 라이칸스롭중 최강이나 다름 없는 위어타이거의 순혈통이기에 더욱 강력한 음한의 기를 이용해 차갑고 어두운 칼날로 나타난 10여개체의 몬스터들을 베어 넘겼다. 휴이즈나 렌시아, 헤인들은 테티스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들은 지금 후작들과 함께 거주구역에 내려가 있는 것이었다. 거주구역은 이 유적의 방호 구역(그것도 굉장히 넓지만)의 안쪽에 숨겨진 거대한 과학, 마학이 조화되어 있는 도시로 지 금은 거주자도 없고 도로망에 에어 카나 텔레포테이션 포인트도 작동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 래도 가동중인 구역은 살기에 지나치게 편한 곳이었다. "주……" 바인은 너무 신진대사가 빨리 가속되어 있어서 뭐라고 말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채 검을 긋고 휘둘렀다. 일도류였지만 쌍수로 쥐기도 하고 한손으로 쥐기도 하고 다른 손으로 바꾸 어가며 눈부실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서도 완전하게 이어지면서 강대한 파괴력을 담고 있는 검격을 퍼붓는지라 정말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스타일로 안정되는 이도류보다 오히려 더 완 벽한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차……" 기합도 제대로 내지르지 못하며 바인은 검을 내리 그었고 촤악 하고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 지 조각나버린 괴물은 쓰러지며 타들어갔다. 지글지글 산이 끓어오르며 폭발했지만 광익의 에 마나를 흘려 에테르의 장막을 쳤기 때문에 그것은 바인의 피부나 옷을 상케하지 못하고 오히려 미끄러져 나가거나 튕겨나갔다. 마지막 몬스터를 아라테온이 찌른다음 몸을 회전 시키며 사선으로 내리 그어서 죽여 없애 버리고 나자 지독한 냄새가 그들의 후각에 드디어 인지되었다. 바인은 가속주문을 풀었고 아라테온은 내운기경을 가라앉혀 단전으로 되돌렸다. 바인은 짜증어린 표정으로 왼쪽 팔목 에 채워진 매끈한 은색 팔찌를 매만지며 염을 가했다. 그러자 부웅 하고 빛이 뿜어져 나와 스크린을 형성했다. 지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겠군. 한블록 남았어. 후. 키메라들을 아주 토벌하다 시피 하면서 가야 하다니…… 테티스. 대체 왜 이따위 구역을 그대로 놔둔거야?" 수로를 넘어가면서 바인은 테티스를 입에 올리며 씹어댔다. 그러면서도 금방 다시 무표정해 져서 움직이는 것을 보면 상당히 걱정된다. 물론 아라테온이 걱정한다는 것이지만. 감정의 변동이 지나치게 많아진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감정도 진심이 아닌것 같고…… 바인은 매우 혼란스러워 보였다. 스스로를 확신할수 없는…… 마법사로써는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또…… 인가." 바인은 블래스팅 팡을 휘둘러서 남아있는 붉은 잔광을 떨어냈다. 붉은 잔광은 열기의 파도 가 되어 전방으로 몰아쳐 갔고 곧 후두두둑 하고 뭔가 잔뜩 부딪히는 듯한 소리와 함께 퍽 퍽 하고 뭐가 폭발하는 소리도 났다. 바인은 뭔가 소리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파이어 볼 몇 발을 생성시켜 전방으로 날려보낸다음 윈드 블래스트 주문으로 열파를 확산시켜 대량으로 공기를 퍼부었다. 그러자 전방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속으로 들려왔다. 어마어마한 폭발의 후폭풍이 몰아쳤지만 바인이나 아라테온이나 그냥 가벼운 바람의 막으로 그것을 미끄러뜨렸을 뿐이었다. 정교한 마법 운용이었다. 바인은 전방에 아직도 많은 기척이 있음에 인상을 찡그러 트렸다. 바인과 아라테온은 모두 자신들의 짐작을 입 바깥으로 내었 다. 그런데 어휘는 달랐다. "벌레들인가?" "곤충 같은건가?" 서로를 멀뚱하게 바라보던 둘은 곧 전방을 응시했다. 벌레들이 사각 통로를 빽빽하게 점령 하며 달려드는 듯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둘은 그냥 화염폭발 정도로는 다 쓸어버리기 힘들 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무래도 곤충은 불꽃과 물에 모두 약하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곤충 이 마법적 공격에 그렇게 약해빠지진 않았을 것이고. "클라우드 킬Clout Kill!" 바인은 6서클의 클라우드 킬을 몇번 겹쳐서 시전했고 곧 주변에는 질소와 몇가지 성분들이 조합되면서 무서운 속도로 녹색 독구름을 형성했다. 마법적인 독이다. 그냥 물질의 독에 마 력을 첨가해서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염을 실어서 독 자체에도 생명력을 갉아먹는 염을 새기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강력한 주문이 이 클라우드 킬이었다. "질소산화물의 안개Nitrogen dioxide Mist!" 아라테온이 주문을 외운 후 시동어를 읊었다. 6서클 이긴 하지만 클라우드 킬과는 다르다. 마법적인 독안개에 중점을 둔 클라우드 킬이 아니라 이것은 공기중에 대량으로 포함된 질 소, 수소, 산소들을 대량으로 중첩해서 산의 안개를 까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질산이 아니 라 질소 산화물의 미세한 입자를 고농축으로 뿌려놓는 것이었다. 바인은 왼쪽을, 아라테온은 오른쪽을 맡아서 독과 질소의 안개를 깔아 놓았으니 생물인 이 상 죽지 않을수 없으리라. 과연 푸시시식 하고 부식되는 소리가 들리고 그드득그드득 하고 바닥에 부딪혀 떨어지며 죽어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바인의 아라테온의 표정이 점점 희안해져갔다. 산과 독의 안개가 옅어지는 것이다. "마, 마법적인 힘이 사라지고 있어? 벌레주제에 이중폐포가 있어서 안개들을 삼키고 죽다니! 이런 웃기지도 않는!" 바인이 질겁하며 중얼거리자 아라테온은 다시 주문을 외웠다. 바인은 짜증어린 표정으로 블 래스팅 팡을 검집에 꽂았다. 벌레 같은걸 검으로 상대할수는 없었던 것이다. 빽빽한 청남색 의 구역질 나게 번들거리는 딱지를 지닌 주먹 반 만한 벌레들이 우글우글 몰려들며 통로를 가득 메웠다. 놈들은 동료의 죽은 시체를 갉다가 독과 산에 죽어갔지만 그러면서도 또 뒤에 오는 놈들은 계속 동료들의 시체를 갉아먹었다. 전광석화의 스피드로 갉아먹어대는 것이다. "크윽! 처치 곤란이군!" "뭐가 좋을까." "일단 한번 더!" 둘은 질소산화물의 안개와 클라우드 킬 주문을 계속 여러번 외워서 한가득 통로에 깔아놓고 포스 필드를 몇겹 쳐서 통로를 가로막았다. 그러자 통로에서 울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 만 적어도 산과 독무의 침투를 막을수는 있었다. 다시 둘의 표정은 구겨져 갔다. 왜냐하면 다시 독과 산의 안개가 줄어들어갔기 때문이다. 이건 끝이 없다! "이렇게 되면 일단 화염폭발 주문으로 처리해야겠군." 바인은 블레이즈 파이어 볼 여러개체를 띄운다음 놀랍게도 블레이즈 파이어 볼 주변 공간 자체를 저쪽 공간과 전이한다음 옮겨져온 몇몇 벌레들을 블래스팅 팡으로 수십조각 낸다음 화염주문으로 불살랐다. 한마리도 남김없이. 전이된 주문에 염을 보내자 마자 그는 그것들을 폭발시켰고 곧 새하얀 폭발운이 저쪽 통로를 가득 메웠다. 밀폐된 장소에서 어마어마한 열파가 일어난 것이다. 포스 필드 대부분이 다 사라지고 마지 막 남은 한겹의 포스 필드도 반쯤 파괴되어 버리자 그들은 포스 필드를 수복하고 몇겹 더 주문을 쳐서 보강했다. 바인은 정신력이 꽤 소모되었음을 느끼곤 입술을 깨물었다. 아라테온 은 이미 고급주문의 남발로 더 주문을 쓸수 없는 상태였다. 역시 9서클 마스터라도 이런 것 들이 인해전술을 걸면 힘든걸까? 차라리 밀폐된 통로가 아니면 단숨에 모조리 죽여버릴텐데. 바인은 저쪽에서부터 염을 보내 벼락과 전자폭풍을 몰아치는 주문들을 몇번 더 날린다음 빛이 가라앉을때까지 기다렸다. 먼 지 같은게 일어나지는 않아서 저 통로를 볼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벌레들이 다 죽었지만 저쪽 통로에서 다시 몰려드는게 아닌가? 163 "끝이없군! 몇마리나 있는거지? 침묵의 장벽 재배열Silent Sphere Arrange. 샤우트Shout 높은 음정의 소음Noise of High Level Octave!" 찌이이이이잉 바인이 뽑아든 블래스팅 팡의 검날이 우우웅 하고 울리더니 소름끼칠 정도로 높은 공명음을 뿜어냈다. 갑각을 지녔기 때문에 통로 전체를 찌르릉 하고 울리는 소리에 의해 갑각들은 부 서졌고 놈들의 내부는 칼날을 꽂고 휘저은 것 처럼 변했다. 뇌 역시 치명타였다. 그러나 아 라테온을 잡아 당겨서 침묵의 장벽을 쳤기 때문에 소리는 그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못했다. "윈드 블래스트 휠 스크래치Wind Blast Wheel Scratch!" 순간 칼날같은 바람이 모여있는 벌레들을 한움큼 할퀴어 뜯어 발겨 부수어버렸다. 수레바퀴 형태의 날카로운 바람들이 스크래치. 말 그대로 할퀴어버린 것이다. 바인은 남은 바람을 촉 매로 다시 주문을 일으켜 날카롭게 소용돌이치며 벌레들을 빨아들여 산산조각으로 갈아버리 는 바람들을 소환해서 자신의 주변에는 포스 필드를 치고 제어를 풀었다. 광폭한 바람이 풀 려나 놈들을 뜯어 발기자 가가가각 하고 각질이 부딪히는 소리가 통로를 가득 메웠다. "역시…… 아직도 많이 남았군." 다시 바글바글 몰려들어 오는 벌레들. 바인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다. 에 테르의 장벽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마법을 무효화 하는 힘은 반마의 힘인데 그것 자체로 힘이 되고 에테르 역시 그것과 상충하는 것이다. 바인은 다시 광폭한 칼날의 바람들을 소환 해서 풀어놓는 방식으로 놈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공간계 주문은 먹히지 않을테고…… 중력으로 찍어 누른다Gravitation Press!" 바인이 시동어를 외우자 상당한 구간에 대량의 압력이 부여되었고 중력 가중까지 더해지자 우지직 하고 수백마리의 벌레들이 그대로 판박이 되었다. 사각 통로에 4가지 힘을 작용시킨 것이다. 다중 중력제어라니…… 이런걸 가능케 한다는것 자체가 9서클 마스터의 힘을 증명 해 주는 것이다. 바인은 머리가 좀 아프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잠깐 사이에 다시 몰려드는 벌레를 바라보며 주문을 외웠다. 저놈들에겐 논 디텍트도 먹히지 않으니 어쩔수 없이 나오 는 대로 다 죽여버리는 수밖에. "블레이즈 파이어 월Blaze Fire Wall…… 앞으로 움직여라Frontal Move." 5서클의 블레이즈 파이어 월. 파이어 월의 강화판을 배치하고 그것을 앞으로 나가게 한 것 이다. 그것이 지나가자 마자 우르르 몰려드는 벌레들을 향해 냉기의 파도를 날리고 아이스 스톰 주문을 걸어서 부수고 화염폭발 주문으로 태워버리면서 바인은 지속적으로 주문을 사 용해 나갔다. 외워둔 주문을 소모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후우. 후우." 마법기의 힘을 빌리면서 주문을 외운다 해도 그것이 쉽지 않았다. 진공구간을 형성해도 저 놈들은 그것을 쉽게 깨어버린다. 휴암환에 손을 얹고 휴암환에 염을 가하자 조금 정신력이 빠르게 회복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클래스식 주문은 쓰지 않고 있었다. 그걸도로 충분했으니 까. 이건 인내의 장이라도 되는건가? 바인도 거의 200여차례 주문을 난사하고 나자 상당히 지쳐버렸다. 아무리 9서클 마스터고 괴물같은 몸을 지녔어도…… 바인은 아직 육체에 구속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리미트를 건 8 서클의 파이어 스톰을 소환해서 날려보내자 휘우우우 하며 소용돌이치는 백황색 불꽃의 소 용돌이가 몰아쳐 나가 벌레들을 휩쓸어 안고 탄화시켜버렸다. 단숨에 탄화시키는 것 이지만 그 불꽃의 위용은 참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당연히 화염 폭발 주문 들은 대량의 산소를 태워버리고 있었지만 바인은 뒤쪽에서 지속적으 로 바람을 끌어들여서 산소를 보충했다. 화염의 폭풍이 지나가고 나자 잠깐 벌레들이 몰려 오는 타이밍이 늦었다. 어마어마한 위력이라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를 치고 날려보내자 저쪽 통로를 완전히 불태워 버린것 같았다. 그런데도 벽은 녹거나 부서지지 않았다. "대체 뭐로 만든거야? 9서클의 미티어 주문 같은 거로 정확하게 때려주지 않으면 절대 부서 지지 않을 유적이로군." 바인은 짜증어린 표정으로 휴암환에 손을 얹고 다시 달려들어오는 벌레들을 향해 휴암환의 8서클 주문을 시전했다. 순간 광폭한 어둠이 휴암환에서 올올이 풀려나갔다. 다크 베이컨트 스톰. 광입자를 밀어내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폭풍'이 몰아쳐 새카만 안개를 휘감은 바람처 럼 몰아쳐 나갔다. 광폭한 파괴를 실은 어둠. 사실 어둠이라고 해도 광입자와 광파장을 밀어내는 힘을 뿐이지 만 이것은 공간마저 거부하는 폭풍이기에 시커멓게 보일 뿐 사실은 무의 바람이었다. 그것 이 밀려나가 벌레들을 후려 갈겨 버리자 당연히 9서클급 마도기나 마법방어를 할수 없는 놈 들은 소멸해버렸다. 벽도 파괴되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복구되는게 아닌가? "제기랄! 어떻게 뚫고 갈수도 없군." 광폭한 어둠의 소용돌이와 윤무가 사라지자 그는 이번엔 광량 마법을 대량으로 걸고 광익의 를 이용해서 스펙트럼 디사이더를 날려버렸다. 다시 8서클 주문이 퍼져나가 놈들을 직격해 버리자 봄햇살에 놓여진 눈처럼 맥없이 녹아버리는게 아닌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지닌 초 광질량의 광파를 날리는 주문이기 때문에 고작 이런 벌레들이 버틸수는 없었다. 당연히 부 서지고 죽어 나가는 것이다. 역시 벽도 파괴되었지만 쉴새없이 복구되어갔다. "이번엔 혼연의 지팡이다." 바인은 광익의의 옵션(?)인 스페이스 백팩에서 혼연의 지팡이를 꺼내고 쥐었다. 수수한 나 무 막대 같은 느낌이었지만 거대한 힘이 내재된 지팡이인 것이다. 10서클급 마법이 깃들어 있다고도 하지만 바인은 아마 9서클 궁극주문이기는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혼연의 지팡이를 꺼내고 세개의 마법기를 연동하자 조금씩이지만 정신력이 회복되어갔다. "나는 위대한 마력을 사역하는 자. 아홉번째의 고리, 아홉번째의 단계에 올라 있는 자. 진정 자격있는 자이니 지팡이여. 그대에 깃든 힘을 방출하라." 바인은 약속어를 읊고는 혼연의 지팡이를 내 던졌다. 순간 혼연의 지팡이로 어마어마한 양 의 마나가 빨려들어갔다. 마치 10서클의 '잃어버린 단어'를 읊은것 같은…… 대량의 마력을 끌어들이는 주문이었는데 그보다 훨씬 강력했다. 바인이 지속적으로 사용하던 마법의 바람 도 멎었고 포스 필드도 깨어져버렸다.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10초 정도 빨려들어가자 바 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9서클급……" 바인은 캐스팅을 하고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를 쳤다. 그리고 두 마법기를 이용해 다시 한겹 의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를 쳤다. 이걸로 막을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남은 공간에 마법 무효화 장벽을 빽빽하게 메웠다. 이걸로 바인과 아라테온 모두 무력한 상태가 되어버 리지만 필요하면 풀어버리면 그만이다. 그그그그그그 임프로브드 포스 필드 안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간이 쪼개져 나가는 파동은 음파가 아닌 전신을 떨어울리는 '소리로 느껴졌다'. 공간이 찢어 발겨지는 것이다. 9서클의 마법인 공간붕 괴였다. 크로매틱 배니쉬Chromatic Vanish…… 혼연이라는 이름에는 걸맞지 않는 주문이었 지만 9서클인게 어디인가? "공간붕괴가 아니라 '장'을 부수는 주문이잖아!" 바인은 질겁해서 투덜거렸다. 실수해버렸군. 하지만 아직 방도는 있었다. 바인은 사멸과 붕 괴의 힘을 전개해서 장벽을 쳤다. 섞어서 회색의 오오라로 아라테온과 자신을 둘러 싸 안은 것이다. 이 상황에서 벌레들 따위는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공간을 무너뜨리는게 아니 라 허위차원까지 공간을 함몰시키는 것이다. '……어쨌든 벌레들은 없어지겠지. 마법적인 거라고 해도 허위차원은 금방 다시 돌아가버리 고 공간은 아물테니까. 그러면 저 벽들도 원래대로 돌아가겠지만.' 강화역장 결계들은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두겹의 강화역장이면 9서클의 운석소환도 막아 내고도 남는다. 9서클의 미티어 스트라이크로 정확히 한방 때려줘도 역장 하나가 반쯤이나 부서지고 말 것이다. 그보다 상위인 미티어 스웜을 집중시키면 장담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미티어 스웜까진 그럭저럭 막을 수준인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결계는 깨졌다. 차라리 공간고착결계였다면 10초는 견뎠을텐데…… 마법무효화공간에서 잠깐 주춤했던 파멸 은 붕괴와 사멸의 장막에 부딪혔다. 그런데 놀랍게도 파멸의 회오리는 사멸까지는 어떻게든 반발하는데 성공했지만 붕괴의 장막에 부딪히자 그냥 흘러가 사라져버리는게 아닌가? 바인 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붕괴는 염을 강화하면 플레인 부수기도 가능한 말 그대로 배니쉬의 힘이었던 것이 다. 예도에 존재한 염을 읽고 나서 어느정도 특성을 알게 된 그는 이정도로 힘을 활용할수 있게 된 것이다. 9서클 주문의 여파가 끝나고 복구되어가는 바닥이 보였다. 혼연의 지팡이는 공중에 떠 있다가 바닥이 복구되자 빛을 잃고 떨어져내렸다. 바인은 염동으로 지팡이를 회 수하고는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끝났군." 벌레는 멸절되었다. 아라테온에게 회복 주문을 몇번 써준 바인은 벽에 등을 기대고는 털썩 하고 주저 앉았다. 마법기들에 마나를 부어넣으면서 조금씩 마법기의 힘을 회복시킨 바인은 알아서 마나를 빨아들이도록 마나 게더링의 주문을 외워 조금 더 수복이 빨리 이루어지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정신력을 회복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하아…… 정말 대단하군. 9서클 마법사라도 죽을수 있는곳인가. 공간을 배배 꼬아 놓지 않 은 것만 해도 다행이군. 공간의 미궁 같은게 있다면 깨버리기도 힘들고……" 바인은 읊조리면서 호흡을 조절했다. 10분 정도 편하게 힘을 빼고 있었을 뿐이지만 그의 정 신력을 꽤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메모라이즈한 주문을 꽤 소모하긴 했지만 대부분 펼친 강 대한 파괴마법은 마법기 자체의 마법을 염으로 시전한 것이었고 직접 소모한 스펠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겹군. 저런것. 그냥 바깥이면 8서클 주문 한번만 써도 끝나는데……" 마법사는 역시 밀폐된 공간에 약한 것일까. 밀폐되었다기에는 넓은 공간인데도 고위 마법사 인 바인은 역시 힘들었다. 아니 검사라면 절대 저것들을 처리할수 없었을 것이다. 현청이라 면 처리하기가 좀더 수월했겠지만. 마법사완 달리 현청은 조금의 타이밍만 있으면 천령단을 이용해 기를 적당히 흡수해서 내력을 보충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광범위한 파괴력을 보일수 있었다. 지금도 8서클급 파괴력은 낼수 있으니…… "10서클이라…… 어떤 것이지?" 바인은 자문해 보았지만 대답이 나올리가 없었다. 왼손의 팔찌에서 염으로 지도를 불러내어 다시 검토를 해본 바인은 이제 10분 정도면 10서클의 힘을 얻을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아니 확실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문득 그는 혼연의 지팡이에 생각이 미쳤다. 크 로매틱 배니쉬…… 익히긴 했지만 이렇게 강했던가? "……어쩌면 정말 10서클의 지팡이인지도." 혼연의 지팡이를 들어보인 그는 여전히 나무 지팡이 같은 그것에 인상을 찌푸렸다. 웬만하 면 고풍스러운 것보다 좀더 기능적인 디자인이었으면. 가령 창처럼 쓸수 있다거나 아니면 타격 주기가 좀더 쉬운 스타일이거나. 강도나 경도는 상상을 초월하긴 하지만 겉보기엔 평 범한 나무 지팡이에 불과했다. 마력으로 강화되었다고 해도 정말 나무인가? 정신력이 상당히 회복된 바인은 아라테온을 깨웠다. 아라테온은 간신히 일어나긴 했지만 굉 장히 피곤해보였다. 그래서 아라테온을 붙잡아서 끌어안은 채로 바인은 가기 시작했다. 휴이 즈는 확실히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해서는 적대할 가능성이 큰 인물이라 꺼려져서 적당한 이유를 대고 놔 두었고 덕분에 렌시아, 헤인도 남겨져두고 왔다. 렌시아는 몰라도 이 경우 헤인이 도움이 되는데. 아까 그 벌레들은 이상하지만 벼락 주문은 잘 먹히지 않는것 같았다. 야외에서는 헤인을 그렇게 쉽게 제압했지만 헤인이 만약 봉인이 풀린 진야월영을 든채 이곳에서 덤빈다면 제압은 상당히 힘들어질 것이었다. 헤인이 임프로 브드 포스 필드를 뚫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하지만 말이다. "저기…… 난 차라리 돌아가는게 좋지 않을까?" "마물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니까." 바인은 그렇게 말하고 아라테온을 품어 안은채로 걷기 시작했다. 아라테온은 바인에 비해 키가 상당히 작은 편이고 몸도 가늘었기 때문에 바인은 편하게 끌어안고 걸을수 있었다. 업 으면 전투하기 불편하다. 목이라도 조르면 바인도 괴로운 것이다. 아라테온이 그럴리는 없지 만 급가속할때는 역시 위험했다. "……마나가?" 걸어가던 바인은 문득 주변의 마나 농도가 옅어져 가는 것을 느끼며 상당히 놀라했다. 마나 를 밀어내거나 아예 그 흐름을 한군데로 집결시켜 농도를 짙게 하는 것도 상당한 것이고 그 자리에 굳히는 것도 고난이도이련마는 농도가 옅어져 가는 것이다. 그것도 그가 9서클 마스 터가 아니었다면 눈치챌수 없을 만큼 서서히. "……마법의 위력이 떨어지겠는데." "응? 무슨 소리야?" "저 앞쪽으로 갈수록 마나가 옅어지고 있다. 저쪽에서 마나의 흐름이 흘러나와서 바깥으로 방출되는거야. 그러니까 점점 옅어질 수밖에. 마나 뿐만 아니라 기 조차도. 에테르나 영기도 옅어지겠지만. 그건 잘 모르겠군." 마나를 느끼는 것에 모자라지 않는 기감은 에테르나 영기에 대해서는 모자랄 지라도 그 흐 름에 대해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포착할수 있었다. 바람으로 느껴질 정도의 흐름. 미풍 정도 의 것이었지만 바인에게는 확실하게 느껴졌다. 위험했다. 클래스 술식 주문을 써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단 사용해둘까. 논 디텍트None-Detect." 바인은 일단 뒤로 조금 물러나서 논 디텍트 주문을 몸에 걸었다. 그리고 나서 사뿐하고 가 볍게, 그러나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마나는 점점 옅어져갔고 놀랍게도 논 디텍트를 구성 하는 술식의 마력조차 흩어지더니 저 뒤로 날아가버렸고 주문은 당연히 깨어졌다. 이런게 가능하다니. 다행히 마법기는 마력을 응집한 물건이라 멀쩡했다. "그나마 다행이군. 이런 곳에서 마법기를 썼다간 수명이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한두번쯤은 어떻게든……" 바인은 그렇게 자기 위안을 하면서 걸어들어갔다. 벽을 보자 휑한 구멍들 몇개가 뚫어져 있 었는데 거기서 벌레가 기어나온듯 했다. 바인과 아라테온은 그 구멍을 노려보았다. 바인은 짜증을 내며, 아라테온은 몸서리를 치면서 말이다. 반응은 달라도 벌레의 충해전술蟲海戰術 은 정말 위협적인지라 바인도 긴장했다. "다행히 생체반응은 없군. ……불안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더 이상은 없을테니." 바인은 애써 자조하며 문득 사멸의 힘이 떠올라 그것을 운용해보았다. 벌레도 생물이니 이 사멸의 힘을 썼다면 좋았을테지만 보나마나 방출형으로 쏴야 했을 테고 그런식으로 뿜어내 면 사용량도 늘어나고 그 위력도 좋아진 사멸과 붕괴의 힘도 바닥을 보일 것이다. 게다가 영혼의 힘인지라 정신, 육신 뿐만 아니라 영체에도 타격이 갈수 있었다. 사멸과 붕괴의 힘을 회복하려면 꽤 시건이 걸린다는 것을 안 바인은 조금은 자제하고 있었다. "하아. 회복 속도만 조금 빠르면 더 좋을텐데 말이지." "응? 무슨소리야?" "아니. 이쪽 이야기다." 바인은 전방 통로를 노려보며 손가락을 튀겼다. 그러자 4서클의 벼락이 독아毒牙처럼 뻗어 나가 전방의 공간을 물어 뜯었지만 벼락은 갑자기 사그라들어 버렸다. 이건 안티 매직 셸이 나 디스펠보다 더 위험했다. 구동마력이 모자라 마법을 쓸수 없다니. 마법사에겐 치명적인 공간이 아닌가. 클래스식 주문을 쓸수 있는 바인은 힘의 제약이 약간 커질 뿐이지만. 그래도 치명타는 치명타였다. 통한의 일격이랄까? '후. 그냥 9서클 마스터가 맨몸으로 왔다면 죽진 않았겠지만 빌빌거리는 상태인데 아예 반항 도 못할 지경이 되는거잖아?' 바인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다시 손가락을 튀겼다. 부담없이 전광이 뻗어나가 앞의 공간을 꿰뚫었다가 여섯, 일곱걸음 거리도 가지 못하고 맥없이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단거리라면 조 금은 쓸수 있겠지. 벼락으로 살짝 태우고 검으로 친다. 이것밖에 별로 쓸만한 전략이 없었 다. 사멸과 붕괴이 힘을 남발할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아. 정말 마법사에겐 최악이군. 공기가 옅다는 생각이 들 정도잖아." 바인이 투덜거리자 아라테온도 이젠 그것을 느끼고 있어서 상당히 괴로워보였다. 바인은 아 라테온을 품어 안은채 계속 걸어서 마침내 지루한 통로의 끝을 보았다 갑자기 넓어진 공간 은 원을 반으로 뚝 잘라 놓고 그 호 부분의 중앙에 선 하나를 이어 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상당히 그럴듯 했다. 선의 끝에 이르른 바인은 구를 4분의 1로 자르고 그 호선의 중앙 부분에서 걸어나와 있는 듯한 형새였기 때문에 안쪽의 면 두개중 벽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을 바라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젠 마나라고는 거의 평상의 10분의 1쯤 되는 분량만 남아 있었다. 바인은 문득 자 신이 봉인계에서 어떻게 지금까지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끔찍하군." 봉인계에 퍼져있는 마나의 양보다 좁쌀만큼은 많은 분포였지만 그렇다고 기분 좋을리가 있 나. 바인은 좀더 마나를 느끼는 감에 집중했다. 그래서 먼지 한올이 돌아다니는 것 조차 느 낄수 있게 되었다. 점점 예민하게 감각을 가는 것이다. 원래도 집중하면 이정도는 할수 있었 지만 지독한 고요와 함께 옅은 느낌을 줄 정도의 공기에 귀까지 약간 먹먹하게 울리는 것 같았으니 집중도와 신경이 예민해진 것은 당연했다. "이런곳에서는 한 1주일만 보내도 미쳐버리겠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섬뜩한 메탈릭의 광택들 뿐. 그러나 바인은 걸어들어가서 문을 바라보 게 되자 놀랐다. 처음으로 이 통로에서 금속이 아닌 구조물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돌로 빚어 놓은 물건이었다. 이끼가 달라붙어 있고(여기서 이끼가 어떻게 사는지는 의문이었다) 부식된 듯한 느낌의, 금까지 간 대리석 문. 높이는 바인의 키에 비해 최소 8배. 너비는 8두마차 두대쯤 딱 붙여놓고 지나가게 할수 있 을 정도였다. 어마어마하다는 말이다. 바인은 전혀 위압감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만약 설 계자가 위압감을 위해서 만들었다면 헛수고를 한 셈이었다. 하긴 9서클 마스터쯤 되는데 고 작 이런데서 위압감을 느낄까? "어떻게 이런데에 이끼가 달라붙어있는거지?" 바인은 궁금해하며 문 옆의 두아름은 될 듯한 기둥의 표면을 슥 긁어보았다. 그런데 묻어나 오는게 없고 손에 느껴지는건 차가운 금속의 감각. 그냥 홀로그램을 덧씌운 것 뿐이었다. 마 법적인 것이 아니라 바인도 알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하고 중얼거리면서 바인은 벼 락주문으로 홀로그램을 후려처보았다. 그러나 문에 덧씌워진 홀로그램은 흐릿해지지도 않았고 벼락은 미약하게 실처럼 뻗어나갔다 가 파직 하고 사그라들었을 뿐이었다. 바인은 블래스팅 팡을 뽑아서 문을 후려 쳐 보았지만 파앙 하고 튕겨져 나왔을 뿐. 붕괴의 힘을 쓸까 했지만 조금이라도 아까워서 바인은 확인을 멈추고 칼을 다시 갈무리했다. 진야월영이면 뚫을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역시…… "문을 열수 있을까." 아라테온은 바인이 칼을 뽑기 전에 이미 그의 품에서 벗어나 간신히 일어선채 후들거리고 있었다. 기력을 운용한다고 해도 이곳에 들어와서 한번도 쉬지 못했고 회복마법을 받아봐야 전부다 회복될리도 없었다. 주문을 남발하기까지 했으니 바인 레벨의 괴물이 아닌 아라테온 이 지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탈진 직전이었다. "으으음." 아라테온이 그 자리에서 주저 앉자 바인은 그에게 다가가 일단 스페이스 백팩에서 물통을 꺼내서 물을 마시게 했다. 그리고 회복마법을 걸어주고 싶었지만 주문을 쓸수 없는 상황이 니…… 어쩔수 없이 클래스식으로 인프린팅 해두었던 주문을 마나홀에서 불러내어 아라테온 의 몸에 부었다. 캐스팅도 필요 없었기 때문에 6서클급 회복 마법 여러개는 아라테온의 몸 에 상당한 활력을 불어 넣었다. "괜찮아?" "……졸려." 아라테온이 눈을 깜박거리며 말하자 바인은 한숨을 토해냈다. 가뜩이나 마나의 분포량이 적 어서 몸이 더 악화된것 같았다. 마법적인 힘과 영적인 힘을 모두 지닌 엘더 라이칸스롭이기 때문에 마나의 분포량과 영력의 분포량이 흐릿해지자 더 몸 상태가 최악이 된 것이다. 아라테온을 그 자리에서 벽에 기대게 한 바인은 입맛이 쓴것을 느꼈다. 위어타이거인 아라 테온도 이정도로 지쳤는데 자신은 조금 정신력이 떨어진것을 빼면 멀쩡했던 것이 상당히 묘 한 기분을 선사하는 것이다.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런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역시 시간이 그리 많이 흐르지 않아서 일까? "어떻게 여는 거지. 손잡이도 없고 마법도 없고. 검은 아예 먹히지도 않으니." 바인은 중얼거리며 문의 중앙부에 와서 손을 얹어보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 그런데 문득 갑자기 따스한 질감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드드드드등 하는 진동음이 울림과 동시에 문은 소름끼치리 만큼 높고 긴 금속 마찰음과 함께 안으로 열렸다. 안쪽에는 마나와는 다른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바인은 그것에 심한 거부감을 느꼈지만 한숨을 토해냈다. 10서클에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고생한 값으로는 10서클은 너무 비싸지만 그래도 아까우니까 도전하려 했다. 바인 은 스스로를 조소했다. 두려운 것이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들어가자 마자 소 멸당할지도…… 안쪽에 흐르는건 어마어마한 반마력反魔力. 강대한 반마력의 코어Core안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어느새 잠든채 반쯤 가사 상태로 들어간 아라테온을 보던 그는 조용히 광익의를 벗었다. 짐을 정리해서 아라테온의 옆에 놔두었다. 딸칵 하고 블래스팅 팡과 진야월영이 칼집채로 풀렸다. 먼저 새하얀 허리띠 를 풀어서 광익의의 백팩에 집어 넣었다. 광익의를 벗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개켜서 그것을 아라테온 앞에 내려놓고 블래스팅 팡, 진 야월영 등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서클릿. 휴암환을 매만지다가 연결부를 눌러 당기자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벌어졌다. 그리고 바인은 헐거워진 휴암환을 벗어서 다시 맞물리 게 한다음 옷 위에 올려놓았다. 바인은 간단한 흑색 셔츠에 회색의 천 바지가 달라붙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균형은 맞 아 떨어져도 가느다란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바인은 감추었던, 상당히 긴 흑발을 목 부분에 서 묶었다. 장신이지만 앳된 얼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관은 훨씬 넘어 보이는 분위기였다. 그는 무심하고 냉엄한 눈을 반마력에 향했다. 온갖 보석 가루를 갈아다가 그것 한알한알이 빛을 발하게 하고 그것을 흐르게 만들면 마나 를 응집시켜 흐르게 만드는 것과 유사하지만 반마력은…… 그와는 달랐다. 회색으로 울렁이 는 반마력. 회색이라…… 바인에겐 그것만큼 어울리는 색이 드물었다. 바인은 냉소하면서 회 색의 코어를 바라보았다. 울렁이며 빠져나올듯 파동치는 그것. 마치 바다의 수면과 같은 그 런 느낌을 주는…… "두렵진 않아." 맞았다. 두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왜 망설여지는건가…… 미래가 두려워서?" 바인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은 어느 누구도 줄수 없었다. 바인은 반마력임이 확실한 그것때문에 마나들이 전부 사라져버리자 염을 발휘해 특화 시켜 마나홀 에 인프린팅 해두었던 클래스식의 메모라이즈 주문들을 모조리 다 해제하고 마나를 방출했 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는 뒤로 쓸려가 사라져버렸다. "……간다!" 바인은 가볍게 도약해서 반마력의 거대한 장으로 빨려들어갔다. 그가 존재했다는 증거는 그 가 벗어놓은 장비들 외엔 남지 않은 것이다. 문득 그그그긍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그리고 다시 숨막히는 고요가 공간을 지배했다.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문이 열린 것 은 만 하루가 지난 뒤였다. --- 164. 무림전쟁武林戰爭 발발勃發 서륜은 주렴이 걷히자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그 안에는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떤 미 녀보다 아름다운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고 역시 남성으로 보기엔 좀 문제가 있으리만치 예 쁘장한 소년 하나가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관이 좀 넘어보이는 느낌의 청초한 미인 은 검劍을 연상케 하는 손으로 백련정강제 예도와 청강검 하나를 칼집과 검집에 집어 넣은 채 그것을 옆에다 막 내려놓고 있었다. "당신도 희생자군요." "……끄응. 희생자라." 희생자. 맞는 말이었다. 어쩌다 보니 사황태극심결을 익혔고 그 부작용으로 외모가 바뀌어버 린 것이다. 현청이야 원래 상당한 미인인데다가 천령단에 오르면서 두번 환골탈태를 해버렸 기 때문에 강제성형 되었으니 희생자라고 할수 밖에. 운은 상당히 흥미로운 눈길로 서륜을 바 라보긴 했지만 곧 시선을 돌려 책을 바라보았다. 무인으로써는 관심이 있었지만…… 저 외모에 동요 할법도 한데 워낙 평소에 미인하고 함께 있다 보니 별로 동요하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운도 희생자였다. 환골탈태를 해도 잘생 겨지고 남자다워 지는 자들이 있거나 여성들 중에서도 좀더 활력있는 느낌으로 바뀌는 자들 이 있는데 이 두명은 체질탓인지 이렇게 변한 것이다. 서륜의 경우는 심법 탓이 더 컸다. "이서륜. 나이는 약관을 넘겼음. 명호는 사신검협四神劍俠. 사문은 청심문淸心門. 신장은 5 척尺 9촌寸(5척 9촌 = 177cm정도)으로 장신長身. 성격은 무덤덤한 편으로 정사지간正邪之間 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여색엔 관심이 없음. 입맛은 중원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기름 기 많은 음식을 싫어한다. 불의를 용납치 않으며 살인을 한 적은 그리 많지는 않으나 망설임은 없음. 총 42회. 부상을 입힌 경우는 89회. 외모는 절세미녀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움. 특이사항으로 대검, 청색의 연검, 붉은 피리, 금속 권갑을 차고 있고 머리카락이 매우 길다. 무공수위는 현경의 무극지기 천령단에 올라 있는 것으로 추정, 아니 확인. 심법은 사황태극천지조화심결. 성명절기는 청심문에서도 비전비의에 속하는 신수사령권법과 신수사령검법. 하지만 사용되 는 무기를 볼때 단지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듯 함. 아직 완전히 익숙해 지지는 않았고 강 호 경험이나 전투 경험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추정. 이상이 당신에 대한 조사입니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더군요. 정말로." 맨 처음 사문이 청심문이라는 데서부터 서륜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고 신장에 성격, 그 리고 여색에 관심이 없다던가 입맛에 전투 횟수까지 알고 있으며 그 외 종이가 꽤 많은 것 으로 미루어 보아 죽인 자나 부상 입은 자, 그리고 주위 사람에 대한 신상명세까지 있음은 당연했다. 그걸 쉽게 알아낸 세가의 정보력도 놀랍지만 무공수위에 사문은 청심문이라는 것 도 알아냈고 사용하는 심법까지 알고 있는 데다가 그것도 신수사령이 비전이라는 것까지 알 아냈다면…… "애병의 이름은 차례로 용연, 파산, 천작, 태음…… 맞나요?" "……굉장하군.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사실 대단한건 아닙니다. 청심문에 대해서는 저도 최근에 알았으니까요." 거기까지 말하고 영은 아주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가식적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수 있었다. 서륜은 영 역시 천령단에 올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속되어 있으면서 저정도까지 스스로의 경지를 끌어올리다니 이건…… 서륜은 독보강호하는 자가 아 님에도 불구하고 현경의 끝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연검 용연. 대검 파산. 옥소 천작. 권갑 태음…… 좋군요. 안그런가요?" "……이쪽에서 질문 해도 되겠나?" 서륜이 그렇게 묻자 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웃음은 어려 있었지만…… 눈빛 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날카롭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무심함. 그것에 서륜은 질려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그것을 떨쳐내며 질문을 던졌다. "넌 서대륙에서 왔나?" "무슨 소리지요?" "건축양식." "……" 영이 조금 놀랐다는 표정으로 서륜을 바라보자 서륜은 짜증어린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서륜은 영 처럼 감정을 감추는데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을 다스린다고 해 도 이 경우는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다. "철근에, 석회석이나 금속가루를 이용하질 않나…… 게다가 벽돌에 석판을 저렇게 잘라놓은 리벳…… 아니. 아니지. 어쨌든 그런 것은 이곳, 이시대의 것이 아니야." "글쎄요. 제 외모는 확실히 이 대륙의 것입니다마는. 그러는 그쪽이야 말로 서대륙에서 온건 아닙니까? 리벳이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방식의 언어로군요." 둘의 눈빛은 어느새 칼날처럼 변해있었다. 그러나 운은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아 직 현경도 아닐텐데 왜 긴장하지 않는 걸까? 귀찮다는 듯 운은 집중해서 책장만 넘기고 있 을 뿐이었다. 문득 탁 하고 책이 덮여졌다. 운은 귀찮다는 듯 책을 덮어서 내려놓았는데 영 이 책을 들어서 그것을 서륜에게 집어 던졌다. 서륜은 내공도 실리지 않은 공격에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것을 가볍게 받아들었다. 만독불 침인 그에게 독이 통할리도 없고 또 책에는 독의 분말 같은 것도 없었다. 서륜은 책을 펼쳐 서 읽어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한자로 쓰인건 당연하다. 그런데 같은 한자의 경우는 글자 가…… 똑같았던 것이다. 조금은 틀린게 당연했지만 그 크기와 형태가 같았다. "금속활자인가?" 금속활자…… 놀랄 일이다. 이 대륙은 금속활자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목판으로 찍어내는 인쇄방식은 있었지만…… 금속활자는 제대로 만들어두지 않으면 글자 경계선에 먹의 선이 그어지고 번지기 쉽다. 그리고 부어서 찍어내는데 상당히 괴롭다. 규격에 정확하게 맞는 조 각들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맞출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이었다.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역시 알고 있군요. 자. 제가 묻지요. 당신은 어디서 왔나요?" 영은 그렇게 질문을 던졌지만 서륜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로 지금 그들은 별로 대화를 하거 나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전혀 닮지 않은 두명이었지만 긴 흑발은 닮아있었다. 외모도 다르고 그 아름다움의 기준도 다른 두명이었다. 피부색 같은 것은 유사했지만 외모는 정말 차이가 났다. 그러나 지금 둘의 눈초리는 같았다. '탐색'이었다. "아니. 이것부터 대답해준다면. 어떻게 주작과 현무를 알고 있지? 이곳 사람들은 기린과 봉 황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대부분 이곳 사람들은 내 신수사령도 청룡, 백호, 봉황, 기린 의 사신을 따라 만든 무공으로 알고 있더군. 처음엔 내가 알던 장소하고 너무 똑같아서 어처 구니가 없었는데……" "'이곳 사람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요." 영의 눈빛과 서륜의 눈빛은 점점 차갑게 가라앉고 있었다. 운은 두명을 바라보다가 짜증어 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싸우려면 나가서 싸우지 왜 신경전이나 하고 있는 것인지. 필요하다 는 것은 알겠지마는 굳이 적도 아닌데 적을 만들고 있다니. 영 답지 않다는 생각에 그는 영 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왜그래? 평소답지 않아." 영은 그 말에 흠칫 하고는 경계심을 가라 앉혔다. 맞는 말이다. 전혀 평소답지 않았다. 왜 이렇게 흥분해버린 걸까. 어쩌면 이 사내 역시 얼마 전 만났던 '리오디안'이라는 자와 같은 부류일것 같아서였을까. 리오디안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내면의 검의 소환법과 그에 대 한 활용법만 깨우치고 사라져버렸다. 정작 알고 싶은건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미안하군요. 흥분해버렸습니다." 서륜이나 영이나 둘 모두 서로 비슷한 생각으로 적대했다는걸 알면 꽤 재미있을지도. 서륜 도 영이라는 존재가 자신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자거나 그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들었던 것이다. 갑자기 공간이 비틀리긴 했지만 자신이 우연히 들어섰던 동혈은 자신과 연관이 있던 곳. 어떤 이끌림이 없었다면 도저히 일어날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아니. 이쪽이야 말로 흥분해버렸군. 대답은?" "그쪽부터 대답 하시는게 어때요?" 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륜을 직시했다. 서륜은 그 눈빛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인간 의 눈이 아니야. 서륜도 살기를 끌어내면 굉장한 살의로 상대를 누를수 있는, 의형살인에 다 다른 경지였지만 영의 눈빛은 그 토대부터 틀렸다. 서륜이 꽤 물렁한 성격인데 최근 들어서 상당히 바뀐 것에 불과하다면 영은…… "……" 영은 인독人毒이다. 고독蠱毒중 가장 독한 것이 인독. 인간에겐 오욕과 칠정이 있고 그것을 끊어내 야수로써의 무언가를 최대한 끌어낸다면 비록 육체적으로는 다른 야수들보다는 수준 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 분위기만큼은 늑대조차도 물러나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것이 된다. 가족조차 수백번 죽여 그 생살을 씹어 삼킨 야차같은 눈빛…… 그가 최근 들어 부드러운 분위기를 지니게 됐고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고 또 심법에 의 해 많은 정화를 거쳤다고 해도 정신은 씻을수 없었다. 원래 영혼의 본질을 되찾거나 신화경 에 오르지 못한다면 결코 사라지지 않는 족쇄가 될 것이었다. 영은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진 못했고 덕분에 그 눈빛은 같은 경지, 오히려 좀더 강할지 모를 서륜조차 압도해버렸다. "인간이 아닌것 같군. 그 가면 밑엔 뭐가 있나? 야수. 악귀? 피를 갈망하는 흡혈귀라도 숨어 있는 건가?" 서륜은 잠시라도 압도 당해서인지 아예 도발을 하기로 작정한듯 했다. 영에겐 그 부분이 정 곡이었는지라 영의 눈빛은 조금씩 붉은 기에 물들어갔다. 하지만 곧 그것은 다시 사라지고 맑지만 칼날같이 정련된 눈빛으로 돌아왔다. 영은 입가에 냉소를 맺으면서 긴 머리카락을 목 뒤에서 묶었다. 그리고 그대로 손을 뻗었다. 살기가 돌던 눈이 맑아졌다고 잠깐 마음을 풀었던 서륜은 그의 뻗어진 손에서 밀려나오는 강대한 압력에 부딪혔다. 그러나 서륜도 영에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아주 조금은 더 나은 고수였는지라 곧 내력을 끌어올려 그것과 맞부딪혔다. 물론 고수라는 것은 무공에 대해서였 고 영은 그것을 보완할 '힘들'이 있었다. 투두우우웅 둔중한 소리가 울려퍼졌고 공기에 파문이 그려졌다. 어마어마한 무게감이 그들의 앞에서 흔 들리고 있었다. 운은 조금 고통스러웠는지 역시 내력을 끌어올려 몸을 보호했다. 운의 몸에 서는 아주 깨끗하고 맑은 코발트 블루의 빛이 흘러나와 몸 주변에서 흘러다니기 시작했지만 그 안개같은 기운도 흔들리고 있었다. 영은 이미 입을 연다고 내기가 빠져나가는 낮은 경지에는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입 을 열수 있었다. 눈빛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칼날이었지만 목소리에는 십팔층 무간지옥 밑바 닥 아수라의 스산함과 살기가 담겨 있었다. 도저히 억누르기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트라우 마 같은걸 찔렀으니 부처 가운데 한토막이 아닌 한은 화가 나지 않을수 없었다. "당신. 입을 잘못 열었습니다." "……" 운은 말리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도 않았고 지금 이 파장을 방어하는데 만도 힘이 상당히 들었다. 거의 8성에 다다르는 공력을 사용해야만 이들의 파장에서 몸을 보호할수 있었던 것 이다. 영과 서륜으로써는 2성도 채 안되는 공력이었지만 운으로써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냥 단지 수치상으로 60갑자라지만 12성중 2성이면 10갑자다. 단지 수치상이 아니라 깨달음에서라면 검기에서 1갑자. 검강에서 2갑자. 어검에서 3갑자. 심 형검강과 이기어검에서 4갑자. 어검강에서 5갑자. 이기어검강에서 6갑자. 폭뢰강기와 심형어 검강에서 7갑자. 폭뢰심형강기와 심형이기어검강에서 8갑자. 폭뢰어검강에서 9갑자. 폭뢰이 기어검강에서 10갑자. 폭뢰심형어검강에서 11갑자에 마지막으로 천령단에서 12갑자다. 단지 수치상 공력에서 10갑자 공력이면 폭뢰어검강 정도는 쓸수 있다. 천령단으로 들어가기 전에 몇단계의 깨달음이 있어서 폭뢰심형어검강까지 쓸수 있는 것이다. 천령단에 이르면 주 변의 기를 자유자재는 아니더라도 공력을 소모함으로써 운용할수 있다. 영이 쓰는 여섯가지 검무들이 그것인데 서륜도 방식은 다르지만 아마 쓸수 있을 것이다. 현 무림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라고는 폭뢰강기, 심형어검강까지만 알려진 상태였다. 덕분에 깨달음이 아니라 그냥 수치상 내공만 알려주는 것이다. 10갑자면 단전에 모을수 있지만 그 후로부터는 전신에 퍼뜨려야 하는 것이다. 단전은 기해氣海. 그 크기에 비해 많은 공력을 모 을수 있지만 전신에 퍼뜨린것엔 미치지 못한다. '제길…… 트라우마 같은건가?' "일단 당신을 쓰러뜨리고 묻겠습니다. 강호의 불문율…… 이지요?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무력으로. 크크큭. 성문법이 국가 내에 제대로 미치지 못한다니 웃기긴 하지만!" 서륜은 긴장하며 기를 끌어올렸다. 놀랍게도 방은 어지럽혀지지 않았다. 그냥 바람이 몰아치 고 있을 뿐 종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들의 기력 제어는 완벽해서 공력 방사로 주변을 부 수는 멍청이 같은 짓은 하지 않았다. 영이 천령단에 이르기 한참 전에는 이게 어려웠지만 말이다. 영이 먼저 출수했다. 청심지도淸心之道 일급기一級技 진명震鳴 초진超震 공명구共鳴球 영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서 권을 뻗었다. 앉은 자세에서 출수했음에도 서륜보다 속도만큼 은 더 빨랐다. 권이 뻗어진 순간 찌이이잉 하는 이상한 노이즈가 일어나면서 서륜의 몸 주 변에 울렁이는 구슬 같은 형태의 공기 덩어리가 펼쳐졌다. 사방에서 내리 누르는 압력. 공기 가 무거워진 것이다. 서륜은 공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그것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선수 필 승. 초식이건 뭐건 펼칠 사이도 없이 쳐버린 것이다. '치잇! 예만 따지는 정과 마교따위들과 싸워 와서 방심했군. 선수필승인데! 어설픈 기습을 하는 사파 나부랭이들관 수준이 틀린 상대인데……' 공기 덩어리에 새하얗고 아름다운 주먹이 부딪힌 순간. 공기의 덩어리가 우우우웅 하고 공 명을 일으키며 공진했다. 공기가 벌겋게 달아올랐고 공기분자들이 미친듯이 튀어다녔다. 이 상하게도 불꽃이 일지 않았는데 그것은 탈것도 없었고 연소할 사이도 없이 공기분자들이 미 쳐 나돌았기 때문이다. 폭발조차 할수 없다. '우…… 으윽……' 내력조차 떨리면서 그는 입가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까지 버틴것도 대 단하다. 옷이 타는게 아니라 퍼석퍼석 부서지고 있었다. 그는 내상을 입은 것이다. 청심지도 는 과학조차 이용하는 무공비록. 덕분에 서륜은 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수라는 것은 과학 이 빠진 순수 무공이라는 것. 청심문 정수의 무공을 익힌 서륜은 경험도 조금 취약해서 이 런 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우우으아아아!!" 휘오오오오오 서륜은 달리는 힘을 포효로 보충하며 그것을 깨어버렸다. 광풍이 몰아쳐 나와 방안은 뒤흔 들었지만 역시 상한 물건은 없었다. 그냥 거친 바람 덕분에 종이는 벽에 달라 붙었을 뿐이 었고 가벼운 대나무 잔 같은 거나 튕겨나가 벽에 부딪혔을 뿐. 약한 대나무들이 많았지만 의외로 잘 버티고 있었다. 그만큼 이들의 기력 제어가 뛰어나다는 뜻도 된다. "버텼나?" '제, 젠장!' 영은 입가에 싸늘한 조소를 띈채 어느새 서륜의 품으로 파고든 상태였다. 권이 다시 뻗어졌 고 어마어마한 기력이 집중된채 수강手剛이 뻗어나갔다. 금정불천수여래공金霆佛千手如來功 의 공력 흐름을 따른 것이었지만 여래의 불법은 전혀 없으니 차라리 금뢰정수공金雷霆手功 이라고 하는게 더 나을것 같았다. 순간 서륜의 손이 조화를 부렸다. 손에 주홍빛의 살같은 기운이 서리면서 금뢰정을 쳐낸 것 이다. 부드럽게 감아 돌듯 금정강을 흩고 가르면서 손을 쳐냈다. 카앙 하는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찰나에 두명은 두번째 격돌을 하고 있었다. 영의 몸은 가볍게 회전하며 몸 전체를 가속해 촌경과 함께 더 강한 공력과 파괴력으로 권격을 찌른 것이다. 백보신권같은 탄경彈勁과 용연십권이라는 1류 권법 하나를 섞어서 공격해온 것이다. 잠깐의 시간과 함께 서륜의 손에는 주홍빛이 어려있는 옥소 하나가 들려 있었다. 길이는 한자 정 도? 그것이 흔들리자 마자 다시 주홍빛 강기가 부드러우면서 강대한 힘을 머금은 선풍旋風 을 이루었다. 그리고 탄경은 선풍에 흡수되어 사라졌고 권격은 튕겨나갔다. 이 공수는 1초도 안되는 시간에 이루어졌고 영은 그대로 몸을 뒤로 튕겼다가 다시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왔다. 서륜은 숨 가다듬을 사이도 없이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옥소는 주홍빛 과 함께 자줏빛을 동시에 머금었다. 그리고 서륜의 초식이 펼쳐졌다. 초식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공격이었다. 청심지도淸心之道 비전비의秘傳秘義 신수사령神獸四靈. 주작朱鵲 일절一切 홍령익紅靈翼 인우刃羽 옥소가 수십개로 불어났다. 그리고 서륜의 왼팔도 움직였다. 주홍빛을 머금은 소매는 날개처 럼 움직였고 순간 환상같은 손 그림자들이 주홍빛과 자줏빛으로 흔들리며 칼날같은 깃털이 되어 쏘아져 나갔다. 무려 수십개에 달하는 깃털들. 영은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순간 그의 주먹에 어마어마한 뇌전이 서렸다. ……은색의 번개였다. "크으악!" 이 격돌조차 영이 완벽한 우세를 점했다. 영은 실전 경험 하나만큼은 극상! 게다가 이번에 얻은 힘은 이미 인간의 것이라곤 보기 힘들었다. 그가 손을 움직이자 마자 주먹에서 벼락줄 기가 뻗어나가 은색으로 번뜩였고 이미 강기의 깃털들은 깨어져 부서졌다. 그리고 서륜은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튕겨나가 창에 부딪혀버렸다. 아무런 장식도 없지만 대나무로 만든 창에 부딪힌 순간 창은 부서졌고 벽 역시 일부 깨어졌 다. 서륜은 피를 토하며 뒤로 굴렀다. 그리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영은 조소하며 손가락 을 뻗었다. 순간 손가락 끝에서 은색 번개 한가닥이 일어나 뻗어나갔고 서륜은 대체 이게 뭔지 궁금해 하면서도 옥소를 휘둘러 막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옥소는 벼락을 막아내는게 아닌가? 비록 옥소가 뒤흔들리며 충격을 전달하 긴 했지만 부서지지도 않았다. 옥소는 신기神器인 덕분에 신의 힘이라고 할수 있는 은색 벼 락을 막은 것이다. 영의 단아한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이미 그의 몸은 무서운 속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복도 중에 바깥과 연결되어 있는 곳이 있었는데 서륜은 그쪽을 등지고 있었다. 덕분에 영은 마음 놓고 필살의 공격을 펼칠수 있었다. 반쯤 죽여놓아도 죽을 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영은 그냥 닥치는대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왼손에는 은색 벼락. 오른손에는 은색 불꽃이 쥐어졌다. 하늘거리는 불꽃과 꿈틀대는 벼락. "받아라. 그리고 죽어랏!" 지금까지 제대로 된 강한 상대를 만나지 못해 욕구불만(?)에 걸려있던 영이기에 이미 눈은 살기와 광기로 돌아 있었다. 게다가 상대가 속을 득득 긁어놓기 까지 했으니 그라도 이젠 자제하기가 힘들었다. 어마어마한 기폭풍이 영을 휘감았고 서륜은 대검을 끄집어내 그대로 휘둘렀다. 대검에 벼락과 불꽃이 작렬했고 대검은 부드득 하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데미지는 막지 못한 서륜은 그대로 다시 뒤로 튕겨나갔지만 기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상태라 어마어마한 네가닥 회오리가 그의 몸을 감싸고 있어서 벽만 깨졌을 뿐 그는 전혀 다치지 않 았다. 영이나 파괴된 벽이나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잘 회복되지 않는 두개의 힘을 쓰 기까지 했는데 말이지. "다시 한번 막아보라고……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영의 몸은 수십개의 잔영을 남기며 무서운 속도로 밖으로 튕겨나간채 어풍비행술로 몸을 띄 워 상공으로 치솟아 오른 놈에게 치솟았다. 공간을 계단처럼 밟아 올라가며 하늘로 치솟은 그는 진뢰를 운용, 푸른 벼락이 되어 치솟았다가 어마어마한 기폭풍을 운용했다. 거대한 기 의 소용돌이가 그를 휘감고 시작한 것이다. "풍천!" 그는 나지막하게 읊조리면서 무서운 속도로 쇄도했다. 바람을 휘감고 하늘에서 내리 꽂히는 그의 몸에는 강대한 기가 뿜어지고 있었다. 서륜은 순간 폭뢰강기와 심형어검강을 합쳐서 폭뢰심형어검강을 시전해 그대로 2장 길이에 다른 어마어마한 거검을 휘둘렀다. 금적색의 회오리를 머금은 대검은 그대로 기폭풍을 갈랐다. 그러나 영은 조소하며 그대로 벼락을 퍼부었다. 그의 왼손에서 서클식으로 따지면 6서클 규 모는 될 듯한(위력은 더 강대하지만) 은뢰가 일어나 그대로 검의 형상이 되어 춤을 추어댔 다. 바람은 벼락을 부른다…… 그러나 은색의 벼락이라니. 금속성의 벼락은 서륜의 거검을 파괴하면서 칼날처럼 뿜어졌다. 그러나 서륜도 이번에는 대비책이 있었다. 용처럼 꿈틀거리며 은청색 검빛이 일어나 뢰전을 쳐내기 시작한 것이다. 강대한 기운이 서려 있는데 수백개로 불어나 꿈틀거리는 검영이 술 먹은 뱀처럼 움직였다. 신묘한 움직임…… 의외로 신기의 힘을 빌린 공격은 은뢰를 쳐낼수 있었다. 그러나 즉시 은색 불꽃이 작렬했다. "이어서 무형無形!" 무형무. 그의 여섯 검무중 가장 극상이지만 미완성에 위치한 그것. 그러나 일전 본 리오디안 의 무형검 운용 방식을 경험한 후 조금은 진전을 본 것이었다. 무형으로 꿈틀거리는 바람 같기도 하고 물 같기도 한 이상한 움직임이 서륜을 포박하기 시작했다. 리오디안이 보여줬 던 무형박無形縛을 흉내낸 공격이었다. 은색 불꽃을 거검의 자체적 신기의 힘을 기경 없이 사용해서 튕겨낸 서륜은 그 즉시 들어오 는 괴이한 공격에 검에서 기경을 합성하며 산조차 파괴할듯한 어마어마한 강격을 퍼부었다. 거검이 파우우웅 하는 파공음과 함께 그어졌고 포박은 끊어져 나갔다. 하지만 연이어 들어 오는 공격. 정말 쉴새 없는 공격이었다. "신룡현세!" 수십마리의 신룡들. 금빛의 길다란 용형강기가 뿜어져 나와 서륜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빨을 번뜩이며 씹어 버릴 듯 한 강기. 게다가 그냥 강기가 아니라 금빛에 붉은 빛이 덧씌 워져 있어 폭뢰강기를 더한 것임을 알수 있게 했다. 서륜은 즉시 공격을 퍼부었다. 신수사령 권 현무의 태음천太陰天을 시전한 것이다. 백색과 미약한 푸른 빛을 띈 냉기의 소용돌이가 권에서부터 일어나 바람을 그렸고 그것은 그대로 칼날처럼 용들을 베기 시작했다. 신룡들은 쉽게 베어져 나갔고 폭발을 일으키며 사 그라 들어갔다. 그리고 서륜도 방출형 공격을 시작했다. 권이 무서운 속도로 휘둘러질때마다 주먹만한 크기로 응축된 냉기를 머금은 강기덩어리들 수십개체가 쏟아져 나가는 것이다. "환멸幻滅의 비." 서륜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렇게 중얼거리자 마자 강기덩어리들은 직선에서 곡선과 회전 으로 그 움직임을 바꾸었고 강기덩어리들이 마치 수천개로 불어난 듯 천지를 가득 메웠다. 그러나 영은 여전히 여유 있었다. 가볍게 '풍천'을 중얼거리며 풍천무를 시전한 것이다. 순 간 선풍이 일어나며 강기덩어리들을 부수어 나갔다. 환상은 무로. 실체는 폭발로 인도하는 소멸의 바람. 그 잔혹하리만치 날카로운 바람이 일어 나 서륜의 목줄기마저 엄습해왔다. 서륜은 즉시 대검을 거칠게 휘둘러 3장 길이의 심형검강 을 일으켜 그것을 절단했다.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가속해서 단순하지만 정순한 대검격을 퍼부었다. 검극이 치이이익 하고 사선을 그렸다. 그런데 갑자기 검극이 부웅 하고 그의 몸과 함께 회전하며 원을 그었다. 사선에서 원으로 변화한 것이다. 서륜의 몸엔 무리가 갔지만 그 강대한 일격을 방어하려고 하던 영은 움찔 하면서 즉시 손가락 두개를 겹쳐 긋기 시작했다. 서륜이 뭘 하는지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서륜의 대검의 끝과 영의 손가락 끝에서 선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피링 피링 하는 소리를 내며 선회하는 은선들. 마치 와이어 같은 강기의 선이 그어지는 것 이다. 강선剛線이었다. 강선들이 서로 얽히며 폭발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곧 그들이 원을 그 리며 마치 무희처럼 부드러운 춤을 추기 시작하자 선들은 소용돌이를 치며 공중에서 소용돌 이를 그렸다. 까가가가강 은선들이 부딪히며 금속음을 토해냈지만 둘은 아랑곳하지 않고 더 빨리 회전하며 은선들을 발출했다. 영은 은선을 긋기를 멈추고는 장검을 뽑아 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청심지도 살 법殺法의 탄살난무彈殺亂舞. 피피피피피핑 하는 이상한 탄공음이 주변을 메워가기 시작했다. 검이 난창난창 휘어지는 듯한 모양새로 춤을 추는 것이다. 검극이 어딘가에 살짝 살짝 튕겨지는 듯 휘어지는 그림자를 흉내내며 공중에 빽빽하게 예리 한 은색 그림자를 그려 나갔다. 서륜도 그에 응수하여 그 극쾌의 검격을 상쇄하기 시작했다. 대검이 거친 일격을 그려내는 것이다. 정말 극강의 고수들만이 펼칠수 있는 싸움이었다. 영 의 검은 싸구려였지만 검빛이 번뜩일때마다 서륜은 간신히 그것을 막아냈다. '젠장. 청심문의 무공은 예측하기 힘들잖아! 일격만 잘못 막아도 죽는다!' 매너 없는 무공이라고나 할까? 중원의 무공들이 예 차리기 바쁘고 살기가 짙거나 상대에 대 한 배려 같은게 없다면 마검 취급을 하는데 비해서 이것은 말 그대로 살인공격! 그 그리는 그림이 너무나 아름답고 예술적이라 배려가 없다는 것을 잊기 십상이었지만 그래도 이것은 말 그대로 죽이기 위한 검술에 불과했다. 극살極殺의 영이 극살검을 펼치니 이만큼 잘 어울 리는 것도 없었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강 요란하게 퍼부어지는 공격. 쉴새없이 몸을 회전시킬때마다 검빛이 일어났고 그것을 막는 것 은 버거웠다. 하지만 곧 대검이 원을 그리며 방패와 같은 형상을 그리자 쉴새없이 튀며 난 자질 해대던 검도 갑자기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영이 몸을 회전시켰고 순간 검극은 환상같 은 은선을 그렸다. 원. 원을 그린다. 원을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린다. 검이 원을 그린다. 환상같은 만월이 서륜의 눈에 가득 메워졌다. 청심지도 살법 극의. 환월무幻月舞가 발동된 것이다. 정상적 인 간들은 절대 그릴수 없는 검월. 타나토스를 자극하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서륜의 몸에서 피가 튀었다. 그러나 영의 몸에서도 피가 튀었다. 검월劍月이 미친듯이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광파光波가 검월의 테두리로 몰려들기 시작했 다. 서륜은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환상같은 달무리가 흔들렸다고 생각한 순간 그의 손 에서 대검이 떨어졌다. 그러나 은청색 선은 영의 복부를 관통했고 영의 검은 극살 답게 서 륜의 몸을 깊게 베었다. 검엔 피가 잔뜩 묻어나왔다. 피를 빨아올린 검. 기경을 운용했다면 이런게 그려질수 없었다. 내운기경을 사용하지 않는. 인간은 펼칠수 없는 검. 신화경에 오른 자라면 할수 있겠지만 이 런 눈속임이 신화경 고수에게 필요할까. 영의 내장을 자르고 갈비뼈 사이로 튀어나온 은청 색 검은 서륜의 연검이었다. 그의 대검은 어느새 저 밑 바닥에 꽂혀있었다. 쿠웅 하는 소리 가 얼핏 들린듯 했다. "으…… 으윽." "허…… 억." 둘은 비틀거리며 서로의 무기를 간신히 회수한채 비켜 나갔다. 서륜은 넋이 나갔지만 같은 등급의 고수인지라 제대로 먹히지 않았고 덕분에 서륜 역시 찰나에 본능의 힘을 빌려 공격 을 성공시킨 것이다. 서로가 호신강기를 쓸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진정한 무극의 살생검을 이 룬 자만이 쓸수 있는 환월무. 그것이 파해된 순간이었다. 내공이 필요없는 도道중 하나였지만 역시…… 인간이기에. 미완성이 되었다. 영이 현경에 오 름으로써 완전히 터득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이곳에 왔기 때문에 그는 조금 변했고, 검은 완 전한 살검이 되지 못한 것이다. 영과 서륜은 내력에 지대한 타격을 입어 피를 게워내며 물 러났다. 영은 단전이나 혈맥이 끊기진 않았지만 내장이 깊게 찔렸다. 서륜은 대장과 소장이 둘 다 잘렸고 등 뒤로 베고 튀어나와서 혈관들이 끊겼다. 치료하고 운기요상을 하면 간신히 살아날수 있겠지만…… 하지만. 서륜은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죽는걸까. 그는 피를 울컥 하고 다시 한번 한사발 게워내며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 다. 영은 간신히 내력을 극한까지 운용해 상처에서 피를 멎게 한 후 그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의 몸은 서서히 가라앉아 주루 옥상에 착지했다. 영은 입가의 피를 닦은다음 조용 히 서륜을 바라보았다. 이젠 영약을 써야 하지만 반각 내에 그런걸 구할수 있을리 없었다. 생생조화단은 이곳에는 없었던 것이다. 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실수해버렸다. 정곡이 찔렸다고 감성과 이성 모두 폭주해버리다니. 이렇게 쉽게…… "하아…… 춥군. 혈액이 좀 많이 빠진건가. 얼마 안남았으니 물어볼것 있으면 빨리 물어봐 라. ……쉬고싶어." 서륜은 이제 계속 기력을 운용해 봤자 지금 상태로는 폐를 다치지 않은게 다행이 아닐까 하 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건 일반인이라면 3분이면 죽을 상처였다. 하지만 남은 내력을 전부 긁어 모았다. 주변에서 기를 보충할 만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사황태극심결로 반쯤 남아있 는 공력을 운행했지만…… 생각해보면 파란만장했다. 20년 넘게 살아왔지만 이정도면 많이 그리고 즐겁게 산 셈이었다. 알콜 중독자 아버지에 그 아버지가 술에 취해 죽여버린 어머니. 그래도 간신히 더럽혀지지 않은채 학교에서 살다가 잘난 외모 덕분에 더러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후로는 시체처럼 살았다. 정말 시체처럼. 그래서 도망치려고 안달도 했지만…… 돈도 제법 벌었었는데. 서륜은 이상하게 죽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는 데 에서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서륜은 자신의 길다란 흑발이 피에 젖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은데 너무 쏘아 붙였나. 솔직히 돌아갈 생각도 없었던 주제에 왜 그렇게 밀어 붙였지? 영은 자신의 상처에서 조금 피가 흐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는 공력을 운행했다. 다시 피 가 멎었다. 짧은 대주천 한번이 끝나자 상처는 아주 조금씩이나마 아물었다. 내장이 찔렸지 만 이정도는 나을수 있었다. 단전이 부서지지 않았으니. 영은 입가에 미소를 띄고 있는 서륜 을 보면서 심장이 덜컥 하는 느낌을 받았다. '왜 웃는거지? 죽어갈때마다 웃는 자들을 본적이 있지만…… 언제나 왜 웃는가 하는 질문에 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영은 질문을 던졌다. 그게 지금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상하기 짝이 없는 의무감. 영은 허망함을 느꼈다. 사신검협이라고 해서 많은 신망까지 얻고 있던 고수가 검 휘두름 한번에 이렇게 죽어가는 것이다. 편안한 죽음은 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질문할게 있었기 때문에. 못내 그것이 가슴 아팠다. "어디서 왔지요?" "돈 있으면 살기 편하긴 하지만 권태감으로 사람 말려죽이는 데서." 영의 얼굴색이 순간 창백하게 질려갔다. 이 말은…… 영은 조용히 그의 머리카락을 쥐어 올 렸다. 피에 젖은 머리카락. 그의 안색이 창백해지자 조금 흐릿해지기 시작한 눈으로도 서륜 은 그것이 보였는지 멍청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녀석도 설마…… 그럼 멍청하게 괜히 싸 운 셈이 되는군. "……설마? 알아들을수 있습니까?" 한국어였다. 영의 입에서 그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서륜은 피식 웃어버렸다. 죽어가는 순간에 도 갑자기 미련이 생기는데. 영은 멍청한 표정으로 서륜을 바라보았다. '당신도 희생자'라고 말했던 자신의 말이 우스운데서 맞아 떨어진 셈이었다. 서륜은 조용히 입을 열어 말했다. 물 론 모국어였다. "당연하겠지." "그럼 당신도……?" "어디 살았냐?" 서륜은 반말을 쓰고 있었다. 죽는 순간이었지만 서륜은 여유를 잃지 않은 것이다. 별로 삶에 희망없이 살아가던 사람이었으니까. 아팠지만 감각이 마비되어서 참을만 했다. 영이 빨리 혈 도를 써서 출혈을 정지시키고 내력을 불어 넣어 두었지만 그의 상처에서 피가 흘렀다. 서륜 은 손을 들어 그의 상처를 막으며 말했다. "놔 둬. 어차피 늦었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난 태어난 곳은 한국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지는 않았어요." "어디서 살았는데?" 영은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죽어가는 서륜을 위해 입을 열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장소. 생각할때마다 속이 쓰렸다. "미국…… 입니다. 키워지기는 정상적으로 키워지지 않았습니다. 난 사람을 죽이는 일을 배 웠어요. 살수였죠." "……빌어먹을 양키놈들 하는짓이 다 그렇지." 서륜은 화를 내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을 위해서. 태어나서 처음 만난 사람. 하지만…… 어 쩐지 뭔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사람. 영은 그의 볼을 쓰다듬어보았다. 조금 서늘하지만 매끄 러운 피부였다. 서륜은 죽어가는 주제에 겸연쩍은듯 손을 살짝 치웠다. 힘은 하나도 남아있 지 않았다. 내력이 급격히 소모되고 있었다. 앞으로 5분 정도인가. "으윽. 화는 내지 말아야 겠군. 더 일찍 죽겠어." 영은 그 표정이 조금 슬퍼 보였지만 서륜의 눈에는 울것만 같은 표정으로 보였다. 그래서 중얼거렸다. 굉장히 겸연 쩍었다. 환골탈태 후 아름답게 변한 얼굴을 지니게 되었지만 이녀 석은 생김새를 보니 아무리 심법이 뛰어났어도 변하기 전에도 상당히 아름다운 얼굴이었음 이 분명했다. 어쩐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기 전이라서 미친건가? "그런 미안해 하는 얼굴 하지 말라고…… 화가 나니까." 서륜은 그렇게 말하고 한숨을 토해냈다. 점점 호흡에 힘이 없어져간다. 빨리 용건을 마치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날 죽이려면 한방에 죽여버려' 라고 생각하던 때가 언젠데. 정말 자신 의 가치관으로는 불합리한 일이다. 죽어버릴 자와 살아갈 자의 컨택트는. 그는 스스로를 조 소하면서 숨을 다시 간신히 길게 빨아들였다. "말을 해봐." "……언제 한번 만난 사람 같군요." "크큭.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냐? 또 있을지 없을 지는 모르겠지만 넌 이 세상에서 나와 유일하게 공통 분모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예. 그렇겠지요." 이렇게 말하면 우습겠지만…… 형 같다. 있지도 않았던 형을 만난 것 같은 기분. 영은 자신 의 마음에 아직도 이런게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우습고도 기뻤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기 쁘다는 사실이 괴로웠지만 그래도 기뻤다. 조용히 서륜의 등을 받쳐 품에 끌어 안았다. 조심 스럽게, 그리고 약하게. 그는 누굴 끌어 안는게 서툴었다. "……하아. 추워지는군. 좀 따뜻하게 해줘." 서륜이 그렇게 말하자 그는 무리해서 조금 공력을 운용했다. 주변에서 조금씩 공력을 받아 들여서 혈도를 막으면서 기력을 끌어 올리는건 지금 몸상태로는 상당히 힘들었지만 그래도 충분했다. 서륜은 말하기 시작했다. 죽기 직전까지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든 것이다. 왜 인지 는 몰랐다. 말하고 싶었다. 잊어버릴까봐서…… 죽고 환생하면 레테의 강을 건널때 기억이 말소된다지. 그것이 만약 있다면 '이서륜'이라는 인간의 진정한 죽음이 될 것이다. "살수로 키워졌다고 했지…… 그럼 미안하게 됐군. 험하게 말해서 미안하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젠 괜찮아요." 눈물이 날것 같은 기분. 나에게 눈물이 남아 있었던가. 하고 조용히 되뇌어 봤지만 아무래도 있을것 같다. 눈물샘이 있다는 생물학적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어쩐지 있을것 같은 기 분이 들었다. 영은 그를 좀더 깊게 품어 안았다. 그는 영의 가슴에 귀를 대어보았다. 두근 거리는 심장 소리가 늦게 들려온다. 내력을 익힌 탓에 심장 박동이 느릿해진 것이다. 서륜은 좀 그게 불만이었다. 더 듣고 싶은 기분 좋은 소리인데. 하지만 만족이다. 타인의 심장 소리를 이렇게 가까이 들으면서 죽을수 있다는건 어쩌면 행 운일지도 모르겠다. 따스한 느낌. 식어가는 자신의 피부에 어쩐지 불만이 생겼다. 살아있다 면 좋을텐데. 이녀석은 어쩐지 있지도 않은 동생 같아서. 혈육 같아서. 걱정이 되서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한마디 해주고 가고 싶은데. "넌 말이지…… 어쩐지…… 하아. 물가에 내놓은 자식…… 아니 동생 같아서. 갑자기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 혼자 못 놔두겠다." 여기서 찾았는데…… 삶의 이유를. 그는 태어나서 처음 드는 삶에 대한 갈망에 조소가 생겨 났다. 죽기 직전에 이런 생각이 들다니. 이것이 아이러니라고 하는 건가. 그는 영의 숨결이 피가 엉긴 머리카락과 이마에 느껴지자 피식 웃었다. 남의 숨결을 느끼며 죽어간다. 정말 의 외로 편안했다. 죽음이 이렇게 편안했지만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영은 서륜이 그렇게 말하자 속마음을 들킨것 같아서 움찔 하고 몸을 떨었다. 다신 환월무를 쓸수 없을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배웠는데 그게 사라질리가 있을까. 그는 조금 심장 박동이 올라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륜은 확실하게 알수 있는지 가늘게 킬킬거렸다. 죽기 직 전에 웃을수 있다니 이놈도 제정신은 아니다. 아니, 지극히 제정신인가? "……불러도 될까요?" "……뭐? 귀가 잘 안들려서. 아, 눈도 침침해지는군." "……형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영이 그렇게 말하자 서륜은 웃어보였다. 즐거운 듯한 미소. 찾았다. 삶의 이유를. 하지만 이 렇게 죽다니 정말 허망한데. 어쩐지…… 이게 마지막 만남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불길했다. 예감 하나에 만족할수는 없잖아? 서륜은 자신이 의외로 욕심이 많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에게 사랑받고 자라지 못한 자들은 살인을 하거나 뭔에 집착 하게 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서륜도 결손가정에서 자란 주제에 욕심은 없었다. "그래…… 이름이 뭐야?" "현청. 청淸입니다. 맑을 청자에요. ……형." 부르기가 힘겨웠다. 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속에서 뭔가 치미는 듯한 느낌이었다. 서륜 은 눈이 침침해져 있어서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공력이 급속히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진원 도 흩어져 가더니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공력이라고는 수치상으로 한갑자? 1분이나 버틸수 있을까? "좋은 이름이야." "……예." "예가 아니라 응." "……응." 영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움켜 쥐어 뜯어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발갛게 달 아 오른듯 확확 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극살을 얻고 나서…… 가족의 정을 느낀 셈이다. 운 에게서 느낀건 인간적인 동질감이었지 가족의 정이나 애정으로 발전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 니었다. 그런데…… 얼어붙었던게 녹는 기분이었다. "하아…… 기분은 좋은데…… 다행히…… 즐겁게 갈수 있을것 같아. 왜 인지는 모르지만 다 시…… 만날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서륜은 힘이 없어서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겐 회광반조고 뭐고 없는 것인지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힘이 빠져서인지 영의 등을 쓰다듬어 주던 손도 툭 떨어져 나와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서륜은 입맛이 굉장히 쓴 것을 느꼈다. 곧 떠날 주제에 너무 잔인한 짓을 해버린게 아닐까. "슬퍼할 수가 없어서…… 미안해요. 슬퍼할 수가 없어서. 감정을 잃어버려서." "……하지만 심장은 아주 기분좋게 뛰는데?" 영은 다시 얼굴이 발갛게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영은 그를 꼭 품어 안은채 조금 더 무리해 서 상당히 치료된 상처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공력을 끌어올려 그의 몸을 덥혀주었다. 따스한 느낌에 서륜은 눈을 감은채, 웃어보였다. "감정은 죽인다고 죽는게 아냐. 그 근간 자체를 없애는 방법이야 있겠지만 언젠가는 회복된 다고 생각한다. 그 근간도 사라지지 않을거야. 배우지 못한다고 나중에 얻지 못하란 법은 없 으니까." 서륜은 조금 또렷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마지막 힘을 다 쥐어짠다는 것은 영도 알고 있었다. 회광반조도 아니었다. 서륜은 미소를 띈채 눈을 감았고 뭐라고 한마디 더 하고 싶었 지만 곧 눈을 감은채 잠들듯. 그렇게 죽어버렸다. 영혼이 잠시간 떠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만날것 같은 기분에 미련도 놔버렸기 때문에 지박령도 될수 없겠지. "……아아." 호흡이 멎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세히 보니 정말 창백했다. 웃는 다고 따스한 혈색이 도는 듯한 얼굴로 착각한 것일까? 영은 그 차가워진 볼을 쓰다듬어보았 다. 입가에 약한 미소가 맺혀 있는 시체의 얼굴. 영은 그를 내려놓고 좀더 편한 자세로 눕혔 다. 아까 나왔던 말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투두둑 하고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그는 피에 젖은 손으로 얼굴을 매만지다 눈을 부비게 되었다. 눈에 피가 들어가서 아파왔지만 그 아픔은 금방 사라졌다. 태어났을때도 눈물을 흘 리지 못했고 4살때 단 한번 눈물 흘린 적을 제하고 나서 처음 흘려보는 눈물이었다.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텅 비어 버린 것 같은 마음. 심장을 뽑아내고 폐를 잘라 낸 다음 봉합하고 살아있다면 느낄 수 있을 텅 빈 듯한 느낌. 몸에 힘이 상실되는 것 같았다. 그는 이빨을 꽉 깨물었지만 그래 도 힘이 나오지 않았다. 그의 새하얀 얼굴은 붉은 피 자국으로 물들었고 그의 새하얗고 맑 았던 눈자위는…… 그가 문질렀던 손과 흐르는 눈물 때문에 붉은 색으로 충혈되고,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게 다가 약간의 붉은 빛이 도는 검은 눈동자 때문에 눈 전체가 붉은 색으로 보였다. 어둠 속에 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하늘을 가를듯 쏟아지는 달빛 덕분에 잘 보였다. 만월도 아닌 주 제에 얄밉게 밝은 달이었고 맑은 날이었다. 이런 때에는 비라도 쏟아져 줘야 정상이 아닐까. 다만 스산한 바람만이 몸을 스쳐 지나갔다. 다시 다정스럽게 다가왔다 심장에 비수를 꽂아넣고 사라진 사람 하나. 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핏빛의 눈에서 흘러내려 피와 뒤섞여 투둑 투둑 서륜의 몸 위로 떨어졌고 그것은 마 치…… 혈루血淚처럼 보였다. "아…… 하하하……" 부서져 버린 것처럼 그렇게 서륜을 끌어 안은채 그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곧 그 텅 비어버린 웃음은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흐느낌으로. 눈물이 멎은 것은 동이 터올 무렵이었다. 이즈는 서륜의 사체가 안장되어 있는 방으로 몰래 스며들어왔다. 그리고 관 뚜껑을 열었다. 상처도 잘 꿰메어져 있었고 매우 깨끗한 몸이다. 귀엽게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이즈는 서륜 의 볼을 쓰다듬어 보았다. 이미 시체였고 서늘했지만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눈을 뜨고 일어 날 듯한 시체였다. 하지만…… 죽은 몸이다. 영혼이 아직 떠나지 않았지만. 이즈 같은 고결한 영혼(별로 믿어지지 않지만)이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註 : 시간屍姦) 같은 취미가 있을 리는 없었고 그냥 생긴게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부패 방지 주 문을 걸고 좀 보수해서 박제 해두면 좋을지도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안된다. 창조술 써서 복제품 놔두고 가져가는 수단도 있으나 나중을 위해서 놔 둬야 했다. 창백하게 굳어 있는 시체. 사후 경직이 지나서 부드럽긴 하겠지만 부패는 꽤 빨리 진행될 것이다. 아무리 고수의 시체라도 부패 안되는건 아니다. 유기질이니까. 시체엔 가치가 없었 다. 왜냐하면 유기질에 불과하니까. 아무리 아름답게 만들어놔도 썩어갈 유기질엔 별로 관심 이 없었다. 그녀가 지금 할 일은 나중에 각성할 영을 위한 하나의 일이었다. 저런 영혼이 슬퍼하는 것은 그녀에게도 괴로운 일이었다. 추가로 육신은 몰라도 영혼 하나 만큼은 기가막히게 아름다운데 그런 영혼에게 밉보이고 싶진 않았다. 살릴 수 있으면서 방 관했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도 않았고. 이건 독단이었지만 아슈라스나 샤이네이드나 재미있 을것 같다고 박수는 칠 지언정 말리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일 끝난 뒤에 써먹을테니. 「나와라!」 이즈가 언령을 실어 읊조리자 순간 서륜에게 의식이 돌아왔다. 육신에서 분리되었지만 아직 죽음을 완전히 자각하지 않았는데. 약간 푸른 기가 도는 반투명한 영체가 흘러나오자 이즈 는 귀엽다는 듯 영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죽은 자와 접촉하면 별로 좋진 않을텐데 놀랍게 도 이즈는 어떤 힘이 실리지도 않은 손으로 그를 만질수 있었다. "정신은 들었어?" 「다, 당신은?」 서륜이 놀란 눈으로 아름다운 은옥색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이즈를 바라보자 이즈는 머리카 락을 부드럽게 흔들어 넘기면서 한쪽 눈을 찡긋 해 보였다. 프로포션도 최상이고 상당한 글 래머 스타일이긴 한데 옷이 도포 스타일이어서 잘 드러나진 않았다. 그러나 생동감과 함께 상당한 매력이 느껴지긴 했다. "난 이즈. 당신은 서륜이지?" 서륜은 문득 흰소리를 했다. 제정신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런데 죽어서도 이정도로 정신을 유지할수 있다니 과연 현경 고수! 아무리 경험이 조금 모자랐다고 해도 역시 현경 고수는 대단한 경지였다. 인간 중에서는. 「여기 저승사자는 외모로 영혼들에게 서비스도 하는거야?」 "무슨 헛소리야? 저승사자 따위가 어디있다고. 윤회 시스템엔 관리자가 필요 없어. 원래 당 신은 여기서 윤회를 타고 기억을 잃은다음 끝없이 돌며 그 개연성과 퍼스널리티를 잃어버리 게 될 터지만 이 몸의 재미를 위해서는 좀 수고해줘." 「뭐? 난 죽은몸인데 날 보고 만질수 있기까지 해서 저승사자로 생각했었는데?」 "아 글쎄 저승사자따윈 인간들이 지어낸 거라니까." 이즈가 말귀를 못 알아 듣는 서륜에게 그렇게 말한다음 서륜의 몸을 움켜 잡았다. 그리고 품속에서 주먹만한 구슬을 들어보였다. 투명하고 동그란 구슬이었다. 서륜이 뭔가 그 구슬에 서 이상한걸 느끼고 질문을 던졌다. 「이건 뭐야?」 "당신 집. 일단 의식은 봉인 할수 있고. 영혼을 봉인하는 구슬이야. 싸구려지. 현청인가 하 는 애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필요하거든. 들어갈래?" 이즈가 천연덕 스럽게 반문해오자 서륜은 이 여자 멍청이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면서 말했 다. 이즈가 그 생각을 읽었다면 한대 맞았겠지만 이즈는 의외로 사려가 깊어서 깨달음이 낮 은 영혼이라도 생각을 함부로 읽지는 않았다. 「……내가 왜? 난 죽은 자라고. 게다가 그 애를 위해서라도 인질人質…… 아니. 귀질鬼質 취급은 당하지 않을거다.」 "아아. 그게 아냐. 그 녀석이 각성 한 후에 당신을 되살려 줄수 있으니까. 그 조건으로 대답 할거야. 당신의 소멸 여부로 협박하는게 아니라고. 돌려줄 것인가. 말 것인가…… 겠지? 그 녀석은 지나치게 여린 면이 있어서 아마 먹힐거야." 그러자 서륜이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영혼인데 가능했다) 지어보였다. 반 투명하긴 했지만 내장 같은건 존재하질 않으므로 구역질 난다거나 하진 않았다. 움직일 때마다 벽에서 튀어 나오거나 하면 울렁거림 때문에 좀 보기 그렇겠지마는. 「내가 그 아이 옆에 있는다고 뭐가 달라지지? 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다음에 그 아이를 만나게 되면 이미 아이가 아니라 신神의 존재…… 당신 정도는 가볍게 되살릴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존재가 되어 있을 테니. 거래에 응하지 않겠어?" 서륜의 표정은 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 유령이라서 그런지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제야 연상 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서륜의 몸 주변에서 차가운 냉기와 음기가 뿜어져 나오 기 시작했는데 이즈는 서둘러 그것을 결계로 막았다. 영이 느낄수도 있으니. 「당신이…… 당신이 그 아이와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존재인가?」 "아니아니. 난 부른적 없어. 그냥 상관들 명령에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그 아이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을지 생각해 봤나? 너희들이 아무리 강력한 존재라고 할 지라도 그런 권리는 없어!」 서륜이 분노하며 냉기를 뿜어내자 이즈는 가볍게 음기를 밀어내버리고는 조소했다. 하지만 서륜은 꽤 중요한 인물이라 감정 상할 일은 하지 않는게 좋았다. 그래서 표정은 웃는 얼굴 이 되었다. 서륜은 화를 내고 싶었지만 이즈가 말하기 시작해서 잠시 화를 분출하는 것을 멈추었다. "권리가 있고 없고는 이쪽에서 결정해. 현청인가 하는 애는 어차피 상관들중 하나가 만들었 다고. 창조물을 맘대로 못해? 아, 못한다고 할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이쪽에서는 필요가 있 어서 만들었을 뿐. 다른걸 책임져 줄 이유가 있나? 신이 인간을 책임지라고 하는건 억지란 말야. 물론 뭐라고 교전에 잔뜩 떠벌려 놓는다면 문제지만 그건 신이 한게 아니라 인간들끼 리 제 멋대로 써 넣고 자기들끼리 필요로 만든 거잖아? 아무리 신앙으로 인해 태어난 후신 들일지라도 오히려 인간에게 분노할 지언정 베풀 이유는 없어." 이즈가 속사포처럼 떠들어버리자 서륜은 할말이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편협하기가 둘 째 가라면 서러울(아니, 수많은 차원이 있으니 몇번째인지는 모르겠다) 유일신교 같은건 믿 고 있지도 않았으니까. 할말이 궁했다. 하지만 서륜은 화가 풀리지 않았다. 말좀 길게 한다 고 화가 풀릴리가 없는 것이다. 현청은 그에겐 동생같은 존재였다. "아아. 별로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조용히 닥치고 여기 들어가." 그녀는 구슬에 염을 가해 서륜의 몸에 집어 던졌다. 서륜은 당황했지만 그의 몸이 순간 빛 을 뿜어내며 그대로 구슬에 빨려들어갔다. 구슬은 반투명한 금은빛으로 반짝이더니 곧 푸르 게 물들어갔다. 코발트 블루와 라피스 라줄리를 혼합해 놓은 것 같은 푸른 색이었다. 그녀는 구슬에 살짝 키스하고는 품에 집어 넣었다. "흐응. 역시 좋다니까. 구슬은 하나 더 있으니까 운이라는 애도 집어 넣든지 해야지. 뭐 죽 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죽지 않으면 죽이면 되는 일이고." 이즈는 그렇게 말하고는 관 뚜껑을 제대로 닫았다. 그런 다음 향기 같은거나 모든 것을 다 지우고 언령을 이용해 좀더 손을 본다음 공기속으로 녹아들어가 사라져버렸다. 생각 만으로 패스 월 주문을 이용해 나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바로 공간도약을 해서 사라졌다. 이 대륙에 서 벗어난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아직 임무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무림은 격동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소문이 퍼진 것이다. 목격자도 많았다. 은영천검銀影天劍 과 사신검협四神劍俠의 격돌…… 밤에 마주쳤던 그들은 신비로운 빛의 강기를 뿜고 불길한 핏빛의 검강을 휘두르며 싸웠다. 하늘에 치솟아 올라 비행하며 싸우는…… 현경이라고 하더 라도 천령단을 완성하지 못하면 내공 소모로 날다가 떨어져 죽을 짓이었다. 그들의 인간 같지 않은 강대한 무위를 다시 인식한 무림인들은 경악하고 또 감탄했다. 사신 검협은 죽었고 은영천검은 살아 남았다. 누가 더 강자인지 증명해 보인 셈이었다. 사신검협 의 독문병기 네가지를 얻기 위해 많은 이들이 숨어들었으나 전부 은영천검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은영천검은 그 후 사신검협의 시신을 수습해 3일간 장례를 진행했다. 사신검협의 관은 땅에 묻혔다. 하지만 은영천검은 시체 대신 관 만을 묻었다. 강호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일까? 사체를 빙한의 힘으로 얼려서 어딘가에 안장해 두었 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은영천검과 사신검협은 외모는 달랐지만 닮은 구석이 많았다. 그 강 대한 무위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두명이 형제가 아닌가 하는 소문도 있었도 은영천검이 자신의 적수를 되살리기 위해 어떤 사교의 술법을 사용하려고 시체를 보존하기 위해 얼음창고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 었고…… 수많은 소문들이 퍼져 나갔지만 금새 잔잔해졌다. 은영천검이 그 시체를 어떻게 했는가에서 관심사가 돌려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일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제 2차 정사마正蛇魔 대전大戰 발발勃發! 그것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천류세가가 운 영하는 하나의 주루에서 벌어진 일으로 무엇이 원인 인지는 아무도 알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벌어진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뒤에서 수작을 부린 것인지도 불분명했다. 정확한 것은 천류 세가의 검수들 20여명을 무림맹이 죽였다는 것 뿐이다. 그것 만으로 충분했다. 명분이 어디에 있건 무림인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중립으로 남아 어부지리를 노리는 자들 역시 생겨났다. 하지만 그들은 감히 끼어들 여지도 없이 죽음을 맞 았다. 천류세가와 무림맹이 국지전을 벌이기 시작했을때 은근히 분타를 건드려서 큰 피해를 조장하려던 자들은 어마어마한 정보력을 지닌 천류세가와 무림맹에 의해 멸절되었다. 이미 제 3세력이 어떻게 해보기엔 이들의 덩치는 너무 커져 있었던 것이다. 무림맹이 말도 할수 없이 열세였다. 하지만 곳곳에서 은거하고 있던 기인들이 출현하고 무 림맹에 들지는 않았으되 천하를 방랑하던 많은 무사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숫자는 오히려 무림맹이 두배는 많아졌다. 총 8만에 달하는 인원이 검을 부딪히고 무를 겨루게 된 것이다. 무림사에 길이 남을 대전이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천하는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물론 총 인구가 1억이 훨씬 넘어 거의 2억에 근접해 있는 대 륙에 8만의 피가 뿌려지는건 양분밖에 더 되겠냐마는…… 수없이 죽었고 수없이 살았다. 산 자와 죽은 자의 희비가 엇갈렸다. 정과 사의 구별이 없어졌다. 수많은 작은 문파는 정과 사 를 가리지 않고 무림맹과 천류세가로 양분되었다. 명분은 사라져버린 셈이다. 그 싸움이 있는지 1개월이나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 히 조용했다. 8만이 떠들썩 거리며 싸워도 황실은 여전히 관여할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손 을 잡고 일단 황실부터 입 닥치게 해 두자는 심보로 덤벼들면 황실은 힘을 다 소진해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총 인구가 2억에 다다르면서도 널직널직하게 살수 있을 정도로 넓은 대륙이었다. 미지의 땅 이 많아도 판게아인지라 지각변동이 그렇게 많지 않은 땅. 그래서 평야가 많아 먹을 것도 풍족했고 조용한 곳은 조용했다. 다만 한 밀집된 구역이 시끄러웠을 뿐. 일통된 하나의 제국 은 이 넓은 땅을 어떻게 운용해 보기에도 바빴다. 어지러운 천하에는 피비린내가 넘쳐 났다. 미친 듯이 싸우며 기력을 소진해 나가는 것이다. 지금에 있어서는 마교가 최열세였다. 무림맹이 대량으로 끌어들인 문파는 어마어마 했다. 세 외의 마교가 그 주변의 문파와 공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마교는 오로지 그 하나로 오롯 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현재의 마교는 숫자나 힘에 있어서 그 힘이 꽤 소모된 무림맹이나 천류세가 보다 못했다. 하나의 가문이(비록 그 가문의 핏줄은 딱 한명 뿐이지만) 연맹 하나와 역사 깊은 무력 집단 하나보다 더 강하거나 비견될 정도라니. 주변의 힘을 대량으로 끌어들여 달려들어 격돌하는 무림맹과 천류세가의 대결은 이 넓은 대륙도 서서히 뒤흔들고 있었다. 그 지루한 소모전이 끝난 것은 무림사에 혼겁대전混劫大戰이라 불릴 하나의 싸움이 일어나 고, 끝나고서였다. 그리고 신화神話하나가 이룩되고 나서야 세상은 다시 조용해져갔다. 신화 경神化境의 검수 하나의 탄생과 함께 이 지루한 정사마 대전이 끝난 셈이었다. 그리고 득을 본 것은 제 3자에 속한 집단이었다. 무아각無我閣. 여러차례 부서지고 복구되었던 무림맹 본단. 제 1차 정사마 대전이 있은지 얼 마 지나지 않아 마교도 정파도 그 힘을 다 수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터진 제 2차 정사마 대 전. 예의 9파 1방 이라고 했던 문파중 상당수가 멸문되어 그 수뇌가 죽고 몇몇 제자들과 비 급들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상처가 회복되는 것은 앞으로도 100년은 지나야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천류세가가 검을 들고 일어나 무림맹에 복수하겠다고 엉겨 들었으니…… 정파에 속한 자들에게 있어서는 그 야말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어떻게 막으려고 해 봤었지만 애꿎은 뇌검자만 죽어 나 가버린 것이다. 제 살 깎아먹기를 해버린 셈이었다. 제 2차 정사마 무림대전이 열린지 1개월이 지난 뒤 정파의 수뇌들은 피곤한 얼굴로 회합을 가졌다. 수뇌는 고수다. 그러니까 앞에 나가서 싸워야 한다. 사기를 위해서라도 뒤에 있을 수는 없었다. 제자들을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장문들은 뛰쳐 나가서 싸웠고 덕분에 그 들은 피로로 죽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하아. 우리는 지금까지 은영천검 그자를 이길 방도를 찾을 수 없었소. 마침 그가 사신검협 과 싸워서 부상을 입긴 했지만 그래도 현경의 끝에 이른 자. 1주일도 안되어 회복하고 일어 날 것이오. 고수와의 싸움에서는 이긴자에게는 오히려 상처가 적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듯 이…… 그냥 찔린 상처나 났겠지." "물론 그건 좋은 소식이 아니지 않소 맹주? 틀림없이 좋은 소식이 있어서 부른 것이 아니었 소? 그에게 대적할 방도를 찾아냈다는 것 때문에 화색을 하고 달려왔더니……" 맹주는 자신의 말을 끊은 상대를 바라보았다.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겠지만 이들 전부는 싸 우느라 지쳐 있었고 그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맹주는 입맛이 쓰다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한숨을 토했을 뿐이었다. 그도 한숨을 토했다. 화산의 장문 이 한룡이었다. 이미 피로에 절어 어떤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 화낼 기분도 나지 않는다. "혈천의 교주가 드디어 찾아냈소." "하아. 주술에 기대야 하다니. 그래도 찾아냈다는게 다행인가……" 이한룡은 피곤에 절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청수한 외모는 어디로 가버리고 피곤에 절은 남자 하나만 남았다. 자전검은 뽑힐때마다 피를 대량으로 먹었고 지금에 있어서는 명검으로 써의 청아한 맛은 사라지고 마검으로써의 피냄새만 나는 검이 되어 있었다. 이걸 씻어내려 면 적어도 최소 50년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찾아 냈다는 것 자체가 다행이지 않겠소." 혈천교주 북궁경은 씁쓸한 표정으로 이한룡을 바라보았다. 주술이라고 격하하는게 별로 마 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게다가 이건 혈천교에서도 비전중의 비전이 아닌가? 본래 혈교는 선법仙法과 영법靈法을 연구하는 단체였는데 어쩌다 보니 피를 섬기는 단체가 되어 버렸고 피를 사용하는 주술과 사령의 힘을 쓰는 주술이 더 발달했다. 그래서 사라져버린 이 기록을 찾는데 많은 고생을 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뿌듯한 심정이었다. "교주. 설명해 주시오." "알겠소이다." 북궁경은 피곤했지만 그래도 일어났다. 로브 비슷한 옷이 아니라 지금은 붉은 색과 금빛의 실로 수놓은 장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 수려한 외모가 드러났다. 피곤에 절어 있는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지금에 있어서는 약간 쉰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내력을 제대로 익 히지 않은 그는 쓰러졌을 것이다. "만일류귀원萬一流歸元 만상무극합일진萬象無極合一陳이오. 원래 혈천교는 선유문이라고 해 서 영법과 선법을 연구하던 단체였소. 어쩌다 보니 변질되어 버렸지만…… 무공과 선법으로 마음을 단련하던 단체였는데 사도에 빠져들어 피를 사용하는 주술을 쓰게 되어 이것은 사장 되다 시피 했었소." 서문이 길다는 표정을 모두가 지어보이자 북궁경은 자기도 피곤하지만 어쩔수 없다는 표정 을 지어보였다. 이젠 다들 전장에서 싸우다 보니 묘한 교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전우애라고 나 할까? 정과 사가 전우애라니 우습지만 그래도 사실이었다. "이것은 선유문에서도 비전중의 비전으로 꺼려지는 힘이오. 일원, 음양, 삼재, 사상, 오행, 육합, 칠정, 팔괘, 구궁과 십방에 기초를 둔 내공심법을 모두 하나로 합일하여 그 흐름을 한 군데로 집중하고 진법의 중앙에 선 자는 그것을 전신에 흐르게 하여 무공을 사용할수 있소. 우리도 최근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인간은 단전에만 기력을 쌓아놓고 쓸수 있는게 아니라 전신에 내력을 모아두고 사용할수가 있소이다. 천산검주께서도 확인해 주셨소. 그분은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지만……" 말이 너무 길어져서 인지 북궁경은 일단 물을 한잔 마신 다음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두에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천산검주께서 진법의 중앙에 서서 그 힘을 사용하실 것이오. 그렇다면 천산의 모든 검식을 무한대로 사용할수 있게 되고 현재 그 전신이 진기의 덩어리라고 할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 으로 추정되는 은영천검도 쓰러 뜨릴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오. 그 진은 주변의 기를 차단하 고 강대한 구 형태의 방어벽을 쳐서 은영천검의 탈출도 막을 수 있을 것이고…… 진법을 형 성한 모두의 내력을 모아서 무극으로 정화한다음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인원으로 효 과적으로 그를 쓰러뜨릴수 있게 되는 것이지. 총 216명으로 108씩 2개조요. 번갈아가며 싸우 는 것이지. 진의 구성은 총 108명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그 흐름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정 확한 자리에 서야 하오." "그런데 정말 확실하게 발동하는 진이요? 상고사에도 그런 진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 은데…… 사실이라면 대단한 것이지만." "확인했소." 북궁경이 무뚝뚝하게 한마디 하자 모두들 경탄의 표정이 되었다. 그것이라면 정말 확실하게 은영천검을 누를 수 있을 것이다. 영은 내면의 검을 가볍게 흔들어보였다. 스르릉 하고 얇은 검신이 가볍게 흔들리면서 검이 있던 자리로 짙은 은색의 검영을 남겼다. 그리고 그 검영이 찰나 길게 늘어났다. 검영의 간 격이 꽤 넓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그것은 피를 잔뜩 먹고 있었다. 은적색의 검영이 다 시 흔들리자 마자 또 피가 튀었다. 환검幻劍의 극치. 물론 검의 힘을 조금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짙은 은색 그림자가 남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검에 맞은 자리에는 백색으로 그을린 기이한 화상이 남았다. 탄화 되는게 아닌 것인지 백색으로 타들어가는 것이다. 백색으로 타는 경우도 있다지만 사람의 몸은 불타게 되면 탄화된다. 그런데 백색으로 타는 것이다. "합!" 영은 나지막한 기합과 함께 달려드는 자들중 푸른 도포를 입은 자를 향해 길게 찔러들어갔 다. 순간 검에서 은색의 불꽃이 화악 하고 폭발하듯 일어나며 퍼엉 하는 폭발음을 냈다. 검 은 그 폭발에 밀려나가듯 예리하게 튀며 상대의 검극이 그린 검화劍花가 미완의 강기 형태 로 덮쳐들었지만 그것을 말 그대로 절단해버렸다. 낭인들 중에서도 제법 쓸만한 실력을 지 닌 자인것 같았다. 아마도 어디 파문제자이겠지. "환월무……" 그는 조소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서륜을 죽인 수법이었다. 몸을 부드럽게 회전시키며 검이 환상같은 은월銀月을 그렸다. 이 당시에 이 검으로 은색 그림자를 그리며 서륜을 베었다면 유언이고 뭐고 없이 즉사했을 것이고 영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겠지만 그때는 장검 하나만 을 달랑 들고 싸웠을 뿐이었다. 치이이익 검극이 원을 그리고, 순간 원이 은색의 달이 되어 월광을 토했다. 그 은은한 빛이 살기 한조 각 머금지 않고 뿜어져 월광으로 인식된 순간 그 환상을 바라보던 모든 이는 죽었다. 영의 몸이 흐릿해진 순간 검빛이 선을 요란하게 그었고 그 선의 범위에 들어간 자들은 데드라인 에 걸려 절단되어버렸다. 비명도 토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만영참萬影斬." 환월무 만영참. 저번에 서륜에게 사용했던 것은 환월무 진월야眞月夜였지만 지금 사용한 것 은 정묘함은 조금 떨어져도 내면의 검으로 보완한 다수를 공격하는 환월무였다. 보나마나 이 다음 대사는 뻔했다. 정도 무림에 속하건 어디에 속하건 중원의 자존심…… 아니 아집이 란 그런 것이었다. "무, 무슨 사술을!" "자기가 못하면 무조건 사술이겠지." 영은 그렇게 상대편들의 말을 가볍게 씹으며 다시 검을 날려 한명의 머리통을 절단해서 바 닥에 떨구었다. 귀찮다는 듯 눈에 붉은 살기가 도는 모습으로 검을 뿌리면 피가 튀어오른다. 그의 몸을 휘감은 호신강기와 천풍무궐운무기天風舞獗雲霧氣가 모든 공세를 비껴냈기 때문 에 피 역시 몸에 묻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천풍무와 궐운무기를 합친 기운에 의해 살랑살랑 흔들리며 한올한올 풀어 헤쳐 져 공중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신死神! 무심한 표정에 심드렁한 목소리까지 더해져서(상대방에게는 음산하게 들렸다) 분위기는 삭막했다. 거의 의형살인에 다다를 정도 의 살기가 폭풍우로 모두를 덮치고 있었다. "풍운우뢰風雲雨雷." 먼저 바람. 검이 흐릿해지더니 몸에서 거대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이것은 내면의 검인지 라 진정한 신검합일身劍合一을 내력 소모가 좀더 없이 성공시킬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지 나간 자리에 하얀 바람의 갈퀴가 할퀴며 뜯고 지나갔고 피가 푸화학 하고 튀어오르며 바람 에 휘감겨 퍼져나갔다. 말하자면 삭풍조朔風爪였다. 이어서 그의 몸이 다시 흐릿해지더니 검운劍雲이 되어 퍼저나갔다. 마치 안개같았지만 안개 입자 같은 공격 하나하나가 치명타. 당연히 그것에 맞은 적들은 조각조각나며 피투성이가 되어 무너져내렸다. 검엔 피가 묻지 않는 것인지 부연 검의 구름은 붉은 색이 아닌 부연 은 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이어서 비. 구름이 갑자기 짙어지더니 그것에서 서릿발같은 은색 빛들이 튀어나와 주춤주춤 물러나는 적들에게 작렬했다. 무림맹 정규 무사는 아니었고 그냥 낭인떼들이었지만 그는 아 랑곳하지 않고 검을 뿌렸다. 총 3천이 넘은 예리한 은색의 비가 쏟아졌다. 검우劍雨. 그리고 그 찌르기에 의해 피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풍검, 운검, 우검, 마지막으로 벼락의 검. 구름이 흩어지는 듯 하더니 환상처럼 은색의 전광 이 튀었다. 그리고 벼락을 휘감은 검이 길게 뻗어나가다가 갑자기 방전放電되듯 흩어졌고 그것은 모든 적들의 심장과 각종 장기를 파헤쳤다. 벼락소리가 울리자 마자 피와 살점이 튀 어 올라갔다. 그리고 영이 가볍게 검을 내렸다. "저…… 저게 인간의 힘인가……" 낭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건 화경의 고수도 할수 없 는 절예! 검이 자연에 동화 된듯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같은 현경이라도 급이 낮다면 보여 줄수 없는 궁극의 검예. 그 쾌속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스피드에만 해도 주변에 난 류가 몰아치고 있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게 검으로 베고 찔러 죽여버리는. 영은 다시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가 등 을 돌린채 가볍게 검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자 즉시 화살이 날아들었다. 궁부대가 있었는지 화살에는 날카로운 내력이 맺혀 있었다. 개중 암기도 제법 섞여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 살들은 수백조각으로 깨져나가 파사삭 하고 부서져버렸고 암기들은 쨍 하고 튕겨져 나가거 나 그대로 박살나버렸다. 파편조차 그의 등에 맞지 않았다. "귀찮군." 영은 그렇게 한마디 하고 검을 뒤로 뿌렸다. 그러자 검광이 부챗살처럼 뻗어 나가 적진에 격중했고 그것에 꿰뚫린 자들은 즉사했다. 비명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독하게 손 을 쓴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자비일까? 괜히 팔다리 몇개 잘라서 출혈과다로 죽어가게 할 수 는 없지 않은가. 어쨌든 잔인무도하게 죽이는건 제법 메리트가 있어서 오합지졸烏合之卒이 나 다름없는 낭인, 혹은 방랑무사들은 겁을 잔뜩 집어먹고 물러나고 있었다. "총알받이…… 아, 아니. 여기말로 하면 일종의 칼받이, 희생양, 방패인가. 이따위 것들에 게 양패구사 할정도로 우리가 약해 보였나. 아니면 이건 작전인가?" 영의 조소에 낭인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다. 정도무림 어쩌고 하고 왔지만 정말 피끓어서 온 자들은 드물었고 무명이나 드높여 볼까. 아니면 낭인의 무술 이라도 강하다는걸 증명해 보기 위해서일까. 그러나 영의 신위를 보자 살아남을수만 있다면 뭐든 할 기세였다. "……버러지들." 영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검을 하늘로 던져 올린채 자신의 진영으로 몸을 돌렸다. 이 들은 산공독을 이용해서 먼저 분타 하나를 공격했는데 덕분에 이곳의 검수들중 2할이 죽음 을 맞았다. 뭐 영이 시급히 달려와서 얼마 피해 입지도 않았고 지금은 자신이 끌고온 팔검 위중 칠검위와 팔검위. 100명으로 구성된 일종의 별동대인 천운대가 보호하고 있었다. 그들 의 힘은 꽤 강해서 천류세가 일반검수 다섯명을 단신으로 감당할수 있는 강자들이었다. "죽여없애." 영은 검을 향해 명령했다. 내면의 검인지라 이기어검 같은 통제 없이도 검에서 갑자기 은색 의 벼락이 일어나면서 검이 섬전처럼 쏘아졌다. 그리고 검이 꽂혀든 자리에서 은색의 꽃과 붉은 꽃. 그리고 비명이 만개滿開했다. 영은 몸을 돌려 가볍게 신법을 전개했고 그대로 본타 로 돌아왔다. 산공독 까지 쓰고 낭인을 쓰면 밥버러지라도 밥값은 하겠지 하는 계산이었는 지 무림맹 정예는 없었다. 하긴, 산공독이라니…… 정도를 자처하는 놈들이 쓸 수법은 아니었다. 보나마나 이제 낭인들 의 독단이라고 주장하겠지. 그러니까 이것은 이용해야 하지 직접 뭐라고 항의해서는 안된다. 그냥 소문을 흘리면 된다. 정도 무림맹이 산공독을 이용해 분타 하나를 마비시킨뒤 손을 더 럽히기 싫어 낭인들을 칼받이로 썼다고. 뒤에서 날아드는 무언가를 느낀 그는 그것을 붙잡았다. 내면의 검이 돌아온 것이다. 검신을 쓸어보인 그는 그것을 내면으로 되돌렸다. 겉에서 볼때는 손으로 빨려들어가 없어지는 듯한 괴이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영은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 그대로 몸을 돌려 분타로 스며들어 왔다. 경계를 펼치고 있는 천운대가 그에게 경례를 올렸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분타로 돌아왔다. 그래도 하루만 지키면 그럭저럭 괜찮을 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도 전투가 있었는지 시체들이 꽤 널려 있었다. 불쾌함을 느낀 그는 내력을 이용해 몇몇 시체를 불살라버렸다. 증거야 저 벌판에 가득 널려 있고 도시에 있는 자들이 보았으니 낭인들이 습격했다는 것을 굳이 알릴 증거는 필요 없었다. 무림맹도 멍청하지는 않으니까 눈가리고 아웅 하지는 않을테고. "벌써 1개월인가. 슬슬 시작하겠지? 전서구는 오늘이나 내일중 오는건가." 영은 씁쓸함이 조금 서린 표정이었지만 금새 그 표정은 지워졌다. 머리카락을 그대로 흩날 리면서 걸어든 그는 이미 호신강기와 천풍의 기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신법을 전개할때 힘 을 다시 거둔 것이었지만…… 영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분타의 타주가 있는 방으로 들어섰 다. 타주는 제일 처음 암살당해버려서 방의 주인은 없었다. 그래도 제법 행정능력이 쓸만한 놈이었는데 아깝군. 하지만 그렇다고 암살 방지를 위해서 키워놓은 암살자들을 이런데다가 배치할수는 없잖은가. 그래서 타주 같은 인물들에게는 두 명 정도만 붙었을 뿐인데 그 두명도 죽은 것 같았다. 이 대륙은 끔찍하게 넓어서 아무리 숫 자가 많은 방파라도 숫자면에서는 개방 幇을 이기지 못한다. 개방의 총 인원은 100만! 세상에 거지가 그렇게 많다니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중 무공을 익 힌 자들은 5천이 채 안되었다. 그나마 그 5천 중에서 일류는 1천쯤? 그 안쪽의 진짜 고수들 을 다 빼도 일류고수가 800이 안되었다. 게다가 타구진이니 뭐니 해도 거지들이 정규조직 생활을 한다는것 자체가 말이 안되었다. 개방은 오로지 정보력인 것이다. "일단……" 머릿속에 뭔가를 가득 밀어넣고 그걸 해결한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무림 맹이건 마교건 정말 만만치 않았다. 일단 마교와는 간신히 '견제하지 않는 적'이자 '믿을 수 없는 맹방'의 관계가 되었지만 마교도 그걸 믿지는 않는다. 그래서 혈천교주를 죽일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은근슬쩍 힘에 부치는 척 놔줬겠지. 그래서 놈들이 천류세가를 적대하는 것부터 방관한 것이다. 일단 마교가 아니라 천류세가라 도 없애기 위해서. 마교와 천류세가가 일단은 끈이 닿아 있고 혈천교를 멸하는데 도움을 주 었으니 혈천교주도 돌대가리는 아니었지만 일단 천류세가부터 멸망시키자는 생각으로 무림 맹으로 기어들어간 것이었다. 무림맹도 다급했다. 나중에 살아 남는다면 혈천교를 제거하려 들겠지만 혈천교주는 멍청하지 않았다. 보나마나 빠져나갈 수단이 있을것이다. 그들에겐 무림인이 모르는 영법과 염술이 있다. 렌시아나 헤인 이 사용하는 그것과는 많이 틀린 수법들이 많고 그들은 영법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의 지팡이는 피의 힘으로 주술을 바꿔버린다. 영기와 기를 섞어서 그걸 주술에 도입했 기 때문에 영법도 무공도 아니다. 새로운 것이다. 물론 이 세계의 행성에만도 이런 기술이 많았다. 헤인은 영기와 기를 합쳐 체내에서. 이들은 영기와 기를 합쳐 체외에서 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고 그 영력 수련 방식과 기 수련 방식이 모두 다르다. 혈천교의 술사들은 전부 2갑자에서 3갑자에 다다르는 공력을 익히고 있었지만 내운기경으로 운용하지도 못하고 강기를 쓰지도 못한다. 이들은 영기를 이용해 기를 끌어들여 그것을 흡수하는데만 주력했고 그것은 순리에서는 벗 어난 것인지라 혈도도 열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의 영력에 영향을 받아 변형된 기력인지 라 혈맥으로 흐르는게 아니라 그냥 옮겨다닌다. 그들의 영력은 피에 많은 유인을 두고 있어 서 피의 주술을 많이 사용한다. 본디 그들은 영력과 기를 따로 사용하였으나 누군가 금기를 범했다. 몇대 문주인지는 모른 다. 그가 영기와 기를 합일하여 체외에서 발현하는 기술을 발견하고 그것을 좀더 강화하게 위해 금주禁呪. 피를 이용한 주술을 연구하고 현실화 시켜버린 것이다. 덕문에 혈천교는 탄 생했다. 그것이 변하고 또 변한것은 최근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아뮬렛은 서대륙에서 들어온 것이지만 마법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마법 사이면서 영력을 쓰지는 못하되 연구는 한 마법사 한명이 그것을 막고 정화하기 위해 보석 과 주술진을 이용해서 호부를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세월의 법칙에 따라 그 마법사는 죽어 땅에 묻힌지 오래였다. "으으음." 영은 자리에 앉은채 비급 여섯권을 읽기 시작했다. 전설적인 비급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서술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섯권의 무공비급의 표지에는 그 이름이 적혀져 있다. 나는 듯 하 면서도 섬세한 필체다. 먼저는 검공劍功. 이십사절 용검도用劍道. 검을 다루는 도라니 오만 한 이름이지만 그래도 사실이다. 일절 기氣. 이절 강剛. 삼절 어御. 사절 환幻. 오절 산散. 육절 추推. 칠절 척尺. 팔절 분 分. 구절 촌寸. 십절 폭爆. 십일절 공空. 십이절 파破. 십삼절 빙氷. 십사절 염焰. 십오절 명鳴. 십육절 천天. 십칠절 뢰雷. 십팔절 운雲. 십구절 우雨. 이십절 하河. 이십일절 풍風. 이십이절 무無. 이십삼절 우宇. 이십사절 주宙의 24절검이었다. 극상승의 검도만 모아놓은 것인데 검기, 검강, 어검, 환검, 산검외에 몇가지 경勁과 검으로 펼칠수 있는 24절의 검도를 모아놓은 셈이다. 이중 하나만 완벽하게 익혀도 무림에서 알아 주는 검객이 될수 있는데 그것을 전부 설명해놓은 것. 이게 만약 무림에 나돈다면 그야말로 혈풍이 몰아칠 것이다. 두번째 책은 신법身法과 보법步法을 모은 것인데 절 같은건 없고 다만 지형과 그때그때 상 황에서의 신법 운용과 중원 무공에서 무술이 어떤 무리에 위치해 있으면 그것을 족족 보법 하나로 파해할수 있는 응용이었다. 한권으로 서술하기 턱도 없이 부족했지만 영은 해내고야 말았다. 단 한권에. 어려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재능있으면 이해할수 있다. 책의 이름은 용체도用體道. 역시 오만하기 그지없는 이름이다. 이거나 저거나 그게 그거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본다면 어처구니 없는 삼류무공으로밖에 취급되지 않을 것이다. 뭐 꾸준히 연구하다가 깨달으면 영 다음의 무림최고수가 되겠지. 영은 이번 일이 끝나면 어디 론가 떠나버릴 셈이었다. 그러니 무림최고수라고 해도 다르지 않겠지. 세번째 책은 심공心功인데 지금까지의 책이 단지 묘리가 아니라 그때의 응용이나 검공때 검 이 없어도 그것을 펼칠수 있도록 단련하는 수법이 있었는데 덕분에 칼을 들든 창을 들든 봉 을 들든 맨손이든 모두 저 용검도를 펼칠수 있었다. 숙련되어야 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초식 이 없는 말 그대로 도道였다. 지금 이 심공은 온갖 심법들을 읽어보고 그 효율을 극대화해서 만들어낸 것인데 자신이 얼 떨결에 만들어낸 북명천지조화심법을 마침내 규명해내어 만든 것으로 만류귀원萬流歸元 무 허심공無虛心功으로 만가지 기의 흐름과 변이를 모두 흡수해서 공空. 그러니까 무극으로 변 화시켜버리는 기공이었다. 이 심공에는 특이한 묘용이 있는데 그것은 상대가 10갑자 공력으로 쳐들어 와도 이것의 수 련이 깊다면 그것을 모조리 흡수해서 흩어버릴 수 있었다.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데 깨닫지 못하면 이 효용을 쓸수도 없었고 기조차 흘릴수 없었다. 그야말로 어렵기 그지 없는 것인데 영은 만들어놓고도 쓰질 못했다. 북명천지조화심법을 변화시켜서 어떻게든 최적의 무극기공으로 만들어내긴 했지만 이걸 쓰 기에는 그 흐름이 달랐다. 깨달음 덕분에 이 흐름이건 저 흐름이건 모두 무극지기로 바꿀수 도 있고 이젠 심법에 영향받지 않지만 이것은 모든 심법을 공으로 만들어버리므로 자신이 쌓아올린 무극기공을 이것으로 대체하려면 최소 1년은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네번째는 각퇴와 권장법과 조법, 지법등을 모두 섞어놓은 것인데 이름은 용투도用鬪道로 치 고 자르는 법에서 몇가지 변형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물론 그 깊이는 대단하다. 현경 고수 에 검을 섞은 경험도 많은 자가 쓴 책이니까. 다섯번째와 여섯번재는 일종의 진해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무공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걸 제대로 읽고 이해하면 좀더 그 무공을 쓰는 자를 쉽게 제압할수 있게 된다. 물론 초식 에서 벗어난 현경을 터득한 자들에겐 먹히지 않지만 그래도 쓰고 있는 무공의 흐름 같은 것 은 더 빨리 느낄수 있게 된다. 무림인들에겐 보물중의 보물이었다. 만약 이 여섯권이 그대로 방출되면 피바람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이건 그래도 잘 써졌는데…… 분혼의 비급과 장보도는 어떻게 방출하는게 좀더 피를 많이 보게 할수 있을까. 우리도 움직이기는 해야 하는데……" 정도무림맹은 맹주가 있어도 오합지졸이다. 왜냐하면 각기 사문을 위하는, 일시적으로 붙여 놓은 뱀 여러마리에 불과하다. 거기에 수많은 낭인들까지 하면 별것 아니다. 다만 지금은 그 붙여놓은 접착제를 녹여서 어떻게 떼어낼 만한 물건의 준비가 끝나지 않아서 이렇게 호각이 었던것 뿐이다. 이제는…… "마교도 돕겠다고 했으니." 그는 싸늘하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곧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는 오랜만에 술을 청했 다. 바깥에 느껴지는 기척중 하나를 향해 전음을 날린 것이다. 잠시 후에 주안상이 들어왔 다. 그는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마시면서 가끔 안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깊은 침묵이 내려 앉았다. 가끔 술잔에 술 따르는 소리만 울렸을 뿐 계속 조용했다. 분타가 시끌벅적해진 것은 대충 두시진이 흘러서 제 이차 습격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그때 마침 전서구가 날아들었고 전서는 그에게 전달되었다. 습격을 막는 것은 천운대로 충분했다. 뭐 굳이 필요하다면 나설 생각도 있었다. 천운대가 익힌 내공심법의 기운중 반이 바깥으로 나가 잡다한 기운이 섞여있는 적들과 부딪히는 가운데 그는 전서를 읽었다. ―분혼도해分魂圖解와 분혼보도分魂寶圖 방출放出 성공. 소문 급파急派. 정도 무림맹 세력 분할. 내분중. 세력을 나누어서 움직일 때가 왔음. 마교 준동. 5백여의 인원 파견. 현재 분혼보도의 소유는 화산파. 삼재三才의 천天. "시작인가. 진정한 대전大戰이." 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전서를 삼매진화로 불살랐다. 재가 되어 떨어진 전서가 영이 일 으킨 바람에 흩어져서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무림맹의 본타내부의 무아각. "분혼비급?" "지금은 고인古人인 서륜과 함께 등장했던 검마劍魔가 익힌 독문무공이라고 하오. 그런데 갑자기 그 도해와 보도가 방출되었소." 그 말에 잠시 웅성거리는 무아각 내부. 문득 누구 한명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웅성거렸다 가 조용해지고 다시 누군가 말의 서두를 꺼내는. 지극히 조용한 대화였다. "검마의 무공수위는 정확히 어느 수준이요?" "……현경이요." 장내에 두통을 이기지 못하고 흘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끄응이나 이 가는 소리였다. 또 현경 이라니! 벌써 현경의 무공을 지닌 자가 몇이나 나온것인가! 왜 정도무림맹에서는 현경의 고 수는 찾아보기도 힘들고 화경의 고수도 그리 숫자가 많지 않은 것인지. 이번에는 그나마 좀 숫자가 있는 편이었지만 천류세가는 화경고수만 다섯에 달했다. "현경이라니……" 처음에 현경이라고 알려진 자는 바로 광협狂俠이었다. 그리고 광협을 꺾음으로써 확연하게 현경의 최고수임을 증명한 이는 은영천검이고 그 다음이 뇌검자였다. 뇌검자가 은영천검에 죽은 것은 그 전이지만 그것은 무림맹에서 은폐했었다. 다음이 천산검주. 그리고 이서륜과 분혼검마인데 서륜은 이미 죽었다. 어쩌면 신승 공공도 현경에 올랐을 가능성이 있었다. 다시 화제를 돌려서 화경 고수를 보면 천류세가의 현 화경 고수는 다섯이다. 그 가주는 남 아있지만 최근 접전을 벌이면서 화경고수 몇몇을 은근히 유도해내서 죽이는데 성공했지만 이쪽에서도 화경고수 하나의 목숨이 날아가버렸다. 현경이 아무리 강해도 화경 고수도 무시 하지 못한다. 특히 전체적 싸움에서는 현경고수 하나보단 화경고수 셋이 더 나을 정도다. 혼 전이라도 일어나면 현경고수는 한명인데 화경고수는 흩어져서 공격을 할수 있다. 각개격파 당하면 골치아프지만 이래저래 찔러볼수 있는 것이다. 구파와 일방이 마교와 어마어마한 싸움을 치르고 나서 어느정도 몸을 추스리고 이제 슬슬 멸문당했던 구파들을 남은 비급으로 되살리려 하고 있을때였는데 천류세가가 발족해서 정도 무림과 전쟁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계책따위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덩치다. 이런식으로 개미가 물어뜯는 식으로 조금씩 갉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만 국지전 비슷한 소규모 싸움에서 비슷비슷하게 싸우고 있을 뿐이었다. 천류세가 검수들 은 끔찍스러울 정도로 강했다. 1기 검수들은 거의 화경 직전이다. 그리고 그 숫자가 5천이 넘는다. 하지만 그 숫자도 꽤 줄어있어서 지금은 3천이 조금 넘었다. 무림맹에서도 고수의 소실을 꽤 많이 하긴 했으나 그나마 승리는 하고 있었다. 무림세가라 불리는 가문들은 태반이 멸망해 있었고 그나마 남은 것들도 비전과 신산절기 같 은 것을 다 잃어버린채 몰락해서 사라졌다. 마교에서 비급을 불사르고 다 갈취해간 것이다. 예의 제갈세가 같은 브레인들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무력 면에서 간신히 수준 이상으로 보충했을 따름인데 그것도 지금 대부분 다 깎여나갈지 모르는 대 접전이 시작되어 버린 것 이다. 그것도 마교, 무림맹, 천류세가의 삼파전…… 땅만 황폐해지지 않는다면 황궁에서는 박수치고 자리까지 깔아줄 것이다. 자기들끼리 치고 박으면서 반란을 성공시킬만한 무력집단이 힘을 깎아먹는데 왜 돕지 않겠는가? 어쨌든 지금 이들은 죽을맛이었다. 그놈의 분혼동이라는 것이 있는 위치를 알리는 분혼보도와 그 보도를 해독하는 분혼도해가 나도는 것이다. 덕분에 세개의 집단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무림맹은 확실히 연합되지 않은 집단이다. 그 힘이 흩어진채 간신히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방파들에 있다. 6할이 그들이다. 천류세가는 다르다. 중심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한 것이다. 주변의 힘이 3할쯤? 무림맹이 지금 힘만으로는 마교와 천류세가를 합친 것의 7할은 될 정도 로 강하지만 흩어져버리면…… 죽는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의 전형적인 상황. 이건 어쩌면 두 집단의 수 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누가 의심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하지만 분혼심공은 실제로 존재했다. 지금 화산파 에서 보유하고 있는 분혼보도는 그냥 보도. 말하자면 그것의 위치일 뿐이다. 분혼도해를 지 니고 있어야 알아볼수도 있고 분혼동의 내부를 알수도 있는 것이다. 그 기관이란 것은 일인단맥 하는 것 같은 분혼동에서 만들었으니 별로 보잘것 없는 것일지 도 모르지만 의외로 엄청날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분혼동이라는 것이 사실은 그 절대라는 이름으로도 모자라지 않는 청심문에서 뻗어나온 무공의 한 갈래라는 이야기도 있었기 때문 이다. 청심문이 잠깐 무림에 드러났을때 은연중에 돈을 뻗어 만들어놓은 곳일 수도 있었다. 청심문은 그 안에도 꽤 많은 무공의 갈래가 있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하면 청심문 제자들이 다른 표식을 달고 다녔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은 익힌 심법에 따라 달라지고 무공의 흐름 네가닥에 따라 다른 표식을 다는 것이 었지만 소속의 대답도 그렇게 오해할수 있는 대답이니…… 당시 출현했을때 태상 4명에 문 주 네명에 그 휘하에 각각 16씩 64명 밖에 안되는 제자들만으로 시끌벅적했던 무림을 5년만 에 평정하고 간단하게 싸움을 찍 눌러버린…… 그 제자들이 전부 현경인 극악한 집단이었다. 태상들도 현경이긴 했지만 제자들보단 더 강 했다고 한다. 태상들은 전부 천령단을 달성했었으니 그 강력함은 이루말할데가 없었다. 현경 고수 64명을 일렬로 세워놓고 주욱 돌격시키면 남아날 것이 있을까? 문도 전원이 현경인 집 단…… 정말 가공하기 그지없는 집단이었다. 무림인들에겐 '사기다!'를 외치게 만드는 집단 으로 으레 과장하는 전설을 봐도 좀 축소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강했다. 이들은 위에 대한 이야기를 쉴새 없이 나누었지만 중구난방衆口難防에 탁상공론卓上空論밖 에 더 되겠는가. 다들 알고 있었지만 흉강을 공명시키면서 발하는 말로 치미는 두통과 스트 레스라도 좀 삭혀볼 생각인것 같았다. 쉴새없이 떠들어 대는걸 천산검주나 무림맹주도 별로 막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들도 저렇게 떠들어 대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그런데 그 분혼비급이라는게 실존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렇게 쓸모가 있을지? 검마 본인의 재능이 뛰어나서 어느 정도의 비급만으로도 그렇게 대단한 경지를 달성한 것일수도 있지 않 겠소?" 있을 법한 일이었다. 실제로 30년 전쯤 웬 중소 방파에서 화경고수 하나가 튀어나오는 바람 에 천하의 사람들 모두가 질겁한 일이 있었다. 중소 방파였던 파령문의 문주도 아니고 2대 제자 한명이 검에서 검강을 난무하며 시비를 걸어왔던 하오문이었던 기정문을 단숨에 박살 내버렸던 것이다. 파령문도 정사지간이었지 정파는 아니었기 때문에 제자 잘난 덕분으로 풍비박산이 나버렸 다. 무림맹에서 뒷공작을 벌여서 그자를 죽여버린다음 남아있던 근처 정파 집단에 힘을 실 어서 은근히 다 죽이고 비급을 다 입수한 것이다. 그러나 별다른것도 없었다. 그 화경고수 한명이 주로 수련했다던 비급도 2류는 되도 1류는 될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기엔 초식이 너무 정묘했고 또 감시했던 자들이 말하기를 전부 강기절예를 자유자재로 사용해서 초식으로 얽어 나갈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소. 틀 림없이 비급 자체가 강기무공을 사용할줄 알았던, 최소 화경 고수 이상의 무인이 서술한 비 급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정도까진 할수 없소." "허어……" 모두는 탄식했다. 그런놈이 하필 정파가 아니라 정사지간이라니! 모두는 여기서 천류세가와 의 관계를 짚어보기 시작했다. "이건…… 지나치게 깨끗하잖소?" "천류세가의 검수 몇과 충돌해서 베어 죽인적은 있지만 뭔가 좀 이상하군." 그랬다. 뭔가 좀 거친 충돌 같은게 하나도 없었다. 일부러 피한것 같았다. 그에 비해 정파나 사파쪽에는 일부러 비무를 걸거나 칼질을 하기도 했다. 은근히 마교쪽과도 부딪히긴 했지만 천류세가의 세력에는 시비를 걸거나 한 적은 없었다. 그외 방파들은 부딪히면 쳐버렸지만 이건 뭔가 좀 달랐다. "어차피 이자는 우리 공적이 아니요? 무당을 건드리기까지 했으니 어차피 없애야 할 대상이 긴 한데 당시에도 해검지에 검까지 풀고 직접 비무를 신청한다음 검을 다시 가져와서 검을 부딪혔으니…… 드러나는 명분은 없소." "명분이야 만들거나 비밀리에 없애면 되겠지요. 이미 그자의 행로는 다 파악하고 있으니." 정파의 수뇌가 나누는 대화로는 들리지 않았으나 무림이 다 그랬다. 정파 사파 가리지 않고 계락 써대고 암중에 찔러대는건 최근일이 아니었다. 무림에서 그런 원론(?)가지고 시비 거 는것 자체가 어렸을때 머릿속에 있던 액체를 햇볕에 말려본 경험이 있거나 망치로 머리통을 갈기는 자해를 즐기며 메저키스트의 소양을 키워온 사람일 것이다. 적어도 제정신 박힌 자 들에겐 그릇된 부분이다. 그러나 사회 그릇된게 하루 이틀 하던 일이 아니다. 아예 그럴거면 정파라고 하지 말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정파 아니면 장사가 안된다. 선이라 는 팻말을 내걸고 우린 선하고 정의로우니 사악한 마도를 때려부수자! 이런 식은 속 덜 여 문 철없는 것들 홀리기도 좋았다. 엄밀히 말하면 타인을 합법적으로 죽이면서 그 살인을 즐 기게 해주는 신종 서비스업이라고도 할수 있으리라. 어쨌든 자기들마저 세뇌시켜서 악적을 베어 죽여 그 피로 죽어나간 자들을 위로하자는 제정 신이 아닌 놈들이다. '난 정의니까 악적을 죽이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선이 아닌 일(독 같은 걸 쓰고 미인계를 쓰고 산공독을 뿌리고 암습을 하고 등등)을 해도 괜찮아'라는 자위를 해 대고 있으니 제대로 돌아갈 리도 없는 세상이었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이랄까. "이젠 막이 완전히 오른거요." "절대 닫을수 없겠지." 분위기는 아주아주 깊게 가라앉고 있었다. 나이 지긋하게 먹었다고 분위기 잡는건 이해 하 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불쾌했다. 고요함이 지나쳐서 서브 머신건이나 샷건이나 박격포 같은 걸 가져다가 난사해버리고 싶은…… 파괴를 부추키는 그런 고요함. 무림도 지금 그런 고요 함속에 산발적인 떠들썩함만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뿐이었다. "무림맹의 지금 상태는 확실히 좋지 않소. 우리가 전서구를 보내서 간신히 진정시킨 문파들 을 제외한 현 무림맹 전력의 3할이 빠져나가 있소." "3할이나……" "그런……" 그 숫자는 어마어마했다. 그들은 머리가 아프다는 것을 통감하면서 묘한 동질감 속에 대화 를 이어 나갔다. 탄식이 가라앉자 다시 맹주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천류세가쪽도 서둘러서 그쪽에 달라붙은 문파들을 어떻게든 제어해서 그들의 전력은 2할 정도가 감소했다고 생각되오. 물론 지금 상태로써는 우리가 더 쉽게 싸울수 있겠지만 출전 하지 못한 방파들은 불만에 휩싸여 있소. 그런만큼 다 떨어져 나가버리게 된다면 우리는 천 류세가에 패배하게 되고 무림정의는 꺾일것이오." 자신들이 정의라고 뻔뻔스럽게 믿고 있는 노인네 일동들은 꽉 막힌 사고방식과 고정관념. 그리고 지금까지 무림을 지배하며 누려왔던 즐거움을 내 놓을수 없다는 그 의지를 활화산처 럼 불태우고 있었다. 외모들은 다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나 50대 초반 정도의 미남자 미중년들 뿐이었지만 그래도 속은 늙어빠진 것들 뿐인 것이다. 무림도 물갈이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썩어들어갈 뿐이다. 지금의 맹주도 조금만 실수하면 토사구팽兎死狗烹 꼴을 당할게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적의 의표를 찔러 모든 전력을 밀고 단숨에 습격해야하오. 그들도 조금의 전력이나마 저쪽으로 신경을 쓰겠지. 그들이 조장한 일이든 마교가 조장한 일이든 제 3 세 력이든 우연이든 어쨌든 신경을 써야하오. 혈풍의 중심지에 있는 그것들의 위치는 금새 드 러날 것일테니……" 그들은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갔다. 심사숙고한 토의 끝에 잠시 후…… 화산파의 한 제자가 그것을 빼앗겼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들은 별로 아랑곳 하지 않았다. 어차피 예 견될 일인 것이기에…… 다만 중과 도사들만이 잠시 아미타불 무량수불 하고 혈겁에 거부감 을 표시했을 뿐이었다. "마지막은 교룡평交龍平. 우리의 목표는 그 사악한 가문의 영이라는 자요. 그 가주는 두명의 화경 이상의 고수가 나서야 할 터인데…… 그것은 맹주와 내가 맡겠소." 이한룡이 그렇게 주장하자 모두는 어쩔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써는 영을 죽일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꽤 큰 가능성은 있었다. 이한룡이 그 위험함에서 빠져나가려고 한 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맹주나 이한룡이나 천류세가의 핏줄에 원한이 있다는 것을 모두는 알 고 있었다. 맹주는 전대 가주가 준 커다란 상처를, 이한룡은 현 가주가 준 자존심의 상처를…… "마교는 움직였소?" "그들의 부대 몇개에서 150여명 이상을 차출해서 800명 정도의 정예중 정예들과 극마의 고 수 둘 정도가 나섰다는 것이 포착되었소." 모두는 탄식했다. 정예 800여명이라면 마교도 함부로 내놓을수 없다. 게다가 극마 고수 둘이 라면 그건 그야말로 경악스러울 정도다. 이쯤 되면 무림맹 전력 2할은 된다고나 할까? 그들 의 '부대들'에서 150여명 이상을 끄집어 냈다면 강력한 이들 뿐일 것이다. 마교가 고작 분열 계를 통해 소모하기엔 너무 강력한 힘이었다. "천류세가는?" "……가주와 영이 직접 나섰다고 하오. 검대 800명과 살수들 400명을 끌고." 그들은 전율했다. 이건 미친짓이다! 대체 왜 그렇게 나선 것일까? 그들은 어쩌면 영 본인은 분혼심공이라는 것의 강력함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현경 고수고 안목은 나무랄데가 없다 못해 굉장한 수준이다. 혹시나 몰래라도 보았다면 얼마나 대단한 무공인지 알아보았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수뇌부고 고수에 안정된 기도를 지녔다고 무공에 미쳐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무림인 들이기에 그들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천산검주는 새로운 검공劍功 탓에 허리에 얌전하게 매 여진 검으로 손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에게 새로운 검공과 현경의 적수라는 것은 니코 틴 중독자가 담배를 갈망하는 것보다 더 치열한 것이었다. "내가…… 내가 선두에 서겠소." 천산검주가 그렇게 말하자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무림맹 전력의 2할 이상을 차지하는데 그 런 그가 빠져버리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산검주가 직접 싸움터에 끼어든 광협이나 검마를 작살내 준다면 그것이야 말로 환영이었다. 상처 입은거야 대환단 하나쯤 먹이고 또 자소단을 먹여 주면 1주일 내로 일어 날 것이고…… "마지막은 교룡평이오. 반드시 그들을 밀어 넣어야 하오. 머리가 잘려나간 천류세가는 결코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하니까!" ----- 169. 전쟁종식戰爭終熄. 분혼도해分魂圖解와 분혼보도分魂寶圖. 이 얄팍한 두장의 종이는 마물魔物이 되어 피의 소 용돌이 한 가운데 위치해 있었다. 분혼도해와 분혼보도에 대해 검마劍魔는 어떤 의사도 표 명하지 않고 여전히 비무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림맹은 그에 대한 추궁을 검마에 게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검마라도 어쩔수 없이 해명을 해야 했다. 그러나 검마는 무림맹의 무인들과 모든 무인들 앞에서 '무인武人은 무武로 말한다'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분혼도해와 분혼보도를 바로 탈취했고 지금으로써는 추격을 당하고 있었다. 아무리 검마가 현경에 올랐다 하더라도 수많은 고수들이 뒤쫓는데 목숨 부지하기는 쉽지 않 을 것임은 자명하다. 역대 고수들 중 현경에 올랐어도 개떼(?) 들에 의해 추살追殺 당한 경우는 없지 않았었다. 그런 기록은 덮여지고 많이 소실되어 있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림인들은 수준이 낮은 자들도 이 기회에 어떻게든 누군가의 눈에 띄어볼 요량으로 검마의 추격에 합세했고 마침내 검마는 군중들에 의해 포위된다. "……말하자면 이것이 대략의 흐름이었는데." 영은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서륜에 대해서는 나중에 추모하기로 했는지 짜증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떻게든 손을 쓰고 있었지만 무림맹에서 이런 강수를 쓸줄은 몰랐다. 눈가리고 아웅 하는 식이지만 그게 먹힌다는게 속이 쓰리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함정을 팔 줄이야……" 영은 머리가 아파옴을 느꼈다. 여기서 나섰다간 바로 한패취급 당해서 '명분상실'의 치명타 를 먹을게 아닌가. 어쨌든 검마는 살려서 써먹을 생각이었는데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런 젠장. 약속했었는데…… 하고 영은 뇌까렸다. 그때 영의 예민한 청각에 소리들 이 파고들어왔다. 다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분혼검마! 그대는 비열하게도 비무를 빙자한 살인행위를 계속해 왔다. 그것을 인정해라! 우 리 정도正道의 명숙들에게 비무첩을 보내 검을 마주하고 죽여버리다니! 이것은 무슨 의도인 지 명백하기 그지없다!" "비열하다는 것만 뺀다면 맞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 무림에 계속되어온 관행 이다. 내가 지금까지 검을 섞어왔던 자들은 강했고 나는 그들과의 비무에서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겼다. 무림의 법칙이 아닌가. '패배자'는 말이 없지. 나중에 복수하고 말고는 그들 의 관건이다." 검마는 환골탈태를 겪고 나서 노폐물 제거로 인해 뇌 기능의 발휘 퍼센티지가 올라갔는지 그렇게 장문長文을 쏟아냈다. 이것은 좀 신랄하고 직설적이라는 것을 빼놓으면 모든 무인들 도 인정하는 바였다. 그래서 포위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십팔반 병기와 그 외의 병기들을 든 자들도 수긍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도 만만치 않았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대는 정정당당한 비무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강호의 불행 이나 검마 그대는 현경의 경지에 올라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에게 비무를 빙자한 살인을 했다! 무당에서의 일은 어떻게 된 것인가! 살해 끝에 관전중인 무당파의 제자들까지 모두 죽이지 않았는가!" "그들은 내가 존장의 강함에 과하게 힘을 쓴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무인에 대한 예다. 나도 검을 잡았고 그분도 검을 잡았는데 거기에서 내가 힘을 줄여 쓰거나 검을 약하게 휘두르는 것 자체가 무당에 대한 모욕이다. 부득하게 내 검에 의해 그분이 죽음을 맞았으나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 달려들어 본인을 암습한 무당파 제자들의 행동은 과연 너희들 '정도'에 맞는 행위인가?" 이놈들 진짜 칼잡이 맞나 싶을 정도로 치열한 설전舌戰이었다. 영은 검마와 정도에서 튀어 나온 한마리(?)의 말싸움을 바라보면서 입맛이 쓴것을 느꼈다. 괴로울 정도군. 밀고 당기기 는 계속되었고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영약도 먹이고 무공도 가르쳐서 만들어낸(?) 현경 의 고수 하나를 여기서 죽여야 한단 말인가? 현경 고수라는 메리트Merit와 그 퀄리티Quality를 생각해보면 아까워서 미쳐버릴 지경이었 다. 무슨 수가 없을까 하고 머리를 열심히 굴렸지만 일단 '영이 나서면 완전히 죽쑤는' 경우 이기 때문에 어떻게 손을 쓸수도 없었다. 다른놈을 내세울 수도 없고…… 아무리 머리가 좋 아도 이런 경우는 도저히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할수도 없고…… 무림맹…… 분혼보도하고 분혼도해도 탐나고 검마도 없애버려야 하니까 둘 모두 한자리에서 해결하겠다 이건가…… 분혼이계分魂二計를 모조리 끝내려고 하다니. 들어간 시간하고 돈이 아까워서라도. 아니 배가 아파서라도 절대 용납할수 없다.' 영은 오른손에 검劍 은뢰銀雷를 소환했다. 그의 내면에서 소환된 예리한 은색 패검佩劍은 주인의 염에 의해 그 빛과 예기를 감추었다. 몸을 감추고 이야기가 끝나가는 것을 깨달은 영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엇?' 순간 영은 그의 기척 범위 안에 익숙한 기척과 기의 파장이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 신없이 산란하고 있는 파장들이 거푸 날쳤지만 그중 특히 강한 파장을 느끼는건 쉬웠다. 현 경고수쯤 되면 내력 갈무리로 인해 그 파장이 약하지만 이건 '선천지기'의 파장을 찾아내는 데 주력해서 찾아낸 것이다. '……광협狂俠?' 영은 그 기척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왼쪽 소매로 옮긴 은영비銀影匕를 꺼냈다. 차앙 하는 소리는 단음강막斷音剛幕으로 차단했다. 장검長劍 한자루를 오른손에 꽤나 길어 서 다용도多用度인 비수匕首 하나를 왼손에 쥔 이도류二刀流…… 영이 이도류를 쓸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주종목은 일도류一刀流 일텐데…… '……저작자는 대체 왜 끼어드는거야!' 모두는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광협 문열이면 그 비중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벌써 이 자리에 만 현경 고수가 셋이라니…… 천산검주가 없어서 다행이다. 영이 있는지는 현재 아무도 모 르지만…… 저 떼거지들 중의 일각一角에는 천류세가의 검수들도 있었는데 대충 500여명 정 도라서 솔직히 이정도면 현경 고수도 목숨보장하기 힘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천류세가의 팔검위들 대부분은 현경이고 그 검수들 대다수는 절정이다. 거기 에 초절정도 꽤나 섞여있는 괴물들…… 1류도 섞여있는 고수들 투성이다. 그런 괴물들 500 명이면 초입 정도라면, 현경 고수조차(물론 중반의 현경부터는 그보다 더 괴물이 된다……)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 어쨌든 그런 위용도 있지만 천류세가가 지금 얼마나 거대한 세력인가? 어중이 떠중이들은 그 깃발(천天자가 금색 수실로 수놓여져 있는 청룡기靑龍旗다. 금룡金龍은 황제의 상징인데 덕분에 금색 신룡강기神龍剛氣를 발출하는 금강폭열공金剛爆熱功을 사용하는 영은 황제 눈 밖에 나 있었다)만 보고도 옆으로 멀리 물러나 있었다. 그때 광협 문열이 기를 실어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불가의 사자후 가 아니니 그냥 후공吼功이라고 하는게 옳을 것이었다. "여기에 분혼검마라는 자가 있는가!!" 역시 광협 문열의 '미친 놈 전설'은 소문이 과하지 않았다…… 명불허전名不虛傳…… 이라고 밖에 더 할말이 없을 정도다. 정말 미친놈 아닌가? 수많은 무림인들과 더불어 무림맹, 천류 세가, 마교의 인물들이 드글드글 하거늘 이런데 몰려와서 분혼검마를 부르다니. 무림맹 측에 서는 백안시白眼視와 더불어 부안斧眼( = 도끼눈)을 떴다. 무림맹의 행사에 방해한다니 하는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분혼검마를 불렀기 때문이다. 무 림맹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인가? 광협에게 이래저래 많이 당해왔던 무림맹으로써는 속도 쓰릴 일이지만 성질도 지금으로써는 어떻게 되는가 보고 나서 부려야 했다. 어쨌든 영도 겪어보았던 미친성질이지만 지금으로써는 두개골이 휑 하니 빈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타격을 받고 있었다. 배짱 하나만큼은 영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영도 감탄하는 구 석이 없지 않았지만 그의 이성은 '욕 한무더기'를 속으로나마 잔뜩 쏟고 있었다. 속도 쓰릴 만큼 쓰렸다. 스트레스성 췌장염으로 급사하지나 않을까? 그때 광협의 후공이 재차 터져나왔다. 우렛소리[雷聲]같은 외침이었는데 항마후抗魔吼나 사 자후에 모자라지 않는 위력이었다. 내공이 단순 수치로 3갑자 이하인 자들은 주춤거리고 있 었고 그 이하인 자들은 내상을 입을 정도였다. "분혼검마! 네녀석에게 비무를 신청한다!!" ……장내에 찬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분혼검마 본인은 별로 정신에 데미지를 입지 않았는지 영이 하얗게 굳어있는데도 불구하고 움직였다. 영으로써는 이런 황당한 인간을 별로 볼 기 회가 없었다. 이전에 봉인계에서 암살자를 하고 있을때 본 광기狂氣에 미친 괴짜들 이래봐 야 광협보단 덜했다. 광협은 정말 돌면 피에 미치고 싸움에 미치고 아드레날린에 미친다. 평 상시에도 미친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니…… 분혼검마가 막 뭐라고 하려는데 무림맹 측에서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무림맹의 이름으로 검마와 광협의 비무를 불허不許하겠소! 우리 무림맹이 먼저 저 검마를 처단해야……" "닥쳐라. 쥐새끼!" 광협의 목소리. 그리고 푸른 검강劍剛의 선線. 푸른 선은 벼락이 되었고 그것은 인영 하나를 치고 지나갔다. 벼락이 치고 지나가자 붉은 안개가 일어났다. 이어서 생명 하나가 죽었다. 그것은 격렬한 파장이 되어서 퍼져나갔다. "죽으려고 작정을했나……" 시끌시끌해진 탓에 영은 입밖으로 목소리를 내고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들켜도 도망가면 그만이다. 영은 신법身法에 있어서도 독보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이킥을 더하고 능력을 종합하면 음속 가까이도 낼수 있으니…… 달리 괴물이겠는가? 물론 싸울때는 쓸수 없지만 장거리 이동할때는 낼수 있는 스피드였다. "미친새끼……" 영은 오랜만에 한국어로 욕을 했다. 역시 욕은 한국어가 제일 다양하다. 영은 간혹 속이 쓰 리면 한국어로 욕을 해서 속풀이를 하려고 마음 먹고 상황을 주시했다. 물론 그 욕은 광협 을 향한 것이었다. "이, 이런……" 주변의 풍경이 이상하게 바뀌었다고 생각했더니 자신은 어느새 초목지대에 서 있었다. 서 있는게 아니라 10cm 정도 위에 떠올랐다가 어설프게 착지한 것이지만. 60세가 좀 넘는 노 구老軀 였지만 마법 익힐때 하루에 1시간 이상 항상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적당한 근육질에 체력도 상당한 편이었다. 그의 재능을 반증하는 것이 바로 그의 체력이었다. 60세가 좀 넘는데도 불구하고 30대의 남 자같은 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에 관한 마법적 연구와 약물 연구를 많이 해 와서 보 강식(?)도 꽤 해왔기 때문에 내장은 대부분 개조되어 있는 몸은 지금까지 감기 한번 걸리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여기는 대체……" 이제 8서클 마스터. 60세에 자력으로 8서클 마스터라니 공포스러울 정도의 재능이었다. 8서 클 마스터인지라 63세라는 연령에도 불구하고 외모는 40대 초반의 중년인이었다. 몸도 탄탄 하고 검 한자루만 차면 검사라고 해도 믿어줄 정도였다. 외모는 그야말로 미중년. 아름다운 여자, 잘생긴 남자들만 챙겨갔던 귀족가의 혈통을 타고 났기 때문이었다. 흰 머리카락 하나도 보이지 않는 밝은 금발. 허니 블론드Honey Blonde에 사파이어 같은 푸 른 눈을 지니고 있는 마법사 예하엘Jehael은 한숨을 토해냈다. 여기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젊은 혈기가 넘쳤을때에 돌아다니면서 보았던 많은 수목樹木들 중에서도 발견하기 힘든 나 무들이 가득한 이 초목지대는…… "설마 동대륙이란 말인가? 8서클급 마력을 쿼텟으로 사용했다고 해도. 마법 매개물이 틀림 없이 중간에 파괴되었었는데……" 죽지 않은게 다행이지만 그는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법사란 미쳐서 마법을 익히는 족 속들이다. 이 작자도 정상이긴 했지만 괴팍하다는 데에는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고로 마법실험하다 죽는건 마법사에게 있어 무림인이 강한 상대와 싸워 죽는 것과 같은 …… 말하자면 명예라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마나 분포량 퍼센티지도 다르지 않고…… 지금 계산해봐도 어마어마한 장거리의 텔레포트 였는데 마력이 불안정하지도 않다니 이건 대체가……" 그의 푸른 눈에 광기와 열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푸른 불길이 되어 타올랐다. 오오. 눈에서 불을 토해내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들게 할 정도의 열정을 불태우는 마법사. 노마법사였지만 그는 아직 열정을 잃지 않았다. 마법사치곤 소드 익스퍼트 하급 정도는 될 듯한 체격과 체력을 지닌 그는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연구거리다!" ……뭔가 묘하게 핀트가 어긋난듯 했다. 문득 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새카만 로브 자락을 갈무리했다. 그가 느낄수 있는 범위의 마나. 다시말해 '서클' 안쪽에서 살기를 품으며 움직이 는 어떤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쯧쯧…… 이 대마법사(악센트!) 예하엘 폰 치마한 슈하이드에게 덤빌 생각을 하다니 우민 이로고!" ……귀족적이거나 권위적이지는 않지만 때때로 마법에 관해서는 오만해지는 예하엘 옹翁 이 었다. 어쨌건 오만할만도 했지만 그는 혹시 소드 익스퍼트 같은 놈들이 덤비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 가벼운 소매틱으로 시동어를 대신해 그리스Grease 주문을 시전해서 주변 땅 10장여 를 마찰계수 0에 근접해 있는 땅으로 바꿔버렸다. 「나와랏! 버러지들!」 마법사라면 다 할수 있는 '마음의 말'. 물론 마법사[Mage] 칭호를 받으려면 3서클 마스터는 해야 하지만. 메지션 정도가 되려면 5서클…… 어쨌건 8서클인 그에게 있어 '마음의 말'을 확장해서 퍼뜨리는건 쉬운 일이었다. 덕분에 근처에 잠복해 예하엘을 죽일 준비를 하고 있 던 무림맹의 잔당들은 그를 '심어心語'를 쓸 정도의 고수라고 착각하고 말았다. "흐음…… 안나오는 건가? 이렇게 되면 디텍트 메탈Detect Metal! 타겟 록 온Target Rock On! 언리미티드 임프로브드 매직 미사일Unlimited Improved Magic Missile!" 디텍트 메탈을 통해 일정 크기 이상으로 결합된 금속을 찾는다. 철분은 주변에 잔뜩 있기 때문에 입자별이 아니라 결정질로 찾는 것이다. 덕분에 금속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주변의 모든 이들은 마나 트레이스Mana Trace를 몸에 묻히게 되었고 즉시 타겟 록 온으로 목표지 정 되었다. '무한계無限界 강화强化 마법시魔法矢'의 표적이 된 것이다. 순간 그의 주변에서 대량의 마나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임프로브드 매직 미사일만 해도 5서 클 주문이다. 피어싱보다는 못하지만 대량 학살이 가능한 무기다. 거기에 술식 변화를 통한 언리미티드를 더했기 때문에 그는 무한으로 계속 마법화살을 계산하는 것이다. 맞을 때까지 계속…… 검사들에겐 치명적인 공격이다. 한발 한발이 소형 발리스타로 쏴 맞히는 것 정도는 될 위력이다. 그리고 그 자체로 마법적 힘을 지니고 있는데다가…… 날카롭다. 그리고 그 경도와 강도는 금속에 비할바가 아닐 정 도다. 모스 경도로 따지면 8에서 9? 공기를 압축하고 마법적 에너지를 더했기 때문에 산란 하는 빛의 형태를 하고 있는 화살들이 순간 튀어 나갔다. 수백개의 화살들이 선을 그리고 나무수풀 사이로 파고들기 시작하자 대충 50개는 될 듯한 인영들이 치솟아 오르거나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그 스피드가 대단하다고 해도 이들은 무 림인들. 검에 검기劍氣를 일으키며 화살들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나와 기는 플레인이 겹쳐져 있고 부딪히지 않지만…… 형성화되고 염이 부여된 기와 마나는 상쇄한다. 콰콰콰쾅 파파파팡 검사들이 검면으로 받아내느냐 검기로 갈라놓느냐 하는 점에서 다른 특이한 효과음이 일어 났다. 빛의 화살들 수백개가 공중을 수놓으며 계속 늘어나는 것은 일대 장관이었다. 예하엘 은 한 5천개쯤 난사한 후 머리가 아파서 그만두긴 했지만 5천개를 유지하기 시작하는 것도 힘들었다. 어쨌든 유지만 하면 알아서 쏴 맞히니까…… 점점 화살들의 수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5천의 숫자다. 그것도 소형 발리스타로 쏜 것 같은 마법의 화살들이 5천개다. 이미 1천개 이상이 파괴되었으나 그것들은 50여 인영들 을 향해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약 4천개쯤 되는 빛의 화살이 50여명에게 분배된다면 그건 모든 방위를 점하고 쏘아져 들어오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크하앗!" 실력이 제법 되는 듯한 놈들은 검막劍幕을. 아닌 놈들은 검기의 선이나 꽃을 그리면서 모든 빛의 화살들을 차단하고 파괴했다. 그러나 이미 몸에 수십개의 구멍을 만들고 피를 쏟으며 죽어버린 자들도 있었다. 그들이 뽑아든 소검들은 금속이었고 그것의 궤적에 의해 그 주인 들이 죽어나가는 것이다. 소검에 꽂혀드는 화살들에 금속들이 파괴된다. "괴, 괴물이다……" "이건 무공도 뭣도 아니야!" 이곳에 존재하는 모두는 꽤 훈련을 받은 놈들이었지만 그래봐야 이름도 없는 엑스트라. 죽 는게 기정 사실이었다. 거의 3천개 이상의 화살을 파괴하는데 성공했으나 그것도 대단한 것 이다. 이미 10여명도 채 남지 않은 것이다. 남은 화살들이 모두 그들을 향해 쏟아졌고 그들 은 당연히도 검기를 난사하고 검막을 치면서 그에 대응했다. 콰콰콰쾅 고작(?) 매직 미사일과 검기가 부딪히며 나는 폭음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지만…… 어쨌 든 예하엘은 놀라고 있었다. "암살자 같이 훈련된 놈들이 저정도의 검기를 써? 이정도 매직 미사일이면 소드 익스퍼트 중급 이상이어야 막아낼수 있는데 고작 50명이서 5천발이나 되는걸 상대한단 말인가? 대체 어디 왕국 놈들이야? 이런 돈지랄을 하게. 차라리 기사나 키우고 말겠다." 한발에 팔뚝이 끊어져 날아 오르고 피를 쏟아내고…… 순식간에 분시分屍 되어버린 사체들. 그리고 파괴되는 검들. 남은 매직 미사일을 모두 사그라뜨린 그는 머리가 좀 아팠지만 그래 도 참아 냈다. 조금 쉬면 금방 회복되는 것이다. 로브 안에서 힐링 포션Healing Potion을 꺼 낸 그는 그것을 한모금 마시고 다시 병을 닫아 로브 안으로 집어 넣었다. 금방 몸의 기능이 활성화되면서 지끈거리는 두통은 모조리 다 사라졌고 그는 안심하며 분시 된 시체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놀랐다. 모조리 다 흑발이었기 때문이다. 피에 젖어서 알아 보기 힘들고 흩어져 있었지만 흑발이 많이 흩어져 있었다. "동대륙이로군…… 동대륙에서는 무슨 무가武家 비슷한 집단들이 잔뜩 있어서 칼질이나 하 고 국가 속에 또 하나의 국가가 있다고 하더니……" 의외로 동대륙에 대한 것도 어느정도는 알려진 모양이었다. 하긴 밀무역도 조금은 하고 있 으니까. 거리가 멀어서 탈이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고작 두통 없애려고 힐링 포션을 한모금 마시다니 돈지랄도 이런 돈지랄이 없다. 트롤의 피를 성력으로 정화, 특수 가공 후에 트롤의 피가 가진 마력으로 강력한 신성법을 묶어놓은 물. 그것이 바로 힐링 포션이다. ……뭐 이런저런 말을 해도 하고 싶은 말은 오직 하나. '더럽게 비싸다'라는 점이었다. 골드 피스Gold Piece 5개에서 10개에 달한다. 특등품은 금화. 즉 GP20개 이상은 줘야 할 정도 로 비싸다. 대륙도 넓고 금도 많다. 특히 마법사들은 금을 잘 찾아낸다. 드워프도 매우 잘 찾아 낸다. 연금술사들도 아주 잘 찾아낸다. 그래서 금의 가치가 조금 낮은 편이긴 하지만 금이 비싼 금속이라는 데는 아무도 이견이 없 다. 미스릴도 비싸고 아다만티움도 비싸지만 그건 화폐로 쓸 정도는 아니다. 어찌되었건 그 런 포션을 한모금이지만 두통 제거를 위해서 마시다니…… 아슈라스 교단에서는 힐링 포션 을 찍어냈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힐링 포션이 반가격으로 줄었지만 그래도 비싼건 매한가지 다. 서민이 넘보긴 힘들다. 아슈라스 교단의 힐링 포션 책정가는 다섯단계다. 최하가 3.45피스. 즉 금화 세개에 은화 네 개, 동화銅貨 두개다. 4급이 5.5피스. 금화 다섯개에 은화 하나. 3급이 7.5피스. 2급이 10 피스. 1급이 13.5피스인 것이다. 다른 신전에 비해 매우 싸고 훨씬 질도 좋다. 그래서 힐링 포션 사업 대부분은 아슈라스 교단쪽으로 넘어가 있다. 하지만 다른 교단에서도 팔아먹을 수는 있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아슈라스 교단의 신전들은 그렇게 숫자가 많지 않았다. 힐링 포션을 꼭 신전에서 파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또 이럭저 럭 팔기도 쉬웠고…… 아슈라스 교단에서는 '국가에 팔아먹는' 짓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 에 파는 것은 다른 교단 몫이었다. "쯧. 마법 배워서 하는 짓거리가 고작 사람 죽이는 거 뿐이라니 찝찝하구만…… 음?" 문득 그는 저 멀리서 기이한 '마력파장'이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다. 마력을 울렁이게 만드는 존재감…… 거대한 존재감이었다. 그는 놀라버렸다. 이건 드래곤 수준의 존재감. 그러나 드 래곤들은 그 파장을 은폐한다. 이렇게 자신의 파장을 드러낸다면 본체일 것이다. 폴리모프 시에는 자동적으로 은폐되니까. 그런데…… 어째서 가까운 곳인데 보이지 않는 것일까? 엘슈트럼의 궁정마도사 예하엘은 그런 의문을 품고는 인비저블 주문과 피지각 보호주문 같 은 것을 몸에 걸고 향기나 기타 등등 모든 것을 다 차단했다. 그리고 기척없이, 음소거 주문 을 몸 주변에 펼치고 지면에서 아주 조금 떠오른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장애물을 피해 날아 가기 시작했다. 광협 문열은 검에서 자유자재로 심형어검강心形御劍剛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공격해 들어오 는 무림맹과 그 외 싸구려 낭인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많은 진전을 보았는지 쓰지 못하던 심형어검강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다. 가끔 왼손으로 폭뢰강기爆雷剛氣를 장掌 형태로 발출하고 다리로 걷어 차고 부수는등 손발 을 모두 사용하며 그야말로 여유있게 적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푸른빛과 흰빛과 붉은 빛이 요란하게 교차하면서 피보라를 토해내게 만든다. 몸 위를 스치 고 지나가기만 해도 그 기운의 주변에 요동치고 있는 강기류剛氣流에 몸이 휘말려 찢겨져 나가고 살점이 분해되며 피가 비산하는 것이다. 광협은 광기를 가득 머금은 눈으로 검을 휘 둘러 존재를 참살하고 있었다. '대단하군…… 벌써 저정도의 경지에 올랐다니……' 영은 중얼거리며 틈틈히 저쪽의 기에 염을 전달해 조금의 움직임을 일으켰고 그것으로 무림 맹 측의 인물들의 신법을 차단한다거나 혈맥을 건드린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허점 을 제공했고 곧 그들은 검에 찔리건 칼에 베이건 창에 꿰이건 간단하게 죽어나갔다. "굉륜轟輪!" 문열이 갑자기 어마어마한 기류를 몸에서 뿜어내며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이어 그가 외친 일갈一喝이 쩌렁쩌렁 떨어 울렸다. 그리고 그의 몸은 회전했다. 이어 심형어검강은 그 푸른 궤적으로 소용돌이 같은 형태의 기운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것이 땅에 내려 찍힌 순간 기의 폭발이 일어났다. 강대한 폭발. 그 새하얀 빛은 열지裂地하며 무림인들을 찢어 발겼고 비명소리조차 삼키면서 쿠콰콰콰 하는 괴음을 토했다. 마치 간헐천이 치솟아 오르는 것처럼 빛의 기둥이 불규칙한 궤적으로 솟구쳐 오르고 그것이 다시 대지에 떨어졌을때 예리하지만 거친 폭발이 연이어 터 져나왔다. 직경 10여장을 말 그대로 초토화시켜 버린 것이다. "무극지기의 입구를 보고 있지만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 대단해. 맨 처음 만났을때는 심 형어검강도 제대로 쓰지 못하더니…… 대단한 재능이다." 영은 중얼거리면서 싸르르르 하고 피부를 두드리며 감겨오는 짜릿한 기파氣波에 집중했다. 새하얀 빛이 사라졌을때 힘을 제법 소모했는지 조금씩 땀을 흘리며 호흡을 조절하고 있는 문열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아예 멀찍이 피해서 외각을 암살자의 수법으로 공격해 들 어가고 있는 단월의 모습도 보였다. 검빛이 춤을 출때마다 비명은 열심히 튀어 올랐고 피무지개도 화려하게 연속적으로 그려졌 다. 그야말로 학살虐殺. 정서적으로 결코 좋지 않은 장면인 것이다. 단월의 애검에서 푸르고 희고 붉고 검은 기운들이 연속으로 강기剛氣가 되어 쏟아졌다. 신월이 되기도 하고 창이 되 기도 하고 비가 되기도 하며 무림인들의 몸에서 피를 뽑아내는 공격들…… 문열은 검강을 난사하면 난사할수록 오히려 힘이 치솟는지 검에서 이제 심형어검강 대신 어 검강御劍剛을 뽑은 상태에서 이기어검以氣御劍을 시전해 이기어검강의 수로 무림인들을 말 그대로 저며버리면서 왼손으로 폭뢰강기의 파도를 형성시켜 질주시킨다음 장검 하나를 챙겨 다가 거기서 심형어검강을 시전해 휘둘렀다. 왼손으로 이제는 폭뢰강기 대신 강력한 기운을 뭉쳐서 마치 백보신권처럼 탄경彈勁을 형성 하고 지강指剛을 가끔 거기에 더했다. 추가로 각퇴를 소림의 항마연환신퇴와 유사한 방식으 로 연계기連繫技로 강기를 둘러 감은채 휘두르고 차고 찔러댔다. 그야말로 사신의 춤! 이젠 흐름을 서서히 타기 시작한 문열의 무공은 확실히 진일보해 있었다. "하아…… 개판이군." 영은 간단하게 그 상황을 평가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어절 하나 를 덧붙였다. "미친 개판이군." 어감이 좀 나쁘지만 이것만큼 확실하게 장내의 상황을 알려주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그때 영이 기를 느낄수 있는 거대한 범위 내로 새로운 기척이 끼어 드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 이 상한 것이 저쪽에서 바로 영을 향해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슨 신법을 펼치더라도 강기 막이 더해지지 않으면 영도 시속 150km/s 이상을 낼수 없다. 순간적으로 공기를 찢으면서 이형환위를 하는 건 가능하지만 장거리를 그렇게 간다는건 미친짓 이다. 영의 사이킥이 더해지면 그는 음속에 근접할 정도의 스피드로 움직일수 있지만 그것도 속력을 주체할수가 없어서 공격용으로는 쓸수가 없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다가오는 놈은 그 속력이 영이 신법을 펼쳤을때에 준할 정도로 빨랐다. 일반 무인들이 호신강기와 단련된 신체, 그리고 경신의 기공과 용천에서의 기의 발출로 시 속 80km/s에 근접하는 속도를 낸다면 이것은 직접 바람의 막으로 몸을 감싸고 비행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영은 바람으로 몸을 감을수 있지만 그래도 결국 한계는 있다. 그러나 이건 자연 자체를 강제로 바꾸는 것 같은 느낌에 스피드도 놀라울 정도였다. 저쪽에서 '기의 파장'은 전혀 느껴지지도 않고 말 그대로 몸은 어떻게 변화를 겪기는 했지만 잘 단련되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몸안에서 흘러 외부로 발휘될수 있는 기의 흐름은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평범한 사람의 몸이었다. '뭐지…… 이건?' 알수 없는 강렬함이 느껴졌지만 그 강렬함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있는 듯한. 모든 것에 닿 아 있는 중립적인 성향의 것이었고 무공을 익힌 자들중 강력한 위력을 지닌 단순한 무공을 깊게 연성練成해서 뿜어내는 패도적인 기세는 아니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이질적이고 동 시에 한없이 익숙한 감각이라고나 할까…… 그때 비명소리와 함께 어마어마한 폭발운이 저쪽에서 퍼져나왔다. 습격이다! 라고 하는 외 침이 들려온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무림맹들이 포진해 있는 장소에서 들려온 소리들이 었다. 빛과 불꽃, 냉기와 바람의 칼날이 난무하면서 저쪽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게 무공이라면 대체 어떤 원리인 것일까? '설마 주술인가?' 주술이라면 저 다양성이 설명이 되지만. 지진이 일어난듯 땅이 울부짖어대며 폭발하는 소리 가 연이어 들리고 멀리서 살이 쪼개지고 꿰뚫리는 파륙음 역시 터져나왔다. 비명 소리 역시 스트레오(?)로 추가되었다. 사람쯤 죽어나가는건 우스운 세상인지라(게다가 병이나 사고 때문에 자식을 잃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병에서는 어느정도 안전한 명문가에서도 보통 둘 이상의 자식을 낳는건 기본이 었다) 이런 비명이 사방 천지에서 울리다가 갑자기 뚝 멎는게 그게 신기하고 무서운 일이 다. 어쨌든 비명 소리는 다행히(?) 계속 퍼졌다. 단월과 문열도 검강을 난사하고 어검술로 무림인들을 토막쳐 나가다가 마침내 그 폭발운의 중심에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은 황당함으로 일그러져갔다. 웬 중년의 고수 한 명이 이상한 무공을 사용해서 자신을 향해 검기를 뿜어내고 검강을 날리는 무림인들을 학살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누구요?" 단월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내력이 실린 목소리였기 때문에 그것이 중년 고수(?)에게 타격 을 준 모양인지 중년 고수는 인상을 찌푸리다가 품속에서 이상한 병을 꺼내 그것을 한모금 마시면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다가 다시 폈다. 단월과 문열은 긴장하고 있었다. 자신들도 내공을 읽을수가 없는 고수라니. 실은 내공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지만 이들이 알리가 있나. 주술은 간혹 보았지만 그 들이 보아온 주술은 혈천교의 주술이나 몇몇 방술사들의 염술이나 싸구려 영법들이었지 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혈천교의 주술. 즉 영법과도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사이한 기운이나 요기도 느껴지지 않았고…… 영은 그를 보곤 충격을 받았다. '이 대륙의 사람이 아니다! 금발벽안이라니!' 단월과 문열도 머리카락 색이 이상한 색목인色目人들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는지 그를 보 고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렴풋이 서방에서 대량으로 통용되어 가끔 그 신비한 주 술로 만들어낸 물건이 황궁이나 몇몇 가문에 전달되어서 쓰이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 낼수 있었다. '그럼 저자는 무공을 익힌게 아니라 그냥 주술사란 말인가?' 마법魔法이라는 말도 있는데 왜. 하긴 마법이란 마귀의 법. 중원에서는 마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하니. 사실 마법이라는 단어 자체가 뭔가 좀 이상하다. 중원에서는 해석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고나 할까? 이래저래 마법이라고 해석해서 언어를 전달하면 귀찮아진다. 이쪽에서는 주술사 같은 브레인들을 무시하지만 아스타르에서는 마법사들을 매우 우대하는 데 그것만 보아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단월이나 문열이나 주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또 자신들이 우월하다는데(실제로 현경 초입인 단월이나 현경의 중입인 문열은 매우 강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승부를 점칠수가 없다)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단월과 문열은 둘 모두 현경이 아닌가. 그에비해 저 주술사는 몸도 초라해보 이고 그 스피드도 대단하지 않았다. 예하엘은 가벼운 마법으로 몸을 띄운채 쇄도하며 마법 을 난사한것 뿐이지만 자신들의 검을 피할수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마법이란 그들에게 생소한 것이었고 마법의 강력함을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애초에 싸구려 주술하고는 비 교가 안되는 것이었는데…… "텅스Toungues." 캐스팅 없이 간단하게 시동어를 읊어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단한 정신적 스크립트로 편 집하는 마법을 걸어서 이 주변 지대의 음파에 실린 의지를 전부 변화시키는 주문. 4서클에 속한 주문으로 간접적 정신조작에 속하기 때문에 꽤 서클이 높은 편이었다. "자네들도 나를 공격할건가?" 예하엘은 다짜고짜 물었다. 예하엘은 궁정마도사다. 8서클 마법사이기도 하다. 그런즉 성격 이 꽤 오만한 편이고 괴팍한 성격까지 더해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그건 단월이나 문열도 마찬가지다. 단월은 암살자였고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는 매우 부족하다. 그리고 문 열은 성질이 더럽고 예하엘보다 나이가 더 많다. 그런즉슨…… "넌 뭐냐?" 심기가 거슬린 문열이 다짜고짜 내뱉어버린게 문제였으리라. 이런 배려없는 대사는 당연히 예하엘의 심기를 긁어놓았다. 상처받은(?) 마법사 예하엘 역시 씹어뱉듯 배려라고는 한점도 없는 대사를 발했다. "새파랗게 젊은놈이 노인에게 반말을 하다니! 그리고 내가 먼저 물었다!" "뭐라고! 내가 살아온 세월은 이백년이 넘었다! 이 새파란 놈아!" "네놈이 정녕 미친게로구나! 네놈의 얼굴을 보고 그런 거짓말을 해라!" "뭣이! 내가 현경에 오르고 나서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너같은 미친놈은 이번이 세번 째다! 첫번째하고 두번째보다 더 심각한 몰골로 만들어주마!" 문열은 참을성도 없었다. 그 즉시 길길이 날뛰면서 검강을 발출해 예하엘을 향해 한방을 날 려보냈다. 그러나 예하엘은 블링크를 두번 연속으로 해서 가볍게 검강을 피해버린다음 라이 트닝 볼트를 시전해서 문열에게 날려보냈다. 문열은 그 일격을 보고 깜짝 놀라 어검술을 전 개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푸른 불꽃의 검으로 라이트닝 볼트를 막아냈다. 벼락을 인간이 검으로 막아내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 예하엘은 경악해버렸다. 세상에! 웬 만한 소드 익스퍼트는 기습적으로 발출한 라이트닝 볼트 한방이면 다들 족족 떨어져 나갔는 데 검으로 벼락을 막아내? 게다가 지금 저 검에 시전되어 있는 것은 플래쉬 블레이즈 오러 Flash Blaze Aura. 그렇다면 저 젊은놈은 그랜드 소드 마스터란 말인가! 엘슈트럼 내에 존재하는 소드 마스터들도 하나같이 젊어 빠진 주제에 자신에 맞먹는 나이를 지니고 있어 얼마나 놀랐던가. 그러하다면 이놈은 정말 이백살이 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존심 드높은 예하엘 옹이 용납할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머릿속으로 '나잇 살 헛처먹은 늙은이!'하는 생각이 밀고 올라왔던 것이다. "어쭈? 막아? 라이트닝 볼트 체이닝Lightning Bolt Chaning!" 그렇게 시동어를 외우고 난 뒤 그는 바로 블링크 했다. 과연 응용을 통해 뒤쪽과 앞쪽에서 동시에 걸었던 라이트닝 볼트를 이형환위로 가볍게 피해버린 문열의 검이 예하엘이 있던 자 리에 푸른빛을 토했다. 이 겉늙은이(?) 더럽게 빠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문열은 검을 사방으로 휘둘러 강기의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나 예하엘은 비상주문을 외워 하늘로 날아오르며 문열의 몸 주위로 진공검의 소용돌이 를 일으키고 그 위쪽에 파이어 볼을 다섯발 정도 배치하면서 하늘로 주욱 솟아올랐다. 그런 데 문열은 상상을 씹어 넘기는 방식으로 그 공격을 파해했다. 진공검을 향해 어검술을 시전한 검을 휘둘러 그 결을 파해하고 파이어 볼을 향해 검강을 발 출해 그것을 베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서 어풍비행술을 통해 가속한다음 공중을 박차고 검을 휘두르며 동시에 심형어검강으로 어검술을 바꾸어 예하엘을 치고 올라갔다. 길게 뻗어나온 이글거리는 짙은 푸른 빛에 예하엘은 놀랐지만 그 자리에 폭발 반응을 일으 키는 주문. 즉 익스플로전을 시전하면서 블링크를 여러번 시전해 문열과의 거리를 넓혔다. 그리고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이어서 안쪽에 존재하는 인화물질의 물성物性을 문열 주 변의 대기大氣에 전달했다. 과연 회흑색의 뭉게뭉게한 구름이 문열의 주변에 뿜어졌고 문열은 그것을 갈라내려 했지만 바람의 소용돌이와 물리력의 장벽이 동시에 문열을 저지했기 때문에 그는 어쩔수 없이 검막 과 호신강기로 방어를 때워야 했다. 인화성의 구름을 창조한게 아니라 물질의 성향만을 주 변에 마나에 전달한 것이었기 때문에 물질창조는 아니었다. 다만 바인이 사용했던 황산의 안개는 직접 물질 변환을 해야 했는데 왜냐. 황산은 액체인데 다가 위험해서 병으로 막아도 가지고 다닐수가 없고 촉매는 직접 만져야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황 자체를 써야 했다. 물성만 전달해서 황산의 효과를 내려면 황을 가상적인 틀에 서 황산으로 변형시키고 물성을 전달해야 한다. 그 효율이 직접 물질을 변환시켜서 다시 그 촉매를 회수하는 것이 더 좋았으므로 바인은 물 성전달이 아니라 직접 분자를 변형시킨다음 다시 제어해서 회수한 것이다. 이 인화성의 구 름은 인화물질의 예민함이 불 붙이지 않으면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정도로 타오르지 않을 정 도라면 손으로 만져도 상관 없었기에 예하엘은 직접 사용한 것이다. 일명 인센디어리 클라우드Incendiary Cloud. D&D에서는 정석인 주문이었다. 뭉게뭉게 회흑색 구름이 퍼져나가자 거기에 불꽃의 주문이 작렬했다. 그리고 거의 5서클급 폭발이 문열이 존재하는 구간 내에서 퍼져나갔다. 폭발은 가장 격렬한 반응이고 그 충격파 만도 상당하다. 그래서 문열은 그 압력과 위력 때문에 호흡마저 막고 강기로 몸을 둘러싼채 투덜거리고 있었다. '제기랄! 거 더럽게 강력하군!' 단순 5서클급 폭발력을 바람의 장벽으로 한곳에 응집시킨 후에 충격파에 찢겨나갔고 그것은 문열에게 고스란히 커다란 타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문열은 현경의 고수. 그 충격에서 몸 을 회복한후 바로 호흡이 있는 장소를 향해 검강을 날려보낸 것이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백 색의 검강이 길게 뻗어나갔지만 예하엘은 이미 블링크해서 피해버렸다. 역시 8서클의 마스터는 현경의 고수보다 공중에서 압도적으로 강했다. 땅에서는 좀 더 딸리 겠지만 그리스 주문은 괜히 있는게 아니다. 문열이 만약 마법사와 꽤 싸워봤었더라면 밀리 지 않다 못해 압도했겠지만…… 뭐 그것도 예하엘이 거리를 벌리면 무효화되어버린다. "후하하하하! 어떠냐! 이 마법의 위대함을 모르는 무식한 칼잡이야! 무조건 때려 부수는 것 만 할줄 아니 대자연을 공부하는 마도의 힘을 이길수 있을것 같으냐!" '저 썩을놈이 무슨 소릴 하는거지? 어쨌든 기회다! 전투중에 입을 나불대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한 게로구나!' ……좋은건 좋은 거지만 텅스 마법의 효과가 공중에까지는 미치지 않았다는게 예하엘의 도 발 실패 요인이었다. 문열은 검에 공력을 응집시키고 몸의 공력을 8성까지 끌어냈다. 순간 우우우웅 하는 기음이 퍼져나가며 주변의 물질들이 중력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강대한 바람의 소용돌이가 문열 의 몸에서 퍼져나오며 공기를 밀어내고 대기를 떨어 울렸다. 강력한 힘의 증거에 예하엘은 깜짝 놀랐다. 검사가 이런걸 할수 있단 말인가? "대가를 치루게 해주지……" 문열의 목소리는 소름이 다 돋아 오르는 살기로 넘치고 있었다. 주변의 기운들이 살기에 동 조해 의형살인의 기세로 퍼져나가고 있었고 예하엘은 서둘러 주변의 기류를 통제해 몸을 감 싸고 비행마법에 윙 스펠과 가속 스펠을 걸어놓았다. 문열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대기 자체 가 떨어 울리는게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단월은 밑에서 그들의 싸움에의 충격파를 공력을 끌어내 막아냈다. 천류세가의 검수들은 본 색을 드러내면서 검기와 검강을 난사하며 무림맹의 무인들을 도륙내버렸다. 이미 충격파를 견디지 못한 수많은 무인들은 뻗어버렸고 천류세가의 검수들은 공력을 끌어내 막은 것이다. 무림맹의 무인들은 예하엘의 공격으로 많이 줄어들었고 또 힘 역시 감소해 있었다. 그 상황 에서 강력한 검수들이 덮쳤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문열은 중얼거리며 검에 주변의 기까지 조금 끌어들여 길이가 10여장에 달하는 거대한 심형 어검강을 생성하며 휘둘러버렸다. 무신武神의 거검인양 천지만물이 끊어져 나가는 듯한 환 상을 보이는 일검. 기가 끊겨져 나가고 광풍의 선율이 울려 퍼진다. 그러나 일단 맞아야 제 대로 되지. 거대한 심형어검강에 휘감겨 있는 경기勁氣에 다쳤으나 그것을 힐링포션으로 때우면서 예하 엘은 5서클급 주문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빛의 화살과 폭발이 심형어검강을 두드렸고 심형 어검강이 휘감은 거대한 기류는 그것들을 밀어내며 섬전처럼 예하엘을 쫓았다. 예하엘은 당 황했지만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고 블링크를 통해 피하면서 주문을 난사했다. "하전입자포[荷電粒子包 Electric Charge Cannon]!" 예하엘은 메모라이즈한 6서클급 주문을 시전했다. 주변의 입자를 가속시키고 전위를 변형시 켜 벼락의 덩어리를 쏘아 보내는 주문이었다. 한방 한방에 3서클급 폭발주문에 가까운 공격 력이 실려 있는 주문으로 뿌리면서 하늘을 비행하면 마을 하나 전소시키는 것 쯤은 간단한 주문이었다. 전격계에 속하는 주문이면서 그런 대단위 파괴력을 내는 것이다. 이 주문을 한방 날려보내면서 예하엘은 먹혀들어갈 거라 자신했지만 오히려 심형어검강은 더욱 기승을 부리며 길이 10여장의 용처럼 꿈틀대며 하전입자포의 포탄 하나하나를 쳐내버 렸다. 폭발이 일어났지만 예하엘은 제 이격을 날렸다. "플라즈마 레이저Plasma Laser!" 우우우웅 입자 배열. 그리고 자유전자 방출을 통한 전리기체화. 그것을 가속시켜서 쏘아보내는 광선. 길게 뻗어나가는 광선은 휘어짐 없이 문열을 향해 쏘아져 나갔고 그 광선은 심형어검강과 격돌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충격파가 퍼져나가며 쓰러진 자들의 귀에서 피가 확 튀어오르게 만들었다. 아마 공 력을 끌어올려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한 자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영은 저 장면을 보면서 싸늘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왜 인지 모르지만 저 중년인이 주문을 쓰기 전에도 그는 그의 말을 알아 들을수 있었다. '……그렇다는것은. 비위 적당히 맞춰 주고 이용해먹을수 있다는 소리인데. 이제 시선도 없 으니 끼어들수 있겠지? 크크큭. 조력자가 등장한 것일까? 운이 좋은 것인가 나는?' 그가 은뢰에서 힘을 불러 일으키는 순간 예하엘은 당황했지만 다시 주문을 시전해 문열과 격돌하기 시작했다. 바람, 냉기, 불꽃, 폭발, 벼락, 환상, 물리력, 중력, 공간계 주문등이 어지 럽게 난무하며 문열을 난도질 하려 들었지만 문열은 이제 한바탕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용 처럼 꿈틀대는 검은 사방을 푸른 검영으로 가득 메워가고 있었다. 예하엘은 긴장하며 중얼거렸다. 드래곤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뭐지…… 이 주변의 마나를 짜릿하게 뒤흔드는 이 거대한 마력은! 드래곤이 아니란 말인 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힘을 방출하고 있는데! 느낄수 있지만 보이지 않다니!' 영은 무서운 속도로 달려 들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영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금빛의 서기는 문열이 일으킨 어검강의 권경을 간단하게 밀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문열은 깜짝 놀랐다. 눈치채지도 못하다니. 이런 제기랄 일이 있나 하고 중 얼거렸지만 습격 당한 것은 습격 당한 것이었다. 금빛의 서기를 막아내지 못했기에 문열은 간신히 심형어검강을 거두어 검을 내렸다. 문열이 휘두른 심형어검강의 경기는 예하엘을 조이고 있었고 덕분에 예하엘은 상당한 내상 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포션 하나로 내상을 조금이나마 치료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영이 사이킥을 이용해 텔레포트 한 후 바로 마혈들을 짚어버린다음 포박해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어떤 행위도 할수 없었다. 구상공간에 마법을 구현하려면 자신의 몸은 자신이 제어할수 있는 상황이거나 정지 되어 있 어야 하는데 너무나 빠르게 움직여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것이다. 문열은 기를 몇바퀴 돌려 몸에 공력을 순환시키고는 검을 검집에 갈무리했다. 단월은 손도 못써보고 순식간에 끝나버린 일에 멍청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문열과 단월은 당황감을 느끼고 있었다. 난데없이 영은 등장했고 단 일격으로 금강폭열공으 로 문열을 공격한후 심형어검강의 기경에 몸을 많이 상해서 힐링포션으로 그 치료를 때우고 있던 예하엘을 구출해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천류세가의 검수들은 그를 따라 무서운 속도로 사라져버렸다. "그놈이…… 아무리 무림의 권리 서열은 힘이 말해주는 거라지만 너무하군. 오랜만에 싸우 면서 흥분을 느끼고 있었는데 식어버렸어." 문열은 허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단월은 자신의 병 기를 매만지면서 대꾸를 했다. "그렇습니까?" "네녀석 싸우는 걸 보니 정통파인척 하는 영이라는 놈하고 상당히 인연이 있는 모양이군. 칼질하는 모양새가 그놈하고 닮았어. 그나저나 참 저놈도…… 다짜고짜 싸울 상대를 만나고 싶으면 교룡평으로 오라니. 뭐 아는거 있나?" 문열은 예의나 존중은 어디다 버리고 왔는지 궁금한 말투로 단월에게 질문했지만 단월은 자 신보다 높은 경지에 오른 자에 대한 예를 버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문열의 미친 듯한 행태 에서 이상한 호쾌함과 단순한 무인으로써의 기상을 느꼈기 때문에 존중하는 마음이 들어서 이기도 했다. "무림맹과의 마지막 결전이 그곳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무림맹에서 뭘 찾아냈 는지 당당하게. 하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문열은 단월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림에서는 금기시 되는 질문(무 공의 연유를 묻는 것)이었지만 문열이나 단월이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녀석이 익혔다는 무공이 분혼공이라지?" "예. 그렇습니다." "그 비급은 어떻게 되었냐? 실제 여기에 있기나 하나?" 문열은 의외의 예리함을 보여주었다. 하긴 꽤 오래 살았고 무림의 물과 밥을 오랫동안 먹었 으니 눈치는 미쳐돌아가도 보통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문열은 머리가 좋다. 현경에 오르는 건 육체적 재능만으로 오를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돌아다니는건 반쪽자리입니다. 초식만 있고 심법이나 무공의 이치는 거의 없죠. 진짜는 이 미 불태워버렸고 그냥 초입 한 20장하고 중간중간에 제대로 된 내용을 집어 넣었을 뿐입니 다. 그럴듯하게 이어지지만 막상 익히면 운이 좋아야 화경이나 될까요. 속 빈 강정이죠." "하여튼 그놈은 현경의 끝을 봤으면서도 머리 쓰는걸 너무 좋아한단 말이야. 수하까지 있고 저런식으로 생각많은 놈이 현경의 끝을 봤다는게 아직도 아리송해. 그런데 교룡평이 마지막 결전 장소라면 그 미끼는 어디에 있나?" 둘다 현경의 고수에 머리가 잘 돌아가고 이 레퍼토리가 뻔하지만 정석적이고 단순해서 오히 려 무림인들에게 설득력있는 이야기에 대해서 대강 파악하고 있었기에 이야기는 매우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여러 분열한 군소방파나 그 외 많은 자들은 교룡평에서 150여리 떨어진 산맥의 자락인 망 산亡山으로 몰려들게 됩니다. 여기서 살아남은 자는 없지만 이곳에서 살아남은 자로 위장한 수많은 자들이 무림맹과 천류세가의 격돌과 여러 잡다한 방파들의 격돌 결과 살아남은 자들 은 무림맹과 천류세가의 인물들은 몇 안된다는 소문이 돌게 될 것이고 분혼보도가 표시하는 장소가 망산이라는 소문이 퍼지게 될겁니다. 그리고 그 근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다가 암습 없을 탁 트인 장소는 방원 100리가 넘는 교룡평 뿐이죠." "무서운 싸움이군. 어쨌든 거기엔 싸울만한 놈들이 많다 이말이지? 보나마나 정도 무림의 마지막이 걸렸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은거한채 거들먹 거리던 멍청이들도 대량으로 기어나올 것이고 그런놈들과 싸우는건 제맛이겠지. 개중에 현경 고수도 있을 테고. 반드시 있을거다. 없다는게 이상하지. 그놈의 무당과 소림은 특히 더……" 문열은 입맛이 당긴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불쾌한 것은 그것을 다 계산하고 저 영이라는 애송이가 이런 말을 남기고 갔다는 소리였다. 단월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소모품 이었을것 영이 건져낸 존재였기 때문에 그다지 불만은 없었다. 다만 이 스펙터클한 싸움질 의 한복판에서 싸우다 죽고 싶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잘 참아냈으니 그래도 이걸로 보답을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단월은 피식 웃었다. 보나마나 이 싸움 후에는 마교가 득세를 할 것이다. 마교의 세력들도 꽤 끼어들긴 하겠지만 마교는 그들의 집결지에 어마어마한 힘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황궁은 이제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만약 방해하는 자를 죽인답시고 검을 들고 휴전을 하고 나서 무림맹과 천류세가, 마교가 동시에 황궁을 작살내버린다면 아무리 제국의 모든 힘을 가지고 있는 젊은 황제라도 별 도리 없이 죽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힘이 없어 참고 있는 것이다. 황궁에 있던 화경 고수도 다 죽어버렸고. "많이 즐겁지 않겠나. 요즘 그놈이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면서 싸움거리가 많아져 살맛이 났 었는데. 아무리 나같은 미친놈이라도 정도무림 자체를 뒤집어 놓을수는 없었거든. 난 독보천 하가 좋지 무림제패는 싫었기 때문에. 그러고보니 그 공공. 괴물중늙은이는 심격권을 얻었으 려나? 얻었다면 한번 싸워봤으면 좋겠군." 문열은 앞으로 다가올 싸움에 대한 희열이 가득한 눈이었다. 단월 역시 많은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싸움에 몸이 흥분으로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단월은 전직이 암살자이긴 했으나 지금으로써는 무림인으로 더 많이 그 성향이 변해 있었고 무엇보다 그는 음자陰子로 살아가 는 것보다야 양지에서 검을 휘두르는게 더 좋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선배님. 과연 은거기인이니 뭐니 하고 있는 작자들이 전부 다 나오게 될까요?" "정도가 이기든 지든 위축되든 그들에겐 별로 상관 없지만 일단 사문이 날아갈 위기에 처하 면 나오게 되니까 일찌감치 귀찮은 것들 지우겠다고 느적느적 기어나오긴 할게다. 킬킬킬." 괴소를 흘린 문열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보다 늙어빠진 그 영감탱이들중 몇몇놈들 튀어나와봤자 전부 합공한다 하더라도 그 영이 란놈에게 100초식도 못견디고 피떡이 나겠지만 그래도 국부전에선 도움이 되겠지. 살육 싫 어하는척. 고고한척 다하면서 피를 보면 제정신을 못차리면서 체면 차리겠다고 오늘 살계를 크게 열겠느니 사악한놈들을 징계하겠느니 뭐니 하면서 칼질을 해대니. 고수의 숫자가 모자 란 천류세가에선 고전을 하겠지. 어느 방파가 화경고수 다섯 이상을 한꺼번에 보유하고 있 겠느냐만은. 영이란 놈도 꽤 괴로울거다." 문열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자신에게 마법을 난사하던 예하엘이 떠올라서 인지 이맛살 을 구기면서 투덜댔다. "이제 주술사는 우습게 볼수가 없겠군. 주술 쓰던놈들 다들 주문을 한참 중얼중얼 거리다가 그냥 불꽃같은거 좀 피우고 말더니 그 겉늙은 놈은 어마어마한 공격을 해대더구만. 적어도 8성 이상의 힘을 끌어내야 대적을 할수가 있다니. 대략 2장 이상만 거리가 더 벌어졌어도 더 강력한 공격이 날아왔을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하구만. 그놈의 공격들은 도대체 할때마다 달라지니 심형어검강으로 막아내도 여파가 몸으로 밀려오고. 호신강기가 한단계만 그 경지 가 낮았어도 피를 게워냈을테니……" "대단하긴 하더군요. 그 중년인이 서쪽에 있다는 대륙 아사탈阿泗脫(아스타르 대륙의 명칭 인듯 하다)에서 온 인물일까요? 그런 중년인 같은 수준의 주술사들이 많다면 정말 대단한 곳이겠군요." "하지만 저런게 저정도로 발달했으면 검술이니 뭐니 하는건 형편없겠지. 저런걸 저정도로 발전시키는데 검술에 쏟아 부었다면 이쪽보다 한단계 높았을수도 있었을텐데. 끌끌끌." 혀를 차던 문열은 단월과 몇마디를 더 나누고는 동행하기로 작정한뒤 교룡평으로 향했다. 천하 무림에서 나름대로 한수 한다고 하는 작자들이 정과 사로 나뉘었다. 천류세가는 실상 정도보다 정도에 가깝지만 지금은 세간에 사파로 알려져 있었고 이것은 제 이차 정사마 대 전으로 번져나가게 된 것이다. 1개월 후. 천하는 격동하기 시작했다. 망산에 있다고 알려진 분혼동의 존재는 모든 이들을 망산으로 끌어들이게 했고 무림맹에서는 안도했다. 교룡평에서 싸운다 하더라도 숫자가 많 이 줄어들어서 상당히 힘이 들었는데 저렇게 가깝다면 어느정도 시간은 있더라도 상당히 괜 찮아진게 아닌가? 천류세가의 본가에는 때아닌 총성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 괴물같은 놈! 총탄을 피하다니!" "그러니까!" 영은 다짜고짜 달려들어 멋진 하이킥을 날렸다. 회축도 뭣도 아니고 말 그대로의 하이킥이 었다. 그러나 어디서 나왔는지 알수 없는 웬만한 어린아이 키만한 라이플Rifle을 이용해서 그것을 막아낸 예하엘은 블링크로 거리를 넓히고는 다시 라이플을 한방 갈겨버렸다. 스페이 스 백팩 비슷한 것에서 끄집어 낸 듯한 라이플 한정의 총열이 멋지게 번뜩이고 있었다. "쳇. 마법사가 반사신경도 좋아." "시끄럽다 이놈!" 더불어 귀도 밝군. 영은 투덜거리며 내운기경을 통해 몸의 속력과 파괴력만을 증대시키며 예하엘을 향해 달려 들었다. 예하엘은 헤이스트 스펠과 몇가지 보조 스펠을 몸에 걸어놓고 움직였는데 6서클급 마법이라 할지라도 저 외모만 아름답지 사악하기 그지없는 놈이 들고 있는 은색의 이상한 검에 바로 바로 파해가 되어버려서 어쩔수 없이 총기류를 꺼낸 것이다. '경량화 마법과 마법적 반동제어기를 장착한 서브 머신건Sub-Machine Gun(브랜드는 노움 마이스터들 것이라 없다)을 꺼내기엔 시간이 좀 모자란데…… 젠장. 저놈의 염병할 쇠붙이 만 없었어도!' 라이플의 총열이 이빨을 번뜩였다고 생각하면 총탄이 날아왔기 때문에 영도 도저히 어쩔수 가 없었다. Barret계의 BMG같은 모델이었다면 영도 괴로웠겠지만 이 라이플은 브라우닝식 은 아니었고 부싯깃 총에 가깝다는게 정확할 것이다. 머스킷 라이플이랄까? 그러나 위력은 무시 하지 못할 것이었기에 영은 동체시력으로 포착한 즉시 염동으로 그것을 정지시켰다. 사이필드Psi-Field로 막아내는 것이다. 그럴수록 예하엘의 총탄 장전 속도는 점 점 빨라졌고 여러개의 황동빛 탄피가 바닥에 50여개 이상 떨어졌을 무렵 마침내 승부가 났 다. 예하엘은 서브 머신건을 꺼내버린 것이다. 브라우닝 식과 유사하지만 노움과 드워프의 합작에 마법까지 더해지자 봉인계에 있는 BMG 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게 아닌가? 은색으로 반짝이는 총구에서 불꽃이 요란하게 토 해짐과 동시에 영은 기겁을 하면서 경공을 극도로 발휘했다. 물론 총탄을 경신법따위로 피 할수 있을리가 없지만…… 아무리 경량화 마법을 걸어도 5kg에 가까운데다가 마법적 무반동기를 튜닝했다해도 드래곤 이 설계하고 마법을 걸어 만든 것이 아닌 바에야 반동은 전해진다. 예하엘은 카트릿지 하나 를 싹 비우고 난 다음 완전히 지쳐버렸다. 예하엘은 마법사고 헤이스트를 걸어도 영을 제대 로 겨냥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총은 무겁다. 그런즉슨, 총구의 방향을 바꾸는 것 만으로도 예하엘에겐 중노동인 것이다. 카트릿지가 다 비워져 버리자 예하엘은 혀를 빼물 수밖에 없었다. "헥헥헥…… 이 괴물같은놈." "일단 무장해제나 당하시지!" 노인공경과는 거리가 먼 영은 무서운 스피드로 다가들어 예하엘이 반응할 사이도 없이 멋진 회축으로 목덜미를 후려 차버렸다. 혼혈과 수혈 짚는 점혈법은 어디다 치워버린걸까? 예하 엘이 워낙 성질을 부려서 점혈 같은 고상한(?) 방법으로 상대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는게 정확할 것이다. 예하엘은 전사가 아니라(전사라도 이런델 맞으면 죽거나 뻗는다) 뻐억 하는 소리가 나자 마 자 당연히 숨도 제대로 들이쉬지 못하고 벼락맞은 개구리처럼 쫙 뻗어버렸다. 서브 머신건 이 떨어지자마자 영은 그것을 주워 들었다. 그런데 서브 머신건 치곤 꽤나 가벼운게 아닌 가? 영은 이맛살을 찌푸리다가 마법에 생각이 미쳤다. "잘 만들었는데? 라이플이나 저격용 총을 공수해올수만 있어도 암살은 몇배는 쉬워지는건데 아쉽네. 하긴 호신강기에 일단 맞으면 뚫는게 아니라 맞히려고 했던 부분에서 빗나갈 확률 이 훨씬 늘어나고 검강을 조금이라도 쓸수 있는 놈들의 호신강기는 꽤 강력하니…… 그래도 서브 머신건이라니 대단한데?" 영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서대륙. 즉 아스타르는 의외로 대단한 발전을 이룬 상태인것 같았 다. 그렇지만 할로우Hollow 탄 같은 것은 없는 것 같은데. 하긴 탄도학彈道學 같은게 있나 뭐가 있나? 탄이야 적당히 설계해서 찍어내면 그만이지. 게다가 총에 무슨 브랜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영은 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정말 위험한 노인네잖아? 이런걸 들고 다니다니." 영은 예하엘의 등짝에 발을 얹으면서 중얼거렸다. 다치게 할수가 없어서 검기도 발출할수가 없었다. 실버 블릿츠에 대한 것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기에 마법은 걱정하지 않았지만(바인 은 마법을 굳이 허공검으로 상대하려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알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염 을 통해 허공검을 사용한 것은 형태 변형 기능 뿐이었다)…… 이런걸 가지고 있다니 이런 세상에서 이런 무기는 반칙이다! 라고 해도 그건 일반적 무인. 그것도 정통파 무인의 관점이었다. 영은 스스로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정통적 무 인의 생각을 자신이 갖게 되다니. 무림인들이 탄성있는 용수철과 정밀기계를 이용해서 만든 독침을 날리는 암기나 폭약을 혐오하는 것처럼 자신은 서브 머신건 같은 병기는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되는 병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자연이 그대로 번성하도록 힘을 쓰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자신은 폭약을 만들어내서 그것으로 문명을 가속화 시킨게 아닌가? 하지만 서양에서 이런게 잔뜩 있다면 (실제로 잔뜩 있다) 자신이 폭약을 만들어 동대륙에 떨구어 논 것은 업적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다. 뭐 이런게 대량으로 있다면 무림맹 괴멸도 순식간이겠지만…… "정말. 이율배반적이군." 염동을 이용해서 예하엘의 몸을 부드럽게 공중으로 떠올린 그는 서브 머신건과 머스킷 라이 플. 그리고 총탄들과 탄피들을 모두 회수(압수)해서 건물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꽤 커다란 객실 벽에 구멍이 뻥 뚫려서 휑 하게 보였다. 예하엘이 마법으로 뚫은 구멍이다. 자신이 그 래도 쓸만하게 조성한 정원 역시 예하엘이 갈긴 서브 머신건에 의해 상당히 파괴되어 있었 다. 그것을 보며 영은 이마에 슬그머니 돋아나는 핏대를 억눌러야 했다. "영감탱이. 손해배상 받아낼테다." 40대로 보이는 예하엘보고 영감탱이라고 하는 거야 당연히 예하엘의 육신 노화 정도에 따른 것이지만(실제로 육신의 노화 역시 늦긴 하지만 '기'적인 관점에서는 확실히 예하엘의 몸은 노인의 것이었다) 분풀이가 섞인 호칭이라는 것은 영 스스로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뭘로 받아내면 좋을까? 이런 총같은거 뺏어봐야 고작 한정 정도로는…… 이 늙은 이. 예하엘이라고 했던가? 제법 높은 경지에 이르른 마법사인것 같은데. 플라즈마 레이저 같 은걸 날려대다니 의외로 마법에 관련된 과학 수준에 있어서는 서대륙은 경지에 올랐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닐지도." 영은 중얼거리며 잠시 예하엘의 마법에 관심을 가졌지만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검 하나만으로도 정말 헷갈리다 못해 그 끝이 보이지 않는데 마법 같은데에 눈을 돌렸다간 큰 일이다. 게다가 마법은 정신수양에는 별로 좋지 않은 수단인듯 했다. 예하엘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내면서도 예하엘의 정신적인 어떤 것은 문열보다 못했다. 문열이 미친 짓을 하고 돌아다니긴 하지만 그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명경지수 같은 마음 상태로 되돌아 올수 있었고 그 광태의 9할은 자기 스스로 의도한 이미지인 것이다. 영의 경우는 워 낙 자신의 정신적 기반이 약하지만 그것을 지식과 그에 대한 응용. 그리고 무공을 익히면서 깊어져 가는 부동심으로 때우고 있었다. 이 무림에서 영 만큼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지니면서도 강력한 무공을 익힌 자는 없는 셈이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만 해도 영보다 훨씬 낫다. 영은 묘한 광기에 휩쌓여 있었고 거 기다가 서륜이 죽음으로써 찾아냈던 기댈만한 것이 사라져버린 탓에 요즘은 꽤 망가져 있었 다. 본인이 그것을 자각하고는 있었지만 자각해도 자기 스스로를 보수할수 있겠는가? 그럴수 있다면 세상에 성자와 도사의 숫자는 꽤나 늘어났을 것이다. 자기 스스로 문제점을 알지만 그것이 고치기가 쉽다면 정신적 문제겠는가. 영은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영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지는 못하지만 그건 더 나쁘다. 감정 자체가 상처난채로 굳어버리 면 어떻게 치유할수 있겠는가. 영은 정신적으로 꽤 심각한 상태인 것이다. 운이나 영이나 정신적으로 많은 부분이 파손되어 있는 깨어진 파편들이다. 이런 파편들이 서로서로를 보듬어 준다고 제대로된 결정체가 만들어질리가 없다. 어쨌든 그 스스로를 치료 할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내면에 있고 그것을 발견하거나 깨달아 대오각성하기 전까지는 이 들의 정신은 계속 흔들리게 될 것이다…… 만은 중요한건 이게 아니지. "훗. 이제 배우들도 다 모였고…… 시작인가?" 그의 핏빛 입술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렸다. 영은 여러가지 서류들을 읽고 간간이 사람들을 불러 무언가를 지시하곤 하더니 한시진이 흐르고 나서 서류들을 모조리 파기해버렸다. 이제 교룡평에서 승부는 날 것이다. 망산 천망봉天亡峰에 있는 '분혼동'은 많은 인원을 소모시켜 줄 것이다. 관심이 쏠리는 정도로도 충분한 것이다. 운은 천망봉으로 가고 자신은 교룡평 근처에서 싸움을 벌이다가 교룡평에서 세력을 모아 일 전을 벌인다. 물론 무림맹에서는 그 교룡평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산 중에서 교룡평의 다섯 입구중 네 입구에 존재하는 절벽에 나누면서 교묘하게 포진을 하겠지만 중요한건 힘이다. 모든 검수와 사람들에게 포위당해도 맞서는 표면적은 같으니 주눅 들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말해 두고 폭약을 전달했으므로 포위당해도 위축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포위를 해봤자 화약 좀 집어 던져 폭발시켜 버리고 강한 검수를 선두로 내세워서 뚫고 들어 가면 검진을 펼치건 그냥 덤비건 간에 와해되게 되어 있다. 폭약의 파괴력은 대단하다. 문명 을 붕괴시킬 만할 정도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수준의 문명에서는 폭약도 매우 위협적인 파 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운에겐 화경이 아닌 검위들이 가게 되고 화경에 올라있는 검위들은 자신이 직접 끌고 교룡 평을 휩쓴다. 물론 중간에 검위들은 분산해서 무림맹 안쪽으로 파고들어가고 어떤 위험이 생겨나게 된다면 자신은 실버 블릿츠의 힘과 사이킥, 무공을 총동원해서 수뇌부만 모조리 죽여버리면 된다. 필요하면 암살자로써의 영으로도 되돌아갈 것이다. "그거면 충분해. 그거면……" 영의 표정은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생각하면 할수록 암살자로써의 자신과는 마주하고 싶 지 않았다. 요즘 되도록 은영비를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그것이다. 웬만해서는 청강장 검이나 백련정강제 패검 같은 것을 들고 다니거나 실버 블릿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이다. 잘 해내야 해." 영은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3주의 시간이 흘렀다. "다짐한지 3주만에 잘 해내긴 커녕 소강상태라니. 작심삼주는 아니지만……" 영은 메마른 바람에 눈살을 찌푸렸다. 슬슬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대륙성 기후가 강 하다. 바다는 넓지만 내륙중 내륙이니. 이 세상의 대륙은 판게아를 둘로 뚝 나누어서 북반구 와 남반구로 비스듬하게 나누어 놓은 것과 같다. 그만큼 땅덩어리는 끔찍하게 컸고 덕분에 바닷가나 그 근처가 아니면 해양성 기류의 여파를 받긴 힘들었다. 산맥이나 그런 것들이 꽤 있긴 하지만 그렇게 많지 않아서 인간들만 있는 동대륙의 식량사 정은 좋다 못해 곡식을 썩힐 지경이었고 노는 땅도 많았다. 산맥이 없는건 아니고 조산운동 같은 것으로 형성된 땅도 있다. 땅이 안정기로 들어선게 아니라 화산이 계속 터지고 있는 지대도 있는 것이다. 세개의 판이 걸쳐져 있는 이 동대륙에서는 금강석도 꽤 많이 나는 편이었다. 세개의 플레이 트가 부딪히면서 열과 압력을 통해 탄소를 다이아몬드로 바꾸는 것이다. 탄소는 이 세상에 풍족한 원소였고 모자란 것이 있다면 마법적 원소 정도 뿐이었다. 봉인계는 아예 마법적 원소가 없지만 이곳은 마나와 기 같은 힘이 매우 풍족했고 찾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동대륙에도 미스릴, 아다만티움 등은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것을 가공할 마법적 화로 같은게 없었기 때문에 제련하지 못해서 광맥 중간에 존재하는 미 스릴, 아다만티움을 찾아내면 광부들은 욕을 하게 마련이었다. 캐려고 해도 캘수가 없으니. 캐어낸다 해도 돈이 되질 않는 것이다.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전쟁이란 정말 끔찍하구나.' 영은 중얼거렸다. 곧 자신에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푸념이라고 생각했기에 피식 웃어버 렸지만 말이다. 이 교룡평이라는 장소는 확실히 싸우기에는 최악이면서도 최고의 장소 였다. 덕분에 영의 수하들도 많은 출혈을 감소해야 했다. 못내 그것이 속이 쓰리다. 어떻게 보급로 를 끊을수도 없고…… 천류세가와 무림맹. 마교. 그 외 많은 세력들은 모두 교룡평 근처에서 산발적으로 부딪히며 세력을 소모했고 그때마다 새나 벌레, 미생물들만 풍부한 식량을 얻게 되었다. 시산혈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은 광경들이 곳곳에서 펼쳐졌으며 그 소모전이라는 것은 나라에서는 이제 어떻게 통제할수 없는 수준이었다. 교룡평에 속속들이 집결하는 무림인들은 피를 쏟고 살점을 대지에 토했다. 되돌리고 또 되 돌린다. 인간이 너무 많이 죽어나갔기 때문에 고인 피는 썩어들어갔고 그 썩어들어간 독은 자연조차 죽였다. 본래 인간들이 죽어 그 시체가 썩는다면 열구 정도라면 나무의 양분이 되 거나 충분히 소화할수 있는 음식이 되어주었으리라. 그러나 이 싸움은 그 격이 달랐다. 수백의 시체가 한곳에 쌓여 썩으며 악취를 풍겼고 시신수습조차 할수 없는 극악한 상황에서 도 무림인들은 결코 서로를 향해 거둔 병기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지 않았다. 철저한 훈련 을 받을 자들은 광기에 스미지 않았다. 무림인들이 아무리 수양이 된다 하더라도 결국은 검 사. 일단 싸우기 시작하면 그 광기는 그들을 잠식했다. 마교는 정 반대로 그 광기와 피의 바다에서 날뛰고 있었지만. 천류세가 쪽은 그와 반대로 피가 흐르면 흐를 수록 더욱 차가워 져만 갔다. 무림맹이 불의 폭풍이라고 한다면 천류세가 는 얼음과 눈보라의 소용돌이라고 할 것이다. 마교는 불타오르는 게 아니라 물이 끓어오르 는 것과 같았다. 그 광기란 싸움이 끝나면 바로 식어버렸으니까. 오랫동안 조용했기 때문에 무림맹쪽은 경험 많은 무인들이 적었다. 천류세가도 마찬가지이 지만 일반적인 무인의 단련 정도에서 그 수준과 격이 틀렸기 때문에 무림맹보단 그 혼란의 정도가 덜했다. 마교는 오히려 하나의 군대에 가까운 조직인지라 그 정밀함이란 싸움터에서 도 마찬가지였다. 정련된 광기와 살기랄까? 교룡평의 지대는 참 묘하다. 숲과 절벽, 산맥 등으로 인해 밀폐된, 입구는 있지만 좁기 그지 없는 분지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망산의 천망봉에는 공교롭게도 분혼동이 존재했다. 밀 폐된 지형이라 일반인에게는 들어오기 힘들지만 무림인들은 이정도 지형에서는 별로 움직임 에 지장이 없었다. 그들의 수련이란 일반인들이 하는 운동과는 수준이 틀린 것이다. 교룡평에는 마을이 별로 없었고 이미 그들의 싸움으로 인해 죽어나가거나 도망간 자들도 많 았다. 나라는 이 싸움을 막지 못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무림인들과 나라를 저주하게 됐다. 지 금에 있어서는 남아 있는 사람도 없지만 말이다. 도망쳐 가다가 죽은 사람도 매우 많았다. 약육강식의 네글자가 극명하기 드러나는 벌판. 예전의 교룡평이 지하수와 여러 요건으로 인해 분지임에도 불구하고 풍족했다면 지금의 교 룡평은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된 지옥이 강림한 땅이었다. 동물과 동물이 서로 잡아 먹는 것은 평화이지만 인간이 서로 죽이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고 하던가? 어쨌든 이런 곳으로 속 속 들이 들어오는건 좋았지만 나가는건 불가능에 가까웠고 먹을 것은 떨어져 갔다. 애초에 풍족하게 먹을 것들을 가져왔다고 해도 분지는 분지. 무림인들은 식량 수송에 있어 서는 취약했던 것이다. 덕분에 표국들은 각기 그들이 밑에 들어간 세력에 충분한 돈을 받으 면서 식량을 나르기에 바빴다. 그런 그들이 습격당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가벼운 마찰로 끝 났다. 전술적으로 써먹기에는 별로 좋지 않은 경우랄까? 게다가 이 싸움은 군대와 군대의 싸움이 아닌 무림의 집단이 싸우는 것이다. 군대식 병기도 없고 군대의 싸움 방식도 먹히지 않는다. 무림인들은 일반 병사와는 수준이 틀린 무력과 기 동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젠장할!" 영은 며칠 목욕을 못해서 이젠 기름기고 뭐고 없이 먼지투성이에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탁 탁 쳐버렸다. 얼른 잘라버리면 좋겠지만. 지금은 꽤 보급 사정이 좋아졌기 때문에 먹을 것 걱정은 없고 잠자리도 괜찮았지만 씻는것 만큼은 좀처럼 어떻게 할수가 없다. 목욕통 같은 걸 이런데 들고 올수도 없고…… 지하수 같은걸 함부로 팠다가는 잘못하면 지반침하가 일어나는 것이다. 수맥을 찾아보려고 도 했지만 안전한 수맥은 별로 존재하지 않았고 그랬기 때문에 식수와 조리용 물로는 과했 지만 몸을 씻고 잘잘한 일을 하기에는 좋지 않았다. 자신은 우두머리였고 몸좀 더럽다고 물 낭비하기엔 지금 상황도 좋지 않다. 우두머리는 타에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몰 골이 모범이 되는 상황이 좀 우습지만 말이다. 영은 욕을 우물거리면서 신경질적으로 들고 있는 청강검 한자루를 가볍게 쳐내서 나뭇가지 를 잘라냈다. 화풀이였다. 여긴 대체 어떻게 나무 같은 종자들이 남아있는건지 원. 대부분 다 씨앗을 바람에 날려보내는 종류들이 많았지만 영의 눈에 지금 그런게 들어올리가 없지. 장작으로 때기에도 그다지 좋지 않은 나무들이다. 진액이 좀 많으면서도 쓸만해야 하는데 이건 진액은 많아도 연기가 잔뜩 나기 때문에 그다 지 좋은 장작은 아니었다. 위치가 드러나니까. 그래서 모두가 잔뜩 모여있는 본진에서만 불 을 피울수 있었고 주변 지대에서는 간신히 목재를 구하고 있었다. 나무를 나르는 짓도 해야 할 지경이다. 무인들이 아무리 추위에 강해도 점점 겨울이 다가오는데. "빨리빨리 끝내버려야 할텐데 말이지." 아무래도 소강상태와 산발적인 전투만 계속될것 같았다. 소모전 말이다. 지긋지긋한 소모전. 물자와 인력 소모도 많고…… 어느쪽이 물자를 더 과격하게 소모하고도 버티느냐가 전쟁의 승리 조건이었던가? 영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 신경질적이 되는걸 느꼈다. 분지였기 때문에 지하수로 습기는 있어도 비로 인한 수량 증가는 없는 이런 교룡평. 지하수 가 통과하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건조하기 짝이없는 모래바람이 잔뜩 묻어나는 높이가 10 여장이 넘는 수직 절벽 위에서 어떤 이들의 대화가 이루어 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지. 이번 일이 왜 싫냐면…… 일단 짜증나게 복잡하잖아! 난 디비네이션 Divination(예언, 예견, 선견지명) 따위는 할줄 몰라! 투시도 없이 수천가닥의 실이 얽힌 난 마亂麻를 어떻게 바로 보고 읽어내?" "……치에." "응. 왜?" "우린 지금 예언따위를 할 필요도 없거니와 능력도 없습니다." 뭔가 골치가 아프다는듯 로브 청년은 이마를 감싼채 안온하고 조용한 음색에 피곤함을 실어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치에라고 불린 여성은 당연하다는 듯 대꾸하는게 아닌가. 어쨌든 치 에는 함께 있으면 그 생동감을 느낄수 있다는건 좋았지만 골치도 아프게 한다는 점이 문제 였다. "그거야 당연히 그렇지. 그런데 왜?" "왜 디비네이션이라는 말을 꺼낸 겁니까?" "아. 그야. 저 영이라는 놈 생각은 읽을수가 없잖아. 병력배치 같은거야 우리가 예측할수도 있고 지형이 있으니까 뻔할것 같지만 말이야. 게다가 지금 상황에서 잔수를 쓸만한 어떤 여 건도 마련되지 않았고. 하여튼 저놈 맘에 안들어. 앞을 바로 볼줄 모른다니까. 지식이 있어 도 지혜가 없는 경우라고 할수 있을까?" 확실히 저도 '영'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로브 청년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치에는 투덜거리면서 바닥에 주저 앉았다. 여성인데 다리를 벌리고 상당히 귀여운 포즈로 주저앉아 있다. 외모는 굉장히 아름다운데 하는 짓은 애 같아서 뭔가 적응이 되질 않았다. "하여튼 이놈이나 저놈이나 무림에 있는 놈들은 마음에 드는 놈이 별로 없어. 그건 그렇고 배고프다∼ 란. 맛있는거 해줘. 아. 난 인간이 아니었지? 먹을 필요가 없나?" "하아…… 말하는게 지리멸렬이야……" 란이라 불린 로브 청년은 더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은지 한숨을 길게 토하면서 중얼거렸다. 치에는 다른건 다 좋은데 말이 꽤 많았다. 그러나 그는 입가에 미소가 도는 것은 어쩌지 못 했다. 뭐라고 해도 치에는 반려인 것이다. 어쨌든 이런 투덜거림 같은건 얼마든지 받아 줄수 있다. 다만 그녀가 좀 진지할때는 진지했 으면 하는 바람만 있을 뿐이다. 못할것도 없었지만 천성이 그런지 아니면 원래 성향을 끊어 내기가 힘든지 그녀는 굉장히 밝은 모습으로 다녔다. "아. 시작했다. 칼 부딪히는 소리 나." 봉인계의 단위로 50여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녀는. 기파동들이 부 딪히기 시작하는 것도 세세하게 느껴진다. 아니 이런 행성 전체의 범위를 탐색하는건 쉽다. 기나 마나나 에테르나 영기나 그녀에게 있어서는 손발 이하의 단순한 기관이었으니까. 차원 전체와 동화하는것도 인간이 충분한 여건 하에서 숨쉬는 것보다 더 쉽다. 그녀가 바로 아슈라스 직속 천신전대(?)의 여왕님이라 불리는 역광逆光의 치에 Lightsprite 유리안인 것이다. 극광極光의 춤을 추는 자라고도 하지만 그녀의 무기는 여왕님 답게 채찍. 역광편逆光鞭이었다. 실제로 극광 같은 빛을 내기도 하는 채찍. 길이는 물론 자유자재로 내 면의 검과 같다고 할수 있었다. "또 힘도 없는 자들을 죽이는 건가요." "뭐 어때? 저번에 건드린 놈들 하는 짓 봐. 내가 뭐 지네들 정도의 유력한 가문 같은 데와 연도 없으니까 바로 깔짝거리는거. 게다가 그놈들이 힘이 없어? 무고한 작자들 칼질하고 다 니는 것도 힘이 없는건가? 뭐 그 '무고한 작자'들도 그놈이 그놈이지만." 빛을 상징하는 자 치곤 꽤 냉소적이지만 어차피 인간도 아니거니와 인간의 윤리에 맞추어 사는 신이 있다면 그게 신기하다. 미쳤거나 아니면 유희를 즐기는 거겠지. 어쨌든 란은 별로 탐탁치 않았다. 그는 어둠을 상징하는 융암融暗의 란 Darkmist 크룬. 심연의 암흑暗黑으로 가라앉는 자라고는 하지만 성격은 부드러웠다. 어둠 치곤 온화하고 밝은 편으로 오히려 자리를 바꾸는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지만 어둠 이 안식을 주듯 그 온화한 분위기는 잘 어울렸다. 게다가 미인이니 더 할 나름도 없었다. 어 쨌든 란은 온화한 목소리였지만 들려오는 소리를 구별해나가며 멀리서 함성, 욕설과 함께 검기, 검강등을 날리며 싸우고 있는 소리로 그 영역을 한정했다. "빨리 가서 살펴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뭐 어때? 이렇게 되건 저렇게 되건." "그분이 곤란해지신다고요." "하. 곤란? 세상 어느 누가 있어 감히 그분을 곤란하게 만들수 있지?" 치에는 귀찮다는듯 그렇게 말했지만 곧 오른손에서 길이가 3장에 달하는 길디 긴 채찍을 펼 쳤다. 가늘긴 했지만 순백색으로 불타오르는 듯한 잔영이 남는 기묘한 물건이었다. 가죽이 아닌 것 같은 재질. 순간 그냥 일반 가죽채찍이나 다를바 없는 모양새였던 그것의 표면에 마치 오로라 같은 빛의 비늘이 일어섰다. 쇠붙이 같은 질감이 나는 그것들이 역순과 정순으로 자연히 변하며 일어섰다 가라앉는 모습 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캣 오 나인 테일Cat' o Nine Tail이라 끝이 갈라져 있 었다. 끝이 갈라진 부분엔 얇고 긴 칼날들이 여러가지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데다가 아홉가 닥 끝에 정釘 비슷한 철추 같은 것도 달려 있었다. 이런 걸 맞았다간…… 죽는다. 아니 죽지 않아도 죽고 싶을만큼 아프다. 효율의 극을 자랑하 고 있지만 의외로 외형 역시 화려하고 깨끗했다. 역시 빛깔 때문인가! 보석으로 만들어 진 듯한 영롱한 빛무리가 머무르고 있는 채찍. 이것도 내면의 검의 변형이라 형태를 바꾸는 것 쯤이야 쉬웠다. 란은 이 무기를 보고 한숨을 토했다. 그러더니 자기는 대겸大鎌(커다란 낫)을 소환하는게 아닌가! 더 무식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니었다. 낫은 원래 사슬낫도 비효율적인 무기다. 물론 괴이독랄한 술수를 쓸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새까만 흑색의 대와 은빛이 도는 흑색의 날이 아름답긴 했지만 대 길이만 1장에 가까운데다가 날이 삐쳐 나온 것도 3척에 달한 무식하기 짝이없는 낫이었다. "그런걸 쓰는 주제에 내 우아한 무기를 보고 한숨을 흘려? 괘씸해 란." "……글쎄요." 순간 대겸의 날이 달린 부분이 철컥 하는 소리를 내더니 위로 접혀졌다. 일반 낫 형태의 날 형이 예리하게 좌 우로 벌어지더니 안에서 어둠의 안개 같은 것이 치솟아 올라 결합되었다. 그러고 보니 매우 훌륭한 참마도가 된것이 아닌가? 사람과 말쯤은 가볍게 한꺼번에 썰어버 리기에 충분한 무식한 무기였다. 이것도 중병이다. 란은 그것엔 아랑곳하지 않고 창을 바닥에 살짝 내렸다. 그리고 옆구리에 대를 끼고는 가볍 게 공간 자체를 꼬았다가 퉁겨내며 그 탄력으로 쏘아져 나가며 기와 마나를 이용해 속도를 증가시켜나갔다. 치에는 채찍을 나선형으로 감아 올리더니 마치 랜스Lance 같은 형태로 만 들고는 랜스 차지 하는 자세로 똑같이 쏘아져 나갔다. ……그런데 대체 왜 그런 불필요한 자세는 잡는 것일까? 의문만 남기고 둘은 완전히 자리에 서 사라졌다. 비명이 터져나오는 장소로 움직인 것이다. 다시 1주일이 흐르고 나서 대치는 끝나고 싸움은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그다지 좋지 않은 이유였다. 천류세가나 무림맹은 물자를 소모하기에 바빴고 산 발적인 전투 끝에 먼저 싸움을 시작한 것은 무림맹이었다. 그들이 사용한 것은 화약이었다. 산발적인 전투 곳곳에서 함정을 파고 화약을 쓰기 시작했기에 천류세가는 그들의 본진에 암 살대를 이용해 잠입. 대량의 화약을 쏟아부어 많은 무인을 폭사시켜버렸다. 둘 모두 치사의 극을 향해 기어 오르기를 주저치 않았기에 이제는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으 려 했던 보급대를 습격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고 보급대가 먼저 끊긴 것은 무림맹이었다. 마 교가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끌고 온 부대는 보급대를 교란하고 물자를 불태 우는 방식으로 무림맹의 후위를 교란했다. 덕분에 무림맹에서는 뒤쪽으로 전력을 분산시키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쓸수 없었다. 가 뜩이나 6천 이상의 무인들이 천망봉 방향으로 떠나버려서 소식두절까지 되어버렸기에 그들 은 1주일이 흐르고 날이 밝자 마자 총력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무림맹은 부대를 반으로 나 누기 전 고수들을 이용해 마교를 파상적인 습격으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마교의 부대가 상당한 재미를 보며 무림맹이 천류세가에 신경 쓰고 있다고 안심한 탓에 그 들은 너무 쉽게 계책에 걸려든 것이다. 앞으로 쓸 폭약을 제외한 진천뢰 상당부분을 마교를 습격하는데 사용하고 약간 처지는 고수들을 이용해서 그들을 유린한다. 수뇌부들은 직접 그 들을 휩쓸고 나서 바로 다시 천류세가를 습격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새벽에 너무나도 빨리 이루어졌고 천류세가는 일어나 경계하고 있기는 했 지만 마교를 구하는데는 실패했다. 영이나 운의 입장으로써도 저 굼뜬 놈들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줄은 몰랐던 것이다. 천류세가에서도 수작을 부리고 있었기에 운과 영은 서로 떨어져 팔검위를 나누어 영은 전장으로, 운은 천망봉으로 향했다. 무림맹 세력의 2할 이상이 천망봉에 존재했으니 그것을 격파하기 위해서는 운이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상당히 죽어나가있다고 해도 바로 전장을 향해 내려와 천류세가 의 옆구리를 찌르게 되면 그들로써는 골치가 아프게 되니까. 촉수가 끔찍하게 많은 괴물의 몸통을 가지게 된 기분으로 무림맹의 수뇌부와 천류세가의 수 뇌부들은 골치를 썩이고 있었다. 어쨌든 이미 싸움에 불은 붙었고, 험악하지만 의외로 사상 자는 그다지 많지 않은 정면전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일반 군대 이야기다. 무림인들 은 갑옷도 뭣도 없었고 무엇보다 전부 방어력보다 공격력이 훨씬 큰 것이다. 게다가 신법이 빠르기 포위섬멸이나 추격전보다는 일반 정면전에서 훨씬 많은 사상자가 났 다. 이곳에 모인 모든 무인이 적어도 검기를 다룰수 있는 무인들이라는 것도 그에 한몫 했 지만. 아무리 최저의 무인이라도 아스타르의 소드 익스퍼트 하급 정도는 되었기 때문이다. 소드 익스퍼트와 마스터의 수에 있어서는 동대륙이 훨씬 우위인 것이다. 몸을 뺄줄 모르는 무식한 무인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그나마 상당히 영리한 축에 속하는 영 은 괴로움을 맛보고 있었다. 이 짜증나는 마초맨들을 제어하기도 골치아픈 일이다. 그러면서 도 나가서 싸워야 하다니…… 영은 이미 두 시진이나 검을 휘두르고 기를 발출하고 있었다. 4시간이나 기를 발하고 검을 휘둘러 댔기에 영도 조금이지만 피곤을 느끼고 있었다. 하물며 다른 이들은 어떻겠는가? 이 미 수많은 자들의 시신들 탓에 발 디딜데가 없을 지경이었다. 참혹한 현장이랄까? '전쟁인가! 그러나 살아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 뭐가 생이 끓어오르는 공간이냐 이 미친 작자들아!' 영은 속으로는 말잘하는 작자들을 욕했지만 이를 악물며 일루미네이션의 능력을 이용해서 파동, 굴절 등을 이용해 광량, 열량, 물리력만을 늘리고 속력을 줄인 광파를 날려보냈다. 물 론 그정도만으로도 벼락만큼이나 빨랐으니…… 위력도 굉장한 것이었고 그에 달려든 무인들 은 순식간에 죽어나갔다. 영이 사방팔방을 휘저으며 적의 수뇌부를 찾고 있었다. '어째서 소모전을 하려는 걸까.' 진각. 그리고 검을 길게 내리 그으며 심형어검강을 뿜어낸다. 살이 물 베이듯 갈려 나가며 그 안에서 붉은 운무가 치솟는다. 사람을 베면서 날이 상하는건 피 때문이 아니다. 기름 때 문이다. 지방 같은 것들이 검에 묻어나며 무뎌지는 것이다. 영의 쾌검은 빨라서 그런게 묻을 수도 없었지만 검에 강기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칼바람이 난무하고 검기, 도기, 검강, 도강이 뿜어지고 창의 날카로움이 사방에서 번뜩인 다. 무림인들은 욕설을 토해내곤 했지만 병사들이 싸우는 것보단 훨씬 조용했다. 오십보 백보 였지만 말이다. 영은 헛점을 파고들어 검을 내리 긋고 환월무를 가끔 쓰면서 반각도 안되어 서 백여명의 무림인을 순식간에 베어냈다. 정말 인간 같지 않은 영의 신위에 영 주변의 모든 이들은 주춤거리고 있었다. 군소방파의 머저리들과 상대하는데 영이 나서는건 비효율적인 짓이었지만 일단 수천, 수만이 부딪히는 곳으로 가르고 지나가다 보면 놈들을 찾을수 있다. 명령 체계, 눈빛, 동작, 그리고 전달되는 명령들. 영은 그것을 눈여겨 보면서 어풍비행술로 날아올라 융단폭격하는 기분으로 날아오는 검강이나 검기들을 무시하며 아래로 광폭하게 요 동치는 금빛의 용들을 풀었다. 금강폭열공. 금빛의 소용돌이를 몸에서 일으키고 있는 길다란 신룡들이 강기의 비늘을 세우며 무인들을 가르고 지나가며 대지와 부딪히고, 그 강맹한 기운에 대지는 폭발하며 먼지를 토해냈다. 비 명이 울려 퍼진다. 자신의 성명절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기술을 날아오르며 써 제꼈으 니 아마 올 사람은 쉽게 끼어들 것이다. 영은 냉소하며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날아오는 암기들은 검이 일으킨 기류만으로도 휘말려 퍼석퍼석 깨어져 나갔고 영은 재차 허공에서 몸을 비틀면서 검을 내리 그었다. 검에서 빛이 난무하며 쏘아져 내려간다. 하늘은 결코 상쾌하지 않았다. 피비린내가 나니까. "간다." 영은 정신을 집중해 손을 아래로 내리 그었다. 손바닥을 편 채로. 염동력이 발동되며 공기를 한가득 압축해버렸다. 그리고 몇몇 무림인들이 견디지 못하고 전신이 파열되며 무너졌다. 심 장을 쥐어짜고 내리 찍는다. 전신을 기로 감아 두를수 있는 자들은 염을 흐트러뜨릴수 있기 에 내부장기를 파괴할수가 없었다. "다시!" 영은 손을 내리 그으며 중력을 증대 시키는 것처럼 위에서 물리력의 장막을 퍼부었다. 강기 마저 사그라 뜨릴 정도로 강력하기 짝이없는 무게가 아래에 있는 자들을 짓눌렀다. 전신이 터져나가며 죽는 모습이 참혹하기 그지 없다. 영은 이제 아예 레비테이션의 능력으로 날아 오르면서 조용히 기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청심문의 비전비의중 하나를 시전해서 장심 바깥으로 기운을 응축시키며 계속 원형의 흐름 을 그려 강기를 응축시킨다. 그의 손바닥에서 점점 핏빛과 금빛이 뒤섞인 소용돌이가 커지 기 시작했다. 수많은 대류를 몸에 가둔 것 같은 핏빛과 금빛을 머금은 거대한 구슬이 뭉치 기 시작했다. 강탄剛彈인 것이다. 그것도 폭뢰강기를 실어 넣은 강탄. 아마 대 폭발이 일어날 것이다. 그 런데 그때 어마어마한 기력의 흐름이 그를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영은 주저없이 강탄을 나눠서 강기의 소용돌이로 바꾸며 그 예리한 기운만으로도 절명해버릴 것 같은 날카로움의 파도를 향해 쏘아 붙였다. 그르르르 짐승이 숨죽여 으르렁 거리는 듯한 소리가 나며 강기류에 그 날카로운 강기의 파도가 말려 들었고, 곧 상쇄되어버렸다. 폭발은 없었다. 영은 레비테이션으로 몸을 공중에 고정한채 기 를 빠르게 전신에 순환시켜 주변의 기력을 끌어들였다. 상당량의 기력을 끌어들이며 소모된 공력을 보충했지만 이번엔 두개의 검이 심형이기어검강으로 날아든다. "천산검주가 왔나? 어차피 질텐데 무슨 꿍꿍이로?" 영은 상당히 방심하고 있었지만 그와 천산검주의 실력차는 현격하다. 그가 장난처럼 염동이 나 몇가지 기술을 더해서 공격하기만 해도 쉽게 죽일수 있다. 비록 파이로키네시스 같은 것 은 쓸수 없다지만 그는 사이킥 만으로도 천산검주와 싸울수 있는 몸인 것이다. 하물며 지금 손에 들린 실버 블릿츠까지 더하면…… "음? 이거 상당히 많이 온 모양인데?" 동시다발적으로 느껴지는 기운들. 대부분 다 화경에 속해 있는 자들 뿐이었다. 그런데 왜 인 지 몰라도 숫자가 상당히 적다고 느껴졌다. 어째서…… 보나마나 화경의 고수들은 다 이곳 에 남아 있을 것이다. 운은 아무리 화경이 아니더라도 그 검위들 전부가 싸우면 화경 중반의 고수 하나쯤은 어떻 게든 상대할수 있는 자들을 데리고 갔기 때문에 자신들은 화경의 고수들만을 데리고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별로 쓸모가 없었기에 밀리는 곳에 전부 보내버렸지만. 그런놈들 죽어봐야 얼마든지 다시 몇몇 교육할수 있다. 시간이 꽤 걸리지만…… "설마. 그럴리가?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이놈들이……" 그럴리가 없다. 화경의 고수를 산 방향으로 보낼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이 없어도 그렇게 멍청하게 굴었다간 죽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 화경의 고수가 하나라도 더 있어야 자신을 붙들어 두거 나 죽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올라가니까. 게다가 이곳엔 화경의 검위들도 있고. 그런데 왜 이렇게들 늦게 하나하나씩 등장하는 것일까? 운은 산 방향으로 빠져나간 떨거지들을 온갖 기관들을 대량으로 설치한(몰래 설치하기가 정 말 힘들었다. 다행인 것은 교룡평 근방은 분지였고 재료를 나르는 것이 힘들었지만 부러 몇 가지 사업을 벌이며 날랐다) 분혼동에서 공격당한 뒤에 간신히 빠져나온 자들도 운의 손에 죽음을 맞을 것이다. 거의 8천에 달하는 자들이 분혼동으로 갔고 지금에 있어서 살아남은 자들은 아무도 없을 것 이다. 이쪽에서는 거의 끌고가지 않았지만 기관장치는 많은 무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을 것이고 운이 검위들까지 끌고 마무리를…… 이쪽에서도 화경을 보낼 이유는 없지만 운 정도 는 보내도 괜찮다. 운은 물론 강하지만 자신이 그 자리를 충분히 메꿀수 있는 것이다. "……설마?" 숫자가 부족했다. 서둘러 기력의 장막을 퍼뜨려서 검위들을 찾아보았지만 찾을수 없었다. 설 마 그 사이에 전부 죽일수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설마 독을 썼을까? 전장에서는 쓰기 힘 들지만 어떻게든 능력자들을 배분하면 성공할수도 있다. 그러나 화경의 고수가 기척을 눈치 채지 못할리는…… "……미친놈들! 화경의 고수로 암습을 했단 말인가?" 영은 이를 갈며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분산시켜버린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에 이를 갈았다. 하지만 어쨌든 이 자리에서 저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면. 암살자로써 돌아가서 죽여버리면 손해는 없어진다. 어쨌든 아무리 암습을 해도 팔검위들이 호락호락 당할리는 없 었고 죽은 화경 고수도 꽤 될 것이다. '그거면 됐다!' 영은 눈을 치켜뜨며 대자연에 퍼져있는 웅후한 기력들을 운용하고, 자신의 몸에 잠들어 있 는 강맹한 기운 역시 한계까지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대기와 대지가 떨어 울리며 그 위세에 기겁했다. 영은 살기의 소용돌이를 뿜어내며 은뢰를 들어 올렸다. 은뢰에는 어느새 심형어검 강에 폭뢰강기가 깃들어 가고 있었다. '분리해놓은 별동대들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할수 있겠지!' 영의 눈이 무섭도록 강한 기운을 머금고 싸늘한 은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은색의 벼 락과 은색의 불꽃을 뿜어낼수 있는 자신의 특이한 힘 역시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영은 분리해서 불상사를 대비하고 있는 3천의 별동대를 믿고 싸움에 전념하기로 했지만 그것이 바로 그의 실수였다. 왜냐하면 별동대는 지금 완전히 말살되고 있었으니까…… 하늘에 보이는 작은 인영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기의 빛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경공 을 시전해 절벽에 올라보기도 하고 움직이면서 무림맹의 도망쳐 나온 잔당들이나 숨어있는 자들을 처리하면서 상황을 살피고 있는 일당들. 바로 영이 분리해 내 놓은 제 1별동대였다. 별동대중 첫번째이지만 세 부대의 별동대 모두 그 무력에서는 별로 차이가 없었다. 제 1별동대의 조장인 유한宥閑은 여러가지 파발이나 소식, 그리고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광 경들에서 상황이 꽤나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둑을 둘때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대단한 수를 볼수 있는 것처럼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기는 힘들었어도 훨씬 명료하 게 볼 수 있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정확하진 않아도 지금의 상황은 너무나 뻔했기 에 옆에서 봐도 파악하기 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소위 무인이라고 하는 놈들이……" 유한은 분노하고 있었다. 고수라고 하는 놈들이 그따위로 굴 줄이야. 솔직히 영의 판단은 무리 없는 것이었다. 자신 때문에라도 수뇌부들은 모여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놈들이 천산파의 여러 무인들까지 더 해서 3인 1조로 움직여 팔검위들을 암습하리라고는. 현경의 고수도 조금 힘들것 같은 극독 을 바른 단검과 암기들을 이용하는 싸움. 일단 같은 화경의 고수가 싸우며 사력을 다해 그를 묶는다. 그리고 거의 화경이거나 같은 화경의 고수가 단검을 이용해 일부러 실패하듯 암습을 한다. 여기서 죽일수 있으면 죽인다. 여기서 화경이 아닌 고수가 암기를 날려서 소모된 기력으로 빌빌거리는 무인의 몸에 독 바 른 암기를 꽂아넣는다. 실패해도 2인의 고수들이 싸워 죽일수 있다. 장점은 공력의 소모가 적어지게 되고 피로도가 줄어서 내상을 회복하게 해주는 영약을 복용 하고 한명이 약간의 남은 시간동안 운공조식을 하여 공력을 상당부분 보충할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그에 비해 단점은 만약 천하에 알려지면 무림맹은 핍박을 받게 될 거라는 것. 하지 만 그래봤자 그정도다. 이곳은 전장이라 증거 은폐가 알아서 될 정도인 것이다. "그 팔검위가 모두 쓰러지다니……" 혹독한 훈련과 영약의 복용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무인들의 꿈은 강해지는 것. 아무리 연산 능력과 지휘 능력이 특출나서 발탁된 이라도 유한 역시 무인이었고 그의 꿈도 강해진다는 범주에서는 별로 벗어나지 않았다. 유한은 감상을 던져버리고 움직이기로 마음 먹었다. 일단 1별동대는 일이 터진다면 바로 천 망봉으로 달려가게 된다. 지금 그곳 상황도 최악에 달해 있었다. 그들의 가주가 위험에 빠질 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천망봉 제 2로로 움직인다. 천망봉 아래 제 4구역으로 신속히 이동한다. 신법을 최대한 빠 르게 펼치되 공력의 상당 부분은 남기도록." 그 말을 남기기가 무섭게 유한은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1천명에 달하는 숫자의 별동대는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제 2 별동대와 제 3 별동대도 굉장한 스피 드로 전장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겐 죽음이 닥친 것이다. 천망봉 제 2로 앞에 있는 절벽에 향 하나 타들어갈 시간도 안되어서 도달한 유한은 문득 하 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벼락의 창들을 보고 대경해서 소리쳤다. "피해랏!" 이번에 무림맹에서는 개인용으로 고폭약 덩어리들을 무인들에게 잔뜩 지급했고 필요하면 사 용하라 말했다. 천류세가 측에서 몇번 그들이 잠들어 있는 지역에 폭약을 잔뜩 뿌리고 갔던 것에 분노했던듯 그들 역시 동귀어진 식으로 폭약을 써댔던 것이다. 덕분에 천류세가도 상 당히 밀리고 있었다. 그는 그래서 이것이 신종 폭약이라고 생각했다. 새하얗게 불타오르는 전광이 쏟아져 내려 콰릉 하는 소리를 내었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폭 발이 일어나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정말로 벼락이었다. 직경이 1m는 되는 벼락은 끔 찍하게 빨랐고 직격당했거나 스쳤거나 일단 맞은 검수들은 모두 죽음을 맞았다. 재가 되었 으니 살아남을리가 없었다. 그때 위에서 맑지만 살벌한 목소리가 들렸다. "흐응. 아저씨들. 이런 미인이 이렇게 마중나와 기다리고 있는데 그냥 가면 안되지!" 싸늘하기 그지 없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높이 5장의 절벽 위에서 사뿐하게 날아내리 고 있는 그녀는…… 은색과 옥색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아름답게 보이는 머리카락을 나부끼 며 떨어져 내려 섭선을 펴 드는 봉황포의 그녀는. 이즈 T 슬레이드였다. 이제부터 검수들에게 사신이 되어줄 사람이기도 했다. 아니, 사람은 아닌가? 그녀는 섭선을 들어 가볍게 접었다. 찰칵 하고 맞물린 섭선의 끝으로 벼락이 일렁이며 레이 피어 처럼 길게 뻗어나왔다. 그러나 그 길이는 상당히 길어서 거의 1장에 달해 있었다. 얇지 만 긴 벼락의 흐름이 꾸르르르 하고 울리고 있는 기괴한 무기. 유한은 그 경악스러운 외모에 혼이 나가는 것을 느꼈다. 여자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미녀라 도 그의 마음을 흔들수가 없었지만 이번 경우는 미모와 더불어 그녀의 신성神性이 함께 작 용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며 기를 끌어올려 전신에 휘돌리며 외쳤다. 가주를 생각하자 이러고 있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쳐랏!" 대갈 일성에는 강맹하고 맑은 기운이 서려 있었고 그녀에게 넋을 빼고 있던 자들도 고련을 거친 무인들이라 금방 깨어났다. 그녀가 신성을 다 발휘하지 않고 아주 조금, 극소량 뿜어냈 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치라니? 이런 미녀를 상대로? 정말 매너가 없다니까. 그럼 벌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 그녀는 가볍게 섭선을 휘둘렀고, 순간 지옥이 시작되었다. 숨이 막혀오는 벼락의 위세는 퍼 져 나가 모든 무인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비명이 터지면서 살아남은 자들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벼락을 거둔 이즈는 은옥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맑은 옥 빛의 홍채가 예리하게 번뜩였다. "쉽긴 쉽군. 인간 같은걸 죽이는건." 그녀의 몸으로 푸른 오러가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그것이 눈부신 백색으로 물든 순간 사방을 벼락의 파도가 뒤덮었다. 폭발도 없이 모든것을 분쇄해버리는 벼락. 모든 물질들은 쉴새없는 전위의 변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사사사삿 제 2 별동대는 모두 집결되어 있어 아무도 없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 교룡평 중심으로 가는 곳에는 절벽이 가로 막고 있었다. 그들은 빠르게 달려 절벽에서 벗어 나려 했다. 아니 했었다. 빛의 선들이 피릭거리는 파공음을 내며 떨어져 내리기 전까지는 그 렇게 시도를 할 수라도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말은 필요가 없다. 아니 무인들은 대부분 기마전보다는 무공을 수련하는데 주력하 는데다가 단거리에서 말은 필요 없다. 공력이 소모된다고 해도 말보다 신법을 시전하는게 훨씬 빠르고 경제적이다. 말은 이래저래 신경을 써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맨몸으로 가뿐한 차림을 하고 달리고 있었다.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는 그들의 위로, 문득 새하얀 빛살이 날아들었다. 퍼어억 살점이 튀어오르고 뇌수와 골편이 휘날았다. 머리가 깨어진 무인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며 쓰러졌고 모두는 대경하여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은백색의 머리카락. 스 타 다이아 같은 홍채에 순백색 눈동자. 차가운 빛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빛은 차갑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는 순간에도. 날카로운 느낌은 없고 오로지 장난기 뿐이다. 쾌활하고 밝아보이는 인상에다가 깨끗한 순백색의 코트를 걸친 여성이 당당하게 그들을 내 려다 보고 있었다. 그녀는 절벽의 손상된 부분에 얇고 가녀려 보이는 손가락을 박아넣은채 몸을 고정하고 있었다. 오른손에 쥐어진 흉험해 보이는 채찍은 춤을 추며 파공음을 냈다. 그 녀는 의외로 별 말 없이 오른손을 강하게 떨쳤다. 피리리릭 피리리릭! 퍼퍼퍼퍼퍽! 채찍이 움직일때마다 적赤, 청靑, 황黃, 백白, 자紫, 주朱, 녹綠. 그 외 수많은 색들이 환상 처럼 일어났다. 그런 현란하고 아름다운 색깔은 저리 제쳐두고 봐도 저 채찍의 속력, 파괴 력, 물리력, 반탄력 등은 정말 무시할수가 없었다. 어느새 한가닥으로 합쳐진 캣 오 나인 테일은 그 추가 합쳐지자 마자 꽤 두터운 쇠 정으로 변했다. 그것은 예리하게 뻗어나가 한 검수의 목에 꽂혀들어갔다. 그의 목에 파고든 정은 갈 고리 형태로 바뀌었다. 그리고 채찍이 한번 릴렉스하게 출렁인 순간 사내의 몸이 함께 튕겨 나가 음속의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 조각 하나하나가 또 흉기였다. 파파파팟 하고 터져나가는 파편들은 거의 음속에 도달해 있었고 알 수 없는 힘이 묻어있었기에 그것은 타들어가지도 않았다. 다만 은은한 빛무리를 머금고 튀어나가 검수들을 덮쳤을 뿐. 채찍은 무거운 파괴력과 빠른 속력, 민활함, 부드러움, 강함 등을 모두 지니고 있었고 가볍 게 출렁였다고 생각하면 검 위로 드드드득 하고 연속 작렬하여 삽시간에 깨어버린다. 순간 채찍의 비늘이 확 일어나면서 사람의 몸을 후려 갈기면 폭발이 일어나며 너덜너덜한 사체가 떨어졌다. 저런 흉기를 음속으로 휘둘러대면서 자유자재로 릴렉스하게 움직이며 사람을 후려 친다는것 은 사람 죽으라고 하는 짓이다. 그러나 공격에는 살의라고는 한점도 없었다. 벌레 쳐죽이는 듯 죽인다는 생각도 없는 듯 채찍은 무심하게, 그러나 생동감 있게 움직였다. 검기도, 검강도 먹히지 않는다. 검술을 쓸수 없는 대상. 신법도 무의미하다. 그렇게 고련을 거듭했던 무술은 먹히지 않았다. 한번 몸을 휘감은 채찍을 검으로 치려고 해도 바로 채찍의 비늘이 일어나서 기운을 뿜어내 면 심장까지 빛이 파고들어 폭발시킨다. 역광의 채찍은 미친듯이 폭풍을 몸에 휘감고 뻗어 나가 찌르고 베고 가르고 후려치고 파괴했다. 채찍이 멎어 다시 원뿔 형태로 휘말려 올라갔 을때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채찍을 다시 내면으로 되돌렸다. 빛으로 변한 채찍이 사라지자 그녀는 한숨을 후 하 고 토해냈다. 그리고 절벽에서 사뿐하게 내려와 바닥에 착지했다. 놀랍게도 떨어지는데 속도 는 전혀 가속되지 않았다. 바닥에 착지한 그녀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다가 녹아들어가듯 허 공중으로 사라져버렸다. 란은 포효와 함께 달려드는 검수의 검을 발로 차내버렸다. 끓어오르는 검기가 담겨있는 검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길질 한방에 쳐내어진 것이다. 정말 어른과 아이가 싸우는 것 처럼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는 참마도로 그를 베어냈다. 참마도가 어둠의 입자 같은 것을 휘날리며 멋지게 그어지면 상하로 몸이 나뉜다. 참마도는 어느새 다시 무기를 낫의 형태로 바꾸고 있었다. 낫으로 바뀐 융암의 겸鎌은 소리 없이 다시 달려드는 무인의 검과 몸을 함께 꿰어버렸다. 검과 함께 생을 마친 상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죽었다. 끓어오르는 어둠이 상대의 몸을 깔끔하게 녹여버렸다. 치에가 채찍을 이용해 드드득 하고 연타를 하면 오체분시되면서 피가 터지는데 비해 그는 뒷처리까지 깔끔했다. 온화한 목소리와 웃음은 입가에 보이지만 로브를 눌러써서 보이지 않 는다. 그는 겸을 다시 내면으로 되돌렸다. 사신의 낫이라고나 할까? 로브를 눌러 쓴 모습은 분위기만 제하고는 딱 사신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무기가 사라지자 남은 십여명의 무인들은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치에가 채 찍을 이용해 천명을 순식간에 학살했다면 그는 어둠을 이용해 주변에 장막을 친 채로 싸우 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의 장막 내부에는 놀랍게도 빛이 존재했기에 무인들은 아쉬움 없이 자신의 무공을 다 펼쳐내고 죽음을 맞았다. 덕분에 란이 제일 오래 걸려 무인들을 처리하게 됐다. 란은 주먹을 가볍게 쥐었고 순간 그 곳에서 어둠의 칼날이 뻗어나왔다. 시미터 같은 칼을 쥔 란은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며 하나 하나 깨끗하게 목을 떨구어냈다. 그 스피드, 검의 궤적, 알맞은 힘의 배분, 동작의 밸런스 등등 검술의 극을 보는 것 같은 움 직임은 아스타르의 단순한 검술과 비슷했지만 검은 한점에서 자유롭게 모든 방위로 폭발해 나가는 듯 하면서도 매끄러운 궤도로 그어지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상대의 몸을 대각선으 로 베어낸다음 어둠의 칼날을 거두었다. "이걸로 할일은 끝났나……" 그들이 1천명씩을 죽이는데 소모한 시간은 길어야 3분 정도. 그나마도 조용히 처리하기 위 해 기나 마력, 에테르와 영기를 일절 쓰지 않고 싸우며 힘 역시 최소로 자제하고 그 효과도 억눌렀기 때문이다. 빛, 벼락, 어둠이 하늘로 충천하는 기술을 함부로 썼다간 스펙터클한 볼 거리가 마련되고 무인들의 눈에는 매우 잘 보이니까. 결계를 쳐도 괜찮지만, 마법적인 힘이건 기에 관계된 힘이건 결계를 친다는것 자체가 힘을 쓴다는 뜻이기도 하다. 민감한 자들은 자신들의 힘이 여러가지 힘들을 건드려 생기는 파장 을 느낄수 있었다. 결계를 치며 힘을 억제하는 신경쓰이는 일보다는 차라리 이게 나을거라 고 생각했고 그나마 최소의 최소로 억제했어도 화경 고수쯤 두셋을 죽이기에 충분한 집단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다만 란이 생성한 결계는 어떤 빛도 뿜어내지도 않거니와 자신의 힘만으로 형성한 것이었기 에 괜찮았다. 란은 어둠의 힘을 다시 회수하면서 옷을 가다듬었다. 역동적인 동작으로 마무 리를 했기 때문인지 창조술로 해 입은 옷이 꽤 흐트러져 있었다. 제초하듯 쓸어버린 이 행위는 란에게나, 치에에게나, 이즈에게나 무료하기 짝이없는 행위였 다. 움직였다고 해도 진짜 육체로 움직이며 호흡하고, 땀을 흘리고, 힘을 발하고, 인간으로 써 그 역동적인 충격, 폭발, 빛등을 경험하는 것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들의 육신에 겐 순리와 흐름 외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아. 리비도라……" 란은 중얼거리며 새하얗게 그지없는 손, 섬세한 손을 들어 꼼지락거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는 피식 웃었다. 아무리 노력 하고 해 봐야 그것을 다시 손에 넣을 수는 없을 것이 다. 영혼이 파괴되어 영격을 모두 손상하고 자아만 남아 환생을 한다면 모를까. "어쨌든 여기서 할 일은 이제 딱 하나 남았군 그래. 이제 슬슬…… 끝나가고 있잖아?" 란의 몸은 어둠처럼 올올이 풀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베고 베고 또 베고 베어낸다. 그리고 그 끝에 남은 것은 오로지 허무감! "헉…… 헉……" 영은 숨을 몰아쉬면서 검을 가볍게 내렸다. 언제까지 소모전을 펼 생각인가. 아무리 자신이 라고 진을 이용해 기의 압력을 쏟아내는 자들을 단숨에 뚫기는 힘들었다. 수많은 진법들이 자신을 공격해왔고 그때마다 그 진을 박살내는데는 힘이 잔뜩 소모되었다. 영은 잠깐의 여유를 이용해 정신력을 사용해 사이 필드를 쳤고 암기와 검기들이 사이 필드 와 부딪혀 튕겨졌다. 그러나 총탄조차 막아내는 사이 필드라고 할 지라도 검강 정도 되면 막아내기가 버거웠다. 사이킥이 없었다면 이미 쓰러져버렸을 것이다. 그정도로 영은 기를 다시 보충할 여유가 없 었다. 대충 1분 정도만이라도 여유가 생긴다면 기를 꽤 보충할수 있을텐데. 다행히 상처도 없었고 내상도 없었다. 영은 검을 가볍게 들었고 순간 은색의 검에서 벼락이 이빨을 예리하게 뻗으며 그 독아로 인 간들을 불살랐다. 그 벼락의 이빨이 주변을 할퀴어 버리고 나자 조금 여유가 생겼다. 잠깐의 휴식동안 주변에서 기력을 끌어모아 반 이상의 기력을 보충할때까지 계속 기력을 긁어 모았 다. 잠깐잠깐 사이킥을 통해 공격하는 상대들을 학살하면서. 인간들이 뒤틀리며 몸이 터져나가고 영이 주워든 돌멩이들은 공간이동해서 상대들의 몸 속 으로 사라진다. 그러면 폭발이 일어나 몸이 부서진다. 좌표가 겹치면서 소멸. 그리고 폭발이 다. 물론 이것도 저들이 호신강기는 냅다 버리고 병기에 극한까지 기를 불어넣어 절기를 펼 치고 있기 때문이다. 절기이기에 모든 방위를 다 막아내면서 몰려들지 않는다. 그 빈틈으로 염을 보내는 것이다. 이상하기 짝이없는 기술을 사용하는(그들의 입장에서) 영의 모습을 두려움에 찬 눈으로 바 라보지만 그래도 그들은 달려들었다. 왜 달려드는 걸까. 수준도 낮고 검기도 간신히 쓰는 작자들이다. 영은 세맥 하나하나까지 기 력이 웅후하게 차오르자 싸늘하게 웃었다. 그는 이렇게 달라붙는 놈들에 대해서 별로 좋은 생각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싸울만한 놈들도 아니었으니. "귀찮은 것들!" 검을 휘둘러 베어낸다. 은빛이 예리하게 퉁겨져 나가면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떨어져 나가고 심장이 파열된다. 몸을 긋고 목을 벤다. 헛점만 찾아서 검을 그어버려도 실버 블릿츠 는 기가 실리지 않은 상태에서도 기가막히게 호신강기를 뚫는다. 약한 호신강기지만 실버 블릿츠 그 자체의 영성은 그 정도는 쉽게 파해하는 것이다. 공력을 내운기경으로 운용하면서 점점 체력도 되살아나고 있었다. 영은 그때 문득 뭔가 이 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력의 흐름이 갑자기 특이하게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영은 이를 악물면서 이놈들이 왜 이런 쓰레기들을 보냈는지 깨달을수 있었다. 푸학 검빛이 일어나자 달려들던 놈들의 몸이 토막나며 피를 토했다. 단숨에 놈들을 베어 넘기고 영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서 있는 대지. 그리고 몇몇 남아있는 무인들과 함께 방원 30장이 넘는 거대한 구가 떠오르고 있었다. 기와 영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가. 이걸 왜 눈치채지 못했지? 영은 자조 하면서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소모품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서?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기력 을 보충하며 시간을 끌길 기다렸던 것이다. 기력을 보충할 동안 그들은 순식간에 진을 형성했다. 그 동안 혈천교의 영법사들은 기와 영 기를 합일해서 체내에서 움직이는 수법으로 몇가지 처리를 했고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 싼채 이런 진을 유지한다. 물론 바깥에서는 이 방원 50장은 되는 거대한 진을 유지하기 위해 영 력을 소모하고 있는 주술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겠지. 그러나 이 진의 메커니즘은 바깥에 있는 자들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이 거대한 기운의 구 를 떠올려 하늘의 기와 영기가 모이는 정점에 심어 넣는 순간 그 역할을 끝마치게 되고 그 들은 자리만 지키면 되는 것이다. 이 안쪽에서 힘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코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코어 안쪽에 놈들이 있을 것이다. "젠장…… 내가 이딴 싸구려 계략에 걸릴 줄이야. 쓰고싶지 않은 사이킥까지 써댔는데…… 이런 염병할 일이 있나." 기의 흐름이 끊겨졌다. 즉 방원 30장에 이르는 이 구 안에 존재하는 기만 흡수할수 있다는 소리다. 그 후로는 끝. 이 땅이 푹 패인 것도 결국은 마찬가지다. 저 아래로는 무려 40m 이 상 깊이의 구덩이가 파여 있을 것이다. 빠진다면 디딤대가 없을 경우 무림인이라도 죽는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죽을 판이니 그런걸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영은 이를 갈며 검을 강하게 쥐었다. 항상 소설이건 만화건 마지막엔 이따위야! "이건 소설이 아니라구!" 그는 말을 씹어뱉듯이 내 뱉고는 강맹한 기류가 모여있는 장소를 향해 달려갔다. 그 안은 또 다른 하나의 구가 존재하는 장소. 216명의 존재들이 특이한 진을 이룬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108명은 계속 운공조식을 통해 기력을 조금이나마 늘려나가려고 하는 듯 했다. 108명이 진을 구성하는…… 투명한게 아니라 빛을 은은하게 발하는데다가 시력으로는 뚫어낼수 없는 구였다. 투시력도 먹히지 않는다. 저 안쪽에 있는 구는 꽤 강력한 데다가 그 표면에 강기와 영기의 흐름이 뒤 섞이며 흐르고 있었다. 투명하긴 했지만 강맹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영은 그 216명의 주변에 존재하는 혈의를 걸친 자들을 보고 이를 갈았다. "혈천교…… 무림맹하고 합작했다더니 이런걸 준비하고 있었나?" 진의 한 가운데 존재하는 천산검주는 영을 직시하더니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어 마어마한 기력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눈으로 보이지 않았고 저 구 안쪽의 기와 영기의 흐름 은 알수가 없었다. 기와 영기를 하나로 섞어서 이런 방식의 전투를 할수 있었다니. 이런 것 도 가능했단 말인가? "혈천교는 기와 영기를 함께 수련해서 섞어 그것으로 술법을 쓴다고 하더니 사실이었나?" 영은 이를 갈았다. 자신이 죽으면 천류세가는 끝난다! 이들은 살아남을테니까. 그렇다면 이 놈들을 반드시 죽여야 하는데…… 이렇게 된 이상 어쩔수 없겠지. 결론은 싸운다는 것 뿐. 영은 결연하게 검을 들어 올리면서 자신의 검에 기력을 최대한 불어넣었다. 영은 여섯번째 검무. 무형무를 응용해서 주변의 기력과 자신의 기력을 함께 운용하며 주변 의 특수하게 기가 고인 부분을 격발시켜나가면서 거대하고 투명한 기의 화살을 형성했다. 길이 3장에 두께도 어마어마하다. 그 강맹한 기력이 순환하며 형성된 기의 화살. 영은 눈살 을 찌푸리면서 그것을 날려 보냈다. 섬전이 되어 쏘아져 나간 기의 화살은 영기의 흐름에 걸려들었고 곧 대폭발과 함께 영기와 강기의 흐름을 뒤흔들어놓았다. 안쪽에 존재하는 자들 중 108인과 남아있는 혈의를 입은 자 들 모두가 움찔 하며 입에서 피를 조금 흘렸지만 곧 다시 내력을 계속 운기하는 듯 했다. 영은 다시 기력을 끌어모아 한방을 더 준비했다. 이번엔 더 강하게! 그때 영은 천산검주가 눈을 감는 것을 보았다. 순간 그의 검에서 강맹한 기운이 피어올라 그들을 감싼 수상한 방어막을 그대로 통과해 위에 어떤 형체를 그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오오오오 그것이 완전히 형체를 이루며 거대한 날개를 펼치자 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강맹하기 짝이 없는 기운은 결코 자신의 힘에 모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붕大鵬?" 영은 곧 다시 제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피 식 웃었다. 자신의 금강폭열공에서 뿜어지는 신룡강기를 상대하기 위한 것인가? 용은 붕의 밥이라고 한다. 확실히 설화에는 그렇지! 거대한 대붕은 흐릿한 눈을 그에게 들이대고 있었다. 그 부리가 벌어지며 붕명을 일으킬때 마다 고막이 터져 나갈듯 한 압력이 밀려들었다. 정말 대단한 기운의 응집체로써 영도 저번 에 싸웠던 칠두지룡과 싸울때 형성했던 신룡강기보다 더 강맹한 것을 쓰지 않으면 단숨에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저번에는 지금에 비해 얼마 되지 않는 내력을 보충하기 위해 무리하게 주변의 내력을 끌면 서 주변에 고여있는 기혈점과 자신의 진기를 부딪혀 강제로 기운을 끓어오르게 만들어 내상 도 입었었지만 지금은 본신진기로 충분하다. "괴수대결전인가? 괴수 영화를 찍는 취미는 없는데 말이지! 70년대 특수 촬영물 같잖아!" 크기 5장에 달하는 길다란 날개와 거대한 몸통. 위협적인 발톱과 칠흙의 아름다운 깃털과 강철같은 부리. 그러나 그 형상은 완벽하지 않았다. 영의 신룡도 용과 닮았다고 해도 완벽하 게 똑같은게 아니다. 일단 강기니까. 생물이 아닌 이상 용이라는 것만 알수 있을 뿐 발톱, 여의주, 기타 등등 다 구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것이 대붕의 형상을 띄고 있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영은 조용히 검을 내렸다. 검에서 시린 은빛이 피어오르며 흔들렸지만 그는 직접 육박전으 로 상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저것과 직접 싸우는 도중에 천산검주가 암습을 가하 게 되면 그야말로 골치 아파지니까. "……도전에 응해주지! 대신에 나도 함께다!" 영의 몸에서 금빛의 기류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금빛의 기운은 고리 형태로 퍼져 나갔지만 곧 안개처럼 스멀스멀거리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 다. 아니 그래봤자 40m 정도 높이에 불과하지만 곧 그것은 그의 주변을 뒤덮으면서 어떤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끓어오르는 기류는 금색의 불꽃과 같았다. 그것은 거대한 한마리 신룡으로 변했다. 신룡의 몸에 가득한 강기의 비늘이 일어서며 마치 용이 포효하는 것 같은 기음이 울려 퍼졌다. 그 파장에 대붕 역시 강기의 마찰로 붕명과 같 은 소리를 내었다. 신룡은 강기의 비늘을 세우며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나가 붕과 격돌했다. 의형과 염을 부여 해버린 상태라 신룡이나 영기의 흐름을 받은 대붕이나 '만들어진 자아'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정말 미친듯이 싸우기 시작했다. 파파파팟 금색의 빛무리와 흑색의 빛무리가 난무했다. 강기의 비늘과 강기의 깃털이 날아다니기 시작 한 것이다. 그러나 영은 이런 여파에 다칠 정도로 약하지 않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실버 블릿츠가 아닌 한자루의 검을 꺼냈다. 그리고 그 검으로 심형이기어검강을 시전해서 그대로 대붕을 향해 날려보냈다. 길게 찌르고, 회전해서 베어내는 것이다. 대붕과 부딪히기 시작한 신룡 탓에 어마어마한 기폭풍이 일어났지만 그 기폭풍 자체를 끌어 들이며 영은 몸 주변에 무형의 바람을 강하게 일으키고 있었다. 무형의 바람은 빠르게 가속 화 하며 톱니처럼 끌어올려진 흙과 모래등을 휘말아 올렸다. 천산검주는 불타오르는 듯한 검을 결계 바깥으로 끄집어 냈다. 놀랍게도 그의 검 역시 심형 이기어검강으로 불타오르면서 영의 다른 검과 부딪히기 시작했고 곧 두가지 싸움에 신경쓰 느라 영이나 천산검주나 이를 악물었다. 안쪽에 있는 다른 자들은 결계, 진의 유지와 힘의 공급에 쓰러질것 같았지만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지금 저 대붕 형태를 한 강기나 심형이기어검강 모두 그들의 몸에서 기를 끌어내 영기와 기를 합쳐놓은 진이 천산검주의 몸에 공급하고 있는 기운으로 시전된 것이다. 천산검주는 싸우면서 전신에 흘러들어오는 어마어마한 기를 제어하기 위해 고생이었지만 그 들 역시 내력을 운용하면서 동시에 부어 넣는 일을 해야 했다. 그들도 천산검주나 영처럼 내력을 다스리느라 죽을 맛인 것이다. '제기랄. 정말 끔찍하게 비현실적이군!' 영은 욕을 하며 이 한정 공간에 남아있는 기운들이 미쳐 날뛰는 것에 동조하며 제어해 나갔 다. 미쳐버린 기의 바람은 영이 무형무의 이치에 모든 '검무'를 더해나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독립된 것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영도 괴로운 일이라 그의 입가에도 피가 내비치고 있었다. 점점 그것은 굵어지고 있었다. '실패하면 끝이다.' 영은 아예 실버 블릿츠에 염을 보냈고 실버 블릿츠는 곧 그 기폭풍에 잠겨들며 은색의 벼락 과 은색의 불꽃을 머금으며 하나의 거대한 투창이 되었다. 얄팍한 기술의 운용이고 뭐고 다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강기는 측면에서 부딪혀 봐야 어차피 강기이니까. 사람의 육신과 육신이 충격파를 감당하며 싸우는 검의 부딪힘이라면 초식이 중요하지만 이 무식하기 짝이없는 힘의 대결에 서는. 오조리 끓어오르는 내력의 제어 외에 중요한게 없었다. 강대한 힘의 보충과 강기의 효 율적 발출…… 그것 외에는 답이 없다. 무형무에 풍천무와 천신무가 더해지고 파천무와 뇌운무, 오행무까지 더해지자 마자 이 공간 의 기는 텅 비어버렸다. 기를 한계까지 긁어 모으고 몸 안의 기력을 극한까지 불어넣는다. 2 갑자 정도의 기력을 남겨두긴 했지만…… 자신의 영혼이 지니고 있는 본원의 힘. 즉 은뢰와 은염의 소모도 심하고 이래저래 힘은 모 자라고 정신력 소모도 큰 데다가 육신 역시 대단한 부담을 안고 있다. 즉 죽을 지경으로 괴 롭다. 정신과 육신, 영혼 모두 한계를 부르짖고 있었다. '제길…… 현경의 끝에 이른 내가 이렇게 공격력이 약할줄이야!' 영은 이를 악물며 사이킥을 시전해서 이제 총 다섯개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신룡강기의 제어, 검의 제어, 기폭풍의 제어, 실버 블릿츠의 기운 제어, 그리고 사이킥 사 용. 영은 이제 여섯장의 검무를 모두 하나로 합일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내상은 더 심해져 가 고 있었고 영은 덕분에 입가에 피를 흘리게 됐다. 그 어마어마한 기폭풍을 실버 블릿츠에 실어넣기 시작하자 하나의 작업을 끝 마침으로써 조 금의 여유를 되찾았다. 실버 블릿츠는 이제 아예 은백색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불꽃과 벼 락이 거대한 하나의 송곳이 되었다. 기는 점점 빨려들어가 실버 블릿츠로 갈무리되었고 영이 지금 낼수 있는 모든 기운들이 다 모여든 실버 블릿츠는 길이 5장의 거대한 은색 창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결계를 향해 파고들어갔다. 소리도 없었지만 그 파괴력은 정말 굉장한 것이다. 영은 신룡을 불러들였다. 신룡은 약해져 있었지만 대붕의 동체에 치명타를 입히는데 성공해 있었다. 천산검주나 안쪽의 모든 이들은 밀고 당기고 부딪히는 기 탓에 피를 왈칵 왈칵 게 워내고 있었다. 내력이 부족해졌기 때문에 대기하고 있던 두번째 조는 1번조의 사람들 등에 손을 얹고 기를 극한까지 불어넣고 있었다. 기운은 대량으로 천산검주에게 흘러갔지만 천산검주는 기의 소 모를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 영의 검과 천산검주의 검은 제어에 의해 대량의 기를 소모하며 부딪히고 또 부딪히고 있었 다. 폭발과 폭발. 더 이상 흔들릴 기도 없다. 영은 진공 상태에 있는 듯한 괴로움에 어쩔줄 을 몰랐지만 불러들인 공력이 5갑자가 채 못되자 눈살을 찌푸렸다. 남아있는 기력을 최선을 다해 주천하며 입은 내상을 치유해 나갔지만 영이 입은 타격은 정 말 컸다. 영은 새카만 피를 울컥 토해냈다. 결계의 강기류와 영기류를 꿰뚫고 있는 실버 블 릿츠는 점점 그 빛을 잃고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결계를 뚫었기에 이미 절명해버린 술사 들도 있었다. 아니 술사중 한명. 혈천교주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쓰러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무인들 도 그건 마찬가지라 이미 반수 이상이 내상으로 죽음을 맞았다. 점점 충격파가 내부를 몰아 치고 있었기에 그들도 죽어가는 것이다. 남은 고수들은 전부 다 화경의 고수와 그에는 못미쳐도 정순한 내력을 지닌 자들 뿐. 그들 도 진원의 손상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천산검주는 대붕을 거두었다. 저런 무식한 대붕에 기를 더 이상 소모 할 수 없는 것이다. 남은 기운을 끌어들여 자신의 검에 부어 넣으며 영 의 검을 단숨에 깨어 부수었다. 파가가각 영의 검은 산산조각 나 깨어졌다. 그리고 그 흩날리는 검의 조각들 사이로 어검강을 머금은 검이 길게 뻗어와 영의 몸을 노렸다. 그러나 영의 신법은 대단한 편이었고 이제 심형어검강 도 아닌 기운은 그가 남긴 공력으로 내는 스피드와 사이킥을 막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영도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다. 정신력의 소모는 끔찍하리만치 컸다. 게다가 달려드 는 검 때문에 더 괴롭다. 결계에 압력을 가하던 힘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실버 블릿츠는 이 제 2장 남짓한 창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영은 이를 악물며 정신을 집중해 일루미네이션을 이용해 강한 광파를 뻗어냈다. 파동과 파 장에 힘을 실어넣은 빛이라 그 속도는 그다지 대단하지 않았지만 인간이 피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빛의 파도는 영기와 강기류에 부딪혔고 마침내 영기의 흐름은 완전히 깨어졌다. 그러자 실버 블릿츠는 결계를 완전히 꿰뚫었다. 순간 혈천교주가 피를 한말이나 게워내며 즉사해버렸고 그때부터 진은 멋대로 돌아가기 시 작했다. 진이 깨어진 것이다. 그나마 간신히 그 영기의 제어를 버티던 혈천교주가 죽었으니 결계가 남아 날 리가 없었다. 기의 흐름을 차단하던 결계의 벽은 무너져 내렸고 기는 흘러들어왔다. 영이 이긴 것이라고 도 할수 있지만 영의 내상은 위중했고 기를 빨아들여서 회복하려면 조용한 곳에서 1시진은 대주천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피를 게워내면서도 영은 간신히 기력을 조금 몸으로 흡수하면서 레비테이션을 이용 해 움직이고 있었다. 영이 이긴 것이다. 고수들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지만 결계가 깨짐으 로써 밑에 있는 주술사들이 힘을 되찾은 덕분에 그들은 살아남을수 있었다. 주술사들은 시급히 영력과 기력을 운용해서 공중에 페더 폴과 비슷한 효능을 내는 장막을 쳤다. 떨어져 내리던 시신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육신은 서서히 내려앉았다. 바닥으로 쏟아져 내린 어마어마한 흙더미 때문에 먼지가 치솟아 올랐으나 구멍은 메워지게 되었다. 영은 그 것을 내려다 보며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력을 순환시켰다. 문득 영은 바닥에 내려 앉은 자들 중에 화경의 고수나 한둘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죽어 넘어 져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영은 화경의 고수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잠시 화경의 고수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알고 있는 화경의 고수들과 그 숫자를 대조하던 영의 안색은 창 백하게 변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혈색이 없었고 내상까지 더해져서 심각할 정도로 희었는데 그는 이제 안색이 푸르기 까지 했다. 입술은 조금씩 보랏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 이놈들이!" 영의 목소리는 가늘었지만 지금은 살기를 가득 머금고 있어서인지 결코 그렇게 들리지 않았 다. 없었다. 화경의 고수들 가운데 그들이 없었다! 시체로 죽어 넘어지지도 않았다. 그들이 없었다. 그들이! 이한룡과 맹주. 그 두명의 고수가 존재하지 않았다! 죽은게 아니다! 그들은 상층부 고수이긴 하지만 암습을 했을 것이고 팔검위가 그 강력한 두명을 죽일수 있을리 없다! 이한룡은 운에 맞먹는 고수고 맹주는 운과 거의 같을 정도의 고수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죽었을리도 없다! 그런데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었다. 그들은 지 금 천망봉으로 간 것이다! "이런 제기랄것들!" 결계를 뚫은 것 만으로도 한계에 달한 실버 블릿츠를 회수한 영은 비틀거리면서도 극한까지 정신력을 이용하고 공력을 운용하며 주변의 기력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몸을 회복시키면서 빠르게 천망봉으로 날아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구는 상승에 상승을 거듭하다 땅에서 완전히 떨어져 10여장 높이에서 멎어 있었 기에 그냥 놔 두었으면 죽었겠지만 영법사들이 그런 그들을 살려냈다. 그러나 영은 운에 대 한 생각으로 다른 생각을 할수 없었다. 치명적인 실수였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아 래에서는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으니까. 그놈들이 대체 어떻게, 무슨 수단으로 정보를 캐어냈는지 알아낼수가 없었다. 영은 정말 무 서운 속도로 천망봉을 향해 날고 있었다. 평상시에 비해 느리다고 해도 그의 절박함이 담긴 속도는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영이 사라지고 나서 살아남은 30여명의 고수들은 간신히 몸을 추스를수 있었다. 뚫고 들어 와 기를 뿜어낸 실버 블릿츠에 당한 자들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고수들이었다. 전부 화경의 고수들이거나 화경에 거의 도달한 고수들로써 그들은 지금 내상을 치료하는 영약과 영법을 통해 몸을 치료하는 중이었다. 영약과 영법을 아낌없이 썼기에 한각만에 그들은 깨어났고, 곧 천망봉으로 달려가기 시작했 다. 그들 역시 말은 없었다. 아니 나눌수 없었다는게 정확했다. 지금은 대화할 시간도 아까 웠기 때문이다. 영이 도망가게 되면 정말 곤란하니까. 운은 피섞인 숨을 몰아쉬었다. 폐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기흉과 더 불에 폐에 고여드는 피. 지혈을 하고 흉강에 고인 공기를 빼내버렸지만 그래도 힘들기는 마 찬가지다. 금창약을 통해 공기의 유입을 막았지만 그래도 폐 자체는 어떻게 치료해볼수가 없었다. 힐링 포션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이곳은 아스타르 대륙이 아니다. "쳇. 치사한놈들." "미안하군.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이겨야 한다!" "승자는 차가운 현실을 조작하지. 그 과오를 반복하고 싶은가?" 운은 냉소하면서 청천검을 들어 올렸다. 맹주는 천인검을 가볍게 내리며 천하월영검의 마지 막 초식을 준비했다. 그의 검에서 강렬한 금빛과 은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운은 긴장했 다. 금은빛의 달은 만월. 만월은 가득 찬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그 위력이 얼마나 강할 것인지는 말 하지 않아도 알수 있다. 저 기세도 기세이지만…… 곧 직접 보게 될테니까! 이한룡은 이미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 있었다. 질긴 작자였어. 저치도. 그렇게 중얼거려보지 만 긴장은 가시지 않는다. 자신은 공력의 반 이상을 소모했고 진원까지 쓰지 않으면 살아남 을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운은 품속에서 두알의 단약을 꺼내 입안으로 밀어넣고 공력을 운기했다. 자신같은 고수가 이런거 먹어봐야 공력은 거의 늘지 않고 진원으로 보충하려면 영약의 기운 은 당연히 소실되지만 공력을 한바퀴 돌린것 만으로도 공력 중 상당부분이 회복되었다. 북 명천지조화심법을 가르쳐 준 영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북명천지조화심법은 굉장히 뛰어 났고 가문의 무공에도 매우 잘 맞아 떨어지는 무공이었다. 기의 흡수에 있어서는 이 심법은 대단한 효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남은 생생조화단중 자신 이 지닌 두 알을 삼켰기에 그 기운을 얻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운은 기력이 어느정도 회복되자 광염천린검의 마지막 초식. 천벌天罰의 기수식을 잡았다. 인 간은 천벌을 내릴수도 없고 내린다고 하면 그것이 오만일 것이다. 그러나 그 오만함은 몰라 도 이 초식은 천벌이라고 불러줘도 충분할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맹주는 거의 소실되지 않은 공력을 끌어모아 검에 집결했고 천인검은 어마어마한 빛을 토해 내며 일렁이기 시작했다. 둘은 조용히 자신들이 시전할 초식의 이름을 내뱉었다. "만월." "천벌." 그렇게 음속으로 도달한 목소리가 퍼짐과 동시에 두명은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운은 부 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움직임이 지독히 빨랐다. 맹주는 원을 그렸고, 운은 내리 그었 다. 그 둘은 검의 궤적을 시작하며 달려들었다. 둘의 신형은 무서운 속도로 맞부딪혔고 거대한 충격파는 공간을 떨어 울렸다. 운의 수하들은 모조리 시체가 되어 있었고 그것은 맹주의 수하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둘은 외 부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 말은 자신들의 무공으로 인해 발생하는 충격파가 수하들 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게다가 목숨이 걸린 일이었기에 둘은 최 선을 다하고 있었다. 둘은 서로 부딪히고 나서 3장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문득 싸늘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자 둘의 입에서 피가 울컥 토해져나왔다. 둘은 비긴 것이다. 이 상황에서도 운은 맹주의 힘을 받아낸 것이다. 맹주는 감탄했지만 대의는 대의다. 소의와 대의는 바꾸어진다. Give&Take. 세상에 공짜란 없다. 맹주는 물론 여러개의 소의와 하나의 대의가 바꿔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긴 했지만 Give&Take라는 말은 몰랐다. 자신이 쓰는 언어가 아니잖아? 어 쨌든 둘은 간신히 서로를 다시 바라보았다. 맹주는 왼쪽 팔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마지막 초식 만월을 통해 내려찍는 검세를 막아냈 지만 팔이 너덜너덜해진 것이다. 치료하면 쓸수도 있고 너덜너덜하다는 것만 빼면 상태가 좋다. 출혈이 심하지만 치료는 할수 있다. 운은 만월에 의해 허벅지가 좀 베였지만 근육까지 베이지 않았다. 맹주가 좀 심하게 다쳤지 만 운은 동맥이 베일뻔 했다. 게다가 허벅지를 다치면 신법 사용에 무리가 오는 것이다. 대 퇴부 동맥이 베이면 출혈이 굉장히 크게 일어난다. "만월이라…… 무섭군." "내가 죄가 많은지 그 초식은 다시 보고 싶지 않네." 맹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검을 중단으로 겨누었다. 그리고 작은 원을 그림과 동시에 검은 화 려한 동선으로 푸르게 번뜩였다. 청월섬의 초식이었다. 맹주는 구결을 속으로 읊으면서 검 손잡이를 강하게 쥐어 임팩트까지 넣었다. 청월이 번뜩이며 공기충격파까지 일으켰는데 그것이 너무 치명적이라 맹주 역시 반동을 입 고 있었다. 운이 막아내거나 피한다고 해도 공기충격파에 타격을 입을 것이다. 호신강기가 강하다 해도 몸 자체를 뒤흔드는 공기의 파동에 무사할리 없다. '푸른 달은 만물을 사르도다!' '하늘은 천지만물을 포용한다!' 운은 속으로 구결을 읊조리며 검을 찔렀다. 운의 검은 그 자리에서 멎어있다가 가벼운 찌르 기로 들어갔다. 화려한 동선과 가벼운 찌르기. 놀랍게도 맹주의 공격이 더 강맹해보였지만 그는 그대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동귀어진의 초식이었으니까. 맹주는 손해를 보게 됐다. 공기충격파까지 만들어낸 주제에 그 가벼운 찌르기가 일으킨 바 람에 공기충격파는 막혔고 자신은 물러났다. 운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을 늘어뜨리고 있었 다. 검은 기운 한점 없이 싸늘한 빛으로 번뜩일 뿐이다. "시간을 끌 셈인가!" "아니. 그대의 담을 시험해 봤을 뿐이다. 그럼 간다!" 운은 가볍게 한마디를 하면서 왼손에서 금강폭열공을 통해 한마리의 신룡만을 끌어냈다. 왼 손에 맺혀 있는 금룡의 이빨이 예리했다. 그러나 그것도 불완전한 것으로 마치 조공爪功을 실현한 것 같았다. 소림의 용수조와 닮았지만 전혀 다르다. 왼손으로 할퀴며 오른손의 검으로는 가벼운 회전을 통한 강기를 뿜어냈다. 감아내듯 베는 검에서 검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신월은 맹주의 검이 백색광을 발하자 파해되었다. 맹주는 그 자리에서 왼손을 휘둘러 왼손을 쳐냈다. 그러나 운은 그 쳐내는 힘을 이용해 몸을 숙이며 회전해 강한 탄퇴를 차냈다. 운의 탄퇴와 맹주의 찔러넣는 듯한 걷어 차기가 적중하며 기경의 충돌이 일어났다. 폭발. 둘은 검을 움직 이고 손을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였다. 검에 자신 있는 자들은 싱글 모드로 검을 다룬다. 이들은 그 조건에 충분히 부합되는 자들 이었고 장법, 조법, 권법, 지법과 각법, 퇴법등까지 섞어나가며 초식을 나누는 모습은 춤을 추듯 아름다웠다. 초식의 정화精華라고나 할까. 현경의 검과 권등이 한점에서 모든 방위를 향해 자유의 극인 폭발을 일으켜 나간다면 이것은 정련의 극치! 운의 검은 원을 그리면서 움직였다. 맹주는 강하게 검을 찍어내렸다. 내공운기법은 다르지만 초식의 변화는 똑같다. 운은 만월을, 맹주는 천벌을 쓴 셈이다. 그러나 운은 꽤 착하게 산 것인지 만월로 천벌을 튕겨낸채 검으로 강기를 길게 뿜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맹주는 검자루에 기운을 둘러쳐 강기를 빗겨냈다. 상당한 임기응변이었으나 그것이 한계인지 그는 어쩔수 없이 뒤로 물러나며 검기를 뿌렸다. 검기를 피한 운은 역시 같이 검기를 뿜어내며 맹주를 향해 쇄도했다. 거친 움직임에 폐에 무리가 왔지만 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생을 불태우는 것이다. 맹주와 운의 눈빛이 날카롭 게 교차하며 불타올랐다. 그런데 그때 맹주의 등 뒤에서 섬광이 솟아나 그의 몸을 긋고 지나갔고 토해진 빛이 사라지 자 그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맹주는 불신의 눈이었지만 그대로 무너졌고 대각선으로 베어진 몸이 그대로 떨구어지자 운의 시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자가 있었다. 바로 그는 광협 문열이었다. 그의 모습을 보자 마자 긴장이 풀려 쓰러지는 운의 몸을 소리 없이 나타난 단월은 말 없이 받아들었다. '간신히 구했군. 미리 천망봉에 들어와 있길 잘했어. 교룡평에서 검 섞는것도 좋지만 클클. 그게 싸움인가? 학살이지. 광기도 뭣도 없는데다가 살아있다는 느낌도 없는 데서 하수를 학 살하는건 그래도 내 취향이 아니니까.' 문열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역시 계집애처럼 생긴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 영이라는 놈과 다 르고 좀더 소년답긴 하지만 예쁘장하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들 왜 하 나같이 그런지 원. 문열은 대단하다고 할 만한 미남이지만 여성스러울 정도로 아름답진 않았다. 단월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구했군. 응? 뭐야. 땡중이잖아. 그새 실력이 늘었군?" 문열은 기척이 느껴지자 말을 건넸다.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온 것이다. 문열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단월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문열은 등 뒤를 돌아보면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벌써 5여장 가까이 다가와 있는, 여 전히 추레한 차림인 신승 공공을 바라보았다. 공공은 여전히 뒷짐에 털털한 표정이었는데 마치 미끄러지는 듯 표홀하게 다가왔다. 문열은 신승을 보다가 자신과 거의 맞먹는 경지에 이르렀거나 오히려 더 높은 경지로 올라 서 있다는 것을 알아봤다. 그는 짜증이 나서 공공을 노려보았는데 공공은 전혀 어떤 흔들리 림도 없었다. 환골탈태를 했을텐데도 공공은 거의 달라진 바가 없었다. 그것에서 문열은 의 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환골탈태를 하지 않았다는 건가? "흘흘. 여전하구만. 미친협객. 어쨌든 그 아이를 넘겨 주겠나?" "왜? 난 영이란 놈에게 빚이 있어서 이 계집같이 생겨먹은 녀석을 데려다 줘야 하는데? 치 료도 해야 하고." "간단하네. 나는 그 아이를 죽여야 한다네." "……뭐라고 했냐?" 문열은 보통 사람은 거의 죽이지 않는 공공이 그렇게 말하자 마자 그를 노려보며 반문을 던 졌다. 공공은 피식 웃으면서 주먹을 들어 올렸고 순간 강맹하지만 투명한 무언가가 공간을 노리며 파악 하고 터졌다. 마치 백보신권과 같았지만 본질적으로 뭔가 달랐다. 그러나 문열과 단월은 둘 모두 현경의 고수였다. 그 강맹한 일격에서 운을 데리고 빠르게 내빼 5장 거리를 넘어 피해버린 것이다. "심격권心擊拳! 이 미친땡중이 뭐하는 짓이냐?!" "미친놈한테 미친놈 소리를 들으니 참 기분이 나쁘군. 그 아이를 죽여야 한다고 했네." "못죽여." "죽일거네." "날 죽이지 않으면 못죽여." 문열은 피가 끓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공공은 정말 너무나도 강해져 있었다. 혹시 이놈이 실력을 감추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다른걸까? 이 사이에 급속도로 성장한 모습이 뭔가 이 상했다. 게다가 운을 죽이겠다고 들고…… 문열은 검을 뽑았다. 은빛 검이 빛을 뿌림과 동시에 그의 검에서 곧 심형어검강이 이글거리 기 시작했다. 맹주를 베어버리고 나자 마자 검은 다시 검집으로 돌아가 있었다. 검은 부담없 이 뽑혀나왔다. 날은 예리하지 않았지만 손질은 잘 되어 있었다. "흘흘. 그런 것으로 나를 상대할겐가. 아직도?" 공공이 흐릿하게 뜬 눈을 살짝 치켜뜨자 마자 공공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그 영이란 놈 에 맞먹는 기세가 터져나오는게 아닌가? 그 강맹하기 짝이없는 기운은 강한 것도 있었지만 부드러움과 포용하는 듯한 어떤 기운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극지기인 것이다. 문열은 이를 악물며 공력을 더 끌어올렸다. 극한까지 끌어올린 공력은 주변의 대기를 뒤흔 들어놓았고 공공의 기세와 부딪히는 그의 기세에 대기가 진동했다. 그 강맹한 진동에서 몸 을 보호하기 위해 단월은 공력을 끌어올리며 운을 보호했다. 운과 단월의 몸을 은은한 푸른 빛이 감싸자 공공은 조금 더 기력을 끌어올렸다. '이놈……' "땡중! 무극지기를 봤구나!" "흘흘. 그런게 아니라네. 무극지기는 100년전에 봤지." "……실력을 감추고 있었던 거냐?" "물론이라네. 필요가 있어서였지. 자네도 알다시피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해볼수 없는 일이 많 이 산재해 있지 않은가. 계속계속 기다려왔다네. 꽤 오래 걸렸지." 문열은 말없이 검을 들어올렸다. 독백하는 순간 쳐들어가려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이 주먹을 뻗자 기력의 소용돌이가 일어났고 곧 그의 소매가 펄럭이자마자 검이그 자리에서 속박되어 버렸다. 영이 한것과 같은 무형의 기술이었다. 문열은 이를 꽉 깨물며 남은 공력을 계속 검에 밀어넣었고 검은 점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공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상대가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무극지 기를 본 자신이 힘을 이정도까지 끌어냈는데 문열이 상대가 될리가 없다. "그 영이라는 젊은이도 슬슬 이곳으로 오겠지. 거의 다 왔군. 만신창이가 다 되어서 말이지. 후후후. 공력 외에도 다른 힘을 지니고 있는것 같지만 지금에 있어서는…… 나를 감히 상대 할수도 없을것이고." 공공은 피식 웃었다. 문열은 당황했다. 저 공공이라는 놈 싸움이나 말리고 다니더니 대체가. 혹시 저놈 무림에 원한이 있다거나 해서 지금까지 감추고 살아왔다는 헛소리를 하지 않을 까? 대체로 이 대륙에도 있는 무협지 같은 데서 흔히 등장하는 캐릭터가 아닌가? 실제로 있는 기록을 소설로 바꾸는 것이지만…… 문열은 만약 그렇다면 사력을 다해 죽여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니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자들이나 외면한 자들이 주변에 있다고 그와 같은 자들을 모조리 다 죽여버린단 말인가? 자 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 정도로 의지가 나약해 빠진 놈은 살아있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문열인지라 실력이 되지 않아도 동귀어진 할 생각까지 한 것이다. "혹시 내가 무슨 무림 멸절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고 있나?" 뜨끔. 정곡을 찔린 문열은 멍청한 표정으로 공공을 바라보았다. "그런 바보같은 이유가 아니라네. 난 무림인들에게 무림을 돌려주고 싶을 뿐. 천류세가, 무 림맹, 마교 외에 강력한 단체들을 모조리 멸살해서 집단을 이루는 자들을 없애버리려고 한 다네. 작업은 끝이 없을수도 있지만 강한 무공이나 힘을 지닌 자들을 죽여버리고 멸살시키 게 되면…… 후후후. 적어도 300년은 걸려야 화경 고수가 등장하기 시작하겠지. 심산유곡에 남은 무공서적이 있고 뭐가 있고 해봐도 결국 마찬가지야. 지금 무림을 보면 강한 자들이 많지. 나를 포함해서 영이라는 청년이나 몇몇 작자들. 그런 그들이 하는 짓이 무도에의 탐구가 아니라 싸움질과 조직 형성이라네. 우습지만 나도 마찬 가지였고. 사문에 대한 마음은 어쩔수가 없더군. 덕분에 기사멸조의 대죄를 지은 다음엔 목 숨을 끊을 생각이네. 어쨌든 고수들은 어쩔수 없이 사문 탓에 약육강식이라는 것을 조장하 는데 기여하는 거지. 영이라는 청년은 많이 다를줄 알았더니…… 운이라는 아이를 위해서 그를 돕는것 같긴 했지 만 어차피 이거나 저거나. 발을 들였으니 뺄수는 없고…… 내가 그 발을 잘라내서라도 떼어 내 주겠다는 거네. 재미있지 않겠나? 문열 자네는 죽이고 싶지 않다네. 자네는 집단도 이루 지 않으려 하고 제자도 들이지 않고. 저 단월이라는 젊은이는 모르겠지만. 자네는 원래 암살 자였고 영에 의해 선택된 자지. 천류세가가 사라지면 당연히 떠돌수밖에 없겠고." 공공은 마지막 마두의 절차를 멋지게 밟고 있었다. 항상 이런데서 계획을 폭로하다가 당했 던 작자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그런 3류 소설에는 취미가 없었는지 그도 이런데서 계획을 폭 로하는 것이다. 자기 입으로. 얼마나 입이 근질근질 했을까? 문열은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도 검을 들었다. 검에서는 여전히 강맹한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속박은 다 풀리지 않았다. "이봐. 무림이 어떻게 돌아가서 피바다가 되건 말건! 네놈이 무슨 상관이냐! 나는 강자와 싸 워야 하고 또 강해져야 한다. 네놈이 뭐가 어쩌고 했든간에 나는 강해지고 싶다. 네놈은 충 분히 강하고 내 상대가 되기 충분해. 아니 과한가? 어쨌든 넌 나와 싸워야 한다! 죽이고 싶 지 않다고? 건방진 소리 하지 마!" 순간 무형의 속박은 깨어졌다. 분노한 문열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피어올라 하늘을 찌르다 시피 했고 그것을 느낀 공공은 꽤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히 강해졌구나. 문열을 바라보면서 공공 은 그렇게 생각했다. 영과 싸운 후로 꽤 많은 것을 깨달은 모양인데…… "그럼 가겠네." 말과 함께 공공의 몸은 바로 사라졌다. 공공이 사라진 그 즉시 문열은 피를 토하며 패퇴당 했다. 운을 보호하려 하던 단월 역시 단숨에 피를 게워내며 튕겨져 나갔다. 문열과는 수준이 틀린 공격이었다. 영도 물론 이렇게 할수 있다. 그러나 싸울때 이정도로 최선을 다한 적은 드물었다. 강기의 발출이 아니라 육탄전을 통한 싸움. 경험과 운용. 그것에 있어서 공공은 영보다 강했다. 영 은 아직도 검강을 통한 공격을 더 즐겨하는 것이다. 깨달음에 있어서는 영이 오히려 반수 높지만 싸우면 비길수는 있을 것이다. 최상의 상태에 서 은뢰와 은염, 사이킥을 더해서 싸워야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공공은 수준이 틀렸 다. 그는 음속의 백보신권을 날려보내며 마음과 권을 합치시켜 치는 심격권으로 문열과 단 월을 가격해 기를 흐트러뜨린 것이다. 단 한합이었다. 이런 백타와 근접전이건 장거리에서의 싸움이건 공공이 싸움 자체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 었다. 밥먹고 싸움질만 했는지 도저히 중의 싸움 솜씨는 아니었다.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너 무한게 아닌가? "……이제 수준 차이를 알겠나? 좀더 배우고 오는게 좋을 것이네만은…… 역시 말을 잘 안 듣는군." 공공은 말을 하다 인상을 찡그렸다. 문열과 단월이 비틀대며 일어났기 때문이다. 단월은 일어서자마자 검을 뽑았다. 곧 그의 검에서 불타오르는 듯한 어검강이 뿜어져 나왔 다. 그리고 문열, 단월은 공공을 노려보았다. 동시에 그들은 검을 내렸다. 강대한 기세는 그 들의 몸에서 끊임없이 폭출했다. 천지사방을 뒤흔들 그들의 힘이었지만…… 공공의 앞에서는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오라!" "이런 중같지 않은 개놈의 자식이!" 공공의 한마디와 함께 문열은 욕설을 섞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단월은 호흡을 강하게 끊 어 힘을 끌어올리며 달려들었다. 좌 우로 치고들어가는 두명의 검세는 지독히도 빨랐으며 또 강렬하기 그지 없었다. 푸른 빛과 흰 빛이 끓어오르는 검이 호선과 직선을 그렸다. 초식에서 벗어난 둘의 검은 한 없이 자유스러웠고 그 자유스러운 검은 공공에게 감탄을 느끼게 했다. 한 시대에 현경의 고 수가 일곱이다. 이미 둘은 죽었지만 말이다. 또 얼마나 있을지 알수 없다. 공공, 문열, 뇌검자, 영, 단월, 천산검주, 마지막으로 서륜. 이 시대는 긴 평화로 인해 무림의 힘이 어마어마하게 축적된 상태였다. 그중 둘이 죽었고, 둘이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고 한명은 영이 없었다면 현경이 될수 없었 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한 시대에 넷이나 되는 현경의 고수가 존재한다는 소리가 아닌 가. 비록 신들이 만들어놓은 각본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것은…… 무림에서만큼은 얼마든지 주역이 될수 있는 배역이 너무나도 많았다. 공공이 주먹을 늘어뜨렸을 무렵 단월과 문열의 숨은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비록 남은 공력 이 몸을 치유하고 있다고 해도 힘을 더이상 쓸수 없다는 것이 정확하리라. 공공은 문득 날 아오고 있던 영이 비틀비틀 대다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나저나 운과 영이라는 둘은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걸까? '둘 모두 남색같은건 하지 않는것 같고…… 형제인가? 하지만 가주와 종복이라는 관계로 나 왔다. 물론 하는 행동이야 공석에서는 몰라도 사석에서는 꽤나 친밀했지만. 형제라고 하기에 도 많은 문제가 있는데 대체가……'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공공은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주변의 기력을 모아 힘을 보충했다. 영의 기력은 조금 더 강해졌다. 그리고 다시 달려온다. 내상이 꽤 심하면서 레비테이션을 더 쓸수 없으니 이제 달려오는 것이다. 공공은 그저 날아오다 공 력이 떨어져서 보충한뒤 달려오는 거라 생각했지만. "음? 화경급 고수들이 아주 몰려 오는군. 저놈들은 꽤 생생한데……" 공공은 피식 웃었다. 마무리는 아무래도…… 저놈들이 해야 할것 같았다. 공공은 그놈들을 죽이는건 나중이라고 생각했지만. 기절해 있는 운을 내려다 보던 공공은 천인검을 허공섭물 로 들었다. 적당히, 그리고 절묘하게 시체를 움직이고 아직 굳지 않은 맹주의 피 덩어리를 공중에 띄워 올린다음 운의 청천검을 띄워 그것을 베어냈다. 그리고 그 피를 주변에 움직여 칠하고 청천검을 바닥에 꽂는다. 그 움직임은 운이 마치 마 지막에 검으로 맹주를 대각선으로 베어낸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천인검은 무서운 속도로 운의 심장에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피는 터졌지만 검이 박혀 있었기 때문에 검만 타고 흐르 다가 쏟아져 내렸다. 운의 호흡은 약해졌고, 곧 멎었다. 모든 생체활동이 정지했다. 죽은 것이다. 생명체인 이상 심장이 터진 주제에 살아갈수는 없었다. 운은 확실히 죽은것이다. "끝났어. 끝났어." 공공은 만족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속도로 문열과 단월을 집어 들고는 사라져버렸다. 흙먼지를 배열해서 남은 흔적도 모두 없앤채. 그의 신형은 지독히도 빠르게 멀어져갔다. 영 이 느릿느릿 다가오는 속도와는 수준이 틀렸다. 물론 영이 다가오는 속도로 시속으로 따지면 70km에 달했지만 공공에 비하면 느린 셈이다. 영은 깊디 깊은 내상에 무리하게 공력을 계속 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정도로 빠르다 면 그것도 굉장한 것이다. 공공은 신법으로 사라지면서도 문열과 단월의 몸위로 기류를 돌려서 그들의 몸 상태가 악화 되는 것을 막았다. 공공은 나는듯 천망봉에 올라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되는 곳에 그들을 눕 히고는 빠른 속도로 그 공터가 멀리 보이는 곳에 도달했다. 나름대로 재미있을것 같지 않은 가. 바라보고 있는 것도. 공공의 웃음은 피식 웃는 듯한 허탈한 웃음이었다. 어차피 이번 사건이 끝나고 마교까지 다 정리해버리면 그는 스스로 죽을것이다. 그렇기에 허무했던 것이다. 일단 이곳에 있는 자들의 죽음을 마교에 덮어 씌울 생각이었다. 마공의 초식은 알고 있었기에 마공의 초식으로 이들 을 죽여 확실한 증거를 남길 생각이었다. 역천의 공력은 없어도 마공은 쓸수 있다. 운기법도 다르고 초식만 같았지만 위력은 거의 다 르지 않았으니까. 영이 묵뢰신공을 쓸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영은 마공의 구결도 모두 알고 있었고 역천으로 공력을 돌리는 것도 가능하다. 현경의 고수는 공력의 속성에 별로 영향받 지 않는다. 무극지기를 얻은 뒤로는 더 완전에 가까워진다. 공공은 조용히 관람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알수 없으리라. 자신조차 극본의 배우에 불과 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초월적인 시각으로 이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 외에도 수많은 신급 존재들의 시선은 이곳에 닿아 있었다. 잠시 후에. 영이 도착했다. 운이 누워 있다. 그의 몸에 꽂혀 똑바로 서 있는 그림자를 믿을수 없다. 천인天刃의 검이다. 영의 걸음은 느렸지만 점점 빨라졌다. 힘이 없었지만 거의 달려들듯 그의 몸은 돌진하고 있 었다. 이제 1갑자 정도의 공력만이 그의 몸을 지탱하고 있다. 진원도 상당부분 손상되어 있 었고 내상은 점점 도를 더해간다.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그는 걸어갔고 마침내 운의 시신 앞에 발걸음은 멈추어 섰다. 예리 한 각도로 정확하게 심장에 박혀 있는 검. 운은 자는 듯 누워 있었다. 하지만 죽었다. 호흡 도 없고 심장 박동도 없고 살아있는 생기도 없다. 몸에 남아있는 진기도 빠르게 흩어지고 있다. 영에게는 그게 느껴졌다. 운은 확실하게 죽었다. 되살릴수 없다. 숨결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영은 피식 웃었다. 소설 속에서는 이러다가도 살아나던데 왜 살아나지 않는걸까. 영은 자신의 삶을 되돌이켜 보고 소설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느꼈다. 왜 살아나지 않는걸까. 깨어나서 왜 이제 왔냐고 화 를 내야 한다. 일어나야 하는데…… 털썩하고 무릎이 바닥에 부딪혔지만 아프다는 것도 몰랐다. 영은 손을 들어서 천인검을 조 심스럽게 뽑았다. 그리고 던져버렸다. 조용히 운의 상처에 손을 댄다. 피가 엉겨있다. 심장 박동은 없다. 피를 전신에 공급해 주고 있던 생명 박동은 더 이상 없다. 다시는 뛰지 않을 심장이었다. 운은 정말 죽었다. 실감이 온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지만 식어가고 있는게 체감될 정도였다. 영은 자신이 늦었다는 것을 깨 달았다. 어쩌면 반각만 빨랐을때 유언이라도 들을수 있었을지도. 일각만 더 일찍 왔어도 살 릴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녹아나가고 있는 듯한 뇌세포는 더이상 사이킥을 쓸수 없다고 말 했고 그래서 달렸다. 공력 대부분과 진원까지 손상해가며 달려왔다. '안다. 최선을 다해서 달려왔다는 것을 알기는 아는데…… 내가 멍청해서.' 영은 정말 멍청한 표정으로 운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질려버렸다. 세상의 광폭함은 여 전했다. 언제나 삼킨다. 그 흉포한 톱니바퀴의 흐름은 너무 단호해서 자신같이 작은 톱니바 퀴는 아무리 커져보아야 결국 움직일 수밖에 없다. 잔혹하고 단호한 그 끊임없는 흐름때문 에 영은 이 자리에서 그의 죽음을 보고 있다. 불가항력이다. 하지만 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생각해서. 하나만 더 베었어 도. 과거의 하나만 더 베어냈어도. 잔혹하게. 암살자가 되어서. 인독으로써. 스스로를 인정 하고. 자신은 냉소했지만 결국 하는 짓이 타인과 다르지 않았다. 인독을 부정하게 위해 무인 으로 살려고 하지 않았는가? '충실하게 살겠다'는 미명아래. 결국 새로 얻어진 삶이라 실감이 없어서, 덤으로 얻어졌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거라고 생각한걸까? 인간도 아닌 주제에 인간인척. 암살자였으면서 그것을 지우기 위해 살고. 결국 지워지지 않는건데. 포용하면 되었고 모든것을 받아들이고 수긍하면서 사력을 다해왔으면 되었을텐데. '결국, 즐기는 셈으로 살았지만 남는건 회한뿐인가……' 영은 가슴 밑에서 들끓는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 이름을 붙여보았다. 후회, 절망, 광기, 증 오, 분노, 허탈함, 자기혐오, 살의…… 온갖 감정들이 미쳐 날뛰고 있다. 남아있는 기도 얼 마 안된다. 놀랍게도 주화입마 따위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 상황에서도 그의 이성은 기를 얽매고 있는 것이다. 영은 그런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이게 나인가?' 나락으로의 추락이다. 결국 위로 올라왔다고 생각했지만 불꽃 하나 들고 웃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다. 아니 위와 아래의 차이가 무엇인가? 대체 무엇이 있어 이렇게 만들었을까? 모두 내가 잘못했기에 어긋난걸까? 왜 이렇게 단호하게 톱니바퀴의 날은 돌아가야 했는가? 내가 멍청해서? 내가 바보같아서? 내가 단호하지 못해서?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기억하지 못하고 떠올리지 못하고 지식을 사용하지 못했을까? 나는 나 자아로써의 자격이 있나? 존재할 자격이 있나? 자신의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해놓 고 지키지도 못한 주제에 그렇게 잘난척을 하고 다녔던 건가? 대체 왜 그렇게 미련을 두고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했나? 왜? 왜? 왜? "……" 많은 기척들이 영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망연자실 운의 사체에 손을 얹고 있는 것에서 감정이 동요라도 했는지 바로 검을 베어오지 않았다. 영은 의식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회 피하는건 바보짓이다. 피하는건 바보짓이다. 마주해라. 마주해라. 현실을 마주하고 또 마주 해라. 자폐아가 되어 스스로를 영혼 밑바닥에 처박는건…… '쓰레기나 하는 짓이다!' 영은 이를 악물었지만 곧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왜 여기까지 와야 했을까? 생각이 더 이상 나지 않는다. 텅텅 비어가는 정신. 모든 기력은 고갈되었고 순간 영은 입에서 피를 울컥 토해냈다. 진원도 조금씩 사그라 드는 것이 죽음이 머지 않은 듯 했다. 죽는 건가. 상관없는 일이다. 죽는것도 사는것도 한가지다. 의식과 기억과 정신이 텅텅 비어버린다. 모두 자리를 비켰다. 가라앉은게 아니다. 비어버린 것이다. 공空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진기도 사라졌고 기도 사라졌고 모든것이 사라졌다. 오로지 주변에 가득한 생동감과 기운들이 내상으로 막혀버린 혈도 위를 맴돌 뿐이다. 그의 의식이 비어갈때. 영혼이 움직였다. 정기신精氣身 셋이 모두 비었으니 남은것은 령靈뿐이다. 그 영혼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전신을 가득메운 영혼의 기척은 그 본질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영은 망연자실 앉아 있는 것 으로 보였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영의 몸이 비틀비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입가에 싸늘한 조소가 서렸다. 「정말로 나약하군. '자아(Ego)'라는 녀석은.」 그 울리는 듯한 목소리에 모두는 흠칫 하고 놀랐다. 이건 심어? 이런걸 아직도 쓸수 있었단 말인가? 모두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영의 고개가 들 려졌다. 홍채는 은백색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고 눈동자는 회색으로 죽어있었다. 하지만 표정 만큼은 끔찍할 정도의 리얼리티를 자랑하고 있었다. 섬뜩한 살의. 죽어가고 있는 육신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모두는 흠칫 했다. 그의 등 뒤로 은색의 그림자 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것은…… 날개로 화했다. 깃털이 잔뜩 달려 있는 날개의 빛은 오로 지 은색. 금속성의 순은색이 아름답게 반짝인다. 여섯장의 날개는 길고 또 포근해 보였고 거대하고 날카롭고 차가워 보이기도 했다. 죽어가는 육신이 말했다. "죽인다." 깨어나는 영혼이 말했다. 「멸한다.」 둘의 목소리가 합치되었다. ―그것이 나의 의지! 오로지 멸절! 죽이고 베고 소멸시킨다! 육신을 베어 피를 취하고 정신을 갈라내 혼돈을 취한다. 기를 끊어내 마를 취하고 영혼을 베어내 소멸을 취한다. 그 모든 것으로 텅 비어버린 정신의 공동을 채워. 이 영혼이 타들어가는 듯한 숨막히는 갈증을 달래자! 그의 외침은 거대했고, 모든 힘들은 그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바람은 일어났고 천인검과 청천검 같은 금속도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가 날개를 펼 쳐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을때, 막 달려나가 날개의 날카로움으로 모든것을 도살하려 했을때 였다. 광기에 찬 신성이 영혼으로 뻗쳐 하나의 존재가 되어갈때…… 하늘로 날아올랐던 청 천검이 바닥으로 푸욱 떨어져 박혔다. 바로 그의 눈앞이었다. 「하…… 유품따위에 반응하는 지겨운 레퍼토리는 삼류 소설하고 똑같아. 웬만하면 그런 패 턴 답습좀 하지 마시지?」 그렇게 영혼의 내면에 지금까지 가라앉아 있던 '그'는 빈정거렸지만 '영'은, 자아는 반응하 기 시작했다. 청천검은 운의 검이었으니까. 그렇게 현실 도피일 뿐이라고 되뇌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밀려들어오는 영혼에 자리를 내 주었다. 스스로에게 혐오와 가증스러움을 느끼면서 영 은 마침내 일어 섰다. 「아직 의지가 남아 있었나?」 영혼체는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영은 대답했다. '회피할수 없으니까. 회피하면 쓰레기가 된다.' 영혼체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비웃으며 빈정거렸다. 「상당한 이기주의로군. 아직도 잡아먹고 싶은게 있나? 네놈이 한게 대체 뭐냐? 힘이 있는 주제에! 이게 여분으로 주어진 삶이라고 자위하며 그렇게 유희로써 즐기지 않았던가! 네놈 이 그러고도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자리를 비켜라! 이제 너의 시간은 끝났다! 너 에겐 자격이 없어! 네가 진정 존재의 자격을 획득할 정도로 긍지에 찬 존재이냐! 아니다! 너 는 패배자에 불과해!」 영혼은 활화산같은 외침을 토하며 은색 영기를 뿜어냈다. 아름다운 은빛 날개는 점점 그 예 리함을 빛내며 날카롭게 뻗어 올랐다. 그러나 영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정신을 난자해오는 통렬한 비판이었지만 그는 무덤덤하게 대꾸한 것이다. '그따위 말에 동요하지 않는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자격이 있어야만 존재 하는게 아니야. 세상의 모두가 강할 수는 없다. 모두 긍지있는 존재는 아니다. 이건 자위이 고 자기합리화이지만! 또 사실이 아닌가! 자리를 비켜라! 그렇지 않겠다면 나는 나 스스로를 불태워서라도 자리를 되찾겠다! 그래, 네가 말하는 대로 자격! 긍지를! 오만하게 모든것을 내려다 보며 유희를 즐겼던 나를 죽이고 새로이……!' 「웃기지 마!」 영혼은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자아의 말을 끊으며 그는 분노하여 외치기 시작한 것이 다. 그의 분노는 정말 강렬했다. 「내 마음을 아나! 그 오랜 세월동안 영혼의 밑바닥에서! 너의 어리석은 행위를 바라보아야 만 했다! 너는 나고 나는 너! 나라고 슬프지 않겠는가! 나의 나약한 일면을 바라보고 나의 어리석은 일면을 바라보면서! 나도 어리석고 너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너는 자격을 잃 었어! 나는 더 이상 참지 않겠다! 기다릴수 없어! 그나마 최근 속박이 풀려나가면서 조금 움 직일수 있게 되었는데 네놈이! 네놈이 모든걸 망쳤어! 네가 나를 인정하고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진심으로 인식하고! 그리고! 정말로 네가 스스로 홀로 오롯할수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란 말이다!」 '물론 그렇다. 나는 홀로 오롯하지 못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겠지. 역공격의 오류라고 하던 가. 이런 것은? 그러니 기회를 다오!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네가 나고 내가 너이다! 그러 니 기회를 다오. 다시 한번! 나를 보아다오! 내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내가 얼마나 견고한 의지를 획득하고 홀로 오롯하게 될지!' 내면에서 부딪히기 시작한 두 존재의 싸움은 의외로 금방 끝났다. 영혼체는 흥분을 식혀버 린 것이다. 진심이 깃든 자아의 말에 영혼은 차분한 은색으로 가라앉았다. 「상관은 없겠지. 내가 깨어나 봐야 결과는 같을테니까.」 영혼은 지금까지의 활화산 같은 외침은 다 입놀림에 불과했다는 듯 순순하게 물러났다. 너 무나도 쉽게 다시 내면으로 가라앉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도중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 말에 영은 씁쓸함을 맛보았다. 「지켜보겠다. 네놈의 그 잘난 행동을 말이다. 얼마나 잘 하는지 보겠다. 그리고 또 다시 과 오를 반복한다면…… 그때는 참지 않겠다.」 의외의 일이었지만 자아인 영은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영혼은 틀림없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고 내면의 검까지 풀려났기에 더 이상 어떤 속박도 그에겐 없다고 하는게 정확했다. 그 러나 그는 물러난 것이다. 영. 아니 이제 영이 아니라 현청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그는 스스로를 인정했고 그것만으로 도 자아는 안정되었다. 지금까지 그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던 영기의 고리는 심법의 불완전 함과 더불어 그의 영성 탓도 컸다. 정신의 성장은 곧 불완전의 제거. 영기의 고리는 간단하게 깨어졌다. 영기의 고리를 깨어낸다고 해도 정신의 성장이 이루어지 지 않으면 쉽게 그 스스로가 치유되지 않는다. 그는 희생아닌 희생 후에야 스스로를 어루만 질수 있게 된 것이다. 정신이 흘러들고, 기가 흘러들고, 몸이 깨어난다. 숨막히는 위엄이 가라앉고 갈무리되어 사 라졌다. 날개가 접혀져 몸 속으로 사라진다. 끔찍한 정신적 공황을 맛보고 있던 이들은 간신 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허무했던 정신의 동공에 찾아든 자아. 동시에 텅 비어버린 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 파파팍 하는 소리가 전신에서 들리며 막혔던 혈맥이 열렸다. 그리고 거대한 기운들이 그의 몸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무한하게 쏟아져 들어가지만 다시 쏟아져 나간다. 다시 쏟아져 들어오고 쏟아져 나간다. 방대한 기의 기척때문에 무인들은 간신히 지면에 밀착해 있었다. 백열하기 시작하는 피부는 빛의 소용돌이가 사라지자 마자 깨끗해져 있었고 그의 눈이 열렸을때는 현경의 증거인 반박 귀진조차 사라져 있었다. 깊지도 얕지도 않은 눈빛. 지극히 자연스러운 눈빛. 일반인의 그것. 하지만 무인들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그가 힘을 회복했다는 생각에 저항 의지만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 은색의 날개나 숨막히는 위압감은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그는 적이었으니 말이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끝낼거야." 운이 살아있다는듯 그 시체를 향해 한마디를 던진 현청은 손바닥을 들었고, 움켜 쥐었다. 그 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강기를 뿜어내기 위해 준비하던 무인은 단숨에 거대한 손이 움켜 쥔 것처럼 부서져 버렸고 살점과 핏덩이가 뭉개지며 으깨져버렸다. 사람을 으깨어버린 것이 다. 기의 거대한 힘이. 기는 그와 동조하고 있었다.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해봤자…… 결국 무공을 배울때 가장 처음 듣는 말중 하나잖아? 큭 큭큭큭.' 현청은 서늘한 눈으로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경악한 눈으로 '사체 부스러기'를 바라보고 있 다. 이제 그에게 있어서 쇠막대기나 다름없는 검도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이건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현청은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선을 그었고 그 순간 무인들의 몸이 깨끗하게 절 단되어버렸다. 아니 그중 서너명이었다. 화경의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의 어떤 움직임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심장을 중심 으로 자신들이 4등분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죽었다. 주변에서 떠돌던 기와 자신의 내력이 갑자기 칼날로 변해 베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알리지도 못했 다. 현청은 무심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무의미하다. 모든것이 자연스럽다. 이것이 신화경에 오른 자의 정신. 그리고 댓가. '인정하겠다. 나는 어차피 인간도 아니거니와…… 인간이고 싶은 생각도 없어. 그렇게 인간 을 비웃어댔으면서 인간이 되고자 했다니 그런 위선이 있나? 더이상 그럴 일은 없다.' 현청은 조용히 오른손을 들어 휘둘렀다. 그들은 신법을 통해 움직이거나 검막같은 강기막을 시전했다. 그렇지만…… 무슨수로 막을 것인가. 동조의 바람을. 바람을 막거나 피할수 있을 까. 베어도 당한다. 동조의 바람은 강기막과 신법으로 인해 흔들리는 기류마저도 동화시켜나 가면서 그들을 말 그대로 밀어버렸다. 바람이란 공기의 흐름. 공기란 입자들이다. 그런 입자들이 물리력에 의해 밀리는 것이다. 그 런것을 막아낼수 있을까? 이들은 적어도 그것을 버틸 정도의 내구도도 없었다. 그래서 마치 분쇄기에 넣고 미세한 입자로 갈아버린다음 그것을 그 모습 그대로 쌓아두었다가 선풍기로 날려 보내는 것처럼 가루가 되어 날아가버린 것이다. "무형풍." 이것이 바로 리오디안이 썼던 무형풍. 그가 썼던 무형풍은 살기없이 그냥 밀어내기 위해서 쓴 것이라 영도 버틸수 있었다. 동조의 힘을 넣지 않은 바람인 것이다. 그가 썼던것들 모두 단순히 기의 움직임이었다. 자신의 힘을 억제하기만 했을 뿐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화경. 현청은 염을 발했고, 그 순간 무인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진원지기가 흩어지기 시작했으니까. 진원과 공력이 전신으로 퍼져나가 가라앉아버렸다. 그들 은 절망과 괴로움과 고통과 공포를 동시에 맛보았고, 그 고통을 맛본 순간 머리통이 정확하 게 날아가버렸다.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벌레 죽이듯 간단하게 죽어버린다. 어떤 동작 도 무공도 없이. 현청은 문득 무서운 기세로 쏘아져 들어 오고 있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신승 공공. 무섭도록 정확해진 시야 앞에 그의 존재는 간단하게 들어왔다. 공공은 문열과 단월을 껴 든채 50여장 밖에 착지했다. 그리고 문열과 단월을 내팽겨치고 나서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왔다. 일반인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죽어 넘어 질듯한 살의와 분노가 공공에게서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공공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주변에 남은 잔재의 기운을 읽어 나가 면서 조심스레 대조를 끝냈다. 그리고 운의 심장을 찌른 검날의 검극과 운의 사체에 남아있 는 기운의 잔재가 바로 공공의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어떤 감정의 동요는 없었다. 마침 죽으려고 다가오니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그는 냉 엄한 눈으로 공공을 바라보았다. 공공은 두말없이 심격권을 날리며 달려들었다. 무려 3초만 에 50여장 거리를 좁혀버린 공공의 권에서 투명하면서도 강기와 본질적으로 다른 마음의 권 이 찔러들어왔지만 그것은 날아오다가 공중에서 흩어져버렸다. "이…… 이것이 신화경!" "당신이었습니까? 그리고 이유는?" 현청은 짤막한 질문을 던졌다. 그 지독히도 무심한 현청의 눈길에서 공포를 느낀것인지 공 공은 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면서 기세를 돋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죽어야 하는 존재들이다. 무극지기를 본 자들은 말이지." "이유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현청이 그렇게 질문을 던지자 공공은 치를 떨었다. 공공은 현청의 '존재감'이 턱없이 거대해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눈빛도 평이하고 그냥 감정을 상실한 사람 처럼 밖에 보이지 않지만 반무극조차 포용하는 진정한 무극. 아무런 색깔도 칠할수 없지만 동시에 무슨 색깔도 될수 있는 그 지독한 냄새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무의 극한인가! 이것은 인간이 아니다! 무의 극한을 추구해서 인간이 아니게 된다면 차라리 무공을 버리리라!' "작금의 무림을 보게. 자네는 틀림없이 나보다 높은 경지였지. 반수 정도? 그런데 그런 자네 가 하는 일이 뭔가? 그냥 산골에 파묻혀서 은거라도 했으면 나도 건드리지 않았겠지! 그런 데 자네가 하는 짓이 뭔가! 정사마중 어디가 이기든 상관은 없어! 그래도 무림이니까! 하지 만 자네나 나같이 단신으로 수만명을 죽여 없애기에 충분한 자가 등장하면서 무림은 무림이 아니게 되었네. 자네가 한 일이 뭔가? 그 압도적인 힘으로 밀려서 사라져야 했을 천류세가 를 도와 수천의 사람을 죽여 없애고 대세를 바꾸었지. 문열이나 단월은 차라리 나아. 이들은 그래도 골수 무인이니까! 하지만 자네는 아니야! 자네는 결코 무인이 아니야! 절대로 무인이 될수가 없어! 그 서륜이라는 자는 그래도 세력을 형성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자네는 대체 뭔가! 부평초처럼 그렇게 목적없이 자신에게 닿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떠도는 것!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여파가 될지 자네는 몰랐다는 건가! 스스로의 거대함과 스스로의 가치를 전혀 몰랐다는 건가!" 공공이 절절함이 실린 목소리로 그렇게 외침을 던졌다. 그러나 현청은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 무표정했다. "당신의 논리를 적용해볼까." "뭐라고!" "나같은 괴물이 있건 미친놈이 있건 간에…… 무림은 무림이야. 제멋대로 돌아가건 말건 상 관 없어. 그것도 세계고 하나의 흐름이 아닌가. 발전도 과학도 모두 마찬가지야. 이것 저것 모두 다 뒤섞이건 아니면 하나하나 떨어져 박터지게 내가 옳네 네가 옳네 하면서 싸우건 그 것도 결국 하나의 흐름이지. 순천이 역천이고 역천이 순천이다. 어느것을 구별하는것 자체가 인간의 관념이지. 사람이 그 존재가 거대해서 대충대충 살면 다른 이에게 피해가 가니까 묻 혀 살거나 적당히 대충 해 두라고? 웃기지마. 그런식으로 말하면 골수 무인이건 골수 무인 이 아니건 결국 사람이지. 천류세가가 내 존재로 인해 거대화 되어서 무림을 뒤섞어 갈아 엎는게 문제라고? 나는 인간 아닌가? 나도 인간이다. 칼로 찔리면 죽지. 단지 기를 받아들 여 그것으로 대 파괴를 할수 있을 뿐! 같은 인간은 없지! 하지만 평등한 인간은 존재해! 그것 조차 모르면서! 아집과 고집으로 모든 것을 자기 멋대로 재는 당신이 차라리 더 악질이다! 나 같은 존재는 세력 형성도 안되고 관여하지 말란 말인가! 그래! 나는 이방인이지! 그러니까 관여하지 말라고 하면 뭐라고 하지 않겠어! 그러나 당신의 주장이 옳은가! 세상에 진리란 존재하지 않아! 모든 것에 답은 있지만 세상에 정답은 없어!" 현청의 싸늘한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외침에 실린 톤의 변화도 거의 없었지만 그 외침에 실린 감정은 깊디 깊었다. 공공은 그대로 현청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할말은 없겠지. 그러나 그쪽이 그렇게 주장한다고 내가 나 나름대로의 선으로 분류한 '악'을 방관하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그럼. 골. 수. 무. 인. 답게 힘으로 증명 해 봐!" 현청의 눈이 싸늘함을 더하고 공공의 눈이 살의를 더함과 동시에 둘은 무서운 속도로 도약 해 부딪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부딪힘은 단 세합으로 끝났다. 공공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 는 투명한 강기의 소용돌이와 심격권의 발출은 현청의 손짓 두번으로 인해 그대로 갈라져 나갔다. 대 폭발이 일어나며 둘은 두번의 부딪힘을 끝냈다. 그리고 현청은 그대로 텔레포트해서 하늘로 치솟아 올라 무형의 검을 퍼부었다. 입자 사이 로 파고드는 기의 흐름들. 무수한 얇은 검날과 칼날이 쏟아져 내린다. 현청의 몸을 중심으로 전방위全方位로 터져나갔던 투명한 흐름들은 휘어지며 그대로 공공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 린 것이다. 피가 퍼억 하고 터져나가는 모습이 꽤나 화려했다. 공공의 몸에서는 어마어마한 금빛이 뿜어져 나왔지만 그 투명한 칼날은 금빛의 서기마저도 휘말고 들어가서 뚫은 것이다. 충돌하지 않았다. 오히려 금빛 자체가 그 무형검으로 변화했 다고 하는게 옳을 것이다. 동조하는 힘과 지배하는 힘. 그리고 동화하는 힘과 변화시키는 힘. 이것이 바로 무형검의 중심이 되는 이론이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무공과 스스로의 노력을 더해 무극지기를 얻어낸 절세의 고수 공공은 그렇 게 유언 한마디조차 하지 못하고 단숨에 즉사한 것이다. 현청이 마음만 먹었으면 한합 겨룰 사이도 없이 죽어 넘어졌겠지만…… 현청은 가볍게 착지해서 한마디를 던졌다. "정리 끝." 가벼운 한마디. 무심하고 가벼운 걸음. 모든것이 무의미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감정이 다 사라진건 아니고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 해야 옳았다. 이성과 자아가 치유되었고 그 존재가 거대해져서 감정을 포용하는것 뿐이다. 감정은 오히려 더 커졌다. 현청은 조용히 운의 사체에 다가갔다. 그리고 왼손을 얹어 그의 심장께에 얹었다. 그러자 놀 랍게도 심장이 아물고 다친 폐도 아물었고 폐도 아물어갔다. 죽은 사체이고 죽은 세포이지 만 완전 생명소실하지 않은 세포만을 되살려서 생명작용을 증폭시키고 상처를 치료한다. 그리고 가벼운 염을 가했다. 그것만으로 운의 몸은 점점 얼어붙기 시작해서 거대한 얼음 기 둥에 가두어진 꼴이 되었다. 사각의 기둥이었다. 현청은 천인검과 청천검을 집어 들었다. 아 니 저절로 그것들이 그를 향해 날아들어왔다. 천인검과 청천검의 검집 모두를 챙겼다. 운은 결사를 각오했었는지 청천검의 검집을 풀어 던져버린 것이다. 그것들 모두를 갈무리했다. 그리고 맹주의 사체를 바라보다가 염을 작용해 바닥에 그대로 판박이해 으깨버렸다. 시체훼손이라고 해도 단순한 분풀이일 뿐이다. 현청은 무심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비만 오면 제격일텐데. 그렇지만 별 의미는 없는 동작이었다. 모든게 자연스 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주가 하나뿐인 장례식인가…… 크하하하하!" 그의 메마른 웃음소리가 천망봉으로 울려 퍼졌다. 그렇게 메마른 웃음을, 건조함이 찾아드는 이 장소에 던진 현청은 조심스레 쓰러진 문열과 단월에게 다가가 그들이 입은 내상을 간단 하게 치유하고는 내력을 이용해 깨어나는 것을 조금 늦추었다. 그리고 한숨을 가볍게 흘린 다음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현청은 조심스럽게 운의 얼어붙은 사체를 끌어안은채 걸어서 천망봉으로 향했다. 천류세가의 멸문과 무림맹의 멸망. 모든 고수들의 죽음과 더불어 천류세가의 세력은 흩어졌고 무림맹의 세력은 마교에 의해 대 부분 다 지워져버린다. 그러나 무공비급을 불태우는 등의 처사는 없었다. 오히려 마교는 무 공비급을 남아있는 잔당들에게 돌려주고 모든 무림에 손을 뻗기 시작했을 뿐이다. 천류세가 와 무림맹의 멸망은 정말 끔찍할 정도로 대단한 여파를 가져왔다. 주축의 해제가 일어났지만 승자는 마교. 어부지리도 이런 어부지리가 없지만…… 마교 측에 서는 이것이 어부지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마교 상층부와 운과 영이 계약을 통해 이루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천류세가의 남은 세력은 3할에서 4할 정도. 그들 은 흩어져버렸고 어딘가에 흡수되거나 숨어 살기도 했다. 자금이 없기 때문에 모이려고 해도 모일수가 없다. 천류세가의 자금줄은 깨끗하게 흩어진 것이다. 구심점이라곤 둘밖에 없는데 하나는 죽었고 하나는 행방불명이니…… 게다가 마교 가 그것을 흡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천류세가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 핏줄마저도 지워져 버렸으니…… 하나의 혈통이 단절된다는건 실제로 가능하긴 했던 것이다. 그 흔한 방계조차 남아있지 않았으니 구심점이 있을리가 없었다. 무림맹의 남은 잔당들은 당연하게도 정도무림의 재건을 위해 암약하기 시작했지만 세력 대부분을 다 잃어버렸으니 어떻게 부활시키기가 쉬울수는 없었다. 천하는 의외로 조용했다. 마교가 무림을 다스린다고 해서 무슨 천하가 피와 살로 뒤덮이는건 아닌 것이다. 실제로 모든 제국 전체를 마교가 국가로써 지배하는게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마교는 힘을 숭상한다. 그런즉 머리 돌아가는 그들 상층부의 세상이 찾아온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서류 의 처리와 일거리가 쌓인 탓에 피로가 쌓여 괴로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도천하를 이루긴 이루었으니 즐거운 괴로움이 아닐까? 마도 천하가 되건 정도 천하가 되건 간에 고인 물은 썩는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마교가 썩어가는 날 정도는 다시 등장하게 될 것이고 정도가 마도를 몰아내고 다시 정도 천하를 이 룩해 봐야 썩어가긴 마찬가지다. 마교가 뒤집어 엎은 것을 성공한 예는 그다지 많지 않았고 항상 정도는 금방 회복했다. 그러나 이번엔 치명타중의 치명타였고 적어도 300년 이상은 마 도천하가 계속될 것이다. 적어도 300년 이상은. 다만 이제 천하의 모든 무인들이 궁금해 하는 바는 교룡평의 화경 이상의 고수들중 유일한 생존자인 천하제일인 은영천검이 어디로 가버렸나 하는 점이었다. ----- 대미大尾. 그리고…… 모든 싸움이 끝났다. 아니 끝났다고 생각된다. 나는 얼음 기둥이 되어버린 운의 몸을 그대로 끌어 안았다. 세번째 환골탈태라고 생각되는 신비한 현상. 나라는 자아自我 자체가 거대하게 변해 세상으로 퍼져 나가는 듯한 그 감각 끝에 내가 얻은 힘이라는 것은 신화경의 그것. 모든 무인들이 갈망하고 있는 힘이다. 아니 무인이 아니더라도 얻고자 할 강대한 힘이다. 그런데 그게 무소용해졌다. 이것을 이용해서 할수 있는 일이라는게 결국 뭐지? 사람 죽이는 것? 아니면 파괴하는 것? 자연과 하나가 되어 물아일체가 된다. 의지 하나만으로 자연은 움직이고 기는 흐른다. 하지 만 그것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에 있어서 나는 이 힘이 더 이상 어떤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살아가다 보면 틀림없이 이 힘을 쓸 일도 생길 것이고 인연도 생기겠지. 하지만 지금 에 있어서 수많은 인연이 무소용 해졌다는건…… 확실하다. 이 세계에 처음 떨어지고 나서 만났던 두명의 사람 모두가 죽어버렸다. 처음 이었던 인연이 끊어져 나간 셈이다. 이미 끝나 버린 일이다. 나는 천망봉으로 오르는 길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면서 짜증을 느꼈다. 고도가 상당히 높은 산이었기 때문에 점점 입김이 퍼져나간다. 사람을 되살릴수 없는 바에야 더이상 이 힘은 무 의미했다. 삶의 의미가 있어서 살아온건 아니다. 죽지 못해서 살았다는게 정확하겠지. 하지 만 죽어도 상관은 없다. 이 생각이 모든 것을 망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어리석었다. 아니 지금도 어리석다. 아주 조금이나마 결론을 내었지만…… 이젠 모든 철학, 관념이 무의미하다. 나는 관념의 노예였고 어설픈 지식으로 냉소만을 보내던 쓰레기 다. 지킬 것조차 지키지 못하다니. 힘이 없어서 그랬다면 모를까 나는 힘이 있지 않았는가. 충분하다 못해 과한 힘이. 나는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서 움직였다면 모든 것들은 풀려 나갔 겠지. 하지만 나는 다른 차원의 존재이고 또 인간을 기초하지만 인간이 아니다. 여전히 족쇄 는 나를 묶었지만 이젠 자연스럽다. 영혼이 육신을 정벌했을때 내면에 자리하던 하나의 존 재. '그'는 나이지만 또 내가 아니다. 내가 그를 인정하고 인지했지만 그가 나를 어떻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 듯 하다. 내가 내 가 아니게 된다는 그 자아 상실은 정말 공포스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덴티시 크라 이시스라고 하던가? 그런 것이 위협받는다는 것은. 세계와 내가 단절되고 완전히 끊어져 사 라진다는건 정말 공포였다. 죽음이 아니라 소멸. 이거나 저거나 마찬가지인데. 죽음이라는 것은 환생하게 된다는 의미다. 기억이 사라지게 되 니 죽는다는건 그 자아의 사라짐이다. 영혼에 개연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실제로 내가 당할뻔 했던 것은 완연한 자아의 파멸. 그것이 나는 두려웠던 것이다. 죽으면 죽는 것이지만 그렇게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영혼의 개연성을 잃게 되는 것은…… 어지러운 생각도 상관 없이 내 육신은 걷고 또 걷는다. 이미 인간의 몸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이 몸. 주변의 기와 똑같은 흐름의 진기. 혈맥의 의미 가 사라졌지만 영기靈氣를 실제로 다루게 되었으니 가벼운 염 만으로도 이전의 무공과 같은 것을 쓸수 있다. 체계가 변하긴 했지만 별로 달라질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예전부터 그러했 다는 듯 나는 적응했다. 수많은 기척들이 포진해 있는 장소로 걸어갔다. 아직 분혼동에 남아있던 자들이 빠져나오는 것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은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천인검과 청천검 을 받아 허리춤에 찬 다음 운의 얼어붙은 몸을 추스르면서 다시 걸어갔다. 차갑지만 내 육 신은 그 차가움에 영향받지 않는다. 절대영도같은 온도라면 당연히 타격을 입고 죽겠지만 지금의 나는 남극에 존재하는 냉기의 빙정속에서 헤엄친다 하더라도 육신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괴물'이 된 상태였다. 인간 이 인간을 초월하면 괴물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신이되니 신선이 되니 하는 식의 거 창한 이야기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간성의 상실. 인간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성도 감성도 모든것이 자연스럽고 살아있다 는 느낌조차 얻지 못한다면 남는건 세월이 주는 광기 외엔 없다. 그것을 견디려면 하루 하 루를 진취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쉽겠는가. 세월이 주는 무게란 진취적으로 산다는 결심 하나만으로 어떻게 해볼 것이 아닌 것이다. 이제 20년 정도 산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수 있느냐 하는 것은. 내 영혼이 그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면서 내가 아닌 '그'에게선 숨길수 없는 광기가 존재했다. 내 내면에 잠 들어 있는 놈에게서 상당한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어차피 자기혐오 외엔 아무것도 아니 고 그놈을 죽이는건 자해나 다름없다. 내가 앞으로 할 일은 속죄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나름대로 많은 것에 답을 내었고 이 제는 나 스스로가 무덤덤해졌다. 위의 생각들은 관념들이고 그 관념 자체가,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모두가 자연스럽다. 신이 되어 자아를 가진다 하더라도 그 자아는 결국 모든 것에서 집착을 잃어가는 자신에 대한 자위가 될 뿐이다. 기척들은 어느새 다가와 시야에 드러나고 있었다. 나는 뭐라고 말하려는 그자들에게 손을 휘저었고 그것으로 그들은 죽었다. 그들의 몸에서 진원과 진기가 흩어지면서 바깥으로 흘러 나와 소실된 것이다. 생명력인 선천진기까지 모두 다 흩어버렸기에 그들은 그 자리에서 즉 사했고 다시 주저없이 걸음을 옮겼다. 쓰러진 50여구의 사체를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걸어서 올라간다. 날아서 가도 상관은 없을 것이나 지금의 나는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육신에 적응했다고 해도 그것이 완전하게 끝 난 것은 아니다. 영혼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육신. 아니 육신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고 해 야 할까? 정기신령의 미묘한 부조화는 나에게 위화감을 주었다.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 가능할까. 문득 멀쩡한 시체와 얼어붙은 운의 사체를 번갈아 바라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 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시험삼아 멀쩡하게 죽어있는 사체를 향해 다가가 주변에서 선천진기와 진원기, 진기를 형성하며 죽어 혈맥이 막혀가는 사체의 혈맥을 뚫어 나가면서 선천진기와 진원기등을 복원했다. 그리고 멈추어버린 심장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파지직 하고 손에서 일어나는 전류. 그리고 덜컥 하고 움직이는 사체. 그러나 곧 선천진기는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기와 영기 만 으로는 살리기가 힘든걸까. 아직 떠나지 않은 영체의 코드를 육신에 이어주기도 했지만 코 드는 다시 뚝 떨어져 나갔다. ……개연성이 문제인걸까. 잠시 생각에 잠겨서 죽은자를 살릴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시험을 하며 50여구의 시체들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놨지만 답은 불가능하다라는 것이었다. 정기신령을 만들어 개연성을 부 여하는 것은 지금의 내 경지에서는 할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득 예하엘이라 는 고집불통의 노인네에게 생각이 미친 순간 나는 조금의 희망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살릴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법이라는 힘은 나에게는 미증유이고 또 불가사의한 힘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알수 없 으니까. 그가 쓰던 힘들은 상당부분 자연법칙이나 과학에 의거한 것들이었다. 물론 그 자연 법칙이 자연에서 직접 일어나지는 않지만 변형에서 응용으로써 끌어냈다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는건 응용할수 없지만 치유하는 마법은 있지 않을까? 그것이 강화된다면…… 그것이 궁극에 이른다면 죽은자도 살릴수 있지 않을까? 의문은 의문을 부른다. 나는 운의 사체를 끌어안으면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나는 그대로 도움닫기 없이 그대로 떠올랐고 곧 분혼동으 로 접근할수 있었다. 수직절벽 한가운데에 나 있는 통로. 그리고 아래에 박혀 있는 쇠 정들. 나는 그것을 박찰 필 요도 없이 바로 꽤 부서져 있는 통로의 입구로 다가갔다. 위에서 석벽이 내려와 차단되는 방식이었지만 석벽은 파괴되어 있었다. 패도적인 기공을 쓸수 있는 무인들이 힘을 합쳐서 파괴한것 같았다. 파괴된 석벽 자체를 가벼운 의지만으로 도려내서 아래로 던져버렸다. 눈앞에서 기의 흐름만 으로 물질이 베어진다는 것은 무인들이 쓰는 검기나 강기와는 수준이 틀린 것이었다. 형태 가 없고 그 응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는. 무형식의 극이기에 오히려 형식에 맞추어서 쓸 필요를 느낄수 있는 이것이 무형검無形劍이란 말인가. 이렇게 쉬운 것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 우습다.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힘을 활용하고 있었고 익숙해지기만 하면 싸움에 얼마든지 응용할수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기를 이 용해서 과거의 무공을 재현해 내야 하는 것일까? 문득 의문이 생겼다. 일단 혈맥에 주천하는 방식으로 기를 움직여서 뿜어내보자 강기는 현경에서 기를 유도하는 방식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대로 발출되어 절벽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돌가루가 쏟아지는 모습이 볼만하다. 결국 이전의 무공도 예전 방식대로 쓸수 있다는 것인데…… 영기를 이용 해서 다루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여러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그 살상력과 파괴력에 있어서는 이전의 무공과는 비교가 되지 않 는 강력함을 지니고 있다. 그것만큼은 사실이었다. 기껏 깨달아서 하는 짓이 부수고 베고 파 괴하는 짓 밖에 없다니 처참하지만 그래도 의술의 방식으로도 쓸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의 안도를 가져다 주었다. 상단전上丹田에는 영기靈氣 자체가 존재한다. 주술사들이 사용하는 힘이란 영력이다. 영기를 상단전을 '통해' 받아들여 영력화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오로지 상단전 은 힘을 모으는 장소가 아니라 무신巫神을 받들며 영계와 통하는 장소라고만 생각해 왔었 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예외로 혈천교의 술사들은 영력靈力을 바탕으로 그것에 심법을 유입해서 보조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다. 백회혈 위에 존재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무언가가 백회 혈을 통해 상단전이라는 길을 따라 영혼에 그 영기를 동화시키며 저장한다. 그러면서 영혼 의 격을 높여가는 것이 바로 영력으로 인한 수련이다. 나 역시 이제는 상단전에 기를 보내 단순히 시각, 청각외의 여러 감각 증폭이나 몇가지 특 수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단전을 중심으로 하여금 영력을 다룰수 있게 되었 다. 아니 영기를 다룰수 있게 되어서 영력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옳지만 단지 격이 높다는 것 외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영기를 통해 주변의 영기를 내 영력으로써 사용하며 그것을 이용해 기의 힘을 극도로 끌 어낸다. 이것이 그 메커니즘이다. 물론 기의 힘이 이것으로 끝나진 않을테지만…… 이전보다 기의 사용량이 늘어났고 훨씬 자유롭다는 것 하나만으로 신화경의 존재는 현경급 존재들 수 천이라도 억눌러 버릴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기를 다루는 자들 중에서 신화경의 존재와 싸 울수 있는 것은 신화경의 존재 뿐이다. 그러나 중단전中丹田은 또 다르다. 중단전은 신체의 중심. 즉 모든 혈맥에 고루 기를 분포하 게 만드는 것과 생사현관의 존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현경에서는 달라진다. 바 로 그 무극지기無極之氣에의 활용과 전체적인 순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주변의 기를 제압 해서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하다. 세맥이 전부 외우주로 열려있으니까. 중단전의 힘은 탁기濁氣조차도 포용한다. 모든 기운과 성향을 띌 수 있는, 비어있으면서도 가득 차 있는 기운 무극지기. 그러나 현경의 무극지기도 수박 겉 핥기 수준이다. 신화경에서 는 또 수준이 달라진다. 선천진기조차도 마음대로 다룰수 있게 되니 영생永生. 즉 불로불사 를 할수 있게 된다. 물론 불멸不滅은 아니다. 신체에 예속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수준이 틀리다는 사실은 달라지 지 않는다. 확실히 다르다. 예전에는 최대의 최대로 중단전과 상단전의 배합을 써 봐야 거의 반경 10km에 달하는 기운 정도만을 느낄수 있었는데…… 이젠 '내'가 천지사방天地四方으로 뻗어나가 나 자신이 관조 할수 있을 듯 하다. 그 범위 역시 열배는 늘어났다. 그리고 하단전下丹田은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었다. 아예 사라져버린 것이다. 중단전과 상단 전의 존재도 어떤 흔적이지 하단전 자체는 전신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기존의 혈맥穴脈 자 체가 사라진 상태다. 물론 그 흔적에 따라 기를 운용하면 얼마든지 변용을 할수 있지만 상 단전의 힘은 그 필요마저 없애버렸다. 이전에는 세맥의 세맥까지 기운이 모두 들어차 있었지만 결국 그것도 맥이 있기 때문에 어 떤 순서가 필요했고 기력이 떨어져 혈맥에 순환하는 기운을 모두 사용하면 단전의 힘까지 끌어 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자연이 나이고 내가 자연이며 동시에 기氣의 존재가 나에게 동조하고 있었다. 통로로 들어서 걷는 도중에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날아오는 암기들이 눈 앞 5m쯤에서 팍 하 고 부서져 나가자 제정신을 차렸다. 기 자체가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자살이야 물론 못 할 것도 없겠지만 기 자체가 나를 수호한다. 내 본능과 무의식의 힘은 기와 동조하며 이 주변 의 모든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제정신을 차리고 나자 내가 설계도를 고쳐가면서 모두 외운 장소이기에 기문진의 부자연스 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나 기관장치를 바로바로 파해하며 들어설 수 있었다. 내가 이 곳에 온 이유는 단 하나다. 설계도를 고쳤을때 가장 고심한 점은 전 체적體積이나 어떤 흐 름에 완전 외따로, 즉 기관을 보면서 유추할수 없이 떨어져 있는 장소에 공동 하나를 만드 는 것이었다. 힘든 일이지만 하는 데는 성공했다. 약간 흠은 있을지라도 괜찮을 것이다. 손 을 조금 써 두면 괜찮을 거라고 본다. 그 장소에는 특별한 것을 설치했다. 한망빙령진寒網氷靈陣이라는 기문진을…… 아직 발동發動하지는 않았지만 괜찮을 것이다. 오행이나 여러가지 흐름을 통해 엮고 엮어서 어지럽게 만들어 놓은 기관진. 습기도 꽤 차있 지만 단발치기로 만든 거라 상관하지 않는다. 걷고 걸어서 한시간이나 지났을까. 나는 조심 스럽게 벽의 돌을 매만졌다. 이 근처는 아예 습기가 없었다. 설계를 고심해서 했었으니까 습 기가 있는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그그그그긍 돌 조각이 튀어나온 것들을 순차적으로 누르고 벽에 달려 있는 횃불걸이를 당겨주자 다시 횃불걸이는 내려왔다가 올라가며 철컥 하고 뭔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둔중한 소리가 났 다. 그리고 전혀 이상할 것 없이 막다른 곳의 돌은 그그그긍 하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밀려 나가고 있었다. 후. 제대로 설계하긴 했구나. "……" 전혀 다를 것 없는. 그냥 폐쇄되어 있어서 눅눅한 공기를 지닌 장소. 환기도 제대로 되도록 순환시스템을 집어 넣었고 여러가지 편의를 본 장소다. 별 다를 것 없는 방이지만 대리석을 많이 사용했기에 새하얀 빛의 방이었다. 운의 딱딱하게 얼어붙은 몸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 섰다. 어두운 방이었지만 나에겐 시야가 중요치 않았다. 한망빙령진의 중앙에 설치한 또 하나의 작은 진을 발동시키자 기운이 모이고 영기가 교차하 면서 공중에 희미한 광점이 맺혔다. 그리고 그것은 조금씩 밝아지다가 멈추었다. 만월의 월 광보다 조금 더 밝은 수준의 빛은 한 변이 10m쯤 되는 정사각형인 방의 구석구석까지 맺히 며 밝혔다. 눈부시지도 않았다. 은은한 수준이다. ……이곳에 운이 묻히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차라리 죽는다면 내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 었다. 둘 다 죽으면 쓰여질 일도 없었고 둘 다 살아도 마찬가지다. 그냥 묻어두려고 했었다. 하지만 기어이 불현듯 예감이 들어 만든 장소는 너무나도 요긴하게 쓰이고 있었다. 사체死 體를 보존하기 위해 만든 장소였다. 여기는. 방 중앙에 존재하는 둥그스름한 석대에 손을 짚었다. 오행중 수水를 끌어들이면서 물의 입 자를 끌어들였다. 통로 바깥에 존재하는 습한 통로에서 물기들이 날아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가 되었을때 나는 기둥이 된 물 안쪽으로 운의 사체를 집어 넣었다. 잠든 듯 표정은 없 는 몸이고 손상된 부분도 없는 몸을 물 기둥의 가장 안쪽에 집어 넣고 손을 빼 냈다. 물의 기둥 표면에 손을 얹은 나는 영기를 운용했다. 나는 조금이지만 희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위해서라면 시신이 상해서는 안 되겠지. 원래 이 제단은 안식처다. 둥근 형태지만 관을 가져와서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런 용도로 쓰이게 될 줄이야…… 내 손끝에서 퍼져나온 싸늘한 한기는 공기 기포조차 없이 매끈하게 물의 기둥을 얼음 기둥 으로 바꾸어 놓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춥지는 않을까? 아직 운의 영혼이 그대로 남 아 있었지만 난 무사지 영매가 아니다. 대화도 할수 없고 볼수도 없다. 기운만 느낄수 있을 뿐이다. 심안을 열어봐야 영혼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이렇게 안타까울 줄은 몰랐다. 그래도 볼수 있었다면…… 운이 늦게 왔다고 원 망을 하더라도 오히려 그것이 다행일 것이다. 죽은자는 공포다. 하지만 나에겐 아니다. 왜냐 하면 난 죽음에 너무 가까이, 오래도록 붙어있었다. 민간인이라면, 정상인이라면 그날 잃어버린 한 친우나 가족이 밤에 찾아온다면 공포를 먼저 느낄 것이다. 생각만 해도 한기가 돋아 오를 정도겠지. 망자는 그래서 떠나야 한다. 산자와 죽은자는 다르다. 하지만 나같은 놈에겐 죽은자나 산자나 다르지 않다. 물론 볼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대화할수 있다면. 그때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귓가에 소리가 들렸다. "이런 멍청한……" 나는 움찔 하면서 뒤를 향해 신월형의 무형검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로 사라졌다 고 느낌과 동시에 뒤를 돌아보며 무형의 방어벽을 일으켰다. "다른건 몰라도 영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잖아? 살해당한 놈을 아직 발동하진 않았어도 냉기와 음기의 성향을 띈 진법 안에 처박아 두다니 원한령을 만드려고 작정을 한 건가?" 이죽거리는 목소리. 그러나 울컥함 따위는 없다. 사실이니까. 나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 다. 매끈한 은백색 머리카락에 스타 다이아몬드 같은 눈빛.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그 아 름다움과 알수 없는 어떤 깊은 동질감에 머리가 아팠다. 참을수 없을 정도로. "당신은?" "치에. 그쪽은?" "……현청.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나에게." 이름을 물은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물었고 나는 이름을 대답함으로써 응수했다. 그녀는 눈에 묘한 이채를 띄더니 조용히 말했다. "아. 아직은 없지. 다만 그 뒤쪽에……"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시야에서 그녀가 사라지자 마자 무형의 기운을 소용돌이처럼 일으키며 궐운의 기운을 얼음기둥 주변에 뿌려놓았다.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자 진공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옷자락도 흔들리지 않는 그녀는 나를 비웃는 듯한 눈매로 바라보고 있었다. "감각은 좋지만 이따위 기술로 나를 상대하려고 했어? 차라리 네녀석의 '힘'이라면 나았을테 지만. 아직은 부족한가?" "실버 블릿츠!" 나는 그 말을 듣자 마자 짤막하게 소리치며 손에서 뻗어나온 은뢰를 휘둘렀다. 이미 그녀의 눈 앞에 텔레포트로 나타나 검을 내리 그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 내 은뢰는 튕겨져 나가 버렸고 나는 뒤로 완전히 튕겨 나갔다. 무형의 기운에 성향의 변화를 주어 충격을 막고 착지했지만 갑자기 입에서 피가 게워져 나 오며 내장이 갈기갈기 찢어진 듯한 통증이 일었다. "크윽. 쿨럭." 무릎이 바닥에 부딪히며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기운을 운기해서 몸을 회복시켜 나갔지만 시야가 흐릿하다. 3분여도 지나지 않아서 제정신을 차린듯 했고 몸 역시 조금은 회복되었지 만 대체 내가 어떤 타격을 받았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그녀는 나의 낭패한 모습을 오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흐려진 시야가 맑아지면서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행동력도 있군. 하지만 아직은 멀었어……"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것은 모든 빛깔이 모여 있는 듯한 기이한 채찍이었다. 주변을 핑글핑글 돌며 잔영을 남기고 있는 채찍은 그야말로 살인용이라는 것을 쉽게 알수 있게 했다. 채찍 전신에는 기이한 빛의 비늘이 돋아 있었으며 아홉가닥의 캣 오 나인 테일에 끝에는 쇳조각 까지 붙어있었다. "역시 소중한걸 잃으면 많이 변한단 말이야. 그나저나 10서클의 마법사가 쓸수 있는 힘을 좀 응용한것 뿐인데 이렇게 깨져버리다니 대체 그녀석을 어떻게 상대할 셈이지? 서대륙에는 네녀석의 숙적이 있다고." "……?" 숙적? 나와 무슨 원한이 있는 존재가 있단 말인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서대륙에 말이 다. 나에게 있어 원한은 원한이 아니다. 입가에 묻어나는 피를 닦아낸다음 기를 운용해 하나 하나 입자를 분해해서 날려버렸다. 그리고 조용하게 은뢰를 양손으로 단단히 틀어 쥐었다. "네녀석은 아직도 포기를 못한 모양이구나." 무섭도록 번쩍이는 그녀의 눈빛에 질릴 지경이었다. 압도적인 강함을 지닌, 나와는 격이 다 른 상대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왜 이러는지도 모르고 그녀가 이렇게 나오는 목적도 모르지만 포기할수는 없었다. "부활復活. 그러니까 리바이블Revival은 10서클 주문이지." 그 말을 듣자 머리가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마법에…… 부활 주문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것을 알려 주는 의도도 알수 없고 이해하기도 힘들다. 나는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피식 웃으며 채찍을 한번 쳐냈을 뿐이다. 내 손에서 은뢰가 어떻게 벗어 난 줄도 몰 랐지만 은뢰는 그대로 손에서 벗어나 천장에 박혔다. "그리고 성직자들 중에서 아슈라스님의 신관들도 부활 신성법을 쓰는 자들이 꽤 많아. 하지 만 적어도 그들은 절대 너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거다." "……" 어째서? 하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없이 채찍을 거두었다. 어디서 튀어 나왔 는지도 모르던 채찍이 그녀의 손으로 빨려들어가자 나는 깜짝 놀랐다. 은뢰와 같지 않은가? 저 채찍은…… 소환시나 귀환시나 내 은뢰와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 파장이 느껴졌다. "호오…… 의외로 감이 좋은데?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더 빠르잖아?" 그녀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면서 나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어쨌든 서대륙. 그러니까 아스타르에서는 부활의 방도가 있지. 하지만 말이야. 우리가 너를 제어하려면 이게 있어야 하거든?" 그녀는 어쩐지 묘하게 보이는 미소와 함께 얼음 기둥에 손을 얹었다. 운의 사체를 가져갈 셈인가! 내가 놀라서 무형의 기운을 제어하려 들자 그녀는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갑자기 이 주변의 기운들이 밀려나가고 나의 염 역시 바깥과 완전히 차단되어버리는게 아닌가? 갑 자기 숨이 막혀왔다. 그리고 확신할수 있었다. 저 여자는 인간이 아니다! "시체엔 취미 없어. 이즈는 모르겠지만. 자!" 운의 몸에 남아있던 영혼의 기척이 그녀의 손으로 옮아갔다. 영혼의 기척은 영기와 기 외에 여러가지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것이 운의 몸에서 너무나도 쉽게 빠져나와 그녀의 손 아귀로 빨려들어간 것이다. 설마 영혼을……? 내가 깜짝 놀라서 바라보는데 그녀는 나에게 묘한 비웃음을 지어보이면서 품속에서 구슬 하나를 꺼냈다. 새하얀 코트 안에서 구슬을 빼들고 그곳에 영혼을 흡수시킨 그녀는 빛이 변한 구슬을 품 안에 다시 집어 넣었다. "그리고 하나 알려주지. '서륜'의 영혼 역시 우리 손에 있다." 서륜의 영혼까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동요가 없었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저들은 나보다 강하고 또 그 영격 역시 드높다. 그런 자들이 나에 게 무엇을 원하여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알고 있겠지만 영혼 역시는 부활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체공학으로 복제를 하고 기억을 집 어 넣고 여러가지 절차를 통해 부활시켜봐야 그건 인형. 퍼스널리티 없는 영혼은 가치가 없 는 것처럼 아이덴티시 없는 부활은 가치가 없지. 영혼 복제를 해봐야 그 수치나 여러가지 변수로 값이 달라지는 것처럼 그 가치도 없어."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여러가지 단어를 쓰면서 설명하고 있는 그녀의 말에 어떤 반응도 보이 지 않았다. 은뢰를 염동으로 회수한 나는 그것을 다시 귀환시켰다. 어디로 돌아가는 지는 모 르겠으나 예전에 '나'와 부딪혔던 '그'에게로 돌아가는 듯 하다. "자.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참고로 말해두자면 시간이 얼마나 흐르던 간에 우리 목적이 달 성된다면 너는 그들을 다시 볼수 있을거야. 부활쯤이야 네가 당장이라도 각성만 한다면 쉽 게 이루어지겠지만. 그럼 See You Later∼" 한쪽 눈까지 찡긋 해 보이며 그녀는 허공으로 녹아들어가 사라져버렸다. 텔레포트 능력이 있는 나도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다. 내 텔레포트가 공간이동이 아니라 위상공간을 이용한 움직임인데 비해 그녀의 이동은 그 근원도 알수 없었다. "결국 서대륙으로 가야 하는가? 하긴…… 어차피 가야 할테니." 저들이 무엇을 요구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 운과 서륜이 그 들에게 있으니까. 서륜의 사체 역시 다른 장소에 보존되어 있다. 이전에는 힘을 무리하게 쓰 면서 사체를 보존해야 했지만 일단 얼리고 난 다음에는 상관 없다. 서륜의 사체도 50년은 갈 것이고 운의 사체도 그정도는 갈 것이다. 부활은 늦을수록 힘들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길 부활은 내가 지금이라도 각성을 한 다면 쉽게 이루어진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영혼. 기억매체가 육신에 종속되어 있다고 해도 영혼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세월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신화경에 익숙해지는 일부터 해야 겠군." 아직은 신화경에 완전히 적응하지도 못했거니와 그 힘을 모두 쓸수도 없다. 신화경에 익숙 해 진다고 해도 저 치에라고 한 여성이 죽이고자 한다면 막을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은 필요하다. 그녀가 말하지 않았던가. 숙적이 지금 사용할수 있는 '힘'도 견디지 못했다 고 말이다. 지금의 수준에서 나는 아직 나약하다. 그리고 결심했으니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이다. 어떤 수단도 모두 사용해야 한다. 지금부 터라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면. 나는 제국의 황제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철마와 만나서 대륙의 일을 모두 정리하고 떠나자. 일단 이것부터, 앞에 다가오는 일부터 최선을 다해 차근차근 넘기자. 그리고 어떤 길로 흘러가든 내가 소멸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겠는가. "그래…… 최선을 다해야지. 최선을." 다짐하듯 되뇌면서 함정이 가득한 분혼동을 빠져나왔을때는 차가운 북풍이 대지를 식히고 있었다. 어두워진 하늘에 가득한 구름은 건조함이 묻어났다. 이제 겨울인 것이다. 마음도 정 신도 모두 허무함으로 가득했다. 나는 분혼동을 내려와 문열과 단월이 쓰러져 있던 장소로 걸어갔다. 그들은 의식을 되찾은 듯 그 자리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인연을 정리해야겠지. 이제부터라도." 내가 의지를 발하자 기운은 나를 인도했다. 3초도 되지 않아 30m 높이의 하늘에 떠오른 나 는 점점 더 빠르게 가속하며 분지 상공을 비행했다. 이전에는 어풍비행술을 써야 했지만 지 금의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기의 흐름에 몸을 싣고 있었다. 나로써도 하루종일 음속으 로 비행해야 넘을 수 있을 듯 했던 분지와 그 경계인 산을 금방 넘을 수 있었다. 흐름에 따르면서 텔레포트를 응용하며 비행한지 3일이 지났다. 이젠 식사도 필요하지 않았 다. 상단전과 중단전, 하단전의 연계는 기운 자체를 몸의 활동 에너지로 삼을수 있게 되었 다. 영양분 손실도 없고 과다 열량도 없다. 공복감이야 있지만 소화액은 방출되지 않는다. 세포 하나하나를 연동하는데 쓰는 힘이 기로 보충되니까. 간혹 땅에 내려 길을 찾고 지명을 보면서 3일 내내 하늘을 나는 것도 지루했지만 나는 그것 을 멈추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내가 갈 곳은 지금으로써는 한군데였 다. 백마성으로 들어 섰을때는 꽤나 날은 추워져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눈이 내릴 듯 했 다. 북상하게 되면 눈이 내리는 것을 더욱 빨리 볼수 있을 것이다. 내가 영기靈氣를 다루는 방식은 주술사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백회혈을 통해 영기를 받아들 인다. 그리고 그것이 정도 이상을 지나면 어떤 수준에 오르게 되는데 그때부터 내가 영기를 제어하는 방식대로 힘을 쓸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혼의 머리 위에는 보이지 않는 고리가 있다. 영환靈環이라고 편의대로 부르겠지만 명칭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영기의 효용은 알고 있었기에 상당부분 이용할수 있었지만 연구를 꽤 오랫동안 해야 할듯 하다. 영기의 힘이란 기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고 덕분에 그 운용을 통해 간혹 당황스러운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내가 이런 것을 알고 있을리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이것들을 아는 것은 바로 내면 에서 이 지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버 블릿츠를 불러내는 내면에서 자연적으로 그에 대 한 지식이 풀려났다. 안개로 둘러쌓인 것처럼 뿌옇고 접근조차 할수 없었던 내면에서 '그'가 풀려나오고 검까지 소환하다 보니 그 내면에서 일부의 깨달음이 풀려나온 것이다. 갑자기 떠올라서 자연스럽게 내 지식의 일부가 된 이 정보들 탓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때 는 '그'를 설득하고 일을 처리하는데 바빠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묻어두었었다. 이 정보에 의하면 영환은 7개로 분할되어 있는데 그중 나는 가장 안쪽의 제 1환―그저 영기 를 영력으로 바꾸는 어떤 소통로이며 그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고급의 주술을 사용할수 있게 해주는 고리 만이 아니라 제 2환을 사용하고 있었다. 제 2환은 영기를 극한까지 빨아들여 일시적으로 영기를 대량 사용할수 있도록 해주는 것인 데 경지에 오르지 못한 자들이 함부로 사용하게 되면 영혼의 소멸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신 화경에 올라 있으며 내면의 검이 알려주는 바에 의하면 인간의 영성을 벗어나 있는 나는 그 영기의 사용량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정보를 정리하면서 영기의 힘을 이용해 내 모습을 빛속에 동화시키며 움직였다. 그리고 이 번에 새로 '뜨여진'눈인 예전의 감각으로 얻은 심안心眼이 아닌 진짜 심안을 통해 주변의 정 보를 시각화시켰다. 빛과 동화했으니 빛과 그 반사, 굴절등으로써 주변의 광경을 보는 육안 과는 다르게 적외선마저 일부 볼수 있는 눈이다. 백마성 상공에 떠올라서 움직이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았다. 위를 올 려다 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보지를 못하는 것이다. 육안 없이 심안으로만 보는 광경은 참 으로 묘하고 복잡해서 잠시간 어지러웠으나 금새 적응이 되었다. 아직 영혼을 볼수 있는 눈 인 영안靈眼이 열리지 않아 영혼은 기척만으로 밖에 볼수 없었다. 부유령같은 약한 영혼외에 죽은지 오래지 않은 영혼도 꽤 느껴졌지만 그냥 지나치면서 이제 는 완전히 무너지다 시피 했을 천류세가 본가로 움직였다. 본가는 며칠 사이에 꽤나 너덜너 덜 해져 있었다. 잔당을 소탕하느니 뭐니 하면서 불도 지른것 같았고 싸움의 흔적이 역력했 다. 그러나 그것 모두를 무시하고 본가의 내당으로 들어 섰다. 내당으로 들어가서 새까맣게 타서 무너진 영황전暎晄殿 앞에 섰다. 영황전이라고 해봐야 운 이나 내가 잡무 처리하는 장소다. 남아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단 한명의 사람 이 있다. 내가 도움을 청했지만 무시해버린 예하엘이라는 노인이다. 그의 말은 서방대륙어인 것 같았는데 나는 그 말을 간단하게 이해하고 말할수 있었다. 제노글라시아Xenoglossia의 능력이 기존의 능력에 추가되었다는 것을 여실히 알수 있었다. 예전에 신수사의 말을 쉽게 알아 들었던 것은 제노글라시아의 능력 덕분이다. 솔직히 내가 중국어를 안다고 해도 고대 중국어는 독음과 그 한자어의 모양새가 많은 변화를 거쳤고 사 투리도 심하다. 그런 것을 알아 들었다는 것 자체가 제노글로시아의 존재를 입증했던 것인 데 나는 다만 내가 배웠던 상고문자들 덕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너진 영황전의 재 위로 몸을 날린다. 이미 영기를 거둔 덕택에 나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 고 있었다. 영력은 없지만 제 2환의 효용으로 영기는 쓸수 있는 어처구니 없는 상태는 다만 신화경이라는 경지의 주축이면서 또 덤이다. 그것이 못내 속이 쓰렸다. 영황전의 중앙부에 선 나는 조용히 정신을 집중해 재와 타들어가다 만, 시커멓게 그을린 목 재등을 들어올려 그대로 날려보냈다. 그리고 중앙부에 원래 존재했던 돌 탁자를 그대로 텔 레포트 시켜서 날려보낸다음 염동으로 받아 소리없이 바닥에 떨구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은 마법진魔法陣이었다. 왜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원래 돌 탁자는 그대로 기관장치로 비끼게 되어 있 지만 장치가 망가진 이상 어쩔수 없었다. 직경 3m에 달하는 복잡한, 일전에 보아온 알파벳 과 유사한 룬과는 전혀 다른 룬이 새겨져 있는 마법진이다. 화재 속에서도 마법에 의해 보 호를 받았는지 멀쩡했다. 그 위에 올라선 나는 조용히 약속어를 외우면서 마법의 발동을 기다렸다. 예하엘이라는 노 마법사가 말하기를 아무리 자신이 고금에 드문 강력한 마도사라고 하더라도 바로 바로 텔레 포트 마법을 발동하기란 힘든 일이라 했었다. 마나Mana를 끌어들여 변환시키는 과정을 자 체적으로 수행하도록 만드는 마법진 자체도 고난이도라고 했으니…… 30초를 기다리자 마법진에서는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 상태에서 3분여를 더 기다렸을 즈음에는 백색광이 꽤 강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사용하던 텔레포트와는 뭔가 본질적으로 다른 공간의 변화와 함께 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고 있었다. 5m정도의 높이였 지만 사뿐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주변을 둘러보자 지형상으로 볼때 백마성에서 150km는 떨어진 공연산이라는 장소였다. 이 대륙에서 볼때 꽤 커다란 산이긴 해도 그리 높지는 않았다. 크지만 높지 않다. 중력이 지구 보다 좀 낮은것 같은데 왜 산이 높지 않은지 솔직히 알수가 없다. 대륙으로 볼때 판게아가 두조각으로 나뉜 정도라고 하더라도 시시콜콜한 지각변동은 있어왔을텐데.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자 기척이 멀리서 빠르게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예하엘일 것 이다. 마나 파동 탓이겠지. 그나저나 내가 쓰던 텔레포트와는 달랐다. 오히려 그가 보여준 블링크와 유사하다고나 할까? 위상공간을 이용하는 주문인 그것과 내 텔레포트는 신기하리 만치 닮아 있었다. "뭐냐? 또 무슨 일이냐? 네놈을 돕지 않겠다고 했잖느냐!" "……여기 안온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잊으셨습니까? 이미 결판은 났습니다." "……그럼 대체 왜 온거냐? 나는 마법 실험에 바쁘다. 어찌되었든 간에 마법기가 모자라고 여건이 딸리긴 해도 돌아가야 한단 말이다." 퉁명스럽게 말하는 40대 정도의 외형을 한 60대의 노인네. 금발벽안에 꽤나 미남이었지만 허약한 중년문사같은 외모를 하고는 분위기는 괴팍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한숨을 토해내고 는 입을 열었다. "마법으로 부활이 가능합니까?"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 마법으로 무슨 죽은 사람을 살려?" 어처구니 없다는 듯 반문해 오는 그.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회복마법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궁극에 이르면 사람도 살릴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 었습니다만." "네놈 주변 사람중에 누가 죽어버렸는지는 모르지만 내 상식 선에서 마법을 이용해 죽은자 를 살리는건 불가능해. 성직자 놈들중에 아슈라스 교단의 괴팍한 성직자 놈들이 여럿 모이 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기에 문제이지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닫았다. 생각해보면 그 치에라는 여성의 말에는 신빙성이 별 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솔직히 무엇이 아쉬워서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그 교단은 최후의 방도로 생각해 두고 있었다. "제가 들은 바로 10서클에 부활의 주문이 있다고 들은것 같습니다만……" "10서클? 10서클이라면 고대에나 있었던 것이고 그것을 쓴다는 것은 이미 인간에서 반쯤은 벗어났다는 증거가 되지. 드래곤들이야 펑펑 쓰겠지만 솔직히 사람을 살린다는건 법칙에서 어긋나는 행위다. 그 법칙을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지만 아카식에 다가가고 있는 영혼을 강 제로 끌어내는건 정말로 무리수지." 그의 말에 나는 고민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영혼'을 끄집어 내서 무슨 구슬 같은 것에 봉인하지 않았던가? 그거라면 상관없지 않을까? 나는 그것을 생각하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아직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 영혼을 끄집어 내서 영혼을 봉인할수 있는 재질의 구슬에 그 존재의 시공을 동결시켜서 보존을 하고 있다면요?" "8서클 마스터 수준의 마법으로 그런 기술이 가능하다면 내가 진작 했지. 물론 봉인쯤이야 할수 있지만 불완전한게 보통이고…… 솔직히 고스트 종류의 영혼체들을 묶어놓는건 가능하 지만 인간의 생령이나 아카식으로 가야할 존재들을 봉하는건 금기이기도 하고 우주적인 어 떤 힘 때문에 마법 정도로는 불가능하지. 어긋나거나 어디엔가 물들어버린 존재들을 봉하는 거야 쉽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오랜만에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 이야기를 꺼내다가 문득 묘하게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질문을 던져왔다. "그런데 그런걸 어디서 들었냐?" "어떤 여자에게서…… 저도 영혼은 느낄수 있는데 영혼을 그대로 가져다가 무슨 구슬 같은 것 에 봉인해버리더군요. 시공을 고스란히 동결해서……" "뭣이!" 경악해서 눈을 부릅 뜬 예하엘은 잠시 그렇게 경악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인상을 찡그리곤 뭔가를 생각하며 지식들을 떠올려 보는 듯 했다. 하지만 곧 허탈한 듯한 표정이 되었다. 하 긴 그가 이른 경지는 대단한 것이다. 그가 말했던 성직자의 힘이나 검사, 혹은 주술사들의 힘을 깊디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이런…… 할일이 점점 늘어나는군. 나에게는 기쁨이지만. 아직도 내가 모르는게 이렇게 많으니…… 채워나갈게 무한하게 남아있구만."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은 이제 여기서 뭘 할게냐? 그런걸 물어보는 것을 보니 그 싸가지없는 꼬맹이가 죽은 모양인데…… 쯧쯧쯧." 그 말을 하고 혀를 차던 예하엘은 잠시 인상을 찡그리면서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한숨을 토 해냈다. 그리고 나서 나를 직시했다. 감정 변화와 그 표현이 매우 빠르게 바뀌는 것이 과연 괴팍하다고 밖에 할수가 없다. "어차피 이곳을 제패하는 것 따윈 목적에도 없었고 해야 할 일도 끝나버렸으니…… 그리고 녀석도 죽어버렸고…… 다만 가능하다면 그를 되살리는데 나머지 생을 걸어볼까 합니다. 그 리고 무엇보다 영혼까지 속박되었으니 그것을 탈환해야 하고요. 되살리는게 불가능하다면 영혼의 속박이나 풀어주고 싶습니다." 그런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 왜 영혼을 가져갔는지는 모르지만 딱히 목적 없이 그런 정보까 지 알려준 것으로 미루어 보아 목적은 아무래도 나인것 같았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는 것이 좋겠지. 아니, 그 방도 밖에 없나? "쯧쯧. 젊은놈이 할 일이 지나치게 많구만. 포기나 하지 말거라. 어쨌든 만약에 아스타르로 가고자 한다면 내가 마법진을 완성하기를 기다리던가…… 혹시 여기서 할 일이 남아 있다면 빨리 정리 하거라. 대륙을 넘는 마법진은 어마어마한 마나량이 필요하기 때문에 계산도 복 잡하고…… 1년 정도 걸릴것 같아." "정리할게 많아서 아무래도 전 나중에 따로 가게 될것 같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인사를 남겼다. 그답게 짤막하면서도 괴팍하기 그지 없는 인사였다. "그래? 그럼 나는 먼저 가마. 뒈지지나 말아라. 언제 엘슈트럼 궁정으로 찾아오면 나를 찾거 라. 경비병들이 막으려고 하면 이걸 보여 줘." 그는 품속에서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팬던트 같은 것이었는데 보석 같 은게 아니라 내가 한번도 본적이 없는 물질로 이루어진. 특이한 문양이 여러개 찍혀 있는 어떤 문장이었다. 기도 영기도 느껴지지 않지만 뭔가 느낌이 달랐다. "미스릴에 아다만티움 합금으로 만들어진거라 튼튼하기는 튼튼할거다. 내 가문의 문장이 쓰 여져 있는 문장이지. 원래는 그냥 경량화 마법을 건 강철 팬던트였는데 이왕 만드는 김에 좋은 걸 만들자는 생각으로 만든거다. 그걸 들고 라이트닝 볼트의 시동어를 외치면 4서클의 벼락이 쏟아져 나가. 30분에 한번씩 충전되는데 원료가 비쌌기 때문에 지금의 조잡한 기술 로도 그렇게 강력한 단순 공격용 마법기를 만들수 있었지. 자체적으로 강력한 마력을 띄고 있는 진짜 마법기가 아니라 그냥 단지 스펠을 새겨 넣은 팬던트일 뿐이야." "……그렇군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염치도 없는 녀석……" 혀를 찬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바람으로 몸을 감싼채 산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그를 보내 고 나서 나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를 만나고 나서 결정한 것은 오래 걸릴 것 같으니 타 대 륙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이 나라 최고 공수권자를 만나봐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황제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식사도 뭣도 필요 없었기에 그냥 그 자리에서 날라올랐고,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제도를 향 했다. 꽤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길을 따라 날아간다 하더라도 비행은 비행이니 1주일도 걸리 지 않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걸리는 것은 걸리는 것이다. 커다란 성이나 영주가 있는 땅에도 들르지 않고 그대로 일직선으로 쭈욱 날고, 그나마 가끔 씩 산에서 쉬어가며 제국의 황도 단檀에 도착했을 때에는 천류세가 근방에서는 그저 건조하 고 짙은 구름으로 가득했을 뿐인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온 하늘을 뒤덮으며 떨어져 내리는 함박눈은 회색과 백색으로 얽혀 장엄하기까지 했다. 사람들로 떠들석한 황도를 지나면서 많은 시선을 받는 것은 질색이다. 덕분에 은신술을 이 용해 황궁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오는 눈에 거리를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과 강아지들. 눈 을 바라보며 웃고 즐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무림이 아무리 거대하고 그 규모가 넓다 하더라도…… 역시 나라 일과는 무관한 세상이다. 이곳 무림은 대륙이 너무나도 넓고 인구가 많았기에 역시 그 규모가 크다. 중국 정도의 넓 이에 불과했다면 그 숫자가 적었겠지만 이 대륙의 인구는 지독히도 많았다. 물론 사람이 살 지 못할 곳도 많지만 대륙은 아주 넓다. 그래서 수만이나 되는 자들이 죽어 나간다 하더라 도 그것은 그다지 엄청난 영향을 주지 못했다. 게다가 무림이란 평화로운 통일제국과는 무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정예에 강 력한 무공을 써댄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사람이다. 먹고 살지 않으면 죽는다. 상 업에 종사하고 하루와 내일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 없다면 무인들은 생업을 선택해야 했으리 라. 나라의 시각으로 보면 평화로울때 무인들은 존재 가치가 없다. 황궁을 눈 앞에 두고 나는 눈을 감았다. 황제를 만나자. 황제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자. 알아듣지 못하면 힘으로라도 억누르겠다. 난 이미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고 이 대륙 자체와도 싸울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 물론 이런 존재가 그런 짓을 한다면 균형이 깨어질 것이고 나를 이용하려는 그자들의 의도와도 어긋난다. 서륜과 운을 위해서라도, 그 전에 나 를 위해서라도 그만 두는게 좋다. 황색의 기와를 얹은 장엄한 황궁을 바라보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이제야 시작인걸까. 너무 나도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끝났구나. 이 대륙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나서 서대륙으로 가자.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움직여야 한다. 앞으로는 많이 바빠질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 다. 정말로 바빠질것 같았다. 여전히 무심한 하늘에서는 눈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의 은신을 알아볼 사람은 황궁에 없겠지만 이 눈이 소리를 빨아들여 줄 것이다. 그는 그대로 신형을 날려 황궁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가 사라진 자리로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 땅을 휩쓸었다. 암시暗示라는 것은 항상 어느 누구에게나 보여진다. 주변 광경을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눈 을 휘말고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은 잔인한 미래와 같아보였다. 그러나 운명은 정해져 있을 지라도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운명이 모든것을 포함한다 해도 미래를 극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앞으로의 두루마리는 비어 있으니까…… <一部 終>